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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24일 09시 21분 등록

#51. 미련도, 한도 없이 떠날 수 있는 삶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눈물이 나지 않는다. 한달 전, 할머니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대구로 가서 할머니와 시간을 보냈다. 병원생활을 오래 하셨던 할머니. 일 때문에 대구 갈 일이 생기면 병원에 들르곤 했다. 한 시간 남짓, 시간을 보내고 매번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병원을 나오곤 했는데, 인사를 할 때면 매번 할머니 눈가가 촉촉해 지곤 했다.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도 없는 병원 생활. 네모난 병실에서 하루 종일 작은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거나 간간히 티비를 보는 것, 손주들에게 전화하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할머니의 삶. 혈액투석을 하기 위해 다른 층으로 이동하는 것과 화장실에 가는 것이 할머니가 움직이는 동선의 전부였다. 그런 할머니를 또 다시 홀로 남기고 떠나야 했다. 외롭고 단조로운 시간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할머니에겐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서 할머니는 늘 내가 떠날 때 그렇게 아쉬움의 눈물을 보이셨나보다.

병원밥이 맛이 없다며 식사도 잘 안 하시던 할머니가 그날 따라 많이 드셨다.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고 있음을 할머니는 본능적으로 알고 계셨던 것 같다. 그래서 마지막 힘을 다해 식사를 하시고, 남은 삶에 대한 의지가 보인다. 4시간 정도 할머니와 평소처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머니는 내게 동생들 소식, 엄마 소식을 물어보셨고, 나는 가족들의 근황을 할머니께 전했다. 할머니 식사까지 도와드리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할머니와의 작별인사. 살이 쏙 빠져 뼈가 그대로 만져지는 할머니를 꼭 안아 드렸다. 그리고 인사를 했다. 할머니는 울지 않으셨다. 아주 담담하게 잘 가라고 인사를 하신다. 그런 할머니를 보는데 내가 울컥하고 눈물이 났다. 할머니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될 것 같았다. 왠지 그 눈물이 할머니와 만나는 이 시간이 마지막임을 증명할 것만 같았다.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 나와 건물 주차장에서 펑펑 울었다. 이미 한달 전에 이렇게 마음의 준비를 해서였을까? 할머니의 타계 소식을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이 한 달이란 시간은 할머니가 마지막 생을 정리하기 위해 주어졌던 것 같다. 사업이 망하면서 경제적인 문제들이 발생했고, 그 때부터 고모와 큰아버지들의 관계는 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다. 더불어 할머니와의 관계도 나빠졌다. 그래서 고모가 할머니를 안 본지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엄마는 고모에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병원에 가보시라고 했다. 그런 엄마에게 고모는 내가 거길 왜가냐며 화를 버럭 냈다. 하지만 고모는 사촌언니와 함께 할머니에게 갔다. 몸은 불편했지만, 정신만은 또렷했던 할머니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고모와 사촌언니를 반갑게 맞아주셨고, 다른 가족들의 안부도 물었다. 그날 갑자기 목욕이 하고 싶다는 할머니의 말씀에 고모와 언니는 할머니를 목욕시켜 주었는데, 묵은 때를 말끔하게 씻겨 드렸다고 한다. 어쩌면 할머니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건 할머니가 그 동안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자식들과 손주들을 마지막으로 보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할머니는 고모에게 용서하고 이해해라는 마지막 말씀을 남겼다.

장례식장이 있는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개찰구를 빠져나오는 순간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간 후 대구에 오는 날이면, 나를 기다리던 아빠 생각이 났다. 딸이 보고 싶어서 기차역까지 데리러 나온 아빠 마음은 생각하지도 않고,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아빠가 나를 크게 부를 때면, 숨어버리고 싶었던 적이 있다. 절룩거리는 아빠가 부끄럽기도 했고, 어린애도 아닌데 굳이 여기까지 나온 아빠의 마음이 고맙지도 않았다. 그 때 아빠의 마음은 어땠을까? 몇 달간 보지 못했던 딸을 데리러 오는 마음이 얼마나 즐거웠을까? 그런 마음도 몰라주고 철이 없던 딸은 고마워 할줄도, 반가워 할 줄도 몰랐다. 한번쯤은 아빠, 보고싶었어~’라고 부르며 달려가 따뜻하게 안아주었으면 아빠가 정말 좋아했을텐데 말이다. 미안한 마음만 가득한 아빠가 생각나서 눈이 빨갛게 익어갔다. 이제 할머니도 가시면 아빠 곁에 할머니, 할아버지, 작은고모, 성희오빠, 그리고 셋째 큰아버지까지 있어 덜 외롭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장례식 둘째 날 오후. 할머니 친정 조카인 스님이 할머니 가시는 길을 편안히 가시는 기도를 해주러 오셨다. 목탁소리와 스님의 불경 외는 소리가 장례식장에 고요하게 그리고 근엄하게 퍼져 나간다. 목탁 소리에 맞춰 나도 기도를 해 본다.

