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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7일 20시 47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허준(許浚, 1539-1615)

 

허준은 양반 가문의 서자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허곤(許琨)은 무관 출신으로 경상우수사를 지낸 인물이며, 아버지 허론() 역시 무관으로 용천부사를 지냈다. 어머니 김씨가 첩이기는 했으나 천출은 아니었다. 양반 가문의 서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법 권세 있는 가문의 서자로 태어나 큰 어려움 없이 자란 허준은총민하고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했으며 경전과 역사에 두루 밝았다.”고 전한다.

 

허준이 왜 의학을 선택했고, 어떤 과정을 밟으며 공부했는지에 대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소설이나 드라마에 나왔던 유의태라는 스승도 허구의 인물이고, 허준이 유의태의 시신을 해부해 놀랄 만한 깨달음을 얻는 드라마틱한 사건도 작가의 상상력일 뿐이다. 내의원에 들어가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기 전까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선조 때 유학자인 유희춘(柳希春)의 문집이 유일하다. 그 문집에 남아 있는 허준의 모습은 유희춘이나 일가의 병 치료에 참여하기도 하고, 유희춘에게 책을 선물하기도 한다. 아직 관직에 나아가지는 않았지만 살림살이가 궁색하지 않았고 의술이 제법 높은 평가를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1569년 유희춘의 얼굴에 생긴 종기를 완치한 적이 있는데, 그로 인해 유희춘의 신임을 얻었다.

 

유희춘은 이조판서에게 허준을 천거하는 편지를 보냈고, 그 덕분인지 몇 년 뒤 허준은 종4품 내의원 첨정의 자리에 오른다. 서른한 살에서 서른세 살 사이의 일인 듯하다. 당시 의과의 초시와 복시를 1등으로 합격해서 얻을 수 있는 관직이 종8품이었다고 하니 허준이 얼마나 파격적인 승진을 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허준은 의과도 통과하지 않았고 서자 출신이었다. 의원으로서 크게 인정을 받았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파격적인 승진으로 내의원에 들어왔으나 한동안은 그다지 주목 받지 못했던 듯하다. 1575년 어의를 보조하여 왕의 맥을 진찰했고, 1581년 선조의 명으로 [찬도방론맥결집성]이라는 진맥학 책의 오류를 바로잡아 책으로 편찬하는 작업을 했으며, 1587년 다른 여러 어의와 함께 왕의 진료에 참가하여 병의 쾌유에 대한 상으로 사슴 가죽을 받았다는 등 몇 년에 한 번씩 단편적인 기록을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왕명으로 진맥학 책을 전술했다는 기록을 보면 학술적으로 인정은 받았던 듯하다.

 

그러던 중 1590년 광해군의 두창을 고치면서 비로소 남다른 의술을 인정받는다. 당시 왕자의 신분이었던 광해군은 다시 살아날 가망이 없어 보일 정도로 병이 깊었다. 다른 의원들이 감히 나서지 못하고 있을 때 허준이 과감히 나서 병을 고치자 선조는 정3품 당상관인 통정대부의 벼슬을 내리며 그 공을 치하했다. 서얼 출신의 기술관이었던 허준에게 당시의 신분구조상 허용되었던 벼슬은 정3품의 당하관이 최대였다. 그런데 그 한계를 뛰어넘은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임진왜란 중 다시 한번 광해군의 병을 고치면서 동반(東班)에 올라, 신분의 한계를 완전히 벗어 던졌다. 동반이란 양반 중 하나인 문관을 뜻하는 것으로, 동반에 올랐다는 것은 곧 완전한 양반이 되었음을 의미했다. 또 임진왜란이 끝나자 선조는 자신을 끝까지 따른 문무관이 열일곱 명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힘겨웠던 피난길을 끝까지 함께한 공을 인정해 허준을 공신에 책봉하고 종1품 숭록대부 벼슬을 내렸다. 품계로만 따지면 좌찬성, 우찬성과 같은 지위에 오른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선조는 허준에게 정1품 보국숭록대부를 내리려 했다. 1606년 오랫동안 차도가 없던 병세가 호전되자 관직의 최고 단계인 정1품 벼슬을 내리려 한 것이다. 그러나 신분 질서를 그르치는 잘못된 조치라고 맹렬히 반대하는 사간원과 사헌부의 반대에 성사되지는 않았다.

 

임진왜란으로 큰 혼란을 겪던 조정이 강화회담의 진행으로 잠시나마 한숨을 돌리고 있던 1596년 선조는 허준을 불러 명했다.

 

“요즘 중국의 방서를 보니 모두 자잘한 것을 가려 모은 것으로 참고하기에 부족함이 있다. 너는 마땅히 온갖 처방을 덜고 모아 하나의 책으로 만들어라.”

 

그 무렵 명대의 신의학이 적지 않게 조선에 수입되어, 조선 전기의 의학전통과 섞이는 바람에 이를 정비할 필요가 있었고, 또한 전란을 겪으며 기근과 역병이 발생해 제대로 된 의서가 시급히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새로운 의서의 편찬을 명하면서 선조는 그 책의 성격을 분명히 제시했다. 첫째, 사람의 질병이 조섭을 잘 못해 생기므로 수양을 우선으로 하고 약물치료를 다음으로 할 것. 둘째, 처방이 너무 많고 번잡하므로 요점을 추리는 데 힘쓸 것. 셋째, 국산 약 이름을 적어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할 것 등이었다. 왕명을 받은 허준은 정작·양예수·김응탁·이명원·정예남 등 당대의 인재들과 함께 편찬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듬해 정유재란이 일어나면서 작업은 중단되었다가 1601년 무렵 다시 재개되었다. 이때부터는 허준이 단독으로 작업했는데, 14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총 240여 종의 의서들을 참고하여 쓴 책이 [동의보감]이다.

 

조선 왕조가 개국된 이후 의관으로서는 최고의 벼슬에 올랐지만, 영광은 그리 길지 않았다. 1608년 선조가 세상을 떠나자망령되어 약을 써서 선조를 죽게 했다.”는 죄로 유배 길에 올라야 했다. 허준의 의술로 목숨을 구한 적이 있던 광해군은허준의 의술이 부족하여선조를 살리지 못했을 뿐 고의가 아니니 처벌할 수 없다며 감쌌지만, 신분을 뛰어넘은 그의 입지에 문관들의 질시와 견제가 만만치 않았던 상황이다 보니 광해군도 어찌할 수 없었다.

