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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2일 10시 59분 등록

햄릿/리어왕/맥베드, 윌리엄 셰익스피어 신상웅 옮김, 동서문화사

 

I. 저자에 대하여 / 윌리엄 셰익스피어

 

세익스피어.jpg

 

출생: 1564 426일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

사망: 1616 423일 스티랫퍼드 어폰 에이번

직업: 국작가, 시인, 배우

국적: 영국

문학: 경향 영국르네상수 연극

배우자: 앤 해서웨이 (1582-1616)

자녀: 수잔나홀, 햄네트 세익스피어, 쥬디스 퀸니

 

[셰익스피어의 연표]

연도

내용

1582

18세에 안 하사웨이와 결혼

1590

헨리 6》제2·3

1592

《헨리 6세》제1부 상연, 리처드 3

1594

희극《사랑의 헛수고》《베로나의 신사
로미오와 줄리엣

1595

리처드 2》《한여름밤의

1596

베니스의 상인》《존왕》

1598

헨리5》희극《헛소동

1599

십이야(十二夜)》《줄리어 시저

1600

《햄릿》《윈저의 유쾌한 아낙네》

1604~05

오셀로》《리어왕》《맥베스

1607

어머니 메리 사망

1610

런던에서 고향 스트랫포드로 돌아옴,겨울이야기

1611

《폭풍우》

1616

4월 사망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 4 26[1]~1616 4 23)는 영국의 극작가, 시인이다. 그의 작품은 영어로 된 작품 중 최고라는 찬사를 받으며, 셰익스피어 자신도 최고의 극작가로 손꼽힌다. 그는 자주 영국의 "국민 시인" "에이번의 시인"으로 불렸다.

 

1)생애

 

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 극작가로 불리고 있는 셰익스피어는 잉글랜드 중부의 영국의 전형적인 소읍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에서 출생하였다. 셰익스피어는 아름다운 숲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인구 2000명 정도의 작은 마을이었던 스트랫퍼드에서 존 부부의 첫아들로, 8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고, 이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아버지 존 셰익스피어는 비교적 부유한 상인으로 피혁가공업과 중농(中農)을 겸하고 있었으며, 읍장까지 지낸 유지로 당시의 사회적 신분으로서는 중산계급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셰익스피어는 풍족한 소년시절을 보낸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1577년경부터 가운이 기울어져 학업을 중단했고 집안 일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학업을 중단하고 런던으로 나온 시기는 확실치가 않고 다만 1580년대 후반일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주로 성서과 고전을 통해 읽기와 쓰기를 배웠고, 라틴어 격언도 암송하곤 했다. 셰익스피어는 11세에 입학한 문법학교에서 문법, 논리학, 수사학, 문학 등을 배웠는데, 특히 성서와 더불어 오비디우스의 《변신》은 셰익스피어에게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 셰익스피어는 그리스어를 배우기도 하였지만 그리 뛰어나지 않는 편이었다. 그리하여 셰익스피어와 동시대 극작가인 벤 존슨은라틴어에도 그만이고 그리스어는 더욱 말할 것이 없다."라고 하면서 셰익스피어를 비꼬아내기도 하였다. 이 당시에 대학에서 교육받은 학식 있는 작가들을대학재사라고 불렀는데, 셰익스피어는 이들과는 달리 대학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타고난 언어 구사 능력과 무대 예술에 대한 천부적인 감각, 다양한 경험, 인간에 대한 심오한 이해력은 그를 위대한 작가로 만드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는 다른이들과 다르게 뛰어난 교육을 받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연 그 자체로부터 깊은 생각과 뛰어난 지식을 끌어모은 자로서 그 세대의 최고의 희곡가라고 불리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18세의 나이에 26세의 앤 해서웨이와 결혼했다. 우스터의 성공회관구(자치적이고 독립적인 지역 성공회 교회를 일컫는 말)의 교회 법정에서는 1582 11 27일에 혼인 허가를 내주었다. 해서웨이의 두 이웃은 결혼을 막을 아무런 장애 요인이 없음을 보증하는 보증서를 다음 날 보냈다. 셰익스피어의 생애에서 세례일과 결혼일을 제외하고 확실한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셰익스피어와 앤 사이에서 1583 5 23일에 수잔나(Susanna)라는 딸이 탄생한다. 앤은 엘리자베스 시대의 정황으로 보아 그리 늙은 신부가 아니었지만 셰익스피어가 연상의 아내를 그리 사랑한 것 같지는 않다. 연상의 아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든 개인적인 성공의 야심에서였든, 아니면 고향에 머무를 수 없을 만한 사고를 저질렀든, 셰익스피어는 1585년에 햄닛(Hamnet)과 주디스(Judith)라는 쌍둥이가 태어난 후 곧장 고향을 떠나 떠돌아다닌다. 1585년 이후 7∼8년간 고향을 떠나 떠돌아다녔는데, 이 기간 동안 셰익스피어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다. 다만 1590년경에야 런던에 도착해 이때부터 배우, 극작가, 극장 주주로 활동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2)런던과 극작과 활동

 

런던에 이주한 셰익스피어는 눈부시게 변하고 있던 수도 런던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엘리자베스 여왕(1558∼1603)이 통치하던 이 시기의 런던은 많은 농촌 인구가 유입되어 대단히 북적거리고 활기 넘치는 도시였다. 런던은 인구의 급격한 팽창으로 도시는 지저분해지고 많은 문제점이 야기된 도시였지만, 북적거리는 사람들과 다양한 경제 활동, 다양한 문화 활동과 행사, 특히 빈번한 연극 공연은 많은 사람들에게 여흥을 제공하면서 셰익스피어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셰익스피어가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극작가 로버트 그린의 기록을 보면 셰익스피어가 적어도 1592년에는 런던에서 알려진 극작가 중 하나였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로버트 그린은 셰익스피어가 대학도 마치지 못한 학력으로 인해 품격이 떨어지는 연극을 양산하고 있다고 비난하였다. 1594년부터 셰익스피어는 당시 런던 연극계를 양분하는 극단의 하나였던 궁내부장관 극단의 전속 극작가가 되었다.

