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id: 문윤정
  • 조회 수 4822
  • 댓글 수 1
  • 추천 수 0
2012년 5월 7일 02시 38분 등록
 

그리스 비극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테스 지음, 곽복록/ 조우현 옮김, 동서문화사


아이스킬로스 

1. 저자에 대하여

아이스킬로스는 기원전 525년 무렵 태어났다. 아테네에서 서북으로 20킬로미터쯤 떨어진 데메테르 여신의 유명한 영지(靈地) 엘레시우스가 고향이다. 엘레우시스는 데메테르 여신을 섬기는 신비 제의로도 유명한 곳이다. 아버지는 에우포리온에서 오래된 신직(神職) 가문에 속해 있었다.

아이스킬로스는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테스와 함께 그리스 3대 비극 시인으로 꼽히고 있다.

그는 20대 중반인 BC 499년에 처음 비극 경연에 참석한 이래, 모두 합쳐 13회나 우승했다. 첫 우승은 40대였던 BC 484년에 차지했고 마지막 우승은 60대였던 BC 458년에 ‘오레스테스 3부작’으로 차지했다. 50대였던 BC 468년에는 젊은 신인 극작가 소포클레스에게 아쉽게도 우승을 내주기도 했다. 

아이스킬로스가 생전에 발표한 작품은 90여 편에 달하지만, 오늘날 전해지는 작품은 겨우 7편뿐이다.  ‘오레스테스 3부작’은 아이스킬로스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동시에, 3부작의 형태로 지어진 그리스 비극 중에서는 유일하게 거의 완전한 형태로 전해지는 작품이다.

   아이스킬로스의 생애에  있어 가장 큰 사건은 아마 기원전 490년 무렵 제 1차 페르시아 전쟁에 출정하여 마라톤 평원에서 싸운 일일것이다. 그는 이것을 평생토록 자랑으로 삼앙ㅅ으며, 자찬(自讚) 묘비명에도 그것을 서술하고 있다.

기원전 470년 무렵 지중해 서쪽의 패구너을 잡고 대도시 시라쿠사의 참주로서 유명한 히에론의 초청을 받아 시칠리아(이 지방에는 그리스인이 많이 옮겨와 번영한 도시도 많았다)로 건너가 자작의 비극 <페르시아인>을 상연했다. 그는 또한 히에론이 건설한 아이토나 시를 위해 아이토나 조곡 4편을 제작했다. 여기에는 그리 오래 머무르지 않았으며, 기원전 467년에는 아테네에 있으면서 <테베로 가는 일곱 장군>을 포함한 3부작을 상연했고, 기원전 458년에는 <오레스테리아>극을 상연하여 우승했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스킬로스는 다시 시칠리아 섬으로 건너가 마침내 456년 그 섬의 젤라 시에서 세상을 떠났다.

아이스킬로스의 비극들을 보면 매우 분방하고 웅대한 상상력을 지녔으며, 기개와 도량이 고매한 시인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도취한 가운데 정신없이 신의 힘을 빌려 비극을 제작했다고 전해지는 것도 옳은 말이다. 신인(神人) 프로메테우스의 하늘과 당에 대한 호소, 복수의 여신들의 광무(狂舞)또는 다레이오스 왕 망령의 출현 등은 그가 아니고는 생가해낼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 한편으로는 시구가 덜 다듬어졋다든가 우아하지 않다든가 거칠다든가, 또는 웅대하고 장중하지만 너무 과장되고 조야(粗野)하며 정돈되어 있지 않다는 등의 평을 예부터 받아왔다.

