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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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일
2010년 첫 직장에서 매우 힘든 시기에 한 모임에서 만났던 언니와 오래간만에 만났다. 밥을 먹고 시원한 바람이 부는 카페에 앉아 우리는 폭풍 수다를 떨었다. 얼굴을 못 본 지난 1년 6개월 남짓의 시간 동안 우리는 많이 다르지만 참 비슷한 시간을 보냈다. 언니는 10년 넘게 다니고 있는 회사를 꾸준히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회사를 5개나 옮겨 다녔다. 언니는 회사를 꾸준히 다니던 그 시간 동안 내면을 탐구하는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특히 연구소에서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에 많이 참가를 했는데, 정말 농담처럼 얘기했지만 변경연 프로그램 ‘그랜드 슬램 달성’이란 플랜카드를 걸어도 될 정도다. ‘어떻게 그 많은 프로그램에 참여했냐?’는 나의 질문에 언니는 ‘내가 힘들 때마다 그런 프로그램들이 눈에 보이더라’고 답했다.
같은 시간 나는 회사는 이리저리 옮겨 다녔지만 꾸준히 해 왔던 것이 있다. 바로 연구원 과정이다. 1년이란 시간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잘 할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등 다양한 질문들을 내게 했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 왔다. 많이 다른 방식이었지만 비슷한 목적으로 방황해 온 우리들. 지금도 각자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언니와의 즐겁고 유쾌한 수다를 마치고 햇빛이 가장 뜨거운 시간을 지나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일주일 중 일을 하지 않는 4일간 나는 해야 할 일이 참 많다. 오늘도 밀린 일들을 하기 위해 광화문의 조용한 북카페를 찾았다. 카페에 도착해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해야 할 일을 머리 속으로 정리 해 본다. 아이디어 컴퍼니의 첫 프로젝트가 될 ‘책 홍보 마케팅’에 대한 기획안을 써야 한다. 미국에 있는 아저씨께 한국에서 찾을 수 있는 항공학교 정보를 정리해서 메일을 보내야 하고, 내 책의 목차를 다시 잡아야 한다.
해야 할 일들이 여러 개일때면, 나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 많은 자기계발서에서 이야기하듯 ‘급하고 중요한 일’부터 해야 하는 것인지, 정말 즐겁고 마음이 가는 일부터 해야 하는지… 사실 세 가지 일 모두 내게는 중요한 일이지만, 일정상으로 보면, 기획안을 쓰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고, 다음이 항공학교 정보를 찾는 일, 그리고 책의 목차를 쓰는 것이다. 사실 마음으로는 책을 어떻게든 빨리 정리해야 할 것 같은데, 계속 미루게 된다. 오늘은 이 세 가지를 무조건 다 하고 가리라 마음을 먹고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이디어란 그냥 한 자리에 머물러 컴퓨터 모니터만 바라본다고 나오는 게 아니다. 계속 무언가를 썼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혹시나 무언가 떠오를까 싶어서 페이스북과 트위터도 들락거려 본다. 시간은 가고 나오는 결과물은 전혀 없고, 머리는 아파온다. 세 시간쯤 지났을까? 해가 뉘엿뉘엿 지고 바람이 약간 쌀쌀해 질 때쯤 슬슬 집에 가서 밥 좀 달라고 배속에서 난리가 났다.
그래, 결심했어!!! 이러다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끝내지도 못하고 집에 갈 것 같아서 쓰던 기획안은 접고, 항공학교 정보를 열심히 뒤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진도가 훨씬 빠르다. 찾을 수 있는 학교가 많지 않기도 하지만, 학교를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마구 신이 난다. 30분 남짓 3개의 학교 정보를 모았다. 학교의 위치, 학비, 등등을 찾아서 정리한 뒤, 아저씨에게 메일을 보냈다. 드디어 원래 계획했던 일 중 하나가 끝났다. 책 목차를 써야 하는데 배가 고파서 못하겠다. 결국 일을 충분히 더 할 수 있는 저녁 8시쯤 정리를 하고 집으로 향한다. 사실 책에 대한 생각이 가장 간절하다. 거의 매일 아침 글을 쓰고 있고, 일상에서는 끊임없이 온몸의 촉수를 세워 글 쓸 소재를 찾는다.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이 책이기 때문에 사실 이렇게 시간이 주어졌을 때도 계속 고민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미루게 된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목차에 대한 생각이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아 애써 외면하고 있다.
