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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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에 대하여
1948년 노벨문학상 시상식.
수상자는 [황무지]로 유명한 미국계 영국 시인 T.S.엘리엇이었다. 시상식에서 한림원은 엘리엇을 '가장 최근에 태어난 단테를 계승하는 시인'이라고 소개하였다. 엘리엇은 한 인터뷰에서 "어떤 시인도 나에게 단테만큼 영향을 미친 시인은 없다. [신곡]에는 언제나 발견할 무언가가 있다. 젊은 날 나는 다른 시인들을 사랑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들을 모두 버렸다. 그리고 언제나 단테와 그의 시로 돌아오곤 했다."고 고백하였다.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1265 - 1321)의 세례명 두란테(Durante)는 '참고 견디는 자'라는 의미로 그 축소형 Dante는 이제 인류 문화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단테는 1265년 피렌체에서 태어나 1321년 라벤나에서 사망 때까지 56년을 살았다. 13세기 중엽에서 14세기 전반이 그의 삶의 무대였다. 그의 [신곡]은 지난 700년 동안 서양 문화의 한 축이 되어온 대표적 작품으로 현재까지 600여 판의 필사본이 전해진다.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단테 신곡 [지옥]의 1곡
인간의 자연 수명은 일흔이라는 [시편]의 내용에 따르면 단테가 35이 되던 1300년은 단테가 인생의 반을 산 시점이었다. 그 시기는 단테의 정치 경력이 최정점에 이르던 시기였다. 단테는 피렌체를 다스리는 여섯 명의 최고위원 중 하나인 프리오레(priore)로 선출되었다(1300년 6월 15일 ~ 8월 15일). 프리오레는 장관을 의미하는 단어이며 도시국가의 총리에 해당하였다.
당시 피렌체는 교황을 지지하는 겔프 당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이 당은 다시 도나티 가문이 이끄는 흑당과 체르키 가문이 이끄는 백당으로 나뉘었다. 단테는 백당에 몸담고 있었다. 이 두 당파는 1300년 5월 1일 충돌하여 싸웠고 1301년 흑당이 도시에서 추방당한다. 그러나 그들은 1302년에 다시 돌아와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의 힘을 빌어 거꾸로 백당을 추방한다. 즉, 흑당은 교황과 백당을 분리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정적의 당이 권력을 쟁취함에 따라 단테는 결석재판에서 공금횡령과 뇌물의 죄목으로 벌금 5000피오리나와 함께 2년 간 추방선고를 받았다.
싸움이 오랫동안 계속된 뒤에
피바다를 이룰 것이오. 거친 쪽(백당)이
다른 쪽(흑당)을 휩쓸어 버릴 것이오.
그러나 삼 년이 지나지 않아(추방당했던 흑당이 돌아옴)
이쪽은 땅에 떨어지고 아첨하는 자(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의 도움으로
다른 쪽(흑당)이 일어나 다스리게 될 것이오.
의로운 자가 둘이지만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만과 시기와 탐욕은 모든 인간의 마음에
불꽃처럼 불을 붙이고 사람들을 태울 것이오.
단테 신곡 [지옥]의 6곡
그런데 단테는 이 판결이 부당하다며 당국의 출두명령에 응하지 않아 결국 1302년, 단테는 후속 재판이 열린 3월 10일 극형인 사형을 선고 받았다. 피렌체에서 체포되면 처형(화형)되기 때문에 단테는 고향을 탈출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피렌체로 돌아가던 도중 선고 내용을 전해들은 단테는 바로 발길을 돌려야 했으며 사실상 피렌체에서 영구 추방되었다. 그 후 이탈리아 전역을 도망 다니며 망명 생활을 했다. 1304년부터 단테는 [신곡]의 지옥편을 구상하기 시작하였고 1314년에 [지옥편]을 출판하였다. 단테는 망명 생활 동안 백당 망명자들의 지도자로 활동하였고 끊임없이 피렌체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살아있는 육신으로는 다시는 피렌체 땅을 밟지 못했다. 1315년, 흑당은 단테에게 죄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벌금을 내면 사면과 귀환을 허락하겠다고 제의하였지만 단테는 거절하였다. 괘씸죄에 걸린 단테는 다시 추방과 종신형을 선고받았는데, 이번에는 판결이 가족에게까지 연좌제로 적용되었다. 같은 해 단테는 [연옥편]을 출판하였고, [천국편]을 집필하기 시작하였다. 3년 뒤, 라벤나에서 가족들과 상봉한 단테는 죽음을 맞는 1321년까지 머무르며 가족과 함께 절반의 평안을 누렸다. [천국편]은 그가 죽기 1년 전인 1320년에 완성되었다. 피렌체는 단테 사후 50여년이 지난 1373년에야 보카치오에 의한 단테 강연을 승인하였다.
단테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한 명의 여인, 베아트리체는 "흠모하는 신격화된 여인"이란 의미의 상징어가 되었다. 그녀는 실존하는 인물로 단테와 그녀의 사랑 이야기는 허구보다 극적이고 신화보다 숭고하다. 단테는 1265년 5월, 베아트리체는 1266년 6월에 태어났으므로 둘은 한 살 차이였다. 단테는 아홉 살 때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났다. 그녀의 아버지 폴코 포르티나리는 고리대금업자였다.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단테는 '영혼이 전율하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고 기록했다.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나던 당시, 단테는 모친상을 당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의 모정에 대한 애정 결핍은 [신곡]의 비유에서 엄마와 아이의 관계가 유독 많은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여성성에 대한 그리움은 베아트리체에게 그대로 옮겨가 대체되었다. 그 후 단테는 8년 만에 아버지마저 여의었고 18살 때 다시 베아트리체와 재회하였다. 항상 단테가 큰 상실을 경험할 시기에 그녀는 계시처럼 그 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이 시기부터 단테는 본격적으로 문학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청신체'라 불리는 창작 집단을 만들어 활동하였는데, 이는 귀족 계층의 청년들이 편지와 시를 교환하던 동아리 특성이 강했다. 이들은 연애에 관해서 이상적인 여인의 미덕을 찬양하고, 시인을 고결하게 만드는 사랑의 힘의 칭송하였다. 여성성을 승화하여 신격화하는 것이 이 창작 집단의 특징이었다. 단테는 물론 베아트리체를 생각하며 시를 썼고 이를 귀도 카발칸티에게 보여주어 극찬을 받았다. 이 것이 계기가 되어 둘은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흠모하면서도 그 사랑을 숨겼다. 그는 교회에서 베아트리체를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어서 자신과 베아트리체의 중간에 앉아 있는 여인에게 시선을 주어 그 여인을 사랑하는 체 위장하였다. 이는 스캔들로 번졌고 이후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인사를 거부하였다. 참으로 안타깝고 어리석은 사랑이었다. 결국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가문보다 더욱 명문가였던 발디 가문으로 시집을 갔고, 절망한 단테는 자신의 약혼녀 도나티와 결혼하였다.
단테가 1289년 캄팔디노 전투와 카프로나 토벌에 참여하여 돌아왔을 즈음, 베아트리체는 그만 24살의 나이에 요절하였다. 이 당시의 묘사를 보면, 단테는 며칠 동안 사경을 헤매며 아팠다. 병석에서 몸을 일으킨 단테는 문득 "베아트리체가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리고 얼마 후, 단테는 지인들로부터 정말로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듣는다. 사랑했던 베아트리체의 죽음 이후 단테에게 그녀가 먼저 가있는 천국은 늘 그리운 곳이었다. 단테는 그녀와 천국에서 재회할 날을 기다리며 남은 평생을 살았다.
인생의 정점에서 발길을 돌려 망명자의 삶을 살았던 한 사람, 그리고 운명의 여인을 천국에 둔 채 죽음의 재회만을 기다려야 했던 사랑. 이런 생의 조건이 단테의 신곡을 탄생시켰을까? 단테는 절망의 시기에 [지옥편]을 썼고, 귀향의 기회를 작가로서의 정체성으로 물리친 자각의 시점에서 [연옥편]을 썼다. 그리고 베아트리체가 있는 천국으로 가기 전에 [천국편]을 완성하였다. T.S.엘리엇은 단테를 추종하였던 이유로, 그의 긍정적인 세계관을 들었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죽음으로 끝나는 비극이 많은 반면, 단테의 신곡은 지옥에서 연옥으로 다시 천국으로 이어지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단테는 신곡에서 지옥의 문을 부수고 메시아 이전의 영혼을 구원하는 예수를 언급하였으며, 자신도 교회의 신성한 물품을 부수어 어린 아이를 구해냄으로써 예수의 행적을 모방하는 등 구원의 손길을 늘 예비해두었다. 죄를 지었어도 연옥에서 죄씻음을 거쳐 천국에 이르는 것이다. 특히 천국에서 실현되는 베아트리체와의 사랑은, 단테 자신의 실제 삶과 겹쳐지면서 삶과 예술의 합일에서 오는 신적 환희를 불러일으킨다. 사후의 결정론적 세계를 그림으로써 역설적으로 삶을 긍정함으로써, 단테의 신곡은 고전의 보편적 가치를 획득하였다.
신곡 지옥편 단테 알리기에리의 코메디아
민음사, 박상진 옮김, 윌리엄 블레이크 그림
1곡
è 1300년 3월 25일 목요일 밤에서 3월 26일 금요일 아침까지
7
우리 인생길 반 고비에
올바른 길을 잃고서 난
어두운 숲에 처했었네.
è 단테가 35살이 되던 1300년. 인간의 자연 수명은 일흔 [시편]
è 단테의 정치 경력이 최정점 : 1300년 6월 15일 ~ 8월 15일까지 피렌체를 다스리는 여섯 명의 최고위원 중 하나로 선출됨
8
마치 바다에서 해안으로 나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몸을 돌려
위험한 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처럼.
단단한 다리는 언제나 낮은 쪽이었다. è 양쪽 다리가 일반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하나님과 세계라는데 이에 대한 민음사의 해석은 지나친 감이 있는 듯.
8-9 è 표범과 사자, 암늑대가 태양이 침묵하는 곳으로 밀어넣는다.
11 오랜 침묵으로 목이 잠긴듯한 사람 è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
12 그런데 넌 어찌하여 거대한 고통으로 돌아가려 하는가?
어찌하여 모든 기쁨의 시작이며 근원인
저 환희의 산에 오르지 않는가?
