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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2일 10시 07분 등록
 

그리스인 이야기 1, 2

아드레 보나르 지음/ 김희균번역/ 책과함께 출판사


저자에 대해서

**** 1888년 스위스 로잔에서 태어났다.

로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1936년 그르노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앗다.

1915~28년 로잔 중학교와 고전 김나지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후 1957년까지 30년 동안 로잔 대학 그리스어, 그리스문학 교수를 지냈다.

대학교수이자 작가로서 여러 저작들을 통해 고대 그리스에 생생하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입히고자 노력했다.

자신의 글에서 지식인 사회 특유의 사변을 걷어내고, 학생들이 고대 그리스 작가들의 작품을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대하듯이 읽도록 가르쳤다.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로 불리는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테스의 작품을 불어로 번역했다.

**** 그는 파시즘과 나치즘에 저항한 참여하는 인문주의자였다. 자신의 작품 <프로메테우스>, <안티고네> 등에서는 주인공에게서 정항과 참여의 정신을 찾고자 했다. 1949년 ‘스위스 평화운동’의 회장으로 추대되어 평화활동을 계속 이어갔다. 그러나 냉전의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1952년 ‘국제 평화수호자대회’ 참석차 동베를린으로 가던 중 스위스 경찰에 체포되어 기소되었다.

소련을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하여 이적행위를 했다는 것이 그의 혐의였다. 그러자 “스위스에서도 마녀사냥이 벌어지고 있다”는 외침과 함께 구명활동이 벌어졌고, 그를 지지하는 내용의 전단지 8만 장이 잔국에 뿌려졌다. 1954년 재판에서 “그는 소련의 스파이입니다.”라는 검찰의 주장에 “평화를 위해 힘쓰는 것이 이적행위일 수는 없습니다.”라고 맞섰다. 하지만 결국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그후 그리스 문명사 연구의 집필에 매진하다가 1959년 작고했다.

**** 그의 저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28년에 <프로메테우스>를, 1940년에 <그리스의 신들>을 1942년에 <안티고네>를, 1944년에 <플라톤이 본 소크라테스>를 1946년에 <오이디푸스왕>을 1948년에 <삽포의 시>를 1950년에 <비극과 인간>을 남fut다. 주로 그리스 관련 저서를 남겼다.

****작품에 대하여 : <그리스인 이야기>는 그가 평생을 일궈온 그리스 관련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작품이다. 그는 이 책에서 헬레니즘을 진보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여기서 헬레니즘은 인간이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과 운명을 지배하기 위해 벌이는 모험의 시기로 간주된다. 1954년에 1권이 나왔으며, 1957년 2권이 출간된 후 대학에서 은퇴했다. 마지막 3권은 1959년 그가 작고하기 며칠 전에 출간되었다. 스위스에서 불어판으로 출간된 이 책은 같은 언어권인 프랑스뿐만 아니라 영국, 미국, 포르투갈, 러시아, 루마니아, 일본 등지에서 일찍이 각국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그리스 문명사 분야의 세계적인 고전으로 자리매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언론에 실린 서평

한국인이 왜 '그리스학'을 꼭 배워야 하는가? '큰 책은 큰 해악이다(μέγα βιβλίον, μέγα κακόν)'라는 그리스 속담이 있다. 기원전 3세기 초반에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 관장을 맡았던 칼리마코스(기원전 310/305~240년)가 남긴 말이다.


