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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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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30일 07시 59분 등록

아리아드네가 과수원집 2세대라면?

 

 

서점에서 정민 <한시미학산책>을 계산하고 있는데 전화를 받았다. 모르는 번호다. 02, 서울이네. 낮에 000 누나인데 아가씨가 편한 시간을 알려주면 통화 한 번 했으면 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퇴근시간 이후는 괜찮다고 답문을 보냈던 터다. “ 000 누나인데 아가씨가 내 동생을 만나보고 싶어하는 지 궁금해서 전화했다. 내 동생은 아가씨한테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 수줍음이 많고, 학력 차이 때문에 망설이는 것 같다. 아가씨가 괜찮다고 하면 내가 동생에게 이야기를 하겠다. 그럼 동생이 전화를 할 거다. 가만히 있으면 제 머리 못 깍을 것 같아서 내가 나섰다.” 통화내용을 예상하고 있던 나는 예상 답안을 말한다. “저는 다시 만날 생각이 없어요. 시간이 지난 뒤라도 본인이 다시 보고 싶다고 전화를 했다면 다시 만날 수 있겠지만 이런 경우는 소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를 좋게 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안 하면 이 누나의 오지랖에 의해 그 아가씨는 너 만나보고 싶대로 와전될 것 같다. 상대방 누나의 동생에 대한 애정이 읽힌다. 허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나는 곧바로 육아휴직 중인 베프와 전화수다를 떨면서 이 찜찜함을 턴다. 베프는 내가 원하는 댓거리를 안성맞춤 딱딱 제공해 준다. 그런 남자 아무 영양가 없다, 잘 했다, 미쳤냐? 그런데 시간 낭비하게.

 

그러고 보니 저런 전화 비스무리한 것이 서너 번 더 있다. 폭풍 소개팅과 선을 보러 다니던 서른다섯 즈음이었다. 한 번 만나고서 주선자에게는 성실하고 착해 보인다. 연락이 오면 만나겠다고 말을 했다. 연락이 없었다. 말없음의 강한 의사표현을 선선히 알아듣고 있는 참이었다. 세 번 모두 그 노총각들의 엄마한테 전화를 받았다. 안면이 있던 한 엄마는 아가씨, ** 엄마인데 우리 친하게 진해 보자고 외국에서 국제전화를 했고, 두번 째 엄마는 우리 아들이 숫기가 없어서 연락을 못하고 있다. 23일 출장을 갔다 오느라 시간이 없었을 거다. 아가씨가 이해심을 가지고 좀 기다려 줬으면 좋겠다. 그런 좋은 일 하는 아가씨니 이해심이 넓을 것 같다.’ 했다. 세번 째 엄마는 내가 여전히 혼자 있다는 말을 듣고는 몇 년 동안 꾸준히 처음 주선자인 집안 어른을 통해서 두 번째 만남을 타진하고 있다. 저 누나와 엄마들은 왜 그러는 걸까? 본인이 생각이 없다는데 왜 나서지? 한편 나 역시 상대는 전문대를 나왔는데도 괜찮다고 나가는 게 성공율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왜 반복해서 불편하기만 한 선 자리에 나갔던 걸까? 두 번은 엄마나 외가 식구들이 주선한 자리였으니 안 나갈 수가 없었겠다. 의무방어전이란 게 노처녀에게도 있다. 엄마 아우라에서 소개하는 자리를 거절할 권리가 없는 거다.

 

내게 전화를 건 누나는 과수원집 딸램이였다. 그 집에 사과를 사러 간 적이 있었다. 모르긴 해도 나와 비슷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거다. 노동집약적인 과수원 일에 바쁜 부모 대신에 동생들을 챙기고 집안일을 했을 거다. 지금은 식구 많고 일 많은 시댁에서 일을 하고 있겠지. 특히 자신이 업어준 동생에 대해서는 누나가 아니라 가짜 엄마나 유모 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 지도 모른다. 아니 그 누나가 어떤 마음인지는 모르겠다. 이렇게 단정하는 건 틀릴 때가 많았다. 내가 막내 동생에 대해 그렇게 느낀다고만 해두자. 

