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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28일 11시 24분 등록
 

신곡

지은이 단테/ 번역 허인/ 동서문화사


저자에 대하여

***단테의 출생에 대하여

단테는 이탈리아가 낳은 최고의 시인이다. 단테 알리기에, 세례명이 두란테(Durante)이므로 두란테 알리기에리라고도 부른다. 두란테는 ‘참고 견다는 자’라는 의미이며 그 축소형이 단테(Dante)이다. 그는 1265년 피렌체에서 태어나 1321년 라벤나에서 56년의 생애를 마쳤다.

단테의 어머니는 맑은 시내가 흐르는 푸른 벌판의 큰 월계수 나무 아래에서 사내아이를

해산하는 꿈을 꾸었다. 그 아들은 월계수 나무에서 떨어진 열매와 맑은 시냇물만을 먹고서 거의 즉각적으로 목동이 되어 자신의 열매를 먹은 월계수나무의 잎사귀를 따려고 온 힘을 다해 애쓰는 것이었다. 그가 애쓰다가 넘어졌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가 다시 일어섰을 때 그녀가 보기에 그는 사람이 아닌 공작이 되어 있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출산을 하게 되었고, 아들을 낳았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와 합의하에 그에게 단테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참 걸맞은 이름이었다. 우리가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이 아이는  그 이름에 정확히 부응했기 때문이다.  -단테의 생애 /조반니 보카치오- <새로운 인생 중 P112>


*****단테의 청년기와 학문

이탈리아에 특별한 영광을 가져다 줄 이 사람은 1265년에 우리들의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때 로마제국은 앞서 언급했던 프리드리히 왕의 서거로 인해 통치자가 없는 상태였고, 우르비노 4세가 교황으로 즉위해 있었다. 그가 태어난 집안은 당시의 세상 정세를 고려해 볼 때 행운을 누리고 있었다. 그이 천재성으로 인해 장차 다가올 영광에 대한 많은 조짐들이 나타났다.

단테는 유년시절의 가장 초기부터 이미 문학의 기본을 배웠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정신과 시간을 오늘날 기족들의 유행처럼 어머니 무릎에서 편안하게 뒹굴면서 젊은이의 색욕과 나태함에 바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태어난 도시에서 인문학을 꾸준히 연마하는데 바침으로서 그 학문들에 있어서 전문가가 되었다는 사실에 나는 주목하려고 한다.

그는 순간적인 부를 경멸하고 영원한 명예를 좇아 t 창작에 관한 완전한  지식과 작시법을 통해 그 창작법을 설명하는 지식을 습득하는 일에 전념했다. 이 훈련과정에서 그는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 스타티우스 및 다른 유명한 시인들과 매우 친숙하게 되었다. 그는 이들 시인들을 알게 된 것을 기뻐했을 뿐만 아니라, 때가 되면 우리가 얘기하게 될 그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고상한 이들을 모방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시인들의 생각은 역사, 도덕 및 자연철학 없이는 제대로 이해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적절하게 배분하고 오랜 공부와 수고를 동반하여 여러 선생들 밑에서 역사와 철학을 모두 통달하려고 노력했다.

하늘 아래 감추어진 사물들의 진실을 알아내는 달콤한 기쁨에 사로잡히고 인생에 있어 이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서 그는 모든 세속적인 근심을 완전히 버리고 오직 이것에만 전심전력했다. 철학의 전 영역을 샅샅이 뒤지겠다는 목표하에 그는 예리한 천재성으로 가장 심오한 신학의 심연까지 꿰뚫었다. 그 결과는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열기와 한기, 철야와 금식 및 다른 모든 육체적인 역경을 괘념치 않고 열심히 공부해서 그는 신학과 다른 학문에서 인간의 지식으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지식을 얻었다.

  첫 번째 기초들을 그는 자신이 태어난 도시에서 습득했다. 그곳으로부터 그는 학문의 양식이 더욱 풍부한 곳인 볼로냐로 갔다. 그리고 노년에는 파리로 가서 많은 대론을 통해 자신의 드높은 천재성을 발휘하여 너무나 큰 영광을 얻었기 때문에 그의 청중들은 그 얘기를 할 때면 지금도 여전히 놀라워한다. -단테의 생애 /조반니 보카치오- <새로운 인생 중 P119~120>


***신곡과 같은 대작을 남긴 단테의 교양은 어떠한 지적환경을 배경으로 형성되었을까

중세에는 이미 12세기 이후 여러 곳에 ‘대학’이 있었지만 피렌체에는 아직 없었다. 단테는 이웃도시 피도바와 볼로냐에서 공부했다고 전해진다. 단테는 대체로 피렌체에서 교양을 쌓았다. 당시 피렌체 문화의 중심인물 중 한 사람은 ‘브루네토 라터니’였다. 이 인물은 키케로에 의거한 <발상론>이라는 수사학 저서도 썼고 아직 대학이 없었던 피렌체에서 청년층의 지적 계몽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 고명한 문인이다. 단테 역시 시인으로서 언어 훈련을 그에게 받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라티니에’에게 힘입은 바가 크다 해도 단테는 그를 훨씬 능가해 서양문학 전체의 거장이 되었다. 피렌체는 단테 이후 문예의 고향으로 번영했으며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후세에 꽃을 피운 문화의 원천인 인물을 당시 피렌체가 추방했다는 것은 아테나이가 소크라테스를 사형에 처한 일과 마찬가지로 문화역사상 기구한 일이다. 내게 수수께끼였던 점은 단테가 신학과 철학을 어디서 배웠는가 하는 것이다.

  단테는 1300년에 ‘프리오레(Priore)’라는 중요한 직위에 선출된다. 이는 ‘장관’을 의미하는 단어이며 오늘날로 말하자면 도시국가의 총리에 상당하는 지위이다. 단테는 피렌체를 발전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정치에 관여했고 결과적으로 정치 문제에 휘말리게 된다. 피렌체의 정치상황은 복잡하며 그에 관해서는 지옥편을 읽어가면서 상세하게 서술할 필요가 있다. 프리오레로 뽑힌다는 것은 명예이기도 하나 동시에 행정적 책임을 져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피렌체의 정세는 복잡했다. 단테가 정계에 들어섰을 당시, 피렌체는 교황을 지지하는 겔프당이 지배했지만, 이 당이 다시 흑당과 백당으로 나뉘었고, 흑당은 교황과 백당을 분리시키는데 성공해 백당에 속햇던 단테는 결석재판소에서 세금 사용에 관련된 독직죄(瀆職罪)와 도시와 황제에 대한 음모죄를 선고받고 벌금과 2년간의 추방형을 선고받는다.

  그런데 단테는 이 판결이 부당하다며 당국의 출두명령에 응하지 않아 결국은 극형에 처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단테는 1302년에 사형을 선고받았고 피렌체에서 체포되면 처형(화형)되기 때문에 그곳을 탈출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사실상 피렌체에서 영구 추방되었다. 그 후 이탈리아 전역을 도망다니며 망명생활을 했고, 마지막에는 현재의 라벤나에서 1318년부터 죽음을 맞는 1321년까지 영주 ‘구이도 다 폴렌타’의 보호 아래 자식을 불러들여 가까스로 평온하게 살 수 있었다.

  단테는 망명생활 중 파리로 가서 센강을 사이에 둔 유명한 노트르담 사원 맞은 편에 있는 ‘생 줄리앙 르포브’교회에 한동안 몸을 숨겼다고도 전해진다.

  단테는 1321년 9월에 라벤나에서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고향 피렌체로 돌아갈 수 없었다. 피렌체에서 그리 멀지 않은 라벤나에서 피렌체로 돌아갈 수 없었던 것은 괴로운 일이었을 게 틀림없다. 프리오레로 선출되어 피렌체 도시를 잘살게 하고자 노력한 사람인 그는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영원한 여인 베아트리체를 만나고 도한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았다. 그렇게 삶의 뿌리를 단단히 내렸던 피렌체에서 서른일곱에 추방령을 당한 단테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는 것은 너무도 고통스럽고 힘겨운 일이었을 것이다. 단테는 그런 일생을 보낸 사람이다.

<단테 신곡 강의 중 P122~124/ 이마미치 도모노부지음/안티쿠스 출판사>

***단테는 그의 인생의 시작부터 임종때까지 이러한 평온과 은둔이 아니라 격렬하고도 참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한 열정을 가졌으며 부인이 있었고, 집안과 공공의 일에 대한 걱정, 유배, 빈곤에 시달렸다.



*** 단테는 왜 베르길리우스를 스승으로 택했을까?

<신곡>은 유혹에 무릎을 꿇을 것 같은 패배자의 신분에서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시점에서 다시 시작한다. 그러므로 <신곡>의 출발점은 호메로스보다는 베르길리우스에 가깝다. 지금 단테를 공부하는 우리들도 갖가지 인간적인 고통에 직면해 잇다. 패배자도 있을 것이고, 개중에는 세간에서 보면 그다지 패배한 듯 보이지 않더라도 신의 눈으로 보면 패배에 가까운 상황에 있는 사람도 잇을 것이다. <신곡>은 그러한 상황에 처한 우리가 다시금 일어설 수 있도록 힘차게 이끌어준다.

단테의 출발은 유혹과의 싸움에서 진 패배자의 몸이라는 데 잇다고 했는데, 그와 동시에 고향 피렌체에서 쫓겨나 유형에 처해진 신분이라는 점이 중첩되어 있다. 그리고 유랑생활 속에서 마땅히 돌아가야 할 고향을 그리워한다. 즉 노스탤지어인데, 여기에서 인식해둬야 할 점은 호메로스가 그린 노스탤지어와 베르길리우스의 그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한편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 보이는 노스텔지어는 고귀한 건국신화가 없었던 로마가 찾아내야 할 정신적 근거지를 향한 동경이다. 요컨대 노스탤지어라고 하더라도 과거로의 노스탤지어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노스탤지어인 것이다. 희망이 없어서는 안되는, 도 그 희망은 단순한 환상과는 달리 온갖 곤란과 싸우며 실현해가야만 하는 그러한 미래로의 향수이다. 바로 이 점이 단테가 호메로스가 아닌 베르길리우스를 스승으로 공경한 특별한 이유였음을 밝혀두고 싶다.

<단테 신곡 강의 중 P84/ 이마미치 도모노부지음/안티쿠스 출판사>


****단테와 베아트리체

단테와 반드시 한 쌍으로 묶이는 사람은 그의 영원한 연인 베아트리체(Beatrice)이다. 단테는 1265년 5월 베아트리체는 이듬해 6월에 태어났으니 대략 한 살 차이다. 단테는 아홉 살 때 베아트리체를 처음 만났고, 그 후 왕래가 있긴 했겠지만 이렇다 할 사건 없이 지내다 열여덟 살에 재회했을 때 그녀의 인사를 받는다. 베아트리체는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었고 단테는 아홉 살 때 만남에서도 ‘영혼이 전율하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고 쓰고  있다. 열여덟 살에 길에서 만난 베아트리체의 인사로 인해 평생 잊을 수 없는 내적 경험을 한다. 그때 단테는 그녀에게서 여성의 이상, 천사같은 여성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이후 두 사람은 맺어지지 않고 각자 반려자를 얻어 따로따로 가정을 이루지만 단테에게 베아트리체는 영원한 동경의 대상이었다.

단테의 알리기에리 가문도 상당한 명문이엇지만, 베아트리체는 그보다 유명한 발디(Baldi)가문으로 시집을 갔고 얼만 지나지 않아 스물네 살 나이에 죽음을 맞는다(1290년) 이후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가슴속에 살아남는다. 이 세상에서는 떠났지만 베아트리체는 천국에 있고 단테는 그곳에서 재회할 날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평생동안 사모의 정을 품는다.

<단테 신곡 강의 중 P121/ 이마미치 도모노부지음/안티쿠스 출판사>



***베아트리체와 그리스도교

단테는 삶의 길을 걸어가는 와중에 정치 문제에 관여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끝내는 고향 피렌체에서 추방당해 유랑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런 패배의 시기에 패배로부터 다시 일어서는 아이네아스를 슨 베르길리우스와 상념의 세계에서 만나게 도니다. 그리고 베르길리우스를 스승으로 삼고 정신의 길을 걸어가고자 한다. 그 발걸음 속에서 그의 마음에는 늘 격려가 되어 준 사람이 소년 시절에 만나 일종의 영원한 사랑 같은 걸 느끼게 했던 베아트리체였다. 베아트리체는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갔고 자기보다 일찍 세상을 떠났지만 베아트리체의 배후에 있는 마리아를 통하여 단테는 천국으로 향하는 길을 조금씩 더듬어 간다.

<단테 신곡 강의 중 P104/ 이마미치 도모노부지음/안티쿠스 출판사>


단테와 <신곡>을 보는 다양한 시각들

***재능이 뛰어난 망명자의 무리 속에서 발전한 세계주의는, 개인주의 의 최고 단계의 하나이다. 단테는 이탈리아어와 이탈리아문화에 대한 새로운 정신상의 고향을 발견한 사람인데, 그는 그 단계를 다시 초월하여 ‘내 고향은 전세계이다’라고 까지 말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추방 중에 있던 그가 굴욕적인 조건하에 사람들로부터 피렌치로의 귀국을 권유받았을 때 단테는 다음과 같은 답을 써 그들에게 보냈던 것이었다.

‘해나 별빛을 본다는 것은 내가 아무데나 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지 않는가. 명에를 빼앗긴 굴욕적인 몰골로 고향 앞에, 피렌체 시민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더라도 비록 고향은 떠났으나 하늘 아래 어디서든지 감미로운 진리에 대해 나는 명상할 수 있지 않은가. 귀국하지 않더라도 설마 굶지야 않겠지.’

그러나 역시 다른 면에서 단테는 애절한 망향의 정을 읊고 있다. 단테의 피렌체에 대한 감정에는 애증이 뒤섞여 있는 것같이 보인다.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에 있어서의 르네상스 문화>중에서 (<신곡> 동서문화사 P712 주참조)


***시몬드는 그의 <단테연구> 속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도로 완성된 일련의 정밀화 속에 대표적인 인물을 늘어놓고 단테의 개별적인 체험을 통해서 보편적인 것이 표시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단테의 운명에 관한 특수적인 것도 바져 있지 않기 때문에 독자의 흥미는 가실 줄 을 모르는 것이다”

단 시몬드의 이 비평은 지옥편, 연옥편에는 적당하나 천국편에는 그만큼은 적당치 않다.  (<신곡> 동서문화사 P712 주참조)


***단테는 최고의 기독교적 상상력을 가진 시인이다. - W.B.예이츠-

***봉건적 중세기의 종결과 근대적 자본주의의 단초는 한 위대한 인물을 표지로 삼을 수 있다. 그 인물이 바로 단테이다. 그는 최후의 중세시인인 동시에 최초의 근대 시인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


***서양의 근대는 단테와 셰익스피어에 의해 양분된다. 그 사이에 제 3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T.S. 엘리엇


***<신곡>은 고딕으로 된 대사원에 비할 만한 건축물이라 해도 어울릴 구조로 된 작품이다. 마치 돌로 된 성당이, 그 전체를 멀리서 봐도 훌륭하고, 또 세부적인 공작을 가까이서 자세히 봐도 아름답듯이, 전체의 골격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도 한 부분 한 부분을 다로 떼어 읽을 수 있는 시가 수없이 새겨져 있다.

대사원의 문 옆에 늘어서 있는 조각을 전체와의 연관을 젖혀놓고 독립적으로 하나하나 감상하는 것 같이, 그 개개의 시에 대해 느끼는 마음이 없다면 철학의 체계도 종교의 교리도 <신곡>의 설명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허인(신곡 역자)



****그리스도교에 관하여

그리스도는 문학적인 말로 가르침을 전한다. 그 유명한 산상수훈 중에 ‘들의 백합을 보라’는 말이 있다.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그것들은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이 곷 한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입지 못했다.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도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

  이 말을 들으면 정말로 눈앞에 들판의 백합이 떠오른다. 솔로몬의 영화가 절정에 달했을 때 입고 있던 왕의 옷은 다 낡아 이제는 볼 수도 없지만, 들판의 백합은 지금도 피어난다.

오늘 피어 있을지라도 내일은 연료가 되어 아궁이 속으로 내던져지는 들판의 꽃조차도 신께서는 그토록 아름답게 치장해 주는데 하물며 우리를 돌보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러나 무엇을 입을 것인가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 그다지 연연하지 마라. 신은 받드시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가르침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시같은 말씀을 하신 그리스도는 아마 구약성서 <시편>을 많이 읽었을 것이다. <단테 신곡 강의 중 P100/ 이마미치 도모노부지음/안티쿠스 출판사>


***베아트리체에게 바치는 소네트

1.

나의 여인은 너무나 고결하고 순수한 모습이어서

   그녀가 길을 가다 인사를 건네면,

   사람들은 혀가 떨려 할 말을 잃게 되고,

보고 싶어 하지만 눈이 견디지 못하네.

들리는 칭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는 겸손의 옷을 입고 태연히 걸어가네.

  지상에 머무르기 위해 천상에서 내려 온

사람 같구나, 기적의 실체를 보여주기 위해.

사람들의 눈에 비친 그녀는 너무나 사랑스러워

눈을 통해서 깊숙이 숨은 심장은 맛보네.

맛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달콤함을.

그녀의 입술로부터 흘러나오는 듯하네.

사랑으로 가득한 부드러운 정령이,

그리고 영혼에게 간단없이 말하네. “한숨지어라!”


  2.

 정말로 그 사람은 완벽함 그 자체를 보았네

    여러 여인들 가운데서 내 여인을 본 사람은.

    그녀와 함께 겸손히 걷는 자들은 모두가 하느님께

 감사해야 하리라. 그처럼 특별한 은총을 주신데 대해.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너무나 완벽해서

   질투의 표정을 전혀 자아내지 않고

   사랑과 복된 신의와 고결한 마음만을

그녀 곁에 끌어들이네.

그녀를 보기만 해도 만물은 고개를 숙이네.

    그녀의 모습은 자신만을 더없이 성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그녀와 함께 하는 다른 사람들도 고결하게 하네.

그녀의 모든 행동에서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은총이 흘러넘쳐서

  진실로 사람들은 그녀 생각을 할 수가 없다네

     지극한 사랑의 고통을 겪지 않고선.


  3.

마음의 슬픔으로 울고 있는 눈은

   슬픔이 소진할 정도로 오래 울어서

     더 이상 흘릴 눈물도 없다.

이제, 조금씩 조금씩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이

  일부를 내가 덜어버리려 한다면

    말을 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구나.

    생각에 잠겨, 빈번한 내가 생각해 내기 때문에

그녀가 떠나가기 전, 상냥한 여인들이여.

  그대들과 더불어 그녀 얘기를 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웠던지를.

  나는 다른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는다.

여인의 마음을 가진 자가 아니라면

   말할 수 없기에 여전히 흐느낌으로 나는 말하리라.

그녀는 갑자기 천국으로 가버렸다고

나와 같이 통곡하도록 사랑의 신만을 지상에 남겨둔 채.


베아트리체는 높은 천국으로 가버렸다.

  천사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 왕국으로.

     친구들에게는 죽은 목숨이지만, 그녀는 천사들과 살고 있다.

 겨울 서리도 그녀를 앗아가지 못했고

    여름의 열기도 그녀를 앗아 가지 못했지만.

