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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2일 02시 41분 등록
 

저자에 대하여

 

저자 앙드레 보나르 Andre Bonnard (1888~1959)

 

앙드레 보나르는 그리스 문명사의 고전을 쓴 저자로 평가된다. 그에 비해 저자 정보는 턱없이 부족한데, 그의 <그리스인 이야기>의 책 앞 뒤를 뒤적여 보아도 저자를 추론할만한 근거는 찾을 수 없다. 그는 헤로도토스만큼이나 자신에 대한 언급을 꺼렸다. 동시에 불우했던 정치적 개인사로 미루어 보아 그의 정보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억압되고 차단된 것은 아닌지 꽤나 신빙성있는 의문을 품게 된다.

 

보나르는 1888 4 16, 스위스 로잔에서 태어났다. 로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후 1915~28년 로잔 중학교와 고전 김나지움에서 14년 동안 선생님으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그리스 문명에 관심이 많았다. 이 관심은 번역으로 이어졌다. 그는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로 불리는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을 불어로 번역하였고 이것이 그의 책 작업의 시초였다. 보나르는 1928년 그리스 문화의 주요 신화인 프로메테우스를 다룬 《프로메테우스 Le Promethee》를 처음 집필하였다.

 

학문에 대한 꿈을 접을 수 없었던 그는 만 48세의 나이인 1936년에 늦깎이 학생으로 돌아가 그르노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938년부터 1957년까지 로잔 대학 그리스어·그리스 문학 교수를 지냈다. 그는 학생들을 가르쳤던 경험과 자신의 그리스 문명에 대한 애정으로 일반인에게 보다 쉽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스의 신들 Les dieux de la Grece(1940) 《안티고네 Antigone(1942) 《플라톤이 본 소크라테스 Socrate selon Platon(1944) 《오이디푸스 왕 Oedipe-Roi(1946) 《사포의 시 La poesie de Sapho(1948) 《비극과 인간 La tragedie et l?homme(1950) 등 핵심 화두들을 신전의 벽돌을 쌓듯이 하나 하나 완수해나갔다.

 

그는 또한 행동하는 인문주의자였다. 그가 선생님과 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당시는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다. 평화를 사랑하였던 보나르는 1949스위스평화운동의 회장으로 추대되어 활동하였다. 그리고 1952, 그의 역사에서 잊혀지지 않을 사건이 벌어졌다. 1950년에서 1954년까지는 매카시즘의 차가운 피바람이 불던 때였다. 보나르는 국제평화수호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동베를린으로 가던 중 스위스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그가 소련의 스파이라는 혐의였다.

 

보나르는 국제 평화 위원회의 쿠리에 총재에게 '스위스적십자위원회 위원 명단'을 보낸 적이 있었다. 경찰은, 쿠리에 총재는 앙드레 보나르로부터 넘겨받은 명단을 폭로해 국제적십자위원회를 정치적으로 무력화시킬 계획이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중국과 북한으로부터 생화학 무기를 살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던 미국은 적십자위원회를 통해 조사단을 보낼 생각이었는데, 이 위원회의 구성원이 친자본주의 세력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폭로는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정치적 비중상 그리 대단한 기밀정보는 아니었으나, 앙드레 보나르와 쿠리에 총재는 매카시즘의 세력에게 일종의 본보기로서 처단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평생 파시즘과 나치즘에 저항하며 지식인의 양심을 지켜왔던 보나르에게는 대단히 모순된 생의 위기였다. 매카시즘의 그늘 아래에서는 모든 것이 의심받는 상황이었으며, 결과는 즉결 재판으로 참혹했다. 보나르는 다른 깨어있는 지신인들의 신념에 마지막 사활을 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지식인들이 일어섰다. 메를로 퐁티는 "이것은 권력과 지성의 새로운 투쟁"이라고 말했다. 클로드 로아, 엘리아르 등도 지지를 표명했다. 재판에 앞서 앙드레 보나르를 지지하는 움직임이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당시 그를 지지하기 위해 뿌려진 8만장의 전단에는 "스위스에서도 마녀 사냥이 벌어지고 있다" 라고 쓰여져 있었다.

 

1954 3 29, 드디어 재판일이었다. 연방 법정에는 매카시즘의 무리와 소수의 반대자들, 기자들, 그리고 지식인의 몰락을 보기 위해 엄청난 구경꾼들이 몰려들었다. 보나르는 재판에서 힘주어 자신을 변호하였다. "나는 스파이가 아닙니다. 평화를 위해 힘쓰는 것이 이적행위일 수는 없습니다."

 

당신들이 나에게 사형을 언도한다면, 그 결정은 내가 아닌 당신들에게 부당하게 해를 입히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나는 지금 나 자신을 변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나는 지금 당신들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최후 변론에서 <그리스인 이야기2, 앙드레 보나르>

 

그러나 재판은 이미 결과가 정해져 있었다. 소크라테스를 부정한 소피스트로 전락시킬 수 있다면, 앙드레 보나르를 영혼을 판 소련 스파이로 만드는 것은 너무나도 쉬운 일이었다. 아리스토파네스가 현현한 듯한 한 유명 칼럼리스트는 이렇게 썼다. "어리석고 지각이 없을 뿐더러 부주의하고 증오로 가득 찬 어느 교수가 정치적인 열정으로 인해 망가지고 말았다." 마치 같은 지식인의 몰락을 애석해하는 듯한 이 문구는 신문을 통해 대중에게 뿌려졌고 곧 보나르의 무덤이 되었다.

 

형량은 매우 비열하였다. 그는 15일 구류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높은 형량으로 뭍 지식인들의 분노를 자극하지도 않았지만 유죄였기 때문에 그의 죄는 확증되었다. 어제의 지성인은 오늘의 변절자가 되어 나락의 끝에 걸렸다. 동료교수들과 지식인 친구들이 그를 떠나갔다. 그는 평생 몸담았던 로잔 대학에서 명예 교수가 되지 못했다. 그는 고향에서 유배를 당한 셈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누구도 앗아갈 수 없는 정신이 있었다. 바로 그리스에 대한 애정이다. 앙드레 보나르는 두 눈을 찌른 오이디푸스처럼 영광의 권좌에서 내려와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였다. 그는 자신에게 명예 교수직을 거부했던 로잔 대학에 그대로 남았다. 그리고 그리스 문명사에 관한 연구를 집대성하기 시작했다. 안티고네를 쓰면서 자신이 추구했던 개인의 양심에 대해서 생각했으며, 솔론을 정리하면서 민주주의에 끓어올랐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눈물로 쓰지 않았을까? 노학자는 그렇게 <그리스인 이야기> 2-3년 간격으로 묵묵히 써냈다. 그리고 마지막 3권의 집필을 끝낸 후 며칠 후 사망하였다.

 

저자 자신의 인생에 대한 단 한 줄의 언급도 없이, 첫장부터 그리스를 말하는 한 노 작가의 감정선이 읽힌다. 그가 초연하고자 했던 그 경지를 우리는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인생의 뒤안길에서도 서슬 퍼렇게 살아있는 그의 사유가 매력적이다. 그를 알고 난 후 다시 읽는 <그리스인 이야기>에서, 우리는 앙드레 보나르라는 한 사람이 고대 그리스의 셋트장을 배경으로 쓸쓸하고 자유롭게 거닐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스인 이야기1

 

12

다시 찾아온 봄을 기념하기 위해 그리스 사람들은 염소 혹은 소 모양을 한 신 디오뉘소스와 아테나이 최고집정관의 아내, 즉 아테나이 '여왕(Reine)'의 결혼식을 거행한다. 시민들은 1년 내내 닫혀 있던 시골의 허름한 신전으로 달려간다. 자신들이 선출한 관료들을 앞세우고 노래를 부르는 긴 행렬이 신전으로 향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거기서 나무로 만든 신의 형상을 들어다가 ''궁으로 옮긴다. '여왕(아테나이의 여왕은 아테나이 혈통을 가진 처녀 가운데서 최고집정관이 직접 고른다)'과 하룻밤을 보내게 하기 위해서다. 그저 상징적인 의미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나무로 만든 신관 몸을 섞는, 말 그대로 첫날밤이 시민들의 열렬한 관심 속에서 치러진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해 농사가 잘되고, 과실이 풍성히 열리고, 포도밭에 햇볕이 가득 내리쬐며, 모든 군대와 가족들이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è 그 뻣뻣한 나무를 여왕의 몸에 들이미는 것은 여왕 자신일까 아니면 다른 '시종'일까? 꽤 충격적이다. 의무적인 숭고한 성행위나무와.

 

13

기근이 들거나 역병이 돌면 산 사람을 돌로 쳐죽여 제물로 바쳤다. 바보, 병신이나 사형수 같은 인간쓰레기들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따로 모아두었다. … 제물이 된 사람의 남근을 나뭇가지로 일곱 번 내리친 다음 그것을 태워 가루로 만들어 바다에 뿌린다. … 살라미스 해전. 그리스군의 총사령관 테미스토클레스는 최고집정간의 친조카 세 명의 목을 졸라 죽였다. 민족의 승리를 위해.

 

15

테바이를 제외한 그리스의 모든 도시에서 가장인 아버지는 새로 태어난 아이를 버릴 권리가 있었다. … 또 아테나이를 빼고 모든 그리스 도시에서 아버지는 다 큰 아이를 노예 상인에게 팔아먹어도 괜찮았다. 이 두 가지 권리를 잘 이용하면 부잣집에선 유산을 한 자식에게 몰아줄 수 있었다.

 

21

그들은 어째서 그것들을 발명하고 발견하는 데 매진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해서이다.

è 정확한 대답이 아니다. 필요에 의해서겠지. 게다가 너무도 뻔한 질문과 대답 형식을 여기서 굳이 사용할 필요가 있었을까?

 

23 무식한 유목민, 토착 에게인에게 문명을 배우다.

 

27 크레테의 여인들은 그리스의 여인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유를 누렸다.

è 그래서 문명이 발전한 것 아닐까?

 

37 그리스인들은 다 알고 있었다. 야만족들은 수천 년 전에 이미 문명국으로 진입했으며, "우리 그리스 민족"들은 그들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43 의사들은 조합을 결성해 나름대로 규칙을 세우고, 비법을 전수하고, 마을마다 돌아다니면서 진통제나 처방전을 팔고 다녔다. 그 처방전이 바로 의사들의 사유재산이었음은 물론이다.

 

44 문명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 조금이라도 더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분투해온 것들의 결과물이다. 그 안에 그리스 민족이 끼어 있을 뿐이다.

 

<일리아스>와 호메로스의 휴머니즘

 

50

일리아스

첫째는 아킬레우스의 분노

둘째는 그리스 연합군을 이끄는 뮈케나이의 왕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 사이의 알력

셋째는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아를 정복하는 장면

 

55 트로이아 전쟁은 기원전 12세기의 일이고, 호메로스가 <일리아스>를 쓴 것은 기원전 8세기였다. 따라서 4세기라는 시차가 있었다.