 

1599년 궁내부장관 극단은 템스 강 남쪽에 글로브 극장을 신축하고 1603년 엘리자베스 1세가 사망한 후 제임스 1세가 즉위하자 극단은 국왕 극단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셰익스피어는 이 극단에서 조연급 배우로서도 활동했으나 극작에 더 주력하였다. 그리고 이 기간을 전후해서 시인으로서의 재능도 과시하여 《비너스와 아도니스》(1593)와 《루크리스》(1594) 등 두 편의 장시(長詩)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극작가로서의 셰익스피어의 활동기는 1590 ∼ 1613년까지의 대략 24년간으로 볼 수 있는데, 이 기간에 희·비극을 포함한 모두 38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1590년대 초반에 셰익스피어가 집필한 《타이터스 안드로니커스》, 《헨리 6세》, 《리처드 3세》 등이 런던의 무대에서 상연되었는데, 특히 《헨리 6세》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악의에 찬 비난도 없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대학 교육도 받지 못한 작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의 인기는 더해 갔다. 1623년 벤 존슨은 그리스와 로마의 극작가와 견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셰익스피어뿐이라고 호평하며, 그는어느 한 시대의 사람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1668년 존 드라이든(John Dryden)은 셰익스피어를가장 크고 포괄적인 영혼이라고 극찬한다. 셰익스피어는 1590년에서 1613년에 이르기까지 10편의 비극(로마극 포함), 17편의 희극, 10편의 역사극, 몇 편의 장시와 시집 《소네트》를 집필하였고, 대부분의 작품이 살아생전 인기를 누렸다.

 

3)말년과죽음

 

셰익스피어에 대한 첫 번째 전기를 출간한 작가 로우(Rowe)는 셰익스피어가 죽기 몇 년전에 고향인 스트랫퍼드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나 당시에 모든 작품 활동을 그만두고 은퇴하는 일은 보기 드문 경우이었고, 말년에도 셰익스피어는 런던을 계속 방문하였다. 1612년 그는 마운트조이의 딸 메리의 혼인 신고와 관련하여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할 것을 요구받았다. 1613 3월 그는 과거에 런던 블랙프라이어스 소 수도원 이었던 문루(gatehouse)를 사들였고, 1614 11월에는 내과 의사이자 그의 사위인 존 홀과 함께 몇 주간 런던에 머물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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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에 있는 셰익스피어의 장례 기념물

 

1606년에서 1607년을 지나면서 셰익스피어는 몇편 안되는 희곡을 썼으나 1613년 이후에는 그의 창작으로 볼 수 있는 작품이 하나도 없다.] 그가 마지막으로 쓴 세 편의 희곡은 아마도 극작가인 존 플레쳐와 함께 창작한 것으로 보이며 ]존 플래쳐는 셰익스피어의 뒤를 이어 왕의 부하들을 위한 실내극을 창작한 인물이었다.

셰익스피어는 1616 4 16일에 세상을 떠났다. 유족으로는 그의 아내와 두 딸이 있었다. 수잔나는 내과의사인 존 홀과 1607년에 결혼하였으며, 쥬디스는 셰익스피어가 죽기 두 달 전에 포도주 제조 업자인 토마스 퀸네이와 결혼하였다.

자신의 뜻에 따라 셰익스피어는 갖고 있던 많은 부동산을 큰딸인 수잔나에게 물려주었다 유언장에 따르면 그녀는 그 재산을 온전히 보전하여 "그녀의 몸에서 낳은 첫 아들"에게 상속해야 했다. 둘째 사위인 퀸네이는 세 자녀가 있었으나, 모두 결혼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수잔나의 남편이자 첫째 사위인 홀에게는 '엘리자베스'라는 이름을 지닌 자녀가 한 명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두 차례 결혼하였지만 1670년에 자녀를 남기지 못한 채로 세상을 떠났다. 이로써 셰익스피어의 직계는 대가 끊기게 되었다. 셰익스피어는 유언에서 당시 법에 따라 아마도 자신의 재산 중 3분의 1을 물려받을 상속권이 있었을 아내 앤에 대해서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한 마디를 남겼는데, 그것은 자신이 그녀에게 "나의 두 번째 좋은 침대"를 물려준다는 것이었다. 셰익스피어가 언급한 침대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추측이 난무하였다.  일부 학자는 언급된 그 침대가 실제 물건이 아니라 앤에게 모욕을 주려고 한 말이라고 보는 반면에, 다른 학자들은 진짜 그러한 침대가 있었고 따라서 그것은 의미있는 유산이었으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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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의 무덤

 

셰익스피어는 죽은 뒤에 고향의 성 트리니티 교회(Holy Trinity Church)에 묻히게 된다.

그의 흉상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판단은 네스터와 같고, 천재는 소크라테스와 같고, 예술은 버질과 같은 사람. 대지는 그를 덮고, 사람들은 통곡하고, 올림푸스는 그를 소유한다.

 

4)창작 시기에 따른 작품 구분

 

셰익스피어의 37편의 희곡 작품들은 상연 연대에 따라 대개 4기로 분류된다.

