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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21일 07시 12분 등록
 

율리시스


지은이 제임스 조이스/ 동서문화사

 

저자에 대해서

1. 조이스의 삶

언어감각이 뛰어난 작가로 세계문학의 판도를 바꿔놓은 제임스조이스는 1882년 2월 2일,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존 조이스와 메리마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이스는 더블린시에서 가까운 클론고우스 우드 칼리지 초등학교과정을 거쳤으며, 이어 더부린의 벨베디어 칼리지에서 중등교육을 받고, 더불린 로열유니버시티를 졸업했다. 이들 학교는 모두 가톨릭 예수회 계열이었다.

 학교 측은 학업성적이  우수한 조이스가 졸업 뒤에도 그곳에 남아 주길 바랐고, 그의 어머니 또한 그러기를 원했다. 이는 대학교수가 되는 동시에 가톨릭에 평생 바침을  뜻했다. 그러나 중학교 시절엔 종교규율을 온전히 지키도록 노력하며 나날을 경건하게 보낸 모범생 이었다. 그러다 열여섯 낫부터는 그런 삶에 점점 회의를 느꼈다.

  19세기 첫 무렵 더블린에서는 예이츠와 그레고리여사, 러셀, 싱이 중심이 되어 아일랜드 문예부흥운동을 활발하게 일으키고 있었다.  조이스는 직간접으로 이 문학운동의 영향을 받게 된다. 또 친구들이 추구했던 아일랜드 독립을 위한 정치운동의 입김도 어느 정도 그에게 미쳤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끼친 것은 19세기 끝 무렵 유럽문학에 나타난 자유사상이었다. 조이스는 <인형의 집>, <브랜드>, <헤더가브렐> 드응ㄹ 슨 입센에 심취하여 그의 작품을 원어로 읽기 위해 노르웨이어를 공부했을 정도였다. 또한 독일의 하우프트만도 마음속 깊이 존경했다.

  해방사상을 품은 이들 극작가에게 조이스가 감동한 까닭은 무엇일까. 영국이나 프랑스에 뒤진 낡은 전통에 묶여 고민하는 아일랜드 청년에게 그들이 호소력 있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노르웨이나 독일은 상대적으로 아일랜드와 상황이 비슷했다.

  한편 조이스가 가톨릭도 민족해방운동도 따르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아해방을 바랐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책을 즐겨 읽은 그는 가톨릭을 이론상으로는 부정을 할 수 없었으나 그 신앙은 포기했다. 이것은 <율리시스>를 관통하는 사상적인 주제의 하나이기도 하다.

  아일랜드 사람은 ‘타고 갈 전차를 착각하는 바람에 북쪽으로 가버린 스위스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을 처음 주장한 것은 조이스와 같은 세대의 에스파냐 사람, 살바도르 데 마다리아가이로호이다. 웬지 농담같지만, 두 번의 세계대전을 포함한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에 외교관, 역사가, 망명자 등 여러 처지에서 유럽과 미국의 문화 풍토를 세심하게 접한 그의 말이므로 그 속에는 귀중한 직첩체험이나 연구성과가 들어있는게 틀림없다.

  살바도르 데 마다리아가이로호의 지적 가운데 정말 중요한 것은 아일랜드 사람과 에스파냐 사람의 기본적인 공통점이다. 그것은 ‘부조리와 친근감’이다. 문학 세계에서 이 감각의 대표자는 에스파냐에서는 <돈키호테>의 세르반테스, 아일랜드에서는 <걸리버 여행기>의 스위프트, <피네건의 밤샘>의 조이스, <고도를 기다리며>의 베케트일 것이다. 오스카와일드나 버나드 쇼를 비롯해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는 대부분 사람의 허를 찌르는데 명수였다. 와일드의 경구 ‘자연은 예술을 모방한다’도 그 하나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들은 부조리나 역설을 이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 살바도르 데 마다리아가이로호의 견해에 따르면 그 부리에는 라틴적인 개인 중심주의가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앵글로 색슨적인 사회의식이나 객관성이 전혀 없는 것이다. 에스파냐 사람이나 아일랜드 사람도 자신의 마음 바깥에 있는 사회나 현실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과 충돌이 생겼을 때 틀린 것은 자신이 아니라 바깥세계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대항하는 데 논리하든가 정공법, 상식 등 평범하고 진부한 것이 도움이 될 리 없다. 그러므로 아이리시 불(Irish bull)은 제멋대로 행동을 무기로, 끊임없이 신출귀몰한 게릴라전을  시도해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이스는 어린시절부터 예수회학교에 갔던 만큼 숭배하는 인간상은 처음부터 가톨릭 성자와 독립운동 투사였다. 성실한 그는 그쪽으로 조금이라도 다가가려고 마치 장난감 군대처럼 우스꽝스러운 노력을 한다. 그러나 청년시절에 종교나 정치에 대한 회의가 싹트고 단념이나 타협을 할 수 없는 기질인 만큼 누구와도 충돌을 일삼았다. (출처: 율리시스 2/ 동서문화사)

  

2. 조이스의 일생과 문학세계

스무살에 가까워 질 무렵 조이스의 포부는 문학청년이라기 보다 오히려 혁명가나 성자에 가까웠다. 좋든 나쁘든 열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란 그로서는 자신의 사명에 대한 순교 말고는 인간이 목표로 할 가치가 없다고 믿었으리라. 그는 문학에 대해서도 고집불통이었다. 예를 들면 유행하는 아이리시 르네상스(아일랜드 문예부흥운동)에도 따르지 않았다.

조이스는 스물두세 살이 되었을 무렵 싱이나 예이츠, 러셀의 모임에 참여했다. 그러나 민족주의 문학운동에는 따르지 않고 보다 더 자유롭게 국제적인 시각에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미 열일곱 살 때 입센에 대한 에세이를 <포트나이틀리 리뷰>에 발표하고, 예이츠 등이 이들 대륙 작가의 희곡을 애비극장에서 상연하지 않는다고 공격한 조이스이다. 그런뜻에서 애당초 그는 민족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단지 아일랜드 작가로 머물 인물이 아니었다. 어학에 뛰어난 조이스는 뒷날 트리에스테로 옮기고 나서 싱의 <바다로 나가는 사람>, 예이츠의 ,캐슬린 백작부인>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하고 하우프트만의 <해 뜨기 전에>를 영역했다. 조이스는 가톨릭 신학의 큰 흐름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즐겨 읽었을 뿐만 아니라 단테,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등 유럽고전문학을 섭렵했다. 또 플로베르의 여러 작품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1902년 조이스는 파리로 갔다. 파리는 해방적인 분위기를 그리워해 이곳저곳에서 망명자나 예술청년이 모여든 곳이었다. 조이스는 그 뒤 아일랜드에는 잠시 머물렀을 뿐 계속 외국에서만 살았다.

