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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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뭉친감정근육 풀기
"감정도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근육처럼 뭉쳐서 다른 감정으로 흐르지 않게 됩니다."
(<천개의 문제, 하나의 해답>의 저자 문요한님의 인터뷰 중)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날 뻔했다. 가끔 큰 한숨을 내쉬곤 할 때 깊은 숨들이 비껴갈 정도로 가슴 속에 커다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그 무엇, 하지만 손으로 만졌을 때는 전혀 만져지지 않던 그것이 바로 내가 어린 시절부터 분출하지도, 해결하지도 못한 채 차곡차곡 쌓아온 감정들의 뭉치임을 말이다. 처음의 작은 눈뭉치는 만들기 힘들지만, 일단 하나만 완성되면 그것의 눈덩이가 커지고 단단해 지는 것처럼, 내 감정 역시 그렇게 단단하게 뭉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피가 굳어 더 이상 흐르지 못하고 막히고, 터져버리기 직전의 혈관처럼 내 감정 역시 자연스레 흐르기보다는 어느 한 부분에 꽉 막히고, 또 막히고 있던 것이다.
뭉쳐진 감정근육. 오십견도 풀리는 방법이 있는데, 이 감정근육이라고 풀 방법이 없을까? 다음 날 엄마가 잠들고 혼자 방안에 들어와 벽에 기대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맥주를 마시고 싶은 기분도 전혀 들지 않는 밤이었다. 그저 '어떻게 하면 나의 뭉친 감정들을 풀 수 있을까? 내 감정들에 자유를 찾아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평소처럼 노트북에 적기는 왠지 싫었다. 무언가 다른 것이 필요했다. 깜깜했으면 좋겠고, 조금 더 나의 정신과 기억, 그리고 생각들에 온전히 집중하고 싶었다. 지난 날들 속에 내 감정들을 뭉치게한 중요한 사건들이 선명하게 떠올리고 싶었다. 고민을 하다가 모든 불을 끄고 누웠다. 이 고요한 밤, 노트와 펜을 꺼내 눈을 감은 채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노트와 펜을 찾아 베게 옆에 두고 왼손으로는 필기하는 위치를 조금씩 인지해 가면서, 하나씩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꼭 감은 눈으로 작은 불빛 하나 숨어들지 않았고, 세상은 아주 고요했다. 열린 창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왔고, 덕분에 나는 오롯이 기억을 떠올리는데 집중을 할 수가 있었다.
'뭉쳐있는 감정들'이란 단어로 시작되었다. 얼마 전 연애감정이 생긴 그 사람과의 전화통화에서 도대체 나는 왜 엄마를 떠올렸고, 그 순간 하던 말을 멈출 수 밖에 없었을까? 어릴 적 내게 엄마란 존재는 항상 "~하면 ~ 해줄게"라는 식의 조건부 사랑을 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나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지 못했다. 엄마에게 인정받기 위해 나는 '착하고, 말 잘 듣고, 시키는 대로 하고, 엄마 말에 토 달지 않는 딸'이 되어야만 했다. 물론 엄마가 시키는 것들 중,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었다. 엄마의 강요에 의해 약속을 하지만 결국 지키지 못하고 엄마에게 비난 혹은 야단을 맞게 된다. 그러는 중에 엄마가 요구하는 것이 부당하다던지, 나는 할 수 없다던지 등의 내 의견이나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고, 엄마와 의견을 조율을 하는 등의 과정도 전혀 없었다. 이처럼 나는 어릴 적에 나의 욕망이라는 것을 누군가에게 적극적으로 말해 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물론 무언가 하고 싶다고 얘기한 적은 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엄마가 단호한 말투로, 단번에 '안 되'라고 말하면 더 이상 얘기하지 않고 금새 포기해 버렸다. 내가 '왜 하고 싶은 건지, 그것을 통해 내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엄마가 걱정하는 것들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얘기하고 엄마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해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내게 엄마란 존재는 한 번 '아니'라고 하면, 그 결정이 절대 번복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하고 싶은 것이 좌절되면 나는 늘 이불 속에서 서럽게 울곤 했다. 울음이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가장 적극적이고, 거의 유일한 표현방식이었다.