완벽한 고결함이 그녀를 데려갔다.

   그녀의 온유한 겸손의 등불로부터

비길 데 없는 영광이 솟아올라

  영원한 아버지께 잠들었던 경이로움을 깨워,

  달콤한 욕망이

주님에게 생겨났다. 그 아름다운 고결함에 대한,

  그리하여 주님은 그녀로 하여금 자신을 열망토록 했다.

이 피곤하고 사악한 곳은 그처럼

우아한 것이 머물 곳이 못된다고 판단하시고.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문장

제 1곡


인생길 한 가운데에

올바른 길을  벗어난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어두운 숲 속에 있었다.

☆☆☆ 이 세 구절은 이탈리아 국민 누구나 읊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단테는 <향연>에서 ‘내가 믿는 바로는, 인간이 자연의 힘으로 최고 정상에 올라서는 35세 무렵이다. 구세주 그리스도 34세에 돌아가셨다’라고 적고 있다.  서양전통에서는 35세무렵이 인간이 바야흐로 절정에 이르는 시기라고 말한다. 따라서 첫 행의 인생길 한가운데는 구체적으로 35세를 가리킨다고 봐야 한다. 단테는 35세에 피렌체의 프리오레가 되었다.

여기에서 숲은 일종의 메타포로 전망이 펼쳐지는 본래의 올바른 길에 대비되며 ,향연.dpt도 ‘과오의 숲’을 의미한다.

  원문 이 3행의 시로 <신곡>은 올바른 길, 진정한 길을  신을 향하는 순례의 길, 산을 향해 오르는 길을 일려주는 종교서적인 것이다. 그러나 교의학적 줄거리를 내세우는 게 아니라, 인간학적 구성과 시적 상징으로 빛나므로 읽는 사람은 그 속에서 자기자신을 발견한다. 읽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단테가 되어 방황하고 괴로워하고, 기대고 매달리고 배우고 빛에 접하게 된다. <단테 신곡 강의 중 지옥편1/ 이마미치 도모노부지음/안티쿠스 출판사>


그 가혹하고도 황량한, 준엄한 숲이

어떠했는지는 입에 담는 것조차도 괴롭고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그 괴로움이란 진정 죽을 것만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만난 행복을 이야기하기 위해

거기서 본 두세 가지  일을 이야기할까 한다.


어떻게 해서 그곳에 발을 들여놓았는지는 쉽게 말할 수가 없다.

당신 나는 그저 쓸데없는 일에 공연히 열중되어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숲 속에서 내 마음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으나

그래도 그 골짜기 끝에 이르렀을 때

나는 어느 언덕 기슭에 다다를 수 있었다.

고개 들어 바라보니 언덕의 능선이

벌써 새벽빛으로 환하게 싸여 있었다.(태양의 빛으로 휘감겨 있었노라)

모든 길을 통해 사람들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태양의 빛이었다.


그러자 가련한 꼴로 지낸 하룻밤 내내

내 마음 깊이 서려 있던 불안도

조금은 가라앉게 되었다.

그리하여 난파를 겨우 피해 가까스로 해변에 이른 사람이

괴로운 듯이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몸을 돌려 거친 바다를 바라보듯,

나의 넋은 여전히 도망치려 하면서도

뒤를 돌아 지나온 쪽을 바라보았다.

일찍이 사람이 살아서 나온 예가 없는 숲이 그곳에 잇엇다.

피로한 몸을 잠시 쉬고 나서 나는 인적 없는 비탈길을 계속 비틀거렸다.

그런데 곧 산의 오르막길에 접어들자

경쾌하고도 민첩한 표범 한 마리가 나타났다.

털가죽에 알록달록 점을 한 그것은

나와 정면으로 마주쳤으나 떠나려고도 않고

도리어 내 길을 가로막아

나는 몇 번 오던 길을 되돌아갈까 학 뒤돌아보았다.

그때는 마친 날 샐 무렵이어서

태양이 별들을 거느리고 올라왔다.

신의 사랑이 처음으로 천지의 아름다운 사물을 움직였을 때에도

태양과 더불어 있었던 그 별들이었다.

이 아침이라는 시간도 이 상쾌한 계절도

털빛 선명한 표범을

무서워할 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마음을 놓는 것도 잠시, 이번에는 사자 한 마리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것은 나를 향해 달려올 기세이다.

머리를 쳐들고 허기진 채 으르렁대니

대기마저 두려움에 떨고 있다.

잇따라 암이리까지 나타났다.

전에도 수많은 사람을 절망하게 했을

피에 굶주려 말라비틀어진 저 암이리,

나는 그놈을 보았을 때 겁에 질린 나머지

얼이 빠져

언덕으로 올라갈 희망을 버렸다.

바라던 물건을 손에 놓은 자가

세월이 흘러 그 물건을 잃게 되었을 때

애석한 나머지 눈물지으며 슬퍼하듯,

그 가차 없는 짐승이 내 희망을 끊은 꼴도 그와 비슷하였다.

짐승들은 나를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온다.

나는 태양이 침묵하는 쪽으로 서서히 물러섰다.


내가 골짜기로 도망치는 도중

눈앞에 사람이 나타났다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 그런지 목이 쉬어 있었으나

이 인기척 없는 곳에서 그를 본 나는

큰소리를 외쳤다. “살려주시오,

당신이 사람이건 귀신이건 간에 날 구해주시오.“

그가 대답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전에는 사람이었다. (주:베르길리우스는 기원전 70년부터 19년에 걸쳐서 산 고대 로마의 시인이다. 지금은 사람이 아니고 그림자, 즉 영혼이다.)

부모님은 롬바르디아 사람이었고

두 분 다 고향은 만토바였다.

태어난 때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시대, 그것도 후기였지.

그리고 어지신 아우구스투스 황제 통치대 로마에서 살았다.

거짓투성이 이교(異敎)의 신들이 판을 치던 시대였다.

나는 시인이었다. 그래서 트로이에서 온 앙키세스의

정의감 강한 아들 ‘아이네이아스’를 시로 읊었다.

자랑스러운 일리온 성이 모두 불타버렸기 때문이다.

한데 너는 왜 이런 고뇌의 골짜기로 되돌아오는가?

어찌하여 기쁨의 산에 오르지 않는가,

모든 환희의 시초요, 근원인 저 기슭의 산에?

“그럼 당신이 바로 그 베르길리우스,

벅찬 강물처럼 말의 원천이 되었던 분이십니까?“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오오, 시인의 명예이고 빛이신 당신,

오랫동안 한결같이 깊은 애정을 기울여

당신의 시집을 읽은 나에게 동정을 베풀어 주십시오.

당신은 나의 스승이고 나의 시인입니다.

내가 자랑으로 삼는 아름다운 문체는

오직 당신에게서 배운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 짐승을, 저놈한테 쫓겨 되돌아온 것입니다.

스승님, 여기서 나를 구해주십시오.

저놈이 있으면 맥박도 혈관도 모두 떨림이 멎지 않습니다.”


“이 황무지에서 벗어나길 원한다면

다른 길을 택해서 가는 것이 네게 좋겠구나.”(주: 베르길리우스가 단테에게 언덕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지옥, 연옥, 천당을 보고 나서, 즉 다른 길을 지나갈 것을 권하며 직접 안내를 맡는 대목이다.)

내 울상을 보고 스승이 대답했다.

“너를 두려움에 울부짖게 하는 저 짐승은

누구든 자기의 길을 지나가게 재버려 두지 않느리라.

반드시 지독하게 학대한 끝에 잡아먹을 것이다.

천성이 흉악하고 잔인하여,

피에 굶주려 먹어도 먹어도 만족을 모르며,

먹기 전보다 머고 난 뒤에 더욱 허기지는 놈이다.

저놈이 교미하는 짐승의 수가 많으니

장래에는 더 많이 늘어나겠지만, 결국은 사냥개 펠트로가 나타나

저놈의 숨을 끊을 것이다.


너에 대해서 여러 가지 궁리가 떠올랐다.

나를 따라오너라, 너를 안내해주마.

여기서부터 너를 영원한 ‘지옥’으로 데리고 가마.

거기서 너는 절망의 외침을 들을 것이다.

가책으로 괴로워하는 고대 사람들의 망령을 보리라. 모두가 두 번째 죽음을 소리쳐 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연옥의 불꽃 속에서 만족하고 있는 사람들도 보리라.

언제인가는 모르나 행복한 사람들의 무리 속에

끼게 되리라는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다.

복된 사람이 사는 ‘천국’에도 오르고 싶다면

나보다도 더 훌륭한 분이 계시니

헤어지기 전에 너를 그분에게 맡기겠다.

왜냐하면 천상에 계시는 황제께서

내가 그의 율법을 거스른 전력이 있는 이상,

남이 나같은 자의 안내로

왕국에 들어오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황제는 모든 곳에 군림하고 통치하신다.

거기에는 황성과 옥좌가 있다.

황제에게 뽑혀 그 나라로 가는 이는 행복하리라.” (17P)


제 2곡


해는 저물고 저녁 안개가 자욱하여

지상으 사람과 동물은 노도에서 풀려나는데,

오직 나만이 홀로

나그네 길의 고달픔과 애련의 고뇌에 맞서

싸울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 여행의 광경을 기억은 거짓없이 전해 주리라.


오, 시의 여신이여, 오, 탁월한 재능이여, 지금 나를 도우소서.

내가 본 것을 새겨 둔 기억이여,

너의 진가는 이제야말로 발휘되는 것이다.


내가 입을 열었다. “스승님, 스승님이 나를 인도해 주십니다만

이 험준한 길을 넘어가기에 앞서

내 힘이 견뎌 낼 수 있을지 시험해 주십시오.

당신 책에 의하면 실비우스의 아비는

살아있는 몸 그대로 영원의 나라에 가

직접 견문을 쌓았다고 했습니다. (20P)


대범한 시인의 그림자는 대답했다.

“네 마음은 겁에 질려 있는 것 같다.

사람이란 때때로 겁을 먹는 모양인데,

그래서 흔히들 명예로운 일도 포기하는 일이 있지만,

그것은 어둠 속에서 그림자를 보고 겁내는 짐승과 다를 바 없다.

네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않도록

왜 내가 여기 왔는지, 무슨 말을 듣고

너를 동정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마.


나는 천당도 아니고 지옥도 아닌 곳에 있었는데,

고귀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나를 부르기에

그 분부를 받고 나아갔다.

그분은 별보다도 밝은 두 눈과

천사 같은 목소리로

상쾌하고 여유있게 나에게 말했다.

‘오, 만토바의 친절한 분이여,

당신의 이름은 지금도 세상에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이어지는 한 오래오래 전해지리라 믿습니다.

내 친구로서 운이 없는 사람이

인적이 없는 적막한 산비탈에서 길이 막혀 고생하다가

두려운 나머지 어떤 길로 도로 돌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내가 천상에서 들은 바로는

이미 길을 잃고 헤매고 잇는 듯하니

그를 구하러 달려온 것이 너무 늦지 않았나 염려됩니다.

자, 어서 당신의 웅변으로 설득해서

구할 수 있다면 어떻게든지 살려주어

나를 기쁘게 해 주소서.

당신에게 심부름을 청하는 나는 베아트리체입니다.(주: 베아트리체는 단테가 마음속으로 흠모하여 <신생>에서도 찬양한 여인이다. 그녀는 신성을 상징하며 구원을 의미한다. 베르길리우스가 지옥과 연옥을 안내하고 천국은 베아트리체가 안내하게 된다.)

곧 돌아가야 하지만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나는 사랑에 움직여 그에 의해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 앞에 나설 때는 당신을 특별히 칭찬해 드리리다.(23P)


이렇게 말하고 여인은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내가 말을 이었다.

‘오, 덕스러운 여인이여, 당신이 계심으로 해서

비로소 인간은 이 천지간의 조그만 권내에 있는

모든 것보다 우월하게 되는 것이므로

당신의 명령에 기꺼이 복종하겠습니다. (25P)


‘그토록 바라신다면

왜 내가 두려움 없이 여기까지 왔는지

간단하게 말씀드리지요‘여인은 대답했다.

“남에게 악을 끼칠 힘이 잇는 자에 대해서는

경계를 해야만 합니다.

그 밖에는 아무 것도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나는 하느님의 은혜로 인하여

당신네의 비참에도 물들지 않고

이 영원한 불길에도 타지 않게 되었습니다.

천상의 고귀한 여인 ‘마리아’께서 내가 당신을

보내는 곳의 방해물에 동정하시어

천상의 엄한 노여움을 푸시고

루치아를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25P)


밤의 냉기에 고개를 숙인 채 오므라졌던 작은 꽃이(주: 이 꽃은 아를테면 <신곡>가운데 자주 쓰이는 직접적인 비유의 한 예로서 시적으로도 아름다우며, 단테의 정신 상태를 정확하게 명시한다.)

해가 돋아 오르자 반짝반짝 빛나며

모두 고개를 들고 줄기 끝에서 활짝 피듯이

나도 의기소침에서 되살아나

마음속에 힘찬 용기가 넘쳐나서

저 풀려난 사람처럼 입을 열었다.

“나를 구해 주신 자비로운 여인,

그리고 그분의 참다운 말씀을

재빨리 들어주신 친절한 당신! (26~27P)


마치 자그마한 꽃이 밤의 한기에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가

해가 이를 쇠하게 할즈음 모두

일어나 줄기 위로 피어나듯이

나 쇠잔함에서 되살아나니,

내 마음에 용기가 용솟음쳐

두려울 것 없는 사람처럼

나는 말하였노라.

오, 자비 가득하여라 나를 구하신 여인,

온정 깊어라 그가 이르신

참된 말씀에 서둘러 따르신 그대 (야마키와 번역)


제 3곡


“슬픔의 나라로 가고자 하거든 나를 거쳐 가라.

영원의 가책을 만나고자 하는 자 나를 거쳐 가라.

파멸의 사람들에 끼고자 하는 자 나를 거쳐 가라.

정의는 지족하신 주를 움직여

주의 위력, 지상의 지혜, 그리고

사랑의 근본이 나를 만들었노라.

내 앞에 창조된 것이 오직 영원 말고는 없나니,

나는 영원으로 이어지는 것이니라.

나를 거쳐가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리라.”(30P)


영원한 것 외에는 나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 없나니,

그리하여 나 영원토록 서 있으리라.

너희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야마키와 번역)


이러한 말이 어두운 색깔로

문 위에 새겨져 있었다.

그것을 보고 나는 물었다. “스승님, 저는 이 말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그는 풍부한 이해력을 가지고 나에게

“여기서는 모든 의심을 버려야 하며

두려움도 모두 없애는 것이 좋다.

우리가 온 곳에서는, 아까도 말했듯이

지성의 선을 잃은 비참한 사람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밝은 표정으로 스승은 자기 손을

내 손에다 포개었다. 그것에 위안을 받고

스승에게 이끌려서 나는 비밀스런 세계로 들어갔다.(31P)


내가 말했다. “스승님, 저렇게까지

울부짖지 않으면 안될 만큼 저들의 죄가 무겁습니까?“

“너에게 그걸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들에게는 죽음의 희망조차 없는 것이다(주: 속으로 소멸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것을 바라겠지만 그들에게는 그런 희망도 없다. 육체는 멸망해도 영혼은 영원한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들의 맹목적인 생활은 실로 저열하기 짝이 없어

다른 어떤 운명이라도 부럽게 보이는 것이다.

세상은 이런 자들의 이름이 전해질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자비도 정의도 이자들은 업신여긴다.

그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마라, 그저 보고만 지나가라.(32P)


제 4곡

줄거리: 정신을 되찾은 단테는 베르길리우스를 따라 분화구와도 비슷한 원을 이룬 첫 번째 골자기로 들어선다. 그곳은 림보라고 불리는 데, 거기에는 선량하나 그리스도교의 세례를 받지 않은 자들의 영혼이 떨어져 있다.


무서운 천둥이 머릿속의

깊은 잠을 깨뜨렸다. 나는 억지로

두들겨 깨워진 사람같이 벌떡 일어났다.

피로가 가신 눈을 두리번거리며

내가 있는 곳이 어딘가를 알기 위해

똑바로 서서 주의 깊게 살폈다. (40P)


귀를 기울여 들은 바로 짐작하건대 여기서

영원의 공기를 진동시키는 것은

한숨이지 통곡이 아니었다.

이것은 어린이, 여인, 남자가 이룬

수많은 사람들의 집단이

신체적 고통 없는 슬픔으로 내쉬는 것이었다.

스승은 고통없는 슬픔으로 나에게 말했다.

“너는 이 사람들이 어떤 영혼인지 묻고 싶지 않느냐?

더 앞으로 나아가기 전에 한 가지 더 내게 가르쳐 주마.

그들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며 덕이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세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례는 네가 믿고 있는 신앙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41~42P)


"다른 세 사람 앞에 서서 왕자(王者)처럼

손에 칼을 들고 오는 사람을 보라.

저자가 시인의 왕 호메로스이다.

다음에 오는 것이 풍자시인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가 셋째이고 맨 끝이 루카누스이다.

아까 나를 부른 ‘시인’이라는 한마디의 이름을

이분들은 모두 나에게 경의를 표한 것은 고마운 일이야.”(45P)


우리는 빛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 사이의 화제는, 그때엔 이야기하기에 적당했지만

지금은 말을 않는 것이 적당하다.

우리는 어느 고귀한 성 밑에 이르렀다.

높은 성벽이 일곱 겹으로 성을 에워싸고

주위에는 아름다운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우리는 그 냇물을 마치 단단한 땅이라도 딛듯이 밟고 지나갔다.

나는 현자들과 함께 일곱 문을 지나서

상쾌하고 푸른 잔디밭에 이르렀다.

거기엔 유연하고도 엄숙한 눈매의 사람들이 있었다. (45P)


철학의 족보 속에 자리를 차지하는

지혜자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가 보였다.

모두가 그를 주시하고, 모두가 그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이어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보였다.

두 사람은 누구보다도 그의 가까이에 서 있었다.

세계의 우연성을 풀이한 데모크리토스,

디오게네스, 아낙사고라스, 탈레스,

엠페도클레스, 헤라클레이토스, 제논,

그리고 ‘식물’의 특성을 열성껏 조사한

자 디오스코리데스, 오르페우스,

키케로, 리노스, 도학자(道學者)인 세네카,

기하학자 유클르드, 프톨레마이오스,

히포크라테스, 아비첸나, 갈레노스,

그리고 일대 주석서를 엮은 아베로에즈,

이러한 학자 모두들에 대해 빠뜨리지 않고 말할 수는 없다.

시제(詩題)가 길어서 내가 쫓기고 있으므로

아무래도 사실보다 말이 모자라게 되어 버리는 것이다.

☆☆☆여기 유명한 철학자들은 그리스도교가 생기기 전의 사람들이다. 그들이 단지 세례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죄다 제 1지옥으로 떨어뜨린 것을 보면 단테의 깊은 신앙심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신곡>은 문학이기 전에 신학으로 분류되어하 지도 모른다.

W.B. 예이츠는 “단테는 최고의 기독교적 상상력을 가진 시인이다”라고 말했다.


