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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21일 11시 22분 등록

율리시스 (Ulysses)

* James Joyce, 김성숙 옮김, 동서문화사, 2011.01.12

 

1. ‘파괴하거나 혹은 창조하거나(저자에 대하여)

 

James Joyce

조이스.JPG

James Joyce (1882~1941)

나는 조이스의 이 사진이 마음에 든다. 친구 C.F 카란이 찍었다고 하는데 뒷날 이 포즈를 취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조이스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이 친구가 내게 5실링을 빌려 주려나?’

1904년의 모습이니 자신의 아내 노라 바너클을 처음 만났던 때였으며 파리에 체류하며 가난으로 고생하던 때였다. 그럼에도 인간의 기품만은 잃지 않고 있는 저 당당한 모습.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이 왠지 끌린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읽으려고 시도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것은 하나의 지적 모험이며 정신적 고통과 괴로움을 감수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같다. 텍스트를 읽고 행간의 의미를 찾아가며 재미있으면 그만이고 재미없으면 안 읽으면 됐었던 소설에 대한 생각은 율리시스 앞에서 여지 없이 무너진다. 그 난해함과 함축, 함의, 생략, 은유, 간접 언급 등은 머리를 쥐어 뜯게 만들고 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유희 수준의 글, 외설과 은유예술을 오가는 줄타기, 부도덕과 비관, 퇴폐적 이야기 속의 함의를 읽어내야 하는 의무는 책을 읽다가도 밀쳐내게 만든다. 제임스 조이스는 이를 알았는지 비아냥거리며 독자들에게 하는 말이 기가 막히다.

 

나는 율리시스 속에 굉장히 많은 수수께끼와 퀴즈를 감추어 두었기에 앞으로 수 세기 동안 대학교수들은 내가 뜻하는 바를 거론하기에 분주할 것이다. 이것이 자신의 불멸을 보장하는 유일한 길이다.’

 

이 말에 화답하듯 이 책의 역자는 1955년부터 시작한 율리시스 연구를 55년간 지속한 끝에 한국어판을 간행했다고 전한다. 세상에, 이런 소설이 어디 있는가. 이것은 소설인가. 신이 하는 이야기를 인간이 해석해 내는 작업인가. 제임스 조이스라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우선 제임스 조이스 일생에서 주요 사건들을 연보로 살펴 본다.

 

1882 : 2 2(양력) 아버지 존 스태니스라우스 조이스(John Stanislaus Joyce)와 어머니 매리 제인 머래이(Mary Jane Murray) 사이에서 첫 번째 아들로 태어나다. 아버지는 정치에 관심이 높았으나 직업적으로 거의 사회 밑바닥을 전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어머니 매리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제임스를 포함하여 10명의 자녀(4 6)들을 낳았다.

같은 해, 윈덤 루이스, 버지니아 울프, 스트라빈스키가 탄생했고 5월 더블린 피닉스 공원에서는 영국 고관 암살사건이 일어났다.

 

1891 (9) : 카톨릭 견진 성사를 받고 알로이시오(Aloysius)라는 이름을 선택한다.

 

1883 (11) : 더블린 예수회 벨베디어 칼리지에 3학년으로 입학. 라틴어, 프랑스어 외 선택 외국어로 이탈리어를 배운다.

 

1894 (12) : ‘율리시스의 모험을 애독하고 내가 좋아하는 영웅이라는 제목으로 율리시스에 관한 글을 짓는다. 처음으로 사창가에 간다.

 

1899 (17) : 예이츠의 캐슬린 백작부인을 반아일랜드적이라고 비난하는 학생들의 서명 운동에 조이스는 분명하게 반대한다.

 

1902 (20) : 조지 러셀의 소개로 예이츠와 그레고리 여사를 만난다. 문단의 중심인물들은 조이스의 루시퍼 같은 거만함에 당황하면서도 그 문학적 재능에 감탄하게 된다.

같은 해, 예이츠를 회장으로 아일랜드 국민극장 협회가 설립되고 에밀 졸라가 사망한다. 드레퓌스 사건(1894~1906)1903년 아일랜드 리머릭의 유대 상인 보이콧 사건과 함께 조이스의 강한 관심을 끈다.

 

1903 (21) : ‘바다로 가는 사람들집필을 막 끝낸 존 싱도 같은 여인숙에 있어서 두 사람은 기묘한 경의화 적의를 느낀다.

 

1905 (23) : 1904 8월에 쓴 풍자시 종교 재판소’ 100부를 인쇄하고 더블린의 친구나 지인에게 보낸다. (이것은 예이츠에서 고가티에 이르기까지 더블린 문인 전부를 단죄한 결별장 또는 복수 선언이다)

 

1913 (31) : 레볼테라 고등상업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한다. 이때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학생 마리아 포퍼(아버지 레오폴드는 유대인 실업가)에게 일방적인 연애감정을 느끼고 자코모 조이스라는 제목의 노트를 남긴다.

 

1914 (32) :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잡지에 싣는다. 초판 1250부 가운데 연말까지 499부가 팔리는데 5백부까지는 무인세 계약이어서 기대에 반해 조이스의 형편은 나아지지 않는다.

같은 해,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

 

1918 (36) : 미국 잡지 리틀리뷰’ 3월호에 율리시스 연재를 시작한다.

 

1919 (37) : 1917 5월 이래 익명으로 후원한 사람이 해리엇 위버였음이 밝혀진다. (그녀의 경제적 원조는 조이스 사후 장례식에 이르기까지 계속된다.)

 

1922 (40) : 2 2일 생일에 셰익스피어 서점 판 율리시스첫 한 권을 실비아 비치에게서 건네 받는다. (구상한 지 16, 집필한 지 7년 째) 엘리엇은 격찬하며 조이스는 19세기를 매장시켰다고 버지니아 울프에게 말한다. 울프는 교양 없고 수준 낮은 환경에서 자란사람의 작품이라고 비판한다. 에드먼드 고스는 문학적 사기꾼이라고 평한다.

 

1924 (42) : 4, 왼쪽 눈 결막에 이상이 생겨 의사가 일을 쉬라고 했다. 6월에 수술을 했다. 11 28일 보르시 박사에게 왼쪽 눈을 6번째로 수술 받는다.

 

1930 (48) : 시력이 감퇴하여 스위스 취리히에서 11번째로 수술을 받는다.

 

1931 (49) : 7 4일 아버지의 생일 때 노라와 런던 등기소에서 정식으로 결혼 신고를 한다. 같은 해 아버지 존 더블린이 사망하는데 그는 내 작품의 수백 페이지와 등장인물들은 아버지로부터 나온 것이라 말하며 슬픔이 깊어 피네건의 밤샘집필을 포기하려고 했다.

 

1934 (52) : 1, 뉴욕의 랜덤 하우스가 미국 최초로 율리시스 100부를 출판한다.

 

1938 (56) : ‘지칠 대로 지치고 혈액은 한 방울도 남지 않고 머리에서 흘러나온 것 같았다. 나는 긴 시간 동안 벤치에 앉아 움직일 수도 없었다고 친구에게 말한다.

 

1939 (57) : ‘피네건의 밤샘이 런던과 뉴욕에서 동시에 간행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피네건의 밤샘책은 반향도 거의 없었다.

 

1940 (58) : 교정을 계속하지만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진다.

 

1941 (59) : 1/10 극심한 복통에 시달린다. 십이지장궤양천공으로 진단 받고 수술하고 회복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1/13 곧 사망한다. 15일 취리히의 플룬테른 묘지에 잠든다.

 

1947 : 뉴욕에서 제임스 조이스 협회가 결성된다.

 

1962 : 6 16 bloom’s day(율리시스의 주인공 Leopold bloom 6/16 하루 동안 이 책의 이야기를 이끈다.) 창립식

 

동서문화사 판 율리시스 책의 말미에는 그에 대해 연구한 옮긴이의 수고가 그대로 담겨 있다. 그 내용을 찬찬히 써내려 간다.

 

역자는 저자에 대해 길지만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제임스 조이스는 세계문학사를 한 몸에 수렴하고 파괴와 반역과 고전주의와 정숙이 공존하며 한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그 문학적 방법이 더욱 큰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언어와 문체에 집요한 관심을 보이며 정취가 악취미를 통해 세련미를 더하고 악취미가 정취를 통해 증폭되며 국제적 또는 무국적적인 허무와 불안의 묘미가 있고 더욱이 그러면서도 문학적 세계 전체가 종교성의 한 음화를 이루는 구조를 볼 때 그가 바로 모더니즘 그 자체인 것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적 상황에 대해 알아보자. 19세기 첫 무렵 더블린에서는 예이츠와 그레고리 여사, 러셀, 싱이 중심이 되어 아일랜드 문예부흥운동을 활발하게 일으키던 때였다. 조이스는 직간접적으로 이 문학운동의 영향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은 19세기 끝 무렵 유럽 문학에 나타난 자유사상이었다. 조이스는 인형의 집, 브랜드, 헤더 가브렐, 등을 쓴 입센에 심취하여 그의 작품을 원어로 읽기 위해 노르웨이어를 공부했을 정도였다. 해방 사상을 품은 이들 극작가에게 조이스가 감동한 까닭은 무엇일까. 영국이나 프랑스에 뒤진 낡은 전통에 묶여 고민하는 아일랜드 청년에게 그들이 호소력 있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노르웨이나 독일은 상대적으로 아일랜드와 상황이 비슷했다.

 

한편, 조이스가 가톨릭도 민족해방운동도 따르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보다 먼저 자아 해방을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이스는 아일랜드 켈트 민족에 대한 애착은 매우 강했다. 마다리아가이로호의 지적 가운데 정말 중요한 것은 아일랜드 사람과 에스파냐 사람의 기본적인 공통점이다. 그것은 부조리와 친근감이다. 문학 세계에서 이 감각의 대표자는 에스파냐에서는 돈키호테의 세르반테스, 아일랜드에서는 걸리버 여행기의 스위프트, 피네건의 밤샘의 조이스, 고도를 기다리며의 베케트일 것이다. 세르반테스를 예로 들면 길가에서 싸우고 있는 두 남자한테 꼴사나운 싸움은 그만해요가 아니라 두 사람만의 승부입니까? 끼어들어도 되나요?’ 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일랜드의 특성을 살린 수사법, 이른바 아이리시 불(irish bull)이다.

