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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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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30일 00시 56분 등록

나는 그에게 강하게 이끌렸다.

그의 주변에는 뭔가 호화스러운 분위기가 감돌았고, 삶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어, 지구 끝에서 일어난 지진도 감지할 수 있는 아주 정교한 기계와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즉, 그것은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탁월한 재능이었다.

- 위대한 개츠비, F.스콧 피츠제럴드 -

 

 인간의 하루는 자연을 닮았습니다. 아침이 봄이라면, 불타는 여름은 정오, 대지를 비추는 석양은 가을, 겨울은 적막의 밤입니다. 삶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병원이지만,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생의 사계절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분만실에서 태어난 신생아나 퇴원하는 환자의 얼굴에는 생동하는 봄의 기운이 어려있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 혼신을 다하는 의료진의 얼굴에는 뜨거운 여름의 열기가 있습니다. 환자들의 영적건강을 보살피는 수도자와 자원봉사자들의 평화로운 얼굴에서 넉넉한 가을을 느끼고, 환자들과 간병에 지친 가족들의 얼굴에서 시련의 겨울을 만납니다. 얼굴 표정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두 가지 장면이 있습니다. 그건 환자 가족의 얼굴에서 보았던 풍경입니다.

 

#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시면 말해 보세요”

“.....”

그는 말이 없었습니다. 꼭 필요한 대답만 “예, 아니오”로 말할 뿐,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40세의 차미연(가명)씨가 아내입니다. 그의 아내는 초등학교 체육대회에서 학부모가 참여하는 줄다리기를 하다가, 갑자기 심장정지로 쓰러져 병원에 왔습니다. 심폐소생술 후 중환자실로 입원하였으나 의식불명 및 자가호흡이 되지 않아 인공호흡기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입원한지 62일 만에 심부정맥과 저산소성 뇌손상을 사인(死因)으로, 결국 임종하였습니다.

 

 가족들과 아무런 인사도 나누지 못한 상태에서 갑작스레 찾아 온 사고였고, 너무 허망한 죽음이었습니다. 부부에게는 중학생 1명, 초등학생 2명, 4살된 아이까지 4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아내 없이 자녀를 키워야 할 남편의 상황이 남일 같지 않았습니다. 도움을 줄 방법을 찾기 위해 면담을 했지만, 그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던 남편의 무표정한 얼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

“안녕하세요. 김간호사 아버님이 입원하셨다고 해서 문병 왔습니다. 어떠세요?”

“괜찮습니다.”

“아버님 미남이시네요. 어머님도 대단한 미인이신데요. 김 간호사 미모가 모두 부모님 덕분이었군요. ”

“별 말씀을..신경 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큰소리로 너스레를 떨자, 병상에 있던 아버님이 웃었습니다. 오이를 깎아 남편 입에 넣어주던 어머니의 굳은 얼굴에도 희미한 미소가 보였습니다. 아버님에게 일상적인 인사를 건네며 일어섰습니다. “치료 잘 하시고 어머님께 잘 해주세요. 아버님도 힘드시지만, 간병하시는 분이 더 힘드세요. 어머님도 식사 거르지 말고 건강관리 잘 하시구요.” 

  

그때였습니다. 오이를 깍고 있던 어머니의 얼굴이 약간 일그러지더니 갑자기 뒤로 돌아앉았습니다. 그리고는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하셨습니다. 당황한 것은 저였습니다. 괜한 얘기를 했나 싶어 어머님을 진정시키고 얘기를 들었습니다. 작은 병원에서 무릎수술을 한 것이 잘못되어 재수술을 위해 입원하게 되었고, 합병증까지 얻게 되어 억울하고 분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고 하시더군요.

 

#

‘문학의 숲을 거닐다 (장영희)’라는 책에는, ‘위대한 개츠비’라는 책을 쓴 작가 피츠 제럴드에 대한 얘기가 있습니다. 피츠 제럴드는 자신이 쓴 책의 주인공 개츠비에게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세 가지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개츠비가 암담한 현실 속에서 “아무리 미미해도 삶 속의 희망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사랑에 실패해도 다시 사랑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능력” 그리고 “삶의 경이로움을 느낄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던 무표정한 남편의 얼굴과, 돌아서 굵은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의 표정은, 같지 않지만 다르지 않은, 잊혀지지 않는 표정입니다. 피츠 제럴드의 말처럼 암담한 현실 속에서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능력.. 그것은 자신에게 절망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특별한 능력만큼은 원한다면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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