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 그리고 나우시카와 블룸
겨울날의 석양이 신비한 포옹으로 하루를 감싸기 시작할 때, 지중해의 푸른 바다를 끼고 있는 시데(Cide)에 도착했다. 저 하늘이 황금빛을 거두어들이기 전에 해변에 도착해야만 했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시데는 사람이 살고 있는 에페소처럼 느껴지는 작은 도시이다. 곳곳에 무너진 채 아직 복구되지 않은 유적물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그런 유적지를 지나 아폴론신전이 있는 바다가로 갔다. 겨울이라 하지만 지중해의 남쪽에 위치한 시데는 따뜻하여 반팔을 입고 있는데도 땀이 날 지경이다. 해변에 위치한 아폴론 신전은 복구하고 있는 중이라고 해야 맞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한 하얀 대리석 신전은 더욱 눈부셨다.
시데는 기원전 7세기 무렵 고대 그리스인들이 개척한 도시로 이오니아 식민도시 중 하나이다. 당시 그리스인들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하여 본국을 떠나 보다 적극적으로 식민도시를 개척하는데 앞장섰다. 시데 역시 그리스 도시국가의 축소판 같은 느낌이다.
밝음에서 어두움으로 시간이 흐른다. 저 멀리 서쪽에는 해가 막 져가고 너무나 빨리 지나가는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아쉬운 듯 마지막 노을이 바다와 신전의 하얀 대리석을 물들이고 있다. 지중해 바다를 포도주빛으로 물들이더니 점차 하늘은 그 빛을 거두어가고 있다.
시데는 낭만의 도시이기도 하다.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가 데이트한 곳이란다. 그들은 목욕을 하고 일몰을 감상했다고 전한다. 나는 신전의 일부분임에 틀림없는 깨어진 돌에 앉아 일몰을 구경했다. 누군가가 ‘그녀들의 엉덩이에 깔리는 의자는 행복하여라.’라고 찬탄을 했는데, 내 엉덩이 밑에 깔린 돌 때문에 내가 행복할 지경이다. 고대 신전의 일부분에 내 몸을 의탁했다는 것만으로. 시데의 일몰은 아폴론신전이 있기에 더욱 신비스럽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황금장식이 달린 너울을 쓰고 안토니우스의 품에 안겨 와인을 마시면서 저 거칠 것 없는 대양을 보면서 클레오파트라는 무슨 생각에 잠겨있었을까? 안토니우스와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그리고 이집트의 영토가 더욱 확장되기를 기원했을까?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의 만남은 세익스피어의 작품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로도 남아있다.
카이사르가 죽고 난 후 로마세계 제1인자가 된 안토니우스는 오래 동안 동맹관계에 있는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를 소환해야만 했다. 소환장을 받아든 클레오파트라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기지 발랄한 클레오파트라는 카이사르를 만날 길이 없음을 알고는 자신을 통째로 내맡기로 했다 시녀들에게 자신을 양탄자로 말아서 카이사르에게 선물로 보내줄 것을 명했다. 카이사르는 양탄자 속에서 요염하게 치장한 클레오파트라가 나오자, 그녀의 미모도 매혹적이지만 반짝이는 기지에 반했다. 카이사르는 그녀와 정식으로 결혼하고 그들 사이에 장남 카이사리온까지 낳았다. 그런데 그들의 사랑은 짧았다.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를 어떻게 요리하면 좋을지를 생각했다. 카이사르가 지능형이며 이성적인데 반해, 안토니우스는 검투사형으로 육체파에 가까운 그런 인물임을 파악햇다. 창녀와 시시닥거리는 짓밖에 모르는 머리가 둔하고 육체 건장한 안토니우스를 위하여 클레오파트라는 오리엔트의 부를 과시하는 온갖 치장으로 그 앞에 등장했다.
황금색으로 칠해진 거대한 배는 보라색 돛을 올리고 안토니우스의 배가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클레오파트라는 잊지 않고 수만 송이 장미로 배를 장식했고, 장미향은 바람을 타고 안토니우스의 코끝에 전령사처럼 내려앉았다. 향기를 따라 배를 저어가다 클레오파트라의 배와 만나게 마주친다. 여기에서 세기의 사랑이 시작된다.
지중해 바닷가에서는 세기의 사랑을 비롯한 다양한 사랑이 시작되고 또 사라진다. 제임스조이스는 <율리시스>에서 거티와 블룸의 기이한 사랑을 만들어냈다.
불꽃놀이를 구경나러 바닷가에 나온 거티는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한 남자를 발견했다. 그 남자는 그녀의 영혼 자체를 읽어내기라도 할 듯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거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에게 더할 나위 없이 의심장한, 놀랄만한 눈이었다. 거티도 그 남자가 싫지 않았기에 자신의 풍성하고도 우아한 머릿결을 보여주고 싶어 모자를 벗었다. 그녀의 밤색 머리는 그 누구도 쉽게 가질 수 없는 미칠 정도로 아름다운 머릿결이었다. 그 아름다움에 감동한 그 남자의 눈에 감탄의 빛이 스치고 지나간 듯 한 생각이 들어, 거티는 전신에 전율을 느꼈다. 그녀는 전보다 빨라진 호흡에 맞추어 그녀의 바클 달린 멋진 구두를 흔들었다. 그는 뱀이 먹이를 바라보듯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여자로서의 본능이 그 남자 내면의 악마를 깨웠다.