나는 왜 엄마를 이해시키거나 설득할 수가 없었을까?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려는 것 등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반면에 엄마는 늘 확신에 차 있었다. '내가 그것을 하지 말아야 할 이유. 그것을 했을 때, 내게 올 부정적 영향들' 등 여러 가지 닥쳐올 것들에 대한 확신이 엄마에게는 있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엄마의 말이 옳은 것인지, 내 말이 옳은 것인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아는 것이지만, 나는 항상 엄마만큼의 확신이 없었고, 엄마를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무언가 허락을 받아야 할 때면 '얘기해 보고 아니면 말지 뭐'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얘기 해 보고 결국 못하게 되면, 아주 쉽고 빠르게 포기했다. 그리고 '그래,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이것이 아닐거야, 더 좋은 기회가 있을거야…' 등등의 말들로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과정이 늘 뒤따라왔다.
'아님 말고'.
이 말은 어느 새 내 인생에서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일을 시작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지 다른 기회가 올 거라 믿으며 바로 포기해 버린다.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다. '아, 내가 싫어? 그러면 할 수 없지.' 혹은 '너 왜 이 모양이니?' 이런 생각이 들면, 미련 없이 그 관계를 정리할 수 있다. 친구, 연인 관계 등 대부분의 관계들에 적용되었다. 그리고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 위한 합리화가 습관적이고 자동적으로 진행된다. 마치 내 마음 속에는 '아님 말고'와 '합리화'라는 두 라인만을 가진 마음의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연애란 상대가 막 좋아지기 시작하고 열정적으로 타오르는 감정. 그 감정이 끝나면 비로소 사랑이 시작된다. 사랑은 서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 문요한
'아님말고'는 연애 감정으로까지 이어졌다. 꽉 막혀져 있던 감정들이 불이 확 타오르듯 시작한 연애는 늘 그 불꽃 같은 감정이 사라지는 순간 끝나버렸다. 그리고 나는 또 다시 '활활 타오르는 감정을 만나게 해 줄 또 다른 대상'을 찾아 나섰다.'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란 사랑의 정의는 내게 또 다른 충격이었다. 저런 정의라면 나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사랑'을 해 본적이 없는 것이 아닌가. 너무나 좋아했고, 오랜 시간 잊지 못했던 첫 사랑부터 그 이후에 만났던 사람들까지 나는 계속 일방적으로 이해를 받기만 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첫 사랑은 내가 이해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다리다가 결국 지쳐 나를 떠나갔고, 그 이후의 사람들은 내가 이해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왔을 때마다 내가 도망쳤다. 이렇게 나는 뭉친 감정을 풀 수 있는 해법 중에 하나일 수 있는 '사랑'조차 제대로 해 본적이 없어서, 나의 뭉친 감정들은 풀릴 기회가 없던 것이다.
어제 밤, 어둠 속에서 그간 단단히 걸려있던 감정의 빗장들을 하나씩 풀고, 감정들을 가두었던 당시의 나와 대화를 하면서 울었다. 하지만 이전에 흐르지 못해 터질듯한 감정으로 인한 눈물과 달리, 이번의 눈물은 꽉 막혀 있던 감정들을 녹이고, 그로 인해 숨통이 트이게 만드는 눈물이었다.
미나가 마음의 소리를 듣고 있구나.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엄마가 안 된다고 해도 했던 일이 많았던것 같은데.
대구에서 서울로 대학을 진학한 것(그것도 사립대학)도 그렇고 지금 별다른(?) 수입없이 삶의 모색을 하는 것도 그렇고.
나는 두 아이의 엄마라서 그런지 미나 어머님이 많이 이해되는구나.
나도 아버지의 인정에 항상 목말랐지만 이제 생각해보니 그건 인정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나름의 사랑하는 방식이었어.
미나야, 어머니를 이해하려고 노력해라.
어머니도 힘든 삶을 이어오고 계시잖니.
- 어줍잖은 조언을 해도 되나 망설이는 언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