 

어쨌든 그들은 부조리나 역설을 이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 마다리아가이로호의 견해에 따르면 그 뿌리에는 라틴적인 개인 중심주의가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게르만적, 앵글로색슨적인 사회의식이나 객관성이 전혀 없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아일랜드는 몇 번이나 이민족에게 정복되지만 정신풍토나 기질이나 문화면에서는 어느새 상대국이 동화되어 아일랜드인보다 더 아일랜드인 같은 사람이 되는 일이 많았다.

 

한편, 조이스는 청소년기 때부터 예수회 사람이 되지 않겠냐고 권한 교장의 권유는 딱 잘라 거절했다.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순종 잘하는 교회 신자가 되고 싶다는 표정을 짓는 정도의 양보조차 하지 않았다. 정치에 대한 정열도 점점 식고 이제는 문학과 예술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스무 살에 가까워질 무렵 조이스의 포부는 문학청년이라기 보다 오히려 혁명가나 성자에 가까웠다.

 

조이스는 스물두세 살이 되었을 무렵 싱이나 예이츠, 러셀의 모임에 참여 했다. 그러나 민족주의 문학운동에는 따르지 않고 보다 더 자유롭게 국제적인 시각에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미 열일곱 살 때 입센에 대한 에세이를 포트나이틀리 리뷰에 발표하고 예이츠 등이 이들 대륙 자각의 희곡을 예비극장에서 상연하지 않는다고 공격한 조이스이다. 그런 뜻에서 애당초 그는 민족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단지 아일랜드 작가로 머물 인물이 아니었다. 조이스는 카톨릭 신학의 큰 흐름인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즐겨 읽었을 뿐만 아니라 단테,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등 유럽 고전문학을 섭렵했다. 또 플로베르의 여러 작품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또한 조이스는 파리에서 성악가로서 자립할 생각도 했다. 성량 풍부한 테너 목소리를 아버지에게서 물려 받은 그는 더블린에 있었을 때도 테너로서 여러 차례 경연에 나간 경험이 있었다. 1904년 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파리에서 돌아와 잠깐 더블린에 머물렀다.

 

그러나, 1914년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 때문에 아일랜드에 더 머물 수 없게 되자 조이스는 스위스 취리히로 거처를 옮겼다. 거기서 영국인들과 연극 활동을 하며 희곡을 쓰는 동시에 율리시스 집필을 시작했다. 율리시스는 1914년부터 1921년까지 7년이란 세월 끝에 낳은 작품이다.

 

미국에서 율리시스는 오랫동안 관세법에 따라 외설문서로서 수입 금지도서였다. 그러나 1933년 울지 판사가 이 책은 외설문서가 아니라 새로운 문학 분야에서 이루어진 진지한 실험이라는 판정을 내려 수입 금지가 해제되고 그 해에 미국에서 출판 되었다. 세계2차대전이 일어나자 그는 다시 취리히로 옮기게 되는데 이때에도 그의 생활은 아직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고 스위스 입국 무렵 미국 문학가들이 힘을 모아 그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그곳에서 조이스는 1941년까지 살고 죽는다. 가난은 왜 예술가와 동지처럼 지내는가. 선천적으로 악한 속성을 지닌 돈은 예술가와 친근한 신을 배격한다. 그래서인가.

 

율리시스 이야기를 해보자.

율리세스(라틴), 율리시스(영어), 율리스(프랑스어)로 읽는 법은 라틴어 계통이고 그리스어로는 오디세우스이다.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의 노래라는 뜻인데 오디세우스, 곧 율리시스가 조이스 소설의 제목이다.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괴테도 셰익스피어도 단테도 발자크도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 같은 다면적 인격의 인간을 그린 적이 없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을 때 결혼한지 얼마 안 된 아내와 갓 태어난 아들을 두고 전쟁에 나가는 게 싫어 미친 척 했지. 그는 평화주의자였어. 그러나 거짓말이 들통 나 전쟁에 참가하자 철저한 항전주의자가 되었네. 그는 전황이 불리할 때도 전군을 고취시켜 승리의 희망을 불어넣었으며 커다란 목마를 만들고 그 안에 숨어서 트로이 성을 함락시켰네. 그는 술이나 씨름, 경주 따위의 무예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 연합군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로 인정 받았지. 무기제작자, 키르케의 연인, 칼립소의 애인 등 곧 연애의 순례자 같은 면모도 있었어. 아울러 그는 최초의 신사이기도 했지. 스케리아 섬에 표착했을 때는 알몸이었으나 왕녀 나우시카에게 가까이 갈 때는 나뭇가지로 라도 몸의 입부를 가리지 않았는가. 이런 다면적인 인간을 그린 사람이 호메로스 이후에 또 누가 있는가.’라고 친구에게 말했다고 한다.

 

로이스는 청년 시절 다이달로스 또는 이카로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냈던 것 같다. 소년시절부터 집과 학교에서 익힌 가톨릭 계율을 대학 졸업 진전에 버리고 근대의 자유인으로서 자기를 해방시켰을 때 그는 자신을 예술의 방법자로서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는 가톨릭교를 포기했으므로 자신을 위해 하느님에게 기도해 달라는 임종 전 어미의 부탁도 뿌리쳤다. 어머니의 마지막 부탁을 그렇게 거절한 일이 마음에 응어리로 남아 그를 괴롭힌다. 그것이 율리시스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다.

 

조이스는 20세기 초까지의 자유와 자연을 소박한 뜻으로 중요시한 작가가 아니라 더 나아가 방법자와 기술자로서 철저를 기함으로써 자신의 인간성을 보전하려 한 20세기 새로운 유형의 예술가였다. 그 점에서 19세기 끝 무렵 대표적 방법의식자였던 플로베르의 소설을 더욱 발전시킨 사람은 조이스라고 봐야 한다. 그래서 그는 기술자 다이달로스 곧 디댈러스로서 자기를 그린 것이다.

 

율리시스에 나오는 더블린, 즉 아일랜드 역사와 민족성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상기해 보자. 조이스는 이 사회와 역사의 산물이니까. 그 배경인 1904 6 16일 더블린은 아직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이전 아일랜드의 수도였다. 아일랜드 민족은 대부분이 켈트인으로 본디 잉글랜드에 살면서 게일어를 썼으나 뒷날 북독일과 덴마크, 노르웨이 쪽에서 들어온 색슨인, 앵글인, 주트인 등에 쫓겨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로 이주했다. 아일랜드인은 앵글.색슨족에 정복당해 영국령 국민이 되어 그들의 국어인 게일어를 쓰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게일어와 그것을 통해서 살아있는 신비로운 민족의 전설을 잊을 수는 없었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 뒤 마침내 자유국 에이레(아일랜드)를 건국하게 된다. 따라서 이 소설에 그려진 1904년에는 게일어와 아일랜드 독립이 시민들의 입에 끊임없이 오르내린다. 아일랜드는 가톨릭 신앙을 완고하게 고수하는 나라로서 정복되고 박해받아도 언어와 정치의 자유를 잃어도 이 믿음만은 지켜냈다. 한편 아일랜드인은 민족의식이 높아 정복자인 잉글랜드인에 대한 반발과 유대인 등 이민족에 대한 반감이 특히 강했다. 유대인인 블룸은 이 나라 사람들의 민족 의식에 따른 차별대우로 고통 받는다.

 

율리시스의 배경이 되는 더블린은 다언어적 도시다. 본디 국어인 아일랜드어, 정치적 문화적 강제에 따라 쓰이는 영어, 교회 언어인 라틴어, 오페라 언어인 이탈리아어 등 조이스는 이런 다언어적 도시의 이점을 완벽하게 이용했을 뿐더러 기존 소설기법에서 과감하게 탈피한 조이스의 재능에 주목해야만 한다. 물론 율리시스에는 이것 말고 도 다양한 상황과 성격이 있다. 율리시스의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유희다. 18세기의 고상한 옷을 벗고 모두가 신사복이라는 활동복을 입기 시작한 19세기에는 문학의 이러한 성격이 경시되거나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조이스는 이 진지한 풍조에 정면으로 맞섰다. 율리시스에서 조이스는

 

1. 재치 있는 농담을 끊임없이 사용한다. 에피소드 18에서 몰리는 한 밤중에 침대에서 내적 독백으로 kiss me straight on the brow and part(이마에 키스하고 헤어져요)라고 노래하면서 brow and part brow’n part(항문)가 되므로 which is my brown part(그곳은 내 똥구멍이에요)라고 덧붙인다.

2. 합성어 및 조어를 만든다.

3. 페러디와 모방으로 놀이를 한다. 에피소드 14에서 영어 산문문체의 변천을 하나로 이은 화려한 조각 누비는 너무나도 유명하여 다른 설명이 필요 없지만 그 장은 영어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가장 위대한 장이다.’

4. 농담이다. 에피소드 6에서 묘지 관리인이 말하는 직업에 관한 농담부터 농담가운데 가장 상스러운 것은 분뇨담이다. 에피소드 4에서 블룸이 변소에 가는 것부터 시작하여 에피소드 12 성병에 걸린 이름 모를 화자가 오줌 눌 때 아파하는 모습 등

5. 외설도 농담과 비슷한데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바닷가에서 노출증 소녀와 자위하는 중년남자가 만들어내는 기괴한 이중주(에피소드 13)는 아주 새로운 미의 형태로 매혹적인 퇴폐를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다.

6. 가사 인용이다. 이것은 단지 가수가 될지 작가가 될지 진지하게 고민했고 늙어서도 술을 마시면 반드시 노래를 불렀다는 조이스의 취미를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

 

문자 문화는 인간을 분단하지만 소리 문화는 인간을 통합한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잘 통합하고 일체화시켜 임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노래 문화이다. 조이스의 취미 또는 익살 뒤에는 언어의 세 가지 기능을 소설에서 전부 살리고 싶다는 야망이 숨쉬고 있다.

