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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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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23일 11시 46분 등록

옆방 김부장, 요즘 감기에 입맛이 없다며 순대국을 먹으러 가잔다. 사무실을 나와 순대국 집까지 걸으며 이야기한다. “이제 봄이 없나 봐?” 완전 여름이네…하길래 “아니야 봄 왔었어. 꽃이 다 피었쟎아” 그랬다. 봄 꽃들이 언제 다 피었다. 벚꽃은 잎과 꽃이 반반, 목련은 장렬히 전사 중…보라보라 제비꽃은 한창이고, 좀 늦게 피어나는 진달래와 라일락 향기도 코끝으로 이야기한다. 산 벚꽃, 참나무의 새싹과 함께 밋밋했던 산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순대국 한 그릇을 하고 사무실로 돌아오면서 “지난번 그 사건 있지? 왜 그 뭐였더라….” 이제 우리 나이면 말과 생각이 동시에 안될 때가 있다. ”왜 그 있쟎아 유리창 깨졌던 일 그 집이 이 집이야. 하면서 건널목 앞 안경가게를 가리킨다.” 잘 안 깨진다는 강화유리가 박살 났던 사건. 저녁 메인뉴스를 장식했던 사건. 쇠구슬. 기억이 난다. 심심해서 그랬다는 어이없는 경찰발표. 어이없는 것은 경찰이 아니라 그 일을 벌인 그들이다. 강남일대 5.9mm 쇠구슬발사. 그 중 한 곳이란다.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많이 발생해서 이제 왠만해서는 그런가 보다 하게 된다. 40대심심해서 했다는 일이 비비탄, 쇠구슬난사라…간단해지지 않는다. 누군지 모른다. 어떤 성장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지금은 어떤 상황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분명한 것은 심심했다는 것이고, 그래서 한 일이란 것이다. 개념없음을 이야기하기도 난감하다. 참…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어찌보면 그리 대단한 뉴스꺼리가 아닐 수 있다. 허나 생각하면 대단한 뉴스다. 40대의 남자가 아이들이나 할법한 놀이를 그것도 아이들한테는 위험하니 그런 놀이하면 안 된다. 설명을 해줄 나이에 본인이 심심해서 그랬다는 것에서 더 이상 상상이 잘 안가는 부분이다. 마감재가 유리인 건물이 많다. 도심 길가에는 더욱 그렇다.. 예쁘기도 하고 내부가 잘 보이니 광고효과도 있고 해서 많이 사용하지 않나 싶기는 하다. 전문가의 시각으로 보면 다른 이유가 있으리라. 나무, 벽돌, 시멘트, , 철근, 유리 건축재료들이다. , 모래도 필요하겠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형태 그대로의 재료로 건축물을 지었다. , , 나무. 요즘은 다양한 형태의 건축물이 공존한다. 필요에 따라 기호에 따라. 흔히 볼수 있었던 문. 창호지를 바른 하얀 문. 정겨움이 있던 문인데 보기 힘들어졌다. 여름내…아이들 장난에 구멍이 숭숭나 버린 문에 창호지를 바르던 일. 늦가을 월동준비의 하나로 하던 일이다. 볕 좋은 날, 문을 떼어내고 물을 조금 뿌려 문틀에서 창호지를 떼어낸 후 햇볕에 잠시 말려서.  준비한 밀가루 풀을  문틀에 골고루 칠하고 알맞게 오려 놓은 창호지를 대고 마른 수건으로 살살 문질러주면 새 문으로 변신하던 문.. 이 작업은 손힘의 강약이 중요하다. 힘을 잘 못 주면 풀 먹은 창호지가 밀려버린다. 또 하나의 재미. 두꺼운 책갈피에 넣어 두었던 코스모스, 은행잎, 작은 꽃들. 문 가운데 마른 꽃들을 놓고 창호지 조각에 풀칠을 해서 바르면 나만의 문이 되는 것이다. 누구네 집의 문하고도 차별화되는 디자인이 완성되는 것이다. 공간의 안과 밖을 구분해주면서 또 연결해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이런 문이다. 저녁이면 문을 열지 않고도 문안의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가늠이 가는 문. 불을 밝히지 않으면 암흑 속으로 사라져주는 요술 같은 문이다.

 

창호지를 바르기 위해 풀을 칠하는 곳. 문의 모양을 지탱해주고, 다양한 디자인이 가능한 것.

