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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18일 17시 59분 등록

터키로 떠나면서

 

3년 전 중국에 출장 갔을 때다. 지금처럼 5월이었다. 처음 가본 해외출장이어서,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상해를 거쳐 난징으로 왔다. 매일 아침, 도시 풍경과 새벽을 여는 사람들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었다. 난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료는 숙소에 남겨두고, 혼자 난징 거리로 나왔다. 호텔 주변에는 대형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고, 여기저기서 좌판을 펼치고 간단한 아침 식사거리를 파는 노점상들이 보였다. 좌판마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 왔다. 조금씩 거리의 모습이 익숙해지면서, 슬슬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좌판 넘어, 뒷골목 풍경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마치 오디세우스가 낯선 곳에 도착해서,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연기가 피어 오르는 곳으로 찾아간 것처럼 말이다.

 

어느새 뒷골목을 걷고 있었다. 큰 거리와는 다르게 활기찬 모습이었다. 시장 골목으로 들어서니, 구경하는 사람과 파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다양한 먹거리가 각양 각색이었다. 신기한 물건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살아 있는 동물들을 파는 모습이었다.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꺼내 들고는 찍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동물들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얼마 되지 않아, 낯선 남자가 다가 왔다. 빠른 걸음이었다. 아차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태를 되돌리기에는 이미 늦었다. 알 수 없는 고성이 머리를 때리고 곧 이어, 그가 손목을 붙잡았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손목이었다. 순식간에 내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나를 중심으로 에워싸고는 그 사람과 함께 나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여서 더욱 두려웠다. 그 소리에서 살기(殺氣)까지 느껴졌다. 그제서야 우리나라 땅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눈 앞이 캄캄했다. 사람들은 더 많이 몰려 들었고, 그 남자는 손에 묶여있는 카메라를 빼앗으려고 했다. 저항할수록 손목은 죄여지고 끊어질 것 같았다. 무언가 뜨거운 것이 흘러내리는 느낌이 왔다. 피를 보는 순간, 오히려 차분해졌다. 그러자 사람들이 반복해서 말하는 단어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그 단어는 일본인이라는 단어였다. 출장 오기 전에 배웠던 중국어가 그제서야 떠 올랐다. 그리고 난징이 어떤 도시라는 것도 불현듯 떠올랐다. ‘난징 대학살이란 사건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워 쓰 한구우런"(나는 한국인입니다.)라고 크게 말했다.  그리고 골목길 들어서면서 보았던 '황금색 마티즈'를 가리키면서 "워 쓰 한구우런"라고 다시 말했다. 그 남자는 나의 얼굴을 몇 번 쳐다보더니, 잡고 있던 손목을 놓았다. 나는 곧 바로 조금 전에 찍었던 사진들을 지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나에게 가라는 손짓을 했다. 사람들이 조금씩 물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사이로 빠져 나왔고, 벗어나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 큰 길로 향해 무작정 달렸다. 누군가 큰 소리를 치는 것 같았지만, 뒤돌아 보지 않았다. 다시 한적한 큰 길로 돌아왔다. 방금 전에 내가 있었던 곳과는 다른 세상이었다. 정말이지 아찔한 순간이었다. 내가 만약 중국어를 알아 듣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해보았다. 아무도 모르게 끌려가서 죽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두 팔로 나를 꼭 안았다.  

 

나는 한국인이라고 해서 살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문득 일본인이라는 단어가 들려서, 판단하고 행동한 것 뿐이다. 아마도 그들은 그 다음 행동을 주시한 것 같다. 카메라를 보여 주면서 내가 찍은 사진을 삭제했을 때 모습 말이다. 낯선 이방인이 찍은 사진이 자신의 목숨 같은 생계 터전을 빼앗아 갈 거라는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내가 느낀 두려움과 똑같은 것이 아닐까? 신화 속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낯선 곳에 도착했을 때, 그 나라의 언어를 알았을까? 문화를 알았을까? 무작정 뛰어들면 사고가 나는 것이다. 왜 그들을 화나게 하고 거칠게 만들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원인은 나에게 있었다. 그들이 민감하게 생각했던 부분을 카메라에 담았으니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 이후 출장부터는 사람들이 가지 말라고 하는 곳은 절대 가지 않는다. 주로 호텔 안에서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리고 출발 전에 그 나라에 대한 언어와 역사에 대해서 공부하는 습관이 생겼다. 여행지에서 서로를 알아보는 것은 얼굴만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서 상대방에 대한 호의를 가진다. 이번 터키여행에서도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배웠다. 특히 문화에 대해서 만큼은 신화를 공부해서 그런지, 전문가 수준이 된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언어로  가벼운 인사말, 환한 미소로 그들에게 다가가고 싶다.

 

조심해서 잘 다녀오겠습니다.

IP *.47.7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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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문윤정
2012.05.20 21:38:55 *.85.249.182

중국 난징여행에서의  공포와 두려움이 그대로 전달되어 독자도 두려웠어.

많이 다칠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었지.

언제나 차분하게 써내려간 좋은 글을 읽는 즐거움을 선사해 주어서 고맙다.  

사고는 항상 뒷골목에서 난다고 하더군.

 오바, 술 공짜인데 어때? 오빠 딱 한모금만 피워봐! 이런 유혹은 뒷골목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애.

사전에 터키 공부 많이하고 간다고 하니 즐겁고 편안한 여행이 될 것 같다.

돌아올 때는 더욱 건강하기를 기원해. 여신과 님프의 행운이 여행 내내 함께 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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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8 12:19:07 *.194.37.13

감사합니다. 누님의 응원으로 여행 잘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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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2 14:03:04 *.166.160.151

눈에 선하네...그리고 치밀한 준비성

이 반듯해 보이는 남정네 한테서 재미를 언제쯤 느낄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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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8 12:20:15 *.194.37.13

누님, 이번 여행에서 재미 있는 이야기 많이 생겼습니다.

즐거운 이야기로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해 드릴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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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5 08:46:19 *.114.49.161

읽는 제가 아찔했어요. 숨겨진 무용담이 많은 한젤리타^^

한젤리타라 철자 뒤에 이것 저것 붙여서 한젤리타우스 남성형으로 부르고 싶어지네요.

터키에서도 많이 만들어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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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8 12:21:12 *.194.37.13

누님, 감사합니다. 제가 남성다운 것 보다, 칠칠 맞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생각보다 행동이 앞선 것이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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