제 5곡


줄거리 : 제 2옥에 들어서니 입구에서 죄업을 규명하는 미노스가 버티고 서서 이를 갈고 있다. 미노스는 죄상에 따라 영혼을 저마다의 골짜기로 떨어뜨린다. 제 2옥의 중천에는 육욕의 죄를 범한 자에게 지옥의 광풍이 쉴새 없이 휘몰아치고 있다.


이리하여 나는 제 1옥으로부터

제 2옥으로 내려갔다. 여기는 장소가 좁았으며,

그런만큼 고통도 심한지 괴로운 신음소리가 들려온다.

그곳에 미노스가 버티고 서서 무서운 형상으로 이를 갈고ㅗ 있다.

입구에서 미노스가 죄를 심사하고,

꼬리를 감는 수에 따라 형벌과 갈 곳을 정한다.

성질 나쁜 망자가

그 앞에 나가 모든 것을 자백할 때 죄과를 알고 있는 미노스는

그 영혼이 지옥의 어디에 떨어짐이 적당한가를 판단하고,

보내고자 하는 지옥 층수대로

제 꼬리로 몸을 감는 것이다. (50P)


그곳을 지나니 애처로운 목소리가 내 귀에도

들려왔다. 수많은 신음소리가 귀전을 때리는 곳에

내가 지금 온 것이다.

여기서는 모든 빛이 입을 다물었으며,

그 외침 소리만이맞바람의 폭풍을 만나

바다가 일으키는 풍랑 소리와도 같았다. (51P)


“스승님, 검은 바람이 저토록

매질을 하고 있는 저들은 누구입니까?”

“네가 그 사연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 중

맨 앞을 가는 여인은” 하고 그는 나에게 말했다.

“언어를 달리한ㄴ 수많은 믽ㄱ에게 군림했던 여제(女帝)이다.(주: 기원전 14~13세기 아시리아 황녀 세미라미스로 아랍명은 삼부 라마트이다)

음탕한 생활에 탐닉햇기 때문에

세상의 비난을 초래했으나 그것을 지우기 위해

법률을 정하여 엽색을 합법화했다.

그 이름은 세미라미스, 서적에 의하면

니노스의 아내로서 그 뒤를 이어

지금 술탄이 지배하는 나라를 영유했다고 한다.

그 다음은 시카이오스가 죽은 후 정조를 깨뜨리고 사랑에 바졌다가

실패하여 자살한 여인 ‘디도’이다.(디도: 카르타고의 여왕. 남편 시카이오스가 살해당하자 도망쳐 나와 아프리카에서 나라를 세운다. 그곳을 방문한 아이네이아스를 사랑했으나 버림을 받고 자결하였다.)

그 다음이 음탕한 여인 클레오파트라,

헬레네도 보이지, 저 여자로 인해

재난의 시간이 오래 계속되었다. 위대한 아킬레우스도 보이지.

그도 사랑 때문에 끝내는 사지(死地)에 이르렀다.

그리고 파리스도 트리스탄도......하며

사랑 때문에 현세에서 쫓겨난

천이 넘는 영혼들의 이름을 들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상냥한 마음에 순식간에 타오르는 사랑이

나의 아름다운 몸으로 그를 포로로 만들었습니다.

산목숨이 죽게 된 그 일이, 나는 지금도 괴롭답니다.

어떤 연인에게도 사랑할 것을 허락지 않던 사랑이

좋아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만큼 나를 사로잡아

보시다시피 지금도 여전히 나를 버리지 않습니다.

사랑은 우리 두 사람을 같이 죽음으로 이끌었습니다.

우리 목숨을 빼앗은 그자는 반드시 카이나의 나라로 떨어질 거예요.

☆☆☆ (주: 프란체스카는 그곳의 성주 구이도 다 폴렌타의 딸로 1275년 무렵 리미니의 성주 잔치오토 말라테스타에게 출가했다. 그녀는 속아서 미남인 동생 파울로와 선을 보았는데, 결혼 후에야 자신이 절름발이고 추남인 형 잔치오토와 결혼한 것을 알게 되엇다. 그녀는 결국 파울로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그와 함께 남편에게 살해되었다. 단테의 베아트리체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과 이 프란체스카의 이야기는 시인의 내면에서 연결되는 점이 있었던 것 같다.


d 상심의 혼이 하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잠시 고개를 못 들었다.

그러자 시인이 나엑 물었다. “무엇을 생각하나?”

나는 대답했다. “아, 감미로운 생각, 욕망이

얼마나 컸기에 그들은

그것이 원인이 되어 이 비참한 길에 덜어지고 말았는지요!“

그리고 나는 두 사람 쪽을 돌아보고 말했다.

“프란체스카, 당신의 괴로움은

참혹하고 불쌍해서 절로 눈물이 나는군요.

그러나 들려 주시오, 달콤한 한숨을 쉬던 무렵에

어떻게 해서 사랑의 허락을 받고

감추어진 상대편의 애정을 알아차릴 수가 있었습니까?”


그러자 여인이 내게 말했다. “불행 속에 있으면서

행복하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만큼 쓰라린 일은 없습니다.

그것은 당신 스승께서도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 사랑의 시작을 당신이 그토록

알고자 하신다면

울면서 이야기하는 사람처럼 애기해 드리겠습니다.

어느 날 우리는 심심풀이 삼아 란첼로토가 어떻게 해서

사랑에 끌렸는지 그 이야기를 읽고 있었습니다.

단둘이었으나 별로 꺼림칙한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 책을 읽는 도중 수차 우리들의 시선이 맞부딪쳐

그대마다 얼굴빛이 변했습니다만

다음 한 구절에서 우리는 지고 만 것이에요.

그녀의 동경하던 미소에 그 멋진 여인이 입을 맞추는

구절을 읽었을 때,

나에게서 영원히 떠날 수 없는 이 사람은

떨면서 나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 책을 슨 사람은 갈레오토입니다.

그날 우리는 더 읽지를 못했습니다. (57P)

☆☆☆프란치스카와 파울로의 사랑이야기 말하자면 형수와 시동생의 사랑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어 독자들에게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역사적인 사건을 시속에 잘 배치하는 단테의 글솜씨를 배워야 한다.

한 영혼이 이렇게 이야기하느 동안

다른 영혼이 하염ㅇ벗이 우니, 너무나 애처로워

나는 죽은 듯 넋을 잃고

죽은 몸이 넘어지듯이 쓰러졌다. (57P)


제 6곡

줄거리 : 제 2옥에서 단테는 사랑에 빠진 형수와 시동생 프란체스카와 파울로를 보고 나서 충격으로 정신을 잃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 3옥에 와 있다. 거기서는 생전에 많이 먹은 자들이 차가운 비를 맞으며 벌을 받고 있다. 케르베로스라는 세 개의 머리가 달린 괴물이 그들을 물어뜯으며 짖어댄다. 



케르베로스는 사납고 기괴한 짐승이 (주: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옥문을 지키는 개로 머리가 세 개 달린 괴물이다)

이 구정물과 얼음에 묻힌 자들 위에서

세 개의 목구멍으로 개처럼 짖어댄다.

그 눈은 핏발이 서 뻘겋고 털은 기름져서 거무스름하다.

잔뜩 부른 배에다 칼날 같은 손톱으로는

망자들을 할퀴고 뜯어 갈기갈기 찢는다.

비를 맞고 망자들은 개처럼 짖어대며,

등을 돌려 배를 감사고 배를 돌려 등을 감싼다.

이 비참하게 모독당한 자들은 뒹굴면서 몸부림친다. (60~61P)


이렇듯 미래에 대한 것을 조금 이야기하며

우리는 발걸음도 느릿느릿

망령과 빗물이 더럽게 뒤섞인 속을 나갔다.

그때 나는 물었다. ‘스승님, 이 고통은

마지막 심판의 판결이 난 뒤에 커집니까,

작아집니까, 아니면 지금과 마찬가지로 엄합니까?”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너의 학문으로 돌아가거라.

그 학문의 체계에서는, 사물은 완전하념 할수록

그만큼 기쁨도 고통도 강하게 느낀다고 되어 있다.

이런 저주받은 자들은 결코

참다운 완전에 도달하지 못하지만,

심판을 받은 뒤에는 ‘육체를 회복하므로’ 전보다는 완전에 가까워진다.”(64P)

☆☆☆너의 학문이란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의 학문 체계를 말한다. 단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제 7곡

줄거리 : 제 4옥에는 인색가의 무리와 낭비가의 무리가 둥근꼴로 생긴 길 위에서 무거운 짐을 굴리면서 소용돌이처럼 서로 반대 방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우리 왼편에 있는

까까머리들은 모두 성직자입니까?”

그러자 스승이 말했다. “그들은 모두

몹시 마음이 비뚤어졌기 때문에 첫 번째 삶에선

도저히 돈을 유효하게 쓸 줄 몰랐다.

죄에 다라 저자들은 지옥의 두 지점에서 갈라져 있다.


앞쪽에 있는 자들은 본디 성직자였다. 머리에 머리카락이 없지.

생전에 교황과 추기경이었던 자도 있다.

이들은 탐욕이 그지없는 자들이다.”(68P)


마찬가지로 세속의 영화에 대해서도

그것을 전적으로 맡아보는 ‘운명’이라는 여인에게 지휘를 명하여

헛된 부귀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어떤 민족에서 다른 민족으로 어떤 혈족에서 다른 혈족으로

사람 제주로는 따를 수 없는 곳에서 옮겨가도록 정해져 있다.

그래서 이 여인의 선고에 다라

어떤 자는 번영하고 어떤 자는 망하는 것인데,

그 선고는 풀 속의 뱀처럼 박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지식도 운명에는 못 당한다.

운명이라는 여인은 다른 신들이 자기 영토를 다스리듯

자기 세력 범위에서는 모든 일에 대비하여 판단하고 처리한다.

운명은 쉴 새없이 모습을 바꾸며

필연은 운명을 빨리 움직이게 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또 저렇게 변하게 되는

이것이 운명이라는 여인이다.

그런데 운명을 찬양해 마땅할 자들도 그녀를 원망하고 있다.

엉뚱한 비난이다. 비뜰어진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축복받고 있으므로 그런 것에는 귀기울이지 않는다.

시초에 만들어진 다른 자들과 함께 즐거운 듯이

운명의 테를 돌리며 행복을 즐기고 있다. (70P)

☆☆☆단테는 운명의 여신을 상정해 놓고 있다. 우리의 운명은 정말 운명의 여신의 장난인가? 내 힘으로 이루는 것 같아도, 그곳엔 우연과 행운이 언제나 작용하고 있다.


물은 색이 짙다 못해 까맣게 흐려져 있다.

우리는 그 검은 흐름을 타고

인적이 없는 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갓다.

검실검실하게 음울한 벼랑 아래로

이 구슬픈 강물은 흘러 떨어져서

스틱스라는 이름의 늪을 이루고 있었다.

내가 조심스레 멈추어 서서 눈여겨 보자

그 늪 속에 잠긴 진흙투성이 사람들이 보였다. (70~71P)


제 8곡


나는 말했다. “스승님, 벌서 둥근 지붕의 회교 사원이

저 골짜기 속에 또렷이 보입니다.

마치 불길 속에서 꺼낸 것처럼 새빨갛군요.”(78P)

(주 : 단테는 기독교인으로서, 당시의 회교도 세력의 진출을 두려워했고, 이러한 감정에서 지옥의 하층계 건물을 둥근 지붕의 회교식 사원으로 설정했다. 그전에 십자군이 점령한 동방의 거점은 13세기를 통해서 거듭 회교도의 수중으로 넘어갔으나 그리스도 교계는 내부 분열 때문에 그에 대항하지 못하고 있었고, 단테는 그러한 사태에 대해 상심하고 있엇던 것이다.)


제 9곡


줄거리: 지옥의 세 복수의 여신이 탑 위에 나타난다. 천상의 사자가 내려와 스틱스강을 건너 지옥의 안쪽 문 앞에 서서 지팡이로 쳐서 문을 연다. 사자는 악마들을 혼내주고 단테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떠나간다. 그 문 안의 제 6옥으로 단테가 들어가니 여기저기에서 눈에 보이는 무덤들이 불길을 뿜고 있다.  그 속에서는 이교와 이단의 무리가 파에 따라 묻혀서 불태워지고 있다.


탑 꼭대기는 빨갛게 타올랏고,

피로 물든 지옥의 세 복수의 신이 재빨리 일어섰다.

그 모습과 태도는 여자다웠고,

허리에는 초록빛 바다뱀을 디로 감았으며,

머리에는 실뱀과 뿔뱀이 돋아나

무서운 형상으로 관자놀이에 칭칭 감겨 있었다.

이들은 영원한 가책의 여왕이 거느린

시녀들이었는데, 그것을 재빨리 알아차린 스승이 말했다.

“봐라, 흉악하기 이를 데 없는 에리니에스들이다.

왼쪽에 잇는 것이 메가리아(질투의 신),

오른쪽에 울고 있는 것은 알렉토(분노의 신),

티시포네(복수의 신)는 가운데 있다.”

그리고는 스승은 입을 다물었다. (85P)


특히 무덤의 모양은 더한층 비참하였다.

무덤과 무덤 사이에서 불꽃이 내뿜어져

무덤이 깡그리 타고 있는데,

대장간에서도 쇠를 이토록 달구지는 않으리라 싶었다.

무덤의 뚜껑은 모조리 쳐들리고

참으로 애처로운 한탄 소리가 새어나온다.

무척이나 비참하게 상처받은 자들의 목소리다.(89P)


제 10곡


“이 무덤에 누워있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을까요? 벌써 뚜껑은 모두

쳐들려 있고 아무도 지키는 이도 없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모두 마지막 심판이 끝나’

 지상에 남기고 온 송장과 함께

여호사밧에서 돌아오면 무덤은 닫혀진다.

무덤 앞쪽 구획에는

영혼이 육체와 함께 사멸한다고 풀이한

에피쿠로스와 그의 제자들이 묻혀있다. (92P)

(주 :여호사밧: 최후의 심판이 내려지고 영혼은 다시 육신을 갖게 된다는 뜻의 지명으로  4세기 이래 예루살렘 동쪽과 감람 산 사이의 기드론 골짜기로 여겨지고 있다.)


제 11곡


아들아, 하고 스승이 말을 시작했다.

“이 바위 골짜기부터는

네가 이미 본 것들과 똑같은 세 개의 옥이

아래로 내려감에 따라 층층을 이루면서 좁아져 간다.

그곳들은 모두 저주받은 망자들로 가득 차 있다.

나중에 볼때 바로 알 수 있도록 ,

지금 그자들이 갇히게 된 사연과 광경을 들어 두도록 해라. (101~102)


폭력으로 남을 죽게 하거나

중상을 입히거나, 타인의 소유물을

불태우거나, 멸망시키거나, 횡령하거나 하는 자가 있는데

살인자나 고의로 나쁜 짓을 한 자,

파괴나 약탈을 일삼는 자는 모두

이 제 1원에서 죄에 따라 벌을 받는다.


인간은 스스로 자기 자신 또는

자기 재산에 대해서도 폭력을 가할 수가 이Te.

rm 때문에 현세에서 자기 목숨을 끊은 자며,

노름방을 다니며 재산을 탕진한 자는

본래 행복해야 할 곳에서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결국 제 2원에 와서 아무 보람도 없이 후회를 해야만 된다.


신에 대해 폭력을 행하는 일이 있을 수도 있다.

마음속으로 신성(神性)을 부정하고 모독하며,

자연과 신의 혜택을 경멸하는 일이 그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제일 좁은 원에서는 소돔이며,

카오사르며, 마음으로 신을 멸시하고

입으로 신을 모독한 자에게 낙인을 찍는 것이다.

반드시 양심의 가책을 남기는 사기는

자기를 믿어 주는 사람에게도

자기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실행할 수가 있다.

이 후자는 인간 본래의 사랑의 인연만을

끊을 뿐이다. (102~103P)

(주: 소돔-구약의 <창세기>에 등장하는 도시, 현재 사해(死海)남부 수몰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너는 <윤리학>에 있는 말을 잊었느냐?

네 책에는 하늘이 용서하지 않는 세 가지 성질에 대한 논술이 있었을 것이다.

방종과 사악과 광적인 수욕(獸慾)이 바로 그것인데,

방종은 신에 대한 죄로서는 그 정도가 낮으므로

그만큼 벌도 가볍게 끝난다. (104P)

(주: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 제 7권에서 도덕상으로 피해야 할 세 가지로 부절제, 악덕, 수심(獸心)을 든다.)


"오, 태양이여, 모두 혼란이 가시고

의문이 풀리므로 나는 무척 기쁩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의문도 지식 못지 않게 기쁜 것이군요.

☆☆☆의문하라! 의문을 품고 질문하라.


고리대금업이 주님의 사랑에 위배된다고 하신 까닭이 궁금합니다.

“철학이 그걸 배우는 자에게 수차 가르치고 있듯이,

무릇 자연은 모두 신의 지혜와 그 재주에 의해

그 나아가야 할 길을 택하고 있다.

인간의 재주는 대체로 가능한 한 자연법칙에 다르고 있다.

마치 제자가 스승을 따르는 것과 같이.

그러므로 인간의 재주는 주에 대해서 말하자면 손자뻘이 된다.

이 ‘자연과 재주’의 두 가지 수단으로 인간이 생계를 세워서

자손을 번영시키야만 한다는 것은

창세기의 첫머리를 기억한다면 알리라.

그러나 ‘고리’를 탐하는 자는 딴 길을 택하여

자연 자체와 자연에 따르는 것을 멸시하고,

그것과는 다른 것에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이다. (104~105P)


제 12곡


일설에 의하면 사랑에 의해

세상은 이따금 혼돈으로 돌아간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때 여기 있는 이 오래된 바위도 부서지고,

또 다른 곳에서도 산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자, 눈여겨 골짜기를 보아라. 피의 강이 가까워졌다.

폭력을 써서 남을 상처 입힌 자들이

저 강 속에서 삶아지고 있다. (109P)


오, 눈먼 탐욕이여, 미친듯한 분노여,

너희들이 짤막한

인생에서 우리를 몰아붙였던 것은

영원한 ‘지옥’속으로

우리를 비참하게 빠뜨리기 위해서였단 말인가!(109P)


저게 알렉산드로스 대왕이오.

오랜 세월에 걸쳐

시칠리아에 압제를 폈던 디오니시우스(시칠리아의 시라쿠사의 왕으로 폭군)도 있소.(112P)


제 13곡

줄거리: 단테는 제 7옥의 제 2원으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자기 육체에 폭력을 가한 자살자와 자기 재산을 마구 탕진한 자들이 있다. 전자는 옹이투성이의 굽은 나무가 되어 있고, 후자는 검은 암캐에게 쫒기며 물어뜯기고 있다.


“왜 나를 찢느냐?

너에게는 한 조각 연민의 정도 없느냐?

지금은 나무로 변했지만 우리도 본래는 사람이었다.

설사 우리가 뱀의 혼이었다 할지라도

네 손이 이렇게 거친 짓은 삼가야 하거늘“

푸른 생나무 토막의 한쪽 끝이 탈 때

다른 한 쪽 끝은 지글지글 진물을 흘리며

뜨거운 기운이 새어나오듯 푸지직 푸지직 소리를 낸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가지 꺾인 둥치에서 말소리와 피가

함께 흘러나왔다. 나는 나뭇가지를 땅에 떨어뜨리고

겁먹은 사람마냥 멈추어 섰다.(117P)


어찌하여 혼이 이런 옹이진 둥치 속에 갇히게 되었는지,

상관없다면 곡절을 이야기해다오. 전에 한 사람이라도

그런 가지에서 벗어난 혼은 없었는가?


