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두
- 조회 수 2989
- 댓글 수 10
- 추천 수 0
싫어요
일 주일 동안 고기를 네 번 먹었다. 다 합치면 한 600g 되려나? 어디 보자. 화요일에 오거리 솥뚜껑 삼겹살집에서 3인분 시켜서 애가 2인분 먹고 내가 1인분 택 먹었으니 소갈비살 150g, 목요일 용산 철거민에 대해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을 같이 본 이와 극장 밑에서 돼지목살 100g 숯불에 구워먹었고, 금요일에 버스 정류장 앞, 세일하는 아울렛마트 정육점에서 소불고기 한 근에 9500원에 사들고 들어왔다. 이건 냉동실에 넣어두고 주말에 조금씩 냄비에 달달 볶아서 부추 한 줌 넣어서 숨 죽여서 마늘초절임하고 어슷 썬 청량고추를 얹어 상추쌈 싸서 먹었지. 입가심으로 여수에서 온 칼칼한 열무김치국물을 마시니까 니글거리던 속이 가라앉았어. 일요일을 마지막으로 고기가 딱 물렸다. 누린내가 슬슬 입에서 코에서 손에서 집에서 공기에서 사방에서 천지삐까리로 나기 시작했거든. 냄새 나기 시작하면 육류 섭취 딱 싫어진다. 다른 때 같으면 순대국이나 선짓국, 추어탕을 먹었을 거다. 여기 이사 와서 뚫은 단골 순대국집은 동인천역 앞 순대골목의 진미순대다. 나는 말없이 바쁜 그집 주인 아줌마가 좋아서 거기 간다. 그이는 왼손잡이다. 서울 살 때는 사당역 담양죽순추어탕 집에 갔다. 고기가 땡기는 걸 보니 생리가 코 앞이다. 피 흘림에 대비하는 자연의 설계려니 한다. 피를 피로? 살을 살로? 하긴 모기 암컷도 알을 낳기 위해 다른 동물의 피가 필요하다고 하잖아. 그래서 암모기들이 목숨을 걸고 사람을 포함한 동물의 혈관에 뾰족한 입을 필사적으로 찔러넣고 있다.
생리, 김선우 시인은 이걸 꽃이 비친다 했던가? 말이 참 이쁘기도 하다. 이것 즈음해서 나를 읽는다. 우선 몸. 허리가 끊어지는 생리통은 줄었다. 절 때문인 것 같다. 유방 동통이 있고, 체온은 좀 올라가는 것 같고, 수분이 잘 안 빠지는 것 같은데 내게 제일 많이 관찰되는 건 비위가 약해진다는 거다. 나는 평소에 막강 비위를 자랑한다. 덕분에 음식에 대한 기호가 별로 없어서 뭐가 맛있나 맛없나 별 상관하지 않고 가리는 것 없이 먹는다. 애 엄마는 아니지만 애들이 토해 놓은 것, 싸놓은 것 척척 치운다. 양파나 파 같은 황화합물이 든 음식물 썩는 냄새가 젤 고약하듯 우유가 섞인 토사물이 제일 역하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견디기 위해 용을 써야 한다. 혼자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아이를 따라 뒷처리해 주러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며칠동안 씻지 않은 채 온 아이의 몸냄새에 훅한다. 왜 이 아이 엄마는 이 딸래미를 안 씻겨서 학교에 보내는 거야? 더운 여름날, 가뜩이나 땀을 많이 흘리는 아이를 우리더러 어떻하라고? 급식 시간에 나온 생선을 먹은 아이가 출입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나한테 달려오는데 나는 손부터 씻고 오라고 소리친다. 희귀한 것, 이국적인 것도 제법 잘 먹다가 이 시기에는 어릴 때 먹던 음식으로 회귀한다. 다른 것으로 변형시키지 않은 원단 엄마 음식들이 떠오른다. 먹우나물, 두부와 꼬꾸래미를 넣어 끓인 김치국, 들기름으로 디꺼서 국물을 낸 무콩나물국……뭐니 뭐니 해도 여러 가지 멀미를 가라앉히는 단방약은 금방 한 흰밥 또는 흰 죽을 반찬없이 오래 씹어 먹는 거다. 뭐냐? 임신한 여자가 입덧하는 것도 아니고. 아, 입덧이라는 말이 나온 김에 어디선가, 입덧은 보호하기 위해 민감함을 증진시키는 작용을 한다고 들었지. 이것하고 비슷한 기능인 것도 같다.
