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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7일 23시 46분 등록

파우스트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정서웅 옮김, 민음사, 2012

 

■ 저자에 대하여

 

1. 탄생과 그의 가족

괴테는 1749 8 28일 독일 중부의 교통 중심지이자 자유로운 분위기가 넘치는 도시 프랑크푸르트 맘 미안에서 태어났다. 괴테의 아버지 요한 카스파르 괴테는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교양수련 여행을 하면서 많은 지식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원래 귀족이 아니었던 신분 때문에 많은 지식을 얻었다. 그러나 그는 원래 귀족이 아니었던 신분 때문에 프랑크푸르트 시청에서 직책을 얻으려는 시도가 수포로 돌아간 후, 1742년 황실고문관이라는 명예직을 돈을 주고 샀다. 그는 실질적인 공직은 갖지 못했으나 그의 고향 도시에서 가장 명망있는 시민의 반열에 설 수 있었고, 프랑크푸르트의 시장을 지낸 요한 볼프강 텍스토어의 딸 카타리나 엘리자베트 텍스토어와 결혼하여 괴테를 낳았다. 이렇게 괴테는 북독일계 아버지로부터는 '체격과 근면한 생활 태도', 남독일계의 어머니로부터는 예술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짓는 흥미'를 이어받았다. 괴테에게는 여러 형제자매가 있었으나 그보다 한 살 아래였던 크로넬리아를 제외하고는 모두 어린 시절에 죽었다.

 

2. 어린 시절 - 부모의 열성적인 교육을 받으며 풍부한 상상력을 가지다.

괴테의 아버지는 자녀에 대한 교육열이 강해서 괴테를 훌륭한 법률가를 만들기 위해서 라틴어를 비롯해 여러 나라의 말과 수학, 역사, 지리, 미술, 승마, 피아노 등 다방면의 교육을 시켰다. 훗날 괴테의 폭넓은 학문과 교양의 기초는 이러한 어린 시절의 가정교육에서 길러졌다. 또한 그는 교양이 풍부하고 재치 있는 어머니로부터 들은 재미있는 동화에 자극을 받아 풍부한 상상력도 길러갔다. 그는 열 살 때부터 이솝, 호메로스, 오비디우스와 같은 그리스-로마의 고전작가들의 작품을 비롯해서 당시 청소년들이 즐겨 읽던 <천일야화>, 데포의 <로빈스 크루소>, <파우스트 박사>등 많은 통속문학도 읽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이미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부유했던 괴테의 아버지는 그의 집을 증축하고 집안에 서재와 많은 예술가드리 작품으로 장식된 화랑을 꾸몄고 여행에서 얻은 기념물들로 방들과 홀을 장식했다.

 

3. 청년 시절 - 한 여자에게 안주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 문학에 눈을 뜨다.

그레트헨과의 사랑(1763-1764)이 깨어진 후 괴테는 1765 9월말, 독일 동부의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법률 공부를 하기 위해 고향 도시를 떠났다. 그곳에서 안나카타리나 쇤코프와 연애를 하였고, 이 체험을 통해 로코코풍의 시나 희곡을 발표하였는데, 목가조의 희극 <애인의 변덕>, <공범자>가 그것이다. 하지만, 자유분방한 생활로 병을 얻어 고향으로 돌아온다. 귀향하여 요양 중(1768-1770), 클레텐베르크 양과의 교제를 통하여, 경건한 종교감정을 키웠으며, 또한 신비과학이나 연금술에 흥미를 기울였다. 회복 후, 1770년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에서 법률박사 학위를 얻었다. 이 무렵 괴테는 고트프리트 헤르더와 만나면서, 문학의 본질에 눈뜨고 성서, 민요,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등에 친숙해진다. 그의 영향으로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을 알게 된다. 귀양 후 변호사를 개업(1771)하였으나, 관심은 오히려 문학에 쏠려 <괴츠(Gottz)>의 초고를 정리하고 다름슈타트의 메르크와 친교를 맺었다. 1772년 법률 실습을 위해 베츨라 고등법원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샤를로테 부프를 알게 되었다.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슈투름 운트 드랑 기의 대표작인 희곡 《괴츠 폰 베를린힝겐》(1773) <클라비고(Clavigo)>, <스텔라(Stella)> 와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하여 작가적 지위를 확립시켰다.

 

4. 바이마르 시기(1775 - 1786) - 샤를로테 폰 슈타인 부인을 만나다.