 

56 호메로스의 시대에는 역사상 그 어느 시기보다 계급 갈등이 심했다. 땅 한 뙈기도 갖지 못한 무산 계급은 상인들과 합세하여 지주 계급을 무너뜨리려 했다. 특히 지주 계급들의 문화와는 다른 자기들만의 독특한 문화에 대한 욕구를 가지게 되었으며, 그 결과가 바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 이 작품의 등장은 상인계급의 등장과 관련이 있다. 상인 계급에 의해 여러 도시로 퍼져나가 그리스 민족 전체의 유산이 되었다.

 

66 디오메데스만이 혼자서 아프로디테를 쫒고, 아폴론과 맞서고, 전쟁의 신 아레스를 친다. … 아킬레오스의 정열이 우울하고 엄숙한 것이라면, 디오메데스의 정열은 밝고 경쾌하다. 광신도의 열정이다.

 

72 그렇게 생각하면 파리스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신이 만든 사람이다. 파리스는 신 내림의 결과다. 파리스가 느끼는 사랑도 신이 준 것이다. 사랑은 자기가 하지만 사랑 자체는 신의 속성이다. 따라서 파리스 안에는 두 가지가 공존한다. 하나는 경솔하고 비루한 인간이고, 다른 하나는 온전한 신이다.

è 인간의 면죄 따위는 필요 없는 신. 신으로 산다는 것. 누구나 욕하지만 사실은 부러워하는 삶의 방식이지.

 

73

파리스의 정반대편에 헬레네가 있다. 둘 다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파리스와 헬레네는 속마음에서 극과 극이다.

è 둘을 비교하다니 신선하다. 헬레네는 모습만 ""의 모습. 신의 전지전능한 자만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건 대부분의 미남, 미녀에게서 나타나는 자아관념과 비슷하다. 미남들은 자신감이 넘치고 미녀들은 자만을 억누른다.

 

79 <일리아스>에는 총 네 개의 축이 있다. 브리세이스, 아가멤논, 파트로클로스, 헥토르다. 아킬레우스는 축이 아니다. 네 개의 축 사이를 제 감정에 못 이겨 미친 듯이 돌아다니고 있는데 불과하다.

 

80 그가 그나마 잔잔했던 순간은 아가멤논에게 당한 다음이다. 꼭두각시밖에 안 되는 자가 자기를 능멸하자 아킬레우스는 그만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가 된다. 너 다 가져라는 식으로 나온다.

è 가장 현명한 반응은 무엇이었을까? 나도 비슷한 감정을 느껴보아서 잘 알고 있다.

 

83

아킬레우스는 삶을 누구보다더 사랑하는 사람이다. 아주 열렬히 사랑한다. 다만 그는 현재를 사랑할 뿐이다. 지금의 감정과 지금의 움직임만 사랑한다.

 

호메로스의 말대로 "그의 심장이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을 때 무기는 그에게 날개가 되어 사람들 위를 날아다니게 한다."

 

아킬레우스는 한 번도 죽음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죽음은 없다. 왜냐하면 현재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è 아킬레우스는 매우 매력적인 캐릭터로, 의식하였건 하지 않았건 간에 인률 문학사에서 많은 아류를 만들어냈다. 아킬레우스는 완벽해서 매력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강력하되 약하기 때문이다. 아킬레우스의 뒷꿈치가 상징하는 것처럼. 필멸의 긴장이 우울하게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그가 불멸의 캐릭터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저자의 말대로 "현재를 살았기에 죽음을 개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87

보리를 듬뿍 먹고 오랫동안 마구간에 누웠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으로 뛰쳐나와서는

땅을 쿵쿵 울리는 걸음걸이로 내달려 맑은 물에 뛰어든다.

갈기를 흔들고 물에서 솟구쳐 암말 사이에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종마.

헥토르는 종마를 닮았다.

è 리더급의 남성을 종마에 비유하는 것은 호메로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군.

è 금성무, 양채니의 <타락천사>에서 양채니는 조향사다. 죽은 예전 남자친구의 향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지만 연이은 실패에 눈물을 흘린다. 이들의 이웃인 게이 남자는 양채니의 옛 남자친구가 "검은 숫소"같은 남자였다고 회고한다. , 헥토르 같은 남자였다는 뜻이겠지. 이 남자는, 아무리 잘생긴 금성무와 같은 천사도 이길 수가 없다. 지상의 아름다움은 천상의 것을 능가한다. 거기엔 애욕이 느껴지니까.

 

87 소크라테스의 말을 빌리면, 헥토르의 용기야말로 최상급의 용기다. 두려움이 뭔지 알지만, 동시에 그것을 극복하는 용기이기 때문이다.

è 나는 시험 분량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시험 공부를 하지 않았지. 나는 좀팽이야. 파리스보다도 못한

 

"흉악한 얼굴을 한 괴물 같은 "아이아스가 다가오자, 헥토르는 두려운 표정을 ㅇ감출 수가 없었다. 인간이면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심장이 "요동을 쳐" 어깨가 들썩거릴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는 두려움을 다스릴 줄 알았다.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 싸움의 기술을 기억해내는 것이다. 그는 아이아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이아스, 어린애들 겁주는 식으로 덤비지 마라. 나는 싸움에 관한 기술을 알고 있으니까. 사람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너무 잘 알아. 이 가죽 방패를 오른쪽 왼쪽으로 자유자재로 움직일 거고, 우리 몸이 부딪치면 전쟁의 신 아레스처럼 춤을 출거야.

 

89 동생 폴뤼다마스의 불길한 계시에 대하여 헥토르의 말.

가장 확실한 계시는 조국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94 헥토르에게 죽음의 순간은 투쟁의 순간이다. 그는 신들이 점지한 운명에 맞서는 인간이다.

è 신은 헥토르에게 죽음을 운명으로 정했는데, 헥토르는 죽음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듦으로써 신에게 투쟁하였다.

 

오뒷세우스와 바다

 

문명은 노력과 업적의 기록이다. 호메로스의 두 번째 서사시는 인간이 이룬 것 가운데 가장 위대한 업적에 대한 이야기다. 어떻게 바다를 장악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106 스칸디나비아나 인도의 전래동화에 나오는 (떠난 아버지의 귀환)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109 기본적으로 인간이 감히 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던 것만큼은 틀림없다.

 

120 아무래도 이게 가장 좋을 것 같다. 이 나뭇조각들이 서로 잘 붙어 있는 한 여기에 의지해서 괴로움을 견뎌내리라. 만약 심술쟁이 파도가 이 나뭇조각마저 부숴버리면 그때는 헤엄을 칠 것이다. 그게 나의 전략이다.

 

아르킬로코스, 시인과 시민

127 기원전 7세기 그리스에서는 이민이 하나의 유행이었다.

 

128

시에서 직접 밝힌 것처럼 아르킬로코스는 서자다. 어머니는 애니포라고 불리는 노예였다. 그럼에도 아르킬로코스는 한 번도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겼다. 노예와 모험을 좋아하는 한량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차별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친부가 인지를 하기만 하면 다 같은 파로스의 시민이었다. 다만 한 가지 불편한 점은 서자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133 당신의 부드러운 피부는 더 이상 향기롭지 않고, 이제 비로소 시들어가고 있소

è 여성들의 나이듦에 대한 두려움을 자극하는 말이다. 지독하군. 네오불레에게.

 

133 그럴 수 있다면 네오불레의 손을 만지고 싶다…… 그리고 달아오른 그녀의 몸에 내 몸을 밀러넣고, 허벅지끼리 마구 문지르고 싶다.

è 이 부분을 저자는 "사랑과 증오의 감정이 한데 섞인 시"의 예로 들었다. 어째서일까? 그녀에 대해 음탕한 이야기를 해서?

 

135

아르킬로코스의 이런 시구 (죽이고 보니 겨우 일곱 명 잡자고 우리 천 명짜리 군대가 생난리를 피운 거로군) 를 보면, 호메로스로부터 얼마나 멀리 떠나왔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140 아르킬로코스는 호메로스의 시구들을 가득 채운 그 '명예'를 참을 수가 없다. 명예는 봉건사회의 덕목이고, 우매한 대중들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명예롭기 보다는 행복해야 한다. 즐거워야 한다. 그게 바로 아르킬로코스의 철학이다.

 

남의 눈치를 보느라 즐거움을 잃어버리는구나.

 

이 한 줄의 시구와 <일리아스>를 비교해보라. 가령 <일리아스>에서는 "나서라. 겁쟁이여! 굴복은 가장 처절한 패배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우리는 명예롭게 죽을 것이다"라고 수도 없이 외쳐댄다. 하지만 아르킬로코슨느 <일리아스>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아르킬로코스는 인생이란 모름지기 즐거워야 하며, 그를 위한 투쟁만이 가치 있다고 말한다.

è 아르킬로코스의 태도, 무척 마음에 든다.

è 그러나 전쟁에 나가는 이들, 가령 헥토르와 같은 경우, 행복을 위한 전투였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행복과 명예는 각기 다른 벡터를 가지고 있지만 교집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서사시에서 영웅은 죽음으로써 명예를 지킨다. 아킬레우스도 그렇고, 헥토르도 그렇고, 심지어 여자인 헬레네도 그렇다. 죽음으로써 다음 세대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한다. 하지만 아르킬로코스는 다르다. 죽음은 그저 사라지는 거라고 본다. 죽음보다는 삶이 낫다.

è 나도 그리 생각하였는데, 파우스트의 "소우주"를 읽은 후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죽고 나면 명예는 잊히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살아 있으라. 살아 있음의 멋을 즐겨라. 죽음은 상실에 불과하다.

è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아킬레우스처럼? 혹은 헥토르처럼? 결국 자기 꼴리는대로 사게 되겠지.

 

위에서 본 시구처럼, 아르킬로코스는 리얼리즘이라는 새로운 길을 잡았다. 그럼으로써 동시대인과 자기 자신의 감정, 사상을 충실히 담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호메로스 시대의 가치, 즉 영웅주의에 대해서 독설을 퍼붓는 이유도 바로 동시대인들을 더 자유롭게 하기 위함이다.

 

142 <난파선에서>라는 시를 한 번 생각해보자. 친구들과 누이에게 닥친 불행을 생각하면서, 아르킬로코스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비탄에 젖고, 위로의 시를 쓴다. 하지만 곧 자기의 감정에서 자유로워진다. 아무리 사랑이 위중한 것이었어도 그 때문에 포로가 되지는 않는다. 감정의 노예가 된 사람들은 인생의 기쁨을 누릴 수 없다.

è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è 자유주의자?

 

143~144

가슴이여, 내 가슴이여, 고칠 길 없는 내 가슴이여,

힘을 내라. 적들에 맞서 반격을 준비하라.

사악한 자들의 늪에서 실족치 마라.

이겼다고 교만에 들뜰 일도 아니고

졌다고 빈집에 웅크려 있을 일도 아니다.

승리를 즐기고, 패배를 쓰라려 하되, 지나치지 마라.

삶에 언제나 있을 높낮이를 배우라……

모르는 곳에서 고통이 문득 닥쳐오리니.

내 가슴이란.

 

146 굶어 죽는 자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열번째 뮤즈, 삽포

 

151

기원전 600년경, 레스보스 섬의 뮈틸레네.

