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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30일 11시 42분 등록

(두 번째로 읽는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조셉 캠벨)

 

<저자에 대하여 >

1.캠벨에게 영향을 준 인물 검색과 캠벨의 주장

첫째로 칼 융을 꼽는다. 그는 신화가 정신 분석학의 이론을 활용하면 신화적인 내용이 많은 설명을 가능하게 해 준다는 것을 깊이 이해 하고 있었다

둘째로 프로이드에 대한 견해와도 뜻을 같이 했다.

셋째로 토인비에 대해서도 영향을 입었으나, 결정적인 생각의 차이를 말하고 있다.

영웅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복종(자기극복)의 기술을 완성한 인간이다. 죽음이 승리하는 날이

오면 죽음이 다가온다. 그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십자가에 달렸다가 부활하는 길 뿐

갈가리 해체 되었다가 재생하는 길 뿐이다. 이 대목에서 재생의 길, 즉 거듭나는 것은 성령으로

거듭 나는 길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기독교적 입장을 전면 거부하고 나온다. 그는 재생의

길을 성령으로 거듭나는길 외에 다른 신화적 사례를 통해 그 유사성을 강조 하고 있다.

 

캠벨은 전세계 신화를 이용하여 영웅의 원형적인 모험을 추적하고 있는데, 여기서 제임스 조이스의 단일신화(monomtth)라는 명칭을 붙였다.

평생토록 캠벨은 이 개념을 추구하면서 사실상 모든 신화의 유사성을 탐색했다. 캠벨의 원질 신화와 유이성이 아니라, 유사성을 탐독해가면서

오늘날에도 유사한 영웅을 꿈꾸게 한다.

 

캠벨은 영웅이 치루는 신화적 모험의 표준 궤도는 통과 제의에 나타난 양식, 즉 분리, 입문,

회귀 라는 원질 신화의 핵심을 찾아낸 것은 놀라운 일 이다.

 

또한 정신 분열증 환자에 대해 인격을 갖추게 되면 신경증적 증세를 앓지 안고도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니체와 같은 천재들 중에는 정신 질환을 앓은 사람이 많았지만,

유독 조선의 천재인 다산 정약용, 연암 박지원,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세종 등은 정신병을

앓았다는 기록이 없다. 조선의 천재들은 인격 수양과 마음 관리를 겸한 인격 수양이 기초가

되어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 한다.

2.캠벨의 진정성 과 공헌
조셉 캠벨이 여느 신화학 학자들과 다른 것은 그의 순수한 학문적 성과의 이면에서 인류의 역사에 대한 반성과 현재와 미래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류 자신과 함께 성장해온 신화의 상상력과 초월적 힘을 잃은 비문화적 인류 문명에 대한 경고이다.

또한 좁게는 자기 민족의 신화체계와 자기 문명권의 종교만을 주장함으로써 다른 민족의 문명권의 그것들을 파괴하고 배척하는 비도덕적 인류 역사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특히 그의 비판은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를 향한 것이다.

 

캠벨은 빌 모이어스와의 대담을 끝낸 후, 암으로 투병하다가 83세의 나이로 하와이 호놀룰루에 있던 본인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조셉의 사망 후, 그의 아내인 진과 오랜 친구이자

편집자인 로버트는 조셉의 연구와 업적을 보존하고 이어나가고자 조셉캠벨 재단을 만들었다. 또한 진과 조셉캠벨재단은 그의 연구결과물, 오디오, 비디오 등 그와 관련된 자료들을

모아 조셉캠벨 컬렉션을 만들었다. 등의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줬다.

3. 캠벨의 대표작품

캘리포니아에서 있는 동안에는 존 스타인베과 생물학자 에드 리켓츠와 교류하였다. 1934년 캔터베리 스쿨에서 가르쳤으면, 이후 뉴욕 사라 로렌스 대학의 교수가 된 뒤 신화의 원형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그중 신화적 인물 연구에 힘을 기울였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영웅을 중심으로 한 그의 저서 (천의 열굴을 가진 영웅)이다.

또한 1940년대와 50년대에는 스와미 니칼라난다를 도와 우파니샤드와 (스리 라마큐리슈나의 복음)을 번역하기도 했다.

 

후일 방대한 정리 작업과 연구를 통해 그는 (신의 가면 the Masks of God) (4)을 펴냈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 볼링겐 시리즈의 탁월한 편잡자로도 유명하며, (신화의 힘), (신화와 함께 살기), (신화의 세계), (야생 수거위의 비행), (신화 이미지) 등 저서를 통해 완성한 지적 연구 활동을 펼치다. 1987년 호놀룰루에서 세상을 떠났다.

 

 

<내가 저자라면>

 

저자는 그의 서문에서 이 책의 목적을 밝히고 있다. 종교와 신화의 형태로 가려져 있는 진리를

밝히되, 비근한 실체를 잇대어 비교함으로써 옛 뜻이 스스로 드러나게 하는 데 있다고 한다.

 

옛 현자들은 말을 하되 言外의 뜻을 거기에다 실는 데 소홀함이 없었다. 따라서 그분들의 상징적

언어를 거듭읽되 그 가르침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고문집 편집자의 재주쯤은 갖추고 있어야 할 듯

하다는 곳에 와서는 눈길을 멈춰섰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것들을 두루 두루 섭렵해 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저자는 신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쇄는 정신분석학 만한 현대적 길잡이가 따로 없을 듯하다

언급하면서, 신화를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 정신 분석학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으로 현대 정신

분석학의 길을 열어준 칼 융, 니체 등에서 책을 통한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이 책은 방대한 자료를 기초로 활용했다. 이를테면 세계 각처에서 채집된 신화와 민간 전설을 한곳에 모아놓고 보면 그 유사성이 한눈에 두드려져 보이고,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이 이땅에 살면서 오랜 세월 삶의 길잡이로 삼아온, 방대하면서도 놀라우리만치 일정한 상태로 보존된 진리들을 만날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해 놓았다.

 

인류는 하늘의 길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람의 도를 찾는데 여러 현자의 지혜를 사용한다.

천자를 제거한 인간은 스스로 사유하는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면서 스스로의 지위를 만들어 왔다. 이때 동양 철학은 공자와 맹자를 통해 인간의 심성을 잘 관찰하여,

삶 안에 있는 4가지 단서를 발견하고 이를 토대로 도덕 정치, 즉 덕의 정치가 인간들이 가야 할 길임을 가르쳤다.

 

그러나 저자는 인류의 心性에 대한 근본적, 보편적 관심에 치중한 나머지 종족의 심리적 다양성을 무시한 반론에 대해 많은 신화나 종교가 다르다는 전제하에

이 책에서는 상사성(相似性)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는 상사성을 이해하면 상이성은 일반적으로 믿어지는 정도만큼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리라고 말한다.

 

이 책의 구성은, 매우 잘 짜여진 체계를 갖추고 있다.

<우주 발생적 순환>은 성공한 영웅에게 계시로 하사된 세상의 창조와 멸망의 엄청난 환상을 펼쳐보인다.

1, <유출(流出), Emanation>은 무()에서 비롯되어 나오는 우주의 형상을 다룬다.

2, <처녀 잉태(혹은 단성생식)>에서 여성적인 힘의 창조적, 보사적 역할을 일별하되, 먼저

만유의 어머니 Mother of the Universe로서의 우주적 스케일, 이어서 영웅의 어머니로서 인

가적인 단계를 다룬다.

3,<영웅의 변모>는 인간의 다양한 요구에 따라 갖가지 형태로 영웅이 등장하는 전형적 단계

를 통해 인류의 선사적 역사 과정을 추적한다. 그리고 제4 <소멸>, 처음에는 영웅의

예언된 종말, 이어서는 드러난 세계의 예언된 종말을 그린다. 우주 발생적 순환은 모든

나라의 신성한 문헌에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게 그려지고 있고, 그것은 영웅의 모험에 새롭

고 흥미로운 전기를 부여한다. 돌이켜보면, 모험적인 여행은 성취하기 위한 노력이 아닌 재

성취하기 위한 노력, 발견하기 위한 노력이 아닌 재발견하기 위한 노력이었던 듯하다. 영웅

이 애써 찾아 다니고 위기를 넘기면서 얻어낸 신적(神的)인 권능은 처음부터 영웅의 내부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누구인지 알게 된 <왕의 아들>이고 그는 이로써 자

기의 실제적 권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신의 아들>, 이 이름이 얼마나 의미 삼장한지

알게 된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영웅은, 우리 모두가 내장하고 있되 오직 우리가 이

존재를 발견하고 육화(肉化)시킬 때를 기다리는 신의 창조적, 구원적 이미지의 상징이다.

 

저자는 영웅이 치루는 신화적 모험의 표준 궤도는 통과 제의에 나타난 양식, 즉 분리, 입문, 회귀의 확대판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내용은

아주 놀라운 신화 체계를 발견해 낸 것 같다.

오늘날 영웅을 꿈꾸는 우리에게도 모험의 신화체계를 통해 갱생의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나침반

같은 길 안내자 역할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토인비는 재생의 삶은 오직 기독교의 거듭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말 한 부분에 있어서 캠벨은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거듭남은 성령 안에서 만 가능하지 않고 다른 유사 신화 속에서도 가능한

예시를 통해 갱생의 삶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나는 그 동안 이 부분에 대해 기독교적 성령의 거듭남이 유일하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는데

캠벨의 주장에 대해서 흥미를 갖게 되었다. 다음 3독때는 이 부분을 좀 정리 해 보고 싶었다.

 

인간의 삶의 순환주기에 대한 언급은 아주 흥미로웠다.

유아기와 사춘기가 바로 천정점(天頂點)이기 때문에 무덤이라는 밤의 자궁속으로 잠기게 되기 때문에 유아기 와 사춘기적 사고를 벗어버리고 어른이 될려는

목표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융은 이 대목에서 천정점을 지나면 우리의 욕망의 도전해 오는 삶이 아니라, 죽음이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머리말

P6 이 책의 목적은 종교와 신화의 형태로 가려져 있는 진리를 밝히되, 비근한 실례를 잇대어 비교함으로써 옛 뜻이 스스로 드러나게 하는 데 있다.

P6~7 베다 경은, <지리는 하나 되, 현자는 여러 이름으로 드러낸다>

원질신화

 

1 신화와 꿈

P14 시간을 초월한 이 환상의 비밀은 무엇일까? 그것은 정신의 어느 심연에서 유래하는 것일까? 신화는 왜 어느 곳에서 채집된 것이든 그 다양한 의상 아래로 똑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일까? 

신   신화는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신화의 본질이 하나라는 중요한 이론을 밝혀낸 대목이다.

P 16~17인간이 가진 심성 중에 가장 끈질기게 남는 성향은, 동물 중에서도 인간이 가장 오랫동안 어머니 젖가슴에 매달려 있다는 사실에서 기인하다. 인간은 너무 빨리 모태를 떠난다.

미완성   인 상태, 세상과 맞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태어나는 것이다. 당연히 위험으로부터 이들을 지켜주는 방벽은 어머니이고, 이 어머니의 보호 아래 자궁 내 체재 기간

intra-u  terine period은 연장된다. 그래서 보호가 필요한 유아와 어머니는 출산이라는 대격변을 치르고 육체적으로 물론 심리적으로 몇 개월간이라는 이원(二元)일체(一體) 상황 dual unit을 형성한다.

      -> 예전에 상영 되었던 영화에서 김혜수가 출연하여 인기를 모았던 상영 영화에서 유독 남성들의

         관심을 끌었던 대목은 그녀의 큰 가슴이였다는 논평을 읽은적이 있다. 오늘날 현세에 와서도

         남성들의 본능적인 보호 의식은 여전히 어머니의 젖가슴 안에서 포근함을 느낀다.  

P17 성 인이 이성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이유를 오이디포스 콤플렉스로 지적한 바 있다. 프로이트 박사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P17~18 아버지 라이오스를 죽이고 어머니 이오카스테와 결혼한 오이디포스 왕은 우리들 자신의 유아기 원망(願望)을 대신해서 충족시키고 있을 뿐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정신 신경증 환자가

         아닌 한 우리는 어머니로부터 성적 충동을 분리시키고, 아버지에 대한 질투를 잊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P21     기의 발견이란, 소망스럽고도 무서운 모험의 영역을 여는 열쇠를 가져다 준다는 의미에서 보면 참으로 매력적인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었고, 우리가 그 속에 살고 있고, 우리가 내적으로

지니고 있는 세계의 파멸….. 그러나 파멸이 끝난 다음에는 보다 대담하고, 깨끗하고 보다 푸짐한 인간적인 삶으로 눈부신 재건, 이것이 바로 우리 속에 내재하는 신화적 영역에서 오는 이 심란한

         밤손님의 유혹이며, 약속이며 공포인 것이다.

