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장재용
  • 조회 수 4160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12년 7월 2일 10시 04분 등록

그리스인 이야기 (Civilisation Grecque)

* Andre Bonnard 지음, 김희균 옮김 / 강대진 감수, 책과함께, 2011.03.31

 

1. ‘앙가주망(저자에 대하여)

Andre Bonnard (1888~1959)

 

 


보나르.JPG

André Bonnard

(그의 정보가 빈약한 것 만큼 사진도 빈약하여 저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행운이다. 그리스를 이야기하는 앙가주망을 만난 것은 시대의 축복이다. 그리스 문명의 발전사가 민주주의와 계급 투쟁의 역사와 일치한다는 사유는 저자가 처음이 아닐까 싶다. 깊이 있는 디테일을 알지 못하면 결코 나올 수 없는 통찰 또한 빛난다.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의 리오 휴버먼 조차 고대 그리스 사회까지 훑어내지는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저자는 자본주의와 계급, 그리고 자유를 향한 인간의 원류를 정확히 짚어낸 동시대 유일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정보가 너무 일천하다. 도대체 포탈은 뭘 하고 있는가. 구글에 실망이다. 어렵사리 찾아낸 그의 사진도 위와 같이 일그러진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나마 입수한 그에 대한 정보를 간추린다.  

 

그는 1888년 스위스 로잔에서 태어났다. 로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1936년 그르노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15~28년 로잔 중학교와 고전 김나지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이후 1957년까지 30년 동안 로잔 대학 그리스어·그리스 문학 교수를 지냈다. 대학 교수이자 작가로서 여러 저작들을 통해 고대 그리스에 생생하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입히고자 노력했다. 자신의 글에서 지식인 사회 특유의 사변을 걷어내고, 학생들이 고대 그리스 작가들의 작품을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대하듯이 읽도록 가르쳤다.

 

그는 파시즘과 나치즘에 저항하는 `참여하는 인문주의자'였다. 자신의 작품 프로메테우스안티고네등에서는 주인공에게서 저항과 참여의 정신을 찾고자 했다. 1949 `스위스평화운동'의 회장으로 추대되어 평화 활동을 계속 이어갔으나, 냉전의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1952 `국제평화수호자대회' 참석차 동베를린으로 가던 중 스위스 경찰에 체포되어 기소되었다가 결국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 후 그리스 문명사 연구와 집필에 매진하다 작고했다.

 ‘그리스인 이야기는 헬레니즘을 진보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여기서 헬레니즘은 인간이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과 운명을 지배하기 위해 벌이는 모험의 시기로 간주된다. 스위스에서 불어판으로 출간된 이 책은 프랑스 뿐 아니라, 영국, 미국, 포르투칼, 러시아, 루마니아, 일본 등지에서 일찍이 각국어로 출간되었으며, 그리스 문명사 분야의 세계적인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그리스비극에 대한 지식이 깊다. 스스로가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로 불리는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을 불어로 번역했으며, 프로메테우스 Le Promethee(1928), 그리스의 신들 Les dieux de la Grece(1940) 안티고네 Antigone(1942) 플라톤이 본 소크라테스 Socrate selon Platon(1944) 오이디푸스 왕 Oedipe-Roi(1946) 사포의 시 La poesie de Sapho(1948) 비극과 인간 La tragedie et l'homme(1950) 등 그리스 관련 저서를 다수 남겼다.

 

 

2. ‘그리스인 이야기(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 본문 내용, Ü : 나의 언어)

 

□ 인간은 모두 원시인으로 시작했다. 그리스인도 마찬가지다. (p. 11)

 

Ü 책은 처음부터 내려 놓는다. 어깨에 힘을 쫘악 뺀 책이라는 느낌이 팍 온다. 우리 모두가 아무것도 이루지 않은 처음의 원시인이라는 말이겠다. 그리스인도 우리도 원시인도 죄다 인간이라는 안에 복속되는 종의 하나일 뿐

 

□ 자유를 위한 숭고한 투쟁으로 일컬어지는 살라미스 해전은 헤로도토스의 말대로 그리스 민족의 독립전쟁이었다. 이 역사적인 날 아침, 그리스군의 총사령관 테미스토클레스는 모든 전함을 모아놓고 인간의 생살을 뜯어 먹는 신 디오니소스에게 세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 아주 잘생긴 데다 옷도 잘 차려입었고 금빛 보석으로 치장한 그들은 아테나이 최고집정관의 친조카들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 세사람의 목을 졸랐다. 벌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리스 민족의 승리를 위해 희생양으로 바친 것뿐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유물론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고 존경 받는 석학이었다. 그런 데모크리토스도 월경 중인 여자아이들은 수확을 앞둔 밭 주위를 하루에 세 번 뛰어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월경 때 흘리는 피가 해충을 박멸하는 항생제 역할을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p. 14)

 

Ü 인간의 원시성은 감출 수 없다. 위의 이야기를 놀란 표정으로 읽고는 이런 일도 있더라며 다른 사람에게 아주 고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사는 여기 또한 야만으로 치면 그때보다 결코 빠지지 않는다. 그때의 사람들이 지금의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야만적이냐며 혀를 차겠는가. 아파트라는 박스에 살고 있고 아이들이 공부하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을 그들이 본다고 생각해 보라.

 

□ 문명은 원시인들의 토양에서 차츰 싹을 틔우고 자라온 것이다. 필요하니까 발명을 했고 우연히 기후가 좋아 생산량이 늘어났고 그래서 문명을 이룬 것일 뿐이다.

그리스 문명은 바로 우리의 문명이다. 그들이 만들어낸 문명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문명이다. (p. 16) Ü 이어간다.

 

□ 문명이란 무엇인가? 그리스 말로 문명화된 인간이라고 할 때 문명화된 이라는 말은 길들여진, 교육을 받은 혹은 접붙인 이라는 뜻이다. 문명화된 인간, 다시 말해서 접붙인 인간이란 좀 더 영양이 풍부하고 좀 더 맛있는 열매를 맺을 줄 아는 인간을 말한다. 따라서 문명이란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서 생산력이 늘어난 상태를 의미한다. 그 문명 덕에 사람들이 목숨을 보전한다. 자연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원시인들은 그저 자연의 법칙을 깨달아 알고 자연에 대해 반격을 가할 수 있다.

 

Ü 그리고 다시 사람에게 시선을 돌리면 인간이 인간에게 가축화 되어가는 과정이라 할 수도 있겠다.

 

□ 과학과 예술로 무장한 인간은 스스로를 새롭게 정의한다. 그것이 바로 휴머니즘이요 인간됨이다. 인간됨은 다시 새로운 발견과 창조를 추동하는 힘이 된다. 아주 정확한 정의는 아니겠지만 문명이란 이처럼 발견과 창조의 연속이라고 정의해두기로 하자. (p. 17)

 

□ 이러한 발전 과정 가운데 가장 두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것은 바다를 정복하는 일이었다.

그리스에는 바다라는 단어가 없었다.

그리스인들은 어떤 시인의 말처럼 가난 때문에 굶주림 배를 채우기 위해바람과 파도가 지배하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에 물건을 싣고 나가야 했다. (P. 18)

 

□ 요컨대 농부로 시작해서 뱃사람으로 진화해온 것이 그리스 문명의 내력이다. 그리스인들이 또 하나 배운 게 있다면 그것은 .

그리스 말은 풀과 샘물처럼 부드럽고 힘찼으며 미묘한 생각들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었고 사람의 마음속에서 각양각색으로 일어나는 움직임을 포착해낼 만큼 풍부했다. 부드럽고 강렬한 음악도 알았고 잘 다듬어진 플루트의 음색도 알았고 풀피리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문학이 아니었다. (P. 18~19)

 

Ü 시를 노래하는 시민들이 살고 있는 공동체를 생각해보자. 생을 사랑하는 힘이 충만하여 자유의 공기가 샘물처럼 퍼질 것이다. 그리고 언어의 힘 또한 사유의 폭과 닮아있다. 시를 사랑하여 항상 노래했다면 사유를 표현하는 언어도 풍부했으리라 짐작된다.

 

□ 그리스 사람들은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알고 싶어했다. 무엇으로 만들어졌고 어떻게 움직이는가? 그리고 그렇게 알게 된 지식을 인간을 위해 요긴하게 쓰고자 했다. 수학을 만들었고 천문학을 개발했다. 그들은 어째서 그것들을 발명하고 발견하는 데 매진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해서였다. 인간에게 득이 되고, 인간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서였다. (p. 21)

 

Ü 르네상스 사조의 원류가 여기에서 나온다.

 

□ 그리스 사람들은 불완전하게나마 민주주의를 고안한 최초의 민족이었다. (p. 21)

 

Ü 민주주의가 자본과 결탁되지 않았던 고대 그리스 사회가 인류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시스템을 가진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 그가 보기에 신, 특히 천지의 지배자 제우스는 인간을 박멸하고자 했다. 만약 인간의 친구인 프로메테우스가 없었다면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의 은인이다. 프로메테우스도 그걸 알고 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장광설을 늘어놓고 있다. 하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인간은 프로메테우스의 말처럼 원시인에서 문명으로 진화해왔다. 프로메테우스는 그 증인이었을 뿐이다. (p. 22)

 

(하지만 민족을 이야기하면서 인종이 다르다는 식으로 말하지는 말자) (p. 23)

Ü 이 사람의 민족관은 마음에 든다.

 

□ 놀라운 사실은 이 글자가 그리스나 다른 민족의 글자가 아니라 크레테의 고유한 글자였다는 것이다. 그리스 말을 크레테의 글자로 적었다는 뜻이다.

어쨌든 이 단계에서 틀림없는 사실은 그리스인은 에게인에게 그들의 말을 가르쳤지만 글을 전해준 바가 없다는 것이다. (p. 26)

 

Ü 앞에서 시를 노래할 줄 알았던 그리스인들은 결국 크레테의 문자에 의한 시였구나. 인류의 근원은 크레테다. 그들의 문자가 지금의 나를, 우리의 문자 문화를 지배하고 있으니

 

□ 그리스인들이 할 줄 아는 거라고는 도적질밖에 없었고 궁전과 묘실은 훔쳐온 금들로 가득 넘쳐났다. (p. 28)

 

Ü 호전적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하는가. 고함치고 자기 입장을 관철시키려 유아적으로 난리치는 사람들이 세상의 윗자리를 차지하는가 말이다. 그리 되어서야 되겠는가. 사람들아.

 

□ 트로이아 전쟁에 얽힌 수많은 일화들이 영웅들을 묘사하고 있지만 전쟁의 원인은 순전히 경제적인 것이었다. 강도들 간의 세력 다툼이었다.

트로이아 전쟁은 같은 그리스 민족인 아이올리스인과 이오니아인들을 아카이아인이 짓밟은 전쟁이었다. (p. 29)

지도.JPG

 

□ 제멋대로 솟은 산들을 경계로 그리스는 자연스럽게 작은 주로 나뉘게 되었고 대부분의 주는 바다와 접했다. (p. 31)

 

Ü 소통이 어려워 전쟁이 많았을 터. 척박한 땅으로 인해 바다 rush는 예정된 일이었던 것 같다.

 

□ 그리스 역사에서 30년 이상 된 전쟁은 있었을지언정 30년 이상 지속된 평화는 없었다. 도시들끼리 이처럼 자주 다퉜던 역사가 항상 나쁜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다툼은 다양한 형태의 경쟁으로 나타났다. 도시는 운동으로도 겨루었고 문화로도 겨루었다. (p. 32~33)

 

□ 이피게네이아는 야만족은 노예를 키우고 그리스 민족은 자유를 키운다는 명언을 남겼다. 물론 다분히 인종차별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말이다. (p. 35)

 

□ 그리스의 바다는 다랑어나 정어리를 잡는 곳이 아니었다. 다른 인류와 교통한 장소였고 위대한 예술 작품과 발명품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웅덩이 주위에 널린 개구리처럼 번져나갔다. 꾸륵꾸륵, 지중해 주위에 그리스인의 소리가 넘쳐났다. 바다를 통해 그리스의 문명이 발전해나간 것이다. (p. 37)

 

Ü 결핍이 주는 위대함은 발상의 전환이다. 필요와 필연은 위대함을 낳는 추동력을 부여했다.

 

□ 그리스 문명은 배고픔을 먹고 자랐다. 헤로도토스 (p. 37)

 

□ 마시자! 뭐하러 등불 밝힌 밤이 오기를 기다리겠는가. 해가 반 주먹도 남지 않았는데 친구여, 찬장에서 커다란 잔을 꺼내게. 제우스와 세멜레의 아들이 준 이 선물은 현세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것이니. 포도주 한 잔에 물 두 잔을 섞어서 자, 파도타기로 건배! (p. 39~40)

 

Ü 포도주는 특별한 날에만 마시는 음식이었다. 그것도 아까워서 물을 섞어 마셨다.

 

□ 이처럼 그리스인들이 가난하게 산 이유는 척박한 땅과 낙후된 기술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는데 바로 분배의 불평등이다. (p. 40)

 

Ü 부를 나누어 가지지 못하는 것은 대중의 가난과 억압에 결정적 이유다. 사람이 사는 사회 어디에서나 불평등이 생기는 이유가 참 궁금하다. 원시적이지 못해서인가. 너무 진보적이어서인가.

 

위대한 그리스 역사는 각종 사회계급이 발생하고 발전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새로 태어난 계급은 귀족들이 누리던 특권을 탈취해서 새로운 도시의 주인이 되고자 했다. 귀족들이 죄다 행정의 책임자이고 성직자이고 판사나 장군이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귀족보다 훨씬 숫자가 많은 오합지졸의 세상이 된 것이다. 이들 평민들은 동등한 권리를 요구했다. 그것이 바로 민주사회를 위한 투쟁이다. 가진 것 없는 자들이 모여서 민주주의를 주장했다. (p. 43)

 

Ü 역사적인 순간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계급이 만들어지고 그 계급이 다시 계급을 향한 첫 저항의 역사를 시작하는 순간이다. 인간다운 삶을 살려는 인간들의 자유의지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순간이다.

 

□ 진실은 이렇다. 그리스 민족은 그들이 처한 조건에서 그들의 수단을 가지고 문명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문명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 조금이라도 더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분투해온 것들의 결과물이다. 그 안에 그리스 민족이 끼어 있을 뿐이다. (p. 44)

 

Ü 한 걸음 한 걸음, 이 보다 빠르고 명징한 것은 없다. 기적은 한 걸음에서 시작된 눈물겨운 생들의 조합과 다르지 않다. 기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벼락 같은 성취라 생각하지만 기적의 과정은 한 걸음 한 걸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리스 문명은 인간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인간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문명이 발달했다. 하지만 문명의 발달은 거꾸로 인간을 변화시킨다. 인간이 세계를 변화시키면 세계가 다시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과 세계는 서로 거울처럼 마주 보고 있다. 인간은 세계를 바꾸고 세계는 다시 인간을 바꾼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 문명의 본질이다. 인간과 세계의 접합, 인간과 세계의 융합을 지향한다. 인간과 세계는 대립하는 당사자로서 서로 싸우고 투쟁한다. 그러는 가운데 조화를 이루어나간다. 문명을 완성하는 것이다. (p. 45)

 

일리아스와 호메로스의 휴머니즘

 

□ 위대한 시편 호렘로스의 일리아스는 그리스 민족의 전쟁사다.

가장 끔찍한 재앙에 투입된 인간들 신 가운데 가장 더러운 신이며, 피를 마시고 사는아레스의 포로가 된 인간들의 이야기다.

죽이고 죽일 뿐인 그들의 용기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p. 49)

 

Ü 그 자리에서 있음이 곧 최선을 다하는 삶이다. 자연은 항상 최선을 다하는데 그래서 무가치적이고 무자비하다. 신의 모습이다. 죽이고 죽일 뿐인 용기는 신을 닮으려는 인간의 두려움을 제거해 나가는 과정이다. ‘죽기 좋은 날이라 외치며 달리는 인디언과 같다.

 

□ 따라서 죽음의 그늘이 가득 드리워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역설적으로 곧 끝나고 말 생에 대한 찬사이고 목숨보다 그리고 신보다 더 위대한 인간들에 대한 증언이다. (p. 50)

 

Ü 보나르 이 사람, 상수(上手).

 

□ 헥토르의 몸은 그렇게 흙먼지 속을 굴러다녔다. 검은 머리카락은 먼지에 더럽혀지고 고운 얼굴은 진흙탕에 짓이겨졌다. 제우스가 조국의 땅에서 헥토르의 시신이 모욕당하도록 내버려둔 것이다. (p. 54~55)

 

□ 호메로스의 시대에는 역사상 그 어느 시기보다 계급 갈등이 심했다. 땅 한 뙈기도 갖지 못한 무산 계급은 상인들과 합세하여 지주 계급을 무너뜨리려 했다. 특히 지주 계급들의 문화와는 다른 자기들만의 독특한 문화에 대한 욕구를 가지게 되었으며 그 결과가 바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다. (p. 56)

 

Ü 부르주아 계급의 시원이다. 호메로스의 저작들이 이러한 역사적 광배를 가지고 있었다.

 

□ 인간 각각의 특성, 배역, 의미, 행태(오늘날의 언어로 바꾸면 디지털 정보)를 다르게 배열하는 기술로 치면 호메로스는 발자크나 셰익스피어와 동급이다.

몸짓 하나,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호메로스의 재능은 바로 거기 있었다.

 

다음은 디오레스였다.

운명의 화살이 그를 향했다.

전선에서 디오레스가 뒤로 쓰러졌다.

그는 친구들을 향해 두 손을 뻗었다. (p. 58~59)

 

Ü 간결하고 동시에 명징하다. 묘사의 극치다.

 

□ 주시하는 대상이 누구이든 간에 단 하나의 몸짓으로 단 하나의 동작으로 대상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다. (p. 60~61)

 

Ü 호메로스의 문체론의 핵심이다.

