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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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것
황인숙 시인의 시를 읽는다. 날 것, 날 것, 날 것을 퍼들퍼들 갈망하는 노래다. 노래? 노래 라기 보담 땡고함이다. 선반에 꽃힌 다른 책은 <미래에서 온 편지>, <사소한 것들에 승리하라>, 운주사 노보살님 신행시집이다. <사소한 것들에 승리하라>는 국제 비즈니스 강의를 하는 이가 비즈니스 예절 601가지를 써넣은 주황색 잔소리 책이다. 요즘 변비 개선되어서 한 쪽 미만으로 읽어도 된다. 매우 다행이다. 불구부정, 그분이 나더러 화장실에서 하루 한 번씩만 생각해보라고 했다. 나더러 왜 이걸 하라는거야. 이분법적 사고 때문인가? 아침마다 요강을 부시던 할머니를 생각하며 물을 내린 후 변기를 솔로 슥슥 닦는다. 들어온 김에 화장실 배경의 최근 꿈 얘기.
꿈1. 나는 변기에 앉아 있다. 다리 사이에 놓인 하얀 변기가 제법 크다. 변기는 가장 커다란 도자기 그릇이지. 변의가 느껴진다. 발끝을 발레리나처럼 세우고 허리를 반듯하게 잡으면 엄지 손가락이 통한다. 온몸이 잘 치댄 수제비 반죽처럼 쫄깃쫄깃한 상태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내지른다. 물컹거리는 것들이 빠르게 쑥 나온다. 시원하다. 하지만 아직도 배 안에, 내 속에 든 것이 많이 있다. 아래를 내려다 본다. 벌겋다. 내가 피를 흘렸나? 밴댕이회무침을 먹었던가? 거기 사과조각이 있다. 이건 조제된 똥이군. 다음 날 변 상태를 좋게 하기 위해서 신경 써서 저녁식사 때 섬유질이 풍부한 식재료를 선택해서 먹었을 때 볼 수 있는 것. 변비와 제법 오래 살아서 안다. 계속 쿨렁쿨렁 나온다. 변기가 넘치려고 한다. 나는 당황해서 급하게 물을 내린다. 아, 변기 아래가 막혔다. 챙피해서 어떡하지? 벌건 것이 막 넘치려고 한다. 다리를 벌리고 엉덩이를 쳐들고서 급한대로 손으로 둑을 만들어 막는다. 앞으로 넘쳐 버렸다. 냄새는 별로 안난다. 피가 섞였나? 선홍색, 밝은 붉은 색. 저 사과조각들이 속엣것을 물고 나왔다. 그게 섬유소의 역할이라고 했다.
꿈2. 나는 고향동네에 갔다. 꿈 속에 찾아가는 곳, 어릴 때 자란 그 집, 그 골목, 그 사람들. 집엔 늘 아무도 없었다. 빈 집. 나는 몹시 그리운 상태가 되어 엄마가 일하러 가기 전에 싸리비 자국이 물결무늬로 나도록 쓸어둔 마당 가에 가만히 앉아 있다 돌아오곤 했다. 위만 드러난 넙적돌이 있었다. 땅따먹기 할 때처럼 뼘을 가지껏 펴보고, 하삭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 집이 흙에 묻히거나 내가 자란 할머니방에서 밖으로 신발과 책을 내 던진 적도 있지. 아님 그 동네 어디를 헤맨다. 오래 전에 돌아간 이들이 드럼 통을 뚫어서 피워놓은 불 가에 서서 하는 이야기를 듣다 낄낄거리곤 했다. 꿈 속에서 그들은 아무도 더 늙거나 죽지 않았다. 이번엔 고향집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동네에서 동네 어귀의 숲을 통과해 밖으로 내려가는 것 같다. 시간은 오전 9시에서 10시, 일요일 침례교회 종소리가 울리기 전 밝기다. 거기 백 년 넘은 나무들이 있고, 그네와 미끄럼틀이 있다. 나의 유년은 그 숲에서 일어났지. 그런데 나는 그 숲을 통과해서 밖으로 나가고 있다. 그네 옆에 새벽송을 도는 듯한 사람들이 있다. 합창단이다. 남자와 여자 혼성 합창단. 남자가 독일어로 노래를 부른다. 성가 같기도 하고 사랑노래 같기도 하다. 여자가 받아서 상당히 선동적인 목소리로 부른다. 느낌은 축하 노래다. 나를 향해 부른다. 기분 좋다.