그러자 둥치는 몹시 한숨을 쉬며 바람이 일으키더니

순식간에 이런 목소리로 변하였다.

“자네들한테 간단하게 대답하지.

격한 혼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육체에서 떠났을 때

미노스는 제 7옥으로 그 혼을 보낸다.(주: 미노스-제우스와 에우로페 사이에 난 아들로 크레타의 전설적인 왕)

떨어질 곳은 이 숲이지만 자리는 정해져 있지 않다.

운명이 던지는 곳에 이르러

실가지의 씨앗처럼 움을 터서

새순이 돋아나고 야생의 큰 나무가 된다.

그러면 하르피아이가 그 잎사귀를 쪼아

고통을 주고, 그 고통에다 또 고통을 준다.

‘최후의 심판 날’에는 우리도 함께 시체를 찾으러 가나

아무도 그것을 몸에 걸칠 수는 없다.

자기 스스로 버린 것을 다시 갖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가지 우리는 시체를 끌고 온다.

이 비참한 숲 여기저기서 우리들의 육체는

고통받는 자가 영혼의 가시나무에 걸리게 된다. (120P)

☆☆☆자살을 한 사람은 생나무둥치에 갇히게 된다. 스스로 육신을 버렸기 때문에 다시는 육신을 가질 수 없다. 스스로 육신을 훼손했기 때문에 나무둥치에 갇힌 채 다른 사람들로부터 몸을 훼손당하는 벌을 받게 된다.


제 14곡

줄거리 : 단테는 제 7옥의 2제 2원에서 제 3원으로 넘어간다. 제 3원은 황량한 사막으로, 그 뜨거운 모래 위에서 신과 자연과 기법을 거역한 자가 눈 같은 불덩이를 맞으며 벌을 받고 있다.


지중해에는 

지금은 멸망하여 없어진 크레타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그곳의 왕이 지배한 세상은 깨끗햇다.

거기에는 ‘이다’라 불리는

샘물이 솟아나고 초목이 우거진 낙원과도 같은 산이 있었다.

지금은 과거의 번영은 간 곳 없이 사라지고 없다.

레아가 자기 아이의 요람지로서 택한 곳도

그 산이었다. 그리고 어덯게 해서든지 아이를 숨기려고

아이가 울 때마다 ‘노예에게 일러’ 고함을 지르게 했다.

그 산 속에는 늙은 거인 하나가 우둑 서서

등을 다미이타 쪽으로 돌리고

거울을 들여다보듯 로마를 쳐다보고 있다.

거인의 머리는 아름다운 순금으로 되어있고,

두 팔과 가슴은 순은이며,

그리고 가랑이까지는 구리,

그 아래는 모두 쇠로 되어 있었는데,

오른발만은 구운 흙으로 되어 있었다.

중심은 오히려 이 발 쪽에 걸려 있다.

순금이 아닌 부분은 죄다 금이 가 있어

그 틈에서 눈물이 흐른다.

그 눈물이 모여서 바위를 꿰뚫고,

흐름이 바위에서 바위를 타고 내려

이 좁은 도랑을 거쳐 아래쪽

아케론, 스틱스, 플레제톤 강이 되고

더 이상 내려갈 수 없는 곳에까지 이르러,

코치토스를 이룬다. (주: 코츠토스는 지옥 맨 아래에 있는 얼어붙은 강)

☆☆☆거인의 눈물이 지옥을 건너는 세 개의 강물을 이룬다. 멋진 상상력이다.


제 15곡


나는 허리를 구부려 얼굴을 마주보다가 깜짝 놀라 대답했다.

“브루네토 스승님, 여기 계셨습니까?”

“오 아들아, 지장이 없다면

이 브루네토 라티니가 동료들을 먼저 보내고

너와 함께 잠시라도 이 길을 되돌아갔으면 좋겠구나.”

“스승님, 꼭”

“이 무리 속에서

잠시라도 걸음을 멈추는 자는 그 뒤 백 년 동안 누워서

불덩이를 맞으며 고통을 겪어야 한다.

그러니까 먼저 가거라, 내가 너를 따라가마.”(132P)

(주:브루네토 라티니는 단테의 스승으로, 피렌체에 있는 바르젤로의 단테의 초상 옆에 있는 것이 그의 상이라고 한다. 그가 지옥에 떨어진 이유는 우리는 그가 호색자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단테는 스승을 지옥에 떨어뜨리긴 했으나 그를 대하는 말씨나 태도의 정중함을 유지하여 존경심을 보이고 있다. 1294년에 죽었다.)


“스승님께서 인간이 생(生)에서 아직도

 쫒겨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언제나

사람이 어떻게 해서 불후(不朽)의 명성을 얻을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시던 인자하고 상냥하신 모습이

머릿속에 새겨져 있어 나는 지금도 감동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얼마만큼 스승님께 은혜를 느끼고 있는지를

살아있는 한 내 말로써 널리 알릴 작정입니다.

어떠한 운명이라도 달게 받을 각오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언은 내 귀엔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운명의 여신은 운명의 바퀴를, 농부는 가래를, 그

들 마음대로 돌리면 되는 것입니다.”(134P)


제 16곡


“오, 피렌체여, 벼락부자들 대문에

네 안에 오만 불손한 풍조가 생겨,

그로 인해 너는 이미 울고 이미 괴로워하였도다.”

하고 나는 얼굴을 들고 외쳤다.


제 17곡


“보라, 뾰족한 꼬리가 돋친 괴상한 짐승이 산을 넘어온다.

성벽과 무기를 쳐부수는 놈이다.

보라, 온 세상에 악취를 떨치며 오는 저 놈을!”(145P)

(주:짐승은 게리온을 가리킨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괴물로서 권모술수의 화신으로 알려져 있다. 단테는 이것이 얼굴은 사람, 발은 사자, 몸 전체는 뱀 모양이며 두 날개로 하늘을 날고  꼬리에는 독이 있다고 표현했다.)


제 18곡


지옥 속 말레볼제라 불리는 곳에는

모든 것이 무쇠빛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그 주위를 에워싸는 벼랑도 언덕도 같은 빛이다.(154P)


낡은 다리에서 건너다 보니 한 떼의 사람들이

반대편에서 줄을 짓고

역시 매질에 쫓기어 이쪽으로 도망쳐 온다.

스승은 내가 묻기도 전에 먼저 상냥하게 가르쳐 주었다.

“보아라, 거물이 온다.

고통을 이겨내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굉장한 자이다. 왕자 같은 풍채를 지금도 지니고 있구나.

저자가 이아손이다. 용기와 지혜로

코르키스 사람들로부터 황금 양모를 뺏은 자이다.

그는 렘노스 섬으로 건너갔다.

그대는 섬의 여자들이 사정없이 누구 할 것 없이

남자들을 몰살시킨 뒤였다.

그는 거기서 요리조리 수단을 쓰고 교묘한 말로써

다른 여자들을 모두 속인 적이 있는 교활한 여자,

힙시필레를 꾀었다.

그리고 그녀를 잉태케 해 놓고 혼자 섬에 버려두고 떠났다.

그런 죄 때문에 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고,

이로써 저 메디아도 지금 원한을 풀고 있는 셈이다.

지금 그와 함께 도망치고 있는 자는 이렇듯 여자를 속인 자들이다.

첫째 구렁과 거기서 벌 받고 있는 자에 대해서는

이쯤 알면 충분하겠지.”(160P)

9주: 이아손으로 대표되는 난봉꾼은 세사에 수도 없이 흔하다. 그래서 “이즘 되면 이제 충분하겠지”하고 베르길리우스가 간단하게 끝낸 것이다.)


제 19곡

줄거리: 제 8옥의 셋째 구렁이는 성직을 사고 팔던 무리들이 벌을 받고 있다. 머리를 구멍 속에 쳐박고 불타는 두 다리를 버둥거리며 울고 있는 망자는 본래 교황이었던 니콜라오 3세이다.


오, 마술사 시몬이여, 오, 불상한 그의 졸개들이여!

본래는 미덕과 맺어져 그 신부가 되어야 할

성물(聖物)과 성직을 너희들 도둑은

황금이나 은과 맞바꾸어 팔아먹었다.

너희들이 셋째 구렁에 있는

이제야말로 판결의 나팔소리 울려 퍼져 마땅하다.(163P)


“어디 말해 다오.

‘천당’의 열쇠를 성 베드로에게 맡기기 전에

우리 주께서 돈을 얼마나 요구하셨나?

요구하신 것은 ‘나를 따르라’뿐이었다.

배반자 ‘유다’가 그 자리를 상실한 뒤

대신 그 ‘회계’의 자리에 뽑힌 맛디아로부터

베드로도 그 누구도 금과 은을 받은 예가 없다. (167P)


제 20곡


전대미문의 형벌을 시로 읊어 그것을

지옥에 빠진 자들을 다루는 제 1편의

20번째 곡을 위한 소재로 삼으려 한다.

나는 이미 마음 준비가 단단히 되어 있었으므로

환히 보이는 골짜기 밑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불안, 오뇌의 한탄이 넘치고 있었다.

둥근 골짜기를 묵묵히 눈물지으면서

걸어오는 무리들이 보인다. 그 걷는 꼴은

이 세상에서 기도의 행렬이 나아가는 것과 비슷하다. (171P)


제 23곡


단둘이서 말도 없고 동행도 없이,

프란체스코회의 수도사가 길을 갈 때처럼

우리는 앞서고 뒤서서 걸었다.

(주: 프란체스코회의 수사들은 길을 걸을 때 윗사람의 뒤를 따른다. 이러한 내용은 <성 프란체스코의 작은 꽃>에도 나와 있다. 이것은 질서에 맞춰 조용하게 걸으면서 명상과 기도를 하라는 의미이다.)


스승이 대답했다.

“네 마음속을 훤히 알고 있다.

설사 내가 거울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재빨리

네 겉모습을 비추진 못하리라.

지금 네 생각은 그 모습과 표정 그대로

고스란히 내 생각 속에 들어 왔다.”


“그런데 너희들은 누구냐? 보아하니

고뇌가 저절로 ‘눈물이 되어’볼을 타고 흐르는 것 같은데,

겉보기에 찬란한 너희들의 벌은 무엇이냐?”

그러자 그 하나가 대꾸했다.

“우리들의 오렌지빛 망토는 납이라 굉장히 무겁다. 그렇지,

저울에다 달면 바늘이 튀어나올 것이다.

우리는 볼로냐의 ‘명랑한 수도사’였다. (200P)

(주: 볼로냐에서 1261년 창설된 수도사회로서, 원래 이름은 ‘동정녀 마리아기사단’이었다. 이 기사단은 볼로냐의 각 당파, 가문 간의 갈등 조정과 약자 보호의 목적으로 창설되었지만 후에 기강이 해이해져 타락하였다고 한다.)


제 24곡


새해의 계절

태양이 물병자리 밑에 위치하여 햇살도 따뜻해지고

밤의 길이도 차츰 낮의 길이에 다가갈 무렵,

서리가 땅 위에다

그 하얀 누이의 눈(雪)화장을 흉내내어 보지만

그 붓질은 오래 계속되지 않는다.

마른 풀이 바닥나 나처해진 농부는

아침에 일어나 들판이 온통

새하얘진 것을 보고 이거 야단났다 하고 허리를 툭툭 치며,

집으로 되돌아와 투덜거리며 집 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농부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난처해진 모양으로 있다가

다시 문득 밖에 나가 순식간에

모두 바뀐 경치를 보면 희망에 차

작대기를 꺼내들고

새끼양들을 몰아 풀을 먹이러 나간다.(206P)

☆☆☆지옥에서도 이렇게 아름답고 목가적인 풍경이 있다는 것이 조금 의아스럽다. 단테는 무슨 생각으로 이 대목을 집어넣었을까?


사나이는 불이 붙더니 순식간에 타올라

온몸이 모조리 재가 되어 쓰러졌다.

이렇게 일단은 당에 부서져 넘어졌으나

재는 저절로 뭉치더니

순식간에 도 본디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학자나 시인들이 말하기를

불사조는 500년이 되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고 하는데, 그 모양과도 흡사하였다.

그것은 풀도 보리도 먹지 않고

향기로운 이슬이나 아모모 방울만으로 연명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몰약(沒藥)과 감근(甘根)에 싸여 죽는 다고 한다. (206P)


제 25곡


윗몸은 우리 인간의 모습과 같았으나 켄타우로스의 허리에는

마렘마의 늪에도 저만큼은 없으리라 싶을 만큼

많은 뱀이 달라붙어 있었다.

목덜미 뒤 어깨 위에는

날개를 벌린 화륭이 타고 앉아

만나는 자마다 닥치는 대로 불을 뿜었다. (216P)


찌는 듯한 삼복더위에도 도마뱀이

이 울타리에서 저 울타리로

길을 싹 가로지르는 모습이 마치 번개처럼 보이듯이,

번적 하자마자 다른 두 놈의 배를 향해

실뱀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후추알처럼 검푸른 뱀이었다. (218P)

☆☆☆지옥의 풍경을 리얼하게 묘사한 단테의 상상력에 존경을 보낸다.


제 26곡

줄거리: 제 8옥의 여덟째 구렁이 내려다보이는 언저리에 오자, 골짜기에 불이 드문드문 보인다. 권모술수를 일삼았던 망자들이 하나씩 그 불길에 휩싸여 타고 있다.

오디세우스는 대서양을 남하한 그의 마지막 항해를 마치 한 편의 극중 시처럼 이야기한다.


내가 정신없이 보고 있는 것을 안 길잡이가 말했다.

“저 불 속에 망자들이

모두 자기를 태우는 불 속에 싸여있다.”

스승이 대답했다.

“저 속에서 벌을 받는 자는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이다.

둘은 같이 짜고 신의 노여움을 샀고,

신이 내리는 벌까지도 같이 받고 있다.

불꽃 속에서 ‘트로이 목마’의 계략을 한탄하며 울고 있다.

그로 인해 문이 열리고 거기에서

로마의 고귀한 혈통이 나왔다.

또한 사후에도 여전히 데이다메이아가

아킬레우스를 생각하며 상심하고 있는데,

그 술책도 불 속에서의 후회와 눈물의 시가 되었다.

게다가 팔라디온상(아테나 상) 때문에도 벌을 받고 있다. (225P)

(주: 데이다메이아- 스키로스의 공주. 아킬레우스의 연인으로 그와 함께 지내고 있었으나 그를 토로이 전쟁에 끌어들이려는 오디세우스가 술책을 부려 그와 헤어지게 되었다. 그러자 아킬레우스와의 사이에선 아이가지 낳았던 데이다메이아는 이별의 슬픔을 못이겨 자결한다.

팔라디온상: 트로이가 팔라디온상(아테나상)을 가지고 있는 한 멸망하지 않는다는 전설이 있었으므로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네스가 권모술수를 부려 그것을 훔쳐냈다.)


제 27곡


시칠리아에는 고문용 소가 있었는데,

줄로 갈아 그것을 만든 자가

당연히도 먼저 그 속에서 들어가

비명을 지르며 신음했다.

구리로 된 그 소의 울음은

고문을 당하는 자가 소리칠 때마다

고통 때문에 몸이 에는 듯이 들렸다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불 속에서 나올 길도 입구도 없는

한 많은 갖가지 말은 불타는 소리로 변하고 있었다.

불꽃 끝에 숨결이 통하자마자

그것은 혀끝 같은 떨림을 띠고

분명히 “오 여보게,”하며 말했다.(231P)


콘스탄티누스가 시라티에 있던

교황 실베스테르에게 문둥병을 고쳐 달라고 청하듯이,

그는 나를 스승이라 의지하고 그 교만의 열병을 고치고자 하였다.(234P)

(주: 이교도였던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나병 대문에 고통을 겪다가 시라티의 산중 동굴 속에 있던 실베스테르로부터 세례를 받고 병이 나았다. 이에 보답하고자 대제는 그리스도교를 인정한다.)


제 28곡


오직 양심만이 나의 지주이다.

양심이라는 것은 사람의 좋은 반려로서

자신의 결백한 자각이 자기를 스스로 든든하게 한다. (245P)


분명히 이 눈으로 보았고,

또 지금도 눈앞에 떠오른다.

목 없는 자 하나가

불쌍한 일행에 끼어서 걸어오는 모습이.

그 몸통이 잘려진 제 목의 머리털을 움켜 잡고

마치 등불처럼 들고 간다.

그 목이 우리를 보고 “아아”하고 탄식했다.

자기가 자기를, 자신을 위한 등불로 삼고 있다.

둘이 하나이고 하나가 둘인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는 그리 명한 분만이 아신다.

그는 바로 다리 밑에 접어들었을 때

우리들 귀에 목소리가 잘 들리게끔

팔을 목과 함께 높직이 쳐들었다. (245P)

☆☆☆ 지옥의 풍경이 너무나 생생하여 단테는 정말 갔다 왔을 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이러니 불후의 명작이겠지.


제 30곡

“오, 이유는 모르겠지만,

너희들은 벌도 받지 않고 이 지옥으로 온 것 같은데.”

하고 그가 우리에게 말했다.

“걸음을 멈추고 보아라, 마에스트로 아다모의 이 비참한 모습을.

 나는 생전에 필요한 건 뭐든지 가졌다.

그러나 아, 지금은 한 방울의 물조차 갈구해도 먹지 못한다.

카센티노의 푸른 언덕에서

흘러내려 아르노로 들어가는 시냇물은

혹은 차가운 샘물이 되고, 혹은 늘 짙푸른 목장이 되어

늘 내 눈에 어른거린다. 거기에는 곡절이 있다.

병에 걸려 얼굴은 야위어 빠진 나이지만,

시냇물의 광경을 생각하노라면 병 이상으로 목이 탄다.

나를 처벌하기에 가차없는 ‘주의’정의는

내가 죄를 범한 장소를 이용하여

나에게 그만큼 더 한숨을 짓게 만드는 거다.

거기는 로메나이다. 그 땅에서 나는

세례요한의 사이 새겨진 가짜 돈을 만들었다.

그 때문에 나는 지상에서 화형당했다.

그러나 나를 꼬드긴 구이도나 알렉산드로 또는

그 형제들의 얄미운 망령을

만약 여기서 만날 수 만 있다면,

브란다 샘물을 못 먹는 한 있더라도 난 상관없다. (259P)

(주: 마에스트로 아다모-로메나의 구이도 백작의 명으로 피렌체의 금화를 주조할 때, 금을 적게 넣는 편법을 써 막대한 양의 금을 챙겼다가 발각되어 화형당했다.)


제 31곡


찌르는 듯 날카로운 말 때문에

나의 두 볼은 화끈거렸으나,

스승이 이번에는 위로의 말을 건네주었다.

아킬레우스의 그 아비의 창은

한 대 쳐서 사람을 상처 입히고

두 대 처 상처를 고친다더니,

마치 그러한 느낌이었다. (265P)

(주: 아킬레우스는 그의 아버지로부터 마력의 창을 물려받았다. 그 창에 찔린 상처는 다시 그 창에 찔려야 낫는다고 전한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 제 3권 참고)


코끼리나 고래 같은 것은 그대로 버려둬도

자연에게는 하등 고통스러울 것이 없다. 그것을 보더라도

자연의 옳음과 슬기로움을, 안목이 뛰어난 자는 잘 알리라.