세 권으로 이루어진 앙드레 보나르(1888~1959년)의 <그리스인 이야기>(김희균·양영란 옮김, 책과함께 펴냄)는 1400쪽이 훌쩍 넘는 상당히 '큰 책'이다. 하지만 그러나 이 책만큼은 칼리마코스의 비난에서 빼 주어도 될 것 같다. 고대 그리스 문명이 시작된 기원전 2000년쯤부터 완전히 몰락한 기원후 2세기까지, 2000여 년 동안 계속된 그리스 문명의 역사를 세세하게 다루다 보니 이 정도로 큰 책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방대한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적절한 긴장을 유지하며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대가의 솜씨를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이 정도의 분량이 적당했었다는 기분이 들 정도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도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역사 이야기를 인물 중심으로 엮었다는 데 있다. 저자는 그리스 문명의 각 시대를 그리스 문명의 여명기에 활동했던 서사시의 대가 호메로스로부터 시작하여 헬레니즘 시기의 마지막 시인인 알렉산드리아의 헤론다스까지 그 시기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 30여 명을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우리에게 그리스 문명은 무엇인가? 지난 한 세기 이상, 우리는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알게 모르게 그리스 문명이 남긴 위대한 인류 유산을 우리 것으로 만들어 왔다. 민주주의를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과 지성인들이 목숨을 바쳐 싸웠고, 지금까지도 자유와 평등, 정의는 우리 사회의 중심 주제를 이루고 있다.


또 야구와 축구, 농구와 같은 스포츠를 즐기며 하루라도 경기가 없는 날이면 공연히 안절부절못하는 금단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연속극과 영화를 보면서 상당한 시간을 보낸다. 또 소설과 시를 읽기도 한다. 그리스인들의 올림픽 제전을 통해 스포츠를 만들어 놓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비극과 희극을 비롯한 연극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오늘날 우리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또 자유도 모르고 평등과 정의라는 개념도 없는 사회에 산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고되고 무의미할 것인가? 그런 삶은 상상도 하기 힘들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의 기원이 바로 그리스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인들은 인류의 선생이란 말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 문명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리스 문명의 유산을 직접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리스 문명의 위대한 사상과 정신적 가치들은 르네상스 이후의 서유럽과 일본이라는 머나 먼 길을 돌아 우리에게 도달했다. 그런 까닭으로 우리가 이런 사상과 개념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들은 피상적이고 왜곡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우리 한국인들은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조선보다는 그리스의 후예다. 다산 정약용보다도 소크라테스가,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보다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우리에게 더 친숙하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 문명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너무도 적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학'이란 이제는 한국인들에게 교양 필수로 가르쳐야 하는 과목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학에 대한 훌륭한 안내서가 필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앙드레 보나르의 <그리스인 이야기>는 이런 입문서로서 이상적인 책이다. 물론 영국의 그리스 학자 키토의 책이 몇 년 전에 <고대 그리스, 그리스인들>(박재욱 옮김, 갈라파고스 펴냄)이란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왔지만 내용이 훨씬 간단해서 보다 깊은 지식을 갖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조금 부족한 감이 있었다. 그런 아쉬움을 느낀 사람들에게 이 책은 귀한 대접을 받을 만하다.


이 책은 한 평생 그리스 문학을 전공한 저자가 은퇴한 뒤에 심혈을 기울여 쓴 노작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장이 아니고서는 이루어 낼 수 없는 심오함과 평이함을 동시에 보여 주고 있다. 쉽게 읽히지만 그렇다고 내용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깊은 전공 지식을 설명하면서도 문장이 난삽하지 않고 명쾌하다. 분량이 부담을 느낄 정도로 많지만 이 정도의 넓이와 깊이를 얻으려면 그 정도는 이겨내야 한다. 백과사전적 지식을 다루고 있기에 한번 읽고 서가에 꽂아 둘 책은 아니다. 인문학자라면, 아니 교양인이라면 책상머리 한 구석에 놓아두고 생각날 때마다 책장을 뒤적여야 할 책이다. 한 마디로 참으로 좋은 책이다.


번역자들의 문장도 좋은 편이다. 다만 제1권과 제2, 3권의 번역자가 달라 조금 혼란스러운 점이 아쉽다. 또 그리스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아니어서 가끔 초점이 안 맞는 부분들의 눈에 띈다. 드물기는 하지만 오타와 오자도 적잖이 책의 위신을 깎아 내린다. 이 정도의 역작을 번역하여 소개할 때에는 좀 더 철저한 교정 작업을 해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스어의 음역에서 υ을 'ㅟ'로 표기한 것이 눈에 거슬린다. 국립국어원이 공표한 그리스어의 외래어 표기법을 따라 'ㅣ'로 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사족을 하나 달자면, 저자가 모든 독재와 독선, 폭력과 압제에 조금도 주저함 없이 항상 앞장서서 저항과 투쟁을 한 지식인임이 책의 곳곳에서 드러난다. 특히 노예 제도에 대한 비판은 책의 여러 군데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민주주의의 몰락, 아니 그리스 문명 전체의 몰락이 바로 이런 빈부 격차에 따른 소외 계층의 양산에서 비롯되었음을 실감나게 보여 준다.


