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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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모험에 과감히 뛰어들지 않으면 순간적으로 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런 안일함은 삶을 무기력하고 무겁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결국 아주 천천히 우리 삶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파괴될 것이다.” 이 글은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소재로 [소심함, 혹은 작은 악을 선택하는 비극]이란 제목으로
끝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할 것이 없다는 것은 세상살이가 끝났다는 것일 테니. 큰 악을 피하려고 작은 악을 선택하기도 하고, 자신을 장밋빛 삶을 살게 하는 사람을 떠나 외로움에 방치할 사람을 선택하기도 한다. 버림받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버리지는 않을 거란 안정감. 둘 사이에서 우리는 후자를 선택하기도 한다. 용기가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나은 삶, 행복한 삶을 선택하려 늘 분주하지만 천 년을 살아내는 나무에 비하면 인간은 100년을 채 못 살면서, 100년도 안 되는 삶을 살아내느라 얼마나 분주한가.
지난 4월 30일 월요일. 샌드위치day 이다. 달력에는 다음날이 빨간 글씨는 아니다. 얼마나 많은 근로자가 쉬는지는 모르겠다. 가깝게는 남편도 정상근무이고 아이들도 학교수업이 있다. 노동절에 쉬는 노동자보다 그렇지 않은 노동자가 더 많은 듯하다.
동행을 원하는 고객을 만나기 위해 서초동 검찰청에 가는 길이었다.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개찰구 안, 노란 셔츠에 검정글씨로 비 정규직****(뒷부분은 생각이 나질 않는다.) 학생들이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삼삼오오 서있다. 전철이 들어오고 문이 열리자 전철을 기다리던 나는 지하철에 승차했다. 학생들도 따라 탄다. 제법 많은 수의 학생들이다. 잠시 후 한 학생이 확성기를 잡고 이야기를 한다. 쌍용자동차의 파업, 노동자들의 자살, 청년실업. 비 정규직 문제…오늘 하루 생각해달라는 거다. 이런 문제들을. 그리고는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짧은 외침이었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고 약간의 울분도 있었다. 그날이다. 내가 정규직에서 계약직으로의 전환이 결정 난 날이. 회사가 나에게 요청한 것은 아니다.
자발적 전환. 왜? 돈과 시간을 바꾼 거다. 나는 이렇게 주장하고 싶은 거다. 조금 다른 이유도 있다. 일주일에 서너번씩 하는 회의시간, 늘 실적에 시달리는 우리들이다. 하루하루 실시간으로 전 영업직원의 순위가 나오고, 자신의 위치가 나오고, 얼마를 회사에 벌어주었는가가 나온다. 이것만 봐도 IT강국 맞다. 굳이 삼성전자의 주가를 운운하지 않아도.
아이들의 외침을 들으면서 저들은 저렇게 힘들어 하고 있는데 나는 무슨 짓을 했는가. 요 며칠 사이에. 갑자기 두려움이 나를 에워쌌다. 옴짝달싹 할 수 없이 꽉 찬 만원지하철의 사람들처럼.
4월의 마지막 주 월요일, 월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다. 돈벌이할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시장상황이 썩 좋지 않았다. 이래저래 핑개는 있다. 지난달 회사에서 최우수지점 표창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번 달 죽 쑤고 있는 거다. 입사한지 두 달도 되지 않은 초임 지점장은 똥줄이 탄다. 이쯤 되면 회의분위기도 좋지 않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BEP는 달성해야 합니다. 나는 BEP달성 못하는 직원은 용서가 안됩니다. 모찌(본인계산)계좌는 매매하지 마십시오. 모찌계좌를 매매할 상황이라면 차라리 고객계좌를 매매하세요” 이 말의 뜻은 더 열심히 영업을 해서 본인의 BEP는 달성하란 이야기이다. 충분히 알아듣는 이야기이다. 또 지점장의 위치에서는 늘 하는 이야기이다. 알면서도 참아내지 못한다. 뭔가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들 때면, 그것이 고객과 얽히는 이야기가 되면 더욱더 못 참는다.
그날도 마지막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설사 속으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특히 증권회사는 시장상황에 많이 좌지우지된다. 그런 상황을 대비해서 평소에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그래도 할말이 있고 하면 안 되는 말이 있다. 내 생각이다. 나는 주장하고 싶었던 건가 보다. “나는 그러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어!”
그날 회의를 마치고 회의실을 나오면서 더 이상은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회의에 참석해서 저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는 이유, 그것은 샐러리다. 회사에서의 기대치는 늘 성장이다. 이유불문 자신이 받는 월급의 몇 배 이상은 벌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죽이고 있어야 하는가, 그래야 내 삶이 유지가 되는가, 이것이 요즘 나의 화두였다. 커다란 비젼이나 그런 것이 아니다. 최소한의 자존감은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 나의 개똥철학.
밥벌이의 신성함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밥을 몇 그릇 먹느냐의 문제라면 생각해볼 일이다.