1775 4월 릴리 쇠네만과 약혼을 하나 얼마 후 파혼하고, 당시 18세였던 바이마르 공 카를 아우구스트에게 초청되어 11월 바이마르에 도착했다. 바이마르 시절 전기의 약 10년간(1775 - 1786)에는 정무를 담당하여 추밀참사관, 추밀고문관, 내각수반으로서 치적을 쌓는 한편 광물학·식물학·골상학·해부학 등의 연구에도 정진하였다. 그 밖에 아우구스트공의 모후 안나 아말리아, 시인 빌란트, 고전적 교양미가 풍부한 크네베르 소령, 궁정가수 코로나 슈레타 등 궁정 안의 사람들과 밀접한 친교를 맺었다. 괴테는 이런 정무나 사회 및 자연연구를 통하여 자연과 인생을 지배하는 법칙을 터득하고 자기 억제를 배우며 슈투름 운트 드랑적인 격정을 극복하여 점차 평정과 원숙의 도를 더해 갔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샤를로테 폰 슈타인 부인에 의한 감화가 있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우아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일곱 아이의 어머니였으나, 괴테의 이상적인 여인상이었다. 부인에 대한 애정과 동경, 절도와 체념, 이러한 것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시인에게 내면적인 평정을 갖게 하였다. 그러나 결국 한 장소와 한 여인에게 지속적으로 머물기를 거부하는 괴테의 내면에서 다시 '떠나야겠다'는 충동이 일어나자, 마침내 1786년 그는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불현듯 이탈리아로 떠났다.

 

5. 이탈리아 여행(1786 - 1788) - 자신의 문학적 성향을 고전주의로 향하게 하다.

1786년 가을부터 약 2년 동안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 머무르는 동안 괴테는 바이마르의 공직생활을 잊고 예술가로서의 생활에 전념해 직접 수많은 스케치를 하고 그림을 그리면서 생활하였다. 이탈리아 여행은 괴태가 자신의 문학적 성향을 본격적으로 고전주의로 지향(志向)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이에 관해서는 후일 《이탈리아 기행》>(1816)과 《제2차 로마 체재》(1829)에 자상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탈리아에서 괴테는 남국의 밝은 자연과 고미술에 접함으로써 고귀한 내용을 완성된 형식으로 표현하는 독일 고전주의 문학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타우리스 섬의 이피게니에》(1786)와 《타소》는 그의 대표작이며, 《에그몬트(Egmont)(1787)는 슈투름 운트 드랑에서 고전주의로 옮겨가는 과도기의 작품이다.

 

6. 결혼과 조력자의 만남(1789 - 1797) - 반려자를 만나 정착을 하고 극작가 실러를 만나다.

충분한 방랑생활을 체험하고 1788년 다시 바이마르에 돌아온 괴테는 비로소 삶의 '정착'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 무렵 '크리스티아네 불피우스'라는 가난한 처녀를 알게 되어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많아지자, 그와 샬로테 폰 슈타인 부인과의 관계는 소원해졌다. 크리스티아네는 원래 좋은 집안의 신학자이자 법률가 집안의 딸이었으나 그녀의 아버지가 알콜 중독에 걸리자 가세가 기울어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다. 그녀가 23세였을 때 당시 39살이던 바이마르 공국의 추밀고나 괴테에게 일자리를 부탁하러 갔다가, 그와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 이루어져 두 사람은 곧 깊은 사랑에 빠져 동거에 들어갔다. 1789년 괴테와 크리스티아네는 아들 아우구스트가 태어났다. 그의 아들이 17세 성인으로 자라자 이를 계기로 1806년 가을에 가서야 비로소 결혼식을 올렸다.

1974, 독일 문학사상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괴테와 실러의 만남이었다. 실러가 기획한 잡지 《호렌》에 협력하면서 괴테는 그와 우정을 맺었고, 둘 사이 우정은 1805년 실러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양자간에 교환된 서한은 독일 고전주의 문학의 가장 귀중한 자료로 되어 있다. 실러와 사귀는 동안에 저술된 주된 작품에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와 《헤르만과 도로테아》(1797)가 있다.

 

7. 만년의 괴테(1798 - 1832) - 생애를 다할 때까지 창작열을 불태워 《파우스트》를 완성하다.

1805년 실러의 죽음으로 괴테는 그를 지탱해줬던 정신적인 교우를 잃고 인생의 황혼기를 맞이하게 된다. 만년에 접어든 괴테는 《시와 진실》을 위시한 일련의 자서전 저술에 착수하는 동시에 이미 착수하였던 창작의 완성에 힘썼다. 《친화력(親和力)》와 《파우스트》 1부를 완성하였다. 괴테는 자연과학 연구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 특히 광학(光學)연구의 결정인 《색채론》을 1810년에 발표하였다. 1816년 헌신적으로 가정을 꾸려 괴테의 왕성한 창작활동을 도왔던 아내 크리스티아네가 51세의 나이로 먼저 세상을 떠나자 이후 괴테는 쓸쓸한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독일러로 번역된 페르시아 시안 하피스의 작품을 읽게 되자, 여기서 그는 문학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음주를 읊은 이 시인의 작품에 매료되고 자극을 받아 그동안 손을 놓고 있던 창작열을 불태우게 되었다. 또 빌레머 부인을 사랑하게 되어 그녀를 사모하여 읊은 《서동시집》(1819)을 발표했다. 만년의 괴테가 이룩한 가장 뛰어난 문학작품으로는 당시의 시대와 사회를 묘사한 ,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 와  《파우스트》의 완성을 들 수 있다. 특히 《파우스트》제1부와 제2부는 23세부터 쓰기 시작하여 83세를 일기로 죽기 1년 전인 1831년에야 완성된 것으로 평생 심혈을 기울인 대작이다. 이 작품의 주제는 "부단히 노력하는 인간은 구원받는다"라는 것이다. 괴테는 1832 3 16일에 병으로 누웠다가 마침내 1832 3 22 83세의 생애를 마쳤다.