해야 할 일을 절반 아니 1/3만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발걸음도 가벼울 수 있는 내가 참 좋다. ‘하나라도 끝낸 게 어디냐?’고 생각하니 마음도 가볍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선순위!!!’ 내게 주어진, 혹은 내가 하기로 마음 먹은 다양한 일들이 있을 때,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먼저’ 하고 싶은 일의 순위를 매기면, 오늘 오후에 만났던 언니와 내가 찾고 있는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일을 해낼 때의 마음도 잘 들여다보면, 이것이 진짜 내가 하고 싶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항공학교를 찾을 때 내가 그렇게 신났던 것처럼. 끊임없이 내 책에 대해 생각하는 것처럼. 이 두 가지 일보다 적은 시간을 투여하고 있지만, 아이디어 컴퍼니의 프로젝트를 생각하듯이. 그리고 참 재미있고 신기한 사실은 출근하지 않는 나머지 시간 동안 회사 일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나머지 시간을 모두 쏟아 붓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지금 그런 일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이 순간이 내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다 가면 좋겠다.
#58. 운명
요즘 빠져있는 드라마가 있다. 조선 왕의 세자빈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고, 그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왕은 세명의 충신들과 길을 떠난다. 그러다 절벽에서 말과 함께 떨어지는 찰나 네 사람은 현세에서 혼자 살고 있는 어떤 여자가 혼자 살고 있는 옥탑방으로 순간 이동을 하게 된다. 왕이 환생한 한 청년은 기업의 후계자이나 기업에는 관심 없다. 그를 시기한 사촌형과 말다툼을 하다 미국의 망망대해에 빠져 실종된다. 청년의 자리를 과거의 왕이 대신하게 된다. 그리고 회사에서 왕은 세자빈을 만난다. 전생에 끊어진 인연의 끈을 현세에서 다시 이으면 전생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녀와의 결혼을 결심한다. 현세에서 좌충우돌 하면서 그는 세자빈이 아닌 진짜 사랑을 찾게 된다. 현세에서 그리고 전생에서도 세자빈의 동생인 여인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사실 원래 세자빈으로 간택되었던 것은 동생인 그녀였다. 하지만 질투한 언니가 그녀의 얼굴에 인두로 화상을 입히고, 동생 대신 세자빈이 된 것이다. 전생에 이루어졌어야 하는 사랑이 현세에 와서 결국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 드라마를 보며 내게 떠오른 키워드는 ‘운명’이다. 과연 운명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요즘 내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 그리고 내게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며 나는 도대체 어떤 운명으로 태어난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 엄마와 아빠 그리고 동생들을 만나게 된 인연도 어쩌면 전생에 무언가 또 다른 관계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1년에 한두 번 정도는 점을 보러 간다. 보통 무언가 현실에서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있을 때 가게 된다. 하지만 이미 내 마음은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다만 그것에 대한 확신을 얻고 싶어 점을 본다. 아주 가끔은 내가 원치 않는 대답을 얻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이렇게 생각한다. ‘저 사람 용하다더니, 아닌가?’라고 생각해 버린다.