 

막내 동생은 나와 열 살 차이다. 그 아이가 태어나던 새벽을 기억하고 있다. 아버지는 광산에 일하러 가고 없다. 병반이었나 보다. 3교대에서 갑반은 아침 출근, 을반은 오후 3시 출근, 병반은 밤 12시쯤 출근한다. 쳇머리를 떨고, 검버섯이 핀 살가죽이 뼈에 붙은 여든여덧 증조할머니는 병중이다. 과수원을 시작하기 전 빚을 내서 뽕밭을 샀을 때였다. 그 빚을 갚자니 만근을 해야 나오는 정근수당 한 푼도 아쉬웠고, 저녁먹고부터 이슬이 비친다, 아랫배가 살살 아프다, 출산이 임박했다는 걸 알면서도 일을 가라고 등을 떠민 것은 엄마 쪽이었다고 들었다. 위의 세 아이를 출산할 때는 남편이 산실 밖 마루에 앉거나 소 여물을 주면서 마당에 있거나 집 울타리 안에 같이 있었다. 할머니 옆에서 굼부러 자고 있던 나를 엄마가 깨웠다. 아지매를 불러오라고, 애기가 나올 것 같다고 엄마가 말했다. 나는 튕겨 일어났다. 우리 엄마가 죽을까봐 새벽 골목길을 전속력으로 내 달았다. 잠긴 대문을 흔들며 아지매요, 아지매요 부른다. 대답이 없다. 담을 훌쩍 넘었다. 밀창문을 쎄게 두드렸다. 아지매가 인견 속바지 차림으로 나온다. 

우리 엄마가요 애기 나온다고 아지매 얼른 오시래요

 

엄마가 정신적 지주로 모시는 형님이 왔다. 그녀는 당황하는 기색이 없다. 그 동네에서 아이 깨나받았다. 나와 형제들은 학교에 갔다. 학교에서 내내 불안했다. 혹시 엄마가 애기 낳다가 죽었까봐서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아기가 태어나 있었다. 아기는 잘 울지 않았다. 나중에 듣고 보니 역산이어서 둘 다 죽을 뻔 했다고 했다. 위의 세 아이를 산부인과 한 번 가보지 않고 시할머니와 둘이서 집에서 수월히 낳은 젊은 엄마는 역산을 예상하지 못했다. 이러저러한 민간처방으로 둘 다 살았다. 엄마는 아이 치레가 지나기 전에 병원에 가서 배꼽 수술을 해 버렸다. 엄마는 평생 그 아지매를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하며 모든 대소사를 의논했다.

 

그 해부터 과수원 일을 시작해야 했다. 중노동이었다. 그 해 가을에 증조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엄마는 6개월된 막내아들을 혼자 키워야 했다. 위의 세 아이는 젖만 먹여두면 시할머니가 데리고 놀고 젊은 아낙은 밭에 다래끼를 매고 일하러 갔다. 그런데 어떻게 그 아이를 키웠을까? 아이를 업고서 괭이를 밭고랑에 매어꽂으며 뽕나무 뿌리를 캐내지는 못했으리라. 두고 갔겠지. 어디다? 누구에게 맡기고? 아마도 막내와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어린 아이를 보던 앞집 할머니한테 밀어 넣었을 거다. 앞집 할머니한테 요즘처럼 아이 보는 값을 치르지 않았겠지. 학교 갔다 오면 친구네 집에 가서 놀고 싶은 딸더러 애기 보라고 했다. 나는 담요를 텐트처럼 세워서 컴컴하게 해놓고, 아기에게 젖병을 물리면 이마의 머리카락이 땀에 젖으면서 잠이 잘 든다는 걸 터득했다. 애기 잔다고 살금살금 나와서 애기 깨기 전에 친구집으로 줄행랑을 놓는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애기 우주복 지퍼를 올리다 고추 끝을 낑겨먹어서 다시 내릴 때도 있었고 애기를 업고 놀러 가야 하는 날이 많았다. 그런데 이런 장면도 기억한다. 나는 아침에 학교 가다가 그 장면을 본다. 안방에 어른 손이 닿을 만한 높이에 문고리를 해서 달아놓고 우유를 젖병에 타 한 쪽에 세워놓고 애기만 안방에 놓아두는 장면이다. 정말 애기 혼자만 방안에 갖혀 있었는지, 아니면 울어서 업고 나갔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이란 이렇게 단절적이다. 그 장면이 무섭고, 아기가 가엾은 게 사무쳐서 기억한다. 문고리는 다른 용도였는지도 모른다. 어린 나는 그걸 아기를 가둬놓고 일하러 가려한다고 해석했고, 그 해석 때문에 그 장면을 기억하는 지도 모른다. 막내 동생은 계속 앞 집 할매네 집을 다니다가, 조금 더 큰 다음에는 우리 골목의 또래와 어울려 놀았다. 혼자 있기 싫으니까 그 아이를 집에 데리고 와서 놀려고 우리 집에 가자, 뭐 줄께 우리 집에 가자.”고 졸랐다고 했다. 그 집은 가난하고 아이가 많았다. 엄마는 그 집 여편네가 술병 든 남편이 광산 다니고 애도 여럿인데 자기 앞으로 땅 한 뙤기도 없으면서 고등어조림에 겨울에 시장에서 사온 애호박을 썰어넣는다고 흉을 보았었다. 나는 엄마 말을 받아들이면서도 한편 엄마가 낮에 집에 있는 그 집을 부러워했다. 그 집 아저씨는 간경화가 심해져 일찍 돌아갔고 혼자 남은 여자는 아이들을 가르치질 못했다. 큰 딸은 중학교를 마친 후 산업체를 갔고, 다른 아이들 소식은 모른다. 내 동기들 중에 산업체 고등학교로 간 여자친구가 많았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 친구 중 몇은 이른 결혼을 했다. 예전에는 우리 엄마는 이걸 별로 거론 안했는데 딸이 마흔 넘도록 결혼 안하고 있으니까 가르치지 못해 일찍 사회에 나가 고생했어도 착실한 사람 만나 일찍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잘 산다며 부러워한다.

