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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4일 15시 05분 등록

1. 저자에 대하여

 

김용규

왜 나이 들수록 숲은 황홀하고 인간은 황망해지는가? 나이 마흔을 앞두고, 조직과 결별하면서 자신에게 던진 물음이었다. 저자 김용규, 그는 국내 유명 금융회사와 이동통신 회사에서 인사와 경영전략을 담당했다. IMF 직후, 기업 확장의 일환으로 회사는 벤처 회사를 세워 그에게 CEO 자리를 내주었다. 그곳에서 7년간 사장으로 일했다. 남들은 희망의 길 위에 섰다고 했지만, 그에게 이 기간의 삶은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질 수밖에 없는 두발자전거와 같았다. 희망 아닌 것들이 희망을 대신한 시간이었다. 갈수록 일에 대한 열정은 식었고, CEO의 삶은 남의 옷처럼 불편하게만 느껴졌다.

마흔의 길목에서 그는 도시의 삶과 CEO라는 명함을 버리고 숲으로 들어갔다. 자연에 세 들어 ‘숲처럼 황홀하게!’ 살고자 한 것이다. 생태학, 식물학, 환경학 등 새롭게 숲을 공부하며 숲의 식물과 생태를 들여다보자, 어느 날부터인가 숲 속에는 나무와 풀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 속에는 이름 없는 수많은 생명이 존재하고, 그들이 사는 모습 안에 인간을 향한 무수한 은유가 존재함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것이 숲의 가르침임을 깨달았다
.

 

길에서~1.JPG 

그의 첫 책인 《숲에게 길을 묻다》는 숲을 스승으로 삼아 얻은 자연의 가르침과, 그간 기업과 자아경영을 통해 얻은 경험을 결합하여 녹여낸 깊이 있는 통찰을 담고 있다. 이 책에는 숲의 탄생을 시작으로 성장과 결실, 그리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숲의 생존 메시지가 가득하다. 버리는 것으로 꽃을 피우는 초목들의 절제된 생명력과 저장력, 살을 내어주는 아픔을 딛고 이룩한 연리목의 숭고한 사랑, 개미와 진딧물처럼 서로를 살찌우면서 살아가는 수많은 공생의 지혜, 자신의 씨앗을 품 안에 두려 하지 않는 식물들의 자녀교육법, 철저하게 썩어 흙으로 돌아간 다음 다른 생명을 키우는 나무의 죽음 등 숲은 우리가 배워야 할 메시지로 가득하다. 저자는 쫓고 쫓기며 지쳐가는 오늘을 새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수억 년을 이어온 숲 속 생명들의 지혜와 생존 메시지를 들려주고자 이 책을 썼다.

그는 ‘사단법인 숲 연구소’에서 공부했고, 2006년 ‘행복한 삶을 배우는 숲 학교’와 창작과 문화와 교육이 어우러진 ‘행복숲 공동체’를 만들고 있다. 현재 ‘행복숲’에 지은 ‘백오산방
白烏山房’이란 오두막에 살며 공동체 추진 대표를 맡고 있다. 앞으로 ‘생태’와 ‘자기경영’이 결합된 생태경영 컨텐츠를 생산하여 오늘과는 다른 삶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

 

[참고자료]

네어버 책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003288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문구

 

프롤로그_희망의 숲에 그대를 초대합니다.

 

P9 모든 길은 욕망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길이란 항상 지금 서 있는 이곳에서 장차 서 있고 싶은 저곳에 닿기 위해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욕망하는 모든 존재는 길 위에 서게 됩니다.

 

P14 삶이 점점 더 사막과도 같아지는 길이라면 그 길은 절망의 길임에 틀림없습니다. 그 길은 벗어나야 할 길입니다. 벗어날 생각이 없는 그대라면 아직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해서겠지요. 벗어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그러지 못하는 그대라면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겠지요. 두려움이 너무도 커서 그 길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를 세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1막 태어나다_선택할 수 없는 삶

 

P29 ‘로서 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길을 잃을까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생명 모두는 언제나 길을 잃음으로써 자신의 진정한 길을 찾기 때문입니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말처럼 길을 잃어 보기 전에는, 다시 말해서 세상을 잃어버리기 전에는 자기 자신을 찾아내지도, 자신이 지금 서 있는 위치와 자신이 맺고 있는 무한한 관계를 깨닫지도 못하는 것이 삶이기 때문입니다.

 

P43 그것을 나는 운명이라고 정의합니다. 나는 운명숙명과 다른 개념으로 정리합니다. 그것은 뜻대로 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거스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거스를 수 있는대상입니다. 이는, 태어나는 자리와 그 관계는 거스를 수 없지만, 그 자리에서 자기 삶의 방향을 선택하고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자율과 자기통제의 뜻을 담고 있는 말입니다.