è 표범과 사자, 암늑대 때문. 인생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되는 경로
14
그러는 동안 너는 좌절의 울부짖음을 들을 것이고,
두 번째 죽음을 부르짖는
고통받는 옛 영혼들을 볼 것이다.
è (역) "옛"은 지옥에 떨어진 지 오래되었다는 뜻이고, "두번째 죽음"이란 영혼의 죽음을 말한다. 지옥에서 고통받는 영혼들은 형벌이 영원히 지속되기 때문에 차라리 영혼의 영원한 죽음을 바란다.
14
언젠가 축복받은 사람들과 함께하리라는
희망을 안고 불 고문을 참고 견디는
영혼들 또한 보게 될 것이다.
è 레지던트들 같군.
è (역) 연옥의 사람들
14
네가 그 축복받은 영혼들에게 오르고 싶다면,
나는 나보다 더 가치 있는 영혼에게
널 맡기고 떠날 것이다.
è (역) 더 가치 있는 영혼 = 베아뜨리체
베르길리우스 à 지옥과 연옥만 안내
베아뜨리체 à 천국을 안내
è 왜 두 사람이 선정되었을까?
è 왜 단테는 순례를 떠나는가? 단테가 왜 선정되었는가?
è 순례란 무엇이지?
2곡
17-18
그런데 왜 내가 가야 하나요? 누가 허락했습니까?
나는 아이네이아스도, 바울도 아닙니다. 아무도, 심지어
나조차도 내가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겁니다.
è 자신의 존재에 대한 환상을 무너뜨리는 것은 유/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 접어들 때 대개 이루어진다. 대개는 그 기억을 잊고 살지만, 가끔 아문 상처를 건드리면 폐부를 깊이 찔린 듯 낭패감이 들곤 한다. 그러나 잊어야 하므로. 잊는다.
è 그 이후에는 기회가 와도 부정하게 된다. 학습된 무기력?
18
인간은 언제나 그 겁 때문에 머뭇거리고,
제 그림자를 보고 놀라는 짐승처럼
명예로운 일에서 멀어지게 된다.
19 허공에 매달린 영혼들 - 림보. 지옥의 첫 번째 고리.
<여기는 아이폰에 저장>
31 정녕 살아 있지도 않았던 그들은
è (역) 나는 네가 한 일을 잘 알고 있다. 네가 살아 있다는 말이 있지만 실상 너는 죽었다.[요한의 묵시록] 3:1 è 살아 있는 것을 죽이는 방법.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에서 제제는 자신을 학대하는 아버지를 마음 속에서 죽인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죽은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을 죽은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개인이 선고할 수 있는 최고 형벌이다.
è 어떤 사람들은 후세에 명성을 남겨서 아직도 사람들이 그들을 칭송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지 않고 마치 이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집회서]44:8~9 è 예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사람은 정보를 남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인간의 육신은 DNA와 정보의 전달수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게 어떻다는 뜻일까? 명성은 수단인가, 목적인가? 명성이 수단이라면 목적은 무엇일까?
31
찔린 눈에서는 피가 눈물과 뒤섞여 흘러내렸고, 다리에서는 구더기들이 피를 빨아 먹고 있었다.
è 대부분의 시체가 이렇게 소멸한다. 이 소멸을 경험하는 영혼?
34
그러고는 울고 불고 하며 한데 모여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들을 기다리는
저주받은 강둑으로 내려섰다.
è 하나님을 믿도록 강요받는 사회에서 자신의 소신을 지키는 자들에 대한 부당한 처사
è 혹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행위의 상징성이 말하는 부도덕한 사람들?
35 모든 두려움이 갈망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è 매우 매력적인 대사다.
è 문학 작품 중에서, 뻔히 부정적 결말이 예고된 미래를 향해, 알면서도 뛰어드는 청춘이 얼마나 많은가? "모든 두려움이 갈망으로 변하여 지옥으로 뛰어든다." è 가보자 갈 데까지.
4곡
39 다른 잘못은 없어. 그 죄 하나 때문에 우리는 버림받았다. 언제까지라도 희망 없는 희망 속에 살고 있는 거야.
è 하나님은 정의의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40 그날 이전에는 어떤 영혼도 그런 구원을 받은 적이 없었다.
è 예수 그리스도는 세례 받지 않은 자들 가운데서도 구원하였다. 합리적인 왕이로군. 예수의 이름으로 종교를 권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구절을 들려줘야지.
45 그곳에서는 풀밭 위의 위대한 영혼들이 한눈에 내 시야로 들어왔다. 그때 본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린다.
5곡
48 들어서는 입구에 미노스가 무서운 모습으로 서서 사람들의 죄를 조사하고 판단하여 제 꼬리가 감기는 횟수에 따라 보냈다.
49 넓게 열린 문에 속지 말지어다
è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 그 문을 지나는 자가 많지 않더라 - 에 대비되는 넓은 문.
51 이성을 욕망의 멍에로 씌워 속박시킨 자들이라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56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당신의 선생님은 아시겠지만, 비참할 때 행복했떤 옛시절을 떠올리는 일만큼 괴로운 것은 없어요."
57 어느 날 우리는 한가롭게 랜슬롯의 사랑 얘기를 읽었어요. 우리뿐이었어요. 거리낄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요.
è 지옥의 상징성은 무엇일까? 죄는 영원하다는 것? "순례자"가 걷고 있는 영혼들의 무덤에서 그는 죄의 진정한 본질을 배운다.
è 역주의 해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프란체스카의 죄는 죄일 뿐, 그녀의 허영과 거짓말이 곧 죄란 말인가? 마녀사냥과 같다. 그녀가 이미 지옥에 있다는 조건 때문에 프란체스카는 책 잡힌다.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정사에서 누가 먼저 키스를 했는지가 그리 중요한 문제 같지는 않다.
6곡
59 케르베로스 è 이전부터 개는 문지기였다.
63 그 빌어먹을 탐욕이 내 영혼의 병이었소. è 입에 달라붙는 표현이다.
싸움이 오랫동안 계속된 뒤에 피바다를 이룰 것이오. 거친 쪽이 다른 쪽을 휩쓸어 버릴 것이오.
64 그렇게 인정받던 테기아이오와 파리나타는,
신망이 두터웠던 루스티쿠치, 아리고와 모스카,
그리고 선을 행하는 데 열성이었던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소?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말해 주시오.
하늘에서 그들을 반기는지, 지옥에서 시달리는지
알고 싶은 욕망에 내 온몸이 지쳤소.
è 단테가 지옥에 관한 글을 쓴 무의식의 의도가 엿보인다. 자신의 정치적 적들(물론 그들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을테다. 그들이 표방했던 상징들을 대신 내세우겠지.)이 모두 지옥에 있으리라는 작가적 복수를 하기 위해서?
è 굳이 그들의 행방을 지옥에서 묻는 것과, 궁금해서 심신이 지치는 것을 보았을 때 : 심증
65 "선생님! 이곳의 고통은 위대한 심판과 함께
더 줄어들까요, 더 세차게 타오를까요,
아니면 그냥 이렇게 남을까요?"
"네가 배운 것을 잊었구나.
기쁨이든 고통이든 모든 것은
완전하면 완전할수록 더 뚜렷한 법이다.
저주받은 이 무리는 결코
진정한 완전을 누릴 수 없으며,
지금보다 더 나은 것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è 단테의 질문은 지옥의 존재가 당위성이 있는 것인지(즉, 지옥을 통해서 죄인의 영혼은 죄를 깨닫고 참회하는가? 지옥의 피드백은 고통의 총합을 줄이는가?), 아니면 당위성을 초월하는 종국의 목적인지를 물었다(즉 지옥은 모든 동화의 새드엔딩으로, 영원히 불변하는 합목적적 결말).
è 처음에는 답변이 이해가 안되어서 현문우답이라고 생각했는데, 매우 정확한 답이었다. 지옥은 완전한 고통이다. 그러므로 지옥의 고통은 가장 가장 뚜렷한 최고의 고통이다. 그런데 이 완전이란 정적인 존재가 아니다. 지옥에서 고통을 느끼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시간의 종적 흐름이 필요하다. 이 종적 흐름과 완전성이 공존하는 방법은, "완전성을 향해 무한히 다가가는 불완전한 지향"이다. 즉 수학적으로 말하면, 무한대를 향해 끊임없이 커지는 상태"이다.
è 이런 해석을 수학과 접목시켜서 [수학 + 인문학] 책을 써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7곡
67 네 몸을 불태우는 분노로 먹고 사는 놈아!
è 와! 기막힌 표현이다! 읽자 마자 온 몸이 떨리면서 흐느껴 울 것 같다.
깊은 곳으로 가는 우리의 여행에는 다 이유가 있다.
미카엘이 오만한 폭력에 정의로운 복수를 했던
저 높은 곳에서 바라시는 바다.
è 단테의 여행처럼, 깊은 곳으로 떠나는 여행의 의의. 높은 곳에서 바라고 있다. 왜?
69 왜 죄악은 우리를 이처럼 파멸시킵니까?
카릿디 바다의 파도
è 시칠리아와 이탈리아 본토 사이의 좁은 해협
71
아들아, 보아라, 재화는 운명의 손에 들려 있건만,
우리 인간들은 그 때문에 처절히도 싸운다.
그 얼마나 덧없는 일인가!
73
인간의 지식은 그와 맞설 수 없다.
그녀도 다른 신들과 마찬가지로
미리 예언하고 판단하며 시행한다.
è 오늘날에는 워렌 버핏과 같은 사람이 그녀의 신탁녀 역할을 하고 있지.
74
필요에 따라 빠르게 움직이며
그에 따라 인간 만사가 순신간에 덧없이 변한다.
è 재화를 두고 다투는 이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부딪힌다.
77
수렁에 빠진 저들은 말하지.
'상큼한 공기와 따스한 햇살 속에서도
불안과 분노로 음울했거늘,
8곡
81
세상에서는 스스로 위대하다 여기지만
여기서는 진흙탕 돼지처럼 뒹굴며
야비한 기억만 떠올릴 자가 얼마나 많을지!
83
곧바로 내 눈에 흙투성이의 무리가
그자를 난도질하는 것이 보였으니
나는 그 광경을 보여 준 하느님께 아직도 감사드린다.
è 지옥을 구경하고 싶은 이유. 로마의 검투시합처럼 사람이 죽어야 끝나는 시합을 즐기려고 모여드는 사람들. 스포츠의 특성. 사람의 공격성.
è 더군다나 지옥의 영혼은 이미 하늘로부터 버림받은 공인된 죄인으로, 하느님이 벌하시는 것을 즐긴다고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è 왜, 자기 마음 속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죄책감을 느끼면, 안되나?