 

1 : 습작기

1기는 습작기(15901594)로 이 기간 동안 주로 사극과 희극을 집필했다.

이 시기는 옛 작가의 모방과 자신의 것을 찾기 위한 모색의 과정이었다. 우선 <헨리 6> 3부작, <리처드 3>의 사극과 병행하여 세네카풍 복수비극 <타이투스 안드로니쿠스>에서 출발하여 이 시기의 기조는 플라우투스풍의 <실수연발이>, 이탈리아 코믹풍의 <사랑의 헛수고>등 젊은 정열을 발산시키는 경쾌하고 밝은 희극의 세계에 있다. 전체적으로 고전극의 영향이나 말로, 릴리 등 선배의 영향을 받아 엇비슷한 것이 많으며 습작기의 영역에서 완전히 탈피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마침 페스트의 대유행으로 인한 극장 폐쇄기(1592-94)와 겹쳐 <비너스와 아도니스>(1593), <루크리스의 능욕>(1594) 등 일련의 서사시를 발표, 극작가로서 대성하기 전에 시인으로서의 명성을 확립시킨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제1기말에서 제2기에 걸쳐서는 그린, 말로, 키드, 피일 등 선배의 죽음이 계속되고 릴리도 사실상 극작의 붓을 놓기 시작한 시기였으므로 라이벌이 없어진 셰익스피어는 행운의 극작가로서 자기 길을 걷게 된 셈이며, 초기 낭만비극의 걸작 <로미오와 줄리엣>은 바로 이 무렵에 탄생, 서정과 낭만성이 신인만이 갖는 청신함과 함께 곁들여져 있는 작품으로 천재 극작가로서의 편린이 엿보이기 시작했다.

 

2 : 성장기

2기는 성장기(15951600)로 전기(前期)의 희극세계가 더욱 확대되었다. 1595년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낭만 희극을 상연하여 호평을 받으면서 습작기를 벗어나게 된다. 이 기간 동안 《한여름 밤의 꿈》, 뜻대로 하세요, 12야》 등과 《베니스의 상인》 등 로 목가적 분위기나 희비극적 요소가 가민된 낭만희극의 걸작이 속출하는 한편, 《헨리4세》헨리 1부와 2부 같은 역사극과 《즐리어스 시저줄리어스 지서》라는 로마극이 상연되었으며, 본격적인 비극으로는 첫 작품인 《로미오와줄리엣》이 상연되었다. 이를 통해 비극과 희극과 사극이라는 모든 장르에 탁월한 ㄹ극작가로서 명성을 쌓게 된다. <햄릿>의 싹이 엿보이는 <리처드 2>나 폴스타프의 개성창조, 극작술의 진보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재능이 훌륭하게 개화하여 인기 독점의 시대에 이른다. 인간적 관찰의 눈이 뚜렷해지고 기법이 숙련되어 당시의 극단에서 뛰어난 존재가 되었다. 이 시기의 그의 희극은 낭만적 희극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화려한 낭만이 온화한 해학에 감싸여 아름다운 언어로써 독특한 세계를 형성한다.

 

3 : 원숙기

3기는 원숙기(16011607). 희극의 계통으로서는 <윈저의 쾌활한 아낙네들>(폴스타프에 마음이 흡족해진 여왕의 요청으로 <사랑하는 폴스타프>를 테마로 한 것)을 제외하고는 전기(前期)까지의 발랄한 명랑함이 자취를 감추고 '다크 코미디(어두운 희극)'라고 불리는 문제 희극 3, <트로일러스와 크레시다>('비극'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끝이 좋으면 다 좋지> <이척보척(以尺報尺)>밖에 없으며 '로마극'이라고도 하는 <줄리어스 시저> <안토니오와 클레오파트라> <코리오러너스> 등 위대한 비극들이 집중적으로 창작되던 시대이다. 여기서 보여주는 심각함과 비극으로서의 장대함은 일찍이 보지 못한 것이다. 이 시기에 씌어진 희극도 끝은 행복한 결과로 맺어졌으나, 매우 음울하여 앞 시기의 작품들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2기에서 제3기에의 이 커다란 변화는 양친의 죽음을 포함한 신변의 불행뿐만 아니라 여왕의 만년과 죽음을 둘러싼 사회정세의 불온, 정치·종교상의 혼란으로 인한 음모사건(예컨대 1601년에 있었던 에세크 백작의 반란과 처형) 등에도 원인이 있겠으나, 이러한 비극은 '개인'의 성격비극인 동시에 '국가'의 운명과도 관련이 있는 우주적 규모를 지닌 장대함으로까지 이르고 있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채프먼, 마스턴 등 신진작가들의 대두와 벤 존슨의 눈부신 활약이 있기는 했으나, 그래도 그들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셰익스피어의 창작력은 뛰어난 것이었다.

이 기간 중 4대 비극작품인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세스》가 상연되었다. 셰익스피어를 세계 문학사에서 불후의 명성을 지닌 작가로 만들어 준 것은 바로 제3기에 집필된 극작품들일 것이다.[4] 이들 작품에서 셰익스피어는 깊은 인생 통찰을 보여주고 있음과 동시에 걸출한 등장인물들을 창조하고 있다. 《햄릿》에서는 우유부단한 주인공 햄릿을 통해 복수에 관련된 윤리성, 삶과 죽음의 문제, 정의와 불의의 문제를 조명하고 있다. 《ㅇ오셀로》에서는 무어인 장군 오셀로와 베니스의 귀족 여성 데스데모나, 그들 사이에서 이간질을 일삼는 이아고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과 신뢰와 질투의 문제를, ≪리어왕≫에서는 리어왕과 그의 세 딸인 코델리어, 거네릴, 리건의 이야기를 통해 효와 불효, 말과 진실, 외양과 실재의 문제를, ≪맥베스≫에서는 야심에 찬 맥베스와 그의 아내가 자행하는 찬탈의 이야기를 통해 선과 악의 문제를 심도 있게 조명하고 있다. 로마 시대를 배경으로 한 비극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가 상연된 것도 이 시기이다.

