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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 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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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1일 12시 59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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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1가로 들어서기 전, 경희궁 쪽에서 보면 맞으편에 커다란 망치를 든 사람이 있습니다. 밤낮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을 보면 시지프스처럼 안됐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합니다. 이 사람이 계속해서 망치질을 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을 '일하는 사람'으로 부를 수 있을까요?

 

<인생으로의 두번째 여행>에서는 '생명나무'라는 것이 나옵니다. 그 나무는 황금으로 빛나고 가지가 녹아 뚝뚝 황금물이 흐르고 떨어집니다. 뜨거운 황금물이 솟는 곳의 중앙에 있으며, 그 주변은 수증기가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뜨거운 수증기에 가지가 녹고 다시 새로운 가지를 만들어 계속해서 밝게 빛을 내는 나무입니다. 가지의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는 이 나무를  이전의 나무와 동일한 나무로 간주할 수 있을까요? 이전 것들은 녹아서 없어져 버리고 새로운 가지로 만들어졌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소멸과 생성을 반복하여 이전과는 닮았지만 이전의 나무가 아닌 새롭게 만들어지는 나무가 생명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 속성이 없다면 밝게 빛나지도 않을 것입니다. 만일 그 거대한 사람이 망치질을 멈추면 그를 '일하는 사람'으로 불러야 하는가를 의심했던 것처럼.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자신이 만든것이 계속 사라져버리더라도 다시 또 만들어내는 생명나무가 떠올라서 일하는 사람이 부러웠습니다. 자신이 만든 것이 자기와는 상관없이 멀어져가고, 때로는 자신이 만든 것을 부인하고, 자신의 손으로 부수고 새로운 것을 만듭니다. 그러나 일하는 사람은 새로 만들어내는 것만은 멈추지 않습니다. 그것이 빛나게 하는 요소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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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2, 2012 *.229.131.221

단 '행복한' 일하는 사람이 되려면 그 노동이 자기 자신에 속한 '내적' 노동이 되어야겠죠.


(조금 길지만....)


"노동자는 노동 바깥에서야 비로소 자기가 자신과 함께 있다고 느끼며, 노동 속에서는 자기가 자신을 떠나 있다고 느낀다. 노동자는 자신이 노동을 하지 않을 때에는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고, 노동할 때에는 편안하지 못하다. 그의 노동은 그러므로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강요된 것, 강제노동이다. 그 노동은 그러므로 어떤 욕구의 충족이 아니라, 그의 노동 바깥에 있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 외적 노동, 즉 그 속에서 인간이 외화되는 노동은 자기희생의 노동, 고행의 노동이다. 끝으로 노동자에 대한 노동의 외적 성격은 노동이 노동자의 것이 아니라 다른 어떤 사람의 것이라는 것, 노동이 노동자에게 속하지 않는다는 것, 노동자가 노동 속에서 자기 자신에게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속한다는 것에서 나타난다." - 마르크스, 경제 철학 수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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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24, 2012 *.72.153.115

행복한 일하는 사람, 좋다.

나중에 '바람이 불고, 꽃이 피고, 그리고 비가 왔다. 계절이 바뀌었다. 나는 나의 일을 계속 했다.'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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