è 다음의 "필리포 아르젠티를 결딴내자고!" 부분에서 단테의 의도가 보인다.
선한 선생님이 말했다. "아들아!
무거운 죄를 지은 영혼들과 악마들이 사는
디스라는 이름의 도시가 가까워지고 있다."
è 디스(diss) : disrespect(무례,결례)의 줄임말로, 주로 다른 사람을 폄하하는 행동을 일컫는다.
è 디스(게임용어) : (스타크래프트)게임을 하던 도중 상대플레이어가 드랍(DropPlayer)이 걸리는 현상. 대게 인터넷 접속 불량이나 정전, 모뎀의 고장 또는 고의가 원인이다. 이때 게임은 무효처리(Draw)가 되며 디스컨넥티드(Disconected)가 올라가게된다. 때문에 맵핵만큼 비매너 행위로 간주된다.[네이버 사전]
è 디스(단테의 신곡) : "디스파테르(Dis Pater), 즉 '부의 아버지'라는 뜻으로, 로마 신화에서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신을 가리킨다. 단테는 지옥의 마왕 루키페르, 혹은 그가 자리잡고 있는 지옥의 맨 밑바닥을 부르는 말로 사용한다."
86
그러나 여기서 잠시 날 기다려라. 초췌한 영혼을
위로하고 밝은 희망을 키워라.
내 너를 이 낮은 세상에 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è 더 깊은 지옥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희망을 키워라! 아이러니.
87 "누가 감히 이 고통의 집을 내게 금지한단 말인가?"
88
넌 이미 그 문에 새겨진 죽음의 글귀들을 보았지.
지금 길잡이도 없이 그 문을 통과해서
우리가 지나온 고리들을 가로지르는 분이 계시니,
그분이 이 도시를 열 것이다.
è 그리스도가 지옥을 해방시키는 자라면, 인류 역사상 가잔 멋진 자임에 틀림없다.
9곡
93 아, 견고한 지성을 가진 여러분이여!
내 비상한 글을 너울 아래
감추어진 의미를 생각해 보라!
è (역주) 상징적으로 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세 번의 강림에 대한 중세의 믿음과 관계가 있다. … 이 세번의 강림은 그리스도가 죽어 부활하면서 지옥을 들러 그리스도 이전의 선택된 자들을 구원하고 그 다음에 그리스도 이후를 사는 인간의 일상적인 생활에 깃들며 마침내 모든 인간의 마지막 심판에 임하는 등, 그리스도교 시대에 한정된다. … 따라서 단테의 여행은 그리스도의 세 번 강림의 비유를 통해서 그리스도교가 설계한 인간의 전 역사(미래까지 포함하는)를 보여 주면서 한편으로는 그리스도 이전의 이교의 시대를 돌아보는 것이다. 베르길리우스는 그리스도 이전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 [신곡]은 그리스도 이전 고대인의 신화적인 믿음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도 시대를 거쳐 마지막 심판에 이르는 전체 여정을 제시하고 있다.
10곡
99 이편에는 에피쿠로스와 함께 그 추종자들이
무덤에 갇혀 있는데,
몸이 죽을 때 영혼도 죽는다고 주장했던 자들이다.
è 나, 에피쿠로스인가본데?
è (역) 그리스의 쾌락주의 철학자. 인간의 영혼을 혼란하게 하지 않는 평정, 즉 아타락시아에 목적을 두었으며, 진리의 발견보다는 개인의 행복에 중점을 두었다.
è 진리의 발견은 중요하지만, 이상을 위해 행복을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상을 추구함으로써 얻는 행복? 헷갈린다. 늘 이게 헷갈렸다.
è 그런데 대개의 사람들이 에피쿠로스처럼 살지 않나? 기존에 고수해오던 삶의 방식을 인지하고, 원래의 것을 "그대로 고수하겠다"는 추종의 의지를 세우는 순간, 죄가 성립한다니…
104
하지만 모두가 피렌체를 파멸시키려 했을 때
난 치펜체를 위하여 떳떳하게 일어섰지.
그때는 오직 나 혼자였어.
106
네가 들은, 네 귀를 거스르는 예언을
가슴속에 잘 새겨 두어라! 그리고
내 말을 잘 들어라!" 그가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11곡
109
배반은 사람만이 지니는 악덕이기에
하느님이 더욱 싫어하신다. 그렇기에 사기꾼들은
이 가장 낮은 고리들에서 가장 깊은 고통을 당하지.
118
여러 번 혼돈으로 거듭났다고 하기도 하더라만.
여기저기서 이 오래된 바위들이 굴러 내린 것은
바로 그런 순간이었어.
è (역주) 엠페도클레스의 이론을 들어 비유하고 있다. 엠페도클레스에 의하면, 미움은 태초의 조화를 파괴하면서 다양한 사물들의 창조를 야기하고, 사랑은 이러한 여러 다른 요소들을 다시 통합하면서 우주적 일치를 구축한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사랑은 태초에 하나였다가 미움이 침투하여 분리된 지옥이 다시 우주 전체로 돌아가도록 만들었고, 그런 과정에서 지옥 전체가 흔들리고 바위가 쪼개져 굴러 떨어진 것이다. 사랑과 미움의 힘은 특히 물질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힘을 가리킨다. 태초의 조화는 혼돈의 상태이기도 했다. 그래서 세상이 하나의 조화로 돌아가는 것은 혼돈으로 거듭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베르길리우스는 그리스도가 지옥에 내려온 것을 이교도 철학의 측면에서 묘사하고 있다.
끓는 피의 강물에 가까워지는데, 폭력으로 남을 해친 자들을 삶고 있다.
è 지옥의 표현 중 최고다!
아, 눈먼 탐욕이여! 어리석은 분노여!
짧은 인생 동안 그렇게 우리 뒤를 쫓아다니더니
영원한 삶에서는 이런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구나!
119 넌 언제나 성급한 욕망으로 인해 불행해지리니!
128 우리는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숲이 되었소.
설령 우리가 뱀의 영혼이었다 해도
당신 손은 더 부드러웠어야 할 거요!
131 영혼은 숲에 떨어지는데, 떨어질 곳은 택할 수 없지요. 다만 운명이 몰아가는 대로
잡초 씨앗처럼 싹을 틔운다오.
è 우리가 태어날 곳을 선택할 수 없듯이.
133 와라, 와라! 죽음이여!
è (역주) 이들은 두 번째 죽음, 즉 영혼까지 소멸하는 죽음을 갈구하고 있다.
è 영혼이 살아있는 "생"은 의미가 없나? 지옥이라도 소멸하지 않는 정신이 의미 있는 것 아닐까?
135 나는 내 집을 교수대로 만들었던 거요.
è 자멸의 주요한 인용구가 될 것이다.
14곡
137
온 모래사장 위로, 마치
바람 없는 알프스에 눈이 내리는 것처럼,
거대한 불꽃들이 끊임없이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è 정 반대의 물질, 그러나 동일한 적막. 지상과 지옥. 물질과 반물질의 대조와 같다.
141
순간 길잡이가 있는 힘껏 고함을 쳤다.
그가 그토록 크게 소리치는 것은 처음 보았다.
"카파네우스, 이놈! 너의 오만이 수그러지지 않는 한
더 큰 벌을 받을 것이다.
너의 괴로움은 너의 분노에서 나오니
다른 벌이 없을 것이다.
è 자신의 위대함과 잠재력을 숭상하던 자들은,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분노하게 된다. 이 때 자기 숭배는 오만이며, 분노는 지옥의 벌이다.
143 경멸은 그놈 가슴에 아주 잘 어울리는 장식이야.
è 매우 슬픈 장식이지. 유태인의 별처럼, 우수한 민족의 아이러니와 같은 경멸의 표식.
누구에게나 열린 문
è 하나님이 부성의 두려움을 상징한다면, 예수는 무조건적 포용을 뜻하는 모성을 의미한다.
145 그 산에는 거대한 노인이 우뚝 서 있는데,
다미아타를 향해 등을 돌리고
로마를 거울 바라보듯 보고 있지.
è 로마에서 초기에 박해의 대상이었던 그리스도교가 이젠 로마의 우월한 상징이 되다니.
147 회개한 죄가 사라지는 날, 영혼들은 레테에 가서 몸을 씻는다.
15곡
150
아들아! 이 무리 중 누구든
잠시라도 멈춘다면, 앞으로 백 년 동안
불길이 후려쳐도 피하지 못한 채 누워 있어야 한단다.
è 멈추지 못하는 순환의 원리
1. 시지프스의 신화
2. 매트 리들리의 [붉은 여왕] à 현재의 생존 경쟁력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진화해야 한다는 진화론을 뒷받침
3. 죽으려 하는 자는 살 것이요, 살려 하는 자는 죽을 것이다. - 이순신
151 너의 선행 때문에 너와 원수가 될 것이다.
è (+) + (+) = (+) 가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152 풀을 산양에게서 멀리 두도록 해라.
è 의지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 접근성을 차단하는 전략. 자기개발서에서 인용구로 적절할 듯.
153 "잘 듣는 사람이 마음에 새기는 법이다."
154 나의 책 [보전]을 기억해라. 아직 난 거기에 살아 있다. 다른 부탁은 없다.
è 지옥에서도 영혼들을 "생활"을 영위한다. 그러나 "이승"에서의 생에 집착하고 있다. 이승에서 살아있음은 책 등을 통해 "이름"이 살아있음을 뜻한다.
è만약 내가 경영가인데 회사에서 퇴출당한다면 나는 경영가로서 사망한 것이다. 내가 피아니스트인데 두 손을 잃는다면 나는 피아니스트로서 사망한 것이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화가인데 두 눈을 잃는다면 화가로서 사망한 것이다.
è 만약 죽어서도 사유를 이어나갈 시간이 구비되어 있다면, 왜 굳이 이승에 연연해야 하는거지? 단지 지옥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154 패배한 자가 아니라 승리한 자처럼 보였다.
è 루쉰, [아큐정전]. 아큐는 자기 합리화 기법으로 절대 패배자가 되지 않는다. 브루네토는 이미 죽어서 저승에 있으면서 승리자인 체 행동한다.
16곡
162 진실은 거짓의 여러 얼굴들을 지니는 법이다.
그 앞에서 사람은 되도록 입을 다물어야 한다.
그런 진실을 말하면 자칫 거짓말쟁이가 될 수 있으니.