  조이스와 아일랜드의 관계에 대해서 가장 시사가 많은 작품은 <더블린 사람들> 연작 마지막 단편인 ‘죽은 사람들’일 것이다. 거기에는 도회지와 대륙에 물든 더불린 사람이 등장하는데 게일문화의 고향인 서부의 매력을 비로소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이것은 조이스 자신의 체험이라 생각해도 좋으리라. 세 번째 파리에 갔을 때, 그는 일부러 서부 끝 항구도시 골웨이 출신 시골처녀(노라)를 데리고 떠났다. 반대행동이라 할 만하지만, 왼쪽으로 가려고 오른쪽으로 발을 내딛는 것이 그의 방식이다.

한편 조이스는 파리에서 성악가로 자립할 생각도 했다. 성량 풍부한 테너 목소리를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그는 더블린에 있었을 때도 테너로서 여러 차례 경연에 나간 경험이 있었다.

  1904년 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파리에서 돌아와 잠깐 더블린에 머물렀다. 그동안에 <더블린 사람들>에 수록된 여러 단편을 지역 신문과 잡지에 투고했다. 또 대학시절부터 이 시기에 걸쳐서 시도 썼다. ‘노라 바너클’과 결혼하여 대륙으로 돌아간 것도 이때이다. 이 무렵 생활이 궁핍하여 그는 오스트리아령 트리에스테에 살며 상업학교 영어교사로 살림을 꾸려갔다.

1907년 시집 <실내악>을 출판했다.

1909년 더불린으로 돌아가서 그곳 최초의 영화관 ‘볼터’를 경영했으나 곧 실패했고, 신문발간도 계획했으나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다. 그는 다시 트리에스테로 돌아갔다.

1904년 무렵에 쓴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은 오랫동안 더블린과 런던 출판사에서 출간 이야기가 오갔으나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책 속의 상점이나 인물이 더블린에 실제로 있어서 여러 가지 반발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영국 왕실에 대해 너무도 무례하게 썼다는 점도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조이스는 이것을 절대로 고치지 않았다. <더블린 사람들.에 나오는 인물들이 <율리시스>에도 그대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조이스의 성격이 여간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책을 쓰기 시작한지 10년 만인 1914년에 런던의 그랜드 리처즈를 통해 발간되었다.

이 책이 출판된 무렵, 그가 <더블린 사람들>에 이어서 10년에 걸쳐 집필한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 완성되었다. 이 작품은 에즈라 파운드가 편집장으로 있던 영국 잡지 <에고이스트>에 연재되었다. 그리고 1916년에 뉴욕의 ‘휴 부시’서점에서 출판되었다.

1914년에 발발한 제 1차 세계대전 대문에 트리에스테에 더 머물 수 없게 되자 조이스는 스위스 취리히로 거처를 옮겼다. 거기서 영국인들과 연극 활동을 하며 희곡 <망명자들>을 쓰는  동시에 <율리시스>집필을 시작했다. 그 일부분이 마가렛 앤더슨이 편집한 미국 문예잡지 <리틀 리뷰>에 1918년 3월부터 1920년 8월까지 발표되엇는데, 에피소드 13이 풍속을 헤친다고 고소되어 앤더슨은 벌금형을 받았다.

1919년 전쟁이 끝나자 조이스는 파리에 살면서 거기에 모인 영미계 문인들과 사귀며 중심인물이 되었다. 1922년 실비아 비치라는 여성이 경영하는 셰익스피어 서점에서 <율리시스>가 출판되었다. 초판 1000부 가운데 미국으로 보낸 것은 대부분 불태워지고 영국에 보낸 것도 세관에 몰수되었다.

1923년 조이스는 <율리시스>에 이은 야심작 <진행 중인 작품>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1939년 단행본 <피네건의 밤샘>으로 출판될 때까지 여러 잡지에 부분적으로 실렸는데, 무이식을 끌어들인 방식 때문에 극단적인 호평과 악평 사이에 놓였다.

  미국에서 <율리시스>는 오랫동안 관세법에 따라 외설문서로서 수입금지도서였다. 그러나 1933년 울지 판사가, 이 책은 외설문서가 아니라 ‘새로운 문학분야에서 이루어진 진지한 실험’이라는 판정을 내려 수입금지가 해제되고 그해에 미국에서 출판되었다.

    조이스는 제 1차 세계대전 뒤 파리에서 머물렀는데, <율리시스>를 쓰는 동안 홍채염에 걸려 점차 집필이 힘들게 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그는 다시 스위스 취리히로 옮겼다. 이대에도 그이 생활은 아직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 스위스 입국 무렵 미국문학가들이 힘을 모아 그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조이스는 1941년 1월 13일 영원으로의 길을 떠난다. 1월 10일 극심한 복통에 시달렸고, 다음 날 아침 적십자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십이지장궤양천공(십이지장에 구멍이 난 것)으로 진단 받고 수술하여 회복되는 것 보였으나 13일 오전에 숨졌다. 그는 취리히의 플룬테른 묘지에 묻혔다.

