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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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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7일 08시 09분 등록

그리스 비극(Greek Tragedy)

* 아이스킬로스(Aeschylos), 소포클레스(Sophocles), 에우리피데스(Euripides) 지음,

* 곽복록, 조우현 옮김, 동서문화사, 1978.06.10

 

1. ‘신의 언어를 인간의 손으로 쓰다(저자에 대하여)

 

■ 아이스킬로스 (Ασχύλος)

아이스킬로스.JPG

Aeschylos (BC 525~BC 456)  

 

뽀글뽀글한 머리와 수염, 이젤 위에서나 보이던 모습들이 무대 위에서 노래한다. 아가멤논을 읽을 때 나는 역사 속에 있는 듯 했다. 말로만 듣던 프로메테우스를 독대하고는 그 장면 장면들에 숨을 죽였고 무대 위 배우들을 진두 지휘하는 듯한 희곡은 내가 곧 관객이었다.

아이스킬로스는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비극 작가이다. 귀족이었으며 전쟁에도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에도 참전한 군인이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충실히 수행한 아테네의 시민이었다. 그 시대는 장년 남성은 모두가 전쟁에 참여해야 했던 전쟁사회였으니 그 시대에 비극 예술인 희곡을 창작했다는 것은 위대하였고 아이스킬로스는 그 희곡 작가들 중에 윗자리에 있었던 사람이니 그 역시 위대하다 할 수 있다. 90여편의 작품을 만들었고 현존하는 것으로는 7편의 작품과 다수의 단편 등이 있다고 전해진다.

그는 기원전 525년에 태어났으니 나와의 나이차이는 정확히 2,504년이다. 이렇게 보니 그와 나 사이에 2504년의 강이 떡하고 흐르고 있어 보이지만 건너지 못할 강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풍문으로라도 그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리하여 뒤진 위키피디아에서는 아이스킬로스에 대해서 주저리 주저리 말하고 있는데 그 중에 내 시선을 끄는 대목이 있다.

아이스킬로스는 기원전 499 24세의 나이로 비극 경연 대회에 처음으로 참가하나, 나이 40세가 되던 기원전 484에야 비로소 첫 승을 이룬다. 이후 그는 평생 13회 우승하였다.’

나는 그가 희곡이라는 문학 장르와 예술의 역사에 기여한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첫 비극 경연 대회 이후 처음으로 승리를 거머쥔 시기의 기간 16. 16년에 시선이 간다.

오랜 수련의 시간과 그늘의 기간을 거치면서 아이스킬로스는 그 누구보다 단단해 졌을 것이다. 그의 Great Depression에 대해서 알려진 바가 없지만 우리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캠벨이 그러했고 스피노자가 간디가 그러했다. 얼마나 많은 고뇌가 있었겠는가. 이 짓을 집어 치우리라는 마음을 12번도 더 먹었을 것이고 실제로 집어 치우기도 했을 것 아닌가. 그래서 그는 위대하다. 그 시기에 전쟁에 참가하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전술한 내용대로 더 위대하다 할 수 있겠다. 아름다운 그늘은 멋진 날개를 만든다. 아이스킬로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그 그늘의 힘으로 무대 위에서 새로운 시도를 마음껏 펼친다. 배우의 수를 1명에서 2명으로 늘렸으며, 장식 회화와 도구를 무대장치로 사용하였다. 또한 가면·가발·신 등을 창안하였고, 비극의 3부작 제도를 완성하였다.

그의 주요 공헌을 보면, 비극에서의 합창시의 형식이나 배열을 정비하여 극의 악곡적 구성과 극적 리듬의 통합에 성공했다는 점과, 운율적인 극대화의 기본적 격조를 낳았다는 점, 그리고 비극의 테마로서 제신이나 기괴한 신령에 얽힌 얘기를 즐겨 다루어, 테마에 어울리는 장대하고 화려한 연출방법을 만들어냈다는 점 등.

 

현존하는 아이스킬로스의 작품들

* 페르시아인들(Persai)

*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Hepta epi Thebas)

* 탄원하는 여인들(Hiketides)

* 결박된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desmotes): 사튀로스극

* 오레스테이아 삼부작

- 아가멤논(Agamemnon)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Choephoroi) 자비로운 여신들(Eumenides)

* 피네우스(Phineus)

* 포트니아이의 글라우코스(Glaukos Potnieus)

* 라이오스(Laios)

* 오이디푸스(Oidipus)

* 스핑크스(Sphinx): 사튀로스극

* 아이귑토스의 아들들(Aigyptioi)

* 다나오스의 딸들(Danaides)

* 아뮈모네(Amymone)

* 불을 붙이는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Pyrkaieus)

* 프로테우스(Proteus): 사튀로스극

 

아이스킬로스(Ασχύλος)

(저자에 대한 본문 설명)

 

□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 3부작은 기원적 458년 봄에 아테네의 디오니소스 대극장에서 상연되었다. 시인의 대표작이며 또한 그리스 비극의 전형적인 3부작 양식을 취하고 있다.

유기적인 구성, 바로 A의 결과가 필연적으로 B가 되고, C는 필연적으로 B의 전개가 되는 내용을 가지고 있어 하나의 극을 3막으로 이루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P. 11)

 

□ 아이스킬로스가 이 3부작에서 나타내려 한 것은 단순히 이러한 사회극이나 윤리극이나 사상극이 아니었다.

장대한 구상 아래 깊은 인생에 대한 통찰과 힘찬 초자연적인 인물의 움직임을 화려한 환상의 비상과 늠름한 문구의 구사로 그리고 있다. 이 오레스테스 극을 가리켜 인간의 심성이 만들어낸 최대의 제작(스윈번)’이라고 하는 시인이 있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p. 12)

 

□ 아이스킬로스의 생애에 있어 가장 큰 사건은 아마 기원전 490년 무렵 제1차 페르시아 전쟁에 출정하여 마라톤 평원에서 싸운 일일 것이다. (p. 13)

 

Ü 페르시아 전쟁의 서막이 되는 전쟁이다. 아테네가 뛰어난 전술로 승리하는데 아이스킬로스가 이 전쟁에 참가한 모양이다. 그러나 참전의 경험,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고 전우들이 죽어나가는 모습을 눈 앞에서 보아야 하는 그 전쟁을 치르고도 시를 써내고 희곡을 창작하는 것이 경이로울 뿐이다. 위대함은 여기에서 찾아야 할 터.

 

 

2. ‘신이 내려준 인류의 이야기(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 본문 내용, Ü : 나의 언어)

 

 

그리스 비극 극장 상연 관객

(비극이 공연되던 당시의 정황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책의 뒤편 내용을 먼저 소개한다.)

 

□ 기원전 6세기에 솔론의 개혁을 이어받고 민중의 힘을 배경으로 하여 정권을 장악한 페이시스트라토스는 그 사이에 약 십 년의 공백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기원전 560년에서 527년에 이르는 33년 동안 아테네의 독재자로서 화려한 궁정을 유지했다.

 

이때에 페이시스테라토스는 제례에 봉납되는 행사의 한가지로 비극 상연을 설정했다. 고대로부터의 전승에 의하면 이 최초의 비극 작가는 테스피스로 그때가 기원전 534년이었다고 한다. (P. 639)

 

Ü 아이킬로스가 태어나기 10년 전이며 소포클레스가 태어나기 40년 전이며 에우리피데스가 태어나기 45년 전의 일이다.

 

□ 비극이 상연된 것은 기원전 5세기 아티카 비극의 최전성기인 디오니시아 뿐만이 아니며 레나이아(레나이온에서 열리는 디오니소스 제)와 시골의 디오니시아에서도 뒤에 극의 상연이 행사의 하나가 되어 있었다. (P. 641)

 

Ü 상업적 목적은 없었으며 제례 중 하나의 순서를 차지하며 자리 매김했다.

 

□ 어두운 하늘 밑에서 무섭게 파도치던 에게 해도 봄날의 햇빛 아래 출렁대고 해샹의 항로도 열리게 되어 다가올 좋은 계절을 기다리는 들뜨는 때가 된다. 대 디오니시아는 이 좋은 계절의 시작을 이루는 제사였었다. 그래서 이 제사에는 외국으로부터의 참가자가 많아 각국의 사절을 비롯하여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이 제사에 특히 국제적인 색체를 주었다. (P. 641)

 

Ü 이 느낌을 가지고 극을 읽어내려 보자.

 

□ 에우리피데스는 아테네의 외항 페이라 이에우스 시의 디오니시아에 신작을 냈고 이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일부러 구경갔었다는 것이 전해지고 있다.

 

나중에는 직업적인 배우들의 조합이 생겨서 지방을 순회 공연하게 되어 극은 점점 더 일반에게 보급되었다. (P. 643)

 

Ü 이미 극 공연에 대한 시스템화가 갖추어져 있었다는 이야기.

 

□ 코러스 대원도 또한 코레코스가 자기 부족에서 선택하고 연습이나 무대 연습을 위한 장소를 제공했기 때문에 코러스 연습을 위해 좀더 우수한 트레이너를 얻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연습은 엄격한 것이어서 대원은 노래나 춤 연습뿐만 아니라 음식과 그 밖에 몸의 조절을 위한 트레이닝도 받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밖에 극일 경우, 코레고스는 의상이나 그 밖의 여러가지 것을 제공하지 않으면 아 되어서 그 비용이 막대하였다. (p. 645)

 

Ü 사활이 걸리 공연이었다. 오늘날 프로 배우들과 다를 바가 없었겠다. 더구나 마이크도 없는 상황에서 1만 관중을 놓고 연기나 대사를 말하려면 성량이나 고음처리 능력 등 목 관리에도 많은 주의를 기울였으리라 생각한다.

 

□ 배우의 비용은 국가의 부담이라 그 사례와 의상 비용 등이 모두 다 코레고스에게는 부담되지 않았다. 작자에 대한 상금도 역시 국가가 제공했는데 그 액수는 알려져 있지 않다. 코러스와 배우의 감독은 예전에는 작자 자신이 했다. 시인은 작사뿐만 아니라 작곡도 하고 춤의 동작까지도 연구하여 지어냈으며 옛 시대의 시인 프리니코스와 아이스킬로스는 이 점에서도 유명하였다. (p. 645)

 

Ü 이 당시 예술과 의례는 국가 차원의 지원 아래에서 융성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정부는 적극 지원했다. 하물며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인류는 2 5백 전에 비해 하나도 진보된 바가 없다.

 

□ 작자는 또 예전에는 자기가 배우이기도 했었다. 테스피스가 직접 무대에 섰던 일은 그에 과한 전서로 밝혀져 있고 아이스킬로스도 젊었을 때는 그랬었다. 이 습관을 깨뜨린 것은 소포클레스인데 목소리가 작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p. 646)

 

Ü 만능 엔터테이너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이겠다.

 

□ 기원전  468, 소포클레스와 아이스킬로스가 상을 겨루었을 때는 민중들의 감정이 너무나 흥분되어서 공평한 판정이 기대되지 않았으므로 그때의 아르콘은 대담하게도 즉흥적인 생각에서 때마침 개선하여 극장에 나타난 키이몬 이하 열 명의 장군을 심판자로 삼아 그 결과 소포클레스가 우승했다고 플루타르코스는 전하고 있다.

 

아이스킬로스는 90편 중 52, 즉 열세 번, 소포클레스는 1백 편 이상의 작품 중 72, 즉 열 여덟 번, 에우리피데스는 90편 이상의 작품 중에서 20, 즉 다섯 번의 승리를 얻었다고 전해지고 있는 점에서 보더라도 적어도 기원전 5세기에는 심판자의 판단력과 성실성이 상당히 높았다고 해도 무방하다. (p. 647)

 

Ü 순위 경쟁이 치열했었다. 라이벌이었을 수도 있겠다. 극 공연의 처음과 끝 그리고 그 평가에 이르기까지 매우 견고한 시스템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코러스의 입장은 아테네에서는 보통 서쪽 입구로부터였다. 이때 코러스는 관람객을 왼편으로 보게 된다. 관람객에 면하는 가장 왼편 열은 가장 우수한 대원에 의하여 구성되며 그 중앙에 대장이 위치한다. (p. 648)

 

□ 배우는 테스피스에서는 한 사람, 이것을 아이스킬로스가 두 사람으로 하였고 소포클레스가 세 사람으로 늘렸다. 아이스킬로스도 만년의 작품에서는 세 사람의 배우를 쓰고 있다.

 

주된 불편은 한 배우가 여러 인물을 겸하거나 때로는 반대로 한 사람의 역을 손이 비어 있는 여러 사람의 배우가 분담해서 맡지 않으면 안 되는 점이다. (p. 649)

 

□ 일부러 배우가 사실적이 아닌 화려한 수를 놓은 의상을 입고 커다란 마스크를 쓰고 있었던 것 만은 틀림이 없다. 마스크는 눈의 움직임, 얼굴 표정을 완전히 연기에서 제외하였으며 이 무표정은 극중 인물의 성격과 본질적으로 결합되고 있었다. 아이스킬로스 이래, 심한 감정의 폭발이나 격렬한 동작을 비극에서 나타낼 경우, 말투나 언어 표현으로 나타내도록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비극은 인물의 감정과 동작을 말 자체에 의해서만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으므로 현재 우리도 역시 비극의 대사에 의하여서만 등장하는 인물의 마음의 움직임을 짐작할 수 있다. (p. 651)

 

Ü 그래서 극중의 대사가 문학적 표현으로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시인이 극본을 담당하였을 수도. 또한, 이러한 제약으로 인해 지면으로 읽는 지금의 극본이 다소 지루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 작자는 무대면을 옥외에 둘 수밖에 없었고 코러스는 한 번 등장하면 퇴장시키기가 어려웠다. 또 막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무대면의 전환도 어려워서 될 수 있는 한 피하고 있었다. (p. 652)

 

□ 기원전 4세기 반 이후에 만들어진 디오니소스 극장의 수용 인원수는 1 4천이다. (p. 653)

아이스킬로스연극공연장(아크로폴리스).JPG

Ü 아크로폴리스 내 공연장, 아이스킬로스의 공연이 펼쳐진 극장이다. 잠실스타디움이 3만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을 고려하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 극장의 관리와 경영은 가 개인에게 이관하였다. 시는 관리자에게 1인당 2오보로스에 해당하는 돈을 치르고 시민의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무료 입장권을 배부하였던 것 같다.

 

하루 종일 앉아 있기 때문에 관람객들은 좌석에 쿠션을 깔았으며 술이나 먹을 것을 충분히 준비해 왔다. 개중에는 점심을 먹으로 가는 사람도 있었던 모양으로 아리스토파네스는 에서 날개가 있다면 이런 것도 쉽게 할 수 있을 텐데라고 말하고 있다. 관람객은 배우가 서투르면 먹다 남은 마른 과일을 집어 던졌다.

 

배우나 연극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고함을 지르고 좌석을 구두로 차고 하다가 결국은 배우를 무대에서 쫓아버려 극의 상연을 중지시켰다.

 

현존하는 3대 시인의 작품처럼 문학적 가치가 높고 어려운 것을 매일 세 가지씩 본 아테네의 관람객은 상당한 취미의 소유자들이었음이 틀림없다. (p. 653~654)

 

Ü 화끈하다. 그리고 멋지다. 관객이 왕이었다. 그런데 시선이 가는 대목은 쫓기어진 배우들은 어떻게 될까. 또 배우들의 지위는 그 사회에 어디쯤에 자리하고 있었을까.

 

□ 그리스 극은 간략하게 말하자면 대화 부분과 노래하며 춤추는 코러스 부분으로 이루어져있다. 완성된 형식에서는 처음에 프롤로그, 잉서 코러스의 입장, 다음에 플롯을 전개하는 에페이소디온이라 불리는 대화와 스타시몬이라는 코러스만의 부분이 몇 번 거듭된 뒤 마지막 부분(엑소도스)으로 끝난다.

 

마지막 장면에만 집중해서 제시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으므로 무대에서 복잡한 그 장면에 선행하는 줄거리를 관객 앞에 전개하기가 어렵다.

 

그 때문에 작자는 우선 자기의 극이 전제로 하는 상황을 관객에서 알릴 필요가 있으며 또 이야기 속의 어느 부분을 다루는가를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 (p. 654)

 

Ü 그래서 코러스의 대사 또는 맨 처음 등장하는 사람의 독백 따위들은 모두 전후 상황을 설명하는데 할애되고 있다.

 

□ 아이스킬로스의 아가멤논서두에 나타나는 파수병의 독백인데 여기서 그는 장대한 말로 클리타임네스트라가 아가멤논의 귀국이 얼마나 신속하게 알려지도록 연구하고 있는가를 말하고 당장에 이 대장의 귀국을 기다리는 아르고스의 불길한 분위기를 알리고 있다. 그러나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극의 주요 인물의 대화 속에서 자연히 상황이 밝혀지는 방법인데 이것을 가장 능란하게 사용한 것이 소포클레스이다. 오이디푸스 왕의 첫머리에서 왕이 등장하여 시민의 왕에 대한 소원을 듣고 있는 동안 극의 발단에서부터 자연히 극 속으로 융합해 들어간다. (p. 655)

 

□ 비극 배우는 긴 옷, 가면 등으로 자유로운 행동이 어려운데다가 가면은 얼굴 표정 변화의 표출을 방해한다. 옥외의 몇 만이라는 관중을 상대로 넓은 오케스트라를 사이에 둔 극장에서는 목소리의 미묘한 뉘앙스에 의한 감정 표출도 또한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옥내의 극이 갖는 여러 가지 기교를 쓸 수는 없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p. 656)

 

Ü 이것은 결정적이다. 오늘날과 다르고 그때의 이러한 상황을 미리 인지하지 않고 극본을 읽었더라면 극이 주는 박진감은 사라지고 매우 지루하고 흥미가 반감될 수도 있겠다.

