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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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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3일 19시 47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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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은 행복했다. 적어도 그녀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빅 브라더는 미래를 향해 힘차게 전진해나가는 빛나는 비전을 모두에게 던져 주었고, 시민들은 그의 계획에 따라 적절하게 배분된 각자의 책임과 의무를 힘껏 다하기만 하면 됐다. 힘들고 골치 아픈 일 - 가령 정치 같은 것 - 은 빅 브라더의 일사분란한 통치 아래에서 아무도 모르는 저 뒤편에서 매끈하게 처리되었다. 


합리적으로 정해진 법규와 각자의 양심에 따라 정직하게 행동하는 성실한 시민에게는 큰 축복이 따랐다. 직장에서는 많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살아갈만한 정도의 봉급이 매달 지급되었고, 퇴근 후 TV에는 늘 쇼와 오락물이 흘러 넘쳤다.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쇼핑몰과 테마 파크에서 적당한 소비와 안전한 모험을 즐겼고, 일상에 지치면 커다란 스크린에서 위안을 얻기도 했다. 가끔 작은 일탈이 필요할 때면 잘 짜여진 여행 프로그램을 선택해서 정기 휴가를 떠났다. 참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녀가 나타나면서 우리의 평화로운 일상은 한 순간에 붕괴돠었다. 난데없이 등장한 그녀는 경찰들의 철통같은 제지를 뿌리치고, 여느때와 다름없이 빅 브라더의 지령을 전달받는 커다란 스크린을 해머로 부셔버렸다. 스크린이 부서진 자리에는 앙상한 철골 구조의 뼈대가 그대로 드러났고, 무대 조명이 꺼지자 우리가 모여있는 강당의 남루함에 처연해졌다. 당황한 우리들은 사방을 둘러보며 ‘빅 브라더’를 애타게 찾기 시작했다. ‘이건 현실이 아니다. 절대 그럴리 없다.’ 패닉 상태에서 우리는 빅 브라더를 간절히 부르짖었다.         


* 애플 매킨토시 ‘1984’ 광고에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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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길 위에서 이 에세이를 씁니다. 길을 떠나면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부딪히게 됩니다. 평소에는 신경쓰지 않았던 사소한 것이 없어 큰 불편함을 겪기도 하고, 일상에 젖어 한 몸처럼 붙어버린 습관이 담벼락처럼 들이닥쳐 앞 길을 가로 막기도 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누워서 떡먹기처럼 손쉽게 보였던 일들도 막상 직접해보면 서툴기 짝이 없습니다. 그럴때면 새삼스럽게 길 떠나기 전의 제 자신 - 일상적으로 작동하는 무의식적 자동 기계 - 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됩니다.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기 드보르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가 더 많이 관조하면 할수록 그는 더 적게 살아가게 된다. 지배 체제가 제안한 필요의 이미지들로 그가 자신의 필요를 더 쉽게 재인식하면 할수록, 그는 자신의 본재와 욕망을 더 적게 이해하게 된다. 활동하는 주체에 대한 스펙타클의 외재성은 개체 자신의 몸짓이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고, 차라리 그에게 그것들을 대표해주는 다른 누군가의 몸짓이라는 사실로 설명된다. 구경꾼은 어느 곳에서도 편안함을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스펙타클은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기 드보르가 말하는 ‘스펙타클(Spectacle)’은 쉽게 말하자면 우리를 쉴새 없이 유혹하는 볼 거리와 즐길거리입니다. 우리는 누군가가 제공한 ‘스펙타클을 보고 즐김으로서 구경꾼, 즉 ‘스펙타뙤르(Spectateur)’가 됩니다. 현대인의 일상은 이러한 스펙타클로 가득차 있으므로 이 스펙타클을 향유하고 소비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욕망 대신 ‘사회에서 규정해준 필요’를 충족시키고, 자신의 스타일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몸짓’을 흉내내게 되는 것이죠. 좀 더 잔인하게 말하면 우리 대부분은 진정한 자기 자신은 미처 살아보지도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평소에는 누군가 규정해준 레디메이드의 편리한 삶에 아무런 불만없이 살아가다 아주 가끔 일상의 틀 밖을 빠져나오는 순간, 무심코 걸어가다 이가 빠진 보도블럭에 발이 걸려 넘어지듯 스펙타클 너머의 앙상한 뼈마디를 엿보게 됩니다. ‘아, 내 것이 하나도 없구나!’ 하는 피할 수 없는 허망함을 혹시 당신도 겪어 보셨는지요? 만일 그랬다면 - 또 다른 스펙타클과 빅 브라더에 기대지 않고 - 벌러덩 나자빠진 그 곳에서 어떻게 다시 일어나셨는지요?



P.S. 


이동 중이라는 핑계로 급하게 글을 끝맺은 듯 하여 이 허망함을 대처하는 한가지 방법을 알려 드립니다. 사실 이것은 제가 아니라 제 친구가 사용 중인 방법입니다만, ‘10살부터 다시 살기 (철이 들기 시작하고, 어른들을 흉내내기 전의 자신부터 제대로 다시 살기)' 입니다. 그렇게 갑자기 열살 배기로 되돌아간 친구는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야구에 흥미를 붙여 캐치볼 연습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엉뚱하게도 최근 '리틀 야구단'에 가입하려 시도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는데 덩치가 작아 체급면에서는 가능성이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만, 지도 코치들보다 실제 나이가 많은 관계로 그 결과는 도무지 예상하기가 어렵네요. 그래도 내년에는 건강한 열 한살로 자라나고 있을 그 녀석을 마음으로 응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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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14, 2012 *.89.169.113

어쨌든 스펙타클을 담은 사진은 멋지네.

순간적으로 눈을 확 잡아 당기는..  그런데 왠지 말마따나 허망한..

그 사이에서 나름 길을 찾아보려 애쓰는 내 모습..

 

그런데 위에 언급된 '그녀'는 누구일까? 아니면 무엇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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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19, 2012 *.229.131.221

*애플 1984 수퍼볼 광고

http://youtu.be/8IAzkTpqcNo


이 광고에서 그녀는 애플 매킨토시였죠.

그리고 이제 그녀가 또 다른 빅 브라더가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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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15, 2012 *.169.188.35

넘어지면 넘어진 자리에서 땅을 짚고 일어서지요 ^_____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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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19, 2012 *.229.131.221

아하! 그러네요. ^__________^


"우리는 넘어진 자리에서만 일어날 수 있다." - 보조국사 지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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