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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2일 08시 12분 등록

햄릿/리어왕/맥베드

-. 셰익스피어 지음

-. 신상웅 옮김, 동서문화사, 2011

 

■ 저자에 대하여

 

1. 위대한 인물의 탄생(1564 ~ 1570)

윌리엄 셰익스피어, 그가 태어난 날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지만, 당시의 관례로 보아 생후 3일 후에 세례를 받았다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18세기 중엽 이래 그의 출생일은 1564 4 23일로 공인되어 왔다. 셰익스피어의 사망일 역시 4 23일에 눈을 감았고 세례를 받은 그 교회당에 잠들어 있다.

영국 중부 워릭셔 스프랫퍼드 어폰에이번에서 아버지 존 셰익스피어, 어머니 메리의 셋째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셰익스피어 집안은 전형적인 소작농 집안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소작농 생활을 접고 도제의 길을 택했다. 기능을 익히면 곧 사회적으로 자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인으로 성공을 거두자 마을의 정치적인 일에 관여하여 지방의회의원, 재정수입담당, 참사회원 등 요직을 맡다가 나중에는 그 지방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이렇게 아버지는 처세술에 능하였다. 그의 어머니, 메리 아덴은 훌륭한 가문의 출신이며, 셰익스피어가 귀족 여성을 생생히 묘사할 수 있었던 것으이렇듯 고귀한 모계의 혈통 때문이다.

 

2. 어린 시절의 교육(1571 ~ 1581)

1571, 7살의 셰익스피어는 집에서 1/4마일 떨어진 스트랫퍼드 문법학교에 입학했다. 16세기는 교육이 중시되던 시대였다. 일반 대중은 대부분 교육을 받지 못해 글자도 읽지 못했지만, 문법학교에서는 확실한 교육이 이루어졌다. 근대로 발돋움하던 영국에서 신흥 계층이 교육을 통해 출세할 수 있었다. 문법학교는 라틴어 문법을 가르치면서도 학교 교재를 통해 소년들이 사회 상식이나 넓은 세계관까지 다양하게 접하고 익힐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교과에는 독해뿐 아니라 작문도 포함되어 있으며, 좋은 글쓰기 훈련이 다양한 방법으로 펼쳐져 학생들은 최종적으로 표현력이 풍부하고 설득력 있는 문장을 쓸 수 있도록 연습하였다. 이렇게 문장 창작의 기초 훈련이라고 할 만한 교습이 문법학교에서 이루어졌다. 

또한, 문법학교의 교재로 그리스 로마 작가의 작품들이 사용된 것으로 보아 셰익스피어는 오비디우스,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3대 문호의 작품을 접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그는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를 즐겨 읽었다고 한다. 이렇게 고전에 관한 그의 지식은 현대인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넓고도 깊다. 더욱이 그는 런던 연극계에 몸담음으로써 대학에서 배운 이상의 것을 익히게 되었다.

3. 연상의 여인과 결혼(1582 ~ 1589)

1582, 18살의 셰익스피어는 스트랫퍼드에서 1마일 정도 떨어진 쇼터리에 사는 '앤 헤서웨이'라는 여성과 결혼한다. 앤은 셰익스피어보다 8살이 많았다. 읍장을 지내며 스트랫퍼드의 유력자였던 셰익스피어의 아버지와 가까운 이웃마을에 사는 유서 깊은 해서웨이 집안 사이에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해본다. 결혼한 이듬해 5월에 장녀 수잔나가 태어나고, 그보다 2년 뒤에는 햄닛과 쥬디스라는 남녀 쌍둥이가 태어난다. 이 때 셰익스피어는 20살 젊은 아버지였다. 셰익스피어는 가족을 데리고 헨리 거리의 아버지 집에서 살았다 집안은 셰익스피어 가족이 더해져서 언제나 떠들썩했다. 셰익스피어의 양친 외에 길버트, 조운, 리처드, 에드먼드 형제, 그리고 셰익스피어와 앤과 세 아이들이 모여 살았다. 아버지가 꾸리는 살림은 점점 가난해질 뿐이었기에 그는 무언가 대담한 해결책이 양쪽 가족에게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햄닛과 쥬디스 쌍둥이의 아버지가 된 1585 2월 이후 셰익스피어는 스트랫퍼드로부터 새로운 세계 런던을 향해 길을 떠난다.

 

4. 극작가의 길을 가다(1590 ~ 1611)

1(1590~1594, 26~30)는 로마극의 영향을 받은 선배 극작가들의 작품을 별 생각 없이 모방했던 시대이다. <리처드 3>에서 러처드가 앤을 끈질기게 설득하여 납득시키는 장면(1막 제2)이나,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페트루치오가 말괄량이 처녀 캐서리나와 강압적으로 약혼하는 장면(2막 제1), 남녀 간의 밀고 당기기가 깊은 인상을 남기기는 했지만, 그것을 '사랑'이나 '순애'라고 말할 수는 없다.

2(1595~1600, 31~36)는 셰익스피어는 유럽 연극 사항 최초로 사랑을 주제로 한 연극을 쓰기 시작한 시대이다. 대표작으로 사랑의 비극인 <로미오와 줄리엣>과 사랑의 희곡 <한여름 밤의 꿈> 등이 있다. 극작가로서 독자적인 세계를 개척했다고 할 만한다. 2기 후반에는 로맨틱 코메디의 최고봉인 <뜻대로 하세요> <십이야>를 완성했다.

3(1601~1608, 37~44) 4대 비극(<햄릿>,<오셀로>,<리어왕>,<맥베스>)을 쓰던 무렵이 창작가 셰익스피어의 전성기였다. 연애관을 포함한 그의 인간관이 더욱 심화된 시대라고 할 수 있다.

4(1608~1611, 44~47)는 중세 로맨스풍의 분위기로 가득 차 있어 로맨스극으로 불리는 작품들인데, 대표작인 <겨울이야기> <템페스트>에 젊은이들의 사랑이 그려져 있따. 그것은 붐모가 자에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랑으로 마치 옛날이야기 같은 느낌을 준다.

 

5. 만년의 생활과 죽음(1612 ~ 1616)

1613, 그는 <두 명의 귀족 친척> <헨리 8>를 공동 제작했다. 이 때 함께한 사람이 젊고 유망한 극작가 존 플레처였다. 이후 플레처는 차세대를 이끌어간다. 그는 만년에는 고향에서 유유히 보냈던 듯하다. 물론 이따금 런던에 다녀오기도 하고, 인클로저 반대 운동에 관여하기도 했다. 죽기 전 한달 동안은 건강도 안 좋았던 모양이다. 그는 이윽고 최후의 날을 맞이했다.

 

6. 출저

햄릿/오델로/리어왕/맥베드/로미오와줄리엣(셰익스피어 지음, 신상웅 옮김, 2011)

셰익스피어 읽어주는 남자(안병대 지음, 명진출판, 2011)

셰익스피어 인간학(오다시마 유시 지음, 장보은 옮김, 말글빛냄, 2011)

셰익스피어 사랑학(오다시마 유시 지음, 장보은 옮김, 말글빛냄, 2011)

햄릿의 수수께끼를 풀다(가와이 쇼이치로 지음, 임희선 옮김, 시그마북스, 2009)

햄릿과 오이디푸스(어니스트 존스 지음, 최정훈 옮김, 황금사자, 2009)

 

 

■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햄릿

 

15 수탉은 새벽을 알리는 나팔수라는군. 그 우렁찬 목청이 태양신을 깨우고, 그 울음소리에 물과 불, 육지와 공중에 떠다니던 망령들이 허둥지둥 제 집으로 달아난다는데, 이제 보니 그말이 맞는군 그래.

 

15 닭 울음소리에 황급히 사라졌어. 사람들이 성탄을 축하하는 계절이 되면 새벽을 알리는 닭이 밤새도록 노래를 부르고, 그러면 망령들은 감히 나오지도 못한다더군. 청아한 밤에는 별의 저주도 미치지 못하고 요정도 붙지 못하며, 마녀들도 맥을 못 춘다더군. 그처럼 그 계절은 청정하고 거룩한 시기지.

 

15 나도 그렇게 들었네만, 그럴 법도 하네. , 보게. 새벽이 적갈색 망토를 걸치고 저기 저 산마루의 이슬을 밟으며 넘어오고 있네. , 그만 우리도 보초를 걷어치우세. 한데 내 생각에는 밤에 본 일을 햄릿 왕자님께 아뢰는 것이 좋을 것 같네.

 

18 이 덴마크 왕과 네 부친과는 머리와 심장 사이도 그보다 더 가깝지 못할 정도이고, 손과 입도 그보다 더 가깝지 못할게다. 그래 네 청이란 게 무엇이냐?

 

18  (방백)핏줄은 통한다지만 마음은 너무나 멀어져 있구나!

   햄릿 보이다니요? 아니 사실이 그렇습니다. 저는보인다는 말을 모릅니다. 다만 어머님, 이 새까만 외투나 격식을 갖춘 엄숙한 상복, 억지로 짓는 호들갑스러운 한숨이나 강물처럼 넘치는 눈물, 억지로 찌푸려 보이는 얼굴이나 그 밖에 슬픔을 나타내는 모든 형식과 분위기와 표정에도 저의 심정을 그대로 드러내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정말 그럴 듯 하게 보이겠지요. 그 따위 연극은 아무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비애는 그런 꾸민 슬픔이나 거짓 눈물과는 다릅니다.

 

19 인간이 태초에 죽음을 당하였을 때부터 오늘 죽은 이에 이르기까지 죽음만은 피할 수 없다고 이성은 외치고 있지 않느냐.