사실 기원전 5세기 무렵의 그리스인, 이테네시민들은 이윽고 아이스킬로스의 장중함과 엄숙함을 멀리하기 시작하여 소포클레스의 균형이나 에우리피데스의 화려한 격정의 전개로 치우쳤다. 그러나 아이스킬로스에게는 아르카이크 조각의 걸작과도 비교할 수 있는 아취(雅趣)로 있는 힘찬 아름다움, 도리스 원기둥의 신전과도 같은 장대함이 엿보인다. 참다운 시인, 위대한 사상가이며 예언자, 끝없이 솟아나는 공상과 구상력ㄱ의 소유자인 아이스킬로스는 힘차고 특히 남성적인 리듬과 가락에 몹시 뛰어나 옛날과 오늘날을 통틀어 그 예를 찾아보기 드문 그리스적인 힘과 정의의 문학을 남겼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품설명

오레스테이아 3부작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기원전 458년 봄에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대극장에서 상연되었다. 지금가지 남아있는 아이스킬로스의 희곡 가운데 마지막 작품으로, 그가 세상을 떠나기 2년 전의 것이다. 이 극이 그리스 비극 가운데에서도 특히 중시되고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시인의 대표작이며, 또한 그리스 비극의 전형적인 3부작 양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3부작의 구성에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단순히 한 제재의 3면을 나타낸다든가 세 가지 삽화를 다루는 게 아니라 가장 유기적인 구성, 바로 A의 결과가 필연적으로 B가 되고, C는 필연적으로 B의 전개가 된ㄴ 내용을 가지고 있어 하나의 극을 3막으로 이루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이것이 3막이 아니고 독립된 3곡(曲)임은 하나하나의 곡이 지니는 독립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스 비극은 관객이 그 줄거리를 대체로 알고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다.

아이스킬로스가 d 3부작에서 나타내려 한 것은 단순히 이러한 사회극이나 윤리극이나 사상극이 아니었다. 그것은 깊은 종교 적인 바탕에 의해 도 정의에 대한 사랑으로 침투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들 이상으로 훨씬 강하게 3곡 다 저마다의 취향을 가지고 장대한 구상 아래 깊은 인생에 대한 통찰과 힘찬 초자연적인 인물의 움직임을 화려한 환상의 비상(飛翔)과 늠름한 문구의 구사로 그리고 있다. 이 오레스테스 극을 가리켜, ‘인간의 심상이 만들어 낸 최대의 제작’이라고 하는 시인이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저자라면

  저자는 <오레스테이아> 3부작을 구상하면서 어떻게 극을 끌어갈 것인지 수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대본을 쓸 때  어떻게 시작해서 어떻게 결말을 낼 것인지에 대해 가장 많이 고심했을 것이다. 정부와 짜고 전장에서 막 돌아온 아버지를 살해한 어머니의 원수를 갚는 오레스테스의 행위에 대해 아폴론의 힘을 빌어 정당성을 부여했다.


코러스 : 어머니의 살해범을 모든 집에서 쫓아내는 것이 임무이지요.

아폴론 : 그렇다면 남편을 죽인 아내는 어떻게 하겠느냐?

코러스 : 그 죄는 피를 나눈 가까운 사람을 죽인 것과 다를 것입니다.

아폴론 : 헤라와 제우스의 굳은 맹세마저 업신여기고 사랑의 신마저 멸시하여 내몰자는 심보로구나. 그 신에 의하여 인간들 사이의 사랑도 생기는 것인데, 혼인이야말로 부부에게는 맹세로 두 사람의 운명을 규정하는 것, 그러므로 정의의 이름 아래 보호되어야 하는 것이다. (160페이지)


극 속에서 아폴론은 결혼서약을 매우 중요시하여 서약을 파괴한 죄를 강하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관객들을 납득시키기에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여 오레스테스를 법정에 세워서 재판관과 아테네의 심판에 맡긴다.


그리고 가장 나쁜 악신들을 내세워 오레스테스를 비난하고 있다. 다음은 코러스와 오레스테스의 대화이다.


오레스테스 : 남편을 죽이고 내 아버지를 살해하였소.

코로스 : 하지만 너는 살아있어. 네 어머니의 살인죄는 이미 없어진 거다.

