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을 해도 좋을 나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5월 31일 목요일,
알람시계의 요란한 벨소리로 나의 하루가 열렸다.
아침 9시, 지하철을 탔다.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저 멀리 보이는 북한산은 연두빛을 지나 제법 짙푸른 빛을 띠고 있다. 한때 ‘연두색은 어디로 갔을까?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저 파도는 어디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일까? 저 새소리는 대기 속으로 흩어져서 어디로 갔을까?’하고 생각에 생각을 이어간 적이 있었다. 파도로부터 생성되어지는 에너지는 ‘에너지보존의 법칙’에 따라 지구 어딘가에 머물러 있기는 하겠지. 그런데 저 새소리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 혹은 질량불변의 법칙 어디에 해당되는 것일까? 이런 생각들을 하릴없이 하곤 했었다.
가방에서 오르한 파묵의 <검은 책>을 꺼집어내면서 빨리 <터키기행집>을 마무리해야하는데 그 생각을 했다. 오르한 파묵의 책은 고문하는 것처럼 재미가 없다. <내 이름은 빨강>은 추리소설에 가까워 읽기가 어렵지 않았다. <이스탄불>, <검은 책>은 1, 2권으로 되어있는데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분간이 모호할 정도이며 재미가 없다. 그래도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읽어주려 애쓴다. 눈은 활자를 읽고 있지만 생각은 저 멀리 가서 혼자 놀고 있다. 생각을 데려와서 활자를 읽으려 하지만 내 통제 밖의 일이 되어버렸다.
2년 만에 만나는 맹선생님의 생각으로 돌아갔다. 올해 초 맹선생님께 새해인사를 드렸다.
“선생님 저 올해 오십이에요. 그래서 슬퍼요.”
“자네, 오십이면 청춘이지. 난 올해 칠십이야. 이제 그동안 벌여놓았던 것들을 다 정리하려고 하네.”
오십이면 청춘이라는 말에 내가 웃음을 터뜨렸다. 너무 심한 표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웃어버렸다.
한 번 찾아뵙겠다고 하고서는 벌써 몇 달이 흘러버렸다. 더 늦기 전에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다. 장소를 정하다가 젊은 내가 맹선생님 쪽으로 가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을 했다.
“요즈음 불광아카데미에서 강의 듣고 있네. ‘붓다와 서양철학자의 대화’와 ‘유식강의’듣는데, 자네도 한 번 들으면 좋은 강의야. 여기까지 온 김에 한 번 들어봐.”
흔들리는 전철 안에서 나의 생각은 그지없이 흔들렸다. 마음엔 수많은 균열을 가져왔다. 석촌호수역에 위치한 불광사는 걷기에 좋은 거리에 있었다. 강의실로 올라갔지만, 강의 도중에 들어가는 것이 실례인 것 같아 바깥 소파에 앉아서 기다렸다.
문득 이름도 촌스러운 <그 옛날 찻집>이 떠오른다. 박선생님의 아지트였는데, 나중엔 우리들의 아지트가 되기도 했다. 처음 그곳에 갔을 때가 떠오른다. 어둑신한 지하 계단을 내려가면 실내 인테리어가 고색창연한 찻집이 나온다. 그 촌스러움으로 따지자면 인사동 한 복판에 이런 찻집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허름한 찻집에 비해 마담은 미인소리를 들을 만큼 예뻤다. 손님도 별로 없는 한산한 집이라 우리가 독차지할 때가 많았었다. 오래된 노래방기기에 맞추어 노래 부르고 흥이 겨우면 춤도 추곤 했었다.