 

20 ,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진 이 육체, 차라리 녹고 녹아 이슬이 되어 버렸다면! 자살을 금하는 신의 계율만 없다면 자살해 버릴 텐데. , 세상 일이 모두 따분하고 부질없다. 진부하기만 하고 아무 유익이 없구나. , 싫다. 싫어. 잡초만 무성한 세상, 천하고 더러운 것들만 활개를 치는 구나. 게다가 이렇게 되다니

 

20 어머니를 그토록 감싸 주셨는데, , 이 모든 기억들을 떨쳐 버릴 수는 없는 것일까? 늘 아버지께 매달리시던 어머니, 애정을 먹으면 먹을수록 욕심이 사나워지기라도 하듯이.

 

20 어머니를 그토록 사랑하셨는데. 행여 하늘에 부는 바람이 거셀까 어머님 얼굴을 감싸주셨는데, , 이 모든 기억들을 떨쳐 버릴 수는 없는 것일까? 늘 아버지께 매달리시던 어머니, 애정을 먹으면 먹을수록 욕심이 사나워지기라도 하듯이.

 

20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인가? 겨우 한 달, 니오베처럼 온통 눈물에 젖어 가엾은 아버지의 유해를 따라가던 신이 닳기도 전에, 아 그 어머니가, 그런 어머니가 숙부의 품에 안기다니, 사리를 모르는 짐승이라도 슬퍼했을 것이다. 한 형제라고는 하지만 나와 헤라클레스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자와 한 달도 안 되어 어머니는 결혼을 하다니! 거짓 눈물에 짓무른 자국이 벌개진 눈에서 가시기도 전에, , 그렇게도 더럽게 허겁지겁 시동생과의 추악한 잠자리로 달려가다니! 세상이 잘못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내 가슴이 터져도 결코 입 밖에 내서는 안 된다.

 

23 나의 영혼아, 악행은 설령 대지에 덮여 있더라도 사람의 눈에 드러나고야 하는 법이다.

 

23 호의를 보이고 있는 모양이다만 그건 다 한때의 기분, 청춘의 혈기인 줄 알아라. 이른 봄에 피는 제비꽃이랄까. 일찍 피지만 지는 것도 빠르고 곱지만 오래 가지 않는다. 덧없는 순간적 향기, 일시적 위안, 그뿐이야.

 

24 본디 인간이란 근육과 피부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가 성장하면 내부에 있는 마음도 정신도 함께 성장하는 거야.

 

24 지금은 햄릿님도 너를 사랑하고 있겠지. 그분의 순수한 마음을 더럽히는 흠이나 거짓은 아직 없을 거다. 그러나 지위가 지위니만큼 그분의 뜻도 그분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해! 왕자라는 신분의 지배를 받으니 말이야. 그러니 신분이 낮은 사람들과는 달리 자기 마음대로 거동할 수가 없단 말이야. 한나라의 안정과 번영이 그분의 선택 여하에 달려 있으니까. 그래서 비의 간택도 자기가 다스리는 국민 전체의 뜻에 따라간단 말이야. 그러니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더라도 믿지 않는 게 현명하다. 이 나라 백성들의 찬성이 따라야 하는 특별한 지위에 있는 분의 말씀이거든.

 

24 그분의 사랑의 노래에 솔깃해져서 제정신을 잃고 보배 같은 정조를 내주는 날이면 얼마나 창피를 당하게 될 것인지 잘 생각해야 해. 조심해라. 오필리어. 내 말을 명심해야 한다. 애정의 뒤쪽으로 물러서서 욕망의 위험한 화살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어야 한다.

 

24 정숙한 처녀는 달님 앞에 고운 살을 내놓는 것조차 망측스럽게 여긴다더라. 열녀도 세상의 험구는 피하지 못하는 법이다. 봄철의 새싹은 트기도 전에 벌레한테 먹히는 수가 많고, 맑은 아침 이슬은 땅 위에 내리자마자 독기가 서려 든다고 하잖느냐. 그러니 조심해라. 몸을 보호하기 위해선 조심하는 게 으뜸이야. 청춘이란 상대가 없어도 저절로 욕망이 일어나는 법이니까.

 

24 오빠의 좋은 말씀, 가슴에 소중히 간직해서 마음의 파수꾼으로 삼겠어요. 하지만 오빠, 악덕한 목사처럼 나한테는 험한 가시밭길을 천당으로 가는 길이라고 가르쳐 주시면서, 오빠는 뻔뻔스러운 방탕아처럼 환락의 꽃길을 가시면 싫어요.

 

25 속마음을 함부로 입 밖에 내지 말 것이며, 옳지 못한 생각을 행동에 옮기지 말아라. 친구는 사귀되 잡스러워선 안 되고, 한번 사귄 좋은 친구는 쇠고리로 마음속에 단단히 걸어 두어라. 그러나 잘난 체하는 풋병아리들과 악수나 하다가는 손바닥만 두꺼워진다. 싸움은 하지 않도록 해라. 그러나 일단 하게 되면 상대방이 앞으로 너를 조심스레 여기도록 철저히 해라. 누구의 말에나 귀를 기울이되 네 의견은 말하지 말아라. , 남의 의견은 들어주되 판단은 삼가라는 말이다. 옷차림에는 지갑이 허락하는 데까지 돈을 써도 좋지만, 요란스럽게 치장하지는 말아라. 값지되 번쩍거리지 않는 옷을 입도록 해라. 옷은 인품을 나타내는 것이니까. 프랑스의 상류계급 인사들은 이 방면에 세련된 눈을 지니고 있단다. 돈은 빌리지 말고, 빌려 주지도 말아라. 빌려주면 돈과 사람을 잃고, 빌리면 절약하는 마음이 무디어진다. 무엇보다도 네 자신에게 성실하여라. 그러면 자연히 밤이 낮을 따르듯 남에게 성실한 사람이 되는 법이다.

 

25 이 가슴속에 간직하고 자물쇠를 잠갔으니, 열쇠는 오빠가 맡으세요.

 

26 그리고 절대 거짓이 아니 라시며 몇 번이나 하늘에 맹세하셨는걸요.

   , 그게 바로 바보를 잡는 덫이란 말이다. 피가 달아오르면 함부로 맹세를 하는 법이야. 얘야, 그렇게 타오르는 것은 열보다도 광채가 더 많이 나고, 한참 맹세를 하는 도중에 빛도 열도 다 사라지고 만단다.

 

27 개인의 경우에도 흔히 있는 일이야. 타고 난 결함 같은 것이 있으면. 하기야 인간의 탄생은 제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까 그런 건 물론 당사자의 잘못은 아니지. 하지만 어떤 사람은 성질이 과격해서 이성의 울타리를 넘기도 하고, 성벽 밖으로 뛰어넘어 세상 관습에 어긋나게 되기도 하거든. 어쨌든 그것이 자연이 입혀준 옷이든 운명의 별이 준 것이든 어떤 결점을 하나 짊어진 사람들은 순수한 미덕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더라도 그 하나의 흠 때문에 세상 눈에는 부패한 것으로 보인단 말이야. 고귀한 성품도 티끌만한 결점 때문에 그 본질을 의심받고 비난을 듣게 마련이지.

 

32 기특하다. 이 말을 듣고 분개하지 않는다면, 저승에 흐르는 레테 강변의 무성한 잡초보다도 더 쓸모없는 인간이겠지.

 

32 정숙한 여자는 욕정이 설령 천사로 가장하고 와서 유혹해도 움직이지 않지만, 음탕한 여자는 빛나는 천사와 짝을 지어도 천상의 잠자리에 싫증을 내고 쓰레기통에서 썩은 고기를 뒤진다.

 

33 이 독약은 사람의 피를 썩게 하는 극약인지라, 수은처럼 삽시간에 몸뚱이의 모든 핏줄을 구석구석 돌아 우유에 초를 한 방울 떨어뜨린 듯이 갑자기 맑고 건강한 피를 응고시키고 만다.

 

33 양심의 가시가 마음을 아프게 찔러대도록 맡겨두어라. 이제 가야겠다. 반딧불이 희미해지고 있는 것을 보니 날이 새는 모양이다.

 

22 잊지 말라고요? 그리리다, 가엾은 혼령이여! 이 미친 뇌 속에 조금이라도 기억력이 남아있는 한 잊지 않으리다. 잊지 말라고요? 좋습니다. 내 기억의 방부에서 하찮은 기록일랑 싹싹 지워 버리리다. 책에서 얻은 모든 격언, 젊었을 때 관찰에서 얻은 모든 형상과 모든 인상을 지워 버리리다. 당신의 명령만을 기억 속에 간직해 두고 하찮은 것들과 섞지 않겠소. 맹세코 그러리다!

 

36 제발 언제나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해. (혼잣말 비슷하게) 세상은 이제 관절이 빠져 엉망이 되어 버렸다. , 지긋지긋하구나. 내가 그것을 바로 잡을 운명을 타고 나다니! (두사람에게) , 같이 들어가세. (모두 성문으로 퇴장)

 

42 그래서 무릇 간결은 지혜의 진수요, 장황함은 그 팔다리이며 겉치레이므로 간단히 아뢰겠습니다.

 

48 대망이란 사실 공기처럼 허무한 것이라, 결국은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니까요.

 

50 인간이란 얼마나 조화로운 걸작인가. 고상한 이성, 무한한 능력, 그 명백하고 감탄할 만한 거동과 자태와 천사 같은 행동을 보게. 신의 지혜를 지닌 인간이 먼지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네. 인간에게서는 어떤 기쁨도 발견할 수 없단 마리야. 여자도 마찬가지야. 웃는 것을 보니 자네 둘이 그렇지 않는 모양이군.

 

52 내 광기는 북서풍일 때문이야. 남풍일 때는 멀쩡하거든.