오레스테스 : 나도 어머니의 피를 나누고 있단 말인가요?

코러스 : 너를 품에 안고 젖을 먹이며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는데, 이 파렴치한 살인자 좀봐. 가장 소중한 어머니의 피를 부인하겠다는 말인가? (174페이지)


저자는 왜 악녀들을 내세워 오레스테스를 비난하게 만들었을까? 관객들로부터 무엇을 끌어내기 위해서일까? 오레스테스의 죄악을 약화시키기 위한 계산에 의한 것이고, 더 큰 반전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오레스테스를 법정에 세워, 인간과 신의 심판에 의해 선과 악을 저울질 하는 것 또한 반전을 노리기 위한 방법이다.

  재판의 결과는 오레스테스의 행위는 정당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재판의 결과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어머니를 살해한 오레스테스는 스스로가 죄책감에 빠져 미쳐버렸는데. 나는 이 극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오레스테이아> 3부작을 쓰면서 신들의 권능 위에 인간이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윤리와 도덕성이 앞선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극 중간 중간에 도덕교과서적인 대사를 많이 집어넣었다. 그 당시 사회가  연극의 역할 중 계몽적인 성격까지도 요구한 것은 아닐까 싶다. 

  저자는 신들을 앞세워 극을 이끌어가고 있지만, 자신의 철학을 교묘하게 숨기고서 결말을 끌어내었다. <오레스테이아>는 단일구조인 것 같지만, 결말을 내는데 있어서는 이중의 구조를 가지고서 말하고 있다. 나는 이 점이 마음에 든다.

  소설이나 영화를 비롯하여 결말을 독자 혹은 관객에게 맡겨놓는 것, 생각의 여지를 주는 것이 훌륭한 작품이라 한다. 나도 이러한 작가로 거듭나고 싶다.


소포클레스


저자에 대하여

 소포클레스는 기원전 496년에 아테네 교외의 콜로노스 히피오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부유한 무기 상인이었으므로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아름다운 용모와 재능을 타고났고, 집안이 기사(騎士)신분에 속하였으므로 작가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 명예로운 일생을 보냈다. 음악을 란푸로스에게, 비극을 아이스킬로스에게서 각각 사사하였다. BC 480년 살라미스 해전의 승리 축제 때는 하프를 연주하면서 무용단을 선도하였다. 정치가로서도 탁월한 식견을 지녔으며, BC 443∼BC 442년 델로스 동맹 재무장관에 임명되어 페리클레스와 더불어 10인의 지휘관직에 선출되었다. 또한 BC 413∼BC 411년의 아테네 내정의 동요기에는 국가의 최고위원 10인의 한 사람으로 선출되어 국가에 공헌하였다. 이같이 영예스러운 지위는 이온의 회상록 가운데에서 소포클레스가 직접 말하고 있듯, 그가 군사나 재정에 유능했기 때문이 아니라 시인 및 문학로서 그에 대한 아테네시민들의 존경을 나타낸 것이라고 하겠다.

소포클레스는 또한 의신(醫神)의 신관으로서 아스클레오피스 신을 아테네에 받아들여 그 신전이 완성될 때까지 자기 집을 신의 거처로 내놓았다. (일설에는 신앙심도 두터워 아스클레오피스의 신전을 자기 저택 내에 세웠다고도 전해진다.) 죽은 뒤 덱시온(영접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는 이름으로 존경받았다고 한다. 90세의 늙은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창작력은 조금도 쇠퇴하지 않았으니 걸작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그의 유작이다.