격자_ 평면 위에 각기 일정한 거리를 두고 평행선을 두 패 그리고 그 평면을 서로 합동인 작은 평행4변형의 집합으로 쪼갤 때 생기는 도형. 이것을 평면격자 또는 격자라 하고 평행선의 패와 패의 만난점을 격자점이라 하며 격자점만의 집합을 격자라 한다.

사람들은 프레임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할까. 나는 마음의 자로 표현한다. 사물이나 사람을 이해하는 척도. 내 마음대로 사용하는 자. 타인이 시시비비를 이야기할 수 없는 도량형을 가지고 있는 자.

 

그 자()의 만남이 격자다. 내 마음, 내 머릿속에 격자가 있다. 촘촘한 격자와 간격이 넓은 걱자. 어떤 일에는 밴댕이 속만도 못한 내 마음을 보고 촘촘한 격자를 생각한다. 마음의 격자 그 간격을 넓혀라. 가능하면 무한대로 넓혀서 살아라. 제주에 나들이 갔다가 차 한잔을 나누며 하신 말씀이다. 주지스님의 법명은 기억에 없지만 마음의 격자를 이야기하시던 그분 모습은 생생하다. 그 찻방의 사방을 둘러본다. 평범한 격자무늬 문을 바라보았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비슷하다. 불행한 가정은 각기 그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_톨스토이

행복에 많은 이유가 필요할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말로 알아 들었다. 불행한 가정은 다 그럴만한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 이유란 것이 격자의 크기 아니까 싶다. 우리의 자랑 다산선생은 초서抄書하는 방법에서 魚網得鴻법고기 그물을 쳐 놓으면 기러기란 놈도 걸리게 마련인데 어찌 먹지 않겠느냐?’ 고 말씀하신다. 도리탕이라도 해서 먹어야지(이건 정민 교수이야기다). 초서란 책에서 중요한 내용을 뽑아 옮겨 쓰는 것을 의미한다.

그물은 촘촘해야 고기를 잡을 수 있다. 그물로 기러기를 잡을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며칠전 스승님께 추상 같은 꾸지람을 받았다.

 

‘700여 페이지 책에서 50 페이지씩 뭉텅 빼먹고 100 페이지씩 떼어 먹으면 숙제를 한 것이 아니다. 그 그물로 잡을 수 있는 고기는 없다.’  그렇다. 나는 지금 그물을 짜고 있는 어부다. 어떤 고기를 잡을 수 있을지는 모른다. 다양한 종류의 고기를 잡으려면 일단 그물은 촘촘해야한다.

 

마음의 격자는 넓히고 그물을 최대한 촘촘하게! 앞으로 내가 살아갈 삶의 원칙으로 삼으련다.

 

 

 

 

IP *.166.16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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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3 12:48:00 *.51.145.193

행님의 프레임은 이미 넓습니다. 8기 동기들이 행님이 없으면 김 빠진 맥주가 되는

이유는 행님의 마음 격자가 넓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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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3 14:11:55 *.68.172.4

내 말이.. 재용 오빠 말대로, 나는 행님만큼 촘촘한 그물을 본 적이 없다. 행님의 문제는 지나치게 완벽하다는 것이다. 완벽한 아내이자, 어머니이자, 사업가이자, 작가이다. 심지어 완벽한 친구이다. 나는 내 생일 파티 때 언니가 보낸 "블랙 뷰티"를 보고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황홀했음. 그렇게 사람을 감복시키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다. 정말 화룡정점할 포인트가 어디인지 아는 사람이라니깐.

 

그런데 그렇게 살면 너무 힘들 것 같아.-_- 언니도 조금 버릴 것은 버려가면서 집중할 것에만 포커싱을 해야 할지도. 내가 잘 모르고 주제넘게 참견하는 게 아니면 좋겠네.

 

결론은, 그대만큼은 아니지만 꽃이 너무 아름다웠다는 것! 영원히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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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3 16:37:56 *.62.160.52
행님~! 영웅을 읽고 삶의 원칙을 얻게되었다니 보통 그물이 아닙니다. 입학여행 버스 안에서 "세린아, 꽃 봐라!" 해서 저는 봄 꽃을 볼 수 있었지요. 행님 그물 기울때 옆에서 따라 기워 내것도 좀 그물줄이 늘어나게 해볼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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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7 04:36:27 *.154.223.199

저 격자 문에 창호지 바른 다음에, 그늘에 세워서 얼추 말랐으면 입으로 스프레이질을 해줘서 한 번 쫙 편 후 다시 말리던 기억이 납니다.^^ '격자는 넓히고, 그물은 촘촘히' 캬, 멋진 구호입니다. 길수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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