 

결박 당한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Bound)

프로메테우스.JPG

[귀스타브 모로의 결박 당한 프로메테우스]

 

□ 힘 : 이놈이 훔쳐 저 인간들에게 넘겨준 것이 바로 그대의 꽃, 만물을 뜻대로 이루게 하는 기술의 빛인 불이었으니까 그 죄 때문에 이놈은 신들에게 형벌을 받아야 하는 거죠. 제우스 신의 권력에 굴복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인간을 사랑하는 태도를 고쳐야 합니다. (p. 16)

 

Ü 희곡의 서두다. 대강의 내용을 이 한 문장에 죄다 알 수 있다. 아이스킬로스는 신과 인간을 대립하는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그 사이에 프로메테우스를 두어 불이라는 매개를 통해 신과 인간의 쿠션역할을 하게 하는데, 그런데 말이다, 왜 아이스킬로스는 신과 인간을 대립물로 보았을까?

 

□ 이제 장도리로 내려치십시오.

저쪽 팔도 단단히 묶으세요.

이 뾰족한 쐐기를 가슴에 박으세요. (p. 17~18)

 

Ü 행동으로 직접 이야기를 끌고 가는 이와 같은 형태는 그리스 비극의 매우 특별한 형태다. 대부분 행위들은 무대 뒤에서 벌어진 것으로 하고 결과만 보고되는데 반해 이 이야기하는 대사를 불과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토스는 직접 행동함으로써 줄거리를 진행한다. 실제로 아가멤논이 죽는 장면, 클리타임네스트라, 카산드라, 아이기스토스, 이오카스테 등이 죽는 장면은 극에서 묘사되지 않았다. 진보적인 방법인 것 같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 힘 : 네 이름이 미리 생각한다는 뜻이라지? 잘못된 이름이야. 너한테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이란 말이야. 이런 쇠사슬에서 벗어나려면 미리 생각을 꽤나 많이 해 두어야 할 테니까. (p. 18)

 

Ü 프로메테우스의 ‘pro’라는 미리접두사’(자칭이다) 에서 대충의 짐작이 갈 수 있겠다.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미리생각하여 불을 주고 농사짓는 법을 가르치고 했을까.

 

□ 프로메테우스 : 그 어떤 고통도 내가 예기치 않았던 것은 없어. 참고 견디는 수밖에. 운명이 내게 보내 준 그것을 되도록 가볍게 견뎌 보아야지. 필연과 맞서 거역을 해 봐야 아무 소용도 없는 걸 나는 알고 있네 (p. 19)

 

Ü Amor fati!

 

□ 프로메테우스 : 그러나 이제 나는 바람의 노리갯감이 되어 버렸어 (p. 21)

 

Ü바람의 노리갯감멋진 표현이다.

 

□ 프로메테우스 : 모든 폭군에게 뿌리 박혀 있는 병이 곧 이거야. 옛 친구를 믿지 못하는 병 말이야. (p. 23)

 

Ü 그 시대에 이미 이러한 통찰이 일반화 되어 얻어질 만큼 역사적 경험이 축적된 상태였다. 그 시대 상황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시대에 이미 지금의 교양과 여유, 삶의 지혜는 완성되었던 것 같다. 인류의 역사는 기술의 진보와 영혼의 퇴보를 동시에 진행했다.

 

□ 프로메테우스 : 인간을 말살해 버리고 새로운 종족을 만들어 내려는 속셈에서였지 (p. 23)

 

Ü 당시 인류에 대한 인간의 관점은 뭔가 어딘지 모르게 세계의 사생아적 관점이 아니었을까? 신 앞에 떳떳할 수 없는 뭔가 꾸리한 뭔가를 지니고 있는 개체

 

□ 프로메테우스 : 근심 걱정이란 멀리멀리 떠돌아 다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언제나 우리 주위에 가까이 있는 것이니까 (p. 24)

 

Ü 자괴감을 느낀다. 영원을 공부하는 사람이 이런 것을 왜 떨쳐 내지 못할까. 사소한 걱정에 내 우주는 왜소해 진다.

 

□ 프로메테우스 : 인간이 겪고 있는 고통이 어떤 것이었는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인간을 보고 그들에게 생각하는 능력을 주었지. 나를 통해서 그들은 이해력을 얻은 거요.

그들은 앞을 보지도 못하고 소리를 들을 줄도 몰랐지.

벽돌이나 잘 자란 나무를 가지고 태양을 가릴 만한 집 한 채도 지을 줄 몰랐어.

가냘픈 개미 떼들이 햇빛도 안 드는 저 땅 속 깊이 묻혀 살 듯이 인간들은 동굴 속에서 살고 있었어.

겨울이 다가오고 꽃이 피는 봄이나 과실이 무르익은 더운 여름이 다가오는 것조차도 모르고 살아왔지.

질병을 물리쳐 주는 약초를 고루 섞어 쓰는 방법을 가르쳐 줄 때까지 그들은 병만 나면 그대로 죽고 말았어. 또 온갖 점치는 방법도 가르쳐 주었어. 꿈에서 본 것 가운데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날 것인가

인간을 이끌어 어려운 과학의 세계를 소개한 것도 바로 나였어.

모든 기술, 모든 물질이 바로 내 손에서 인간에게 넘어간 거야. (p. 29~31)

 

Ü 이쯤 되면 수학과 물리학, 꿈에 대한 정신분석학 등 인류애로 뭉친 박애주의자가 프로메테우스였다.

 

□ 아르고스 (p. 33)

 

Ü 각주 설명에 의하면 아르고스는 헤라가 죽인 것으로 나오는데 변신이야기에서는 메르쿠리우스(헤르메스, 머큐리)가 죽인 것으로 나온다.

 

□ 프로메테우스 : 가슴이 아플 때 같이 울어 줄 수 있는 사람과 얘기를 하는 것도 좋은 일이니까요 (p. 35)

 

□ 프로메테우스의 예언, 이오의 13대 손이 나를 석방시켜 줄 것입니다.

5대 째 이르러 50명의 딸들이 옛 아르고스 땅으로 도망쳐 갈 것입니다.

50명 중 단 하나만이 사라의 위력에 눌려 계획을 바꾸게 되지요. 그리하여 옆에 누운 사나이를 죽이지 않고 살인자가 되는 대신 비겁자란 이름을 받는 겁니다. 그 여자가 아르고스의 왕족을 잉태할 것입니다. 그 여자의 후손 중에서 영웅이 하나 태어날 것입니다. 그가 나를 석방시켜 줄 것입니다. (p. 41~42)

 

아가멤논 (Agamemnon)

 

□ 본편의 중요 부분은 강인한 의지로 심한 증오와 원한을 능란한 말 솜씨 뒤에 숨기는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움직임과 그와 반대로 본디 트로이의 왕녀였으나 지금은 포로로 굴욕을 당하는 아폴론 무녀(신을 배반한 벌로 그 예언을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는다) 카산드라의 절규에 있다. (p. 50)

 

□ 파수병 (지붕 위에서 독백) (p. 52)

 

Ü 앞서 설명한 그리스 비극의 개략적 특징에 서사가 시작되는 첫 장면에서 대충의 전후 상황이 소개된다. 파수병의 독백도 마찬가지다. 이 독백으로 인해 사건의 전개가 급격히 진전되고 빨라지게 된다.

 

□ 코러스 :

제우스 신이여 정말은 어떤 분이신지 잘 모르오나

이름 불러 올림을 가상히 여기신다면

그 이름으로 기도를 드리나이다.

미루어 생각하건대 우리의 이 가슴 속에서

공연한 근심 걱정을 진실로 없애 줄 수 있는 분은

제우스 신 말고는 없나이다. (p. 57)

 

Ü 앞서 결박 당한 프로메테우스가 욕하던 제우스는 온데 간데 없다. 배신과 오욕, 욕망에 사로잡힌 악한의 모습, 유피테르와는 그 인식 이미 많이 달라 있다.

 

□ 클리타임네스트라 : (장로들을 보며) 반가운 소식은 속담에도 있듯, 이 새벽은 따뜻한 어머니인 밤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오. (p. 61)

 

Ü 표현이 아름답다.

 

□ 코러스 :

신의 눈은 결코 놓치지 않으므로

무서운 복수의 신은 옳지 않으면서

번영하는 자를 언젠가는 반드시

거꾸러뜨리고 그 생활을 바꾸어

멸시해 버리지. 마침내 일단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아무 힘도 없어져 버린다. (p. 68)

 

Ü 의심 심장하다. 대강의 줄거리를 알고 볼 때 이 대사는 복선이다. 삶의 금문자 같기도 하고

 

□ 전령 : 고생도 이젠 옛일, 죽어 버린 사람들도 다시는 살아날 수 없는 옛일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이제 여러 운명에게 깨끗이 작별 인사를 하려 합니다.

우리들, 아르고스군 생존자들에게는 저울에 달아 보면 이익 쪽이 훨씬 크고 괴로움은 훨씬 가벼울 터이니까요.

왜 죽은 자를 생각해야 합니까? 살아 있는 자가 사나운 운명에 학대 받고 있는데 (p. 71)

 

Ü 삶은 이리도 무가치적이고 눈물겹고 어이가 없는 것인가. 전쟁의 모습은 깔리 여신이 지배하는 필연인가. 전령은 살아서 죽은 자들의 가치를 애써 묵살한다.

 

□ 클리타임네스트라 : 이렇게 왕에게 전해다오. 하루 속히 시민들에게 그립고도 씩씩한 모습을 보여 달라고. 그리고 돌아오셔서 궁중에 성실한 아내가 있음을 보여 달라고.

 

또 다른 사나이에게 향락을 구하여 좋지 않은 소문을 내는 일 따위는 청동의 담금질과 같이 나와는 아무 관계 없는 일이라고. 나의 자랑이란 이러한 것, 그 속에 가득 담긴 진실은 지체 높은 여자로서도 입에 올려 부끄럽지 않을 것이오. (p. 72~73)

 

Ü 지난 과오에 대한 무리한 방어기제다. 극적 서사를 위한 의식적인 over.

 

□ 코러스 :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경스러운 일이야말로

뒷날 더욱 꼬리를 달아 자기 혈통과 가문에

어울리는 자식을 낳겠지만

바르고 늘 정의를 지키는 집에서는

언제나 변함없이 훌륭한 자손을 얻게 될 운명이라고 (p. 77)

 

Ü 이 무슨 우생학적 자만인가. 2500년 전의 일이니 이해하자. 그렇지만 동의할 수 없다.

 

□ 아가멤논 : 맨 먼저 내가 할 일은 이 아르고스와 천지신명께 인사를 드리는 일이다. 그 신들이야말로 우리의 귀국과 또 프리아모스의 수도에 대해 우리가 내린 옳은 보복에 힘을 주셨다. (p. 79)

 

Ü 즉 신이 하는 일을 아가멤논은 대행하였고 트로이에서 승리하였다.

 

□ 아가멤논 : 지금은 더 없이 친절하고 다정해 보이는 이들도 그저 그림자의 그림자,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만은 본디 자신의 뜻과 달리 전쟁에 참가했으면서도 우리의 전우가 된 뒤로 언제나 나의 좋은 벗이 되어 주었다. 그가 죽었건 또는 살아 있건 이것은 말해 주어야 한다. (p. 80)

 

Ü 육신의 한계, 전장에서 시간의 슬픔이 더욱 부각되어 질 터.

 

□ 클리타임네스트라 : 지금은 이 같은 모든 일을 견디어 내고 근심을 떠난 마음에 여기 계시는 낭군을 양치는 개처럼 맞이하려 합니다. 배를 무사히 지켜 주는 밧줄, 높은 지붕을 버티는 튼튼한 굵은 기둥, 또 아버지에게 있어 단 하나뿐인 외아들처럼, 폭풍 뒤의 화창한 햇빛처럼, 길을 가는 목마른 나그네가 맑은 물이 솟는 샘을 만난 것처럼. 어쨌든 모든 고통이 지나갔다는 것은 기쁘기 한이 없는 일입니다. (p. 81)

 

Ü 왕비는 부정을 저지르고 오랜 전쟁 끝에 돌아온 지아비를 맞으며 이렇게 노래한다. 불필요한 수사가 난무한다. 켕기는 일은 어느 형태로든 드러난다. 작자의 의도가 새롭다.

 

□ 아가멤논 : 찬란하게 꾸민 비단 이를 언젠가는 죽어야 할 인간의 몸으로 걷는다는 것이 나는 두렵소. 나를 신이 아닌 남편으로서 공경해 주오.

클리타임네스트라 : 네 하지만 한 가지만 더 말씀해 주세요. 내 뜻에 반대하시지 않겠다고

아가멤논 : 내 의견은 이미 바꿀 수 없는 것이오.

클리타임네스트라 : 무서운 일을 당하셨을 때 신께 그렇게 맹세했군요.

아가멤논 : 분별있는 자라면 그렇게 하는 법이오.

클리타임네스트라 : 프리아모스 왕이 이런 공훈을 세웠다면 어떻게 하리라 생각하시나요?

아가멤논 : 그야 틀림없이 아름다운 비단 위를 걸었겠지.

클리타임네스트라 : 그러시다면 사람들의 나무람은 상관 않으시겠군요.

아가멤논 : 하지만 국민들 가운데에서 일어나는 비판에는 큰 힘이 있소.

클리타임네스트라 : 남에게서 질투를 받지 않는 자는 부러움도 못 받는 자이옵니다.

아가멤논 : 싸움을 좋아하여 요구함은 부녀자들이 취할 태도가 아니오.

클리타임네스트라 : 하지만 행복에 빛나는 분은 좀 양보하셔도 좋지 않습니까?

아가멤논 : 정말로 그대는 이 말다툼에서 온 힘을 다하여 이기려 하는가?

 

Ü 이 말다툼은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아가멤논을 죽이는 빌미를 제공하는 복선의 대화다. 왕비가 아가멤논을 죽일 때 이 다툼을 언급한다.  

 

□ 클리타임네스트라 : 갑자기 뜻하지 않게 재산이나 권력을 잡은 이들은 모든 점에 있어 종들에게 무자비하고 규칙도 지키지 않는 법이지만 이곳에서는 뭐든지 관습대로 해 주고 있다. (p. 86)

 

Ü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있거나 없거나 어리거나 젊거나 늙었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죄다 적용되는 말이다.

 

□ 카산드라 : 죽어가면서 울부짖는 어린애들

불에 구운 살덩이를 아버지에게 먹이기도 하고

어머나, 이 무슨 일을 도대체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가.

무슨 이런 참혹한 짓을

엄청난 재난을 이 궁중에서 꾸미고 있는가.

혈육 사이에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고

다시는 돌이킬 수도 없는 것을. 구원은 훨씬 먼 거리에 떨어져 있는데

 

정말 지독한 여자구나.

그런 짓을 하다니.

침실을 함께하는 남편을 말끔히 목욕시키고 나서그 다음을 어떻게 말하리.

머지 않아 그 다음은 오겠지만.

뻗쳐요, 손이. 손 뒤에서 곧장.

 

, 저런, 저런, 저기 보이는 게 무엇일까.

글쎄, 황천의 그물 같은 거야

아니 그보다도 옭아매는 그물이다.

침실을 같이하는 여자가 살인 공모자이다.

만족을 모르는 혈육끼리의 싸움에

개가의 함성을 소리 높이 지르도록 하라.

구덩이 속에 생매장하는 희생물을 바치고서

 

어머나, 저것 좀 봐.

저 암소로부터 떼어놓은

황소를 옷으로 감싸듯

붙잡아 놓고 검은 뿔로 들이친다

그러면 물 담긴 그릇 속에 쓰러진다.

속여서 죽이는 그 가마솥 음로를

당신에게 지금도 알려 주고 있건만.

 

아 탄식하는

꾀꼬리의 운명이라니. 하지만 그 새를 신께서는

날개 있는 모습으로 꾸미셨다.

즐거운 생애를 눈물 없이 보내라고 (p. 88~90)

 

Ü 포로가 된 트로이의 무녀 카산드라의 예언이자 절규다. 코러스는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고 극이 절정으로 치닫는 비장미는 고조된다.

(‘울부짖는 아이들에서 아가멤논의 아버지가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왕비의 정부 아이기스토스의 아버지에게 못할 짓을 하는 장면을 비유하는 것이다. 아이기스토스를 제외한 모든 어린 형제들을 삶아 아이기스토스의 아버지에게 먹이는 장면, 비극적이다.)

 

□ 카산드라 : 저 궁전 앞에 앉아 있는 어린아이들. 꿈에 본 모습과도 같은 혈육 사이에 살해당한 어린이 같다. 두 손에 가득 고기를 들고 자기 살을 먹으라고 내장까지 함께. 이 얼마나 참혹한 손의 무게일까. 받쳐든 모습이 눈에 환히 보여요. 그것을 아버지가 먹었어요. (p. 93)

 

Ü 책의 내용과 관계 없지만 뜬금없이 든 생각, 자식을 먹는 행위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비극의 극한, 정치의 환멸, 권력에의 무용론..유치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어른이 되기를 포기하는 하려는 자의 마지막 선택?

 

□ 카산드라 : 아가멤논의 최후를 보게 되리라고 말하고 있잖아요.

