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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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이 가야 하는 길
그 길을 기어이 가야 했다. 새로운 길을 간다는 것, 당시 나에게 그것은 종교였다.
그리고 젊었다. 젊고 어렸기 때문에 물리적인 길 자체는 욕망의 대상이 될 수 있었고 다시 욕망은 그것에 숨어 있는 필요 이상의 엄숙을 가져와 맹목적 믿음을 만들어 냈다.
마루금이 길을 단축하거나 질러가지 않는 것은 진리와도 같았고 산이 강을 건너지 않는 것은 군자의 모습이었다. 11년 전, 나에게 그 길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일러준 18세기 지리학자 신경준(1712~1781)은 내 사유를 자신의 사고 안으로 붙들어 매었다. 그는 그가 가진 길에 대한 조화론적 사유를 ‘산경표(山經表)’에 쏟아 내었고 그 핵심을 ‘도로고(道路考)’로 요약했다.
‘무릇 사람에게는 그침이 없고 행함이 있다. 그침은 집에서 이루어지고 행함은 길에서 이루어진다. 맹자가 말하기를 인(仁)은 집안을 편하게 하고 의(義)는 길을 바르게 한다고 하였으니 집과 길은 그 중요함이 같다. 길에는 본래 주인이 없어,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
알아 듣지 못하는 비약과 함의 속에서 나는 ‘길에 주인이 없다’는 말만 보았고 이내 그것에 경도되었다. 한국의 산줄기를 책상 위 한 가득 펼쳐 놓으면 호랑이 힘줄 같은 마루금이 내 가슴으로 달려 들었다. 등고선이 3D입체가 되어 영화처럼 펼쳐지고 산과 산을 잇는 능선 줄기는 흐벅지게 달아오른 사춘기 소년의 그것 마냥 부침을 반복하는 것이 쿵쾅거리는 내 마음과 같았다. 내 걷는 길에 주인 되는 것을 상상했다.
“너와 몸을 섞는 일이 나를 이리도 기쁘게 하였다.”
어설픈 지배욕은 내 시선이 낙동정맥, 천리 길로 닿게 했다. 산경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산줄기는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나뉘어 진다. 13정맥 중 하나인 낙동정맥은 강원도 통리에서 시작한다. 한강과 오십천의 수원이 되고 낙동강의 원류인 삼수령에서 마루금은 출발하고 동해의 등줄기를 따라 백병산, 통고산, 면산, 백암산 등 1,000m 준령 들을 거친다. 이후 동해 해안과 내륙을 잇는 간선 지방도 격의 숲재, 추령, 답운치 등의 고개를 무수히도 건넌다. 강원도에서 시작한 산줄기는 강을 가르지 않고 경북과 경남 내륙을 관통하고 부산 몰운대에서 끝이 난다. 총 연장 390km, 천리에 달하는 길이다.
차로 달리면 4시간이면 족한 길을 40일을 걸어 닿았다. 그 끝에 가 닿는 것, ‘감’이라는 것이 나를 규정하는 상징처럼 다가온 순간이다. 자동차 속도 개념에 비하면 오체투지와도 같은 느려터진 숭고함을 믿기 시작했다.
“너에게로 가는 것이 이리도 힘들고 험난한 사태임을 구불구불한 능선처럼 너는 말해 주었다.”
길이라는 것이 결국, 인류가 ‘너’에게로 가기 위해 몸부림 쳤던 욕망의 등가물이라면 너에게 직선으로 가 닿은 것이 나에게는 값싼 욕망의 배설 같은 죄악이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멀지만 나선(螺線)처럼 에둘러 너에게 닿는 것이 눈물 겨운 생을 삼엄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되었다.
데카메론을 읽어 내리며 필멸의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욕망이 ‘육체’ 말고는 과연 없었을까 생각했다. 14세기 유럽 사람의 3할을 죽였던 Pest의 공포는 실로 엄청난 것이어서 그 사단에서 살아남았던 사람들이 느끼는 삶의 기쁨은 과연 무엇이었겠는가를 가늠해 본다. 조반니 보카치오는 결국, 본능에의 충실을 이야기 할 수 밖에 없었다. 뼈와 살이 있는 필멸의 인간이 붙들고 놓지 않았던 가치는 육체였지만 그럼에도 보카치오가 말하려 했던 마지막 이야기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지 않았겠는가.
물리적인 마루금에서 시작된 생에 대한 자세는 데카메론에서 이야기하는 욕망의 풍경들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내 이렇게 힘겹고 두려운 생을 한발 한발 디뎌내는 것은 결국 ‘사랑’이라 말하려 입술을 달싹거리는 것일 게다. 너에게 닿는 길에 분명 좌절하고 분노했다가 기뻐하고 슬퍼하기도 하겠지만 구불구불한 불안함을 후끈 달아오른 열정으로 언젠가 내 안의 ‘사랑’과 ‘자유’를 남김없이 쏟아내고 절정을 맛보리라. 지금 밖은 밤나무 양향(陽香)으로 진동을 한다. 어여 절정으로 가자는 자연의 시그널인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