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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9일 08시 57분 등록

S_아빠수업.JPG

<태어나서 6년>

 

1.

민호에게 유치원에서 뭐했냐고 물어보면 "뭐하긴, 놀았지" 하고 맙니다. 

민호의 대답만으로는 유치원 생활이 잘 그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유치원에서 아빠 참여 수업이 있었습니다. 잘됐다 싶더군요.

부담도 되었지만 말로만 듣던 이쁜 담임 선생님도 뵙고 민호 친구들도 볼 생각에 설레었습니다.

 

오후 두 시가 되어 민호와 유치원으로 향했습니다. 정문에서 민호는 자기 반으로 가고 아빠들만 남았습니다.

토요일인데다가 오전, 오후반으로 나누어서 신청을 받았기 때문인지 아빠들 중 3분의 2 이상은 참여한 것 같습니다.

지하 강당에 모여 원장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각 반으로 향했습니다. 민호는 '바다반'입니다.

'바다반'은 세로로 긴 모양에 테이블이 네 개 놓여져 있고, 작은 의자들이 가운데 놓여져 있습니다.

테이블은 블록놀이, 요리, 자유놀이 등을 할 수 있도록 준비 되어 있군요.

 

열 명의 아빠들이 조그만 의자에 앉았습니다. 잠시 후 아이들이 주뼜거리며 들어옵니다. 민호와 웃음으로 인사를 나눕니다.

담임 선생님의 오리엔테이션을 듣고, 아이들이 매일 한다는 자유 놀이를 했습니다.

민호는 '실놀이'와 '쥬스 만들기'를 선택합니다. 함께 놀며 반 구경도 하고, 민호와 친하다는 이안이, 동연이와도 인사했습니다.

미니 김밥도 만들어 출출한 배를 채웁니다. 강당에 내려가니 남자 체육 선생님이 몸놀이를 알려주시더군요.

같이 노래와 율동도 배우고, 아빠랑 할 수 있는 몸놀이도 따라 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역시 아빠는 몸으로 놀아야 돼" 라는 생각을 했지요.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마지막 평가활동에 민호가 앞에 나가 발표를 합니다. "몸놀이가 재밌었습니다!"

  '그래 민호야, 아빠도 재미있었다.' 속으로 대답했지요.

 

민호가 어떤 친구들과 놀고, 선생님은 어떤 분이신지, 무슨 놀이를 하는지 직접 보았습니다.

앞으로는 "동연이랑, 이안이는 왔어?", "실놀이는 어떻게 되고 있지?", "블록은 어디까지 완성됐어?"라고 구체적으로 물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럼 민호는 그냥 "놀았지"라는 짧은 대답보다는 다른 말을 생각하겠죠?

 

 

 

S_아빠노래.JPG

 

 

2.

"누구든지 자신의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반드시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족치료사 '존 브래드 쇼' -

 

아빠 참여 수업 마지막 순서는 아이들이 '아빠'라는 동요를 불러주는 것이었습니다.

'하늘은 유난히 맑고'로 시작하는 이 노래에 아이들은 율동도 하며 힘차게 부릅니다.

 

...아빠는 날 보고 말했지, 바다처럼 넓게 크라고,

아무리 거친 파도라도 참고 이겨내라고

아빠 그때는 그 말뜻이 무엇인지 몰랐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 마음을 알것 같아요...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왔습니다. 노래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 민호에게 가사를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정확하지 않은 부분은 인터넷으로 찾아 다시 확인하며 따라 불렀습니다.

특히 위의 가사가 가슴을 헤집고 파고듭니다. 뜨거운 것이 느껴집니다.

 '아빠는 나에게 뭐라고 말했지? 따뜻한 말을 들은 기억이 별로 없다. 아빠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말 수가 적은 아버지를 떠올리며 어렸을 적 나를 떠올립니다.

 '난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아이였어, 다만 아빠가 표현 못한 것 뿐이야'

애틋한 마음으로 나 자신을 위로합니다.

 

몇 번을 함께 소리 높여 불러 봅니다.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잠시 후 민호는 자기 방 창문에 붙어있는 사진을 자세히 살펴 봅니다.

사진은 네 살 때 분수대에서 놀던 모습입니다. 대견스러워 크게 현상해 붙여놓았지요.

민호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정말, 맞는 것 같아. 이때는 물이 무서웠는데, 지금은 안 무섭잖아. 이게 거친 파도 아니야? ㅎㅎ"

함박 웃음을 짓는 민호를 안아 주었습니다.

 

 S_분수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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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노래 링크 : http://qookrabbit.com/xe/index.php?document_srl=38020

<audio src="http://qookrabbit.com/xe/files/attach/images/19012/020/038/cfef135ad24570efb0028d0db8afac29.mp3"preload="meta"loop="loop"controls=""></audio>

 

 

IP *.166.205.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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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9 16:33:24 *.114.49.161

아빠님들은 저런 것이 궁금하시군요. 교사들은 일이 많았겠습니다.

아이들 사진 보면서, 눈을 아래로 내린 두 아이, 민호와 주황색 줄무늬 아이는 수줍음이 많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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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0 13:09:08 *.166.205.131

역쉬 선생님이시라 보는 관점이 다르시네요^^

선생님들은 무지 힘드셨을 꺼에요.

게다가 쉬는날이었으니. 시간외근무수당은 받았을까요?

 

민호는 낯을 좀 가려요~

자신의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는 스타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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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0 08:59:31 *.252.144.139

얼마 전 엄마 수업가서 엄마 노래 들으며 눈시울을 붉혔던 생각이 나네.

경수는 참 좋은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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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0 13:11:08 *.166.205.131

누님도 참 좋은 엄마에요.

게다가 사회에서도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는 남다른 엄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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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0 11:58:11 *.70.15.18
거친 파도... 막판에 빵터짐 ㅋㅋ
그래.... 어린이집에서 뭐하는지 알면 구체적으로 물을 수 있지..
아빠들에게 부족한 부분들인 것도 사실이고 ㅋ
오빠 글을 읽으면 맨날 울컥하네.....
오빠 글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힘... 공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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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0 13:14:19 *.166.205.131

공감해주어 고맙고 기쁘다! 얼쑤~!

왜 이런 글을 써야하는지 점점 명확해지고 있어.

우선은 나 자신을 위해서,

무의식 속에 외로운 내면아이를 가진 현대인들을 위해서.

공감을 통해 치유의 에너지가 퍼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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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3 10:55:05 *.194.37.13

나는 사진을 찍고, 컴퓨터에 담아두기만 하는데...

선배처럼 아이가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해 준다면

아빠와의 교감이 더 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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