오늘날 비정규직의 싼 임금에 의존하면서 빈부 격차를 벌여 나가는 현실에 대한 반성을 하게 만든다. 그런 문명은 망하게 마련이다. 한 문명의 쇠퇴기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다. 그리스학에 평생을 바친 대가답게 자신의 학문을 행동으로까지 옮긴 그의 정신이 이 수상한 시절에 새삼 아쉽게 느껴진다.

프레시안/ 2011년 4월 15일 유재원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 작성

 내 마음에 무찔러 드는  문장들


그리스인 이야기 1

그리스 문명의 탄생

****인간은 모두 원시인으로 시작했다. 그리스인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원시부족의 하나였을 분이다. 원시부족들은 천천히 성장해서 하나의 문명을 이루기도 하고,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기도 한다.(11P)


****세상을 이성적으로 해석하고자 했던 이오니아의 철학자들도 이와 같은 풍습을 막지는 못했다 그나마 인형을 세운 것은 세상이 평화로울 때의 이야기다. 기근이 들거나 역병이 돌면 산 사람을 돌로 쳐 죽여 제물로 바쳤다. (13P)


***자유를 위한 숭고한 투쟁으로 일컬어지는 살라미스 해전은 헤로도투스의 말대로 그리스 민족의 독립전쟁이었다. 이역사적인 날 아침, 그리스군의 총사령관 테미스토클래스는 모든 전함을 모아놓고 인간의 생살을 뜯어먹는 신 디오늬소스에게 세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 아주 잘 생긴데다 옷도 잘 차려입고 금빛보석으로 치장한 그들은 아테나이 최고집정관의 친조카들이었다. 테미스토클래스는 군사들이 보는 앞에서 세 사람의 목을 졸랐다. 벌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리스 민족의 승릴ㄹ 위해 희생양으로 바친 것 뿐이다.(14P)

☆☆☆ 정말 야만의 시대였다.

****문명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말로 문명화된 인간이라고 할 때 문명화된 이라는 말은 ‘길들여진’ ‘교육을 받은’ 혹은 ‘접붙인’이라는 뜻이다. 문명화된 인간, 다시 말해서 접붙인 인간이란 좀더 영양이 풍부하고 좀더 맛있는 열매를 맺을 줄 아는 인간을 말한다. 따라서 문명이란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서 생산력이 늘어난 상태를 의미한다. 그 문명 덕에 사람들이 목숨을 보전한다. 자연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16P)


**** 문명은 인간을 생존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인간을 아름답게 한다. 사람들의 행복을 보장하고, 사람들이 사회를 이루어 모여 살 수 있도록 해준다. 사람들 사이의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함께 과학과 예술을 향유한다. 실재 세계는 물론이고, 예술작품을 통해서 상상의 세계에서도 살아가게 된다. 실재하는 세계를 파악하는 힘이 과학이라면, 상상 속에서 또 하나의 실재를 만들어내는 힘이 예술이다. 과학과 예술로 무장한 인간은 스스로를 새롭게 정의한다. 그것이 바로 휴머니즘이요 인간됨이다. 인간됨은 다시 새로운 발견과 창조를 추동하는 힘이 된다. 문명이란 이처럼 발견과 창조의 연속이라고 정의해 두기로 하자. (16~17P)


***농부로 시작해서 뱃사람으로 진화해 온 것이 그리스 문명의 내력이다. 그리스인들이 또 하나 배운 게 있다면 그것은 시(詩)다. 사물을 시적으로 표현할 줄 알게 된 것이다.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고심하던 그리스 민족은 소위 문학과 만난다. (18~19P)