나는 지금 내 운명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내 운명을 미리 볼 수 있고, 정해진대로 살아야 한다면? 정말 재미없는 삶이 될 것이다. 나의 운명을 알고 있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 없음을 뜻한다. 다행히 아무도 자신의 운명을 알 수 없다. 매 순간의 선택이 쉬운 길이든, 어려운 길일지는 일단 걸어봐야 알 수 있다. 그래서 늘 선택의 순간은 결과를 알 수 없기에 설렌다. 힘들어도 계속 참으며 다니던 회사를 결국엔 몸이 아파서 때려 친 사람이 있다. 나처럼 계속 회사를 다니고 싶은 마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잘리는 바람에 나오게 된 사람도 있다. 돌이켜보면 그 때 회사를 나오는 것이 나의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 때에도 나오지 않았다면, 나는 계속 돈과 빚 때문에 스트레스만 받으며 살았을 것이며, 지금처럼 다양한 다른 경험들도 못 했을 것이다.
“돈의 기능은 소유가 아닌 쓰임에 있다. 돈을 써야 하는 주목적은 경험을 사기 위함이다. 생의 종착역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뒤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제게 이렇게 많은 경험을 주셨음을!’”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이란 책에 있는 내용이다. 첫 직장에서 나는 사람들에게 ‘돈의 쓰임보다는 돈의 소유’에 대해 얘기했다. 정작 나의 삶은 소유보다 쓰는데 치우쳐져 있었다. 그렇게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의 괴리가 생기더니 점점 그 폭이 넓어졌고, 언행불일치는 나의 정신을 압박해 왔다. 회사에서 나오면서 이 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자 내게 이 문장이 다가왔다.
“어제는 가 버렸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겐 오늘이 있을 뿐입니다. 자, 시작합시다.”
구본형 선생님의 <일상의 황홀>이란 책을 읽다가 찾게 된 마더 테레사의 말이다. 우리에게는 오늘이 있을 뿐이다. 회사를 다니며 나는 늘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계속 이야기했다. 그 미래를 위해서 지금 버는 돈을 저축해야 하고, 보험을 가입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오늘’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오늘’이 중요하다. 현재가 즐겁지 않으면, 즐거운 미래도 오지 않는다. 오늘 하루를 힘겹게 보내면, 힘겨운 내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운명이란 녀석은 더 즐겁게 살라고 회사생활에 힘겨워하는 누구에겐 ‘병’을 주어 회사를 벗어나게도 하고, ‘해고’라는 상황을 주어 회사를 벗어나게 해주기도 하나 보다.
나는 운명을 믿는다. 내게 우연히 찾아오는 기회, 설레임들을 쫓아 가고, 그 길에 놓여진 다양한 장애물들을 넘어 꿋꿋하게 걸어가는 길. 그 길이 바로 나의 운명이라 생각한다. 지금 나는 운명의 길로 가고 있을까?
#59. 존재의 의미
어린이 날을 맞이하여 학교 안의 인적이 드문 벤치를 찾았다. 책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1/3 가량을 읽은 <일상의 황홀> 읽는다. 책의 첫 파트인 봄을 다 읽고 고개를 들어 아래 쪽에 있는 벤치를 보았다. 마주 보고 있는 벤치에 두 명의 여자 친구가 과자와 맥주를 사 가지고 앉아서 대화를 하고 있다. 여름을 다 읽고 다시 그 곳을 보았더니 아까 있던 여자 친구 두 명은 가고 머리가 벗겨진 어떤 아저씨가 등을 지고 앉아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또 다시 겨울을 읽고 그 벤치를 봤더니 이번엔 까만색 폴로티를 입고 있는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 사람의 혼자 있는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얼른 고개를 돌려 책으로 시선을 가져갔다. 봄여름가을겨울, 저자의 매일의 기록을 읽는 두 시간 동안 내 눈앞의 풍광에도 계속 변화가 일었다.