 

152 샆보는 결혼을 했고, ;금꼭;이라고 스스럼없이 부르는 한 아이의 어머니였으며, 삽포의 제자들도 모두 결혼을 할 것이다. 결혼은 여성의 아름담움과 행복의 완성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157 죽음이 멀지 않았다.

 

삽포의 시는 솔직하고 과학적이다. 삽포는 사실만 적는다. 감정이 주가 아니다. 감정이 남긴 결과를 보고하는 게 주다. 무슨 연애시처럼 형용사가 난무하지 않는다. 명사와 동사만 쓴다. 그걸로 모든 상처를 표현하고, 모든 사건을 보고한다.

è 샆포의 스타일을 따라해보자.

 

그대 앞에 얼굴을 맞대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이는

저 사람은 아무래도

신인가 보다.

 

웃음이 내 가슴을 파고들어

심장을 요동치게 하고

그대를 본 순간

입술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다.

 

혀에 물기가 없으며

작은 불꽃이 일제히 피부 아래로 흐른다.

눈은 볼 수 없고

귀는 우-우 거릴 뿐.

 

흐르는 땀은 무엇이며

몸은 어째서 떨리지 않는 곳이 없는가.

풀포기보다 더 파래진 나는

아마 이대로 죽는가 보다.

 

158 삽포 이전의 사랑은 불탄 적이 없다.

 

162 웃음이 내 가슴을 파고들어 심장을 요동치게 하고

 

163 앗티스,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너는 내게 늘 작고 보잘것없는 아이였지.

"보잘것없는 것"도 대상이 된다.

 

역사상 최초의 상징주의 시라고 할 수 있는 삽포의 시는 기호 같지 않은 기호에 반응한다. 묘사를 위주로 하는 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재주다.

 

174

이렇게 말하고 그녀는 영원히 떠났다.

"솔직히 죽을 것 같아요."

눈물로 대신하던 마지막 말

"이 잔인한 운명을 어떻게 해요.

저는 떠나고 싶지 않은데."

나는 이렇게 대답해주었지.

"기쁘게 떠나라. 나를 기억하라.

우리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네가 잊었다면

우리 함께했던 수많은 날들을

상기시키리라.

장미와 제비꽃과 사프란으로

화관을 만들어쓰고, 땋은 머리를 길게

늘인 채, 늘 내 옆에 안자 있었지.

그때 목에 두른 취할 듯 진한 꽃목걸이에서,

왕의 몰약 같은 향기가 퍼져 나오던 걸……"

 

175샆보는 그런 면에서 모더니즘의 예후라고 할 수 있는 시를 썼다. 삽포의 시세계는 동시에 두 가지를 조종한다. 하나는 바깥세상이고, 다른 하나는 신비로운 마음속 세상이다. 종래 시들은 하나를 먼저 묘사하고, 나머지를 나중에 묘사했다. 마치 두 개가 다른 세상이라고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삽포는 바깥세상과 우리 마음이 다르지 않다고 본다. 마음이란 바깥세상에 대한 대응이고 파동이기 때문이다.

 

177 젊음의 꽃망울을 사랑했다. 사랑이 왔다. 그것은 반짝임이었고, 순간이었다.

 

솔론과 민주주의

 

183 기원전 8세기에 아테나이가 먼저 해결해야 했던 것은 먹고 사는 문제였다. 해법을 찾는 데만 200년이 걸렸는데, 그 해법이 바로 민주주의였다.

 

187

그렇게 근근이 목숨을 이어가다가 더 내놓을 게 없으면, 노예시장에 몸을 내놓는다. 먼저 아내와 자식을 내놓고, 그 다음에 자기 자신을 내놓는다. 몸이란 마지막에 파는 물건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193 이것이 기원전 7세기 앗티케 평원이 마주하는 현실이었다. 평원 곳곳에 말뚝이 박혀 있어 가보면, 돈 얼마에 저당 잡혔다는 표시였다. 귀족드이 아테나이 사람들을 통째로 노예로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196

사태가 이쯤에 이르자, 피를 보는 싸움 대신 타협안인 제기되었다. 귀족가 평민 사이에 조정자를 한 명 지정해, 그가 정치, 경제, 사회적 개혁을 주도하게 하는 방안이었다. 이런 중차대한 임무를 맡은 사람이 바로 솔론이었다. 평민들은 솔론의 정의감을 믿었고, 귀족들은 솔론이 귀족 출신이라는 점을 믿었다. 하지만 귀족들의 믿음은 배반당하고 말았다. 실제로 그는 귀족이 아니라, 평민이었던 것이다.

è 솔론이 추대될 수 있었던 기반은, 그의 경험에 대한 사람들의 신망, 그리고 살라미스 전투(?)에서 그의 활약 때문. 그리고 정세가 그에게 준 기회.

 

196 솔론이 가장 먼저 단행한 조치는 농노를 구하고 땅의 말뚝을 뽑아내는 것이었다. 귀족들이 차지한 땅을 빼앗아 가난한 농민들에게 돌려주었으며, 농민들에게 자유를 주었다. 빛을 못 갚아서 빼앗긴 땅을 다시 주인에게 돌려준 다음에는 남은 빚을 탕감했다. 뿐만 아니라 해외로 팔려간 노예들을 나랏돈으로 다시 사들여 땅을 주고, 자유를 주었다.

 

198 사회적으로 파장이 컸던 조치 가운데 하나는 부권을 제한하는 조치였다. 앞으로는 새로 태어난 아이를 내다버릴 수 없다. 국가에 출생 신고를 한 이상 자식을 아버지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여자아이의 경우에는 심각하게 문란한 행위를 하지 않는 한 내다팔 수 없으며, 남자아이도 중대한 사유를 입증하지 못하는 한 양도가 금지되었다. 특히 아이가 성년이 되면, 국가는 그 아이와 아버지를 평등한 시민으로 취급했다.

è 이런 조치들이 그대로 강행될 수 있었던 이유는, 솔론의 억압적 권위 때문이 아닐 것이다. 그건 불가능하니까. 아마도 아테나이들은 "이렇게 돼야 한다"고 생각은 해왔으면서 그 동안 실천의 방아쇠를 당겨줄 지도자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지도자가 바로 세우기 전에는 세상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흐르듯이, 악인의 의도대로 흘러가기 마련이니까.

 

200 특히 솔론이 만든 헌법에는 모든 사람들이 신분과 경제력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누리는 권리가 있었는데, 바로 민회에서의 투표권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혁명적인 조치였다.

è 솔론이라는 위대한 지도자 한 명이 그리스를 꽃피웠구나. 그는 세종대왕보다 더욱 위대한 사람이다.

 

203 그러려면 넘어야 할 산이 하나 있다.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들의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노예의 희생 위에 서 있다.

è 과감한 개혁에 성공했던 솔론 조차도(심지어 스스로도 노예 해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으며 자신의 집에서는 실천해낸 지도자) 이루지 못했던 이유는, 역시 사람들의 이기심 때문이겠지.

 

노예와 여자

212 거듭 말하지만 노예는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들이 갖다 쓰는 '연장'에 불과했다.

 

223 그런데 왜 당시 사람들은 노예제도를 문제 삼지 않았을가?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위대한 철학자들이 많았음에도 노예제도를 비난하기는커녕 오히려 옹호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천성적으로 노예 기질을 타고난 사람이 있으며, 그들을 골라내는 것이 전쟁이라고 했다.

 

224 (에우리피데스) 그런데 그들 중 몇몇은 자살을 선택했다. 노예로 사느니 차라리 죽음이 낫다고 결정한 것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노예는 주인의 소유가 된다.ㄴ 주인만 만족시키면 된느 것이 아니라, 온갖 난교의 대상이 된다.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만족시켜야 한다. 그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è 여기서, 왜 위대한 사상가들조차 노예제도를 찬성했는지 이유를 알 수 있다. 자신들의 이중적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서 노예 제도는 반드시 필요.

 

228

그러다 보니 영성의 이미지도 급격히 왜곡되어 갔다. 문학마저도 여성 혐오증에 빠졌다.

 

231 아테나이 사람들의 눈에 여성은 제1의 노예나 다름없다.

 

이처럼 아테나이에서 여성이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정부가 되는 길밖에 없었다.

페리클레스의 첩, 아스파시아

 

232 이러한 공창 제도를 고안한 장본인이 솔론이었다. 공공질서를 유지하고 일탈을 방지할 목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문제는 어떻게 해서 여성의 지위가 이처럼 낮아졌는가 하는 점이다. … 언ㅇ젠가 여성들이 한 번 크게 진 적이 있었다는 점이다. … 그렇다면 언제 여자는 남자와의 싸움에서 진 것일까? … 다름 아니라 금속을 발명하고 전쟁을 하게 된 시점부터 여성이 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 남자들인 전쟁을 통해서 획득한 재물을 제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자식이란 자기 피를 가진 자식을 만ㄹ한다. 그래서 자기 씨만 받는 여자가 필요했고, 나머지 다른 여자는 쾌락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234

영국 출신 그리스 역사가의 보고에 따르면, 기원전 10세기 케크롭스 시대까지는 여성도 선거권을 가졌다고 한다. 그걸 언젠가 빼앗겼고, 그 이후로는 다시 찾지 못한 것이다.

 

신과 인간

239

그리스의 종교는 언뜻 보기에도 아주 원시적이다. 고전주의 시대에조차 '교만', 혹은 '인과응보'와 같은 초보적이니 개념을 사용한 것을 보면 그렇다. 그런 말은 동남아시아의 모이족도 쓴다.

 

240

애초부터 신이란 그다지 특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과 신의 경계가 분명치 않다는 것, 그것이 그리스 종교의 커다란 특징이다.

 

241

살길을 가로질러가는 농부를 상상해보자. 그가 우연히 길가에 돌무덤을 쌓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무수히 많은 농부들이 그 일을 반복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돌무덤은 '헤르마'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낯선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어떤 상징이 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돌무덤을 의인화해서 헤르메스라는 신을 만든다. 여행자의 신이 되고, 잘 알지 못하는 저승으로 떠나는 죽은 자들의 신이 된다.

 

250

게다가 퀴클롭스는 진짜로 이상한 괴물이다. 겉으로는 평화롭게 양이나 치는 괴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살을 뜯는 잔인한 놈이다. 그 우두머리인 폴리페모스에게 제물을 바쳐서 끝날 일이 아니다. 퀴클롭스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해 적대적이며 반사회적이다. 배도, 법도, 의회도 다 실헝한다. 그래서 짐승이고, 비이성적인 존재다. 이해할 수 없는 괴물이다. 그리스 사람들이 보기에 자연이 그렇다.

 

<오뒷세이아>에 나오는 모든 괴물 이야기에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인간이 금지된 구역으로 들어가고, 양면성을 띤 자연의 포로가 되어 어두컴컴한 세계로 들어가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 막힌다. 인간성을 상실하게 된다는 뜻이다.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삶이 끝나면서 인간다움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런 자연에 맞설 수 있는 힘은 역설적으로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 데 있다.