두 꿈은 6월 연구원 오프수업을 가기 전날 꾼 것들이다. 같은 날 꾼 것이니 관련이 있다고 보인다.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즈처럼 나의 하루를 리얼 에피소드로 말해야 한다. 불안했다. 꿈에서 힌트를 얻곤 하는 나는 저 화장실 꿈을 갖고서 그냥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하기로 맘 먹는다. 화장실, 똥은 배설과 표현의 의미려니, 내가 겁내서 뒤로 물러서는 줄 알고 꿈으로 돕고 있구나. 사과가 제임스 조이스다. 두번째 오프수업을 다녀온 후 나는 좀 좋아졌다. 자신을 다 드러낸 건 아니지만 그래도 리얼 에피소드를 공유하는 특별한 힘이 있었다.
꿈3. 동네 뒷쪽 공동묘지를 오솔길로 오른다. 그 곳에 온 적 있다. 한 번은 복학한 뒤 대학에서 계절학기로 여성학 수업을 듣고 나서다. 200명인가 300명 수업에서 이야기를 했었다. 내내 후회하였다. A를 받았지. 대학 다닐 동안 여성학, 종교학, 우수아 교육만 A였지. 아, 종교학은 아니다. 나머지 과목은 그저 그랬다기 보담 형편 없었다. 모퉁이를 올라간다. 거기 쌍둥이를 낳은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어린 딸 한 명, 18개월 된 딸이 거기 있다. 친구의 눈이 딸을 놓치지 않는다. 보호한다. 그 야산에는 내가 알아볼 수 없는 다른 많은 사람들이 쪼그리고 앉아 있다. 형체가 검지 않다. 허름한 옷을 입고 쪼그리고 앉아 있다. 성별과 나이를 알 수 없다. 나는 아마 그 길을 계속 올라가서 그 자리로 갈 것 같다. 그 친구가 응원하는 것 같다. 거긴 아무 것도 없던데 왜 가지?
다음날 이 친구한테 전화를 걸었다. 대학원을 나왔는데 직업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아이를 기르고 있는 그 친구는 결혼 10년만에 낳은 아이들의 집이 되는게 만족스런 눈치다. 아이들은 잘 크고 있다고 했다. 아, 꿈속의 아이는 그녀의 아이가 아니구나. 내 안의 어떤 걸 상징하는구나. 뭘까? 아이를 낳고 싶어 하거나, 모성적인 직업을 갖는 건 내가 엄마가 필요하기 때문이었지. 이제 스스로에게 엄마가 되어 주겠다고 마음 먹었고. 그런 나한테 엄마가 생긴 것처럼 자기 자신의 엄마 노릇이 좀 좋아졌나?
꿈4. 이건 그의 꿈이다. 그가 내게 말해준다. 너랑 나랑 침대에 자고 있어. 그런데 우리 둘만 자는 게 아니라 4사람이 자고 있어. 남자 한 명과 여자 한 명이 더 있어. 너는 내 옆에서 벌거벗고 자고 있어. 그 옆에 다른 여자가 있어. 누군지 모르겠어. 그런데 그 여자가 일어나는 거야. 그리고 나도 니가 아니라 그 여자를 깨우고 싶어지는 거야. 나는 억지로 그 마음하고 싸웠어. 그런데 너는 안 일어나고 그 여자는 자꾸 일어나고 내 손도 그 여자한테로 가는 거야. (이야기 하는 내내 그는 그 옆의 남자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는 듣는 내내 그 남자에게 관심이 갔다. 그들은 누구일까? 내면아이든 어린 시절의 엄마나 아버지의 모습이든 우리가 이전보다 좀 더 깊은 데로 들어온 느낌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악마와 계약을 했다. ‘멈추어라. 오, 너는 참 아름답구나.’라고 자신이 말하는 순간을 맞이 하기 위해 악마가 그를 도우면 저 세상에서는 그가 악마의 종노릇을 하겠다는게 조건이다. 