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젤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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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카타도피아의 하루 - 새벽 4시에서 저녁12시까지, 그
안에서 깨달음과 인연을 얻다.
전날 저녁 단테 신곡의 <천국편>을 읽고 잠들었다. 다음날 새벽 4시 일어났다. 터키 여행의 5일째
되는 날이다. 회사에 가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야 하는 하루가 아니다.
오늘은 벌룬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천국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태양을 마주보며 기도해
볼 수 있는 순간이다. 어제 저녁에 읽었던 천국의 느낌이 아직도 가슴 속에 살아있다. 이렇게 책이 여행에서 주는 감동은 읽으면서 느끼는 의식이 여행 중에 우연히 찾아 온다. 바로 그 순간, 나는 에피파니(顯現, 문학적으로 계시나 통찰의 순간)를 느낀다.
약속시간인 5시가 되었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함께 버스에 올라 탔다. 그 중에서 특별히
눈길이 간 것은 머리에 딱 달라붙은 '비니'모자를 쓴 나이
든 여자의 모습이었다. 아마도 그녀의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은 것으로 보아,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뒤에 아내의 어깨에
손을 올려 놓은 남자는 남편인 것 같았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고 야윈 얼굴이었다. 남편은 이제 막 연예를 시작한 연인처럼 아내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어깨를
감싸주었다. 우리는 탁 트인 평야로 이동했다. 그 곳에는
수 많은 벌룬들이 불꽃을 뿜어내고 있었다. 풍선에 열기를 불어넣으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한 벌룬에 8~20명이 탄다. 우리
벌룬에는 20명이 탔다. 야외에서 아침식사와 진한 커피를
한 잔하고 탑승했다. 벌룬 드라이버는 영국인이었다. 특유의
악센트가 벌룬의 불꽃 소리와 어울렸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드라이버는 불꽃 레버를 힘차게 당겼다. 벌룬이 땅을 가뿐하게 뛰어 올라서는 순간, 하늘로 쭉 올라갔다. 누군가 하늘에서 벌룬을 잡아 올린 것처럼 말이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위해 땅 위를 달려갈 때 느껴지는 진동이나 두려움은 전혀 없었다. 누군가 나를 하늘 위로 순간 이동시키는
느낌이었다. 먼저 올라간 벌룬과 옆에서 함께 떠오르는 벌룬이 넓은 하늘을 채워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백 개의 벌룬이라고 했을 때, 2천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올라간 것이다. 푸른 창공으로 높이 올라왔을 때, 하늘은 온통 벌룬으로 뒤덮여 있었다. 구름 바로 아래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우리는 카타도피아의 희귀한
암석모양을 내려다 보면서 날아갔다. 모두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탄성을 지르며, 카메라 버튼을 쉴새 없이 눌렀다. 문득 저 아래 계곡을 내려다 보면서, 계곡 속으로 벌룬이 내려 가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는데, 내 생각을
드라이버가 읽었는지 어느새 벌룬은 계곡 아래고 천천히 내려갔다. 그것도 깊숙이 내려가 땅과 맞닿을 정도로
내려갔다. 오래 전에 기독교 탄압을 피해 숨어 살고 있던 동굴 집 내부까지 한 눈에 들어왔다.
잠시 바위 틈에 핀 꽃들을 바라볼 수 있게 벌룬을 하늘에서 정지시켰을
때, 모두들 탄성을 질렀다. 다 함께 벌룬 드라이버에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그리고 다시 떠오르면서 다른 벌룬과 부딪칠 뻔한 아찔한 순간이 있었고, 그리고 이어지는 일출의 광경은 내 마음을 뻥 뚫리게 만들었다. 짙은
구름으로 태양이 떠오르는 광경은 볼 수 없었지만, 구름 틈으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을 우리들은 두 팔
벌려 온 몸으로 스며들게 했다. 점점 햇살이 쏟아지는 중심에 이르렀을 때, 천국에 도착한 기분이었다.