 

조이스의 언어에 대한 집착은 다면적이고 다층적이며 철저하다. 그의 어휘는 전문어와 학술어부터 속된 말, 상말, 천한 말, 유아어, , 의성어까지 아주 다양하다. 이처럼 인간의 언어생활은 속담, 이름 붙이기, 잘못 말하고, 잘못 듣고, 잘못 쓰고, 잘못 일고, 머뭇거리며, 거짓말, 허풍, 과장, 인용, 인용 오류, 사투리, 외국어, 엉터리 외국어 등으로 온통 뒤덮여 있다.

 

7. 언어의 다양성에 대한 그의 집착은 장편소설을 사전과 경쟁하게 만든다. 이러한 계획 또한 뚜렷이 어떤 언어 유희며 이 놀이는 당연히 백과사전과 경쟁, 역사사전과 경쟁, 지명사전과 경쟁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8. 율리시스는 어떤 의미로 보면 잡학적, 현학적인 소설이다. 조이스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참조한 사실은 유명하지만 그는 그냥 참조한 것이 아니라 아주 뛰어나게 승화시켰다.

9. 수수께끼다.

 

수탉이 울었다.

하늘은 파랬다.

하늘의 종이

11시를 쳤다.

이 가엾은 영혼이

하늘로 올라갈 때가 되었다.

 

이런 수수께끼를 낸 것도 비슷한 효과를 노린 것이다. 이야기 첫 부분에 위치한 이 수수께끼는 율리시스의 방법적 상징이다. 왜냐하면 조이스는 온갓 퍼즐로 독자들을 낚기 때문이다.

율리시스에는 진지한 신학=예술론의 바로 밑(또는 위)에 장난기 가득한 놀이가 있기 때문에 이 이중구조를 간과하면 율리시스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

 

다음으로 주술성이 중요하다. 많은 소설이 주술성과 관련이 있고 특히 고대 서사시를 복잡한 형태로 계승하고 있는 율리시스는 더욱 그러하다. 무엇보다 유희와 주술은 어느 정도에 이르면 그 둘을 나누기가 불가능해진다. 예를 들어보자. 블룸은 고양이인 헤르메스에게 여행길을 축복받는다. 이 헤르메스와 고양이와의 관계는 전생 윤회에 대한 집착을 드러내는 전주로서 참으로 흥미롭다.

 

조이스는 현대 도시의 생활풍경에 신화의 구조를 적용하는 데 성공했다. 율리시스 전체를 구상할 때 오디세이아에서 더욱 거슬러 올라가 신화의 원형이라 할 만한 것을 찬찬히 탐구하여 이를 자신의 구조로 만든 조이스의 지력과 상상력과 직감력 덕분이다. 그는 소박한 서사시의 원시적인 형태를 추정하여 그 치졸한 것을 고스란히 빌려와 더블린의 일상 이야기의 골격으로 삼았다.

아마도 조이스는 인류 서사시의 가장 기본적인 핵심은 무엇인가를 추구해 간 끝에 기어이 그것을 마음 속에 그리는데 성공한 것이리라. 이 소설가는 무시무시한 통찰력으로 추정해 낸 서사시의 가장 소박한 형태에다가 제 고향의 현대 풍속을 입히고는 그것을 선과 미를 다한 언어로써 이야기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한다면 율리시스의 매우 중요한 주체로서 젊은 스티븐의 성인식이 두드러진다.

 

소설에 대한 조이스의 태도는 늘 이런 식이었다. 곧 계승과 비판, 학습과 수정이라는 이중적인 방식이었다. 그는 이미 기성문학의 습속을 무너뜨린다는 쾌감과 늘 관련되어 있었다. 심리묘사가 내적 독백 형태를 띠는 것이라든가 말실수 및 잘못 들음에 대한 관심, 무의식으로의 낙하로서 나타나는 것도 바로 그러했다. 선정적인 일에 대한 언급이 참으로 당치도 않게 맹렬한 것도, 외설한 욕을 태연히 남용하는 것도, 지저분한 분뇨담도 모두가 미풍양속에 대한 야유라기보다도 먼저 문학적 습관에 대한 반역이자 더 나아가 오랜 폐단에 편안히 젖어 있기만 하는 문학자들에 대한 경멸의 상징이다.

 

조이스는 장편 소설에 의한 지적 탐구 범위를 더욱 넓히려고 했다. 그러나 가장 근본적인 바탕은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이다. 여느 소설과 같은 외형 묘사가 아니라 내면 묘사를 과감하게 많이 한 점이 이 작품의 특색이다. 아울러 이것이 이 소설을 릭기 힘들고 복잡하게 만드는 밑뿌리다. 인간 내명의 실재를 중요시하는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뒤 유럽 문화계의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꿈과 웃음이라는 관점에서 인간성을 바라본 철학자 베르그송, 꿈과 착오와 광기, 전설, 예술 속에 인간의 가장 깊은 성적인 본능이 감추어져 있다고 주장한 심리학자 프로이트 등이 그 무렵 예술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정리하자면 조이스는 파괴와 창조를 오가며 문학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마다하지 않았다. 조이스처럼 가장 중요한 부분에 파괴적 요소와 창조적 요소를 둘 다 내포하고 있는 문학자를 부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함부로 그를 부정해 버린다면 결국 순순히 그를 받아들이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조이스는 갖가지 모험을 되풀이하여 언제나 문학의 정통으로 되돌아간다. 그것이야말로 전위와 고전주의가 안팎으로 한 덩어리가 되는 조이스 특유의 위험한 창조였다.

 

생각건데 인류의 소설사 전체를 커다란 모래시계에 비유한다면 조이스의 작품은 그 잘록한 허리에 해당된다. 언어라는 알갱이가 시간과 함께 잠시 멈추어서 모든 것을 함축하는 그곳, 문학과 삶이 하나로 응결되는 그곳이 조이스의 문학 세계다.

(이상의 글은 역자 김성숙씨가 이 책 뒤 편에서 소개하는 조이스 연구를 대부분 원용하였다.)

 

 

2. ‘의식의 흐름(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 본문 내용, Ü : 나의 언어)

 

에피소드 4 ‘CALYPSO’

 

□ 오후에 보일런이 집으로 와서 아내와 밀회한다는 상상으로 그는 온종일 어디에 가든 고민에 싸인다. (P. 100)

 

Ü 조이스의 글에서 신화의 모습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디세우스가 표류하다 도착한 섬에서 칼립소 님프는 블룸의 아내 마리온을 연상하게 되지만 소설에서 마리온은 칼립소 님프만큼 블룸을 사랑하고 있다는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오히려 아내에게 낯선 남자와의 밀회를 약간의 시기 어린 시선으로 보고 있는데 시기에 대해서 억지로 찾은 오디세이아의 파편이 있었다. 신들의 결정으로 오디세우스의 운명이 이 섬에서 나가는 것이라는 최종 결정에 따라 칼립소는 신들에 대한 불만을 토해낸다.

 

신들께서는 줄곧 시기만 하셨지요. 끝내는 오르튀기아 섬에서 황금 옥좌에 계신 성스러운 아르테미스님이 거룩한 활을 쏘아 죽여 버리실 때까지는, 또한 이아시온과 아름다운 데메테르가 그리운 마음을 견디다 못해 논두렁에서 사랑의 잠자리를 함께 나누자 결코 오래도록 제우스님이 이 일을 모르실 까닭이 없어 손수 그 사내를 번쩍이는 벼락으로 쳐 죽여 버리셨지요.’

 

이 모습은 신화의 직설에 대하여 마치 아내와 낯선 남자의 밀회를 시기하지만 겉으로는 아무 말 하지 못하는 소시민적 표현이 포개어진다.

 

□ 고양이는 머리가 나쁘다고 모두들 말한다. 그러나 사람이 고양이를 이해하는 것보다도 고양이가 우리 말을 더 잘 이해하는 법이다. 이 녀석은 자기가 이해하고 싶은 것은 모두 이해한다. (P. 103)

 

Ü 인간은 생각한다는 것 말고는 모든 것이 축생과 비교해 저급하다. 온갖 잘난 채는 다하지만 말이다.

 

□ 고양이는 핥는 속도가 느려지더니 접시를 깨끗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P.104)

 

□ 그래.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는 거지. 그는 그러고 나서 그녀가 몸을 뒤쳐서 침대의 느슨해진 놋쇠 고리가 삐걱 소리를 냈을 때 더 낮은 따뜻하고 무거운 한숨 소리를 들었다. 저 침대를 빨리 손봐야지. 가엾게도 멀리 지브롤터로부터 운반해 온 것인데. (P. 104)

 

Ü 침대. 침대는 이 소설에서 중요한 물건이다.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남편이 확실함을 거듭해서 확인하려 드는데 침대에 대한 오디세우스의 회상으로 인해 그의 남편임을 확신하게 된다. 그런데 오디세우스와 키르케가 함께 했던 침대와 칼립소와 함께 했던 동굴 속 잠자리가 나는 걸린다. 블룸의 아내는 지브롤터에서 태어났고 여기서 침대는 타 여인을 한번도 허락하지 않은 침대를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

 

□ 동방 어딘가의 나라에서 아침 일찍 날이 새자마자 출발해서 태양보다 앞서 여행하면 하루의 진행을 단축시킨다. 영원히 그것을 계속하면 이론적으로는 나이를 조금도 먹지 않는다. (P. 106)

 

Ü 칼립소가 오디세우스를 붙들기 위한 마지막 카드는 영원한 젊음이었다.

 

아무튼 기분 좋게 떠나시도록 하세요. 그러나 만일 당신이 얼마나 많은 고난을 고국땅에 당도하기까지 겪어야 하는가를 조금이라도 짐작이나 할 수 있다면 아마 틀림없이 여기 이대로 나와 함께 머물고자 할 텐데! 나와 더불어 이 집에서 불사의 신령의 몸이 되어 오래도록 살려고 하련만!’