  <율리스시>와 <피네건의 밤샘> 같은 작품이 20세기 전반의 가장 큰 문학적 실험이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있을까. 특히 <율리시스>의 일부가 잡지에 발표된 시점부터 유럽문학의 개념이 바뀌었다고 할 정도이다. 처음에 발레리 라르보를 비롯한 프랑스 문인들이 이 작품을 논했고, 이어 영국과 미국의 젊은 작가들이 <율리시스>를 참다운 20세기 문학이 시작되었다고 여기게 되었다. 실제로 20세기 소설 작법은 이 작품이 나온 뒤부터 변해갔다. 버지니아 울프, 그레이엄 그린, 월리엄 포크너, 도스 패소스, 노넘 메일러 등 수많은 작가에게 조이스가 끼친 영향은 엄청났다. (출처: 율리시스 2/ 동서문화사)


3. 제임스 조이스가 노라에게 보낸 편지들

(제임스 조이스, 언어의 연금술사 리처드 엘먼지음/ 책세상 에서 발췌)

**** 편지 1.

  사랑하는 노라에게

...... 오늘밤 당신이 돌아간 후 나는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그래프턴 가에서 오랫동안 가로등에 기대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내가 나의 젊음의 흐름을 쏟아부었던 그 거리는 생명력으로 넘치고 있더군요. 거기 서 있는 동안 내가 몇 년 전의 파리에 있을 때 섰던 문장 몇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사람들은 두세명 씩 짝을 지어 생명력 넘치는 가로수 길 사이를 생각났습니다. 그들을 위해 불이 밝혀진 곳에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처럼 거닌다. 그들은 빵집에 들어가 지걸이며 조그만 과자 부스러기를 으깨거나, 카페 문 옆의 테이블에 조용히 앉아 잇거나 간음을 하는 자의 목소리처럼 부드러운 옷을 휘저으며 마차에서 내린다. 그들은 향수 냄새 속에 지나간다. 향수 아래에서 그들의 몸은 따뜻하고 축축한 냄새를 내고.’(율리시스에서 수정되어 사용됨)

  이 글을 나 자신에게 되뇌면서 내가 들어갈 마음만 있다면 인생은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한때 내게 주었던 도취감은 줄 수 없겠지만, 아직도 거기에 있었고, 이제 나는 좀더 현명하고 좀더 자제력도 갖게 되었으니 그 인생은 더욱 안전했습니다. 그것은 내게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고 내 삶의 오직 몇 순간만을 요구할 것이며, 나머지는 자유롭게 둘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내게 기쁨을 약속하겠지요. 나는 이 모든 것에 대해 생각했고, 그리고 후회없이 그것을 물리쳤습니다. 그것은 내게 아무 소용없고 내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엇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썼던 편지에서 당신이 몇 구절을 잘못 이해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치 그날 밤에 대한 기억이 당신을 고통스럽게 한 것처럼 당신의 태도에는 어떤 수줍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일종의 성찬으로 생각하고, 그것에 대한 회상은 나를 놀랍도록 기쁘게 만든답니다. 당신은 내 마음을 잘 모르기 때문에 왜 내가 그 일로 인하여 당신을 고토록 존경하는지도 아마 모를 겁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나에게 슬픔과 불명예의 마지막 감정을 남긴 성찬이었습니다. 슬펐던 것은 당신 안에서 그 성찬을 하나의 절충 (타협)으로 택한 비법하고 우수에 젖은 부드러움을 보았기 때문이며, 불명예스러웠던 것은 당신 눈에는 내가 현재의 사회적 관습보다 더 열등해 보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 천하에 오만하고 두려울 것 없는 조이스가 시골출신인 노라의 마음을 알지 못해 안달을 내고 있다. 특히 노라의 눈빛에서 ‘내가 현재의 사회적 관습보다 더 열등해 보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구절에서는 조이스의 열등감과 패배감을 동시에 읽을 수 있다.

  나는 오늘 밤 당신에게 빈정대는 투로 이야기했지만 내가 이야기한 것은 당신이 아닌 세상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사람들의 비열함과 노예근성의 적이지 당신의 적은 아닙니다. 나의 이 모든 가면을 쓰고 있어요. 우리가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 중에는 자주 당신 일로 나를 모욕하는 자가 있습니다. 나는 그들의 말을 조용히 듣고는 대답할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사소한 말에도 내 심장은 폭풍우 속의 새처럼 동요합니다.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조이스가 아닌데, 노라를 비난하는 타인의 말에는 가슴이 짖어지는 것 같다고 고백한다. 사랑의 힘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1904년, 조이스가 22세 되던 해인데, 나소거리를 산책하다 20세의 노라 바너클을 만났다. 그들은 첫 데이트 후 급속도로 친해졌다. 문학사에서 노라는 남편을 세기의 작가로 만든 충실한 내조자로 기록되고 있다.

 당신의 눈에서 본 마지막 표정, 피곤한 무관심의 표정을 떠올리며 그날 밤 당신의 목소리에 깃들인 고통을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사실은 그리 유쾌하지 않군요. 그 어떤 인간도 나의 영혼에 당신만큼 가까이 서 있었던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내 말들을 가슴 아픈 무례함으로(‘무슨 말인지 알고 있어요’라고 당신은 말했지요.)대할 수도 있어요. 더 어렸을 때 한 친구가 있엇는데, 나는 그에게 좀더 자유롭게 나 자신을 주었어요.-당신에게보다도 더 많이, 어떤 면에서는 더 적게, 그는 아일랜드적이었습니다. 즉 그는 거짓으로 나를 대했지요.

 말하고 싶은 것의 4분의 1도 다 못했지만, 이 형편없는 펜으로 글을 쓰는 것이 엄청난 고역이군요. 당신이 이 편지를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제발 내게 편지를 해줘요. 그렇게 해주겠지요? 나의 노라, 나를 믿어줘요. 나는 당신을 매우 존경하지만 당신의 애무 이상을 원합니다. 당신은 다시 한 번 나를 의심의 번민에 빠뜨렸어요.

1904년 8월 29일

J.A. J   (298~300페이지)


***조이스는 노라 바나클이 과연 자신과 동행할 것인지를 고심했다.  그는 J. F. 번에게 돈도 전망도 없이 그녀와 함께 가는 것이 옳은 일인지, 그리고 함께 가기를 청한다면 그녀가 받아줄 것인지를 물었다. 신탁의 역할을 싫어하지 않는 번은 “너는 정말로 노라를 좋아하니?”하고 물었다. 조이스는 “그래”라고 대답했다. 번은 계속해서 “너는 노라를 사랑하니?”라고 물었으며, 조이스는 다른 어떤 소녀에게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번은 “기다리지도 말고 주저하지도 마. 노라에게 물어보고, 만일 너와 함께 가겠다고 하거든 그녀를 데리고 가도록 해.”라고 판결했다. 용기를 얻은 조이스는 ‘그녀가 그의 머리로 생각하고 이해해야 하며’ ‘그녀의 육체가 느껴야 하는 것은 그의 육체’라는, 이후의 표현에 따르면 ‘빛나는 확신’을 얻었다.

   탑(샌디코브의 높이 40피트짜리 마델로 탑)을 떠난 다음 날  저녁에 가서 자신의 계획을 말하고 “나를 이해해줄 사람이 있을까?”라고 물었다. 이 이기적인 청혼으로 정확하게 이해한 노라는 “네”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즉시 함께 떠나야 했다.