***그리스 사람들은 끌과 나무로, 석회와 대리석으로, 청동으로, 세상을 만들었다. 소위 조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우선 세상의 창조자인 신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신이 어차피 인간을 만든 것이므로 신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그리스 사람들은 조각을 통해서, 때로는 인간에게 잔인하게 구는 신을 인간으로 바꾸어버렸다.(20P)


***여자들 가운데 혹은 남자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인간으로 신을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신을 인간의 문명으로 끌어내려 길들이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 신들에게 바치는 거대한 신전을 지었다. 거기다가 신을 가두고 행살 좋은 날 한바탕 축제를 벌렸다. 이처럼 그리스의 조각과 건축은 하늘에 사는 신들에게 바쳐진 것이다. (20P)


***그리스 문명의 목적은 하나다. 자연에 맞서 인간의 능력을 키우는 것, 인간다움을 오나성하는 것, 우리는 이것을 휴머니즘이라고 부른다. 그리스민족의 문명은 인간의 문명이었다. 인간에게 봉사하는 문명이었다. (21P)

****기원전 2000년경, 도나우 평원을 차지한 무리들로부터 떨어져 나온 그리스인들은 동지중해 근처로 남하하게 된다. 어떤 무리는 아시아 쪽으로 길을 잡았고, 어떤 무리는 에게해에 떠있는 섬으로 갔으며, 남은 한 무리가 오늘날 그리스 반도를 차지했다. 크게 보면 에게해를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놓인 땅들을 차지했고, 오른쪽이라고 볼 수 있는 소아시아로 내려간 그리스인들은 훨씬 더 빨리 문명국가로 들어섰다.(그리스인들은 소아시아 땅을 4천년 가까이 차지하고 있었고, 헬라스 문명의 꽃을 피워오다가 바로 지난 세기인 1922년에 터키에 넘겨주게 된다.)(25P)


****에게인들은 전쟁을 좋아하지 않는 민족이었다. 그들의 우적 어디를 둘러보아도 성곽이 발견되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기원전 2000년에서 1500년 사이에, 에게해로 밀려든 그리스인들은 처음에 에게인들의 지배를 받았다. 에게인들이 훨씬 앞선 민족이었다는 말이다. 그리스인들은 심지어 조공을 바치기도 했다. 그러다가 기원전 1400년경에 반란을 일으켜 크놋소스 궁전을 불태우게 된다.

 그로부터 그리스인들은 에게인들의 신과 신화, 기술을 전수받아 자신의 역사를 시작했다. 에게인들의 자랑이기도 했던 예술은 계승하지 못햇다. (27P)

               

****그리스인과 에게인이 주용한 차이점이 잇는데, 그리스인들은 전쟁을 좋아한다는 점이었다. 크놋소스의 궁전을 몽땅 불타우고 나서, 그리스인들은 문명의 중심을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옮겻다. 그리스의 왕들은 뮈케나이와 티륀스 같은 거대한 성벽을 세우고 성벽 안에 들어와 살게 되엇다. 얼마나 튼튼하게 지었는지 성벽 가운데 일부는 오늘날까지 남아있다. 그리스인들은 앞선 문명을 일궈낸 에게인들과 달랏다. 수준이 달랏다. 즉 그리스인들이 할 줄 아는 것라곤고는 도적질밖에 없었고, 궁전과 묘실은 훔쳐온 금들로 가득 넘쳤났다. (28P)


****트로이아 전쟁에 얽힌 수많은 일화들이 영웅들을 묘사하고 있지만, 전쟁의 원인은 순전히 경제적인 것이엇다. 강도들 간의 세력 다툼이었다. 이 구질구질한 전쟁의 기록이 바로 <일리아스>다. 지난 세기에 <일리아스>를 읽은 고고학자들이 트로이아의 달려들었다. 3천년동안 덮여 있던 땅을 파내 화재의 흔적을 간직한 도시를 찾아낸 것이다. 뮈케나이에서 볼 수 있는 물건들이 트로이아에서도 쏟아져 나왔다. 강도질의 증거를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셈이다. (29P)