 

259 도덕률을 어긴 인간에게는 어떤 재앙이 닥칠지 몰란도 신들은 아니다. 기쁨에 못 이겨 이상한 짓을 한들, 뭐가 그리 대수란 말인가. 아킬레우스의 분노로 인하여 전투에서 졌고, 수많은 그리스 전사들이 트로이아 성 앞에서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같은 <일리아스>에 나오는 일화에서, 헤라에 대한 제우스의 분노는 한바탕 웃음으로 끝나고 만다. 신이란 걱정할 것이 없다. 감정이 추동하는 대로 자유롭게 행동할 뿐이다. 그래도 별일 안 생기니까 말이다.

è 내가 감정대로 살면 안되는 이유는, 나는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266 그럼에도 모든 신이 다 의인화된 것은 아니단. 인간들은 영악한 존재라서 신들을 제멋대로 의인화해서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 이용한다.

 

비극 아이스퀼로스, 운명 그리고 정의

 

275 한 비평가가 정확하게 지적하듯이, 비극의 힘은 여기에서 나온다. "주인공과 나를 일치시키는 것, 주인공의 액션을 내 액션으로 혼동하는 것"이 비극이다. 나 자신의 누 ㄴ앞에 펼쳐진 싸움을 수행하는 것 같다.

 

287 맞다. 프로메테우스가 지기는 했지만 정복당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프로메테오스를 응원하는 이유는 그가 인간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제우스게에 맞서기 때문이다.

 

289 오레스테이아 3부작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첫 번재는 살인, 두 번재는 복수, 세 번째는 심판과 화해라는 주제가 들어 있다.

 

295

아가멤논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딸 이페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친 일이다. 신탁이 그렇게 지시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시험이었다. 장군으로서의 영예나 야망보다는 아버지로서의 사랑을 높게 여기는지 알아보려고 했던 것이다.

 

298 막상 남편을 죽이기로 작정한 클뤼타임네스트라는 마지막 순간에 잠시 주저하게 된다. 죄 자체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한 가지 시험을 해보는데, 그 시험은 아가멤논을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신을 향한 것이디고 했다. 그녀는 궁 입구에 다다르자 하인들을 시켜서 진홍빛 양탄자를 깔게 했다. 구실은 트로이아의 정복자 발에 흙이 묻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진홍빛 양탄자는 신들만이 밟고 지나갈 수 있는 것이었고, 아가멤논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아가멤논은 처음에는 거절했다. 하지만 결국 허영에 못이겨 양탄자를 밟고 만다. 그 광경을 본 클뤼타임네스트라는 이제는 죽여도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시민 페리클레스

 

.312 페리클레스는 아테나이 민주주의를 완성한 장본인이다

 

313 용기가 자유를 낳고, 자유가 행복을 낳습니다. 우리가 이 두려운 전쟁 앞에서 용기를 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323 페리클레스 시대에 이르러 아테나이 민주주의의 꽃이 피었고, 그리스에서 가장 민주적인 도시로 추앙을 받았다. 그 아테나이에 총 40만명의 인구가 살았는데, 그 가운데 시민은 고작 3만이었다.

 

335 파로테논에 쓰인 직선은 실제 직선이 아니다. 마치 우리 삶에서 마주치는 직선들이 완벽한 직선이 아닌 것과 같다. … 일부러 그렇게 했다. 예술적으로 약간씩 뒤튼 것이며, 그럼으로써 각 면들이 살아 움직이게 한 것이다.

 

339 이처럼 파르테논 신전을 구성한느 수학은 생명체의 수학이다.

 

342 노예를 허용하는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없다. 군주가 있을 뿐이며, 노예가 있을 뿐이다. … 문명은 모든 사랑 있는 사람을 위한 문명이라야 한다.

 

 

그리스인 이야기 2

 

 

안티고네의 약속

 

11

거룩한 성수나 멸균 처리된 밍밍한 물로는 비극을 쓸 수 없다.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비극은 눈물과 피로 쓴다.

 

13 하지만 영웅은 음속이라는 벽에 부딪혀 부서지고 만다. 영웅이 추락했다고 해서 우리가 그를 비난할 까닭은 전혀 없다. 시인은 영웅을 비난하지 않는다. 영웅의 추락은 우리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영웅의 죽음을 보며 우리는 보이지 않는 불꽃의 장벽, 황금의 장벽을 뚜렷이 깨닫게 된다.

 

하지만 '정탐된' 한계는 더 이상 한계가 될 수 없다.

 

18 이처럼 소포클레스의 작품에서 등장인물들은 스스로를 잘 알고 있다.

 

19 소모적이지만 매우 풍성한 장면이다. 안티고네와 이스메네가 함께 등장하는 이 장면은, 소포클레스가 비슷한 갈등 속에서 어떻게 서로 다른 인물을 창조해나가는지를 보여줄 뿐 아니라, 두 자매가 전염성이 강한 사랑이라는 덕목을 극명한 방식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è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22 아름답긴 하지만 절망을 거둬가지는 못한다. 오직 불타는 듯한 하이몬의 열기만이 우리에게 안티고네를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하이몬은 사랑이라는 말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사랑하는 여인과 정의, 신들에 대한 충직함으로 말미암아 사랑의 전염성, 세상과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는 저항할 수 없는 사랑의 힘을 확인시켜준다. , 에로스

è 엄청난 감정 표현이군

 

27 이제는 이해하는 일이 남았다. 이해해야 할 필요를 느끼는 건 반드시 지성만이 지니는 강박관념은 아니다.

 

다른 사람, 특히 그들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에 대해서, 안티고네와 크레온은 똑 같은 방어 기제를 발동한다. 그들은 구해주려는 애정의 몸짓을 거칠게 뿌리치는 것이다. … 조금이라도 의지를 꺾는 순간 세상은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크레온이 뜻을 굽히게 되면, 그와 더불어 그가 우리에게 약속한 안정된 세상은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리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안티고네와 크레온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증오한다. 반드시 이루어야 할 일로부터 자신들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놓으며, 그들이 계획하는 사업에 동참하기를 거부하는 사랑은 그들이 보기에 사랑이 아니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자격이 없다.

è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서 창녀와 실업자의 사랑을 다룬다. 창녀는 실업자가 자살을 하러 라스베가스에 온 것을 알지만 그의 자살을 막지 않는다. 그리고 그가 자살할 때 함께 있어준다.

è 고집불통인 크레온과 안티고네 두 사람을 비교하다니생각지 못했는데, 이제와보니 왜 생각지 못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공통점이 확연하다.

 

35 그의 성격으로 인한 광신주의가 빚어낸 결정은 주변에 그의 요새를 구축한다. 상상의 요새 속에 갇힌 그는 자신이 그곳의 주인이라고 믿지만, 사실 그는 유폐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36 요컨대 성격의 윤곽이 유사한 것과 비례해서 영혼의 윤곽은 완전히 다르다. 이 본질적인 차이 덕분에 안티고네는 외로운 죽음을 맞으면서도 고독하지 않을 수 있는 반면, 살아 있는 크레온은 평생 고독의 멍에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안티고네, 개인의 양심의 상징

 

39 나는 증오를 나누어 갖기 위해서 태어난 게 아니예요. 나는 사랑을 나누어 갖기 위해서 태어났어요.

… "나는 태어났다"고 안티고네가 말한다. 이는 곧 이것이 나의 천성이다. 나의 존재다, 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태어났는데 사랑을 나누어 갖기 위해서 태어났다. 이것은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기 위해서 태어났다. 사랑을 통한 교감 속에서 살기 위해 태어났다는 말이다.

 

48 비극 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움 가운데 가장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는 부분, 작가가 예술적 기량과 애정을 가장 발휘해야 하는 부분은 바로 이 같은 통찰력 있는 연민이 담긴 대목이다. 즉 우리는 '심술궂은' 등장 인물에게 연민은 느끼고 있음을 고백하게 된다.

è 심술궂은 등장 인물과 동일시까지는 약간 무리가 있지 않나?

 

'심술궂은' 등장 인물들을 마음 밖으로 내치는 일이야 식은 죽 먹기다. 하지만 예술적인 진실과 우리가 느끼는 쾌감이란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며, 이를 얻기 위해서는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우리는 속마음을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

 

51 모든 것이 국가에 귀속된다고 믿는 크레온의 세계에 비해서 안티고네의 우주는 훨씬 광대하다. 크레온은 인간과 신은 물론 모든 정신적인 가치까지도 정치적, 국가적 질서에 복속시킨다. 반면 안티고네는 국가의 권리를 무시하지는 않지만 이를 제한한다.

 

53 안티고네가 자유라면, 크레온은 운명이다. 이것이야말로 소포클레스의 비극이 지니는 궁극적인 의미이며, 그로 인해서 우리가 맛보는 기쁨의 중추라고 할 수 있다.

안티고네는 사랑의 약속을 통해서 자유를 구가하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우리는 비극의 매 순간마다 무한한 자유를 향해 도약하는 인티고네와 하나가 된다. 안티고네는 본질적으로 무정부주의적인 인물로 비친다.

 

54 우리는 또한 안티고네 덕분에 자신의 의무를 소홀히 하는 국가에서라면, 개인은 무제한적인 혁명적 권력을 소유할 수 있으며, 거기에 우주를 지배하는 은밀한 법칙이 합세하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è 간디의 [비폭력 운동], 국가가 국민에 반대되는 한, 국민의 불복종은 합법이다.

 

더구나 영혼의 폭발적인 힘은 자유를 위한 도약을 제재당하게 되면, 자신을 옥죄는 숙명을 파괴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그것은 단순한 파괴 행위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낸다.

 

돌을 조각하고 청동을 주조하다

65 그리스 예술은 그 기원에서부터 고전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예술을 훑어볼 때 온갖 종류의 역경과 장애물로 점철된 매우 긴 여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역경과 장애물로 점철된 매우 긴 여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역경과 장애물이라고 하면 아마도 기술적인 장애, 즉 눈과 손의 훈련으로 인한 장애가 가장 크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이외에도 당시 예술가의 머릿속을 곽 채우고 있던 신앙심과 주술적인 미신들도 빼놓을 수 없다. 미켈란젤로가 말했듯이 "우리는 손이 아닌 머리로 그림을 그린다. 그러니 자유로운 머리를 가지지 못한 사람은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다."

è 재주가 없어서가 아니라 머리에서 시도되지 않았던 것

그런데 도대체 사실주의니 고전주의니 하는 이 용어, 너무도 자주 왜곡되는 이 용어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 의미를 밝혀내는 일이야말로 지금부터 이어지는 글의 목적이 아닐까 싶다.

 

74 고대 예술은 하나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것을 정면성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이 법칙은 이집트 예술 전반에 나타나며 그리수 예술은 500년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 법칙에서 탈피했다.

82 , 이렇게 되면 이제 규칙을 도출할 수 있다. 이를테면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신에게로' 정도로 요약될 수 있는 규칙이다. 이 세상에서 젊은 청년의 멋은 몸이나 곱게 수놓아진 천으로 만든 의복을 걸친 여자의 우아함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니 이것이 인간들이 신에게 바친 것이며, 인간들이 신을 보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정면성의 법칙이 아무런 저항 없이 예술계를 지배하던 시대에 교육을 받은 이 조각가가 극단적으로 대담무쌍한 작품을 시도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è 창조는 모방에서. 늘 헌 것에서 새 것이 창조되는 것은 놀랍다. 뮈론은 어째서 가능했을까?