  BC 468년, 28세 때 비극 경연대회에 응모하여 스승인 아이스킬로스를 꺾고 첫 우승한 이후로, 123편의 작품을 씀으로써 18회(일설에는 24회)나 우승하였다. 자기 후배인 에우리피데스가 사망하였다는 통지를 받았을 때는 배우와 합창대의 관(冠)을 벗게 하고 자기 자신도 상복으로 갈아입어, 참석자들은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외국의 초청도 거절하고 평생을 아테네에 살았는데, 이러한 애국심과 진지한 인품은 온 시민의 경애의 대상이 되었다. 그의 비극 작법은 3기로 나눌 수 있는데, 초기는 아이스킬로스풍의 장중 화려한 작풍이고, 중기는 엄밀한 기교주의이며, 후기는 원숙기로서 등장 인물의 성격과 일치하는 문체로 씌어 있다. 현존하는 7편을 연대 순으로 보면 《아이아스 Aias》 《안티고네 Antigone》 《오이디푸스왕 Oidipous Tyrannos》 《엘렉트라 Elektrai》 《트라키스의 여인 Trāchiniai》 《필로크테테스 Philoktetes》 《콜로노이의 오이디푸스 Oidipous epi Kolōnōi》인데, 《콜로노이의 오이디푸스》는 원숙기에 속하는 것이지만, 《아이아스》와 《안티고네》만은 중기의 특징을 남기고 있다.

이 밖에 사티로스극(劇) 《추적자》 외에 많은 단편이 남아 있다. 한편 배경화를 고안하기도 하고 소도구를 채용하는 등 상연 형식도 연구하였으며, 합창단을 종전의 12명에서 15명으로 늘리고, 또 배우도 종전의 2명에서 3명으로 늘렸다. 그리고 이 3명의 배우의 대화를 통하여 각자의 성격을 생생하게 부각시키고 그들의 성격이 서로 충돌하고, 보복하고, 파멸로 치닫는 과정을 복선(伏線)을 교묘하게 배치해 가면서 비극적인 긴박감으로 끌어올려 기막히게 묘사하였다.

<오이디푸스왕>은 똑같이 지은이가 냉혹할 만큼 자기 감정을 숨기고 플롯을 위해 작중 인물을 오나전한 포석으로 다룬 탓으로 아이스킬로스와 같은 인간적 따뜻함이 결여되어 있다. 지은이는 무서울만큼 깊이 파고들어 인간과 신의 상극을 추구하고 있다. 작품의 주인공은 고귀하고 성급한 자기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신은 냉혹하고 인간의 착한 마음 따위는 달걀껍질처럼 짓밟아 버린다. 여기에 무서운 비극이 생겨난다.

아이스킬로스이 3부작을 해체한 소포클레스는 비극의 구성을 더욱 긴밀히 했고 하나하나를 주옥과 같은 완전한 작품으로 만들었다. 완전한 구성력과 언어로 조성한 박력에 무서울 만큼 위력이 있다. 여기에는 냉엄하고 다다가기 어려운 엄격함이 있다. 그러나 늘그막의 작품에서는 이것을 깨뜨렸다. 우리는 소포클레스의 위대함을 이 늘그막의 작품의 아름다움을 통해 더욱 친근하게 느끼게 된다.


 저자라면 

소포클레스의 작품 중 <안티고네>의 작품도 우리들에게 큰 슬픔을 자아낸다.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모티프가 되었을 거라는 짐작을 해보는 것이 어렵지 않다. 다음은 <안티고네>중 가장 슬프고 목이 메이는 장면이다.


사자 : 무덤 속 깊은 곳에서 그 아가씨는 가는 끈으로 목을 졸라매고 숨져 있었습니다. 그 분은 그 허리를 팔로 껴안고 엎드려 새색시가 죽어 혼인도 허사가 된 일, 아버지께서 한 일과 불행한 사랑을 저주하며 비통하게 울고 계셨습니다.