 

정숙한 페넬로페가 그 자태에서나 몸매에서나 비교해 볼 때 당신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을요. 왜냐하면 그녀는 죽어야 할 인간의 몸이지만 당신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 신이 아니십니까? 신들 중 어느 분께서 포도줏빛 검은 바다 위에서 내가 탄 배를 부숴 버리신다 하더라도 고난을 견딜 마음을 굳게 가지고 꾸준히 참아 가겠습니다. 이미 이제까지 풍파 속에서도 전쟁에서도 너무나 많은 고난과 쓰라린 역경을 헤쳐 왔으니까요. 그러므로 앞으로 있을 재난도 다만 여태까지의 것에 한 가지 더 보태어지는 데에 지나지 않지요.’ 그러는 동안에 해가 저물어 어둠이 찾아왔다. 두 사람은 동굴 안으로 들어가 사랑의 밤을 보냈다.

 

□ 온종일 헤매고 돌아다닌다. 도둑 한둘을 만날지도 모른다. 그것도 좋겠지. 걸어 다니다가 해가 진다. 기둥을 따라 이슬람 사원의 그림자. 감은 두루마리를 겨드랑에 낀 사제들. 나무들이 몸을 떨고 있다. 그것이 신호다. 신호, 저녁 바람이다. 나는 지나간다. 저물어가는 금빛 하늘. 한 어머니가 혼자 문간에서 바라보고 있다. (P. 106)

 

Ü 그래 헤맨다. 블룸과 오디세우스는 헤매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바람처럼, 하늘처럼 헤맨다. 헤매는 일은 인간이 지닌 축복이다. 헤매고 여행하지 않으면 돌아올 수 없지 않겠는가. 문장은 명사와 풍경들을 나열하고 있는데 이성복 시인이 쓴 연애에 대하여의 마지막 연을 상상하게 한다.

 

내 살아 있는 어느 날 어느 길 어느 골목에서
너를 만날지 모르고 만나도 내 눈길을 너는 피할 테지만

그날, 기울던 햇살, 감긴 눈, 긴 속눈썹, 벌어진 입술
,
캄캄하게 낙엽 구르는 소리, 나는 듣는다

 

□ 선술집을 한 번도 스치지 않고 더블린을 끝에서 끝까지 걸어가라고 하는 것은 큰 무리일 것이다. 선술집 없이는 해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p. 109)

 

Ü 선술집은 유혹이다. 오디세우스가 빠지는 유혹이다. 그런데 더블린, 마음에 든다.

 

□ 카운터에서 옆집 하녀 옆에 섰다. 그녀도 그것을 살까? 손에 든 종잇조각에서 물건 이름을 읽고 있다. 튼 손, 세탁용 소다 탓이다. 데니표 소시지 1파운드 반 주세요. 그의 눈길은 그녀의 두툼한 엉덩이에 머물렀다. (p. 110)

 

Ü 괴테도 셰익스피어도 단테도 발자크도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 같은 다면적 인격의 인간을 그린 적이 없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을 때 결혼한지 얼마 안 된 아내와 갓 태어난 아들을 두고 전쟁에 나가는 게 싫어 미친 척 했지. 그는 평화주의자였어. 그러나 거짓말이 들통 나 전쟁에 참가하자 철저한 항전주의자가 되었네. 그는 전황이 불리할 때도 전군을 고취시켜 승리의 희망을 불어넣었으며 커다란 목마를 만들고 그 안에 숨어서 트로이 성을 함락시켰네. 그는 술이나 씨름, 경주 따위의 무예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 연합군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로 인정 받았지. 무기제작자, 키르케의 연인, 칼립소의 애인 등 곧 연애의 순례자 같은 면모도 있었어. 아울러 그는 최초의 신사이기도 했지. 스케리아 섬에 표착했을 때는 알몸이었으나 왕녀 나우시카에게 가까이 갈 때는 나뭇가지로 라도 몸의 입부를 가리지 않았는가. 이런 다면적인 인간을 그린 사람이 호메로스 이후에 또 누가 있는가.’

 

□ 출렁거리는 저 햄과 같은 엉덩이를. 아침에 처음 보는 것으로는 나쁘지 않아. 빨리 해, 제기랄. 어물어물하다가는 해가 넘어간다. (p. 111)

 

Ü 아내와 보일런의 정사를 유추하는 것인가.

 

□ 거기는 가장 오랜, 최초의 인종을 낳은 곳이다. 캐시디 술집에서 허리 굽은 노파가 1/4파인트짜리 병의 목을 쥐고 걸어고고 있다. 가장 오래된 민족. 온 세계를 훨씬 멀리까지 헤매어 포로에서 포로로, 늘어나고, 죽고, 그리고 어디에서나 태어나면서. 그것은 조금도 거기에 누워 있다. 이제 그것은 낳을 수가 없다. 죽었다. 노파의. 흰털이 되어 시든 세계의 음부.

황폐다 (p. 113~114) Ü 죽은 땅에 있는 죽은 바다. 이 문장은 난해하다. 유추할 수 없다.

 

□ 거실 창문에 더덕더덕 붙은 전단. 눈병 난 눈에 바른 고약 같다. 차의 부드러운 김과 냄비에서 끊는 버터의 냄새. 그녀의 풍만한, 침대에서 따뜻해진 육체 가까이 온 것이다. 그렇다, 그렇다. (p. 114) Ü 아름다운 표현이다.

 

□ 편지 두 통과 엽서 한 장이 홀 바닥 위에 떨어져 있었다. 그는 몸을 숙여 그것을 몽았다. 미시즈 마리온 블룸이라. 그의 강하게 뛰던 심장이 이내 완만해졌다. 남자의 필적이었다. 미시즈 마리온이라고. (p. 114)

 

□ 누웠던 여체의 온기가 공중으로 솟아, 그녀가 따른 홍차의 향기와 섞였다. (p. 117)

 

Ü 아 환장할 표현이다.

 

□ 벌거벗은 님프들. 그리스, 그리고 예를 들면 그 무렵 살아 있던 모든 사람들. 그는 페이지를 뒤로 넘겼다.

-윤회는 옛날 그리스인들이 썼던 말이야. 그들은 사람이, 예를 들어, 동물이나 나무로 변할 수가 있다고 믿었어. 이를테면 님프 같은 것으로. 그는 말했다. (p. 120)

 

Ü 존재가 해체되더라도 영혼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믿음. 블룸은 지금 심한 자괴감을 느끼고 있는건가. 알 수 없다.

 

□ 소녀의 달콤하고 가벼운 입술. 그 입술에도 일어나겠지. 그는 척추를 흐르는 구토 기운이 전신에 퍼지는 것을 느꼈다. 간다고 해도 어떻게 할 수 없다. 키스를 받는 입술, 키스하면서 키스를 받는다. 푹신하게 달라붙은 여자의 입술. (p. 123)

 

Ü 나도 주책없이 눈을 감았다.

 

□ 아침 시간, , 그리고 석양이 오고, 그러고 나서 밤 시간이 온다는 것을 일일이 설명해야. 그녀는 이를 닦았다. 그것이 최초의 밤이었다. 그녀의 얼굴이 춤추었다. 그녀의 부채 자루가 덜그럭 소리를 냈다. 보일런은 부유한가? 부자예요. ? 춤출 때 그 사람 숨결에서 좋은 냄새가 난다는 것을 알았어요. (p. 126)

 

Ü 마리온의 모습에서 칼립소의 모습을 나는 찾을 수 없다. 연관이 될 만한 희미한 함의 속에 이거구나 하고 집었다가 이내 놓았다. 그리고는 조이스를 향해 고함쳤다. 그렇다면 소설의 제목은 왜 율리시스인가! 마음이 가라앉은 뒤 그녀는 보일런과 춤추고 있었다. 나의 느낌조차 저절로 두서 없어진다.

 

에피소드 13 ‘NAUSICAA’

 

(줄거리) 쌍둥이가 가지고 놀던 공이 블룸에게로 날아오자, 그는 그것을 다시 던져준다. 그것이 거티 옆에 떨어져 그녀와 블룸은 서로 시선을 나눈다. 거티의 예사롭지 않은 아름다움에 블룸은 매혹되고 결혼상대로는 중년 남자가 좋지 않을까 몽상하던 참인 거티도 블룸에게 마음이 끌린다.

 

이 에피소드는 19세기 로맨틱한 연애소설 문체로 거티의 시각을 반영한다. 그리고 후반부는 블룸의 의식의 흐름 문체로 바뀐다.

 

나우시카와 오디세우스가 서로 사랑을 느끼면서도 맺어지지 않는다는 점이 블룸과 거티의 접촉 없이도 사랑을 나눈 방법을 반영한다. (P. 572~573)

 

□ 여름의 석양이 그 신비한 포옹으로 이 세상을 감싸기 시작했다. (P. 575)

 

□ 밀랍처럼 창백한 그녀의 얼굴은 상아처럼 순수하고 어떤 영적인 기품까지 느껴지게 하는 데 비해, 장미꽃 봉오리를 연상시키는 입술은 고대 그리스적인 완벽함을 지닌 큐피드의 활과 같았다. 정맥이 투명하게 비치는 그년의 손은 설화석고처럼 희고 손가락은 가늘고 길었다. (P. 578)

 

Ü 스케리에 섬 알키노스 왕과 아레테 왕비의 딸이다. 나우시카.

 

□ 그녀의 부드러운 얼굴에 이따금 떠오르는 어떤 의미를 숨긴 듯한 긴장된 표정, 그리고 그러한 표정이 그녀의 아름다운 눈에 부여하는 어떤 낯선 갈망의 빛깔, 저항하기 힘든 그 신비로운 매력은 아마도 그녀가 그 동안 경험할 수도 있었을 사랑에 대한 동경이 그 원인인지도 몰랐다.

 

□ 속옷은 거티가 가장 신경쓰는 부분이었다. 달콤한 17세 소녀의 가슴을 뒤흔드는 희망과 공포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러나 거티에게 17세는 다시 오지 않으리) 그 누가 그녀를 나무랄 수 있겠는가? (P. 582)

 

□ 그는 아직 어려서 이해하지 못한다. 여성의 타고난 권리인 사랑을 그는 믿지 않는다. (P. 583)

 

□ 어쨌든 거티 맥도웰의 사랑을 얻고 그녀를 자기것으로 만들려면 사나이 중의 사나이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나, 구혼 받을 그 날을.