  조이스는 9월 16일 이상하리만큼 형식적인 어휘로 그녀에게 편지를 썼는데, 이것은 그들이 방금 내린, 어쩌면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그가 인식했음을 암시한다.

  “지난 밤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때, 나는 더욱 초조했습니다. 내가 마치 당신을 위해 아일랜드의 온갖 종교적, 사회적 압력에 맞서 전쟁을 벌이고 있고, 나 자신 외에는 의지할 곳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이곳에는 삶도 없고, 자연스러움이나 성실성도 없어요. 사람들은 똑같은 집에서 한평생을 함께 보내지만 결국 그들은 멀어지지요. ......... 나의 위험천만한 인생에서 당신이 이런 식으로 내 옆에 서 있겠다고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커다란  긍지와 기쁨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사랑하고 사랑하는 노라. 당신이 나와 어떠한 행복이라도 같이 나누기를 내가 얼마나 원하는지, 그리고 내가 받을 만한 자격이 있고 보답하게 되기를 바라는 당신의 사랑에 대한 내 커다란 존경을 당신에게 확신시켜 주고 싶습니다.”

그녀의 사랑은 자율적인 사라이었고 그의 사랑은 이에 대한 응답이었다.

조이스는 아버지가 가난한 집안의 골웨이 출신 소녀와의 결합을 무모한, 더 나쁘게는 신사답지 않은 행동으로 여기리라는 것을 알고 노라 바나클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308~309P)


**** 편지2

  가장 사랑하는 사람

당신과 헤어진 지 얼마 후에야 내가 ‘당신 가족은 잘 삽니까?’라고 물었을 때 당신이 왜 그렇게 불편해하는지 알앗습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집에서 익숙해 있던 편안함을 나와 함께 지내면서 잃어버리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해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에요. ......당신은 내게 왜 당신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묻지만 내가 당신을 매우 좋아하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만일 한 사람을 전적으로 원하고 그 사람을 깊이 찬미하고 존경하며 매사에 그 사람의 행복을 지키고자 애스는 것이 ‘사랑’이라면 당신에 대한 내 허의는 일종의 사랑이라 할 수 있지요.  내게 당신의 영혼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박한 것이며 내가 당신을 바라볼 때 이점을 너무 의식하기 때문에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이나 감정이 그 격렬함을 상실해버리는 것입니다......


조이스는 자신의 개성을 너무 과도하게 믿었기 때문에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310페이지)




 4. 리처드 엘먼이 본 조이스

(제임스 조이스, 언어의 연금술사 리처드 엘먼지음/ 책세상에서 발췌)

**** 머리말

   이 책은 조이스의 인생으로 들어가서 사건과 창작이 복잡하고 끊임없이 합쳐지는 양상을 보여준다. 예술가의 인생, 특히 조이스의 인생은, 나날의 사건이 그의 현재의 관심을 지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결국에 가서는 예술적  원천이 된다는 점에서 보통사람의 인생과는 다르다.

그는 흘러가는 나날들을 기억의 저편에서 소멸하도록 놓아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형성했던 체험을 다시 한번 재구성한다. 그는 포로인 동시에 해장자이다. 체험을 재형성하는 과정은 그의 인생의 일부이자 일어나고 잠드는 것과 같은 되풀이되는 사건들의 일부이기도 하다.

  제임스는 자신을 나쁘게 말하기를 좋아했다. 그의 아이러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쁘게 말한 사람들은 용서를 받아야 할 것이다. 조이스만큼 천재로 인정받으면서도 그렇게 많은 불만과 비난을 불러일으킨 작가도 흔치않다.  그는 그의 동포인 아일랜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외설적이고 거의 미친 작가였다. <율리시스>의 판금을 가장 마지막에 푼 것도 이 민족이었다. 영국사람들에게 그는 괴짜이자 아일랜드적인 작가였다.

  조이스는 시대의 변두리에 있었던 것으로 유명하지만 의외로 그는 중심에 있었다. 홀로 떨어져서 그는 아담과 이브에서 대디 브라우닝과 피치 브라우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대해 썼다. 전쟁과 사회가 그의 테마는 아니었지만, 그들 쪽에서 그를 찾아내어 자신들을 행하도록 태도를 강요했다. 그의 작품은 하찮은 서정시로 시작해서 방대한 백과사전으로 끝난다. 유아기에서 노년기, 탄생에서의 죽음, 문을 두드리는 젊은이들에서 문을 열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노인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풍경을 그는 관찰한다. 쾌활, 침울, 신뢰, 의심, 아내사랑, 여자혐오 등 그는 여러 가지 모습을 번갈아 보여주었다. 사실상 그는 너무나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과거의 대작가들과 무차별적으로 비교당해왔다.

  조이스는 호메로스와 그다지 유사하지 않다. 그러나 <율리시스>의 블룸의 배후에는 호메로스의 신화가 떠돌면서 작품의 흐름을 끊임없이 바꾸어 놓고 있다. 조이스는 때때로 라블레만큼이나 대담하기도 했지만, 대담함을 그의 현저한 특징이라고 볼 수는 없다.  좀더 기본적인 유사점은 사물을 통해서 언어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서 사물에 이르는 것이다. 그가 좋아한ㄴ 작가는 아마도 단테였을 것이다. 그는 단테와 마찬가지로 지방적이며 용의주도한 통찰력을 보였다. 하지만 단테는 천국과 지옥, 죄와 벌을 발자크처럼 자신의 희극을 인간적인 것으로 유지해 나가고 단테가 벌을 주거나 무시했을 세속의 무질서한 삶을 사랑했다.

조이스의 저작에서 첫째가는 결정적인 판결은 평범한 것의 정당화이다. 다른 작가들도 그것을 그리기 위해 무던히 애써왔다. 그러나 조이스가 그것을 쓰기 전까지는 아무도 평범한 것이 진정 무엇인지 몰랐다. 톨스토이의 작품에는 조이스의 평범함이 없다. 톨스토이의 인물들은 아무리 비천한 인물이라 해도 극적으로 살면서 서로 지혜를 나누기도 하고, 비극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찮은 도시인에게 영웅의 무게를 실어준 것은 조이스가 처음이었다. 그의 의도는 오랫동안 오해받았다. 모두들 그가 풍자를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층중산 계급에 대한 그 같은 열정적인 관심을 어떻게 다른 방법으로 정당화할 수 있었겠는가? 마르크스주의 비평가들은 그에게 달려들어 공격했다. 조이스는 친구인 유진졸라스에게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왜 나를 공격하는지 모르겠네. 내 작품의 인물 중에 천 파운드 이상을 가진 사람은 한 명도 없는데.” 하찮은 도시생활자를 관찰하는 것은 졸라 이후 예사로운 것이 되었다.