아무튼 악의와 폭력에

두뇌작용이 합쳐지는 날에는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아낼 길이 없기 때문이다. (268P)


제 32곡


암피온을 도와 테베에 성벽을 쌓은

시의 여신들이여, 나의 시구를 도와 다오.

묘사와 사실 사이에 거리가 없도록 해 다오.(275P)

(주: 암피온-테베왕,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시신 뮤즈- 암피온이 테베의 성벽을 쌓으려고 뮤즈로부터 받은 리라를 켜자, 소리의 마력으로 키타이론 산이 움직여 성벽이 되었다. 지옥편 2곡 참고)


그래서 뒤돌아보았다가 다시 앞을 바라보니,

발밑에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꽁꽁 얼어붙어

마치 표면이 물이 아니라 유리같아 보였다.

겨울날 오스트리아의 다늅, 강도

더 멀리 추운 하늘 밑의 돈 강도,

수면에 이처럼 두껍게 얼음이 얼어붙은 적은 없었다.

설사 탐베르니키 산이나

피에트라피나 산이 그곳에 무너졌다 할지라도

그 가장에서 ‘찍’하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으리라.(277P)

☆☆☆ 코치토스라 불리는 얼음 덮인 땅의 풍경이다.


 제 33곡


그 죄인은 천천히 말했다.

“벌써 생각만 해도

말도 하기 전부터 마음이 아파 오는 이 절망적 고뇌를

너는 나더러 또 새롭게 느끼란 말인가.

그러나 내 말이 씨가 되어

내가 물어뜯고 있는 배신자의 오명이 세상에 전해진다면,

눈물 흘리며 너에게 이야기해 주리라.

네가 누군지, 어떻게 해서 이 하계로 왔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네 말시를 들으니

아무래도 피렌체 사람같구나.

네가 알아주길 바라는데, 나는 본래 우골리노 백작이다.

이놈은 대주교의 루지에리이다.

왜 내가 이놈에게 몸을 가까이 하고 있는지 그 까닭을 말하마.

이 놈의 악한 마음 때문에

놈을 믿고 있던 내가 붙잡혀

곧 살해됐다는 건 새삼스레 말할 필요가 없겟지.

그러나 네가 듣지 못했던

내 죽음의 무참한 광경을 들으면

너도 이놈의 학대가 어느 정도였던가를 알 수 있으리라.


새가 둥지를 치고 있는 탑의 좁은 창문 틈새로

-그 탑은 나로 하여금 ‘아귀의 탑’이라 불렀고,

앞으로도 또 사람을 가둘 것이지만-

벌써 여러 번 보름달과 초승달이 보였고,

그 무렵에 나는 불길한 꿈을 꾸었다.

꿈이 휘장을 찢고 나에게 미래를 가르쳐 주었다.

대장같이 보이는 이놈이,

산에서 늑대와 그 새끼들을 사냥하고 있었다.

시야를 가로질러 루카를 피사인으로부터 숨기고 있는 그 산에서

이놈은 민첩하고 빈틈없는 야윈 암캐를 데리고 와

자기 앞에 구알란디,

시스몬디, 란프란키 등을 배치시켰다.

한참동안 쫓고 쫓기고 한 끝에 아비도 자식도 모두 지쳐

옆구리를 개의 날카로운 이빨에

물어뜯기는 것을 본 것 같았다.


새벽녘에 눈을 뜨니, 나와 같이 있던 자식들이

꿈속에서 빵을 달라고

울면서 조르고 있다.

그때의 내 마음을 한 번 생각해 보라.

그래도 마음이 안 아프다면 넌 매정한 사나이다.

이것에 눈물을 안 흘린다면 무엇에 운단 말인가?

모두 일어났다.

이윽고 언제나 식사가 날라져 오는 시간이 다가왔다.

모두가 꿈꾼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대 무서운 탑 아래서 문을

못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말없이  자식들의 얼굴을 바라보앗다.

나는 울지 않았다. 몸은 돌처럼 굳어졌다.

자식들은 울었다. 그리고 알세무치오가 말했다.

‘할아버지, 왜 그런 얼굴을 하시지요?’

그러나 나는 울지 않았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 온종일과 그날 밤도,

그렇게 이튿날 밤이 새었다.


이 애달픈 옥 속에도

희미한 빛이 새어들어 네 명의 아이들 얼굴에서도

나와 같은 표정이 보였다.

나는 비관에 못 이겨 내 팔을 깨물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내가 배고픈 나머지

그렇게 한 줄로 알고 곧 일어서서 말했다.

‘아버님, 아버님이 저희들을 잡수신다면

그만큼 저희들의 고통도 덜어지니까 아버님이 입혀주신

이 비참한 살을 차라리 아버님이 벗겨 주세요.’

자식들을 슬프게 하지 않으려고 나는 진정했다.

그날도 그 다음날도 한마디 말없이 있었다.

아아, 냉혹한 대지여, 왜 너는 입을 열지 않았느냐?

나흘째에 접어들자

갓도가 내 발 밑에 몸을 내던지고

‘아버님, 왜 나를 안 도와주세요?’

하고 죽었다.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닷새 엿새 사이에 다른 세 아이도 하나하나

내 눈앞에서 죽어갔다. 그 뒤 나는

아주 눈이 멀어버려 하나하나 손으로 더듬었다.

아이들이 죽고 나서 이틀 동안은 연신 그들 이름을 불렀다.

그로부터 고뇌에는 지지 않았던 나도 배고픔에는 지고 말았다.”

그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낫 증오에 이지러진 눈초리로

비참한 두개골을 또다시 물어뜯었다.

그 이빨은  개 이빨처럼 날카롭게 뼈를 갉았다.


아, 피사, 아름다운 나라 ‘이탈리아’의 수치여,

시(Si)라는 언어(이탈리아어0를 쓰는 국민의 치욕이여,

네 이웃사람들이 어물거리며 정벌을 가하지 않는다면,

카프라이아 섬이여, 움직여라. 고르고나 섬이여, 움직여라.

그리고 아르노 강 어귀를 닫아라.

피사의 시민은 모두 빠져 죽어라!

우골리너 백작이 너 ‘피사’를 배반하여

성을 적에게 넘겼다는 소문이 있다할지라도

너는 자식들을 그렇게 처형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아, 제 2의 테베여, 우구치오네와 브리가타

그리고 앞의 시에서 읊은 나머지 두 아이들은

나이도 어리고 순진하였다.

(주: 우골리노 백작의 이야기이다. 우골리노와 루지에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


내가 했듯이 배신을 저지르면

육체는 곧 악마의 손에 빼앗기고 만다.

그 뒤부터는 수명이 다 될 때까지

악마가 육체를 지배한다.

혼은 곧장 이 구렁으로 떨어져 온다. (291P)


제 34곡

줄거리 : 제 9옥의 넷째 원은 지옥의 맨 밑바닥이다. 유다의 나라 주데카라 불리며 은인을 배반한 자가 온몸이 얼어붙어 있다.


“저 높은 데서 가장 무서운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이.”

스승이 말했다.

‘가리웃 사람 유다“이다.

머리는 악마 대왕의 입속에 잇고 발만 내놓고 있다.

다른 두 놈은 머리를 밖에 내놓고 있는데,

시커먼 얼굴에 매달려 있는 것이 부루투스이다.

보라, 온 몸으로 몸부림치고 있으나 소리 하나 지르지 못한다.

또 한 놈은 카시우스이다. 근골이 늠름하구나.

하나 벌써 또 밤이 돌아왔다. 드디어

떠나야 할까 보다. 우리는 이제 볼 것은 모두 보았다.(298P)

(주 ; 유다-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명으로 은전 30냥을 받고 스승을 팔아먹었다. 나중에 후회하고 목매 자살한다.

부르투스: 카이사르를 암살했다.

카시우스: 로마제국의 창립자 카이사르를 배반한 것이 부루투스와 카시우스이다. )


바위틈으로 흘러내리는 시냇물 소리로

개울임을 알 수 있는 곳이 있다.

시냇물이 느릿한 경사에서

굽이쳐 흘러내려 바위를 침식하고 있다.

길잡이와 나는 밝은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숨어있는 이 어두운 길로 들어갔다.

그리고 쉰다는 것은 염두에도 두지 않고,

스승을 앞세우고 나는 뛰다라 위로 올라갔다.

둥그런 구멍으로 천상에 있는

아름다운 것이 벌써 보였다.

그곳을 지나 우리는 밖으로 나가 다시 하늘의 별을 우러렀다. (303P)


 

천국편


제 1곡


만물을 주관하는 그분의 영광은

온 누리를 꿰둟어 빛난다.

어떤 것에는 강하게 어떤 것에는 약하게 빛난다.

그 빛이 넘치는 천상에

내가 있었다. 거기서 본 것을 거기서

내려온 나로서는 다시 이야기할 기운도 재주도 없다.

사람의 지력은

스스로의 소망에 가까워질수록 깊숙이 가라앚아

기억도 이미 그 자국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허나 그래도 이 성스러운 나라에서 내가 뽑아내어

내 기억의 보물로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을

이제 나는 시의 재료로 삼아 노래 부르리라.


아, 정다운 아폴로 신이여, 이 마지막 임무를 위해

나로 하여금 네가 사랑하는 월계관을 받게

너에게 알맞은 그릇으로 만들어 다오.

이제까지 파르나소스 산의 한 봉우리로서 만족했었다.

하나 이제부터는 그 두 봉우리를 합쳐서

남아있는 말(言)터로 가야만 한다.

아폴로, 내 가슴에 들어오너라. 그리하여

일찍이 마르시아스를 그 몸뚱이 칼집에서

뽑았을 때와 같이 숨결을 담아 피리를 불어라.

아, 신묘한 힘이여, 내 머릿속에 새겨진

복된 왕국의 희미한 그림자를 네 도움으로

내가 만약 글로 표현할 수 있다면,

너는 내가 네 사랑하는 월계수를 향해 걸어나가

그 잎으로 된 관을 쓰는 모습을 보게 되리.

시의 주제와 네 힘이 나에게 그 영광을 준 것이다.

아, 시인의 아버지여, 황제나 시인의 영광을 장식하기 위해

월계수 잎을 따는 일이 드물다면

그것은 인간 의지이 죄, 의지의 수치이다. (580P)


베아트리체는 왼편을 향해

일찍이 독수리라도 이토록 응시한 적은 없었을 만큼

태양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반사광이 투사광에서 튕겨나

다시 위로 오르는 모양은 마치

나그네가 객지에서 돌아가려는 모양과 흡사한데,

그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동작이 눈으로부터

내 상상력 속에 들어와 나를 같은 동작을 하게 했다.

나의 두 눈은 세상의 습관을 초월하여 지그시 태양을 바라보았다.(582P)


베아트리체는 눈을 천구 쪽에

집중시키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옮겨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동안 내 내부에 변화가 생겼다.

그것은 말하자면 글라우코스가 풀을 씹어

해신들의 벗이 된 그런 변화였다.

인간의 조건을 초월한다는 것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은총으로써

언젠가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겐 이 예로 충분하리라. (582P)


그녀는 연민의 한숨을 내쉰 듯

올바른 길을 벗어난 자식을 바라보는 어머니 같은 표정으로

나에게 눈을 돌리고 말했다.

“모든 사물에는

질서가 있는 거예요. 그 형태가 있기 때문에

우주는 주를 닮는 거예요.

이 점에 고귀한 창조물은 영원한 주의 증거가

되는 것인데, 이 영원한 가치야말로 이제 내가 말한

사물의 서열이 모이는 궁극의 목족입니다.

내가 말하는 질서 안에서 모든 것이

온갖 규칙에 의해 어떤 것은 그 근원에서 가깝고

어떤 것은 먼, 각각의 경향을 갖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존재의 바다 속에서 모두가 저마다

온갖 항구로, 주어진 본능이 이끄는 대로

움직여 가는 거예요.

이 본능이 불을 달 쪽으로 나르고,

이 본능이 하등 생물에 있어서는 기동력이 되고,

이 본능이 땅을 응고 결집시키는 거예요.

이성없는 창조물뿐만 아니라

지성과 사랑을 갖춘 자도

이 ‘본능의 활’로 날려가는 거예요. (584~585P)


제 2곡


오, 너희들 작은 배 안에 있는 자여,

너희들은 노래 부르며 가는 나의 배 뒤에서

듣고 싶은 나머지 따라왔지만,

너희들의 기슭을 향해 돌아가도록 하라.

깊은 곳으로 들어서지 마라, 너희들은 필경

나를 잃어버리고 쩔쩔매는 것이다.

내가 가는 바다는 일찍이 사람이 건넌 적이 없는 바다이다.

미네르바가 바람을 주고 아폴로가 나를 인도한다.

그리고 아홉뮤즈가 나에게 큰곰자리를 가리켜 준다.(589P)

(주: <신곡> 3편 중에서 지옥편과 연옥편은 묘사되어 있는 대상이 인간 세계에 실재하는 가지가지의 실상이기 때문에 저승의 세게라는 시적 설정인데도 불구하고 읽기가 비교적 쉽다. 그러나 ,천국편>에는 제 1곡 후반에도 벌서 나타났듯이 ‘신학적 우주관에 따르는 논의가 자주 나오고 실세계와의 내왕이 없는 오로지 언어와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대목’이 많기 때문에 부분적 일화를 뺀다면 요즘 사람이 읽기가 결코 쉽지 않다.)


베아트리체는 하늘을, 나는 그녀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마 화살이 과녁을 쏘고, 날고, 시위를 떠나는 것과

같은 사이에 나는

눈이 굉장한 것 속으로 빨려드는 곳에

벌서 당도하고 있었다. 나의 감정은 베아트리체에겐

숨길 수가 없어 그녀는

나를 돌아보고 기쁜 듯이 예쁘게

이렇게 말했다. “주께 감사드리세요. 주님은

우리를 첫째 별(달)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구름에 휩싸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윤이 나고 짙고 단단하고 매끄러워,

말하자면 태양빛에 빛나는 금강석과 같은 느낌이었다.

이 영원한 진주(달)는

물이 갈라지지 않더라도 안으로 광선을 받아들이듯이

그 내부로 우리를 받아들였다.

내가 육체로 되어 있기 때문에 어던 용량이

다른 용량을 포함할 수 있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으나

물체가 물체 속으로 들어간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니 만큼 더욱 인성과 신성이

합체된 것으로 보이는 그 본질을

우러러보고 싶다는 소망이 몸속에서 뜨겁게 끓어올랐다. (590P)


이제,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어

눈(雪)이 본래의 색깔과 본래의 차가움을 상실할지라도

그 질료는 본래 그대로이듯이 ‘그릇됨을 논파당한’

그대의 지성도 본체는 본래 그대로이므로 지금 거기다

활력을 띤 빛으로 형상을 부여할까 합니다.

그러면 그 빛으로 하여 그대는 떨며 반짝이게 될 것입니다. (593P)

☆☆☆자신의 본질은 누가 파괴할 수도 침범할 수도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제 3곡


그대의 생각은 자칫하면 헛된 쪽으로 향하는데,

그대 눈에 보이는 것은 참된 것의 실체입니다.(597P)

(주 : 참된 것의 실체란 여기서는 혼들을 말하는 것이다. 실체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을 말하며(예-사람, 나무, 돌), 경험에 의해 파악되는 물건이다. 실체의 속성과는 구별이 된다(예- 사랑, 푸른빛, 동정)


그녀는 다른 혼들과 얼굴을 마주보고 잠시 미소를 짓더니

첫사랑에 불타는 이처럼

기뻐하며 나에게 대답했다.

“우리들의 의지는 사랑의 힘으로 진정되는 거예요.

덕분에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 밖에 바라질 않고

다른 것에 갈망을 느끼질 않습니다.

가령 우리가 더 위로 오르고 싶다고 원한다면

우리들의 자리를 여기다 정하신 분의 뜻과

우리들의 소망 사이에 어긋남이 생기겠죠.

그러나 여기서는 사랑 속에 있음이 필연적으로 사실이므로

사랑의 성질에 해대 생각을 한다면  그런 어긋남이

이 친구에게서는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아실 거예요.

그뿐 아니라 이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주의 뜻 속에

머무는 것이 첫째 요건입니다. 거기서 비로소

우리들의 듯이 ‘주의 뜻’과 합일이 되는 것입니다. (598~599P)


제 4곡


천국에서 사는

세월에 길고 짧은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모두가 첫째 친구를 아름답게 꾸며서

많건 적건 영원한 주의 숨결을 느끼고 거기에 따라서

각기의 아름다운 삶을 보내고 있는 거예요. (604P)


의지란, 의지가 바라지 않는 한은 멸망할 리가 없으며,

폭력을 당하여 불이 약해진 일이 천 번 있었다 할지라도

또다시 불길이 저절로 되살아나듯, 의지 도한 불타오를 것이에요.

폭력은 의지가 박약해져 갈수록

강해집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소로

돌아갈 만한 힘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지고 맙니다. (606P)


“아, 주께 가장 사랑받는 분이여, 고귀한 여인이여.”

나는 그대 외쳤다. “당신의 이야기는 내 몸속에

넘쳐 흘러 나를 따스하게 하고, 그로 인해서 활력이 솟는 것이 느껴집니다.

당신의 호의에 대해서는 아무리 감사를 드려도

나로서는 도저히 다 감사를 드릴 수가 없지만,

전지전능하신 분께서 반드시 보답해 주시겠지요.(607P)


어떠한 진리도 하느님의 진리 밖으로는 나갈 수가 없고,

우리 인간의 지성은 하느님의 진리에 비쳐지지 않는 한

아무래도 만족할 수 없다는 것을 익히 잘 알았습니다.

사람의 지혜는 진리에 도달하면 들짐승이 동굴 속에서 쉬듯이

곧 그곳에서 쉽니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모든 소망은 헛일이 되고 말겟지요.

마치 나무에 싹이 트듯이 이 소망에서

진리의 뿌리에 의혹의 싹이 트는데, 그것은 차례차례

우리를 밀어올려 꼭대기로 가게 하는 자연의 힘입니다.

이 힘이 나를 부르고, 이 힘이 나를 대담하게 만들어

내가 잘 모르는 또 하나의 진리에 대해서, 여인이여

당신에게 경의를 표하며 질문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607~608P)


아주 고귀하고 사랑스런 불꽃으로 가득 찬 눈매로

베아트리체가 나를 바라보았다.

나의 힘은 확 풀어져서 등을 돌리고 달아났다.

나는 정신이 몽롱하여 두 눈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608P)


제 5곡


이미 영원한 빛이 그대의 지성 속에서

빛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영우너한 빛은

일단 그것을 우러르면 영원히 사랑의 불을 태웁니다.

만약 그 밖의 것이 그대들의 사랑을 유인한다면

그것은 이 영원한 빛의 어떤 흔적이 그릇 이해되어

다른 것을 통해서 빛을 덜치는 데 지나지 않아요.(610P)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느님께서 아낌없이 내리신

가장 큰 선물은 하느님이 가장 소중히 여기시고

또 하느님의 힘에 가장 적합한

의지의 자유였습니다.