è 명의일수록 진단을 섣불리 내리지 못한다.
è 진리의 모호함.
è 코끼리를 더듬는 장님 패러독스 : 모두 자신이 보는 쪽에서는 "진실"이다. 이 "진실"을 무기로 서로 확신을 안고 싸운다.
170 어진 주인 앞에서 강해지는 하인처럼
171
사방을 둘러봐도 허공만 보이고
그 짐승만 남고 모든 것이 사라지던 그때
내가 느꼈던 두려움은 그러했다.
è 모든 것이 무(無)로 돌아가고 오로지 상대와 나만 남았을 때. 정면 대치 à 공황
173
백 번도 더 선회를 하던 곳에서
지친 몸으로 내려와 화난 매잡이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앉듯이.
è 게리온은 지금 오면 안되는 곳에 와있다.
è 다 떠나서 매에게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구절.
180
거기서 이아손은 감언이설과 거짓 몸짓으로
젋은 아가씨 힙시필레를 속였지.
그녀 역시 전에 다른 이들에게 사기를 쳤던 여자야.
180
다른 구렁 속에서 숨을 헐떡이며
손바닥으로 자기 몸을 때리는 자들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è 자기 경멸이 가장 큰 벌이다.
185
몇 년 전 나는 그 구멍들 중 하나를 부순 적이 있었다.
그 안에 빠진 어린이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나의 이 말이 사람들의 소문을 닫았으면 좋으련만.
è 구멍 = 세례를 받는 자를 위한 곳, 신성모독을 통해 생명을 구하다. 예수와 비슷한 행위
186
괜찮으시다면 전 기쁘게 따르겠습니다. 선생님은
저의 주인, 제가 선생님 뜻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과
제가 말하지 않는 것까지도 아십니다.
186
나는 마치 사악한 살인자가 구렁에 처박힌 이후에도
제 죽음을 늦추고자 고해를 핑계로
불러 세운 사제처럼 서 있었다.
189
사실 난 암곰의 아들이었소. 새끼 곰들이 잘 자라기를
너무나 바랐기에 세상에서는 돈을 긁어모아 주머니에
넣었고, 여기서는 나 자신을 주머니에 처박았소.
è 자식이나 후대에 대한 지나친 집착. 내리사랑을 위한 면죄부의 범위가 너무 컸다.
그것은 그놈 다음에 그놈과 날 능가할 정도로
법도 모르고 신성도, 인성도 전혀 없는
목자가 서쪽에서 오기 때문이오.
è 왜 모든 지도자는 지옥으로 갈 수 밖에 없는가? 게다가 청출어람.
190
즐거웠던 세상에서 당신이 쥐고 있던
고귀한 열쇠에 대한 존경심이
내게는 남아 있소. 그것만 아니라면
난 더욱 가혹한 askf을 했을 거요.
191
그러나 복음을 쓴 이는 물 위에 앉아 있는 그 신부가
타락하여 세상의 왕들과 간음하는 것을 보면서 당신처럼
신성을 더럽히는 목자들이 나타날 것을 예감하셨소.
è 직접 이름을 거론하는 것은 불온하였나? 메타포.
당신은 금과 은으로 하느님을 섬겼으니,
우상숭배자들과 무엇이 다른가?
그들이 하나를 섬겼다면 당신들은 백을 섬겼으니!
194
이곳에서는 죽어야 좋을 연민을 살리고 있으니!
하느님의 심판에 인정을 느끼는 것보다
더 큰 죄가 무엇이겠느냐!
è 미군들이 이라크 포로들을 학대하듯이… 그들도 하느님의 심판 아래 지옥의 죄수들을 마음대로 한다고 생각했겠지.
197
그녀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피한 채,
종들을 거느리고 마술을 부리며 살다가
그곳에 텅 빈 육신만 남겼지.
è 이리 외로운 삶의 끝에 다시 지옥이라니, 매정한 하나님이로군. "마술"을 부리는 extraordinary한 사람들은 죄다 지옥행이니 지옥의 강박에 옥죄어 있던 중세인들은 얼마나 재미없는 삶을 살았을까. 그들은 지옥이나 탐방하면서, "죄수"들과 비교되는 자신의 안위를 기뻐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이 충족시키지 못했던 일탈의 욕구를 그들을 묘사하면서 대리만족하고 있다.
203
내가 본 것은 그것이었지만, 그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거대하게 부풀어 오르다가
사그라드는 검은 거품들뿐이었다.
205 거기서는 돈이라면 아니요가 예로 변한다네.
213 그러자 바르바치아가 궁둥이로 나팔을 불었다.
22곡
1219
거기서 사기 치는 법을 배웠고, 그 때문에 이 뜨거운 곳에 있게 되었소.
è 사기를 쳐서 먹고 살 수 밖에 없었던 상황?
23곡
230 아, 영원토록 지겨운 망토여!
è 교황의 망토처럼, 권력에 대한 지겨운 추구를 말하는 듯?
24곡
239
곧바로 나의 아픈 곳에 약을 발라 치료를 해 주셨다.
è 단테는 스승님께 자식과도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요람에 쌓인 고분고분한 학생, 자식. 반항 한 번 하지 않는 모범생. 지겹다.
241
이제야말로 네가 나태함을 벗어 버릴 때로구나.
베개를 베고 이불 속에 누워 편안함을 즐기다가는
명성을 얻을 수 없느니라!
명성 없이 삶을 소모하는 사람은
허공의 연기나 물속 거품과 같은
흔적만을 세상에 남길 따름이다.
è 그러므로 명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말인가?
247
우리 눈앞에서 뱀에게 물어뜯긴 사람이 그러했다.
복수를 위하여 그러한 벌을 주시는,
아, 하느님의 전능이여! 그 얼마나 경외로운가!
è 이런 벌을 고안한 하느님을 존경해야 하나?
25곡
251
이 말을 마치자 도둑은 손을 높이 들어
상스러운 손짓을 해 보이며 외쳤다.
"하느님아, 이거나 먹어라!"
이때부터 뱀들은 나의 친구가 되었다.
뱀 한 마리가 오더니 그의 목을 휘감았는데,
마치 "할 말이 고작 그거냐?"고 말하는 듯했다.
è 도둑의 기지가 돋보인다. 단테는 순진한 학생인 양, 스승의 등 뒤에 숨어서 자신의 폭력적 욕구를 뱀에게 투사시키고 있다.
è 죄를 죄로 갚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인가? 죄를 죄로 갚는 것 = 지옥
257
마치 뜨거운 초가 녹아내리듯
두 몸은 서로 엉키더니 색깔이 뒤섞여
이전에 지녔던 각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26곡
266
기뻐하라, 피렌체여! 너무나도 위대해서
날개를 활짝 펴고 바다와 대륙을 넘어
지옥에까지 이름을 떨쳤으니!
방금 내가 본 도둑들 중 다섯이
너의 사람들이었으니, 난 부끄럽고
너로서는 이보다 큰 명예가 없겠지.
è 피렌체에 대한 애증이 도를 넘는 듯.
274 하느님께서 원하셨던 대로였다오.
è 하느님에게 의지가 있다면 이토록 잔인한 신도 없을 것이다.
27곡
279
어머니가 주신 뼈와 살의 형체를
지니고 살아 있었을 때 나는
사자가 아닌 여우처럼 행동했소.
갖은 모략과 술수를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재주를 무척이나 잘 부렸고,
내 소문은 땅 끝까지 퍼져 나갔소.
마침내 누구나 돛을 내리고 닻을
내려야 하는 나이라고 느낄 시기에
내가 이르렀을 때,
나는 즐거웠던 일들에 싫증을 느껴
죄를 뉘우치며 고백했소. 그것으로
구원을 받았더라면 얼마나 좋았겠소!
28곡
287
어떤 언어라도 분명 흡족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엄청난 것을 이해하기에
우리의 말과 정신은 너무나 보잘것없다.
286
또다시 갈기 갈기 찢어 놓는다오.
그놈에게 입은 상처는 우리가 길을 돌아
그놈 앞을 다시 지나기 전에 아물기 때문이오.
è 다시 아물텐데 고통 말고 두려워 할 일이 있을까? 죽을 것을 걱정한다거나, 신체의 비가역적인 훼손을 걱정할 필요도 없는데… 다만 영원의 시간이 아득하긴 할테지만, 죽은 후에 천국에 있든 지옥에 있든 영원이 지겹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291
그러나 나는 분명히 보았다. 아직도 눈에 선하다.
머리가 잘린 몸체 하나가 다른 온전한 몸을 지닌
슬픈 무리와 함께 태연히 가고 있는 그 모습이.
è 형천 - 목이 잘리었지만 도끼를 들고 춤춘다.
29곡
299
'첫 번째 세상 사람들 마음에
당신들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남아 있게 하고 싶다면,
è 이건 단테 자신의 욕망일 뿐.
30곡
306
아다모를 마음에 새겨 두기 바랍니다.
나는 살았을 때 원하던 것을 원 없이 가졌지만,
지금은 물 한 방울을 이렇게 갈망하고 있소.
310
작은 부끄러움은 네가 저지른 것보다 더 큰 잘못도 씻어 준다. 이제 걱정을 거두거라.
31곡
319
저자는 버려두자. 쓸데없는 얘기는 하지 말자.
그의 말이 누구에게도 통하지 않듯이,
그에게는 어떤 말도 통하지 않는다.
32곡
우주의 중심 바닥을 묘사하는 것이란
농담처럼 가볍게 처리할 일도
엄마 아빠를 부르는 아기의 옹알거림도 아닐 테니까.
è 단테는 비유에서 아기, 엄마의 관계를 많이 거론한다. 지금 그는 지옥이라는 두려운 환경에 쳐해있으므로 엄마로 회귀하려는 본능을 보이는 것 같다.
333
내가 응답해 주었다. "이 사악한 반역자야, 입 닥쳐라!
이제 네이름을 알았으니, 너의 파렴치함을
온 세상이 다 알도록 해 주겠다!"
è 이미 지옥에서 죗값을 치르고 있는 죄인에 대한 연민도 없나? 단테 자신은 순전한 관광객으로 남의 고통 앞에서 자신의 호기심을 해결하려고 했을 뿐이잖는가. 하느님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인권의 유린.
33곡
339
괴로운 나머지 손을 물어뜯게 되었소.
그러자 허기를 참지 못해 그러는 줄로 생각하고
자식들이 일어나서 말했소.
