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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7일 10시 44분 등록

한때 내게 주어진 삶의 무게가 너무 버겁게 느껴져 ‘세상은 왜 내게만 이렇게 가혹할까?’라고 대상도 없는 불만을 터뜨리던 시절이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면 나보다 나은 조건의 사람들만 보이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들을 따라 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좌절감이 들곤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 상황에 너무 깊이 빠져 넓은 시야,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없었던 나의 편협함 때문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깊고 깊은 절망과 어둠만이 내게 남아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이런 고난이 닥치는지 하나님께 묻고 싶었다.

 

그리스 비극 중에서도 잔인하리만치 비극적인 인물로 꼽히는 오이디푸스왕은 운명의 장난에 의해,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를 신부로 받아들였다. 진실과 맞닥뜨린 뒤 오이디푸스왕은 얼마나 괴롭고 혼란스러웠는지 자신을 비판하는 처남 크레온에게 이렇게 퍼붓는다.

 

이 철면피야! 대체 어느 쪽이 욕을 당했느냐? 이 늙은 나인가, 그렇지 않으면 너인가? 네놈은 나에게 살인이니 근친상간이니 불행이니 지껄이고 있지만, 그것은 비참한 이 몸이 본의 아니게 견뎌온 일이다. 예부터 우리 집안에 격분하고 계신 신들이 바라는 것이었으니까. 내 자신에게서는, 내게도 육친에게도 그런 죄를 지어야 될 만한 아무런 실책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자, 말해 보아라. 자기 아들의 손에 죽을 운명이 신탁으로 그 아버지에게 왔더라도, 그 때 아직 아버지에게서도 어머니에게서도 삶을 얻지도 않고 태어나지도 않은 내가 그처럼 죄인이라고 비난받아야 할 까닭이 있을까? 나처럼 불행한 별 밑에 태어나 무엇을 하고 있는지, 누구를 상대로 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버지와 싸워서 죽게 했다 하더라고, 그렇게 모르고 저지른 죄를 비난하는 것이 옳을까?

 

오이디푸스왕을 읽으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고난에 원인이 있을까? 고난에 원인이 있다면 우리 지은 죄 때문일까? 죄라면 모르고 지은 죄까지고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러나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우리 삶에 주어지는 고난들은 인과관계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운명적인 성격을 띄고 있었다. 우리 삶에 피할 수 없는 고난이 예정되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을 우리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다면 그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때야 할까?

 

이 때 내 마음속에 한 분이 떠올랐다. 2009년 5월 9일 작고하신 장영희 교수님.

 

생후 1년 만에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 되었으나 역경을 딛고  서강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하신 분이다. 생전에 목발에 의지하지 않으면 한 걸음도 옮길 수 없는 장애와 세 차례(2001년 유방암, 2004년 척수암, 2008년 간암)의 암투병 속에서도 고난에 굴복하지 않고 수필과 일간지의 칼럼 등을 통하여 따뜻한 글로 희망을 전하셨다. 사실 장교수님의 유작《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2009)은 내가 힘들 때 마다 펼쳐드는 성경과도 같은 책이다. 벌써 수 십 번도 더 펼쳐 들었지만 읽을 때 마다 위안이 되고 다시 살아갈 힘이 생긴다. 장 교수님의 솔직한 글을 보고 있자면 자연스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아, 그래 살아야지’ 하는 의지가 생기는 것이다. 24차례의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그 힘겨운 투병 중에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열정을 보인 장교수님은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나를 넘어뜨린다.'라는 말씀으로 나에게 충고하신다. 아무리 이해되지 않는 고난이 찾아오더라도 오뚝이처럼 일어나라고 그리고 그것을 통해 지혜를 얻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앞으로 나아가라고.

 

온갖 것을 극복하는 시간이 단련해 준 덕분인지 이제 웬만한 고난은 내게 시련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가슴 졸이며 떨고 있는 대신, 숨 한번 크게 쉬고 정면으로 부딪혀 해결책을 찾는다. ‘그래, 한 번 와봐. 내가 상대해 줄게!’

 

잊을 만하면 우리 삶을 흔드는 고난에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여유와 용기가 아닐까?