강한 바람에 책장이 저절로 넘겨질 정도가 되자 노란색의 예쁜 벌레들이 책 이리저리로 돌아다니며 놀고 있다. 행여나 그 벌레들 생명줄을 끊어놓을까 조심스레 책장을 넘긴다. 책을 읽는 동안 인적이 드문 이곳에 자리를 잡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도 여럿 지나갔다. 대부분 혼자이거나 커플이었는데, 내가 자리를 잡고 있어서인지 지나쳐 또 다른 곳을 향해 걸어갔다. 어쩌면 ‘그냥 지나가던 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중 한 무리의 친구들이 왔다. 아직 시험이 끝나지 않은 학생들인 것 같았다. 한 명이 이 화창한 날씨에 차를 타고 멀리 떠나고 싶다고 하자, 다른 한 명의 친구가 옆 나무에 기대어 있던 긴 나무 빗자루를 집어 들고 다리 사이에 끼운다. 순간 그 빗자루는 마법의 빗자루가 되었다. 그리고 친구에게 한 마디 한다.
“야, 타!!”
이 화창한 봄날에 시험공부 하느라 학교 도서관에 있던 이들에게 순간의 일탈이 한바탕 웃음으로 끝이 나고 그들은 다시 자리를 떴다. 그러자 내게 또 다시 고요함이 찾아왔다.
다 읽은 책을 옆에 두고, 잠시 눈을 감는다. 눈을 감으면 잠자고 있던 나의 감각들이 되살아난다. 온 몸을 휘감는 바람이 느껴지고, 그 바람에 부딪히는 나뭇잎들은 파도소리를 만든다. 지나가는 새들의 지저귐, 살갗에 닿는 태양의 따뜻함. 감은 눈 앞에 빨갛게 그리고 까맣게 보이는 구름의 이동. 나는 특히 나뭇잎이 부딪히는 소리가 참 좋다. 도심 한 복판에 자리잡은 대학의 벤치에서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좋고, 바람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다양한 나의 감각들이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그 순간, 나는 어느 새 자연의 일부가 된 듯하다. 내가 바람인지, 바람이 나인지 모르는 상태에 이른다.
바람결을 따라 번식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는 민들레 홀씨가 차디찬 자동차 지붕에 내려 앉는다. ‘저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것도 잠시. 곧 다시 불어 올 바람이 그들이 정착하고 뿌리내릴 수 있는 곳으로 인도할 거란 생각에 안도감이 든다. 바람은 민들레뿐만 아니라 다양한 자연을 다른 곳으로 옮긴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입은 옷을 보니 아까 내 책장에 내려 앉아 놀던 그 노란 벌레들이 내 옷 여기저기에 붙어 있다. 그것도 모르고 이리저리 움직이던 나의 몸놀림에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나버린 녀석들도 보인다. 덕분에 내 옷은 그 아이들의 잔해로 노랗게 물들어 버렸다. 작은 벌레들의 무덤이 생겼다. 하지만 너무 슬퍼하지는 말자. 이 또한 그들의 운명일 테니.
잠시 고개를 들어 옆을 보니 나를 따라 고개를 들고, 다리 한 쪽을 꼬아 올린 채 벤치에 앉아 열심히 펜을 붙잡고 있는 또 다른 내가 보인다. 내가 머리를 움직이면, 따라 움직이며 존재하고 있었다. 나를 따라다니는 이 아이를 볼 수 있는 것은 하루 중 태양이 내 머리 위에 떠 있는 그 순간뿐이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에게 물었다.
“이렇게 매일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너의 존재가 슬프지 않니?”
“괜찮아. 곧 사라지지만 나는 매일 새롭게 태어날 테니까. 니가 존재하고 있다면 말이지.”