 

57 아까 그 배우 좀 보라. 참으로 기괴하지 않은가. 하나의 허구, 그 가공의 정열에 취해서 온갖 상사의 힘으로 스스로의 영혼을 움직이고, 그의 안색은 온통 창백해지며 눈에는 눈물을 글썽이고 고민으로 얼굴이 일그러지며 목은 메고, 움직임 하나하나가 상상에 맞추어 갖은 표정을 다 나타내지 않는가?

 

57 나만큼 분격하고 슬퍼할 동기를 가졌다면 어떻게 할까? 눈물로 무대가 잠기게 하고, 무서운 대사로 관중의 귀를 찢고, 죄 지은 자들은 미치게 하고, 죄 없는 자를 두려움에 떨게 하고, 어리석은 자를 현혹시키고, 관중의 눈과 귀를 멍청하게 만들어 놓을 것이다.

 

58 머리를 써서. 그래, 죄를 지은 놈들은 연극을 구경하다가도 박진감 있는 장면에서는 감동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자기의 죄상을 털어놓았다고 하지 않는가. 살인죄는 입이 없어도 참으로 신기하게 털어놓는 법이다. 아까 그 배우들을 시켜 숙부 앞에서 아버지의 살해 장면과 비슷한 연극을 하게 해야지. 그리고 숙부의 표정을 살펴 급소를 찌르자. 움찔하면 그때는 주저할 게 없다. 아니면 내가 본 혼령이 마귀일지도 모른다. 마귀는 어떤 형태고 마음대로 취할 수 있으니까. 그래, 어쩌면 내가 허해지고 우울해진 틈을 타서 파멸의 구렁텅이로 나를 끌고 가려고 나타났는지도 모른다. 그럴 때는 특히 마귀가 힘을 발휘한다니까, 좀더 확실한 증거를 잡아야 한다. 왕의 본심을 살피는 데는 연극이 제일이다.

 

59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참아내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고통의 물결을 두 손으로 막아 이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한가? 죽는 건 잠드는 것 그뿐이다. 잠들면 모든 것이 끝난다. 마음의 번뇌도 육체가 받은 온갖 고통도. 그렇다면 죽고 잠드는 것, 이것이야 말로 열렬히 찾아야 할 삶의 극치가 아니겠는가? 잠들면 꿈도 꾸겠지. , 여기서 걸리는구나. 이 세상의 온갖 번뇌를 벗어 던지고 영원히 죽음의 잠을 잘 때 어떤 꿈을 꾸게 될 것인지, 이를 생각하면 망설여지는구나. 이 망설임이 비참한 인생을 그렇게도 오래 끌게 하는 것이다.

 

62 아름다움의 힘은 정숙한 여자를 금방 창녀로 바꾸어 버리니까. 정숙의 힘은 아름다운 여자를 제대로 이끌어가지 못하지만 말이오. 전 같으면 이것이 전혀 반대로 들렸겠지만, 지금은 진리임을 확증해 주는 좋은 예가 생겼소. 나도 한때는 당신을 사랑했지.

 

62~63 수녀원으로 가시오. 뭣 때문에 죄 많은 인간을 낳고 싶어 하는가? 나 자신은 꽤 성실한 인간이오. 그런데도 어머니가 나를 낳아주지 않았더라면 좋을 만큼이나 나는 온갖 죄를 짓고 있소. 너무나 오만하고, 복수심이 강하고, 야심이 많고, 이 밖에 또 무슨 죄를 지을지 모를 인간이지.그것을 일일이 생각해낼 힘도, 그것에 형태를 부여할 상상력도, 그것을 실행에 옮길 시간도 없을 만큼 많은 죄악을 짊어지고 잇는 사람이오. 나 같은 인간이 이 하늘과 땅 사이를 기어 다니면서 대체 무슨 일을 한단 말이오? 우리는 모두 대악당들이오. 아무도 믿지 마시오. 수녀원이나 찾아가요. 아버지는 어디 계시는가?

 

63 만일 네가 결혼한다면, 지참금 대신 이런 저주를 보내주마.  네가 얼음처럼 정결하고 눈처럼 순결하더라도 세상의 욕설을 면치는 못하리라. 수녀원으로 가라, 수녀원으로 가. 기어이 결혼하려거든 바보와 해라. 영리한 사람이라면 너와 결혼했다가는 괴물이 되어 버린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수녀원으로 가라. 그것도 빨리 가라. 잘 가거라.

63 나도 들어서 잘 알고 있다. 너희들이 얼굴에 덧칠을 한다는 걸. 하느님이 주신 얼굴 위에 위선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다. 아장거리고, 엉덩이를 흔들고, 간드러진 소리를 내고, 신의 창조물에 별명을 붙이는가 하면, 부정한 짓을 해놓고 모른다고 잡아뗀다. 제기랄, 이제 더는 못 참겠다. 그 때문에 나는 미쳤다. 이제 다시는 세상 년놈들이 결혼하지 못하게 할 테다. 기왕 결혼한 것들은 살려  

두지만, 딱 한 놈만은 안 된다. 나머지 결혼을 안 한 것들은 그대로 있어야 한다. 수녀원으로 가라.

 

63~64 , 그토록 고상하시던 마음이 저리 되시다니! 그 귀족답고, 무인답고, 나라의 꽃이자 희망이며, 예절의 모범으로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던 왕자님이 저렇게 비참해지실 줄이야! , 세상 여자들 가운데 가장 괴롭고 불쌍한 나, 그분의 음악 같은 맹세의 달콤한 꿈을 맛본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 기품 잇고 고귀한 이성이 금이 간 아름다운 종처럼 엉뚱하고 거친 소리를 내는 것을 보는구나. 활짝 핀 청춘의,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용모와 자태가 광란의 바람을 맞고 저렇게 져버리다니! , 가슴을 저미는 듯 슬프구나. 옛일을 보고 알고 있는 이 눈으로 이런 꼴을 보다니!

 

65 , 철저히 고쳐야지! 그리고 어릿광대 역도 대본 이외의 대사는 말하지 않도록 해야 해. 또 그 가운데는 둔한 관객을 웃기려고 자기가 먼저 웃는 자들이 있는데, 그 사이 필요한 것들은 까맣게 잊어버리거든.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광대가 그 따위 수작으로 치사한 야심을 드러내 보인다는 것은. , 어서들 준비하게. , 어떠시오? 대감? 임금님께서는 오늘밤의 연극을 보시게 되오?

 

65 연극의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자연을 거울에 비추어 선은 선한 모습으로, 악은 악한 모양으로 반영해서 그 시대의 양상을 본질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니까. 그것이 지나치거나 반대로 모자랄 때는, 서툰 관객을 웃길 수 있을지 모르나 식견 있는 관객은 한탄하지 않을 수 없지. 안목을 지닌 한 사람의 비난은 온 관객의 칭찬보다 더 중요한 법이야.

 

66 자네는 그 아름다운 성품 밖에는 없는 사람. 그러한 자네에게 아첨해서 내 무슨 출세를 바라겠는가? 가난뱅이에게 아첨할 필요가 어디 있는가? 바보 같은 세도가를 핥는 일은 달콤한 혓바닥을 가진 놈에게 맡기고, 아첨에 이득이 따라옴직한 데는 무릎 관절이 잘 움직이는 놈더러 가서 굽실거리라지.

 

66 자네는 인생의 모든 고통을 다 겪으면서도 전혀 꿈쩍하지 않을 뿐더러, 운명의 신이 내리는 상과 벌을 똑같이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야. 감정과 이성이 잘 조화를 이루어 운명의 신의 손가락이 희롱하는 대로 소리를 내는 패거리와는 근본부터 다른 사람이니 참으로 복 받은 사람이네. 정열의 노예가 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으면 내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하고 싶단 말일세.  그런데 자네가 바로 그런 사람이야.


70
본디 여자는 사랑하면서 걱정하게 마련이고, 여자의 사랑과 걱정은 같은 크기로 따라다니는 법이라 둘이 다 전혀 없는가 하면, 둘이 다 지나치기 일쑤랍니다. 제 사랑은 이미 잘 아시는 바이고, 사랑이 크니 걱정도 크옵니다. 사랑이 커지면 하찮은 걱정은 두려움으로 바뀌고, 두려움이 커지는 곳에 사랑 또한 자라는 법입니다.

 

71 사람의 의지는 결국 기억의 노예에 지나지 않는 것, 생길 때는 맹렬하지만 살아가는 힘은 약한 것이오. 그것은 마치 열매 같은 것, 안 익었을 때에는 가지에 매달려 있다가도 익으면 저절로 떨어지고 마오.

 

71 기쁨이 깊으면 슬픔도 깊고, 하찮은 일로 희비가 뒤바뀌게 마련이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우리의 사랑이 운명의 변화와 더불어 변한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오. 사랑이 운명을 이끄느냐, 이것은 아직도 풀지 못한 문제요.

 

71 이는 사랑이 운명을 따르는 증거이며, 부유한 자는 친구가 모자라는 일이 없는 반면, 가난한 자는 부실한 친구를 시험해 보다가 도리어 단번에 원수가 되고 마는 법이오. 아무튼 시작했던 말을 맺자면, 우리의 의지와 운명은 엇갈리기 때문에 우리의 계획은 늘 뒤바뀌고 마오. 뜻하는 것은 자유지만, 결과는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오. 그러니 그대가 지금은 재혼할 뜻이 없더라도, 그 뜻은 나의 죽음과 더불어 사라지고 말 것이오.