'아버지, 저희를 먹으면 저희들의 고통이
훨씬 덜할 거예요! 아버지가 이 불상한 육신을
입혀 주셨으니 이제는 벗겨 가세요!'
è 주 기도문에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라는 구절이 있다. 상황이 죄인을 만드는군.
è 유교에서도 부모가 아프면 자식이 자신의 살을 잘라 삶아서 먹인다. 폐지되었지만.
강요된 자식의 희생.
34곡
349
그는 이전에 아름다웠던 만큼 지금은 추한 모습인데
자기를 만들어 준 분께 눈썹을 치켜세웠으니,
모든 악과 고통은 분명 그 놈에게서 나왔다.
354
그렇게 해서 밖으로 나와 별들을 다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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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1곡
7
모든 것을 움직이시는 그분의 영광은
온 우주를 가로지르며 빛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더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덜하다.
9
작은 불씨 뒤에는 큰 불씨가 따라 나오는 법이니,
내 뒤에 더 좋은 소리로 기도가 나와
치르라로 하여금 화답하게 하소서.
è 누적 효과
그 등불은 더 행복한 별들과 함께 하며
더 행복한 길로 가고, 그렇게 세상의 초를
따뜻하게 데워 제 모양에 더 가까이 인장을 찍는다.
è 행복을 향해 나아가다. 제 모양에 더 가까이 인장을 찍다. 지향점을 향해 나아간다.
우리의 반구는 어둡지만
반대편 반구는 하얗게 빛날 때,
è 아리스토텔레스 - 지구는 구체이다. B.C. 330
è 단테 신곡 1308~1321년
è 코페르니쿠스 지동설 1543년
눈을 태양으로 쳐들었다. 독수리라도
태양을 그렇게 정면으로 쏘아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è 우리편 반구가 어두운데 태양으로 고개를 쳐들 수가 있나?
è 지금 "천국"이라는 곳은 지구와 태양을 모두 바라볼 수 있는 우주 공간쯤으로 설정된 듯.
10
내 마음에 움튼 느낌. 그것은 마치 어부
글라우코스가 해초를 먹고 바다의 신으로
변신할 때의 느낌과 같은 것이었다.
11
인성을 초월한다는 것은 말로 설명될 수 없으니,
하느님의 은총으로 경험할 때까지는
방금 든 글라우코스의 예로 족할 것이다.
è 인성이라는 번역, 정확한 것일까?
è 글라우코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름, "빛나는", "청록의"라는 뜻.
오, 하늘을 다스리시는 사랑이시여! 그대의
빛이 나를 들어 올렸으니, 오른 것이
내 안의 맨 나중 창조인지는 그대가 아십니다!
나는 태양의 불꽃들로 활활 타오르는
거대한 하늘을 보았나이다. 세상의 모든 비와
강이 흘러들어도 그렇게 넓은 호수를 만들지 못하리오.
è 물과 불의 대조를 많이 쓰고 있다.
내가 나 자신을 보듯 나를 보고 있던 그녀는
12
"그대는 쓸데없는 생각으로
자신을 둔하게 만들어 그대가 볼 수도
있었을 것을 보지 못하고 있군요.
아직 세상에 있다고 생각하는 듯한
그대여, 번개가 내리치는 것도 그대가
천국으로 오르는 것처럼 빠르지는 않을 거예요.
이곳에서 모든 것들은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하나의 질서를 따르니, 이는
하느님을 닮은 우주의 형상이지요.
거기서 하느님의 숭고한 피조물들은
영원한 힘이신 하느님의 자취를 봅니다. 그것이 바로
우주가 지향하는 목표랍니다.
창조된 모든 것들은 이런 질서 속에서
저들의 원천으로부터 적절한 거리를 두고
저들의 위치를 유지합니다. 이렇게
피조물들은 존재의 광활한 바다를 가로질러
다양한 항구들로 퍼져 가고, 그러면서도
제각기 자기의 본능을 지키고 있어요.
이 본능은 달을 향해 불을 가져가고
피조물의 심장을 움직이는 힘이 되며
세상을 묶어 하나로 만드는 본능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성을 지니지 않는 피조물뿐 아니라
지성과 사랑을 지닌 피조물들도
그 본능의 활의 당겨진 힘을 체험하지요.
언제나 행복의 과녁에 똑바로 화살을
당기는 활의 힘에 실려 우리는 미리
운명 지어진 곳으로 날아오릅니다.
그러나 흔히 형상이 예술가의 진정한
의도를 반영하지 않고
질료가 말을 듣지 않는 때가 있는 것처럼,
è DNA는 운명 예언서가 아니라 조형물에 대한 "하느님의 레시피"다. 요리를 레시피대로 한다고 해서 요리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의 피조물도 진정한 목표를 향해
날아갈지라도 때로는 빗나가는 힘을 받아서
경로를 벗어나기도 하지요.
è 자유 의지에 대한 고찰 è C.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하늘로 올라야 할 빛이 땅으로 떨어지듯이,
거짓된 욕망에 휘둘린 원초적 충동은
사람을 몰락시킵니다. 그대는 이제
……
이상하게 여기지 마세요. 그대가
날아오르는 것은 산에서 밑으로
흘러내리는 물과 전혀 다르지 않아요.
그대가 중력에서 벗어났는데 아래에 머문다면,
그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불빛이 세상에서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이상한 일이지요.
è 질량을 가진 것은 중력의 법칙을 따른다. 중력에서 벗어나다 = 질량에서 탈피하다. 즉, 죽다.물체는 빛의 속도에 도달하면 질량이 무한대가 되지만 빛은 그러하지 않기 때문에 정지질량이 0이다.
è 죽은 영혼이 유질량의 몸에서 무질량의 빛으로 전환된다는 비유는 탁월하다.
è 그런데 빛은 정지할 수 없는가? 빛은 블랙홀과 같이 시공간이 휘어져 있는 곳에서는 질량이 0이어도, 시간이 멈추어 있으므로 움직일 수가 없다(밖에서 관찰하였을 때).
그리고 그녀는 시선을 하늘로 향했다.
2곡
15
나는 아무도 지나친 적이 없는 바다를 항해하려 하니,
미네르바다 영감을 불어넣어 주고 아폴론이 이끌어 주며
아홉 뮤즈가 큰곰자리를 가르쳐 준다오.
è 글라우코스의 비유와 연결됨
16
콜키스를 향해 깊은 바다를 건넜던 영웅들도
밭을 가는 농부가 된 이아손을 보고서
여러분만큼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오.
17 - 18
그러나 말해 주세요. 세상에서 보이는
달의 표면에 난 검은 자국들은 무엇인지요?
사람들은 카인의 얘기를 하는데 말입니다.
"감각의 열쇠가 열지 못하는 곳에서
인간의 판단은 잘못된 결론만 낳지요."
è 양자역학의 저술에서 기가 막힌 인용구가 될 것이다.
19
그러나 그대는 하느님께서 다양한 덕들을
다양한 작용 원리에 따라 내리시는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어요.
è " 그러나 말해 주세요. 세상에서 보이는 달의 표면에 난 검은 자국들은 무엇인지요?"에 대한 대답이다. 왜 천상의 별에 오점이 남아있는가?에 대한 절대자의 설명을 듣고 싶었던 것.
22
그대들의 먼지 속의 영혼이
그대들 몸 구석구석에 퍼져
갖가지 기능을 다 하듯이,
이 위대한 지성도 별들에게 제 능력을
골고루 나누어 퍼지게 하고 동시에
그 지성 자체는 일체를 유지하지요.
è 생명의 일체론과 우주의 일체론이 상통하다.
3곡
25 헛된 망상을 지닐 때 그러듯, 그대는 반대로 가고 있어요.
33
그대의 생각은 이런 거지요. '선을 향한 나의 의지가
변함이 없다면 어떻게 다른 자의 폭력이
나의 정당한 공적의 가치를 깎아 내릴 수 있는가?"
è 나의 의문과 동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삶을 산 자에게 죄를 물을 수 있나?
33
플라톤이 주장하듯이, 죽음 이후에 모든 영혼은 제각기 자기 별로 돌아가는 것일까?
35 (대에 대한 대답)
한 하늘이 영혼에 명예든 비난이든
영향을 미치고, 영혼은 늘 그 하늘도 돌아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라면, 그의 활은 진실을 꿰뚫을 거예요.
36
폭력에 고통받는 사람은
폭력 행위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해도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마치 바람이 불어도 불은 타오르는 것이
자연스럽듯이, 의지는 원하기만 하면
굴복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è 불합리한 해석이다.
38
그렇다고 절대 의지가 불의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예요.
다만 불의를 뿌리쳐도 더 그릇된 고통에 떨어질까
두려워하는 한에서만 동의하는 겁니다.
그래서 피카르다는 절대 의지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고 나는 다른 의지를
말하는 것이니, 둘 다 진리를 말한 거예요.
è 황희 정승? 그러나 판결은 내려져서 피카르다는 천국의 가장 낮은 서열에 있다.
è [절대의지]라는 용어가 어색하다. 오히려 피카르다는 [조건부 의지]에 합당한 경우 아닌가?
è (역주) 절대 의지는 나쁜 일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 반면, 조건 의지는 상황에 따라 허용할 수도 있는, 즉 하지 않으면 더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악한 일을 저지르는 의지를 말한다.
è 마이클 샌델, [정의란 무엇인가] : 철로길 패러독스.
39
그렇게 우리의 의심은 진리의 발치에서 솟아오릅니다.
우리의 의심은 높은 곳으로 거듭 우리를
올리는 자연스러운 힘입니다.
39
그러자 베아트리체가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누에 사랑이 타오르고 성스러운 물결이 일었다.
나의 시력은 그 힘에 굴복했다.
눈이 감기면서 나는 어찔한 느낌이 들었다.
è 성스러운 "빛"이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왜 제대로 바라볼 수도 없을 만큼 "빛나야" 하나?
5곡
40
"내가 저 아래 세상에서 보기 힘든
사랑의 열기로 그대를 태워서 그대의 시력을
빼앗는다 해도 놀라지 마세요.
내 사랑의 열기는 보면 볼수록
선을 터득하게 되는 완전한
시각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예요.
è (역주) 베아트리체는 사랑으로 빛을 내는데, 이 사랑은 지상의 감정과 전혀 관계없는 완전한 시각에서 나오는 사랑이다. 그런 시각을 지닌 영혼은 자연스럽게 그것이 지각하는 선("완전한 시각")으로 기울어진다. 순례자는 인간의 시각을 잃는 대신에 완전한 시각을 이루어 나가고, 베아트리체는 그런 순례자를 바라보며 사랑의 열기를 더 뜨겁게 달군다.