어쩌면 나란 존재는 나만의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존재함으로써 존재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러니 내 목숨은 나만의 것이 아닌 것이다. 내가 목숨을 유지한 채 존재해야만 하는 어떤 이유. 매일 새롭게 시작되는 일상이 바로 내 존재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60. 엄마와의 대화
엄마와 대화가 길어지면 항상 짜증으로 끝난다.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이번 주말도 역시 그렇게 끝나 버렸다. 결국 엄마는 내게 “넌 왜 그렇게 나한테 짜증내면서 말해?”라고 얘기하고, 나는 그저 얼굴 표정으로 말하고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카페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는데 또 눈물이 난다. 세상에서 나와 연결된 모든 인간관계에서 짜증과 화를 가장 많이 내는 사람은 엄마다. 예전에 보험회사에서 영업을 할 때 사람 만나는 것이 힘들어서 심리상담을 받게 되었을 때도 이상하게 엄마 얘기만 나오면 눈물이 흘렀다. 상담을 할 때도 느꼈지만, 시간이 흐르고 계속 같은 패턴의 대화가 반복된다. 이상하게 엄마와 대화를 하고 있으면, 내 속에 있던 분노가 끓어 오른다. 나름대로 참아 보지만, 오늘처럼 대화가 길어지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이 오면 결국 폭발한다. 나는 10번 중 9번은 집 밖으로 뛰쳐나와 대화의 흐름을 끊어버린다.
오늘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일까? 오늘 아침 청소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집 전체를 마음먹고 치우고 싶지만, 다시 말해 싹 버리고 싶은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버리고 싶은 것들 것 대부분은 엄마 소유의 물건들이라 내가 손을 댔다가 엄마에게 욕 먹을 것이 뻔하기에, 일단 내 물건과 방부터 치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작은 방의 붙박이 옷장에 있는 물건들을 꺼내 버릴 물건들을 골랐다. 그리고 거의 다 치워갈 무렵 이제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를 버리고 씻고, 나갈 생각을 하던 차였다. 아침 일찍부터 나가 테니스 레슨까지 일정이 끝난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어디야?”
“나 집.”
“그래? 엄마 이제 집에 가려고 하는데, 너 또 나갈거지?”
엄마와 나는 생활 패턴이 다르기 때문에 나는 항상 엄마가 집에 들어올 시간쯤이 되면 슬슬 집에서 나갈 준비를 한다. 하지만 엄마는 늘 내게 엄마를 피해서 나간다고 얘기를 한다.
“어, 나 지금까지 내 방 청소하고 이제 씻고 나갈려고.”
“그래? 엄마 지금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회 사서 갈 건데, 먹고 나가~”
“알았어. 그럼 빨리 와.”
쓰레기를 버리러 나간 사이에 엄마가 집에 들어왔다. 좁은 부엌 통로에 엄마가 사온 까만 봉지들이 널려 있었다. 엄마는 화장실에서 얼마 전에 다 죽여버린 모종들을 버리고, 새로 사온 모종들을 심고 있었다. 이번에는 잘 키우려고 그러나? 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엄마가 모종을 심는 모습을 그냥 아무 말 없이 보고 있었다. 몇일 전 베란다에 만들어 둔 작은 정원에 바구니로 조금 더 넓은 작은 정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새로 사온 모종들을 바깥에다 두었다. 화장실에 남아 있는 죽은 모종들과 화분을 보며 엄마가 말한다.
“저 화분들도 다시 심어야겠다.”
순간 버럭 화를 내며 엄마에게 말했다.
“또 산다고? 있는 거나 우선 잘 키우지??”
엄마는 알았다며, 한발 빼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모종을 더 사와서 남은 화분들에 심을 사람임을. 그리고 그 식물들을 얼마나 잘 키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모종 심기가 끝난 후, 엄마는 수산시장에서 사온 생선을 꺼내 회를 뜨기 시작한다. 언제부터인가 엄마는 회 뜨는 돈 5천원이 아깝다며 날 생선을 사와 집에서 직접 회 뜨기를 시도했다. 점점 회뜨기 실력이 늘어가고 있긴 하지만, 원래 생선 비린내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그 냄새를 맡고 도저히 회를 먹을 수가 없었다. 오늘도 역시 생선을 꺼내자 좁은 집에 생선 비린내가 마구 퍼지기 시작했다. 결국 함께 한 엄마와의 저녁 식사에서 회는 한 조각을 먹은 후 손도 대지 않았다. 그것이 엄마는 몹시 서운한 모양이다.