 

72 (쥐덫)이라고 합니다. 어째서냐구요? 물론 비유지요. 이 연극은 비엔나에서 일어난 암살 사건을 그대로 딴 것입니다. 왕의 이름은 곤자고, 왕비의 이름은 뱁티스타라고 합니다. 이제 곧 아시게 될 것입다만 대단히 흉측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폐하나 저희들처럼 양심이 깨끗한 사람에게는 상관없는 얘기입니다. 제 발이 저린 놈은 떨게 내버려 두세요.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76~77자네는 어지간히도 나를 얕잡아본 모양이군! 나 같은 건 마음대로 불어 보겠단 말이지. 내 어디를 누르면 음조가 바뀌는가 알고 있는 것처럼. 내 마음속의 비밀을 빼내고 싶단 말이지. 최저음에서 최고음에 이르기까지 나를 죄다 울려 보고 싶다, 이 말이군. 이 조그만 악기 속에는 많은가락, 절묘한 소리가 들어 있어. 너는 그것을 불 줄 몰라. 제기랄, 그래 내가 피리보다 다루기 쉬울 것 같으냐? 나를 무슨 악기인 양 취급해도 좋다만, 화나게는 해도 소리 나게는 못한다.

 

77 지금 같으면 나도 산 사람의 뜨거운 피를 마실 수 있고, 낮에는 엄두도 못 낼 잔인한 행위도 할 수 있다. 가만 있자, 우선 어머니한테 가 봐야지. 이 마음아, 천륜의 정을 잃지 말아라. 폭군 네로 같은 마음을 이 착실한 가슴속에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 가혹하게는 대하더라도 자식의 도리는 잊지 말아라. 혀끝으로 찌르고 칼은 쓰지 않을 테다. 이 일에 있어서만은 마음과 혀가 서로를 속여, 말로는 아무리 거칠게 욕하더라도 그것을 결코 행동으로 옮겨서는 안 된다. 알았는가, 내 영혼아!

 

78 국왕의 불행은 재앙이 옥체 한 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용돌이와 같아서 둘레의 모든 것을 끌어들입니다. 아니면 높은 산봉우리에 꽂힌 무거운 수레바퀴 같아서, 그 큰 바퀴살에는 조그만 인간들이 수없이 많이 매달려 있습니다. 바퀴가 굴러 떨어질 때에는 그에 속해 있는 것들도 함께 무너지고 맙니다. 폐하의 탄식은 바로 온 백성의 신음소리인 것입니다.

 

79 인류 최초의 저주를 받은 형제 살인의 죄. 그 때문에 마음은 아무리 간절해도 기도를 드릴 수도 없구나. 기도하고 싶은 마음은 강하나 더 강한 죄악에 압도당하고 만다.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을 하려는 사람처럼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망설이다가 양쪽을 다 못하고 마는구나.

 

79 자비가 죄인에게 베풀어지지 않으면 베풀어질 데가 어디 있겠는가? 죄를 미리 막고, 또 일단 죄를 지은 뒤에는 용서해 주는 이중의 힘이 있기에 기도를 올리는 것이 아닌가?

 

79 나는 살인으로 얻은 이득을 아직도 다 가지고 있지 않은가? 나와 왕관과 나는 야심과 왕비를, 죄로 얻은 것을 간직하면서 죄의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 이 세상의 썩은 물결 속에서는 범죄의 손도 황금으로 도금하면 정의를 밀어젖힐 수 있겠지.

 

79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은가?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되는가? 회개해 보자. 회개로 안 될 일이 있겠는가? 그러나 회개할 수 없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 , 비참한 신세로다! 죽음같이 어두운 내 가슴! , 덫에 걸린 새 같은 이 영혼, 벗어나려고 몸부림칠수록 더 꼼짝 할 수 없게 되는구나!

 

80 너를 살려두는 것은 너의 괴로운 나날을 연장시켜 주기 위해서다.

 

80 나의 말은 하늘로 날아가지만 생각은 지상에 남아 있구나. 생각이 따르지 않는 말은 결코 하늘에 이르지 못한다.

 

82여자의 정숙함과 수줍음을 더럽히고, 미덕을 위선이라 부르게 했으며, 깨끗하고 참된 연인의 아름다운 이마에서 장미꽃을 뜯어내고 그 자리에 창부의 낙인을 찍었고, 결혼의 맹세를 도박꾼의 맹세처럼 거짓되게 만든 행동에는 하늘도 격분하여 얼굴을 붉히고, 이 단단한 대지도 최우 심판의 날이라도 당한 것처럼 수심에 잠겨 있습니다.

 

82 , 보십시오, 이 그림과 저그림을. 같은 피를 나눈 두 형제분의 초상화입니다. 보십시오, 저 빼어난 아름다운 얼굴을. 태양신 아폴론처럼 물결치는 머리카락과 마치 주피터 같은 이마, 주위를 위압하고 호령하는 군신 마르스 같은 눈, 하늘로 치솟는 산꼭대기에서 갓 내려앉은 사신 머큐리 같은 의젓한 자세. 참으로 그 조화와 그 형상은 모든 신들이 간의 본보기로써 우리에게 보증해줄 분, 이분이 전남편이십니다. , 다음에는 이쪽 그림을 보십시오. 현재의 남편입니다. 병든 보리이삭처럼 형을 말려 죽인 놈입니다. 눈이 있습니까, 어머니는? 이런 아름다운 산을 버리고 이런 황무지에서 맛있는 먹이를 찾다니, 기가 막혀서! 정말 눈이 있습니까? 이걸 사랑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거지요. 어머니 정도의 나이가 되면 불같은 욕정도 순해지고 분별심에 복종하는 것이 아닙니까? 분별심이 여기서 이리로 자리를 옮긴단 말입니까?

 

82~83 욕정이 있는 것을 보면 틀림없이 감각도 있을 텐데, 그 감각이 마비되어 버린 것이 틀림없어요. 미치광이도 그런 실수는 안 합니다. 하물며 아무리 광증에 자유를 빼앗긴 감각이기로 약간의 식별력은 남아 있을 텐데, 이런 뚜렷한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시나요

 

83 만질 수 없어도 눈이 있으면, 시력이 없어도 만질 수 있으면, 혹은 병든 감각일지라도 한 조각만 남아 있다면 이렇듯 망령을 부릴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83 내가 이렇게 찾아온 것은 무디어진 네 결심을 날카롭게 갈아주기 위해서다. 하지만 보아라. 네 어머니의 저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 저 고민을 덜어 드려라! 몸이 약한 자일수록 고민은 강하게 작용하는 법이다.

 

84 환상? 저 맥박은 어머니 맥박과 똑같이 규칙적으로 건강하게 고동치고 있습니다.

 

84 죄를 하느님께 고백하십시오.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십시오. 앞으로 근신하십시오. 그리고 잡초에 거름을 주어 더욱 무성하게 만드는 짓은 하지 마십시오. 용서하십시오.

 

86 , 햄릿. 너는 내 가슴을 둘로 쪼개놓는구나.

 

86 습관은 악습에 대한 인간의 모든 감각을 먹어 삼키지만 천사의 역할도 합니다. 항상 좋은 행동을 하고 있으면, 처음에는 어색한 옷 같지만 어느새 몸에 꼭 어울리게 만들어 줍니다.

 

86 이렇듯 습관은 거의 천성을 바꿀 수도 있고 악마를 다스릴 수도, 내쫓을 수도 있는 신비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86~87 유명한 원숭이 이야기도 있지 않습니까? 지붕에 새장을 들고 올라가서 뚜껑을 열어 새들을 다 날려 보내고, 자기도 한번 날아본답시고 그 속에 기어들어가서 뛰어내리다가는 지붕에서 떨어져 목이 부러졌답니다.

 

87 염려 말아라. 사람의 말이 숨결에서 나오고, 숨결은 목숨으로 된 것이라면 나는 네 말을 누설할 숨결도 목숨도 없다.

 

89 폐하의 총애와 보상의 권세를 빨아들이는 해면이지. 하기야 그런 관리들이 결국 왕에게는 가장 요긴한 인간들이란 말이야. 왕은 그런 족속을, 원숭이가 능금을 넣어두듯이 입 한쪽에 넣어두지. 처음에는 넣고만 있다가 나중에는 삼켜 버린다구. 자네들이 왕을 위해 모아놓은 정보를 왕은 필요할 때 꾹 짜기만 하면 되거든. 그러나 자네들은 해면이라 다시 속이 바짝 말아 버린단 말이야.

90~91 먹고 있는 것이 아니라 먹히고 잇는 중입니다. 지금 정치 구더기들이 모여서 한참 먹고 잇는 중입니다. 구더기란 놈은 회식의 제왕이거든요. 우리는 우리가 살찌자고 다른 동물들을 살찌우고, 우리가 살찌는 것은 구더기를 살찌우기 위한 것입니다. 살찐 임금이나 여윈 거지나 맛은 다르지만 한 식탁에 오르는 두 쟁반의 요리지요.

 

91 왕을 뜯어먹은 구더기를 미끼로 고기를 낚고, 구더기를 먹은 그 고기를 사람이 먹을 수도 있습니다.

 

93 인간이란 대체 무엇인가! 인간의 행위와 한평생의 삶이 단지 자고 먹는 것뿐이라면? 그렇다면 짐승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신이 우리 인가에게 잃듯 위대한 사유의 힘을 주시고 앞뒤를 살필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은, 그 능력과 신 같은 이성을 쓰지 않고 곰팡이가 피도록 내버려두라고 해주신 것은, 그 능력과 신 같은 이성을 쓰지 않고 곰팡이가 피도록 내버려두라고 하신 것은 아닐 터. 그렇다면 짐승처럼 잘 잊어버리기 때문인가, 아니면 일의 결과를 너무 세밀하게 생각하는 좁은 마음의 망설이 탓인가사려를 넷으로 나누면 그 하나만이 지혜이고 나머지 셋은 언제나 비겁함이기 때문인가나는 왜 이 일은 꼭 해야 할 일이다하고 되뇌이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 일을 실행할 명분과 의지와 실력과 수단을 가지고 있으면서 대지처럼 엄청난 실례가 나를 훈계하고 있지 않은가.