오직 지성있는 생물만이 모두

이 자유의지를 예나 지금이나 받고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주와 사람 사이에 계약이 맺어질 땐

이제 말한 ‘자유의지’의 선물이

자발적으로 희생되기 때문입니다. (611P)


내가 그대에게 표시한 것을 마음에 간직하고

머릿속에 새기세요. 이해는 하더라도

머릿속에 남겨두지 않으면 학문이 되지 않습니다. (611P)


사람은 서원을 경솔하게 지켜서는 안됩니다.

맹세는 지켜야 하는데, 그때에 ‘입다’가 첫 맹세에서

했듯이 비뚤어진 짓을 해서는 안됩니다.

입다는 차라리 바로 ‘잘못했다’고 했더라면 나았을 거에요.

맹세를 지킴으로써 더욱 해롭게 된 셈인데,

마찬가지로 어리석은 것은 그리스군 대장의 경우겠지요.(612P)

(주: 입다는 암몬의 자손을 무찌르고 돌아갈 수 만 있다면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처음 나와 나를 영접하는 자를 하느님께 바칠 것입니다.”라고 맹세했다. 맨 먼저 집에서 나온 사람은 자기 외동딸이었는데, 그는 맹세를 지켜 딸을 죽였다.)

☆☆☆ 신과의 서원이라고 할지라도 비뚤어지고 나쁜 서원이라면 수정 변경하라는 충고이다. 한번 결정한 것은 끝까지 밀고 나간다는 똥고집을 버리고, 언제든지 수정가능하다는 그런 유연성을 가져야 할 것 같다.  경직된 것은 부러지기 쉬운 것 


그 하늘의 광명 속에 들어가니

베아트리체는 아주  행복해 보였다.

별의 반짝임도 그로 해서 한결 더 밝아 보였다.

별조차 웃고, 별조차 빛을 바꾼다면,

어지 나 같은, 모든 점에서

변하기 쉬운 성을 가진 자가 변치 않고 있을 수가 있겠는가.(613P)


맑고 잔잔한 연못 속에

무슨 먹이 같은 것을

던지면 물고기들이 떼지어 모여드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천이 넘는 빛이 우리들 쪽을 향해

모여드는 것이 보였다. “보라, 우리의 사랑을 키워 줄 분을,”

그들 다가옴에 따라

환희에 넘친 영혼의 모습이

혼에서 발하는 빛 속에 하나하나 선명하게 떠올랐다.(614~615P)


제 6곡


우리들의 공덕 나름대로 보상이 주어졌으므로

보상에 과부족이 없음을 안다는 것도

우리의 작은 기쁨이 된다.

이렇듯 살아있는 정의가 우리의 감정을

부드럽게 해 주므로 여기서는 이제

감정이 부정 때문에 비뚤어지는 일은 전혀 없을 것이다. (623P)

☆☆☆인과응보를 강조한 것 이다. 내가 행한 만큼 베푼 만큼 보상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 수성 진주천에서는

로메오의 혼이 빛을 떨치고 있다.


아름다운 공적은 세상에 받아들여지질 않았지만,

그러나 그를 모함한 프로방스인들의 얼굴에서

웃음은 사라졌다. 남의 선행을

자기의 해로 간주하는 자는 길을 그르친 자이다.

라이몬도 베링기에리 백작에겐 네 달이 있었는데,

모두 왕비가 되었다. 천한 방랑객인

로메오가 중매를 한 것이다.

그러나 이윽고 모함에 빠진 라이몬드 백작은

이 정의의 사람에게 청산을 요구했다.

열의 원금을 일곱 더하기 다섯 벌어 준 그였는데도.

그런 일이 있은 뒤 그는 가난한 늙은이로 그곳을 떠났다.

한 조각, 또 한 조각 빵을 구걸하며 연명을 한

그의 심중을 짐작한다면

세상 사람들의 칭송이 더 한층 깊어질 것은 틀림없다.

☆☆☆ ‘네가 작년 여름에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안다’ 영화제목처럼 세상과 우주는 네가 한 행위, 네가 한 행위를 다 아는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가 보상을 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너무 조바심내지 말라는 가르침인가?


제7곡

“나의 판단에 의하면 틀림없이,

왜 정의의 복수가 또 정의에 의해서 보복을 받았는가

하는 점이 그대의 의문일 것입니다.


의지력으로 억누를 수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이로울 수 있었을 텐데

그것을 참지 못했던 그 태어나 본 적 없는 자(아담)는

자신을 죄인으로 만듦과 동시에 자손도 모두 죄인으로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원인으로, 하느님의 말씀이 이윽고 지상에 내릴 때까지(주: 그리스도의 도래를 가리킴)

인류는 병들어 커다란 공포 속에서

하계에 드러누운 채 오랜 세월을 보냈던 거예요.

그때가 오자 비로소 하느님은 창조주로부터 더나 있던 인성을

영원한 사랑(성신(聖身)의 작용에 의해

그 분의 인격 안에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인성은 이와 같이 창조주에 결부되자

창조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청순하고 선량해졌습니다.

인성은 오직 인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천국에서 추방되었던 것인데,

그것도 디 인간 진리의 길을 벗어나

그래야 할 생활에서 이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로써 부과된 벌은

‘그리스도’가 디고 있던 인성에 비추어 보면

다시없는 정당한 벌이며,

이 인성에 결부되었던

‘주’의 위격이 당한 무례함을 생각한다면

다시없는 부당한 벌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629P)


사람에게는 한계가 있으므로

만족스러운 매듭을 짓는다는 것은 결국 무리한 일이었어요.(631P)


물이 보이고 또 불도 보인다.

공기도 흙도 그리고 그 혼합물도 보이는데 모두가

오래 가지 못하고 곧 석어 버린다.

그러나 이런 것도 틀림없이 하느님이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들은 말이 만약 진실이라면

이런 것은 썩어선 안될 것이다. (632P)


그대가 이름을 든 원소라든가

그것으로부터 형성화된 모든 물체는

하느님에 의해 만들어진 힘으로써 다시 형성된 것입니다.

처음에 만들어진 것은 그것의 질료뿐이었습니다.

네 원소를 싸고도는 별들 앞에서

형상력만이 ‘하느님에 의해’만들어진 것입니다.

모든 동식물의 혼은

생명력을 띤 복합체 속에서

거룩한 별들의 빛과 움직임이 끌어낸 것입니다. (633P)

☆☆☆세상이 변했는데도 다윈의 진화론을 거부하는 기독교인들. 하느님의 창조에 의해 세상이 탄생되었다는 창조론을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교인들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제8곡


그리고 샛바람을 바로 받는 파키노와 펠레로의

두 곶 사이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아름다운 시칠리아 섬은 티폰 때문이 아니라

솟아나는 유황대문에 안개가 자욱한 것이지만

백성들을 도탄에 허덕이게 한 악정으로 인해

팔레르모 시민들이 봉기하여

‘죽여라, 죽여’하고 외친 사건이 없었던들,

지금쯤 카를로로 리돌포의 핏줄을 이어받은 내 자손이

그 왕이 되기를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637P)

(주: 파키노와 펠레로는 요즘에 파세로, 혹은 파노라고 각각 불리고 있는 시칠리아섬의 남쪽에 있는 곶 이름이다. 카타니아 만을 가리키는데 이곳은 샛바람(Euro)을 많이 받는 곳이라 에트나 화산의 연기가 밀려든다.

티폰 :  제우스의 번개를 맞고 에트나 화산 밑에 묻힌 거인이다. 그의 머리가 화산 속에 있어 입으로 불을 뿜어 낸다고 한다.

악정: 샤를 앙주 1세의 악정을 뜻함

주; 팔레르모 시민은 1282년 3월 30일에 봉기하여 샤를 앙주의 세력을 타도하기 위하여 프랑스인들을 죽이라고 외치던 사건이 있었다. 이로서 나폴리 왕국에서 이탈하여 아라고나의 세력하에 들어갔다.)


제 9곡


그리고 아까 추던 춤의

원 속으로 다시 들어가더니 그녀는 벌써

다른 일을 생각하는 것처럼 가 버렸다.

또 하나 즐거워 보이는 영혼이 햇빛에 빛나는

아름다운 홍옥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아까 쿠니차가 귀중한 보물이라 불렀던 영혼이었다.

희열의 정이 강해질수록 천상에서는 광채가 나고

지상에서는 웃음이 솟는데, 하계에서는

마음이 슬퍼질수록 그림자도 어둠을 더한다.

“복받은 영혼이여, 하느님의 눈에는 모든 것이 비치는데”

하고 내가 말했다. “그 하느님 안에 그대 생각이 들어간 이상

그대 눈에는 모든 소원이 비치리라.

그대 목소리는 세 쌍의 날개를  사제복으로 삼는

신심 깊은 불들의 노랫소리에 맞추어

줄곧 음악소리로 하늘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644~645P)


맑은 물 속의 햇빛처럼

내 옆에서 반짝이는 이 빛 속에

누가 있는지를 그대는 알고 싶어하는 듯한데,

이 안에서는 라합이 평화를 즐기고 있다.

그녀는 이 금성천에 이르자

곧 가장 강한 빛을 떨쳤다.

그대들은 지구 그림자는 이 금성천에까지 뻗쳤다가

사라지는데, 그리스도에게 구원된 수많은 영혼들 가운데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그녀가 이곳에 왔다.

라합이 여호수아를 도와 성지에 있어서의

첫싸움의 승리에 이바지했기 때문인데, 이 성지에 대한 것이

지금의 교황 마음속에는 전혀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다. (646P)

(주 : 라합: 여리고의 창녀. 그녀는 여호수아의 두 첩자를 은닉하여 생명을 구해주었다. )


제 10곡


하늘의 힘을 세계에다 새기고

그 빛으로 우리를 위해 시간을 새기는

대자연의 보다 위대한 신하는

아까 말한 별들과 합쳐지더니

차츰차츰 해돋이가 빨라지는

나선 모양의 궤도 자국을 따라 회전을 계속하였다. (652P)


"은총의 빛에 불이 일어나면 진실한 사랑은

사랑함으로 해서 더욱더 불꽃이 세어지는데,

그 은총의 빛이 그대 속에서 더욱더 활기차게 빛나 그대를

일단 오르면 내려와도 반드시 또 오르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저 층계 위로 인도해 간다. 그러므로

그대의 갈증을 푸는 데에, 제 병의 술따르기를

만약 거절하는 이가 있다면 바다로 흘러들어가지 않는 물과 마찬가지로

그자에게는 자유가 없어져 버릴 것이다.

그대가 알고자 하는 점은 그대에게 힘을 모으게 하는

아름다운 여인(베아트리체)의 둘레를 황홀하게 에워싸는 이 화환이

무슨 꽃으로 엮어졌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도미니쿠스를 따라 길을 간

거룩한 무리, 그 어린양들 중의 한 마리였다. 거기서는

헛되이 길을 잃지 않는 한 살이 찐다. (654P)


제 11곡



태양이 대로는 갠지스강에서 태어나듯이,

비탈의 가장 완만한 곳에서

한 태양(아사시의 성 프란체스코)이 이 세상에 태어났다.

아직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성프란체스코가 24살 때)

따사로운 위안과 위로를 대지에 느끼게 하였다.

그는 아직 젊은 몸으로 여인(가난 혹은 청빈) 때문에

아버지의 노여움을 샀던 것이다. 이 여인에 대해서는

죽음의 신을 대하듯 아무도 자진해서 문을 열어주지 않았건만.

그리고 사교 법정(아시시의 사교법정)에서

아버지가 계시는 가운데 그는 그 여인과 혼레를 올리고는

날이 갈수록 그녀를 열렬히 사랑했다.

그녀는 첫 남편(그리스도, 역시 가난의 상징)을 여윈 이후 이제껏

천백여 년, 모멸받고 따돌림당한 채

그를 만나기까지는 세상 사람들에게서 버림을 받고 있엇다.

그녀와 같이 있던 아미클라스는 온 세계를 진동시킨 자의

그 목소리가 울려 퍼져도

태연히 있더라도 소문이지만 소용없었다.

또 그녀는 지조가 굳어서

마리아가 아래 세상에 남아 있었을 때에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 위에 올라가서 울었지만, 그것도 결국은 보람이 없었다.

지금가지 길게 이야기한 두 연인이란 짐작하는 바대로

프란체스코와 포베르타(청빈을 뜻하는 이탈리어로 여성명사)를 말하는 것이다.

그들의 화목과 즐거운 모습은

사랑과 놀라움과 부드러운 눈길 속에 나타나 있었으므로, 그것이

원인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도’ 거룩한 마음이 솟아올랐다.

그래서 먼저 거룩한 베르나르도(프란체스코의 첫제자)가 신을 벗고

이 위대한 평안을 찾아 줄달음질쳤다지만

달리면서도 줄곧 답답하고 더디게 느꼈다.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의 아들이라는 것도,

사람들을 놀라게 한 허술한 옷차림도,

마음을 비하시키거나 시선을 떨어뜨리게는 하지 않았다.

프란체스코는 왕자 같은 기풍으로 교황 인노첸시오에게

그 엄격한 계율을 펴고, 그로부터

자기 수도회에 대한 최초의 수결을 얻었다.

빛나는 그의 생애는 천상의 영광 속에서 찬양받는 편이

보다 어울릴 일이지만 그의 뒤를 좇아

가난한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을 때,

이 위대한 목자(프란체스코)의 성스러운 의지는

영원한 숨결을 받은 교황 호노리오에 의해

제 2의 왕관을 받게 되었다.

그 뒤 그는 순교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오만과 사치를 자랑하는 술탄 면전에서(주: 제 5차 십자군 전쟁 때 이집트에 가 술탄의 면전에서 복음을 전한 일이 있었다)

그리스도와 그 사도의 가르침을 설교했다.

그러나 개종시키기에는 사람들이 너무나

무지했으므로, 시간 낭비를 두려워하여

이탈리아의 풀에서 열매를 따기 위해 그는 다시 돌아왔다.

그리하여 테베레와 아르노 강 사이의 황량한 바위산에서

그리스도로부터 마지막 표적을 받고

이를 ‘죽을 때까지’ 2년 동안 간직하고 있었다.

그에게 이러한 선행을 운명지워준 하느님은

그가 몸을 가난하게 함으로써 얻은 응보를 받게끔

그를 천상으로 끌어올리려 하였을 때

그는 형제들에게 상속자에게 부탁하듯이

그가 깊이 사랑하던 여인의 앞날을 부탁하며,

알뜰히 보살피고 사랑하라고 유언했다.

이 고귀한 영혼은, 그 여인의 품을 떠나

자기의 왕국으로 돌아가려고 지상을 떠날 때에도

제 몸에는 청빈함을 찾아 널(주:그는 빈 몸으로 땅에 묻히길 바랐다) 조차 구하지 않았다.

☆☆☆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의 일대기를 시적(詩的)으로 아주 잘 표현하였다.


제 13곡


그리고 아까 하느님의 가난한 사람(성 프란체스코)을 들어

그의 훌륭한 생애를 내게 노래하던 광명(토마스 아퀴나스)이

조화된 영혼들 속에서 정적을 깨드리고 말을 시작했다.


“한 다발의 보리는 타작되어

그 알곡은 이미 저장되었으므로

또 한 다발의 보리를 두르리라는 사랑에 나의 마음이 움직여진다.

그대 생각은 이렇다. 그 미각대문에

온 세계에 죄를 진 여인(이브)의 아름다운 볼을 만들기 위해

갈빗대를 뽑힌 사나이(아담)의 가슴 속에도, 또한

창에 찔림으로(그리스도의 수난) 해서 인류과거의 죄도 앞날의 죄도

모두 보상하고, 저울(정의의 저울)에 불패의 무게를

가하고 계신 그리스도의 가슴 속에도,

그들을 각각 만드신 ‘하느님’의 힘은

아마 인성에 허용되는 최대한의 빛(지혜의 빛)을

가득히 쏟아 넣었을 것이라고.

그러기에 내가 앞서 다섯째의 광명(솔로몬) 속에는

그를 따를 자가 없을 만한 슬기로운 자가 들어 있다고

말했을 때 그대는 놀란 것이다.

자, 내가 그대에게 대답한 내용에 대해 눈을 떠라.

그러면 그대가 믿고 있는 것과 내가 하는 말이

진리 속에서 원의 중심처럼 겹쳐지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676~677P)


죽지 않는 것도 죽을 수 있는 것도

필경은 우리의 주께서 사랑에 의해

낳으시는 관념적 이데아의 빛에 지나지 않는다. (677P)


그 빛을 띠는 관념의

각인에도 짙고 옅음이 생기는 것이다.

때문에 같은 종류의 나무라도

열매에 좋고 나쁜 것이 생기고,

그대들 다 같은 사람에도 재능의 차이가 생긴다. (677P)

☆☆☆ 한 나무에서 자라도 튼실한 열매가 있는가하면 시들시들한 열매가 있듯이, 신의 사랑을 다같이 받고 있는 것 같아도 뛰어난 자가 있는가 하면 열등한 사람이 있다. 이것은 저마다의 근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똑같지 않음에 의한 차별이 곧 세상의 평등의 원리 아닐까?


이것이 항상 그대 발에 납덩이가 되어

납득이 가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조급히 시비를 논하지 말고,

지친 사람처럼 걸음을 더디 하는 것이 좋으리라.

좋고 나쁨을 말하든 시비를 논하든 간에

세밀한 판단도 하지 않고 긍정부정을 결정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 중에서도 가장 떨어지는 자이다.

그러므로 성급한 의견은 자칫

그릇된 방향으로 구부러진다.

게다가 감정이 지성에 얼크러진다. (679P)


아직 이삭이 영글기도 전에 밭에 나가

이삭 수를 세는 누구처럼 너무 쉽게

판단을 내리는 인간은 되지 말아다오.(679P)

겨우내 딱딱하고 가시투성이이던 가지가

그 가지 끝에 한 송이 장미꽃을 피운 것을

전에 본 일이 있다.

그리고 기나긴 항로를 곧장 쏜살같이

달려온 배가 항구 어귀에 접어들어

침몰해 버린 것도 본 적이 있다.

하나가 도둑질을 하고 다른 하나가 시주하는 것을

보았다 해서 하느님의 심판이 어떻게 내릴 것인지를

베르타 아무개 여인과 마르티노 아무개가 안다고는 생각지 마라.

하나는 일어설지도 모르고, 하나는 쓰러질지도 모르는 것이다.(680P)

(주: 사람이 옳고 그름의 판단을 내릴 때 미리 취해야 할 신중한 태도에 대해 토마스 아퀴나스의 입을 빌어 말한 경구는 견줄만한 세 가지의 아름다운 시적 비유를 들고 있다.)


제 14곡


둥근 물그릇은 안에서 치느냐 밖에서 치느냐에 다라

가운데서 가장 자리로, 혹은 가장자리에서 가운데로

물의 파동이 일어나는 법,

토마스에 이어 베아트리체가 다시 즐겁게 말을 시작했는데,

‘안에서’ 말하는 그녀와 ‘밖에서’말하는 그가

그 물결의 움직임과 매우 흡사했다. (683P)


십자의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까지,

그리고 꼭대기에서 밑가지

광명의 무리는 서로 만나고 스칠 때마다

강하게 빛을 내며 움직였다.