그냥 맛이 없어도 맛있다고 먹으면 되지만, 그래도 먹기 싫은 것을 어찌하랴. 저녁식사시간부터 엄마와 나는 서로 빈정이 상하기 시작했다.
짐을 싸서 나오려는데 엄마가 또 내게 말씀하신다.
“어제 테니스 코치가 얘기한 거 기억하지? 자기가 잘 가르쳐줘도 어차피 받아들이는 사람이 자기 걸 어떻게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다르니까, 열심히 해서 잘 만들어봐.”
“어,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할게.”
엄마와의 대화에서 내가 가장 많이 얘기하는 게 바로 “내가 알아서 할게”이다. 지난 달부터 엄마의 권유로 테니스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굳이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으나, 엄마가 테니스를 같이 하고 싶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테니스를 무척 좋아하는 엄마 입장에서 어릴 때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이 아쉬운 마음이 있고, 나이 들어서도 꾸준히 하는 운동 하나쯤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몸소 느꼈을 것이다. 이런 마음 모두 이해한다. 그래서 중학교 때 엄마의 권유로 테니스부에 들어가기도 했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엄마와 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테니스 레슨을 받는 시간만이라도 같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엄마가 좋아한다고 내가 테니스를 엄마처럼 몇십 년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할지는 의문이다. 어찌되었든 여기까지의 대화는 괜찮았다. 그런데,
“그리고 테니스 레슨 받을 때, 너무 웃지마. 수업 받는 데 성의가 없어 보여.”
아하………………..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또 짜증을 버럭 내며 말한다.
“나 이번 달까지만 할게.”
웃는 것 하나까지 얘기하는 엄마와 더 이상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엄마와의 대화에서 내가 분노하는 부분이 도대체 어디인가? 이건 지금 당장의 문제뿐만 아니라 어릴 적부터 계속 있었던 문제다. 내가 화가 났던 부분은 엄마가 내게 엄마의 생각을 강요할 때, 엄마가 나에 대해 마음대로 판단하고 해석한 것을 가감 없이 표현할 때다. 나는 분명 엄마와 다른 사람이고,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은 나름의 이유가 있는데, 내게 확인하지 않고, 엄마 마음대로 판단하는 것이 어릴 때부터 참 싫었다. 어릴 적에 엄마란 존재는 내게 무서운 사람이었다. 화를 내고, 혼내면 ‘그냥 내가 잘못했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굳이 변명이나 나의 생각이나 의도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고 감정은 계속 쌓이기만 했다. 어릴 적부터 엄마에게 품은 불만들을 조목조목 이야기하고 이해시키기보다 화와 짜증으로 표출했던 것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매번 일방적으로 엄마에게 화를 내고 집을 뛰쳐 나오면서 ‘그러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지만, 변하기란 쉽지가 않다. 얼마 전 읽은 <비폭력 대화>란 책에 나온 문구가 생각난다.
“우리 자신이 먼저 변하지” 않으면 진정한 변화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모두는 먼저 다른 사람이 변하기를 기다린다.
내가 먼저 변하면 되는 것이다. 엄마와의 대화에서 화가 나면 ‘왜 화가 나는지’를 이야기하면 되는데, 머리로는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엄마가 변하지 않고 있는데, 내가 변한다고 되겠어?’라는 생각도 공존한다. 그래서 늘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이렇게 나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쓰고 있으니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란 생각이 든다. 엄마도 나름대로 화가 많이 나겠지. 많이 참고 있을 것이다. 엄마가 내게 늘 얘기하는 것처럼.
“너는 왜 가족 빼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겐 그렇게 친절한 거냐?”
이것이 바로 엄마가 내게 가지는 불만의 핵심이 아닐까. ‘거리 두기’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거리를 좀 둔다면, 다른 이들에게 하는 것처럼 가족에게도 친절해 질 수 있을까?
이 자식... 긴 글 읽기 힘들다 그랬지?
요즘 하은이가 6시에 일어나서 밤 시간 활용하며 초고 손 보고 있는데...
