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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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곡동에서 하루
2012년 6월 6일 현충일 새벽 5시30분. 세린은 평소 일어나던 시각에 눈을 떴다. 하지만 이내 다시 눈을 감았다. 7시 42분. 그녀는 놀래서 일어났다. 9시에 해진과 만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가 전날 늦게 귀가해서, 일어나지 않았을까봐 부랴부랴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예상과 달리 그는 바로 전화를 받았고, 9시 조금 넘어 도착할 거라고 했다. 그녀는 조금 늦을거라는 그의 말에 여유를 부리며 천천히 일어나 얼굴을 씻고, 옷을 입고, 화장을 했다. 준비하는 내내 그녀의 마음은 들떠 있었다. 오늘이 바로 모험의 날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모험의 날을 만들어 볼 생각을 했다. 그동안 경험해보지 않은 것을 경험하고, 그 경험에 의미를 부여 함으로서 모험의 날을 완성할 생각이었다.
- 나 도착
9시 17분.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녀는 카카오톡을 확인하고, 덜 마른 머리에 드라이기를 갖다 댄다.
- 위이잉!
13분이 더 흘렀을 즈음 그녀는 그 앞에 섰다.
- 차 속에 있지 않고, 밖에 나와 있네? 오래 기다렸지? 바로 못나와서 미안. 머리 좀 말리느라고. 커피 마시고 있네? 나도 커피 마시고 싶다.
그녀는 먼 길을 온 그를 기다리게 한 것이 조금 미안했는데, 주저리 주저리 떠드는 것으로 미안함을 표현하고, 차 앞 좌석에 앉았다. 안전 벨트를 고정시키려고 운전석과 앞좌석 사이, 컵 놓는 자리로 시선을 옮기니, 그가 마시고 있던 커피와 같은 종류의 커피가 놓여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소소한 행복을 선물했다. 모험의 날의 시작이 좋다. 출발 전 그녀가 말했다.
- 단테가 천국에 갔을 때 그의 안내자가 되었던 베아트리체처럼 너는 오늘 나의 모험의 날, 날 어린시절로 데려가는 나의 베아트리체야.
그는 그녀가 설명하는 베아트리체에 대해 설명을 듣고, 말했다.
- 그럼, 우선, 내발산 초등학교를 첫 목적지로 하고 가자. 그리고 거기부터 네 기억의 장소를 찾아 가보는거야. 네가 어릴 때 다녔던 장소에 가는 것을 시작으로, 성장하면서 거쳤던 장소를 다 가본 후에 다시 성인인 너로 돌아오는 거야.
- 그는 네비게이션 검색창에 ‘내발산 초등학교’를 입력했다. 도착 예정시간 10시 20분. 그녀의 모험의 날은 어린시절 살았던 화곡동에 가서 보고, 느끼는 것으로 구성될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화곡동에 가서 그녀가 의식적으로 기억하려고 해도 잘 떠오르지 않았던 다른 추억들을 더 얻어오는 것이 목표였다.
가는 길이 낭만적이었다. 쨍쨍한 햇빛 아래 한강이 반짝였기 때문이다. 그는 가수 이현우의 선곡이 좋다며 ‘이현우의 음악앨범’이 나오는 89.1MHz로 라디오 주파수를 맞췄다.
10시 20분이 다 됐을까? 그녀는 차가 어떤 길로 들어서자
- 어, 이제 조금만 가면 우회전이다.
라고 말했다.
- 어. 맞아. 거의 다 왔어. 올~ 기억나? 어릴 때 이 길 다녔었어? 여기 화곡로야.
- 아, 화곡로구나.
그녀는 어린시절로 들어왔다. 그녀의 기억이 그녀를 어린시절로 들어오게 했다. 그녀는 기억을 더듬어 그에게 설명을 했다. 예전에 화곡로에는 육교가 있었고, 아빠가 다리를 다쳤을 때 입원했던 병원이 있었다. 하지만 그와 그녀의 눈엔 육교 대신 횡단보도가 보였고, 그녀의 아빠가 입원했던 병원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는 작은 병원 하나가 보였다. 그녀는 그 병원이 아주 컸다고 기억하고 있는데, 그리 크지 않은 걸 보니 무언가 바뀐 것 같다. 그녀의 머릿속엔 온통 어린시절 화곡동이 펼쳐지고 있었다. 우회전을 하니 그녀가 다녔던 은성교회가 신축공사로 모습을 감추고 있다. 교회가 예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면 추억을 많이 떠올릴 수 있었을텐데 아쉬웠다.