 

90 이 문제에 관해서라면 우리는 황금률을 언급한 바 있다. 황금률이란 나뭇잎 도는 인테(인간도 자연의 일부다) 같은 자연의 비율이나 형태에서 두루 발견되는 객관적인 법칙을 가리킨다. 이런 생각은 제법 흥미롭다. 이 생각은 그리스의 고전주의와 다른 것들을 제쳐두고라도, 이보다 2500년이나 앞선 중국의 고전주의를 동시에 설명해주는 막강한 이점을 지니고 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자연을 의인화하는 데에는 상당히 거부감을 느낀다. 자연이 객관적인 법칙에 따라 인체의 가장 조화로운 비례를 찾아준다는 이 의인화 현상은 고전주의 시대에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낸다. 꽤 그럴듯한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도가 지나친 신비주의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자연이 정해준 비례를 가지고 태어난다면, 인간은 누가나 조화롭고 고전주의적인 기준에 따라 아름다워야 마땅하다.

이 법칙은 사회의 필요에 의해 고안되었다(취향은 필요에 부응한다)고 하는 편이 훨씬 설득력 있지 않을까? 그리스에 관한 한 고전 시대 당시의 아름다움이란 그리스 민족이 생존을 위해서,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벌이는 일상의 투쟁과 분리될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사물의 본성에 좀 더 충실한 해석이 아닐까?

è 황금률의 탄생에 대한 설명이 되나? 의문을 제기한 것은 정말 탁월했으나, 해석이 애매하다. 현문우답. 뭘 설명하고 있는지도 헷갈린다.

그 같은 투쟁은 건장하고 용기 있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 예술가들은 사회에서 이미 해체될 위기에 놓인 것과 앞으로 지속적으로 존재하게 될 것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96 예술에는 완벽의 정도가 있으며, 이는 자연에 성숙한 정도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라고 라브뤼예르는 말했다.

 

과학의 탄생: 탈레스, 데모크리토스

109 잉여 양식의 확보는 모든 문명 탄생의 필요조건이다.

è 개인사의 문명 면에서도 마찬가지다.

 

117 아르킬로코스나 탈레스가 속한 사회적 계급이 추구하는 정신과 그들의 연구는 실증적이었다. 두 사람은 신을 부정하지 않았다(아마도 신은 모든 방면에서 그들에게 압력을 가하는 영원한 물질과 다르지 않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신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끊임없이 신에 대핸 언급하지도 않았다. 이들은 미지의 것을 또 다른 미지의 것으로 설명하는 일을 달가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세계를 이해하고 싶어했으며, 그 세계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서 궁금해했다. "인간적인 삶의 리듬을 익혀야 한다"고 말년의 아르킬로코스는 주장했으며, 이는 장차 도래하게 될 과학과 철학의 언어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119 탈레스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이 분야에서는 아직 생소한 새로운 언어로 이러한 질문들을 제기했다.

è 과학에서 독자성은 위험하다.

120 이러한 관찰을 통해서 탈레스가 얻은 결과는 매우 보잘것ㅇ벗고, 문제투성이에다 오류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세계를 관찰하며, 문제를 생각하는 탈레스의 방식은 진정한 학자의 방식이었다.

 

120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연구를 진행한 방식이었다. 별들을 관찰하거나 물을 연구할 때, 탈레스는 결코 신이나 신화를 개입시키지 않았다. 그는 별이나 물을 순전히 물리적이며 물질적인 대상으로 여겼다.

 

130 아리스토텔레스는 훗날 "보편적인 것만이 과학이다"라고 말했다.

 

133 이렇게 천재적인 탈레스가 길 가는 사람이나 하인들 붙잡고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게 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가 밤이면 밤마다 별을 관측하느라 하늘만 쳐댜보고 걸어가다가 그만 우물에 빠졌다는 이야기다. 이 재미난 이야기는 이솝 우화는 물론, 플라톤의 저술에도 등장한다. 몽테뉴의 평을 들어보자.

 

나는 늘 하늘만 바라보며 사는 철학자가 지나가는 길에 무언가를 놓아두고 그를 비틀거리게 만들엉, 이제 구름 속에 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자기 발치에 있는 것들에 대한 것으로 옮겨놓을 때가 되었다고 충고한 밀레토스의 아가씨를 고맙게 생각한다.

 

한편 라퐁텐은 이렇게 말했다.

 

"가엾은 녀석,

네 발 밑에 있는 것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주제에,

머리 위에 있는 것을 읽어보겠다고?

 

, 애처롭고, 그렇지만 위대한 탈레스! 어느 누가 감히 당신보다 더 현실에 뿌리내릴 수 있었단 말이오?

è 나의 이모부는 교회에서 제 3세계의 한 어린이에게 매달 3만원씩 후원하고 있다. 그 걸 보시고 나의 어머니는 차라리 우리 친척 가족에게 기부를 하는 편이 나을거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모부의 행동은 결코 어리석은 행위가 아니다.

 

137 데모크리토스는 고대인들의 말처럼 "모든 것에 대해서 글을 썼다."

 

140 천진난만하면서 동시에 결연한 이 유물론 이론으로 데모크리토슨는 신성을 개입시키지 않고 가장 객관적인 방식으로 이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무진장 노력했다.

 

142 데모크리토스가 제시한 원자 가설은 결국 옳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하지만 그는 이 가설을 과학적으로 정립하지는 못했다. 어떤 점에서 보면, 그의 유물론은 세계를 설명한다는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는 과학 수준이 보잘 것 없었고, 현대 과학자들이라면 누구나 사용하는 관찰기구들이 전혀 구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러한 문제점들을 고찰한 엥겔스는 이렇게 말했다. "바로 그 점에서 후세의 다른 모든 형이상학적 경쟁자들에 대한 그의 우월성(그리스 철학의 우월성)이 드러난다."

è 물리학자 파인만은 만약 인류가 멸망하고 새로운 인류가 탄생한다면, 이들에게 알려줄 사실은 "이 세상이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하나라고 했다. 그러면 과학의 발전을 만년 정도 앞당길 수 있다고 말하였다.

 

143 데모크리토스는 인간에 대해서는 "물과 진흙 속에서 태어난 우연의 산물"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è 현대의 이론과 매우 흡사하다.

 

그는 종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자연과 인간이 자연적이고 물질적인 원칙에 의해 설명되며, 죽음 이후의 삶은 단호하게 부인되는 원자 체계 안에서 종교는 전혀 실체가 없는 것이 된다. 데모크리토스는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신앙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자연현상, 특히 죽음과 대면해서 느끼는 두려움 때문에 생겨난다고 주장했다.

è 현대의 무신론자의 생각은 과거 데모크리토스 때부터 거의 변화가 없구나.

 

148 자고로 자기 고향에서 인정받는 선지자는 없는 법이라고 라퐁텐은 평했다.

 

소포클레스와 오이디푸스 : 운명에 화답하기

"관객들을 보시오. 끝까지 꽉 조인 태엽, 그러니까 한 인간의 계산된 파멸을 위해 지옥 같은 신들이 완벽하게 구축한 장치가 한 인간의 일생을 다라 천천히 풀려가는 과정을 지켜보시란 말이오."

 

장 콕토가 현대적으로 해석한 오이디푸스 오아의 이야기는 이런 말로 막을 올린다. 콕토는 제목도 아예 '지옥 같은 기계'라고 붙였다.

 

158 눈부신 진실 앞에서 스스로 두 눈을 찌르다

 

159 "자네가 그토록 찾아다니던 살해자는 바로…… 자네일세."

è 영화 <거미숲>에서 미스터리극장의 PD는 취재 차 방문한 거미숲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깨어나보니 자신은 두 남녀의 살인 용의자로 몰린 상태다. 누명을 벗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 그러나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면서 그 살인자는 결국 자신임을 알게 된다.

 

163 모든 것을 알아차린 이오카스테는 그에게 더 이 상 비밀을 캐려 하지 말라고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è 알지 않으면 사실이 아니다? 이오카스테는 그대로 괜찮았던 것일까?

 

169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잘못을 햇단 말인가? 잘못을 한 건 신이다. 신만이 어떤 합당한 이유도 없이 그 모든 일련의 사건이 일어나도록 획책했으며, 그 결과 범죄라는 파국을 맞게 되었다.

 

170 신들에 대해서 무엇보다도 우리가 가장 용서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같은 비아냥거림이다. 아무 잘못도 없이 신들 때문에 죄인이 된 오이디푸스를 신들이 비웃는다면, 어떻게 그 주인공의 운명을 우리 인간 전체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è 신이 용서의 주체가 아니라, 우리가 용서의 주체라는 발상. 우리가 신을 용서할 수 없는 이유.

멋진데?

 

172 이오카스테는 상당히 이상한 인물이다. 이 여자는 부정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왕비는 신탁을 부정하고,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 두려워하는 것이라면 대놓고 부정한다. 왕비는 스스로를 경륜이 많은 자라고 믿지만 사실은 편협하고 회의적인 정신의 소유자다. 또한 자신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존재의 바닥에는 우연이 있을 뿐이라고 강변한다. "인간이 두려워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우연만이 인간의 최고 지배자이죠. 거기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최선이예요. 그러니 당신 어머니의 잠자리에 대해서는 두려워하지 말아요. 많은 남자들이 꿈속에서 어머니의 잠자리를 공유한다죠. 그런 공포를 무시하는 사람일수록 인생을 쉽게 견디는 법이죠."이처럼 모든 것을 우연에 맡김으로써 인간 행위에서 의미를 제거해버리는 방식, 바꿔 말해서 오이디푸스가 두려워하는 신탁을 진부할 정도로 합리적(또는 프로이트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은 우리를 이오카스테에게서 멀어지게 만든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들의 언어에 귀 기울이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우리가 신들에 대한 불안감을 덜 수 있는 길로 접어드는 것을 방해한다. 우리는 이오카스테의 논리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천박한 관점을 느낄 수 있으며, 그 때문에 신들에 대해서, 신들이 지니고 있는 신비함에 대해서 경솔하게 판단하는 것을 경계하게 된다. 왕비의 비뚤어진 지혜는 우리 자신의 무지를 돌아보고 이를 손가락질하게 만든다.

è 굳이 "천박한"이라는 용어를 써야 했을까. 좀 폭력적이다.

è 이오카스테의 관점은 핵심이다. 우리는 모두 진실을 외면하고자 하는 욕망을 느낀다. 충격적 사실로부터 기억을 차단하지 않고서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 일부분이나마 인간 모두는 이오카스테이다.