è 육체의 삶을 사는 동안 가장 중요한 장기를 상실함으로써 영적 차원으로 진입하다.
è 영화 [서편제] 같구나. 눈을 포기하고 경지에 이르기. 포기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41
하느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실 때
우리에게 주신, 그분이 가장 소중히 여기시고
그분과 가장 닮은 위대한 선물은
의지의 자유였어요. 지성을 지닌 피조물,
그들 전체와 그리고 오직 그들만이
그때나 지금이나 지니고 있는 것이지요.
42 지식이란 이해했어도 간직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는 법이예요.
43
그리고 새로운 것이 이전에 포기한 것을
담지 않는다면 바꾸는 것은 언제나 헛된 일이지요.
6은 4를 넘어서고 담고 있잖아요.
è 상대성이론은 고전역학을 담고 있다.
서원을 지키느라 더 나쁜 일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잘못된 서원을 했습니다.'라고 말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리스의 장군도 몰지각했지요.
è 아가멤논, 단테와 나의 의견이 일치한다니 기쁘다.
45
거기서 나는 나의 여인이 기쁨에 사로잡히는 모습을 보았다.
è 천국에 평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euphoria가 있는 것인가? 마약과 무엇이 다를까?
46
삶의 싸움을 포기하기 전에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영원한 승리의 옥좌를 볼 은총을
지닌 축복받을 영혼이여!
6곡
49 그대가 진실인 동시에 허위인 것을 분명 모순이라 보듯이.
54
그러나 진정한 사랑에서 벗어난
목표를 향해 소망을 키울수록
하늘을 향해 오르는 빛은 더 약해진다.
55 다른 이의 선에 분개하는 자는 악의 길을 걷는다.
55
로메오는 늙고 가난했지만 자존심을 지켜
떠났다. 이리저리 빵을 구걸하며 다니는 동안
그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세상이 알았다면
7곡
57
태어난 적 없는 사람이 자신의 의지에
재갈을 물리지 못해서 자신도
죄를 짓고 그 자손도 죄를 지었지요.
è 어미의 자궁에서 태어난 적 없는 사람. 즉 아담.
è 배경 지식 없이 읽었을 때는 "낙태아"를 의미하는 듯 보인다.
58
자신의 생명의 길을 잃어버리면서 스스로
하느님의 거룩한 정원에서 쫓겨나게 되었지요.
è 조셉 캠벨 : "뱀"이 진정한 하나님이었으며 뱀을 따라 "삶"으로 들어섰다. 생명과 삶이라. 삶은 필멸의 존재가 됨을 의미. 이것이 곧 생명과 대조되는 개념인가? 아니면, 동의어인가?
61
이제 영원한 섭리의 무한한 세계로
눈을 고정시키세요. 그리고 내 말을
가능한 한 잘 들으세요.
è 싫다.
62
하나님은 그저 죄를 사해 주시기 보다는
인간 스스로 거듭날 수 있도록
당신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8곡
68 나는 명주실로 제 몸을 감싸는 누에처럼 축복으로 감싸여 있소.
è 고치가 발전을 위한 준비 과정(일시적 과정)이 아니고 최종 목적지라면 얼마나 답답할까?
è 설사 그것이 silk라 하더라도 거부하리라.
72
자연은 껏어 없어질 초에 그 인장을 찍으며
완전한 순환을 이루는데,
이 집 저 집을 따지지는 않지요.
자연은 운명과 일치하지 않을 때
마치 낯선 토양에 뿌려진 씨가
죽듯이 실패하고 맙니다.
9곡
78 하느님은 모든 것을 보시고 당신은 하느님 안에서 보십니다.
10곡
84 내가 올랐던 태양 안에서 빛나는 것은
스스로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색채가 아니라 빛 그 자체였다.
88 양 떼들은 길만 잃지 않으면 모두가 살찔 수 있소.
11곡
93
피조물들이 그 깊이를 볼 희망도
가질 수 없을 정도로, 세상 모든 것을
깊은 지혜로 주관하시는 섭리는
è 힘이 들때면, 이 모든 것을 관장하는 절대자의 탓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속편했으리라.
95
첫 번째 남편을 여읜 이 여자는
그가 올 때까지 천백 년하고도 더 많은
세월 동안 누구의 초대도 받지 못하며 살았소.
온 세상 사람을 두려움에 몰아 넣은 목소리를 듣고서도
이 여인은 아미클라스와 더불어
태연했다는 소문이 있지만 그래도 혼자였지요.
98
양 떼가 그에게서 아득히 멀어져
여기저기 방황할수록, 우리로
돌아올 때 지니고 오는 젖은 적어진다오.
è 단테는 방황을 죄악시한다. 단편적이군. 단테 스스로도 "방황"의 시간을 보내면서 "신곡"을 썼는데 그는 자신의 처지를 "새옹지마"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까?
è 당신이 가는 모든 길이
12곡
105
대신 죄 많은 세상에 대항하여 진실한 씨앗을 위해
싸울 권리를 요구했고, 그 씨앗이 당신들 주위에
스물네 그루의 나무로 솟아오른 것이오.
106
내가 분명히 말하건대 우리의 책을 한 장 한 장
살펴보는 자는 이 구절을 발견할 것이오.
'나는 항상 있던 대로 있다.'
107
나는 내가 맡은 일에서 세속적인
것들은 언제나 나중에 두었소.
13곡
111 죽는 것이나 죽을 수 없는 것이나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랑으로 키우시는
이데아의 빛을 받고 있으니,
è "죽을 수 없는 것" : 살아있는 않은 것. "죽는 것"은 살아있는 것의 특권이다. 멋진 표현.
하느님의 살아 있는 빛은 하늘과 하늘을
거치면서 점점 약해지면서 마침내
우연적인 것들에까지 이르지요.
'우연'이라는 말은 자라나는 것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움직이는 하늘이 씨앗을 지닌 것 혹은
씨앗이 없는 것으로 만들어 내는 세상의 사물들이요.
è "우연"이라는 것이 신과 대치되는 개념은 아닐까? 모든 것은 신의 뜻이 아닌가?
è 우연도 하늘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때 우연은 "누구에게" 우연인가?
è "우연"이 잘 이해가 안 간다. 분명히 "이해하고 싶은" 심오한 뜻이 내포되어 있을텐데… 이해를 못하니 초조하다.
è "헛소리"와 "단테의 신곡"은 어떻게 구분하나?
è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라디오를 들었다. 인기 있는 디제이들이 사연을 소개하고 연애 상담을 해주었다. 이 비전문가들은 "DJ"라는 의심스러운 명분을 앞세워 잘도 "상담"을 해댔는데, 그럴싸했지만 결국 모두 쓸데없는 조언들이었다. 특히 "알렉스" 마음에 안들었다. 자기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스스로 알기는 할까?
è 단테는 사기꾼이 아니라고 어떻게 단정하지? è "느낌이 말해줍니다. 반드시." 캠벨 형.
è 우리는 "우연"에 대한 하나님의 입장을 이해해야 한다.
114 왕들은 많아도 좋은 왕은 드물지요.
114
그 분별력으로 부디 '네'와 '아니요'를 앞에 두고
가늠하다 지친 사람처럼 느리게 움직이도록
당신 발에 추를 달기 바랍니다.
긍정을 하든 부정을 하든 성급하게
판단을 내리다 보면 지극히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기 쉬우니 하는 말이예요.
급하게 내놓은 의견들은 때로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서, 인간의 교만이
지성을 묶어 놓게 되거든요.
재주가 없이 진리를 낚으러 해안으로
떠나는 것은 불필요를 넘어서 나쁜 일입니다.
떠날 때보다 훨씬 더 나쁜 상태로 돌아올 거예요.
115
자신의 판단을 너무 빨리 믿어서는
안 됩니다. 이삭이 익기도 전에 수확량을 헤아리는
농부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겨울의 긴 시간 동안 앙상하고
드세던 가지에 결국에는 아름다운
장미를 틔우는 것을 내가 보았기 때문이에요.
항로란 항로는 모두 종횡하며 거침없이
항해하다가 항구에 들어올 무렵
침몰하는 배를 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è 헤로도토스의 [역사] : 죽기 전에는 행복을 논할 수 없다.
자신만만한 세상 사람들은 하나가
훔치고 하나는 자선하는 것이 보인다고 해서
하느님의 눈을 통해서 본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누가 오르고 누가 떨어지는지는 알 수 없으니까요.
14곡
117 실체를 꽃피우는 빛
117
여기서 죽어 저 위에서 산다는 것을
언짢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영원한 비의 상쾌함을 여기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119
그것은 우리의 눈을 지치게 한느 빛이 아니어서,
부활한 육신의 모든 기관들은 기쁨을 주는
무엇을 받아들이면서 더 강해질 것입니다.
è 117의 질문에 대한 답 : 당신들의 최후의 심판에 이르러 육신을 다시 입고 시력을 회복할 때 서로의 빛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지 설명해 주세요.
121
여기서 나의 지성은 나의 기억에 패한다. 그 십자가에서
이글거리며 떠오르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지만,
그것을 묘사할 적절한 비유를 찾을 수가 없기에.
124 오를수록 더욱 완전해진다.
è 단테의 신곡, [천국]을 한 마디로 요약한 표현.
è 굉장히 함축적이다.
15곡
125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선을 행하려는 의지에
깃들며 최고의 선으로 향한다. 마치 탐욕이
악을 행하려는 의지에 깃드는 것과 같다.
125
영원히 지속하지 않는 것을 사랑하느라
진정한 사랑을 잃는 사람은
정녕 끝없이 슬퍼하리라.
è 영원성이 없다는 것. 일반적으로 필멸의 존재와 함께 사라지는 소유(재물), 이름(명예)을 뜻하는 것일까?
è 사랑이 무엇인가?
127
그녀의 눈에서는 미소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내 눈은 나의 축복의
깊은 곳, 나의 천국을 스친 것 같았다.
è 단테의 신곡에서 베아트리체는 플라토닉한 사랑의 전형으로 여겨진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는 공원에서 자신의 베아트리체를 만난다.
è [데미안]에서. 내가 시달렸으며 자꾸만 도피했던 성 문제는 이제 이 성스러운 불 속에서 정신과 기도로 승화되었다. 베아트리체의 영상으로 나는 나의 제단을 세웠다. 그리고 자신을 그녀에게 바침으로써 자신을 정신에 그리고 신들에게 봉헌했다. 어두운 힘들에서 내가 뺏어낸 삶의 몫을 나는 환한 힘들에게 제물로 바쳤다. 나의 목표는 쾌락이 아니라 정결함이었다. 행복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정신성이었다.
