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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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정체성은 부분적으로는 타고나고 부분적으로는 초창기 경험에 의해 형성된다. 하지만 정체성이 완성되는 것은 직접 부딪혀 많은 가능성들을 탐허해 본 이후다.
지금 생각해보면 삶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진정 어떤 사람인지, 진정 어떤 일에 재능이 있는 지를 끝내 모른 채 죽는다면 참으로 서글픈 일이다. 삶이란 정체성이라는 사다리를 오르는 과정이요, 우리는 사다리를 오르면서 서서히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고 발견해 간다.
- 찰스핸디 < 포트폴리오 인생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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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자신을 소개해야 할 때 어느 정도 패턴이 존재합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대개 이름과 나이, 직업 혹은 소속된 회사와 직급 정도를 소개하곤 하지요.
그 패턴대로 저를 묘사해 봅니다.
신재동, 만 42세, 웹프로그래머.
이제는 저를 프로그래머라고 소개할 때 어색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한동안은 어색했다는 얘기이지요.
한동안 스스로를 프로그래머라 부를 때 '내가 과연 프로그래머인가'하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 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어색함이라는 감정의 변곡점은 '밥벌이'에 있었던 듯 합니다.
쉽게 말해 예전에는 프로그래머로써 밥벌이를 제대로 못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밥벌이를 제대로 하는 지 여부를 정하는 객관적인 기준은 없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를 언급했지만, '밥벌이 행위'가 자신의 정체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관점에서만 저 자신을 묘사하려 하니 '경제적 무능력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삶 자체에 의미가 없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자살율이 괜히 늘어나는게 아니더군요.
(처음 의도와 다르게 글이 심각해지네요)
어쨌든 전 별로 죽고 싶지는 않았구요. 그래서 애써서 살아야 할 명분을 찾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이왕 죽을 거 하고 싶은 건 해보고 죽자 이런 심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시작하게 된 것 중 하나가 '사진'입니다.
아무에게도 저를 '사진가'라고 소개하지 않습니다.
'아마추어 사진가' 이런 식으로도 소개해 본 적 없습니다.
아마 그것도 은연 중 밥벌이가 기준이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사진 찍어 밥벌이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제겐 밥벌이 못지 않게 중요한 활동이 되었습니다.
어릴 적, 저는 글씨 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유난히 못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예능에는 재능이 없는 아이라는 꼬리표가 붙었지요.
그리고 저 또한 그 꼬리표를 오랜 시간 맹신했습니다.
만익 사진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 꼬리표를 맹신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사진가가 아니지만 사진을 찍습니다.
제게 사진 찍기는..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