 

막내는 우리 형제들 중에서는 제일 성격이 좋다. 다른 형제들이 다 떠난 후 부모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혼자 자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3까지 두 분 사이에서 잠을 잤다. 그 아이의 어린 시절 에피소드 중 하나.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과수원에 찾아가서 사과나무 가지를 늘여 잡고 이거 안해 주면 나무를 뿔갠다고 부모에게 말했다. 우리 형제들은 대학을 간 후에 하나같이 헤매서 아버지의 주량을 늘였다. 그 술주정을 그 아이가 다 받았다. 답답한 아버지가 술 취한 눈으로 너희 누나/형이 왜 이러는 지 아냐?’고 막내에게 물었고, 답답한 엄마도 그 아이를 잡고 물었다. 아빠, 엄마, 나는 모른다고 말하며 같이 울었다고 들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막내에 대한 부채감을 느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졸업한 지 3년이 되도록 취직이 늦다   

 

나는 동네의 다른 과수원집 2세대, 3세대를 살펴본다. 우리 동네는 선발주자와 후발주자가 있다. 마음 아픈 집이 있다. 선발주자 중 한 집은 모든 재산을 물려받은 큰 집은 잘 살고 작은 집은 못살았다. 작은 집 조카가 행불이 되고, 제수씨 혼자서 시내 여관방을 청소해주며 살고 집이 사람 안사는 움막처럼 변해가는데도 그 부자집에서는 여전히 땅을 늘이고 사과나무를 돌보느라 너무 바빠서 작은집을 돌볼 여력이 없어 보인다. 할머니 때부터 과수원집이어서 가장 좋은 장난감을 가지고 살고,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가장 좋은 과자를 먹던 친구네 남매는 어려서 결혼하고 모두 이혼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 집 어머니가 손주들을 데려다 키우느라 고생한다. 한 집에서는 창고를 커다랗게 짓는 사이에 아저씨가 병이 들어서 그 창고에 사과상자를 한번 쟁이지 못하고 남에게 사과밭을 도지로 주었다. 제일 마음 아픈 집은 과수원에 지어둔 사과창고 앞에서 아들이 농약을 마신 집이다. 그 일 이후로 그 안주인의 얼굴에 그늘이 져서 사람들 앞에 잘 나타나지 않는 것 같았다. 마을에도 세월처럼 사람들이 흘러간다. 그 집들이 예전에 과수원을 했는 지 어떤 지는 아는 사람만 안다.

 

내가 관찰하기에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가난을 종식시키는 걸 목적으로 삼아 모든 에너지를 돈과 일, 또는 돈 되는 일에 집중하는 사이에 관계에다 에너지와 시간을 거의 쓰지 않았다, 아이들을 옆에서 기르는데 우선순위를 두지 않았다, 공통적으로 매우 성실하고 알뜰했다. 이건 뒤집으면 매우 인색했다. 성실과 절약은 나쁜 미덕이 아닌데 어떨 때 지나칠 때가 있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식으로 처리 될 때다. 이것이 아픔들이 오는 퇴비가 되지 않았을까? 