  그러나 율리시스라는 인물을 도시에 살게 한다는 것은 대담하고도 경망한 일이며 당시의 아일랜드 작가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생각이기도 했다. 예이츠는 귀족적이어서 사람들의 차별을 요구했지만 조이스는 그것을 제거하려고 했다. 쇼는 말을 잘하기만 하면 누구든 인정했지만, 조이스는 겉으로 표현을 잘 못하고 충동적으로 생각하며ㅕ 쇼처럼 언변에 힘을 주거나 설득하려 들지 않는 인간을 주인공으로 했다.

<율리시스>의  블룸은 여러가지 면에서 인상적인 인물은 못된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최선의 품성을 흠집없이 간직하고 이를 전달하도록 선택된 겸손한 인간이다. 조이스의 발견은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평범한 것이 바로 비범한 것이라는 문맥 없이 드러냈다면 조이스도 당혹했을 것이다.

 이러한 결론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조이스는 다른 작가들이 분리해서 생각했던 것을 결합해서 보아야 했다. 즉 인생이란 드러내기 어렵고 있는 그대로 들추어내야 한다는 견해와 인생이란 표현하기 어렵고 추출해야 한다는 견해를 결부해서 생각해야만 했다.

  자연은 가공할 문서 또는 은밀한 계시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동물적 육체 속에 또는 정신과 지적 요소 속에 용해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조이스는 이 대척지 사이에, 그리고 그것을 초월해 살았다. 그의 야수성은 놀랄만한 사고력을 보여주고, 그의 순수한 정신은 육체가 가차없이 정신에 달라붙는 것을 발견했다. 조이스의 작품을 읽어보면 판에 박은 구분의 단순성이 박탈된 현실을 볼 수 있다.

  그의 예기치 않은 융합 중 하나가 미(美)와 추(醜) 사이에서 일어난다. 더블린은 사랑스러운 곳이기도 하고 더러운 곳이기도 하다. 정신과 육체도 똑같다. 사람들은 이론상으로는 이 결합을 인정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분리해서 생각한다. 그러나 조이스는 다르다.

  조이스는 독자가 찬미하는 것을 쉽게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를 형제애의 사도로 생각하는 순간 그는 격렬하게 싸움질하는 형제를 보여준다. 그를 가정의 옹호자로 생각하는 순간 그는 자신의 중심인물을 오쟁이 진 남편으로 묘사한다. 우리가 그에게 고독한 인간의 찬미자가 되어달라고 부탁하면 그는 고독이 그를 침울하고 무방비로 만들어버리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삶의 대변자를 구하면 그는 우리를 죽은 자에게로 인도한다. 양자를 융화하는 요소는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기지를 통해 작용하여 정신에 반대되는 양끝을 결합시킴으로써 겉보기에는 닮지 않은 것들을 갑자기 동종으로 만들어버린다.

  조이스는 가시가 있는 작가였다. 주인공들은 모두 어딘지 토라져 있다. 어처구니없는 젊은이, 수동적인 어른, 술주정꾼 노인, 그들을 좋아하기는 힘들고 존경하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다. 조이스는 그러고 싶어한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공감이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우리가 습관적으로 존중하는 것을 박탈해버린 후에 공감을 갖도록 유도한다. 소크라테스도 그랬지만 조이스에게  이해한다는 것은 싸우는 것이고, 굴욕을 수반할 때 그것은 최상의 사움이 된다. 우리는 자신의 허식이라는 장애물을 뛰어넘음으로써 그에게 좀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조이스의 주인공을 좋아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의 작품을 읽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는 우리를 정복하려고 하지 않으며, 우리가 자신을 정복해주기를 바란다.

  조이스는  융에게 자신을 “낭비벽과 음주벽이 있는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를 치켜세우기 좋아하는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인 루이 질레에게 그는 ’나를 영웅으로 만들지 마세요. 나는 그저 중산계급의 인간일 뿐이오.”라고 말했다. 그는 웨이터, 재단사, 과일장수, 호텔의 짐꾼, 관리인, 은행원 등 거의 무명의 인간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반면에 프루스는 후작이나 후작부인이 기질에 맞았던 것처럼 , 조이스의 기질에는 이런 사람들이 불가결했다. 시간을 낭비한다고 충고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나는 한번도 따분한 사람을 만난 일이 없다”고 대답했다.

☆☆☆ 한 때 소설가가 되겠다고 국내 작가들을 중심으로 소설을 탐독했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대체로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성격과 인격에 결함이 있는 사람들, 사회에서 한 번도 대접받지 못한 채 웅크리는 삶을 살아온 사람들, 가족간의 불화로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그야말로 삼류인생이요, 변두리의 삶들이었다. 나는 그들을 이해하고 수용하기가 힘들었다. 내가 고귀해서가 아니라 나 또한 그들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에 내 안에 들여놓고 싶지 않았다. 한국의 현대작가들 대부분은  조이스의 영향 아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조이스 자신도 말했듯이, 세상은 그를 처음에는 악동, 마지막에는 괴짜노인으로 바라보았다. 돈에 대한 무관심, 알코올에 대한 관심, 위엄이나 기품이 결여된 그 밖의 행동 등 그에게는 비난받아야 할 것이 많다. “누가 훌륭한 인간인가?”라고 조이스는 자못 예언적으로 말했다.