그녀가 그리는 이상적인 사랑은 그녀의 발아래 진기하고 불가사의한 애정을 바치는 왕자의 매력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오히려, 강하고, 과묵한 얼굴의 이제까지 이상적인 여성을 만난 일이 없는 아마도 머리에는 약간 백발이 섞인 남자다운 남자다. (P. 583)

 

Ü 나우시카의 남성상도 그러하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처음 본 순간, 오디세우스의 모습이 그렇게 추하였지만 나우시카는 그를 특별하다 여겼다. 그 순간을 원전 오디세이아에서는 이렇게 표현했다.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숲 속에서 잎사귀가 빈틈 없이 붙은 가지를 억센 손으로 꺾어 알몸의 하반신을 덮어 숨기듯이 하면서 나오는 그 모습은 마치 산중에서 자라난 사자가 자기 힘에 자신을 가지고 비가 오건 바람이 불건 상관하지 않고 두 눈을 번쩍번쩍 타오르는 듯하며 암소들과 양 떼에게 혹은 들의 사슴에게 덮쳐 드는 것과도 같았다.’

 

□ 왜 인간은 제비꽃이나 장미꽃 같은 시적인 것을 먹을 수 없을까 하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P. 584)

 

□ 흑인인형처럼 곱슬머리를 한 말괄량이 시시. 그녀를 보면 가끔 웃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그녀가 중국차와 솬딸기 럼술을 드릴까요 하고 말하며 항아리를 끌어당기거나 할 때, 또는 자신의 손톱에 빨간 잉크로 사람 얼굴을 그린 것을 보면 누구나 배를 부여잡을 수밖에 없다.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에는 미스 화이트를 보러 잠깐 갔다 오겠다고 말하는 식이다. 일종의 시시주의 라고나 할까. (P. 585~586) Ü 난 시시가 더 맘에 든다.

 

□ 저편에서 보고 있는 신사의 주의를 끌기 위해 일부러 한 일이었다. 그녀는 따뜻한 홍조가 거티 맥도웰, 그녀에게는 늘 위험한 신호인 그 붉은빛이 자신의 뺨으로 올라와 후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그 때까지는 무심히 스쳐 지나듯 신사와 시선을 마주친 것이 고작이었지만 이번엔 모자 챙 아래로 빤히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기에, 황혼 속에, 그녀가 바라본 그 신사의 얼굴은 창백하고 묘하게 굳어져 있어, 그녀가 이제까지 본 얼굴 가운데 가장 슬프게 보이는 듯했다. (P. 589) Ü 앞서 보았듯이 블룸을 보는 거티의 시선과 오디세우스를 나우시카의 시선을 비교할 수 있다. 그 상반됨이 재미있다. 그런데 조이스가 의도한 바는 무엇일까.

 

□ 호스곶의 베일리 등대엔 불이 켜진다. 바람결에 실려 오는 교회의 노랫소리, 그리고 교GHL에서 태우는 향냄새, 이 모든 것이 처량하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그렇게 응시하는 동안, 그녀의 가슴은 두근두근 고통치기 시작했다. 그렇다. 그 신사가 보고 있는 것은 그녀였고 그의 시선 속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었다. 마치 그녀의 내부를 샅샅이 뒤지고 그녀의 영혼 자체를 읽어내기라도 할 듯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의미심장한 놀랄 만한 눈이었다. (P. 590~591)

 

□ 그가 자신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면, 그의 지난 사랑의 기억들, 추억들조차 모두 용서할 것이며 그 사람 역시 그 모두를 잊게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는 참다운 사내로서, 그녀의 부드러운 몸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겨 포근히 껴안으리라, 사랑해주리라, 그만의 소녀, 오직 하나뿐인 그만의 그녀를. (P. 592)

 

□ 그 바람에 신사는 그녀의 스커트 끝과 속치마 자락이 한껏 말려 올라가면서 드러나는 그녀의 날씬한 정강이를 볼 수 있었다. 그녀가 키를 더 커 보이게 하려고 신은 프랑스제 굽 높은 구두가 무엇에라도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더욱 볼만할 것이다. , 생각만 해도! 그런 신사에게 이는 얼마나 매력적인 노출이겠는가. (P. 593)

 

Ü 그때 육체를 보던 내 시선은 동물과 다르지 않아서 젊음만 보이되 아름다움은 보이지 않았지.

이제는 그 아름다움을 볼 수가 있어 아름다운 너의 육체.

 

□ 그녀는 어떤 감동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 근처의 느낌과 코르셋이 닿는  곳의 초조한 느낌으로 그것(생리)이 오고 있음을 느꼈다. 가장 최근에 그것이 있었던 날은 초승달이 뜨던 그래서 머리를 잘랐던 그날인데 그때의 느낌을 잘 기억해두고 있었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또다시 그의 검은 눈은 마치 그녀의 윤곽 전체를 빨아들일 것처럼, 여신의 신전에서 경배하는 사람처럼, 그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남자의 정열적인 응시에 거짓 없는 숭배의 마음이 드러날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 이 남자의 얼굴에서 그것을 볼 수 있으리라. 그것은 너 때문이다, 거트루드 맥도웰이여, 그리고 너는 그것을 알고 있다. (P. 596)   

 

Ü 임시적 생명 잉태의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이 생리다. 어째서 지금 인가. 생리는 사랑의 실패라고 봐도 무방한가. 여기서 거트의 생리는 결국 이루어지지 않을 사랑을 의미하는가. 오디세우스도 결국 나우시카와의 사랑은 구체적이지 못하지 않았나. 읽을수록 혼란스럽다.  

 

  사랑은 열쇠장수를 비웃는다. (P. 599) Ü 각주) 그 어떤 장애도 극복한다. 

 

□ 그의 손과 얼굴이 움직이자 전율이 그녀의 온몸에 퍼졌다. 그녀는 몸을 뒤로 쭉 빼고서 멀리에 있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뒤로 넘어가지 않도록 무릎에 양손으로 깍지를 꼈다. 그녀가 포동포동한, 부드러운, 아름다운 다리 전체를 드러냈을 때, 그것을 보는 사람은 그와 그녀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P. 601)

 

□ 그때 하늘로 치솟은 폭죽이 펑 하고 터지며 사방을 눈부시게 비췄고, ! 하는 탄성, 이어서 원통형 꽃불이 터지고, 다시 오!, 모두가 오! ! 하고 기쁨에 차 소리치고, 그때 금빛 빛 줄기가 하늘로 소나기처럼 쏟아진, ! 그것은 황금빛에 녹색 빛이 도는 이슬 젖은 별들이어라, 오 너무도 생생한 오 너무나 부드럽고, 달콤하게, 오 너무나 부드럽게! (P. 602~603) 

 

Ü 거티의 오르가슴과 블룸의 자위의 절정이다. 물리적 교합 없이 두 사람은 성적으로 절정에 이른다. 각자의 방식으로. 제한된 사랑, 너무나 배타적이어서 이기적인 사랑이 아닌가.

 

□ 레오폴드 블룸 씨(바로 그였다)는 그녀의 순진한 눈 앞에 머리를 숙이고 말없이 서 있었다. 얼마나 비열한 남성인가! 그리고 이런 일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아름다운, 더러움이 없는 영혼의 소녀가 그에게 호소하고 있었다. 그것에 대해서 그는 실로 천한 짓을 저질렀다. 소녀의 호소에 터무니없는 짓거리로 응답했다. 이 얼마나 천한 인간인가.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그러나 그러 소녀의 눈 속에는 한없이 큰 자비가 있었다. (P. 603)

 

Ü 행위 이후의 죄책감과 자괴감은 사회적인 것인가. 본능적인 것인가. 사회적인 것이라면 기쁨을 억제하는 제압에 대한 인간의 정신적 투쟁이 필요한 것이고 본능적인 것이라면 글쎄 발정기를 없앤 대신 신이 만든 산아 제한의 내면적 방식 아닌가. 감정은 둘째치고 여성은 그 감정까지 아우른다. 어루만진다. 

 

□ 그녀는 그녀 특유의 어떤 조용한 위엄을 가지고 그러나 주의를 기울여 천천히 걸어갔다. 왜냐하면 거티 맥도웰은….

구두가 너무 죄는가? 아니. 그녀는 절름발이이다! !

버려진 마녀. 불구는 여자에겐 10배나 더 손해가 되는 법이다. 그러나 그러한 여자는 정숙한 법이다. (p. 604) 

 

Ü 이것은 또 무엇인가. 절정을 겪고 난 뒤의 결핍이라니. 조이스의 의도는 오리무중이다.

 

□ 그녀의 평상복 아래 감춰진 곡선을 더듬고 있었다. 그러면 그녀들은 흥분한다. 나는 아주 깨끗해요, , 저를 더럽혀 주세요. (p. 605)

 

Ü 순수에 대한 거부인가. 순혈, 순종주의의 야만적 폭력성을 고발하는 것인가. 알 수 없다.

 

□ 발정기에는 머리 냄새가 심하게 난다. 우리가 홀리스거리에서 가난하게 살 때, 몰리의 빗을 팔아 손에 넣은 10실링. 안 될 것 있나? 만일 놈이 몰리에게 돈을 준다면, 안 될 것 있나? 모두 편견. 그녀는 10실링, 15실링, 아니 1파운드의 가치는 있어. 안 그런가?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걸 공짜로. 대담한 필적이다.

 

저축. 그 시각에 마침 그가, 그녀가.

! 녀석이 했어. 그녀 안에. 그녀도 했어. 끝났어.

!

미스터 블룸은 조심스러운 손으로 젖은 셔츠를 매만졌다. , 큰일이다, 저 절름발이 마녀 같으니

차갑고 끈적끈적하군. 뒷맛은 안 좋아. 그래도 남자란 어떻게 해서든 배설해야 한다. 여자들은

태연해. 틀림없이 나쁜 기분은 아닐 거야. 그런 거지 뭐. 여자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면 꿈이

깨지고 만다. (p. 607)

 

Ü 그거였군. 신화를 텍스트로 분석하면 되지 않는 거였다. 조이스는 나의 소설을 텍스트로 분석하고 평가하지 마라고 준엄하게 꾸짖는다. 그의 텍스트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현상들은 프레임에 안에 갇힌 사진 속에 박제된 장면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신화는 상징과 은유가 난무한다. 우리는 신화의 은유와 상징을 자신의 은유와 상징으로 읽어내야 하는 것이다. 이 모습은 이상의 날개에 주인공 남자의 시선과 유사하다.