 

변신이야기,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읽으며 나는 생각한다. 미노타우로스를 만들지 않으려면 미노스왕은 제정일치 시대 왕의 의례로 자신을 희생제물로 드리든, 왕권신수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바다에서 온 수소를 희생했어야 했다. 그러면 왕비가 수소에 대해 엉뚱한 욕정을 느끼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괴물 아이를 낳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 아이를 감추기 위해 미궁을 짓고, 다른 도시에서 선남선녀를 공물로 요구하는 엉뚱한 희생은 필요 없었다. 그럼 테세우스든 다른 이름이든 영웅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거다. 아리아드네는 미노스왕의 딸, 미노타우로스의 누이였다. 그녀는 매우 영특한 여자다. 그는 테세우스를 돕기 위해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지를 알았다. 아리아드네는 제 어머니의 치부를 가능케 한 암소를 만들고, 제 괴물 형제를 감출 미궁을 만든 다이달로스를 찾아가서 테세우스에게 줄 실타래를 얻어다 건넸다. 그 댓가, 아리아드네의 소원은 자신을 크레타섬, 제 부모의 땅에서 데리고 나가달라는 거였다. 그녀는 바다로 나가는 아버지의 배에 변장을 하고 숨어 들어 여자 선원이 될 기량은 없었을까? 미토타우로스의 누이였고, 그 부모의 딸이었던 아리아드네는 영웅을 요청하는 시대적인 부름 때문에 그 일을 했을까? 아니면 제 집이, 제 부모의 과보가 지긋지긋했을까? 둘 다였을까? 아리아드네가 테세우스에게 버림을 받은 것은 제 형제를 죽이는데 가담한 살심의 과보이지 테세우스가 몰인정해서가 아닐 듯하다. 그래도 신들은 연민이 있어 지나가던 바쿠스 신이 이 여자를 아내로 삼게 한다. 

 

그런데 이미 괴물 남동생 또는 오빠가 미궁에서 선남선녀의 피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 수소를 사유하려는 아버지의 과보로 인해 그 가족 전체에 괴로움이 있는 상황에서 아리아드네가 맨 처음 그 아버지가 거부했던 것, 그 희생을 들임으로써 균형을 다시 잡는 방법은 없었을까?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는 그 일은 내부에서도 올 수 었었다고 말한다. 그게 오지 못했기 때문에 테세우스 같은 외부 영웅을 필요로 했다고 했다. 나의 생각은 꼬리를 문다. 과수원집 2세대가 괴물이라는 건 아니다. 이전 세대는 자신의 세대에게 부과된 과업을 최선을 다해서 한 거다. 다음 세대는 그 세대가 쥐어준 선물, 무기를 가진 채 이전 세대를 극복해가며 나아가야 한다. 2세대인 나는 나의 할일을 해야한다. 나 다음 세대는 역시 나를 비판하고 극복해 갈거다. 만약 아리아드네가 과수원집 2세대였다면 어떻게 할까? 미노타우로스를 죽이는 아픈 방식이 아니라 그 자신이 부모 세대의 미결과제를 하겠다는 입장이었다면? 죽음은 실제 목숨을 끊는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정신과 삶의 태도 또는 모습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선 그녀는 다이달로스를 찾아갔다. 그는 그 가족 아픔의 사연을 알고 있다. 그와 더불어 깊은 인연과 연유를 이해하고 창조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지혜를 가진 조언자도 가졌더라면 좋았을 걸. 그러면 나는 일단 나의 다이달로스를 찾아보아야겠구나. 먼저 내가 문제로 삼는 게 무엇인지를 명확히 해야겠지. 결혼, 취직 늦은 게 문제인건가? 과수원 2세대의 과제니 아픔이니 그늘이니 하는 건 좀 막연하잖아? 그 다음 그것에 정확한 조언을 줄 수 있는 전문가를 찾아보아야겠지.    

 

이것과 관련 지어 이 전에 꾸었던 두 가지 꿈을 기억한다. 이 꿈들이 어떤 걸 제안하고 있을까 며칠 궁리해 봐야겠다.    

 