***아테나이에서도 비극이나 희극 서정시 경연이 열렸다. 상이라고 해봐야 별 것도 없엇다. 담쟁이덩굴로 만든 관을 씌워주고나 무화과나무 한 무더기를 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도 승자가 누리는 영예는 대단했다. 가령 승자를 위한 기념비가 세워지기도 했다. <안티고네>를 출품한 소포클래스는 장군이 될 정도였다.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나가는 영웅이 된 것이다.(33P)


***수 세기동안 도적질이나 하면서 살았던 그리스 민족은 한 편으로는 상인의 기질을, 다른 한편으로는 시인의 기질을 타고났다. 그리고 다행히 앞선 문명과 접촉할  기회를 가졌다...솔론과 아이스퀼로스와 헤로도토스, 플라톤의 여행은 차원이 달랐다. 그들은 이집트로 가고, 소아시이와 바뷜로니아에 다녀오고, 퀴레네와 시케릴아까지 갔다 그리스인들은 다 알고 있엇다. 야만족들은 수 천년 전에 이미 문명국으로 진입햇으며, ‘우리 그리스 민족’들은 그들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36P)


**** 그리스의 바다는 다랑어나 정어리를 잡는 곳이 아니었다. 다른 인류와 교툥한 장소였고, 위대한 에술 작품과 발명품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바다 너머에는 광활한 평원가득 밀이 자라고 대지와 하천에는 금맥이 숨어있다. 밤 하늘에 빛나는 별들을 나침반 삼아 그리스인들은 위대한 이웃집을 찾아간다. 그리스인들은 바다를 넘으면 살기 좋은 땅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리로 가고 싶어했다. 그리하여 기원전 8세기에 이민 행렬이 시작되었다. 밀레토스의 어부들은 흑해 주위에 90개가 점는 도시를 세웟다. 자연스럽게 천문학이 발달하게 되었다. (37P)


***그리스인에게 올리브기름과 포도주는 각별한 의미를 지녓다. 한편으로는 화폐엿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진 게 별로 없는 나라의 소중한 자산이었다. 아테네여신의 선물이기도 한 회색올리브 열매는 일상생활을 떠받치는 기둥과 진배없었다. 기름을 자서 음식을 튀기고, 불을 밝히고, 물 대신 세수를 하고 손발을 문질렀다. 지중해처럼 물기 없는 동네에서는 올리브기름보다 좋은 보습제가 없었다. 포도주로 마찬가지로 귀중한 음식이었다. 디오늬소스의 선물인포도주는 축제가 열리거나 친구들이 찾아오거나 하는 특별한 날에만 마실 수 있는 술이엇다. 그것도 그냥은 아까워서 무로가 섞어 마셨다.

  “마시자! 뭐하러 등불 밝힌 밤이 오기를 기다리겠는가? 해가 반 주먹도 남지 않았는데, 친구여, 찬장에서 커다란 잔을 꺼내게. 제우스와 세멜레의 아들이 준 이 선물은 현세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것이니, 포도주 한 잔에 물 두 잔을 섞어서 파도타기로 건배!(39~40P)


****그리스인들은 포도주를 ‘진실의 거울’이라 부른다. 몇 잔 마시면 사람 속을 알 수 있으니까 말이다.(40P)


***그리스 반도 전역에 걸쳐 산기슭에는 막대로 떠받친 포도나무가 즐비했다. 평지에는 유실수들 사이에 자리를 잡거나 나무 사이 끈에 매달렸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인들이 늘 취해 지낸 것은 아니었다. 역사가들 말로는 그럴 만큼 풍족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기후 때문에도 그렇고 가난 때문에도 그렇고 많이 마실 처지가 못 됐다.