문득 맞은편에 있던 노부부의 모습이 구름 위로 얼굴을 내민 태양과 함께
내 눈에 들어왔다. 어깨를 감싼 남자의 손등 위로 그녀는 자신의 손을 포개어 얹고, 다른 손은 태양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모습은 천국으로 가는 아내를
배웅 나온 남편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화답이라도 하듯 천사들이 짙은 구름을 걷어내고 아름다운
천국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남편은 아내의 어깨를 꼭 감싸 안으며, 머리에
입을 맞추었다. 그 순간만큼은 자연이 만들어 낸 멋진 풍광보다도 가슴 뭉클한 장면이었다.
아침을 먹고,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카타도피아 그린 투어에 나섰다. 지하세계와 산과 계곡을 따라 트래킹하는 모험이다. 다시 벤츠버스가
숙소에 도착했다. 버스 안에는 새벽의 멤버와는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한 쌍의 신혼 부부와 엄마를 모시고온 딸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벌룬을 함께 탔던 노부부와도 인사를 나눴다. 우리 팀이 제일 마지막에 탑승했다. 맨 뒤에 올라탄 나는 버스 뒤쪽, 브라질 여자들이 있는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출발서부터 신혼 부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냉랭한 모습이었는데, 버스 안에서 함께 앉아 있었지만 서로의 마음과
시선은 다른 곳에 있었다. 어제,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동료와 함께 레드 투어를 마치고 숙소로 들어왔을 때다. 신혼 부부의
숙소는 우리 방과 같은 층 건너편에 위치해 있어서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남편이 몇 번씩 열쇠를 돌리는데, 문이 잘 열리지 않았는지 여자는 짜증을 내면서 말했다. "이
빙신 같은게 그것도 못여나, 나와 봐라", 오랜만에
들어보는 고향 사투리였지만, '남편이 꽤나 자존심 상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직감적으로 연애를 오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어제의 감정이 아직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오전
내내 차가운 모습이어서, 옆에 앉아 있는 우리들도 불편했다. 귀국과
동시에 갈라설 태세였다. 그런 분위기에 우리 막내는 남편과 몇 마디 인사를 나누고는 말을 건냈다. "두 분이 신혼여행 왔는데, 왜 그렇게 말을 안 하세요?" 말릴 틈도 없이 나온 질문이라, 둘 사이를 더 얼어붙게
만들었다. 매일 내가 푼수 같은 행동을 했지만, 오늘은 막내가
저지르고 말았다. 아마도 매일 나랑 같이 잠자리를 해서 그런지, 푼수
끼가 옮겨 붙은 것 같았다.
점심 시간이 되었다. 계곡으로
내려가 강가를 따라 올라가니 멋진 레스토랑이 나왔다. 우거진 숲 속에서 흘러가는 강을 바라보며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미국인 노부부와 신혼부부가 한 테이블에 앉고 그 옆에 우리 동료 4명이 앉았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한국인 모녀가 앉았다. 새벽에 벌룬에서 노부부를 보면서 느낀 감정이 신혼 부부에게도 전해진 것일까?
대화를 조금씩 건네더니, 예전의 연인의 모습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마도 소중한 서로의 존재를 다시 인식한 것 같았다. 사랑이 함께
하는 여행만큼 행복한 순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일까? 이렇게 해서 버스에 탄 모든 사람들이 하나된
느낌으로 점심식사를 가졌다.