진짜 잘랬는데... 니 글이 또 여기 있게 만든다.
미나야. 며칠 전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가치관 경매에서 그리 열심히 사들였던 그 가치들은
어쩌면 우리가 삶에서 부족하다고 느꼈던 그런 가치들은 아닐까?
물론. 되고자 하는 모델의 삶일 수도 있지. 하지만 부족하다 느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 보자면 너는 자유로움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건 아닐까?
내가 사랑스러움이 부족하다고 느꼈듯이...... 난 사랑스러운 사람인데 말이얌~ ㅋㅋ
나는 아직 잘 모른다. 그러기에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지만.
네가 지금이 자유롭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넌 어디서도 자유롭지 않을걸.
늘 허덕이고 있을 거란말이야.
문득 네 글을 읽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얼만큼 자유롭니? 자유롭지 않은 부분은 어디니?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하지만 가슴속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체 게바라의 말이다. 난 이 말이 참 좋다.
현실은 발을 딯고 있는 부분. 끔찍한 현실이라도 내가 발을 딛을 수 있게 해주는 거지.
우리의 현실은 어디일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그래서 두서 없는 말 해보자고 댓글 단다. 나 술된 거냐?
나는 네가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지금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지금 네가 처한 여기에서.
나는 내가 사랑스럽고자 했다. 지금 내가 처한 여기에서.
내가 본 너의 어머님은 현실에 발을 딯고 계신 분이었지만 자유로운 분이었다.
오늘 글을 보고 네가 엄마와 자유로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의 자유가 아닌 함께 자유로운.
그리고..... 음... 난 내 눈 앞에서 생선이 죽어도 회는 잘 먹는다.
회먹으러 가야지~~~ ㅋㅋㅋㅋ 날 잡아라.
사람을 잘 안다는 건 좀 짜증나는 일.
왜? 댓글이 메일인거지?
엄마는 딸과의 동일시를 사랑으로 생각하고, 딸은 어른이 되었으니 좀더 독립적이고 자율적이 되고자 한다.
서로 불안하기 때문이다. 불안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공감해라.
"당신이 부드럽게 말하면 나도 부드럽게 말할께" 라고 말하지 말라.
쉽게 되지 않는다. 1년 동안 바꿀 수 있는 것은 단지 의사소통을 할 때 비난하지 않는 것, 단 하나이다.
요즘 읽고 있는 책에서 미나의 글을 읽고 골라봤어.
의사소통! 정말 어려워~~ 특히나 가족간에 말야.
그래도 노력해 봐야쥐!
매일 책에 대한 고민을 더해가고 있는 미나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내며~^^
<<포브스>>지의 창간자 맬컴 포브스는 이렇게 말했다.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쇼핑 장소를 잘못 택한 것이다.”
남인숙은 이 말에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아 놓았지.
난 이 말이 틀리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동의하듯 행복이 ‘기분 좋은 시간이 많은 것’을 의미한다면 돈으로 그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문제는 포브스가 말한 ‘쇼핑 장소’를 잘 선택할 수 있는 지혜는 돈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재산이 있으면서도 마약 중독에 빠져 피폐해진 할리우드 스타들은 쇼핑 장소를 잘못 택한 것이다. 반면 한창 나이에 세계적인 기업의 CEO 자리에서 물러나 자선 사업에만 전념하고 있는 빌 게이츠는 쇼핑 장소를 잘 택했다.
시급한 일도 중요한 일도 아닌,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오늘을 사는 것이 인생의 정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Carpe Diem~~ Seize the day... "죽은 시인들의 사회 키팅 선성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미나야.. 네 글 읽으면서 나두 웬지 "운명"이라는 것이 있다는 게 느껴진다.
물론, 숙명과는 다르게 There's a C (Choice) between B(Birth) and D(Death) 이겠지만 말야.
이제 3주 후면 우리 해후 하나? 그때까지 건강히 잘 지내구~~ 2가지 과제는 꼭 완료하도록 해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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