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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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신의 아들 파에돈
파에돈은 자신과 연배와 나이가 비슷한 제우스의 아들 에파포스에게 지기 싫어했다. 그래서 자신도 신의 아들이라는 자랑을 하게 되는데 ‘니 까짓게 무슨 신의 아들’이냐는 조롱을 듣고는 깊은 실의 빠진다. 파에돈은 곧 바로 어머니에게 달려가 사실확인을 요구했고 어머니는 진실을 위해 아버지인 태양신을 찾아 갈 것을 권유한다. 파에돈은 우여곡절 끝에 태양신 궁전에 다다르게 된다.
아들을 반기는 태양신에게 파에돈은 자신의 소원 즉, 태양신이 모는 태양 수레를 끌어보겠다는 소원을 들어 줌으로써 자신의 아버지임을 증명할 것을 요구한다. 태양신은 그 소원만은 거두어 달라고 회유하지만 스튁스 강의 맹세를 번복할 수 결국 그 소원을 들어 주게 된다.
파에돈은 가슴이 벅찼다. 그 수레에 딸린 네 마리 천마들은 숨쉴 때마다 불길을 토해냈고 눈부신 근육들로 무장하고 있었다. 경이로웠다. 고삐를 건네 받고 마부석에 앉은 파에돈은 환희에 가득 찼고 이내 불을 뿜으며 하늘을 날아올라 구름 장막을 찢으며 달렸다. 곧이어 천마들은 익히 알던 궤도를 벗어나 제멋대로 날뛰었고 파에돈이 손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태양 수레가 제 자리에 없어진 대지는 파멸을 맞았고 불바다가 되었다. 결국 유피테르가 사태 수습에 나서 벼락 하나를 집어 태양 수레 마부석을 향해 날렸다. 파에돈은 불덩어리가 되어 지상으로 떨어졌고 대지의 불길은 다시 잡혔다.
이후 ‘저녁의 나라’ 요정들이 그의 시신을 수습하고 비석을 세웠는데 비문은 이러하다.
‘아버지의 수레를 몰던 파에돈, 여기에 잠들다.
힘이야 모자랐으나 그 뜻만은 가상하지 아니한가.’
신기한 것은 이날 하루 태양이 사라졌기 때문에 대지의 타오르던 불길들이 세상을 비추었다고 한다.
이것은 준비되지 않은 자가 신을 알현하게 되었을 때, 정신적으로 신을 대할 만큼의 성숙이 없는 상태에서 신을 만나게 될 때 그 대가는 치명적이라는 의미로도 읽히어진다. 악타이온이 디아나의 저주로 사슴이 되는 것도 그와 같다. 하지만 나는 다음의 이유로 이 신화가 좋다.
첫째, 파에돈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꿈을 이룬다. 오기와 열등감에 사로 잡힌 인간, 그러나 자신의 가슴 속 깊은 곳에는 ‘신의 아들’이라는 본 모습이 숨겨져 있었고 아무것도 아니었던 사람의 아들이 대지와 세계를 살려내는 태양을 주무르게 되었다. 끝이야 어찌되었든 간에 그가 소망하는 단 한가지가 이루어졌다.
둘째, 신만이 가진 권리, 특권을 가진 자만이 눌릴 수 있는 것. 그 금기, 즉 우리가 함부로 넘볼 수 없는 이 세상 모든 권위에 대한 통렬한 똥침이다. 아득하다고 생각되는 권위 위에 그 반대의 권위가 항상 있음을, 그리고 그 반대의 권위는 작은 힘에서 비롯된다는 것.
셋째, 제 자신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의 화끈한 한판이다. 광란에 가까운 조금은 불안하지만 그 서툰 아마추어적인 광기는 결코 때묻은 프로가 이룰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에 태양이 없어진 하루에 세상을 비추게 한 불길을 만든 점은 이제껏 프로였던 태양신이 하지 못한 일이지 않았는가.
질기고 비루한 생을 사는 나와 같은 소시민의 삶은 자신을 몽땅 태우는 그 화끈한 한판에 뻑이 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화끈함의 마지막은 곧바로 죽음이다. 바꾸어 말하면 죽기 직전까지 그 화끈함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환장할 기쁨이다.
나의 신화
어깨를 짓누르는 피곤함을 억지로 참고 일어난다. 어느 침대 광고에서는 이때 땅에 구멍이 뚫리며 쏙 꺼진다. 이제 몸은 반사적으로 머리를 감고 양말을 신는다. 가방을 들고 신발을 신으려 현관을 내려설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눈은 떠진다.
보고할 결재 서류를 잔뜩 움켜 들고 임원의 방 앞에서 세상 모든 겁은 다 집어 먹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그가 보고할 때 침 넘어가는 소리는 천둥소리와 같아서 회사의 모든 사람들이 다 듣고도 남을 소리다.
기진한 몸을 누인 곳은 퇴근하는 통근버스의 어두운 구석자리. 뼈는 녹아 들고 녹아 든 뼈만큼 그의 마음도 흐느적댄다.
그는 살면서 한번도 뛰어난 적이 없었다. 못생겼다는 소리를 안 들으면 다행이고 작은 체구에 볼품없는 몸매다. 똑똑하지 못했고 말은 느려터져서 우생학적 열등을 천역처럼 새기고 산다.
그런데 그 모든 열등을 뒤로하고 어느 한 날 한 시에 신의 음성에 이끌려 글을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피를 토하듯 쏟아낸 글 들에서 그는 제 사유가 살아있고 제 육신이 정화되는 착각을 한다. 그렇다. 어디까지나 착각이었다. ‘나 같은 놈은 무슨 글’이냐며 돌아서서 뻘쭘했는지 잠시 놀라는 자신의 마음을 되돌려 놓는다.
하지만 다시 펜을 잡을 때마다 그 펜은 파에돈이 끌던 태양 수레의 천마와 같이 길길이 날 뛰었다. 구름 장막을 찢었고 환희로 가득 차 하얀 종이를 적셔 놓았다. 그는 다음의 말이 자신의 모습이라 생각했다. ‘우리의 내부에는 속으로 알찬 꿈의 판테온이 있다. 최신형 오이디푸스의 화신, 미녀와 야수의 속편이 오늘 오후에도 뉴욕의 42번가와 50번가 모퉁이에 서서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낡고 잗다란 숙명을 끊어버리고 주어진 운명에 저항하는 지금, 스스로를 불태우기 시작한다. 눌러왔던 그의 삶이 글을 써내려 가면서 봇물처럼 터져나올 때 그것은 가공할 만한 환희였다. 직장인의 삶에 대해 썼고 자연을 썼고 그가 다닌 길에 대해 썼다. 사람을 썼고 사랑을 썼다.
세상에 제 사유를 쏟아내었고 대중에게 제 삶을 질렀다.
그가 죽고 사람들은 그의 무덤 작은 표식 앞에 비문을 세워 기렸다.
‘신을 상대로 한바탕 불안한 놀이를 한 사람, 여기에 잠들다.
그가 없음을 자유롭게 흐르는 강물로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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