è 사실에 대하여 이에 대처하는 방식 : 이미 아버지는 죽었고 남아서 현실을 직면해야 하는 것은 어머니 이오카스테, 아들 오이디푸스이다. 이 둘은 두 가지 대립각을 세운다. 물론 이오카스테의 관점은 버젓이 존재하는 현실 앞에 닭이 고개만 파뭍는 어리석은 방식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사건은 종결되었고, 아들이 파헤치는 진실은 과거의 것이다. 이런 후향적 삶이 예비한 것이 모두의 파멸임이 자명하다면, 당연히 이를 제지하고픈 욕망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è 대승적 의미에서는 오이디푸스가 옳겠지. 그러나 결국 그의 추구가 어머니도 죽이고 자신의 가족도 비극으로 내몰았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는 깨달음을 얻었지만 삶을 꼭 깨달아야 하는가? 이것은 다른 문제다. 사람이 살면서 모든 것을 경험하고 깨달을 필요가 과연 있을까? 인간은 신에게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며, 신은 인간에게 감내하지 못할 고통은 주지 않는다고 하지. 고통을 죽음으로 없애야 한다면 글쎄이오카스테를 욕하기는 쉽겠지. 죽는 것은 욕하는 사람 자신이 아니니까.

è 어찌보면 작가의 가치관이 혼란스럽기도 하다. 1권에서 아르킬로코스에 대해서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가? 자유주의자 아르킬로코스. 만약 이오카스테라면, 뭐 어때? 그냥 그렇구나 - 하고 잊어버려. 명분 따위는 잊어버리고 그냥 죽어서 살지 말고 살아서 삶을 살아. 스스로 멸망하지 말아.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è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대수는 이우진에 의해 자신의 딸인 미도와 에로스적 사랑에 빠진다. 그 사실을 전해듣고 고통스러워 하던 오대수. 그도 오이디푸스가 눈을 찔럿듯이 자신의 혀를 잘라버리는데 그 혀는, 자신의 딸에게는 이 사실을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기 위한 제물이었다. 만약 오이디푸스가 취한 것이 어머니가 아니라 자신의 딸이었다면, 그는 그토록 "이기적으로" 진실을 추구했을까?

è 그런데 이런 허구의 인물을 분석하는 것이 얼마나 소용이 있을까?

 

178 우리가 제어가능하다고 상상했던 현실은 갑자기 불투명해진다. 그 현실은 우리에게 저항하며, 우리를 사랑하지 않고, 우리를 위해, 우리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사물이나 존재, 법칙으로 가득 차 버린다.

è 순식간에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배타성을 증강시키는 표현이다. 매우 마음에 든다.

 

우리는 원래 다 그런 법임을, 우리의 삶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광대한 삶, 어쩌면 우리에게 형을 가하는 광대한 삶의 한 귀퉁이에 불과함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또렷한 눈으로 바라보는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사실 장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179 피투성이가 된 두 눈에서 우리는 공포로 혐오감을 느끼는 대신, 오이디푸스가 운명에게 전하는 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장님이 되는 쪽을 택했다. 그는 말한다.

"아폴론이 나를 불행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나는 내 두 손으로 직접 내 눈을 찔렀다."

 

운명이 그에게 마련해놓은 벌을 그는 스스로 요구했고,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자유로운 인간으로서의 그가 한 최초의 몸짓이었다. 신들도 자유로운 인간인 그를 어찌할 수 없을 터였다.

 

181

오이디푸스는 하나의 현실이 존재하며, 자신은 그 현실의 균형을 흔들어놓았음을 인정해야 하고, 자신이 봉착한 수수께끼 속에서 비록 혼미하게나마 자신이 항상 삶과 행동에 대해 취해왔던 열렬한 사랑과 결합하는 하나의 질서, 하나의 조화, 실존의 충만감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오이디푸스는 이 질서와 조화, 실존의 충만감에는 위협이 따르며, 그 위협은 위대하게 살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의식해야 한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을 망가뜨린 세계를 지지한다. 그 세계는 설령 우리가 사는 세계를 향해 어떤 시도를 한다고 하더라도 살아 있는 신이 거주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의 행위는 명철한 용기 외에도 전적인 초연함을 요구하는 일종의 종교적 행위다.

è 자신의 과오로 삶에 절망한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만한 대처법.

 

183 신은 수수께끼며 질서다. 신은 고유한 법칙을 가지고 있다. 신은 모든 것을 알며, 전능하다. 그러니 신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런 할 말이 없다…..

 

184 오이디푸스, 그러니까 분명 미약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우주의 엄격한 법칙과 조화를 이루며 살기로 결심한 이 피조물의 태도는 이 같은 관점에 따른 것이다. 오이디푸스가 모호한 언어를 통해서 우주가 그에게 전하는 부름을 듣게 되면, 그는 즉시 사랑의 부름을 받을 때에 버금가는 열정으로 운명의 길을 향해 갈 것이다. 고대인들은 이같이 고귀한 형태의 종교심을 가리켜 아모르 파티(amor fati)라는 용어를 섰다(니체도 고대인들의 사고를 집약해서 말하면서 같은 용어를 사용했다). 공격의 망각, 세계에 대한 인간의 용서 등을 의미하는 말이다. 아모르 파티는 산산조각 난 인간의 마음속에서 운명(세계에 의한 짓밟힘)과 소명(세계를 사랑하고 완성하기)이 화해한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197 오이디푸스는 이제 두려움에서 해방되었다(죽음으로써). 장엄한 최후의 순간이 다가옴에 따라 우리는 그가 죽을 운명에 처해 있는 비참한 육신의 무게로부터 놓여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실명도 더 이상 그가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장애물이 되지 못한다.

 

201 어때서 오이디푸스가 선택되었을까? 우리는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곤 그가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뿐이다. 이번에도 신은 어쩔 수 없이 신이다. 신이 내리는 은총은 완전히 자유이기 때문이다.

è 그의 어머니가 말한 "우연"과 뭐가 다르지?

 

핀다로스, 시인들의 왕자, 왕자들의 시인

210 이 눈부시도록 화려한 시인은 아이스퀼로스, 아리스토파네스와 더불어 그리스 언어의 대가로 꼽힌다.

 

거의 절대적인 독립성을 보장받은 이 조언자는 잔뜩 찬사를 늘어놓다가도 그가 찬양하던 군주에게 돌연 진실을 말할 수 있었으니, 이야말로 굉장한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216 핀다로스는 "인간을 위한 모든 부드러움과 감미로움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세 가지 유형의 남자들"에 대해서 언급한다. 세 가지 유형의 남자란 "뛰어난 영감을 지닌 시인, 아름답게 치장한 남자, 영광으로 빛나는 남자"들이다. 그는 에피카리, 즉 우아함을 칭송한다. 그의 왕국은 세 미녀의 왕국이었다.

 

223 독자들은 핀다로스의 문체를 독창적으로 만들어주는 역설적인 표현들에 주목했을 것이다. 가령 처녀 임신이나 꿀벌들의 무해한 독처럼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단어들을 한데 묶은 표현들 말이다.

 

229 오 나의 영혼이여, 불멸의 삶을 갈구하지 마라. 대신 너에게 주어진 활동의 장에 지치도록 탐닉하라.

 

230 비록 가진 것 없이 비천하다고 하나, 나는 위대한 사람 가운데에서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다네.

 

240 , 제우스 신이여, 내가 죽을 때 나의 자식들에게 추한 이름을 남기지 않도록 항상 솔직함의 길에 충실할 수 있다면…… 나를 위해서, 나는 끊임없이 나의 동료 시민들을 기쁘게 하고, 찬양할 것을 찬양하며, 불한당들에게는 모욕을 주고 난 후에 내 육신을 대지에 돌려주겠습니다!

 

불멸의 삶을 믿거나 죽음을 잊어버린(“해야 마땅한 일을 한 인간은 죽음을 잊는다.”) 핀다로스와 오 나의 영혼이여, 불멸의 삶을 탐하지 마라고 외치는 핀다로스, 이렇게 둘 중에서 어느 쪽이 진정한 핀다로스인지를 고민할 필요는 없다.

두 명의 핀다로스란 있을 수 없다. 믿고 희망하며 잊어버리고, 지혜와 선의만으로 만족해하는 시인, 요컨대 신학자가 아닌 모순으로 가득찬 시인이 있을 뿐이다.

 

245 고귀한 군주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최악의 잘못은 자신에게 충실하지 못한 것, 다시 말해서 원숭이처럼 남의 흉내를 내는 것이다. 핀다로스는 이를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방식으로 말한다. “너는 알게 된 그대로의 네가 되거라. 원숭이는 아이들에게는 아름답다, 언제나 아름답지.” 이것은 말하자면 델포이의 주제인 너 자신을 알라의 도덕적 교훈 버전이다. “너는 알게 된 그대로의 네가 되거라라는 핀다로스의 말을 가지고 괴테가 있는 그대로의 네가 되거라라는 멋진 말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구대륙 탐험에 나선 헤로도토스

254 헤로도토스는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궁금했을까? 그는 모든 것에 대해서 궁금해했다.

 

 

260 지리학은 배고픔, 대부부느이 고대인들이 겪어야 했던 지독한 기아에서 탄생했다. 고대인들 가운데 가장 비참하고 가장 활동적이었던 민족 중의 하나인 그리스 민족은 배고픔 때문에 비옥하지 못하고 경작이 어려우며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은 땅을 박차고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던 것이다.

 

270

스퀴티아인들의 점술을 엿볼 수 있는 몇 가지 내용만 간추려서 소개해본다.

스퀴티아 왕은 병이 나자 사람을 보내서 가장 유능한 점술사 세 명을 데려오도록 했다. 점술사들은 평소처럼 왕에게 이름까지 거론해가며 아무 아무개가 왕의 화덕을 걸고 거짓 맹세를 했다고 대답한다. 실제로 스퀴티아인들은 확실하게 맹세를 하고자 할 때 왕의 화덕에 대고 맹세하는 일이 빈번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름이 거명된 용의자는 체포되어 왕 앞으로 끌려온다. 그러면 점술사들은 용의자에게 그가 왕의 화덕에 대고 거짓 맹세를 했기 때문에 왕이 병석에 눕게 되었다고 말한다. 잡혀온 사람은 죄를 부인하면서 자신은 아무 잘못도 없다고 항변한다. 이렇게 되면 왕은 처음의 두 배에 해당하는 점성술사들을 불러들인다. 새로 온 이들이 자신들이 사용하는 기술을 이용해서 용의자의 범죄를 밝혀낸다면, 용의자는 머리가 달아나게 되며, 그의 재산은 몰수되어 처음에 온 점술사들에게 분배된다. 두 번째로 부른 점술사들이 용의자가 ㅁ고하다고 하면, 다름 점술사들은 부르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해서 여러 점술사들에게서 무죄를 인정받으면, 처음에 불려온 점술사들은 사형에 처해진다.”

요컨대 점술의 진실은 다수결 원칙에 의해 결정된다.

ð  점술사들은 왕의 심기를 잘 파악해야 한다. 평소 왕이 누엣가시처럼 여기던 정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이 기회에 그를 걸고 넘어져서 왕의 바램을 성취시켜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정세에 밝아야 했겠지. 병이 몸의 병일수도 있겠으나, 왕의 시름에 의한 병, 즉 그 시름을 만들어낸 걱정거리를 처단해주는 것이 점술사들의 역할. 혹은 정말 몸이 아픈 경우라 하더라도, 왕이 아팠을 때 예상되는 훗날의 위협을 제거해주는 도구가 될 수 있으리라.