 

* 장영희 교수님께서 번역하셔서 사람들에게 자신감과 최선에 대한 문제를 깊이 생각하게 만드셨던 게스트의 시

   '끝까지 해보라(See It Through)'를 소개합니다.

 

네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마주 보고 당당하게 맞서라
실패할 수 있지만, 승리할 수도 있다.
한번 끝까지 해보라!
네가 근심거리로 가득 차 있을 때
희망조차 소용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네가 겪고 있는 일들은
다른 이들도 모두 겪은 일일 뿐이다.
실패한다면, 넘어지면서도 싸워라
무슨 일을 해도 포기하지 말라.
마지막까지 눈을 똑 바로 뜨고,
머리를 쳐들고
한번 끝까지 해보라!

 

When you're up against a trouble,
Meet it squarely, face to face;
Lift your chin and set your shoulders,
Plant your feet and take a brace.
When it's vain to try to dodge it,
Do the best that you can do;
You may fail, but you may conquer,
See it through!

 

Black may be the clouds about you
And your futrue may seem grim,
But don't let your nerve desert you;
Keep yourself in fighting trim.
If the worst is bound to happen,
Spite of all that you can do,
Running from it will not save you,
See it through!

 

Even hope may seem but futile,
When with troubles you're beset,
But remember you are facing
Just what other men have met.
You may fail, but fall still fighting;
Don't give up, whate'er you do;
Eyes front, head high to the finish.
See it through!


 

IP *.128.6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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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7 13:39:29 *.51.145.193

오이디푸스가 너의 심연을 건드렸구나.

훌륭하게도 니가 하고 있는 질문은 내가 소포클레스를 읽고 찾던 질문(고난의 원인은 무엇인가?)

이었던 것 같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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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문윤정
2012.05.08 02:39:28 *.85.249.182

자금 삶의 고난이라 여겼던 것들이

어느날

한송이 꽃으로 피어

나라 곁에서 향기로 응원해 줄거야.

그리고 그것이 더욱 알찬 열매를 맺게 해줄거라 생각한다.

날마다 좋은 날! 날마다 행복한 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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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8 09:08:22 *.114.49.161

나라, 장영희교수님의 저 책을 저도 갖고 있어요. 누가 보내줘서 읽었어요. 그 책이 나라에게는 수십 번 읽은 책이로군요. 그 책을 다시 읽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그 책을 보내준 이와 함께 나라 생각을 할 것 같아요. 나라의 책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책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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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8 10:48:44 *.118.21.186

멋지다..

그래 한번 와봐..내가 상대해주마..

뎀뵤라는 닉네임 가진 선배가 잇지? 변경연에...

 

어제 나라 목소리가 우렁참을 보고 두번 놀랬어.

나라야 길을 잘 잡으면 멋진 여왕님 될거야..

사느라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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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8 19:19:47 *.166.160.151

불법에서는 인과라고 하지않고 인연과라고 하지...

씨앗과 밭과 결과물...우리는 씨앗과 결과물을 가지고 생각하곤하는데

그는 아니라고 하더라...

 

물론 당대의 모든 인연과가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니

마음에 품고 있는 신에 따라 여러가지 모양으로 설명가능하겠지.

 

그럼에도 나라의 삶의 태도는 대단히 좋은것으로 사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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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9 10:58:03 *.192.175.177

삶이 가볍고 쉬운 사람은 정말 없나 봅니다. 

저도 '넌 참 평탄하고 무난하게 살았구나'란 소리를 듣고 분개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신이 나를 얼마나 안다고 그런 흰소리를 하는거야' 속으로만 생각하면서요 ^^;;

 

나름대론 신이 정말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만큼만 짐을 지우신다는 것을 의심한 적도 있어요.

다행히도 이젠 내 그릇이 이만하니, 나의 짐도 딱 내 그릇만큼이구나, 생각하게 되었어요.

연구원 생활이 정말 큰 역할을 했지요.

저는 책보다 사람에게서 많이 배웠답니다. 책보고 공부하러 왔다가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배우는 과정이 연구원인 것 같아요.

나라님도 이 멋진 길에 들어섰으니, 행복한 분이시죠 ^^

나라님의 행복한 여정을 한껏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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