è  자기 주도적인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정신 내면의 탐방을 알아낸 것은 신화적 모티브속에서 그 해답을 얻게 되었다는것이다.

P24 삶  의 목표가 어른이 되는 데 있지 않고, 청년으로 머물러 있는 데 있으며, 어머니로부터 떨어져

오 는데 있지 않고, 어머니와 유착되는 데 있다고 믿는 현상이 그것이다.

->매우 유아 집착 현상처럼 보이지만, 내면 자아측면에서 보면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대목이다.

P25 왜 그런가 하면 이 시기에는 도전해 오는 것은 삶이 아니라 죽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될 경우 인간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자궁이 아니라 남근 phallus이다.

    ->’도전해 오는 것이 삶이 아니라 죽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불안감을 극복하기

위한 의식의 확장이 삶의 한 영역으로 죽음을 받아드리는 성숙한 사람으로 키워내는 행위

P25 우리는 자궁이라는 이름의 무덤tomb of the womb에서 무덤이라는 이름의 자궁womb of the tomb까지 완전한 순환 주기를 산다.

P28 여기서는 서지도, 눕지도, 앉지도 못한다. 산속에는 적막조차 없이 마른 천둥만 우르릉거리고

산 속에는 고독조차 없는데 갈라진 흙담 문간에 비웃으며 으르렁대는 시뻘건 얼굴들

P29 영웅이란, 스스로의 힘으로 복종(자기 극복)의 기술을 완성한 인간이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복종인가? 이것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우리자신에게 물어야 하는 수수께끼이며, 영웅의 바탕 되는 미덕과 역사적 행위가 풀었어야 하는 문제이다. 토인비 교수가, 6권에 달아는 문명의 영고 성쇠의 법칙에 관한 연구서 에서 지적했듯이, 영혼의 분열, 사회적 무리의 분열은 세월 좋던 시대로 돌아 듯이, 영혼의 분열, 사회적 무리의 분열은 세월 좋던 시대로 돌아간다는 계획(회고주의)으로도, 이상적으로 설계된 미래를 보증하는 예정표(미래주의)로도, 심지어 악화된 요소를 다시 접합 시키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작업으로도 해결될 수 없다. 오직 탄생(낡은 것의 새로운 태어남이 아닌, 새로운 것의 탄생)만이 죽음을 정복할 수 있다. 죽음의 끈질길 재현을 저지하기 위해서는 영혼의 내부에, 사회적인 무리의 내부에 끊임없는 <탄생의 재현 palingenesia>(우리가 이 땅에서 오래 잔존하게 되어 있다면)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갱생하지 않는다면 응보 천벌 여신 Nemesis의 복수만이 우리가 얻게 되는 승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며, 파멸은 우리 미덕의 껍질부터 깰 것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평화는 올가미다. 전쟁은 올가미다. 변화도 올가미며, 항구 불변성이라는 것도 올가미다. 죽음이 승리하는 날이 오면 죽음이 다가온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십자가에 달렸다가 부활하는 길뿐, 갈가리 해체되었다가 재생하는 길뿐이다.

            ->우리가 매일 일상 속 에서 rodtodggodi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도 바울 고백처럼 나는 매일 죽노라’…나를 매일 죽이고, 십자가 앞에 나를 맡기는 훈련이

내 안에 있는 삶의 갱생을 경험하게 해준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이 승리하는 날이 오고 죽음이

다가온다는 실체를 옆에서 느끼고 보아야 한다. 십자가에 달려 부활을 만들어 내는 것이 자기

극복을 통해 완성된 인간의 모습을 가늠하게 해준다.

P30 해탈 혹은 물러섬 withdrawal 과정은, 외적인 세계에서 내적인 세계로, 대우주에서 소우주로 그 중심을 옮김으로써, 황무지의 절망에서 내부 존재하는 영원히 평화로운 영역으로 물러섬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을 통해 알게 되었듯이, 이 영역이 바로 유아기의 무의식이다. 우리가 잠잘 때 들어가는 곳이 바로 이 영역인 것이다. 우리는 이 영역을 평생토록, 우리 내부에 간직한다. 우리 유아기의 도깨비들과 은밀한 협력자들, 어린 시절의 마법이 모두 여기에 있다.

      ->해탈 이라는 용어를 물러섬으로 바꿔보니 훨씬 받아드리기가 수월해 졌다.

P30 우리가 상실해 버린 이 전체성의 일부라도 나날의 현실로 끌어올릴 수 있다면 우리의 능력은 놀라운 수준까지 신장될 것이며, 아울러 생기 넘치는 재생의 순간을 체험하는 것도 가능하다. 우리는 더 높이 솟아야 한다.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 세대, 나아가서는 우리의 문명 시대가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을 얼마간이라도 건져올릴 수 있다면 우리는 저 위대한 천품(天品)의 시혜자(施惠者), 시대의 문화 영웅(한 나라뿐만이 아닌 세계 역사상의 귀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안에 숨겨져있는 놀라운 능력을 찾아내고,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영웅들의 모험속에서

       엿볼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웅들의 모험 이야기….

P33 꿈은 인격화한 신화고 신화는 보편화된 꿈이며, 꿈과 신화는 상징적이되, 역학의 동일한 일반적 시작에서 보아 그렇다. 그러나 신화에서는 문제와 해결책이 모든 인류에게 직접 뚜렷이 제시되는 데 견주어, 꿈속에서는 꿈꾸는 사람이 안고 있는 문제에 따라 내용이 달라진다.

      ->우리가 창의성을 갖고 싶으면 보편화된 꿈속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와 해결책 모두가 제시되어있는 신화 말이다.

P34 꿈속에서와 같은 길을 택할 필요가 없었으니, 포장도로를 따라 기분 좋게 걸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요 나는 모험을 좋아하기 때문에 지저분하고 질퍽거리는 곳으로 갔던 것이고, 일단 시작한 것이어서 계속 가야 했던 것입니다.

P34~35 영적인 의미에서 무슨 탄생의 징조, 아니, 어쩌면 재생의 징조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둡고 궂은 길을 가야 마침내 평화의 강, 혹은 우리 영혼의 목적지로 통하는 탄탄대로를 발견하게 되는 모양이지요.

꿈을 꾼 사람은 유명한 오페라 여가수인데, 지정표가 있는 대낮의 고속도로뿐만 아니라, 귀가 안팎으로 열린 사람에게만 들리는 희미한 소명(召命)의 모험길로도 들어설 뜻을 세운 사람답게, 예사롭지 않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초라하고 질척한 거리>를 홀로 가야 했다. 이 여가수는 영혼의 어두운 밤, 단테의 <우리 삶의 도정에 도사린 어두운 숲> 그리고 지옥과 같은 구렁텅이의 비애도 알고 있었다.

P36~37 이 판도라의 상자는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신들의 선물인데, 이 안에는 존재의 고통과 축복의 씨앗뿐만 아니라 미덕과 희망까지도 들어 있다. 이 상자의 도움으로 꿈꾸는 사람은 강을 건너 반대편 강의 건너 반대편 강 언덕에 이른다. 그리고 이 기적 같은 일은 통하여, 극히 어렵고 위험한 작업인 자아 발견과 자아 발전을 꾀하는 모든 사람들은 생명의 바다 건너편에 정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판도라 상자와 같은 지저분하고 질퍽거리는 곳, 초라하고 질척한 거리, 우리 삶의 도정에 도사

린 어두운 숲등을 찾아나서면, 우리에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자아의 발견이라는 소명의

씨앗을 품어 자아 발전을 꾀하게 되어 사람들의 생명을 정박할 수 있는 항구로 삶을 살아가게

  된다.

P37 아무리 맹세하고 서원해도 절망적일 수밖에 없는 사람이란, 내부의 소명도 외부의 교리도 모르는 사람이다. 오늘날의 우리 대부분은 가슴 안팎으로 이 미궁을 안고 있다는 이야긴데 아, 미노타우스로와 맞설 용기를 심어주는 미궁 탈출의 단서와, 괴물을 만나 도륙한 다음 우리를 자유의 길로 이끌어줄 안내자, 저 아름다운 처녀 아리아드네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내부의소명과 외부의 교리도 모른느 사람? 가슴 안팎으로 미궁을 안고 사는 사람이다.

        미궁을 빠져나올 용기도, 괴물을 만나 도륙할 힘도 없는 그가 어찌 자유에의 길로 갈 수 있다

        는걸까? 그래서 우리는 조력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P38 사소한 것일수록 손쉬운 법이다. 재미있는 것은 죄 많은 왕을 섬기는 바로 이 장인이 미궁의 공포를 연출한 장본인인 동시에 자유라는 이름의 목적을 달성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P38 수세기 동안 다이달로스는 장인 및 과학자, 기이할 정도로 냉담하고, 거의 악마적인 현상의 상징, 사회정의의 정상적인 경계를 넘어 자기 시대의 도덕률이 아닌, 자기 예술의 도덕률에만 봉사하는 인간유형을 대표해 왔다. 그는 단순하고 용기에 차 있으며,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영웅이다.

P38~39 그는 실타래를 만드는 데 필요한 아마(亞麻)를 인간의 상상력이라는 들판에서 거두었다. 수세기 걸친 경작, 수십 년에 걸친 채집, 수많은 가슴과 손의 힘겨운 직업….. 이 실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마를 훑고, 간추리고 헝클어진 실 무더기에서 실을 자아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혼자서는 이 모험 길에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 모든 시대의 영웅들은 우리에 앞서 미궁으로 들어갔고, 미궁의 정체는 모두 벗겨졌으며, 우리는 단지 영웅이 깔아놓은 실만 따라가면 되는데도 그렇다. 추악한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서 우리는 신을 발견할 것이고, 남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일 것이며,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던 곳을 통해 우리는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외로우리라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세계와 함께 하게 될 것이다.

->영웅들이 앞서 미궁을 다녀왔고,그 모든 실체를 벗겨내었다. 우리는 영웅들이 깔아놓은 실만

따라가면 그만이다. 이 글은 숨을 멈추게 하는 글귀이다 영웅은 미궁으로 들어간다는 말

그러나 미궁의 정체가 벗겨졌을 때비로소 영웅이 되는가 본다….

추악한 것이 기다리는것도, 남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것도, 밖으로 나가겠다고 생각하는 것

, 외로움을 겪는것도 모두 영웅을 위한 준비물들이다.

2 비극과 희극

 

P39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비슷하다. 불행한 가정은 각기 그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

   ->행복에 이르는 길은 모두 비슷비슷 하다고 한다. ‘행복의 조건이라는 책에서 지적했듯이

     행복한 삶을 사는데는 돈도, 좋은 학벌도, 예쁜 미인을 얻는것도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자기에게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대하는냐의 태도가 더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그러나 불행하는데는 나름데로의 이유가 많다. 그래서 이유없는 무덤은 없다고들 한다.

P40 <연민이란, 인간의 고통 중 엄숙하고 부단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고, 이를 고통받는 사람과 하나가 되게 하는 감정이다. 공포는 인간의 공통 중 엄숙하고 부단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하고, 이를 보이지 않는 원인과 하나가 되게 하는 감정이다>

P41 시공(時空)의 제약이 있는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의 하찮은 논리와 정서적 집착으로 찾아 드는 죽음, 우리들이 흙으로 돌아가려 할 때 비로소 온몸을 흔들면서 승리의 찬가를 부르는 보편적 생명에 대한 이러한 재인식, 이 생명을 향한 우리의 가파른 중심 이동, 그리고 <운명에의 사라 amor fati>, 즉 필멸의 운명에 대한 사랑, 이런 것들이 비극적 예술의 체험을 구성한다. 그 기쁨, 구원의 황홀은 바로 그 안에 있다.

    ->죽음은 우리가 흙으로 비져졌으니, 끝내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

어쩜 흙으로 빗져서 백옥 같은 피부를 갖게 했을까?.