 

□ 호메로스는 아이아스의 용기를 표현하기 위해 고전적인 서사시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비유법을 쓴다. 가령 이런 것이다.

 

곡식 밭을 지나는 당나귀는

목동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갈비뼈 몇 대가 부서지든 말든

밭으로 달려 들어가 곡식 대를 뜯고야 만다.

다른 목동들도 몰려와 당나귀를 매질한다.

그래봐야 애들 몽둥이질쯤 아무것도 아니다.

결국 곡식으로 배를 채우고 마는 걸 보라.

우리의 아이아스가 꼭 그 꼴이다. (p. 61)

 

Ü 멋진 표현이다.

 

□ 아이아스는 절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는 전쟁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외친다.

 

기댈 것도 없고 피할 곳도 없다.

두 주먹 불끈 쥔 힘으로

여기서 끝내자. 내 목숨 내가 지키든지

아니면, 깨끗하게 끝을 보든지.

 

바로 이런 단순함 덕에 아이아스는 전장에서 희미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다. (p. 64)

 

Ü 300여척의 적선을 신이 내린 12척의 전선으로 울돌목에서 맞은 충무공의 모습이 포개어진다.

 

□ 이놈의 창은 내 손 안에만 들어오면 뜨거워진다. (p. 65)

 

Ü 나의 펜도 그럴 것인가.

 

□ 디오메데스가 쓰러뜨린 트로이아 장수를 구하기 위해 아프로디테가 나서자 디오메데스는 미의 여신에게 대들었다. 감히 여신의 피를 흘리게 한 것이다.

 

창날이 미의 여신들이 만들어준

향기로운 옷을 뚫고 손바닥 바로 위

살을 뚫었다. 그리고 거기서

신의 핏줄기 솟구쳤다. (p. 66)

 

Ü 인간이 신에게 저항한다는 의미, 신을 향해 창살을 날리고 신의 피를 본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책의 말미에 본 듯 하다. 디오메데스는 인간이고 아프로디테는 신이다. 신을 향한 인간의 저항, 인간도 신과 같은 영원한 자유와 행복, 기쁨을 찾으려는 몸부림이다.

 

□ 아킬레우스의 정열이 우울하고 엄숙한 것이라면, 디오메데스의 정열은 밝고 경쾌하다. (p. 66)

 

□ 신은 인간의 질서니 인간의 법도니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게 신에게 대항하기 위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질서를 따르는 헤레네를 포로로 삼아서 인간 세상을 흔들어 놓는다. (p. 74)

 

□ 헬레네의 아름다움은 운명이다. 그래서 더욱 쓰리다. (p. 75)

 

Ü 저항하지 않은 운명은 생은 쓰리고 아프고 무겁다.

 

□ 주인공이 등장할 차례다. 바로 아킬레우스와 헥토르다. 두 사람은 인간의 서로 다른 두가지 속성을 대표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속성의 전형이다. (p. 75)

 

□ 소가 흰 보리를 짓 밟기 시작하면

음매 우는 소의 발끝에서

보리 알들이 탈곡되어 삐져나오듯이

아킬레우스의 말발굽 아래

사람과 방패가 반은 밟히고 반은 짓이겨졌다.

차축도 피로 물들고

마차 바퀴에서 튀어 오른 핏방울은

마차 난간을 붉게 칠하고 있다.

영광을 향해 달려가는 펠레우스 아들의 손은

어느새 피로 칠갑이 되었다. (p. 78)

 

그중에서도 가장 잔인했던 것은 뤼카온한테 한 짓이다.

뤼카온의 다리를 잡아 저주를 퍼부으며 물고기 밥으로 던져주는 장면과 뤼카온이 살아보려고 몸을 버둥대는 장면을 읽을 때는 아킬레우스의 잔인함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다.

그는 감정에 좌지우지 되는 사람이다. 그는 우정에 약한 만큼 증오에도 약하다. 우리는 뤼카온을 불쌍하게 여기지만 그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다. 분노로 들끊고 있기 때문이다. 분노는 사람의 심장을 쇳덩어리로 만든다. 분노에 사로잡힌 사람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아킬레우스는 슈퍼맨이 아니라 나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감정에 흔들리지만 신은 감정에 초연한 법이니까. 아킬레우스는 상수라기보다는 변수다. 지배자라기보다는 피지배자다. (p. 79)

 

Ü 단 한 문장으로 아킬레우스를 말하고 있다. 이것은 통찰에 의한 정의다.

아킬레우스의 저 분노를 보편적인 평범한 인간에 놓아주면 어떨까. 가령 어쩔 수 없이 사는 오늘에 분노하는 평범한 사람에게 말이다. 그 사람에게 물불 가리지 않고 자기만의 내일을 만들 수 있는 추동력을 준다면, ‘오늘에 대하여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가져다 준다면 말이다. 이 세상 필부필부에게 모두 그것이 깃들어져 있다면 말이다.

 

□ 아킬레우스는 삶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이다. 아주 열렬히 사랑한다. 다만 그는 현재를 사랑할 뿐이다. 지금의 감정과 지금의 움직임만 사랑한다. 오로지 거기에만 충실하다. 매 순간이 그에게는 삶이고 전부다. 살인도, 분노도, 눈물도, 사랑도, 연민도, 그는 모두 똑같이 사랑한다. 무슨 철학자들처럼 공평하게 거리를 두는 것도 아니라 자연처럼 모든 것을 끌어안는다. 고통도 기쁨만큼 즐겁다. (p. 83)

 

Ü 달뜬 사춘기 소년, 소녀의 마음이 이러하지 않겠는가. 과거 나를 찬찬히 되짚어 보았을 때 그때가 꼭 이러했던 것 같다. 모든 감정에 집중하고 모든 일에 고삐가 풀리고.

 

□ 왜 나한테 죽음을 얘기하지?

알아, 내가 부모를 멀리 떠나와 죽고 말 운명인 줄.

그래도 멈출 수 없어. 가야지. 트로이아 전사들을 맞으러.

아킬레우스는 크산토스를 전선 맨 앞줄로 거세게 밀어붙였다.

 

그는 명예를 추구한다. 그래서 전쟁터에 나간다. 거기서는 죽음이 오히려 삶이다.

시대를 넘어 영원히 사는 길, 아킬레우스는 그런 길을 택했다. (p. 84)

 

Ü 순간에 충실하는 것. 죽음 조차 명예인 삶. 그리 살면 시대를 넘어 영원히 살 수 있는가. 그런가.

 

□ 호메로스가 또 한번 재주를 부린 것이다. 쇠로 만든 사람의 초상에 휴머니즘 한 줄기를 훅 불어넣은 셈이다. (p. 86)

 

Ü 헥토르의 시신을 찾으러 온 헥토르의 아버지 프리아모스의 간청을 들어 주고 함께 울어 준 아킬레우스를 두고 하는 말이다. 표현이 아름답다.

 

□ 이제 헥토르다.

 

보리를 듬뿍 먹고 오랫동안 마구간에 누웠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으로 뛰쳐나와서는

땅을 쿵쿵 울리는 걸음걸이로 내달려 맑은 물에 뛰어든다.

갈기를 흔들고 물에서 솟구쳐 암말 사이에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 종마,

헥토르는 종마를 닮았다.

 

헥토르는 배워서 용감해진 사람이다. 훈련을 통해 용기를 배웠고 그것이 그의 몸에 녹아든 것이다. 아킬레우스는 전쟁을 하면 신이 나는 사람이지만 헥토르는 전쟁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다.

소크라테스의 말을 빌리면, 헥토르의 용기야말로 최상급의 용기다. 두려움이 뭔지 알지만 동시에 그것을 극복하는 용기이기 때문이다. (p. 87)

 

Ü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다. 무릎을 벌벌 떨면서도 한 발 한 발 디뎌가야 하는 길, 그 길을 걷는 자의 위태한 용기.

 

□ 그런 헥토르도 물러서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 트로이아 성 앞에서 아킬레우스와 맞설 때였다.

 

여기서 맞서 싸우면 죽을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성으로 들어가버리면 되지 않을까? 아킬레우스에게 애원하고 싶다. 아니, 그냥 순순히 무기를 내려놓고 포로가 되고 싶다. 트로이아의 이름으로 화해를 청하면 어떨까? (안 될 이유가 무엇인가??)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헥토르는 침묵 가운데서 이런 생각들을 했다. 화해의 조건은 뭐가 좋을까? 궁리하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이 무슨 미친 짓이고 비겁한 생각인가.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지? (p. 88)

 

Ü 생사를 가름하는 결전을 앞두고 헥토리가 진행하는 의식의 흐름이다. 이 책의 백미다. 우리가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엄청난 현실의 벽 앞에서 느끼는 두려움을 그대로 표현했다. 우리의 두려움, 헥토르와 다르지 않다.

 

□ 죽음을 똑바로 쳐다보아야 한다. (P. 89)

 

□ 어느 날 동생 폴뤼다마스가 아주 불길한 계시를 받았으니 전투를 그만두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헥토르는 대답했다. ‘가장 확실한 계시는 조국을 위해 싸우는 거다.’ 지금은 평범하게 들리겠지만, 신의 계시가 지배하고 누구도 신의 계시를 거스르려 하지 않던 시대에는 놀라운 발상이다. (P. 89)

 

□ 소크라테스의 용기는 일상과 동떨어진 머릿속에 존재하는 용기이지만 헥토르의 용기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자 하는 구체적인 용기다.

 

내 창을 네 몸 속에 꽂는 것은 신들이 시킨 일이다. 내가 너를 죽이는 것은 너를 죽이기 위함이 아니다. 트로이아에 전쟁이 그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P. 90~91)

 

Ü 빠져나가기 좋은 말이지만, 헥토르가 멋지다.

 

□ 조국이란 모든 이들 가운데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들, 그래서 안전하게 지켜주고 싶고 자유롭게 살게 해주고 싶은 사람들을 의미한다. (P. 92)

 

Ü 조국이라는 말을 이렇게 명징하게 설명한 말은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나에게는 이 말이 그 어떤 정의보다 조국을 잘 표현한 것으로 느껴진다.

 

□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바로 당신이오. 갑옷을 입은 아카이아인들이 당신의 자유를 빼앗아갈까 봐 당신을 슬프게 할까 봐… (P. 93)

 

Ü 키햐, 인류를 가슴 깊이 사랑한 진정한 자유주의자이자 로맨티스트, 헥토르.

 

□ 안드로마케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쟁에 나가지 말라고 애원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헥토르가 지키려고 하는 것이 그들 부부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P. 93)

 

□ 그러나 신은 헥토르를 버렸다. 바로 옆에 동생 데이포보스가 있는 줄 알았지만 그것은 동생으로 변장한 아테네였다. 속은 것이다. 동생에게 무기를 달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그는 혼자였다. 운명은 그런 것이다. 눈이 멀도록 강렬한 빛 속에서 그는 자신의 운명을 보고 말았다.

 

불행하도다. 신들이 나를 죽음으로 부르는구나. 사악한 죽음이 다가온다.

죽음이 바로 옆에 있다. 도망갈 곳은 없다운명이 나를 삼킨다.

 

죽음은 만질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 와 있었다.

훗날 다음 세대들이 위대했다고 칭송해 마지않을 인간의 모습으로 죽음을 맞으려 한다. (P. 93~94)

 

Ü 헥토르의 죽음은 그 어느 신화 속의 죽음보다 눈물 겹다. 두려움에 떨었던 이가 결국 죽어가는 모습은 운명과 신의 장난으로밖에 보아 줄 수 없다. 우리의 마지막 모습이기도 해서 더욱 눈물겹다. 그러나 헥토르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기품 있는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 그리고 그 자리에서 헥토르는 새로운 시대를 선언한다. 가족과 땅과 공동체를 지키고자 하는 시민들의 시대가 왔음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단지 잘 싸우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타협할 줄도 안다. 협정을 맺을 줄도 안다.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다음 세대에서 더 넓은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발전할 것이다. (P. 95)

 

오디세우스와 바다

 

□ 기원전 8세기의 인간들을 흥분시키는 이 주석을 구할 곳은 두 군데였다. 최소한 지중해 일대에서는 그랬다. 흑해 끝 카우카소스 산맥 아래 콜키스와 이탈리아의 에트루리아였다.

위험을 무릅쓰고 멧시나 해협을 넘어 이탈리아 반도로 올라간 것이다.

오디세우스가 지나간 길도 바로 이 길이었다. 크게 보면 오디세이아는 안내도다. 모험을 즐기는 자들 선원들 이민자들 쇠를 구해서 무기를 만들고자 하는 부자들을 위한 여행 안내서다. 그리스 사회의 온갖 잡동사니들의 척후병 역할을 한 것이 오디세우스였던 셈이다. (P. 105)

 

Ü 오디세이아에 이런 역사적 배경이 존재했었구나. 생각해보니 에디세이아에는 유난히 금속과 광물에 대한 이야기가 눈에 띠였던 것 같다.

 

□ 기원전 8세기의 그리스 민족에게 바다는 위험한 곳이고 동시에 매력적인 곳이었다. 오디세우스도 바다를 무서워하면서도 사랑하고 좋아한다. 넓디넓은 바다만 생각하면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바다는 자석이다. 무엇보다 바다에서는 돈을 벌 수 있다. 바다를 넘어가야만 보물을 찾아올 수 있다. 금과 은 상아를 원하는 자라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곳이 바다였다. (P. 111)

 

□ 오디세이아에는 세계에 대한 혹은 존재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이 있다. 그리스인에게 자연은 위험한 존재들이 사는 무서운 곳이다. 동시에 신비의 보고이기도 하다. 그 신비를 보고 싶고, 샅샅이 뒤지고 싶고 이해하고 싶고, 지배하고 싶고, 알고 싶다. 오디세우스는 그런 의미에서 문명인이다. (P. 112)

 

Ü 그래 오디세우스는 아무래도 원시인, 자연인은 아닌 듯 하다. 원시적인 생활 속에서 어딘지 모르게 풍겨나오는 세련됨이랄까, 그런 게 보인다. 그냥 느낌이다.

 

□ 그러고 나서 불과 몇 백 년 안에 지중해는 그리스 민족의 호수가 되었다. 그리스 민족의 시는 읊조리고 마는 시가 아니다. 시 자체가 하나의 생생한 기록일 뿐만 아니라 가만히 있던 자들도 들썩이게 하는 힘으로 가득하다. (p. 118)

 

□ 오디세우스는 일단은 먼저 자기 자신을 믿는다. 어떤 싸움에서도 오디세우스는 바다와 운명에 물러서지 않는다. 기필코 자기 몫을 지킨다. 그의 무기는 용기와 지혜다. (p. 120)

 

□ 하지만 그가 만든 것 중 최고 걸작은 다름 아닌 가정이다. 행복한 가정, 그는 가장으로서 모든 가족 구성원들을 친구로 포섭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p. 121)

 

□ 그래서 오디세우스는 인간의 모범이고 다음 세대의 모범이다. 호메로스가 만들어낸 미래형 인간이다. (p. 122)

 

Ü 미래형 인간, 그래서 오디세우스가 아직도 유효한 것인지 모른다. 헐리우드를 보라 잊혀질 만 하면 율리시스니 오디세이아는 나오지 않는가. 그러나 그가 가진 의협심과 모험심은 나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주하는 삶, 비록 가정을 지키고 가족을 건사해야 하는 책임은 있지만 나에게 남아 있는 일말의 야생이 있다면 그것은 오디세우스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르킬로코스, 시인과 시민

 

□ 시인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자질구레한 감정을 노래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꾸로 형식에 구애받아서는 안 된다. 그래야 리듬이 자유롭고 풍부해진다. 악기 연주 없이 시만 읽어도 사람들은 그걸 노래로 들을 정도다. 시가 노래가 되는 것이다.

 

Ü 시가 노래로 되는 메커니즘. , 올 한해는 너와 떨어질 수 없는지 읽는 책마다 시를 찬양하고 있구나. 

 

□ 훗날 호메로스와는 다른 시를 쓰게 되지만 시라는 장르를 처음 배운 것은 호메로스를 통해서였다. (p. 128)

 

Ü 배우지 않고서는 극복할 수 없다.

 

운다고 슬픔이 끝나지 않으리니, 차라리 한바탕 축제로 이 슬픔을 다스릴 일이다.’

 

바로 위와 같은 구절이 아르킬로코스의 진면목이다. 그는 죽음을 솔직하게 대면한다. 그럼으로써 진부한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지 몰라도 남들과는 다른 태도를 취한다. 그것이 바로 아르킬로코스의 풍자시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p. 129)

 

Ü운다고 슬픔이 끝나지 않으리니, 차라리 한바탕 축제로 이 슬픔을 다스릴 일이다.’ 곱씹어 보니 멋진 말이다. 의미를 입안에 넣고 단물이 나올 때까지 오물거려야 그 깊은 맛이 나오는 가보다.

 

은매화 가지와 장미 한 송이를 손에 쥐고 티 없이 즐거워하는데 아름다운 머릿결이 내려와 어깨와 목덜미를 슬그머니 감추고 있다든지, ‘향기로운 머릿결과 가슴은 늙은이의 심장도 깨울 듯하다.’ (p. 132)

 

Ü 멋진 표현이다. 그런데 고상한 맛이 있다.

 

□ 죽이고 보니 겨우 일곱 명 잡자고 우리 천 명짜리 군대가 생난리를 피운 거로군.

 

아르킬로코스의 이런 시구를 보면, 호메로스로부터 얼마나 멀리 떠나왔는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영웅의 업적을 칭송하기는커녕, 영웅의 굴욕을 폭로하고 있다. 그게 아르킬로코스의 시다. 제아무리 권력자라도 해도 봐주는 법이 없다. (p. 135)

 

Ü 자신의 시를 믿기에, 자신의 삶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된다.