 

P50 무엇보다 그것은 자기 씨앗에 담겨 있는 본원을 확인하고 그 힘을 믿는 일이며, 자신이 살아가야 할 시대와 공간을 아는 일입니다. 나를 아는 것, 내가 태어난 때와 그 여건을 아는 것, 그리고 생명체로서 내게 주어진 놀라운 힘을 믿고 끝까지 힘차게 살아내는 것! 이것이 생명이 주어진 자들이 할 일입니다.

 

P57 분명한 것은 그들 모두가 주어진 자리를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삶을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2막 성장하다_내 모양을 만드는 삶

 

P62 인생의 여정 위에서 어느 순간 길을 잃었을 때

우리는 어둠 속에 갇힌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세상 어디에서 내가 없는 듯한 느낌이 드는 건 빛을 잦지 못해서다.

나무와 들풀에게 빛은 시작이고, 사람에게 빛은 꿈이요, 희망이다.

희망을 잃으면 삶은 시들고 어두워진다.

 

P65 마찬가지로 꿈은, 우리 마음의 0.2퍼센트에 불과한 작은 자리를 차지할지라도,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고 우리를 고난에 맞서게 하는 근원적인 힘이 됩니다. 꿈이 없는 삶은 사실 살아 있으되 살아 있지 못한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꿈을 상실한 사람은 어둠에 갇힌 사람이고 목적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이며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꿈을 찾아 결코 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P68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 빠른 것보다는 느린 것, 쉽게 변하는 것보다는 잘 변하지 않는 것, 크고 화려한 것보다는 작고 소박한 것, 나 하나만을 살찌우는 것보다는 모두를 살찌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사색하고 연구하기 시작하고 몇 년 지나지 않아 나는 새로운 꿈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아침도 이렇게 이 숲에서 저 태양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P76 그러면서도 나무는 유용보다 무용이 커진 부분을 실수나 실패라 부르지 않습니다. 그저 그렇게 무수한 잎과 가지와 줄기를 버림으로써 나무는 자신이 매 순간 조금씩 성장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è  무용의 유용무용의 부분을 실패라 부르지 않고 성장의 과정으로 여기는 나무의 지혜에서 배워야 한다.

 

P85 스스로를 지킬 힘이 생긴 나무들만이 가시를 버렸던 것입니다.

 

P87 아아, 사람도 저렇구나! 사람이 가시를 달고 있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응축된 에너지를 쏟아낸다는 의미로구나. 그 좌절과 절망의 마음을 토하는 것이로구나. 그것으로 자기의 분노를 응고시켜 세상과 맞서는 것이로구나!

 

가시를 다는 것이 분노와 좌절의 에너지라면, 가시를 떨어뜨릴 수 있을 만큼 자신의 키를 키우고 줄기를 살찌우는 것은 자기 성장의 에너지입니다.

 

P88 몸에 가시를 가득 단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를 미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에겐 자신을 지키려는 에너지가 고독하게 흐르고 있다고 이해해 주십시오. 핍박과 고난이 피워냈을, 버짐 같은 두려움이 그에게 흐르고 있다고 생각해주십시오.

 

P89 누군가 담담하게 지니고 있는 상처야말로 그다운 모습이며 그다운 향기입니다.

 

P94 인간사회는 경쟁을 통해 발전한다. 그러므로 경쟁 자체는 길한 것이다. 서로 견주고 경쟁함은 인류가 살아 있는 한 영원히 계속된다. 경쟁에서의 첫 번째 도는 정정당당하게 이기는 것이다. 정당하지 못한 승리자는 아무리 크게 성공했다 하더라도, 끝에는 결국 흉하게 된다. - 주역의 경쟁 중에서

 

나무와 풀들에게 경쟁이란 무엇보다 자기를 지킬 수 있는 힘을 갖기 위한 투쟁입니다. 식물이 벌이는 경쟁의 요체는 그렇습니다. 수많은 이웃의 욕망이 충돌하는 수직의 공간에서 자기의 하늘을 확보할 힘을 갖는 것입니다. 타자의 공간을 빼앗기 위한 경쟁이라기보다 비어 있는 공간 속에 나의 존재 기반을 만들어내기 위해 매일매일 자신을 키우고 변화시키는 경쟁인 것입니다. 이것은 차라리 자신과의 다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è  식물의 경쟁은 자신과의 다툼이다.