 

270 (헤로도토스) 점술사들을 사형에 처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작은 나뭇조각들을 가득 실은 수레를 황소들에게 매단다. 점술사들의 양 발을 묶고, 양손은 뒤로 돌려 묶은 다음 입에는 재갈을 물리고 나뭇더미 한가운데에 앉힌다. 이윽고 나뭇더미에 불을 붙인 다음 겁에 질린 황소들을 쫓아버린다. 황소 몇 마리는 점술사들과 함께 불에 타 죽는다. 수레가 불에 탈 때 화상을 입고 달아나는 녀석들도 있다.

 

281 아라비아의 살무사와 날개 달린 뱀들이 자연이 뱀에게 점지해준 방식대로 태어난다면(그러니까 무슨 특별한 방식이 아니라 알을 까고 나온다는 말이다), 이 땅에서 인간의 삶은 한마디로 불가능했을 것이다. 녀석들이 짝짓기를 할 때면, 암놈은 수놈이 사정을 하는 순간에 녀석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힘을 다해 거기 매달린다. 그러고는 녀석을 다 먹어치울 때까지 놓지 않는다. 수놈은 그렇게 해서 죽는다. 암놈은 이 일로 인하여 응분의 벌을 받는다. 새끼들이 알을 까고 나올 때가 되면 어미 뱀의 자궁과 배를 갉아먹음으로써 바깥세상으로 나온다. 말하자면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간 어머니에 대해 새끼들이 복수를 하는 것이다.”

클뤼타임네스트라, 아이스퀼로스가 살무사라고 부른 그 여자는 아가멤논을 살해한다. 어머니를 살해함으로써 오레스테스는 아버지의 죽음을 복수한다.

 

283 가족이 공동으로 여자 하나를 소유하는 일처다부제는 고대 시대의 많은 종족들에게서 관찰되며, 특히 스파르타에서 성행했다.

ð  설사 일처다부제라 하더라도 여자가 소유당하는 것?

 

285 난쟁이 남자들이 등장한다는 이유로 이 이야기는 오래도록 귀가 얇은 헤로도토스의 순진성을 입증하는 자료로 이용되어 왔다. 그런데 19세기 중엽에 아프리카 적도 지방 탐사에 나선 여행가들에 의해서 그의 말이 사시로 밝혀졌다.

 

289 헤로도토스가 이집트 토양의 형성과 관련해서 내세우는 가설은 아주 정확하다. 다만 나일 강이 그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기까지 걸린 시간에만 오차가 있을 뿐이다.

 

 

인본주의 의학의 꽃, 힙포크라테스

298 호메로스는 그 작품에서 무려 141종의 상처를 취급하며, 상당히 정확하게 이를 묘사한다. 그의 시에 따르면, 의사라는 직업은 자유시민들의 몫이었으며, 존경받는 직업이었다. “의사 한 명은 여러 사람의 목숨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è 전장에서는 그렇겠지.

 

307 크니도스 학파 의사들은 의학적 토론을 즐기지 않았다.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고자 애쓰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모든 질병은 두 가지 체액, 즉 담즙과 담의 상황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311 이들 의사들이 세운 가장 큰 공로라면 검증이 불가능한 철학적 가설이 주는 매력을 거부했다는 점이다. 크니도스 학파 의사들은 의학적 전통에 따라 관찰된 사실들만을 알려고 했으며, 이를 후세에 전하려고 했다.

 

신체의 본질이 의학적 사고의 출발점이다.

 

314 이 사실은 <심장에 관한 소고>의 저자가 크니도스 학파의 학문적 수준을 크게 뛰어넘지 못했음을 입증한다. 그런데 어찌 보면 우리가 느끼는 놀라움 자체가 학문과는 거리가 먼 것일 수도 DT. 학문이란 진실과 적절한 통찰력’, 시행착오 같은 것들이 절묘하게 혼합되는 가운데 서서히, 아주 서서히 축적되어 간다. 학문의 축적은 아주 오랜 세기가 지나도록 바벨탑 이야기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학자들이 저지른 실수들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볼 때 적절한 통찰력만큼아니 도움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실수란 언제나 수정되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315 코스 섬의 의사, 힙포크라테스

 

<힙포크라테스 전집>의 핵심을 이루는 예닐곱 개의 논문

-       공기에 대하여, 물과 장소에 대하여, 경과 예측, 급성 질환을 위한 식이요법, 전염병1, 전염병 3, 격언, 관절, 골절

 

321 환자의 몸을 살피는 일은 거창한 직업이다. 시각과 청각, 후각, 촉각, 언어, 추리력 등을 모두 동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힙포크라테스의 저작 중에서 가장 유명한 논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격언>은 힙포크라테스가 환자를 검진하던 중에 섬광처럼 떠오른 단상들을 즉석에서 기록해두었다가 한꺼번에 묶어서 내놓은 모음집이다. 이 책에 수록된 첫 번째 격언은, 오랜 시간 담금질해온 방법이 집대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밀도 높은 문장으로 유명하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며, 기회는 순식간에 지나가고, 경험은 유동적이며, 판단은 어렵다.”

 

329 힙포크라테스는 의사들 중에는 손재주는 좋으나 지성이 부족한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크니도스 학파가 보기 좋게 손가락질당하는 대목이다.

 

333 힙포크라테스의 목표는 자연의 치요 행위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얼핏 보기엔 매우 소박하다. <전염병V>에는 자연은 질병을 고쳐주는 의사라는 대목도 나온다. “자연은 스스로가 자신의 행위에 길을 열어준다. 자연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 혀는 혼자 알아서 모든 역할을 수행한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았고, 아무것도 학습하지 않은 자연이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알아서 이행한다.”

 

339

제네바 선서 – 1948년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의사협회 총회에서 채택되었다.

 

의료계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는 순간부터,

나는 평생 인류를 위해 봉사할 것을 엄숙하게 선서합니다.

나는 나의 스승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간직할 것입니다.

나는 환자의 건강을 첫째가는 관심사로 여길 것입니다.

나는 나에게 의탁한 자의 비밀을 준수할 것입니다.

나는 난의 힘이 닿는 데까지 의료계의 명예와 고귀한 전통을 유지할 것입니다.

나의 동료들은 나의 형제들입니다.

나는 국가와 인종, 정당이나 사회적 신분 같은 요소들이 나의 의무와 환자 사이에 개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인간의 생명을,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 절대적으로 존중할 것입니다.

어떠한 위협이 있더라도, 나는 나의 의학 지식을 인류애 정신에 반대되는 일에 사용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엄숙하게, 자유의사에 따라 명예를 걸고 이 서약을 합니다.

 

341 교양인으로서의 의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 중의 하나는 겸손이다. 이는 지적, 도덕적 겸양을 모두 포함한다. 의사도 틀릴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의사는 실수를 깨닫는 즉시 이를 인정해야 하며, “사소한 실수라면 환자 앞에서 인정해야 한다. 의사는 오랜 기간 양식 있는 스승 밑에서 수련을 거쳤으므로 대체로 심각한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심각한 실수를 저절렀는데, 그로 인해 환자가 사망할 수도 있다면, 환자 앞에서 실수를 인정하는 일은 삼가는 것이 좋다. 환자의 안정을 해칠 수도 있기 대문이다. 이 경우 의사는 자신의 실수를 기록으로 남겨 후배들이 지침으로 삼을 수 있도록 한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웃음

349 요컨대 두 가지 중요한 웃음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첫째, 분노의 기운을 머금고 있는 웃음이다. 기원전 5세기 말 아테나이가 위치한 사회적 체게위에서 무성하게 자라나고 있던 어리석음과 부조리함을 낱낱이 파헤치고 박살내는 웃음이다. … 풍자극은 제국주의적 민주주의가 빠져들고 있는 모순들을 가차없이 고발했으며, 전쟁으로 인한 참화, 민중들의 비참함을 주요 주제로 다루었다.

 

354 독일의 인형극 푸펜슈필에는 마술사와 파우스트 박사라고 하는 사기꾼이 나온다.

 

363 그의 가슴에 방망이질을 하고 가슴을 뜨겁게 불태우는 분노, 민주주의 제도가 쇠퇴하는 데 대한 분노, 공적/사적 차원에서 두루 감지되는 문란한 풍속에 대한 분노도 한몫했음을 덧붙여야 한다. 그 모습 그대로의 아테나이, 점차 와해되어가는 그 사회를 거부하는 그의 분노심이야말로 과거로부터 이어받은 가면 전통에 새로운 감칠맛을 부여하는 수액인 것이다.

 

371 아리스토파네스는 언젠가 사람들이 평화 속에서 살게 되기를, 잔칫날처럼 가족들이 손에 손을 잡고 한가로운 시골에서 산책을 즐기게 되기를 소망했다.

 

373 그는 이 여장부의 추진력을 빌려 엉뚱한 상상력을 발동시켰다. 전쟁 중인 나라의 모든 여인들이 남자들의 어리석음에 대항하기 위해 똘똘 뭉쳐서 남편 또는 연인들을 대상으로 잠자리 거부 운동을 벌이기로 맹세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생리적 법칙을 잠시 중단하는 정도의 상상은 그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384 오디새는 아내를 부를 때 이미 그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꾀꼬리의 노래는 너무도 아름다워서 신들의 합창단마저 그 소리에 맞춰 노래한다고. 이런 시보다 더 그리스적ㅇ니 것이 있을까? 이 시는 자연과의 깊은 합일을 말한다. 신들로부터 새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조화는 동일하다.

 

395 아리스토파네스는 꿈을 꾸고, 신명나는 놀이를 벌인다. 하지만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꿈과 놀이를 벌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꿈과 놀이는 깊이 숨겨진 우리의 본성, 우리의 과거, 우리의 조상, 우리 민족에게서 애써서 퍼올려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꿈과 놀이는 우리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나무 사이에서 놀기만 한다고 해서, 새와 나무를 사랑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새들에 대한 숭배를 떠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리스토파네스는 <>라는 작품을 구상하면서, 그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진지했다.

 

 

지는 해

404 이 전쟁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부적절한 이름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전쟁은 고대 사회엥서 일어난 최초의 세계대전이라고 보아야 마땅하다.

 

412 기원전 430년에 발생한 페스트는 좁은 지역에 집단으로 모여 살면서 기근으로 피폐해진 이들을 제일 먼저 덮쳤다. 전쟁과 전염병으로 떼죽음을 당한 아테나이 농민들은 자영업자, 뱃사람, 하급관리들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전쟁에 동원되었다. 이들은 그 대가로 전쟁이 자신들에게 일거리와 빵을 가져다주기를 기대했다.

 

419

독재 정권 수립을 꿈꾸었다는 이유로 기소당한 브뒐리클레온은 이렇게 말한다. “독재라니, 난 그런 말은 오십 평생에 처음 듣는단 말이오! 그런데 이젠 그 독재란 놈이 소금에 절인 생선보다 더 흔해빠져서 온 시장에 널려 있더군요. 누군가가 어떤 상인에게서 청어를 사고, 정어리는 사기를 거부한다면, 옆에서 정어리를 팔던 상인이 냉큼 나서서, 이자는 독재 정권에 대비해서 식량을 비축해놓는 것 같다고 말하죠. 게다가 그자가 멸치 맛을 내는데 쓸 파를 달라고 한다면, 향신료를 파는 여자 상인은 대번에 상대방을 비스듬히 흘겨보면서 , 파가 필요하다고요! 혹시 독재하시려고 그러는 거요?’하고 묻습니다.