 

□ 그녀는 해변을 걸어가는 동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녀는 알았을까?

 

□ 하지만 불과 몇 년 뒤에는 저런 아가씨가 가정을 이루어 냄비나 닦는 신세가 된다고 생각하면 참 슬퍼진다. 곧 남편 바지는 윌리에게도 맞을 테고, 여차하면 갓난아기 쉬한 걸 훔치는 걸레로 쓸지도 모르지. (p. 612) 

 

Ü 상징과 은유가 없어진 삶은 이렇게 비루해 진다. 시처럼 사는 것, 그것은 신화에서 자신을 가져오는 일이다.

 

□ 몰리와 그놈. 치장하고, 바라보고, 암시하고, 그걸 보도록 만든다. 재채기가 나오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본다. 그러면 그녀는 짐짓 당신의 눈길에 저항하는 척 굴고, 당신은 좀 더, 좀 더, 허벅지, 봐요, 그럴 배짱이 있다면, 여길 봐요. 슬쩍, 건드린다. 이제부터는 발사할 일만 남았을 뿐. 그 부위가 건드려질 때, 여자는 대체 어떤 느낌일까. (p. 614)

 

Ü 나우시카와 자신의 사랑처럼 지금 페넬로페가 진행하는 사랑을 상상하는가.

 

□ 항구마다 마누라가 있다고 그들은 말한다. 조니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아내가 온전히 수절하며 기다리고 있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지. 그가 정말로 돌아오기나 할는지 모르지만. 항구 뒷골목의 냄새를 맡는 것. (p. 621)

 

Ü 페넬로페 정절을 부정하고 있는 건가.

 

□ 거티 맥도웰은 그 새가 작은 집에서 나와 시간을 알리는 카나리아임을 알았기에 그녀가 그곳에 있던 시간이 몇 시였는지 알아차렸다. 왜냐하면 그런 일에 대해 누구보다 눈치가 빠른 그녀 거티 맥도웰이었기에, 그리고 그녀는 단번에 알아보았으니, 그때 바위 위에 앉아 있던 그 외국인 신사가 마치

뻐꾹

뻐꾹

뻐꾹*

 

Ü 각주) 사제관의 벽시계가 9시를 알리기 위해 아홉 전 울린다. 이 의성음 cuckoo는 엘리자베스풍 연극에서는 흔히 아내를 빼앗긴 남편을 암시한다.

 

에피소드 18 ‘PENELOPE’

 

□ 마리온은 학식도 윤리관도 모자라나 대지 그 자체처럼 침대에 누워 있다. 마치 만물의 생명의 근원인 듯 선택할 여지없는 오염 속에서 불멸의 생명을 간직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 에피소드는 구두점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오히려 이 자체가 하나의 큰 마침표이다. 비로소 전체를 볼 수 있게 해 주는 마지막 퍼즐 조각처럼 이제껏 스티븐과 블룸을 통해 그려졌던 모든 것이 이 마리온의 심리를 통해 종합, 대치되기 때문이다. 지난 에피소드들을 꿰어 주는 이 끈이 흥미롭다. (P.1130, 줄거리 중에서)

 

□ 우리 집에서 감자와 한 다스에 2실링 6펜스 하는 굴까지 가지고 자기 큰어머닐 만나러 가다니 도둑년이나 다름없잖아 (p. 1133)

 

Ü 구혼자들이 이타카의 오디세우스 성관에서 음식을 축내는 상황을 묘사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 질문과 대답 당신은 이것을 저것을 그리고 다른 일을 석탄 나르는 인부하고도 하고 싶습니까 사제 하고는 그래요 네 하고 싶어요 언젠가 내가 유대 회당 마당에서 뜨개질을 할 때 내 옆에 앉아 있던 어딘가의 주임사제인지 주교인지에 대해서는 이미 (p. 1134~1135)

 

□ 세상에서 뭐라든 중요한 것은 처음뿐이고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어서 그런 일은 생각지도 않아 결혼하고서가 아니면 왜 남자에게 키스할 수 없을까 가끔 온몸으로 아주 좋은 기분을 느낄 때에는 마음이 미칠 것 같아 사랑하고 싶어지는 거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나는 가끔 누구라도 좋으니 곁에 있는 남자가 나를 붙잡아 팔에 껴안고 키스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해 길고 열렬한 키스만큼 황홀한 게 또 있을까 그것은 영혼의 바닥까지 마비시킬 정도지 나는 참회 같은 건 정말 싫어 내가 코리건 신부에게 가 있었던 무렵 나는 말했지 그 사람이 내 몸에 손을 댔어요 신부님 그러자 그는 어떤 잘못된 짓을 했나요 어디죠 나도 참 바보지 운하 둑에서라고 대답했지 뭐야 그러자 그게 아니고 당신의 몸 어디냐는 거야 자매님 당신 다리 뒤 위쪽이었습니까 네 꽤 높은 곳이었어요 당신이 앉은 언저리쯤이었습니까 네 신부님은 솔직하게 엉덩이란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거야 그리고 그런 일이 그것과 무슨 관계 있다고 그러시는 건지 자매님은 했느냐는 등 무슨 말씀을 하셨지만 잊어버렸어 아뇨 하지 않았어요 신부님 신부님 (father) 하면 언제나 진짜 아버지 생각이 나 나는 이미 하느님께 그것을 모두 고백해 버렸는데 신부님이 무엇을 아실 필요가 있을까 그 신부님의 통통한 고운 손은 바닥이 언제나 축축하게 젖어 있었어 그것을 만지는 게 나도 싫지 않았고 그분도 싫지는 않은 눈치였어 (p. 1135)

 

Ü 영화 밀양에서 여주인공은 자신의 몸 위로 올라탄 목사와 그 하늘을 바라보면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욕망 앞에 신을 모시는 인간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신이라는 거창하고 숨기 좋은 장막을 자신의 내면에 덧씌워 놓고 욕망 앞에서 신은 애초에 있지도 않았다는 듯 감정의 개가 되어버리는 수행자. 오디세우스가 없는 페넬로페의 구혼자들은 오히려 솔직하여 오늘날의 가식의 가면을 쓴 신부보다 인간적이다.

 

□ 하느님 우리를 용서해 주세요 우리를 벌주기 위해 우리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 그때 나는 성호를 긋고 성모송을 외웠어 그 천둥은 마치 저 무서운 지브롤터의 천둥 같았지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하느님 같은 건 없다고 고집을 부리는 거야 저렇게 당한다면 결코 견딜 수 없을 거야 기껏해야 참회의 기도나 외우겠지 내가 5월의 축제를 위해 그날 저녁에 화이트 프라이어스거리의 성당에서 촛불을 켜 올린 일이 분명히 행운을 가져온 것 아니겠어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이는 놀려 대겠지만 그것은 그이가 교회의 미사나 기도에는 한 번도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야 그리고 하는 말이 너의 영혼 같은 건 없어 안에는 회색의 물질이 있을 뿐이야 하지만 영혼을 갖는 게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지 (p. 1136~1137)

 

Ü 여기서 는 보일런이다. 난해하다.

 

□ 하느님이 목수라고 해서 싸움을 시작한 것은 내가 아니라 그이였어

최초의 사회주의자는 하느님이라고 그이는 말했지 (p. 1138)

 

Ü 예수는 사회주의자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로마를 등에 업은 식민지 이스라엘의 위정자는 예수의 급진적 사회 저항 운동이 세력을 얻어가자 그를 처형하지 않았나. 여기서의 도 보일런 일듯 하다.

 

□ 그이가 그 여자에게로 가고 싶으면 가도 좋아 계집은 물론 아주 기뻐서 홀딱 반한 체하겠지 나는 그런 일 그다지 상관하지 않아 그 여자에게로 가서 그이를 사랑하느냐고 물어보겠어 그리고 그 여자의 눈을 물끄러미 쳐다 봐 주겠어 그 여자는 나를 얕잡아보지 못할 것 하지만 그이는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나에게 한 대로 추근추근 그 계집한테 사랑을 고백해 버릴지도 몰라 (p. 1139)

 

Ü 여기서 는 마리온의 남편 블룸이다. 소설 속 주인공 블룸은 아일랜드인의 가슴에 살아있다. 매년 6 16, 율리시스의 주인공 블룸의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아일랜드인은 기념일로 정해서 기리고 있다. 장면이 영화 같다.

 

□ 그래 남자란 우리 여자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기 때문이야 그 여자는 파리 잡는 종이에 묻은 비소를 남편의 찻잔에 탄 거야 비소라니 어째서 그런 이름을 붙였을까 그이에게 물어보아도 그리스어에서 온 거라고만 말할 거야 그 정도라면 모르는 거나 마찬가지지 사형당할 위험도 무릅쓰다니 그 여자도 참 정부에게 어지간히 미쳐 있었던 게 틀림없어 오 그녀는 그런 것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어 그것이 그녀의 성격이라면 어쩔 수 없지 남자란 여자를 사형당하게 할 정도로 관능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틀림없이 말야 (p. 1140~1141)

 

Ü 이 문장 이후 처음 단락이 나누어진다. 무슨 의미인가. 모든 글에서 수수께끼를 숨겨 놓은 것 같아 조그마한 변화조차 함부로 읽어 내릴 수 없는 이 불편함.

 

□ 내 다리가 어떻게 그를 흥분시켰을까 내가 발을 꼬고 있었기 때문일까 다른 방에 있었을 때 처음에 그는 그 구두가 너무 꽉 끼는 것 같다고 말하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어 나의 손은 정말 깨끗해 내가 태어난 달의 보석이 박힌 반지만 끼고 있었더라면 좋았을걸 (p. 1141)

 

Ü 페넬로페가 오디세우스를 만나기 직전 그를 만나면 지어 보여야 할 표정과 행동을 고민하는 장면이 있다.