 

□ 장군이란 모름지기 땅딸막한 안짱다리가 최고지. 그래야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서서 심장처럼 싸울 테니까. (p. 136)

 

아르킬로코스 속에는 자유가 산다.

인간은 명예롭기보다는 행복해야 한다. 즐거워야 한다. 그게 바로 아르킬로코스의 철학이다.

 

남의 눈치를 보느라 즐거움을 잃어버리는구나.’ (p. 140)  

 

Ü 스스로 자신을 재편할 수 있는 주인임을 천명하고 복종하는 자로 살지 않을 것임을 보여내는 날 말이다. 그 때까지 조용히 간직했던 분노를 가지고 나아가자. 그것이 분명 승리를 가져다 주리라.’ 눈치 보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주눅들지 마라. 얻을 것도 없고 아무것도 잃어버릴 것도 없다.

 

□ 죽고 나면 명예는 잊히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살아 있으라. 살아 있음의 멋을 즐겨라. 죽음은 상실에 불과하다. (p. 141)

 

Ü 파우스트를 유혹하는 악마 메피스토의 사유와 닮아 있다.

 

어째서 지나갔다는 거냐?

지나갔다는 것과 전혀 없다는 것은 완전히 같은 것이다.

영원한 창조란 도대체 무엇이냐?

창조된 것은 무 속으로 휩쓸려가게 마련이다.

지나가 버렸다 여기에 무슨 뜻이 있지?

그야말로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런데도 마치 무엇이 있었던 양 뱅뱅 맴돌고 있다. 나는 오히려 영원한 허무가 좋단 말이다.’

 

 

□ 버려야 한다면 버려야 하겠지. 불쌍한 방패, 적들은 이 방패를 얻어서 좋고 나는 목숨을 건졌으니 다행이지. 오냐, 잘가라, 방패야. 나는 새것을 구하면 그뿐이지.

 

방패를 내려놓은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서였으니까 말이다. (p. 142)

 

Ü 살고 죽는 것은 이리도 중요하다. 허무한 무엇이 아니다. 죽으면 지나가는 것이다.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단 말이다. 견뎌라, 살아남아라.

 

오라, 술통에서 포도주 한 잔 가득 꺼내어 들고 갑판 난간에 늘어서서 바람에 섞어 마시자. 우리도 사람인데 어떻게 맨 정신으로 이 꼴을 볼 수 있겠는가.

 

살과 살을 맞대는 싸움. 칼끝에 닿는 남의 살의 감촉을 그는 잘 알고 있다. 적들이 다가오는 순간에 그 아슬아슬한 공포도 이미 체득한 바다. (p. 144~145)

 

Ü 이 멋진 표현을 어찌하면 좋은가.

 

□ 시대마다 모습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용기가 인류를 구했다. 헥토르가 그렇고 소크라테스가 그렇고 아르킬로코스가 그렇다.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특별히 미화할 필요도 없다. 그저 용기 있게 자리를 지킨 자들이 중요한 것이다. (p. 146)

 

Ü 자리에 대해서 조금은 의문이다. 못 지키면 또 어떤가. 모든 자리가 자신의 자리는 아니지 않는가. 자신의 자리를 찾아서 지키면 오죽 좋겠냐마는 그리 쉬운 게 아니지. 아무 자리에서나 자신의 자리인양 차지하고 앉아서 그곳이 사지인양 지키고 섰다면 그리 좋은 꼴은 아니지 싶다. 우선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이 순서다.

 

열 번째 뮤즈, 삽포

 

□ 삽포가 운영하는 뮤즈의 신전은 음악학교나 예술원도 아니었고 전문학교도 아니었다. 예술이 좋아서 예술을 배운 게 아니었고 예술을 직업으로 삼으려고 배운 게 아니었다. 그저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게 목적이었다. (p. 152)

 

Ü 문득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나를 부른다.

 

나는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
나는 자유다.’[출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작성자 이슬어지

 

 

□ 삽포의 제자들은 아프로디테의 재능과 가르침을 흉내 내면서 여성으로 자라난다. 아름아움이 온몸에 발산되고 행복이 넘친다. 이를 보면서 삽포는 기쁨에 젖는다. (p. 153)

 

Ü 그 몸짓, 그 향기, 그 눈빛 잠시 상상해본다. 아 짜릿하다.

 

□ 그대 앞에 얼굴을 맞대고 /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이는 / 저 사람은 아무래도 / 신인가 보다. // 웃음이 내 가슴을 파고들어 / 심장을 요동치게 하고 / 그대를 / 본 순간 / 입술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다. // 혀에 물기가 없으며 / 작은 불꽃이 일제히 피부 아래로 흐른다. / 눈은 볼 수 없고 /

귀는 우--거릴 뿐. // 흐르는 땀은 무엇이며 / 몸은 어째서 떨리지 않는 곳이 없는가. / 풀포기보다도 더 파래진 나는 / 아마 이대로 죽는가 보다. (p. 155~156)

 

□ 삽포는 사실만 적는다. 감정이 주가 아니다 감정이 남긴 결과를 보고하는 게 주다. (p. 157)

 

□ 혀는 혀고, 귀는 귀고 땀은 땀이고 부르르 떨리는 건 떨리는 것이다. 좋게 보일 것도 없다. 땀이 줄줄 흐르는 걸, 어떤 말로 좋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삽포는 그냥 땀을 흘릴 뿐이다. (p. 157~158)

 

Ü 그래, 그냥 땀을 흘린다고 쓰자. 얄궂게 덧없는 것들을 덧붙일 필요 없다.

 

□ 하지만 삽포는 누구를 흉내 낸 적이 없다. 그녀가 최초다. (p. 158)

 

Ü 앞서는 자, 창조하는 자. ‘지나가더라도 없어지지 않는다.

 

□ 삽포 이전의 사랑은 불탄 적이 없다.

삽포의 사랑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다 불태워버리기 때문이다. (p. 159)

 

사랑은 그런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지나고 나면 아프다. 상처가 남는다. 사지가 다 부서져 나가는 것 같다. 생각만 해도 쓰라린다. 그게 사랑이다. 따라서 삽포에게 사랑은 끔찍한 짐승을 닮았다. 알 수 없는 세상의 힘이고 쿵쿵거리며 엄습해오는 짐승의 발자국이다.

 

다시 에로스가 온다. 사지를 부수며 고문하는,

부드럽고 고통스러운 그는 내가 이길 수 없는 괴물이다. (p. 160)

 

□ 사나운 바람이 몰아치는 곳 너머 청명하고 고요한 하늘을 꿈꾸고 있다. 몸은 죽을 듯이 아프지만 아름다운 기억을 남겨놓는 어떤 것, 그것이 바로 삽포 속에 살고 있는 사랑이다. (p. 161)

 

Ü 흐린 날 태양이 사라졌다고 징징대지 말자. 그 너머에서 찬란하게 비추고 있는 태양을 생각하자.

 

□ 그 소리가 너른 공간을 넘어서 아무 소리도 없는 이곳까지 침투해온다. (p. 167)

Ü 좋은 표현이다. 삽포보다도 앙드레 보나르, 이 사람이 더 시적이다.

 

 인생의 쓰라린 면들을 상징하는 것이 자연이다. 자연은 인간에게 적대적인 무엇이며 인간이 이길 수 없는 무엇이다. 그런 자연을 인간이 사랑할 여지가 없다. 자연에서 위로를 찾을 수도 없고 현세에서 겪는 고통을 위무할 작은 메아리조차 들을 수 없다. 그게 호메로스의 자연이다.

반면에 삽포의 자연은 신비로운 옷을 벗고 인간에게 내려온다. 가까이 다가와 친구가 되며 존재가 되고 인간과 더불어 교감을 나누다. 가령 잠에서 깨어났을 때 삽포는 혼자인 것 같았다.

 

달도 지고 플레이아데스도 지고

자정이다. 나는 혼자 잠에 든다. (p. 171)

 

□ 이렇게 말하고 그녀는 영원히 떠났다 / 솔직히 죽을 것 같아요 / 눈물로 대신하던 마지막 말 / 이 잔인한 운명을 어떻게 해요 / 저는 떠나고 싶지 않은데 / 나는 이렇게 대답해 주었지 / 기쁘게 떠나라 나를 기억하라 / 우리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네가 잊었다면 / 우리 함께했던 수많은 날들을 / 상기시키리라 / 장미와 제비꽃과 사프란으로 / 화관을 만들어 쓰고 땋은 머리를 길게 / 늘인 채, 늘 내 옆에 앉아 있었지 / 그때 목에 두른 취할 듯 진한 꽃목걸이에서 / 왕의 몰약 같은 향기가 퍼져 나오던 걸

 

이런 시를 보면 세계가 우리의 마음으로 들어오는 길과 우리의 마음이 세계로 향하는 길을 삽포는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다. (p. 174~175)

 

□ 삽포를 끊임없이 들뜨게 한 건 결국 젊음과 꽃망울이었던 것 같다. 밝은 태양 아래 아름답게 빛나는 젊음과 꽃망울이 삽포에게는 무한한 기쁨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곧 사라진다. 젊음이 그렇고 꽃망울이 그렇다. 그래서 아름다움이란 종내는 한 순간이었으리라. (p. 175)

 

젊음의 꽃망울을 사랑했다.

사랑이 왔다.

그것은 반짝임이었고 순간이었다. (p. 177)

 

솔론과 민주주의

 

□ 그리스 문명이 이처럼 동쪽 끝 혹은 서쪽 끝에서 주로 시작한 이유는 그곳이 변방이었기 때문이다. 변방이라서 주위의 위대한 문명과 접촉할 기회가 많았다. 반면에 변방의 야만인들로부터 한참 떨어져 있는 그리스 본토에는 진짜로 별게 없었다. 아니, 최소한 그렇게 알려져 있다. (P. 182)

 

Ü 결핍이 주는 우위는 이런 것이다. 누구나 우러러보는 탁월함을 가진 사람은 정상의 자리를 오래 차지하기는 힘들다. 정반합의 철학적 사유는 어쩌면 결핍이 완전성을 추구하는 과정이다. 최고가 아니라는 것으로 자괴하거나 좌절하지 마라. 최고는 내려갈 일만 남았으니 부러워할 게재가 아니다. 결핍을 채우기 위한 많은 열망들이 사회를 이끌어 가지 않겠는가. 그것이 저자가 말하는 변방의 사회학과 다름 없겠다.

 

□ 시민들이 흥겨운 축제를 열고 희극 비극 등 각종 드라마를 감상하고 두고두고 자랑스러워할 신전과 건축물을 세우고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기도 힘들 만큼 많은 역사가와 철학자를 길러내고 시미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투쟁했던 민주주의는 아테나이에만 존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년 동안 그리스의 심장은 아테나이에서 뛰었다. (P. 182)

 

Ü 기가 막힌 표현이다. 그 시대를 상상하니 내 심장도 같이 뛴다.

 

□ 그리스 본토는 어디든 계급이 두 개 있었는데 하나는 가진 자였고 다른 하나는 가지지 못한 자였다.

이런 극도의 불균형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솔론이 제안한 것은 시민의 권리와 정치적 권리를 법정하는 일이었다. 시민의 민주주의는 그런 결실을 노리고 있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는 태생적으로 노예를 품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스 문명의 몰락의 원인이 되는 심각한 사회문제 하나가 생긴다. 바로 계급 투쟁이다. 못 가진 자들이 가진 자들로부터 정치적 권리를 획득해서 그것을 법제화하는 투쟁,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서 자기들 몫의 권력을 획득하는 투쟁이었다. (P. 183)

 

Ü 솔론과 한비자는 무척이나 많이 닮아 있다. 한비자는 한나라의 정치적 근간을 법으로 두고 법가사상을 발전 시켰다.

 

□ 기원전 8세기 그리스는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뚜렷이 구분되는 사회였으며 지배자인 귀족들만 무기와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회였다. 그래서 계급 투쟁이 하나의 상수였다.

동전은 두 가지 면에서 계급투쟁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다. 한편으로는 가난한 자를 더 가난하게 만들어 계급 간 편차를 더욱 심화시켰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난한 자들 중 일부를 신흥 부자로 만들어 기존의 귀족들과 새로운 차원의 권력 투쟁을 벌이게 했다. (P. 185)

 

Ü 돈의 맛은 이렇게 시대를 넘고 국가를 넘은 유혹이다. 쩐의 역사가 이렇게 오래 되었구나.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강의를 듣는 듯한 저서다. 마음에 든다.

 

□ 화폐가 등장하면서 세상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남은 부를 화폐로 바꿀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귀족들은 셈이 빨라서 화폐는 이자를 통해 부풀어오르는 속성이 있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렸다. 귀족들의 고귀한 피에 탐욕이 섞이는 순간이다. 전에는 나눠주던 것을 이제는 빌려준다. (P. 186)

 

Ü 민주가 자본을 만나는 순간이다. 그리스는 인류에게 민주주의를 유산으로 물려주며 치명적인 제도 하나를 아울러 주었으니 악마의 키스와도 같은 자본이다. 초기 자본주의 넘어 고대 자본주의로 명명할 수 도 있겠다. 골드만 삭스의 아주 오랜 조상 되겠다.

 

□ 민주주의라는 찬란한 기차가 전지하는 길에 돈놀이와 노예제도 성차별이 얼마나 답답한 방해물이었는지 이루 표현할 길이 없다. 이제 막 민주주의라는 꽃이 피어야 할 시기에 동전이 만들어지고 역사의 물길은 이상한 쪽으로 흘러간다.

화폐가 생겨서 귀족들의 손에 들어가면 그것은 당연히 억압의 도구가 되지만 선량한 시민들의 손에 들어가면 첨예한 계급 투쟁을 승리로 이끄는 무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P. 187)

 

□ 이제 계급 투쟁을 시작하는 가난한 농민들과 농노가 귀족들과 맞서서 싸울 방법은 연대 밖에 없었다. (P. 194)

 

Ü 약자가 미약한 바램과 의사를 관철 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연대의 대오가 무너지면 전선도 무너진다.

 

□ 올림포스 신 가운데 가장 큰 어머니이신 땅의 여신께서는 역사 앞에 내가 한 일을 증명해주실 것이다. 나는 땅에서 말뚝을 뽑았으며 신이 세운 아테나이를 떠나 노예로 떠돌던 자들을 귀환시켰다. 빚을 못 갚아서 아테나이에서 쫓겨난 자들이고 험한 세상을 떠돌던 자들이고 더 이상 아테나이의 말을 쓸 수 없었던 자들이다. 그들이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이땅에 남아 있었어도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던 자들도 자유를 찾았다. (P. 197)

 

Ü ! 솔론, 예수가 만들려던 새로운 세상을 그가 태어나기 800년 전에 이미 솔론은 이루고 있었다. , 역사여 퇴보를 거듭하는가. 솔론의 혜안은 아직도 유효하다.

 

□ 나는 방패로 양쪽을 찍어 누르고 있다.

한쪽이 다른 쪽에 대해서 부당한 승리를 하게 할 수는 없다. (P. 198)

 

Ü 한 인간의 치열한 이런 고뇌 덕분에 다수의 시민들은 행복했다.

 

나는 가난한 자에게나 부자에게

똑같이 공평한 법을 만들었다.

탐욕에 눈이 멀어서 나를 모함하는 자들은

시민들 편이 아니다.

내가 그들의 말을 들었더라면

시민들이 내 편을 들었을 리 없다.

나는 개들에게 둘러싸인 늑대처럼 싸우고 있다.

 

나는 두 들판 사이의 경계석처럼 서 있다.

 

이렇게 고백하는 솔론 특유의 어투에서 개혁주의자의 외로움을 읽을 수 있다. 솔론은 그런 외로움 가운데 아테나이의 개혁을 추진해갔다. (P. 199)

 

Ü 법을 공부하시는 분들은 솔론의 법사상을 잘 이해해야 하겠다. 공명정대하고 공평하다는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말이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만민 모두에게 같은 법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공평한 법집행의 상식인지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읽었던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솔론이 나온다. 보나르가 언급한 위의 솔론가 같은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사유는 같아 보인다. 아래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나오는 솔론이라는 사람의 행복론이다.

 

크로이소스와 솔론’‘아테네의 손님이여, 그대의 소문은 이 나라에도 우뢰처럼 들리고 있소. 그대가 현자라는 것은 물론 지식을 구하여 널리 세상을 구경하신다는 것도 들었소. 그래서 그대에게 꼭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대는 누군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만난 일이 있소?’

 

 크로이소스는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 자부하고 이렇게 물은 것이었다. 그런데 솔론은 왕에게 아부하는 기색도 없이 자신이 진실이라고 믿는 대로 대답하였다.

 

∙∙∙ 인간은 누군가가 죽을 때까지 행운이 있는 사람이라고 부를지언정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

 

어떠한 일에 대해서나 그것이 어떻게 되어 가는가, 그 결말을 끝까지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에 의해 울타리 너머로 행복을 잠깐 보았으나, 결국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솔론의 이 이야기가 크로이소스의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현재 있는 복을 버리고 모든 일의 결말을 보라고 하는 사람은 틀림없이 바보라고 생각한 크로이소스는 일고의 여지도 없이 솔론을 떠나 보내고 말았다.

 

□ 더 많은 권리를 누릴수록 세금이나 군역 등의 부담을 더 지는 식으로 재편한 것이다. 결국 가장 가난한 시민들은 세금도 전혀 내지 않고 군역도 노 젓는 일이나 경무장 보병 정도만 복무하면 되도록 했다.

솔론이 새로 만든 헌법의 핵심 원칙은 이것이었다. 선천적으로 정해진 것, 즉 신분에 따라서 참정권이 제한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보았다. 대신 후천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 즉 경제력에 따라서 참정권을 제한하는 것은 괜찮다고 보았다. 투표권 부여. (P. 200)

 

Ü 나는 놀라고 있다. 이 모든 사실이 기원전의 일이라니, 그것도 기원전 500년전이라는 말이다. 이때 이미 대의 민주정이 확립되어 있었고 세금의 누진제도, 오블리스 오블리제의 기득권의 모럴까지 완성되어 있었구나. 놀랍다.

