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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23일 11시 26분 등록
 

영웅이 되고 싶지 않은가?

                                                                                                               최 세 린


 미래의 영웅들이 교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나는 오늘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함께 영웅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 생각으로 교실에 들어갔다.


 “애들아, 너희들이 알고 있는 영웅은 누가 있니?”

 “영웅이요?”


 시큰둥한 반응이다. 지금 중간고사가 코앞인데 연립방정식 활용이나 가르치던지 아니면 시험에 뭐가 나오는지 귀띔이나 해줄 것이지 뜬금없이 영웅이야기는 뭐란 말인가, 이런 표정들이다.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학생들에게 영웅이야기를 한다.


 “애들아 영웅이 되고 싶지 않니?”

 "......."

 

 한 학생이 입을 열었다.

 “영웅은 이하이 같은 애나 되는 거에요.”

 “하이? 왜?”

 “갠 수학도 잘하고, 영어 말하기도 잘하고, 미술도 잘 그리고, 토론대회에서도 매번 일등하고, 수학경시대회 상은 다 타고, 노래도 잘 불러요. 갠 못하는 게 없어요. 결국 조기 졸업하고 과학고 갔잖아요.”

 “너희들에게 영웅은 공부를 잘하면서 다재다능한 사람을 말하는구나.”

 “뭐 영웅이라면 그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 너희들 말도 맞다. 하이도 영웅이 될 수 있겠다. 하지만 하이 같은 애만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도 영웅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학생들은 별 말이 없다. 영웅 이야기에도 관심이 없지만 스스로 영웅이 될 수 있다는 말은 더 피부로 와 닿지 않나보다. 꿈을 갖고 공부하라는 이야기 보다 더 비현실적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쌤이 책을 하나 읽었는데 거기 보니 영웅은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데. 그런데 얼굴은 다양해도 많은 영웅들은 그들만의 공통된 스토리 보드를 가지고 영웅의 삶을 살았다고 하더구나. 너희들이 잘 알만한 영웅은 누가 있을까? 스파이더맨? 스파이더맨 영화 봤지? 스파이더맨을 예로 들어 영웅의 모험 여정에 대해 한번 설명해 볼게.

 피터(스파이더맨)는 평범한 학생으로 살다가 자신의 부모님의 실종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되지. 조사 중 아버지의 동료였던 코너스 박사의 실험실에 찾아가. 그때 코너스 박사의 또 다른 자아인 리자드와 정면충돌 하게 된단다. 그 순간 피터(스파이더맨)는 자신의 파워를 이용해 영웅이 되려는 일생일대의 결단을 내리게 돼. 이 결단과 함께 피터는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 시작한단다. 음, 바로 이 부분이 영웅이 겪게 되는 첫 번째 단계라고 할 수 있어. 이전의 삶과의 분리가 영웅들의 거쳐야 하는 첫 번째 스토리 보드란다. 더 이상 평범한 학생이 아닌 거야. 그러고 나서 그는 자신의 놀라운 능력을 잘 사용하기 위해 훈련을 해. 영화의 장면 중 손목에서 나오는 줄을 자기 방에서 이리저리 뽑아 결국 거미줄을 만들게 되는 거 기억하니? 그 장면이 후에 영화는 장면을 빠르게 변환시키면서 스파이더맨이 빌딩 숲 사이를 거미줄 하나를 이용하여 날아다니는 모습까지 보여주지. 입문을 단계라고나 할까? 이 입문의 단계는 그냥 끝나지 않고 스파이더맨의 적수 고블린을 만나게 되는 것으로 전개된단다. 물론 다른 적들도 있지만. 스파이더맨은 고블린과 싸우면서 시련을 겪게 되어. 자신과 친한 친구의 아버지가 자기와 적이 되었기 때문에 딜레마에 빠지게 되거든. 하지만 스파이더맨은 이러한 시련을 극복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도시를 구하기 위해 고블린과 싸워 이기게 된단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가지고 수련하고, 시련을 이겨내어 결국에는 자신이 속한 사회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귀환하게 되는 거지. 쌤이 읽은 책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는 영웅의 표준 궤도를 분리, 입문, 회귀(귀환)의 3단계로 이야기 했는데 스파이더맨도 그런 것 같니?”