 

4

4(16081613)에 들어 셰익스피어는 비희극이란 새로운 장르를 시험하는데, 당시 희비극의 장르에서 인기가 절정이었던 보먼트플레처에게 자극을 받아 쓴 것이 <심벨린> <겨울밤 이야기> <태풍> 등 일련의 로맨스극이으로 이 시기 동안 대중들의 감상적인 기호에 부합하는 네 개의 비희극이 상연되었다. 집안의 이산(離散), 오랜 세월의 방랑을 거친 재회, 화해, 속죄를 테마로 하는 희비극의 세계는 파란으로 가득찬 20년 창작생활의 종막답게 폭풍 뒤의 고요와도 흡사한 안정된 기분으로 통일되고, 인생의 희비·명암의 전부를 보아온 작자의 달관된 심경마저 엿볼 수 있다. 원래 비극이어야 할 이야기가 그의 체념과 화해의 심정으로 말미암아 행복한 결과로 맺어졌으므로, 보통 로맨스라 불린다.

이 시기에 상연된 《폭풍우》는 셰익스피어의 달관된 인생관을 잘 보여주는 수작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프로스페로는 이제 연희는 끝났고, 지구의 삼라만상은 마침내 용해되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인간은 “꿈과 같은 물건이어서, 이 보잘것없는 인생은 잠으로 끝나는 것”(4 1)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무대에 대한 셰익스피어 자신의 고별사로 받아들여진다.

셰익스피어의 세계는 엘리자베스 왕조 연극의 다면성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의 위대함은, 고전작가를 비롯하여 선배와 후배들의 여러 가지 요소를 흡수하면서, 뛰어난 재능과 정교한 극작술로써 모든 장르를 완성하고 동시에 자신의 독자적 세계를 창조했다는 점에 있다. 특히 르네상스적 인간상의 한 전형인 폴스타프의 활약으로 성공한 <헨리 4>, <헨리 5>에서의 사극과 희극의 융합, <리처드 2> <로마극>에서의 사극과 비극의 융합은 각각 그린과 말로에게서 그 싹을 볼 수 있다고는 하나 다른 누구에게서도 달성될 수 없었던 영역이었다. 엘리자베스 왕조 연극의 위대한 완성자로서 영국 연극 뿐 아니라 세계 연극의 발전에 공헌한 공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이라 하겠다.

 

1593년과 1594년에 페스트의 유행으로 극장들이 문을 닫게 되자] 셰익스피어는 사랑을 주제로 삼은 두 권의 서사시를 출간했다. 비너스와 아도니스, 루크레티아의 능욕》이 그것이다. 《비너스와 아도니스》에서 순수한 아도니스비너스의 성적인 접근을 거절한다. 반면에 《루크레티아의 능욕》에서는 덕있는 아내인 루크레티아가 호색한인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에 의해 강간을 당한다. 이 시들은 통제되지 않는 정욕 때문에 와 도덕적 혼란이 발생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두 시 모두 인기를 얻었고 셰익스피어 생전에 재 출간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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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소네트》 1609년판 표지.

1609년에 출간된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는 셰익스피어가 출판한 책 중에서 연극적이지 않은 작품을 담은 마지막 책이었다.

 

 

5)셰익스피어와 그의 시대

 

셰익스피어가 활동을 시작했던 16세기 후반의 영국은 한마디로 전환기였다. 어느 시대인들 전환기가 아닌 시대는 없겠지만, 이 기간은 겉으로 드러나는 역사적 사건들에서뿐만 아니라 그 밑에 흐르는 이념의 작동에서도 새로운 패러다임이 형성되던 분명한 전환기였다. 봉건 체제에서 근대국가 체제로의 전이, 엘리자버스 여왕의 통치와 유럽 열강으로의 편입, 상업주의의 부상, 다양한 문화 산업의 번성 등이 눈에 띄는 것이라면, 그 저변에 젠더에 대한 인식의 변화, 인종인종 문제의 부상, 사회의 유동화에 따른 계층의 와해조짐 등 이념적 변동 양상이 흐르고 있었다.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작가라는 것은 이러한 사회변동 양상을 선구자적으로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엘리자버스 여왕 이 지배하던 영국의 16세기 후반은 문예 부흥기일 뿐 아니라 국가적 부흥기였다 동시에 사회의 제반 양상들이 요동치고 변화하는 전환기이자 변혁기이기도 했다. 성숙한 문학적 또는 문화적 분위기, 역동적인 사회가 던져주는 풍부한 소재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곳곳에 녹아들었으며, 이를 통해 그의 작품들은 문학작품 이상의 사회와 역사에 대한 참고서 역할까지 하게 된다.