 

□ 솔론은 신을 믿는 것처럼 정의를 믿었다. 정의가 그에게는 신이었다.

우리 집에서 노예질을 하고 있는 사람들 주인의 채찍질에 벌벌 떠는 사람들을 나는 풀어주었노라노예는 주인이 변덕을 부리면 채찍질을 당할 수밖에 없는 비참한 인간이다. 그런 비참한 인간을 사랑한 사람이 솔론이다. (P. 202)

 

□ 아름다운 법만이 질서와 조화를 가능하게 한다.

법의 힘으로 사람들 사이에 평화가 있고 사람들이 지혜로워진다. (P. 203)

 

Ü 한비자의 법가사상은 솔론의 법사상과 유사하다. 놀랍다. 시대를 달리하고 국가를 달리하고 지역을 달리하지만 인간의 사유는 이렇게 비슷할 수 있다니.

 

노예와 여자

 

□ 아테나이 인구 40만명 중 절반이 노예였다.

노예제도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유형 가운데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지독한 것이다. 현대에 와서는 식민지와 임금 노동이라는 새로운 착취 구조로 대체되었다. (P. 208)

 

Ü 세계를 이해하는 사유구조가 계급으로 단칼에 설명될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대부분의 불합리와 갈등의 구조는 계급으로 풀이 될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 인간이 관여했던 첫 번째 상행위는 노예를 사고 파는 일이었다. 전쟁 포로를 죽이지 않고 살려둔 것을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발전의 동력은 바로 돈이었다.

고대 사회의 원칙은 간단했다. 남자는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은 나눠 가져서 노예로 일을 시키거나 노예시장에 내다 팔았다. (P. 209)

 

□ 주인에게 이익이 되면 노예는 살고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대로 연장도 가끔은 다듬어주어야 하고 잘 들게 하려면 기름칠도 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노예에게 밥을 주는 것이다. 좋은 집에 살게 해주고 쉬게 해주고 가정을 꾸미게 해주는 대도 다 이유가 있다. (P. 211~212)

 

Ü 나의 삶이 노예와 진배없구나. 아프고 슬프다.

 

□ 문명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문명 국가로 보이는 그리스도 실상은 노예제 사회였다. 도대체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문명을 우리는 문명이라고 불러도 되는가? 불러도 된다면 그리스 문명이 바로 그런 문명이다. 인간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문명, 언제든 야만 상태로 회귀할 준비가 되어 있는 아슬아슬한 문명이었던 것이다. (P. 213)

 

□ 아리스토텔레스는 원칙과 일관성이 없는 그리스 노예제도를 보고 말한다

그리스 사회가 무사한 이유는 노예들이 무정부상태에 있기 때문이라고 비아냥거릴 정도였다. (P. 215)

 

□ 노예를 쓰는 한 기계를 서둘러 발명할 필요가 없다. (P. 222)

 

Ü , 이거 정말 통찰의 생각이다. 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르네상스 전후 기간은 농노제도가 없어지고 중세 기득권들의 철옹성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때다.

 

□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과학이다. 최소한 그것이 과학의 존재 이유 중 하나다. 만약 과학적인 연구와 발견이 인간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면 그 과학은 의미가 없고 곧 소멸하고 만다. (P. 222)

 

□ 사회에서 빈둥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소수가 다수를 억압하게 되면 그 사회는 내부적으로 분열될 것이며 (P. 223)

 

□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리면 전쟁은 복종하기로 되어 있는 자가 복종하지 않을 때 그들을 굴복시키는 수단이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얘기가 우리가 위대한 철학자라고 추앙해 마지않는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 결국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은 자기가 처한 조건과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P. 223)

 

Ü 현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어쩔 수 없는 공간과 시간의 제약이다. 그는 통찰을 생명으로 삼는 철학자이자 현자였으나 그의 생각은 자기가 속한 공간과 시대 속의 혜안에 불과했다.

 

많은 노예들은 노예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달고 있지만 영혼만큼은 시민들보다도 더 자유롭다라고 썼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휴머니즘이고 이론다운 이론이다.

주인님, 주인님이나 저는 똑 같은 사람입니다. 똑 같은 살과 뼈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노예는 없습니다. 운명이 그들을 노예로 만들었을 뿐입니다.’ (P. 224~225)

 

Ü 그러나 대중 속에 자유의지를 잃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진보는 가능했다. 진보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 그리스 민족은 그 여신들 가운데 최소한 두 명을 차용하는데 하나가 대모신이고 다른 하나가 데메테르였다. 데메테르는 땅의 어머니 혹은 곡식의 어머니로 숭배되었다. 고대 사회에서 이와 같은 이름난 신들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사회의 여성성을 증명해준다. (p. 227)

 

Ü 안드로마케, 헤카베, 페넬로페, 나우시카, 키르케, 아레테

 

□ 데모스테네스는 남자들은 애인과 쾌락을 즐기고 첩에게서 평안을 찾고 부인에게서 자식을 얻는다.’ (p. 230)

 

□ 페리클레스는 최고의 여자는 남자가 그녀에 대해서 좋다 싫다 말하지 않게 하는 여자라는 얘기를 공공연히 했다고 한다. (p. 231)

 

□ 페리클레스의 말마따나 여성에 대해서는 침묵할 것. 좋은 얘기건 나쁜 얘기건 꺼내지 말 것.’그것이 그리스의 법칙이었다. 에우리피데스는 그 법칙을 어긴 것이다.

남성들이 사랑에 대한 왜곡된 감정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 깔아뭉갠 여성들에게서 사랑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그리스식 사랑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신화와 문학과 일상을 가득 채운 동성애였다. (p. 235)

 

□ 아테나이 민주주의는 허술한 민주주의다. 40만 명 가운데 남자 시민은 고작 3만 명이었다. 바람 한 번 몰아치면 모조리 바다에 빠뜨려버릴 수 있는 숫자다. 혹시라도 그리스가 민주주의 발명했다고 한다면 그 발명품이란 어린아이의 입안에 난 이와 같다. 반드시 죽고 다시 태어나야 할 민주주의였다. 곧이어 그리스는 죽고 새로운 민주주의가 다시 태어날 것이다. (p. 235)

 

신과 인간

 

□ 그들이 그리는 신은 따라서 인간과 흡사하다. 애초부터 신이란 그다지 특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과 신의 경계가 분명치 않다는 것, 그것이 그리스 종교의 커다란 특징이다. (P. 240)

Ü 신을 닮은 인간, 인간을 닮은 신

 

□ 다른 원시종교와 마찬가지로 그리스에서 종교가 발생한 이유도 인간의 무력함 때문이다. (P. 240)

Ü 결핍, 미완성, 왜소, 두려움, 미약함, 무능력인간은 그런 것이었다.

 

□ 산길을 가로질러가는 농부를 상상해보자. 그가 우연히 길가에 돌무덤을 쌓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무수히 많은 농부들이 그 일을 반복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돌무덤은 헤르마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낯선 길을 가는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어떤 상징이 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돌무덤을 의인화해서 헤르메스라는 신을 만든다. 여행자의 신이 되고 잘 알지 못하는 저승으로 떠나는 죽은 자들의 신이 된다. 처음에는 돌무덤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신이 되고 신비한 힘을 행사한다. 한 여행객이 자신을 지켜준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음식을 놓고 지나간다. 잠시 후 굶주린 다른 여행객이 헤르메스 앞에 놓인 음식을 먹는다. 그게 헤르메스가 준 선물이 된다. (P. 242)

 

Ü 신화가 생산되는 매커니즘, 이거 캠벨 아저씨가 이야기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비록 종교가 생겨난 배경을 블랙엘크에서 그는 찾았지만 종교나 신화나 믿음이라는 본질적 가치는 같다고 본다면 이는 다르지 않다. 캠벨은 말한다. 

 

블랙엘크의 예에서 보았습니다만, 샤먼은 자기가 본 환상을 자기 부족을 위한 의례 행위로 해석해낼 수 있습니다. 즉 내적인 경험을 외적인 경험으로 확대 재생산할 수 있는 것이지요. 종교는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기독교가 자그마치 2천 년을 휩쓸고 지나갔음에도 아직도 이런 신이 기억 속에 살아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P. 245)

 

Ü 종교는 세계를 이야기 하지만 신화는 인간의 이야기 때문에.

 

□ 그리스 말로 데메테르는 곡식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호메로스의 설명에 따르면 데메테르는 이아시온이라는 인간과 곱게 간 밭을 침대 삼아 정분을 맺었고 그 사이에 태어난 것이 플루토스다. 플루토스란 부자라는 뜻이다. (P. 245)

 

Ü 그의 딸 코레는 지옥의 신 하데스의 아내 페르세포네다.

 

□ 사람들이 배를 탄 이유는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때문이었다. (P. 250)

 

Ü 이렇게 명확하고 간단할 수가 있는가. 맞다. 인간의 진보는 그리 별 것이 아니었다. 배고프고 약하고 모자란 모든 결핍 때문에 인류는 진보했다. 꼬르륵,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

 

□ 자연이란 한편으로는 매혹적인 아름다움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에 대한 치명적인 위협으로 다가온다. 그런 자연에 맞설 수 있는 힘은 역설적으로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데 있다. (P. 251)

 

Ü 자신이 무너진 자리가 다시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자리다. 이런 무서운 말은 앞으로는 함부로 내뱉지 말자.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일은 나 같은 사람, 어지간한 용기가 없이는 불가능하므로

 

□ 오디세우스, 그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다. 그는 여러 면에서 사회와 긴밀한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아내와 자식을 붙잡고 있다. 자신의 영토를 사랑하고 일을 좋아한다. 창조하는 인간이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생각하는 머리가 있었고 집으로 돌아와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 인간다움을 자연도 어쩌지 못했다. (P. 252)

 

Ü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제 생긴대로 사는 것인가. 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인가. 그럴 수 있는가. 처자식이 있고 부모 형제들도 있다. 사람의 도리를 다 하고 살려면 돈도 있어야 하고 품위도 있어야 한다. 제 생긴대로 사는 거랑 품위랑 무슨 상관이냐? 내가 무너지는 곳이다.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일을 생각하자. 그래서 어떻게 해야 품위를 갖추면서도 생긴대로 살 수 있을까???

 

□ 아폴론은 아르카디아 사람들에게는 양치기들의 신이 된다. 이름 그대로 해석하면 늑대의 신이지만 실제 뜻을 정반대다.

예수가 아닌 아폴론이나 헤르메스였다는 점만 다르다. (P. 254)

 

Ü 모두 같다. 예수나 아폴론, 제우스,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 율리시스, , .

 

□ 빛의 신 아폴론은 조화의 신이기도 하다. (P. 255)

 

Ü 이 시간 이후부터 아폴론은 나에게 기쁨의 신이라고 명명하면 그뿐이다.

 

□ 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얇은 면사포는 햇빛처럼 우리를 눈멀게 한다. (P. 256)

Ü 세멜레는 실제로 눈이 멀지 않았나.

 

□ 가장 확실한 차이는 신들은 끝없는 기쁨과 즐거움과 웃음과 생기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호메로스의 말대로 눈물은 인간의 것이고 웃음은 신의 것이다.’ (P. 259)

 

□ 도덕은 인간의 창조물이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서 혹시 나쁜 결과가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고 그래서 생긴 게 도덕률이다. 하지만 신들에게는 그 따위가 필요 없다. 도덕률을 어긴 인간에게는 어떤 재앙이 닥칠 지 몰라도 신들은 아니다. 기쁨에 못 이겨 이상한 짓을 한들, 뭐가 그리 대수란 말인가. (P. 259)

 

Ü 결국 내가 생긴대로 산다는 것, 나의 천복을 찾아 간다는 것은 같은 말이고 이 말은 또 신의 모습과 닮아간다는 말고 같은 말이다. 기뻐 어쩔 줄 몰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인간과 비슷한 얼굴을 한 올림포스의 신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의 행복한 모습, 겁먹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종교는 현실에 사는 인간들을 자극한다. 더 행복해 보이는 존재들과 경쟁하라고 추동한다. 천사와 싸우라는 말이다. (P. 260)

 

□ 그리스 비극에는 수도 없이 그런 장면이 나온다. 비극이 비극인 이유는 인간이 신에 대항하여 무모한 싸움을 벌이기 때문이다. 비극에 나오는 쓰러지는 인간은 용감하다. 그리고 그것은 반대로 신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비극에서는 인간도 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고 신도 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은 인간의 편인가? 신은 옳은가? (P. 261)

 

Ü 저자는 여기서 판단을 유보한다. ‘이런 걸 따지는 것 자체가 신의 주권과 자유에 대한 모독이라 말하고 있다. 

 

□ 이제 그리스 종교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 신은 끊임없이 의인화해서 그리스 종교가 노리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아니라 인간이 도달해야 할 목표를 설정해서 보여주는 일이다. 인간의 궁극, 최후의 지점은 올림포스의 신이다. 그 간격을 그리스 사람들은 끊임없이 좁혀가고 있다. (P. 261)

 

Ü 북극성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다다를 수 없지만 방향이 되는 지점, 나아가야 할 지점. 그것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신은 인간에게 그런 존재다.

 

□ 그리스 종교는 인간을 닮으면서 힘을 잃었다. 신들은 그리스 국가와 합쳐지고 말았다. (P. 261)

 

Ü 그런 신화가 종교화 되면서 다시 목표는 북극성에서 인간으로 바뀐다. 이것은 매우 중요해 보이는데 이런 믿음과 목표의 변화가 인간의 삶을 다시 고통의 나락으로 스스로 내던지게 된 이유가 아닐까. 잃어버린 인간의 삶.

 

□ 신에 대한 경배가 인간 자신에 대한 경배로 바뀌는 순간에 종교는 진부한 것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전진을 위한 새로운 무기를 집어들 수 밖에 없다. 그게 바로 과학이다. (P. 262)

 

□ 기원전 5세기, 아이스킬로스의 비극이 힘을 얻던 시대에는 정의로운 신이 인간의 영혼과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아이스킬로스의 영원한 주체도 바로 이것이었다.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와 오레스테이아의 작가의 눈으로 보면 수천 년 역사를 거쳐오면서 야만스러운 힘이 세상을 지배해왔고 이제 세상의 질서가 바로잡히면서는 정의로운 신들의 치세가 왔으며 정의가 역사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 종교가 걸어온 길이다. 종교가 인간이 되었고 인간의 친구가 되었고 인간의 정의를 구현하게 된 것이다. (P. 269)

 

비극 ; 아이스킬로스, 운명 그리고 정의

 

□ 그리스인의 업적 가운데 가장 고결하고 위대한 것은 비극이다. 비극은 간단하게 말해서 우리 속에 존재하는 공포와 희망의 버무림이다. 그것들을 잘 결합해서 완벽한 작품으로 빚어낸 것이 바로 비극이다. (p. 273)

 

Ü 비극은 기원전 6세기에 태어났다. (작가의 말)

 

□ 비극의 주인공들이 벌이는 싸움은 운명에 대적하는 싸움이다. 싸우는 이유는 운명에 순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앞길을 가로막은 것이 운명이다. 그 운명을 넘지 않고는 인간의 전진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 지독하고 끔찍한 운명과 싸워야 한다. (p. 276)

 

Ü 주어진 운명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모든 다른 시선들에 대한 싸움. 그 틈에 나의 이야기도 조금 넣어주었으면 한다. 가능한가.

 

□ 비극은 비유법을 쓰지 않는다. 신화를 있는 그대로 가져온다. (p. 277)

Ü 감정을 직선으로 무찌른다.

 

□ 정치적 평등을 위하여, 사회정의를 위하여 오랜 세월 싸워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리스 비극은 관객들과 코드가 맞는다. 영웅이 운명과 대적하는 얘기가 대중들의 입맛에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투쟁의 장에서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가 맞서고 있다. 토지와 돈을 소유한 사람들은 힘없는 사람들을 빈곤으로 내몰고 공동체 전체를 와해할 기세다. 하지만 그 반대편에는 사람들 간의 평등을 추구하고 사람들 간의 연대를 중시하며 공동체의 번영을 꿈꾸는 가난하지만 용감한 사람들이 있다. (p. 278)

 

Ü 나는 이 대목이 어찌 이리도 감동적인가. 아직 어려서인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 하지만 비극이 보여주는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의 투영이다. 그래서 진보적이다. 아픈 부분을 자극하고 혁명을 독려한다. 얼핏 보기에는 화해를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현실에서 화해하기 위해서는 투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불의에 맞서 싸우라고 부추긴다. 그래야 공동체에 화해가 있고 발전이 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비극은 진보를 넘어 혁명적 자세에 가깝다. (p. 279)

 

Ü 비극을 혁명의 수단으로 보는 보나르의 시선, 존경한다.

 

□ 도대체 프로메테우스는 왜 이런 험한 꼴을 당하게 된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물론 불을 훔친 죄. 불이란 신들의 전유물이므로 프로메테우스가 지은 죄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그 불로 인해서 인간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비극이 아닐 수 없다. (p. 281)

 

Ü 기득권의 세계에서 빠져나온 기득권자 중 하나다. 기득권을 포기함으로써 생기는 공익은 크다. 기득권은 다양한 형태로 대중에게 봉사한다. 정보, 기술, 권력, 자본, 문화, 권위, 지위.

 

□ 그는 인간의 창의적인 정신을 대표한다. 기술과 과학과 발명을 통해 자연에 대적하는 인간이 바로 프로메테우스다. 즉 지금 프로메테우스가 벌이는 싸움은 프로메테우스의 싸움이기보다는 인간의 싸움이다. 인간이 제우스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인간을 몰살시키고자 하는 자연력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p. 283)

프로메테우스는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전형이다. (p. 285)

 

□ 우리가 프로메테우스를 응원하는 이유는 그가 인간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제우스에게 맞서기 때문이다. (p. 287)

 

Ü 솔론과 프로메테우스, 권위와 불의에 맞서는 자, 위대하다.