 

93~94 저 군대를 보라. 수많은 인원 막대한 비용, 더욱이 그 인솔자는 가냘픈 젊은 왕자. 그러나 그 정신은 고매한 공명심으로 가득 차 있고, 미지의 앞일을 코웃음 치면서 달걀 껍데기 같은 하찮은 일에 내일을 모르는 덧없는 목숨을 무릅쓰고 있지 않은가. 진정으로 위대한 행위에는 그만큼 훌륭한 명분이 따라야 하지만, 남아의 명예에 관계될 때는 지푸라기만한 문제라도 당당히 싸워야 한다. 그런데 나는 이 무슨 꼴인가? 아버지는 살해되고 어머니는 더렵혀지고, 이만하면 이성과 피가 분기할 만도 한데 그저 침묵하고 있으니 창피할 노릇이다. 보라, 저것을. 2만 군졸이 코앞에 닥칠 죽음을 향해 전진하고 있지 않은가. 환상 같은 허망한 명예를 찾아 마치 잠자리에라도 가듯 무덤을 찾아가고 잇지 않은가. 대군이 자웅을 가릴 수도 없는 조그만 땅, 전사자를 묻을 무덤으로 쓰기에도 모자라는 조그만 땅을 위하여, , 이제부터 내 마음은 피비린내 나는 일만 생각하리라, 그 밖에는 아무런 치도 없으리라.

 

100 로즈메리 여기 있어요. 이건 잊지 말라는 표시예요. 제발, 잊지 마세요--- 그리고 이 팬지는 생각해 달라는 꽃이구요. 미쳐서도 훈계로구나! 생각하고 잊지 말라고. 옳은 말이다.

 

104 그러니 내가 쏜 화살은 그 거센 바람에 부딪쳐 내가 겨낭한 곳으로 날아가기는커녕 내게로 되돌아오고 말았을 게다.

 

111 저 해골바가지 속에도 한때는 혀가 있었고, 노래를 부를 수 있었겠지. 그런데 저 녀셕은 인류 최초로 사람을 죽인 카인이 살인에 썼던 노새의 턱뼈나 되는 것처럼 땅에 마구 내동댕이치지 않는가! 지금은 저 바보 녀석한테 마구 취급당하고 있지만 본디는 정치가의 머리였는지도 몰라. 하느님을 골탕 먹이는 그 모사꾼 말야, 그렇잖은가?

 

114 어디 좀 보자. , 가엷은 요릭, 나는 이 사람을 아네, 호레이쇼. 뛰어난 재담꾼이라 아주 재미있는 소리를 잘했지. 수없이 나를 없어 줬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군! 구역질이 날 지경이야. 여기 입술이 달려 있었겠다. 내가 수없이 입을 맞춘 입술이. 네 비웃음은 이제 어디 갔나? 좌중을 마냥 웃기던 그 익살, 그 노래, 그 신나는 재치는 다 어디 갔나? 이렇게 이를 드러내고 있는 꼬락서니를 스스로 놀려볼 수는 없나? 정말 턱이 떨어져 나갔구나. , 귀부인들 방으로 가서 말해 줘라. 분을 1인치나 발라봐야 결국 이런 얼굴을 면하지 못합니다 하고. 그래서 실컷 웃겨봐. 호레이쇼. 한 가지 물어볼 말이 있네.

 

115 알렉산더는 먼지가 된다. 먼지는 흙이다. 흙으로 찰흙을 만든다. 그러니 결국 알렉산더가 변해서 된 찰흙으로 맥주통을 왜 막을 수 없겠는가?

 

제왕 시저 죽어서 흙이 되어

구멍 때워 바람막이 될 수도 있으리니,

, 한 시대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그 흙덩이

지금은 벽을 때워 찬바람을 막는구나!

 

119 때에 따라서는 무분별이 도리어 도움이 되고 심사 숙고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고 마는 수가 있으니까. 그러니 결국 다음에서 완성시키는 것은 신의 힘이야. 대강대강 모양을 깎는 것는 것은 인간이지만.

 

120 이 친서를 읽는 대로 1초도 망설이지 말고 친서의 지참자 두 명을  사형에 처하되, 참회의 여유도 주지 말라고 썼지.

 

124 제 어미젖을 빨아먹을 때 먼저 유방에 인사한 인간이라네. 저 녀석은, 아니 저 녀석뿐 아니라 이 말세 풍조에 끄덕거리는 숱한 똑 같은 녀석들은, 세풍에 박자를 맞추어 경박한 사교술에 정신이 없고, 거품 같은 미사여구나 잔뜩 배워서 세파와 싸워 온 훌륭한 사람들의 여론을 속이고 누벼 나가거든. 그러나 한 번 훅 불어보게나, 거품이라 곧 꺼져 버릴 테니까.

 

125 나는 징조 같은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참새 한 마리 떨어지는 것도 신의 특별한 섭리야. 지금 오면 나중에 오지 않고, 나중에 오지 않으면 지금 오네. 올 것은 지금 안 와도 나중에 오고야 마는 거야. 요는 각오야. 언제 버려야 좋은지. 그 시기는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 목숨이 아닌가?

그저 될 대로 되는 거지.

 

129 범인은 여기 있습니다. 햄릿님, 햄릿님도 목숨을 잃습니다. 이 세상의 어떤 약도 이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앞으로 반시간도 사시지 못합니다 흉기는 왕자님의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뾰족한 칼끝에 독약이 묻은 칼이옵니다. 그 흉계는 결국 제 자신한테로 돌아왔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이렇게 쓰러져 잇습니다. 이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합니다. 왕비님께서도 독살되셨습니다. 장본인은 왕 저 왕입니다.

 

129~131 하느님이 자네 죄를 용서하시기를! 나도 자네 뒤를 따라가네.나는 죽는다, 호레이쇼. 가엾은 어머니, 안녕히! 이 참변에 파랗게 질려 떨고 있는 여러분에게, 이 연극의 무언 배우나 관객이 된 그대들에게, 시간만 있다면이 죽음의 잔인한 사자는 사정없이 나를 붙잡아 가는구나, 해두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그러나 하는 수가 없다.  호레이쇼, 나는 가네. 자네는 살아남아 나와 내 입장을 올바르게 전해주게, 나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131 자네가 대장부라면, 그 잔 이리 주게. , . 제발 이리 주라니까! , 호레이쇼, 전말을 분명히 밝히지 않고 둔다면, 내가 죽은 뒤에 얼마나 더러운 이름이 남게 되겠는가! 자네가 진정 나를 소중히 여긴다면, 여보게, 잠시 천상의 행복을 물리치고 고생스러울지라도 이 험한 세상에 살아남아 내 이야기를 전해 주게

 

131 , 나는 죽는다. 호레이쇼! 맹독이 내 정신을 마비시켜 버렸다. 살아서 영국의 소식도 듣지 못할 것 같다. 그러나 예언해 두지만, 덴마크의 대를 이을 사람은 포틴브라스밖에 없다. 죽음에 즈음하여 내 그를 추천한다. 그 사람에게 그렇게 전해 다오. 그리고 사태가 여기에 이르게 된 사정도 자세하게. 그 나머지는 다 침묵이다.

 

리어왕

 

252 그저 남의 안색을 살피는 누이나 아첨하는 혓바닥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이 없어서 아버님의 역정을 샀을지라도 그런 것은 없는 편이 오히려 인간으로서 훌륭하다고 생각됩니다.

 

253 지참금도 없이 우연히 내게 내던져진 따님은 저의 아내, 우리 국민의 왕후, 우리 프랑스의 왕비입니다. 버건디 공작이 떼를 지어 오더라도, 값을 모를 만큼 귀중한 이 아가씨를 내게서 사가지는 못합니다. 코델리아 공주, 비록 저 분들이 매정하다 하더라도 작별 인산만은 하시오. 공주는 이 나라를 잃었지만 그것은 좋은 나라를 발견하기 위해서였소.

 

260 아버지는 쉽게 곧이 듣고, 형은 마음씨가 좋지! 형은 자기가 남에게 나쁜 짓을 안 하니, 남을 의심하지 않거든. 그의 고지식함을 이용하면 내 계락은 쉽게 진행되어 간다! 일은 다 된 셈이지. 혈통으로 안 된다면 꾀라도 부려 영지를 차지해야겠다.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릴까보냐.

 

263 정당한 비밀은 굳게 지킬 줄 압니다. 말도 타고, 달음질도 합니다. 꾸며댄 이야기는 엉망으로 만들지만, 꾸밈없는 전갈은 솔직하게 전할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이 하는 일은 뭣이든지 합니다. 그리고 제일 좋은 장점을 말하면 부지런한 점입니다.

 

263 노래를 잘 부르는 여자라 해서 그 여자에게 반할 만큼 젊지는 않지만, 형편없는 여자에게 넋을 빼앗길 정도로 늙지도 않았습니다. 이 잔등에는 사십팔 년의 세월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266 진리는 개와 같으니 정직한 개는 개집으로 쫓겨 가 매만 맞아야 하고, 아첨쟁이 암캐는 따뜻한 난롯불 옆에 누워서 방귀만 뀌고 있거든요.

 

267 달걀 한가운데를 쪼개어 속을 먹어 버리면 관이 두 개 되잖아요. 당신이 왕관을 둘로 쪼개서 두 개 다 내주었을 때는, 자기가 탈 당나귀를 업고 진흙 길을 걸어간 셈이었지요. 금관을 줘버린 것은 그 대머리 골통 속에 지혜가 없어서지. 내가 하는 말을 바보 같은 소리라고 한다면, 그렇게 여긴 놈부터 먼저 매를 맞아야 되지.

 

268 당신은 딸의 찡그린 얼굴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좋았던 시절엔 좋은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숫자 없는 영이 됐구먼. 당신보다는 내가 낫지. 나는 광대 바보지만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거든.