P41 현대 문학은 우리들 앞에, 우리들 주위에, 우리들 내부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참담하게 부서진 형체를 직시할 용기와 눈길을 부여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P42 하늘의 신화가 삶의 발자국을 뒤로 남기고 밤의 문턱에 설 준비가 된 노인의 것이듯, 동화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나라의 것이며, 현실로부터 보호받고 있기는 하나 조만간에 거덜날 운명에 놓여 있다.

    ->현실로부터 보호받고 있기는 하나 조만간에 거덜날 운명을 읽어낼 힘을 갖출 수 있다면

      다행 스럽게도 지혜로운 처신을 하게 될턴데조짐을 읽어내는 능력이 바로 신화를 대하는

      나의 생각이다.

P42 고대에 이러한 동화나 신화나 신곡은 비극 이상의 고급스러운 이야기, 심오한 진리, 난삽한 깨달음, 건전한 구성물, 완벽한 계시로 받아들여졌다.

P43 몸뚱이는 죽어 없지만 이 몸 속에 와 계시는 실재self는 영원하며, 불멸이며, 무한이니라.

    ->기독교 신앙은 몸의 부활로 마음과 정신모두가 하나 됨을 말하고 있다.

P43 신화와 동화 고유의 사명은, 비극에서 희극에 이르는 어두운 뒤안길에 깔린 특수한 위험과 그 길을 지나는 기술을 드러내는 일이다. 신화나 동화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환상적이며 <비실재적>이기 때문에, 이들이 표상하는 것은 심리적인 승리지 유체적 승리는 아니다. 전설이 실재의 역사적 인물을 다루는 경우라도 승리의 행위는 꿈 같은 형상을 묘사하는 것이지 실물의 형상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3 영웅과 신

 

P44 신화적 영웅의 길은, 부수적으로는 지상적(地上的)일지 모르나, 근원적으로 내적인 길이다. 즉 보이지 않는 저지선이 뚫리고, 오래 전에 잊혀졌던 힘이 다시 솟아 세계의 변용에 기여하게 되는 그런 심연으로 뚫린 길인 것이다. 이러한 영웅의 행위가 완성되면, 삶은 더 이상 도처에 도사린 재앙의 가혹한 단죄와 시간에 의한 마손(摩損)이나 막막한 공간의 두려움 앞에서 무방비 상태로 고통 받는 일이 없게 된다. 뿐인가, 공포는 눈앞에 여전히 보이고, 고뇌의 울부짖음은 여전히 귀에 들리나, 삶은 모든 것을 채우고,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과 정복되지 않는 힘의 자각으로 다시 생기를 업는다.

P44 시간은 영과의 승리자 앞에 무릎을 꿇고, 세계는 더할나위없이 천사적인, 더할나위없이 단조롭고 요정의 노래처럼 매혹적인 하늘의 노래를 부른다. 행복한 가정이 다 그렇듯이, 소생한 신화와 신계는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P45 일정석인 삶의 세계에서 초자연적인 경인의 세계로 떠나고 여기에서 엄청난 세력과 만나고, 결국은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영웅은 이 신비로운 모험에서, 동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힘을 얻어 현실 세계로 돌아오는 것이다.

    ->오늘날 각 분야에서 리더들이란 동료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힘을 갖고 자기 분야에서 활동

      해야 의미있는 리더로써 유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P53 보잘것없는 영웅이든, 탁월한 영웅이든, 그리스 영웅이든 야만족의 영웅이든, 이방인의 영웅이든, 유태족의 영웅이든, 영웅의 행장(行狀)은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저작거리에 나도는 이야기는 영웅의 행위를 주로 물리적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고급 종교에서는 영웅의 행적이 도덕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모험의 형태, 등장인물의 역할, 마침내 얻은 승리의 내용물에는 놀라울 정도로 별차이가 없다.

P53~54 2 <우주 발생적 순환>은 성공한 영웅에게 계시로 하사된 세상의 창조와 멸망의 엄청난 환상을 펼쳐보인다. 1, <유출(流出), Emanation>은 무()에서 비롯되어 나오는 우주의 형상을 다룬다.

<처녀 잉태(혹은 단성생식)>에서 여성적인 힘의 창조적, 보사적 역할을 일별하되, 먼저 만유의

어머니 Mother of the Universe로서의 우주적 스케일, 이어서 영웅의 어머니로서 인가적인 단계를

다룬다.

 

<영웅의 변모>는 인간의 다양한 요구에 따라 갖가지 형태로 영웅이 등장하는 전형적 단계를

통해 인류의 선사적 역사 과정을 추적한다. 그리고 제4 <소멸>, 처음에는 영웅의 예언된 종

, 이어서는 드러난 세계의 예언된 종말을 그린다. 우주 발생적 순환은 모든 나라의 신성한 문헌

에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게 그려지고 있고, 그것은 영웅의 모험에 새롭고 흥미로운 전기를 부여

한다. 돌이켜보면, 모험적인 여행은 성취하기 위한 노력이 아닌 재 성취하기 위한 노력, 발견하기

 위한 노력이 아닌 재발견하기 위한 노력이었던 듯하다. 영웅이 애써 찾아 다니고 위기를 넘기면

서 얻어낸 신적(神的)인 권능은 처음부터 영웅의 내부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누

구인지 알게 된 <왕의 아들>이고 그는 이로써 자기의 실제적 권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신의

아들>, 이 이름이 얼마나 의미 삼장한지 알게 된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영웅은, 우리 모

두가 내장하고 있되 오직 우리가 이 존재를 발견하고 육화(肉化)시킬 때를 기다리는 신의 창조적

구원적 이미지의 상징이다.

 

4 세계의 배꼽

 

P55 이 둘(영웅과 그의 궁극적인 신, 찾는 자와 찾아지는 자)은 결국, 이 세계의 신화에 다름 아닌 단일한 유형적 신비의 표리로 받아들여진다. 위대한 영웅은 위대한 행적을 통해, 이 다양한 얼굴이 사실은 하나임을 알고, 또 남들에게 알리게 된다.

P58 세계의 배꼽은 연속적인 창조의 상징, 모든 사물 안에서 약동하는 소생의 연속적인 지적이 일어나게 하는 세계 보존의 신비인 것이다.

P62 미덕이나 악덕, 우리의 자아 혹은 남들의 자아는 무엇이라 말인가? 초월적인 힘은, 이 모든 것을 통하여 모든 것 안에 사는 자, 모든 것 안에서 훌륭한 자, 모든 것 안에서 우리의 섬김이 타당한 자에게 감득되는 것이다.

P62~63 닮지 않은 것이 상합하고, 서로 다른 것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화가 이루어지며, 모든 것은 다툼에 의해 생겨난다.

또 시인 블레이크Blake도 비슷한 말을 한다.

사자의 포효, 이리의 울부짖음, 성난 바다의 광란, 그리고 피를 부르는 칼은 인간의 눈에는 과분한 영원의 편린들이다.

P64 도덕 군자가 의분을 금치 못할 대목에서, 비극 서사시인이 연민과 공포를 동시에 느낄 대목에서, 신화는 장엄하고 무시무시한 신곡(新曲)을 향해 온전한 모습으로 피어난다.

P65 신화는 비극적인 자세를 신경질적인 것으로, 도덕적인 판단을 근시안적인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이 무자비함은,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고통에 의해서는 손상되지 않는 끈질길 힘의 그림자이지 다른 것이 아니라는 균형을 회복한다. 그러므로 이야기라 무자비하면서도 공포를 느끼게 하지 안지 않는다. 요컨대 제때에 나고 죽는, 자기 중심적이며 투쟁하는 자아를 응시하는 탁월한 정체 불명의 기쁨으로 가득 있는 것이다.

 

1장 출발

 

1 영웅에서 소명

P69 옛날 옛적, 직심스럽게 빌면 더러 이루어지는 것도 있던 시절에, 예쁜 딸을 여럿 둔 왕이 살았는데, 왕의 딸 중에서도 막내딸은 하도 예뻐서, 세상 구경이라면 할 만큼 한 태양도 이 막내딸의 얼굴을 비출 때면 오히려 제 얼굴을 붉혔을 정도였다.

       ->과연 문학적 표현 스럽다.…과연 이쁜 얼굴을 쓸 때 세상 구경이라면 할 만큼 한 태양도

이 막내딸의 얼굴을 비출 때면 오히려 제 얼굴을 붉혔을 정도였다. 어떻게 이런 상상력을 발휘

해서 글을 쓰는지 놀랍다.

P71 부지중에 저지른 실수는 극히 드문 것이긴 하지만 뜻밖의 세계를 드러내고, 당사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세력과의 관계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프로이트가 밝혔듯이 이러한 실수는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과 갈등이 억압된 결과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부지중에 표출된, 삶의 표면에 잡힌 주름이다. 그리고 이 주름의 골은 매우 깊다. 영혼은 그 자체만큼이나 깊다. 실수는, 운명의 시작에 해당되는 수도 있다.

   ->’조짐이라는 키워드에 눈이 멈췄다. 내일의 변화를 말할 때 지금의 조짐은 미래를 읽는

     유일한 단서이고,거대한 변화를 읽어내는 통찰력이기에 깊은 관찰은 매우 중요하다.

P72 개구리가 등장하는 운명의 갈림길이 곧 <모험에의 소명>인 것이다. 전령 관의 부름은, 여기 이 예화(例話)에서 보이듯이 구원에 이르는 길일 수 있으나 당사자 일대기의 후반에 이르러서는 죽음일 수도 있다. 전령관은 귀한 역사적 사명의 수행을 촉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P72 전령관 등장은 사춘기 도래를 뜻하고 있음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크든 작든, 삶의 단계나 정도가 어디에 이르러 있든, 이러한 소명은 언제나 변용의 신비 mystery of transfiguration, 완성되면 곧 죽음과 탄생에 이르는, 정신적 통과 의례 혹은 순간을 개막(開幕)한다. 지금까지의 삶의 지평은 이제 너무 웃자라, 낡은 개념과 정서 패턴은 몸에 맞지 않는다. 바야흐로 또 하나의 문턱을 넘어야 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P72 운명의 힘을 전하는 전령관은 혐오감을 주는, 참으로 하찮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이러한 상황을, 세계의 배꼽에 대한 상징으로 인식한다.

P73 모험에서 소명을 알리는 전령관, 혹은 고지자(告知者)는 어둡고, 징그럽고, 무섭고, 세상의 버림을 받은 존재인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길 따르면, 길은 낮의 벽을 통해 보석이 빛나는 밤으로 열린다. 혹 전령관은 우리 내부의 억압된 본능적 다산성(多酸性)의 상징인 야수(동화에서처럼,) 또는 이미지 베일에 가려진 신비스러운 존재로 나타나기도 한다.

P77 주인공은 이전에 자신이 의미를 부여하던 사물이 이제 무가치하게 되어버리는 상황을 경험한다. 어떤 힘에 대한 일련의 조심이 나타난다.

P78 왕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찾아 나설 준비가 되는 순간, 적당한 전령관이 때맞추어 나타났다.

P80 신화적 여행의 첫 단계(우리는 이를<모험에서 소명>으로 불렀다), 운명이 영웅을 불렀고, 영웅의 영적 중심(重心)이 그 속한 사회에서 미지의 영역으로 옮겨졌음을 암시하고 있다. 낙원일 수 도 있고 위험의 도가니일 수도 있는 이 운명적인 영역은 여러 가지 형태로 다양하게 표상된다. 가령 오자, , 지하 왕국, 해서, 천상, 비밀의 섬, 험한 산꼭대기, 혹은 꿈꾸는 상태로 표상되는 것이다.

P80 모험은 우연한 실수로 시작될 수 도 있다. 혹 우연히 현상이 방랑자의 눈길을 사람의 내왕이 빈번한 길에서 엉뚱한 길로 돌려버림으로써, 모험 당사자는 무익한 방랑만을 일삼는 수도 있다.

 

2 소명의 거부

 

P81 소명에의 거부는, 모험을 부정적이게 한다. 타성이나, 힘에 겨운 일, 혹은 <문화>의 장벽 때문에, 모험의 주체는 의미 심장한 긍정적 행동력을 잃고,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버리는 것이다.

P81 그러나 무슨 집을 짓건, 그가 짓는 것은 죽음의 집이다. 자기의 미노타우로스를 숨기는 퀴클롭스 식() 미궁일 뿐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면서 파멸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P82 미래란 생과 사의 부단한 연속만은 아니다. 개인이 가진 현재의 이상과, 미덕과, 목적의 체계가 어떻든 이득이 마땅히 따라야 하는 것이고 또 보장되어 있다.