 

귀양살이는 1 8개월이나 지속되었다. 그의 인생 가운데 가장 커다란 시련이었던 이 기간을 허준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이 되는 [동의보감] 편찬에 바쳤다. “(), (), ()을 중심으로 하는 도가의 양생학적 신체관과, 구체적인 질병의 증상과 치료법을 위주로 한 의학적 전통을 높은 수준에서 하나로 통합했다.”는 평을 받는 이 책은 이후 조선 의학사의 독보적인 존재로, 오늘날까지도 한의학도에게 널리 읽히는 명저이다. 1609년 사간원의 극심한 반대에도 광해군은 당시 일흔한 살의 허준을 내의원에 복귀시켜 자신의 병을 돌보게 했다. 한양에 돌아온 그는 마침내 완성한 [동의보감]을 광해군에게 바쳤고, 이후 역병에 관해 저술한 [신찬벽온방] [벽역신방]을 편찬했다. 그러다 1615년 일흔일곱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그의 죽음 뒤 정1품 보국숭록대부 작위가 추증되었다.

 

허준에 대한 당대의 평가는허준은 제서(諸書)에 널리 통달하여 약을 쓰는 데에 노련하다.”는 선조의 평과, “허준이 저미고란 약으로 많은 사람의 두창을 고쳤다.” “근래에 오직 박제가, 손사명, 안덕수, 양예수, 허준 등이 의원으로 이름이 나 있다.”는 이수광의 평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동의보감]이 세상에 나와 조선 의서의 어머니가 되고 중국과 일본에까지 널리 알려지면서 허준의 의술은 신화가 되어갔다.

 

18세기 중엽에 나온 [약파만록]이라는 책에는 허준이 코끼리를 고쳐주어 명성이 자자해졌다는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이야기에 살이 붙어, 아픈 호랑이를 고쳐주고 금침을 얻은 허준이 그 금침으로 중국 천자의 병을 고쳐준 뒤 천자의 병을 고치지 못한 죄로 옥에 갇힌 중국 의원들을 풀어주자 그 의원들이 자신들이 아는 것을 모두 책에 적어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동의보감]이라는 설화까지 등장할 정도이다. 사실 이런 신화의 옷을 다 벗기더라도 허준은, 사상의학을 창안한 이제마가 역대 동아시아 의학사에서 장중경, 주굉에 이어 세 번째 인물로 선정할 정도로 뛰어난 의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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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

 

우리 나라와 중국의 의서를 모아 집대성한 한의학의 백과전서(百科全書). 1596(선조 29)에 어의(御醫) 허 준(許浚)이 선조의 명을 받아 정 작(鄭碏)•양예수(楊禮壽)•김응탁(金應鐸)•이명원(李命源)•정예남(鄭禮男) 등과 함께 찬집(撰集)케 되었는데, 정유재란(丁酉再亂)으로 중단되었다가 그 후 선조가 다시 허 준에게 명하여 단독으로 찬집케 하고 내장방서(內藏方書) 500권을 내어 고증하게 하여 1610(광해군 2)에 완성되어 1613(광해군 5)에 내의원(內醫院)에서 간행하였다.

 

내용은 목록 상하 2, 내경편(內景篇) 4, 외형편(外形篇) 4, 잡병편(雜病篇) 11, 탕액편(湯液篇) 3, 침구편(鍼灸篇) 1권 등 25 25책으로서 5대 강목(五大綱目)으로 나누어 서술하였다. 내경편은 주로 내과 소속인 각 장기(臟器)들의 질병 및 정신•혈액병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외형편은 머리에서부터 수족(手足)•골()•근()•맥()에 이르기까지 신체 각 부분의 외과적 질환으로 되어 있고, 잡병편에는 진단학적(診斷學的) 분야에 속하는 심병(審病)•진맥(診脈)•전염병•해수(咳嗽)•부종(浮腫)•제상(諸傷)•구급(救急) 및 부인과•소아과의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탕액편에는 약리학(藥理學) 등의 내용이 있으며, 이 밖에 침구편이 따로 채록되어 있어 근세 임상의학(臨床醫學) 각 과의 내용이 거의 망라되어 있다. 인용 서목은 후한(後漢), 위진남북조시대(魏晋南北朝時代)부터 수()•당()•송()•원()•명()에 이르기까지의 83종에 달하는 중요한 방서(方書)들이 거의 인용되었으며, 특히 우리 나라의 방서로는 세종 때의 ≪의방유취(醫方類聚)≫•≪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과 선조 때의 ≪의림촬요(醫林撮要)≫ 들이 인용되어 있다.

 

본서의 특징은 각 강()의 유()에 따라 항()과 목()으로 나누고, 그 아래에는 항에 해당되는 병론(病論)과 방약(方藥)을 빠짐없이 채록하고 그 출전을 밝혀 놓아, 각 병증(病症)에 관한 고금의 치방(治方)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는 점과 곳에 따라서는 속방(俗方)이나 자기의 경험방을 붙인 점이다. 그리고 특히 강조할 것은 종래의 방서가 체위(體位) 중심으로 서술된 데 대하여 본서는 각 병증의 항목과 서술이 주로 증상을 중심으로 열거되어 있는 점이다. 또 임상가(臨床家)들이 손쉽게 고금의방(古今醫方)을 열람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본서는 출판된 후로 곧 중국 및 일본에서 수차에 걸쳐 번각(飜刻)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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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숙

 

고전평론가. 1960년 강원도 정선군 함백 출생. 가난한 광산촌에서 자랐지만, 공부를 지상 최고의 가치로 여기신 부모님 덕분에 박사학위까지 무사히 마쳤다. 대학원에서 훌륭한 스승과 선배들을 만나 공부의 기본기를 익혔고, 지난 10여 년간 지식인공동체 ‘수유+너머’에서 벗들을 통해 ‘삶의 기예’를 배웠다. 덕분에 강연과 집필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1 10월부터 ‘수유+너머’를 떠나 또 다른 공부와 공동체를 실험 중이다. 앞으로 활동할 공간은 〈감이당〉. 〈감이당〉은 ‘몸, , 글’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인문의역학’을 탐구하는 ‘밴드형 코뮤니타스’다.

 

저서로는 근대성 3종세트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2001, 책세상), 『나비와 전사 : 근대와 18세기, 그리고 탈근대의 우발적 마주침』(2006, 휴머니스트), 『이 영화를 보라』(2008, 그린비) 등과 『열하일기』 관련 3종세트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2003, 그린비),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2007, 아이세움),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상, (김풍기?길진숙 공역, 2008, 그린비), 달인 3종세트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2007, 그린비),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2008, 그린비),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2010, 그린비), 그리고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2009, 사계절) 등이 있다.

 

[참고자료]

네이버 캐스트 허준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3339

네이버 지식사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447009

네이버 책 소개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751024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문구

 

책머리에_, ,

 

P4 나의 병은 나의 모든 습성을 바꿀 수 있는 권리를 나에게 부여하였다. (프리드리히 니체, 이 사람을 보라)

 

P5 병은 저 먼 곳에서 우연히, 실수로 들이닥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한 메시지를 들고 찾아오는 전령사라는 것을. 하지만 이제껏 나는 그 봉인조차 뜯어 보지 않고 쓰레기통에 넣어 버렸다는 것을

è  고미숙은 열하일기에서 박지원의 우울증을 언급하며 언제나 그렇듯 질병은 다른 삶을 살라는, 문턱을 넘으라는 몸의 신호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나의 우울증도 그랬던 것 같다. 다만 그 신호를 알아차리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P6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마추치다 보니 몸이야말로 그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고스란히 담지하고 있는 보고임을 깨닫게 되었다.