 

8. 출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두행숙 옮김, 부북스, 2010)

파우스트(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정서웅 옮김, 민음사, 2011)

이탈리아 기행(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찬기, 이봉무, 주경순 옮김, 민음사, 2011)

괴테와의 대화(요한 페터 에커만 지음, 장희창 옮김, 민음사, 2011)

색채론(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장희창 옮김, 민음사, 2010)

http://ko.wikipedia.org/wiki/

 

 

 

북리뷰는 용량이 많은 관계로 첨부했습니다.

 

 

 

 

■ 내가 저자라면

 

괴테의 <파우스트>는 제1부를 학자 비극과 그레트헨의 비극, 2부를 헬레네 비극과 통치자 비극이라고 부른다. 1부는 학문을 통해 우주의 원리를 규명하려는 파우스트가 지식의 무기력함에 절망하여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자신의 영혼을 맡기고 쾌락을 추구한다. 그 결과, 순결한 소녀 그레트헨을 얻어 그녀를 파멸시킨다. 2부에서 파우스트는 현세적 쾌락을 얻게 되지만 결국 만족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것은 파우스트로 하여금 이상을 추구하도록 자극하는 결과를 낳는다. 파우스트는 차츰 무한의 추구에서 다수의 행복을 위한 활동을 시작한다. 파우스트는 실명하게 되지만 내면의 빛은 꺼지지 않아, '영원히 여성적인 것'에 의해 천상으로 인도된다.

시행의 수는 12,111행에 이른다. 또한 다채로운 테마를 괴테는 다양한 어법과 다양한 운율을 모두 구사하여 한 편의 웅장한 교향곡으로 만들어 놓았다. 요한 페터 에커만이 쓴 <괴테와의 대화>에서 괴테는 <파우스트> 1부와 2부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말했다.

"1부는 거의 전적으로 주관적일세, 모든 것이 보다 편견에 사로잡히고 보다 열정적인 개인에게서 나왔는데, 사실은 그 어슴푸레한 요소가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을 끌었을 것으로 보이는군. 그러나 제2부는 주관적인 것이 거의 들어 있지 않네. 거기에는 더욱 더 고차적이고 넓고 밝고, 보다 냉철한 세계가 나타나 있지. 그러므로 웬만큼 고생하지도 않고 경험도 별로 없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감도 잡을 수 없을 거네."

1부를 읽으면서 내 개인의 어두운 면을 떠올리게 되었으며, 그러한 어두운 장면들이 자석처럼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젊었을 때의 어두웠던 사고와 생각들이 점점 나이가 들면서 경험을 통해서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신을 만나면서 밝은 곳으로 나오게 되고, 어두운 행동들이 빛을 받으면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러한 소중한 경험들은 아직도 내 삶을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더 <파우스트>는 내 삶의 전체를 내려다보게 만들었다.

2부는 그리스로마 시대에 나오는 각종 신들과 예언자들, 마녀들, 괴물들을 포함해서 트로이 전쟁의 불씨가 되었던 헬레나와 파리스, 헤라클레스와 아킬레스의 스승인 케이론, 바다의 요정 세이레네스 등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나오는 인물들까지 등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읽어왔던 신화의 주인공을 다시 볼 수 있어서 판타지 같은 장면들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레트헨이 등장하면서 파우스트를 구원하게 되는데, 그 모습에서 그녀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다. 즉 그레트헨은 무의식적이고 자연적인 천상의 아름다움이고, 헬레나는 스스로 뽐내고 의식적으로 나타내는 아름다움임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완전히 무의식적이고 완전히 자연적인 상태에 있는 그레트헨의 아름다운 영혼이 파우스트의 영혼을 천상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파우스트의 굳은 결의가 나타나 있는 장면이었다.

  그렇다! 이 뜻을 위해 나는 모든 걸 바치겠다.

  지혜의 마지막 결론은 이렇다.

  자유도 생명도 날마다 싸워서 얻는 자만이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인간이 힘든 과오의 길로부터 보다 나은 것을 지향함으로써 구원받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하여 신의 창조물인 인간은 삶에서 빛과 어둠의 양극성을 모두 체험하고 결국은 선을 지향하는 의지로 보다 높은 영역으로 상승을 이루어내려 노력하는 것이다.

괴테는 1부의 '천상의 서곡'에서 "착한 인간은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올바른 길을 잘 알고 있다."라고 이미 낙천적 결말을 예견하였다. 따라서, <파우스트>를 비극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요소다. 내가 만약 작가라면, 미리 결말을 예견하지 않고 극을 전개하던지, 아니면 악한으로 등장하는 메피스토가 마지막에 추락하는 모습이 아닌 좀더 악하게 묘사해서 실제 비극으로 결말을 맺고 싶다. 파우스트는 결국 메피스토에게 영혼을 빼앗기고 악마 또한 신의 심판을 받는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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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8 00:05:42 *.194.37.13

북리뷰는 용량이 많은 관계(50p)로 첨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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