코러스 대장 : 아니, 삼가지 못할까. 불길한 말을 하는 가련한 여인이여. (p. 94)

 

Ü 직선으로 말한다. 에두르지 않고. 그러나 알아듣지 못한다. 이 장면에서 그 당시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 카산드라 : 다만 태양을 향해 기도를 드릴 뿐, 마지막 햇살을 향해 죽어간 여자 노예, 쉽게 손댄 자에 대한 빚을.

코러스 : 아 덧없음은 세상의 인간사, 행복하다는 것도 알고 보면 그림자와 같은 것

또한 운이 나쁘다 해도

젖은 걸레로 한두 번 훔치면 당장에 지워질

그림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니 이것이야말로 사람들의 운명보다

더욱 슬픈 일. (p. 97)

 

Ü 시간의 자장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집어 삼킨다. 사는 동안의 고통과 기쁨은 죽음이라는 사태 앞에서 의미를 잃는다. 그러나, 죽음이 끝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다. 존재 너머, 세계 너머의 세계에 대해 말하여질 수 없는 것이 자연스러움이고 영혼은 육신을 바꾸어 가며 존재하니 단 한번 걸레질로 사라져도 두려워하거나 슬퍼하지 말자. 그러나, 눈물 겨워진다. 카산드라가 궁으로 들어가는 이 장면은 그런 삶과 포개어진다.

 

□ 아가멤논 : , 당했구나, 치명상을

             , 또 당했구나. 두 번째 치명상을 (p. 97)

 

Ü 아가멤논이 암살 당한다.

 

□ 클리타임네스트라 : 결코 나를 아가멤논의 아내로 생각지 말아 주시오.

여기 죽어있는 사람의 아내 모습을 빌려

저 옛날부터의 무서운 복수자

참혹한 잔치를 베푼 아트레우스(아가멤논의 아버지)에게

복수하려는 자가

이 사람을 (살해된) 아이들을 위해서

제물로 바치어 속죄한 것입니다. (p. 103)

 

Ü 왕비의 revenge는 명분이 없지는 않았다. 충분히 고개 끄덕일만하다.

 

□ 코러스 :

자기 손으로 자기 남편을 죽여 놓고 울음까지 울고자 하오?

그 혼백에 예의가 아닌 예를 치름으로써

훌륭한 업적에 대한 보상을 다하기 위해

그 누가 또 무덤가에 서서 이 영웅에게

눈물 섞인 찬가를 바치고자 마음의 진실을 털어놓으리 (p. 105)

 

Ü 앞서 코러스에 대한 설명에 의하면 높은 도덕적 사념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과연, 코러스 즉 아르고스의 장로들은 절대 권력이 된 왕비 앞에서 거침 없이 지른다. 계산된 정치적 수사는 감지 되지 않는다.

 

□ 아이기스토스 : 뭐라고? 그 따위 소리를 지껄인다면 당장에 혼을 내주겠다. , 병사들아. 어서 빨리 일을 시작하라.

코러스 대장 : 여러분, 칼자루를 쥐고 준비를 하시오.

아이기스토스 : 좋아 나 역시 칼자루에 이렇게 손을 대고 사생결단도 사양치 않으리라.

코러스 대장 : 사생결단이라니, 우리에겐 좋은 징조의 말, 그렇다면 자, 한번 운을 시험해 보자꾸나 (p. 108)

 

Ü 일촉즉발의 상황. 아가멤논의 옛 참모(아르고스의 장로) vs 쿠데타 세력. 그러나 왕비의 중재로 무력 충돌은 일단은 무산된다.

 

제주(祭酒)를 바치는 여인들 (The Choephori)

 

□ 오레스테이아 극의 제 2. 코에포리(choephori : 무덤에 바치는 제주, 꿀과 우유, 기름으로 만든다) (p. 111)

 

Ü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가 아이기스토스와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죽이고 복수하는 내용이다.

 

□ 코러스 대장 : 타국에 계시다 할지라도 오레스테스님을 잊지 마세요. 그 다음에는 그 분을 살해한 장본인들에 대해서도 잊어버리지 마시기를.

엘렉트라 : 무슨 뜻인가요?

코러스 대장 : 그 사람들에게 신이든 사람이든 누군가가 대항해서

엘렉트라 : 심판자나 복수자를 말하는 건가요?

코러스 대장 : 정확히 말하면 살해한 보답으로 살해해 주려는 사람들이지요.

엘렉트라 : 그런 것을 신에게 기원해도 불경죄가 되지 않을까요?

코러스 대장 : 물론이지요. 적에게 화를 화로써 보복함은 정당한 일이니까요. (p. 117)

 

Ü 모든 정당성은 윤리적인가?

그런 일은 없을거라 생각되지만 죽어야만 할 마땅한 명분이 있다면 그것은 윤리와 도덕으로도 통제할 수 없는 것인가. 신에게 원래 윤리나 도덕은 없는 것인가. 칼리 여신이 조화와 공포의 모든 대립물들을 아루르듯이.

 

□ 엘렉트라 : 아무쪼록 오레스테스가 이곳으로 돌아와 어떻게 해서든 좋은 결과를 가져오도록 (p. 118)

 

Ü 관객들은 이 오레스테스에게서 영웅의 모습을 기대한다. 그가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을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소개하는 영웅의 여정과 match시켜 보자.

 

□ 엘렉트라 : , 이 머리칼이 상쾌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면 좋으련만 (p. 119)

 

Ü , 시적인 표현이다. 아름답다.

 

□ 무엇보다 세계에서도 으뜸으로 명예로운 국민이 영광스러운 정신으로 트로이를 정복한 사람들이 두 여자에게 이토록 좌우되고 있는 것을 구해야겠습니다. 두 여자라고 한 것은 다른 한쪽도 마음은 여자나 마찬가지니까요. (p. 122)

 

Ü 아이기스토스에게도 나름의 살인에 대한 명분이 있었다. 그렇다면 오레스테스의 명분과 그 무게의 차이는 적어도 없을 듯 하다.

 

□ 자식이란 최후를 맞은 무사에겐 그 이름을 지켜 나가는 실마리지요. 말하자면 어망을 뜨게 하는 부표와 같은 것이니 그물이 바다 깊이 가라앉는 것을 막아 줍니다. (p. 129)

 

Ü 자식에게 지워진 이런 짐을 아비는 원하진 않았을 것 같다. 자꾸 딴지다.

 

□ 아이기스토스 : ! 사람 살려!

시동 : 살아 있는 분을 죽은 사람이 죽였습니다. (p. 141~142)

 

Ü 표현은 기가 막히다. 오레스테스는 이미 죽은 오레스테스의 유골을 들고 왔다고 거짓을 말하고 궁으로 잠입했고 그가 아버지를 죽인 아이기스토스를 죽이는 장면이다. 시동이라는 하인은 이미 오레스테스에 대해 알고 있었다.

 

□ 클리타임네스트라, 땅에 엎드려 가슴의 옷을 찢고 유방을 들이댄다.

오레스테스 : 필라데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머니를 죽이는 건 삼가야 할까? (p. 143)

 

Ü 이 장면은 정말 극적이다. 오레스테스의 이 망설임은 영웅이 겪을 만한 소명에의 거부와 같다. 부처 또한 깨달음을 얻은 뒤 세상에 나아가기 전 이레 동안의 망설임이 있었다. 즉 소명에 대한 거부와 허락 사이를 고민했던 기간이 있었던 것.

 

오레스테스가 자신의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죽이기 전 대화다 박진감 넘치니 모두 인용한다.

클리타임네스트라 : 나는 너를 길렀다. 함께 살며 늙어 가고 싶구나

오레스테스 : 아버지를 죽여 놓고도 나와 같이 살고 싶다고요?

클리타임네스트라 : 이렇게 된 건 다 운명이 거들어서 그렇단다. 얘야.

오레스테스 : 그렇다면 이 최후의 채비를 거들어 준 것도 운명이겠지요.

클리타임네스트라 : 그럼 어미의 저주도 넌 두렵지 않단 말이냐?

오레스테스 : , 나를 낳은 어머니가 나를 불운 속에 내던졌으니까요.

클리타임네스트라 : 내 던진 게 아니다. 먼 친척집으로 보냈을 뿐이다.

오레스테스 : 훌륭한 아버지를 가진 자유로운 모인데도 나는 두 번씩이나 팔렸소

클리타임네스트라 : 그렇다면 너를 판 돈이 어디 있단 말이냐?

오레스테스 :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그런 말을 하고

클리타임네스트라 : 하지만 마찬가지로 네 아버지 잘못도 생각해 봐라.

오레스테스 : 밖에서 고생하는 사람을 집 안에 편히 앉아 탓하다니

클리타임네스트라 : 여자로서는 남편과 떨어져서 사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단다.

오레스테스 : 하지만 남자가 밖에서 고생하는 것은 여자를 집 안에서 편히 살게 만들기 위해서지요.

클리타임네스트라 : 그렇다면 넌 아무래도 어미를 죽여야겠다는 말이구나.

오레스테스 : 아닙니다. 내가 아니고 어머니 자신입니다. 어머니가 자신을 죽이는 겁니다.

클리타임네스트라 : 조심해라. 어미의 원한에 찬 저주의 개들을 조심해라.

오레스테스 : 만일 어머니를 죽이지 않는다면 아버지의 저주, 그 복수의 신들을 어떻게 필할 수 있겠습니까?

클리타임네스트라 : 마치 산 사람이 무덤에 대고 쓸데없는 넋두리를 하고 있는 것 같구나.

오레스테스 : 아버지의 운명이 어머니를 이렇게 죽게 만든 것입니다.

클리타임네스트라 : 원 이럴수가! 내가 낳아 기른 것은 독사였구나.

오레스테스 : 꿈을 꾸고 느낀 두려움은 정확한 예언이었습니다. 죽여선 안될 사람을 죽였으니, , 받아서는 안 될 벌을 받으십시오. (p. 143~144)

 

□ 오레스테스, 오른편으로 악령에게 쫓기는 듯 미쳐서 퇴장. (p. 149)

 

Ü 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비극, 원형적인 trigger point를 격발하는 비극이다. 변신이야기에서소개 되는 이 이야기는 어떤가? 제 아우들을 죽인 사람에 대한 복수, 그 사람이 자기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은 이후다. 참을 수 없는 운명의 장난 (변신이야기 p. 359~361를 참조)

 

자비로운 여신들 (Eumenides)

 

□ 법치 국가에 그 덕성을 유지시키고 국가와 시민의 복지를 수호하는 자비로운 여신으로 전화하는 데 좀더 큰 의의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p. 151)

 

□ 제1. 이른 아침, 델포이 신전에 종사하는 무녀가 오른편에서 등장, 신탁을 전하는 일을 시작하기 위해 신전으로 들어가려고 집 앞에 서서 기도를 드린다. (p. 153)

 

□ 무녀 : 이곳은 브로미오스의 바쿠스 신이 살고 계시던 곳, 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옛날 여신도의 무리를 이끌고 나가시어 토끼를 잡듯 펜테우스를 죽인 곳이니 말입니다 (p. 153)

 

Ü 변신이야기에서 언급된 신의 존재를 부정한 판테오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잠시 소개한다.

 

어머니에게 팔이 잘린 자리를 보여주며 판테오스(신의 존재를 부정한 자)는 말했다.

 

‘어머니 보세요. 아들이 이 꼴이 되었습니다.’

 

이 꼴을 본 그의 어머니 아가베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머리채가 휘날리도록 머리를 뒤로 젖혔다가는 자기 머리로 아들의 머리를 받아버렸다. 펜테오스의 머리는 산산이 부서져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피 묻은 손으로 그 머리의 조각을 주워 들고 아가베가 외쳤다.

 

‘보아라, 우리가 이겼다. 내가 승리했다!’ (변신이야기 p. 150~151)

 

□ 코러스(에리니에스(복수의 여신)  무리) :

부모에게 모진 짓을 한 자를 소중히 하다니

어머니를 죽인 자를 우리 손에서

훔쳐내다니

당신도 신인 주제에

이것이 잘한 짓이라고 말할 이

어디에 있을까. (p. 158)

 

Ü 에리니에스가 오레스테스를 옹호하는 아폴론을 향해 하는 말이다.

 

□ 코러스 : 어머니의 살해범을 모든 집에서 쫓아내는 것이 임무이지요.

아폴론 : 그렇다면 남편을 죽인 아내는 어떻게 하겠느냐? (p. 160)

 

Ü Hot Issue. 이 문제로 오레스테스는 신들과 인간의 법정에 회부된다.

 

□ 아테네 : 그것은 한 쪽만이 할 말이고 또 한쪽의 견해도 있을 것이다. (p. 168)

 

Ü 에리니에스가 주장하는 오레스테스의 폐륜에 대한 징벌과 아폴론이 주장하는 아버지 복수를 위한 살인의 정당성에 대해 아테네 여신은 양쪽 프로파간다 사이의 균형을 잘 지키고 있는 듯하다. 결론과 그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이 궁금해진다.

 

□ 아테네 : 일이 이쯤되었으니 어느 쪽을 붙들고 어느 쪽을 내쫓을 수도 없는 나로서는 곤란한 일이 되었구나. 아무튼 이렇게 된 바에는 이 살해의 판관들을 내가 선정하여 선서를 시킨 다음, 영원한 법정을 마련토록 하겠다. 그러니 그대들도 증인과 증거품을 준비하여 재판에 도움이 되도록 하라. 나도 시민들 중에서 가장 우수한 자를 뽑아 오도록 하겠다. 이 안건을 성실하게 재판하겠다는 맹세를 지켜 조금도 비뚤어진 마음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니까. (p. 170)

 

Ü 갈등은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아테나 여신은 오늘날의 배심원 제도를 적용시킨다. 법치가 상당히 발단된 사회가 아닐 수 없다. 공정성이 도마에 오르긴 오르겠다.

 

□ 코러스 : 살인자의 이유가 통한다면은 예부터의 율법은 있으나마나

어머니 살해범이 승리를 거둔다면

새 악이 생기는 징조 (p. 170)

디케.JPG

 

[법과 정의의 여신 디케]

 

Ü 재판에 만인에 대하여 주관을 배제하기 위해 법과 정의의 여신 디케는 눈을 가리고 있다. 그리고 항상 정의의 편에서 저울질 하고 오른 손에 든 칼은 단호한 처벌로 법 집행에 있어서는 물러섬이 없이 하겠다는 의지겠다. 그러나, 만인에게 일률적인 법 적용은 과연 공정한 것인가? 사회적 약자와 지도자와의 법 적용에 대한 잣대는 같아야 하는가?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 우리의 법은 약자에게는 단호하게, 강자에게는 너무나도 유연한 법 체계 속에서 살고 있다. 법 또한 그네들의 것이므로

 

□ 아폴론 : 어머니란 그 어머니의 자식이라 불리는 자의 혈친이 아니라 그 태내에 새로 깃든 씨를 기르는 데 불과한 것이다. 자식을 만드는 것은 아버지이며 어머니는 오직 주인이 손님을 접대하듯 그 어린 싹을 보육해 나가는 것이다. 이런 이치의 증거라고 하면 어머니는 없더라도 아버지는 있을 수 있는 예가 세상에 적지 않으며 현재 우리 가까이에도 증인으로써 올림포스의 제우스 신의 딸 아테나 여신이 있지 않은가? (p. 175~176)

 

Ü 거참 재미있는 논거다. 아버지에 대한 중요성을 아테네를 끌어들여 펼친다. 다분히 정치적이며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적절치 못하다.

 

□ 아테네 : 최후의 심판을 결정하는 것이 나의 임무이다. 그러니 나는 이 투표를 오레스테스 쪽에 던지기로 하겠다. 나에게는 어머니가 없으므로 모든 일에 있어 남성의 편을 들겠다. 결혼 상대로서는 절대 안 되지만 나는 마음 속으로부터 아버지 편이므로 가장인 남편을 죽인 여자의 죽음을 중요하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투표가 같은 수로 결정되면 오레스테스의 승소로 한다. , 그 투표 단지에서 돌을 꺼내오. 이 재판의 판결을 맡은 심판관 여러분. (p. 178)

 

Ü casting vote를 쥐고 있기 때문에 위의 아테네의 견해는 매우 중요하다. 오늘날의 페미니스트라면 통곡할 말이다. 아니다. 굳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casting vote를 쥐고 있는 사람으로서 세련되지 못한 견해다. 3300년 전의 일이니 그려러니 하자.

 

□ 코러스 : 아테나 여신이여 우리가 어떤 은신처를 얻게 될까요?

아테네 : 어떠한 재앙도 없는 곳. 그러니 승낙하여라.

코러스 : 승낙하겠습니다. 그러면 어떤 명예가 저희에게 주어지는 걸까요?

아테네 : 그 어떤 집도 너희들 없이는 번영할 수 없는 권위를 주겠다. (p. 183)

 

Ü 아테네는 자기의 어이 없는 casting vote 행사에 대한 뻘쭘함을 무마하려 한다. 에리니에스는 복수의 여신에서 단번에 조화와 번영의 여신으로 등극한다.

 

□ 집집마다 행복을 향한 평화의 맹세를

팔라스 아테네의 시민들은 얻을 수 있으리라.

전능하신 제우스 신과 운명의 신이 그렇게 결정하셨으니

모두들 춤을 따라 드높이 노래 부르자. (p. 188)

 

Ü 결국 용비어천가였나. 오레스테스의 재판이 위정자의 현현인 아테네 여신의 찬양으로 이어지는 어이없는 비약이다.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극적 긴장과 간간히 나오는 시적 표현은 2500년 전의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는다.