 

페넬로페는 멀리 떨어져 남편에게 물어보아야 하는지 아니면 곧장 곁으로 다가가 두 손과 머리에 키스를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그러나 그녀가 실제로 한 것은 홀로 들어가 돌 문지방을 넘어 불빛이 밝은 저편 벽 쪽에 가서 오디세우스와 마주 보고 앉는 것이었다. 한편 오디세우스는 높은 기둥에 기대어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앉아 있었다. 그리고 우아한 페넬로페가 자기를 보았으니 무슨 말을 꺼내겠지 하고 기다렸는데 그녀는 오래도록 말 한 마디 없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런 이후 내 남편이 과연 맞는지에 한번 떠보기도 한다. 그를 받아들이는 것이 불편한 것 일까. 그리고 이 책에서 유난히 자주 보이는 문장이 남자는 여자 없이는 살 수 없다라는 말이다. 좋지는 않지만 지금의 생활도 나쁘지는 않고 아무리 남편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사람이 자신의 삶에 들어 옴으로써 겪게 될 그 불편함, 자유의 제한. 비약인가.

 

□ 나는 그이가 노래를 부를 때의 입 모양을 좋아했지 그리고 그이는 그런 장소에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이 두렵지 않으냐고 했지만 나는 조금도 무섭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p. 1142)

 

Ü 언제부터 나는 무섭고 두렵다는 단어 밑에 줄을 긋기 시작했나 이 말들이 눈에 띠는 이유는 뭔가 남자의 입 모양에서 자신의 성기를 상상한 것인가. 키스는 상대의 입술에서 자신의 성감대를 위무해주는 간접적 마스터베이션인가.

 

□ 남자란 여자 일이라면 어디에나 가서 어떤 일이라도 하지만 어디에 갔었느냐고 결코 물어서는 안 돼 그러면서도 남자들은 여자에게 어디를 갔다 왔느냐 어디에 가 있느냐를 알고 싶어하는 거야 나는 그이가 내 뒤에서 남몰래 미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p. 1143)

 

Ü 오디세우스가 페넬로페에게 20년간의 정절을 지킨 것을 의심한 적이 있었을까. 알 수 없다.

 

오 성스러운 성모님비에 젖은 그가 정말 커다란 바보처럼 보였어 그이의 멋진 치열을 보고 있자니까 나는 배가 고팠어

 

Ü 이 전환, 상대의 멋진 치열을 보고 공복을 느끼는 사유의 전복.

 

□ 거기에서 될 수 있는 대로 성급하게 향락을 취하려고 하는 사이 아빠는 그 동안 계속 저녁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어 그이는 나더러 정육점에 지갑을 놓고 와서 그것을 찾으러 갔다고 말하면 된다는 거야 (p. 1144)

 

Ü 아빠는 욕망을 제한하고 정육점은 돼지치기를 상징하는가. 계속 알 수 없는 이야기들만 한다.

 

□ 모두 죽어버리라지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p. 1148)

 

Ü 마리온은 정숙한 페넬로페에게 말한다. ‘난 그렇게 살지 않아

 

□ 정맥이네 무엇이네 하는 것은 왜 있는 것일까 똑 같은 것이 두 개 있다니 재미있어 쌍둥이가 생겨도 좋도록 저런 식으로 두 개가 불룩 솟아 있으니 그리고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여겨지니 유방은 박물관에 있는 조각처럼 그것이 제자리에 달려 있는 것만으로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일까 미술관에 있는 조각처럼 개중에는 한쪽 손으로 거길 감춘 것도 있지 그게 그렇게도 예쁠까 (p. 1153)

 

Ü 예쁘다. 인간에게 특히 여자에게 신이 유방을 그 모습대로 내려주지 않았다면 인류는 이미 멸망하고도 남았을 일이다. 여기 인간이 지닌 유방의 슬픔에 대해 노래한 시인이 있다.

 

유방 (문정희)

 

웃옷 모두 벗기운 채
맨살로 차가운 기계를 끌어안는다
찌그러지는 유두 속으로
공포가 독한 에테르 냄새로 파고든다
패잔병처럼 두 팔 들고
맑은 달 속의 흑점을 찾아
유방암 사진을 찍는다
사춘기 때부터 레이스 헝겊 속에
꼭꼭 싸매 놓은 유방
누구에게나 있지만 항상
여자의 것만 문제가 되어
마치 수치스러운 과일이 달린 듯
깊이 숨겨왔던 유방
우리의 어머니가 이를 통해
지혜와 사랑을 입에 넣어주셨듯이
세상의 아이들을 키운 비옥한 대자연의 구릉
다행히 내게도 두 개나 있어 좋았지만
오랜 동안 진정 나의 소유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남자의 것이었고
또 아기의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나 지금 웃옷 모두 벗기운 채
맨살로 차가운 기계를 안고 서서
이 유방이 나의 것임을 뼈저리게 느낀다
맑은 달 속의 흑점을 찾아
축 늘어진 슬픈 유방을 촬영하며

 

한 때 사랑하는 남자에게 내어주었고 그리고 아이에게 내어주었으나 결국 자기에게로 돌아 온 순간 쓸모 없이 축 늘어져 있는 슬픈 유방의 모습에서 지금의 여성성을 보게 된다. 이 시를 읽고 나면 시인에게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에게 다시 생기를 찾아줘야 하는 사명감이 생긴다. 차가운 기계로부터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어머니, 아내, 누나, 동생, 이모, 고모 들에게.

마리온아, 남자들은 말이야 유방의 실핏줄을 자기 목숨보다 사랑한다.

 

□ 오 하느님 몸을 죽 펴고 싶어 그이나 다른 사람이 여기에 있어서 그런 식으로 나를 몇 번이고 기쁘게 해 주면 좋으련만 (P. 1155)

 

□ 오늘이 목요일이지 금요일로 하루 토요일로 이틀 일요일로 사흘 어떻게 월요일까지 기다린담 프르시이이이이이이프로오오오롱 기차가 어디에선가 기적을 울리고 있다 기관차는 엄청난 장사야 마치 옛이야기에 나오는 거인 같아 김이 온몸을 돌아다니다가 온갖 방향으로 흘러나오고 아내와 자식들 곁을 떠나 불타는 듯 이 더운 기관차 안에서 밤새도록 일해야 하는 저 가엾은 사람들 (P. 1156)

 

Ü 결국 마리온은 1주일을 기다리고 페넬로페는 20년을 기다린다. 여기서 말하는 기차는 프로메테우스인가. 퀴클롭스인가.

 

□ 지금 이방인도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남편을 이방인이라는 애칭으로 불렀지 (P. 1156)

 

Ü 이거 좋은 생각인 것 같다. 이방인과 같은 부부. 그렇다 이방인이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남자에게 이방인이었다. 원초적 이방인이다. 자신만의 세계에 어느 날 들이닥쳐 삶을 깨어버리는 이방인.

 

□ 내가 스스로 우체통에 넣은 편지가 아니면 그 누구로부터도 편지 한 통 오지 않을 때는 너무 따분해서 주위에 있는 누군가와 싸움이라도 해서 손톱으로 할퀴어 주고 싶었어 (p. 1160)

 

Ü 보일런은 이런 마리온을 위무해 준 사람이다. 페넬로페 또한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오는 구혼자들에게서 이런 익사이팅한 하루들을 선물받지 않았겠는가. 20년을 고통속에 견딘 것으로 표현되는 페넬로페에게서 실상 추악한 인간 본성이 그녀를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을 애써 말하고 싶은 건가. 정절의 화신은 개나 줘라고 일갈하고 있는 것인가. 그러고 보니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가 오기 전까지 구혼자들이 매일 자기를 찾아 올 수단을 생각해냈고 적용하고 있었다.

 

□ 이 세상 최대의 행복을 얻으려면 성급한 경솔이 아니라 간명한 솔직함이 필요해 (p. 1162)

 

□ 남자란 모두 자기들이 나온 곳에 도로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지 그렇게 깊은 데까지는 결코 닿지 못하면서 (p. 1164)

 

□ 원하는 여자는 아무나 고를 수 있는 멋쟁이 갑부를 후릴 수 있나 없나 시험해 보란 말이야 보일런처럼 껴안은 채 네 번 다섯 번 할 수 있는 남자에게 그렇지 않으면 나 같은 목소리를 갖든지 내가 그이와 결혼만 하지 않았어도 나는 프리마돈나가 되었을 텐데 (p. 1168)

 

Ü 프리마돈나의 세월 20년을 충분히 즐기고 있었다는 이야기인가.

 

□ 하느님 우리에게 방을 주옵소서 방귀를 뀌기 위해 아니면 그 사소한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해 그래 옆으로 살짝 돌아누워서 피아노로 조용하게 부우우우욱 멀리서 저 기차도 피아니시모로 이이이이이 또 하나의 노래를

어디에 있더라도 방귀를 뀌면 늘 기분이 좋아 나중에 차를 마시며 먹은 돼지갈비가 더위로 어떻게 되지 않았나 몰라 (p. 1169)

 

Ü 제약과 억압에 페넬로페는 괴로웠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시선은 그녀를 가만히 놔두질 않았을 터.

 

□ 나는 문과 창문에 빗장을 지를 때까지는 안심하고 쉴 수가 없었어 하니반 감옥이나 정신병원에 갇혀 있는 것 같아서 더 싫었어

그래 그이가 있다고 뭐 썩 대단한 역할을 하진 않았을 거야 하지만 분명히 강도가 든 것 같은 기분은 들었어

촛불과 부지깽이를 들고 내려갔지

 

억지로라도 멀리 공부시키면 좋은데 그런 곳으로 보내는 그이의 생각이라는 것이 참

그이가 그렇게 한 것은 나와 보일런 때문이야 그것이 이유지 분명해 그것이 사물을 계획하는 그이 특유의 방식이야 (p. 1172)

 

Ü칼립소편에서 보일런의 방문을 앞두고 블룸은 시내를 돌아다닌다. 오디세우스가 표류한 것은 페넬로페를 위한 그의 의도였나. 텔레마코스조차 없어진 이타카에서 페넬로페의 생활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된 장면은 없지 않았나. 조이스

 

□ 남자들이란 침대 위의 얼룩을 찾으려 하니 내 참 상대가 처녀인지 아닌지 알기 위해서지 사내들은 모두 그런 것에나 신경을 쓴단 말야 (p. 1177)

 

Ü 침대 이야기는 특히 많이 나오는데 페넬로페를 만나고 자신이 수리한 침대 이야기로 열을 내던 오디세우스는 에피소드 4편의 지브롤터에서 공수한 침대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오디세우스가 이타카에 와서 페넬로페와 처음 침대에 들 때도 아마 이랬지 싶다.