 

P7 습관이 존재의 심연이라는 것을. 또 나 자신이 얼마나 깊은 심연에 잠겨 있는지를. 니체가 왜 습속의 혁명을 부르짖었는지, 루쉰이 왜 중국에선 의자 하나를 옮기는데도 조물주의 채찍이 필요하다고 절규했는지를 결코 실감하지 못했으리라. 습관의 거처가 몸이다. 공동체란 이 몸들이 자신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격전지다.

 

P9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아는 만큼 들리고, 아는 만큼 느끼고, 아는 만큼 살아간다. 고로, 앎은 운명이다!

 

인트로_하나의 그림과 두 개의 주석

 

P19 허준의 독창성은 이 그림을 서두에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저서가 다른 의서들과는 달리 질병과 치료가 아니라 생명의 활동을 위주로 한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는 데 있다. 생명활동이란 몸 안과 밖이 마주치는 지점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생명이 무엇인가?’라고 묻는 순간 바로 생명의 외부, 곧 우주에 대한 질문이 시작된다. 그런 점에서 이 그림은 몸이면서 곧 우주다.

 

1_허준, 거인의 무등을 탄 자연철학자

 

P28 한의학에서의 몸은 가르고 절개한다고 해서 보이는 해부학적 신체가 아니다.

 

P31 허준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 허준이 된 건 어디까지나 동의보감이라는 저서 때문이다.

 

P4 허준은 대표적인 유의에 속하는 셈이다. 전란과 유배로 점철된 14년이라는 긴 여정 동안 그를 지탱시켜 준 것 역시 그의 학자적 집념 혹은 지적 열정이었다.

 

P38 하지만 생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 두었다던가. 유배기간은 1 8개월. 놀랍게도 그 기간 동안 동의보감이 완성되었다. 이때 한 작업은 전체 분량의 반에 해당된다. 유배지는 그에게 집필을 위한 완벽한 조건을 마련해 준 셈이다. 대반전! 만약 이 작업이 없었다면 유배생활은 얼마나 억울하고 쓸쓸했으랴. 허준으로 인해 동의보감』이라는 비전이 열리기도 했지만, 동의보감』은 무엇보다 그 편찬자인 허준의 생을 구해 주었다. 이것이 바로 자기구원으로서의 공부다. 흔히 생각하듯 온갖 고난에도 불구하고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가 있었기에 고난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것이다. 허준과 동의보감』이 바로 그런 관계였던 것.

è  생은 길섶마다 행운을 숨겨 둔다! 얼마나 멋진 표현인가? 나는 병이 가져다 준 안식년 1 5개월 동안 자기 구원적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안식년 동안 내 책의 반을 썼고, 이제 일터로 복귀해 그 반을 쓰고 있으니 허준과 비슷하네. 안식년 동안의 연구와 탐구가 나를 구원했다고 나도 감히 말할 수 있겠다.

 

P59 허준은 말한다. “의가에서 남북의 명칭이 있어 온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동방에 치우쳐 있으나 의약의 도는 면면히 이어졌으니 우리나라의 의학도 동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허준, 집례)

 

한편 보감은 거울에 비친 듯 명료하다는 의미다. “거울은 만물을 밝게 비추어 형체를 놓치지 아니한다. “환자가 책을 펼쳐 눈으로 보면 허실, 경중, 길흉, 사생의 조짐이 거울에 비친 듯이 명확하니 함부로 치료하여 요절하는 우환이 거의 없을 것” (집례)이다.

 

P60 ‘동의라는 명칭이 이 책이 놓인 시공간적 좌표를 말해 준다면, ‘보감은 이 책이 지향하는 용법과 계층의 보편성을 말해준다.

 

2_의학, 글쓰기를 만나다 : 이야기와 리듬

 

동의보감』은 그 무시무시한 두께에도 불구하고 예상 외로 재미있다. 태극이나 음양, 육십갑자 등 아주 생소한 용어들이 난무하지만 전혀 낯설지가 않다. 이유는 특유의 글쓰기 방식에 있다. 물론 동의보감』 전체가 인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이 글들이 허준 자신의 창작물인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들을 취재하고 배열하는 방식은 분명 허준만의 독특한 스타일이다. 그 중에는 구수한 이야기도 있고 감칠맛 넘치는 운문도 있다. 미적인 차원에서 보아도 발랄유쾌한 유머가 있는가 하면, 소름끼치는 호러물로 있다. 의서에 이렇게 다채로운 글쓰기가 공존하다니. 어찌 보면 동의보감』의 진정한 독창성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P85 부부를 서로 아끼게 하는 방법 : 부부간에 불화가 있을 때는 원앙 고기로 국을 끓여서 몰래 먹이면 서로 아끼게 된다. 5 5일에 뻐꾸기를 잡아 다리나 머리의 뼈를 차고 다니면 부부가 서로 아끼게 된다. (「잡병편」, ‘잡방’, 17729)

è  재밌다. 한 번 실험해 보고 싶다.

 

P87 동의보감』에 등장하는 의사들을 말한다. 의술이야말로 흥미진진한 이야기이자 노래이며, 명의란 거기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탁월한 연출가라고. 나 또한 그렇게 믿는다!

 

P87 질병은 시대의 투영이다. 그 시대의 사회적 조건이나 일상의 배치를 고스란히 보여 준다는 뜻이다.

 

P91 우울증이란 몸적 사건이다. 몸의 기운이 외부와 소통할 통로를 찾지 못하면, 기운이 아래로 처지면서 울결되어 버린다. 그러면, 몸이 무겁게 가라앉으면서 삶의 의욕이 통째로 증발하고 만다. ‘우울이란 단어 자체가 그런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병은 무엇보다 몸의 기운적 배치를 바꾸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몸과 외부가 맺는 관계, 곧 존재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è  나 역시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나의 존재 방식을 회사원에서 자유인으로 바꾸었다. 약물 치료의 효과는 반짝 있었으나 지속되지 않았다. 자유로워지자 우울증이 나를 떠났다.

 

P95 모든 질병은 일상의 흐름과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다. 따라서 병을 치유하려면 궁극적으로 일상을 재배치하지 않고선 불가능하다.

 

P98 낯선 존재와의 접속을 통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변이하는 것, 그거야말로 우정의 진수다.

 

3_ , , : 내 안의 자연 혹은 아바타

 

P113 우주론을 통해 몸과 생명의 원리를 전면에 배치하는 것이야말로 허준의 독창성이다. 동의보감』이 의서를 넘어 자연철학서로 탄생되는 지점도 바로 여기다.