  그의 주인공들이 고결함을 통해 점점 자신들의 불명예를 극복하는 것처럼, 이 고집 센 장인은 우아함을 잃지 않고 거처 왔던 방랑과 빚에 찌든 인생을, 자신의 생각을 고수하면서 점차 극복해 나간다. 그의 작품에는 위대함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그것은 광채를 발하는 위대함이 아니라 대대로 언어나 행동의 표면에 도달하는 잠복해 있는 것의 위대함이다. 약점 때문에 가려졌지만, 그의 인생에서도 그와 같은 위대함을 감지할 수 있다. 편협하고 별나며 무책임하고 그러면서도 모든 것을 포용하고 무정하고 당당한 것. 이것이 바로 조이스다운 위대함이다. 궁극적으로 가치있는 위대함이다. (23~30P)


5. <율리시스>의 배경과 그 이야기 

****조이스는 <오디세이아>의 애독자였다. 제 1차 세계대전 무렵 스위스에 머물면서 <율리시스>를 집필하던 그는 친구 버젠에게 오디세우스의 다면적인 성격이 이 고전의 재미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괴테도, 세익스피어도 단테도 발자크도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 같은 다면적 인격의 인간을 그린 적이 없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을 때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아내와 전쟁에 나가는 게 싫어 미친 척햇지. 그는 평화주의자였어. 그러나 거짓말이 들통 나 전쟁에 참가하자 철저한  항전주의자가 되었네. 그는 전황이 불리할 때도 전군을 고취시켜 승리의 희망을 불어넣었으며, 커다란 목마를 만들고 그 안에 숨어서 트로이 성을 함락시켰네. 그는 술이나 시름, 경주 따위의 무예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 연합군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로 인정받았지. 목마라는 새로운 병기를 만든 점에서 그는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처음으로 탱크와 같은 것을 이미 고대에 만든 무기제작지이기도 하네. 또한 그는 키르케의 애인이엇고, 그 다음에는 칼립소의 연인이었으므로 곧 연애의 순례자였지. 그동안에도 줄곧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를 만나길 바랐으므로 충실한 남편이자 아버지이기도 했고, 그는 문학에 그려진 최초의 신사이기도  했어, 스케리아 섬에 표착했을 때는 알몸이었으나 왕녀 나우시카에게 가까이 갈 때는 나뭇가지로로라도 몸의 일부를 가리지 않았는가. 이런 다면적인 인간을 그린 사람이 호메로스 이후에 도 누가 있는가.”

이렇게 인간의 모든 성격을 갖춘 오디세우스를 현대인으로 재창조하는데 조이스는 블룸이라는 인물을 설정한 것이다. (1220페이지, 율리시스 2/동서문화사)

***<율리시스>의 또 하나의 조형적 요소, 즉 신화와 사실의 대위법은 조이스가 처음으로 스티븐 데덜러스의 이름과 성격을 만들어냈을 때, <사자들>의 마지막 장면에 이미지를 도입했을 때, <은총>에서 단테의 3부 구성을 패러디했을 때 이미 시작되엇다. <율리시스>에서 조이스는 호메로스와 호메로스 이후의 전설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물들을 사용하고 있다. 스티븐은 데덜로스일뿐만 아니라 이카루스, 햄릿, 셰익스피어, 루시퍼이기도 하다. <율리시스>라는 제목을 붙인 연유를 묻자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이오”라고 조이스는 대답햇다. 이 소설의 중요한 과제는 가톨릭 사회에서 자유로이 행동할 수 있는 이교도 주인공을 발견하는 것. 율리시스를 더블린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율리시스>의 틀은 부분적으로 육체이며 한 기관이 각각의 에피소드를 지배한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하루이기도 하며 인물의 정신과 상호 작용하고 특정 시각은 특정분위기를 조장한다. 결국 그날 하루 전체는 몰리 블룸의 밤의 정신으로 끝나는 듯하다. 삶은 그 원천으로 되돌아간다.

조이스는 처음부터 작품 전체를 머리 속에 그려놓지는 않았다. 그는 후에 한 치눅에게 모든 것을 미리 계획하지 말라고 말햇는데, “써가는 중에 좋은 글이 떠오른다”는 것이엇다. 현대의 율리시스는 <오디세이>에서처럼 일련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더블린을 통과해야 한다. (626~628P/제임스 조이스평전/ 리처드 엘먼지음/ 책세상>


*** 이 서사시적 이야기의 조이스판은 평화주의적이다. 조이스는 호메로스가 유별나게 강조하지는 않았던 이 그리스 서사시의 측면, 즉 율리시스는 그리스의 전사중 유일하게 선량한 사람이엇다는 점을 발전시켰다. 아킬레스와 아이아스와 나머지 건장한 사내들은 육체적인 힘에 의존하지만 율리시스는 훨씬 밝으며 절대 당황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러나 호메로스도 물론 율리시스를 선량한 전사로 묘사한다. 조이스는 현대의 율리시스를 육체적인 투사가 아닌 불굴의 정신을 지닌 자로 묘사한다. 조이스의 작품 전체에 만연해 있는 육체성에도 불구하고 블룸의 승리는 정신적이다. (629P/제임스 조이스평전/ 리처드 엘먼지음/ 책세상>


***주인공의 또 다른 측면을 조이스는 호메로스만큼이나 단테에게서도 차용했다. 단테의 작품에서 율리시스는 호메로스에 없는 여행 즉 왕성한 지식욕을 표출하는 여행을 한다. “세상사와 인간의 악덕과 미덕을 경험해야 한다는 내 열의를 막지는 못햇다”단테의 <지옥편 >26편에 나오는 말이다. 블룸은 율리시스의 욕망에 대한 중산 계급적인 상관물인 끈덕지고 반추적인 호기심으로 그의 상념 속에서 스티븐보다 훨씬 더 많은 인생과 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

동시에 블룸은 자신의 보기 드문 개성을 주장한다. 경험에 대한 그의 반응은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지만 더 광범위하고 현명하다. 율리시스만큼 인정된 명성은 누리지 못해도 율리시스만큼 존경받을만한 인물이다. 조이스는 그를 치켜세우지는 않지만 특별한 인간으로 내세운다.

블룸은 하찮은 인간-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 생활에도 실질적으로 아무런 영향력을 갖지 못하는 광고 외무원-이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조이스는 신이라는 말로써 그리스도교를 얘기하지 않는다. 조이스는 개인적인 신의 개념에도 관심이 없다. 블룸의 신성한 부분은 자신과 다른 피조물 간에 유대성이 있다는 그의 가정, 단지 그의 인간성일 뿐이다.

