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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4일 17시 38분 등록

냄새의 기억

 

 아이와 손을 잡고 건널목에 서 있다. 비온 뒤, 깨끗한 공기가 마음을 상쾌하게 했다. 거기에 신선한 바람까지 불었다. 어디 선가 여자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왔다. 3시방향, 하얀 민소매 셔츠에 짧은 스커트 입은 여자가 걸어왔다. 그녀는 아이 옆에 멈춰섰다. 좋은 냄새였다. 몸이 그녀에게 약간 기울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향수를 기억하기 위해 천천히 숨을 들이 마셨다. 아이가 아빠의 달콤한 상상을 눈치라도 챈 것일까? 아이는 나의 손을 잡아 당겼다. 그리고는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아빠, 이 아줌마 똥냄새나", 그녀의 눈과 마주친 나는 시선을 신호등으로 돌렸다. 빨간불이 녹색으로 바뀌었다.

 

14년전 어느 여름날이 떠올랐다. 폐수처리장에서 일하고 있을때다. 날씨가 뜨거워질수록 폐수가 저장되는 저류조 냄새는 더욱 지독해진다. 어느 정도 차있는지 가늠하기 위해 안쪽을 쳐다보고 있으면, 톡 쏘는 암모니아 냄새로 정신을 잃어 버릴 정도였다. 시커먼 폐수가 나를 삼키기 위해서 노려보는 것만 같았다. 혹여 폐수 한 방울이라도 튀어서 손이나 옷에 묻을 때면,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계속해서 비누나 세제로 씻어내도 지워지지 않고 일주일 동안 머리 속을 어지럽게 했다.

그 날은 햇빛이 강하게 내리 쬐는 토요일 오후였다. 주말에는 평상시보다 적은 량의 폐수가 들어온다. 차량 한 대가 처리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처음 보는 운전기사였다. 차량 중량을 확인하기 위해서 저류조가 있는 쪽으로 걸어내려 갔다. 깔끔하게 차려 입는 운전기사였다. 첫 눈에 초짜임을 직감했다. 그는 투입하는 방법을 설명해 달라고 했다. 직접 해 보진 않았지만, 옆에서 계속 지켜봤던 터라 설명을 해주었다. 건너편에서 김반장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

똥쟁아, 문화여고에서 왔는데, 잘해 드려라

여고 똥 냄새는 다른가. 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설명을 들은 운전기사는 투입구에 파란 호스를 연결했다. 호스를 채울 때 둔탁한 소리가 들렸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리고 나는 녹색 버튼을 힘있게 눌렸다. 왜 항상 불길한 예감은 사건이 터지고 난 뒤에 오는 것일까? 예감이 뇌리를 스치는 것보다 똥물이 투입구 옆으로 분출되는 속도가 더 빨랐다. 급하게 빨간색 버턴을 눌렀지만 펌프의 압력은 버튼의 속도를 추월해버렸다. 똥물은 하늘로 솟구쳐 올랐고, 분수가 되어 운전기사와 나에게 쏟아졌다. 눈을 감았다. 덩어리는 머리 위로 철퍼덕 내려앉았고, 똥물은 머리에서 얼굴로 흘러내렸다. 이어서 가슴과 등으로 갈라진 똥줄기는 온 몸을 감싸버렸다. 나를 포기해버린 순간이었다. 누군가 정지화면 버튼을 눌렀는지 나는 땅 위에 꼼짝없이 얼어버렸다.

"빨리 옷 벗어" 김반장의 목소리였다.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똥물의 감촉은 몸을 오그라뜨렸다.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차가운 물줄기가 가슴에 부딪쳤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손에 묻은 똥을 털어내고 작업복 상위 단추를 풀었다. 그리고 지퍼를 내리고 바지를 벗었다. 마지막으로 붙어버린 팬티를 힙겹게 벗어냈다. 불을 끄는 소방호스가 똥물을 털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섰다. 김 반장이 소방호스 방향을 위로 고정시키자, 방금 전까지 똥물을 쏟아내던 하늘은 깨끗한 물줄기로 바뀌었다. 씻겨 내려간 똥물은 하얀 콘크리트를 누렇게 물들이며 민들레가 뿌리내린 틈새 사이로 스며들었다. 내 몸 깊숙히 냄새가 흡수된 것처럼 말이다. 하늘에서 축복이라도 하듯이 무지개가 떴다. 민들레도 노랗게 웃었다.

똥쟁아, 여고 똥 맛이 어때? 괜찮아 김반장이 놀리면서 말했다. 그가 너무 고마웠다.