둥근 아치형 지붕 연구실에서 수염이 허옇게 세도록 법률, 신학 등등등 학문을 들이팠지만 삶의 실체를 인식할 수 없었던 그의 절망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계약서에 피를 찍어 서명하기 직전에 말했다. “저 세상 따위는 개의치 않네. 자네가 우선 이 세상을 박살내 버린다면, 다음에 어떤 세상이 생겨나든 무슨 상관이겠나. 이 땅에서만 나의 기쁨이 샘솟고, 이 태양만이 내 고뇌를 비춰줄 뿐일세. 이것들과 우선 헤어질 수 있다면 그 다음엔 무슨 일이든 될 대로 되라지. 미래에도 증오와 사랑이 존재하는지 그 세상에도 역시 상하의 구분이 존재하는지 그런 이야길랑 더 이상 듣고 싶지도 않네.” 악마 메피스토펠리스를 동반하여 그는 사랑, 권력, 탐욕, 사건으로 뛰어든다. 파우스트도 날 것을 갈망한 사내였던 것 같다. 나도 날 것을 경험하고 싶다. 그런데 꿈 얘기로 또 숨고 있나? 꿈이 때로는 더 노골적, 직설적이라 둘러대야겠다. 궁색스러워. 우격다짐이네. '나에게는'을 붙이자. 나에게는 꿈이 때로는 더 노골적이라고 하면 거짓말은 아니지. 잡념 그만! 시나 읽자.
열이 활활 나는 삶의 손바닥으로
황인숙
아아아, 니! 아니다!
이건 삶이 아니야.
아, 날것이여.
날것, 날것, 날것들이여.
나를 두들겨, 깨뜨려,
내 안의 날것을, 아직 그런 것이 있다면,
깨워다오.
이 허위인 삶을
쪼고, 쪼고, 물어뜯어다오.
그런데, 어디 있는가, 날것들이여.
내 뭉실한 삶이
거친 이를 가진 입이 되어
쩍 벌어진다.
질겅질겅 씹고 싶은 날것들이여.
꿀꺽 삼키고 싶은 날것들이여.
꿀꺽꿀꺽 삼켜 구토하고
배 앓고 싶은 날것들이여.
열이 활활 나는 삶의 손바닥으로
나를 후려쳐다오, 날것들!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60쪽
이헌님^^
어릴 때요, 흘러가는 냇물에 대형 트럭 바퀴 속에서 꺼낸 검정색 고무튜브를 띄워놓고 그 위에 누워서 흘러간 적이 있었어요. 몸을 맡기고 그냥 떠내려갔어요. 저는 참 좋았어요. 하늘의 구름이 흘러가는 걸 건들거리며 보는데, 햇빛이 뜨겁게 간질간질 했어요. 졸음이 올만큼 편안했어요.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강물 따라 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그 노래도 불렀어요. 그러다 보면 우리 동네 어린 자매가, 5살 7살이라 했던가, 익사를 했던 자리쯤 둑에 서 있는 밤나무를 지나요. 아이 엄마는 일하러 갔다가 그 소식을 듣고, 울면서 집에서 덮는 담요를 가지고 가서 두 아이를 덮었다고 했어요. 저는 그 나무가 많이많이 슬펐어요.
그런데요 이헌님, 이헌님이 흘러간다는 물줄기의 느낌은 좀 위태롭게 느껴져요. 빠질까봐요. 조마조마해요. 잘 모르고 그냥 느낌이 그래요. 우짤까요? 모르겠어요. 남도여행은 아직 못갔어요. 여수밤바다 노래를 들을 때 이헌님 생각 잠깐 했었어요.
*버스커버스커 <여수밤바다> http://www.youtube.com/watch?v=TV4vJe3jgAE
오, 웬 일이용? 나 사부님 책 제목으로 "날 것의 신화" 추천했는데! 날 것이라는 단어에 나 이외에 두 명, 황인숙 시인과 콩두 작가님이 먼저 꽂혀 있었다니 살짝 아쉬워요.ㅋ "생을 긍정"하는 태도는 캠벨 때부터 가슴에 잘 보듬어 두었었는데 파우스트에서도 역시 발견이 되더군요. 아마 캠벨이 파우스트를 읽었다고 보는 것이 수순에 맞겠죠? 날 것, 저도 날 것에 열패감을 느낍니다. 나의 날 것은 도대체 무엇인지... 이제는 이상향이 "이데아"에서 "날 것"으로 옮겨간 듯해요.