그것은 현세의 인간이 때로 지혜를 부려서

햇빛을 막기 위해 희한하게 그늘을 만들지만

그 그림자 안에 비쳐든 한 줄기 광선속을

길고 짧은 먼지 티끌들이

직선과 곡선을 그리며, 혹은 빠르고 혹은 더디게

모습을 바꾸며 움직이는 꼴과 흡사하였다.

여러 줄의 음색을 모아서 비올라나 하프가

음계를 모르는 이의 귀에도

기분 좋은 가락을 연주하듯이,

내 앞에 나타난 광명의 무리로부터도

십자가 위를 가사는 모르나

몸도 마음도 황홀케 하는 선율이 흘렀다. (687P)


제 15곡


탐욕이 녹아서 불 속에 섞이듯이

선을 동경하는 사랑은 언제나 녹아서

선속에 들어가, 그 선의가

저 하프에게 침묵을 명했다.

그러자 하느님의 오른손이 늦추었다 당겼다 하는

성스러운 현의 소리가 뚝 그쳤다.


영원히 계속되지 않는 것에 대한 애착 때문에

이 사랑(선을 동경하는 사랑)을 버리는 이는

끝없이 한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그것이 당연한 응보이다. (689P)


내가 무한한 시력을 가지고 그 속을 보고

나로 하여금 감미로운 동경의 목마름을 느끼게 하는 그 거룩한 사랑이

보다 잘 채워지고 이루어지게끔

목소리에 자신과 용기와 명랑함을 담고

네 의지와 소망을 소리내어 말해라.

그에 대한 내 대답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692P)


피렌체는 옛 성벽 속에서

평화롭고 소박하고 정결했었다.

그 성벽 위에서는 지금도 9시와 3시에 종이 울린다.

팔찌와 머리 장식 따위가 유행하기 훨신 전의 일이었다.

가죽 구두도 없고, 의상만 돋보이는

그런 띠를 매는 여인도 없었다.

딸이 태어났다고 해서 아비가 당황하는 일도

당시에는 아직 없는 때였는데, 이는 서로가

혼기나 지참금의 액수가 한도를 넘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한 가족이 살기엔 텅 빈 그런 큰집은 아직 없었고,

규방에서 하는 짓을 구결거리로 만드는

호색풍조도 없었다.벨린치온, 베르테가 가죽과 뼈로 된 옷을 입고

가는 것을 나는 보았더. 그리고 거울 앞에서 그의 부인이

화장도 하지 않고 나오는 것을 나느 보았다.

네를리 가문의 주인도, 베키오 가문의 주인도

털이 없는 거친 가죽옷에 만족했고,

그 집 아낙네들이 물레질에 만족해하고 있었다.

아아, 행복한 여인들이여, 그 무렵에는 죽으면 반드시

무덤에 묻혔었다. 남편이 프랑스로 가 버려

독수공방하는 여인 따위는 한 사람도 없었다.

어떤 여인은 밤새 요람을 흔들었다.

어떤 여인은 물레로 실을 자으면서

식구들에게 트로이의 용사 이야기며,

피에솔레와 로마이야기를 들려 주었다.(694P)

☆☆☆단테 당시의 피렌체의 풍속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제 16곡


다리를 수호하는 저 석상이 이지러져 버린 이상에는

그 평화가 드디어 끊어졌을 때, 피렌체가

뭔가 희생을 바쳐야만 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가 보았을 무렵에는 이러한 사람들이 그 밖의 사람들과 함께

피렌체는 완전한 평화 속에서 쉬고 있었으므로

그때는 불평이 나올만한 아무런 이유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사람들 밑에서 백성들은 자랑스럽게

정의감에 불타고 있었다. 그러므로 백합꽃이

장대에 거꾸로 매달리는 일도 없고,

분열로 인하여 붉게 물드는 일도 전혀 없었다.(705P)

(주 : 백합은 피렌체의 국화이다.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당은 상대편의 기를 장대 끝에 매달아 시가를 중심으로 땅바닥에 끌고 다니는 풍습이 있었다. 원래 피렌체의 국화는 붉은 바탕에 흰 백합꽃이었는데, 1251년의 피스토이아와의 사움 끝에 호아제당이 피렌체시 에서 추방되자 국화의 빛깔을 바꿔서 흰 바탕에 붉은 백합으로 한 것이다.)


제 17곡


내가 베르길리우스를 따라서

영혼을 치료하는 산에 오르고 있는 동안에도, 또

죽은 세계로 내려간 동안에도,

내 장래에 대해 나는 심각한 예언을 들었습니다.

운명의 타격에 대해서 마음의 준비는 단단하게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운명이 다가오고 있는지

그것을 알 수 만 있다면 이 마음은 가라앉을 것입니다.

날아오는 것이 보이는 화살은 속도가 느린 것입니다. (707P)


"우연은 너희들 물질의 책자 밖으로는

나가지 않는다.

우연도 모두 영원의 시야에 비쳐있다.

그렇다고 해서 거기서 필연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를 테면 그것은 물결을 따라 강을 떠내려가는 배가

보기에는 우연히 움직이는 것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아름다운 음악이 오르간에서 울려 귀에 들리듯이,

네가 직면하게 될 미래의 시간은

지금 영원의 눈에서 울려 내 시야에 들어온다.

몰인정하고 사악한 계모 때문에 히폴리토스가 아테네에서

쫓겨났듯이, 그와 마찬가지로

너도 피렌체에서 쫓겨날 것이다.

모의가 이루어지고 계획도 이미 짜여져 있으므로

머지않아 실행에 옮겨지리라. 날마다 그리스도가

매매되고 있는 곳(성직자들의 고성죄가 벌어지는 것으로 단테는 교황청을 생각했다)에서 그자가 생각했느니라.

세상일이란 매양 그러하지만 패한 당파는

세상의 소리 높은 비난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복수는

보복을 내리는 진리의 증거가 되리라. (707~708P)


너는 가장 사랑하는 것을 모조리 버려야 하리라.

이것이 추방의 활이 쏘는 첫 화살이다.

남의 빵이 얼마나 입에 쓴 것인지

남의 집 층계의 오르내림이 얼마나 쓰라린 것인지를

너는 뼈저리게 깨닫게 되리라.

너의 두 어깨에 가장 무겁게 파고드는 짐은

너와 함께 골짜기에 떨어질

동지들의 어리석음과 비열함이다.

그들은 너의 은혜를 원수로 갚고, 광란과 불경의 나쁜 짓을

거듭할 것이다. 그러나 그 행위 대문에

얼굴을 붉힐 자는 네가 아니라 그들일 것이다.

그들의 야만스러움은 그 소행을 보면

훤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너는 너 자신의

당파를 갖는 것이 너의 명예가 되리라. (708P)


“아버지, 자신을 함부로 가늠하는 자에게일수록

더욱더 무거운 타격이 주어지는 것인데

나를 향해 그러한 시간이 진군해 오는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선견지명으로써  내 몸을 단속하고,

비록 가장 사랑하는 고장을 잃을지언정

내 시를 위해서

다른 것들은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710P)


고난이 끝없이 가득 찬 저 아래 세상과

산꼭대기에서 그녀의 아름다운 눈에 의해

더욱 위로 끌어올려진 저 산을 통하여,

그리고 천국을 별에서 별로 오를 때마다

나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710P)


자기 몸 안에 이상이 있어 양심에 거리낌이 있는 자들은

네 말을 반드시 노골적이고 당돌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나 설사 그렇게 되더라도 너는 모든 허위를 물리치고

네 눈에 비친 모든 모습을 드러내 보이도록 하라.

옴이 옮은 곳은 맘대로 긁게 내버려 둬라.

내 말은 처음에는 듣기 싫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일단 새겨서 알아듣게 되면

생명의 양식을 몸 안에 남기게 되리라.

너의 외침은 흡사 질풍처럼 날카롭게

나뭇가지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욱 세차게 후려치리라.

그것이 어찌 하잘 것 없는 영예이겠는가.(주: 이 대담한 벌언은, 견고한 자기 신뢰가 있고서야 비로소 할 수 있는 일인데, 그 견고한 자기 신뢰야말로 단테의 가장 현저한 특징의 하나인 것이다. ) (710P)


제 18곡


베아트리체의 이 사랑스러운 말소리에

나는 그녀 쪽을 돌아보았는데, 그 거룩한 눈동자 속에

보인 기막히는 사랑의 반짝임은 형언할 길이 없었다.

그것은 내가 말을 믿을 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분의 인도가 없는 한 힘에 넘치는 일은 두 번 다시

말할 수 없는 내 기억력 때문이다.

지금 그 순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녀를 우러러보고 있는 동안 나의 사랑이 다른 모든

소망에서 자유롭게 풀렸었다는 점인데,

그것은 영겁의 희열이 직접

베아트리체를 비추어 그 아름다운 눈에서

반사되어 나에게 만족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미소의 빛으로 나를 압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쪽을 보고 말을 들으세요. 천국은

비단 내 눈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714P)


나는 오른쪽을 돌아보았다.

무엇을 해야 하는 가를 베아트리체의

눈짓이나 몸짓으로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는 반짝반짝 빛나면서

자못 기쁜 듯이 그 표정엔 일찍이

보지 못한 아름다움이 더해졌다.

착한 일을 하여 한층 더 기쁨이 커짐을 알게 되는 것인데,

그와 마찬가지로 그 기적이 더욱

사랑스럽게 되는 것을 보고 나는 내가 따라 돌아야 할

친구의 호가 한층 더 커졌음을 깨달았다. (주: 지구로부터의 거리가 늘어날수록 호의 만곡은 느릿해진다.)

살결 흰 여인이 수줍음의 무거운 짐을 그 얼굴에서 벗어버리면

순식간에

볼을 물들였던 빛깔을 털어버리는 법인데,

그것과 비슷한 변화가 지금 내 눈앞에 나타난T다. 내가

돌아보았을 대 보인 것은, 나를 자기 안으로 맞아 준

여섯째의 조화된 별의 조용한 흰빛이었다. (716P)


아아, 거룩한 시의 여신이여, 그대는 시인들에게 영광을 주고

그대의 힘을 사용하여 나라와 도시의 이름을 길이 남기는

시인들에게 장수(長壽)를 주는데,

부디 그대 빛으로 나를 비추어 다오. 그리고

내가 관념 속에서 그린 대로 그들의 모습을 부각시켜 다오.

그대의 힘을 이 짧은 시구 속에서 부디 나타내 다오. (718P)


아아, 아름다운 별이여, 지상의 정의는 그대를 구슬로 삼고

그대를 장식으로 삼는 이 하늘의 작용일 따름이지만,

찬연히 빛나는 수많은 주옥들은 그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719P)


제 19곡


행복과 기쁨에 넘친 영혼의 무리가

날개를 펴고 아름다운 모습을 나란히 하여

내 눈앞에 나타났다.

영혼 하나하나가 마치 홍옥인 양

뜨거운 햇빛을 받고 타올랐으므로,

그 빛은 내 눈 안에서도 반사하는 것 같았다.

지금 내가 이야기하는 광경은

붓으로 기록한 적도 사람이 말한 적도,

아니 공상으로 그린 일조차도 일찍이 없었다. (722P)

(주; 독수리는 교회의 권위를 나타내며, 로마 제국의 상징이다)


아아, 영원한 환희의 꽃들이여,

당신들은 그 꽃의 여러 향기를 하나로 합치셨습니다.

당신들의 입김으로,

나에게 오랜 세월 배고픈 괴로움을 준

크나큰 굶주림(지식에 대한 갈망)을 부디 없애 주십시오.

지상에는 이 굶주림을 채워 줄 만한 음식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723P)


아아, 지상의 동물들이여!

아아, 어설픈 두뇌여!

그 선량하신 태초의 뜻(하느님의 뜻)은 일찍이

지고선인 자기 자신을 떠나 본 적이 없었다.

그 뜻에 화합하는 것은 모두가 정의인 것이다. (727P)


불의 섬을 다스리는 왕에 대해서는

탐욕과 비열이 적혀지리라.

그가 얼마나 옹졸한 인간이었던가를 알게 하기 위해

그의 항목에는 약자로

좁은 지면에 많은 사항이 기록되리라.

그리고 거기에는 그의 숙부와 아우의 불미스런 행실이

누구의 눈에도 분명하게끔 적혀 있을 것이다.

그들은 고귀한 문벌의 주인과 두 왕족을 샛서방으로 삼았다.

(주 : 불의 섬- 에트나 화산이 있는 시칠리아. 이 섬을 다스리는 왕은 페데리고 2세였다.


제 20곡


그 빛 무리의 천사와 같은 합창이 멎었을 때

나의 귀에는 푸짐하게 솟아올라

바위에서 바위로 흘러내리는

맑은 흐름과도 같은 소리가 들렸다.

비파의 가락은 목에서 소리를 내고

피리로 들어가는 바람은 구멍을 거쳐

가락으로 변화되는데,

독수리의 속삭임 같은 소리도 눈 깜짝할 사이에

허공 같은 목을 거쳐

곧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소리로 변하여 그 부리 끝에서

말이 되어 밖으로 나왔는데,

들려 온 것은 내가 마음속에 적었던,

기다리던 말이었다. (733P)


눈썹의 호 아래쪽에 보이는 빛은 구일리엘모(시칠리아 왕 구일리엘모 2세)이다.

페데리고와 샤를 이 살아있을 때 울던 그 나라(시칠리아)는 지금 그를 애도하여 슬퍼하는데,

그는 하늘이 올바른 왕을 얼마나 사랑하는 가를 이제 깨닫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다시 빛나는 자기 자태로서 남에게도 보여주고 있다.

트로이의 리페우스가 이 둥근 호의

다섯째로 거룩한 빛이라는 것을

몽매한 하계사람 중 그 누가 생각인들 했겠는가. (736P)


종달새는 처음에는 노래하며 하늘로 날아올라

음악소리에 도취되어 어느덧 마음 흡족해지면

나중에는 흐뭇한 듯이 침묵해 버리는 데,

여우언한 희열이 새겨진 ‘독수리’의 모습도

그와 마찬가지로 입을 다물었다.

‘하느님’의 소망에 따라

저마다 본래의 모양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736~737P)


너의 이름은 알지만 누가

그 본질을 보지 못하는 사람과 마찬가지다.

하늘의 왕국은 열렬한 사랑과 간절한 소망에 의해

규율을 어기는 것을 용납하는 수가 있다.

그러한 것이 하느님의 뜻에 이기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이기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지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기는 것이다.

그리고 진 하느님의 뜻은 인자함에 의해서 이기는 것이다. 9737P)

☆☆☆경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생각도 버려라. 상대와의 싸움에서도 때로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일 때가 있다. 하느님은 졌다고 하지만 그 인자함에 의해 이긴 것이 된다.



제 21곡


내가 주의를 딴 데 돌리려 했을 때

그녀의 복된 표정이 나에게 있어 얼마나 근사한

눈의 기쁨이었던지 그걸 아는 이에게는,

이 천상의 안내자의 명령에 따르는 기쁨이 어느 정도의 것이었는지

두 가지를 비교하여 짐작할 수 있으리라. (744P)


이탈리아의 남북 해안 사이,

그대 고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바위산이 하늘 높이 솟아있다.

천둥소리가 저 밑에서 들릴 만큼 높은 산이다.

그것이 우뚝 봉우리를 이루는 것은 까트리아라 불리고,

그 기슭에 오직 예배만을 위한

수도원이 하나 세워져 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거기서 나는 오로지 하느님께 종사하며

묵상의 생활에 만족하였고,

오직 올리브의 즙만을  마시면서

더위도 추위도 아랑곳없이 경쾌하게 세월을 보냈다.

그 수도원은 예산ㄹ엔 하늘을 위해 잇따라 풍성한 열매를 맺었다.

그러나 이제는 허무하게 변해 버렸다.

머찮아 그 실체가 드러나리라.

나는 거기 있을 때는 피에트로 다미아노라고 불렀고,

아드리아 바닷가 성모의 집에 있을 때는

죄인 피에트로라 불렀다. (주 : 성 베드로를 말한다. 그는 평생 자기를 들어 말할 때 이같이 말했다.)

☆☆☆피에트로 다미아노와 베드로의 영상과 일치시키고 있다.


요즈음 성직자들은

좌우에서 부축을 하고, 앞에선 손을 이끌고,

뒤에서는 옷자락을 들어줘야 할 만큼 뚱뚱하게 살이 쪘다.

그들은 저희들의 외투로 말까지 덮고 있으므로

한 장의 모포 밑에서 두 마리의 짐승이 가고 있는 셈이다.

“아아, 부패와 타락을 참으시는 하느님의 인내여!”

☆☆☆앞에서 베드로의 청렴하고 빈곤한 수도자생활을 언급하면서 뒷부분에서는 당시 성직자들의 사치스럽고 화려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아, 성직자들은 언제부터 타락한 것일까?


제 22곡


나의 계율은 종이만 낭비한 채 먼지를 쓰고 있다.

벽으로 들러싸인 옛 수도원은

지금은 ‘도둑’들의 소굴이 되었고,

두건은 썩은 가루가 가득 찬 자루로 변해 버렸다.

수도자의 마음을 이토록 홀리는 이 과일(교회에서 얻는 수입)에 비하면

세상의 부당한 고리대금업도

하느님의 뜻에 위배된다고는 말 못할 정도이다.

☆☆☆하느님이 ‘불법 고리대금업’을 아주 나쁜 죄악이라고 했지만 , 이 또한 교회의 수입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니라는 의미이다. 예나 오늘이나 신도(信徒)들은 사원의 경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도구 혹은 부속품에 불과하다. 부처님이나 예수님이나 사원을 튼실하게 지어야 한다고 말한 적도 없으며, 신도들로부터 경제적인 부분을 의지하라는 가르침은 없었다. 그런데 각 종교마다 권위와 팽창과 확대를 위해서는 기부금이 필요하다면서 신도들을 기만하거나 착취해왔다. 사원이 커면 클수록 그 신도들은 행복할까?

내일은 부처님오신날인데, 각 사찰에서는 연등을 판매한다. ‘자등명 법등명’을 위해서 다는 등불인데, 가격을 매겨서 판매하고 있다. 각 사찰의 부실한 재정을 메꾸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이렇게 좋은 날, 연등에 서려있는 좋은 의미는 뒷전이고 돈거래가 이루어져야 할까 하고 생각해본다. 

어느 법사가 “우리 옆집에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오시면 우리가 알 수 있을 까요? 그분들은 결코 양복 쫙 빼입고 오시지 않고 허름한 차림으로 오실 텐데요. 만약 오늘 이 땅에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오신다면 영업방해 한다고 이 지구상에서 추방해버릴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말씀이다.

성직자들이여! 이제 더 이상 우매한 민중들을 더 이상 기만하고 우려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무릇 교회가 간수하는 재물은 모두

하느님의 이름으로 물건을 청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지,

성직자의 친척이나 그 밖의 추잡한 자들의 것이 아니다.

인간의 육체란 유혹이 많은 것이므로

지상에서는 선행을 시작하더라도 떡갈나무가 싹을 터서

도토리가 열기까지 만큼이나 지탱하기가 어렵다.

베드로는 금도 은도 없이 전도를 시작했고,

나는 설교와 단식으로, 프란체스코는

겸손하게 평민과 어울림으로써 일을 시작했다.