 

정은 생명의 물질적 토대, 신은 물질을 움직이는 무형의 벡터. 이 둘이 결합한 것이 정신인 셈이다. 그러니까 동양사항에 선 몸과 마음을 애초부터 분리하지 않고 통째로 다룬다.

 

P119 “특별히 건강하지 않더라도 평균 체격을 가진 성인이라면 몸속에 적어도 7X10(joule) 정도의 에너지를 가지고있다고 한다. “그것은 대형 수소폭탄 30개 정도가 터질 때의 에너지란다. , 내가 그렇게 파워풀한 존재라니! 빌 브라이슨은 말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런 정도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다만 우리는 그런 에너지를 활용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거의 모든 것의 역사』, 136)

 

P125 에콜로지란 그런 특별한 시공간을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자기가 서 있는 곳을 청정하게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자신이, 자신의 몸이 곧 자연임을 사무치게 깨닫는 것이다.

 

P128 ‘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 씨앗단계, ‘는 그 씨앗들이 발아해서 점차 누적되어 가는 단계, ‘은 그것이 구체적인 증상과 함께 자신을 드러낸 단계

 

P129 ‘미병은 아프지 않은 상태를 가리키기도 하고, 질환으로 현상화되지 않은 상태를 가리키기도 한다. 달리 말하면 미병은 건강과 질병 사이에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몸 상태를 표현하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다. ‘미병일 때 우리는 병으로 진행되지 않도록 치료하거나, 아프지 않은 건강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데 이 노력이 바로 양생이다. (곽노규, 김시천 「고대 동아시아에서 건강과 양생」, 『인문의학』 1 44)

è  나는 특별히 아프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몸이 가뿐한 것은 아닌 상태가 오래 지속되어 걱정을 하고 있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양생이구나.

 

P130 근대 이전에는 건강이라는 말이 없었을 뿐더러 영어 단어 헬스(health)의 어원은 신성함, 전체성, 치유의 뜻에 있어 종교적 뉘앙스가 강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17세기 이후 해부 병리학이 확립되면서 질병을 신체의 부분적 현상으로 축소시켰다. 그리고 세균을 발견하여 병의 실체를 확인한 18~19세기, 항생제와 각종 첨단장비를 발명해 병의 실체에 직접 접근할 수 있게 된 20세기를 거치면서 건강은 점차 질병의 부재를 뜻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건강과 정상성의 척도는 백인 남성의 신체를 기준으로 삼는 까닭에 여성과 유색인종을 비롯하여 장애인, 광인, 노숙자, 기타 사회적 약자들을 범주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거기에는 마치 완벽하게 건강한 신체가 가능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푸코가 말하는 정상성/비정상성의 경계가 탄생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진화론적 관점에 의거하면 기본적으로 정상적인 몸의 상태라는 건 있을 수 없다. 진화란 거창한 설계 하에 이루어지는 장엄한 작업이 아니라, 국소적 차원에 따른 우연적 변화들이 뒤엉킨 비뚤비뚤한 세계다.

 

P131 결국 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병이 있음으로 해서내가 살수 있는 것이다.

 

오랜 투병생활 끝에 질병이 곧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토대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아파야 산다! 이런 관점에서라면 원초적으로 장애란 없다. 서로 다른 신체적 리듬과 강밀도가 있을 뿐! 이것이 바로 의료가 단지 기술의 영역이 아니라 삶의 비전이 되는 지점이다. 운명의 이치 또한 마찬가지다. 번뇌가 곧 나를 살리는 동력이다.

 

P132 이런 관점하에서 병이 낫는다는 건 원상태로의 복귀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의 출현이다. “이 과정에서 유기체의 본질적 특성의 일부가 상실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손실이기보다는 새로운 질서를 위한 밑거름이다.”(강신익, 건강은 없다 : 복잡성의 진화와 의학, 19)

 

4_’통하였느냐?’ : 양생술과 쾌락의 활용

 

P138 인도의 고대의학인 아유르베다는 일상적 인간 행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질병의 가장 큰 원인으로 무엇보다 지혜의 결핍을 꼽는다. 지혜롭지 못하여 어떤 행위를 유발하는 판단에 착오가 생기고, 그 착오로 인해 잘못된 행위를 이끌게 되어 그것이 질병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P140 좋은 기운(정기)이었다고 해도 어느 단계를 넘어서는 순간 그것은 나쁜 기운(사기)으로 전화된다. 불급은 모자라는 것인데, 모자란다는 건 꼭 필요한 정기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한의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허실의 개념도 그렇다. 기가 허하다는 건 정기가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고, 기가 실하다는 건 사기가 꽉 차 있다는 뜻이다. 정기와 사기가 원래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조건에 다라 무상하게 변화한다는 걸 말해준다.

 

존재는 이미 질병을 안고 태어난다. 후천의 삶이란 이 어긋남을 어떻게 조절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만약 태과와 불급으로 그 어긋남을 심화시킨다면? 당연히 질병의 양상이 더 심화될 것이고 결국 요절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더 중요하게는 삶 전체가 심하게 어그러져 버릴 것이다. 몸이 어긋나는데 어찌 사회적 관계나 일의 성취가 가능할 것인가? 마찬가지로 관계와 활동이 어그러졌는데 어찌 또 몸이 건강할 수 있으랴. 또 그런 상태로 생사의 마디를 제대로 넘기란 불가능하다.

 

P141 결국 병을 고친다는 건 존재의 원초적 간극을 넘어서는 것이면서 사회적으로, 나아가 영적으로 자신의 본래면목을 찾아가는 길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태과도, 불급도 넘어서라! ,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 이것은 결코 가운데가 아니다. 평균이나 절충 따위는 더더욱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사이에 더 가깝다. ‘사이란 정해진 척도를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조건과 배치에 따라 매순간 달라지는 존재의 무게 중심 같은 것이다. 유교가 말하는 중용’, 불교의 중도’, 노자의 무위 자연이 그러하듯이. 따라서 이것을 닦아 나가려면 수양(유교), 수행(불교), 수련(도교)을 동시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양생술이 단지 무병 장수의 은밀한 비결을 넘어 삼교회통의 사상적 바다를 유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è  사부님은 평균이 아니라 균형이라는 말씀해 주셨는데. 고미숙은 사이라는 표현을 쓰는구나. 태과도 안되고 불급도 안된다는 의미는 균형이 중요성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P151 사랑에 대해서는 멜로적 낭만이, 성에 대해서는 포르노적 쾌락이 지배한다.