할머니, 하늘나라 가서 편안하게 쉬세요. 가서 아빠를 만나거든 우리 아빠 몫까지 잘 살고 있다고, 보고 싶다고 꼭 전해주세요. 사랑해요 할머니.’

한 시간 남짓 기도가 끝나고 스님이 가시면서 한마디 하신다.

고모님이 미련도 한도 없이 간다고 고맙다고 전해 달래요. 뒤도 안 돌아 보고 가신걸 보니 좋은 데 가시겠습니다.”

88년의 생을 살다 떠난 할머니. 그런 할머니가 세상에 미련도 한도 없다 하신다. 지난 마지막 한달의 시간이 할머니에게 정리의 기회가 되었던 것일까? 할머니의 초롱초롱하던 눈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몸은 비록 힘들지만, 마음만은 무척 편안해 보였다. 자식들과 손주들이 한 명씩 찾아올 때마다 할머니는 마음의 짐을 하나씩 내려놓았을지도 모른다. 생전에도 내가 찾아 갈 때마다, 전화 통화를 할 때마다 깊은 삶의 지혜들을 나누어 주셨던 할머니. 마지막 떠나는 그 순간에도 할머니는 내게 커다란 깨달음을 주신다.

한 번뿐인 인생, 언제 떠나든 미련도, 한도 남지 않게 살자.’

방황하고 있는 내 인생. 나의 즐거움을 좇아 살며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이 길이 맞니?’라고 묻고 있는 내게 할머니는 그래, 미나야 지금처럼 즐겁게 살아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사랑합니다 할머니. 부디 하늘나라에서 더 편하고 즐겁게 사세요. 다시 만날 그날까지 안녕히

 

#52. 내게 찾아온 우연

간디가 열차의 1등실에서 피부색 때문에 쫓겨났듯이, 마사 그레이엄이 벽에 붙어있던 포스터를 통해 춤을 만났듯이, 조셉캠벨이 7살 인디언박물관을 가게 되었듯이.

내게도 내 인생을 바꿀만한 우연이 있었을까? 나열한 인물들처럼 평생을 찾을만한 우연은 아니지만 나에게 일어났던 우연한 사건들을 떠올려 본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가족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로 했다. 모아둔 돈도, 미국에 가서 당장 밥벌이로 할 수 있는 기술도 없던 부모님은 최대한 많은 짐을 쌌다. 돈도 없는 상태에서 강행한 불법이민에 대한 꿈은 결국 집에 있는 망치까지 짐 속에 넣는 실수를 하게 된다. 잠깐 가족 여행을 오는 사람들이라 하기에 너무 많은 짐꾸러미를 보고 미국 공항 직원들은 직감적으로 우리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결국 미국 땅이라곤 공항과 다음 날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까지 남은 시간에 묵었던 공항 근처의 숙소가 전부다. 기회의 땅이라 불리던 미국으로의 이민은 이렇게 헤프닝으로 끝났다.

아무것도 없는 우리 가족이 미국으로 갈 때는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아빠 사고 이후로 매달 생활비를 꼬박꼬박 붙여주던 둘째 큰아버지였다. 미국에 가서도 생활비가 지속적으로 나올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 사업이 완전 망했다. 그리고 엄마는 이후에도 생각이 날 때마다 말씀하신다.

그 때 공항에서 걸려서 돌아왔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회사도 부도나서 생활비도 못하고 자리잡느라 진짜 고생했을 거야. 차라리 잘 됐어.” 라고.

10대에 찾아 온 또 하나의 우연은 바로 첫 사랑이다. 고등학교 1학년 여고에 다녔던 나는 남고에 다니던 친구와 작당해 10 10 반팅을 주선하게 된다. 사심없이 주선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러 반팅 장소에 나갔다. 친구들이 반팅을 하는 동안 나는 당시에 다니던 학원에서 좋아했던 남학생을 만나러 갔다. 학원에서 수업하는 모습만 봤던 이미지와 달리 대화를 하면 할수록 이건 아닌데?’라고 만들었던 그 친구 덕에 나는 일찍 자리를 파하고, 반팅을 하고 있던 장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헤어지고도 4년을 잊지 못했던 나의 첫사랑을 만났다.