è 베아트리체를 그림으로 그린다. 그 얼굴은 여자와 남자의 얼굴 반반(에바 부인, 궁극의 여성상)이었고, 결국 데미안의 얼굴임을 알게 된다. 싱클레어는 이 그림을 데미안에게 보낸다. 데미안은 크게 기뻐한다.
è [사라진 신들과의 교신을 위하여] p125 : 원초적 생명력은 강한 회귀본능을 불러일으킨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힘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이 근원적 힘은 신화/종교의 세계에서 대개 여성성으로 표현된다. 주목왕이 만나기를 갈망했던 서왕모, [노자]에서 오묘한 암컷으로 묘사되었던 도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존재의 위기를 느낄 때 우리의 자아는 무의식중에 이 근원적 힘의 경지로 회귀하고자 한다.
è 동시에 경지에 다다른다는 뜻은 자아의 완성을 의미한다.
è 본성(욕정)에 어긋나는 "허구"로서 베아트리체를 부정하거나, 혹은 상징화하거나.
129
당신들을 열과 빛으로 따뜻하게 하고
비추는 일에서 태양은 완전하게 균형을 이루셔서
달리 비교하고 따질 것이 없습니다.
è 비교가 필요 없는 경지. 부럽다. 비교의 피곤으로부터 해방된 존재.
131 그러나 너희들은 높이 오르는 데서 졌듯이 내려가는 데서도 질 것이다.
è 피렌체의 평화와 절제를 묘사하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뜻일까? 지는 것이 긍정적인 의미?
16곡
134 오, 한 줌도 안 되는 우리 피의 고귀함이여!
è 의학 서적의 인용구로 적격
137
사람들이 뒤섞이면 언제나
도시가 타락하는 법, 음식을 이것저것
들이부으면 배탈이 나는 것과 비슷하다.
è 그럴싸해 보이고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지만, 오늘날의 기준에서는 금기시된 생각이다.
138
너희의 모든 것은, 너희들 자신이 그러하듯,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오랜 세월 이어지는
무엇에 숨어 있는데, 인생은 짧다.
è (역주) 인간 자신을 포함해 모든 세상사에 종말이 있다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반복된 진실이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잘 모르는 것은, 그 오랜 세월에 비해 인간의 생이 짧기 때문이다.
17곡
143
"그대의 열망의 불꽃을 방출하세요. 그대의 소망이 뚜렷하게 찍혀 나오도록 하세요. 단지 우리가 아는 것에 좀 더 덧붙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대의 잔을 그대를 위해 채우고 그대의 갈증을 말하는 법을 배우라는 거예요."
144
오, 고귀한 저의 뿌리시여! 보통 사람들은
두 개의 둔각을 지니는 삼각형을 모르듯이,
높이 오르신 하늘의 영혼들은
è 단테가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알았을까?
1853년 : 리만기하학(타원 기하학) : 삼각형 내각의 합이 항상 180도 이상 540도 이하이다
2∠R < ∠A+∠B+∠C < 6∠R
144
제 미래에 대한 불길한 얘기들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영혼은 우연의 충격을 받아도
여전히 사각형임을 느낍니다. 그러니
어떤 운명이 내게 다가오는지 알고자 하는 것이
저의 간절한 바람입니다. 운명의 화살은
기대할 때 더 느리게 날아갑니다.
è 여기서 "우연"이 또 나온다. 평안을 상징하는 사각형.
è 우연이 다가와도 안정할 터인데, 왜 미리 운명을 알고 싶은가? 우연을 감당할 수 없을 때 오히려 미리 알고 싶어하지 않을까?
è 나의 암환자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살지 알고 싶습니다. 그래야 준비를 할 것 아닙니까. 그러니 이야기 해주시죠. 내과 쪽에도 알려달라고 말했는데 확답을 안주시더군요. 내가 괜찮다고까지 했는데 말을 안해주시니 섭섭했습니다."
è 다시 말해, 우연이 주는 충격을 이겨낼 수 있을 때 미리 아는 것도 두려움 없이 가능한 것.
145
"우연이란 어떤 식으로도 너희 세상의
책을 넘어서서 확장될 수 없으며
영원한 통찰 안에서 온전히 그려진다. 그러나
강물을 따라 내려가는 배는
눈에 비치는 대로 움직이는
필연성을 지닌다.
è 접속사 "그러나"가 왜 필요할까?
è (역주) 우연적이고 부수적인 것들은 물질세계를 넘어서서 존재하지 않는다. 즉, 우연은 영원성 앞에서 온전하게 파악된다. 그러나 우연적인 것들을 하느님이 온전히 볼 수 있다는 사실은 하느님의 선지식이 우리가 강물을 따라 내려가는 배를 보며 방향을 알 수 있는 이상의 어떤 일을 예견한다는 뜻은 아니다.
è 접속사 "그러나" 때문에 해석이 완전 달라지네? 역주가 더 어렵다. 역자에 의하면, 우연이란 부수적인 것이고 가치면에서 우연 < 영원, 물질 < 정신이며, 이해 측면에서 우연은 영원에 포함관계이다. 즉, 영원이 이해되면 우연은 자연히 이해된다. "그러나" 그건 그리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강물을 따라 배가 내려갈 루트를 아는 것처럼.
è 마치, 제임스 조이스가, "내가 저 가로등 아래에서 죽는다는 것을 알아도, 저 가로등은 그저 가로등일 뿐이다."라고 말한 것과 상통하나?
è 단테의 "그러나"가 정말 역자의 "그러나" 였을까?
è (내 생각) 우연은 중요하다.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하면 된다. 통제할 수 있는 것을 위해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우연"한 것에서 하나님을 본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연에 대한 선지식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지인지, 아니면 랜덤인지는 알 수 없어도, 하나님이 절대자의 지위를 획득하는 이유는 그가 "다 알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è 배는 눈에 비치는 대로 움직이는 필연성 è 그러나 현대과학은 이 세상이 "확률론"에 보다 가깝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양자역학과 나비이론
146
남의 빵을 먹고사는 맛이 얼마나 짠지,
또 남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너는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를 가장 무겁게 누를 것은
그 슬픈 계곡에서 네가 겪어 내야 할
둔감하고 비열한 자들이다.
148
네 이웃들을 시기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죄와 벌보다 훨씬 더 오래 지속될
미래가 너에게는 있느니라.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 가장 혹독한 시련이
떨어지듯이, 그런 타격을 주기 위해
나를 향해 시간이 질주하며 공격하는 것을 봅니다.
149
자신의 혹은 남의 언행에
부끄러움을 느껴 검게 탄 양심은
너의 말에서 곤혹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그래도 거짓으로 위안하지 말고,
너의 글로 네가 본 모든 것을 드러나게 하고
가려워하는 사람들이 시원하게 긁도록 해주어라.
18곡
156 DLILGITE IUSTITIAM 정의를 사랑하라.
è 단테는 탈권위하여 신곡을 속어인 피렌체어로 썼는데, 하늘에 계신 분들은 아직 피렌체어를 쓰기에는 영 가오가 안섰던 모양이다. 라틴어 : 정의를 사랑하라. 왠지 코믹하다.
19곡
160
세상에서 음식을 찾을 수 없어
오랫동안 굶을 수밖에 없었던
내 배 속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è 난 지금 조청유과랑 구운양파를 먹어서 너무 배부른데… 죄책감을 느낀다.
163 전체
너는 이렇게 말하겠지.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거나 읽거나 쓰는 영혼이 없는
인더스 강변에서 태어나 사람을 생각해 보세요.
그 사람의 소망과 행동은
인간의 이성으로 볼 때 선하고,
말이나 행실에서 죄를 짓지 않지만,
세례를 받지 못하고 신앙을 갖지 못한 채 죽는다면,
이런 영혼을 벌하시는 정의는 무엇입니까?
믿지 않아서라면 그런 죄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코앞도 볼 수 없으면서 심판의 자리에 앉아
수천 킬로미터 너머를 바라보려고 하는
너는 도대체 누구냐?
è 꼭 할 말 없으면 권위자들은 질문자를 윽박지른다. 말인즉슨,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는 뜻 아닌가?
è 나는 크리스나무르티의 강연집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보았다(고발).
우리를 인도해야 할 성서가 없다면,
나와 더불어 세세하게 따져 보려는 사람은
의심밖에 만나지 못할 것이다.
è 의심이 왜 나쁜가?
è 심지어 같은 책 p39
그렇게 우리의 의심은 진리의 발치에서 솟아오릅니다.
우리의 의심은 높은 곳으로 거듭 우리를
올리는 자연스러운 힘입니다.
오, 땅의 피조물들이여! 아, 둔감한 마음들이여!
그 자체로 선하신 최초의 의지께서 최고의
선이신 스스로에게서 결코 떠나지 않으신다.
그 의지와 일치하는 것만이 올바르다.
è 종교를 위한 종교가 도대체 왜 필요한가? 종교는 의심에 대답할 의무가 있다. 수단이기 전에 목적이라고 변명하지 마라.
è 하나님의 모든 것의 창조자라면, 왜 인디아인들은?
è 11억 인도인구가 들고 일어날 대목이네. 이래서 붓다가 하나님과 한 판 붙어야 하는 것이다. "신들의 전쟁"으로 할리우드에서 블록버스터 하나 나와야 한다. 그 신들의 그리스의 잡다하고 클래시컬한 신들이 아닌, 하나님과 붓다 등 세계 문화권의 "유일신"이거나 그에 근접한 존재감을 지닌 신들이어야 한다.
è 엄청나게 욕먹겠지. 종교의 자유를 표방하지만 사실상 기독교 국교인 미국에서는 더더군다나 안팔릴 영화. 제작비도 너무 비쌀 듯. 리처드 도킨스는 왠지 제작비 지원 해줄 것 같다.
20곡
173
내가 말하는 것들을 믿는 것은 옳은 일이지만, 어떻게 그러한지 너는 모르는구나.
네가 비록 믿기는 해도 진실은 숨겨져 있다.
174
너는 이름으로는 사물을 이해하지만 누군가
설명해 주지 않으면 그 본질을
볼 수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는구나.
하늘의 왕국은 뜨거운 사랑과
꿈틀거리는 희망으로 폭력을 기쁘게 견딘다.