 

신의 언어를 인간의 손으로 쓰다(저자에 대하여)

 

■ 소포클레스 (sopho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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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ocles (BC 496~BC 406)

나는 이 책에 소개되고 있는 세 명의 거장들의 희곡 중에 그를 가장 재미있게 읽어 내렸다.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는 그 줄거리가 익히 알고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희곡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치밀하였고 그 구성력이 끈끈하였다. 과연 헤로도토스가 존경하여 항상 가까이 두고 싶어했던 사람이었다.

아이스킬로스와는 달리 소포클레스의 생애에 관해서는 기원전 3세기 이후에 쓰여진 그의 전기가 오늘날까지 남아 전해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잘 알려져 있다.

기원전 497년 아테네의 행정 구역 콜로노스에서 부유한 기사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로부터 음악 교육을 받았다. 16살 되던 해에 살라미스 해전을 기리는 연회에서 선창 소년으로 뽑혀 노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기원전 468 29세에 디오니소스제의 비극 경연에서 선배인 아이스킬로스를 물리쳐 명성을 떨쳤다. 펠로포네스전쟁을 전후로 하여 소포클레스는 정치 생활에 들어가 요직을 여러 번 지냈다. 페리클레스의 정치 노선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당시 상황을 헤로도토스는 자유의 공기가 충만한 아테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443델로스 동맹 10명으로 구성된 통솔자에 선출되었으며, 펠로포네스전쟁 초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해군 제독으로 활약 바도 있어 아테네의 우상이 되고 시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다. 사망 후에는 아테네 시민은 그에게 덱시온이라는 영웅 칭호를 주었다.

그는 특히 비극예술의 완성자로서 유명하다. 비극 경연에서의 1등 우승은 18회나 되었다고 한다. 극·송가·비가·잠언 등 123편의 작품을 썼다고 하나 현존하는 것은 7편이다. 그 밖에 다수의 단편(斷片)이 있다. 다승과 다작의 업적에 더하여 그는 희곡의 구성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진화 시키는 데도 일조 하였다.

그는 극에 있어서 3부극을 폐지하고 합창 대원을 늘리는 등 극의 단순성을 극복하였으며, 치밀한 구성, 완벽한 기교 등으로 비극을 완성시켰다.

그가 연극에서 추구한 것은 아이스킬로스와 같은 무한무궁의 확대가 아니라 인간의 운명이라는 것에 깃들인 무한한 깊이였다. 그는 세 배우를 등용시켜 동시에 대화를 갖게 함으로써 극을 진행시키는 기법을 비롯해서 소도구의 연구나 배경화 등을 채용했다고도 전한다.

당시 정치가 페리클레스에게 나는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의 적극적인 예술 진흥책이 없었더라면 소포클레스의 역작을 지금 우리는 볼 수 없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페리클레스는 당시 극장 개축이나 관람요금의 지급 등 문화진흥정책으로 아테네의 연극 활동은 황금시대를 맞이하였다.

소포클레스에 대한 많은 관련 자료 중 그가 추구한 극중 인물의 대립관계와 극 전개 기법에 대한 글이 있어 여기에 인용한다

소포클레스의 작품의 특색은 장대 화려한 것이 아니라, 정교 치밀한 대화를 통하여 모든 인물을 대조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이다. 인간을 단순한 입장의 노예로서가 아니라, 설사 입장을 같이하는 몇 사람의 인간 사이에도 개개의 인간 안에는 제거할 수도 없고 서로 나누어 가질 수도 없는 중핵적인 힘이 깃들어 있음을 객관적인 대화의 기법으로 지적한다. 그리고 드라마는(해야 할 행위에의 결의로 시작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한 영웅적 책임감으로 결정(結晶)되는 과정을 드라마라고 부른다면) 그 중핵적인 힘에 의해 지탱되고 있음을 나타냈던 것이다. <안티고네> <오이디푸스왕>과 같은 극작이 운명극이나 성격극으로도 해석되는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현존하는 소포클레스의 작품들

트라키니아 여인들

아이아스

안티고네

오이디푸스 튀라노스

엘렉트라

필록테테스

오이디푸스 콜로노스

 

소포클레스 (sophocles)

(저자에 대한 본문 설명)

 

□ 기원전 441년에는 장군으로 페리클레스와 함께 사모스에 원정했고 펠로폰네소스 전쟁 동안에는 니키아스의 동료로 다시 장군이 되었으며 시칠리아 원정 뒤에 일어난 나라의 위기에 맞닥뜨려서는 프로블로스로 선출되어 조국의 재건을 위해 힘썼다.

 

90세의 늙은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창작력은 조금도 쇠퇴하지 않았으니 걸작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그의 유작이다.

 

지은이는 무서울 만큼 깊이 파고 들어 인간과 신의 상극을 추구하고 있다. (p. 191~193)

 

Ü 마찬가지로 소포클레스 또한 전쟁의 시대에 문학을 이야기하는 위대함을 보인다.

 

오이디푸스 왕

 

□ 극에서 무서운 것은 소포클레스의 다른 극에서도 그렇듯 사람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신들의 길이다. 이오카스테의 온갖 선의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의 신은 냉혹하고 무정하게 자기의 길을 달성한다. 특히, 무서운 것은 신의 의지가 분명하게 미리 표시되고 그것을 피하려는 노력이 모두 허사로 돌아가는 일이다. 신들 세계의 거대한 톱니바퀴는 소리 없이 돌아가 보잘것없이 작은 인간은 모두 그 속에 휘말려 들어가 버린다. 소포클레스는 마치 인간의 모든 덕의 무가치함을 나타내려 하고 있는 것만 같다. (p. 194)

 

□ 오이디푸스는 숙명론자는 되지 않았던 것이다. 조용한 체념 같은 경지에는 결코 편안히 들어앉지 못한다. 신들의 길은 신들의 길이고 사람인 나는 나대로 꿋꿋이 걸어가겠다고 외치고 있는 것 같다. 소포클레스의 무서울 정도의 사람으로서의 비애와 용기가 이 불운한 왕을 통해 우리에게 육박해 온다.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적인 아름다움은 여기에 있다. (p. 195)

 

Ü 오이디푸스 왕에게 깨달은 자의 면모를 본다.

 

□ 오이디푸스 왕이 왕궁에서 나온다 (p. 196)

 

Ü 발단부터 주인공을 전면에 등장시켜 관객들을 집중시킨다.

 

□ 크레온 : 한 사람을 쫓아내거나 피를 피로 갚으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 피가 이 나라를 더럽히고 있으니까요.

왕이시여, 당신께서 이 나라를 이끌어가시기 전에는 라이오스 왕께서 이 나라의 지배자이셨습니다. 그분이 살해당하셨으니 이제 신의 분부는 분명합니다. 살해자들이 누구이건 그들을 벌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p. 198~199)

 

Ü 태연하게 극은 진행되지만 관객은 이미 긴장감을 감출 수 없는 대목이다.

 

□ 오이디푸스 :왕을 살해한 자가 누구이건 그자는 내게도 칼날을 돌릴 터이니 그러니 왕을 위한 일은 곧 나를 위한 일이다. (p. 200)

 

Ü 자신의 눈은 자신에 의해서 멀게 된다.

 

□ 테이레시아스가 한 소년에게 이끌려 들어온다. (p. 205)

 

Ü 테이레시아스, 눈먼 예언자는 아폴론의 신탁을 받아 오이디푸스의 운명을 알고 있으며 모두 본인에게 고한다.

 

□ 오이디푸스 : 돌에도 마음이 있다면 화를 낼 것이다.

테이레시아스 : 당신이 찾는 그 살인자는 바로 당신이란 말입니다. (p. 206)

오이디푸스 : 너는 끝없는 어둠으로 키워지고 있다. 그러니 너는 나나 그 밖에 햇빛을 보는 누구든 결코 해치지 못한다 (p. 207)

 

Ü 재미있고 멋진 표현들 속에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운명을 알아간다.

 

□ 왕께서 나의 눈먼 것을 모욕하셨으니 하는 말씀입니다만 당신은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얼마나 처참한 일에 빠져들어 있는지 어디서 그리고 누구와 함께 살고 있는지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p. 208)

 

Ü 이 부분은 정민의 한시미학산책에서 나오는 에피소드를 생각나게 한다. ‘오늘도 나는 앞이 안보인 채로 길을 나선다. 장에 들러 필요한 물건을 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눈이 떠졌다. 세상에 태어나 내가 본 것이라곤 어두컴컴함  뿐이었는데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기쁘다. 늘 소리로 분간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북적대는 장터의 모습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 조금은 다르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쁜 소식을 가지고 이제 집으로 달려갈 일만 남았다. 그런데 집으로 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난 어디로 가야하며,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전혀 모르겠다. 무서웠다. 눈물이 났다. 지나가던 선비를 붙잡고 하소연을 했다. 자초지종을 다 들은 선비는 내게눈을 다시 감아보세요.”라고 했다. 다시 눈을 감았다. 집에 가는 길이 보였다. ‘ [연구원 최세린의 칼럼에서 인용했다]

 

□ 오이디푸스 : 이놈의 이런 괘씸한 말을 듣고도 참아야만 할까, 나가 죽어라, 어서 없어져라, 이 집에는 다시는 발걸음 하지마라.

테이레시아스 : 누가 오고 싶어 왔나. 불러서 왔지 (p. 208)

 

Ü 빵 터졌다.

 

□ 테이레시아스 : 밝았던 눈은 멀고, 부유했던 몸은 비렁뱅이가 되어, 지팡이에 의지해서 낯선 땅을 헤매고 다니게 될 겁니다. 그리고 함께 사는 자기 자식들의 형제이자 아비, 자기를 낳아 준 여자의 아들이자 남편, 아비의 침실을 이어받은 자, 그리고 아비의 살해자임이 밝혀질 것입니다. 그러니 안으로 들어가셔서 이 말을 잘 생각해 보십시오. (p. 209)

 

Ü 이 대사를 읽는 나는 역사적이다.

 

□ 크레온 : 악인을 덮어놓고 선인이라고 말하거나 선인을 악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같이 옳은 일이 못 됩니다. 진정한 친구를 버리는 것은 자기가 가장 아끼는 생명을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오직 시간만이 옳은 사람을 가려내 주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악인은 단 하루 만에 드러나고 맙니다.

오이디푸스 : 은밀한 음모자가 급하게 다가올 때에는 이쪽도 급히 대책을 세워야 한다. 주저앉아서 기다리고만 있으면 그의 음모는 이루어지고 나는 망한다. (p. 214)

 

Ü 삶의 통찰이 배어나는 대사다. 그러나 왕은 조급하고 두렵다. 두려워서 난폭하고 약하여서 용서가 없다. 판단은 흐려지고 무너지기 시작한다.

 

□ 크레온 : 가렵니다. 왕은 잘못 생각하셨지만 이 사람의 눈으로는 내가 옳습니다. (p. 216)

 

Ü 목숨을 내놓고 간언하는 자의 진정한 자세다.

 

□ 오이디푸스 : , 맙소사! 당장 무서운 저주 속에 스스로 이 몸을 던지고 있으면서도 그걸 모르고 있었구나 (p. 218)

 

Ü 운명적인 장면이다. 이제 오이디푸스는 알았다. 역사적이다.

 

□ 오이디푸스 : 내가 삼거리에 다다랐을 때 ~ 나는 그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말았소 (p. 220)

 

Ü 이 장면이 영화로 제작되어 스크린에 나왔다면 삼거리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난 다음의 모습과 지금의 오이디푸스 왕의 모습을 오버랩하며 클로즈업해 나가겠다. 그 비장하고 잔인함을 부각시킬 수 있겠다.

 

□ 사자 : 바로 그 운명 때문에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답니다. (p. 227)

 

Ü (pod), 부어서 (oidein)= 오이디푸스

 

□ 이오카스테 : 제발 당신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시거든 그렇게 들춰내는 일은 그만두세요. 이젠 더 견딜 수가 없군요 (p. 227)

 

Ü 오이디푸스의 아내이자 어머니 이오카스테가 드디어 사실을 알았다. 그녀의 괴로움도 만만치 않았을 것을. 곧 바로 자결한다.

 

□ 오이디푸스 : 아 모든 것이 분명해졌구나 모든 사실이! 오 빛이여 다시는 너를 보지 못하게 해 다오. 이 몸은 저주스럽게 태어나서 저주받은 혼인을 하고 해쳐서는 안 될 분의 피를 흘렸구나 (p. 231~232)

 

□ 사자 :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저주받게 한 그 아들, 그 엄청난 아들을 말입니다. 불쌍하게도 남편에게서 남편을 자식에게서 자식이라는 이중의 출산을 본 그 혼인을 통탄하셨습니다.

 

왕은 당신의 두 눈알을 콱 찌르시고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내게 덮친 수많은 재앙, 내가 저지를 수많은 죄업을 보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다. 내가 보아서는 안 되었던 사람을 보고 내가 알고 싶었던 사람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했던 너희들은 이제부터는 영원한 어둠 속에 있을 것이다.’ (p. 234)

 

Ü 오이디푸스는 신이 부여한 운명을 강하게 부정했던 것 같다. 운명이 운명대로 흐르도록 놔 두질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기 위해 자신의 눈을 찌르지 않았겠나. 인간으로서 감당하지 못할 큰 고통을 겪고도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기를 소원하고 있다. 운명이라는 것과 맞짱 뜨고 있는 인간이다.

 

□ 코러스 :

아 슬프다, 재앙의 이 몸!

나는 어디로 가나?

내 목소리기 지향없이 날아가다니!

아아, 내 운명이여. 너는 어디로 가느냐? (p. 235)

 

Ü 이제 진정한 인간 오이디푸스의 생이 시작되리라. 불안하지만은 않다.

 

□ 오이디푸스 : 나를 낳은 사람의 남편이라고 불리지도 않았겠지.

그러나 지금은 신들에게서도 버림받은 자

부정한 어머니의 아들

이 불행한 나를 낳은 아버지의 침실을 이어받은 자

비통한 것 중에도 비통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오이디푸스의 운명이다. (p. 237)

 

오오 운명의 결혼이여, 너는 나를 낳고 나를 낳았으면서도 다시 같은 사나이의 씨를 받았다. 아버지와 형제와 자식, 그리고 새색시와 아내와 어머니, 육친끼리 피를 섞는 죄를 낳았다. 그렇다. 인간 세상에 다시없이 더러운 죄업이로구나. 그러나 더러운 일은 입에 올리기조차 더럽다.(p. 238)

 

Ü 금기와 터부에 대한 인간 심연의 물음. 신이라는 이름으로 통제되던 모든 의식과 삶의 양식, 그 갑갑하고 숨 쉴 수 없는 억압에서 자유를 느끼기 위한 인간 본연의 발버둥. 관객들은 오이디푸스를 통해 안타까움과 혐오를 느꼈겠지만 한편으로 카타르시스를 맛 보았을 것 같다.

 

□ 크레온 : 무엇이고 뜻대로 지배하실 생각은 마십시오. 모처럼 손에 넣으신 권세도 평생을 따르진 않았으니까요. (p. 241)

 

Ü 지금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곧 떠날 권위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가. 항상 반대의 더 강한 권위가 있음을 알자.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희곡은 전체적인 구성이 매우 치밀한 것 같다. 2500년 전의 일이라 믿기지 않는다. 논리적인 극의 전개는 지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놀랍다.

그런데 왜 소포클레스는 이런 경천동지할 상황을 희곡의 소재로 상정했을까. 이야기의 완성도에 대해서 1차적인 감탄을 한 후에 이런 의문이 따라온다. 혹시 사회적으로 나올 수 밖에 없는 필연성은 있지 않았을까.

잦은 전쟁으로 사망자가 늘어나고 특히 남자의 성비가 전체 인구에 비하여 현격하게 낮아졌을 것이다. 이에 따라 이러저러한 일들이 생겼을 것이고 불륜과 폐륜의 예도 비교적 빈번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그렇다면 위 주제는 관객들에게 전혀 낯선 소재는 아니었을 수도 있지 않았겠나. 공감을 얻어낸 주제일 수 있겠다.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 테베 사람인 크레온을 포악한 지배자로 그리고 가엾고 힘없는 오이디푸스의 두 딸을 폭력으로 빼앗으려다 아테네 왕 테세우스에게 저지된다는 줄거리는 이 극을 쓸 그즈음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 쪽과의 전쟁에서 바야흐로 패배하려 하고 있던 비운에 대한 시인의 애국심의 발로라고 볼 수도 있다. (p. 244)

 

Ü 시대적 상황이 극의 내용에 충분히 반영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결국 우리는 2500년 전의 정치, 경제, 사회적 우연의 소산으로 오늘 이 글을 접하고 있다. 우연이 아닌 것이 없다. 2500년 동안 그 우연이 흘러 내 방, 이 밤, 이 책이 함께한다. 緣起란 참.

 

□ 아버지의 복수를 위하여 어머니를 죽인 오레스테스의 추구에 실패한 뒤 에우메니데스(호의 있는 자)라는 이름 아래 콜로노스에 모셔졌으나 마찬가지로 모르고 그랬다고는 하나 어버이의 피를 흘린 오이디푸스가 이 여신들의 신역 속에 영원한 안주의 장소를 발견한 것은 우연일 수 없다. 영웅의 시체가 수호 역할을 한다는 신앙은 오이디푸스 이외에도 있으므로 신기하지 않지만 이것이 이 여신들과 관계되어 있는 점에 특별한 의의가 있다고 생각된다.