이 블룸이라는 이름은 흔한 유대인 이름이지만, 이 이름은 꽃을 의미하기도 하며 블룸은 꽃처럼 완전체이다. 블룸은 편협한 의미에 속하지 않음으로서 또한 민족적 생활의 제한을 무시함으로써 이러한 차별성을 성취한다. 그는 아일랜드인이라기보다는 한 인간인 것이다. (629~632P/제임스 조이스평전/ 리처드 엘먼지음/ 책세상>


***  블룸이 존경받아야 한다는 소망으로 조이스는 평범한 것에 비범함을 불어넣는 자기 자신의 능력을 블룸에게 부여한다. 블룸의 독백은 놀랍게도 강렬한 어구가 넘치는 끊임없는 시다. 

조이스가 블룸을 통해 애기하는 것이지, 블룸의 사고방식이 아니며, 셰익스피어에 나오는 접시닦이들이 시인인양 말하는 것처럼 조이스의 모든 인물들도 그렇다고 가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몰리의 시야는 한계가 있고, 스티븐은 의식과잉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화술을 갖고 있다.  (632~633P/제임스 조이스평전/ 리처드 엘먼지음/ 책세상>


***,율리시스>의 사실성은 너무 그럴싸해서 조이스는 창조자보다는 모방자로 취급되어왔다. 당치 않은 이 비난은 최고의 찬사이다. 조이스의 사후 BBC방송이 그에 대한 장시간의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그 대표자가 더블린의 리처드 베스트박사를 바움ㄴ해서 라디오 방송 인터뷰를 부탁햇다.

“내게 온 이유는 뭐요? 이 조이스라는 사람과 내가 무슨 관계라도 있다고 생각하나요?”라고 그는 모질게 물었다. 방송국 사람들은 “관계가 있는 것은 틀림없지요. 뭐니뭐니 해도 <율리시스>의 등장인물이시지 않습니까?”베스트박사는 벌떡 일어나서 응수했다.

“나는 이 소설 인물이 아닙니다. 나는 살아있는 인간이오.” 이 사건은 유익한 경고이다.

예술은 개체의 인격을 뻔뻔스럽게 무시하고 한 인간에게 다른 인간의 머리카락이나 목소리나 태도를 아낌없이 부여한다. <키르케>의 스티븐처럼 에술은 세계를 관통해서 빛을 산산이 부수며 파괴하고 또 금세 창조한다. 그래서 작품이 안온 후 더블린 사람들이 당황하서 “당신은 거기에 등장하나?” 또는 “내 이야기를 쓴 건 아닐까?”라고 서로에게 묻곤 햇는데, 그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634P/제임스 조이스평전/ 리처드 엘먼지음/ 책세상>


***<율리시스>의 표면상의 사실주의는 많은 복잡한 사실에 의해 뒷받침 된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선명치 않은 난외 사항이다. 조이스가 설명할 의도가 없는 재료를 집어넣었기 때문에 그의 작품은 인생처럼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실이 엉켜 있다는 인상을 준다.  (634P/제임스 조이스평전/ 리처드 엘먼지음/ 책세상>


*** 조이스는 1904년 6월 16일을 <율리시스>의 날로 정했는데, 이날이 노라 바나클과 처음으로 같이 걸었던 기념일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더블린에 갔을 때 그는 이날의 신문을 입수할 수 있엇다. 작품 속에서 블룸이 가장 좋아하는 추억은 호우드의 철쭉 속에서 사랑의 언약을 하던 때이고, 블룸 부인도 마찬가지이다. 이 작품은 그때에 대한 그녀의 회상으로 끝난다. 이런 의미에서 <율리시스>는 결혼 축가이다. 사라이 이 작품의 동기이다. 정신은 감사의 순간을 통해 속박에서 해방된다. 이것은 조이스가 젊었을 때 조차 희극을 비극보다 한층 높은 형식으로 만드는 감정이라고 격찬했던 환희로 특징지어지는 순간인 것이다. 이러한 순간은 기적처럼 드문 일이지만 영원히 지속되며 기적과는 달리 신의 중재가 필요없다. 그것은 얼룩덜룩한 일상생활로부터 본질적인 순수함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율리시스>의 테마는 단순하며ㅕ 조이스는 블룸, 몰리, 스티븐을 통해서 그 테마를 완성한다. 우연한 친절이 부당한 힘을 압도한다.

오랜 작업이 도리 거라고 예상하고 작품을 시작했던 1914년에는 이 외에 조이스에게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 관점만은 확고했다. 더블린의 모든 세세한 것들과 트리에스테의 많은 것들이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수집되어야 했다. 그의 예술에서 조이스는 자신의 인생의 지배적인 특징으로 여겨왔던 불운과 좌절을 극복하고, 공포와 잔혹의 부정이라는 그의 유일한 신앙을 인류의 이름으로 희극적 방법으로 표현했다.

 (658~660P/제임스 조이스평전/ 리처드 엘먼지음/ 책세상>

☆☆☆조이스는 <율리시스>를 통하여 자신에게 불어닥치는 어떤 불행, 불운, 고난, 좌절도 자신의 예술에 대한 의지를 꺾을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조이스의 인간승리이다.


문체의 박물관, 인간심리 백과사전!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탁월한 언어미학과 혁신적인 소설기법으로 현대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20세기 최고의 소설로 손꼽힌다. 또한《율리시스》가 후대 작가들에게 끼친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작품의 일부가 연재된 영국 잡지《에고이스트》의 편집 보조를 맡고 있던 T. S. 엘리엇이 《황무지》를 쓸 때 《율리시스》가 큰 자극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버지니아 울프와 윌리엄 포크너 등이 작품 속 인물들의 내적 심리를 서술하는 데 있어서도 《율리시스》가 전범 구실을 했다. 또한 조이스의 비서로 일했던 사무엘 베켓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문학의 정신적 거장들에게 미친 영향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율리시스》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더블린 사람들》과 더불어 조이스의 더블린 3부작을 구성한다. 현대도시 더블린의 일상이 신화적 알레고리 및 상징과 자연스럽게 결합된 이 작품은 ‘진지한 신학’과 ‘놀이’가 공존하는 이중구조를 띤다. 예술론과 광고문구가, 현란한 언어유희와 시적 추상이, 유머와 절망이, 축제와 장례식이 하나로 어우러져 거대한 소용돌이를 이룬다. 이와 같은 서로 다른 색체의 조합은 조이스의 문학적 개성인 동시에, 아일랜드 전통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아일랜드의 현실을 충실하게 재현해 낸 결과물이기도 하다.