오직 이런 힘만이 하느님의 의지를 이길 수 있다.
사람이 사람을 이기는 것과 다르게
하느님의 의지는 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그 자비를 통하여 그렇게 지면서 이기시는 것이다.
175
기도에 힘을 주었던 그 뜨거운 희망은
하느님의 의지를 움직여 그가 생명을 얻어
천국과 지옥을 선택할 자유의지를 갖도록 한 것이다.
è 이 자유의지는 완전하게 자유로운가? 하나님은 자신의 의지로 지옥을 택하는 자들에게도 천국에 오르는 자들을 보듯이 따뜻한 눈, 아니 적어도 중립적인 눈을 유지할 것인가?
176
너희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은 신중하게
판단하라. 하느님을 대면하는 우리도
그분께서 선택한 명단을 알지 못하니.
우리의 이런 한계는 우리의 기쁨이니,
거기서 우리의 선이 완성되는 까닭이다.
하느님께서 무엇을 의지하시든 우리도 의지한다.
è 차라리 모르는 게 속편하다는 뜻?
è 무엇을 의지한다는 말인가?
21곡
184
필멸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나는 악에서 더 나쁜 악으로 옮겨 가는 것일,
추기경이 되라는 부름을 받았다.
è 거부하면 되잖아.
22곡
190
교회가 지키고자 하는 재산은
수도승들의 가족이 아니라
하느님의 이름으로 간구하는 가난한 자들인 것이다.
23곡
199
"그대는 내 얼굴에 취해서
그리스도의 빛 속에서 꽃을 피우는
아름다운 정원으로 눈을 돌리지 않는군요."
200
"나는 천사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께서 계셨던 곳, 그 배 속에서부터
숨을 쉬었던 최고의 기쁨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24곡
209
저에게 관대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심오한 것들은 아래 세상의
사람들 눈에는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단지 믿음 안에서 존재하고, 그 믿음
위에서 높은 소망이 세워집니다.
그래서 믿음을 실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볼 수 없는 것에 대한 논리적 증거는
이런 믿음 위에 세워야 합니다.
그럴 때 믿음은 논증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è 믿음이 있은 후에 논증을 세울 수 있다. 믿고 싶은 대로 보게 되는 거겠지.
201
"그 오래된 명제와 새로운 명제들을 네가
결정적인 증거로 삼는다면, 그것들이
하느님의 거룩한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진실이 저에게 드러내는 증거는 뒤따르는 기적들에서
나옵니다. 이들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니,
자연의 손은 쇠를 달구지도 불리지도 못합니다."
è 그 "기적"이라는 것이, 확률론적 희소성을 보인다는 것이 곧 "영적"임을 증명하나? 어차피 "자연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모두 평등하게 봐도 무방하지 않나? 그냥 세상이 원래 그런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나?
"세상이 기적의 도움 없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였다면, 그것이야말로
어떤 기적보다도 훨씬 더 큰 기적일 것입니다.
211
그리고 너의 신앙의 원천을 말하라!
212
저는 오직 한 분을 믿습니다. 영원하신 유일자 하느님은
당신의 사랑과 소망 안에서 돌고 있는 모든 하늘들을
당신 스스로는 움직이지 않으시면서 움직이십니다.
25곡
220
누구든지 자기 고향에서는
두 겹 옷을 입는다고 이사야는 말합니다.
그의 땅이 곧 이런 행복한 삶입니다.
221
너는 왜 여기에 없는 것을 보다가 눈이 머느냐?
나의 몸은 흙에서 흙으로 있는데, 우리의 숫자가
하느님께서 최후의 심판에서 미리 정하신 총합의 숫자에
이를 때까지 다른 자들과 함께 있을 것이다.
26곡
나를 보느라 고갈된 너의 시력을
되찾을 때까지 논의를 계속하면서
그 보상을 하는 것이 좋겠다.
225
인간의 이성이 증명하고 그 이성과 일치하는 하느님의 계시가 말해 주듯, 너의 가장 높은 사랑은 하느님을 향한다.
è 과학에서 하나님이 없다고 하면, 종교는 항상 과학으로는 증명할 수 없다고 말하지.
27곡
235
그러니, 아들아! 필멸의 무게를 지녔으니 너는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 입을 열어라. 그리고
내가 감추지 않는 것을 감추지 마라.
è 신이 직접 하면 안되나? 왜 신은 인간에게 증명 받기를 원하면서 스스로 현현하지 않는가?
28곡
245
그대의 손가락이 약해 그러한 매듭을
풀기 어렵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지요.
워낙 단단한 것은 시험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249
나중에 그레고리우스는 거기에 반대했지만,
그가 죽은 뒤 이 하늘에서 깨어나서 진리를 보고
자신의 실수에 웃었다고 합니다.
29곡
하느님의 선을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고,
그럴 수도 없지만, 오히려 하느님 당신의 빛에 놓인
영광은 영원성 안에 '나 스스로 있다.'라고 선포합니다.
253
타락의 원인은 그대가 저 아래에서 보았듯,
지옥의 심연에서 우주 전체의
무게에 눌린 자의 저주받은 교만이었어요.
그대에게 바라건대, 의심이 간다면,
은총을 받아들이는 능력은
사랑의 능력과 같다는 것을 믿어야 할 거예요.
è 모든 사기꾼이 그렇게 말한다.
254
더 말을 해 주고 순수한 진리를 보여 주려고 합니다.
세상에서는 순수한 진리를 이러저러한 논쟁들로
모호하게 만들며 혼동하고 있어요.
30곡
264
그리고 가면을 쓴 사람들이 자신들을
감추었던 자기가 아닌 얼굴을 벗어 버릴 때
이전과 생판 다르게 보이듯이,
31곡
270
또 보고 싶었던 성전을 둘러보고 난 뒤,
기쁨으로 피로를 씻은 순례자가 집으로 돌아가서
이를 어떻게 묘사할까 고민하는 심정으로
272
가능한 모든 길들로, 모든 수단들을 사용하여
당신은 나를 속박에서 자유로 이끌었습니다.
당신은 모든 것을 이루는 힘을 지녔습니다.
è 육체의 속박에서 영혼을 해방시킴.
32곡
281
결국 저들의 행적에 따라 각자
다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께서
창조하실 때부터 내리신 은총에 따른 것이다.
è 단테랑 말이 잘 안통하겠는데…
33곡
당신 안에는 자비가, 당신 안에는 박애가 있습니다.
289
마치 꿈을 꾸면서 뭔가를 보는 사람이
꿈에서 깨어나면 그 열정은 자국으로
남고, 나머지는 마음으로 돌아가지 않듯이,
내가 지금 그러하다. 비록 나의 눈은 흐릿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내 눈으로 본
그 달콤함은 가슴속에 아직도 방울진다.
291
의지의 목표인 선이 모두 거기에
모이기 때문이고, 그 외부에서는
완전이 곧 결핍이기 때문이다.
내가 저자라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는 어린 소녀의 나이로 미지의 세계를 "혼자" 여행한다. 단테의 경우는 여행지가 "지옥"이라는 점 때문인지 그의 스승이 함께 따라다닌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에의 질문에 응답해주고 그가 견학을 잘 할 수 있도록 시야를 확보해주기 위해 안아 들기도 하며, 그의 상처를 치료도 해준다. 여행 내내 단테는 스승의 대견스러운 제자이며 단 한번도 스승의 의견에 반항하지 않는다. 순례자의 자유의지는 지옥의 카리스마 앞에 잔뜩 위축되어 있다. 그의 의견은 곧 스승의 방패 뒤에 숨었다가 추임새나 넣는 사소한 리액션에 해당한다.
단테를 위한 변명을 조금 하자면, 그에게 중요한 것은 천국이며 그 곳에 이미 가 있을 베아트리체와 상봉하는 것은 인생의 의무이다. 그렇다면 <천국의 베아트리체>에 해당하는 인물이 연옥과 지옥에도 존재해야 한다. 베르길리우스는 베아트리체와의 대칭성 때문에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아마도 단테는 훌륭한 모범생이지 않았나 싶다. 사랑하는 여인 베아트리체에게 고백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던 그의 심성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신곡]이 기행문이 될 것인지 아니면 소설이 될 것인지를 가르는 중요한 기로에서도 단테는 그만 소심해져 버렸다. 소설의 구성에 해당하는 핵심 요소인 "인물"이 빠져버린 것이다. [신곡]에서 순례자는 그저 주변을 보는 "눈"으로만 존재한다.
그래서 단테의 신곡은 재미가 없다. 아무런 긴장감이 없다. 무슨 천국과 지옥 투어 홍보물 같다. 지옥의 불도 한 두 번이고, 천국의 빛도 두 세 번이면 족하다. 단테가 신곡을 집필한 의도가 인류를 사후 세계에 단련시켜 호연지기를 기르게 하는데 있지 않다면, 조금은 반전을 기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가령, 주인공이 인도인이라든가. 혹은 왕권 탈환에 실패한 자로서 천국의 하나님 권좌를 노리는 자라든가. 궤도 루팡이나 셜록 홈즈 같은 인물이라든가. 혹은 무신론자여도 재미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타인의 성품에 대한 철저한 빙의가 필요한데, 자신의 이드를 꽁꽁 싸매둔 단테에게는 이러한 작가적 허용도 심적 부담감이 컸으리라. 무릇 작가는 자신의 속에 있는 것을 쓸 수 밖에 없으며 단테에게 [신곡] 속의 단테는 자기 자신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상과 내용은 훌륭하지만 극적 장치는 허술하지 않나 싶다. 단테가 지옥과 연옥, 천국을 여행하게 된 계기가 모호하며 왜 그가 선택되었는가에 대해서도 단테 자신은 질문을 하지만 대답이 모호하다. 조금 더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보았으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단테가 순례자로서 대표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단테가 지옥에서 자신의 정적들을 만난다는 설정은, 그의 작품을 자칫 개인의 상상 일기장으로 전락시킬 우려가 있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그림을 함께 실었던 민음사의 선택은 탁월하였다. 덕분에 신곡을 읽는 내내 눈이 즐거웠고, 고전의 가치를 재확인할 수 있었다. 그림을 보면 글만 보았을 때만 허용되는 상상력이 제약된다고들 하는데, 이 경우는 오히려 그림을 통해 이해력이 더욱 상승하였다. 단테의 신곡은 묘사가 뛰어나지만 시 형태이기 때문에 함축적이고 간결하여 시각적으로 풀어낸 시도가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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