 

소포클레스는 신들의 길이 인간의 어떠한 생각도 뛰어넘는 무서운 것이라는 점을 깊이 생각한 시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마지막에서 시인은 오이디푸스를 신들과 화해시켰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 화해는 신들 쪽에서 제의한 것이며 오이디푸스는 끝까지 의연하게 자기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소포클레스가 생각한 길도 여기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가 그리 어둡고 무서운 내일이라는 날에 대해 아무 안심도 가질 수 없는 인간의 덧없음도 이 인간성의 강함을 통해 버티어지고 있다. 인간은 신들에게 굴복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p. 244)

 

□ 무대

아테네의 중심인 아크로폴리스에서 서북쪽으로 2킬로미터쯤 떨어진 에우메니데스 여신의 성지인 코로노스의 조그만 숲 앞.

 

앞을 못 보는 오이디푸스가 안티고네에게 이끌려 왼편에서 등장

 

오이디푸스 : 앞 못 보는 이 늙은이의 딸 안티고네야. 우리는 어느 곳에 어떤 사람들의 나라에 와 있느냐? 떠돌아다니는 우리에게 오늘은 누가 얼마 안되는 동냥이나마 줄까? (p. 245~246)

 

□ 오이디푸스 : 조금만 친절하게 해 주면 큰 이득이 있을 거요.

콜로노스 사람 : 앞 못 보는 사람에게서 이득은 무슨 이득? (p.248)

 

Ü 빵 터진다.

 

□ 안티고네 : 아버지, 이 고장의 풍습에 따라야 합니다. 이런 경우엔 굽히기도 하고 귀를 기울이기도 해서. (p. 251)

 

Ü 안티고네의 현명함이 묻어나는 대사다.

 

□ 이스메네 :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번 신탁으로

오이디푸스 : 그 신탁이란 무엇이냐? 얘야, 어떤 예언이었더냐?

이스메네 : 아버지께서는 살아 계셔서나 돌아가셔서나 그 땅의 사람들이 자기들의 행복을 위해서 찾는 분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오이디푸스 : 나 같은 사람이 누구의 도움이 된다던?

이스메네 : 그들의 힘은 아버지께 달렸다던데요. (p. 258)

 

Ü 오이디푸스가 새로운 신으로 등극을 예고하는 순간이다.

 

□ 오이디푸스 : 나는 이 비참한 몸을 당신에게 선물로 바치려고 왔습니다. 보기엔 별로 신통치 않지만 거기서 생기는 이득은 아름다운 모습보다 훨씬 좋습니다.

테세우스 : 무슨 이득을 가져왔다는 겁니까?

오이디푸스 : 머지않아 아시겠지만 아직은..

테세우스 : 그렇다면 그 혜택이란 언제 밝혀지겠소?

오이디푸스 : 내가 세상을 떠나고 당신이 나를 묻어줄 때. (p. 264)

 

Ü 신이 정한 자신의 운명에 대해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만 자기 운명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 오이디푸스 : 당신이 앞에서 한 약속만은 지켜주시고 그렇게 하시면 신의 말씀에 거짓이 없는 한, 공연히 오이디푸스를 받아들여 이 땅에 살게 한 것이 조금도 이롭지 않은 일이었다는 말을 듣지는 않을 것입니다. (P. 265)

 

□ 오이디푸스 : 네가 날 데리러 온 것은 고국으로 데려가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경 가까이에 두어서 네놈의 나라가 이 나라로부터 봉변을 무사히 면하기 위한 것이다. (P. 270)

 

Ü 콜로노스 즉 아테네에 있는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위정자에게는 군사적 요충지와도 같은 역할이다. 힘의 완충지역 역할을 해낼 것이라는 판단. 전쟁의 빌미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전략적인 존재다.

 

□ 크레온 : 당신 딸 중의 하나는 벌써 잡아서 보냈고 또 하나도 곧 데려가겠소

오이디푸스 : , 이런!

크레온 : 곧 더 기막힌 일이 있을 게요.

오이디푸스 : 내 딸을 잡았단 말이냐?

크레온 : 이제 곧 이 딸도.(P. 271) Ü 그 딸은 안티고네다

 

□ 크레온 : 옳기만 하면 약자도 강자를 이긴다 (P. 274)

 

□ 오이디푸스 : 자기 아들의 손에 죽을 운명이 신탁으로 그 아버지에게 왔더라도 그때 아직 아버지에게서도 어머니에게서도 삶을 얻지도 않고 태어나지도 않은 내가 그처럼 죄인이라고 비난 받아야 할 까닭이 있을까? (P. 276)

 

Ü 맞다. 오이디푸스는 제 부모를 선택하지 못하고 결정하지 못한다. 운명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다면 잉태하기 전에 이미 결정 되어진 일로 오이디푸스에게 과오를 물을 수는 없다. 아래에 이어지는 대사는 신에 대한 오이디푸스의 그러한 원망을 정확하게 말하고 있다.

 

□ 지금 여기 누군가가 다가와서 정의로운 너를 죽이려고 한다면 너는 그 살인자가 아버지인지 아닌지 물어보겠는가? 너도 목숨이 아까운지라 그 죄인에게 덤벼들지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 하고 이유 따위를 찾고 있진 못할 것이다. 내가 빠진 재앙도 그것과 같다. 빠뜨린 것은 신이다. (P. 277)

 

□ 코러스 :

적당한 수명에는 만족하지 않고

더 오래 살고 싶어하는 사람은

내가 보기에는 참으로 어리석은 자이다.

오래 살면 기쁨보다

슬픔이 많고

지나치게 오래 살면

어디서도 즐거움은 없다.

마지막으로는 구원의 손길이 누구에게나 고르게 나타난다.

결혼의 축가도 칠현금의 소리도 춤도 없이

하데스의 운명이 나타날 때,

분명 마지막은 죽음이다. (P. 283)

 

□ 사자 : 여러분, 오이디푸스님께서 돌아가셨다는 보고입니다. 이 사건은 짤막하게 이야기할 수도 없고 또한 거기서 일어난 일도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P. 293)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다른 이의 부축을 받지 않고 자신이 우리를 인도해서 그분이 여길 떠난 것은 당신도 여기 계셨으니 아실 것입니다.

 

얘들아, 오늘 너희들의 아비는 이 세상을 떠난다. 내 모든 것은 끝이 났고 앞으로는 나를 봉양

위해서 너희들은 더 고생을 안해도 될 것이다. 얘들아, 무거운 짐이었지. 그러나 단 한 마디가 이

모든 고생을 풀어준다. 나만큼 너희들을 사랑한 사람은 없으니까. (P. 294)

 

Ü 신에 의해서가 아닌 자신의 자의적 선택에 의한 종말이다. 죽기 전 마지막 말은 어느 사람이든 참 착한 것 같다.

 

□ 사자 : ‘얘들아, 각오를 하여 이곳을 떠나고 보아서 안 될 것을 보거나 들어서 안 될 것을 들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어서 속히 떠나거라. 다만 허락된 왕께서만은 여기 남아 계셔서 일어나는 일들을 직접 보아 주십시오.’

 

왕께서는 땅에 입맞추시고 동시에 신들의 자리인 올림포스를 향해서 손을 치켜들고 기도드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분이 어떤 운명으로 돌아가셨는지 테세우스님 밖에는 아무도 말할 수가 없습니다. (P. 295) Ü 신의 자리로 들어가 앉은 것인가.

 

□ 테세우스 :

그분이 잠드신 성스러운 무덤에 대해

아무 말도 해선 안 된다고

이 약속을 잘 지키면

이 나라는 언제나 태평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에 대한 내 맹세는 저 신과 제우스의 시종인

온갖 것을 보살피시는 호르코스도 들으셨다. (p. 299)

 

Ü 호르코스는 서약한 것을 감시하는 신이다. 이 부분에 대한 내용은 앞서 244페이지의 설명부분이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소포클레스는 신들의 길이 인간의 어떠한 생각도 뛰어넘는 무서운 것이라는 점을 깊이 생각한 시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마지막에서 시인은 오이디푸스를 신들과 화해시켰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할 점은 이 화해는 신들 쪽에서 제의한 것이며 오이디푸스는 끝까지 의연하게 자기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소포클레스가 생각한 길도 여기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가 그리 어둡고 무서운 내일이라는 날에 대해 아무 안심도 가질 수 없는 인간의 덧없음도 이 인간성의 강함을 통해 버티어지고 있다. 인간은 신들에게 굴복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이 책의 p. 244)

 

사족을 덧붙이자면 신에게 운명이라는 매개로 능욕당하지만 끝내 극복한 인간의 모습을 오이디푸스에 녹여 놓은 것이 아닐까 한다. 차마 일어설 수 없는 고통은 가족이라는 가장 밑바닥의 금기, 태어나 처음으로 맞는 억압에 두고 시련을 당한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의연하게 인간의 모습을 지키며 신이 하는 일에서 인간이 하는 일로 삶을 전환시킨다.

오이디푸스는 내적 고통의 극한을 경험한 인간상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가고 변화시켜 나가는 동력으로서의 인간상이다.

 

안티고네

 

□ 기원전 441년이나 442년에 상연한 것으로 지은이가 쉰서너 살 때 쓴 것이 되므로 원숙기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어떤 뜻에서 이것은 문제극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인위법과 자연법, 인간이 제정한 법칙의 힘과 신이 또는 인성이 스스로 구하는 것과의 대립이라고도 할 수 있다. 또는 불관용에 대한 훈계라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왕에 대해 안티고네가 하는 말 우리는 서로를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도록 다같이 사랑하도록 태어났습니다. 우리의 천성은.’

 

전적인 아테네 휴머니즘의 고백이며 주장이 되고 있음은 읽어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p. 302)

 

□ 무대

테베 궁전 앞 광장. 시간은 전투가 있었던 다음 날 이른 새벽. (p. 303)

 

□ 안티고네 : 네가 싫건 좋건 네게도 오빠가 아니냐? 나는 오빠를 결코 배반하진 않겠어.

이스메네 : 어떻게 감히 그렇게. 크레온 왕께서 금하고 계신데.

안티고네 : 그분에겐 내 혈육을 내게서 떼어놓을 권리가 없거든.

이스메네 : 우리는 여자로 태어났어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해요. 남자와 싸우도록 타고 나지는 않았어요. 게다가 우리보다 강한 힘의 지배를 받고 있어요. 그래서 이런 일들만이 아니라 이보다 더 지독한 명령에도 복종해야 해요.

안티고네 : 살아있는 사람 보다는 죽은 사람들을 섬겨야 하는 동안이 더 길단다. 이젠 가서 내가 좋아하는 오빠 위에 흙을 덮어 드려야겠다. 어쨌거나 비루하게 죽는 일보다 더 무서운 일은 당하지 않을 테니까. (p. 305~306)

 

Ü 안티고네는 죽음 앞에 한치의 망설임이 없다. 어기차고 단단한 사람이다.

 

□ 크레온 : 네가, 거기 고개를 숙이고 있는 네가 그런 짓을 했느냐 안 했느냐?

안티고네 : 했어요. 안 했다고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인간의 어떤 생각도 두려워하지 않는 내가 신들 앞에서 인간의 법을 어긴 죄인일 수는 없어요. 나는 그런 운명을 당한 것이 조금도 괴롭지 않아요. 그보다 나의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사람이 죽었는데도 장례도 치러 주지 못한 채로 버려 둔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슴 아픈 일이지요. 이번 일로는 괴롭지 않아요. 내가 이번에 한 일을 어리석게 보신다면, 어리석은 눈에는 어리석게 보일는지도 모르지요 (p. 316~317)

 

Ü 안티고네는 당당하다. 어떤 권위에도 굴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자신이 세운 자신만의 기준을 따르기 때문이리라.

 

□ 크레온 : 원수는 죽어서도 결코 친구가 못 된다.

안티고네 : 나는 서로 미워하는 게 아니라 서로 사랑하도록 태어났어요. (p. 318)

 

Ü 불관용에 대한 훈계

 

□ 이스메네 : 하지만 아드님의 약혼자를 죽이실 셈인가요?

크레온 : 그가 씨받이할 밭은 얼마든지 있다.

이스메네 : 하지만 그분과 언니만큼 굳게 맺어진 사이는 있을 수 없어요.

크레온 : 나는 못된 며느리는 질색이다.

 

Ü 사회적 통념을 볼 수 있는 것 같아 적어 둔다. 그 시절 여성의 지위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사고 아울러 가족관계에서 며느리라는 지위 그러니까 남성 우위의 사회에서 남성의 보조역할을 수행하는데 그치고 있는 가족 내 여성에 대한 지위를 알 수 있다.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다.

 

□ 크레온 : 집에서 잠자리를 함께하는 악처는 품 안에서 이내 차가워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나 스스로를 국민들에게 거짓말쟁이로 만들기는 싫다. 그년을 죽이고 말겠다. (p. 323)

 

□ 하이몬 (크레온의 아들이자 안티고네의 약혼자) :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여러가지를 배우고 때에 따라 굽히는 것은 조금도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사정없이 쏟아져 내려가는 물가에서 거기에 굽히는 나무는 잔가지 하나도 꺾이지 않지만 고집 센 나무는 뿌리째 뽑혀서 쓰러지고 맙니다.

아무쪼록 노염을 푸시고 생각을 돌려 주시기 바랍니다.

크레온 : 그래 이나이에 내가 이런 풋내기들에게서 사리를 배워야 한단 말인가?

하이몬 : 한 사람의 소유물이라면 그건 국가가 아닙니다.

크레온 : 국가가 통치자의 것이 아니란 말이냐?

하이몬 : 사람이 하나도 없는 사막을 혼자서 훌륭하게 다스리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크레온 : 말 다 했느냐? 올림포스의 신들 이름을 걸고 두고 보자. 나에 대한 그 비방의 말을 뉘우칠 때가 있을 게다! (p. 324~326)

 

Ü 하이몬의 국가론이다. 민주주의를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다. 크레온은 매우 관료적이고 권위적이다. 오늘날 쇠퇴를 거듭하는 회사의 CEO와 닮아있다.

 

□ 안티고네 : , 무덤이여, 새색시의 신방이여, 깊이 팬 영원한 감옥이여, 그곳으로 나는 내 친형제를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P. 330) Ü 무덤과, 신방, 감옥. 이 것들을 병렬로 연결하여 말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 사자 : 아가씨는 가는 끈으로 목을 졸라매고 숨져 있었습니다.

그러자 불쌍한 왕자님은 흥분한 채로 그 즉시 온몸으로 칼 위에 엎어져 칼은 절반이나 옆구리를뚫고 튀어나왔습니다. 그리고 아직 숨이 있는 동안 그 아가씨를 억지로 껴안고 숨을 헐떡거리면서 그 아가씨의 핼쑥한 볼에 왈칵 피를 토했습니다 (P. 339~340)

 

Ü 변신이야기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사랑하는 애인의 손수건이 사자의 피로 물들어 있자 이내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도 자결한다. 그러나 애인은 죽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으로 인한 오해로 애인이 자결한 것을 알게 되자 자신도 자결하고 사랑을 확인한다. 이 두 애인이 죽은 자리에 뽕나무가 자라고 그 열매 오디를 맺었다. 이 오디가 익으면 붉은 색깔로 변하는 것은 신들이 이 연인들의 기도를 들은 증거다.’ (변신이야기 p. 159~161 요약)

 

□ 코러스 :

아 우둔한 마음, 죽음을 부르는

고집스러운 마음의 죄여!

, 같은 피를 나눈 죽인 아버지와

죽음을 당한 아들을 보라!

, 맹목적이었던 비참한 나의 생각이여!

, 아들아 젊어서 죽은 너.

아아, 너 때문이 아니라 내 우둔함 때문에

너는 이미 죽어 넋이 날아갔구나! (P. 340~341) Ü 뒤 늦은 아비의 후회

 

□ 사자 : 왕비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여기 있는 이 시신의 친어머니께서 아, 가엾은 분, 방금 당한 충격 때문에. (P. 341)

 

□ 코러스

지혜야말로 으뜸가는 행복

신들께 향한 공경은 굳데 지켜져야 한다.

오만한 자들의 큰소리는 언제나 큰 천벌을 받고,

늙어서나 지혜를 깨닫는다. (P. 343)

 

Ü 2500년 전 인류가 이야기하는 말을 읽어내는 것 자체가 지금 나는 경이롭다. 소포클레스가 남긴 말 중에 내가 그냥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워한 내일이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다소 상투적인 말로 치부했었는데 이 말과 그의 생애와 그의 작품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지금은 그 말이 이렇게 가슴에 와 닿을 수 없다. 시간의 자장 안에서 그는 발버둥 치는 인간의 모습들을 눈물겹게 바라보고 난 뒤 그것을 쓰다듬고 치유하려 이 작품을 남긴 것 같다.

 

엘렉트라

 

□ 내용으로 보아 초기의 작품이라는 것은 큰 무리가 없는 것 같다.

 

□ 이 작품은 아이스킬로스의 3부작 오레스테이아의 제2부인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과 같은 이야기를 다룬 것으로 고전 작가들은 같은 전설을 가지고 저마다 개성이 강한 창작 세계를 열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표면적인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 극 가운데에서 어머니와 딸의 대화로도 알 수 있지만 맏딸 이피게네이아를 트로이 원정길에서 풍랑을 피하기 위하여 아버지가 희생물로 바친 데 대한 어머니의 원한이라는 것이 근본적인 동기가 되고 있다. 아가멤논이 트로이의 공주를 사랑한 일이 아내의 복수심에 불을 질렀다고 전해지고 있다. (P. 345)

 

□ 소포클레스는 이 작품에서 냉혹할 만큼 자기 감정을 감추고 극 속의 인물들은 마치 돌조각처럼 끄떡도 않고 있다. 지은이의 체온 같은 것은 느껴보기 어렵다. 그것은 이 작품을 꿰뚫는 것이 어디까지나 정의(Dike)이기 때문인 것 같다. (p. 346)

 

□ 무대

미케네의 언덕 위 전왕 아가멤논의 궁전 앞, 해뜰 무렵.