또한 《율리시스》는 탁월한 언어적 감수성이 빛나는 언어유희의 전당이라 할 수 있다. 다층적 상징, 조어와 합성어가 절묘하게 구사되며, 온갖 문체실험이 이루어진다. 현학적 요설과 시적 순간이 탁월한 미학적 균형 감각을 통해 결합된다. 변화무쌍하면서도 통일성을 잃지 않는 견고한 문체미학은 창조적 요소와 파괴적 요소가 공존하는, 혼돈과 소용돌이로써의 세계를 그려내는 조이스 문학의 본질과 그 맥을 같이 한다.

‘공허하고 혼란스러운 현대사라는 광대한 공간에 교향악과 같은 질서와 의미, 형태를 부여하는 수단’으로서 조이스 문학이 이룬 위?한 성취인 《율리시스》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더불어 ‘진정한 20세기의 시작’이자 ‘위대한 문학 실험’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이스의 작품에서 형식은 곧 내용이며, 내용이 곧 형식이다. 이것은 영어로 쓰인 게 아니라는 불평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애초에 쓰인 것이 아니다. 읽히는 것도 아니다. 아니, 단순히 읽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보이고 들리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어떤 것에 대하여 쓴 글이 아니다. 그 어떤 것 바로 그 자체이다.” (사무엘 베켓)


“제임스 조이스, 그는 이 세계의 재료들로 꿈의 혼합물을 만들어, 궁극적으로는, 그 원초적 자유, 그 풍요로운 모호성의 영역 속에서 낡은 전통이라는 폭정에서 벗어난 우주의 새로운 질서를 발견해내려 했다.” (움베르토 에코)

<인터넷에서 인용/ 율리시스1, 2 동서문화사의 책소개에서 인용>

 

 

 

저자라면 

<율리시스>를 읽으면서 내가 책을 쓴다면 조이스판 주인공인 블룸에 해당하는 인물을 어떻게 창조할지 생각해보았다.

리처드 엘먼은 주인공인 블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블룸은 하찮은 인간-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주변 생활에도 실질적으로 아무런 영향력을 갖지 못하는 광고 외무원-이지만 그의 마음속에서는 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신이란 우리가 말하는 그런 신이 아니라 조이스가 설정한 신, 즉 다른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관계맺기이며, 소통하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블룸의 신성한 부분이며 조이스가 인정한  인간성인 것이다. 조이스는 ‘블룸이 존경받아야 마땅하다’는 소망으로 평범한 것에 비범함을 불어넣는 자기 자신의 능력을 블룸에게 부여한다.

  평범한 사람을 주인공을 내세웠을 때 그 소설을 끌고 나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안다. 그리고 독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도 힘들 것 같다. 조이스가 블룸에게 평범한 것에 비범함을 불어넣었다고 하는데, 나는 블룸의 그 비범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

  내가 만약 저자라면 좀더 사회에서 조금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설정하고 싶다. 약간의 권력을 가진 사람, 혹은 약간의 부를 가진 사람 등이다. 드라마처럼 뭔가 좀 화려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싶은 이유가 있다. 소설을 읽다보면 소설의 주인공들은 하나 같이 어디나가 아프고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적극적이고 못하고, 부정적이고,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거나 가족들과 불화를 일으키는 사람들이다. 소설에서 갈등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렇게 설정할 수 밖에 없겠지만, 읽는 내내 불편했다. 대로는 구토를 할 정로로 불편했다. 도자들을 불편하게 한 것을 보면 그 소설은 잘 쓰여진 소설임에 틀림없다.

  율리시스에 나오는 주인공들도 내가 보기엔 너무나 평범하고 어딘가 정신병리학적으로 약간의 문제는 있는 것 같다.  우선은 내가 창조할 주인공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 푸른 기운이 도는 창백한 흰빛. 색이란 거기에 닿는 빛에 달렷다. 예를 들어 매처럼 태양을 바라보다가 구두를 보면 노랗고 희미한 반점처럼 보인다. 태양은 모든 것에 자기 상표를 붙이고 싶어한다. 예를 들어 오늘 아침 계단에 있었던 저 고양이, 갈색 진흙색. 삼색고양이는 결코 없다고 한다. 하지만 아니야. 저 시티 암스 호텔에 있던 머리에 M자 무늬가 있는 흰색 바탕에 검은색 갈색 오렌지색의 얼룩고양이. 무수히 다른 색을 가진 몸. 호스곶은 조금 전에는 자수정 빛이 없다. 반사하는 유리. 무슨 무슨 이름인가의 그 현자가 우리로 불을 일으킨 방식과 같다. 야생화 언덕이 불탄다. 관광객의 성냥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면? 아마도 바람 부는 쨍쨍한 날 마른가지들이 소로 마찰을 일으킨 탓이겠지. 그렇지 않앗으면 금작화 곁에 버려진 깨진 병에 햇볕이 닿아 확대경과 같은 작용을 하는 것이다. 아르키메데스, 유레카! 나의 기억력도 그렇게 나쁘지 않군.(619P)

☆☆☆ 조이스의 의식을 따라 잡기는 정말 힘들다. <율리시스>는 뚜렷한 줄거리 없이  혹은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가 없이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쓰여진 소설이다. 얼핀 생각하면 제이스의 조이스의 의식의 흐름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등장인물의 성격에 맞게끔 의식의 흐름을 정리한 것이다. 율리시스가 약 10여년동안 쓰여졌음을 생각할 때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작업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글쓰기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방대한 지식이 동원되어야 할 때도 있고, 그러한 방대한 지식이 글을 돋보이게 한다. 언젠가 한 번은 소설형식이 아니더라도 한번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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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6 15:47:16 *.154.223.199

조이스 평전이 700페이지가 넘는다며 놀라셨던 그 책을 결국 사서 읽으셨군요. 대단하십니다. 아까며 탐독하신 듯 합니다. 노라 버나클의 편지에 대해 읽게 되어 반가웠어요.

블룸이 비범한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모습의 일상을 그렸군요. 그때 천파운드면 오늘 우리 나라에서는 동산 부동산 합쳐서 자산이 얼마인 사람인걸걸까 궁금했어요. 얼마짜리 전세집에 살고 얼마를 버는 사람의 모습을 그린걸까 궁금해서요. 계산이 안되네요. 소설가들이 낙오자같다는 말씀, 그런데 소설을 공부하신 적이 있고, 소설이 아니라도 어쨎든 쓰는 작가가 되실거고(이미 여러 권을 내신 작사시죠)...한참 생각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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