그가 그려낸 비극적 인물들은 인간 해방이라는 르네상스 인문주의 사상의 가장 심오한 극적 구현으로 간주된다. 1580년대 말로의 주인공들이 중세적 가치에 거침없이 도전하는 상승적 에너지의 영웅적 면모를 구현하고 있고, 1610년대 웹스터의 주인공들이 인문주의적 가치의 이면에 놓인 어두운 본능의 세계에 함몰되는 추락의 인간상을 대변한다면, 15901600년대에 등장한 셰익스피어의 주인공들은 중세적 속박과 르네상스적 해방이 가장 치열하게 맞부딪치는 과도기의 산물로서, 그러한 상승과 추락의 변증법을 극명하게 체현하고 있다. 물론 셰익스피어의 인물들은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는 존재들이다. 무엇보다 셰익스피어가 초시대성을 획득하는 극소수 작가 반열에 드는 것은 특정한 시대정신의 명징한 관념적 표상이 아니라 무한한 모순의 복합체로서의 인간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조화롭게 통합된 존재가 아니라 분열적으로 모순된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치열한 인식이 르네상스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서구 문화와 문예를 혁신하는 원동력이었다면, 그러한 인식의 비등점을 이룬 낭만주의, 모더니즘, 실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활발히 탐구되고 공연되었다는 사실은 그것이 박제된 고전이 아니라 살아 있는 고전임을 여실히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가 극장가에서 두각을 나타낼 무렵에는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 출신의 극작가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 중 극작가 로버트 그린은 셰익스피어에 대한 질투심에서 그의 학식이 낮음을 가지고, “라틴어는 조금밖에 모르고 그리스어는 더욱 모르는 촌놈이 극장가를 뒤흔든다”고 은근히 비꼬았다고 한다. 후대 사람들이 그들을 ‘대학 출신 재간꾼(University Wits)’ 정도로 부르고 있지만, 셰익스피어를 ‘대가(Master)’라고 부르고 있다는 것은 위대한 예술적 정신에 대한 마땅한 예우라 할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작가로 추앙받게 된 데에는, 그가 운 좋게도 풍부한 문학적 자양분을 제공하는 시대에 태어났다는 점도 한몫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지배하던 영국의 16세기 후반은 문예 부흥기일 뿐 아니라 국가적 부흥기였다. 동시에 사회의 제반 양상들이 요동치고 변화하는 전환기이자 변혁기이기도 했다. 성숙한 문학적 또는 문화적 분위기, 역동적인 사회가 던져주는 풍부한 소재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곳곳에 녹아들었으며, 이를 통해 그의 작품들은 문학 작품 이상의 사회와 역사에 대한 참고서 역할까지 하게 된다.

 

 

II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글귀 / 햄릿/리어왕/맥베스

 

 

햄릿

 

P18 왕비 : 이제 그만해라. 너도 알지 않느냐, 생명이 있는 자는 반드시 죽어서 세상을 하직하고 영원으로 떠나가게 마련이니라.

P20 햄릿 아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진 이 육체 차라리 녹고 녹아 이슬이 되어 버렸다면! 자살을 금하는 신의 계율만 없다면 자살해 벌릴 텐데 아, 세상 일이 모두 따분하고 부질없다. 진부하기만 하고 아무 유익이 없구나.

[1막 제3]

P 24 레어티스 : 애정의 뒤쪽으로 물러서서 욕망의 위험한 화살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어야 한다. 정숙한 처녀는 달님 앞에 고운 살을 내놓는 것조차 망측스럽게 여긴다더라. 열녀도 세상의 험구는 피하지 못하는 법이다. 봄철의 새싹은 트기도 전에 벌레한테 먹히는 수가 많고, 많은 아침 이슬은 땅 위에 내리자마자 독기가 서려 든다고 하잖느냐, 그러니 조심해라. 몸을 보호하기 위해선 조심하는 게 으뜸이야. 청춘이란 상대가 없어도 저절로 욕망이 일어나는 법이니까.

P25 폴로니어스 : 속마음을 함부로 입 밖에 내지 말 것이며, 옳지 못한 생각을 행동에 옮기지 말아라.

한번 사귄 좋은 친구는 쇠고리로 마음속에 단단히 걸어 두어라.

누구의 말에나 귀를 기울이되 네 의 견은 말하지 말하라. , 남의 의견은 들어주되 판단은 삼가라는 말이다. 옷차림에는 지갑이 허락하는 데까지 돈을 써도 좋지만, 요란스럽게 치장하지 말아라.

돈은 빌리지 말고, 빌려 주지도 말아라. 빌려 주면 돈 사람을 잃고, 빌리면 절약하는 마음이 무디어진다. 무엇보다 네 자신에게 성실하여라, 그러면 자연히 밤이 낮을 따르듯 남에게 성실한 사람이 되는 법이다.

P26 이제부터는 처녀로서 몸가짐을 함부로 하지 말고, 만나 잔다고 쉽게 응해서는 안 된다. 좀 도도하게 굴란 말이야. 햄릿님으로 말하면 나이도 젊고 너보다 훨씬 자유로우신 분, 그리 알고 대해야 한다.

P32 유령 :  정숙한 여자는 욕정이 설령 천사로 가장하고 와서 유혹해도 움직이지 않지만, 음탕한 여자는 빛나는 천사와 짝을 지어도 천상의 잠자리에 싫증을 내고 쓰레기통에서 썩은 고기를 뒤진다.

P33 유령 : 아 무섭다, 무서워! 너무나 무섭다.! 만일 너에게 효심이 있거든 그대로 참지 말아라. 덴마크 왕의 침상을 패륜과 음욕의 자리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P33 햄릿 :  모든 격언, 젊었을 때 관찰에서 얻은 모든 형상과 모든 인상을 지워 버리리다. 당신의 명령만을 기억 속에 간직해 두고 하찮은 것들과 섞이지 않겠소.

P55 배우1 : 폭풍이 오기 전에 천지가 고요해지고,

구름은 정지하고 바람은 말이 없고

대지는 죽은 듯이 잠잠하다.