 

P100 숲은 타자와의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숲은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오직 자기 자신과의 경쟁이요, 새로운 영역의 창조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욕망과 욕망이 충돌하는 핏빛 대지에서 영혼을 고갈시키며 앞을 다투는 경쟁이 아니라, 나만의 푸른빛이 가득한 공간에 서는 것. 감히 추한 욕망이 넘보지 못할 자기만의 세상을 창조하는 것. 타자를 파괴하여 내 하늘을 여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낡은 나날을 부숴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것이 경쟁의 요체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막 나로서 살다_나를 실현하는 삶

 

P150 연리목은 나무와 나무가 맞닿아 더 이상 비켜 설 곳이 없을 때 서로의 장벽인 껍질을 벗고 두 그루의 나무가 한 그루로 합일한 것을 일컫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붙어서 자라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나무껍질을 벗고 세포와 세포를 합치고 새로운 껍질을 만들어 마치 하나의 나무처럼 살아갑니다. 세분하여 가지와 가지가 합일한 나무를 연리지, 줄기와 줄기가 합일한 나무를 연리목이라고 부릅니다.

 

P153 혼인목이란 서로 같거나 다른 종류의 나무 두 그루가 한 공간에서 자라면서 마치 한 그루의 나무처럼 그 모양을 만들어갈 때 그 한 쌍의 나무에게 붙여주는 이름입니다. 이들은 좁은 공간에서 어울려 살기 위해 서로에게 뻗는 가지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필요할 때는 빈 공간을 찾아 뻗어나기도 하면서 마치 한 그루의 나무처럼 조화를 이룹니다. 연리목이 제 살을 내어주며 하나로 합일하는 사랑이라면, 혼인목은 서로의 가지를 떨어뜨려 서로의 공간을 열어주는 사랑입니다.

 

P157 작게는 모든 생명이 생명으로서 지니고 있는, 스스로 개척하고 이루며 사는 자립의 원리를 무너뜨리는 것이자, 그 재미를 빼앗는 것입니다. 또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어려움과 맞닥뜨렸을 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사회적 적응력을 약화시킬 것입니다.

 

P159 알을 낳은 다음날 이들(큰오색딱따구리 부부)은 다시 짝짓기를 합니다. 이는 아주 특별한 점입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임신만을 목적으로 짝짓기를 하는 대부분의 동물들과 달리, 이들은 신뢰와 소통을 위해서도 사랑은 나누기 때문입니다.

 

알을 낳으면 새의 가슴털이 동그랗게 빠집니다. 혈관이 집중되어 있는 가슴을 드러냄으로써 더 따뜻한 체온으로 알을 품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깃털이 빠진 부분을 포란반이라고 부릅니다. 포란반은 자식을 알에서 깨어나게 하기 위한 부모의 지극한 사랑입니다. 자신의 털을 뽑아 자식을 품는 부모의 사랑이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P164 자연은 자신의 새끼나 씨앗을 발아래 두려 하지 않습니다. 품을 떠나 보내지 못한 새끼는 무서운 맹수나 맹금류를 피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해 위태로울 것이고,, 부모의 발 아래에서 발아한 씨앗은 결국 부모의 그늘에 살면서 부모와 햇빛을 나누고 양분을 다퉈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식이 스스로 서고 스스로 선택하도록 가르치지 못하는 부모의 사랑이 어찌 참다운 사랑이겠습니까?

 

P173 누군가의 이익을 내 쪽으로 더 많이 끌어 당기지 않고는 부자가 될 수 없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익을 더 많이 끌어당기는 쪽보다, 더 많이 내어주는 쪽에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서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일이 구원이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의 일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선택하는 그 일이 당장의 밥벌이나 생계에 치우친다면 결코 일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P181 회화나무(학자나무, Scholar Tree) : 아까시나무의 잎과 비슷한 잎, 해가 지면 대칭으로 펼쳐져 있는 각각의 작은 잎들을 마치 한 장의 잎처럼 서로 마주보고 접음. 비가 오거나 아주 흐린 날에도 입을 접음

 

자귀나무 : 사랑의 나무(부부 금실이 좋아진다고 믿음), 낮 동안 자귀나무는 그 잎을 활짝 펼치고 있다가 밤이 오면 그 다닥다닥한 작은 잎들을 서로 합치듯 겹침. 아주 흐린 날에도 잎을 접음. 겹쳐지는 잎의 모양을 보고 마치 부부가 다정하게 사랑을 나누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 합혼수, 유정수란 별명으로 불림. (팽압 이유, 노동과 휴식의 철저함)

 

P184 대부분의 나무가 노동과 휴식을 철저히 자연의 흐름에 맞춤으로써, 지구상에서 가장 유구하고 장대한 생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흔히 우리가 말하는 깨달은 자들의 삶을 닮았습니다. 나의 눈에 이것은 철저하게 지금을 살아가는 지혜를 익힌 자들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미래를 걱정하여 밤을 지새우지도 않고, 과거에 대한 회한으로 불면하지도 않으며, 부질없는 욕망에 휘둘려 밤을 배회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순간에 순간을 더하여 지금에 충실할 뿐입니다.