클레오파트라가 치밀한 계산 아래 카이사르를 만나고 안토니우스를 만났듯이 거티도 사랑을 위하여 자기 나름의 섹시한 계산을 하는 것이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를 보는 순간 아프로디테가 살아 움직이는 듯 했으며, 그녀를여신으로 숭배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토니우스는 여신 클레오파트라를 만찬에 초대했지만 반대로 클레오파트라의 초대에 응하게 되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안토니우스를 보는 순간 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쉬운 남자임을 알아챘고, 그래서 먼저 선수를 쳐서 이집트왕국의 수도 알렉산드리아에 초대했다. 마흔 한 살의 안토니우스는 고작 스물여덟 살인 클레오파트라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다. 안토니우스는 여신의 품안에서 세월을 잊고 자신을 잊을 정도로 클레오파트라의 사랑에 탐닉했다.
어두워져 가는 황혼의 풍경은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매혹시키는지 모른다. 서서히 어둠 속으로 잠겨 들어가는 지중해의 마지막 풍경은 조용히 가슴을 파고든다.
그 남자의 손과 얼굴이 움직이자 전율이 거티의 온몸에 퍼졌다. 그녀는 몸을 뒤로 죽 빼고서 멀리에 있는 불꽃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뒤로 넘어가지 않도록 무릎에 양손으로 각지를 꼈다. 그녀가 포동포동한 부드러운 아름다운 다리 전체를 드러냈을 때 그것을 보는 사람은 그와 그녀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의 심장의 고동과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뜨거운 피를 가진 남자의 그러한 정열에 대해서 그녀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볼꽃놀이는 점점 절정에 달하고 그녀의 짧은치마는 가터벨트를 다 드러낸 채 허벅지 위에서 춤을 춘다. 거티는 그의 잘 생긴 뜨거운 입술로 불타는 듯한 최초의 키스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뜨겁게 그의 키스를 갈구하면서 오르가즘에 달한다. 그 남자 또한 바위 뒤에서 지퍼를 열고 열심히 손을 움직여 절정에 오른다. 너무나 생생하고 부드럽고 달콤한 사랑이 노을 속으로 이슬처럼 사라져 갔다.
제임스 조이스는 같은 공간에서 한 쌍의 남녀가 한 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않은 채, 육체의 접촉도 없이 격렬한 사랑을 나누게 만들었다. 기이하게만 보였던 그들의 사랑이 아, 이제야 인터넷이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현대에는 가능한 사랑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공간에서 화상채팅을 통하여 얼마든지 가능한 사랑이다. 이런 엉큼한 내 상상력과 생각에 내가 놀라고 있다.
중년의 남자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의 사랑에 눈이 멀어서 로마에 있는 본처도 잊어버렸고, 로마의 맹장인 자신조차도 잊어버렸다. 로마의 정세는 안토니우스에게 불리하게 돌아갔고, 전장에서 패한 안토니우스는 자살을 선택한다. 클레오파트라 역시 죽임을 당하기 전에 스스로가 죽음을 선택한다. 독사에 물려 생을 마감한 클레오파트라, 그녀에게 사랑은 어떤 빛깔이었을까?
불꽃놀이도 끝나고 하늘엔 별빛만이 가득하다. 거티는 또다시 이곳에 오면 그 남자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 남자는 두 번 다시 거티를 만날 일이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누라가 저녁을 준비하고 있을 집으로 돌아온다.
세기의 사랑이나 현대 소시민의 사랑이나 슬픈 결말은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든다. 해변엔 아폴론 신전의 하얀 대리석이 내뿜는 흰빛만이 있을 뿐이다. 그 흰빛은 안타까움과 갈망을 주는 그런 아름다움이었다. 거티는 그 남자가 알고 있는 이상으로 그를 사랑하고 있음에 생각이 미치는 순간 파란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거티의 사랑이 안타까운 듯 어느 한 시기 가뭇없이 스러져 간 내 사랑도 또한 그러하지 않았을까 싶다. 허망하게 끝나버린 거티의 사랑에 대해 애도의 표시로 오늘밤 한 잔의 와인을 마셔야겠다.
불빛을 따라 시내 쪽으로 걸었다. 어느 카페로 들어갔다.
깔리여신 언니! 깔리여신 언니라고 함 불러봤습니다. 여신님을 언니로 모시면 좀 닮아가려나요?
저처럼 초안으로 제출한 게 아니라 여러 번 매만져진 정돈되고 가지런한 글을 봐요.
거티와 블룸, 크레오파트라와 안타니오, 카이사르의 사랑의 에피소드가 간질간질 해요.
거티와 블룸의 이야기는 제임스 조이스 책으로 읽을 때보다 무슨 일이 있었나 더 잘 알겠어요.
저 그 책으로 읽을 때는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양말대님이 가터벨트였군요.@@ 저는 이게 뭔가 했어요.
거티가 바닷가에서, 침대로 마누라에게 들고 갈 돼지콩팥을 사서 집으로 들어가는 블룸아자씨를 기다리러 절룩이며 나와 휑한 마음을 느끼는 장면을 상상하면 좀 쓸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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