오레스테스, 친구 필라데스와 늙은 종과 함께 등장. (p. 346~347)

 

□ 오레스테스 : 오레스테스는 피톤에서 경기가 있었을 때, 달리는 마차에서 굴러떨어져 비참하게 죽었다고 알려주게. (p. 348)

 

□ 스스로 제 새끼를 죽인 꾀꼬리처럼 (p. 349)

 

Ü 각주) 아테네 왕 판디온의 딸인 프로크네가 트라키아 왕 테레우스와의 사이에서 이티스를 낳았다. 그런데 테레우스가 프로크네의 자매인 필로멜라를 사랑하여 서로 맺어진 것을 알고 이티스를 삶아 테레우스에게 먹였다. 두 자매는 도망 쳤으나 테레우스가 그것을 알고 도끼를 들고 뒤쫓아 잡힐 듯 했을 때, 신들께 빌어서 프로크네는 꾀꼬리, 필로멜라는 제비가 되었다고 한다.

 

□ 엘렉트라 : 죽음을 당한 자가 땅에 쓰러져

불쌍하게도 먼지가 되고 무가 되고

버려진 채 아무도 돌보지 않고

피의 앙갚음을 갚는 자가 없다면

이 세상에선 부끄러움도

신을 두려워하는 마음도 자취를 감출 거예요. (p. 354)

 

□ 엘렉트라 : 첫째로 나를 낳은 어머니의 소행이 나로서는 견딜 수 없이 싫습니다. 둘째로 제 집에서 자기 아버지를 죽인 사람들과 함께 살며 그들의 종살이를 하고 그들의 신세를 지는가 하면 그들 때문에 굶주리기도 합니다.

 

이 죄많고 가증스러운 년아, 아버질 여윈 게 너뿐이라더냐? 이 세상에 가까운 사람을 잃은 이

가 또 없는 줄 아느냐? 라고 악담을 합니다. (p. 354~355)

 

□ 엘렉트라 : 소중한 사람을 배신하라고 날 가르치려고 하진 마라.

크리소테미스 : 가르치는 것이 아니에요. 다만 강한 자에게는 굽히라는 거죠. (p. 358)

 

Ü 안티고네와 그의 여동생 이스메네의 성격과 매우 닮아 있는 것 같다. 서사적 설정이기도 하겠다. 아이스킬로스의 작품에서는 이와는 다른 캐릭터로 등장하였다.

 

□ 클리타임네스트라 : 네가 늘 슬퍼하고 있는 너희 아버지라는 사람은 헬라스 사람 중에서 자기만이 네 언니를 신들께 희생으로 바치고도 태연했단다. 그애가 태어났을 때 배아픈 고생을 나만큼 하지도 못한 주제에. (P. 361~362)

 

Ü 왕비가 나름의 지아비를 죽일 근거는 있었다. 전술했듯이 아가멤논이 트로이전쟁을 위해 항해하던 중 성난 바다를 잠재우기 위해 맏딸 이피게네이아를 신께 바친 일이다.

 

□ 엘렉트라 : 그래서라면 나쁜 년이건 입이 더러운 년이건 몰염치한 년이건 무엇이든 좋으실 대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세요. 제가 그런 일을 잘할 수 있는 여자라면 어머니 딸로서 부끄럽지 않을 테니까요. (P. 363)

 

□ 클리타임네스트라 : 오오, 제우스님, 이 일이 어찌 된 일이옵니까. 다행이랄까요, 무섭긴 하지만 이득이랄까요? 하지만 자기 불행으로 자기가 살아나다니 슬픈 일입니다. (P. 368)

 

Ü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는 슬픔과 기쁨이라는 두 감정 속에 잠시 표정관리 하고 있다. 판단의 유보다.

 

□ 코러스

지금은 그대가 비록 원수의 천대를 받고 있지만

원컨데 힘에서도 재물에서도

그대가 적을 누르고 살아가소서

그대야 말로 불우한 속에서

이 세상 최고의 법으로 보아

제우스 신께 대한 그대의 경건으로

가장 고귀한 영예를 얻고 계시니 (P. 377)

 

□ 클리타임네스트라 : (안에서) 아이구, 잘리고 말았다.

엘렉트라 : 또 한칼. 힘이 있다면 한번 더.

클리타임네스트라 : (안에서) 아악, 또 한 칼이….(P. 387)

 

□ 코러스

오오, 아트레우스의 후예여,

허다한 고난 끝에

이날의 계획으로 일이 이루어져

드디어 자유롭게 되었도다. (P. 391)

 

Ü 작품을 흐르는 전체가 매우 냉정한 감정이다. 사실과 무미건조한 행동을 묘사하고 대사를 나누지만 느낌은 의미심장하다.

 

신의 언어를 인간의 손으로 쓰다(저자에 대하여)

 

■ 에우리피데스 (Ευριπίδης)

에우리피데스.JPG

Euripides (BC 480~BC 406)

 

그는 인간을 깊이 아는 사람이다. 그가 표현하는 메디아와 펜테우스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의 깊이를 모두 드러낸다. 그의 깊이는 근세 유럽의 비극 문학에까지 영향을 주었다고 전해 질 만큼 깊은 모양이다.

 

에우리피데스 그는 아테네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마케도니아에서 죽었다. 아낙사고라스에게서 배우고 프로타고라스, 소크라테스와 사귀었다. 인류는 그에게 많은 빚을 졌다고 믿고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빚은 인간에 던져 준 갈등이다.

 

에우리피데스를 설명하는 글들을 인용한다 여러 작품에서는 야릇한 현실성 내지는 사실성의 무시와 강렬한 리얼리즘이 등을 맞대고 있어 독자나 관객을 불안한 긴장으로 감싸버린다. 허구다운 프롤로그에 역시 허구다운 신이 등장하는가 하면, 연애·질투·복수·간계·광기·비애와 같이 순수하고 인간적인 표정으로 감싸버린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있을 수 없는 장면에서 있을 수 없는 논쟁이나 비판이 사건의 흐름을 중단시키고, 보는 자와 보이고 있는 자와의 사이에 의식의 벽을 만드는 듯하나, 다시 격정으로 넘쳐흐르는 사건이 그 벽을 잊게 해버린다. <메데이아>이건, <히폴리토스>이건, 또는 <엘렉트라> <이피게네이아> <바카이> 등의 여러 작품에서도 이와 같은 격정적인 사건과 의식의 벽이 서로 부딪치는 충돌로 들볶여, 마지막엔 고즙(苦汁)처럼 남는 것이 모든 인간에게 있어 피할 수 없는 비애와 제신에 대한 분노이다.

이러한 작품의 상연은 작가 스스로 만든 것 이외에는 몹시 어려웠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 대사(臺辭)의 간명함과 인간성에 대한 깊은 통찰이 후세에 많은 독자를 매혹시키고 아리스토텔레스로 하여금 '가장 비극적인 시인(<시학> 1953 a 30)'이라고까지 평하게 한 까닭이 되었을 것이다.’

현존하는 작품들

안드로마케 (비극)

알케스티스 (비극)

헬레네 (비극)

박카이

엘렉트라 (에우리피데스)

헤라클레스 (비극)

헤라클레스 후손

메데이아 (에우리피데스)

이온 (비극)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타우로스의 이피게네이아

헤카베 (비극)

오레스테스 (비극)

트로이의 여인들

너그러움을 구하는 여인들 (에우리피데스)

페니키아의 여인들

히폴뤼토스 (비극)

레소스 (비극): 진위 불확실

 

에우리피데스 (Ευριπίδης)

(저자에 대한 본문 설명)

 

□ 그의 새로운 사상이 보수적인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웠기 때문 (p. 395)

 

□ 그의 작품이 다른 비극 작가보다 훨씬 많이 보존된 이유는 기원전 4세기 뒤의 압도적인 인기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얼마 안 되는 동안 세상의 유행이 뒤바뀐 것이다. 아테네의 정치 변화나 세상의 급격한 변화도 있었지만 역시 이 시인의 세상을 앞선 사상이나 취향이 생전에는 인기가 없었으나 죽은 뒤에 붐을 일으킨 주된 원인 (p. 396)

 

에우리피데스는 본디 명상적인 성격의 작가로 정치나 사교를 좋아하지 않았으며 가능한 한 고독 속에 있으면서 사색이나 극작에 몰두했다고 전해진다. Ü 이 사람 마음에 든다.

 

인습적인 것에 대한 합리주의적인 비판과 반발이 그의 작품 곳곳에 나타났고 이것이 보수파로부터 심한 반감을 사는 결과가 되었다. 특히 희극 작가의 심한 공격을 받은 것은 소크라테스의 경우와 매우 흡사하다 (p. 396)

 

□ 그러나 좀더 넓은 시야에서 본다면 새로운 문학 조류의 원대한 선각자였으며 그 점은 뒷날의 문학에 미친 그의 절대적인 영향력에서 가장 잘 엿볼 수 있다.

새로운 희극은 에우리피데스의 영향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로마 희극을 통해 근세 연극에 이어진다는 건 모두 아는 사실이다. (p. 397)

 

메디아(Medea)

 

□ 메디아는 기원전 431년 봄, 대 디오니시아 제전 때 상연되었다. 기원전 431년이라면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난 해이며 페르시아 전쟁 뒤로 한결같이 번영의 길을 걸어온 아테네에 점차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던 무렵이다. (p. 398) Ü 그 봄도 이와 같았을까. 다르진 않았을 것 같다. , 시간아~

 

□ 교활한 숙부 펠리아스의 권고로 아르고호 원정을 일으켜 북방의 코르키스 땅으로 황금 양털을 찾으러 갔던 이아손은 코르키스의 왕녀 메디아의 도움으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었으므로 그녀를 데리고 고향 이올코스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 숙부의 악의 에 대항해 마술에 능한 메디아를 통해 충분한 복수가 이루어진다. (p. 398)

 

Ü 변신이야기에서는 메디아메데이아로 표현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특히 지역에 대한 사전 지식이 중요하다 생각되어 당시 배경이 되는 지역을 인용한다.

메디아 배경지역.JPG

메데이아 신화와 관련된 지역

 

□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서 메디아에 대한 언급을 많이 볼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그 시대에 오늘날에 이르는 명성을 벌써 되찾고 있음을 느끼게 해 준다. (p. 399)

 

□ 무대

코린토스에 있는 메디아의 집 앞.

메디아의 유모가 혼자 서 있다. (p. 399~400)

 

□ 유모 : 이아손 서방님께선 아이들과 우리 아씨를 버리고 새 장가를 드셨으니 이 고을을 다스리시는 크레온 왕의 공주님을 배필로 맞으셨으니 말이야. (p. 400)

 

□ 선생 : 사람이란 다 그런 거라오. 그걸 이제 알았단 말인가요? 이치에 닿건 닿지 않건 사람이란 너나할 것 없이 곁에 있는 인간보다는 자기가 더 중한 법이라오. 그 때문에 이 아이들만 해도 이아손 서방님의 이번 혼사로 버림을 받게 된 것이라오. (p. 402)

 

□ 메디아 : , 저주스러운 아이들아, 저주 받을 어미의 자식들아,

망해 없어지거라, 너희 애비와 함께

집과 더불어 깡그리 모두. (p. 403)

 

Ü 이 대목은 복선이다. 아이들에게 좋지 않을 일이 곧 벌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메디아의 분노는 이 아이들을 죽일 만큼 컸다.

 

□ 보복이여, 남편이고 신부고 집이고

깡그리 망하게 하여 주소서.

오 아버지여 고국이여 무참하게도 동생을 죽이고 떠나온 이 몸. (p. 405)

 

Ü 변신이야기에서도 나오는 대목이다. 각주를 인용한다.

메디아는 고향을 버리고 떠날 때 남동생 압시르토스를 죽여 갈가리 찢은 시체를 버리고 추적자들이 그 시체 조각을 주워 모으고 있는 동안에 달아났다고 한다. 이 말에 대한 언급은 뒤에서도 볼 수 있다.

 

□ 코러스 :

호소받는 이는 제우스 대신의

비이신 테미스님, 맹세의 신.

바다 건너 그리스 나라로

어두운 밤의 파도를 헤치고

망망대해의 입구인 헬레스폰토스로

아씨를 모셔온 분이 바로 이 신이었으니.

 

□ 이 세상에 삶을 누리면서 생각을 할 수 있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비참한 존재가 바로 우리 여자들일 거예요. 첫째 만금을 쌓아 돈으로 남편을 사야 하고 그뿐인가요 몸을 바쳐서 그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곤란하니까요.

알지 못했던 생활습관 속으로 뛰어들어가 여자가 미리 가정에서 배워 보지 못한 일을 말하자면 어떻게 남편을 다루면 좋은지를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남자의 경우에는 집안 사람이 재미없어지면 밖에 나가 기분풀이를 할 수 있지만 우리 여자들은 오직 한 사람만을 보고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p. 408)

 

Ü 우리는 지금 이 말이 그리 터무니 없이 들리지 않는다. 상황이 이해가 되고 있음직한 일이며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럼에도 굳이 이 글을 인용한 이유는 이 글이 쓰여지던 때가 2500년 전이라는 점에서 나는 놀라웠기 때문이다.

 

□ 메디아 : 좋은 한 쌍입니다. 축하드리겠어요. 다만 저를 이곳에서 살게만 해 주세요. 높으신 분의 분부에만 따를 것이며 제가 어떤 봉변을 당할지라도 잠자코 있겠습니다. (p. 410) Ü 상황을 모면하려는 모양이다.

 

□ 메디아 : 자기 딸들의 손에 죽는 세상에도 끔찍한 죽음으로 펠리아스 왕을 해치워 그 집안을 멸망케 한 것도 바로 나였어요. (p. 415)

 

Ü 펠리아스에 대한 메디아의 복수다. 다시 젊어지게 하는 방법이라고 속여 펠리아스의 딸들에게 아버지를 토막내어 솥에 삶게 하였다.

 

□ 메디아 : 오오, 제우스님 당신께서는 진짜 황금과 가짜 황금을 구별할 수 있도록 분명한 증걱의 표시는 인간에게 가르쳐 주시면서 왜 인간의 선악을 가릴 수 있는 표시는 사람의 몸에 그려 놓지 않으셨나이까. (p. 416)

 

□ 메디아 : 잘 사는 것도 슬픔이 따르는 것이라면 싫어요. 마음에 고통을 주는 그까짓 재물 따위 아무리 많으면 뭘해요. (p. 418)

 

□ 코러스 대장 : 그렇다면 당신은 자식들을 죽이시려는 것입니까?

메디아 : 그렇게 하는 것이 남편을 괴롭히는 제일 좋은 방법이니까요.

코러스 대장 : 그러면 당신 역시 이 세상에서 제일 비참한 여자가 될 것입니다.

메디아 : 상관 없어요. (p. 426)

 

□ 메디아 : 저는 이 땅을 물러가겠습니다. 그러나 애들만은 당신 손으로 키우실 수 있도록 크레온님께 간청하여 추방을 면하게 해 주세요. (p. 430

 

□ 메디아 : 이 귀여운 손, 귀여운 입, 시원스러운 생김새하며 몸매, 행복해야 한다. 이승이 아니더라도 말이야. (p. 434)

 

□ 사자 : 방금 공주님께서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크레온 왕께서도 같이요. 아씨의 독약 때문에.

메디아 :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구나. (p. 436)

 

□ 메디아 : 그 아이들은 어차피 죽을 목숨이에요. 그렇다면 어미의 손에 죽는 것이 차라리 행복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니 마음을 돌 같이 먹고 (p. 439)

 

□ 이때 집 안에서 아이들의 비명이 들린다.

아이들 : 아아, 아아!

코러스 : (저마다) 들려요. 아이들의 저 외침 소리

아이들 : (하나씩) 아아, 어떡하면 좋아 어떻게 달아날까, 어머니의 손을. 나도 모르겠어, . 아아, 우리는 죽는다.

코러스 : (저마다) 안으로 들어가요. 저 아이들을 살려 줍시다.

아이들 : (하나씩) 제발 부탁이에요. 살려 주세요. 어서요. 아아, 칼이 다가와요. (p. 440)

 

□ 이아손 : 제발 부탁이니 아이들의 그 보드라운 살을 만지게 해 다오.

메디아 : 안 돼요. 아무리 사정해도 소용없어요.

 

메디아가 탄 수레, 점점 멀어져 간다.

 

이아손 : 제우스님, 들어 주소서.

이처럼 박대를 받고

자식을 죽인 얄미운 암표범으로부터

당하는 이 모진 수모를

이런 자의 손에 걸려 무참하게 죽을 바에야

차라리 애당초 태어나질 말 것을 아아, 불쌍한 아이들아.

 

이아손, 이렇게 말하고 땅에 엎드려 운다. (p. 445)

 

Ü 메디아는 자신의 공을 알아주지 못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한 자신의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신과 이아손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을 죽인다. 비극이다.

 

트로이 여인들 (Trojan Woman)

 

□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장 비극적이라고 부른 작가의 역량을 여기서 볼 수 있는 것 같다.