다음 마음. 성질 부리는 사람에게 “뭐냐? 저 여자(남자) 그 날이냐?”고 놀리는 우스개소리가 있다. 짜증이 난다고 하는데 내게는 그 말이 맞다. 인내심의 역치가 현저히 낮아진다. 다른 때 같았으면 넘어갈 일에 대해 참을 수 없어진다. 예를 들면 ADHD 약을 먹는 아이 둘이서 동시에 말을 하고, 그 사이에서 한 아이가 두 아이에게 간섭하는 3방향 동시발생 대화를 듣다가 “얘들아, 오늘은 선생님이 귀가 아프다”고 말하면서 들을 수 없어진다. 고이고이 말하면서? 바른 말 하자면 버럭한다. 애를 울리기도 한다. 강아지한테 얻어맞은 후 '무서워' 단어를 배운 아이가 나더러 '무서워' 한다. 아침에 모닝페이지를 하면서 싫은 것의 목록을 한 10가지 쓴다. 싫어요, 싫어요, 싫어요. 싫습니다. 싫거든요. 나중에는 다 싫다고도 몇 번 쓴다. 대부분 묵혀두었던 것,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것들이 항아리가 휘저어지면서 살살 떠올라온 거다. 내가 묵혀두었던 마음의 소리를, 특히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힘들어하는 지 확성기를 대고 내지른다. 너무 크고 분명하게 떠벌려서 민망할 지경이다. 없던 게 생긴 게 아니라 있던 게 드러나는 것 같다. 레이저로 결석을 부수듯 짜증으로 자잘하게 나누어 모양을 바꿨어도 저건 매장된 분노다. 또 하나는 내 마음 안에 해소되지 않은 것, 어릴 때부터, 최근의 섭섭함, 눈물 짜낼 것, 짝이 없거나, 아이 엄마가 아닌 것, 그동안 내 삶의 주인으로 한 번도 대접받지 못했던 부분들이 내는 상실과 슬픔의 느낌 같기도 하다. 나 좀 봐달라 내 얘기도 좀 들어달라는 시위, 사이렌의 노랫소리 웅성웅성. 출렁출렁 삐그덕삐그덕 흘러가다 군데군데 기진맥진 의욕상실. 어디서 쥐약을 줏어먹고 여름 소나기를 맞고 있던 검은 개처럼 사지가 늘어진다.
그 다음 관찰되는 일은 꿈이 현저히 많아진다. 기억나는 꿈이 많아진다는 게 맞는 말이겠다. 많이 자서 그런지도 모르겠네. 이번 달만 그런가 다른 때도 그랬나 꿈일기를 뒤적인다. 28일 주기니까 조금씩 당겨지는 거지. 6개월쯤 보면 다른 때도 미미하지만 늘어났다. 낮잠을 20분 자는 동안에도 꿈이 기억날 때가 이 즈음인 듯 하다. 지난 주 7일간 12개를 기억했다. 다른 때는 많으면 한 주에 2개 정도다. 꿈기억이 좋아지는 때는 300배를 아침 저녁으로 할 때와, 새벽기도가 안정될 때, 생리 전후, 그리고 특별한 사건이 있을 때다. 나의 사회적인 관계망이 느슨해지고 집안에 두문불출하면 활동실조를 보상하기 위해 더 많아질 때도 있는 것 같다. 달이 차고 기울 듯, 이 여자의 몸이 차고 기운다. 그래서 더 이런 흐름에 민감해 지는 걸까? 이건 무의식의 세계와 더 가까워 지는 걸까? 남자들은 안 그러나? 이게 궁금해서 이런 몸과 마음의 기억을 가진 채로 남자로 한 번 살아보고 싶다.
PMS, 생리전증후군을 모두 병으로 몰 수 있을까? 호르몬이 어떻게 변화해서 이렇게 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공부를 좀 해얄 것 같다. 가장 간단한 해결방법은 PMS를 줄이는 약을 처방받는 건지도 모르겠다. 몸이 아프지 않으니 이걸 갖고 처방받긴 좀 그러나?
<그리스인이야기>에서 다방면으로 뻗어나가는 싱그런 호기심과 그리스에 대한 무한 애정에 걸맞는 풍부한 견문과 지식을 자랑하는 앙드레 보나르씨는 말한다. 히포크라테스 (맞다, 우리가 아는 그 의사다. 의사는 수련을 마치고 자격면허를 따면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가 이런 말을 했단다.
자연은 질병을 고치는 의사다. 자연은 스스로가 자신의 행위에 길을 열어준다. 자연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 혀는 혼자 알아서 모든 역할을 수행한다.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다. 아무런 교육도 받지 않았고, 아무것도 학습하지 않은 자연이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알아서 이행한다. (2권 334쪽)
PMS가 하는 말을 듣는다. 저것의 역할이 분명히 있을 것 같다. 가장 분명한 건 내가 짐승의 암컷, 자연이라는 말이겠다.