왕자님은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고 한 마디 대답도 없이 십자로 된 손잡이의 칼을 빼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재빨리 피했기 때문에 칼은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불쌍한 왕자님은 흥분한 채로 그 즉시 온몸으로 칼 위에 엎어져 칼은 절반이나 옆구리를 뚫고 튀어나왔습니다. 그리고 아직 숨이 있는 동안, 그 아가씨를 억지로 껴안고 숨을 헐떡거리면서 그 아가씨의 핼쑥한 볼에 왈칵 피를 토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시체가 되어 시체 위에 겹쳐 누웠습니다. 불쌍하게도 이 세상이 아니라 하데스의 대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인간의 온갖 불행 중에서 분별없는 것보다 더 심한 불행이 없음을 사람들에게 보여 준 셈입니다. (339~340P)


그런데 등장인물 소개를 통하여 안티고네와 하이몬이 약혼자 사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을 뿐, 그들의 내밀한 사랑이야기는 극중에서 전혀 없었다. 안티고네와 하이몬이 어떻게 사랑을 만들어갔는지를 한 두 번 정도라도 언급했더라면 관객들은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해 조금은 납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사랑은 전혀 없고, 안티고네의 죽음에 대해 번민하고 고민하다 결국 같은 자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하이몬의 행동에 대해 전혀 이해할 수 없다. 하이몬의 행동이 전혀 납득이 되지 않기에 이 극적인 장면에서 관객들의 슬픔과 측은함이 증폭되지 않는다. 저자는 이러한 것을 알면서도 왜 안티고네와 하이몬의 사랑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극적인 반전을 위한 노림수였다면 실패했다고 본다.

‘나’라면 안티고네와 하이몬의 사랑이야기를 어떻게 든 극중에 넣을 것이다. 아름답고도 애절한 사랑을 넣어서, 극적인 반전을 가져오거나, 하이몬의 죽음에 대해 관객들로부터 눈물을 쏟게 만드는 것이다. 두 사람이 직접 만나는 것이 전체 극을 통해 허락이 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을 통해서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장치를 하는 것이다. 최소한 극중에서 하이몬이 안티고네를 찾아나서는 장면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이몬의 자살에 대한 개연성이 부족하여 극의 재미를 떨어뜨린다.


에우리피데스

에우리피데스는 부유한 지주 계급으로 어머니도 상당히 좋은 가문 출신이엇다고 추측된다. 그가 충분한 교육을 받은 것은 틀림없으며, 또 당시로선 드문 장서가(藏書家)였다고 한다. 기원전 480년 쯤 아테네에서  출생했다.

 므네사르코스의 아들로 3대 비극시인 중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보다 뒤에 출생하였으며, 그의 전기적 자료는 다른 동시대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빈약한 데다가 소크라테스와 같이 당시에 여러 모로 문제가 되었던 인물이어서 여러 가지 추문이 유포되어 있지만 사실 여부를 가려내기 어려운 점이 적지 않다. 에우리피데스는 같은 이름으로 극작가가 된 셋째 아들을 비롯, 아들 3형제를 두었다고 한다.

  BC 455년 극작가로서 극단(劇壇)에 데뷔하였고, 그 작품 총수는 92편이라고 전한다. 그 실적으로 말하더라도 그가 아테네 극단에서 안정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음은 충분히 짐작이 된다. 다만 생전에 겨우 네 번 밖에 1등상을 얻지 못했다는 것은 그의 새로운 사상이 보수적인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만년(BC 408?)에 아테네를 떠나 마케도니아의 아르켈라우스왕 궁정에 몸을 의탁하고 있다가 2년 후에 죽었다. 오늘날 그의 이름으로 전하는 작품의 총수는 19편인데, 그중 《레소스 Rhēsos》는 일반적으로 그의 작품이 아니라고 간주된다.

