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지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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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것은 잘 모르겠는데, 나는 지적 허영이 많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좋은 글이나 말을 들으면, 몽테뉴의 표현처럼
‘새가 여기저기서 먹이를 쪼아 먹듯’, 나도 이런 것들을 얻어듣고 다른 곳에 써먹고 싶어 안달하는 편입니다. 책을 내는 것도 틀림없이 이런 지적 허영의 하나일 것입니다.
다행인 것은 지적 허영이 강한 편이라 다른 것들에 대한 허영은 마음에 두지 않아 좀 줄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 경계하는 마음이 들어 몇 가지 나를 위한 허영경영 원칙을 세워두었습니다. 강물의 힘을 상징적으로 빌려와 만들어둔 것인데 내 식으로 되어 있어 좀 우습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이 원칙들을 좋아하고 잘 지켜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강물이 그 발원지에서부터 먼 길을 이리저리 휘돌아 대지를 적시며 막힘없이 흘러갈 수 있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요? 그 많은 산과 척박한 대지에 갇히지 않고 반드시 바다에 닿을 수 있는 힘 말입니다. 나는 그것을 물의 세 가지의 자기경영 원칙이라고 불러봅니다.
첫번 째 원칙,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만나면 반드시 채우고 넘는다. 유수불영과불행(流水不盈科不行). 스스로를 채우지 않고는 넘칠 수 없으니 넘친 다음에 앞으로 나간다. 서두르지 않는다. 『맹자』의 「진심(盡心)」편에 나오는 말이다. 배움은 차츰차츰 쌓여가는 것이며, 쌓여 넘쳐야 비로소 통달하게 된다는 말이다. 매일 하면 쌓인다. 쌓이면 넘는다. 매일의 힘이다. 흐르는 물은 매일 그렇게 조금씩 나아간다. 매일 넘치지 않으면 물은 대지의 어딘가에 스며 사라지고 말 것이다. 결코 강을 이루지 못할 뿐 아니라 작은 개울 하나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두번 째 원칙, 흐르는 물은 산을 만나면 산과 다투지 않는다. 산의 경계와 지경을 범하지 않는다. 이것은 물의 비겁이 아니다. 이것이 비겁이 아닌 이유는 물은 자신의 단 한 가지 가치, 낮은 곳으로 향하는 마음 외에는 어느 것에도 복종하지 않는다. 스스로 정한 단 한 가지 자기원칙만을 따르는 자는 오만한 자다. 그 오만의 이름은 자유다. 물은 얽매이지 않는다. 항상 낮은 곳으로 스민다. 그것은 내려놓음도, 겸손도 아니다. 오직 제 뜻 하나에만 복종하는 자유라는 이름은 오만이다. 세상의 인정을 너무 많이 기대하지 마라. 세상이 나에게 기대하도록 허락하지도 마라. 세상의 인정을 구하다 보면 정신은 비루해지고, 나의 자유는 얽매일 것이고, 나는 그들의 기대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직 자신에게 약속한 것을 스스로 행할 수 있을 때 자유롭다.
세번 째 원칙, 흐르는 물은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잊은 적이 없다. 세상의 잡사에 무심하다. 오직 바다를 한한 열정밖에는 없다. 강물의 꿈은 바다다. 그 꿈을 잊은 적이 없다. 낮은 곳으로 향하는 하나의 원칙에 의지하여, 한 번도 쉬지 않고 앞을 막는 구덩이를 메우고, 바다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바다에 이르러 비로소 평화 속에서 생을 마친다. 바다에 닿으려는 강의 꿈을 마음에 담아두자. 바다를 꿈꾸었다면 푸른 열정으로 흘러야 한다. 자나 깨나 바다를 그리워하고, 다른 모든 것들은 잊어버리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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