 

P154 노권상(피로한 것)은 아무 이유 없이 생길 때가 있다. 꼭 무거운 것을 들거나 가벼운 것을 잡고 하루 중일 힘쓴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한가한 사람에게서 이 병이 생길 때가 많다. 한가롭게 노는 사람은 몸을 움직여 기력을 쓰는 때가 많지 않고 배불리 먹고 앉아 있거나 눕는다. 이렇게 하면 경락이 통하지 않고 혈맥이 막혀 노권상이 생긴다. 그래서 귀한 사람은 겉모습이 즐거워 보여도 마음은 힘이 들고, 천한 사람은 마음이 한가해도 겉모습은 힘들어 보인다. 귀한 사람은 아무 때나 욕심을 채우고 금기해야 할 것을 알지 못하며 진수성찬을 먹은 뒤로 곧바로 드러눕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항상 힘을 써야 하되, 너무 피로할 때까지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영위가 잘 흐르고 혈맥이 고르게 퍼지게 일하는 정도가 좋은 것이다. 흐르는 물을 썩지 않고 지도리는 좀을 먹지 않는 것과 같다. (내경편, ‘’, 65~66)

è  회사를 그만두고 안식년을 가지며 의아했던 것 중의 하나다. 쉬는데 왜 이리 피곤할까? 이제 알겠다. 한가해 생긴 노권상. 이제 일을 시작했으니 너무 피로해질 때까지 일을 해서는 안 될 텐데 움직이지 않다가 하루 2시간 출퇴근을 하게 되니 그것 만으로도 힘이 드네. 영위가 잘 흐르고 혈맥이 고르게 퍼지게 일하는 정도만 해야지.

 

P155 포인트는 지나치지 않는 것. 기쁨이나 즐거움도 과도하면 병이 된다.

 

P156 오랫동안 소유와 경쟁에 시달리다 보니 늘 불안하고 늘 화가 나 있다. 불안과 분노, 모두 목기와 회기의 태과에서 유래한다. 그것이 자본의 무한증식과 결합하면 점입가경이 된다. ‘부자되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양생적으로 볼 때 이건 치명적이다. ‘열심이란 심장을 늘 덥힌다는 뜻 아닌가. 심장이 늘 뜨거우면? 수명이 줄어든다! 설상가상으로 몸을 쓰는 일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항상 박탈감과 분노로 간의 기운은 치성하고 심장은 뜨근뜨근하다. 그런데 몸은 통~ 쓰지 않아서 몸 전체는 곳곳이 막혀 있다.

è  역시 몸을 많이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P160 기의 조절은 우선 하루의 일상을 태양의 리듬을 따라가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하루는 곧 일생의 축소판이다. 즉 인간은 매일 아침 태어나고 매일 밤 죽는다. 탄생과 소멸을 매일 반복하는 것이다. 따라서 하루는 이 과정을 성찰하고 훈련하는 최고의 현장이다. 어떻게 잠들 것인 것? 이것이 곧 내가 죽음의 강을 건너는 모습에 다름 아니다.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 이것이 곧 다시 태어나는 순간의 생생한 현장이다. 죽음과 내세에 대한 훈련으로 이 보다 더 분명하고 쉬운 건 없다.

è  하루를 잘 보내라. 그러면 일생을 잘 사는 것도 다르지 않다.

 

P162 청춘이든 노년이든 중요한 건 소통이고 순환이다. 그리고 이것에는 기혈의 흐름뿐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 시공간적 배치 등이 모두 함께 작용한다. 소통과 공감이란 존재 전체의 장에서 일어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기를 조절하라!’는 양생적 대원칙이 자기배려의 기술이자 소통의 순환이라는 윤리적 실천으로 변주되는 건 이런 원리에서다.

 

P164 마음을 닦는다는 건 궁극적으로 생사의 문턱을 넘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훈련에 다름 아니다. 도교적 양생술과 불교적 깨달음이 오버랩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P167 양성에는 다섯 가지 어려움이 있다. 명리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 첫째 어려움이고, 희로를 없애지 못하는 것이 둘째 어려움이며, 소리와 색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셋째 어려움이고, 기름진 음식을 끊지 못하는 것이 넷째 어려움이며, 신이 허하고 정이 흩어지는 것이 다섯째 어려움이다. 이 다섯 가지가 가슴속에 없으면 믿고 따르는 마음이 날로 두터워지고 도와 덕이 날로 온전해져서 선을 구하지 않아도 복이 오고 오래 살기를 바라지 않아도 절로 장수하게 된다. 이것이 양생의 큰 요지이다. – 혜강의 양생규칙

 

P168 가장 좋은 음식은 밥물이 걸죽하게 고인, 가장 훌륭한 삶은 담백하고 진솔한 일상, 수련법은 이빨을 맞부딪히는 고치법, 맨손체조, 식후 100보 걷기, 생각은 적게 몸은 많이.

 

P179 젊을 때 철학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되고, 또 나이가 들어서 철학하는 것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일에는 이른 것도 늦은 것도 있을 수 없다. 철학을 아직 시작할 때가 아니라고 말하는 자나 철학을 할 때가 더 이상 아니라고 말하는 자는 행복에 아직 도달할 때가 아니라고 말하거나 행복에 더 이상 도달할 때가 아니라고 말하는 자와 같다. 따라서 젊을 대나 나이가 들어서나 사람을 철학을 해야 하며, 후자의 경우 신과 접촉을 통해, 또 지난날들을 회고하며 회춘하기 위해 철학을 하고, 전자의 경우 어리더라도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미래 앞에서 확고해지기 위해 철학을 해야 한다. (에피쿠로스, 쾌락, 오유석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8)

è  철학하는 것의 정의는 영혼을 돌보는 일. 이 일은 젊을 때나 나이가 들어서나 꼭 해야 할일이다.

 

P175 중요한 건 우리가 가진 물질적 부의 순환이다. 이 점이 생략된다면 어떤 양생술도 도로아미타불이다.

 

5_, 타자들의 공동체 : 꿈에서 똥까지

 

P186 그런데 내가 알지도 통제할 수도 없는 것들로 가득하다면 내 몸은 과연 나의 것일까? 내 몸을 곧 나라고 할 때 그 나에는 이런 것들이 포함되는가? 아닌가? 포함시키자니 정체를 모르는 들이고 빼버리자니 목숨이 위태롭다. 결국 내 몸은 나의 것이 아니다! 내 몸인데 나의 것이 아니라니, 선문답이 따로 없다. 이것만 잘 궁구해도 인생에 대한 큰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P187 꿈은 아름답다, 꿈은 이루어진다, 꿈꾸지 않으면 청춘이 아니다 등등.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말이다. 이때 꿈이란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는 뜻일 터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치지 말아라, 유캔두잇! 등의 말은 듣기엔 그럴싸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다. 희망은 미래에 속한 것이다. 따라서 미래에 내가 이루어야 할, 도달해야 할 어떤 목표를 기준으로 자금의 나를 보는 것인데, 이는 매우 위태로운 일이다. 현재를 오로지 과도기적 단계로 보게 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시 말해 지금, 여기는 늘 뭔가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게 된다. 그럴 경우, 꿈을 이루지 못하면 자신에 대한 비하감이 더욱 커질 것이고, 설령 이룬다고 해도 그 다음엔 또 다른 꿈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 한 번도 지금, 여기를 살아보지 못한 채 삶의 무한지연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다. 양생술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저급한 인생이다.

