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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7일 09시 52분 등록

폭죽을 훔친 아이

 

초등학교 2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엇인가를 무척 가지고 싶은 나이, 눈에 보이는 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문방구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그 곳에 가면 신기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다. 그 중에서 아이의 눈길을 사로 잡는 것은 폭죽이다. 하늘 위로 올라가 세상을 시끄럽게 하지만, 밤 하늘에 터지면 수 많은 별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나오는 사람

아이: 초등학교 2학년, 아직 내면의 선과 악을 다스리지 못한다.   

주인: 아이들 세계에서 절대권력의 힘을 가진 자, 훔친 자에게 가혹한 벌을 내린다.

: 아이 내면의 선을 주관하고 있으나 늘 그림자에게 설득 당한다.

그림자: 아이의 욕망을 충동질하지만, 벌에 내려지면 방관하며 뒤로 물러난다.

친구: 남의 일에 참견을 잘하고 아이의 잘못을 비판한다.

주인 아들: 아버지가 하는 일에 대해 항상 불만을 가지고 못마땅해 한다.

선생님: 아이의 담임선생님

코러스: 아이 주변을 항상 따라다니면서 따뜻하게 보살펴 주는 신의 천사들

 

무대: 초등학교 입구 옆에 있는 작은 문방구

 

빛과 그림자가 입장, 두 심령은 가면을 쓰고 있다. 그리고 문방구 주인이 아이의 한쪽 귀를 붙잡고 들어 온다.

 

주인: 이 녀석, 내가 모를 줄 알았지, 저 구석에서 네가 한 나쁜 짓을 다 지켜봤어.

아이: 잘못했어요 아저씨,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주인: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너는 벌을 받아야 해. 저기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있어.

: 구경만 하고 가자고 했잖아

그림자: 주인이 없는 줄 알았지, 저 주인은 나보다 더 사악한 그림자를 가지고 있군.

: 이제는 어쩔 거야, 저 아이를 보라구. 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치욕 당하는 것을, 친구들이 보면서 수근 거리고 있어, 고개를 못 들고 있잖아.

코러스: ~ 불쌍해라.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처럼 가혹한 형벌을 받고 있어요.

  어린 아이가 무엇을 안다고, 저런 형벌을 내리는 것이죠.

  힘겹게 올라간 두 팔을 보세요, 아틀란스가 땅과 하늘을 떠 받치고 있는 모습이예요.

그림자: 프로메테우스는 날개 돋친 독수리에게 가슴이 찢겨지고 고깃점이 뜯겨지는 형벌을 받았어, 거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저 정도 고통을 이겨내야지.

: 프로메테우스는 신이야, 자신의 운명 알면서도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어. 온전히 자신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구. 하지만 이 아이는 이제 막 세상에 눈을 뜬 거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기 보다는 큰 충격으로 받아 들일 거야, 세상이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고 있다는 느낌처럼 말이야.

 

문방구 주인이 퇴장하고 아이 친구가 등장한다.

 

친구: 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니?

아이: 문방구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그만…….

친구: 너 미쳤구나, 지금 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너를 보고 있어, 나 같으면 창피해서라도 이런 짓 못할거야. 너 선생님이 알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 아이를 위로해주기는커녕 오히려 겁만 주고 있잖아.

그림자: 이것도 벌 중에 하나야, 치욕을 견뎌야 하지, 저기 어둠 속에서 웃고 있는 주인아저씨를 보라구. 

아이: 부탁이 있는데, 선생님한테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친구: 그래, 하지만 소용 없어, 벌써 우리 반 아이들이 다 보았을 거고, 지금쯤 선생님도 알고 있을거야.

아이: ~ 괴롭다.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군다)

코러스: 너를 바라보니 눈물이 뜨거워져요.

       조금씩 저려오는 너의 다리는 곧 굳어져 버릴 것 같아요.

       너의 팔은 너무 힘겨워서 부들부들 떨어있어요.

       너의 얼굴은 천근만근 땅에 닿을 것 같아요.

 

아이 친구가 퇴장하고, 주인 아들이 등장한다.

 

주인아들: 너 훔치다가 우리 아버지에게 들켰구나? 그래도 울지는 않는구나.

아이: 내가 잘못한 건데, 울긴 왜 울어, 벌을 받아야지.  

주인아들: 나는 이곳에 있는 물건을 매일 훔쳐가, 아버지 몰래 말이지, 없어지는 물건들이 내가 가져 갔다는 것을 아버지는 모르고 있을걸, 그래서 없어진 물건을 볼 때마다 다른 아이들 욕을 하지, 자기 아들이 가져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하면서 말이야.

아이: 그럼 넌 한번도 들키지 않는 거니?

주인아들: 아니, 처음에 몇 번 들켰지, 엄청 혼이 났어, 그런데 오기가 생겨서 더 훔치고 싶은 거야, 일종의 반항심이지.