나에게 고객으로 함께하는 분들에 대한 예의다. 대학다니는 아이의 등록금, 정규직이 누릴 수 있는 급여, 복리후생 환산하면 적은 금액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제는 결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는 날이었다. 임계점에 다다른 거다. 새로운 변화를 모의하기에 좋은 시기. 꺽어지는 나이. 돈보다 소중한 가치. 이럴 때는 편하다. 뒤돌아보지 않는 나의 성격이.
드디어 나에게 일정부분의 샐러리와 맞바꾼 자유가 선사되었다. 원하는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또 다른 것을 놓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몸으로 체득하여 알고 있다. 실천이 어렵다고들 하지만 해보면 그것도 간단하다.
물은 알고 있을까?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것을. 아마 온몸이 근질근질 터지기 직전이겠지. 어딘가에서 제일 먼저 저요 저요!! 하고 안전지대 밖으로 나오는 놈이 있어야 끓기 시작하리라. 내 상태도 거기쯤 가 있었던 건 아닐까 싶었다. 나름 지금까지 잘 지내왔다. 힘들지는 않았느냐고? 왜 힘들지 않았겠어…힘들었지. 후회는 없냐고? 왜 후회를 안 하겠어 가끔 후회를 하겠지 월급날이 되면 더 그렇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지. 왜 없겠어….
샐러리와 맞바꾼 자유를 가지고 나는 제임스 조이스를 읽었다. 율리시스. 그의 작품세계는 글쎄다. 뭐라 평을 적을 수가 없다. 잘 모르기 때문이다. 장님 코끼리 잡는 것도 아니고 일주일 동안 읽은 짦은 글과 저자에 대하여 찾아낸 글들의 조악함으로 어찌 평의 글을 쓴단 말인가. 다른 사람의 견해를 빌린다. 순수의 세계에서 타락의 세계로 그리고 그 타락의 세계를 통해 초월적 세계로 이어지는 길 그것이 이 예술가의 소설 진행경로라고 이름하여 두자. 나의 원형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나의 태생 나의 어린 시절 학창시절 그리고 사회생활. 특별함이나 비범함이 보이는 구석은 아무 곳에도 없다. 특별한 학생도 아니었고 탁월한 직장인도 아니었다. 짧은 시간 학생이었고 긴 시간 사회인이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일과 공부가 함께하는 삶이었다.
불안한 사랑이냐 불행한 안정이냐를 보면서 바로 알게 되었지. 그래
나의 선택은 불안한 사랑이야. 나는 용기 있는 사람이니까…주말에 혼자서 한 자기위안이다.
타락의 세계에서 초월의 세계로 한발 내 디뎠다고 자평해 보자.
타락의 세계에서 어떻게 사뿐히 발을 빼는가를 보여줘야 하는 데…나의 또 다른 과제다
시간과 돈.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봤어요. 지난 주 쯤이었나?
일주일에 하루는 7시 퇴근, 삼일은 5시 퇴근 그리고 하루는 4시20분 칼퇴근. 엄청 빠르지요?
심지어 학교에서도 18시간의 수업 이외에는 업무 없음.
월급 통장은 늘 그대로. 오히려 요즘음 세금을 더 떼는지 몇 만원 더 줄었다는.
전 시간이 많은 부자지요.
그것은 내가 선택한 것. '내가 시간과 돈을 맞바꿨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은 날이었지요.
동시에 이렇게보다 더 잘살아야겠다.
아니면 돈을 더 벌지. 이런 생각도 했답니다.
행님 멋져요. 돈보다 더 값비싼 시간을 선택한 용기.
지금의 시간으로 더 가치있는 돈 벌 수 있게 되길.. :)
나도... 시간이 많을 줄 알고 우리 과를 선택했어요. 레지던트이면서 토,일과 빨간날을 무조건~ 놀 수 있는 과들 중 제 적성에 가장 잘 맞았습니다. 의사 치고는 품위유지비(???!!!)도 빠듯한 박봉이지만 오히려 기대가 안되어서인지 제 직업으로 부를 창출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없네요. 그래도 월급날은 참 즐겁습니다.ㅋㅋ
동시에 생계형 작가로 투잡(혹은 쓰리잡?)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남다릅니다.-_- 원래 작품은 돈이 빡빡할 때 나오는 법이지요. 제임스 조이스도 돈이 없는 가운데 자식넘들이 생기가 똥줄 타듯 글을 쓰기 시작했고 도스토예프스키도 허구헌날 돈 꿔달라는 편지를 쓰는 게 일상이었다죠? 작가들은 일부러 극한의 경험을 하려고 몸부림도 치는데 우리가 작은 것을 희생하여 얻을 것들을 생각하면서(아직은 얻을 것들이 측정 불가. 현재까지는 계속 잃고만 있음. 정신의 황폐화, 통장의 싹쓸이??) 초심으로 돌아갑니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미지의 가치에 배팅할 만큼 용기있는 타짜들이죠! 길수 행님은 역시 이 분야도 전문가?^^
행님의 글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나의 선택과 행님의 선택. 위안과 존경, 그리고 글의 여운. 행님의 글을 통해 나도 내 선택을 긍정하게 되네요! 마음이 참 따뜻해집니다그려~!! 정민 교수님이 말한 "사상이 멋진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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