è  내가 그랬다. 야망에 억눌려 지금 여기를 즐기지 못했다. 한 가지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다음 목표에 마음이 급해 성취의 순간을 즐길 수 없었다. 현재를 즐기지 못하게 하는 꿈은 긴 인생에 있어 약이 아니라 독일 수 있다.

 

P189 간은 오행상 이고, 감정으로는 화내는 것, 폐는 이고 슬퍼하는 것, 심은 고 감정으로는 잘 웃는 것 등등.

 

P190 생리적 기전에 문제가 생기면 그것이 다양한 방식으로 심리적 영상을 만들어 낸다고 본 것이다.

 

P192 일찍이 중국 근대문학의 선구자 루쉰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희망은 허망하다, 절망이 그러한 것처럼.” 그러므로 희망에 대한 집착이 현실을 외면하게 된다면 그런 꿈은 마땅히 버려야 한다. 지나간 것에 매달려서도 안 되지만 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끄달리지 말아야 한다. 지금 당장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박노해) 우리가 대체 이토록 노력해야 할 이유가 없다.

 

P195 심은 성음(목소리)의 주인이고, 폐는 성음의 문이며, 신은 성음의 뿌리다.

 

P198 로고스(지성)가 곧 로퀜스(언어)인 것. , 내 언어의 한계가 곧 내 삶의 크기이자 운명의 지도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원초적으로 호모 로퀜스다.

è  고미숙의 통찰에 동의! 언어의 범주를 넓히는 것이 삶의 크기를 확대하고 운명의 지도를 다시 그리는 것!

 

P202 자신의 소리와 교감하는 최고의 방법 가운데 하나가 고전을 낭송하는 것이다. 고전에 담긴 문장은 율려 자체가 신체적 감응력을 높여 준다. 묵독을 통해서는 형해화된 뜻을 취하고 말지만 소리 내어 읊게 되면 그 지혜가 율려를 타고 내 몸 속으로 흘러 들어 오게 된다. 만약 좋은 벗들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멋진 쿵푸는 없으리라.

 

P219 건강의 지표는 식스팩이나 롱다리가 아니다. 가장 먼저 소화가 잘 되는가? 그리고 똥오줌이 잘 나오고 있는가? 다시 말해 외부에서 들어오는 타자들을 잘 수용할 능력이 있는가? 그리고 이미 익숙해진 것들과의 작별을 기꺼이 감내하고 있는가? 핵심은 거기에 있다.

 

6_오장육부, 그 마법의 사중주

 

P228 얼굴은 오장육부의 아바타다. 눈은 간이요, 귀는 신장이며, 코는 폐고, 혀는 심장이다.

 

P230 동의보감』에서 장기의 건강성 여부는 그 장부의 기운이 미치는 전체 영역의 유동성과 연관되어 있다. , 리듬과 강밀도가 관건인 것. 경락이라는 개념이 바로 그것이다. 폐경맥은 폐가 아니라 팔다리에 퍼져 있다. 폐기와 관련된 병이 생기면 폐를 직접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이 폐경이 흐르는 팔과 손에 침을 놓는 것도 이런 원리이다. 다른 장기들과 기운을 원활하게 주고 받는가, 그리고 자기가 담당하는 구역에 제대로 된 에너지를 순환시키고 있는가 하는.

 

오장 : , , , , / 육부 : , 소장, , 대장, 방광, 그리고 기운의 분포도를 말하는 삼초부

 

P236 밤낮을 바꾸면 에너지는 두 배, 세 배로 소모된다. 태양의 에너지를 하나로 쓰지 못하고 내 안에 있는 기운을 쥐어짜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밤에 활동하는 경우, 그 내용이 결코 생기발랄한 것일 수가 없다. 형식이 내용도 규정하는 법, 점점 더 삶이 혼탁해질 수밖에 없다. 최소한 하루의 리듬에 대한 공통감각만 있어도 그런 식의 악순환에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P238 그 부질없는 쳇바퀴를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지금, 여기라는 현장을 오롯이 주시할 일이다. “겨울에 여름을 그리워하지 않고 밤에 새벽을 기다리지 않는툰드라의 유목민들이 그러하듯.

 

P251 음허화동에서 수승화강으로! – 양생의 대원칙은 이렇게 규정될 수 있다.

 

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일단 하체를 많이 쓰면 된다. 제기차기, 자전거타기, 달리기, 108배 등등. 제일 좋은 건 걷기. 걸음아, 날 살려라!는 말이 이 경우엔 참으로 적실하다. 규칙적으로 등산을 하는 것도 좋고, 아니면 일상 속에서 틈나는 대로 주변 공간을 걷는 것도 좋다. 굳이 돈 들여서 헬스클럽을 다닐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일상과 결부된 운동은 무시하고 꼭 특별한 코스를 밟아야만 건강해질 거라는 믿음, 그것도 자본과 상품이 조장하는 일종의 음허화동이다. 수승화강이 안 되면 생각의 회로 역시 고착되어 버린다. 삶을 운용하기보다 하나에 꽂혀 중독증으로 치닫게 마련이다.

 

P274 이명이 들린다는 건 청력도 문제지만 신장의 기운이 부족하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7_병과 약 : 모든 경계에는 이 핀다

 

P290 이 기싸움의 균형점이 깨질 때 무슨 일이 벌어질까? 각종 병들이 활짝 나래를 편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고 노래한 시인이 있었다. 그의 말처럼, 병이란 몸과 외부 사이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외감이란 외부의 기운에 감한다, 감기라는 뜻이다. 우리가 아는 그 감기는 물론이고, 외부의 기운과 부딪혀서 발생하는 모든 증상이 다 포함된다.

 

P299 현대의학이 정보와 기술의 누적을 중시한다면, 한의학에선 단번에 핵심을 관통하는 직관을 중시한다.

 

P302 병은 배치의 산물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전변한다. 그러므로 의사는 마땅히 병이 놓인 좌표와 그 이동의 경로를 정확히 포착할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보면 안다는 병의 자리와 그것의 예후, 다시 말해 병의 시공간성을 동시적으로 간파하는 것을 의미한다.

 

P305 임상의학은 병의 장소성을 강조한다. 병을 어떤 장기 혹은 기관의 국소적 장소와 일대일로 대응시킨다. 그것이 현대의학이 병을 명명하는, 병에 시공간적 좌표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P309 이렇듯, 큰병일수록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라는 메시지에 해당한다.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만 있다면 어떤 경우에도 삶은 계속된다. 건강이란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병을 생의 선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다.