아는 남자에게 무심한 듯 데이트 신청을 합니다. 남자는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날짜를 확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곤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립니다. 이 때, 나의 날 것은 무엇일까요? 페이스북에 요런 말이 떠돌더군요. 갈까 말까 할 때는 가고,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 말고, 먹을까 말까 할 때는 먹지 말고... 그래서 갈까 말까 할 때는 가야 하는건지. 차라리 간단히 이분법식 프로토콜(500원 넣고 바를 당겨요)이 땡기기도 합니다. 삶이란, 어렵네요.
제임스 조이스 관련해서 대여했던 책을 반납하기 전에 그의 편지 모음을 조금 읽었습니다. 노라 바너클에게 쓴 편지들... 그녀의 가장 더러운 두 부분을 사랑하고 함께 관계할 때 그 녀의 방귀 소리가 너무 좋다는 내용이었는데... 이해가 안되요.ㅜㅜ 전 조이스랑 못 살 것 같습니다.
캠벨이 파우스트 읽은 수순이 맞을 듯 해요. ^^ 사부님의 책 제목 댓글에서 레몬 읽었어요. 저도 어머! 했어요. ㅋㅋㅋ 우리는 같은 날것파군요.^^
날것 전에 날랄이가 되고 싶어요. 지금은 안성실하고, 뭔가 중요한 것을 자꾸 놓쳐서요 날건달이긴 한데요, 이런 가짜 말고요, 할 일을 잘 하면서 제 멋을 잘 드러내는 사람이고 싶어요. 남 눈치 안보고요. 놀고 싶다는 말입니다. 하하. 이것도 나의 날 것에 포함될까나 -_- 자기 욕망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이 요새 자꾸 들려요. 레몬의 날 것 뭔지 알아가는 배팅에 화이팅! 아는 남자 데이트 신청 잘했어요. 잘 했어요. 잘 했어요. (이따 학교 가서 제가 우리 교실에서 쓰는 잘 했어요 도장하고 별 도장 올려주고 싶네요. 별 다섯개로^^) 레몬 칼럼에서 '아님말고' 이거 참 감동적이었어요.
버나클한테 그가 그런 말을 했군요. 가장 더러운 두 가지도 좋아한다는 그게 뭘까 더러운 상상을 아까부터 계속 하고 있어요. 한 다섯 가지 생각났는데요 여기다 쓰면 위에도 더러운 얘기 썼는데 댓글에도 썼다고 할까봐 참을라구요. 사랑을 하면 뇌가 마비되는 호르몬이 나와서 최장 2년 간다고 했지요. 그게 싹 사라지면 술이 깨듯 사랑이 없어지면요 그 두 가지가 젤로 역겨워졌을까 궁금하네요. 그의 평전과 젊은 예술가의 초상 저도 빌렸는데 연체되고 있어요. 아직 안읽었는데요.
오늘 아침에 형님이 주신 오이, 마늘 장아찌로 밥 먹었어요. 맛이 참 좋았어요. 이건 행님이 담그신거지요? 그날 싸 갖고 온 상추는 들고 다니는 동안 다 녹아버렸어요. 어쩐지 야들야들 보드리하더라니요. ㅠㅠ 길수형님은 발효식품에 관심이 있으시지요. 효소도 담그시고요. 저는요 저를 겉절이 같은 사람이라고 소개했어요. '나는 묵은지같은 사람이 아니다. 눈에 안 보이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사람이다. 속까지 맛이 밸 수 없다.' 그랬더니 상대는 '저는 겉절이 좋아해요' 그러면서 입맛을 쩍 다셨어요. 이건 뭔가?! 그랬어요. 형님. 소설은 아무나 쓸까요? 아, 저거 쓸까말까 막 그랬어요. 써놓고도 아, 나의 정신상태에 대해 다른 이들이 의심하면 어떻하지 했어요. 반은 형님하고 나눈 이야기예요. 새벽에 일어나셔서 댓글정진 하셨군요. 감사합니다. 형님.