 

269 아저씨, 아시죠.

    참새가 뻐꾸기를 모르고 길렀다가

    끝내는 뻐꾸기 새끼에게 먹혀 버렸지.

    그리하여 촛불도 꺼지고 우리는 캄캄한 어둘 속에 남게 됐지.

 

275 그런데 인간의 코가 왜 얼굴 한가운데에 있는지, 아저씨는 아세요?

    모른다. 그야, 코 양쪽에 눈을 붙여 놓기 위해서죠.

    그렇게 해서도 냄새를 맡아 내지 못할 때는 눈으로 알아보게 하기 위해서죠.

 

285 피로와 밤샘으로 녹초가 되었다. 졸음이 와서 눈이 무거워지니 천만다행이다. 이 굴욕적인 잠자리는 보지 않게 하니. 운명의 신이여, 안녕. 후일 다시 미소를 보여주고 행운의 수레바퀴를 돌려 다오!

 

289 아비가 누더기를 걸치면

    자식은 모르는 척하지만,

    아비가 돈주머니를 차고 있으면

    자식들은 모두 다 효자.

    운명의 여신은 이름난 창녀라

    구차한 사람에게 문을 열지 않는다.

 

296 하늘의 신들이여, 내게 인내를 주십시오. 내게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신들이여, 나는 이렇게 불쌍한 늙은이입니다. 슬픔은 가슴에 가득 차고 나이는 늙어서 어차피 불쌍한 신세입니다. 이 딸년들의 마음을 아비에게 배반케 하는 것이 당신의 뜻일지라도 내가 그걸 참고 견딜 있을 만큼 바보 취급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나에게 의분을 일으켜 주십시오! 여자가 무기로 쓰는 눈물 방울로 이 사내의 볼을 더럽히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이 흉악한 마녀 같은 것들아! 반드시 복수를 하겠다.

 

299 사람의 몸이라는 소우주를 가지고 혹심한 폭풍우와 상대하려고 발버둥을 치고 계시지요. 젖을 다 빨려버린 허기진 어미 곰도 제 짐에 들어 잇고, 사자나 굶주린 늑대도 비에 젖지 않으려고 하는 이 밤에, 모자도 안 쓰시고 뛰어다니며 될 대로 되라고 외치고 계십니다.

 

300 바람아, 불어라! 내 뺨을 갈기갈기 터지게 해라! 날뛰어라! 불어 닥쳐라! 폭포야, 용솟음아, 회오리바람아, 억수같이 퍼부어서 높이 솟아 잇는 첨탑을 침수시키고, 첨탑 꼭대기에 달린 바람개비를 익사시켜 버려라!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처럼 재빠른 유황불이여, 참나무를 두 쪽 내는 벼락의 선도자인 번개여, 내 백발을 불태워라! 천지를 진동하는 뇌성이여, 두껍고 둥근 지구를 때려 부숴서 납작하게 만들어라! 인간 창조의 모태를 찢어발기고, 배은 망덕한 인간을 만드는 씨를 모조리 부숴 없애버려라.

 

315 다음은 리건을 해부할 차례다. 그년의 심장에 무엇이 나 잇는지 살펴보도록 해라. 이렇게 냉혹한 심장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자연 속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닐까?

 

316 지체 높은 어른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니, 나의 불행 따위는 원망할 수도 없는 것 같구나. 남들이 안락하게 지낼 때, 자기 혼자만 고통을 받는 것이 제일 고통스럽지. 허나 슬픔에도 동료가 있고 고통에도 친구가 생기면 마음의 고통도 한결 수월해지지. 지금은 내 고통도 가벼워져서 견디기 쉽게 된 것 같구나. 나를 굽히게 하는 것이 국왕의 고개도 수그러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319 당신의 잔인한 손톱의 불쌍한 노왕의 눈을 뽑는 꼴이며, 흉포한 당신의 언니가 멧돼지 같은 어금니로 신성한 옥체를 쓰러뜨리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서지요. 모진 폭풍우에 맨머리로 지옥 같은 밤의 어둠 속을 고생하셨는데, 그런 폭풍우에는 바다라도 하늘로 솟구쳐 올라가서 별의 광채를 꺼버렸을 것이지만, 가엾게도 왕은 오히려 비 오는 것을 도우셨소.

 

322 차라리 이렇게 경멸 당하고 있는 것이 입으로만 간사하게 아첨을 받고 속으로는 천한 역경에 처하면, 항상 희망은 있어도 두려운 것은 없어. 슬퍼할 것은 가장 좋은 처지에서 몰락하는 경우다. 역경의 밑바닥에 떨어지면 다시 웃음이 돌아오는 법이지. 바람아, 불어라. 너는 내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데 내 몸에는 느껴지는구나. 너로 인해 불운의 구렁으로 떨어진 불쌍한 몸이지만, 네가 아무리 불어와도 이제 하나도 무섭지 않다.

 

323 나는 갈 길 없으니 눈은 필요 없다. 눈으로 볼 때에는 오히려 잘 넘어졌다. 사람은 의지할 것이 있으면 오히려 방심하게 되거든. 아무것도 없는 것이 차라리 낫다.

 

324 너는 하늘의 재앙을 달갑게 여기고 모든 불운을 잘 참아 견디고 있구나. 예전에는 잘 몰랐었는데, 내가 불행해지고 보니 그만큼 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졌구나. 하늘이시여, 언제나 그렇게 공평하게 처리해 주십시오! 한껏 쓰고도 남을 만큼 가지고 있고 게다가 포식을 하고, 신의 뜻을 자기의 노예인 양 생각하고, 자기가 느끼지 않는다 하여 남의 가난을 돌보지 않는 자에게는 당장에 당신의 위력을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분배는 과잉이 없이 골고루 돌아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모두가 풍족하게 될 것이니까요.

 

329 왕비께서 미소를 지으며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은. 그러한 왕비님의 모습은 더욱더 매력적이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입술의 행복한 미소는 눈에 어떤 손님이 와 있는지를 모르는 것 같았고, 그 손님이 두 눈에서 떠나는 모습은 진주가 다이아몬드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만 같았습니다.

 

336 대체 당신은 거미줄이오, 새털이오, 공기요? 그렇게 여러 길 낭떠러지에서 떨어졌으면 달걀같이 박살이 났을 것 아니오. 그런데 당신은 숨을 쉬며 모모 아무렇지도 않군요. 피도 안 나고 말도 하고 아주 멀쩡하구려. 돛대 열 개를 이어도, 당신이 거꾸로 떨어진 높이만큼은 못 될 거요. 생명을 건진 것은 기적이오.

 

345 설사 자기네들의 아버지가 아니었더라도 이 백발은 측은함을 느끼게 했을 텐데. 이것이 사나운 비바람과 맞싸워야 할 얼굴이었나요? 그리고 천지를 뒤흔들며 무섭게 벼락을 치는 천둥과 맞서셨다죠?,

 

350 언니에게도 동생에게도 나는 사랑을 맹세해 버렸다. 자매가 서로 경계하는 꼴은, 독사한테 물린 사람이 독사를 경계하는 꼴과 같구나. 어느 쪽을 택할까? 양쪽 다? 한쪽만? 양쪽 다 그만둘까?

양쪽이 다 살아남아서는 어느 쪽도 내 것으로 마음 놓고 향유할 수는 없지. 과부 쪽인 리건을 택하면 언니인 거너릴이 환장해서 미칠거야. 그렇다고 그녀의 남편이 살아 있어서는 이쪽의 승산은 없거든. 그러나 전쟁에는 그 남편의 위력을 이용해야지. 전쟁이 일단 끝나면 남편을 방해물로 알고 잇는 그 여자에게 곧 남편을 없애버리게 해야겠어. 그 사람은 리어 왕과 코델리아에게 자비를베풀 계획인 모양이지만, 전쟁이 끝나고 부녀가 우리 쪽 포로가 됐을 때는 사면을 하게 가만 놔두진 않을 테다. 지금의 내 입장으로선 자신을 방어하는 일이 첫째지. 이치를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야.

 

351 사람은 태어날 때나 마찬가지로 이 세상을 하직할 때도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참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기회를 기다리는 일입니다. , 가십시다.

 

357 법도에 따라 마땅히 이름을 물어봐야 하겠지만, 보아하니 의젓하고 용감하며 말씨도 어딘지 명문 출신 같구나. 기사도의 예법에 의하면 당연히 거절해도 좋은 결투지만 그렇게 하기도 싫다. 모반자라는 오명을 네 머리에 되던져주고, 지옥같이 가증스런 그 거짓말로 네 가슴을 눌러 놓겠다. 그러나 그 오명도 네 가슴을 스칠 뿐 거의 상처조차 입히지 않을 것이니, 그 오명을 이 칼로 네 가슴에 새겨두고 영원히 그곳에 남아 있게 하겠다. , 나팔을 불어라.

 

357 서로 용서하자. 나는 혈통에 있어서는 너에게 지지 않는 사람이다. 에드먼드 만약 혈통이 너보다 우월하다면 내게 대한 네 죄는 그만큼 더욱 무겁다. 나는 에드거다. 너와 똑같은 아버지의 자식이다. 신은 공평하시다. 그리고 우리의 쾌락을 가지고 우리를 벌하는 도구로 삼으신다. 아버지는 컴컴하고 부도덕한 잠자리에서 너를 만든 대가로 두 눈을 잃으셨다.

 

360 울부짖어라, 울부짖어라, 울부짖어라! 너희들은 목석같은 인간들이냐! 내가 너희들 같은 혀와 눈을 가졌다면, 이것들을 사용하여 창공이 무너지도록 저주를 해줄 텐데! 이애는 죽어 버렸다. 사람이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는 나도 안다. 이애는 죽어서 흙같이 돼버렸다. 거울을 빌려 줘. 거울이 입김으로 흐려지든지 희미해지면, 아직 살아 있는 거야.

