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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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호가 다섯 살 때까지는 장난감을 잘 안 사줬습니다.
제가 좀 짠돌이인 것도 있고, 남들 사준다고 따라 사주는 건 아닌 것 같아서였습니다.
생일날이나 되어야 민호가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 한 후에 줄이고 줄이는 협상의 과정을 거쳐서 선물했지요.
"생일날이니까, 특별히 사주는 거야" 라는 말까지 덧붙여서요.
그러나 욕망이 이성적인 생각으로 막아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트에 가서도 장난감 코너에서 구경만 하게 해달라고 조릅니다.
하나하나씩 한참을 구경하다가
"이 레고는 8살 생일에 사줘, 이 팽이 세트는 9살 생일에 사줘!" 하는 겁니다.
전 마시멜로 이야기를 떠올렸죠. 눈앞의 마시멜로라는 유혹을 참은 아이들이 커서 뛰어난 학업성취와 성공을 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민호가 자기 욕구를 절제할 줄 안다고 생각하고 대견해 했습니다.
2012년 올해 어린이날을 지나면서 민호는 한꺼번에 선물을 받았습니다.
엄마와 아빠 선물로 축구놀이 판, 할아버지가 동대문 장난감 가게를 돌아다니며 사신 각종 로봇과 팽이들,
작은 아빠가 변신 자동차 레고를 선물했습니다. 저는 다양한 선물에 민호의 욕구가 충족되었을 꺼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5월이 지나기도 전에 6월달 자기 생일을 자꾸 얘기하며 제일 큰 레고 세트를 사달라는 겁니다.
전 단호하게 "안 돼. 5월 달에 선물 많이 받았잖아. 원하는 걸 다 얻을 수는 없는 거야." 라고 말했습니다.
민호가 울먹이며 떼를 쓰다가, 뒹굴기 까지 하더군요.
"왜 안 돼! 옛날에 생일날 사준다고 약속했잖아. 친구들은 더 큰 것도 있고, 팽이도 엄청 많아!
나도 다 갖고 싶어!"
마지막 한 마디가 오래 남았습니다. '다 가지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으니까요.
저도 부자가 되어 좋은 사진기와 오디오, 경치 좋은 곳의 별장과 나만의 서재를 가지고 싶거든요.
민호도 장난감 코너에 쌓여있는 팽이와 레고들을 보며 얼마나 가지고 싶었을지.
친구네 집에 있는 많은 장난감을 보며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민호가 원하는 것들을 조절하고 관리해야 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원하는 그 마음을 받아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러다가 '아이가 꿈꾸는 것조차 허용하지 못하는 쫀쫀한 아빠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민호의 마음을 받아주겠다고 마음먹은 후에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다 갖고 싶었구나. 게다가 아빠가 생일날 사준다고 약속해놓고는 안 지키려고 해서 화났구나."
"미안해, 민호야. 레고 중간 꺼로 골라봐. 엄마, 아빠가 생일날 선물 해줄께."
민호가 조금 풀린 얼굴로 대답합니다.
"그럼, 이거는 생일 선물로 하고, 제일 큰 거는 크리스마스 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한테 말하자."
아이는 부모의 허용을 통해 욕망을 스스로 조절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무조건 절제해야 한다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장난감을 사주고 말고는 나중 문제이고 먼저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어야 합니다.
쉽지는 않습니다. 가까운 부부끼리도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쉽지 않잖아요.
훈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연습하고 노력해야겠습니다.
그나저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민호 소원을 들어 주실 런지는 그때 가봐야 알겠지요?
<태어나서 5년 5개월>
민호의 얘기를 들으면 그 나이였을 적의 나를 떠올리게 되는데 말이지.
나는 어릴 적에 떼도 안 쓰고, 동생들을 잘 챙기고, 엄마와 아빠의 눈치를 봐서 집안에 할 일들을 찾아서 하는 '애 어른'이었던 것 같아.
그래서 그 때 나도 막 떼 쓸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들고.
민호는 떼 쓸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무척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나고 있다는 느낌도 들고.
어쨌든.. 아이를 키운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인듯. 지나고 나서야 그것이 잘 한 결정이었는지, 잘 못한 결정이었는지 알 수 있을테니 말이얌. 장난감.. ㅋ.. 언젠가 민호에게 선물할 기회가 있으면 장난감 하나 사줘야겠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