 

□ 그 신도 틀림없이 침대 다리 쪽으로 누워서 그 네모진 큰 다리를 마누라의 입에 집어넣고 있었겠지 아유 그 냄새라니

 

그래도 그이는 푹 자고 있군 어딘가에서 재미를 봤음에 틀림없어 그 여자는 그이가 쓴 돈에 대해 충분한 보답을 해 주었겠지 물로 그이는 그것을 위해 돈을 냈으니까 (p. 1181)

 

Ü 결국 신화 속에 숨겨진 인간의 추악함을 모두 감추고 있지만 그것을 드러내 자기 내면을 찾아내는 아픔을 겪는 과정이 필요하다. 조이스는 그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는건가.

 

□ 그이가 아직도 지갑에다 콘돔을 가지고 다니는지 살펴봐야지 그이는 내가 눈치채지 못한 줄 알아 거짓말쟁이 남자들 주머니가 20개나 있어도 그들의 거짓말을 다 넣기에는 모자라 (p. 1182)

 

Ü 기가 막힌 말이다. 모험의 전당 오디세우스는 날카로운 조이스 앞에서는 한낮 인간의 추악한 남녀상열지사였다.

 

조이스는 페넬로페편에서 라는 함정을 유난히 숨겨놓았다. 의도는 무엇인가. 아무도 에 대해 알아내지 못하도록 숨기고 있는 이유. 페넬로페에게 그렇게 많았던 남자와 오디세우스를 거쳐간 많은 여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숨기고 있는가.

 

□ 남자가 원하는 건 바로 여자지 그리고 실제로 여자를 손에 넣고 말아 무엇 때문에 이런 욕망이 인간에게 주어졌는지 궁금해 난 참을 수가 없어 (p. 1189)

 

□ 세상은 여자의 지배를 받는 편이 훨씬 나을 걸 서로 죽이거나 학살하는 여자는 없어 (p. 1190)

 

Ü 동감 100%. 와리스 디리라는 소말리아 출신 패션 모델이 쓴 책이 있다. ‘사막의 꽃은 여성 해방과 여성이 지배하는 환한 세상을 꿈꾸는 책이다.

 

□ 나는 내가 어떻게 할지 알고 있어 약간 들떠서 오가고 해야지 너무 들뜨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말야 가끔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그리고 미 파 피에타 마제토 그리고 나들이옷으로 갈아입으면서 프레스토 논 손 피우 포르테 가장 멋진 속치마와 속바지를 입을 거야 그가 그것을 실컷 보게 하고 그의 그것을 서게 하고 만약에 그것이 그가 알고 싶어하는 것이라면 가르쳐 주어야지 그의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당했다는 것을 그래 처참할 만큼 깊게 그가 아닌 남자에게 다섯 번이나 여섯 번이나 계속 해서 그의 정액의 흔적이 깨끗한 시트 위에 남아 있어 그것을 다리미로 다려서 펴고 싶진 않아 이것만으로도 그는 만족할 거야 믿지 못하겠으면 내 배를 만져 보라지 그런데도 그가 일어서지 않아서 넣지 못한다면 자세한 점까지 남김없이 말할 작정이야 그래서 그이가 내 앞에서 사정하게 할 테야 그것 보라지 모두 그이의 잘못이야 (p. 1193~1194)

 

Ü 마리온은 모든 것을 연결하고 있다. 칼립소와 나우시카, 20년 간의 정절을 증명해야 하는 어이없는 현실에 똥침을 날리고 있다. ‘너나 잘하세요

 

□ 이 세상에 하느님 따위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학식이 높아도 상대하지 않겠어 자기들이 무언가를 좀 창조해 보라지 나는 가끔 그이에게 물었지 무신론자라나 뭐라나 그들은 우선 자기 몸이나 잘 씻어 두는 게 좋을 거야 죽을 때가 되면 신부님들에게 가서 울부짖을 테니까 왜 왜 왜냐하면 양심의 가책 때문에 지옥에 떨어지는 게 무서운 거야 아 그래 나는 잘 알고 있어 이 세상에 사람이 아무도 없는 동안 천지만물을 창조한 우주의 맨 처음 분은 도대체 누구였지 그래 그 사람들이 알 리가 없지 나도 몰라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살아 가고 있는 거야 (p. 1196)

 

□ 내가 어떻게 그이를 좋아하게 되었느냐 하면 그이는 여자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또 느끼고 있다는 걸 나는 알 수 있었어 게다가 나는 언제나 그이라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야 (p. 1196)

 

Ü 페넬로페는 오디세우스에게서 그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그는 그녀의 마지막 가축이었다. 페넬로페는 어쩌면 울타리를 뛰어넘어 자신에게는 자유를 주고 다시 원할 때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그런 가축을 원했는지 모를 일이다.

 

□ 나는 눈으로 그이에게 키스해 달라고 졸랐지 그래 그리고 그이는 내가 승낙한다면 네라고 말해 달라고 부탁했어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나의 팔로 그의 몸을 감은 거야 그래 그리고 그이를 내 쪽으로 끌어 당겼어 그이가 내 향기로운 유방에 닿을 수 있도록 그래 그이의 심장은 미칠 것처럼 뛰었지 그리고 그래 나는 네라고 말했어 좋다고 말야 (p. 1197)

 

Ü 마리온은 블룸에게서 자신이 멀비 중위와 했던 첫키스의 추억을 겹치고 있다. 오디세우스는 페넬로페에게 전부가 아니었다. 맞는가. 알 수 없다. 나는 이 책을 1년 지난 다음 다시 읽고 중년이 되어 다시 읽어야 한다. 

 

 

3. ‘연구가 필요한 소설(내가 저자라면)

 

어지러웠다. 제목은 율리시스인데 레오폴드 블룸에게서 오디세우스의 흔적은 없었고 마리온에게서는 페넬로페의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텔레마코스는 사라졌고 은유조차 없다. 어렵사리 연계시킨 사유조차 맞는지 틀리는지 알 수 없고 책을 읽는 내내 내 의식과 사유는 혼란을 거듭했다. 결국 소설을 읽고도 그 함의를 읽어내지 못한다는 자괴감으로 나는 의기소침 해졌고 율리시스에게서 진한 패배감을 맛보았다. 명세기 연구원이라는 자가 의미조차 읽어내지 못하는가.

 

책의 역자는 50년 간 이 소설을 연구했다고 한다. 그나마 위안이다. 연구가 필요한 소설을 한번에 읽고 뜻을 이해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다고 자위한다. 그러나 잔뇨가 남아 세어나오지 못하는 전립선염을 앓는 환자처럼 내 의식의 찝찝함을 감출 수가 없다. 그래서 책을 덮고 1년 뒤 다시 읽기로 한다. 그것이 이 책을 읽은 후 최종 결론이다. 허무하다. 결국 율리시스에 첫 무릎을 꿇는다.

 

책의 챕터를 구분하는 lay out 자체가 그 책의 주요한 특징이 되는 소설은 그리 많지 않다. 읽은소설이 일천하여 예를 들기가 어렵지만 김동인의 배따라기는 액자 구성의 전형을 보이고 있고 이 소설, 율리시스와 유사한 구성인 박태원의 소설 구보씨의 하루는 구성 프레임이 소설의 주제를 결정 지을 만큼 특징적이다.

 

구성상 이 소설은 18개의 에피소드가 확연하게 끊어져 독립된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는 의식의 흐름이라는 고차원적인 기법으로 주인공 Leopold bloom이라는 유태계 광고업자가 겪는 하루 동안의 일을 따라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 기법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오디세우스의 행보와도 연결시키지 못했다. 다만 나우시카 에피소드는 그 묘사가 직접적이어서 단순한 내가 받아들이기에 어렵지 않았다.

 

나는 이 책에 대한 내가 저자라면의 가정을 유보한다. 내가 이 책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고 이해하지 못한 의미들을 가지고 책의 챕터 구성, 목차 등만으로 끄적거리기에는 그 가벼움을 스스로가 보아 줄 수가 없어서다. 위안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이 1년 뒤 연구원 과정을 모두 마친 후 다시 읽게 되는 시점에서 그 이해도에 따라 내 의식의 성장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 도서가 될 수 있겠다는 목표가 될 수 있겠다는 것이겠다. KO 먹었다고 선수생활 포기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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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7 12:45:00 *.154.223.199

재용, 잘 읽었습니다.^^

 

문정희 시인의 시보다 이성복시인의 한 연 시가 더 와 닿네요.

 

저는 이 책 읽으면서 지난 주에 호메로스 오딧세이아를 꼼꼼히 읽지 않은 걸 후회했어요. 제임스 조이스의 무슨무슨 에피소드를 읽으면 그게 어디 쯤이지 생각이 잘 안나는 거에요. 속으로 '재용은 무지막지하게(이거 칭찬을 넘어선 경탄인거 알아주세요^^) 꼼꼼히 읽었겠지.' 했어요. 역시나 사부님이 정해주신 3개의 장을 읽는데 오딧세이아의 구절을 많이 인용하고 계시군요. 멋져요.^^ 다행히 6월 오프 수업 과제가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와 호메로스 오딧세이아를 다시 생각해봐야 할 수 있는 과제더군요. 1주일만에 읽기에는 너무 어려운 책이었어요. 끙끙끙   

 

재용 따라서 저도 출판사 고민안하고 여차 하면 동서문화사로 질렀거든요. 데카메론 받았어요. 데카메롱이라 하던 그 책. 800쪽짜리 소설책. 옴마나 @@.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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