한 유명한 비평가의 말을 빈다며 가능한 모든 불행의 두려움이 모두 사라진 뒤에 찾아오는 일종의 평화 아니 영광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그 무엇인가가 이 괴상한 아름다움을 내뿜고 있다고나 할까.

 

멜로스 섬의 대학살이 일어나고 있다. 중립을 바란 이 작은 섬을 아테네는 부당하게도 공략하여 남자들을 몰살하고 부녀자를 모조리 노예로 팔아 넘기는 포학을 저질렀다.

 

시인은 트로이 삼부작을 통해 조국의 무도한 행위에 대한 항의와 경고를 했던 것이고 또 역사가 투기디데스는 이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포학함에 대한 신의 징벌을 시칠리아 원정의 실패에서 인정한 것으로 생각된다. (p. 447)

 

□ 시인은 아르키비아데스를 페리클레스의 후계자로 보고 큰 기대를 걸었던 모양인데 그 기대는 곧 어긋나고 말았다. 멜로스 섬의 학살에서도 아르키비아데스는 지도자적인 입장에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베토벤이 나폴레옹에게 느꼈던 것과 같은 환멸을 에우리피데스는 아르키비아데스에게서 맛보아야 했던 것이다. (p. 448)

 

□ 트로이 전쟁의 근본 원인이 된 트로이 왕자 파리스의 숙명적인 탄생과 이데 산 속에 버려졌으나 양치기가 주워서 길러 주는 바람에 다시금 운명의 장난으로 트로이로 돌아갔다가 파멸의 원인이 되는 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있다. 2곡은 트로이 전쟁 중의 한 삽화로서 그리스군 장수 팔라메데스가 그의 평화적이고 문화적인 성격에도 불구하고 간웅 오디세우스의 질투를 사게 되어 비명의 죽음을 당하는 이야기다. 트로이의 여인들은 삼부작의 끝 작품에 해당하며 트로이 성이 함락당하는 이야기다. (p. 448)

 

□ 이 극의 뚜렷한 특질로서 주목할 만한 것은 헤카베가 전편을 통하여 줄곧 무대 위에 있는 것, 바로 스타시몬(코러스가 노래를 부르는 부분)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퇴장하지 않고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같은 복선적인 내용 구조와는 완전히 대조적으로 액션이 단선적으로 진전되어 나간다 (p. 449)

 

□ 무대

먼동이 트기 전 트로이 성 밖의 그리스군 진영. 트로이 함락 직후의 정경이다. 천막 안에는 포로가 된 트로이 여인들이 수용되어 있다. 트로이의 왕비였던 헤카베만이 혼자 밖에 나와 슬픈 나머지 땅바닥에 꿇어 엎드려 비탄에 젖어 있는 모습이 보인다 (p. 450)

 

Ü 그리스 비극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무대나 제일 처음 나오는 장면 설명, 또는 맨 처음의 대사에서 대강의 줄거리와 서사 구조가 파악될 수 있도록 해 두었다. 친절하다.

 

□ 포세이돈 : 그건 아이아스가 카산드라를 강제로 그대의 신전에서 끌어 내려던 것을 말하는 거겠지 (p. 453)

아이아스_카산드라.JPG

솔로몬 조셉 솔로몬 작, 카산드라를 신전에서 끌어내리는 아이아스

 

□ 헤카베 : , 이 늙은 몸 어느 누구의 종이 될 것인가.

전에는 트로이 왕비로서

공경 받던 이 몸이.

 

□ 헤카베 : 불쌍한 내 딸 카산드라는 누구의 것으로 정해졌는지 들려 주구려.

탈티비오스 : 아가멤논 왕께서 원하시어 데려가게 되었소.

헤카베 : 오오, 그렇다면 스파르타 태생의 왕비를 섬겨야 한단 말인가. 원통해라.

탈티비오스 : 그런 게 아니오. 왕의 수청을 드는 일이오.

신들린 처녀에게 왕은 홀딱 반하신 거요. (p. 459)

 

Ü 클리타임네스트라를 말하고 있다. 결국 그녀의 손에 카산드라는 죽음을 맞는다.

 

□ 탈티비오스 : 따님은 행복하다고 생각하시오. 지금은 아무 고민도 없이 지내고 있소. (p. 460)

 

Ü 이 부분은 탈티비오스가 의도적으로 그의 딸 폴릭세네의 죽음에 대해 숨기고 있다. 극의 말미에 며느리 안드로마케로부터 그녀의 딸 폴릭세네의 죽음을 전해 듣게 된다.

 

□ 카산드라 : 반대로 트로이인들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더 없는 영예를 얻었어요.

어머니께서는 헥토르의 운명을 슬퍼하시지만 이렇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헥토르가 유례없는 영예를 남기고 죽을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가 쳐들어 왔기 때문이지요. 그렇지 않았더라면 그의 용맹도 빛을 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코러스 : 자신에게 내리덮칠 재앙을 어쩌면 이렇듯 태평스레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철없는 꿈 같은 말만 하고 계시네. (p. 464)

 

□ 안드로마케 : 어머니, 폴릭세네의 꽃다운 생명은 아킬레우스의 무덤 앞에서 죽은 자의 제물로 살해되고 말았습니다.

헤카베 : 아니, 뭐라고! 그렇다면 아까 탈티비오스가 수수께끼처럼 한 말이 바로 그 말이었구나.

안드로마케 : 제 이 눈으로 보고 왔습니다. 제가 수레에서 내려 시체에 옷을 덮어주고 명복을 비고 왔습니다. (p. 472) Ü 앞서 무덤지기라고 했던 탈티비오스의 의도적 숨김이 드러난다. 그런데 탈티비오스는 왜 거짓을 말한 걸까. 사실대로 말했어도 그에게는 아무런 해가 없었을 것이다.

 

□ 안드로마케 : 새로 시집가서 본남편을 잊어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주는 그런 여자는 질색입니다. 말도 못하고 이치도 모르는 인간에게는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짐승도 그러하거늘 (p. 473) Ü 당시의 엄격하고 패쇄적인 관념을 보여주는 대사다.

 

□ 탈티비오스 : 과감하게 이 끔찍한 소식을 알려 드리자면 이 아기를 죽이려 하고 있다는 것이오.

안드로마케 : 오오, 귀여운 내 아들, 다시없이 소중한 내 아들아. 너는 이불쌍한 어미를 남겨 놓고 적의 손에 죽어야만 하는냐. (p. 475)

 

□ 코러스 대장 : 아아, 비운의 트로이여, 단 한 사람의 여인과 그 흉측한 애욕으로 해서 얼마나 많은 귀중한 생명을 잃었던가.

 

□ 메넬라오스 : 오오, 화창한 이 햇빛, 오늘이야말로 내 아내 헬레네를 되찾을 수 있도다. 이제껏 이 메넬라오스는 물론 그리스 전군이 겪은 노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트로이에 온 것은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한 여자 때문이 아니라, 나그네로서 후하게 대접받은 은혜를 저버리고 내 집에서 아내를 앗아간 그 발칙한 사내를 응징하기 위해서였다. (p. 479)

 

Ü 전쟁은 한갖 치정에서 시작되었다. 역사는 참으로 어이가 없기도 하다.

 

□ 헬레네 : 먼저 불행한 이번 전쟁의 근본 원인은 파리스를 낳은 어머니에게 있다고 하겠습니다. 다음은 트로이를 망하게 하고 나를 이 지경에 처하게 한 노와 프리아모스가 아직 알렉산드로스라 불리고 있던 파리스를 갓난아기 때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반딧불만한 불씨가 모든 것을 태워 버리는 지경에 이르고 만 것입니다. (p. 481)

 

□ 헤카베 : 메넬라오스님, 나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그리스의 명예를 위해 정당한 길을 따라 당ㅅ니의 아내를 죽음에 처하십시오. 남편을 배반한 여자는 죽어서 그 죄를 씻어야 한다는 규칙을 다른 여자들에게도 보여 주십시오. (p. 484)

 

□ 헤카베 : 그렇다면 당신과 같은 배에 타게 해서는 아니 됩니다.

메넬라오스 : 그건 또 왜? 헬레네가 더 무거워지기라도 했단 말이오?

헤카베 : 한번 사랑을 한 자는 사랑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p. 485)

 

□ 코러스 대장 : 저걸 좀 봐요. 저건 그리스인들이 무참하게 탑 위에서 공처럼 떨어뜨린 아스티아낙스의 시신이 아닌가요. (p. 487)

 

□ 병사들이 어린아이의 시체를 가져간다.

그것을 보며 코러스가 노래 부른다.

 

코러스 : 아아, 이 아드님에게 평생의 소망을 걸었다가

온갖 희망이 허무하게 깨어진 어머니의 슬픔이 어떠하랴

고귀한 가문에 태어나

남들이 부러워하던 몸이었던 아드님이

이처럼 무참한 죽음을 당할 줄이야. (p. 491)

 

□ 헤카베 : 오오, 신들이여! 그러나 이제 신의 이름을 부른들 무슨 소용이랴. 지금껏 수없이 그 이름을 불러 기도하였건만 일찍이 들어준 적이 없는 신들이 아니었던가.

, 불 속으로 뛰어들어가자. 조국과 더불어 타 죽는다면 나로서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다. (p. 492)

 

□ 이 때 무서운 소리와 함께 성이 타서 무너진다.

헤카베 : 다들 들었는가. 저 소리를.

코러스 대장 : 저것은 트로이의 마지막 소리.

헤카베 : 흔들리고 흔들려서 트로이의 도성은

코러스 대장 :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간다.

 

출발을 알리는 나팔 소리 들려 온다.

 

헤카베 : 아아, 떨리는 이 발 길

우리 앞에 기다리는 건 무엇일까?

원통해라. 슬픈 예속의 나날

코러스 : 참혹한 조국 등뒤에 두고

아카이아의 배를 향해 우리는 간다. (p. 494)

 

바쿠스의 여신도들

 

□ 이 진보적 예술가이자 사상가였던 그에게 숙명이기도 했던 완강하고 사리에 어두운 보수파들로부터의 악의에 찬 비판과 비웃음이 세상 인심의 퇴폐와 더불어 더욱더 심해져 마침내 강인한 그의 정신력으로도 견뎌내기 어려울 만큼 시련이었을 것으로 상상된다.

 

바로 속세를 멀리 떠나 조용하고 편안한 나날을 보내려는 꿈을 현실의 마케도니아에 품고 아테네를 떠난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p. 497)

 

□ 주인공은 펜테우스다.

연애도 주신이 일으키는 열광도 마침내는 자연의 원소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힘을 넘어서므로 그 도량 앞에서 인간은 아무 힘이 없다. 따라서 그것은 또 인간의 윤리, 선의의 테두리 밖에 있는 게 된다. 그리스인의 신들에게 그리스도교나 불교의 신이나 부처 개념의 유추를 미치게 하는 오류를 여기서 세삼스레 느낄 수 있다. (p. 499)

 

Ü 이 부분은 나폴레옹의 말을 연상 시킨다. 조셉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 발췌한다.

나는 미지의 종국으로 (신에 의해) 떠밀리는 느낌을 받고 있다. 내가 그곳에 이르는 순간 내가 불필요하게 되는 순간 나를 갈가리 찢는 데는 한 입자의 원자면 충분하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인류가 힘을 모두 합치더라도 나를 해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신과 함께 하고 있으므로)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p. 97)

 

□ 무대

테베의 아크로폴리스 (카드모스 성이라 불린다). 배경은 궁전 정면을 나타낸다. 앞에 무덤이 있고 연기가 오른다. 무덤 둘레 울타리에는 포도덩굴이 엉켜 있다. (p. 500)

 

□ 디오니소스 : 저기 저 성 옆에 벼락으로 몸을 태운 내 어머니의 무덤이 보이는구나. Ü 세멜레를 말하는 것이리라.

이 테베에 사는 여인들은 늙은이, 젊은이를 막론하고 모두 나의 힘 때문에 미쳐서 집을 나가 버렸느니라.  (p. 501)

 

□ 예언자 테이레시아스, 바쿠스의 신도 차림을 하고 오른쪽에서 등장, 눈이 멀어서 소년에게 이끌려 온다.

테이레시아스 : 카드모스님이 연세가 많기는 하나 아무튼 우리 늙은이끼리 약속한 대로 영검한 지팡이를 들고 아기사슴 가족을 걸치고 머리에는 포도덩굴을 두르고 왔다고 전하시오. (p. 507)

 

□ 펜테우스 : 들리는 바에 의하며 리디아 땅에서 왔다는 수상한 마법사 녀석은 황금빛 머리칼에 향내를 풍기며 연분홍 볼에 음탕한 눈초리로 밤낮 가리지 않고 바쿠스의 은밀한 의식을 미끼로 처녀들과 정을 통하고 있다는구나

바쿠스축제.JPG  

[디오니소스 축제]

 

부디 그 덩굴 관을 벗고 지팡이를 버려 주십시오. 테이레시아스여, 이것은 분명 당신이 시킨 짓이 틀림없소. 늙은이라 눈감아 주지만 그렇지 않았던들 사악한 종교를 퍼뜨린 죄로 바쿠스의 여신도들과 함께 감옥에 끌려갔을 것이오.

 

코러스 대장 : 원 세상에 신을 보고 이런 무례한 말씀을 하시다니. 신은 물론 용의 어금니를 뿌려 용맹을 얻으셨다는 카드모스님 앞에서 두렵지도 않으신지. 에키온님의 아들로서 집안을 망신시키는 말씀을 하시다니. (p. 509)

 

Ü 펜테우스의 화살은 디오니소스 즉 바쿠스에 향해 있다. 그가 가진 신에 대한 증오는 어디서 비롯 되었을까. 나는 펜테우스에 시선이 간다.

 

□ 세멜레 아드님이 이번에는 포도 열매에서 액체로 된 음료를 만들어 인간에게 주셨습니다. 이 포도 액체가 모 안에 가득차 비참한 인간의 고뇌도 멈추고 나날의 노고를 잊게 하는 잠이 찾아옵니다. 걱정을 털어 버리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영약은 없습니다. 술이 바로 이 신의 본체라 한다면 우리 인간들이 신들 앞에 신주를 바쳐 행복을 얻는 것도 이 신 디오니소스의 덕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p. 510)

 

Ü 포도주 한잔에 디오니소스가 현현함을 느끼고 포도주 한잔에 신이 거함을 알라. 우리를 술 취하게 만드는 것은 술이 아니라 신이 하는 일이다. 술을 마시는 것은 신을 만나러 가는 것이고 술에 취해 비틀 거리는 것은 신과 함께 우주를 산책하며 걷는 일이니.

 

□ 카드모스 : 여신 아르테미스보다 사냥을 잘 한다고 뽐내다가 산골짜기에서 자기가 기른 사냥개에게 물려 죽은 악타이온을. 너는 그런 변을 당해서는 안 된다.

펜테우스 : 내 머리에 손대지 마십시오. 바쿠스를 숭상하려면 혼자 하십시오. (p. 511)

 

Ü 나는 왜 펜테우스가 멋져 보일까.

 

□ 디오니소스 : 당신의 무례한 갖가지 소행은 당신이 없다고 한 그 디오니소스께서 분명 처벌해 주실 것이오. 나를 포박하는 일은 바로 신을 포박하는 것이 되니까. (p. 518)

 

Ü 펜테우스는 말한다. 나에게 신은 없다. 멋져.

 

□ 소몰이 : 사람의 근심을 없애 주는 포도를 주신 분이 바로 이 바쿠스라 합니다. 이 세상에 술이 없으면 다른 어떠한 즐거움도 허무한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p. 527)

 

□ 디오니소스 : 나 같으면 인간인 주제에 신을 향해 화내고 무식한 항거를 해서 혼나기보다는 그 신께 귀의하여 희생의 제물을 바치겠습니다.

펜테우스 : 키타이론 산골짜기를 계집들의 피로 물들여 디오니소스에 대한 제물로 삼아 주지. 계집들에게는 그것이 알맞은 운명이리라. (p. 527)

 

Ü 펜테우스의 반골 기질이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그 의도는 별로 좋지 않아 보인다. 술에 대한 강박일까. 아니면 여인의 조신함과 정절에 대한 강박인가.

 

□ 디오니소스 : (나가려는 펜테우스 곁으로 다가가서 친밀하게)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전하께서는 산에 있는 여인들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습니까?

펜테우스 : 만금을 내고라도 보고 싶기는 하다.

디오니소스 : 어째서 그토록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펜테우스 : 술 취한 계집의 모습을 본다는 건 불쾌한 일이긴 하겠지만. , 그러나 아무래도 보고 싶구나. 나무 뒤에서 숨어서 보면 어떨까? (p. 528)

 

Ü 이건 코미디다. 펜테우스의 마초적이고 관음증적 편력이 희화화 되고 있는 것 같다. 솔직한 사람. 감정을 드러냄에 서투름이 없다.

 

□ 디오니소스 : 돌아오는 길은 다른 사람이 데려다 줄 것이오.

펜테우스 : 어머니일 게야.

디오니소스 : 그때의 모습은 모두의 눈을 휘둥그레 만들 것입니다.

펜테우스 : 그거야말로 내가 바라는 것이지.

디오니소스 : 그리고 사람의 손에 들려서 돌아오시게 될 것입니다.

펜테우스 : 호사스러운 일이로구나

디오니소스 : 그것도 당신 어머니의 손에 들려서

펜테우스 : 그건 너무나 황송하지 않은가?

디오니소스 : 그렇습니다. 황송할 만큼 좋은 일이 되겠습니다만. (p. 534)

 

Ü 이 대사는 긴장감 속에 앞으로의 일을 그대로 암시한다. ‘예고라는 기법이겠다. 탁월한 구성이다.