 

□ 두 주인공은 자칫 세상의 파멸로 몰고 갈 수 있는 무정부주의적 충동을 거둠으로써 세상의 질서를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3천 년 동안 신은 이렇게 변했다.

이와 같은 신의 진화와 맞물려 인간들의 사회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 결과 인간사회에 정의가 구현되기에 이른다. (p. 289)

 

□ 아이스킬로스 생각으로는 우리 중 누구도 나의 죄만 지고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족의 죄, 내가 속한 공동체의 죄도 지고 가야한다. 쉽게 말하면 우리도 공범이다. 우리 마음속에서 죄를 지은 가족을 죽이지 않는 한 우리도 공범이다. (p. 294)

 

Ü 징징대면서 원망하지 말자. 죄는 우리에서 비롯되었으니 우리가 받는 것이다.

 

□ 안 따르면 운명이 나를 칠 것이고

따르려면 저 어린 자식을 죽여

가정과 가문을 조각 내고

고귀한 피를 내 손에 받쳐

제단에 뿌려야 하리니.

 

어느 쪽도 내 길이 없다.

이대로 험한 바다에 나가

내 소중한 전우들을 잃어야 하는가.

제단에 딸자식의 피를 뿌리고

미친 듯이 미친 듯이

바람을 잠재워야 하는가.

신들은 이 길을 원하는가.

피로 우리를 구원하기를 원하는가. (p. 296~297)

 

Ü 아가멤논은 공익에 헌신한다. 엄마의 젖을 먹으며 올망똘망한 눈으로 바라보던 어릴 적 딸자식의 모습을 눈앞에 그리고도 딸의 피를 볼 수 있는 비정한 아비이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자신의 명예와 공익을 지키려 했던 공익적 인간이었다.

 

□ 진홍빛 양탄자는 신들만이 밟고 지나갈 수 있는 것이었고 아가멤논도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아가멤논은 처음에는 거절했다. 하지만 결국 허영에 못이겨 양탄자를 밟고 만다. 그 광경을 본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이제는 죽여도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p. 299)

Ü 그랬구나. 왜 새로울까. 제대로 읽자.

 

□ 오레스테스는 한편으로는 살인을 저질러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로 인해 죽어야 한다. 그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신은 두 가지 상반된 명령을 내리고 있다. 신의 세계 자체가 분열되어 있다는 말이다. (p. 302)

 

Ü 신도 전지할 수 없다. 신도 우유부단하다. 결정하지 못한다.

 

□ 피 냄새가 분노의 신들을 흐뭇하게 하는구나. (p. 306)

 

Ü 죽고 죽이는 인간의 천박한 복수심을 비하하는 신, 그래서 넌 인간이야.

 

시민 페리클레스

 

□ 우선 페리클레스는 머리가 좋다. 정치 상황에 대한 분석, 예측 혹은 그에 대한 적절한 대응 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두 번째로 말을 잘한다. 남을 설득하고 자기편으로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다. 페리클레스는 의회에서 연설을 할 때 늘 왕관을 땅바닥에 내려 놓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열렬한 환을 받으면서 내려 놓은 왕관을 다 썼다.

세번째로 페리클레스는 아테나이를 사랑한 사람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사심이 없다. (p. 312)

 

Ü 리더다. 헤로도토스가 잠시 아테나이에 머물 때 그는 페리클레스로 인해 아테나이에 자유의 공기가 풍요롭다고 했다. 그는 또 그의 정치적 이상을 함께한다고 했고 일정 기간 동안 페리클레스를 도와 공직에 있기도 했다. 사람을 쓸 줄도 아는 리더였다.

 

용기가 자유를 낳고 자유가 행복을 낳습니다. 우리가 이 두려운 전쟁 앞에서 용기를 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p. 313)

 

□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페리클레스는 가난한 사람들이 듣기 에는 기분 나쁠지 몰라도 가난한 사람들이 없는 세상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 (p. 318)

 

Ü 그의 복지관을 지지한다.

 

□ 공직사회의 문호 개방과 급료 지급, 이것이 페리클레스가 생각한 민주주의 개혁 내용이었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한다면 최고 재판소의 거부권을 없애는 일이었다. (p. 319)

 

Ü 기득권을 놓은 자리에서 자원을 재분배 했을 때 이렇게 공익이 늘어난다. 편향되고 주관이 개입할 수 있는 법의 허점을 차단했다.

 

□ 아테나이가 싸우는 이유는 누구 하나를 제거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배력을 잃게 되면 억눌렸던 적들이 나타납니다. 그 때는 지금처럼 편안히 물러서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국주의적 민주주의의 실체였다. 이 민주주의는 철저하게 노예들 위에 세운 민주주의다. 또한 조공국의 재산과 땀과 피위에 세운 민주주의였다. (p. 327)

 

Ü 오늘날 제국의 풍경과 다르지 않구나. 지배의 유지, 억압에의 유지.

 

□ 시대의 걸작 파르테논은 순수한 작품이다. (p. 335)

파르테논은 한마디로 영원하다. 그것도 부동자세의 영원함이 아니라 움직임의 영원함이다. (p. 336)

 

□ 파르테논을 보면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행복하다. 그것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를 볼 때 느끼는 행복과 비슷하다. (p. 339)

 

□ 페리클레스의 영광과 실패를 목격하면서 우리는 한 가지 진실을 깨닫게 된다. 문명은 모든 살아있는 사람을 위한 문명이라야 한다. 그리스 문명은 우리에게 기쁨과 희망과 용기라는 열매를 주었다. 하지만 그 열매 속에는 쓴맛이 도사리고 있다. 그게 없어지기 위해서는 다시 몇 세대가 더 흘러야 한다.

문명은 푸른 사과다. 태양이 더 내리쬐어야 붉은 사과로 변할 것이고 아직은 태양이 충분하지 않다. 그리스는 아직 어린 문명이다. 오디세이아 저자의 말마따나 태양이 그리스를 더 키워줄 것이다. (p. 343)

 

Ü 그 태양 나에게도 비추라.

 

2

          

안티고네의 약속

 

□ 거룩한 성수나 멸균 처리된 밍밍한 물로는 비극을 쓸 수 없다.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비극은 눈물과 피로 쓴다. (p. 11)

 

Ü 보나르가 앞서 말한 비극은 혁명이라는 점에서 의견을 같이 한다. 피 없는 혁명은 없다.

 

□ 비극은 원칙적으로 상당히 교육적인 장르다. (p. 13)

 

Ü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해소하고 나면 지금제도권 내에서 충실해 지겠다.

 

□ 모든 비극들은 하나같이 이제까지 듣도 보도 못한 용기 있는 행동을 통해 스스로를 넘어서려는 인간, 장애물에 부딪힘으로써 미지의 세계와 대면해 위대함의 새로운 차원을 열려는 인간들을 보여준다. (p. 14)

 

□ 안티고네는 신들의 법, 글자로 쓰이지 않은 법, 영원한 법, 양심을 지배하는 법, 정신 나간 왕이 제멋대로 정한 법보다 더 높은 법에 복종했노라고 항변하는 것이다. (p. 18)

 

□ 안티고네는 말하자면 인간 존재가 완전히 어둠 속으로 떨어져버리지 않을 것임을 보장해주는 담보였다. (p. 21)

 

□ 비극에 으레 등장하는 주제, 삶에 대한 전적인 사랑이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죽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주제. (p. 25)

 

□ 비극 시인은 자신 안에서 또 우리 안에서 싸움을 벌이는 자식들 그렇지만 결국 시인 자신이자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 자식들의 불협화음을 통해서만 목소리를 들려준다. 불협화음이 조화로운 화음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p. 28)

 

□ 크레온이 뜻을 굽히게 되면 그와 더불어 그가 우리에게 약속한 안정된 세상은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리게 된다. (p. 30)

 

□ 각자 자신들이 세운 유일한 목표에 사로잡힌 나머지, 나머지 것들에 대해서는 맹목적이 될 수밖에 없다. (p. 31)

 

나는 증오를 나누어 갖기 위해서 태어난 게 아니에요. 나는 사랑을 나누어 갖기 위해서 태어났어요

이것이야말로 타고난 여인, 사랑에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아무런 제한도 두지 않는 연인의 심성이 아니겠는가 (p.39)

 

□ 안티고네는 말한다.

신들의 법칙이란 오늘 만들어진 것도 어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언제나 그렇게 있어왔지내가 때 이른 죽음을 맞는다고 하더라도 난 알아. 그 죽음이 나한테는 이득이라는 걸죽음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고통일 뿐이지. 내 어머니의 아들을 무덤도 없이 버려두는 것이야말로 불행이지나머지는 아무래도 상관없어. (p. 40)

 

□ 크레온의 본성, 불임성이다. 크레온이 위협에 처한 도시 생각에 분노로 몸을 떨 때, 그는 혹시 분노가 아닌 두려움 자신을 위한 두려움 때문에 그러는 게 아닐까? (p. 43) Ü 동의.

 

□ 그는 자신의 방식대로 아니 자신의 위치에서 옳았으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소포클레스는 그 과실, 즉 분열되어 있는 우리의 인간성과 그 인간성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계에 대한 뼈저린 인식을 안겨준다.

그는 너무도 은밀한 방식으로 우리를 등장인물 각각의 삶에 동참하게 한다. (p. 46)

 

Ü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 꼭 그랬다.

 

□ 그 결과 우리는 인생의 복합성, 인간 존재와 그 존재의 단일성, 의미가 지니는 풍요로움이 주는 기쁨을 순차적으로 또는 동시다발적으로 맛보게 된다. (p. 50)

 

□ 크레온에게 질서의 극한은 파시즘이다.

크레온은 인간과 신은 물론 모든 정신적인 가치까지도 정치적 국가적 질서에 복속시킨다. (p. 51)

 

선과 악의 구분, 정치적 질서가 정의하는 구분, 정치적 질서가 정의하는 구분은 양심 앞에서 사라져버린다. 진노한 크레온이 묻는다.

선한 인간이 죄인과 똑 같은 운명을 맞아야 한다는 말이냐?’

안티고네는 분명하게 대답한다.

당신의 국경이라는 것이 죽은 자들에게도 과연 의미가 잇는지 어느 누가 안단 말입니까?’ (p. 51)

 

□ 안티고네-크레온의 갈등은 궁극적으로 선혈 낭자한 자살과 절망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인물들과 맺고 있는 그 어떤 관계의 파괴도 초래하지 않는다. 모든 등장인물은 현실성을 획득하며 삶의 원칙으로서, 조화 속에서 시인의 천재성과 그의 선택을 받은 피조물 안티고네의 숭고함에 복종한다. (p. 52)

 

안티고네가 자유라면 크레온은 운명이다. 이것이야말로 소포클레스의 비극이 지니는 궁극적인 의미이여 그로 인해서 우리가 맛보는 기쁨의 중추라고 할 수 있다. (p. 53)

 

Ü 운명과 자유, 종이 한 장 차이다. 자유로 갈 생은 잠시 잠깐 멍때리는 순간 운명으로 휩쓸린다.

 

□ 안티고네의 죽음은 부수고자 했던 숙명의 질서에 대항해서 우리를 해방시켜주는 원칙으로 작용한다. 모든 국가적 질서에 대한 질타가 아니라 우리들 개개인의 자유로운 숨결을 억압하는 질서를 종용하는 국가에 대한 질타다. (p. 54)

 

인간의 자유에 어울리는 사회, 국가는 최소한의 역할로 만족하며 오로지 개인의 자유의 수호자로서 기능하는 사회, 우리 마음속에서 이미 그렇게 했듯이 역사 속에서도 화해한 크레온과 안티고네의 균형 잡힌 관계를 통해서 합리적이고 정당한 공동체 내에서 개인의 자유가 꽃피는 사회 (p. 54~55)

 

Ü 이 말이 어찌 이리도 아름답게 들리는가. 그러나 슬프다. 조국이 처한 현실 정치에 아프다. 보나르가 말하는 저 사회에 도달할 날이 오겠는가. 연대하라.

 

돌을 조각하고 청동을 주조하다

 

□ 그리스 사람들은 시인자 타고난 조각가였다. (p. 59)

 

□ 미켈란젤로가 말했듯이 우리는 손이 아닌 머리로 그림을 그린다. 그러니 자유로운 머리를 가지지 못한 사람은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다.’ (p. 65)

 

□ 일찍이 호메로스가 신들에 대해서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고 표현했던 것처럼 기쁨으로 충만한 신, 그래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신을 재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요컨대 상고 시대 조각에서 나타나는 미소는 복자들의 특권인 영원히 사는 기쁨의 반영인 것이다. (p. 72)

 

□ 기원전 6세기경에 활약한 조각가들의 예술 활동은 인간의 신체 정복이라고 하는 원대한 목표를 향해 수렴했다. 근육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벌거벗은 인체, 가벼운 의복 또는 묵직한 의복 안에 감춰져 있으면서 옷을 통해서 드러나거나 암시되는 우아한 여인의 몸이 모두 이들의 탐구 대상이었다. (p. 80)

 

□ 남자와 여자의 몸, 그것은 신에 대한 가장 나은 재현, 신의 가장 정확한 이미지였다. 결국 그 같은 이미지를 조각하면서 그리스 예술가들은 그리스 민족이 섬기는 신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말할 수 있다. (p. 81)

 

벌거벗은 남자상은 바로 대리석으로 된 언어였으며 그 언어는 신을 가리켰다. (p. 82)

Ü 좋은 표현이다.

 

□ 인간과 신의 교묘한 혼합인 이 형상들은 그리스 땅에서 이루어진 가장 대담한 시도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신성이 이처럼 인간성과 분리되지 않은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들 조각상들은 인간을 통해서 신을, 신을 통해서 인간을 표현한다. 인간이 신에 대해서 더 이상 어떻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p. 83~85)

 

□ 사실주의에 토대를 둔 그리스의 고전주의는 이제 인본주의와 밀접하게 연결되기 시작한다. (p. 92)

 

□ 폴뤼크레이토스는 걸작품이란 머리카락 한 가닥의 차이까지 찾아낼 만큼의 수많은 계산의 결과라고 말했다. (p. 95)

 

Ü 결국, 디테일의 싸움이다. 디테일이 없는 명작들은 보지 못했다. 디테일에서 모든 것은 판가름 난다.

 

예술에는 완벽의 정도가 있으며, 이는 자연에 성숙한 정도가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라고 라브뤼예르는 말했다. (p. 96)

 

□ 그는 각자가 자신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자신의 야만성을 길들여 신들이 이 지상에 우리 자신 안에 임하도록 하는 것만이 인간이 이룩해야 할 최초이자 유일한 진보라고 암시한다. 페이디아스는 정의와 선의를 통해서 행복의 이미지라고 할 수 있는 평정심에 도달하고자 했다. (p. 98)

 

Ü 불교철학과 닮았다. 내 안에 부처가 있고 신이 있고 모든 해답이 있으니 나를 바로 보는 것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고 끝이 난다.

 

□ 어쨌든 신을 만드는 사람이 빚어낸 제우스의 얼굴을 통해서 우리는 모름지기 위대한 작품이란(작품이 태어날 때 통용되던 진리에 입각해서 만들어지기만 했다면) 세기를 거듭하면서 꾸준히 새로운 의미를 부여 받게 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에게 전달되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바로 이 당대의 진리, 그러니까 고전적 사실주의가 아니겠는가. (p. 103)

 

Ü 그렇다. 맞다.

 

과학의 탄생 : 탈레스, 데모크리토스

 

□ 기원전 6000년에서 4000년 사이에 괄목할 만한 발전이 이루어졌다. 2천 년이라는 기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시기에 이루어진 대대적인 기술 혁명이 고대 문명의 물질적 토대를 마련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는 18세기 산업혁명, 원자핵 분열, 핵 에너지의 발견 등에 견주어도 그 중요성에서 전혀 뒤지지 않는다. 요컨대 인간은 농업을 발명했다. (p. 109~110)

 

Ü agriculture, 문명의 시작이다.

 

□ 선박 제조술과 항해기술, 천체도, 천문학과 기하학, 농업의 발명, 금속의 발견이나 짐승의 가축화, 태양력과 태음력 발명.

과학을 인간의 자연 지배력을 향상시키는 지식과 수단의 총합이라고 정의한다면 이 모든 발명은 과학 역사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이 모든 발명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역사에 등장하기에 훨씬 앞서서 이루어졌다. 그리스인들은 이것들을 앞선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보물처럼 기억 속에 간직해왔다. (p. 111~112)

 

□ 기원전 7세기와 6세기에 이오니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여러 혈통이 섞인 민족(카리아, 그리스, 페니키아인)이 오랫동안 지루한 계급 투쟁에 휘말렸다. (p. 112)

 

□ 이오니아 도시 전체에 피바람을 몰고 온 이 계급 투쟁(솔론 시대에 앗티케에 불어닥친 계급 투쟁과 같은 부류)은 결과적으로 그리스라고 하는 발명의 나라에서 온갖 발명이 풍성하게 이루어지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p. 113)

 

□ 호메로스의 시는 부르주아지 계급이 태동하던 시절에 형태가 완성되었다.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 그 어느 작품도 귀족에 의해 쓰이지 않았으며 제후 계급에 봉사하기 위해 쓰이지도 않았다. 이 시들은 새로운 부류의 인간들로 이루어진 떠오르는 계급에 의해 쓰였음을 알려주는 뚜렷한 증거들이 있다. (p. 113)

 

□ 아르킬로코스와 탈레스는 신을 부정하지 않았다. 이들은 세계를 이해하고 싶어했으며 그 세계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서 궁금해했다. 인간적인 삶의 리듬을 익혀야 한다고 말년의 아르킬로코스는 주장했으며 이는 장차 도래하게 될 과학과 철학의 언어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p. 117)

 

Ü 신을 부정하지 않고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가능한 일인가.

