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칼럼
영웅이 갈망하는 신의 모습은
벚꽃들이 하늘에서 춤추듯 한잎 한잎 휘날리면서 지는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싶었다. 거세지 않은 비였건만 꽃잎들은 가지로부터 떠나와 땅위에 제 몸을 풀어놓았다. 우산을 들고 꽃잎으로 아로 수놓아진 도로를 걸었다. 봄을 알리는 산수유, 매화, 목련, 벚꽃, 철쭉이 피고지면서 봄을 유지시켜 나간다. 봄꽃이 지고나면 여름꽃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여름꽃이 지고나면 가을꽃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이처럼 우주의 순환은 멈추어본 일이 없다.
이 땅의 영웅이야기도 끊임없이 생성되어졌고, 전래되고 그래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다. 특히 한국불교에서는 수많은 영웅들을 배출했다. 여기에서 내가 영웅이라고 하는 것은 불교의 수행자인 ‘스님’들을 말한다. 조셉캠벨이 종교의 창시자이자 종교가인 붓다, 예수, 마호메트를 두고 영웅이라 명하는 것에 힘입었다.
5년 남짓 객원기자를 하면서 많은 스님들을 만났다. 그중 몇몇 분들은 깊은 산골에 토굴을 지어놓고 수십 년간 은둔하면서 공부하였다. 인적이 거의 없는 산중에(지금부터 50여년 전에는 가능한 일이었다) 나무로 얼기설기 지은 토굴에서 한 겨울의 매서운 추위 속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쏟아지는 잠을 이기기 위해서 하루 한 끼만 먹는 등 스스로 고행의 길을 자초한 스님들을 만났다. 그들의 열망은 오직 하나 ‘깨닫고야 말겠다’는 것이다. 스리 라마크리슈나 역시 “깨달음을 찾으려는 자라면 마치 머리에 불붙은 사람이 연못을 찾는 것과 같은 처절함이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고 말했다. 그들은 유한한 우리의 생명줄을 알기에 공부가 다급하고도 다급했다.
깨달음을 얻어서 생사해탈을 하겠다는 것, 자신의 생과 사를 자연의 법칙에 맡겨두지 않고 스스로가 다스리겠다는 말이다. 자신의 생에 관해서는 우주의 흐름을 바꾸어놓겠다는 그들의 결연한 의지는 무쇠라도 녹일 수 있을 만큼 뜨거웠다. 공부하다 죽일지 언정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이곳에서 나가지 않겠다는 그들은 수십 년간 은둔생활을 하기도 했다. 대정스님은 너무 오랜 기간 은둔생활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묵언(黙言)수행을 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목소리를 잃어버릴 정도였다.
나는 마음 속에 청화큰 스님을 품고 있다. 청화큰스님의 일생은 오로지 공부로만 이루어져 있다. 출가 전에도 공부하기를 좋아하여 쉬지 않고 책을 읽었다. 청화스님은 일본에 유학하여 책이 너무 읽고 싶은데 돈은 없고 그래서 헌책방의 점원생활을 하였다. 그때 플라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 데모크라테스, 아르키메데스 등 그리스 철학자들을 만났다. 그리고 독일 철학자 칸트를 비롯하여 쇼펜하우어, 스피노자, 니체도 만났고 동양철학자 노자 장자, 공자, 순자도 만났다. 작은 헌책방에서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 지혜의 신 아테나,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전능의 신 제우스도 만났다. 그때 신들의 종횡무진한 활약상을 통해 현상세계를 초월한 그 너머의 세계에 눈을 떴다.
유학에서 돌아 온 후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무지(無智)임을 알기에 고향마을에 중학교 과정의 고등공민학교를 세웠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스님은 24살에 출가를 하였다. 훌륭한 스승, 금타화상을 만나 공부의 다급함을 느낀 청화스님은 오로지 공부에만 전심전력했다. 토굴을 마련하여 그곳에서 장좌불와(눕지 않고 좌선하는 것)를 했는데 무려 40년 동안 장좌불와 수행을 하였다. 그리고 하루 한 끼만 먹었는데, 밥해 먹는 시간이 아까워 물에 불린 생쌀로만 연명했다. 수행이라는 광야에 혼자 내던져져 광풍과 혹한과 비바람을 이기며 40년간을 버티어 온 것이다. 스스로 가꾸고 키워 거목으로 우뚝 세운 것이다.
조셉 캠벨은 “개인적인 한계를 넘는 고통은 곧 정신의 성숙에 따른 고통이다. 예술, 문학, 신화, 그리고 밀교, 철학과 수련은 모두 인간이 자기 한계의 지평을 넘고 드넓은 자각의 지역으로 건너게 해주는 가교인 것이다.”고 했다. 이런 치열한 수행은 또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는 다리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결고리를 얻는 것 또한 자신의 몫이다.
붓다가 깨달은 연기법을 통달하여 나와 네가 어떤 경계도 없으며 다르지 않음을 확연하게 깨달은 청화큰 스님은 40년의 장좌불와를 끝내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러한 순간을 두고 조셉캠벨은 이렇게 표현했다.
“차례로 용을 쓰러뜨리고 관문과 관문을 차례로 지남에 따라 영웅이 고도로 갈망하는 신의 모습은 점점 커져 이윽고 우주 전체에 가득 차게 된다. 영웅의 마음은 마침내 우주의 벽을 깨뜨리고 모든 형상(모든 상징, 모든 신성)의 경험을 초월하는 자각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바로 불변의 공(空)에 대한 자각이다.”
영웅이 고도로 갈망하는 신의 모습은, 모든 것이 비어있음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청화스님은 자신의 공부를 끝내고 이 세상 속으로 귀환했다. 캠벨은 “영웅의 귀환은 그 저승에서의 귀환을 말한다. 이승과 저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하나의 세계다.”라고 했다. 인간의 오욕을 모두 잠재우는 것이 저승에 있는 것처럼 힘들었을 것이지만, 결국 그것을 다 이겨내고 밝음의 세계 이승의 세계로 돌아왔다. 이 두 세계는 다르지 않다. 오랫동안 영웅을 기다려온 대중들은 가르침에 목말라했기에 그의 횡보는 바빴다.
청화큰스님은 선승이 가지는 예리하고 날선 푸름보다는 따뜻하고 자비심이 넘친다. 수행할 때 온 우주에게 감사함을 주체할 수가 없어 수건을 적실만큼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분을 처음으로 뵌 순간 그 앞에 엎드려 한없이 울고 싶었다.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삼독심- 분노, 탐욕, 어리석음 -을 모두 여위고 오로지 관세음보살처럼 자비심만 남은 그분의 에너지가 나에게 전이되었다. ‘나’라고 하는 아상(我相)을 내려놓고 방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리고 싶을 만큼 그 순간 나는 순일해졌고, 정화되었다.
청화큰스님은 열반에 들었지만, 그의 가르침은 지금도 수많은 제자들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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