그는 그녀를 내발산 초등학교로 안내했다. 4학년 1학기 때까지 다녔던 초등학교. 그녀는 전날 앨범에서 가져온 사진을 꺼냈다. 1학년 때 찍은 단체사진, 3학년 때 찍은 체육대회 사진 등 5장의 사진을 꺼내 보면서 운동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다닐 때 있었던 건물은 그대로인데, 새 건물이 하나 더 생겼다. 그리고 운동장에 듬성듬성 잔디가 깔렸으며, 달리기를 할 수 있는 트랙도 생겼다. 하교길에 걸었던 길에는 나무가 심겨 졌고 벤치도 놓였다. 그녀가 학교를 다닐 때는 없었던 벤치다. 그녀의 기억엔 운동장에 테니스 장이 있었는데, 보이지 않는다. 없어진 것 같다. 그녀는 1학년 때 단체 사진을 찍었던 자리로 갔다. 구령대 위에 두번째 계단에 앉았다. 사진 속에 그녀는 검은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있었고, 햇빛에 눈살을 좀 찌뿌리고 있다. 오늘도 역시 햇빛이 강해 눈살을 찌뿌릴 수밖에 없는 날씨인데 그녀의 눈은 썬글라스 뒤편에서 잘 떠져있다.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사실 그녀는 그 단체사진을 찍었던 날이 기억나지 않는다. 또 그 사진 속에 있는 얼굴들 중 기억나는 친구가 한명 밖에 없다. 그 친구는 다리가 아팠다. 신체 장애를 가진 아이였다. 그 친구 빼고 나머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는 그 사진이 아니었다면 아마 초등학교 1학년 때 자신이 어디에 앉아 사진을 찍었고, 누구 옆에 있었으며,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전혀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또 1학년 때 친구들 중 한 명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가 살면서 기억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유독 장애를 가진 친구를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이유가 뭘까?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아니다. 그녀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일요일 마다 오후에 그 친구네 집에 찾아가 놀다 오곤 했다. 그녀는 어머니가 그 친구네 집에 자주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셔서 교회에 간다 하고, 길을 빙빙 돌아서 친구네 집에 갔다. 그리고 그 친구의 할머니가 그녀를 매우 반가워 했었다.
그녀는 누군가를 기억하거나, 누군가에게 기억 되고 싶다면, 함께 있는 시간에 관계를 잘 맺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 친구와 매주 다른 친구들과는 맺지 않는 특별한 관계를 맺었었다. 그당시 그녀에겐 그 친구와의 관계가 아주 소중했던 것 같다. 그녀는 잠시 현실로 돌아와 요즘 그녀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녀가 소중하게 기억하고 싶은 관계에 있어서는 더 관심을 갖고, 시간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과의 추억을 기록으로 잘 남겨두겠다고 결심했다. 기억보다 기록이 그들과의 추억을 더 잘 증명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내발산 초등학교에서 나왔다. 그 시절엔 하교 길에 주욱 늘어선 문방구에서 50원, 100원 짜리 간식을 사 먹었었다. 문방구가 아주 많았고, 집으로 가는 갈래길까지는 아주 길었다. 그런데 문방구가 하나 남아 있다. 그때와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그때 그녀 세대는 문방구에서 간식을 사먹었지만, 지금 초등학생들은 마트나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먹을 것이다. 문구류도 대형 문구점에서 팔고, 마트에서도 팔고 있기 때문에 많은 문방구들이 문을 닫은 것 같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나 남은 문방구에 들어가 구경하고, 새콤달콤 하나를 사, 입에 물었다. 새콤달콤한 맛이 꼭 초등학생이 된 기분을 만들어줬다.