 나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어떻게 영웅의 3단계를 밟으며 나아가야 할까? 첫 번째 단계인 <분리>부터 생각해보자."


 한 학생이 내 말을 듣자마자 이어 말한다.


 “저는 엄마로부터 분리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엄마는 매일 잔소리만 하시고, 저한테 바라는 것이 너무 많아요.”

 “엄마로부터 분리라....... 잔소리를 벗어나기 위한 분리라기보다 네 삶을 살기 위한 분리라고 하면 영웅에 더 가까워지겠다. 영웅의 여정에서 분리란 자신의 원형을 찾게 되는 것을 말하는데, 원형이라고 하면 자기 자신의 본래 모습이라고 할까? 선천적으로 주어진 가능성이라고 말하면 이해가 되려나? 원형이라는 단어는 정신의학자 융이 이야기 한 것인데 그 단어의 뜻은 압도적인 힘과 같은 것이래. 무의식중에 내재되어 있는 너희를 움직이는 힘. 엄마로부터 분리되어 그것을 찾게 된다면 영웅의 여정은 아주 멋지게 시작될 것 같구나.”


 아마 학생들은 내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모를 것 같다. 덧붙여본다.


 “그러니까 부모님이나 친구들로부터 오는 기대, 시선, 요구들에서 벗어나서 너희 안에 내재되어 있는 너희들 각자만의 힘을 찾아보는 거야. 아까 하이 같은 애만 영웅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하이는 자신의 능력이 발휘 될 수 있는 부분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아주 잘 사용한 예라고 할 수 있지. 우리들은 모두 각자 다른 어떠한 힘을 가지고 있는데, 발견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채 그저 주어지는 대로 살고 있는 것 같아. 선생님도 마찬가지란다. 주어지는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는 힘으로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영웅적 삶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부모님의 바람, 기대나 요구로부터 독립되어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해 깊이 한번 고민해봐. 그러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될 거야.”


 설명이 잘 됐는지 모르겠다. 나는 출근 하는 길 학교 밖에서 학교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교육이라는 것이 사람의 삶을 일률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학년 당 9반, 10반씩 나누어 각 반에 35명에서 40명씩 들어 앉혔다. 그리고는 똑같은 교육과정 안에서 교사 재량이 있긴 하지만 같은 내용을 비슷한 방법으로 가르치고 있다. 대부분의 학교는 8시 30분에 시작하여 3시30분 또는 4시 좀 넘는 시간까지 학생들을 데리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영웅이 나온다는 것이 말이 될까? 이런 환경 안에서 남들과 차별화된 생각을 하는 학생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이전에 했던 생각을 회상하고 있는데 한 학생이 질문을 한다.


 “쌤, 그럼 분리 된 다음엔 어떤 여정을 겪어야 해요?”

 “오, 맞다. 다음 단계! 너희들은 모두 영웅이 될 수 있는데 시간이 좀 필요해. 숙성기간이라고나 할까? 너희들이 찾은 각자의 원형, 즉 너희들만의 힘이 잘 발현될 수 있도록 훈련하는 기간이 필요해. 이 시간엔 시련이 따르기도 하고 고난이나 역경이 닥쳐 올 수도 있어. 하지만 이 기간을 잘 견뎌낸다면 멋지게 영웅의 반열에 가까워 질 수 있게 된단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아무도 몰라. 각자 가지고 있는 힘, 더 쉽고 와 닿게 이야기 한다면 재능이라든지 강점을 잘 훈련시켜 탁월한 재능으로 만든 후 그 분야에서 영웅이 되는 거야. 그리고 영웅은 반드시 귀환해야하거든? 돌아와야 해. 어디로 돌아와야 하냐면 바로 네가 속한 사회로 말이지. 한 분야에서 영웅이 되고서는 네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영웅의 역할을 다 하는 거야. 좋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거지. 이것이 너희들의 영웅담의 마지막 스토리가 된다면 좋겠구나.”