P60 햄릿 :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참아내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고통의 물결을 두 손으로 막아 이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한가? 죽는 건 잠드는 것, 그뿐이다.

[3막 제2]

P65 햄릿 : 안목을 지닌 한 사람의  비난은 온 관객의 칭찬보다 더 중요한 법이야.

P70 극중 왕비 : 사랑이 커지면 하찮은 걱정은 두려움으로 바뀌고, 두려움이 커지는 곳에 사랑 또한 자라는 법입니다.

P71 극중 왕 : 슬픔이나 기쁨이나 격정이 지나면 그 실행의 힘도 함께 사라지고 마오.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

P71 극중 왕 :  사랑이 운명을 이끄느냐, 운명이 사랑을 이끄느냐, 이것은 아직도 풀지 못한 문제요. 세도가가 몰락하면 그 아래 무리들도 흩어지고, 미천한 자가 입신하면 어제의 원수가 친구로 변하는 것이오.

[4막 제1]

P82 햄릿 : 어머니 정도의 나이가 되면 불 같은 욕정도 순해지고 분별이심에 복종하는 것이 아닙니까?

P86 햄릿 : 습관은 악습에 대한 인간의 모든 감각을 먹어 삼키지만 천사의 역할도 합니다. 항상 좋은 행동을 하고 있으면, 처음에는 어색한 옷 같지만 어느새 몸에 꼭 어울리게 만들어 줍니다.

 [4막 제1]

P88 : 세상의 비방은 포탄이 과녁을 정확히 맞히듯 지구 끝까지 그 독설을 싣고 가는 법, 그러나 이렇게 대비책을 마련해두면 내 명성은 맞히지 못하고 허탕만 치게 될 거요.

P107 : 만약에 실패하여 졸렬하게  계략이 탄로날 바에야 차라리 일을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낫다. 그러니 이 일이 동중에 좌절되는 경우에 대비하여 미리 두 번째 대비책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

P111 광대 :  그러나 백발이 슬며시 찾아와서

손아귀에 나를 휘어잡더니

차가운 땅속에 밀어 넣었네

사랑을 한 옛날이 꿈만 가다.

P120 햄릿 : 내 아버지인 왕을 죽이고, 내 어머니를 더럽히고, 이 나라 왕위를 가로막은데다가 까닭 없이 내 목숨마저 없애려고 그런 간책을 썼으니. 이런 놈은 이 손으로 처치해 버리는 것이 양심에 떳떳한 것 아닌가? 이런 인류의 독충이 세상에 해독을 끼치게 방치해 두는 것이 오히려 죄악이 아니겠는가?

P125 햄릿 : 지금 오면 나중에 오지 않고, 나중에 오지 않으면 지금 오네. 올 것은 지금 안 와도 나중에 오고야 마는 거야, 요는 각오야. 언제 버려야 좋은지. 그 시기는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 목숨이 아닌가? 그저 될 대로 되는 거지.

P133 포틴브라스 :  때를 만났던들 세상에 보기 드문 영주(英主)가 되셨을 분이다. , 왕자님의 서거를 애도해 군악과 조포(弔砲)를 울려 이분의 덕을 찬양하자, 저 시체를 들어 내라. 이 같은 광경은 싸움터에는 어울릴지라도, 이 자리에서는 너무나 보기 흉하다. 누가 가서 병사들에게 조포를 쏘게 하라.

 

 

리어 왕

 

P248 코렐리아 : 언니들은 오직 아버님만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왜 시집을 갔을까요 아마 저는 결혼한 다면, 저의 맹세를 받아줄 남편을 위해 저의 애정과 심로와 의무의 절반을 바치게 될 것입니다. 언니들처럼 오직 아버님만을 사랑하려면 저는 결혼 같은 건 하지 않겠어요.

P249 리어 왕 너는 정직 이라는 자만심을 지참금 대신으로 가지고 시집을 가려무나. 너희 둘에게만 나의 권리와 통치권 왕위에 따르는 모든 아름다운 영예를 양도하겠다. 나는 날마다 백 명의 기사를 거느리고 너희들의 부양 아래, 한 달씩 교대로 두 집에 머무르면서 생활하기로 하겠다. 나는 왕이라 명칭과 명예만을 보유하고 국가의 통치와 수입, 기타의 집행권을 모두 너희들 두 사위에게 맡기겠다. 그 증거로 이 자리에서 이 왕관을 둘에게 공동용으로 주겠다.

P249~250 켄트 : 국왕이 아부에 굴복할 때 충신이 간언하기를 두려워 한다고 생각 하십니까? 임금이 어리석은 행동을 하면, 명예를 존중하는 신하라면 진언을 아니할 수 없습니다. 폐하의 권한을 그대로 보존 하십시오. 그리고 심사 숙고하셔서 이번의 경솔하고 망측하신 처분을 거두십시오. 저 판단이 틀렸다면 목숨을 내놓겠습니다만,

P250 리어 왕 : 불손한 태도로 내 명령과 왕권 사이에 방해를 하고, 인정상으로나 지위상으로나 도저히 참지 못할 일을 나에게 하게 하려고 한 것이니, 국왕의 실권이 어떠한 것이지 맛을 좀 보아라.

P263 켄트 : 정직한 사람을 사랑하며, 말수가 적고 현명한 사람과 교체하고, 신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부득이한 경우엔 싸움도 하는 사람입니다.

P275 광대 : 인간의 코가 왜 얼굴 한가운데 있는지, 아저씨는 아세요?

리어 왕 :  모르다.