어떤 날은 압구정까지 진출하기도 했었다 박선생님은 기타와 드럼까지도 잘 다룰 줄 아는 분이라 어딜 가나 인기가 좋았다. 맹선생님은 모두의 누님이요, 모두의 형님이었는데, 노래도 잘 할뿐더러 탱고도 곧잘 추었다. 각(刻)하는 정선생님의 노래를 들으면 모두가 ‘왜 가수로 나가지 않았느냐’고 한 마디씩 할 정도이다. 내가 그 자리에 낄 수 있었던 것은 음치였기 때문이라나. 나는 그들에 비하면 모든 방면에서 음치요 둔치였다. 박선생님과 맹선생님은 시인 두보이야기가 나오면 두보시를 줄줄 외우고, 아폴리네르와 보들레르의 시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그냥 외우곤 했었다. 그들은 무엇을 주제로 삼아도 막힘없이 이야기해나갔다. 우리는 그 집을 점령한 채 왁자하게 마음 편하게 시간을 보내었다. ‘그 옛날 찻집’이 없어지면서 우리의 모임도 흐지부지 되었던 것 같다.
드디어 강의가 끝나고 맹선생님을 만났다. 맹선생님은 마치 십년을 껑충 뛴 것처럼 전에 비해 기력이 많이 떨어져 보였다. 책 쓰는데 모든 정력을 바친 것임을 한 눈에 느낄 수 있었다. 점심으로 돌솥비빔밥을 먹었다. 근사한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맹선생님은 ‘죽음’에 천착(穿鑿)해서 여러 권의 책을 내었다. 올해 초 <그들 앞에 서면 내 영혼에 불이 켜진다>라는 책으로 ‘신곡문학상 대상’을 받은 것을 축하드렸다. <그들 앞에 서면 내 영혼에 불이 켜진다>는 52명의 작가 묘지기행집으로 20여년의 세월동안 정리한 책이다. 이 책으로 KBS를 비롯하여 여기저기서 인터뷰요청이 있어 무척 바쁜 시간을 보냈고, 이제 조금 한가해졌단다. 아직도 여러 군데서 인터뷰요청이 있지만 다 귀찮아서 거절하고 있다면서 “난 당분간 활자를 볼 수 없을 정도로 눈을 완전히 버렸어. 자네도 눈을 혹사시키지는 마.”라고 한 마디 덧붙였다.
“어떻게 보면 내 인생 전체를 통해서 준비한 책일지도 몰라. 이십대부터 내 여행은 항상 작가들의 묘지를 찾아가는 것이었어. 가족들의 잇따른 죽음으로 인해 감수성이 예민한 10대부터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문학과 철학책을 가까이하고부터는 작가들의 죽음에 관심이 많았지.”
2004년 <인생은 아름다워라>가 김영사에서 나왔을 때 언론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가져주었다. 보들레르, 오스카 와일드, 아폴리네르, 카잔차키스, 훼밍웨이, 노신, 빅토르 위고, 보부아르와 사르트르, 릴케, 다자이 오사무, 헤르만 헤세, 호손, 임어당, 두보, 괴테 등 여러 작가들을 한 자리에 모은 책이다. 그들의 삶과 죽음, 그리고 작품에 대해 정리한 글들인데, 누가 보아도 시간과 품을 많이 들인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작가마다 그의 작품을 전부 다 읽고 자서전, 평전까지 다 읽어야 하니 그 작업이 참으로 방대했단다. 그로부터 8년 만에 집대성하여 두 권의 책으로 내놓았으니 선생님의 집념과 열정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알 수 있다.
“이렇게 방대한 작업을 어떻게 정리했는지 궁금해요?”
“나는 정리하는 데는 도사야. 대학교 때부터 이런 작업을 해왔어. 서양음악에 대해 알고 싶다고 생각하면 먼저 ‘서양 음악사’에 관한 책을 읽고서는 그 안에 나오는 음악가들의 책을 읽기 시작해. 두꺼운 노트 한 권을 준비해서, 브람스, 베토벤, 모차르트 등 한 사람씩 다 정리하는 거지. 그렇게 정리해 나가면서 그들의 음악도 열심히 들었지. 서양미술과 화가에 대해서도 난 이렇게 공부했어.”
이제야 맹선생님의 박식함이 노력에 의한 것임을 알았다. 나보다 연세가 많이 위이지만, 그 박식함에 대해 존경하다가 때로는 질투하기도 했었다. 선생님은 모르시겠지만......
