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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23일 11시 07분 등록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1위이다. ‘자살 공화국’이라고도 불린다. 땅덩이는 작고 인구밀도가 높아 경쟁이 치열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매일매일 치열하게 살아도 행복지수는 점점 떨어지고 삶은 팍팍하다. 이렇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병을 안고 살아간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우울증’이다. 우울증은 우울감, 무기력감, 불안, 흥미의 저하, 식욕장애, 수면장애, 자살 생각 등이 2주 이상 지속되는 상태를 말한다. 신경전달물질의 화학적 불균형이 원인이며, 여기에 환경적인 요인과 가족력이 있는 경우에는 발병률이 더 높아진다. 이기주의의 팽배, 급속한 산업화, 치열한 경쟁과 경쟁에서 낙오한 자들에 대한 사회 안전망 부족 등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병폐가 환경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여 사회적 우울증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우울증이 무서운 것은 우울감에서만 그치지 않고 부적절한 죄책감과 책임감, 무가치감, 집중력의 저하 등을 가져와 환자가 현실 세계를 포기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여기서부터 자살 충동이 시작된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우울증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사회적 우울증 증가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죠셉 캠벨이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영웅의 여정을 분석하면서 내 머리속에 떠오른 것은 영웅의 여정이 ‘우울증 극복 과정’과 닮아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이 우울증 극복 과정을 영웅의 여정에 따라 정리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죠셉 캠벨은 ‘영웅의 여정’을 인생에서 중요한 화두인 ‘변화’를 위한 필수 과정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영웅의 여정'으로  우울증 극복 과정을 해석할 수 있다면 우울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희망을 줄 수 있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우울증을 평생 지고 가야하는 굴레가 아니라 인생의 수많은 변화 중 하나로 받아들이고, 그 극복 과정을 영웅의 여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우울의 나락에서도 빛 한줄기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우울증은 소인을 가지고 있던 사람에게 환경적으로 강한 충격이나 스트레스 상황이 심해지면 발병하게 된다. 이 스트레스 상황에는 계절의 변화도 포함된다. 영웅이 모험에 문턱에서 만나게 되는 그림자 같은 부정적인 존재, 이 존재가 우울증에서는 환경적 변화로 대표되는 우울증의 직접적 계기이다. 우울을 겪는 사람은 환경적 요인을 피하지 못하고 암흑의 왕국에 들어가게 된다. 이 암흑의 왕국으로 들어가면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는 감정의 나락을 경험해야 한다. 세상은 온통 회색빛이고 끝도 없이 가라앉는 기분은 다시 회복되지 않을 것 같다. 때로는 이유 없는 자책감이, 때로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무기력함이 찾아온다. 우울의 바닥에 다다르면, 정신과 육체를 지탱하던 의지와 힘이 다 빠져나간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조력자이다. 영웅의 여정에서는 초자연적인 도움을 받기도 하는데 우울을 겪는 사람은 사람에게서 이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 사람은 자신에게 잘 맞는 의사가 될 수 있고,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주는 가족 구성원이나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우울의 부정적 에너지를 전하고 싶지 않더라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 도움을 손길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울은 더 심해진다. 그러므로 우울을 겪는 사람은  조력자가 자신을 도울 수 있도록 받아들여야 한다. 혼자 극복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방황하고 시련당하는 영웅처럼 칠흙 같은 어둠의 시간은 더 길어진다.  반대로 도움의 손길을 받아들이면 우울증 회복의 가장 어려운 과정인 회복 기간에서 찾아오는 자살 충동과 자살 시도 역시 극복하기 수월해 진다. 여기까지 오면 거의 다 온 것이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도움의 손길을 받아들인 다는 것은 현실로 돌아올 준비가 시작되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울증을 극복한 사람이 받는 보상은 무엇일까? 그것은 삶이다. 병리적인 감정의 나락에서 빠져나와 뒤돌아보면, 자신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살 충동이나 시도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병적인 감정에 의해 발현된 증상이란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다행이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볼 수 있고, 아름다운 계절의 다시 느낄 수 있고, 내가 좋아하던 것들을 다시 한 번 시도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이 당신에게 주어질 보상이라 생각하면 현실로의 귀환이 그렇게 두렵지 만을 않을 것이라 믿는다

IP *.128.6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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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3 13:07:26 *.51.145.193

영웅이 되기 전까지는 그 여정을 절대 포기하지 말기를.

비 개인 뒤의 풀냄새, 봄날, 시, 바다, 꽃비 그리고 8기가 있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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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3 14:07:47 *.68.172.4

나도 우울증 때문에 약을 먹어본 적이 있는데(우울은 '마음의 감기'라고 생각하고 나의 우울은 그리 심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냥 무덤덤하게 이야기 해보려고) 우울증의 극복을 영웅주의와 결합시켜 볼 생각은 해보질 못했네. 그 연관성을 설명한 언니의 글에 절로 무릎이 쳐진다.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 참 중요한 글이 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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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3 19:59:37 *.154.116.89

나라, 우울증 이야기가 읽으면 읽을수록 영웅의 이야기와 닮았네요. 

어둠속에 자신과의 싸움을 홀로 이겨내야하는 영혼들에게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 주변을 다시 한 번 둘러 보게 되네요.

 

하지만, 팔팔이와 함께 라면 평생 우울증 걱정 안해도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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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4 00:08:07 *.107.137.43

우울증 극복과 영웅의 여정이라...

나라만의 이야기를 잘 풀어 낼 수 있겠구나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ㅡ힘이 될 거고 ...

기대하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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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7 03:15:23 *.154.223.199

멋져요. 이런 연결. 그 결과물에서 이득을 얻길 바라는 사람 중 한 사람으로써 저도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민음사 엔드류 솔로몬 <한낮의 우울> 책이 생각났어요.

우울증을 나무를 감고 있는 덤불로 비유했고, 본인을 구원하기 위해 우울증에 대한 걸 종횡무진 조사하고, 실험한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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