P82 그는, 자기 상상력보다는 경제적 이득을 앞세웠다. 때문에 그는 자기에서 맡겨진 생의 역할을 감당하는 데 실패했고, 우리가 보았듯이 엄청난 불운을 겪어야 했다.

P85 당사자가 유아기적 자아 그리고 유아기적 정서 관계 및 이상의 틀을 벗어나지 못함을 보여주고 있다. 당사자는 유아기의 벽에 갇혀 있다. 이 경우 아버지나 어머니는 문턱을 지키는 사람으로 버티고 있어서, 그 들의 징벌을 두려워하는 소심한 영혼은 문을 열고 외부 세계로 나오는, 재생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다.

P92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세계 전역의 모든 신화에도 두루 통용된다. 『코란』에는 <구원할 수 있는 분은 알라 신뿐>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문제는 어떤 기적의 힘이 이를 가능케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 비말은 바로 이 『아라비안 나이트』의 다음 단계에서 드러난다.

 

3 초자연적인 조력

 

P95~96 이것은 단테의 작품에서 베아트리체와 성모라는 여성의 모습으로, 그리고 괴테의 파우스트 에서는 그레첸, 트로이아의 헬렌, 그리고 성모로 나타나는, 영웅의 보호령(保護領) guiding power)이다. 삼계(三界)의 위난을 안전하게 두루 거친 끝에 단테는 이렇게 기도한다.

P96~97 보험을 나선 당사자가 그것을 알고 그 존재를 믿기만 하면 시공을 초월한 안내자는 언제나 나타난다. 소명에 응답했고, 용기 있게 미지의 사건에 대한 체험을 경험해 왔기 때문에 영웅은 모든 무의식의 힘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다. 대자연 Mother Na-ture은 항상 위대한 임무를 지원한다. 영웅의 행동이 그 사회가 예비하고 있는 것과 일치될, 때 그는 흡사 역사적 변화의 리듬을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러시아 원정에 즈음해서 나폴레옹은 이런 말을 했다.

P97 고급 신화에서는 이 역할을 맡는 조력자는 스승, 나룻배 사공, 영혼을 내세로 안내하는 안내자로 발전한다. 그리스 로마의 신화에서 이러한 안내자는 헤르메스와 메르쿠리우스이고, 에집트에서는 토트(따오기 비슷한 신)이며, 기독교 문화권에선 성령이다.

 

4 첫 관문의 통과

 

P106 『이렇게 네가 나를 만났으니 마땅히 싸워야 한다. 만약 사람에게 지면, 이 괴물은, 이렇게 되면 이 괴물과 싸워 이긴 사람은 용한 의사가 된다.

P108 인간을 애인으로 삼는 것도 좋아해서 종종 마을 총각들과 결혼한 적도 있는데, 살림을 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초자연적인 신부가 다 그렇듯이 남편이 혹 부부간에 마땅히 지켜야 하는 예절을 무시하고 변덕을 부리면 종적을 감추어버린다.

P110 꿈속에서, 나는 신비스러운 정원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정원 앞에는 경비병이 있어서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나는 정원 안에 내 친구 엘자 부인이 있는 걸 보았다. 엘자 부인은 내 손을 잡고 문을 지나게 해주려 했다. 그러나 그 경비병은 내 팔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신 차려! 들어가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이래!

P115 왕자는 공부를 끝마치자 스승으로부터, 비법 전수자의 상징인 다섯 무기를 지닌 왕자 라는 칭호와 함께 다섯 가지 무기를 하사받았다.

P115 『태자 저하, 이 숲에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이 숲에는 <끈끈이 터럭 도깨비가 있습니다. 이도깨비는 사람을 보는 족족 죽입니다>

P116 『들어라 도깨비야. 그대는 아직 내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모양 이구나. 나는 다섯 가지 무기를 지닌 태자다. 그래가 진 치고 있는 이 숲으로 들어오면서 나 역시 활과 칼 같은 무기는 애당초 믿지를 않는다. 그래, 나는 이 숲으로 들어오면서 오직 나 자신에 의지하고자 했다. 내 이제 그대를 가루로 만들 테니 그리 알라!

P117 (이는 필시 인간이라기보다는 사자, 아니 귀인임에 분명하다. 어쨌든 범인은 아니다. 나 같은 도깨비에게 붙잡힌 신세 가 되었는데도 떨기는커녕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는구나. 내가 이 길목을 지킨 지 오랜데도 이 같은 자와 대적하긴 처음이다. 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일까)

P117 『젊은이여, 왜 두려워하지 않는가? 죽음이 목전에 이르렀는데 어찌해서 겁을 먹지 않는 것인가?

P117~118 도깨비여, 왜 내가 두려워하겠는가? 태어나면 어차피 한번은 죽게 되어 있는데 두려워할 까닭이 없지 없는가? 더구나 내 배속에는 벼락이라는 무기가 하나 더 있다. 그래가 나를 먹는다고 하더라도 벼락은 삭이지 못할 것이다. 이 벼락은 그대 뱃속에서 그대를 갈가리 찍어 필경은 그래 목숨을 빼앗을 것이다. 결국 그래가 나를 먹으면 우리는 둘 다 죽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P118 그가 자기 뱃속에 있다고 한 무기는 다름아닌 <지혜>라는 무기였다. 실제로 이 젊은 영웅은 전생의 부처, 바로 그분이었다.

P120 태양 문을 통하여 번제의 연기가 피어오르듯이, 영웅은 자아에서 해방되어 세계의 벽을 통과하는 것이다. 작아는 끈끈이 터럭에 다 붙여 두고 영웅은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다.

 

5 고래의 배

 

P120~121 마법의 문턱을 넘는다는 것이, 곧 재생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는 관념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고래의 배라는 자궁 이미지가 상징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영웅은, 그 관문을 지키는 세력을 정복하거나, 그 세력과 화해하는 대신, 그 미지의 힘에 빨려들 어, 겉보기엔 죽은 것으로 나타나고는 한다.

P123 신전 안에서 신도는, 시간적으로 이미 죽어 세계의 자궁 세계의 배꼽, 자상의 낙원으로 돌아 갔다는 암시를 받는 수도 있다.

P123 신의 존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러한 괴수들을 그저 괴물로만 본다.  따라서 그들은 이 괴수들 손에 접근부터 거부당한다. 그렇다면 비유적으로 보아, 신전으로 들어가는 것과 고래의 입을 향한 영웅의 돌진은 같은 모험인 셈이다. 즉 회화적 언어로 말하면 둘 다 생의 구심화, 행위, 거듭나는 행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P124 <존재를 그만두지 않고는 어떤 생명체든 보다 높은 차원의 존재를 획득할 수 없다>고 썼다. 어쩌면 영웅의 육신은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구세주 오시리스처럼 정말 죽고, 해체되고, 땅이나 바다 위로 뿌려지는지도 모른다.

P124 자아에의 집착을 끊은 영웅은 왕이 자기 궁궐에서 방방을 드나들 듯이, 삶의 지평을 넘나들거나 용의 뱃속을 드나들 수 있다. 스스로를 구원하는 힘은 여기에 있다. 그의 죽음과 희귀는, 모든 현상계의 대립물이 창조되지 않는 불면의 존재임을 드러내는데 여기에 두려움이 있을 리 없다.

 

2장 입문

 

1 시련의 길

P130 시베리아의 샤먼은 모험에 대비해서 새나 사슴, 즉 사면 자신의 영혼의 모습이며, 자기 망령의 본체인 짐승을 상징하는 마법의 의상을 걸친다. 그의 북은 곧 독수리, 사슴, 말 같은 동물이다. 그는 이런 동물과 함께 날거나, 타고 달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가 든 지팡이 역시 그들 돕는 조력자 중 하나다. 거기에다 그는 보이 않는 요정을 거느린다.

일찍이 라플란드Lappland로 갔던 한 여행자는 죽음의 나라를 향한 이 기이한 사자(使者)의 불가사의한 여행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우리는 고래의 배를 기반으로 드디어 영웅의 길로 들어선다. 영웅들의 입문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워지는 걸까?

첫 키워드는 무엇일까? 행복도 아니고, 사랑도 아닌 시련의 길이다.

요즘 리더가 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서 남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나는 시련의 길을

선택 했노라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P132 인간의 무리는 집단의 이상(理想)에 따라 행동하는 법인데, 이 집단의 이상이라는 것은 항상 유아기 상태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P133 이 유아기 상태란 성장의 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수정되고 역전되다가 현실에 적용될 필요가 있을 때 재 수정된다.

      ->영웅은 시련이라는 관문을 통과 하면서 유아적 상태를 벗어나게 되고 더욱 자신을 단련하고

        더욱 굳건한 정신 세계를 갖게 되면서 후학을 키울 소명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P143 신이든 여신이든, 남자든 여자든, 신호의 등장인물이든 꿈을 꾸는 사람이든, 영웅은 적대자를 발견하고 삼키거나 그에게 삼켜짐으로써 이 적대자(뜻밖에도 그 자신의 자아)를 돵화시킨다. 하나씩 하나씩 장애는 차례로 사라진다. 영웅은 자신의 자존심, 미덕, 아름다움, 삶을 팽개치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 적대자에게 절을 하거나 복종한다. 이윽고 영웅은 자신과 적대자가 사실은 둘이 아닌 하나임을 깨닫게 된다.

시련은 첫 관문의 문제를 심화시키고 질문은 여전히 미제로 남는다. 자아가 스스로를 죽음에 내어맡길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왜 그런가 하면, 주위에 있는 것은 머리가 많은 휘드라이기 때문이다. 절단한 곳에다 비방을 쓰지 않는 한 하나를 자르면 두 개의 머리가 나타난다. 원래 시련의 나라를 향한 출발은 초보적인 정복과 예언의 힘을 얻기 위한 길고 험한 여로만을 표상했다.

P144 모든 장애물이 극복되고 도깨비가 퇴치되었을 때 영웅이 치르는 마지막 모험은, 승리한 영웅과 세계의 여왕인 여신과의 신비스러운 혼례로 표상된다. 이로써 영웅은 천저, 천정, 혹은 땅 끝, 우주의 중심점, 신전의 성소, 혹은 마음속의 가장 어두운 방 속에서 위기를 맞는다.

P145 세상에 유혹하는 것, 기쁨을 약속해 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잠자는 여성이 지향하는 존재의 예조에 해당한다. 이러한 유혹과 약속은, 이 세상의 도시나 숲에서가 아니라, 우리가깊이 잠들어 있을 때 찾아온다. 왜 찾아왔을까? 그녀의 존재가 바로 완전성이라는 약속의 화신이며, 조직화된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 오랜 방황을 끝낸 영혼의 안식이며, 한때 인류가 맛보았다가 언젠가 다시 맛볼 은혜이기 때문이며, 위안과 자양, 그리고 우리가 아득한 옛날에 그 사랑을 받던 <좋은> 어머니(젊고 아름다운)이기 때문이다.

p152 여신은 또 때가 되면 죽는 모든 것의 죽음이기도 하다. 나서 사춘기, 성년기, 장년기를 거쳐 무덤에 들어가기까지 전 존재의 순환은 여신의 지배 아래서 이루어진다. 여신은 자궁이며, 무덤이며, 제 새끼를 먹는 돼지이다.

시간의 강이 사람의 흐름으로 바뀌면 여신은 순식간에 창조하고, 보존하고, 파괴한다. 이 여신의 이름은 <검은 존재 the Black One>, 즉 칼리 Kali. 별명은, <존재의 바다를 건네주는 나룻배>.

P157 모험 당사자가 청년이 아닌 처녀일 경우에는, 그 재능이나 아름다움이나 욕망으로 보아 불사신의 배우자가 되기에 마땅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천상의 남편은 그녀에게 하강하여, 운하든 원하지 않든 그녀를 자기와 동침하게 한다. 만일 여자가 이 배우자를 싫어하면,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나 그녀의 편견은 바로잡히게 되고, 그녀가 바라던 존재라고 생각되는 경우 그녀의 욕망은 평화를 성취한다.