10대에 찾아온 세 번째 우연은 나의 꿈과 관련된다. 고등학교 2학년까지 변함없이 이어진 수학선생님의 꿈. 선행학습의 부작용으로 고등학교 2학년 때 수학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잃게 된다. 그때부터 나는 갈 곳을 잃은 방랑자처럼 헤매기 시작한다. 대학에 간다한들 무얼 할 수 있을까? 매일 고민이 깊어졌다. 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을 맞이하고 새벽 등교와 야간자율학습으로 집과 학교만을 오가던 그 때 그 시절,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이 유일한 자유시간이었다. 인터넷을 사용할 시간은 거의 없었다. 조금이라도 남는 시간은 무조건 잠을 보충하며 보내던 어느 주말 오후, 이메일을 확인하기 위해 컴퓨터를 켰다. 엄청나게 쌓인 스팸메일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내 눈과 정신을 확 잡아당기는 메일이 한 통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승무원 양성과정을 광고하는 메일이었다. 그 메일을 열어보고, 어릴 적 파일럿이란 드라마가 문득 떠올랐다. 그 드라마를 볼 때 내 가슴은 미친듯이 요동치곤 했다. 그렇게 파일럿이란 꿈은 갑작스레 나를 찾아왔다.

스무살에 내게 찾아 온 우연한 사건, 비행 선생님을 만나다.

중학생 때 엄마가 가져다 준 ‘Working Holiday’와 관련한 신문기사를 보고 대학 가면 꼭 가봐야지라고 생각했다. 대학 1학년 겨울방학에 엄마의 권유로 미국의 비슷한 프로그램에 참여를 하게 된다. 난생 처음 아르바이트를 했고, 호텔청소로 번 돈을 가지고 여행을 다녔다. 두 달간의 일과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미국 동부에 있던 나는 서부에 들러 이틀 정도 여행을 하고 돌아가기로 결정을 한다. 당시 도움을 주셨던 아저씨의 지인이 공항으로 데리러 와 주셨다. 숙소로 가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분이 미국의 비행학교에서 비행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을 듣는 순간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났을 때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라고 감히 얘기해 본다. 순간 가슴은 마구 쿵쾅거렸고, 순간 머리 속에는 섬광 하나가 번쩍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파일럿이란 잊고 있던 내 꿈을 다시 기억해냈다.

또 다른 우연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이어지는 일자리들이다. 내 발로 찾아간 곳이 아니고 내게 찾아온 곳에서 매번 일을 시작했다. 특히 첫 번째 직장에서 재미있는 것은 내가 나올 때에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나는 두 가지 질문을 던져 본다. 첫 번째는 지금까지 내게 온 이 일터들은 도대체 내게 어떤 의미일까?이고, 두 번째 질문은 앞으로도 나는 지금까지와 같이 내게 열리는 문으로만 들어가야 하나? 라는 것이다. 

우선 첫 번째 질문에 답을 해봐야겠다. 각기 다른 캐릭터의 사장님들, 다른 근무환경, 그리고 매번 달랐던 나의 업무들. 회사를 나올 때마다 각기 다른 이유로 퇴사를 했다. 하지만 들어갈 때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함께 일을 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 질문은 바로 나중에 내 사업에 도움이 될까?’였고, 매 번 대답은 그렇다였다. 내게 열린 문을 향해 뚜벅 뚜벅 걸어 들어갔다. 금새 뛰쳐나올지라도 말이다.

쉽게 들어가고, 금방 뛰쳐나오는 반복으로 1년이 흘렀다. 자신감은 바람이 많이 빠진 고무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이대로도 좋은가?’, ‘나 잘 하고 있는 것이 맞나?’ 방황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스스로에게 던졌을 질문들을 내게 하기 시작했다. 이 질문들은 결국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으로 나를 이끌었다. 간절하고 그 어느 때보다 절실했다. 진짜 내 인생을 살고 싶었고, 조금 더 명확한 인생의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다행히 나의 간절함과 절실함 그리고 깊은 고민은 단테가 <신곡>의 환상을 보았듯, 아이디어 컴퍼니라는 재미있는 실험을 하는 회사의 환상이 나를 스쳤다. 매일 그것을 생각했고, 내 머리속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른 아이디어들이 나타나 주었다. 작가와 나의 첫 책에 대한 열망도 훨씬 커졌다. 이것은 절실함의 연장선이었다. 이렇게 책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무렵, 내 손에는 단테의 <새로운 인생>이란 책이 들려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또 가슴이 뛰었다. 이 책을 통해 내 책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찾아왔다. 내게 꼭 필요했던 내 글과 책에 대한 확신까지 생겼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 지금껏 내게 왔던 많은 우연들의 결정체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우연들이 내게 찾아올까? 왠지 지금 우드스탁에서 겪고 있는 인고의 시간과 함께 내게도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내게 다가올 우연들을 피하지 않으려고 한다.