 학생들은 여전히 말똥말똥 나를 쳐다보고 있다. 저 선생이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잘 이해는 안돼는 모양이다. 그래도 나는 그 똘망똘망 한 눈망울을 보며 기분이 좋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학생들의 무의식 안에 ‘영웅'이라는 씨앗 하나가 뿌려졌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그들은 몇 년간 외부로부터 주어진 교육과정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똑같은 내용, 비슷한 교육방법으로 교육받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받아들이며 살 것 같다. 또 기본공통 교육과정이 끝나고 나면 차례대로 줄세움을 당하게 될거다. 이런 상황이지만 나는 내게 주어진 알량한 재량권을 조금 사용해 본다. 오늘의 수업을 통해 그들이 규격화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작은 희망을 가지고 영웅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무리 정해졌고, 주어진 교육과정을 벗어날 수 없도록 제도가 그들을 꽁꽁 묶더라도 그들의 생각, 사고는 옭아맬 수 없으니까. 오늘의 영웅 이야기가 그들의 삶에 싹을 틔워 그들이 자신의 원형을 발견하고, 이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사람으로 살 수 있게 되길 바란다.


 그들이 그들 자신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씨를 뿌렸다. 이 시대에도, 이 사회에도 자신의 분야에서 많은 영웅들이 등장하여 우리를 구원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나의 영웅의 여정을 떠나려고 짐을 싼다. 내 안에 내재되어 있는 힘을 발견하고 영웅의 여정을 떠나려면 더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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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3 12:59:55 *.51.145.193

Bravo my teacher!!!

세린과 같은 스승을 일찌기 만났더라면 14반에 50명씩 앉혀놓은 콩나물 시루에도

산삼이 났을 꺼인디...^^

이 나라 모든 '쌤'이 그대와 같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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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3 14:05:11 *.68.172.4

세린이는 덕목이 넘치는 사람이야. 어쩜 사람이 이처럼 완벽할 수 있는지 가끔 놀랍다니깐. 그런데 이것은 강박적 완벽이라기보다 인격적 완벽인데 그래서 나는 세린이가 참 좋은 듯.^^ 자신이 배워서 너무 좋은 것을 곧바로 학생들에게 환원하는 자세가 너무 아름답다! 넌 뭐가 되도 훌륭하게 될거야. 아니 이미 너무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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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3 14:55:30 *.166.160.151

세린이 사용한 재량권때문에 어떤 학부모로부터 컴플레인 올지도 모르겠다...ㅋㅋ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 아이가 학교에 가서 세린이 같은 선생님을 만나는일

가슴뛰는 일이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잘 알아듣는다.

어른들이 미리 재단하고 있을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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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3 20:08:12 *.154.116.89

아이들 기억속에 씨앗하나, 뿌리는 것! 이것이 살아있는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학교 때 수업내용과 다른 이야기 하는 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영어 선생님과의 만남도 그러했습니다.

당신의 친구가 한국에 왔다기에 아픈 몸을 이끌고 우리 아이들과 만났죠.

그분은 수업 중에 신의 대한 제 마음의 문을 열어주신 분이죠.

나에게는 행운이고 축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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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7 04:23:21 *.154.223.199

스파이더맨 영화를 가지고 영웅을 이야기하는 수학쌤이라니! 완전 멋진데요. 돌이켜보면 저렇게 씨앗 하나를 뿌린 쌤들이 여러분 계셨습니다. 바로바로, 공부한 것을 아이들에게 적용하고 전달하는 실행력 짱 세린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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