"그 이상인데요" 두 팔을 펴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는 빗줄기를 맞았다. 벌거벗은 내 몸 속에 어떤 변화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온 몸으로 그 냄새를 기억하며, 누런 얼룩들을 하나씩 지워냈다.

 

 그 사건 이후부터, 나는 냄새에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바람에 실려오는 작은 냄새까지도 말이다. 냄새의 파편들은 일상의 기억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의 향수, 긴 머리에서 나오는 샴푸냄새, 다가갈때 화장냄새, 키스할 때 느껴지는 살내음, 이런 아내의 냄새는 내 몸속에 기쁨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손에 무언가를 잡으면 냄새부터 맡는 습관이 생겼다. 음식을 먹을때도 아이 기저귀를 갈아줄 때도 어김없이 코를 갖다 댄다. 한 번은 아이 똥을 쪼물딱 거리면서 냄새 맡는 모습을 아내가 보고는 놀란적이 있다. 단지 아이를 더 가까이 느끼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이러한 감각은 최근에 책을 만나면서 더 깊어지고 있다. 오래 전 하늘의 축복을 온 몸으로 받아서 일까? 책에서 글향기를 느낀다. 저자의 목소리, 숨결 그리고 따뜻한 마음까지 그 향기에 담겨져 있다. 신화를 읽으면서 보았던 원시적인 언어들은 인류의 체취를 물씬 느끼게 해주었다. 그러한 원시적인 냄새는 나를 자극하고 이끌었다. 계속해서 고전들을 파고들어가게 했으며, 저자의 아름다운 향기를 기억하게 했다. 이번 <파우스트>에서도 다양한 글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메피스토와의 대화에서는 고약한 폐수의 냄새를, 파우스트가 고뇌하는 장면에서는 묵은 종이향 냄새를, 그레트헨과 사랑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싱싱한 장미꽃 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 괴테는 언어의 마술사였다. 온갖 종류의 언어들이 그의 손에서 새롭게 태어났으며, 59년에 걸친 긴 집필과정에서 묵은 언어들은 성숙한 인간의 향기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큰 아이도 나를 닮아서인지, 책장을 넘길 때마다 냄새를 맡는다. 마음에 드는 책일수록 책장을 흔들면서 냄새를 맡는다. 아이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 내가 쓴 책 속에는 어떤 향기가 묻어나올지 상상해 본다. 지금처럼 똥냄새가 묻어나면 안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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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6 14:19:22 *.51.145.193

너도 행님이 좋아한다는 그 냄새들이 좋아요~ㅋㅋㅋ

냄새, 내 심연을 건드리는 '너'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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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7 06:44:25 *.131.23.132

김해에서 너무 즐거웠어~^^

김해의 밤 하늘을 재용이 덕분에 제대로 기억하고 왔어,

간만에 재용이 이야기 많이 들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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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6 16:18:19 *.114.49.161

정말 저렇게 한 통 뒤집어 썼어요? 똥  세례네요. 똥 세례

아, 우리가 똥차라고 불리는 길다란 파랑 호스 가진 차들이 집결하는 곳에서 일을 하셨던가 보다 해요.

작년 가을에 김포 매립지에 가꿔진 국화정원을 보러 간 적 있었거든요.

거기 독특한 냄새와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영화 속 장면 같은 언덕들을 보면서

문화충격같은 걸 받았어요. 더구나 담배금지라고 하더라구요, 폭발 위험이 있다고요.

남하고 다른 일을 하시는 분들이 거기서 보는 것,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걸 많이 듣고 싶어요.

연속극 보다 더 재미있을 것 같아요.

한젤리타님의 똥 이야기도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면서도 가려져 있던 어떤 것이려니...기대 만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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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7 06:48:07 *.131.23.132

아이들에게 똥 이야기해주면 무지 좋아하는데, 특히

아빠가 똥세례 받았다고 하면 말이예요.

하지만 어른들에게 이야기하면 냄새난다고 그래요.

누님말대로 만화영화나, 환타지 소설에서 똥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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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7 01:28:46 *.166.205.132

이번에도 단편 소설처럼 느껴지는 글.

실화이기에 더욱 와닿는 글이네.

여고 똥 맛 제대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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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7 06:54:19 *.131.23.132

이번엔 너무 똥냄새 나지? 힘빼고 적어야 하는

너무 힘이 들어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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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8 20:37:17 *.68.172.4

리타 오빠, 매우 강렬한 에피퍼니입니다. 똥물 샤워에서 카타르시스가 전율이네요 마치 어둠의 다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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