 

#53. 편지를 쓰다

일요일 오후에 문득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푸르덴셜에서 영업을 할 때 나는 고객들과 한번이라도 만났거나 전화통화를 했던 사람들 그리고 내 지인들의 리스트로 메일을 보내곤 했다. 마지막으로 메일을 보낸 것은 1년 전이다. 라이브스팟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알고 있는 맛집을 알려달라 부탁했고, 사람들은 새롭게 시작하는 나를 위해 본인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아낌없이 주었다. 이 회사에서 나오게 되면서 메일을 보내지 않았다. 잘살고 있는 것도 아니라서 메일에 뭐라 쓸 말이 없었다. 무엇보다 사람들과 소통할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였다. 그래서 메일링 리스트는 고이 모셔둔 채 1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랬던 내가 갑자기 메일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보험영업을 할 당시 기존의 엘피가 그만두면 다른 엘피에게 그 고객들이 인수가 되는데, 내게는 인수고객이 꽤 많은 편이었다. 두번째, 세번째 혹은 그 이상 담당자가 바뀐 고객들을 만난다. 10명 중 아홉명은 이전 담당자는 어디로 가서 무얼 하냐고 물어본다. 그러나 대부분의 담당자들이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안부를 전할 수가 없었다. 간혹 내가 알았던 엘피라면 대충이라도 근황을 알려준다. 그러면 대부분의 고객은 , 그래요? 잘 돼서 가신거네요?”라는 대답을 한다. 이렇게 고객을 떠난 담당자와 그 담당자들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고객들을 보며 나는 늘 두 가지 의문이 들었다. ‘퇴사한 엘피들은 왜 고객들과 꾸준히 연락을 하지 않을까?’ 그리고 고객들은 왜 과거 담당자들의 소식을 궁금해할까?’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 가지가 있다. 회사 교육과 분위기상 엘피십이 충만한 사람들은 고객들에게 평생을 함께하겠다는 못 지킬 약속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떠나야 함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크게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많은 고객분들이 계약을 할 때 담당자에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오래 일 하실거죠?”이고, 이에 대한 대답은 늘 그럼요!”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회사를 퇴사할 때는 보통 일이 힘들고, 지쳐서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질리거나 더 이상 만나고 연락할 수 있는 에너지가 없을 수도 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고객들의 감정도 재미있는 패턴을 보이곤 한다. 보통 처음 푸르덴셜과 인연을 맺게 해 준 담당자를 오래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보다는 설계사들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계약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믿고 있던 담당자가 회사를 그만두게 되면 고객들은 큰 배신감과 실망감을 느낀다. 이 감정과 더불어 미안해서 계약을 해지하지 못하고 있던 고객들은 이때다라고 생각하며 계약을 없애버린다. 이후의 담당자들에게는 쌀쌀맞게 대하기 쉽다. 사람관계가 다 그렇듯 한번 마음의 상처를 입으면 비슷한 상황에서 마음의 문을 다시 열기란 쉽지 않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담당이 된 엘피는 자신을 거부하는 고객에게 다가가기 꺼려하고, 당연히 본인이 직접 계약한 고객에게 하는 것보다 정성이나 노력을 덜 기울이게 된다. 이런 담당자를 보며 고객은 자신에게 연락도 자주하고 신경을 많이 써 주던 첫 담당자와 비교를 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악순환의 고리가 생성된다. 이런 시간이 흐르면 배신감과 실망감은 자신에게 마음을 써주었던 담당자들이 요즘은 어디에서 무얼하며 살고 있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바뀌어 있다.

회사에 있을 때, 이런 상황들을 보며 다짐했던 것이 하나 있다.

나는 나중에 회사를 나가게 되도 고객들에게 꾸준히 연락을 해야겠다라고.