요즈음 어떤 글을 쓰는지 내 근황을 물었다. ‘변경연에 들어가서 일주일에 고전 한 권씩 읽고, 정리하고 칼럼 한 편을 쓴다’ 고 답했다. 주로 어떤 테마로 칼럼을 쓰고 있는지 물었다.
“과제물 마감시간에 쫓겨 아직은 일관된 주제로 칼럼을 쓰지는 않지만, 곧 주제를 정해서 그렇게 쓸 것”이라 답했다.
“이제 자네도 에세이집 한 권 역어야지. 그리고 상도 받아야지.”
이 말씀은 벌써 육년 전부터 하셨다. 선생님은 어느 문학잡지에 적을 두고 계셨는데, “난 자네가 꼭 이 상을 탔으면 좋겠어. 한 번 정리해봐.” 라고 간곡히 여러 번 말씀하셨다.
난 그땐 상이라는 것에 관심도 없었을 뿐더러 엉덩이에 뿔 난 망아지처럼 내 멋대로였다.
“전요, 상을 받기 위해서 책을 내기 싫어요. 내가 낸 책에 대해서 평가를 받고 싶어요.”
이렇게 오만방자했다. 우리들만의 축제, 수필계만의 축제라는 것에 마음내켜 하지 않았다. 알고 보면 끼리끼리 노는 것인데. 문학인은 문학인끼리, 음악인은 음악인끼리 노는 것인데, 그것을 왜 못마땅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상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더 늦기 전에 에세이집을 내어야 한다면서 변경연에서 쓴 글들을 한 번 모아보라고 방향을 잡아주었다.
“자네는 그곳에서 읽은 책 중 어떤 책이 가장 기억에 남는가?”
“호머의 <오디세이아>가 기억에 남고 제임스의 <율리시즈>도 좋았어요.”
“<율리시즈>의 배경이 되는 더블린을 몇 해 전에 갔다 왔는데 좋더군. 그렇다면 카잔차키스의 <오디세이아>를 한 번 읽어보게. 호머의 <오디세이아>보다 세 배나 많은 분량의 현대판 <오디세이아>인데, 색다른 맛일거야. 자네나 나나 지금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걸세.”
맹선생님의 “아직도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는 것”에 놀라, 그 길이 무엇인지 여쭈었다.
“나는 교직을 그만두고, 마흔 살이 되면서 내 인생의 플랜을 짜놓았어. 그 플랜을 위해서 나는 오래 동안 주역공부도 했고, 간화선과 선시를 공부했다네. 그리고 <아함경>, <금강경>, <법화경>, <유마경> 등 경전을 공부해왔네. 첫 번째의 계획이었던, 묘지기행을 통해 내가 존경하던 문호들에 대한 정리는 끝낸 셈이야. 그 다음은 <주역周易>을 정리하는 것인데 주역사상과 일치하거나, 주역사상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작가들을 정리하고 있네. 여기엔 비트겐슈타인을 비롯한 철학가, 겸재와 같은 예술가, 사상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들어갈 것이네. 이 작업도 초안은 거의 잡혀있는 셈이야. 변화경연연구소라고 했나? <주역>도 결국은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다네. 난 지금 당뇨도 있고 건강이 아주 좋지 않기에 죽음을 준비하고 있어. 마지막엔 니르바나(열반)의 노래를 부르고 싶어. 선사들의 오도송(깨달음을 얻고 나서 부르는 노래)과 열반송(죽음에 들기 전에 부르는 노래)을 정리하고 싶네. 그래서 불교의 심층심리학인 <유식有識>을 공부하고 있는 것이고. 그들의 오도송과 열반송을 통해서 내 삶을 관조해보는 것이지.”
계획은 계획일 뿐이라 여겼는데, 이렇게 차분히 지켜나가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랐고, 그분이 맹선생님이라는 것에 놀랐다. 외유내강(外柔內剛)인 분이다.