 

364 이 비통한 시대의 무거운 짐을 우리는 감내해야 합니다. 어떤 말이 이 자리에 어울릴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가슴에 느껴지는 생각을 말합시다. 가장 늙으신 분이 가장 많이 참으셨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이만큼 고생도 하지 않을 것이요, 또 이만큼 오래 살지도 못할 것입니다.

 

맥베드

 

369 맥베드 장군은 전쟁의 여신 벨로나를 아내로 삼은 군신 마르스처럼 갑옷을 몸에 두르고 용감히 맞서서 칼에는 칼로, 완력에는 완력으로, 그의 오만불손을 봉쇄하여 마침내 아군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378 , 악한 마음을 돕는 악령들아, 나에게 있는 여자의 마음을 버리게 하고, 이 머리 꼭대기에서 발끝까지 잔인한 망으로 가득 차게 해다오! 온몸의 피를 혼탁하게 하여 회한의 길을 틀어막고 연민의 정이 흉악한 계획을 동요시키지 못하게 하여, 실행과 계획 사이에 타협이 오가지 않도록 해다오.

 

380 빨리 끝낼 수 있다면 당장 단행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암살이 이후의 사태를 일망타진하고

왕의 절명으로 모든 일이 결말 난다면, 또 이 일격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기만 한다면 현세, 그렇다, 시간의 이쪽 언덕이고 여울인 현세에서 심판을 받기 마련인 것살생이란 한번 본보기를 보여 주면 반대로 가르친 자에게 되갚아 준다. 그리하여 이 공정한 정의의 손은 독배를 마련한 자의 입에 퍼부어 넣는다. 왕은 나를 굳게 믿고 이곳에 왔다. 첫째, 나는 그의 가까운 친척이요 신하이니, 어느모로 보나 도저히 암살은 안 될말, 또한 나는 주인으로써 문을 닫아걸고 암살자를 막아내야 옳을 터인데 내가 오히려 칼을 들려고 하다니.

 

381 그럼, 지금까지 지니고 있던 그 희망은 술에 취해 있었던가요? 그래서 잠들어 있었나요? 이제야 잠에서 깨어나 전에는 대담한 눈으로 보던 것을 파랗게 질린 얼굴로 보십니까? 저도 이제부턴 당신의 애정이 그런 것으로 알겠어요. 당신은 마음속으론 갈망하고 있으면서도, 용감하게 행동으로 나타내기를 겁내고 계시지요? 인생의 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갖고 싶으면서도, 스스로 비천한 생활을 앞으로 계속해 나가겠단 말씀이세요? 속담에 나오는 저 가련한 고양이처럼 탐은 나지만그러나 안되지하고 그만두겠단 말씀인가요?

 

384 지금 이 세상의 반은 모든 것이 죽은 듯하고, 장막 속에 든 잠은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마녀들은 파리한 헤카테 여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잇고, 말라빠진 자객은 파수병인 늑대의 울부짖음에 잠을 깨어 이렇게 살금살금 목적물을 향하여 간다. 로마의 정숙한 여자를 능욕하러 가던 타르킨의 걸음걸이로 유령처럼. 요지부동한 대지여, 이 발이 어디를 향하든지 발소리를 듣지 말아 다오. 발 밑의 작은 돌들도 내가 가는 곳을 소문내지 말고, 지금 이 안성맞춤의 처참한 정적을 파괴하지 말아 다오. 그러나 이렇게 입으로 위협의 말을 늘어놓아 보았자 그는 죽지 않는다. 말은 실행의 열의에 차디찬 바람을 불어 넣어 줄 뿐이 아닌가! , 가자, 가면 끝장이 난다. 종소리가 날 부른다. 던컨, 저 종소리를 듣지 마라 저건 너의 죽음을 애도하는 종소리다. 너를 천국 아니면 지옥으로 들어가게 하는.

 

386 그렇게 마음이 약하세요? 단검을 이리 주세요. 자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은 그림과 마찬가지예요. 그림에 그려진 마귀를 보고 무서워하는 건 어린아이들이나 할 짓이에요. 아직 그가 피를 흘리고 있으면 시종들 얼굴에 발라줘야. 죄를 뒤집어씌울 수 있도록

 

387 저 문 두드리는 소리는 어디서 나는 것일까? 웬일일까, 소리만 조금 나도 깜짝깜짝 놀라게 되니? 이 손 꼴이 뭐란 말이냐? 눈알이 빠져 나오는 것 같구나! 넵튠(海神)의 대양의 물을 다 가지며, 내 손의 이 피가 씻어질 수 있을까? 아니다. 오히려 이 손이 한없이 넓은 대해를 붉게 물들여 푸른 바다를 핏빛으로 만들고 말리라.

 

391 차라리 내가 한 시간 전에만 죽었던들 행복한 일생이었을 것을. 이제 인생의 중요한 것이라곤 하나도 남지 않고 없어져 버렸구나. 온갖 것은 다 장난감에 불과하다. 명예와 자비도 죽어버렸다. 생명의 술은 다 쏟아져버리고, 자랑할 것이라곤 그저 술찌꺼기밖에 남아 있지 않구나. 이 술 창고 같은 세상에는

 

393 살인의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났으나 아직은 하늘을 날고 있다. 아무튼 그 겨냥을 피하는 길이 가장 안전하니 어서 말에 오르자. 작별 인사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곧 여기를 빠져 나가자. 여기 있다가는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른다. 여기를 피했다고 해서 그 행위에 부끄러울 건 없으니까.

 

394 노인장, 인간의 소행에 마음이 괴로운지 하늘도 저렇게 이 살육의 무대를 위협하고 있구려. 지금은 대낮인데도 암흑의 밤이 태양 빛을 지우고 말았소이다. 밤이 패권을 쥐고 있는지, 낮이 부끄러워하는지, 생생한 빛이 대지에 입을 맞춰야 할 시각에 암흑이 지면을 덮고 있소이다.

 

398 , 적어도 이름으로는 사람 축에 들 테지. 사냥개, 그레이하운드, 잡종, 스파니엘, 들개, 삽살개, 땅개, 불도그 같은 개 등도 다 개라는 이름으로 불리듯이 말이야. 그러나 가격표에서는 빠른 놈, 느린 놈, 영리한 놈, 집개, 사냥개 등등, 풍부한 자연이 부여해 준 특징에 따라 일일이 나뉘어져 특별한 명칭을 받고 있으니, 다같이 적혀져 있는 명부에서는 성질이 다르게 구별되기 마련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 너희도 인간 가격표에 기재되어 있는 이상, 최하등급에 속하지 않는다면 그렇다고 말을 하여라. 그러면 내가 비밀 용건을 너희에게 부탁하겠노니, 이를 실행하면 너희는 너희의 원수를 제거하게 될 뿐 아니라 나의 신임과 총애를 받게 될 것이다. 그자가 살아 있는 한 나는 반쯤 병든 것이나 같으니, 그자가 없어져야만 비로소 나의 건강은 회복될 것이다.

 

399 모든 것이 허무하고 소용없는 일이다. 욕망이 이루어져도 만족이 없는 한은. 살인을 하고 얻은 명예도 이렇게 불안스러운 기쁨밖에 누리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살해당하는 신세가 더 편하겠구나.

 

409 큰일은 정오 안에 끝맞쳐야 한다. 저 달 한구석에는 증기 같은 물 한 방울이 괴어 잇는데, 땅에 떨어지기 전에 그것을 받아서 마법으로 증류시키면 이상스런 정령들이 나타나고, 그 환영의 힘에 끌려 그놈은 파멸되고 말 것이다. 그는 운명을 박차고 죽음을 조소하며, 야망을 안고, 지혜도 은총도 공포도 무시한 채 헛된 희망을 가지게 될 게다. 알다시피 방심은 인간의 가장 큰 적이다.

418 분별이라고요! 처자를 버리고, 성과 영지를 버리고, 혼자 달아나는 것이? 그이는 처자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인륜의 애정이 없는 사람이에요. 새 중에 가장 작은 굴뚝새조차도 둥우리 안의 제 새끼를 위해서는 올빼미와 싸우는데, 그이는 공포심만 있을뿐 애정이라곤 전혀 없는 사람이에요. 분별은 무슨 분별이에요. 아무런 일도 없는데 달아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418 시간아, 네가 먼저 선수를 쳤구나. 이제 가공할 일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실행 없는 계획은 어찌나 빠른지 따를 수가 없구나.이 순간부터는 마음이 낳는 것은 얼른 실행하도록 해야겠다. , 이제라도 생각에 행동의 관을 씌우기 위해, 당장 계획하고 실천해야겠다.

 

419 형수님, 좀 진정하십시오. 그 어른은 고결하고 현명하고 분별이 있으며, 시국의 변화를 통찰하고 계시는 분입니다. 자세히 말씀드리진 못하겠습니다만, 아무튼 고약한 세상 입니다. 지금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역적으로 몰리고, 두려움 때문에 풍설을 믿고 있으나, 도대체 무엇이 무서운지 자기 스스로도 모르는 형편입니다. 거칠고 사나운 바다 위를 정처 없이 표류하고 있는 격입니다.

 

421 믿을 수 있는 일이라면 나는 슬퍼 하겠소. 아는 일이면 믿기도 하겠소. 그리고 구원 할 수 잇는 일 같으면, 좋은 시기를 만나면 구원도 하겠소. 그대가 발한 것이 사실일지도 모르오. 그 이름을 입에 올리기만 해도 혀가 부르트는 저 폭군도 한때는 정직하고 충성된 인간이라고 생각되었던 사람이오. 그대도 전에는 그자를 존경했고, 그자 역시 그대에게는 손을 대지 않았었소. 나는 나이가 어린 사람이오. 그러나 나를 이용하면 그자의 환심을 살 수 있을 것이오. 노한 신을 달래자면, 약하고 불쌍하고 죄 없는 양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 현명한 수단일 거요.