광대 :  그야, 코 양쪽에 눈을 붙여 놓기 위해서죠. 그렇게 해서도 냄새를 맡아 내지 못할 때는 눈으로 알아보게 하기 위해서죠

P289 광대 : 아비가 누더기를 걸치면

자식은 모르는 척하지만,

아비가 돈주머니를 차고 있으면

자식들은 모두 다 효자.

운명의 여신은 이름난 창녀라

구차한 사람에게 문을 열지 않는다.

P290 광대 : 돈이 탐이 나서 굽실거리며

겉으로만 부하인 척 따르는 놈은,

비라도 내리면 보따리 싸니,

주인만 혼자 남아 흠뻑 젓는다.

그러나 나는, 광대는 이대로 남아 있겠다.

똑똑한 놈은 달아난대도,

달아나는 악당은 바보가 돼도,

광대는 절대 악당이 안 된다.

P315 리어 왕 : 그녀의 심장에 무엇이 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해라. 이렇게 냉혹한 심장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자연 속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닐까?

P324 글로스터 : 너는 하늘의 재앙을 달갑게 여기고 모든 불운을 잘 참아 견디고 있구나. 예전에는 잘 몰랐었는데, 내가 불행해 지고 보니 그만큼 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졌구나. 하늘이시여, 언제나 그렇게 공평하게 처리해 주십시오! 한껏 쓰고도 남을 만큼 가지고 있고 게다가 포식을 하고, 신의 뜻을 자기의 노예인 양 생각하고, 자기가 느끼지 않는다 하여 남의 가난을 돌보지 않는 자에게 당장에 당신의 위력을 보여주십시오!

P357 에드거 : 서로 용서하자. 나는 혈통에 있어서는 너에게 지지 않는 사람이다. 에드먼드, 만약 혈통이 너보다 우월하다면, 내게 대한 네 죄는 그만큼 더욱 무겁다. 나는 에드거다. 너와 똑 같은 아버지 자식이다. 신은 공평하시다. 그리고 우리의 쾌락을 가지고 우리를 벌하는 도구로 삼으신다. 아버지 컴컴하고 부도덕한 잠자리에서 너를 만든 대가로 두 눈을 잃으셨다.

P364 에드거 : 이 비통한 시대의 무거운 짐을 우리는 감내해야 합니다. 어떤 말이 이 자리에 어울릴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가슴에 느껴지는 생각을 말합시다. 가장 늙으신 분이 가장 많이 참으셨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이마큼 고생도 하지 않을 것이요, 또 이만큼 오래 살지도 못할 것입니다.

 

 

맥베드

 

 

P377 맥베드 부인 : 높은 지위는 탐이 나면서도 신성하게 얻으려 하고, 나쁜 짓을 하기는 싫으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이기고 싶어 하는 분이에요. 글래미스 영주님, 당신이 소원하는 그것이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 소원하거든 단행하라. 그런데 당신은 단행하고 싶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단행하기가 무서울 거예요. 어서 돌아오세요. 제 결심을 당신 귀에 불어 넣어 드리겠어요. 그리고 이 혀의 채찍을 휘둘러 혼을 내줄 거예요.

P378 맥베드 부인 : 던컨 왕이 죽으러 이 성에 들어 온다고…… , 악한 마음을 돕는 악령들아, 나에게 있는 여자의 마음을 버리게 하고, 이 머리 꼭대기에 발끝까지 잔인한 마음으로 가득 차게 해다오! 온몸의 피를 혼탁하게 하여 회한의 길을 틀어막고 연민의 정이 흉악한 계획을 동요시키지 못하게 하여, 실행과 계획 사이에 타협이 오가지 않도록 해다오. , 살인의 악마들아, 이 품 안에 들어와서 내 젖을 담즙으로 바꾸어 다오.

P381 맥베드 부인 :  당신은 마음속으론 갈망하고 있으면서도, 용감하게 행동을 나타내기를 겁내고 계시지요? 인생의 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갖고 싶으면서도, 스스로 비천한 생활을 앞으로 계속해 나가겠단 말씀이세요? 속담에 나오는 저 가련한 고양이처럼 탐은 나지만그러나 안도지하고 그만두겠단 말씀인가요?

P388 맥베드 부인 : 제 손도 당신과 같은 빛이 됐어요. 하지만 제 심장은 당신같이 창백해지지는 않았어요.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 군요. 남쪽 문에서. , 침실로 물러갑시다. 물만 조금 있으면 죄다 말끔히 씻어 질 거예요. 문제 없어요, 당신의 태연한 담력은 어디 갖다 버렸어요?

P388 맥베드 : 저지른 죄를 인식하느니보다는 차라리 자신을 멍청히 잊고 있는 게 낫지. 그 문 두드리는 소리로 던컨을 깨워라 제발 깨워 다오!

P391 맥베드 : 차라리 내가  한 시간 전에만 죽었던들 행복한 일생이었을 것을. 이제 인생의 중요한 것이라곤 하나의 남지 않고 없어져 버렸구나. 온갖 것은 다 장난감에 불과하다. 명예와 자비도 죽어버렸다. 생명의 술은 다 쏟아져 버리고, 자랑할 것이라곤 그저 술찌꺼기밖에 남아 있지 않구나. 이 술 창고 같은 세상에는

P420 : 맥다프 부인 : 나는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하지만 이제 돌이켜 생각하니 여기는 인간 세계로구나. 인간 세계에선 악한 일이 흔히 칭찬을 받고 어쩌다 있는 선한 일이 위험한 바보짓 취급을 당하기 마련이다. 이를 어쩌나? 아무 힘도 없다고 아무리 변명을 해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

 

P423 맥다프 : 탐욕이란 여름철 욕정보다 더 뿌리가 깊고 해로운 것입니다. 사실 오늘날까지 숱한 국왕들이 탐욕이라는 칼 아래 쓰러지지 않았습니까?