아, 이 글은 글도 재밌는데, 댓글도 엄청 재밌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전 언니 글을 읽고 이런 생각을 해왔어요.
'나도 이렇게 써도 되나....???' ㅋㅋ
아직 용기가 안나요.
난 오프수업 갔을 때 똥 꿈을 꿨는데, 아 그날 로또 살껄 그랬어요.
넘쳤거든요!!!! ㅎㅎ
다녀와서 엄마한테, 말씀드리고, 웃고 넘겼는데,
내게 일어날 '날 것'을 글로 쓸 수 있으려면,
좀 더 성숙해져서 표현해내면 될까요?
아니면 그냥 용기를 내면 될까요?
'이래도 되는구나!'의 경계선이 아직은 작은 원이어요. 반지름을 더 키워서
7천 7백만원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싶어요.
언니처럼 생각과 표현력, 그리고 생생한 경험들이 버무려져서요.
(6월 오프수업은 우리에게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콩두언니도 그렇고 길수행님도 그렇고 ㅎㅎ
더 찐해졌어요. 우리 사이가)
어제는 파우스트 예약하고 연락하고, 애쓴 것 취소하는 번거로운 불편 끼쳐서 미안했습니다.
자유로움을 7700만원에 샀다면 슬슬 그걸 써먹게 되겠지요. ㅎㅎ
세린신도 똥이 넘치는 꿈을!!!!
왠지 편안해지는데요. ㅎㅎ그 꿈은 우리 꿈이었네요.
피대로 쓰라도 하셨으니까요. 세린신의 글은 세린신 나름대로 향기가 있어요.
이를테면 반듯하고 따뜻한 느낌이요.
누구든 이웃이나 친구 삼고 싶어할 만한 온건하고 균형잡힌 사람의 느낌
(이건 그냥 제 느낌이예요.)
어떤 것이 더 드러날 지 모르지만 세린신은 자기 목소리를 잘 찾아갈거라고 믿고 있어요.
저도 제 피대로 쓰고 싶은데요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저렇게 올려놓고 안달복달하는 걸 보면 용감한 피는 아닌듯 해요.
세린신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요.
아, 지푸라기처럼 가볍고 쓸데없는 잡념이니까요 불쏘시개로 쓰고 버리세요.
오늘치 제 잡념 깡통을 땄어요. 따서 버리기 위해서요.
'1. 그녀 탓이 아니야.
중등 교사 수급도 생각해보지 않고 수많은 교사자격증을 남발한 뒤 애초부터 공립교원 임용시험으로 그 일을 할 사람은 극히 적은 수로 제한해 놓았다. 사립학교까지 쳐도 수는 이미 제한되어 있다. 택도 없이. 그 많은 수의 젊은이들의 길찾기를 흐트러뜨린건 그 구조에서부터 찾아야 하지 않겠나. 개인에게 책임을 돌릴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내가 임용시험에 붙은 건 좀 더 많이 뽑고 경쟁률이 약한 초등이었고, 그 때 특수교사를 오십명씩 3년간 뽑는 반짝 특수의 시대였다. 나는 순전히 운이 좋았다. 이번 주 칼럼으로 그녀는 '방황해도 괜찮아'를 썼어. 멋졌어. 나는 '슬퍼해도 괜찮아' '안 괜찮아도 괜찮아' 제목을 상상했어. 나도 그녀의 슬픔이 뭘까 궁금했어. 슬프고 안 괜찮은 이야기를 속에 담아두지 않고 이야기를 하면 많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어떻게? 칼럼에서? 누구랑 이야기를? 이건 모르지. 나는 모닝페이지에서 가감없이 해대는, 퍼부어대는, 싸질러대는 내 얘길 누군가가 들어준다는 게 위로가 되는데. 몰라, 그녀에게는 뭐가 좋은 방법일지. 무엇이든 그녀가 그런 걸 만나길 바랄 뿐. 암튼 나는 완전 꼴통이지만 그녀는 그런 과가 아니야. 흠잡을 게 없는 사람인 것 같아. 시험? 그건 인성에 대한 것도 아니고, 성품에 대한 것도 아니지. 임용시험에 대한 것이 그녀의 슬픔이라면 그것도 잘 치유해야할 것 같아. 고시공부를 오래했던 동생들과 같이 살면서 나는 그 시험공부와 발표를 보는 게 얼마나 사람을 황폐하게 하는 지 조금 봤다.