오후에는 아침에 인사를 나누고, 서로를
알게 된 브라질 여자들과 나는 담소를 나누었다. 좌측에 앉은 2명의
여자는 브라질 통신회사에 다니는 친구 사이였고, 우측에 앉은 여자는 혼자 배낭여행 온 의사였다. 나는 주로 의사인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암환자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아직은 서툰 영어인지라 반절만 느낌으로 알아들었다. 하지만 나의 의식은 그녀와의 대화보다는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부딪쳐 오는 그녀와의 접촉에 온 신경이 쏠려 있었다. 그녀의 반팔 소매 아래 뽀얀
피부의 느낌은 따뜻했다. 문득 제임스 조이스가 상상하는 의식의 흐름으로 잠깐 빠져들었다. 그리고 이틀 전 파묵칼레에서 만난 이태리 남자가 떠올랐다. 이즈미르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셔틀에서 만났는데, 그가 셔틀에 올라타기 전에 함께 포옹하던 한국여자가 눈에 띄었다. 마침 그는 내 앞자리에 앉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영어도 능숙했지만, 터키어도 곧 잘했다. 구리 빛 근육과 부드러운 눈빛, 그리고 달콤한 목소리까지, 남자인 내가 봐도 매력덩어리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조금 전에 헤어진 한국여자와는 어떤 사이인지 물어 보았다. 그의
대답은 '어제 저녁에 만난 사이'라고 간단하게 말했지만, 내 머릿속은 복잡해 졌다. 내가 왜 그걸 궁금해 했을까? 그게 왜 중요하지, 혼자 상상으로 만리장성을 쌓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브라질 여자와 버스 안에서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맨 살을 맞대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금 이태리
남자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 질문을 던지면서 나의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도착했다.
동료들과 간단한 휴식을 취하고 저녁 식사를 하러 나왔다. 그런데, 내 휴대폰에 벨소리가 울렸다. 누구인지 궁금했다. 버스 안에서 명함을 주고 받은 여자는 브라질 여의사와 어머니와 함께 왔던 은행원 여자였다. 누구일까? 누구일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통화버튼을 눌렀을 때, 내 귀에 들려온 것은
한국인 목소리였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싶어했다. 조금
전 자신들이 들렀던 음식점에서 낯선 남자들이 치근덕거려서, 그냥 나와 버렸다고 말했다. 어머니가 많이 놀라신 모양이었다. 두 모녀를 우리가 가는 식당으로
모시고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어머니는 터키 여행 중에 이렇게 한국인들과 편하게 식사해서 너무 좋다면서, 장소를 옮겨서 맥주를 사주셨다. 오랜만에 술이 들어가서인지 동료들은
여행 중에 일어났던 나의 이야기를 모녀에게 들려주었다. 여권이야기, 발레댄서이야기, 박물관 사건까지 어찌나 실감나게 이야기 하던지 두 모녀는 숨이 넘어 갈듯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당사자인 나도 다시 들으니깐 재미있었다. 동료들이 내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깐 참 행복해 보였다. 누군가에게 행복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웠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두 모녀를 안전하게 숙소까지
모셔다 드리고는 비 오는 카타도피아 거리를 걸어서 숙소에 도착했다. 새벽 4시에 나가서 돌아온 시간은 12시였다.
그날 하루를 돌이켜 보았을 때, 평상시
내가 가졌던 그런 하루가 아니었다. 차원이 다른 하루였다. 내
삶에서 이렇게 신나게 놀아본 적이 있었는가? 그것도 하늘 위에서 태양을 마주 보고, 천국의 기쁨을 누린 적은 없었다. 그리고 땅 속 깊이 내려가 지하세계를
탐험하고 강이 흐르는 계곡을 트래킹하면서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부부의 소중한 의미를 다시 알게 되고, 여러 나라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좋은 영감들을 얻었다. 아마도 이렇게
많은 깨달음과 인연이 하루 동안 쏟아진 적은 없었다. 그리고 가슴 뭉클하고, 가슴 뛴 하루가 동시에 느껴진 것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 하루를 내 인생에서 의미 있는 하루로 기억하고 싶다.
이번 터키 여행은 우연하게 나를 찾아왔다. 어느 날 우연히 서울 강남 뒷골목에서 길을 잃어버렸고 그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이스탄불 문화원'이었다. 아마도 그 때부터 여행이 시작된 것 같다. 주저하지 않고 문을 두드렸고, 그 곳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다. 앞으로 이번 여행의 경험들을 글로 옮겨서 책과 여행이라는 주제로 터키를 배경으로 한 여행이야기를
그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터키여행이 우리 삶에 어떻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져다 주는지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렇게 해서 그들과 다음 인연으로 새롭게 이어나가고 싶다. 8월! 다시 이스탄불에 간다고
생각하니깐,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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