짜증이 몹시 났던 공주는 개구리를 집어 벽에다 메치고 말았다. 바닥에 떨어진 것은, , 개구리가 아니라 왕자였다. 눈길이 다정하고 아름다운 왕자였다. 이 대목에 이르면 결과는 뻔하다. 두 사람은 결혼한 뒤 화려한 마차를 타고 왕자의 나라로 가서 왕과 왕비가 된다는 것이다.

->옛말에 곧게 심은 나무가 선산을 지켜줄거라고 믿은 주인은 곧은 나무에만 온갖 정성을 쏟아

부었다. 시간이 흘렸다. 주인도 죽었다. 주인이 사라진 선산 앞에 동네 사람들은 몰래 곧은

나무를 베어가기 시작 했다. 결국에는 삐틀어진 나무 한 그루가 선산을 지켰다는 이야기이다.

보이는 것은 개구리였으나, 보이지 않는 것은 왕자였으니생각지 않은 곳에서 운명선이 바뀌는

일이 일어난다.

P159 싸움이나 짜증은 무식한 자들의 미봉책에 지나지 않고, 후회는 때늦은 각성일 뿐이다. 세계 도처에 널린 영웅 신화에 나오는 영웅의 모험은 일반적인 양식으로, 어떤 계층에 속하는 사람에게든 그대로 적용된다. 그래서 여기에 광의의 술어로 공식화시켜 본 것이다. 우리는 이 일반적인 유형과의 비교에서 우리 자신의 입장을 박혀내야 하고 이것을 우리는 우리를 가로막는 제약의 벽을 허물어뜨리는 데 필요한 길잡이로 삼아야 한다.

P161 이 세상 만사가 나에겐 진부하고, 짜증스럽고, 무익한 허접스레기로 보이는구나. 싫구나 참으로 싫구나, 자라서 씨앗을 맺을 이 잡초투성이의 뜰이. 자연 안에서 무성한 이 잡초가 이 지경이 됐다는 것이 싫구나.

왕비를 차지했을 때 오이디포스가 맛보았던 순진한 기쁨이, 그 왕비의 정체를 알고부터는 심한 정신적 고뇌로 바뀐다. 햄릿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아버지의 도덕적 이미지로부터 공격을 받는다. 등을 돌리고, 그 근친 상간의 악몽을 주는 사치스럽고, 교정 불가능한 어머니의 세계보다 훨씬 어두운 왕국을 향하는 모험가로 변한다.

P170 아버지의 무섭고 잔인한 측면은, 피해자의 에고가 투영된 것이다. 즉 지난날 존재했던 예민한 유아기의 장면이 전면으로 투사됨으로써 나타난 것이다. 교육적으로 백해무익한 이러한 우상 숭배에 집착한다는 것은 당사자를 죄의식에 빠지게 하고, 잠재적인 성인의 정신을 아버지,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세상에 대한 온전하고 현실적인 견해로부터 당사자를 봉쇄하게 된다. <화해 atonment>, <하나되기 at-one-ment>란 스스로 만들어낸 두 마리의 괴물((초자아)으로 보이는 용과 죄악(억압된 이드))으로 보이는 용을 포기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당사자는 아버지가 자비로우며, 이 자비를 믿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되면 믿음의 중심은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신의 족쇄 바깥으로 이동하고, 믿음의 중심이 이동하면 무섭고 잔인한 측면은 사라진다.

P171 지원을 보장받은 영웅은 위기를 견디어 나가고, 결국에 가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를 투영하고 있지만 사실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P173 갖가지 시련을 다 치른 자를 집안으로 용납하는 아버지 입장이 얼마나 어려우며, 얼마나 주의를 요하는가는, 그리스의 유명한 이야기에 등장하는 파에톤의 불행한 행적이 잘 그려내 보이고 있다.

P177 보아라, 날이 밝아오고 있다. 아들아, 네 힘에 의지하기보다는 행운이 네 길을 인도하게 하여라. , 이제 고삐를 잡아라.

P178 그 땅의 수정 나이아데스 자매들은 그의 분묘를 세우고 비문을 새겼으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갖다.

포이보스의 마차를 타고 가던 파에톤 여기 잠들다.

비록 실패했으되, 그 용기는 아주 가상하지 않은가.

자식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이 부모의 이야기는, 입문이 잘못되었을 때 입문자의 삶에는 혼란이 올 수 있다는 옛사람들의 생각을 확인시켜 준다. 한 아이가 자라, 어머니 품속의 목적인 자장가를 떠나 어른의 세계에 눈을 돌리게 될 때, 이 아기는 정신적으로 아버지의 세계를 엿보게 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있어서 미래 세계의 상징이요, 딸에게 있어서는 미래 남편의 상징이다. 알든 모르든, 그리고 사회의 지위가 어떻든 아버지란 존재는, 자식이 더 넓은 세계로 나갈 때 마땅히 거쳐가는 입문식의 사제다.

P178 아들은 세계를 섭렵하는 데 있어서 아버지를 경쟁 상대로 삼고 딸은 섭렵된 세계 자체가 되는 데 있어서 어머니를 경쟁자로 삼는 것이다.

입문에 대한 전통적 인식은, 부모의 이미지에 대한 정서적 관련 특권을 소개하려는 의도를 수렴하고 있다.

이런 입문자라야 자기 강화라는 무의식적(혹은 의식적, 합리적일지도 모른다) 동기나 개인적인 선호나 혹은 증오 때문에 정당하고 비개인적인 힘을 오용할 가능성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입문의 영광을 입은 자는, 자기 인간성을 모두 박탈당하고, 비개인적인 우주적 힘을 대표하는 사람이 된다. 그는 이제 거듭난 자이며, 그 자신이 곧 아버지다. 그는 끊임없이 삶의 싸움판에 나서야 하고 입문의 사제, 안내자, 태양을 향한 문 노릇을 해야 한다. 요컨대, 선악에 대한 유아기 환상을 떨치고, 희망과 공포에서 놓여나 평화롭게 존재의 계시를 이해하고 우주 법칙을 엄숙하게 경험하는 세계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입문자를 인도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입문을 제대로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 보인다. 나는 새로운 조직을 맡아 경영을 할 때, 조직을 책임지고 끌고가겠다는 리더가 별로 없다. 끊임없이 삶의 싸움판에 나가서 입문의 사제로써 살아

가야 한다. 그에게 살아갈 삶의 기술, 의무, 특권을 누가 말 해주랴 !!

P180 그들은 위대한 아버지 뱀의 몸 <안에서> 어머니를 잃는 대신에 그 보상으로 얻게 될 새로운 세상을 소개받는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기 상상의 중심(즉 세계의 축)에다 젖가슴 이미지 대신 남근을 세운다.

P181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신화를 보면, 초기 입문 의식에서는 모든 젊은이들이 죽음을 당한 것으로 되어있다. 따라서 이 의식은 연장자 세대에 의한 오이디푸스적인 공격의 극단적인 표현으로 비쳤다. 완화된 거세 의식인 할례 의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변경연 연구원이 된 이후 첫 의식행사는 장례식 이였다. 죽음을 당하므로 다시 사는 경험을

만들기 위함 이다. 성경에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백배의 결실을 이루워내지만, 한 알…’

그대로 있으면 썩기 마련이다.

P182 <원주민들은 기독교의 성찬식에 특히 관심을 보였다. 선교사들로부터 성찬식 이야기를 들은대그들은 대뜸 자기네들의 흡혈 의식과 비교하는 것이었다.>

P183 이 벌거숭이 오스트레일리아 야만인들이 미개해 보일지 몰라도, 이 유서 깊은 정신적 유산의 체계를 오늘날까지 상속시킨 그들의 상징적인 의식과 그 의식의 광범위한 흔적이 인도양 저쪽 땅과 섬에서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특별히 우리 문화권으로 여기는 고대 문화 중심지의 유습에서도 발견된다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P185 기독교 교회를 통하여 우리는 엄숙하게, 때로는 효과적으로 입문의 권능을 비추는 이들 불사의 이미지에 합류한다.

P192 시간의 본질은 유동하며, 한순간 존재하던 것의 흐름이다. 그리고 생명의 본질은 시간이다. 신의 자비, 시간이라는 양식에 대한 그의 애정을 통해, 이 데미우르고스적 인간 중의 인간은 저 고해로 몸을 내맡긴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영웅은 영혼의 문을 열어 공포를 극복하고, 이 광대무변하고 무자비한 우주의 걷잡을 수 없는 비극을 존재의 존엄성 속에서 완전하게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영웅은 자기 몸에 박힌 가시를 통해 삶을 초월하여, 한순간이나마 그 근원을 투시한다. 그는 여기에서 아버지를 만나고, 아버지와 자기가 화해에 이르렀다는 것을 깨닫는다.

P194 욥기의 전지전능한 야훼에 의해 완전하게 부서져, 끝까지 부서진 형태로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에게는, 야훼의 계시가 자기 영혼을 만족시켜 주는 것처럼 보인다. 욥은, 끔찍한 불가마 안에서 견디는 용기와 전지전능한 신의 성격에 대한 일반적 개념 앞에서 결코 파괴나 굴복당하지 않음으로써, 친구들을 만족시키는 것 이상의 위대한 계시에도 맞설 수 있음을 증명한 영웅이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알 나이가 되면 시련의 고뇌가 이미 그의 내부에 태동해 있다. 세상은 더 이상 눈물의 골짜기가 아닌, 행복이 기다리는 현존의 완전한 현현이다.

P203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할례 다음해에, 완전한 남성이 되고자 하는 입문자는 두번째의 제의적 수술을 받는다. 이 두번째 수술은 절개 수술이다. 이 흉터는 페니스 자궁이라고 불린다. 이것은 남성의 질을 상징한다. 영웅은 의식을 통하여 남성 이상의 어떤 존재가 되는 것이다.

P207 구세주가 전해 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듣고, 기뻐하고, 힘써 전파했지만 실천만을 끝내 꺼렸던 복음은 하느님은 사랑이며, 하느님은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받아야 하며, 모든 인류는 예외 없이 그의 아이들임을 가르치고 있다.

P215 마지막 미망과 욕망과 적의의 적멸과 더불어 마음은, 생각이 실체가 아님을 깨닫는다. 생각은 사라지는 것이다. 이런 참된 경지에 들어간 마음은 안식을 얻는다. 상태는 육체가 사윌 때까지 계속된다.

P216 기존의 자기 확신, 자기 방어, 자기 중심적 에고의 미망을 억눌렀기 때문에, 그는 같은 적멸의 안팎을 안다. 그는 밖에서, 방대한 생각을 초월하는 공의 시각적인 측면을 본다. 에고, 형상, 지각, 언어, 개념, 지식에 대한 체험은 그 위에서 전개된다. 그는 제 악몽에 쫓기며 스스로 겁에 질린 존재를 자비로이 여긴다. 그는 일어나 그들에게로 돌아와 에고를 초월한 중심으로서 그들과 함께 거한다.

P223 우리는 어머니 안에서 배태되어, 아버지로부터 격리된 채 산다. 그러나 우리가 때가 와서 그 시간의 자궁을 빠져나오면 우리는 아버지의 손으로 넘어간다. 현명한 자는 그 자궁 속에서도, 자기가 아버지에게서 와서 아버지에게 돌아가고 있음을 안다. 그보다 더 현명한 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하나의 본체 안에 있다는 것까지 안다.

P226 여기에서 이 모험이 쉽게 끝났다는 것은 주인공이 초인간이며, 원래가 왕의 재목이었음을 뜻하고 있다. 영웅이 모험을 쉽게 끝내는 예는, 여러 동화나 육화한 신의 행위에 관한 전설에 자주 등장한다. 보통 영웅 같으면 모진 시련을 겪을 터인데도 선택된 자는 별 방해도 받지 않고, 또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

만상이 잠드는 성은, 꿈 속에서 의식이 도달하는 궁극의 심연이다. 꿈은 개인의 삶이 미분화 에너지 속으로 해소되는 지점이다. 해소되어 버리면 곧 죽음이다. 불이 꺼진다는 것 역시 죽음을 상징한다.

P228 첫째 신조는 환상 중에 감정을 정화하고, 이어 이에 대한 반응을 형성하는 것이다. 두번째 신조는 이를 투사하는 것이다. 너의 몸에 들어가고자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사람들 몸속에 병원체를 쏘아넣는 다른 마법사라는 것이다. 세번째 신조는 복원이다. 나는 사람들의 내부를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고 복원하려는 것이다.