1. 막내 동생의 씽크대가 큰 길 가에 나와 있다. 지붕이 없는 한길가다. 어디 달동네가 내려다 보인다. 씽크대는 한샘 같은 고급 상표가 아니라 값싼 것이다. 두 쪽짜리 물통 옆에 가스레인지가 있다. 가스레인지 위에는 두 개의 사각통이 있다. 그 통 안에서 죽이 보글보글 끓고 있다. 한 쪽은 붉은 팥죽이고 다른 한 쪽은 누런 콩죽이다. 맛있게 뜸들었다. 한 그릇 퍼서 먹었으면 좋겠다. 설거지 통에는 씻지 않은 그릇이 가득하다. 오래 담궈 두었는지 거기서 바닷말이 자라고 있다. 내가 손을 넣어보니 깨진 유리컵이 하나 잡히고 그릇이 3개다. 일단 더러운 물을 따라내려고 설거지통을 기울이니 옆에 있던 콩죽과 팥죽 통까지 같이 아랫집으로 쏟아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내버려 두었다. 나는 저 설겆이를 왜 내가 해야하나 불만스럽다. 한편 저 묵은 설거지를 하는 게 저 콩죽과 팥죽을 먹는 방법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2. 나는 이전에 그 집 아들이 농약을 마신 그 사과창고 앞에서 내 기도 방석을 갖다 놓고 염주를 가지고 절을 하고 있다. 미색 사과창고가 무섭다. 저 뒤켠에서 일어난 일이란게 느껴진다. 오른쪽에는 물이끼가 앉은 개울이 보이고, 왼쪽에는 농약을 타서 젓는 커다란 검은 방티가 보인다. 옆에는 사과나무들이 있다. 무엇을 빌어야 하는 걸까? 누구에게 참회하는 걸까? 나는 계속 절을 하고 있다. 내 뒤에서 그 집 안주인인지, 우리 엄마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여자가 사과나무에 봉지를 씌우고 있다. 그녀는 허리가 굽고, 얼굴에는 주름이 졌다.           

IP *.154.223.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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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30 16:03:48 *.51.145.193

과수원집 아리아드네여, 9명의 다이달로스가 있습니다!

답은 결국 못낼지도 모르지만요ㅋㅋ

근데 막내분 참 정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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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1 15:50:26 *.114.49.161

네, 재용 감사합니다, 다이달로스 제게 미궁의 정보 한 조각을 주셔요^^

정이 간다는 말씀 기분 좋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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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1 06:04:49 *.47.75.74

누님, 꿈 이야기에서 한참 머물렀습니다.

저도 꿈을 잘 기억하는 편이라,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제 생각엔, 평소 막내동생과 그 집 아들에 대한 잠재된 생각이

꿈으로 나타난 것 같습니다.

그 다음 이어지는 사물에 대한 모습들은 누님에게 어떤 상징과 같은 존재들 같아요.

제 경우를 보더라도, 문득 무의식중에 꿈 속의 상징들이 떠오를때가 있더라구요. 

누님과 꿈 이야기하면 참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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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1 16:07:29 *.114.49.161

저 꿈들을 쓰면서 영 당황하지 않은 건 꿈에 대해 이야기해도 엉뚱하게

보지 않는 한젤리타님 같은 이들이 있어서입니다.

그런가봐요. 좀 왜 그럴까 평소에 생각을 했었던가 싶으네요.

 

신화와 꿈에 대해 많은 관심이 있다 하셨지요.

저도 같이 꿈작업 이야기하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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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1 11:37:35 *.36.72.193

저도 지난주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읽고 꿈 하나를 꿨습니다.

음.. 너무 강렬하고,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 모르겠는..

아무에게도 말 하지 못했습니다.

꿈 꾸면서도 많이 놀래고, 꿈 속에서 많이 울어서 그랬을까요.

자괴감까지 느꼈을 정도였으니까요. 이해도 못하면서.. (나중에 만나면 나눠보고 싶습니다.)

 

어제는 학교 선생님들과 '간기남'영화를 보고

일본라멘을 먹으며 그녀들의 사랑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도 지나간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요.

그랬더니 꿈에 나오더라고요. ㅋ 행복한 가정을 이룬 모습을 하고는.

쩝.

 

프로이드, 융이 쓴 책들을 읽어보면 꿈을 좀 더 분석할 수 있게 될까요? (저 근데 왜 자꾸 꿈얘기만 ㅋㅋ)

가끔은 꿈 없는 밤을 보내고 싶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자주 꾸거든요)

 

아, 근데 그 누나들, 엄마들이 꽤나 동생걱정, 아들걱정이 되나봅니다.

싫으면서도, 이해 못하겠다고는 말 못하겠습니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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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1 16:13:13 *.114.49.161

궁금하네요. 그 꿈이요. 한젤리타님하고 같이 이야기해봐요^^

간기남 영화 저도 보고 싶네요. 일본라멘도 먹고 싶고요.

지나간 사랑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라...흠....

저렇게 전화하는 누나, 엄마들이 이해가면서도 저는 좀 무서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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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5 12:29:57 *.70.15.124

내가 관찰한 공통점에서...눈길이 멈추어...내내 전체를 이해하는 순간처럼 기분이 확 좋아지는 느낌.... 회사에서 보고를 받거나, 회의를 할때 주절이 ...주절이 ...많은 이야기 속에서.... 항상 핵심을 놓치지 말고....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 나에게는 중요한 일이라서 ... "관찰" 부분은 통찰력이 담긴 작가 처럼 느껴젔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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