아이: 나 같으면 혼이 나면, 다음부턴 안 그럴텐데…….

주인아들: 나름대로 가져간 이유가 있는데, 훔쳐갔다고 단정 짓고는 무작정 야단만 치는 거야.  그 물건이 왜 그렇게 필요했는지 물어봐야 할 것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나보다 그 물건들이 소중한 거지. 안 그래?

아이: 나도 그랬어, 무작정 큰소리치면서 내 귀를 잡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어.

주인아들: 어른들은 다 그래, 자기 생각만 하는 거야, 남 생각은 죽어도 안 하지. 그래, 넌 무엇을 훔친 거니? 

아이: 폭죽이야,

주인아들: 나도 폭죽을 좋아하는데, 왜 필요한 거니?

아이: 낮에도 별을 보고 싶어서…….

주인아들: 폭죽은 밤에 해야 멋있어, 너 불꽃놀이 안 봤니? 밤에 하면 수 많은 별을 볼 수 있어.

아이: 그건 알아, 밤에는 별이 반짝이잖아, 그 별들 속에서 엄마 별을 찾을 수 있거든. 하지만 낮에는 엄마 별이 안 보여, 너무 밝아서 말이야.

주인아들: 무슨 사연이 있구나.

코러스: 우리에게 모든 걸 알려 주세요. 어떻게 된 일인지 들려 주세요.

아이: 작년에 엄마가 돌아가셨어, 그 뒤로 아빠한테 엄마가 보고 싶다고 많이 보챘어. 엄마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야. 그럴때면, 아빠는 밤 하늘에 별을 가리키면서 엄마 별자리를 알려주셨어. 유난히 반짝이는 별이 엄마 별이래. 그 다음부턴 엄마가 보고 싶을 때, 밤 하늘에 떠 있는 엄마 별을 봐. 그러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 지거든.

   오늘이 엄마 생일이거든, 그래서 아침부터 엄마가 너무 보고 싶은 거야. 폭죽을 터트리면 엄마 별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났어. 그래서 여기에 온 거야.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만…….

: 이제야 알 것 같아, 아침부터 엄마 사진을 찾고 한참 바라보고 있었던 이유를, 다른 아이가 엄마 손 잡고 걸어오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던 이유를 말이야.

그림자: 그래서 내 말을 잘 들었구나, 평소에는 나를 거들떠도 안 보더니.

주인아들: 이런 사연도 모르고 우리 아빠는 묻지도 않고 야단만 치다니. 내가 대신 사과할께.

아이: 아니야, 괜찮아. 내가 힘든 것은 벌을 받고 있어서가 아니야, 하늘에 엄마가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무거워.

 

빛과 그림자, 주인아들이 퇴장하고 선생님이 등장한다.

 

선생님: 많이 힘들었지? 이제 그만 손 내려, 문방구 아저씨하고 얘기했어.

아이: 죄송합니다. 선생님.

선생님: 그래, 다음부턴 그러지 않기로 선생님하고 약속하자.

아이: , 선생님.

 

선생님과 아이는 손을 잡고 일어선다.

 

선생님: 엄마가 많이 보고 싶었나 보구나.

아이: 어떻게 아셨어요?

선생님: 며칠 전에 아빠가 다녀갔어. 오늘 엄마생일이니깐 잘 보살펴달라고 부탁하셨거든.

아이: ……

선생님: 선생님하고 운동장에서 폭죽 한 번 터트려 볼까?

아이: ,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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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7 13:32:46 *.51.145.193

그 '아이' 참 연민이 갑니다. 남일 같지 않은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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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8 09:06:51 *.114.49.161

오호, 한젤리타님 그리스비극의 형식으로 쓰신 거로군요. 이걸 뭐라고 해야하나요? 콩트인가요? 소설인가요? 와 멋지세요. 어쩜 이런 실험을 하실까요? 앞으로 읽게 될 책들이 또한 이런 실험의 쏘스가 될 듯 하여 기대가 됩니다. 5월 달력의 모델이 되어도 좋을 한젤리타님 가족이 TV를 없앤 거실 서재에서 모두 책을 읽고 있는 장면이 상상이 되네요.

 

저는 저런 선생님이 눈에 띕니다. 지역사회의 문방구 아저씨와도 원활한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  아이의 마음을 읽고 낮에 폭죽 놀이를  같이 하는 선생님도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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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8 20:05:44 *.166.160.151

나는 한단계를 넘어서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 번개에 동문회장님 말...적어도 한주전에 책을 읽어야 인간다운 삶이 보장된다 고 한 이야기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음.

 

달랑달랑 마지막페이지까지 읽어내기가 바쁜 내 머릿속에는 이런 멋진 구상이 안떠오른다니까...슬프다

시간이 흐르면 좀 나아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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