- 나, 옛날에 살던 집까지 기억을 더듬어서 걸어가볼래. 집에 가는 길에, 약수터, 놀이터, 내가 다녔던 한울 유아원, 수협은행, 풀밭 사잇길, 슈퍼가 있었어. 특히 아파트와 공원 사이에 풀이 내 키만큼 올라와 있었고, 인도가 깔려 있었거든. 집에 가는 길에 오줌이 엄청 마려워서 달려 가다 그 길에서 싸버린 적도 있지. 풉. 가보자!
집으로 가려면 예전 문방구 길을 지나 넓게 이어진 오른쪽 길로 내려갔어야 하는데, 그 길이 좁은 계단으로 바뀌어 있다. 그녀가 살았던 주공아파트는 모조리 새로운 브랜드, 고층 아파트로 바꼈고, 단지는 완전히 다르게 조성되어 있었다.
- 아, 뭐지? 다 바꼈어. 어떻게 찾지? 다 없다. 약수터, 놀이터, 유아원, 은행, 사잇길, 슈퍼 하나도 없어. 어떻게. 내 과거가 다 없어졌어. 여기서 쭉 가다가 위로 올라가면 우리 집인데, 그리고 그 위로 넘어가면 맨날 치킨 사러 뛰어 갔던 내리막길이 나오는데. 그래도 한번 가볼까? 오르막길, 내리막길이 변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 변했을 수도 있지만, 한번 가보자.
자신이 살았던 41동 아파트 위치를 찾기 위해 기억을 더듬어 지형의 모양을 따라 갔다. 약수터가 있었을 것 같은 자리를 지나, 오른편에 유아원이 있었던 오르막길을 올라, 41동이 있었던 곳으로 갔다. 근데 그 자리가 맞는지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어디가 어딘지, 기억의 회로도 엉켰고, 보이는 건물들도 다 새롭다. 그녀의 집은 오르막 길 끝 쯤에 있었다. 그녀의 집을 지나 위로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나가면 다시 내리막길이 되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집 뒷편에는 2차선 도로가 있었는데, 그 길이 도로로 나가는 길이었다. 길을 계속 가니 2차선 도로가 보였다. 건물은 다 바꼈지만 도로는 아직 남아 있었다. 2차선 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보니 ‘강서구 한울 어린이집’이 보였다. 단지가 새로 조성되면서 그녀가 다니던 유치원이 이전을 했나보다. 그녀는 한울 어린이집을 발견하고 엄청 기뻤다. 장소는 바꼈어도,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어머니와 어릴 적 많이 갔던 시장에 가보기로 했다.
그녀의 기억을 따라 간 길에는 시장이 없었다. 그녀는 또 풀이 죽어,
- 시장도 없어졌네. 하긴 요즘 시장 별로 없지. 아, 엄마랑 정말 많이 갔었는데. 레고 가게도 있었어. 나 레고 좋아했는데.
라고 푸념하고 있는데, 그 순간 그가 송화시장을 발견했다. 그녀의 기억이 잘못되어 있었던 것이다. 2차선 도로에서 나려오면 송화시장이 있는게 아니라 주공아파트 정문 맞은편 쪽에 시장이 있었다.
- 아,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었나봐. 아닌데? 내 기억으로 저쪽에 있어야 하는데? 뭐지? 바꼈나? 시장이 통째로 움직였을 것 같진 않아. 그치. 아, 저 송화 플라자가 바로 옆에 있네. 송화쇼핑센터가 저렇게 높아졌네.
그녀는 한울 유치원을 발견했을 때보다 송화시장을 보고 더 반가웠다. 그녀는 그녀의 추억이 사라지지 않고,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 기뻤다. 송화 시장 안을 걸었다. 시장 골목이 아주 좁다. 그리고 금방 시장 길이 끝났다.
- 어릴 땐 되게 넓었는데, 그리고 시장 길도 길고. 아, 시장이 있다는게 너무 기분 좋다. 없어진줄 알았는데. 옛날에 엄마 따라 진짜 많이 왔었는데.