 

다육(CAM)식물은 이 숲의 식물들이 낮에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빛과 물을 버무려 광합성을 하는 것과는 달리, 밤에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저장했다가 낮에 빛을 버무려 밥을 만듭니다. 그들은 밤에도 노동을 하고 낮에도 노동을 합니다. 이들이 밤낮없이 노동을 하는 이유는 사막이라는 척박함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입니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 위해 낮에 기공을 열면 열기가 너무 뜨거워 도리어 자기 몸의 수분을 잃게 됩니다.

è  내가 사막에 살지 않음에도 다육식물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겠다.

 

많은 사람들은 경제적인 자유가 있어야 마음 놓고 쉴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미래를 위해 편히 잠들 수 없고 노동을 닫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살을 스스로 사막 위에 놓는 것과 같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뒤처짐에 대한 불안을 모래더미처럼 쌓아 스스로 사막 위에 서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사막 위에 세워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삶을 성숙한 삶으로 이끌려는 사람은 스스로의 삶을 사막이 되지 않도록 재편하고 다듬어야 합니다. 노동과 휴식을 잘 구분하고, 순간순간 그것에 철저해짐으로써 나의 삶을 깨우고 내 주변과 훈훈함을 나누어야 합니다.

 

P207 단풍은 안식의 빛입니다. 생장의 계절 내내 밥을 짓느라 광합성의 노동을 감당했던 잎들이, 또한 몸이 뜨거워지는 것을 막고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증산을 하느라 수고로웠던 잎들이 서서히 자신의 노동을 내려놓기 시작했다는 증거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욕망을 정리함으로써 삶을 잇는 훌륭한 방식이고 전략입니다.

 

P208 나무는 찰나처럼 짧게 제 빛을 찾은 뒤 이제 본격적으로 안식의 시간으로 들어갑니다. 그들의 안식은 어쩌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제입니다. 여름 내 저마다 키워낸 성장의 증거들을 알몸으로 보여주며 나무는 서로를 살찌우기 위한 공간을 창출해냅니다.

 

4막 돌아가다_다시 태어나는 삶

 

P255 죽음을 자기 자신의 완전한 소멸이거나 알지 못하는 영역으로의 이동이라고 생각하는 이에게 죽음은 두려움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마땅한 길을 걸어 삶의 끝에 도착한 이에게 삶은 결코 미련으로 남지 않을 것이며 죽음 또한 두려움의 대상이 아닐 것입니다.

 

내 오두막 옆에 잠든 어르신이 보여준 것처럼 죽음은, 우리가 빚을 졌던 이 별로 고요히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새로운 생명들을 위해 흙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이쪽의 삶이 닫히고 저쪽의 새로운 소임이 열립니다. 두려워할 것은 오히려 살고 있으되 살아 있음에 철저하지 못하고, 죽음의 때에 이르러서도 그 죽음에 철저하지 못한 우리의 삶입니다. 정말 두려워해야 할 일은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삶과 죽음의 기회를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에필로그_그대, 마침내 숲을 이루십시오

 

그대 타인이 되려 하지 마십시오.

오로지 그대 안에 숨죽이고 있는 씨앗을 발견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싹 틔워 그대다운 나무로 성장하십시오.

마침내 누구나 걷고 싶은 숲을 이루십시오.

그렇게 푸르고 아름답게 살아가십시오.

 

이 숲의 마음을 담아 기원합니다.

 

3. 내가 저자라면

 

지금까지 그의 숲에 네 번 정도 갔었다. 처음 몇 번은 겨울에 가서 그의 숲은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가장 최근에는 봄에 갔다. 연녹색 나무와 풀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겨울에 갔을 때 그의 숲에는 백오산방과 자자산방 단 두 채의 집이 있었다. 봄에 가니 쉘터라 불리우는 이층짜리 숙소 두 동이 들어서 있었다. 겨울에 갔을 때 그는 숲에서 사는 것이 좋으나 생계를 잇는 것이 쉽지 않다 했었다. 봄에 가니 그는 이미 공중파 방송에 출연한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그의 숲과 함께 그는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낮은 자세로 숲에서 살고 있다.

 

그는 꿈을 이루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부러워한다. 현재의 모습에만 주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 딸아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함을 그는 항상 아쉬워한다. 뜻하지 않은 유명세에 곤혹을 치르며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그의 숲의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헝클어진 머리에 모자를 눌러쓰고 포크레인을 운전하는 모습의 그를 마주칠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냥 다가가 인사하면 된다. 그가 반갑게 맞아 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나무와 풀의 이름이 궁금하다. 이름을 알게 되면 어떤 연유로 그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이제는 그들이 이야기하는 소리도 들으려 노력한다. 더 빨리 가고, 더 많이 가지고, 더 높이 올라가려는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고 내 안의 씨앗의 소리를 들으려 귀 기울인다. 그의 숲에서 고요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러면 내 안의 소리가 더 잘 들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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