 

□ 불은 주어진 물질을 재로 만들어버린다. 불은 또한 주조 기술을 통해서 액체로 만들기로 한다. 불은 금속 제련 과정을 통해서 분리하고 정화시킨다. 역으로 불은 합금이나 용접을 통해서 서로 다른 것들을 하나로 결합시킬 수도 있다. (p. 122)

 

Ü 본질, 불의 본질, 사물의 본질, 원형, 이거 뭔가 올 듯 말 듯 오지 않는다.

 

□ 기하학 형태를 활용한 수학적 방법의 발명 (p. 123)

 

Ü 나는 기하학이 피타고라스에서 시작되어 플라톤이 집대성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탈레스였구나.

 

□ 추상적이고 추론적인 기하학적 지식을 겸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p. 127)

 

Ü 기하학의 발전이 정복, 전쟁, 계급 투쟁, 인본주의의 발전과 그 괘를 같이 한다.

 

□ 탈레스는 physis에 집착하는 자연철학자였다. 그는 늘 물질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했다. 요컨데 그는 유물론자이며 물질주의자였다.

 

이 세계에서 생명 또는 영혼은 물질의 모습으로 왔고 생명 또는 영혼은 물질에 내재적이며 생명 또는 영혼은 물질의 반응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하는 자들이라고 했다.

탈레스에게 하늘은 배들이 항해하고 도시를 굽어보는 신전의 기둥을 높이 세울 수 있는 3차원 공간이었다. (p. 128)

 

Ü 사유의 변화가 인간의 관점을 이렇게 바꾼다.

 

□ 황소와 말, 사자에게 손이 달려서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만들 수 있다면 인간이 자신의 이미지를 본떠서 신을 재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황소와 말, 사자로 신의 모습을 재현할 것이다. (p. 132)

 

Ü 세계를 한 차원 넓힌 사유라 생각한다. 그럴 수도 있지 않겠는가. 사자, 황소, 말의 신들과 같이 사는 세계. 그 세계에 하나의 개체일 뿐인 인간.

 

□ 기독교 교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고대 저작들에 대한 박해가 유물론의 아버지로 알려진 이 작가에 대해서는 특별히 가혹하게 자행되었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기독교 교회는 반대로 관념론의 창시자에게는 상당히 너그러웠다. 심지어 그로부터 기독교 신학 체계의 상당 부분을 차용했다. (p. 136)

 

Ü 맹신적 기독교 위정자들이 2천 년이 세계의 생각을 한계 지어 놓았다. 이렇지 않았겠는가.

현실세계에서는 결코 일어나지도 이루어질 수도 없는 관념에 대한 이론적 체계를 발전시켜 나가며 geometry 성장해 나간다실재를 부정한 생각, 즉 관념의 사유체계로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증명할 수 없는 공리에서 출발한다는 것인데, 공리란 무증명명제라고도 하는 이른바 증명할 수 없는 법칙을 가정한 명제다. 이러한 사유체계 즉, 기하학적 사유체계가 기독교의 첨병으로 전세계 퍼져 나갈 수 있었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만하다논리적 비약에서 출발한 논리적 사유. 동정녀로부터의 탄생과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했다는 믿음!

 

□ 그리스의 모든 위대한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데모크리토스 역시 타고난 여행가였다. (p. 137)

Ü 여행은 사유 확장에 필수다.

 

□ 새벽녘 높은 산의 정상에서 얼어붙은 뺨을 때리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상큼하고 톡 쏘면서 마음을 흥분시키는 기운이 (p. 137)

Ü 좋은 표현

 

□ 아인슈타인은 1905년에 종이 한 장과 연필 한 자루 그리고 자신의 두뇌만을 이용해서 누군가가 원자를 분해하고 물질을 파괴하기 훨씬 전에 물질은 파괴될 수 있으며 그렇게 될 경우에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방출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데로크리토스는 기원전 5세기에 밀랍판과 뾰족한 막대기, 그리고 자신의 두뇌만 가지고 과학이 실체의 내부를 탐구하는 것이 가능해 지기 수 세기 전에 모든 실체는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p. 139)

Ü 누구냐 넌!

 

물질의 내부에는 텅 빈 거대한 공간들이 잇다.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들의 크기를 감안할 때 이 같은 빈자리들은 항성 간의 공백에 비교할 수 있다. (p. 139)

 

Ü 이로써 모든 소우주들이 각각의 몸에 세계에 영혼에 깃들어 있음이 과학적으로 밝혀지는 순간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인 대지는 데모크리토스에 따르면 무한한 공간 안에 형성되어 있는 여러 세계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무한히 많은 세계가 존재하며 이들 세계 각각은 고유한 태양과 행성, 별들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들 태양과 별, 행성들은 형성되는 과정일 수도 있고 사라져가는 단계일 수도 있다. 이러한 설명에는 세계가 생성되고 보존되는 과정에 창조나 초자연적인 힘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오로지 물질과 운동만이 있을 뿐이다. (p. 141)

 

Ü 데모크리토스와 싯다르타는 동시대 사람인가. 그런 것 같다. 이것은 또 무엇을 말하는가. 동시대 같은 사유가 다음 이 천 년을 지배하는 이 사실은.

 

□ 관측기구들이 전혀 구비되지 않은 탓에 객관적으로 정립된 지식이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고찰한 엥겔스는 이렇게 말했다. 바로 그 점에서 후세의 다른 모든 형이상학적 경쟁자들에 대한 그의 우월성이 드러난다. 세부 사항을 고려한다면 형이상학이 그리스인들보다 우월할 수도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그리스인들이 형이상학에 비해서 우월했다고 보아야 한다. (p. 142)

 

Ü 데모크리토스는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사실 인류가 짊어지고 갈 지의 극한을 이미 맛본 사람들이 아닐까. 사유능력의 정점을 본 사람들 같다.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신앙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자연현상, 특히 죽음과 대면해서 느끼는 두려움 때문에 생겨난다고 주장했다. (p. 143)

 

Ü 스피노자는 미신과 신앙은 근본적으로 우리가 약한 지성과 강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겨난다고 말했다. 즉 지성은 앎을 획득하는 능력인데, 앎이라는 것은 늘 원인에 대한 앎이다. 결과의 인식 자체는 늘 원인에 대한 인식에 의존한다고 했다. 스피노자는 데모크리토스의 적자다. 

 

□ 인간이 원초적 진흙에서 나왔다고 믿었던 만큼 그는 우리를 열광적으로 흥분시키지는 못할 지라도 적어도 우리가 진화의 한 지점에 도달했으며 앞으로의 진화를 만들어갈 장본인임을 깨닫게 해줄 것이다. (p. 147)

 

Ü , 이건 너무 허무하고 눈물겹다. 무엇을 위해 생을 지속하는가. 살기 위한 삶,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그 어떤 수로도 그자의 말대로라면 세계를 제한할 수 없대.

어쩌면 말이지, 세계는

무한히 많은 데모크리토스들로 가득 채워져 있을지도 모르지. (p. 147)

 

Ü 라퐁텐이라는 사람이 한 말이다. 동감한다. 그는 이어서 자고로 자기 고향에서 인정받는 선지자는 없는 법이라 했다. 이 또한 동감이다.

 

□ 르네상스는 이름 값을 할 필요가 있었다. 르네상스는 정확하게 고대 과학이 추락한 그 지점에서부터 그 지점을 잊지 않고 있다가 정확하게 다시 거기에서 출발하게 될 것이었다. (p. 148)

 

Ü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기.

 

소포클레스와 오이디푸스 : 운명에 화답하기

 

□ 신들은 과연 죄 없는 인간을 벌할 수 있는지 없는지 끝까지 지켜보아야겠다는 마음이 발동했던 것 같다. 신들이 방향타를 쥐고 이끄는 이 세계에서 과연 인간은 어떻게 될 것인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p. 152)

 

Ü 오이디푸스는 이런 이유로 신들과 맞짱 떠 이긴 유일한 인간의 모습이다. 존경해야 할 일이다. 가장 고귀하고 영예로운 인간의 파멸이다.

 

□ 시인은 이처럼 등장인물들의 무지와 관객들의 전지라는 상반된 입장을 유지하면서 극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p. 157)

 

Ü 멋진 표현이다. 소포클레스는 대중의 성감대를 알고 있었다.

 

□ 신들에 의해서 파멸 당한 오이디푸스가 신들에게 제시할 대답을 기다리게 만든다.

시인은 그의 영혼이 만들어낸 인물들과 우리가 공유하는 고통이 주는 오묘한 기쁨을 통해 우리의 사고를 건드린다. 그 오묘한 기쁨은 주인공에 대한 공포이며 연민이고 그에 대한 찬탄이며 사랑이다. (p. 167~168)

 

Ü 오이디푸스가 찌른 자신의 눈은 신이 조정하는 인간의 눈으로 더 이상 보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다. 신들이 정한 운명이라면 나는 거부한다. 나의 생을 찾아 나선다. 눈 그까짓꺼 보이지 않아도 상관없다. 물질일 뿐인 눈 두 개, 마음으로 보면 그만이다. 뭐 이런 생각이었을까.

 

□ 오이디푸스는 결백하다. 죄를 지은 자는 신이다. (p. 168)

 

□ 그가 운명에게 보이는 유일한 허점이 있다면 단지 그가 인간이라는 사실 (p. 175)

 

Ü 유일한 허점이지만 가장 결정적이다.

 

□ 우리는 원래 다 그런 법임을 우리의 삶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광대한 삶, 어쩌면 우리에게 형을 가하는 광대한 삶의 한 귀퉁이에 불과함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또렷한 눈으로 바라보는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사실 장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p. 178)

 

□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장님이 되는 쪽을 택했다. 그는 말한다.

아폴론이 나를 불행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나는 내 두 손으로 직접 내 눈을 찔렀다.’

운명이 그에게 마련해 놓은 벌을 그는 스스로 요구했고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자유로운 인간으로서의 그가 한 최초의 몸짓이었다. (p. 179)

 

□ 지지. 오이디푸스는 신이 원하는 것을 원한다.

존재의 알려지지 않은 영역, 신성이라는 수수께끼, 인간의 세계와는 깊은 심연에 의해 갈라져 있는 이 미지의 세계를 오이디푸스는 또 다른 세상, 이방인의 세계로 느낀다. (p. 180)

 

신은 우리를 지배하지만 우리가 신을 알기란 불가능하다. 신탁, 예감, 꿈 등은 신이 우리에게 보내는 막연한 언어로서 저 깊은 심연 속에서 인간의 영역을 향해 솟아오르는 물방울에 비유할 수 있다. 즉 신의 존재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신을 이해하거나 판단하는 것을 허락하지는 않는 신호인 것이다. (p. 183)

 

Ü 결국, 인간은 신을 닮을 수도 없는 것이었다. 다가가면 터져버리는 물방울처럼. 이거 캠벨 아저씨도 몇 번 강조한 것 같기도 하고.

 

오이디푸스가 모호한 언어를 통해서 우주가 그에게 전하는 부름을 듣게 되면 그는 즉시 사랑의 부름을 받을 때에 버금가는 열정으로 운명의 길을 향해갈 것이다. 고대인들은 이같이 고귀한 형태의 종교심을 가리켜 아모르 파티(amor fati)라는 표현을 썼다. 공격의 망각, 세계에 대한 인간의 용서 등을 의미하는 말이다. 아모르 파티는 산산조각 난 인간의 마음속에서 운명과 소명이 화해한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나의 잘못이 너무도 크기 때문에 인간들 중에서 그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자는 없다. 나를 빼고는(p. 184)

 

Ü 신화의 힘에서 캠벨은 아모르 파티를 언급한다.

 

니체에게 아주 중요한 개념이 있지요. 아모르 파티 (amor fati)라는 건데 운명에의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운명이 곧 우리 삶이니 사랑하라는 겁니다. 그가 말했듯 우리가 우리 삶의 어떤 한 측면에 대해서만이라도 아니라고 할 수 있으면 만사는 해결됩니다. 더구나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우리에게 동화시키기가 까다로우면 까다로울수록 이것을 성취한 인간은 그 만큼 더 위대해지는 거랍니다.’

 

오이디푸스와 아모르 파티가 연결된다. , 뽕 맞았다.

 

우리가 짊어지고 태어난 고난의 거대함로 대신할 수 있을 이 위대함은 자신을 파멸시키고자 그 악을 만들어낸 자에게 원망이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으며 자신의 고통을 통해서 그 악을 보상하기로 결심한 자의 위대함이다. (p. 185)

 

Ü 조건 없는 자발적 고통.

 

□ 오이디푸스는 어떻게 죽었을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그는 과연 죽었을까 아니 죽는다는 건 도대체 뭘까? 오이디푸스의 삶과 이 놀라운 죽음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있다면 어떤 상관관계일까.

오이디푸스의 죽음은 새로운 세계를 세우는 것처럼 보인다. (니체에게는 특히) 운명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 말이다. (p. 198)

 

Ü 개인의 생은 개인 자신의 것이라는 천명.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자기 두 눈을 스스로 뽑아 버리는 고통에 맞먹는 고통이 기다리고 있음을.

 

□ 이제 나에게 삶의 종말을 허락해 주십시오. 나의 존재에 결말을 허락해 주십시오. 당신이 보시기에 내가 그럴 만한 자격이 없지 않다면 말입니다. 나는 살아있는 동안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불행과 더불어 살았습니다. (p. 203)

 

Ü 오이디푸스가 숲에서 여신들에게 이와 같이 간청한다.

너희들이 원하는 나의 고통을 다 받았으니 나를 이제는 죽여 평화롭게 하라.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의 영혼들이 한번 더 죽는 의미와 같다. 죽어서 온 지옥에서 한번 더 죽으면 그 영혼 마저 지옥에 있는지 모르게 해 달라는 말. 소포클레스와 단테가 연결된다.

 

□ 그의 죽음은 이제 사적인 일이 아니다.

호메로스, 헤시오도스, 아르킬로코스, 삽포, 아이스킬로스처럼 천재성에 의해 신성시되는 영웅들 이제 곧 소포클레스도 아테나이의 시민들을 지키는 이 기라성 같은 별들 사이에 자리 잡을 것이다. (p. 206)

 

Ü 비극, 그네들 스스로가 주어진 운명을 버린 오이디푸스로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

 

핀다로스, 시인들의 왕자, 왕자들의 시인

 

□ 젊음이 주는 아름다운 팔다리가 그에게는 인간의 삶이 정복해야 할 본질적인 가치다. (p. 218)

 

□ 기원전 5세기 초반부에 아테나이는 테바이와 비교해볼 때 종교가 이성의 등장을 두려워하지 않는 말하자면 지혜가 무르익은 분위기였다. (p. 220)

 

□ 나는 언어 위에 노래하는 숫돌을 놓았으며 그 돌은 원천으로부터 전해지는 입김으로 나를 사로잡는다. (p. 224)

 

□ 우리 발 앞에 놓인 것을 직시하라. 그런데 도대체 우리 발 앞에 무엇이 놓여 있단 말인가? 죽어야 하는 인간 조건이 놓여 있다.

여기서 시인은 용기 있고 멋진 말을 던진다. ‘오 나의 영혼이여, 불멸의 살을 갈구하지 마라. 대신 너에게 주어진 활동의 장에 지치도록 탐닉하라.’ 이것이 바로 그가 환자에게 주는 충고였다. (p. 229)

 

내 시를 노래하면서 경이로움을 느끼면서,

롱사르는 아름다웠던 시절의 나를 찬미했다고 말해주게. (p. 230)

 

□ 시인은 행복의 영광스러운 성공의 예를 든다.

카드모스의 오만한 딸들은 이루 표현할 수 없는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고통의 무게는 이들에게 몰려온 기쁨의 무게 눌려 허물어져버렸다. 길게 땋은 머리채의 세멜레는 벼락을 맞아 죽었지만 올림푸스의 신들 가운데에서 다시 산다. 팔라스로부터 영원히 사랑 받으며 제우스 신의 사랑까지 받은 세멜레는 포도 덩굴을 지니고 다니는 그의 자식에게도 사랑 받았다. (p. 237)

 

Ü 디오니소스의 어머니. 헤라로부터 시기를 받아 제우스의 광휘를 직접 보게 만들어 불에 타죽는 세멜레. 제우는 그녀를 안타까워하며 잉태하고 있던 디오니소스를 자신의 허벅지에 옮겨 키우고 출산한다. 디오니소스는 축제의 신이자, 술의 신이다. 기쁨이라는 말이겠다.

 

□ 모래가 자갈들 사이로 빠져나가듯이 인간의 기쁨도 다른 사람들에게 분배될 것이다. (p. 239)

Ü 좋은 표현

 

□ 델포이의 주제인 너 자신을 알라의 도덕적 교훈 버전이다. 너는 알게 된 그대로의 네가 되거라라는 핀다로스의 말을 가지고 괴테가 있는 그대로의 네가 되거라라는 멋진 말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p. 245)

 

Ü 자신을 바로 보고 바로 본 자신의 모습 대로 사는 것. 생긴 대로 사는 것, 생긴 대로 쓰는 것.

 

커다란 위험이란 두근거리는 마음이 없는 투사는 원하지 않는 법이다. 어차피 죽어야 하는 목숨이라면 어째서 어둠 속에 가만히 앉아서 모든 모험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채 무기력하게 늙어가기만을 기다린단 말인가? (p. 247~248)

 

Ü살아라.’ 어떻게 사는 것이 사는 것인지 알아내고 그렇게 살아라

 

구대륙 탐험에 나선 헤로도토스

 

□ 대지는 하나다. 하나인 동시에 다양하며 여러 인종과 국가가 있어서 이들은 가장 기초적인 필요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 반면, 관습에 있어서는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 (p. 252)

 

□ 마침 그는 자신의 저술에 히스토리아이historiai’ 즉 당시로는 조사라는 의미만을 지녔던 단어로 제목을 붙였다. (p. 253)

 

□ 헤로도토스의 역사서는 그러므로 과학적 개연성과 무비판적인 믿음이 뒤섞여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p. 255)

 

□ 지리학은 배고픔, 대부분의 고대인들이 겪어야 했던 지독한 기아에서 탄생했다. (p. 260)

Ü 사람들이 배를 탄 이유는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때문이었다.