 

P323 결국 내상이나 허로 모두 핵심은 조절이다. 음식이건 노동이건 성생활이건 자신이 조절하는 범위를 넘어 버리는 순간 병이 된다. 병이란 그 균형점이 깨어졌음을 알려 주는 표지다. 따라서 병을 고치려면 일단 통증을 가라앉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시금하게는 몸의 조절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몸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

 

P331 병과 몸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관계와 배치다. 몸의 소통능력이 암의 불통을 이길 수 있는가도 달려 있다. 암뿐 아니라, 어떤 병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늘 자기를 돌아보라고 하는 것이다. 자기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병을 고친다고 해도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이웃과의 소통, 함께 사는 아름다움을 자각하는 것, 그것이 곧 앎이다.(정화스님)

 

붓다는 6년 고행을 하던 시절에 인간이 앓는 404가지 병을 다 마스터했다고 한다. 몸이 연출할 수 있는 모든 고통의 축제에 다 참여했다는 뜻이리라. 거듭 말하지만 병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병 없는 삶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선택은 병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있을 뿐이다. 병과 원수와 적이 아니라, 때론 친구가 되고 때론 스승이 되고, 때론 연인이 되는 것, 그런 식의 대전환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이 열꽃들의 화려한 축제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을 것이다.

 

P342 동의보감』에서 처방이란 약재의 잠재력 및 여러 약지들 사이의 힘과 기를 배합하는 관계의 기술이다.

 

P346 다다익선은 금물이다. 좋은 약을 많이 쓰면 이롭겠지, 보약이니까 무조건 몸에 좋겠지, 몸에 좋은 걸 골고루 많이 먹으면 되겠지, 모두 아니다! 수없이 반복했지만 태과는 불급만 못하다. 좋은 성분이나 요소가 많이 쌓이면 좋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아니다. 오히려 나빠진다.

 

P352 사실 병은 내 몸과 외부의 기운이 어긋나서 발생한다. 따라서 그 책임은 일단 나에게 있다. 따라서 아프다는 건 내가 내 몸에 대해 책임을 지는 행위에 해당한다. 그런 점에서 약과 의사는 도우미일 뿐, 치료는 전적으로 환자의 몫이다.

 

P353 아프지 않고 건너뛴 시간만큼 숙성하고 또 숙성하여 어느 날 문득 마치 괴물처럼 내 몸을 덮친다. 결국, 병이건 삶이건 이치는 간단하다. 아파야 낫는다. 또 아픈 만큼 성숙한다!

 

8_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P363 여성의 임신과 탄생을 병리학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P366 임신과 출산, 거기에 따르는 여성들의 생리는 결코 병이 아니다. 샤론 모알렘은 말한다. 자궁은 진화의 궁극적인 실험실이라고.

 

P374 여성에게 병이 있으면 그게 뭐든 간에 일단 생리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생리 안에 감정과 일, 생활리듬 등 모든 것이 담겨 있다.

 

P376 여성의 억압에 대한 제도적, 법적 저항도 중요하다. 하지만 여성이 스스로 자기 인생을 주도하는 생체 에너지가 없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그런데 운명의 주도권은 어디까지나 몸에서 나온다. 몸은 역동적인 에너지장이다. 그런데 그 에너지장이 가장 왕성하게 순환해야 하는 나이가 사지가 결박되어 지내야 하니 그 기운이 대체 어떻게 되겠는가. 자신의 내부에서 맴돌다 자신을 공격하는 수밖에.

 

P381 더 근본적인 것은 여성이 남성의 시선이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생의 주기를 넘어 가는 것이 아닐까? 여성성은 결코 성욕과 구애의 대상으로만 인증되는 것이 아니다. 여성성의 해방이란 오히려 그런 욕망의 배치로부터의 탈주이기도 하다.

 

P383 여성에게 필요한 건 각종 서비스와 호르몬제가 아니라, 스스로의 몸과 그 몸에서 작동하는 우주적 지혜를 알아차리는 매움의 현장이다.

 

P390 따라서 가장 중요한 건 관찰이다. , 감정의 회로를 아주 다른 인과 속에서 볼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그 힘을 통해서만이 비로소 나를 가두고 있는, 아니 나에게 갇혀 있는 감정들이 외부를 향해 흘러갈 수 있다. 감정이 흐를 수 있는 통로를 여는 것, 그것이 곧 공감의 기술이다.

 

P391 인생이란 바로 이렇게 나 외의 다른 존재들과 접속하는 것이다. 타자와의 접속을 통해 미친 존재감을 마음껏 발휘하는 것, 이 공감의 기술이야말로 여성들이 칠정의 억압 혹은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는 길이자 최고의 양생술이다.

 

P392 오히려 통증을 충분히 겪은 뒤 분만을 하고 나면, 몸 전체가 환골탈퇴하는 해방감과 우주적 활동에 참여했다는 자존감을 만끽할 수 있다. , 분만의 통증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진통은 그 나름의 리듬과 속도를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리고 우리의 한계를 넘어선 절차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통과 함께하고 진통이 우리를 휩쓸어 버리도록 내버려 두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크리스티안 노스럽,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348)

è  글쎄다. 고미숙과 크리스티안 노스럽은 진통의 경험이 있을까? 두 번이나 분만의 고통을 온 몸으로 겪어낸 내가 보기에 위의 언급은 실체를 모르고 다소 감상적으로 쓴 글이 아닌가 싶다. 나는 지금이라고 그 진통을 피할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택할 것이다.

 

P400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도대체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 이게 10, 20대들의 공통된 독백이다. 이름하여, 3대 무지의 법칙! 아주 이른 시기부터 거쳐야 했던 속도경쟁 속에서 내면의 지혜와 힘을 박탈당한 탓이다.

 

P416 우리시대 여성들을 지배하는 가장 큰 키워드는 인정욕망이다. 그 욕망의 대상은 처음엔 부모, 다음엔 남편, 그리고 아이들이다. 사실 인정욕망 자체가 문제라 할 순 없다. 타자들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통과의례 같은 것이니까, 하지만 그 대상들이 모조리 가족 안에 갇혀 있다는 건 참으로 기인한 현상이다.

 

P418 남성들을 자연의 비밀지를 깨우치기 위해 먼 길을 떠나지만 여성들을 그럴 필요가 없다고. “남성의 비밀결사가 관리하는 비밀지는 비일상성이 높은 데 비해, 여성적인 자연지는 식사를 준비하거나 육아를 하는 등 일상적인 행위의 연장선상에 극히 자연스런 형태로 탄생하는 지성이므로 훨씬 일상성이 높은 지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나카자와 신이지, 대칭성 인류학, 김옥희 옮김, 동아시아, 2005, 157)

 

P419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 자체가 훌륭한 통과의례이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는 일을 통해 저절로 우주적 창조의 과정에 접속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에겐 일상 자체가 자연이고, 곧 자연의 지혜를 터득하는 과정이다.