P244 그가 천신만고를 이기고 물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동안 뱃사공은 배 안에 남아 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의 밑바닥에 이른 그는, 손을 찌르는 저 풀을 뜯고, 발목에 매단 돌을 푼 다음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그가 수면으로 오르자 뱃사공은 그를 다시 배 안으로 맞아들였다. 길가메쉬는 환호작약, 뱃사공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르사나피여, 이것이 그것이었구나.

인간이 얻으면 끝없는 힘을 얻는다는.

내 이 풀을 기름진 땅 에렉으로 가져가리라.

이 풀을 다시 젊어지게 하는 풀이라고 명명하노니,

내 이 풀을 먹고 회춘하리라.

P248 영원을 알면 이해력이 넓어지고, 이해력이 넓어지면 포용력이 넓어진다. 시야가 넓어지면 귀함을 얻는다. 귀함이란 천상적인 것과 다름아니다.

천상적인 것이 도다. 도는 영원이다. 여기에 이르면 육체가 썩는 것도 두려워할 바 아니다.

P249 개인적인 한계를 넘는 고통은 곧 전신의 성숙에 따른 고통이다. 예술, 문화, 신화, 그리고 밀교, 철학과 수련은, 모두 인간이 자기 한계의 지평을 넘고 드넓은 자각의 영역으로 건너게 해주는 가교인 것이다.

단테가 정신적 모험을 마지막 한 걸음까지 마치고 천상의 장미에 싸인 삼위 일체 신의 상징적 환상 앞에 섰을 대도 마찬가지다. 성부, 성자, 성신의 형상을 두루 경험한 그에게도 아직 한 가지 경험이 더 유보되어 있었다. 베르나르가 내게 눈짓과 함께, 저 위를 보라는 듯 미소짓고 있었지만, 나는 이미 그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었다. 나의 눈이 점점 밝아지면서, 저 지존의 빛줄기 속으로, 자꾸만 빨려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내가 본 환상은, 말로 할 수 없었으니, 말이 그 나타난 바에 승복하고, 이거 또한 압도당했다.

P250 눈이, 말이, 마음이 하릴없다. 우리는 이를 알지 못한다. 이를 남에게 가르칠 방도도 알지 못한다. 이는 이미 알려진 바와도 같지 않고, 알려지지 않는 것까지 초월해 있다.

 

 

3장 귀환

 

1 귀환의 거부

P256 내 주님이신 신이시여. 인간으로 살고 업을 쌓을 때 저는 닥치는 대로 살고 닥치는 대로 업을 쌓았습니다. 인간이 나고 죽기를 여러 번 할 동안 저는 어디에서 멈추어야 할지, 어디에서 쉬어야 할지도 모르는 채 그저 뛰고 괴로워했습니다. 저는 근심을 기쁨으로 잘못 알았습니다. 사막 위로 나타나는 신기루를 시원한 샘물로 알았습니다. 제가 기쁨을 잡으면 손 안에 남는 것은 고통뿐이었습니다.

      ->신에 대한 절규가 애절하다. 그러나 나의 이야기 같아서눈을 때기가 어렵다.

      신들을 비롯한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모두, 주님이신 신이시여, 당신의 손으로 꾸미신 계략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 피조물들이 태어나고, 고통을 받고, 나이를 먹고, 죽는 헛된 순환을 되풀이하는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살아 있을 동안 그들은 죽임의 주재자와 맞서다 갖가지 정도의 고통을 겪습니다. 이 모두가 당신에게서 온 것입니다.

      ->회귀를 거부하고 또 다른 고행을 찾아 나간다. 불교의 인연을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떠나려고 동굴을 나오던 무추쿤다는, 적국의 병사들이 모두 석상으로 화해 있는 걸 발견했다. 그의 키는 석상들보다 컸다. 그는 그 동굴에서 나와 높은 산으로 올라간 다음 고행에 들어갔다. 이 고행만이 모든 존재의 형상과의 마지막 인연으로부터 그를 해탈로 이르게 할 터였다.

 

     2 불가사의한 탈출

P262 영웅이 도망치는 대목에서 또 하나 자주 등장하는 방법은, 도망치는 영웅이 끊임없이 장애물을 던져 추격을 지연시키는 수법이다.

P263 심연의 권능에는, 섣불리 도전하면 안 된다. 동양에서는, 엄격한 지도와 감독 없이 심리적으로 해이해진 상태에서의 요가 수련은 몹시 위험하다고 가르친다,. 수련자의 명상은 그 발전 단계에 따라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야 수련자의 상상력은 데바타(DEVATA: 수련자의 수준에 알맞은 신성)에 의해 각급 단계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러한 단계를 거쳐 정신을 수련한 다음에야 수련자에게는 홀로 초월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는 순간이 온다.

P267 왜 진작 오시지 않았습니까? 애통합니다. 저는 이미 이 황천의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오라버니시여, 귀하신 이께서 이곳에 들어오심에 힘입어 저는 권능을 얻었습니다. 저도 돌아가고 싶습니다. 저승의 신들과 이 일을 의논해 보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저를 보시면 안 됩니다.

 

3 외부로부터의 구조

P280 영웅은 의식을 잃고 무의식의 상태에서 원래 그가 살던 세계로 되살아난다. <불가사의한 도망>에서 그랬던 것처럼, 영웅은 자아를 지키는 대신 자아를 잃어버린다. 그러나 조력자의 은혜로 영웅은 자아를 되찾는다.

 

4 귀환 관문의 통과

 

P281 두 세계, 곧 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는, 삶과 죽음, 밤과 낮처럼 서로 다르다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영웅은 우리가 아는 세계에서 암흑의 세계로 들어간다. 이 암흑의 세계에서 영웅은 그 모험을 완성할 수도 있고, 거기에 갇힘으로써 우리들로부터 사라져 버릴 수도 있고, 엄청난 위험에 직면할 수도 있다.

P290 신성한 인물 속에 충만한 이 신성성, 주술력도, 훌륭한 양도체와 다름없는 대지와의 접촉으로 방전, 고갈되어 버린다고 믿는 것이다. 따라서 신성한 인물이나 터부가 되어 있는 인물은 이 신성성, 주술력이 방전, 고갈되지 않도록 땅과 접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신성한 미덕에는 일촉에 즉발하는 고폭성이 있어서, 터지거나 방전하거나 누출되지 않도록 예방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P291 자기 모험을 완성하기 위해서, 귀환한 영웅은 세계의 충격을 견디어야 한다. 립 반 윙클은 무엇을 체험하고 왔는지 알지 못한다. 따라서 그의 귀환은 한낱 우스개로 끝나고 만다. 오이신은 자신의 저승 체험을 알고 있지만, 자기의 중심이 저승에 있다는 걸 잊어버렸기 때문에 역시 전락하고 만다.

P294 덧없는 만남과 헤어짐,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사랑의 고통이 아닌가. 한 영혼이 제 운명을 저주하고, 운명의 장난에 저항할 때 그의 고통은 더욱 고통스러워진다. 위험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여기에 대응하는 것은 감정이 아닌 힘이다. 세계 도처에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이런 이야기를 한 곳에 모아보면 일치하는 하나의 필연적인 공통 분노가 엿보인다. 기억 속에서 자기 영혼의 다른 부분과 만났음을 상기시키는 신비스러운 반지는 영웅이 그 곳에 간 적이 있음을 시사한다.

 

5 두 세계의 스승

 

P306 나를 위해서 목숨을 잃는 사람은 생명을 얻을 것이다. 이제 의미는 분명해진다. 말하자면 이것은 모든 종교적 관행이 좆고 있는 바다. 심리적 훈련을 통하여 개인적인 한계, 독특한 습관, 희망, 공포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진리를 깨닫고 거듭나는 데 필수적인 자기 적멸에 대한 저항을 버리면, 개인은 위대한 <하나됨 AT-ONE-MENT>, <자기 화해 SELF-ATONEMENT>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야망을 무화시킨 개인은 살려고 바둥거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 닥치건 거기에 몸을 맡겨버린다.

 

6 삶의 자유

 

P307 신화의 목적은 개인의 의식과 우주적 의지를 화해시킴으로써 생명에 대한 그 같은 무지를 추방하는 데 있다. 이 목적은 덧없는 시간적 현상과, 삶과 죽음이 혼재하는 불멸의 삶과의 진정한 관계를 자각해야 달성이 가능하다.

P308 영원의 원리 안에서 집착하지 않는 이승 세계의 인간이 만일 자기 행위의 결과에 초연해하고, 이를 살아 있는 신의 무릎에다 올려놓을 수 있다면, 그는 이 제물에 의해 죽음의 고해에서 풀려날 수 있다.

    그러므로 애착을 떠나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행하라. 너의 모든 일을 나에게 맡기고, 네 생각을 가장 높은 자아에 모으고, 원망과 이기심에서 벗어나되, 흐트러지지 말고 나가 싸우라.

P313 영웅은 생성된 것의 투사가 아니라, 생성되는 것의 투사다. 왜냐하면 그는 현재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는 것이다> 그는 시간 속의 엄연한 불변성을, 존재의 영속성으로 오해하지 않는다. 변화가 영속성을 파괴할 때도, 다음 순간(혹은 <다른 사물>)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온 우주 안에서 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알라. 오직 변화하고, 새로운 형상으로 재생될 뿐뿐인 것이다.

    이로써 한 순간은 다음 순간으로 이어진다. 영원이라는 왕자가 세계라는 공주에게 입맞출 때 잠자던 공주의 저항은 끝난다.

 

4장 열쇠

 

P317 이 승리는 세계의 어머니인 여신과의 성적 결합(신성한 결혼), 창조자인 아버지에 의한 인정(아버지와의 화해), 그 자신의 신격화, 혹은 적대적인 능력이 그의 힘에 벅찰 경우에는 전리품의 가로채기(신부 훔치기, 불 훔치기)로 나타난다.

P321 성령이라는 남성적인 불에 영적으로 응감된 여성적인 물은, 모든 신화의 심상적 체계에 익히 알려져 잇는, 기독교식 변형의 물 WATER OF TRANSFORMATION이다. 이 의식은 힌두교의 링감(남근상)으로 상징되는 비의인 세계와 남성을 생성, 재생시키는 근원적인 작용으로서의 신성한 결혼의 변형이다.

P322 이 여행의 목적은 부모와 함께 영원한 자아 ETERNAL SELF, 성령 THE SPIRIT OF GOD, 그리고 은총의 모태 WOMB OF GRACE를 방문하는 데 있다. 이 상징적 행위가 끝나면 아기는 다시 육식의 양친에게로 되돌아온다.

    기독교를 향한 우리들의 입문 의식이었던 이 세례식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세례에 대한 일반의 해석은 <원죄를 씻는 의식>으로 되어 있다. 즉 재생이라는 측면보다는 정화의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부차적인 해석이다. 또 설혹 전통적인 탄생의 이미지가 기억되고 있다 해도 이 에 선행하는 결혼은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다.

 

2부 우주 발생적 순환

 

1 유출

 

P327 그들은 불합리하게 신경증적 투사라는 방법을 통해 무의식을 실제 행위에다 연관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완숙하고, 온당하고 실재적인 이해를, 엄격한 통제 아래 유아기적 원망이나 공포로 되돌려놓는 것일 뿐이다. 이 말이 비교적 단순한 민간의 신화 체계(원시적인 수렵 종족이 의지하는 신화 및 제의 체계)에도 해당된다면, 호메로스의 서사시, 단테의 <신곡>, <창세기>, 그리고 동양의 시간을 초월한 사원이 반영하고 있는 우주적 메타포는 어찌된 일인가?

P330 분화되지 않았으면서도, 도처에서 개체화된 이 존재의 <근원>에 대한 인식은, 바로 이를 인식해야 하는 기관에 의해 좌절당한다. 인간이 지닌 감각 능력의 형식과 인간이 지닌 생각의 범주는 이 권능의 현현 그 자체다.

    제의와 신화의 기능은, 유추작용을 통해 이를 볼 수 있게 하고 이를 촉진시키는 기능이다. 마음과 감각이 감지할 수 있는 형상과 관념은 초월적인 진리와 개방성을 암시하도록 제시되고 조정된다.

P331 구원은 초의식으로의 귀환과, 이에 따른 세상의 소멸에 있다. 이것은 우주 발생적 순호나, 세계 현현의 신화적 이미지, 그리고 비 현현 상태로의 회귀를 나타내는 중요한 테마 및 공식이다. 마찬가지로 개인의 탄생, , 죽음은 무의식으로의 하강 및 회귀로 볼 수 있다. 영웅은, 살아있을 동안에, 창조 과정 중에는 지각되지 않는 초의식이 요구를 알고 이를 대리하는 자다.