  다른 비극 작가보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이 훨씬 많이 보존된 이유는 기우너전 4세기 뒤의 압도적인 인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그 나머지 18편 중에는 유일하게 완전히 전해지는 사티로스극(劇) 《키클로프스 Kyklōps》도 포함된다. 소포클레스를 그리스 비극의 완성자로 생각하는 견지에서 본다면, 에우리피데스는 여러 면에서 정통을 벗어나 오히려 데카당스적 요소를 다분히 지닌 작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소피스트의 세례를 받은, 당시로서는 대표적인 진보적 사상가의 한 사람이며, 그 사실은 작품의 여러 곳에 나타나는 극단적인 사실성(寫實性)과 아이러니를 내포한 합리적 해석 등에서 엿볼 수 있다. 또한 프롤로그나 국면해결을 위해 막바지에서 신(神)을 등장시키는 장치 ·수법 등 극적 수법에도 여러 가지 새로운 고안이 시도되어, 그리스 비극은 그와 더불어 커다란 변모를 이루었다.

  에우리피데스는 본디 명상적인 성격의 작가로 정치나 사교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가능한 한 고독 속에 있으면서 사색이나 극작에 몰두했다고 전해진다. 그 시대의 젊은이로서 소피스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것도 당연하며 아낙사고라스나 소크라테스와 교우 관계를 유지햇던 것도 사실이리라. 자연히 모든 면에서 인습적인 것에 대한 합리주의적인 비판과 반발이 그의 작품 곳곳에 나타났고, 이것이 보수파로부터 시한 반감을 사는 결과가 되었다. 특히 희극 작가의 심한 공격을 받은 것은 소크라테스의 경우와 매우 흡사하다.

  에우리피데스는 작품의 제재를 관습대로 신화와 전설에 땄지만, 극중 인물들은 신이나 영우이라기보다 일상의 인간으로 그려져 있다. 특히 여성의 다양한 성격과 세밀한 심리분석, 묘사에 이르러서는 고대작가로서 그를 앞지를 사람이 없을 것이다.

  본디 제사적인 기원에서 시작되는 따라서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아티카의 비극 속에 너무나 강하게 인간적 요소를 넣은 에우리피데스는 어떤 면에서는 그리스 비극의 정통을 깨뜨렸다는 비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좀더 넓은 시야에서 본다면 새로운 문학조료의 위대한 선각자였으며, 그 점은 두시나의 문학에 미친 그의 절대적인 영향력에서 가장 엿볼 수 있다.

  상연 연대가 분명한 작품으로는, 《알케스티스 Alkēstis》(BC 438) 《메데이아 Mēdeia》(BC 431) 《히폴리토스 Hippolytos》(BC 428) 《트로이의 여인 Trōades》(BC 415) 《헬레네 Helenē》(BC 412)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Iphigeneia he en Taulidi》(BC 405) 《바카이 Bakchai》(BC 405) 등이고, 그 밖에 《안드로마케 Andromachē》 《헤라클레스의 후예 Hērakleidai》 《헤카베 Hekabē》 《구원을 청하는 여인들 Hiketides》 《엘렉트라 Ēlektra》 《발광한 헤라클레스 Hēraklēs mainomenos》 《타우로이의 이피게네이아 Iphigeneia en Taurois》 《이온 Ion》 《페니키아의 여인 Phoinissai》 등이 있다. 인간의 정념(情念)의 가공할 작용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은 것은 그의 두드러진 특징이며, 특히 여성심리를 묘사하는 기법에서는 고대작가들 중에 따를 사람이 없다. 생전에는 비교적 불우했던 것으로 전하지만, 사후에 그의 명성은 다른 2대가를 압도하기까지 하였으며, 후세 문학에 끼친 영향도 절대적이다.

  세상과 인정을 그리는 것을 목적으로 한 풍속극으로서의 ‘새로운 희극’은 에우리피데스의 영향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로마 희극을 통해 근세 연극에 이어진다는 건 모두 아는 사실이다.

 

 

저자라면 

<히폴리토스>는 아프로디테의 신이 주도하는 데로 이끌려 가는 느낌이 든다.  다른 극들도 신의 개입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히폴리토스>는 별 스토리 없이 아프로디테의 주도 하에 비극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당시 사람들의 인생관이 자신의 인생을 통째로 신에게 맡겨버리는 것인지는 몰라도.