2. 세린신 좋은 교사(?!)의 자질을 가진 사람
세린신은 강사, 교사, 코치 모두 '교육자' 또는 '길을 가는 이에게 도움을 주는 자'의 소명을 발견해가는 것 같다. 이런 사람이 학교 안에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학교 안에 없다면 같은 소명, 목적을 실현하는 다른 방편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이게 창조적인 방식이다. 그걸 이이는 코치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그게 아닐 수도 있다. 탐색중인 것 같다. 암튼 지금은 팔팔이 중에 제일 어리지만 이 담에 무척 멋진, 품넓은 사람이 될 것 같아. 나는 그녀에게서 학년부장님의 필을 느끼거든. 교장님은 업무부장은 일 잘하는 사람을 두지만, 학년 부장을 정할 때는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이를 정하거든. 그 분들이 다 일도 잘 하시지. 동학년 부장님의 힘으로 화합이 되고, 일하기가 편해지거든. 그녀는 절대로 빵구를 낼 사람이 아니야. 그리고 모두와 같이 갈 것 같아. 대신 혼자서 너무 일을 많이 떠맡을까? 착해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
어제 나는 직원연수로 교육코칭을 들었다. 그녀는 현직 교사였다. 그녀는 그걸 가지고 여러학교에 직원연수를 다니는 것 같았다. 세린신은 저런 교사이면서 코칭을 하는 이가 되려는 건가? (이러자면 교사의 신분을 유지해야겠지. 사립, 공립, 기간제와 정규직을 가리지 않고) 아니면 코칭에 관심 있는 학교 안 인력이 연결해주는 학교 밖의 전문 코치가 되려는 건가? 모르겠다. 아, 또 하나 있다. 학교 안의 교사, 학생 과 바깥의 전문 인력을 연결해 주는 이. (학교 사회복지사나 학교 상담사 쯤 되겠지. 근데 두 인력은 아직 학교 안으로 완전히 들어와 있지가 않다. 학교 사회복지사는 교육인적자원부 교육복지사업의 일환으로 한시적으로 진행이 된다. 상담사가 학교 안에 상주하는 건 요원한 꿈이다. 그래서 교사들 중에서 상담 대학원을 나오거나 전문상담원 자격증을 따서 이 일을 하려고 하지.) 팔팔이 중에는 이미 코치가 있지. 샐리진코치님. 그러니 세린신이 그 길로 간다면 구체적인 로드맵을 조언해줄 수 있어. 다행. 어찌보면 학부의 공부와 일정 정도의 자기 탐색을 걸쳐 대학원 과정이나 그에 준하는 공부를 통해서 자기 진로를 준비하는 이들이 훨씬 잘 찾아가는 것 같다.
신경숙씨 외딴방에서 그녀가 소설가가 된 건 그녀가 다니던 산업체 고등학교의 선생님이 소설을 필사해 보라고 한 게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그 선생님은 박사과정에 있었다든가 뭐라든가 아무튼 상위 과정을 공부해야했고 그래서 시간을 자유롭게 쓰자니 그 학교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했지. 세린신이 코치가 된다고 해도 그 준비, 교육 과정에는 시간과 돈이 드니, 세린신이 가진 수학교사 자격증은 당분간 밥을 벌 도구가 되겠지. 또 그 학생들은 어떤 이름으로든 계속 만날테고. 세린신을 만나는 어떤 학생이 신경숙씨가 만난 그 선생님과의 계기를 가질 지도 모른다.
3. 세린신의 첫 책
징검다리
그럼 세린신의 첫 책은 교사에서 코치로 가는 징검다리겠구나. 뭘까? 그건. 이 이가 자기를 찾아가는 청소년 - 중고등학교 나이의 학생, 10대..이름이 뭐라 불리든 - 에게 나침반 노릇을 하는 '중고등학생 전문 코치 또는 직업 진로 상담 전문가'로서 가는 길에 이력서가 될만한 책 한 권은. 그녀가 너무도 사랑하고 존경하는 그녀의 사부님은 그늘에 앉아 자신의 이름과 소명을 스스로 정의한 후 현직에서 10년을 보낸 후 마지막 3년여를 새벽에 일어나 쓴 책 한 권으로 독립했다. 그녀가 쓸 책도 그런 역할이리라. 징검다리나 연결고리, 교두보.