내 연락을 받고 기뻐해줄 사람들이야말로 내 첫 사회생활 5년이 내게 남긴 유일한 자산이었다. 그래서 문득 사람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궁금했고, 나의 안부도 궁금해하고 있을 거란 이유없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나는 방황 2년차에 접어 들었으며, 얼마 전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는 등 최근에 내가 겪은 중요한 사건들을 짧게 적어 무척 설레는 마음으로 발송 버튼을 눌렀다. 메일링리스트에 있는 700여명의 사람들이 모두 메일을 열어보고 반겨줄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스팸메일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하지만 단 한명만이라도 내 메일을 보고 반가워해 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메일을 보낸 후,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이 지날수록 반가운 분들의 답장이 도착한다. 여전히 나를 기억하고 반가워 해 주신다. 나의 방황을 응원해 주시고, 새롭게 시작하는 일에 기꺼이 도움이 되어주겠다는 많은 분들이 참 감사하다. 할머니 장례식 직후에 보낸 메일이라 지금 죽어도 미련도 한도 없이 가고 싶다는 메시지를 보냈더니, 이 메시지가 어떤 분들에겐 큰 울림이 된 모양이다. 펑펑 울고 있던 때 마침 내 메일을 보게 되어 힘이 났다는 분의 이야기에 오히려 내가 울컥하기도 하고, 고객들과의 옛 추억에 슬며시 웃음짓기도 한다. 월요일 저녁 7시부터 답장을 보내기 시작했다. 한 분 한 분께 너무 감사해 대충 적어 보낼 수가 없었다. 그랬더니 3시간이 흘렀다. 이번에 할머니 장례식 때도 느꼈지만 결국 사람에게 남는 건, 돈도 무엇도 아닌 사람인 것 같다. 나를 기억하며 슬피 울어주고 아쉬워 해 줄 수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내 곁에 많은 것 같아, 왠지 가진 것 하나 없어도 풍요롭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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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4 10:17:44 *.163.164.176
미나 칼럼을 읽다보니, 수월하게 읽힌다. 글이 많이 좋아졌구나 금새 느낄 수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1년전 미나의 칼럼 1번을 읽어보았다.

과거의 글에 비해 지금은 여유가 있다.

더 적은 글로 더 많은 이야기와 느낌을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너의 칼럼 1에서 이런 문구가 있다.

"나만의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지금 여기라면 계속 머물러도 되겠지만, ‘더 이상의 희열을 느끼지 못하는 공간이라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고, ‘또 다른 희열을 찾아떠나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나만의 희열을 찾아 지금에 이른 것처럼, 앞으로도 나만의 희열을 찾아 살아 갈 것이다. 그 과정에 어떤 일들이 펼쳐지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무척이나 기대가 되고 설렌다."

 

 

미나를 보면 삶을 여행하는 여행자같은 느낌이 있어.

칼럼 1에서 시작되었던 기대와 설렘이 너의 하루, 너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더불어 너만의 보법(步法)이 조금씩 만들어져 가고 있는 느낌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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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4 15:32:56 *.218.52.205

우와~~~~~~~~~~~~~ 훈이오빠한테 칭찬받았다~~~~~~~~~~~~~~~~~

1년전에 쓴 칼럼..........다시 봤는데, 어쩜 이리.. 이야기할 수 있는 소재들이 여전히 거기에서 거기인걸까..ㅋㅋ..

 

확실히 처음보다 더 간결해지고 있긴한듯.

느낌을 담고 있다는 오라버니의 말에 나는 엄청 기쁩니다. 훈 오라버니에게 받은 피드백 중에 '느낌'을 담았으면 좋겠다는 피드백이 제일 많아서 그런지. ^^ 매우 뿌듯!!!

 

여행하듯 살고 싶은 내 삶이 누군가에게 그리 비춰진다는 것 역시 기쁜일이지요.

정말 내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달까??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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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4 13:18:24 *.138.53.71

미나의 글이 점점 좋아지는 것은

남들의 세 배의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다 쌓이고 쌓여 '툭' 데이타를 넣으면 '쑥' 하고 글이 나오는 수준이 되지 않을까.

 

도토리 키재기 였던 우리들이 하늘을 향해 커가는 것은

매일의 힘이 있기 때문일꺼야.

 

미나야 우리 멈추지 말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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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4 15:36:26 *.218.52.205

처음에는 사부님 말 믿고 무작정 길게만 썼고, 동기들의 주옥같은 피드백 덕분에 제목을 붙이고, 느낌을 붙이고,

그렇게 써오다 보니, 글이 좋아질 수 있었던 것 같다는.

