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키 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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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아마 호아킴 데 포사다의 『마시멜로 이야기』를 알고 있을 것이다. 연구자들은 아이들에게 15분 동안 마시멜로 한 개를 먹지 않고 참으면 상으로 한 개를 더 준다고 약속을 한다. 아이들 중 일부는 참고 있다가 한 개의 마시멜로를 더 받았고 일부는 한 개에 만족해야 했다. 10년이 지난 뒤 연구자들은 실험에 참여했던 600명 가량의 마시멜로 어린이들을 추적했고 다시 100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마시멜로를 먹지 않은 아이들, 그리고 아주 오래 참다가 먹은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학교 성적도 더 좋았고 다른 사람들과 더 잘 어울렸으며 스트레스 관리에도 뛰어났다. 결론적으로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은 아이들이 먹은 아이들보다 훨씬 성공했다. 저자는 이 연구를 통해 자기 의지로 보상을 미루는 능력이 성공을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고 주장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의지력’의 놀라운 능력을 맹신하게 되었다. 精神一到何事不成! ‘정신을 한 곳으로 모으면 무슨 일인들 이루지 못하랴’고 나를 몰아세웠다. 일이 하기 싫을 때, 몸이 아파 쉬고 싶을 때, 마음이 나약해 질 때마다 이번 마시멜로만 참으면 장미빛 새날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 믿으며 버티고 또 버텼다. 그렇게 나는 14년 동안 조직에서 버틸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활활 불타던 전의는 사그라 들고 ‘그냥 이 자리에서 연기처럼 사라졌으면’하는 간절한 마음이 나를 채우게 되었다. 그때서야 나는 알았다. 나는 의지가 약해진 것이 아니라 탈진한 것이었다.
울리히 슈나벨은 『행복의 중심, 휴식』에서 사회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Roy Baumeister)가 발견한 의지력이라는 게 일종의 ‘힘 저장고’와 같다는 사실을 소개한다. 의지력은 소모성 자원이라는 것이다. 의지력에 따른 행동을 하는 동안 그 저장고에 담긴 힘을 끌어다 쓰다가 저장고가 바닥나면 우리의 의지도 무너진다. 의지를 필요로 하면 할수록 이를 뒷받침하는 힘은 쉽게 고갈되는 탓에 당장 해야만 하는 일에 집중하기 어려워진다. 의지력 저장고가 텅 비게 되면 ‘자아 탈진’ 현상이 일어난다. 혼자서는 아무런 결정을 하지 못하며,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진다.
이러한 이론은 이미 여러 실험을 통해서도 입증되었다. 바우마이스터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6분 동안 자신의 생각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면 떠올린 것을 적어보라고 했다. 다만 그 어떤 경우에도 백곰은 생각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참가자들은 백곰을 떠올리지 않으려 자신의 의지력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다음 어려운 퍼즐 문제를 내주자, 백곰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한 다른 실험 참가자들에 비해 이들은 훨씬 더 빨리 문제 풀기를 포기했다. 생각의 흐름을 의지로 통제한다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백곰 문제에 너무나 큰 의지력을 소모한 탓에 정작 중요한 문제는 포기해야 했던 것이다. 사실 이러한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모진 다이어트를 하다가 갑자기 폭식을 하고 요요 현상으로 괴로워하거나, 독실한 종교인이었던 사람이 믿기 어려운 범죄를 저지르거나, 믿기 어려울 정도의 자제력을 보이던 사람이 너무나 쉽게 하던 일을 포기하기도 한다. 견고히 쌓아 두었던 의지력이란 내면의 둑이 터지면 그 안에 있던 충동들이 그 동안 쌓아놓았던 모든 것을 허물어 버리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자기 통제력을 과신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의지력 저장고가 텅 비게 되는 일이 없도록 자기 통제력을 혹사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결심하고 자신을 몰아붙이다 보면 모든 것을 잃고 마는 사태를 맞닥뜨리게 될 수 있다. 혹자는 변화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변화는 매일 조금씩 이루어야 한다. 작은 변화를 통해 작은 성공을 경험하면 목적지까지 갈 수 있지만 의지력을 과신해 큰 변화를 수없이 시도하다 실패하면 우리는 포기라는 놈을 선택하게 된다.
나는 이제 ‘정신의 힘’보다는 ‘육체의 힘’을 더 믿는다. 정신은 육체라는 큰 덩어리를 끌고 가기에는 역부족이다. 먼 길을 가려면 생각이 많은 기수보다는 느리지만 우직한 코끼리를 잘 다루어야 한다. 나는 육체의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됨을 깨닫고 내 몸을 돌보기 시작했다. ‘몸은 먹는 대로 만들어진다’는 말을 믿으며 몸에 좋은 것을 먹고, 내 몸을 약하게 만드는 것들, 예를 들면 부족한 잠, 과로와 스트레스를 피하려 노력한다. 잠을 많이 자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던 나는, 잠은 시간 낭비가 아닌 내 몸의 재충전을 위한 투자라 생각하게 되었다. 정신력에 의지해 과로를 하고 나면 그 여파가 너무 컸다. 그래서 미리미리 그리 하지 않도록 조절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스트레스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비난했지만, 이제는 피하려 노력한다. 이 모든 것은 의지로 극복하면 근육이 생겨 더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탈진하게 하는 것이라 결론 내렸다.
가끔은 자신의 의지력 저장고 게이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계획한 것들을 이루어내지 못했다고 자신을 너무 다그칠 필요는 없다. 특히 당신이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많은 일을 벌이는 야심가라면 더더욱 그렇다. 작은 성공의 징검다리를 건너가다 보면 당신이 원하는 곳에 와 있을 것이다. 큰 강을 한 걸음에 건널 수는 없지 않은가? 텅 빈 의지력 저장고를 다시 채우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니 언제나처럼 예방이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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