 

P420 글쓰기란 몸에 대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투의 일환이다. 전투의 제일보는 배움의 자세다. 배움이야말로 최고의 생존전략이다.

 

P421 글쓰기란 그런 식의 치유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주도해 갈 수 있는 능동적 단련을 의미한다. 자기수련으로서의 글쓰기, 자구구원으로서의 앎!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주인공은 바로 자신이다. “우리가 기다렸던 사람은 바로 우리다.” 고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언해야 한다.

 

에필로그_글쓰기와 호모 큐라스

 

P427 미병단계와 초기단계에 개입할 수 있는 의사, 의사와 환자의 경계가 불분명한 상태의 의료적 공간이 활짝 열려야 한다.

 

병의 원인은 아주 간단하다. 음식과 운동, 칠정과 관계, 이것이 거의 전부라고 해도 무방하다. 따라서 일단 몸이 아프면 누구나 이 과정에 대한 점검을 시작해야 한다. 식습관을 바꾸고, 적절한 운동을 시작하고, 감정의 회로를 관찰하고 노동의 질과 양을 조절하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어떤 치유책도 별 의미가 없다. 수술과 약, 특효법은 그 다음에 투여되어야 한다.

 

P429 태어난 이상 누구든 아프다. 아프니까 태어난다. 태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곧 아픔이다. 또 살아가면서 온갖 병을 앓는다. 산다는 것 자체가 아픔의 마디를 넘어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결국 죽는다. 모두가 죽는다. 죽음은 삶의 또 다른 얼굴이다. 생명의 절정이자 질병의 최고경지이기도 하다. 결국 탄생과 성장과 질병과 죽음, 산다는 건 이 코스를 밟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질병과 죽음을 외면하고 나면 삶은 너무 왜소해진다. 아니, 그걸 빼고 삶이라고 할 게 별반 없다. 역설적으로 병과 죽음을 끌어안아야 삶이 풍요로워진다. 잘 산다는 건 아플 때 제대로 아프고 죽어야 할 때 제대로 죽는 것, 그 과정들의 무수한 변주에 불과하다.

 

P430 몸이 아프면 성질도 나빠지고(좋아지는 경우는 절대 없다!), 존재의 축이 자꾸 허물어지는데도 자기를 돌아볼 줄을 모른다. 기껏 한다는 게 한탄과 원망, 죄의식과 무력감 등, 니체가 비웃어 마지 않았던 노예의 도덕으로 충만해진다. 자기수련이란 이 배치에 대한 저항과 탈주로부터 시작된다. 단순히 통증이 사라진다는 의미의 치유가 아니라, 왜 아픈지, 이 고통의 의미가 뭔지, 이것이 나를 둘러싼 관계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알고자 하는 것, ‘무지의 늪에서 앎에 대한 열정으로의 대전환

 

P431 박노해 시인은 우리 모두가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같은 맥락에서 호모 큐라스가 된다는 건 자기 몸의 연구자가 된다는 의미다.

 

허준과 이제마, 두 거인이 꿈꾸었던 최고의 이상은 모든 사람이 앎의 주체가 되는 것이었다.

 

P433 보통사람들에겐 실용지와 기술지만 던져 주고 고전의 지혜와 비전은 부르주아들이 점령해 버리는 기이한 독점현상!

 

P434 행으로 이어지지 않는 건 꿈이 아니라 망상일 뿐이다. 그럼 어떤 행이 필요한가? 108배나 등산, 걷기, 낭송 등등 방법은 수없이 많다. 뭘 택하건 매일의 일상에서 규칙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가능하면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공간에서. 처음에는 힘들지만 몸이 그 리듬에 익숙해지면 그 시공간의 기운을 몸에 저장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 반드시 앎의 의지와 욕망이 함께 가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어떤 실천이나 수행도 매너리즘에 빠지고 만다. 글쓰기가 가장 좋은 수련법이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P435 글쓰기는 본디 지성의 정점이다. 삶과 세계를 언어로 구조화할 수 없다면 아직 지성의 주체가 아니다.

 

자신의 몸과 삶을 언어로 조직할 수 있으려면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집중력이 곧 정기신의 확보다. 물로 물론 여기에는 차서가 있다. 먼저 독서의 밀도가 높아져야 한다.

 

몸이 아픈 사람은 먼저 신체일지를 쓰는 게 좋다. 어떻게 아픈지, 아픔의 경과가 어떤지, 약에 대한 반응과 심리의 경로까지그러자면 자연히 일상의 모든 사항을 세밀하게 관찰하게 된다.

 

P436 아무리 다양한 병증과 통증을 체험했다 해도 그것을 꿸 수 있는 서사적 능력이 없다면 진정한 통찰력을 불가능하다. 글쓰기란 이 통찰력을 터득하는 최고의 방편이다.

 

P437 병을 만든 것도, 그 병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도, 그리고 그 병을 치유할 수 있는 것도 여러분 자신입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의 의사가 되십시오!

 

3. 내가 저자라면

 

내가 읽은 고미숙의 두 번째 책이다. 그녀의 발랄하고 톡톡 튀는 문체는 여전하지만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다룰 때 보다 더 깊어졌다. , , 앎에 대한 심오한 통찰과 이에 대한 연구와 탐구가 얼마나 심오한지 책을 읽고 있자면 고스란히 느껴진다. 나 역시 병과 몸, 그리고 앎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으로, 감이당에 들어가 그녀와 함께 뒹굴고 구르며 공부하고 싶은 충동이 마구마구 솟구쳤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고미숙의 이야기에 쏘옥 빨려 들어간다. 어쩌면 그렇게 감칠맛 나게 이야기하는지. 가끔 삼천포로 빠지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재미있다.

 

이 책은 동의보감의 원래 텍스트보다 저자의 참고도서(그리스 의학을 비롯한 기타 서적)의 인용이 많아 보인다. 그래서 살짝 아쉬운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은 동의보감을 그녀 나름의 관점으로 해체하여 재구성한 것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국적 제약회사에서 7년을 근무한 나는 나도 모르게 철저히 임상의학을 신봉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동의보감의 관점이 매우 생경하고 신선하게 다가왔다. 한의원에 가서 숱하게 들었던 기가 약하다의 의미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다. 병이 우연히 실수로 들이닥치는 존재가 아니라 분명한 메시지를 들고 찾아오는 전령사라는 그녀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에게 찾아온 질병 역시 나의 생각과 삶을 바꾸어 놓았으니 말이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병이 찾아 왔다면 그 전령사가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허준은 1 8개월 동안의 유배기간 동안에 동의보감을 완성할 수 있었다. 나 역시 1 5개월 동안의 안식년 휴가 동안 내 첫 책의 반을 쓸 수 있었다. 이제 안식년을 마치고 다시 일터로 나섰다. 나머지 반은 일터에서 머물며 써야 하는데 고미숙이 이야기한 태과와 불급의 묘미를 살려야 할 타이밍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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