세린신의 강점 (1) : 평범함
강점에서 찾으라고 한다. 그녀의 강점은 무얼까? 나는 모가 많은 사람이지만 그녀는 반듯해 보인다. 그녀의 반듯함, 따뜻함, 평범함이 강점이지 않겠나? 80%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방식에 대해 안내할 수 있다. 내가 가진 <사소한 것들에 승리하라>는 국제비즈니스 전문가가 쓴 책인데 보스가 들어오면 자리에서 일어서라, 출근해서 만나면 인사해라 이런 것들이다. 거창한 것보다 이런 것에서 많은 것들이 결정된다. 나는 세린신이 그녀가 사랑하는 학생들, 입시와 가족에 짓눌려 자기 적성, 길을 고려하지 못하는 학생들 - 그건 내 모습이기도 했다. - 에게 꼭 필요한 것을 일러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는 반듯하고 사랑스럽고, 믿음직하다. 평범함, 그게 강점인 것 같다. 거기서 찾는다면 좋겠다. 나는 그녀와 한 번 옆에서 살아보면 많은 걸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신화책을 많이 번역한 이윤기씨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가 신촌문예에 붙어서 그걸로 짧은 학력에도 불구하고 출판사에 근무하게 되었을 때 미대를 나와 일러스트를 그리던 그의 아내를 만났다고 했지. 그는 손으로 코를 팽 풀고 그걸 양말 목에 쓱 닦는 사람이었는데 아내가 그러지 말라고, 그 외에도 다른 중요한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었다고 했다. 이를테면 세린신은 그 아내와 같은 잔소리를 해 줄 수가 있을 것 같다. 또 내가 읽은 책 중에 목사님 부부가 쓴 책이 있었지 남편은 '부끄런 A학점 보다 떳떳한 B학점이 낫다'고 소년에게 일러주는 책을, 아내는 상담을 전공한 이였는데 '프랑스 향수보다 마음의 향기가~~~' 제목이었지. 이것도 이를테면 인성교육이었어. 속옷은 네 손으로 빨아라, 여든되신 네 할머니도 그러신다 이런 내용이었어. 만약 이런 내용이라면 현직에서 학생들을 보고 있는 상태에서 면밀히 관찰을 해서 하면 좋겠지. 사소한 것이라도 의미가 있지. 그리고 재미있게 써야할테고.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 소설 나는 안 읽어봤어. 하지만 이런 제목을 빈 형식이 어떻냐고 그녀에게 이야기를 했지.
세린신의 징검다리가 될 첫 책, 그건 입시 위주 중고등학교 시절 동안 미뤄두는 필수적인 이야기 일지로 모른다. 대학을 가서 다른 도시로 부모를 떠나는 자식에게, 또는 외국으로 유학을 보내는 십대 후반 자식들에게 부모가 끼워서 싸줄 만한 책. 나는 인성교육과 진로교육의 중간쯤 되는 책일 것 같다. 우리가 기본 예절이나 상식이라고 부르는 것, 삶을 살아가는 기본적인 것들. 여기다가 자기 길을 어찌 찾아갈 지를 힌트 주는 것이었으면 좋겠다. 변경연에 나침반 프로그램이 있던데 여기의 대상은 주로 대학생 이상이다. 만약 그 프로그램에 중고등학생이 의뢰된다면 찾을 인력으로 세린신이 거론되면 좋겠다. 이건 나의 비젼 & 잡념. 세린신은 서른 살이고 코치를 향해 가지만 5년의 현직 경험이 있다. 교사든 코치든 이 청소년들과 함께 가게 되겠지. 그러니까 교사로 남든 다른 경로를 탐색해 가든 세린신의 첫 책은 '충심으로 길을 찾아가는 10대들에게 관심이 있습니다.'는 걸 보여주면 되는 거잖아?