 

요즘은 매일 아침 글을 쓰려고 애쓰고, 그것을 보고 다시 한번 고쳐쓰고 있어요.

이렇게 쓰다 보면 진짜 양갱오라버니 말처럼 '툭' 데이터를 넣으면 '쑥'하고 글이 나오는 수준에 이르는 날이 오겠지..

 

오라버니, 지금처럼 함께, 고고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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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4 14:05:57 *.70.64.222

미나야,

난 네 글을 읽으면서 우리 아이들을 훨씬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단다.

이젠 할머니의 한달을 읽으면서.....나를 돌아보게 되는구나.   언제 밥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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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4 15:38:14 *.218.52.205

좌선생님~~~!!!

제 글이 누군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니, 이보다 더 기쁠 수 있을까요?

할머니의 한달을 쓰며 저 역시 저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어요.

지금의 나를 다시 보게 되기도 했구용..^^

감사합니당~~~ 밥 먹어요~~!!!! ^^

솔직히... 미선언니의 멘토가 좌쌤이라 저는 참  부러웠답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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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4 23:03:44 *.223.2.155

이 글 읽고 너의 멘토가 누구였더라? 했다는...

올해 결혼하시는.. 작년 한해 연애에 바쁘셨던 그 분이구나.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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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4 16:56:12 *.143.156.74

앗, 좋은 아이디어 떠올랐다.

미나야, 너도 매주 지인들에게 [신치의 모의비행] 편지를 보내라.

그러면서 소통하고 용기얻고 용기주고 상황의 힘을 이용해서 끝까지 써라.

 

미나는 할 수 있을거야.

알지? 내가 미나 얼마나 믿는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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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4 19:32:50 *.38.222.35

언니................. 모의비행을 메일로 보내는 것 좋은 생각인데......................

사람들이 좋아할까???????????????????????/

 

모르겠넹.... ^^ㅋㅋㅋ

 

언니, 언니가 믿어주는게 진짜 내겐 용기 팍팍 나는 일이라우~~~~ 고마워용~~~

훔.. 매주 쓰는 이 글의 메일링은. ㅋㅋ

심각하게 고민해볼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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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4 23:07:36 *.223.2.155

이 여자. 저번 주 어째 짧다 했다.

살아남이 느껴지기는 하는 구나.

7기 중에 재경언니가 유일하게 믿어주는 여자. ㅋㅋㅋㅋ

"미나는 빵꾸 안내."

자유로운 영혼인데 자유롭고 싶다는 갈망도 제일 큰 녀석인데 일은  잘 한단 말야.

이사장~ 요즘 사업은 안녕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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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7 08:27:38 *.38.222.35

ㅎㅎ...  빵꾸 안내. 빵꾸 안내...ㅋㅋ..

책임감이 느껴지는 말이지...ㅎㅎㅎ 그래도 믿어주는 사람이 있어 항상 감사하지.

그것이 나를 움직이는 힘이고.

 

훔.. 자유로우려면... 책임에서도 자유로워져야 하니까.. 주변이들에게 저런 믿음을 주는 건 매우 중요하지.ㅋㅋㅋ..

자유롭고 싶은 본능에서 나온 삶의 지혜인가? 뭐 어쨌든..

 

사업은.. 조금씩 주변 사람들에게 소문내고 있다... 어제 막걸리 마시러 가서 재키언니에게 보여줬더니...

"미나야.. 이래선 나 같은 사람은 투자 안해.."라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아이디어를 주셨지..ㅋㅋ

뭐.. 뭔가. 일과 관련된 얘기를 하고 갱수오빠가 내게 한 마디 했어. "눈에 빛이 난다."

이 말을 몇번 들으니, 제대로 길을 찾았나? 라는 생각이 든달까?? ㅋㅋㅋ

지금 회사에서 열심히 배우고 계시오.. 교육할때 카톡하지 말고 집중하란 말이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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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9 05:44:38 *.154.223.199

안녕하세요?^^

끝났으려나 했는데 3개의 글이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저거 한 개 쓰는 것도 헐떡헐떡하는데 3배를 쓰고 계시군요. 

존경합니다. 미나선배님, 흉내낼 수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빵구 안내는 것도 그렇구요.

메일을 다시 보냈다는 글 읽고 감동했습니다. 그 직업을 마치면 다시 소식을 전하지 않는 일이 아주 많은 게 사실이고요.

미나의 모의비행 메일이 700명이 있는 메일링 리스트의 분들께 간다면 좋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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