P435 시워드 : 때는 다가왔소, 우리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심판하여 줄 때가. 흔히 불확실한 희망적인 추측을 하지만, 확실한 결과는 공격만이 판정해 줄 것이오, , 그 목적을 행해 진군합시다.

P436 맥베드 : 짧은 촛불아! 인생이란 한낱 걷고 있는 그림자, 가련한 배우일 뿐이다. 제 시간엔 무대 위에서 활개치고 안달하지만, 얼마 안 가서 영영 잊혀져 저리지 않는가. 그것은 천치가 떠들어 대는 이야기 같다고나 할까. 아무런 의미도 없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지.

 

 

 

III. 내가 저자라면 / 햄릿/리어왕/맥베드

 

37개의 작품 전부를 과연 대학 교육도 받지 않은 장갑제조업자의 아들 셰익스피어가 혼자 집필했을까 하는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4] 어떤 학자는 철학자이며 정치가인 프랜시스 베이컨이 셰익스피어 작품의 실제 저자라고 추정하기도 하고 에식스 백작 또는 옥스퍼드 백작이 실제 저자라고 추정하기도 한다.[4] 그러나 이러한 추측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셰익스피어라는 천재는 대학을 다니지 않았지만 자연과 인간의 실제 삶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웠다.

다음의 새뮤얼 존슨의 논평은 아마 셰익스피어를 가장 적절하게 평가하는 글일 것이다.

편적인 자연을 올바르게 재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많은 사람들을 오래도록 즐겁게 할 수 없다. …셰익스피어는 어느 작가보다도 자연의 시인이다. 즉 그는 독자들에게 삶과 세태의 모습을 충실히 비추어주는 거울을 들어 보이는 시인이다. 그의 등장인물들은공통의 인간 본성을 지닌 인류의 진정한 자손들이며그가 그린 인물들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삶의 전 체계를 움직이게 하는 보편적인 감정과 원칙에 따라 말하고 행동한다. 다른 작가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개별적 인간이라면 셰익스피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일반적으로 하나의 종()이다.

셰익스피어란 사람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영국이 낳은 희대의 극작가가 바로 셰익스피어입니다...

셰익스피어의 4대비극 5대희극 ... 오셀로, 햄릿,,,,로미오와 줄리엣 등

우리도 익히 들어서 알고있는 내용입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우리에세 희곡 38, 소네트154, 장시2편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이 아는것은 이런 내용이지만

그의 출신에는 불분명한 점들이 많습니다....[출처] 윌리엄 셰익스피어...그는 누구 인가?|작성자 천둥벼락

 

먼저 태어난 날짜도 모른다...그가 유아세례를 받은 날짜만이 나와있습니다.

또한 유아기의 기록은 전혀 없으며 부친은 상인으로 상류층은 아니었지만, 부족하지 않은 생활을 한것으로 나와있습니다..여튼 18세에 앤 해서웨이와 결혼 하기 전까지 그는 아무런 족적이 없습니다...

원래 이런 역사적인 인물은 세간의 관심을 받기때문에, 그가 다닌 학교 태어난 날짜, 자란곳 등 먼가 막 알려져야 하는데 아니면 천재들은 어렸을 적부터 그 천재성을 보통 숨기지 못하고 나오기 마련인데, 그는 천재성을 돋보이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거의 없다.

[출처] 윌리엄 셰익스피어...그는 누구 인가?|작성자 천둥벼락

 

결혼은 1582년에 했고, 그 후1585년부터 7년간 그의 행적은 또 묘연합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작가가 아니라면, 먼가 작품을 계속 쓰기 마련인데..그 작품이 유명해지던 아니던 미완성이던, 하지만 그런 기록이 전혀 없고, 비슷한 이름의 연극배우가 영국 북부에서 활동했다는 기록만 있습니다. 물론 동일인물이라고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추정하는 이유가, 그당시 영국에서는 같은 말도 다르게 표기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중요한것은 그렇다고 그사람이 셰익스피어다 라고 말할 확증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던 셰익스피어는 갑자기 1592년부터 런던에서 극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셰익스 피어는 1616년에 사망하는데 돌연 홀연히 나타나 극작가로 활동하다 죽기 6년전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말년에는 영국의 상류 계급인 '신사'계급까지 받은 그가..돌연 고향으로 내려가는것도 잘 이해가 되질 않지만, 아주 단기간 파란만장한 작품들만 쏟아내고 마치 저 할일을 다 한듯 그렇게 사라진거 또한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결정적으로 셰익스피어 작품은 200만여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어휘력을 지닌 인물이여야 하는데,(그당시 킹제임스 성경보다 10000단어가 많았다고 합니다) 정작 셰익스피어는 시골마을에서 자랐고, 그런 고등교육을 받은 기록도 없거니와. 왕궁과 귀족의 실생활을 너무 잘 알고 있는 내용등 셰익스피어란 인물이 점점 허구가 아닌가, 혹은 대리인이 아닌가 하는 의문점만 쌓이게 됩니다. 또한 그의 자식들 부모, 처 등 가족들 모두 문맹이었다고 하니 이런점들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결과론적으로 세익스피어는 본인의 독창성이나 창의력을 갖춘 자 라기 보다는 당대에 쓰여진

여러 희비극들을 모방하고, 여러 작품을 섞는 과정을 통해 전혀 새로운 작품을 편집해냈다.

이런 측면에서 세익스피어의 작품성은 모방을 근거로 편집된 작품들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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