 

423 한없는 방탕은 인성에 대한 일종의 포악입니다. 이 때문에 행복한 왕위가 뜻밖에 전복을 당하고, 숱한 국왕이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시는데 두려워 할 것은 없습니다. 쾌락은 은밀히 얼마든지 만족시키면서 시치미를 떼고 세상을 속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423 탐욕이란 여름철 욕정보다 더 뿌리가 깊고 해로운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까지 숱한 국왕들이 탐욕이라는 칼 아래 쓰러지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스코틀랜드에는 전하의 영지만으로도 전하의 욕망을 충족시킬 만한 자원이 있으니까요. 그런 건 다른 미덕으로 보상만 되면 모두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430 흉측한 소문이 퍼지고 있소. 순리를 어기면 부자연스러운 혼란이 생기게 마련이오. 병이 든 마음은 귀 없는 베개에 깊은 마음속의 비밀을 누설하는 법, 왕비님께서는 의사보다도 목사가 더 필요하오. 하느님, 가엾은 우리 인생을 용서하옵소서! 잘 돌보아 드리시오. 위험한 도구일랑 곁에서 치우고 항상 지켜보시오. 그럼, 안녕. 내 의식은 희미해지고 눈은 혼란에 빠졌소. 생각은 있어도 말을 할 수가 없구려.

 

435 이제는 공포의 맛도 거의 다 잊어버렸구나. 밤에 비명을 들으면 가슴이 서늘해지던 시절도 있었다.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면 머리칼이 살아 있는 양 뻣뻣이 곤두선 적도 있었다. 공포도 실컷 맛본 나다. 그러나 이젠 살인의 기억도 예사가 되어 버리고, 아무리 무서운 일에도 나는 끄덕하지 않는다.

 

435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죽어야 할 사람, 한 번은 그런 소식이 있을 것이 아닌가. 내일, 내일 또 내일은 매일 살금살금 인류 역사의 최후 순간까지 기어들고, 우리의 어제라는 날들은 모두 어리석은 자들이 무덤으로 가는 길을 비쳐 왔다. 꺼져라 꺼져, 짧은 촛불아! 인생이란 한낱 걷고 있는 그림자, 가련한 배우일 뿐이다. 제 시간엔 무대 위에서 활개치고 안달하지만, 얼마 안 가서 영영 잊혀져 버리지 않는가. 그것은 천치가 떠들어 대는 이야기 같다고나 할까. 아무런 의미도 없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지.

 

439 헛수고 마라. 너의 그 예리한 칼은 벨 수 없는 공기에 칼자국을 낼 수는 있을지언정 내 몸에 상처를 내지는 못한다. 그 칼로 벨 수 있는 머리나 베려무나. 내 생명에는 마력이 들어 있어서 여자가 낳은 놈한테는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

그까짓 마력은 단념해라 네가 늘 믿어 온 마녀한테 물어 봐라. 이 맥다프는 달이 차기 전에 어머니 배를 가르고 나왔다고 일러 줄 게다.

 

 

 

 

■ 내가 저자라면

 

그리스 시대의 비극을 만든 작가들은 신들에게 운명을 지배당한 인간이 겪는 시련과 고난을 표현했다면 셰익스피어의 비극은 인간의 파멸과 몰락이 무자비한 운명의 여신 탓만은 아니고, 오히려 인간을 파국으로 이끄는 주요 원인은 인간 자신에게 있다고 말한다.

<햄릿>의 주인공 햄릿은 덴마크의 왕자이자, 비텐베르크 대학의 학생이었다. 그는 고귀하고 지적이며 감수성이 매우 풍부했다. 그래서 그는 늘 명상에 잠기곤 했다. 하지만 그의 명상은 단순한 관념적 유희가 아니었다. 부패한 덴마크 왕국의 앞날을 걱정하는 왕자로서의 고뇌, 아름답지 못한 현실과 마주한 자신은 대체 뭘 어떡하면 좋을지, 이처럼 그의 고뇌는 구체적이었다. 극히 모순된 그의 성격에도 불구하고 햄릿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아 온 이유는, 외부를 인식하고 자기 내부를 성찰하는 햄릿의 모습 덕분이었다. 즉 순수하고도 이상주의적인 청년시대의 원형이 햄릿의 모습에 잘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젊은 날의 모습과도 닮았다. 나 또한, 아버지에 대해, 여자에 대해, 사회 현실에 대해 고뇌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 당시만 해도 나만의 문제로만 한정 짓고, 주변을 맴돌기만 했었다. 만약 일찍 <햄릿>이라는 작품을 접했다면, 그렇게 길게 방황하지 않고 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았을까? 셰익스피어는 주인공 햄릿을 통해서 젊은 시절의 고뇌가 신선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주옥 같은 말로 표현하고 있다. "약한 자여, 그대는 이름은 여자",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라는 말은 시대를 뛰어넘어 모든 인간들의 마음을 공감하게 만든다.

<리이왕>은 셰익스피어가 온갖 작품들은 참고했다고 한다. 그 작품들의 밑바닥에는 중세 이래 전설로서 전해져 내려오던 레어왕(King Leir)이라는 인물의 이야기가 깔려 있었다. 왕국을 분할한 레어왕이 세 딸 가운데 2명의 불효 때문에 고생하지만 결국 왕좌를 되찾는 헤피엔드 이야기다. 셰익스피어는 이것을 비극적인 결말로 바꿨다. 그가 창조한 리어왕은 왕좌를 되찾지도 못하고 끔찍한 고통에 겨워 절명한다. 순수했던 단 한 명의 딸도 무참하게 살해당한다. 이렇게 전설적인 이야기를 셰익스피어의 손을 거쳐, 생생한 생명력을 지닌 인간 세계로 완성되었다. 이 작품의 주요 모티브는 자식의 배신이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에서 더블플롯 수법을 사용했다. 더블플롯이란 중심과 곁가지라는 2개의 플롯으로 한 이야기를 만드는 형식이다. 여기서는 두 딸에게 배신당한 리어의 비극이 중심이고, 아들에게 속은 글로스터 백작의 비극이 곁가지다.

우리가 사는 주변에서도 재산 상속과 관련된 온갖 더러운 인간의 모습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리어왕>처럼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는 부모와 형제들이 많다. 이러한 비극을 피하기 위해, 깨어있는 사람들 중에는 일찌감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식이 독립하면 각자의 삶에 대해 분명한 선을 긋는 것이 최근 부모들의 모습이다. 만약 내가 작가라면 <리어왕>에서 좀 더 비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 리어왕의 왕비를 등장시켜, 마지막에  순수했던 막내 딸의 처참한 죽음과 이어서 왕비에 대한 죽음까지도 받아들여야 하는 리어왕의 모습을 연출하고 싶다.

<맥베드>는 비극 중에서는 가장 짦고, <리어왕>에 비하면 규모도 작다. 하지만 대담한 수법으로 주인공의 심리를 묘사한 걸작이다. 이 작품은 도입부분부터 마녀들을 등장시켜 극의 전개를 초자연적인 흐름으로 따라가게 만든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마녀의 예언이 실현되는 것 자체보다는, 그 배경에 존재하는 인간 심리를 주목했다. 그 심리를 꿰뚫어본 그는 풍부한 감수성을 지닌 주인공을 창조했다. 주인공 맥버드는 그 예언을 듣고 자신의 인생 목적을 정했다. 목적이 정해지면, 인간은 일정한 시점까지 그것을 달성하려고 노력한다. 시간과의 경쟁이 시작되고 주인공은 무언가에 쫓기듯이 살아간다. "일단 해치워 버렸을 때 모든 것이 끝나게 된다면, 빨리 해치우는 편이 낫다" 맥베드의 대사이다.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비탈길을 굴러 내려가는 것처럼 악행을 거듭하던 주인공은, 결국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장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내의 죽음을 접하고 그가 읊은 시는 이러한 인식을 잘 보여 준다.

내일과 또 내일과 그리고 또 내일은

하루에서 또 하루를 향해 옹졸한 걸음으로

정해진 시간의 최후까지 기어간다.

어제라는 지난날은 어리석은 자에게 사람을 한낱 먼지로 바꾸는

죽음으로 향한 길을 밝혀 주었다.

꺼져라, 꺼져라, 짧은 촛불이여!

인생이란 헤매는 그림자에 불과하니, 가련한 배우처럼

무대 위에 정해진 시간만큼 활개치고 안달하다

제 차례가 끝나면 사라지는 것.

마치 백치가 지껄이는 이야기와 같은 것.

요란하고 시끄러울 뿐

아무 의미가 없도다.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도, 미신과 운세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사람들이 많이 볼 수 있다. 인생을 헤매는 그림자처럼 자신의 삶을 올바로 주도하지 못하고 허황된 운세에 자신을 내 맡긴다. 그러한 운명은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촛불처럼 아슬아슬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뱅코우의 아들 플리언스가 맥버드가 최후을 맞는 장면에 등장하지 않는 점이다. <맥베드> 도입부분에서 마녀가 맥베드에 대한 예언뿐만 아니라, 뱅코우에 대해서도 "왕이 되지는 못하나 자손 대대로 왕을 낳으실 분"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맥버드에게 아버지가 살해되어, 자식으로서 복수를 하는 장면이 나와야 하는데, 끝내 보이지 않았다. 내가 만약 작가라면, 마지막 장면에서 맥다프와 결전 끝에 주인공 맥베드는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플리언스를 등장시켜,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이어서 왕위까지도 플리언스에게 돌아가는 장면을 연출하고 싶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 또한, 마녀의 예언에 충실하려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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