 

□ 페르시아인들은 자식이 다섯 살이 되면 교육을 시작하며 이 교육은 아이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계속된다. 그런데 이들이 가르치는 것은 말타기, 활쏘기, 진실을 말하기, 이렇게 고작 세 가지뿐이다. (p. 265)

 

Ü 이 문장 다시 곱씹어 봐도 멋지다. 원문은 이렇다.

아이에게는 5세에서 20세까지 사이에 단 세 가지 것만을 가르친다. 승마, 궁술, 그리고 정직이 그것이다.’

 

□ 잔인하다고 해서 덜 중요한 것이 절대 아니었다. 그리스인들의 인본주의는 일방통행이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관념론이나 이상주의에만 치우친 인본주의가 아니었다. (p. 274)

 

□ 스키타이인들의 풍습 (p. 277)

 

Ü 원문을 보자.

 

이세도네스인의 풍습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어느 집의 부친이 사망하면 친인척이 모두 가축을 데리고 모여 그것을 잡아서 고기를 썰고 더불어 그 사망한 부친의 살도 썰어서 이것을 섞어 요리로 해 연회를 베푸는 것이다. 시신의 머리는 머리카락과 그 밖의 것을 제거하고 깨끗이 한 다음 금을 씌워 이를 예배물처럼 다루고 해마다 성대하게 산 제물을 바쳐 제사를 지낸다. 이 나라에서는 마치 그리스인이 연제를 지내듯이 아들이 아버지를 위해 이와 같은 예를 다하는 것이다. 그 밖의 점에서는 여자도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 ‘

 

□ 그 사람들 말로는 그 개미들만큼 빨리 달리는 짐승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한다. 개미들이 모여들기 전에 인도인들이 서둘러서 한참을 앞서가지 않으면 한 사람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p. 279~280)

 

□ 녀석들이 짝짓기를 할 때면 암놈은 수놈이 사정을 하는 순간에 녀석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힘을 다해 거기 매달린다. 그러고는 녀석을 다먹어치울 때까지 놓지 않는다. 수놈은 그렇게 해서 죽는다. 암놈은 이 일로 인하여 응분의 벌을 받는다. 새끼들이 알을 까고 나올 때가 되면 어미 뱀의 자궁과 배를 갉아 먹음으로써 바깥세상으로 나온다. 말하자면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간 어머니에 대해 새끼들이 복수를 하는 것이다. (p. 282)

 

Ü 오레스테이아 버전을 차용하여 자연의 생식에 적용했다.

 

□ 나사모네스족의 남자는 여러 명의 여자를 아내로 삼으며 온 가족이 공동으로 여자들을 향유한다. 그저 나뭇가지 하나를 세워놓은 다음 여자와 몸을 섞는다. 나사모네스족 사람이 처음으로 결혼을 하게 되면 신부는 첫날밤에 그곳에 모인 모든 남자들에게 몸을 허락하며 남자들은 자기 집에서 가져온 선물을 신부에게 건넨다. (p. 283)

 

Ü 종족을 번성시킬 방편이다.

 

□ 헤로도토스는 여기에 대해서 세계에서 가장 큰이라는 형용사를 부여함으로써 자신의 찬탄을 표현했다. (p. 286)

Ü 역사가의 사적 견해는 얼마나 위험한가. 

 

□ 그 역시도 이따금씩 어린아이처럼 엉뚱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린아이치고는 얼마나 영리한 아이인가. 그의 연구가 맞건 틀리건 그 결과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신비를 파헤치고 수수께끼를 풀어보려는 그의 끈기야말로 미래에 대한 가장 값진 약속이기 때문이다. (p. 286)

 

□ 이집트에 대한 헤로도토스의 호기심을 부추기는 (p. 287)

 

Ü 헤로도토스의 역사 원문에는 이집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데 특기할 만한 장례문화에 대해 인용한다.

 

먼저 굽은 연장으로 콧구멍에서 뇌수를 꺼내는데 이때 약품도 주입한다. 그러고 나서 예리한 에티오피아 돌로 옆구리를 따라 절개하여 장부를 모두 꺼내고 꺼낸 장부는 야자유로 깨끗이 씻은 뒤 다시 갈아서 으깬 향료로 깨끗이 한다. 이어 맷돌에 간 순수한 몰약과 육계, 그리고 유향 이외의 향료를 복강에 쟁이고 봉합한다. 그러고 나서 이것을 천연 소다에 담가서 70일간 놓아둔다. 그 이상 담가 두어서는 안 된다. 70일이 지나면 유체를 씻어 고급 아마포를 잘라서 만든 붕대로 전신을 감고 그 위에 이집트인이 보통 아교 대신에 사용하는 고무를 바른다. 이 일이 끝나면 근친이 미리를 받아 사람 모양의 나무 상자에 넣고 상자를 닫은 뒤 장실 안의 벽 쪽에 똑바로 세워서 안치한다. ‘

 

인본주의 의학의 꽃, 힙포크라테스

 

□ 아이스킬로스의 비극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원시 인류가 그에게 빚진 여러 혜택들을 열거하면서 의학을 첫 번째로 꼽았다. (p. 297)

 

□ 호메로스는 그 작품에서 무려 141종의 상처를 취급하며 상당히 정확하게 이를 묘사했다. 그의 시에 따르면 의사라는 직업은 자유시민들의 몫이었으며 존경받는 직업이었다. 의사 한 명은 여러 사람의 목숨만큼의 가치가 있다. 고 그는 말한다. (p. 298)

 

□ 한편으로는 의사 자신이 꼭 무신론자가 아니더라도 신에 대해 언급하거나 오로지 신의 존재를 통해서 질병을 설명하려는 태도를 완전히 배제하려는 의학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p. 301)

 

□ 이들은 관찰에서 출발하여 오로지 관찰 결과만을 가지고 이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세 번째 부류의 의사들은 말하자면 실증적인 정신의 소유자들로서 자의적인 추측을 거부하고 항상 이성에 의지했다. (p. 302)

 

□ 보통 사람들, 즉 하루하루 근근이 살아가느라 건강을 살피기 위해 일을 손에서 놓을 수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이 같은 식이요법을 정립하게 되었노라고 고백한다. (p. 305)

Ü 의도가 살아있다.

 

□ 모든 질병은 두 가지 체액, 즉 담즙과 담의 상황에 의해서 발생한다는 입장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p. 307)

 

□ 사색이나 철학적 가설에 대해 크니도스 학파가 보여준 이 같은 경계심은 일상에서 의술을 행함에 있어서도 무의식적으로 지성 일반에 대한 경계심을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p. 311)

 

□ 죽은 남자의 몸에서 심장을 적출해냈다고 말한다. 그는 인체 해부뿐만 아니라 동물의 생체 해부도 감행했다. 그게 아니라면 심실은 이미 박동을 멈추었는데도 심방이 여전히 뛴다는 사실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었겠는가?

그가 기술한 사실은 정확하며 우심방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울티뭄 모리엔스 (ultimum moriens : 최후에 죽는 것이라는 뜻의 라틴어) 라고 불린다. (p. 313)

 

□ 환자의 몸을 살피는 일은 거창한 작업이다. 시각과 청각, 후각, 촉각, 언어, 추리력 등을 모두 동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단어, 즉 추리력이라고 하는 말이야 말로 우리에게 기분 좋은 놀라움을 선사한다. (p. 321)

 

□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며, 기회는 순식간에 지나가고 경험은 유동적이며 판단은 어렵다. 의사로서 쌓아올린 경력 전부, 다시 말해서 실패와 위혐, 그리고 마침내 임상을 토대로 하는 학문, 어려움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진단을 내림으로써 질병을 정복하게 되는 그 경력이 모두 이 한 문장에 집약되어 있다. (p. 322)

 

□ 자신이 몸담고 잇는 생태계 및 과거에 연결되어 있는 총체적 인간(육체와 영혼)을 다루는 의학을 가리킨다. (p. 323)

 

Ü 의술을 진정으로 이해한 사람.

 

□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신호를 주의 깊게 살피고 어떠어떠한 신화가 나타날 때 위기를 동반했는지 기억해내야 한다. 그래야 환자를 사망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 아니,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같은 신호가 나타나면 병세가 호전되었는지 악화되었는지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p. 328)

 

□ 의사들 중에는 손재주는 좋으나 지성이 부족한 사람들이 있다. (p. 329)

 

□ 힙포크라테스는 자신이 정립해가고 있는 학문의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그 한계는 인간의 본성과 동시에 우주의 본성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소우주로서의 인간과 대우주로서의 세계는 각각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이 같은 사고방식에는 자연적인 세계에 부여되는 신화적인 개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오로지 철저한 사실주의만 있을 뿐이다. 힙포크라테스는 질병과 사망에 관한 의학을 정복하는 데에는 높다란 벽이 가로막고 있음을 인정했다. (p. 333)

 

Ü 자신이 천착하는 의학에 대한 비젼이자 로드맵이다. 철학이 있는 의학.

 

□ 자연은 스승 없이 행동한다. 인간의 건강을 유지시켜주는 것이 임무인 의사는 말하자면 자연의 세계에서 인간의 신체 속에서 그를 도와주는 자기편을 만난다. 환자에 대한 일상적인 치료는 그러므로 의사 역할을 하는 자연의 행위에 적당한 길, 개별적인 각각의 사례에 적합한 길을 열어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p. 334)

 

□ 높은 지적 수준, 겸손함, 사고의 고양, 이 모든 것이 힙포크라테스가 제자들에게 요구하고 그 자신도 실천에 옮긴 도덕적 태도를 통해 동시에 찬란하게 완성된다. (p. 336)

 

Ü 그의 신념은 오늘날 흰 가운을 입은 의사에게도 현현해 있다.

 

□ 힙포크라테스 선서 (제네바 선서) (p. 339)

 

이제 의업에 종사할 허락을 받음에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

나의 은사에게 대하여 존경과 감사를 드리겠노라.

나의 양심과 품위를 가지고 의술을 베풀겠노라.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나는 환자가 나에게 알려준 모든 것에 대하여 비밀을 지키겠노라.

나는 의업의 고귀한 전통과 명예를 유지하겠노라.

나는 동업자를 형제처럼 여기겠노라.

나는 인종, 종교, 국적, 정당관계 도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의무를 지키겠노라.

나는 인간의 생명을 그 수태된 때로부터 더 없이 존중하겠노라.

나는 비록 위협을 당할 지라도 나의 지식을 안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나는 자유 의사로서 나의 명예를 걸고 위의 서약을 하노라. (인용)

 

Ü 다섯 가지 계명(Five Commandments)

이 다섯 가지 계명은 17세기 초 중국의 '첸 시쿵'이라는 의사가 만든 '다섯 가지 계명과 열 가지 수칙' 중에서 다섯 가지 계명만을 번역한 것으로서 당시 의사의 윤리적 행위를 규정하고 있다.

1. 의사는 환자의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환자의 요구에 응할 마음가짐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모든 환자는 동등하게 치료받아야 하며 의사는 경제적이 보상에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의사들의 양심은 유지될 것이며 의업은 날로 번창할 것이다.

2. 의사가 숙녀, 과부, 수녀와 같은 여성환자를 방문해야 할 경우 혼자 방문하지 말 것이며 보조자와 함께 방문해야 한다. 여성의 은밀한 곳을 검사하고자 할 때에는 바른 태도로 하여야 할 것이며 의사 자신의 부인을 포함하여 어느 누구에게도 이 환자의 신체부위를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3. 의사는 약을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환자가 가지고 있는 진주라던가 금과 같은 귀중한 물건 등을 보내도록 요청하여서는 안 된다. 필요하다면 오해를 없애기 위하여 환자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환자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탐내는 것은 옳지 못하다.

4. 의사는 산책이나 음주를 위하여 진료실을 비워서는 안 된다. 환자는 자세히 그리고 인격적으로 진찰 받아야 하며 처방은 공인된 처방에 의하여 행해져야 한다. 이렇지 못할 경우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5. 창녀를 진찰할 경우이거나 좋은 집안의 자녀를 진찰할 경우이거나 같은 태도로 하여야 하며 가난한 사람에게도 최선의 진료를 베풀어야 한다. 환자를 비웃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의사의 권위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진찰이 끝난 후에는 신속히 환자의 집을 떠나야 한다.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면 방문회수를 줄임으로써 온당하지 못한 것을 요구한다는 인상을 주지 말아야 한다.  제네바 선언(Declation of Geneva)

준이도 했으려나?^^

 

□ 생명이란 매우 복잡한 현상이고 매우 소중하기 때문에 보호해야 한다는 감정을 늘 지니고 있다. 따라서 생명을 책임지는 의사에게는 겸손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의술에 대한 사랑은 의사의 인류애를 받치는 두 기둥이다. (p. 343)

 

□ 적어도 이 점만은 확실하다. 의학은 너나할 것 없이 죽어야 할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 사이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p. 346)

 

□ 지식에 대한 놀라운 식욕, 이성적인 추론에 의해서 생생한 활력을 얻는 연구의 엄정성,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을 향한 헌신, 모든 인간에게 차별 없이 베푼 우정으로 말미암아 힙포크라테스 의학은 당당히 기원전 5세기 무렵의 인본주의가 표방하던 가장 높은 고지를 차지한다.

 

그 나머지에 대해서는 의학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한 베이컨의 말을 잊지 말자. (p. 346)

 

아리스토파네스의 웃음

 

이 웃음 이 풍자적인 웃음은 역 웃음이라고 할 수 있다.

순웃음은 우리의 자연스러운 몸짓, 사랑의 몸짓과 만개하는 생리적인 웃음, 기쁨으로 충만한 서정적인 웃음이다.(p. 351)

 

인간은 살아 있는 생명체 중에서 웃을 줄 아는 유일한 존재 (p. 352)

 

소크라테스는 인간과 자연의 신비를 파헤치겠다는 주장과 상대방을 어이없게 만들거나 당황하게 하며 끝없이 이어지는 변증법적인 대화 방식, 입으로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주장하면서 사실은 경이적인 아이러니의 외투 속에 슬그머니 숨겨둔 대단한 학식 등과 더불어 아테나이 주민들에게는 유쾌한 마법사 같은 인물로 통했다. (p. 360)

 

Ü 훗날 소크라테스가 받을 사형의 빌미가 되는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이다.

 

오, 민중이여! 내가 그대를 사랑하지 않고 그대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서 내 몸을 산산조각 내서 고기스튜로 만들어버릴지어다. 내가 만일 나의 말을 믿지 않는다면 이 탁자위에서 나를 잘게 채 쳐서 치즈를 넣고 마늘 소스로 버무려버릴지어다!

나한테 소의 주름위와 돼지의 뱃가죽을 주시오! 그것들을 다 먹어치우고 국물까지 몽땅 마셔버린 다음 입도 닦지 않고 연설가들을 물어뜯어줄테니까!(p. 361)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은 외설스러움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시'라고 하는 왕관을 쓰고 나온다. (p. 369)

 

아리스토파네스는 언젠가 사람들이 평화 속에서 살게 되기를 잔칫날처럼 가족들이 손에 손을 잡고 한가로운 시골에서 산책을 즐기게 되기를 소망했다. (p. 371)

 

전쟁 중인 나라의 모든 여인들이 남자들의 어리석음에 대항하기 위해 똘똘 뭉쳐서 남편 또는 연인들을 대상으로 잠자리 거부 운동을 벌이기로 맹세한다는 것이다. 평화를 너무도 간절하게 사랑하는 까닭에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세상의 모든 남자들에게 절제를 강요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이것이 바로 아리스토파네스가 던진 질문이다. 이제 세상이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p. 373~374)

 

그가 고안해낸 상황, 천재적인 단순성이 빛나는 설정은 무대에서 과감하다 못해 음란한,

방금 전만해도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고 하던 여자들이 남자들만큼이나 아쉬워하는 것이다. (p. 374)

 

아리스토파네스는 구제불능의 현실주의자다. (p. 380)

 

파라다이스(이 말은 원래 아름다운 정원을 뜻한다) 즉 인간이 어느 때라도 갈 수 있는 유일한 정원, 인간에게 노동과 노동의 결실, 일용할 양식과 휴식을 동시에 제공하는 유일한 정원, 특히 그리스인들이 피조물간의 원초적인 형제애, 동물들과 나무들과의 우정, 신들과의 친근한 교류 등을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정원을 선사하기 위해서라고 보아야 한다. 이 정원은 바로 자연이다. (p. 381)

 

이처럼 아리스토파네스는 풍자 시인(그의 시는 몇몇 동시대인들에 대해서는 가혹할 정도였고 정치가들이 벌이는 전쟁과 그리스 전역을 분열로 몰아가는 전쟁 속에서 고대 문명 전체를 위협하는 기미를 일찌감치 간파했다)인 동시에 즐거움, 삶과 자연 속에 사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세속적인 사랑을 노래한 시인이기도 하다.(p. 392)

 

아리스토파네스의 시는 절대로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 (p. 394)

 

그렇게 백조들은 헤브로스 강변에서

모두 함께 목소리를 모아

모두 함께 날개를 퍼덕이며

아폴론 찬가를 부르지

그들의 소리는 하늘의 구름 속으로 올라간다네

숲에서는 야생 동물들이 침묵하지

바다의 물결도 잠잠해지고 쪽빛으로 빛난다네

올림포스 전체가 쩌렁쩌렁 울리고 신들은 놀라움에 사로잡히지

하늘에서는 카리테스 여신들과 뮤즈들의 합창이

기쁨의 외침과 더불어 이들의 노래에 화답한다네. (p. 398)

 

지는 해

 

인류 전체의 역사에서 50년이라고 하면 어느 여름날 하루 정도나 될까...'정오의 열기 속에서 태양 때문에 정신이 나간 매미는 소리를 지른다'고 아리스토파네스는 노래했다. 그리스 문명의 정오에는 천재적인 작품을 내놓느라 산고를 겪는 인간 종족의 오장육부에서 끌어낸 기쁨의 고함소리가 들린다. (p. 401)

 

쇠락과 급격한 방향 전환의 전조는 우선 전쟁의 상시화를 들 수 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고 부르는 이는 부적절한 이름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전쟁은 고대 사회에서 일어난 최초의 세계대전이라고 보아야 마땅하다 (p. 404)

 

거의 40년 동안이나 전쟁은 황금기와 공존한 샘이다. (p. 404)

 

정복을 위한 전쟁이요. 지배를 위한 전쟁이었다. 자국의 영향력과 위엄을 높이기 위해 전쟁을 원했다는 말이다. (p. 405)

 

기원전 411년, 전쟁 기간 중에 한번은 소수파가 주도한 정변이 일어나, 아테나이의 민주 체제를 여러 달 동안이나 모조리 쓸어내버렸다.