세린신의 강점 (2) : 아라크네 신화 - 전략에 강했던 아테나 여신
세린신은 5월 오프수업에서 자신의 신화로 아테네 여신과 대결했던 아라크네 신화를 꼽았어. 내 속에서 부는 바람이 거세어서 간신히 수업에 참여했기 때문에 주의력이 높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베짜기를 아테네 여신과 내기를 했던 건 세린신에게도 아테네 여신의 요소가 있다고 추측했지. 아테네 여신은 군인이었고, 영웅의 뒤에서 영웅을 지지하는 여신이었고, 또 일상생활에서는 수공예와 집안살림을 관장했지. 가장 큰 특징은 전략에 능했고 승리하는 자의 뒤에 섰어. 그런데 아라크네는 제우스의 난봉질을 폭록하고 욕하는 내용을 짰어. 그러니 세린신은 여성주의의 시각이 있을 지도 모르지. (나는 다 모르지. 이건 다 내 잡념이니까.) 게다가 아라크네는 벌을 받아 거미가 되었거든. 거미는 거미줄, 연결망을 관리하지. 연구원 웨버가 그런 의미랬는데 어쩌면 그녀가 꼽은 신화에서 나는 '연결자'의 소명이 이 사람에게 있을 지 모른다고 추측했어. 그런 신화를 가진 이는 특정 과목을 가르치는 것보다 좀 더 너른 관점을 가지는 게 좋겠지. 코치든 뭐든. 나는 학교에서 교육복지 업무를 맡고 있어서 학교로 들어온 사회복지사를 보는데, 교사 경험이 있는 이가 훨씬 유리하한 것 같아. 교사 사회를 이해하지 못하니 여러 어려움이 있어. 세린신이 꿈꾸는 코치(이건 유동적인 이름이야. 아직 결정이 안 났거든)가 중고등학생을 우선 대상으로 한다면 학교생활을 다룰 수 밖에 없을 테고 그녀가 5년의 현직 경험이 있다는 건 어디서든 유리한 조건일거야.) 분명한 건 그녀가 공부하는 '길 찾기'의 공부는 첫번째 세린신이 자기 길을 찾는 데 적용되겠지. 자신을 첫번째 실험의 대상으로 삼게 될 것 같아. '
다음에 또 잡념 피어오르면 나눌께요. ^^;;; 나, 나, 나눠도 될까요? 아 막 말 더듬고 땀 삐질거리고 있어요. 혹 맘 상하게 제가 한 거 있으면 얘기해 주세요. 즉각 삭제 합니다.
'애정없이는 잡념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 문장이 떠올랐어요.
나눠주세요. 마구마구 나눠주세요.
조하리 창에서 '내가 모르는 나+타인이 아는 나'의 창을 떠들러 본 것 같은 느낌!!!
아, 정말 고마워요. (맘이 상하긴요, 오히려 감동 이 샘솟아서 넘쳐 흐르고 있어요. 콸콸콸 ㅋㅋ)
연결고리, 징검다리, 거미줄
학생과 부모를 연결하고, 학생과 학생의 꿈을 연결하고, 학생과 학생의 생활습관을 연결하고, 학생과 학생의 사랑을 연결하고
이런 것들을 연결해도 될 것 같아요.
저는 저자 조사를 하면서 학생들 나이에 첫사랑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10대에 첫사랑 경험이 많은 저자들이 많더라고요. 그들이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이성을
'니들이 뭘 알아, 대학생 되면 해.' 이런 말로 무시해버리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하루는 '너희 중 좋아하는 남학생 있는 사람?' 이러기도 했어요. ㅋ 애들은 어리둥절.
'아, 그냥 너희들도 사랑할 수 있겠다.. 싶어서 해본 말이야.'라고 하고 넘어갔지만.
언니가 나의 첫책을 위해 이렇게 잡념을 쏟아주었으니 드레그, 컨트롤 씨, 그리고 다시 한글파일을 열고
컨트롤 브이 후 인쇄. 합니다. ^^
모닝페이지.. 저도 혼자 몇번 써봤는데.. 아티스트웨이 읽고 ㅋㅋ
해볼까요, 저 언니 따라하는거 은근 많아요. ㅎㅎ
종쳤어요. 수업 들어갔다올게요.
폭풍감사를 어떻게 표해야할지, ,,, 아아,,,, 아아,,,,
나,나,더 나눠주실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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