이러한 교단 하나하나의 기원을 보고

그것이 어디로 어떻게 탈선했는지를 살펴보면

흰 것이 검게 된 경위를 알 수 있다. (753P)


아아, 그 거룩한 승리의 나라로 다시 되돌아가고 싶어라.

그 천국을 구하며, 나는 자주 죄를 뉘우쳐 울면서

이 가슴을 친다. 독자여, 그 소망을 두고 내 말하지만,

그대가 불 속에 손가락을 갑자기 집어넣었다 빼는 그 찰나에,

내가 금우궁(황소자리) 다음 성좌를 보자마자

벌써 그리로 들어갔던 것이다. (754P)


아아, 영광에 찬 별들이여,

아아, 위대한 힘을 잉태한 빛이여,

나의 시적 재능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주: 단테는 태양이 쌍둥이자리에 있을 때 탄생했다. 그의 시적재능은 그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

모두가 그대들 빛에서 유래되는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토스카나의 공기를 마셨을 적에도

생명있는 것의 아버지인 태양은

그대들과 함께 나고 그대들과 함께 졌다.

그리고 뒤에 그대들의 저 놓은 하늘에 오르도록

하느님의 은총이 내게 부여되었을 적에도

나는 그대들의 영역으로 배치되어 있엇다.

지금 내 영혼은 영혼의 힘을 송두리째 빼앗는

이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 힘을 얻으려고

그대들의 도움을 경건하게 청하고 있다. (754P)


“그대는 마지막의 지복 바로 가까이에 왔습니다.”

베아트리체가 말을 시작햇다.

“그러므로 그대는 눈을 날카롭게 빛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대가 더 깊이 들어가기 전에

아래를 내려다보세요. 얼마나 많은 세계가

그대 발아래 놓여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대의 마음이, 환희의 빛을

밖으로 나타내 보이면, 승리의 무리(승리한 천사의 무리)가 기꺼이

정기의 경계를 건너 그대를 맞으러 올 것입니다.


나는 눈을 돌려 일곱 천구처럼 저 멀리

이 지구를 보았는데, 너무나도 작고

보잘 것 없는 그 모양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지구 따위는 보잘것없다는 견해가 옳다고

나는 생각되었다.

지상 이외의 것을 생각하는 이야말로

참으로 옳은 사람이라 부를 수 있으리라.(755P)

☆☆☆시인으로서 더 큰 재능을 얻고 싶다고 했더니, 눈을 들어 저 아래 세계도 한 번 둘러보라고 한다. 그리고 저 멀리서 지구도 한 번 보라고 한다. 지구의 보잘것없음을 깨닫고 더 크게 멀리 보는 자야말로 성공할 수 있음을알게 된다.


제 23곡


나는 천상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소원을 간직한

그 모태에서 드높은 희열의 정이 불어와서

그 둘레를 맴돌고 있는 거예요.

하늘의 여인이여, 당신이 아드님을 따라 지고천으로 들어가시어

지고천이 더욱 거룩함을 더하게 될 때까지

나는 여전히 계속하여 맴돌 생각입니다.(762P)


선율이 이처럼 맴돌며 노래를 마치자

모든 광명이

드높이 마리아의 이름을 불렀다.

세계 친구의 모든 회전을 그 안에 포함하는

왕의 옷은,  하느님의 입김과 이치 속에서

열렬하게 타올랐으나,

그 안의 기슭은 우리들 위에 멀리 있었으므로

내가 있던 곳에서는

먼 빛으로나마도 볼 수가 없었다.

자기 아드님의 뒤를 따라 면류관을 쓴 그 불꽃이

하늘로 올라갔을 때,

내 눈은 아직

그것을 좇을 만한 힘이 없었다.

그들의 마리아에 대한 깊은 사랑은

이렇게 하여 내 눈에도 선명하게 보였다.

고아명의 무리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하늘의 여왕이여”를 부르며

나의 시야 속에 머물러 있었고,

그 기쁨은 내 귓전을 종내 떠날 줄을 몰랐다.

아아, 이 커다란 궤짝 속에 거둬들여진 부의

풍요함이여! 그들은 지상에 있을 때

좋은 씨를 뿌린 농부였었다. (762~763P)


제 24곡


신앙이란 소망의 실체요

아직 보지 못한 것의 논증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본체인가 합니다.(767P)


“만약 기적도 없는데 세계가 그리스도교에 귀의한다면”하고 내가 말했다.

“단지 그것 하나만으로도 다른 것보다 백배나 더한 기적이라고 할 수가 있지 않을까요.

당신은 가난하고 굶주린 모습으로 밭에 들어가

좋은 식물의 씨앗(그리스도의 신앙)을 뿌리셨습니다.

그 나무에 옛날엔

포도가 열렸었습니다.

지금은 가시덩굴밖에 나 있지 않습니다만.” (769P)

☆☆☆기적을 이루는 종교라고 인식되어졌다면 전세계가 그리스도교에 열광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기에 세계곡곡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왜 가시덩굴밖에 없을까? 궁금하다.


이 신앙에 대해 나는 물리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증명만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모세며, 예언자며, 시편이며, 복음서이며,

또 불타오르는 영이 당신들을 축복하신 뒤

당신들이 쓰신 책을 통해 자비로운 비처럼 내려지는

진리에 의해서도 나는 믿고 있습니다. (770P)


제 25곡


하늘을 시로 읊고 땅을 시로 읊는  이 <신곡>을 위하여

오랜 세월 뼈를 깎는 듯한 고생을 거듭하여 몸도 야위었지만,

그 옛날 아직 어린 양이었던 시절

저 아름다운 양우리(피렌체를 뜻함)에서 자던 나를 몰아낸

흉악한 이리들의 잔혹 무도함을

만약 이 시가 무찌를 수 있다면

그때는 목소리도 머리털도 이미 변해버렸을 것이지만,

나는 거기 시인으로서 되돌아가 나의 세례당의(피렌체의 성요한 성당, 세례받는 재단이 유명하다)우물가에서

머리에 관을 쓰게 되리라.

그 세례당에서 나는 하느님의 존재를 영혼에게 아리는

신앙을 얻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신앙이 있음으로 해서

지금 성 베드로가 나의 주위를 도셨던 것이다. (772P)

☆☆☆ 유배자의 생활을 하고 있는 단테에게는 지금 적고 있는 <신곡>이 그의 유일한 희망이다.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피렌체의 악당들에게 복수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단테는 자신의 인생과 맞바꾼 <신곡>이 수천년동안 명저로 손꼽혀왔으니 그들에게 철저히 복수를 해 준 것이다. 그때 영화를 누리던 피렌체의 고관대작과 교황은 지금 어디에도 그 이름조차 남아있지 않다.

나도 한때 단테처럼 내 책 한 권으로 세상에 대해 복수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복수는 커녕 나에게 영광도 되어주지 못했다.


제 26곡


날카로운 빛을 받은 시력은

막을 통과해 오는 빛살을 향해 달리므로

눈은 퍼뜩 Em이지만,

뜨고서도 눈앞의 것을 잘 분간할 수가 없다.

갑자기 뜬 시력으로는 판단력의 도움이 없으면

현실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베아트리체가 내 눈의 티끌을

천마일 앞을 비추는 눈빛으로

말끔히 털어주었다. (782~783P)


듣거라, 내 아들아,

나무 열매를 맛보았다는 것만으로는

그와 같은 추방의 원인은 되지 않는다.

한계를 제멋대로 넘어섰다는 점이 문제이다. (784P)

(주 : 금단의 열매를 먹었다는 그 자체보다도, 하느님에 의해 인간에게 부과된 한계를 제멋대로 뛰어넘어 아담과 이브가 하느님과 동등하게 되려고 한 것이 하느님의 노여움을 산 것이다. 즉 그들은 대식(大食)의 죄가 아니라, 교만의 죄 대문에 지상 낙원에서 추방당한 것이다. 아담이 연옥산 꼭대기의 지상 낙원에 있던 시간은 하느님에 의해 만들어진 ‘첫 시간부터’ 금단의 열매를 따 먹고 낙원에서 추방되기까지 여섯 시간이 조금 넘는다는 것이다. )


제 27곡


하늘의 암염소의 뿔이 태양에 닿을 무렵

얼었던 물기는 눈송이가 되어

지구의 대기를 통하여 내리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여기 윌와 함게 머물러 있던

개선(凱旋)한 수증기가 눈송이가 되어 더 높은 하늘을 향해

정기(精氣)속을 반짝이면서 오르는 것이 보였다.

내 눈은 그들의 뒷모습을 좇았다.

중도까지는 갈 수 있었으나 사이가 너무 멀어져

더 이상 멀리는 따라갈 수가 없었다.(792P)


아아, 탐욕이여, 네가 인간을 집어삼켜 밑바닥 깊숙이

가라앉혔기 때문에, 인간은 아무도 너의 물결 속에서

눈을 들지 못한다!

의지는 여전히 인간에게 아름다운 꽃을 피우건만,

지루한 장마 때문에

진짜 오얏이 썩은 과일로 변했습니다.

신앙과 청순함은 어린이들 안에서밖엔

찾아볼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그것도 모두

볼에 수염이 잘 못할 때는 단식을 지키던 어린이도

제법 말을 할 줄 알게 되면 어떠한 음식이건 아무 때나

마구 먹어 버리게 되는 거예요.

아직 말을 잘 못할 때는 어머니 말을

잘 듣던 어린이도 제법 말을 할 줄 알게 되면

어머니는 어서 무덤에 묻히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아침을 데려오고 저녁을 남겨주고 가는 이의(태양을 뜻함)

아름다운 딸의 눈에 뜨이기만 하면 순식간에

흰 살갗이 이렇듯 검어져 버리는 거예요.

뭐, 그대가 놀랄 것은 없을 거예요.

생각해 보세요. 다스리는 자가 지상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 족속은 길을 잘못 드는 거예요.(794P)

☆☆☆이 땅에 다스리는 자가 없다고 한 까닭은 무엇일까? 다스리는 자가 있어도 길을 잘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네들이다.


제 28곡


내 마음을 천국처럼 만들어주시는 여인이

비참한 현세 사람들의 현재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 준 바로 그 직후의 일이었다.

자기 등 뒤의 촛대에 불이 켜지면

미처 보거나 생각도 하기 전에

그 불꽃이 벌서 앞의 거울에 비친다.

그래서 얼른 돌아서서 유리알에 비친 불이

실물인가 아닌가를 보려고 하면, 가락이 악보에

꼭 맞듯이 둘이 부합된다.

지금 돌이켜 보면 내가 여인의 눈을,

사랑이 나를 사로잡기 위해 그물로 삼은 그 눈을

보았을 때도 이와 같았다. (797P)


제29곡


영원한 사랑은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선을 모을 수가

없으므로, 모으기 위해서가 아니라,

광휘가 널리 퍼져 ‘나 여기 있다’

고 말할 수 있도록 시간을 초월한 영원 속에서

일체의 한계를 넘어 자기 마음대로

그 영원한 사랑을 새로운 사랑들 속에 펼치셨던 거예요.

그렇다고 하느님이 활발하지 못하셨느냐하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806P)


그대들 인간은 지사에서 철학을 할 때 같은 길을

가지 않아요. 얼핏 보기에 화려한 일을 하려고

엉뚱한 방향으로 가기 대문입니다.

그러한 잘못을 이 천상에서는

성서가 멸시되거나 왜곡되던 때보다는

비교적 관대하게 보아 주고 있습니다.

이 성서의 진리를 펴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으며,

그 진리에 겸허하게 다가가는 이를 하느님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그런 것을 생각하는 이가 지상에는 없습니다.

세상의 이목을 끌려고 모두 지혜를 짜내어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새로운 설이

세상에 퍼지고 복음서는 잊혀지고 맙니다. (808P)


꽤 오래 옆길로 빗나갔으니,

이제부터 옳은 길로 눈을 돌리세요.

길도 시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809P)


제 30곡


내가 본 아름다움은 인간의 이해 영역을 초월하고 있었다.

조물주 외에 이 아름다움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는 이는

없으리라고 나는 호가신한 것이다.

나는 여기에 이르러 내 힘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비극, 희극의 작가도 그 주제에 져서

이토록 압도당한 사람은 없었으리라.(815P)


나는 현세에서 그녀의 얼굴을 본 그날부터

지금 이 천상에 이르기까지 서투르게나마

줄곧 그녀를 시로 읊어 왔으나,

이제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시로

좇을 수가 없다.

예술가에게는 모두 한계가 있는 것이다.

나의 나팔은 어지 되었건 간에 이 곤란한 시재를 끝까지

노래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그녀의 묘사는

보다 힘찬 노랫소리에 맡기기로 하자.(815P)


"여기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지금 그대 마음속에 타올라 그대를 애타게 하는 소망이

커지면 커질수록 나는 기쁩니다.

그러나 이러한 갈망을 풀려면

이 물을 먼저 마셔야만 합니다.”

내 눈의 태양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818P)


나는 눈을 가다듬고 보다 잘 보려고

물결사이로 몸을 굽혔다.

그것을 마시면 시력이 나아진다는 하느님 빛의 물결이다.

내 눈 가장자리가 이 물을 마시자,

지금까지 강처럼 길게 보이던 흐름이

갑자기 둥근 호수처럼 넓어 보였다.

가면을 쓰고 제 모습을 감추던 사람이

그 가면을 벗어 버리면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법,

그와 마찬가지로 꽃과 불꽃들이 전보다 더 한층

기꺼운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천상의 두 궁궐이

내 눈앞에 도렷이 보였던 것이다. (819P)


영원히 봄을 가져다 주는 태양을 찬미하며 향기를 풍기면서

층에서 층으로 퍼져가는

영원한 장미의 노란 꽃술 속으로,

잠자코 있긴 하나 말하고 싶어하는 나를

베아트리체가 데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말했다.

“보세요, 흰옷의 무리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 천국의 거리가 또 얼마나 넓고 큰가를!

그리고 보세요. 자리가 벌서 거의 다 찼으니

이제는 여기 얼마 더 들어오지도 못할 거예요. 9820~821P)

(주 : 단테는 종말의 날이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다)


제 31곡


마치 꿀벌 떼가 어느 때는

꽃속으로 들어가고 또 어느 대는

그 노고가 향기롭게 열매 맺는 곳으로 돌아오듯이,

그들은 수많은 꽃잎으로 장식된 저 큰 꽃 속으로

차례차례 내려가, 다시 거기서

그 사랑이 늘 깃들이는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825P)


아아, 고귀한 여인이여, 내 희망은 당신 안에서 솟구칩니다.

당신은 나를 구언하기 위해 수고를 마다 않고

일부러 지옥까지 내려와 주셨습니다.

내가 이 모든 것을 바라볼수 있는 것은

오로지 당신의자비로우신 조력과

은혜덕분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힘이 미치는 한

온갖 길을 거쳐 온갖 수단을 다하여

나를 속박에서 자유로운 몸으로 건져내 주셨습니다.

당신의 위대한 힘을 앞으로도 나에게 주십시오.(829P)


제 32곡


이 광대한 왕국 안에서는

슬픔이나 목마름이나 굶주림이 있을 수 없듯이,

우연도 있을 수가 없다.

그대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영원한 법칙에 의해

정해져 있으므로 손가락에 가락지가 끼어지듯이

모든 것이 정확하게 대응되고 있다. (825P)


무릇 천사라든가, 영혼 속에

있을 수 있는 한의 강건함과 우아한 자질은 모두 그 안에 있다.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우리가 원하는 만큼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839P)

☆☆☆불교에서 ‘자기 안에 이미 갖추어져 있다’고 말하듯이 기독교에서도 똑같이 말하고 있다.


제 33곡


하느님이 사랑하시고 경애하시는 마리아의 눈은 기도를 올리는

베르나르에게 쏠렸다. 그 눈에는 정성어린 기도를

기뻐하시는 심정이 역력히 깃들어 있었다.

곧 그 눈은 영원하신 빛 쪽으로 돌려졌는데,

그 눈만큼 밝게 하느님의 빛을 본다는 것은

다른 피조물에게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844P)


나는 지금 꿈을 꾸고 난 사람 같은 심정이다.

꿈이 깨어 모든 것이 사라졌지만

감동만은 새겨져 전해지고 있다.

꿈에서 본 모습은 말끔히 사라졌으나,

그래도 내 마음속에는

아름다움이 아직도 흘고 있다. 햇볕에 녹는 눈이라고나 할까,

바람에 지는 가여운 나뭇잎에 적힌

시빌레의 점괘에나 비유할까.(845P)


그의 빛 깊디깊은 곳에는

우주에 흩어져 있는 모든 것들이

사랑에 의해 한 권의 책으로 엮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실체와 우연히 만들어진 모습이

서로 오묘하게 섞여 있었으므로

내 말 따위는 아련히 하늘거리는 빛에 불과하다. (848P)


선은 의지의 목적이지만, 선은 모두

그 안에 모여 있다. 그 빛 속에서는 완전한 것도

그 빛 밖에 나오면 불완전한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849P)


아아, 내 말은 생각에 비해 얼마나 약하고

모자라는 가, 그리고 이 생각 또한 내가 본 것에 비하면

“조금‘이라는 말조차도 못할 만큼 모자라는 것이다.!

아아, 영원한 빛이시여, 당신은 당신 안에만 계시고

당신만이 당신을 아시고, 당신에게만 알려지고,

당신을 알면서 사랑하고 웃으시는도다!(849P)



내가 저자라면


<신곡>의 원제목은 <희극>이었다. 단테는 왜 <희극>이라 붙였을까?

20년도 넘는 세월동안 유배와 유랑생활을 해야만 했던 단테는 자신이 처한 현실이 많이도 원망스럽고 힘들었을 것 이다. 삶이 한 편의 비극과도 같았다면 그가 생각하는 죽음이후의 세계는 희극이기를 바랐던 것일까? 단테는 고난에 찬 망명생활을 하며 이 대서사시를 썼다.

예이츠는 단테를 두고 ‘최고의 기독교적 상상력을 가진 시인’이라고 했다. <신곡> 또한 지극히 기독교적 관점에서 지옥, 연옥, 천국을 순례하는 것을 묘사하였다. <신곡> 전편에 흐르는 주제는 ‘정의’이다. 단테는 배신으로 얼룩져 있는 이 세상에 정의를 약속하는 신의 존재를  사랑을 통하여 이루어지기를 원하고 있다.

시몬드는 그의 <단테연구> 속에서 이렇게 말했다.

 “고도로 완성된 일련의 정밀화 속에 대표적인 인물을 늘어놓고 단테의 개별적인 체험을 통해서 보편적인 것이 표시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단테의 운명에 관한 특수적인 것도 들어있기 때문에 독자의 흥미는 가실 줄 을 모르는 것이다”

  지옥이나 연옥, 천국이야기는 자칫 식상할 수도 있는데 단테 개인의 이야기가 들어있어 지루하지 않게 잘 읽어나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단테의 뛰어난 상상력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다. <신곡>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도교라는 것 말고도 문학적인 감수성과 상상력, 단테의 박식함, 단테의 개인사와 그 당시의 사회성이 보태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베르길리우스와 베아트리체가 안내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나도 이런 형식을 빌려 여행서를 쓰도 좋을 것 같다. 알랭드 보퉁이 <여행의 기술>에서 철학자를 비롯한 여러 사람을 가이드로 내세워서 이미 쓰기는 했다. 나는 나만의 색깔로 새롭게 구상해서 써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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