정복전쟁은 한마디로 부자 민주주주의자들의 기득권과 특권을 유지하는 방편이었다. (p. 406)

 

도처에서 살육에는 살육으로 응수했다. 인권에 대한 배려라고는 전혀 없이 광적으로 상대방을 말살했으며 (p. 407)

 

전쟁은 폭력을 가르치고 수 많은 사람들의 열정으로 하여금 난폭한 행동을 자행하고 만든다.

이처럼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도처에서 완력이 버젓이 맹위를 떨쳤으며 법은 완전히 무시되었다. (p. 408)

 

Ü 사회에 병영문화가 만연되었을 때 개인은 없어지고 만다. 창의나 자율성은 사라지고 모든 의견은 무시 당한다. 공동체의 힘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각 개인들의 다양성이 존중되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달려 있다고 했을 때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한 아테나이 동맹국 체제는 그 미래를 예견할 수 있겠다.

 

그리스 문명이 실패였음을 예감하게 하는 전쟁보다 더 심각한 현상이 있었다. 그것은 아테나이의 황금기를 수놓은 민주주의라는 현상으로서, 이 현상은 미완성인 동시에 이미 붕괴의 길을 걷고 있었다. (p. 409)

 

하지만 제국주의적인 정책은 결국 제국주의 전쟁을 낳고 말았다. 제국은 급속도로 심지어는 아테나이 스스로에게도 가혹한 독재의 온상이 되고 말았다. 다시 말해서 아테나이는 제 꾀에 제가 넘어간 격이 되었다고 하겠다. 결국 그로 인해 와해되었으니 말이다. (p. 411)

 

그는 지고의 주권자 민중, 즉 데모스에게는 보잘것없는 부스러기만 건네주면서 정작 자신은 커다란 조각을 혼자서 착복한다 (시대가 변했어도 우리의 은유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p. 415)

 

□ 아버님, 집정관이 오늘 재판정을 열지 않으면 우리는 무슨 돈으로 점심거리를 해결하죠?

이렇듯 소송이 많아야만 먹고살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p. 146)

 

□ 너는 노예다. 그런데 너는 자신이 노예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는다. (p. 417)

 

Ü 사육을 당하는 동물이 자신이 사자라는 자각이 있을까.

 

□ 섬처럼 고립된 아테나이에 갇혀서 일없이 빈둥거리며 무너져가고 있는 제국을 희생시켜 얻어낸 부를 나눠먹는다는 것이 이들을 이어주는 유일한 공통점이었다. 이들은 행정관이며 공무원이었고 수천명은 판관이었다. (p. 421)

 

Ü 40만명 중 이 정도의 숫자가 그 외의 대다수를 지배한다는 것은 특정 계급에 의한 독재가 아니고 무엇인가.

 

□ 자유노동력 대비 노예노동력의 급증은 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었다. (p. 424)

 

□ 그리스의 대규모 노예 집단은 자신들의 계급이나 단합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식이 없었다. 이들은 스스로에게 아무런 목표도 부여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치적, 혁명적 의미를 지닌 계급을 형성하지 못했다. (p. 425)

 

Ü 정치의 부재가 가져오는 삶의 비참함. 정치는 무관심하다는 말이 미덕이었던 말은 위정자들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예전에 어느 잡지에서 읽은 대한민국 평균 남자를 말할 때 정치: 무관심이란 대목을 읽고 아연실색한 일이 갑자기 기억난다.

 

□ 기원전 388년의 어느 봄날 디오니소스 극장에 모인 대중들은 과연 기분 좋게 웃었을까? (p. 429)

Ü 이거 나도 궁금해지는데

 

□ 그리스 민족은 전쟁과 비참함, 퇴행을 거듭하는 제도, 문학과 예술, 이성과 지혜, 지칠 줄 모르는 용기 등과 더불어 앞으로 천 년 동안 줄기차게 뛸 것이다.(p. 431)

 

소크라테스라는 수수께끼

 

□ 독특하면서도 지극히 평범했던 그의 생애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그의 죽음이 가져온 엄청난 다산성이다. 그의 죽음 이후 그의 제자들 또는 적수들 중에서 일군의 증인들이 나타났다. (p. 435)

 

□ 소크라테스는 무신론자다. (p. 437)

 

□ 플라톤은 저술 속에서 자신에게 지혜를 길러준 소크라테스를 플라톤식 관념주의의 창시자로 만들었다. 플라톤은 위대한 시인으로, 스승의 이미지를 왜곡시켰다. (p. 437)

Ü 소크라테스를 직접 못 보았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그는 신동이 아니었다. 마흔 살이 되어서야, 그나마도 신이 그에게 신호를 보냈기에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알게 되었다. (p. 445)

 

Ü 소크라테스는 나는 누구인가를 물은 최초의 철학자다. 그가 해온 사유의 고통은 남달랐으리라 생각된다. 진정한 삶의 결핍에서 나오는 철학.

 

□ 젊은 시절 내내 그의 마음속에서는 너는 누구냐? 너는 무슨 쓸모가 있느냐? 너는 무엇을 아느냐? 네가 아는 것은 너한테 무슨 도움이 되느냐? 등의 질문이 메아리쳤다.

 

어린 소크라테스는 시인들이 혼자 떠들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는 질문 공세를 퍼부었다.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 그리고 핀다로스에게도 당신은 지금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p. 446)

 

Ü 권위를 가리지 않고 성역 없는 비판, 소크라테스의 힘은 거기서 나온 듯 하다. 이건 엄격한 자기 검열이 아닌 다음에야 나오기 힘든 발언들.

 

자기 자신의 본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우주를 탐색하는 것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p. 447)

 

□ 잠정적으로 과학을 도외시하며 인간에 대한 인식만을 추구하는 철학을 택하다니, 이 얼마나 치명적인 선택인가! 소크라테스에게는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었다. 인간에 의한 인간 정신, 아니 당시 표현대로라면 인간 영혼의 정복만큼 그가 집착한 것은 없었다. (p. 448)

 

Ü 과학과 철학은 반목하는가.

 

□ 소크라테스는 노동자인 민중에게서 태어났으며 그 역시 노동자였다. (p. 449)

 

Ü 노동자 철학, 삶의 철학, 결핍의 철학, 피지배자의 철학

 

□ 머지 않아 짐승 같은 얼굴 위로 그의 마술 같은 입술 위로 정신의 언어가 내려앉게 된다. (p. 451) Ü 좋은 표현

 

□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움과 명백함, 겉보기엔 에둘러 가는 것 같지만 정곡을 찌르는 지적으로 가득찬 대화가 이어지다 보면 예 또는 아니오 로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퍼붓는 이 추남 앞에서 그럴듯하게 들리는 번지르르한 말을 늘어놓는 선수인 정치가는 번번이 말을 중단당하고 반듯한 논리에 의해 추궁당하면서 딜레마에 빠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그는 급기야 법은 불법이라고 버럭 결론짓게 된다. 그리고 정의란에 또 정의란그는 차라리 입을 다물고 포기하는 쪽을 택한다. (p. 455~456)

 

그는 만일 우리가 합리적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우리는 신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p. 456)

 

Ü 인간이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것이다. 그 모든 알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안 것이 아니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민주주의가 지닌 가장 큰 약점은 통치자들이 언제나 민중에게 영합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p. 458~459)

 

Ü 민중, 대중이 항상 옳지는 않다. 그러나 적어도 집단지성은 개별적 지성을 능가한다. 따라서 위정자는 대중에 영합하여서도 배제하여서도 안 된다.

 

□ 대중들이 아이스킬로스나 에우리피데스의 어려운 시를 즐겨 암송하던 이 도시에 다른 곳보다 유난히 바보가 많았던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위대하면 위대할수록 제대로 알아보기 어려운 법이다. (p. 463)

Ü 그리스인들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보다 탁월함을 알아보지는 못했다.

 

□ 아리스토파네스는 희극 무대에서 신교육의 폐해를 고발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니 그걸 웃음거리로 만들어보겠다고 작정했다.

온갖 부류의 지식인을 상징하기 위해 단 한 사람을 선택했다. 바로 소크라테스였다.

시민 법정에 끌려나온 자는 분명 아리스토파네의 소크라테스였다. 시민 판관들의 머릿속에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이 너무도 뚜렷이 각인되어 있던 터라 그들은 재판정에 서 있는 소크라테스가 극중 인물과는 다른 소크라테스임을 깨닫지 못했다. (p. 464~465)

 

Ü 당시에도 대중이 한 개인에 대한 프레임이 있었구나. 바로 보지 못하고 여론에 뭇매를 맞았던 희극 속의 인물로 소크라테스는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 신성이라는 확고한 실체에 대해서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만을 유일하게 알고 있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했다. 여기서 무지는 가장 진정한 경외심의 가장 순수한 증언이라고 보아야 한다. (p. 466)

 

정의와 선함의 법칙.

알려지지 않은 신, 지고의 선 자체인 신이 아니라면 누가 그 같은 법칙을 인간의 영혼 속에 심어두었겠는가? (p. 467)

Ü 이거 괜찮은 시선이다.

 

□ 그는 그리스 민족을 기존 관념에 대한 노예적인 복종과 답습으로부터 끌어내어 엄격하게 통제되는 진리를 위해 봉사하게 만들고자 했다. 모방이나 강요에 의해 사고하는 행동하는 식의 유아기 상태에 머물러 있는 그리스 민족을 합리적인 이성에 따라 행동하며 법이나 권력(또는 신을 향한 맹목적)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덕성에 따라 행동하는 성인으로 인도하고자 했다. 왜냐하면 행복이란 덕성과 같은 말이라는 것을 그는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p. 468)

 

Ü 자기 선동가.

 

□ 소크라테스는 국가가 인정하는 신을 믿지 않으며 도시에 새로운 신들을 끌어들이는 죄를 범했다. 그는 또한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 죄도 범했다. 사형이라는 벌을 제안한다. (p. 469)

 

Ü 마녀사냥을 항상 대중의 믿음과 반하는 사람을 찍어낸다. 그것이 옳고 그른가는 중요하지 않다. 대중, 자신의 신화가 없는 보편적 인간들이 생각하는 사유의 지평은 한계가 있는 법이다.

 

□ 나의 사명은 당신들에게 부는 덕성을 가져다 주지 않으며 덕성이야말로 인간들에게 번영의 원천이자 공적, 사적 재화의 원천이라고 말하는 것 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p. 471)

 

Ü 자본주의적이고 자본주의적인

 

□ 아테나이는 분명 관용의 도시였다. 기원전 5세기에 아테나이라고 하는 빛의 도시에서는 신이나 국가에 관한 아무리 대담한 의견도 일반적으로 상당히 자유로운 가운데 다양한 형태로 표현될 수 있었다. (p. 472)

 

Ü 제국의 조건은 다양성이다.

 

당신들이 나에게 사형을 언도한다면 그 결정은 내가 아닌 당신들에게 부당하게 해를 입히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나는 지금 나 자신을 변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나는 지금 당신들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p. 479)

 

나는 당신들을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신이 당신들에게 내려준 사람입니다. 당신들이 나를 사형에 처하면 앞으로 두번 다시 이런 좋은 기회를 얻지 못할 겁니다.’ 그는 계속 판관들의 심기를 자극하는 말을 쏟아냈다. 이 얼마나 얄미운 시건방이란 말인가! (p. 480)

 

나는 당신들을 사랑합니다. 아테나이 시민 여러분그렇지만 당신들보다는 신에게 복종하겠습니다.’ 소크라테스와 아테나이의 마지막 대화는 이렇게 끝난다. 하나의 민족과 그 민족의 영혼이 나눈 마지막 대화다. (p. 481)

 

명십하십시오! 사람들을 죽인다고 해서 진실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진실은 한층 더 강력하게 공격해올 겁니다. 진실을 위해 봉사하는 자들의 소리는 선한 사람이 됨으로써만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p. 483)

Ü 멋지다.

 

□ 이들은 계속해서 살 것이나 소크라테스 자신은 죽음으로써 그들 곁을 떠나야 한다. 그렇다면 누구의 운명이 더 나은가?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신만이 아시겠지요. (p. 483)

 

Ü 신의 선택, 살아서 죽은 자와 죽어서 산 자. 그네들을 영원히 살게 하는 신의 선택.

 

중요한 건 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사는 것이다. (p. 486)

 

 

3. ‘너와 나의 이야기(내가 저자라면)

 

그리스인 이야기는 앵글로 색슨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다. 그로 인해 퍼졌던 알타이의 이야기다. 이집트의 이야기고 페르시아의 이야기다. 인류의 이야기다. 그리고, 너와 나의 이야기다. 이것은 사람의 이야기다.

 

앙드레 보나르의 시선은 새롭다. 인류가 지닌 문명의 시작을 하늘 높이 올렸다가 땅으로 패대기쳐 버린다. 그는 문명화된 인간을 말할 때 다시 말해서 접붙인 인간이란 좀 더 영양이 풍부하고 좀 더 맛있는 열매를 맺을 줄 아는 인간이라 말하고 문명은 인간을 생존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인간을 아름답게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배고픈 도적 때와 다름없는 원시인의 모습이 문명의 시작이었다는 사실을 말할 때는 뜨끔할 것 없는 우리가 발가벗기어 지는 느낌이다. 어찌 그런 시선을 획득할 수 있는가.

 

책은 세 권으로 나누어져 있고 고대 그리스 문명이 시작된 기원전 2000년쯤부터 완전히 몰락한 기원후 2세기까지, 2000여 년 동안 계속된 그리스 문명의 역사를 세세하게 다루고 있다. 분량이 많고 큰 책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앙드레 보나르가 책에서 이야기 하는 투쟁과 진보의 역사는 한반도 내에서 이제껏 역사적으로 펼쳐지던 모습과는 구별되며 현대에 들어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모습과는 매우 유사하다. 지금을 기준으로 하면 우리는 그리스 문명의 직접적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형식상 정치체제를 민주주의로 채택하고 있으며 그들이 생각하는 복지관, 치세관, 용어, 의학, 지리학, 물리학, 천체, 시와 노래까지.

 

단군의 문명이나 신라, 고려, 조선의 문명이 영혼을 지배하고 있다면 우리 체제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리스 문명을 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을 필요가 있는데 이에 대한 갈증을 한번에 해소시켜주는 책이 바로 앙드레 보나르의 그리스인 이야기.

 

책의 곳곳에서 묻어나는 그의 정치색도 좋다. 화폐의 생성과 집단에서 이해관계가 태동하는 메커니즘, 이를 극복하려는 투쟁의 역사, 문화, 예술, 의학, 과학, 인간이 진행해온 사유의 확장을 역사적으로 line up 시키는 구성도 좋다. 번역도 좋다. 흠잡을 것 없는 책이다.

 

IP *.51.145.193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92 [51] <신의가면1-원시신화> 인용문 [1] [1] 수희향 2010.04.16 4142
691 사기열전 -사마천- file [1] 장재용 2012.09.03 4143
690 백범일지 file 학이시습 2012.09.24 4144
689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8211; 신영복(完) [1] 손수일 2005.03.22 4145
688 '깨달음의 연금술' 추천합니다. 안재영 2005.04.18 4145
687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모두 한글자도 되어있다 [1] 도명수 2006.08.28 4146
686 #59_참선일기, 김홍근 [2] 서연 2013.08.30 4149
685 트렌드 워칭 -미래를 읽는 9가지 기술, 김경훈 지음- [4] 문요한 2005.11.09 4150
684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프리초프 카프라 [2] 書元 이승호 2009.11.30 4150
683 '변신 이야기' (Publius Ovidius Naso 저, 이윤기 옮김) file 장재용 2012.04.17 4156
682 42. 가슴뛰는 회사 / 존 애이브램스 file 철학하는 인사쟁이 2012.02.14 4158
681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신화 / 달이, 구만 리 저승길 가다 정야 2010.02.23 4160
680 [17] 수소혁명, 제러미 리프킨 현웅 2008.08.04 4161
» 그리스인이야기 -Andre Bonnard- file [2] 장재용 2012.07.02 4160
678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1(박경철) [2] 書元 2010.01.17 4162
677 다산선생 지식경영법 -정민- file 장재용 2012.11.05 4164
676 세계의 정복자 칭기즈칸의 생애/ 르네그뤼쉐 file 오미경 2013.08.19 4167
675 디자인 생각 - 박암종 혜향 2010.02.15 4168
674 [42] 강점에 올인하라 - 도널드 클리프턴, 폴라넬슨 [2] 최코치 2009.02.23 4169
673 3-27. 불임극복 식이요법 콩두 2015.03.02 4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