12시쯤 되었을까? 그가 송화 시장 초입에 있는 떡볶기 집을 가리키며 먹자고 했다. 그녀는 추억의 장소에서 뭔가 먹는 것이 추억을 맛보는 것 처럼 느껴졌다. 10년 전 시장에 오면 엄마는 늘 송화쇼핑센터 지하에서 햄버거를 사주셨다. 그녀는 그 햄버거가 맛이 없었다. 그녀는 특히 햄버거 속에 들어간 노란 치즈가 싫었다. 아직도 햄버거를 판다면 먹어볼텐데, 쇼핑센터 지하는 대기업 마트가 들어섰고, 햄버거 가게는 안보였다. 그녀는 햄버거 대신 떡볶기를 먹으며 추억의 맛을 느끼기로 했다. 요즘은 거리마다 대기업 체인점 먹거리들이 많이 있다. 그녀의 기억 속에 있는 추억의 먹거리 집들은 망했거나, 돈벌이가 되는 브랜드 체인점으로 둔갑한 것 같다. 그곳에 가야만 볼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점차 사라지고 어디를 가도 동일한 상점들이 있다는 사실이 삭막하게 느껴졌다.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시장이 남아 있는 것은 그녀에게 더 큰 안도감과 반가움을 주었다.
이제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장소는 다 둘러봤다. 아빠가 입원하셨던 병원이 있는 길, 은성교회, 초등학교, 초등학교에서 집으로 가던 길, 치킨을 사러 내려갔던 2차선 도로, 송화시장, 그리고 다시 내발산 초등학교로 갔다. 화곡동을 떠날 시간이 됐다. 그녀는 왠지 오늘을 마지막으로 화곡동에 다시 안 올 것 같다. 모르는 일이지만 그녀의 생각은 그랬다. 오늘도 역시 그녀의 기억 속으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비록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변한 곳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런 변화 속에서도 그녀의 추억 속 모습을 지키고 있는 이름과 장소가 있었다. 그녀는 그것이 기뻤다. 세월이 더 지나면 그녀의 어린시절은 그녀의 기억속에만 자리 잡고 있게 될 것 같다. 그녀의 어린시절을 모조리 도둑맞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20년 전 많이 가파르게 느껴졌던 오르막길이 이제는 거뜬히 올라갈 수 있는 언덕으로 보이고, 그녀가 뛰어 다녀도 공간이 많이 남을 정도로 넓었던 시장길도 비좁아 보였다.
생각해 보니 6월 6일은 온통 기억을 따라 이동하는 것이 하루를 차지했다. 함께 갔던 그가 그녀의 행동과 생각에 많은 영향을 줬고, 사진을 찍어 그날의 일을 기록했다. 화곡동을 떠나면서 그날이 그녀에게 의미 있으려면 어떤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에 잠겼다. ‘기록이 기억을 지배한다. 세상은 변한다. 기억에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 내가 기억하는게 다 맞다고 생각했었는데, 아닐 수도 있구나.’ 등을 생각했다.
그리고 화곡동에서 방배동으로 갔다. 그녀가 10살 때 이사를 간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녀는 왠지 방배동은 가고 싶지 않았다. 화곡동만 기억하고 싶은 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운전대를 잡은 베아트리체는 방배동으로 차를 몰고 있는데, 그녀는 옆에서 궁시렁 궁시렁 안가고 싶다는 것을 내심 표현한다. 그녀의 마음을 잘 알아주지만 일정을 잘 잡지 못하는 그는 그럼 마음 끌리는 대로 움직이자고 한다. 차가 있으니 어디든 못가겠냐면서 말이다. 방배동으로 가는 길에 국립현충원이 있었다. 그녀와 그는 일정에 없었던 현충원을 방문했다. 그날이 현충일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행동을 한 것 같다. 하루는 그 날이 어떤 기념을 하는 날인지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것 같다. 아마 다른 날이었다면 프로메테우스르 보러 영화관에 갔을 것이다. 그녀의 하루는 그녀의 마음과 그 날이 어떤 날인지에 따라 결정되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살던 곳에 가서 그녀의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하고 싶었다. 그날은 추억에 추억을 더한 날이다. 추억으로 사는 인간의 삶의 한 날을 더 잘 기억할 수 있게 모험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