하하 웨버님 사실 어제 카톡으로 명동의 선지국집 사진 보여주셨을 때요. 그 때 생각한 칼럼입니다.
이 칼럼이 보편적인 여자의 몸마음을 이해하는 데는 맞지 않지 않을까요?
아, 혹시 이걸 읽고 딸, 아내를 이해하려는 분이 계실 거라는 건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요. @@
그런 걸 미리 고려했더라면 좀 더 자료조사를 해서 쓸모있는 글을 쓸 것을요!
하하 다 못해낸 인용문 타이핑, 조퇴하고 와서 하고 있는 주제에 요원합니다. -_-
몽정이 어떤 느낌일까요? 여자들도 꿈 속에서 제법 질펀한 장면을 경험하는데 말입니다.
언제 자세히 들어봐야겠습니다.
다른 이들보다 더 출렁출렁하는 입장에서는요 안정적인 분들이 참으로 부럽고 필요하고 그럽니다.
출렁출렁 흘러가는 길에 거대한 한강 다리처럼 끄덕 않고 서 있는
행님^^
프로메테우스 영화를 보다가 그 프로메테우스 만든 감독이 에일리언 만든 이라서 전염된 것 아닙니까?
이거 곧 머리에서 한 마리 출산하시는 것 아닙니까? ㅋㅋㅋ
오른쪽이면 음 (에어리언의 성별과 고향을 감별중)
형님 말씀에 뜨끔해서 다시 펴보니까요. 뭣 좀 많이 싫다 싫다 해놓았네요.
짜증과 분노 여기다 부리며 찔끔 거렸어요. 나중에는 '두고 보겠어.' 저주를 막 부어 놨어요.
입에서 개구리, 두꺼비, 뱀, 지네, 전갈, 노네각시...냄새나고 다리 많고 구불구불 기어가는 것들이 막 튀어나오는 날이 있어요.
하지만 역시 일어나는 힘은 108배에 있는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형님. 형님은 요즘 참 책읽기를 즐기시는 듯 합니다. 아니 성실히 읽고 계시니 그렇겠지요. 보기 좋습니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072 | 혼자서 뭐하지? [12] | 루미 | 2012.07.03 | 2801 |
3071 |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기 [7] | 장재용 | 2012.07.02 | 2556 |
3070 |
내 고향은 아프리카 ![]() | 구라현정 | 2012.07.02 | 2101 |
3069 | 소크라테스 처럼 [14] | 세린 | 2012.07.02 | 2212 |
3068 |
#13 우리들의 이야기 ![]() | 샐리올리브 | 2012.07.02 | 2205 |
3067 | #13. 눈을 감고 느껴보세요 [14] | 한젤리타 | 2012.07.02 | 2307 |
3066 | 쌀과자#13 잉여와 결핍 [12] | 서연 | 2012.07.02 | 2290 |
» | 싫어요 [10] | 콩두 | 2012.07.02 | 2989 |
3064 | 시대를 가르는 Mind-Power 어떻게 키울것인가? [10] | 학이시습 | 2012.07.02 | 2117 |
3063 | 머리카락 한 올의 오차가 가져오는 결과는 [8] | ![]() | 2012.07.02 | 2532 |
3062 |
[일곱살민호] 힌트는 눈이야 ![]() | 양갱 | 2012.06.26 | 2452 |
3061 | 밥값도 못 하는 순간 [6] | 루미 | 2012.06.26 | 4648 |
3060 | 깨달음을 위한 프로세스 2 생각의 시스템1 시스템2 [6] | 백산 | 2012.06.26 | 2383 |
3059 | 쉼표 열 하나 - 그 많던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6] [1] | 재키 제동 | 2012.06.25 | 2812 |
3058 | 연구원 1년차 이후의 길잡이 [10] | 콩두 | 2012.06.25 | 2387 |
3057 | 아빠에게 [5] | 세린 | 2012.06.25 | 2340 |
3056 | 책은 선인가 악인가 [6] | ![]() | 2012.06.25 | 2174 |
3055 | 쌀과자 #12_단테와 프로메테우스 [3] | 서연 | 2012.06.25 | 2606 |
3054 | 파우스트 박사의 진실의 힘 [4] | 샐리올리브 | 2012.06.25 | 2588 |
3053 | 권위에 맞서는 자者 [10] | 장재용 | 2012.06.25 | 2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