 

422 이 무렵 노예의 값은 무척 쌌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전쟁으로 인해 시장에 나온 인간 재화가 넘쳤기 때문이다. 노예 한 명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도 지극히 미미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불쌍한 자유인보다 유지비가 훨씬 덜 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영업이나 농촌의 노예노동이 점점 더 번성하게 되었다.

 

427 가난하고 굶주린 자들은 오래전부터 아테나이에 상존하고 있었다. 특히 전쟁이 끊이지 않으면서 이 같은 현상은 더욱 눈에 띄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름>(기원전 423)이 발표될 때에만 해도 이따금씩 농담삼아 할 수 있었던 말들이 기원전 388년엔 아예 하지 않는 편이 좋은 말이 되어버렸거나, 농담이 안인 비장한 의미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아무리 연극이라지만 외투나 침대, 담요 등을 구비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농담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계단식 극장에 앉아 공연을 보는 관객들 중에 그런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라는 수수께끼

 

435 독특하면서도 지극히 평범했던 그의 생애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그의 죽음이 가져온 엄청난 다산성이다.

 

437 <구름>에 나타난 소크라테스는 두 가지 특성을 지녔다. 첫째, 신들을 끌어들이지 않고 자연현상을 설명한다는 점이다. … 즉 어원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소크라테스는 무신론자다. 두 번째 특성은 궤변학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희극 시인의 눈에 비친 궤변학이란 법정에서 가장 설득력이 약한 논변을 가장 설득력이 강한 논변으로 바꿔놓는 학문으로, 이는 젊은 층에게 자신이 저지른 실수, 가령 간통을 저지르고도 형벌을 피할 수 있는 영악한 수단을 제공한다.

 

442 (앞서 소크라테스에 관한 논문들의 태도를 비판하며) 그렇다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차이점과 모순을 빌미로, 그것이 진정성이 없다고 치부해야 하는가? 고대 문헌들을 통해서 드러나는 소크라테스는 신화적이고 전설적이며 허구적인 인물에 불과하다고 결론을 내려야 하는가? 한마디로 터무니없는 결론이다.

 

445 어쩐지 악의가 의심되며

ð  그리스 철학자들에 대한 저자의 애정은 알겠지만, 설마 다른 학자들에게 악의가 있었을까? 악의를 의심하는 것이 악의있어 보인다. 그러지 말았으면

 

449 그를 따르는 제자들의 대다수는 평범한 집안의 아들들로서, 적지 않은 이들이 그저 한가로운 시간을 때우기 위해 그를 따라다녔다. 소크라테스는 노동자인 민중에게서 태어났으며, 그 역시 노동자였다. 산파였던 어머니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직업에 종사한 셈이다. 아버지는 파르테논 신전을 세운 석조 블록을 각지게 자르고, 모서리를 갈고 닦는 석공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노동자들과 자주 어울렸다.

 

452 왜 아테나이 사람들은 그를 죽게 했을까?

 

456 신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주장 또한 굉장히 놀라운 것들 중의 하나였다. 그는 만일 우리가 합리적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우리는 신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458 소크라테스는 시민의회가 되는 대로결정을 한다고 말했다.

 

465 결국 아테나이인들은 시인의 천재적인 작품 덕에 그들을 사로잡게 된 소크라테스의 유령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다.

 

467 소크라테스는 그의 내부에서 끈기 있고 참을성 있는 검토를 통해서 정의와 선함의 법칙을 파헤친다.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운명을 완벽으로 이끄는 길이라고 믿는다. 이 법칙은 그의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인간은 누구나 그 법칙 안에서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니 알려지지 않은 신, 지고의 선 자체인 이 아니라면 누가 그 같은 법칙을 인간의 영혼 속에 심어두었겠는가?

 

469 “소크라테스는 국가가 인정하는 신을 믿지 않으며, 도시에 새로운 신들을 끌어들이는 죄를 범했다. 그는 도한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죄도 범했다. 사형이라는 벌을 제안한다.”

 

476 그자들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에게 어리석은 짓거리에 대한 취향을 불어넣는다는 것이었다. ‘현실주의적정신의 소유자들에게 어리석은 짓거리라는 말은 성찰과 탐구의 통칭이었다.

 

486 부당하게 형을 선고받은 시민은 법이 정한 형벌을 피해도 좋은가?

ð  안티고네는? 자연법은?

부당하게 형을 선고받았다고 해서 그 자신도 불의를 행하고, 악에는 악으로 대할 권리를 가지는가? 불복종 행위를 통해서 무질서의 사례가 되어도 좋은가? 도시로부터 이제까지 받았던 온갖 혜택들을 그 도시를 파괴하는 것으로 보답해도 좋단 말인가? 분명 그렇지 않다. 악은 언제나 악이며, 따라서 항상 피해야 한다.

è 자신의 가치관대로 살기

 

488 혹시 누가 아는가? 삶으로부터 치유되어야 마침내 무지로부터도 치유될 수 있는 건 아닌지

 

489 하지만 이거 하나는 반드시 알아두게나, 크리톤. 부정확하게 말을 하는 건 영혼에 해악을 가하는 거라네.

 

 

 

 

 

 

 

 

 

 

 

 

 

 

 

 

 

 

내가 저자라면

 

저자가 책을 쓴 시점은 1950년대이다. 비단 그래서는 아니겠지만, 저자 서문이나 머릿글, 혹은 에필로그로 불리는 부분이 전혀 없어서 사전 지식을 얻는 것이 힘들었다(나중에 책 하드표지에 설명이 조금 달린 것을 발견하였다). 특히, 왜 저자가 그리스인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왜 그리스였을까? 만약 저자가 조금은 친절하게 자신의 열망과 바램을 노출해주었더라면, 독자들은 응당 그의 열정을 닮아갔을 것이다. 왜냐하면, 훌륭한 책이기 때문이다. 책의 진가를 알아본 후에는 응당 저자의 말에 순응도가 높아지기 마련이다.

책은 책 자체로 생명력이 있는 존재다. 그러나 책 유기설을 운운하기 전에 책은 저자의 산물이기도 하다. 책을 저자에 대한 상상 없이 읽는 것은 조금 재미가 떨어진다. 우리의 저자인 앙드레 보나르는 꽤 매력적인 배경을 지닌 사람이다. 그의 인생역정을 통해 연민을 자극받으려 하는 행위는 분명 저자의 의도는 아닐 것이다. 저자 스스로가 별로 이야기 하고 싶은 눈치도 아니다. 그렇지만 괴테는 자서전도 쓰는 마당에 약간의 친절은 팬서비스라고 생각해두자.

서술의 특징은 매우 쉽게 풀어 썼다는 것이다. 술술 읽혀내려간다. 다만 지나치게 완만한 곡선을 그리다보니 뜬구름 잡듯한 설명이 되어버렸다. 예시를 번호를 달아 아래 각주로라도 실어주었더라면 보다 차원 높은 접근을 원하는 의심 많은독자들의 요구도 충족할 수 있었으리라. 보다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으면 왠지 성의 없는 자료조사처럼 여겨질 위험이 있다.

그러나 사실 이런 의심은 곧 풀릴 수 밖에 없는데, 특히 그리스 문학에서의 등장 인물 분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저자는 <일리아스>에서 호메로스가 인물 설정을 천재적으로 하였다고 극찬하였는데, 내가 보기에 인물 분석을 잘해낸 것은 호메로스가 아니고 저자인 듯하다. 초반을 조금만 읽어보아도 이 책이 그리스 문학에 관한한 대단한 팬북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보나르의 책이 팬북이라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보나르는 사실만을 전달하는 것은 애당초 포기하였다. 그는 가감없이 자신의 생각을 보여준다. 가령,

 

"그 가운데도 핀다로스와 테오그니스의 시가 좀 더 많이 살아남았다. 교재에 실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핀다로스는 몰라도 테오그니스에게는 지나치게 과분한 대접이다. 그 지겨운 테오그니스를 보존하고 베끼다니! 서정시라면 최소한 아르킬로코스나 삽포 정도는 되어야 한다.”

 

처럼, 시인들에 대한 서열 정비도 서슴없이 하고 있다. 그의 직설어법에 언제나 동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의뭉스럽지 않아서 오히려 독자에게 다른 입장을 취할 여지를 주며, 또 호쾌한 기분을 만끽하게 한다.

또한 보나르는 그리스 문명을 전반을 훑고 있기 때문에 책에서 인문학과 과학, 지리학, 사회학, 정치학 등 전체 분야를 총망라하는 통섭을 실현해야 한다. 자칫 주워담을 수 없는 냄비 속 미역줄기처럼 파생되기 쉬운 주제를 저자는 용케도 잘 담아내었다. 그는 자신이 다루고 싶어한 핵심 인물을 중심으로 문명에 방점을 찍는 영리한 전략을 택했다. 때문에 일반 독자들은 그리스 하면 떠오르는 핵심 화두들을 남김없이 섭렵하면서도 분량의 압박을 그리 크게 느끼지 않아도 된다.

동시에 보나르의 통섭 능력이 빛을 발하기도 했다. 그는 문학 작품은 문학적으로 다루고, 인류학적 부분은 과학자처럼 다루고 있다. 짜임새는 전혀 이상하지 않으며 한 책 안에서 잘 융화되어 있어서 이것이야 말로 통섭 학문의 본보기로 손색이 없다. 저자는 문장가로서도 일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그는 특히 두 가지의 핵심 기술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허를 찌르는 핵심 질문을 잘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사실주의니 고전주의니 하는 이 용어, 너무도 자주 왜곡되는 이 용어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 의미를 밝혀내는 일이야말로 지금부터 이어지는 글의 목적이 아닐까 싶다.

 

 다른 하나는, 문단의 끝에 화룡점정할 문구를 두어 예술적 극치감을 잘 끌어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의 특성을 인간과 비교하면서 한 페이지 정도 설명한 후, 가장 마지막에 호메로스의 인용구를 넣는다.

 

호메로스의 말대로 "눈물은 인간의 것이고, 웃음은 신의 것이다."

 

극적 상징성을 잘 활용한 예라고 생각된다.

 

 

IP *.36.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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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2 08:07:20 *.142.242.20

나도, 그가 왜 그리스에 이렇게 평생을 바치게 됐는지, 그걸 알면 좋겠다는 생각했어. 

부럽기도 했고. 

정민 교수님이 한시와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에 심취해 계신 것처럼, 

그도 그리스에 완전 푹푹푹 빠져 버린 것 아닐까? 

문학을 전공하면서 그리스 비극, 신화이야기에 완전 매료되었거나. ㅎㅎ


나의 추측 ^^


레몬아, 오늘 졸지말자. 우리 (나 다크서클로 멜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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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2 09:35:05 *.41.190.211

학문의 통섭이 이런식으로 완성된 것도 재미있는 일인것 같네...왜 우리가 찾아보는 서적에는

작가에 대한 연구가 이토록 빈약 했을까? 이런 궁금증을 갖고  지난주를 보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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