 

□ 사자 : 어머니 저예요. 에키온의 궁전에서 어머니께서 낳으신 아들 펜테우스입니다. 어머니 제발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제가 죄를 범하기는 했으나 그 죄 때문에 당신의 자식을 죽이지는 말아 주십시오.

불운하신 왕의 왼팔을 움켜잡고 그 옆구리를 발로 받치자 힘껏 잡아당겨 어깻죽지에서 팔뚝 하나를 쑥 뽑아 버리고 말았고. 그것도 거뜬히 아무 힘도 들이지 않고 말이오. (p. 539)

 

인간의 분수를 지켜 신에 관련된 일에는 조심하고 삼가는 게 제 일일 것 같소. 이것이 사람이 지켜야 할 가장 현명한 길이라고 나는 생각하오. (p. 539)

 

Ü 펜테우스의 어머니 아가베가 아들을 죽인다. 신에 대한 불경 때문이란다. 난처하다. 우리에게 이런 난처함을 선사함으로써 에우리피데스는 운명에 대한 가치를 고민하게 하는구나. 신을 믿어야 하나. 그냥 존재로만 인식하면 신에 대한 충분한 선물이 아닌가.

 

□ 카드모스 : 아가베는 미친 채로 도성을 향해 갔다고 들었다. , 그게 정말이었구나. 아가베는 여기 있지 않느냐. 차마 볼 수 없는 꼴을 하고서.

아가베 : 궁전 앞에 매달려고 이렇게 들고 왔어요. , 아버지께 드릴 테니 내 사냥 솜씨를 자랑하시고 친한 분들을 식사에 초대하세요. 정말 아버지는 행복하세요. 내가 이런 훌륭한 공을 세웠으니까요. (p. 542)

카드모스 : 이건 너무하구나. 하물며 우리와는 핏줄이 섞인 사이인데 이럴 수가.

 

Ü 아가베가 들고 온 것은 아들 펜테우스의 머리다.

 

□ 아가베 : 세상에 이럴 수가! 이건 내 아들 펜테우스의 머리

도대체 누가 내 아들을 죽였나요? 어떻게 또 이것이 제 손에?

카드모스 : 너와 네 자매들이 죽였지.

예전에 악타이온이 개한테 물려 죽은 바로 그 자리에서.

아가베 : 내가 왜 미쳐서 펜테우스를 죽였을까요? (p. 545)

디오니소스가 우리 가문에 내리신 복수는 너무나 가혹하군요 (p. 547)

 

히폴리토스 (Hippolytus)

 

□ 무대

트로이젠 궁전 앞 광장. 광장 양쪽에는 아르테미스 여신과 아프로디테 여신의 입상이 마주 보고 서 있다.  (p. 550)

 

□ 아프로디테 :테세우스의 아들, 아마존의 후손인 히폴리토스는 현자 피테우스에게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트로이젠에 사는 여러 무리 가운데 유별나게 저 혼자 만 나를 가장 악한 신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많은 신 중에서 유독 나만을. 그 사내는 사랑 따위엔 눈을 쳐들지도 않고 결혼을 업신여기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폴론의 누이 동생이며 제우스의 딸인 아르테미스를 여신 가운데 가장 위대한 여신으로 숭배하고 있다.

 

나는 이 두 사람에 대해 질투하고 있지는 않다. 내가 어찌 그럴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격으로 히폴리토스의 모욕을 받았으니 이제 나는 오늘 중으로 벌을 주지 않을 수 없도다. 사실 이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했는지도 모른다. (p. 551)

 

Ü 에우리피데스가 감정을 표출시키는데 능하다고 하는 이른 보면 그 방법이 매우 세련된 것을 볼 수 있다. 내면의 느낌을 정확히 짚어 내는 것 같다.

 

□ 히폴리토스 : 신이나 인간이나 제각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하게 마련이지.

시종장 : 당신께서 행복하게 되시길

(몸을 돌리면서)

히폴리토스 : 난 밤을 존경해야 하는 신은 싫단 말이야.

시종장 : , 제발, 신들에게는 예의를 갖추셔야 합니다.

(몸을 돌리면서)

히폴리토스 : , 가거라. 궁전으로 들어가 식사 준비를 해라. (p. 554)

 

Ü 몸을 두 번이나 돌리는 이 행동은 여러 말보다 확연하게 그의 의지를 말하고 있다. 극이 세련 되었다. 그런데 이 책을 계속 읽으며 드는 의아함이 있다. 인간과 신은 어떤 관계이며 그 경계는 무엇인가. 신은 인간의 모습과 같고 인간은 그 신과 생활하며 대화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과 신의능력은 확연하며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혼란스럽다.

 

□ 유모 : 더욱이 우리는 말이라는 존재에 묶여서 말의 노예가 되고 말죠(p. 556)

 

Ü 언어가 사유의 지평을 지배한다는 말이겠다. 유모는 속이 깊은 사람이다. 그러나 나중에 사단은 이 유모로부터 시작된다.

 

□ 유모 : 삶을 갈망하는 나머지 선행보다는 악행을 저지르기 쉽고 또 그것이 건강을 해친다는 말을 정말이래요. 이래서 저는 지나치라는 말을 인정하지 않고 지나치지 마라는 말을 더 받아들입니다. 현인들도 내 의견에 반대할 수 없을 거예요. (p. 557)

 

Ü 뭔가 심오한 함의가 있을 듯 한데 한 번에 이해되지는 않는다.

 

□ 히폴리토스라는 사생아를 낳았습니다. (p. 559)

 

Ü 각주) 아마존인 히폴리토스의 어머니는 아테네의 시민은 아니다. 그 때문에 그녀의 아들도 사생아로 간주한다.

 

□ 파이드라 : 넌 아마존의 여왕의 아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지?

유모 : 히폴리토스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파이드라 : 그렇게 말한 것은 너이고, 나는 너에게서 아무것도 듣지 않았어.

유모 : 자기들이 모르는 사이에 저주스런 정욕에 홀리게 된다. (p. 561)

 

Ü 비록 계모이긴 하지만 파이드라는 자신의 아들을 사랑하게 된다. Oh my god이다. 그러나 에우리피데스는 그 말을 절대로 직접적으로 말하게 놔두질 않는다. 세련되어 있다.

 

□ 인간을 비굴하게 만드는 것은 아주 티끌만한 일이라도 부모 가운데 어느 한쪽이라도 수치스러운 일을 행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 불행의 노예가 되고 마는 법이니까 (p. 563)

 

Ü 그래서 서둘러 나의 기준을 만드는 연습을 해야겠다. 적어도 나는 아비의 모습을 갖추어 가야 할 사람이니까.

 

□ 테세우스 : ! 불행한 도시여! 히폴리토스는 제우스의 신성한 눈을 피해서 완력으로 내 침실을 더렵혔다. . 포세이돈이여, 나의 아버지! 당신이 일찍이 이루게 해 주시겠다던 세 가지 소원 중에 하나로 제 아들 놈을 죽여 주십시오. (p. 575) Ü 테세우스 일가의 불행은 시작된다.

 

□ 아르테미스 : 네 아버지는 여신의 술책에 넘어간거야.

히폴리토스 : , 아버지.

테세우스 : 나도 이젠 히폴리토스야! 난 이제 살아 갈 즐거움마저 없어졌단다. 너 대신 내가 죽었음 좋으련만.

히폴리토스 : 포세이돈의 선물은 너무 혹독합니다.

테세우스 : , 왜 내 입으로 그걸 바랐을까?

히폴리토스 : 무슨 말씀을. 아마 그런 일이 없었다면 저는 아버지 손에 죽었을 겁니다. 그 만큼 분노가 아버지의 눈을 멀게 한 것입니다. (p. 587)

아르테미스 : , 늙은 아이게우스의 아들이여, 너는 아들을 가슴에 안아라. 어쩔 수 없이 행한 짓이라도 네가 그를 죽였으니까. 신들이 바랐을 때 인간이 잘못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히폴리토스여, 아버지를 미워하지 마라. 너는 운명 때문에 죽은 것이다. (p. 588)

 

Ü 에우리피데스는 비극의 극한으로 몰고가서는 끝내 이 들을 모두 화해시키고 있다.

 

□ 테세우스 : , 키프리스여! 나는 그대가 나에게 준 불행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영원히!

 

Ü 신에게 앙갚음 하겠다는 뜻일까. 아니면 알아서 기겠다는 말인가. 어쨌든 치밀한 구성이다. 신을 섬기지 않는 자에 대한 신의 분노와 그 신에게서 받은 선물을 파멸로 이끄는 도구로 쓸 줄 아는 물샐 틈 없는 스토리의 얼개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

(뽈 끌로델)

 

□ 그것은 일종의 전설적인 우화의 형식 아래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마음에 있어 본질적인 문제의 하나인 죄와 벌의 문제에 관한 뜻 깊은 토론이다.

그러나 인간이 스스로 입은 피해의 심판자이고 보복자가 되었을 때, 그 결과는 어디서 그치는 것일까. 새로이 죄를 짓고자 하는 도발은 어디서 끝나는 것일까. (p. 592)

 

□ 마침내 정의가 자애의 간청을 받고 이처럼 차례로 계속된 정화 작업에서 나타나지 않으면 안된다. (p. 594)

 

안티고네 대립과 소포클레스의 인간 예찬

(C.P. 시갈)

 

□ 가장 영향이 큰 안티고네론가운데 하나가 관념론과 변증법의 철학자에 의해 씌어졌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P. 599)

 

□ 그들은 우리의 현실을 이루는 보편과 특수, 상실과 달성, 관념과 행위의 얽힘을 솔직하게 말함으로써 우리를 감동시킨다.

 

□ 그들은 우리의 현실을 이루는 보편과 특수, 상실과 달성, 관념과 행위의 얽힘을 솔직하게 말함으로써 우리를 감동시킨다. (p. 600)

 

□ 이 비극의 핵심은 한편 인물이 다른 편 임루을 낳고 두 사람이 보충적인 부분으로 공존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전체는 둘의 대립하는 정신적 실체인 헤겔적인 합은 아니며 끝없이 단순하고도 복잡한 그 무엇, 정신과 절대에 관한 개념적인 공식보다 앞서는 더 개념적인 그 무엇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성이고 세계 있어서의 인간 상황이며 인간 행위의 가능성과 한계일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들과 거기서 갈라져 나오는 사항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로 개념화된 이율배반 신의 법칙과 인간의 법률, 개인과 국가. 종교와 세속, 개인 도덕과 공공 도덕이 나타난다. (p. 600~601)

 

기록되어 있지 않는 법에 관한 안티고네의 연설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법과 정의다. 무대 장치는 재판이고 안티고네는 말하자면 공판에 붙여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5세기의 복잡하기 그지없는 도시 국가의 법과 법률 엄수주의는 현대 문명에 있어서의 가장 세분화된 도덕의 경우보다도 훨씬 더 넓은 적용 범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소포클레스를 비롯한 그와 같은 시대에 사람에게 있어서 법과 법률 엄수주의는 시민의 공적 및 개인적 생활 전체, 신들이나 동료드과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들에서 생기는 윤리적 정치적, 사회적인 모든 책임에 관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p. 603)

 

□ 소포클레스는 아이킬로스처럼 이성이나 기술적인 지배에서 인간 자유의 원천을 보고 있지는 않다. 거기서도 또 인가의 속박과 한계의 잠재적인 원천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주제에 관한 그의 고찰은 오이디푸스 왕에서 성숙을 나타내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지식이나 지성은 애매한 능력이므로 인간의 재능과 떼 놓을 수 없게 결합되어 있는 능력이다. (p. 610)

 

□ 안티고네, 이 희곡은 그 일면에 있어서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성격이나 이상에 관해 이야기한 것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작품은 인간의 성격을 기능 본위적인 재능에 한정하고 인간을 정치적인 단위의 일원으로 환원해 버리는 크레온의 편협한 합리주의 독재적인 물질주의에 반대한다. 안티고네가 요구하는 것은 국가가 혈연 관계의 신성함, 애정이나 정념에 의한 결합의 가치 개인의 특수성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p. 622)

 

□ 소포클레스는 인간의 위대성의 평가라는 점에서 새 아크로폴리스와 파르테논 신전을 만들게 한 정치가나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말한 철학자의 동시대 사람인 것이다. 소포클레스는 인간의 특질은 그 위대한 순간에 있어서 신들의 실재를 인식하는 일이라고 느끼고 있었던 점에서 세계적인 비극 시인이다

 

위대한 것은 괴로움이나 재액 없이 인간을 찾지 않는다.’ (p. 625)

 

에우리피데스의 바쿠스의 여신도들

(K. 케레니)

 

□ 성스러운 연극에 있어서는 신은 스스로의 수난에 부딪혔다. 그것은 이제 단순한 황소의 희생처럼 모든 생물의 수난과 죽음이 아니라 마음을 흔들어 주는 인간적 수난, 영웅의 수난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스스로의 수난이라기보다는 영웅 펜테우스의 운명에 있어서의 수난이다.

 

만일 우리가 그 비극 작품들을 오늘날 소유하고 있었더라면 그것들은 하나하나의 인간처럼 서로 분리해서 보지 않으면 안 되었겠지만 관객들이 견뎌낼 수 있건 견뎌낼 수 없건 간에 그것들을 신의 수난의 신화로부터 분리할 수 만은 없었을 것이다.

 

펜테우스라는 이름의 수난의 사나이라고 번역할 수 있으며 그리스인도, 에우리피데스조차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이 이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미리 수난을 당하게끔 규정되어 있었던 자뿐이므로 그것은 사람일 수가 없었다. 그것은 오히려 인간에게 수난을 나타내 보이는 위상에 있어서의 신의 이름이었다. 그것은 우선은 수난에 무릎꿇고 있지만 곧 그것을 뛰어넘어가는 존재이다. 오직 그렇게 보았을 때만 기원전 15세기 사람들이 크노소스에 있어서 아마도 펜테우스라 부르고 있었으리라는 것이 이해되는 것이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 있어서는 디오니소스가 적, 추적자에게 상대하는 것처럼 펜테우스와 상대하고 있다.

 

Ü 크노소스를 펜테우스와 동일화 시키고 있었던 15세기 사람들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봐야겠다.

 

3. ‘금기와의 화해(내가 저자라면)

 

막장 드라마는 시놉시스 곳곳에 우연으로 넘쳐나는 스토리로 구성된다. 우연에서 우연으로 사건이 이어지고 뜬금없는 인물의 등장으로 사건은 터지고 줄거리는 희한하게 전개된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짜증을 유발하는 이유다. 그리스 비극은 스토리 보드는 막장 드라마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그러나 왜 어느 이야기는 인류의 정신적 원류라고 치켜세워지고 다른 이야기는 막장 드라마로 폄하되는가?

막장 드라마는 첫째 시적이지 않고 둘째 내면을 건드리는 깊이가 없고 셋째 뒷일을 책임지지 않고 저지르고 보는 사건의 연속이다. 그리스 비극 또한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지만 책을 덮은 뒤 나로 하여금 눈을 감게 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가치의 근원을 집요하게 물어오기 때문이다.

 

나는 묻는다.

진정한 화해는 과연 요원한 일인가

그대들은 대답하라.

어째서 그대들은 침묵하는가

 

당신은 어머니를 죽였다. 그 어머니는 당신의 아버지를 죽였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를 죽였다.

당신은 아버지를 죽였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당신의 아버지까지도 죽일 수 있었다.  그런데 당신이 사랑하던 사람은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져있다. 그래서 당신은 한 때 사랑했던 사람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을 죽여서 그 사람에 대한 당신의 분노를 보였다.

 

우리는 그리스 비극을 읽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규범과 우리가 젖어 있던 가치에 의문을 가졌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 당신은 어떠한 가치 판단을 할 수 있는가. 나는 어떤 생각을 견지할 수 있는가. 아니면 모든 판단을 유보해야 하는가.

 

어머니를 죽이고 아버지를 죽이고 자식을 죽이는 것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용서될 수 없는가. 아니면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보편 타당한 명분이 있다면 그 살인을 용서 받을 수 있는가. 나는 내 생각을 결정하지 못한다. 나는 침묵할 것이다. 말할 수 없다.

 

그들이 대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금기와 터부에 대한 인간의 가치 판단에 대해 정확히 질문할 수 있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희곡이나 이야기, 소설의 전개 방식과 절정에 도달하는 방법에 대해 나는 화살표를 내 방식대로 바꾸지 못하겠다. 내가 만약 저자라면의 가정을 상정 할 수 없는 유일한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들의 정신 세계를 뒤지던 중 나는 아주 반가운 포스터 하나를 화면으로 접했다. 지난 달 부산문화회관에서는 오레스테이아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반가웠다. 내가 이 두꺼운 책을 읽을 때 동지와 같이 내 옆 있어 주는 것 같은 든든함이었다. 제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를 자신이 죽인 오레스테스. 아직도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믿는 이유는 오레스테스를 미치게 한 그 상황에 대해 같이 고민하려는 작은 시도다.

 

내가 저자라면에 걸맞는 비판적 지지가 가능할 지 모르겠다. 그러나 결국 아이스킬로스가 소포클레스가 그리고 에우리피데스가 우리에게 묻고 있는 주제는 진정한 화해. 나는 그 주제로 독자의 홍심을 지른다.

 

나는 묻는다.

진정한 화해는 과연 요원한 일인가

그대들은 대답하라.

어째서 그대들은 침묵하는가

 

오레스테이아공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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