P332 영웅의 모험은, 그의 삶에서 깨달음을 얻은 순간을 나타낸다. 이 순간은 그가 살아 있을 동안에, 우리의 살아 있는 죽음의 어두운 벽 너머의 비의 길을 발견하고, 이 길을 열었다는 의미에서 참으로 중요한 순간이다.

    물론 현대의 종교학도들은 이러한 상징을, 다른 인간의 무지의 소치로 볼 수 도 있고,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의 징후, 즉 형이상학에서 심리학에 , 혹은 심리학에서 형이상학에 이르는 축도로 볼 수 있다.

 

2 우주의 순환

 

P333 개인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이, 의식의 어둠으로부터 깨어 있는 시간대로 흘러나오는 생명력의 질서 정연한 흐름에 달려 있듯이, 신화에서도 우주질서의 연속성은 근원으로부터의 통제된 힘의 흐름이 있어야 가능하다. 신이란, 이 흐름을 통제하는 법칙의 상징적 구현체다.

이 너무나 짧기 때문에 우주 발생적 시간의 회전이 영원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P336  하강 기간의 다섯 번째 바퀴살에 해당하는 우리 시대는 기원전 522년에 시작되어 2 1천년 간 계속된다. 이 시기에는 쟈이나 구세주가 태어나지 않고 쟈이나의 영원한 종교는 점차 사라진다.

      가장 오래 사는 인간의 수명도 125년을 넘지 못한다. 인간의 갈비뼈는 고작해야 60. 이 시대의 인간은 자기 중심적이고, 공정하지 못하며, 난폭하고, 탐욕스럽고, 자만심이 강하며, 욕심이 많다.

      하강 기간의 제6기에 이르먼 인간과 세계의 상태는 한층더 악화된다. 오래 살아야 겨우 20, 키가 큰 사람도 겨우 한 완척( 42-50센티)을 넘지 못하며 갈비뼈는 겨우 8개인 약골이다. 낮엔 뜨겁고, 밤엔 추우며, 질병이 창궐하고, 자비의 손길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P338 첫 번째 단계에서 우리는 삶에 관한 교훈적인 체험과 만나고, 두 번째 단계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소화되어 꿈을 꾸는 당사자의 내적인 힘에 동화되며, 세 번째 단계에서는, 내부적 통제자가 들어앉은 방 안, 모든 것의 근원이지 끝인 상태, <마음속에 있는 공간>안 에서 모든 것을 즐기고 의식할 수 있게 된다.

P339 살아 있는 존재의 일상적 실제 체험이나 살아 있는 우주의 고아대한 양상은 같은 것이다. 잠의 심연 속에서는 에너지가 재충전되지만 일을 하다 보면 이 에너지는 고갈된다. 우주의 생명도 고갈되면 재생되어야 한다.

 

3 허공에서 ㅡ 공간

 

P342 모든 신화 체계의 기본 원리는, 끝과 시작이 함께 한다는 바로 이 원리다. 창조 신화는, 모든 피조물은 그들의 모태가 된 불멸의 존재와 닿아 있음을 상기시키는 파멸 의식과 함께 고루 퍼져 있다. 모든 피조물은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으나 필경은 극점에 이르러 파멸하고 그리고 회귀한다.

 

4 공간의 내부에서 ㅡ 생명

 

P353 공간은 넓게 펼쳐진 것이 아닌, 오목한 형상으로 끝이 없다. ‘존재하는 것존재하지 않는한 위로 떠 있는 껍질이다.

      현대의 물리학자가 1928년에 그가 본 세계를 그리는 이 간략한 표현은 신화 체계의 우주적 알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이러한 신화 체계에 따르면, 우주에 있어서는 개체이든 창조적인 어버이든 그 영속적인 근본은 하나이며 따라서 동일하다. 그래서 이 신화에서는 조물주를 자아라고 부른 것이다. 동양 신비주의자는 자기 내부로 명상해 들어감으로써, 원초적인 양성 상태인 이 심오하고 영속적인 존재를 만난다.

 

5 하나에서 여럿으로

 

P366 이 장미는 십자가에 의해 인류에게 피어나는 장미다. 중심적인 원인의 평화에서 말초적 결과의 소용돌이를 향한 급전직하의 예는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이브가 타락하는 대목에 잘 나타나 있다.

 

6 창조의 민화

 

P368 세계의 정돈, 인간의 창조, 운명의 결정은 모든 원시 창조자 이야기의 전형적인 주제들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는지의 여부는 지금 알기 어렵다. 신화 체계의 양식은, 노인이 어떠어떠한 일을 했다는 식으로 극명하게 말해 버릴 수는 없다. 기원 설화라는 범주 아래 모인 많은 이야기들은 창세기보다 더 인기 있는 동화들이다.

P373 너에겐 털이 없구나. 이 영혼이 없는 인간을 넘겨주면, 내 너에게 황금빛 털을 주겠다.

     이 제안은 개를 기쁘게 했다. 그래서 개는 자기가 지키던 인간을 이 유혹자에게 넘겨주었다.

     민간 신화들은 초자연적적 발산물이 공간적 형식을 취해 돌입해 들어오는 순간에만 창조 설화를 흡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신화들은 인간의 상황을 평가한다는 본직적인 점에 있어서 위대한 신화들과 차이가 없다.   

 2 처녀잉태

 

1 어머니 우주

 

P374  힌두 신화에서 이 세계의 어머니는, 여성적인 형상으로 등장하는데 자아가 모든 피조물을 생성시키는 것은 이 여성적 형상을 통해서다. 다소 추상적으로 이해하자면, 그녀는 세계의 경계를 이루는 틀, 즉 우주적 알의 껍질인 <공간, 시간, 그리고 인과>.

 

2 운명적 모태

 

P388 사대적 자궁에서 태어난 첫 아내, 두번째 아내는 전인간적, 초인간적이었다. 그러나 우주발생의 순환이 진행되고, 원초적인 형태에서 인류사적 형태로 성장 운동이 진행됨에 따라 우주적으로 탄생한 여왕들은 물러가고, 무대는 여인들이 차지하게 되었다.

 

3 구세주를 낳는 자궁

 

P389 인간의 이야기라는 대서사시는 목적이 서로 모순되는 분류에 휩쓸리고 말았다. 인간의 시야도 이제는 좁아져 오직 가시적이고, 손에 잡히는 존재의 표피만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P392 나는 지고의 존재 시바를 만나고자 합니다. 시바는 고독과 흔들리지 않는 집중의 신입니다. 그래서 나는 이 같은 고행으로 그 분의 심적 균형을 깨뜨리고 나를 사랑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분은 당신과 같은 인간의 마음 저쪽에 있습니다. 가난뱅이인지는 모르나 그 분은 부의 원천입니다. 무서운 분인 동시에 자비의 근원이십니다. 뱀으로 만든 옷이든 보석으로 수놓은 옷이든, 입는다면 마음대로 벗기도 할 것입니다. 비실재의 창조자인신데 근본이 어떻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시바는 내사랑이십니다.

 

4 미혼모의 민화

 

P393 처녀 잉태의 이미지는 민담이나 신화에 수두룩하게 등장한다. 한 가지 실례, <멋쟁이> 시닐라우에 관한 짤막한 통가의 민담 한 자루면 넉넉하다 이 이야기가 흥미로운 것은 그 극단적인 허구성 때문이 아니고, 전형적인 영웅의 삶의 주요 모티프를 무의식적인 해학으로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3장 영웅의 변모

 

1 최초의 영웅과 인간

 

P396 이제 우리는 두 단계를 거쳐왔다. 즉 첫째는, 비실재적 실재의 직접적인 유출에서 신화적 시대의 유동적이나 시간을 초월한 존재에 이르는 단계, 둘째는, 이 실재적 실재에서 인류 역사의 여역에  이르는 단계다.

P397 영웅은 점차 우화적인 성격을 일탈하다가 다양한 지방적 전승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마침내 전설은, 기록되는 시대라는 빛의 세례를 받게 된다.  

      중국 편년사는 땅이 굳고, 사람들이 강 유역에 모여 살 때, 천제 푸시가 그들을 다스렸다고 기록한다. 그는 백성에게 그물로 고기를 잡는 법, 사냥하는 법, 가축을 치는 법을 가르쳤고, 백성을 각 부족별로 나누었으며 결혼 제도를 확립했다.

P398  그는 용의 신통력을 통해 잉태되었다. 기절 초풍한 어머니가 갓난아이를 산에다 버렸으나, 산짐승들이 거두어 보호하고 젖을 먹이는 바람에 다시 데려왔다고 한다. 센눙은 하루 만에 70가지의 독초와 그 해독약을 발견했다. 그는 또 풀을 자기 배에다 대어봄으로써 그 풀이 독초인지 익초인지 알았다. 여기에서 그는, 오늘날까지도 사용되는 약전을 만들었다.

      황제가 특별한 세계 창조, 세계 수호의 권능을 가지고 있던 과거를 말하고 있다. 이들의 권능은, 정상적인 인간의 육체가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훨씬 앞질렀다. 영웅적인 업적이나, 인류 문화의 기초 작업은 다 이런 시대에 이루어졌다.

P399 긴 꿈에서 그는 백성을 가르치는 능력을 얻어 깨어났다. 그는 백성들에게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자연의 힘을 통제하는 것을 가르쳤다. 이 신인은 백 년 동안 중국을 다스렸는데 이 동안 백성들은 황금 시대를 누렸다. 황제는 현신을 등용, 이 들의 도움을 받아 달력을 만들었고, 산술 계산법을 제정하였으며, 나무와 쇠그릇 및 질그릇 만드는 법, 배와 수레를 건조하는 법, 화폐 사용법, 대나무 악기 만드는 방법을 가르쳤다.

 

2 인간적인 영웅의 어린 시절

 

P400 전설을 만든 사람들에겐 탄생의 순간, 심지어는 잉태의 순간에 영웅에게 초자연적인 능력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웅의 생애는, 그의 모험을 절정으로 하는 엄청난 장관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관점은, 영웅이란 성취되는 것이 아니고, 운명지워진다는 관점과 일치한다. 이러한 관점은, 영웅의 전기와 그 고유한 성격과의 관계에 문제를 제기한다.

P401 1 <영웅의 모험>에서, 우리는 심리학적이라고 해도 좋을 첫 번째 관점에서 그의 구원적인 행적을 검토해 보았다. 이 두 번쨰 관점에서 영웅의 행적은, 형이상학적 비의의 상징이 된다. 말하자면 이 대목에서 영웅 자신의 행적이 재발견되고 재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영웅의 불가사의한 어린 시절을 다루어 보려고 한다.

P406 테라가 아브라함의 어머니와 짝을 지은 것은 이 즈음의 일이었다. 아브라함 어머니는 아이를 가졌다. 출산 때가 임박해지자 테라는 황급히 성읍을 떠나, 계곡만 찾아다니며 광야를 방랑하다 이윽고 동굴 하나를 발견했다. 테라는 이 동굴로 들어간 이튿날 진통을 시작, 아들을 낳았다. 동굴 안은, 아기의 몸에서 나오는 날빛 같은 광채로 가득했고 어머니는 이를 크게 기쁘게 여겼다. 테라가 낳은 아들이 바로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이다.

      테라는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아기를 싸 동굴에다 버리면서 이렇게 빌었다. 주님께서 너를 지켜주시기를. 주님께서 너를 잊지도 버리지도 않으시기를아무도 돌보는 이 없이 동굴에 버려지자 아브라함은 을기 시작했다. 하느님은 가브리엘 보내시어 그를 양육케 하시니, 천사는 아브라함의 오른손 손가락에서 젖이 솟아나게 했다. 아브라함이 손가락에서 나오는 젖을 빨며 열흘을 보냈다.

P410 폴리네시아의 마우이는, 어머니에게 요리할 시간을 주느라고 태양을 꾀어 그 운행을 늦추었다. 앞에서 보았듯이 아브라함은, 별과 달과 태양을 주관하는 하느님이라는 존재의 실재를 깨닫기에 이르렇다. 예수는, 논쟁에서 이른바 지혜로운 자들을 당황하게 했다. 어린 시절 부처는 어느 날 나무 그늘에 놓여지게 되었는데, 유모는 나무 그림자가 오후 내내 움직이지 않고, 아기는 요가적 무아지경에 빠져 있는 걸 발견하고 기겁을 했다.