선생님은 작가들의 묘지기행을 완성하기 위해 많은 여행을 했었다. 파리엔 많은 문호들의 묘지가 있기에 한 달간 파리 근교에 방을 얻어놓고 탐방한 이야기도 들었다.
“자네 지금 나이가 많다고 생각지 말게. 지금이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이야. 지금까지 해 온 공부 역시 헛되지 않을 것이고, 체계 있는 공부를 하면 더 좋겠지.”
항상 바쁜 일정 속에서 책읽고 글쓰는 것은 언제 하느냐고 여쭈었다.
“잠자지 않고 공부했어. 잠도 습관이야. 처음엔 힘들지만, 조금만 자도 견딜 수 있는 것이 우리 몸이야.”
‘역시 잠을 줄여 시간을 벌이는군’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를 뒤돌아보았다.
맹선생님은 신변잡기로 흐르는 수필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려 무척 노력했다. 다양한 문화권의 문학연구가들을 불러 강연회를 열었고, 여러 분야의 인문학자들을 불러 세미나를 가졌다. 그런 노력이 헛되지 않아 서서히 변하고 있기는 하지만, 기대할 수준은 아닌 것 같다.
“불교공부가 그리 만만한 공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끝까지 한 번 해보게. 하이데거, 융, 화이트 헤드, 베르그송 등 서양의 철학자들 중엔 자신의 연구가 막히거나 풀리지 않았을 때는 불교를 통해서 해법을 찾았네. 난 자네가 작가들의 무의식의 세계를 한 번 건드려 보면 어떨까 싶어. 작가들의 ‘죽음’에 대해 공부하면서 그들이 가진 트라우마(trauma)를 발견했네. 그런 것들을 테마로 해서 깊이 공부해나가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항상 깊이 있는 공부, 깊이 있는 글쓰기를 강조해왔던 선생님다운 가르침이다. 선생님은 유월 말까지 에세이 40편 정도를 정리해서 가져오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유월 말에 박선생님과 다시 한 번 뭉쳐서 놀아보자면서 눈을 찡긋하고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오니 늦은 밤이었다. 며칠 전, 노트북에 인터넷케이블을 연결하는데 스파크가 일어나는가 싶더니 노트북은 물론이고 연결된 ‘외장하드’기기까지 먹통이 되어버렸다. 외장하드에 사진이며 글을 다 저장해 두었기에, 지금 머리가 암전상태이다. 그나마 몇몇 글들은 데스크탑에 저장되어 있어 다행이다. 이 시점에서 에세이집을 엮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하루는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으로 날마다 나를 만들어 가고,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이 창출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누군가를 만나는 날보다는 만나지 않는 날들이 훨씬 많다. 그리고 날마다 사건이라 할 만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읽는 책을 통해서 사색하고, 기쁨 혹은 즐거움을 느끼는 가운데 나의 의식이 조금씩 변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하루를 특별히 모험의 날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모험이라는 단어는 분명 일상적이지 않으며 특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6월 오프수업을 위해서 특별한 사건을 만들어볼까도 생각했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강릉바다를 간다든지, 영화관 순례를 한다든지, 산사에 가서 며칠 동안 나물캐고 명상하면서 보내고 올까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그런데 우연히 맹선생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맹선생님과는 문예지동인이기도 하지만, ‘지하철 풍경소리’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문학에 대해 풍경소리원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처럼 이렇게 진지하게 오랜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어쩌면 내 쪽에서 별로 선생님께 기대고 싶어 하지도 않았고, 속내를 드러내지도 않았다고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이 하루는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맹선생님께서 내가 소속(?)되어 있는 변경연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으로 높게 평가해주고 있어 기분이 좋았다. 지금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여러 가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날이었다. 자신의 가치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날이었다. 남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 여기는 것에 대해 자신만의 어떤 가치와 의미를 둘 수 있는 것도 귀한 일임을 깨달았다.
이 하루는 터닝포인트 일 수 있을까?
맹선생님께서 제시해 준 대로 공부하고 실천한다면 나의 글쓰기에 관해서는 터닝포인트가 될 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