비극이지만 그다지 슬픔이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극 전체를 끌고 나가는 스토리가 너무 약하다. 아프로디테의 미움을 싸서 재앙을 받게 히폴리토스, 아프로디테의 사랑의 화살을 맞은 계모 파이드라. 파이드라가 아들 히폴리토스를 좋아하게 되는 그 이유도 너무 단순하고 생략되어 있다. 아무리 신의 장난이라지만, 한 번 슬쩍 보기만 했을 뿐인데, 그렇게 혹독한 상사병에 걸리다니, 관객을 납득시킬 수 없는 부분이다. 좀더 디테일한 사건과 묘사가 필요하다.

히폴리토스를 너무 결백하고 순수하게 등장시켰기 때문에, 파이드라와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조건을 아예 배제시켜버렸다. 그래서 이극은 전체적으로 힘이 없고, 관객을 강렬하게 끌어들이는 흡입력이 떨어진다. 사랑이야기도 아니고, 나쁜 계모의 술책에 의해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게 된다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에 불과하다. 저자는 아버지 테세우스의 어리석음을 관객에게 가르쳐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중국영화 <황후花>처럼 왕비와 의붓자식과의 사랑을 리얼하게 끌고나가면서 서로가 배신하는 그런 관계를 엮어나가다가 두 사람이 죽음으로 끝나는 그런 극은 어떨까?  아프로디테와 아르테미스의 싸움 속에서 두 사람도 계속 갈등을 일으키면서 스토리가 전개되어도 괜찮을 것 같다. <히폴리토스>를 다 읽고 난 느낌은 김빠진 맥주를 마신 느낌이랄까 긴박감과 간장감이 없다.





IP *.85.249.182

프로필 이미지
id: 문윤정
2012.05.07 02:40:27 *.85.249.182

첨부파일로 올렸습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72 드림 소사이어티 - 롤프 옌센 숙인 2010.01.12 4751
471 북 No.34 - 구본형의 글로벌 경영전략, 코리아니티 file [2] 유재경 2011.12.19 4753
470 자기와 자기실현(분석심리학 탐구3) -이 부영- [1] 문요한 2005.09.06 4754
469 묵자 앨리스 2014.08.04 4762
468 자연에서 멀어진 아이들-리차드 루브 정야 2010.01.04 4764
467 #19. 쉽게 읽는 백범일지 / 김구 file 쭌영 2013.09.23 4770
466 -->[re][강의] 신영복님 4 이선이 2005.03.26 4773
465 [리뷰] <강의>_신영복, 두번째 읽기 file 양경수 2011.12.26 4786
464 [39] 이너게임- 티머시 골웨이 [1] 최코치 2009.02.01 4794
463 루스시몬스 아시는분 도와주세요~!! [2] 전성애 2005.04.06 4799
462 [북리뷰 001] 조셉 캠벨 <신화와 인생> file 김경인 2011.04.03 4799
461 생명의 그물 -프리초프 카프라- file [2] 장재용 2013.09.23 4801
460 [38] 내성적인 사람이 성공한다 - 마티 올슨 래니 file [2] 양재우 2009.01.19 4809
459 북리뷰 44 : 연금술사 - 파울로 코엘료 [4] [1] 범해 좌경숙 2010.02.20 4813
458 # 22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file [3] 샐리올리브 2012.10.02 4813
457 열정과 기질/ 하워드 가드너 file [1] 오미경 2013.07.15 4814
456 파우스트-요한 볼프강 폰 괴테/정서웅 옮김 file [8] 세린 2012.06.18 4818
455 이너게임 [2] 백산 2009.10.19 4819
454 8th Review-사기열전 두번 읽기 [9] 사샤 2011.05.23 4822
» 그리스 비극-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file [1] [1] id: 문윤정 2012.05.07 4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