P413 유아기 이야기는 영웅의 귀환 혹은 그의 정체가 드러남으로 그 결론에 이른다. 즉 오랫동안 묻혀 지내던 영웅의 암흑기가 끝나고 그의 진정한 성격이 노출되는 것이다. 여기에도 상당한 위기가 따른다. 영웅의 권능이, 인간 사회에서 소외, 축출을 야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전의 양상은 토막나거나 사람 들 기억에서 해소되어 버리고, 재난이 몰려온다. 그러나 재난이 지나가면 새로운 권능의 창조적 진가가 드러나고 세계는 다시 영광의 새 형상을 얻는다.

P415 쿠훌린은 무장한 첫날 자기의 파괴적 본성을 완벽하게 전개하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엔 정색을 하고 그의 행동을 가로막는 통제자도 없었고, 힌두의 크리슈나의 행동에서 우리가 느낀 익살기도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 상황은, 쿠훌린의 엄청난 권능이 그 자신에게나 주위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드러나는 상황이었다. 이 권능은 그의 존재의 심연에서 분출하여, 즉흥적으로,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휘둘러진 것이었다.

 

3 전사로서의 영웅

 

P419 영웅이 탄생하는 곳, 혹은 영웅이 도피 또는 추방당했다가 보통 인간들 사이에서 성인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떠나오는, 머나먼 땅은 세계의 중심, 혹은 세계의 배꼽이다. 물결이 물밑의 바닥에서 번져나오듯, 우주의 형상도 이 근원에서 둥글게 퍼져나간다.

P420 저의 나무, 제 거처의 어머니신, 고귀한 귀부인이시여, 산 것은 모두 짝으로 있어 새끼를 치는데 저만은 혼잡니다. 이제 길을 떠나 아내될 만한 동류를 찾고자 합니다. 동류들과 겨루어 제 힘이 어느 정도인지 그것도 알아보고 싶습니다. 그들과 사귀어 그들 식으로 살아보고 싶기도 합니다. 원컨대 저를 축복하소서, 저의 기도를 가납하소서.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끓고 아룁니다.

P422  폭군은 자만한다. 그리고 자만은 바로 폭군이 파멸하는 씨앗이다. 폭군은, 자기 힘을 자기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자만한다. 따라서 그는 그림자를 본질로 이인하는 광대역을 맡고 있는 셈이다. 신화의 초점은 발전하는 단계에 모인다. 변모, 유동성, 일정하지 않은 무게는, 살아 있는 신의 특징이다. 한 시대의 위대한 형상은 부서지고, 토막나고, 이윽고 흩어지기 위해 존재한다. 요컨대 도깨비-폭군은 불길한 사상의 옹호자이며, 영웅은 창조적인 삶의 옹호자다.

P427 고대의 전사인 왕은 괴물의 퇴치를 자기 임무로 생각했다. 용과 대적한다는 빛나는 영웅의 신조는, 모든 군사 행동에 대한 자기 합리화의 한 방편이 되어주었다. 이 때문에, 고대 수메르의 수많은 도시를 파괴했고, 백성으로 하여금 그 도시의 문화를 물려받게 했던 아가데의 사르곤 왕의 다음과 같은 설형문자 점토판은  그의 업적을 기리는 수많은 기념비적 서판의 하나였다.

 

4 애인으로서의 영웅

 

P431 눈에 보이는 표면적인 것에 대한 감상에 현혹되지 않고, 과감하게 자기 보성의 부름에 응답할 수 있는 자 (니체의 말을 빌리면, <스스로 구르는 바퀴>인 사람) 앞으로는 어려움이 비켜나고 뜻밖의 탄탄대로가 나타나는 법이다.

 

5 황제로서, 폭군으로서의 영웅

 

P432  그러나 최고의 영웅이란 우주 발생적 순환의 원동력을 추진시키는 영웅이 아니라, 눈을 다시 뜨고서 오고 가며 기쁨과 고뇌가 교차되는 세계의 파노라마를 통해 하나의 실재가 다시 드러나게 된다는 것을 깨치는 영웅이다. 이러한 영웅이 되려면 보다 깊은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행동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심장한 개념 작용의 결과로 나타난다. 첫 번째 영웅의 상징이 명검이라면 두 번째 영웅의 상징은, 권위의 홀장, 혹은 율법서다. 첫 번째 영웅의 특징적인 모험이 신부(신부는 곧 삶이다)를 얻는 것이라면, 두 번째 영웅의 특징적 모험은 아버지를 찾으러 떠나는 것이다. 이 아버지는 곧 보이지 않는, 미지의 존재다.

P434 영웅 모험의 목표가 미지의 아버지를 찾는 것일 때, 여기에 등장하는 기본적인 상징 체계는, 시험 및 정체 고백의 상징 체계다.

 

6 구세주로서의 영웅

 

P437 아버지의 집에서는 두 단계의 이니시에이션이 구분된다. 첫 번째 단계에서 아들은 사자가 되어 귀환하지만, 두 번째 단계에서는 <나와 아버지는 결국 하나>라는 통찰과 함께 귀환한다. 이 두 번째의 보다 높은 자각에 이른 영운은 구세주, 한 차원 높은 의미에서의 이른바 지고한 존재의 화신이다.  

P438 광대무변한 무대에서 신의 화신은 영웅의 생애를 실천한다. 다시 말해서 영웅의 과업을 수행하고 괴물을 퇴치하는 것이다. 영웅의 행위가 위대한 것은, 사람들이 상상 속에서나 할 수 있으리라고 헤아리던 일을 현실적으로 바로 눈앞에서 해치우는 데 있다.

P440 모두들 슬퍼하지 말아요. 죽지 않고 영생하는 인간은 있을 수가 없어요. 자기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부터가 틀린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은 존재하지 않아요. 존재하는 것은, 오직 생과 사의 끝없는 순환일 뿐입니다.

      우주 발생 주기라는 관점에서 보면, 정당한 판단과 오류의 규칙 바른 갈마듦은 시간적인 사고 방식의 특징이다 두주의 역사에서도 그렇고 국가의 역사에서도 그렇다. 심령에 의한 조형과 무로의 소멸, 젊음과 늙음, 탄생과 죽음, 형상을 창조하는 생명력과 타성적인 죽음의 중압은 영원히 갈마드는 것이다. 생명이 태동하고 이어 형상이 빚어지면, 쇠퇴가 따르고 이윽고 운명에 농락당한 잔해만 남는 것이다. 현명한 황제가 통치하는 황금기는 삶의 순간순간의 충동에 따라, 폭군이 지배하는 황무지 시대가 되게 마련이다.

P441 영웅이 변화를 가져오듯이, 무섭고 잔인한 폭군은 한 가지 편견에 고착된 인간을 표상한다. 시간의 순간순간이 이전의 순간순간의 족쇄에서 해방되듯이, 이 괴룡과 압제자는 그 전세대, 즉 구세주를 맞던 그 이전 세대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영웅의 임무는, 아버지의 부정적인 측면을 살해하고, 우주의 자양이 될 생명의 에너지를 그 굴레로부터 새방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과업은 아버지의 의지에 따라서도 성취될 수 있고, 그 의지를 거스르고도 성취될 수 있다.

      그가 거기에 있는 한 그는 하나지만, 여기 자식들 안에 있을 때는 여럿이다.

 P442 어제의 영웅은, 오늘 <스스로>를 십자가에 달지 않으면 내일의 폭군이 된다.

 

7 성자로서의 영웅

 

P443 성자, 고행자, 출가자로서의 영웅이다.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를 보고, 엄격하게 자아를 통제하고, 소리와 빛과 맛 같은 색에 집착하지 않고, 애증을 버리고, 고독 안에서 살고, 소식하고, 말과 몸과 마음을 삼가고, 명상과 정신 집중에 전심하고,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데 힘쓰고, 이기심과 권세, 자만심과 색욕, 분노와 편견을 떨치고, 마음 안에서 정일을 얻고, ‘자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사람, 이런 사람은 능히 불멸의 존재에 값하는 사람이라 일러 무방하다.

 

8 영웅의 죽음

 

P445 영웅은 마땅히 무덤과 화해할 수 있어야 한다.

P448  아브라함의 종들은, 무시무시한 죽음의 모습을 보고 모두 죽었지만, 아브라함은 주님께 기도드려 그들을 모두 되살렸다. 죽음의 모습이 아브라함의 영혼을 육체로부터 떠나게 할 수 없음을 아신 하느님은, 잠잘 동안 아브라함의 영혼을 거두셨고, 천사장 미카엘은 그 영혼을 천국으로 가지고 올라갔다.

 

4장 소멸

 

1 소우주의 끝

 

P458 놀랄 만한 권능을 가진 막강한 영웅(손가락으로 고바르단 산을 들어올릴 수 있고, 자기 몸을 우주의 엄청난 영광으로 채울 수도 있는)은 바로 우리들 개개인이다. 거울에 비추어볼 수 있는 육체 자체로서가 아니라, 우리들에 내재하는 왕으로서다. 크리슈나는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모든 피조물의 가슴 안에 있는 실재다. 나는 모든 존재의 시작이며, 중간이며, 끝이다.

P462 단테의 <신곡>은 이 단계들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연옥편>은 육신의 욕망과 행위에 얽매인 영혼의 참담함을, <정화편>, 육신의 경험이 영혼의 경험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천국편>은 정신적 자각의 단계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P467 <사자의 서>는 신의 찬양과 함께 결론 부분에 이르러, 다음 장과 더불어 끝난다. <레의 가까이서 사는 장>, <인간을 이승에 있는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 장>, <영혼을 완전하게 하는 장>, <레의 거대한 태양의 배를 타고 향해하는 장>이 그것이다.

 

2 대우주의 끝

 

P469 신들 중에서도 으뜸가는 신인 오딘이 자신과 자신의 신전이 어떻게 될 것이냐고 묻자 세계의 어머니, 운명적인 예언의 화신인 <현명한 여성>은 이렇게 말한다.

     

형제가 서로 싸워 서로를 쓰러뜨리고, 자매의 자식들이 집안을 더럽힌다.

어려워라 매음굴이 되는 이 세상.

도끼 시대, 칼의 시대, 방패가 부서지고 바람시대, 늑대 시대, 세상이 무너진다.

인간은 하나도 살아남을 길이 없다.

P471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그리고 주님께서 오실 때와 세상에 끝날 때에 어떤 징조가 나타나겠습니까? 저희에게 알려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아무에게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장차 많은 사람이 내 이름을 내세우며 나타나서, 내가 그리스도다, 하고 떠들어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속일 것이다. 또 여러 번 난리가 일어나고, 전쟁 소문도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당황하지 말아라. 그런 일이 꼭 일어나고 말 터이지만 그것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한 민족이 일어나 딴 민족을 치고, 한나라가 일어나 딴 나라를 칠 것이며, 또 곳곳에서 기근과 지진이 일어날 터인데, 이런 일들은 다만 고통의 시작일 뿐이다.

P473 그런 재난의 기간이 지나면 곧 해가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잃을 것이며,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모든 천체가 흔들릴 것이다. 그러면 하늘에는 사람의 아들의 표징이 나타날 것이고, 땅에서는 모든 민족이 가슴을 치며 울부짓을 것이다. 그때에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이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며 영광에 싸여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은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어 그가 뽑은 사람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불러모을 것이다.

      ->대 우주의 소멸은 성경의 사 복음서의 예수님의 말씀으로 단원의 막을 내린다.

        신화속의 한 부분처럼 우주의 종말이 소개 되었지만, 소멸의 마지막 장면은 너무 생생한

울림을 주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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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4 15:32:52 *.114.49.161

웨버님은 영웅의 모험보다 우주발생적 순환이 더 많이 와 닿으셨나 봅니다. 저는 2번 읽을 동안 그 부분은 모두 술렁술렁 읽었습니다. 막판이어서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고 성실히 못했으니 할 말은 없고요. 독실한 크리스찬인 분들이 성령으로만 거듭남이 가능한 건 아니라는 말을 깊이 생각해보시는 모습이 인상 깊습니다. 3번 읽기에서는 어떤 사유를 이어나가실 지 궁금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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