그리스인들은 보통 때는 주로 납작한 보리빵과 호밀빵, 채소, 생선, 과일, 치즈, 염소젖을 먹엇다. 마늘도 빼놓을 수 없는 메뉴였다. 하지만 잡은 거든 키운 거든 양이나 돼지 같은 고깃덩어리는 아무 대나 먹는 게 아니었다. 축제쯤은 되어야 포도주를 곁들여 몇 점 뜯을 수 있었다. 이처럼 그리스인들이 가난하게 산 이유는 척박한 땅과 낙후된 기술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엇는데, 바로 분배의 불평등이다. (40P)


***문명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 조금이라도 더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 분투해온 것들의 결과물이다. (44P)


***우리는 가끔 그리스 민족이 과학을 발명한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과학을 발명한 것이 아니라 고학적인 방법을 발견했을 뿐이다. 그리스 민족의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기 오래 전에 칼데아인 혹은 이집트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세상에 대해 관찰한 것들을 기록해 두엇다. 별의 움직임이나 땅의 높이 같은 것들이었다. 그 기록을 그리스인들은 실생활에 이용했다. 선원들이 바닷길을 찾거나 농부들이 땅의 크기를 재거나 농사일에 알맞은 날짜를 알아내는데 써먹은 것이다.(44P)

***그리스 문명은 인간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인간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문명이 발달했다. 하지만 문명의 발달은 거꾸로 인간을 변화 시킨다. 인간이 세계를 변화시키면 세게가 다시 인간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과 세게는 서로 거울처럼 마주 보고 있다. 인간은 세계를 바꾸고 세계는 서로 거울처럼 마주 보고 있다. 인간은 세계를 바꾸고 세계는 다시 인간을 바꾼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 문명의 본질이다. 인간과 세계의 접합, 인간과 세계의 융합을 지향한다. 인간과 세계는 대립하는 당사자로서 서로 싸우고 투쟁한다. 그러는 가운데 조화를 이루어나간다. 문명을 완성하는 것이다. (45P)


<일리아스>와 호메로스의 휴머니즘

***위대한 시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그리스 민족의 전쟁사다. 정복욕에 불타서 혹은 신의 부름을 받아서 전쟁에 나선 영웅들의 이야기다. 가장 끔찍한 재앙에 투입된 인간들, “신 가운데 가장 더러운 신이며, 피를 마시고 사는” 아레스의 포로가 된 인간들의 이야기다.(49P)

****장군들은 탐욕과 야망에 들떠있다. 장군들이 섬기는 신은 전능하며 힘이 세다. 가끔씩 시기에 불타고, 사소한 이익에 흔들리고 곧 죽을 인간들에 대해서는 무심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전투가 있고, 상처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전쟁에 투입된 인간들에게는 용기와 우정과 사랑이라는 무기가 있다. 연민은 복수보다 강한 법이다. 고결한 사랑을 아는 인간은 신만큼이나 위대한 법이다. 호메로스는 그런 인간들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50P)

***밥 먹듯이 전쟁을 일삼아왔던 그리스 민족의 서사시로는 이만한 주제가 없다. 전쟁과 인간이라는 이 독특한 주제를 실감나게 형상화 하기 위해 호메로스는 기원전 12세기 초 트로이아 전쟁의 한 장면을 택한다. 전설이되어버린 트로이아의 전쟁은 오늘날 그리스 본토라고 불리는 뮈케나이의 아카이아인들과, 소아시아의 아이올리스인들 사이의 경쟁심이 발단이 되었다.

이 가운데 시인은 세 개의 에피소드를 끄집어냈다. 첫째는 아킬레우스의 분노이고, 둘째는 그리스 연합군을 이끄는 뮈케나이의 왕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 사이의 알력이고, 마지막 셋째는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아를 정복하는 장면이다. (50P)

****헥토르와 아킬레우스의 싸움은 <일리아스>의 백미다. 헥토르는 용감하게 싸웠다. 그는

아내를 사랑하고, 아들들을 사랑하고,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킬레우스는 헥토르보다 강햇다. 곧 이어 헥토르를 지켜 준 신들도 그에게서 등을 돌렷다. 아킬레우스가 헥토르의 숨을 끊어버렸다. (54P)


****<일리아스>의 탄생

호메로스가 이 모든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 아니다. 고대로부터 전해져 오는 것이다. 호메로스는 여러 개의 에피소드들을 엮어 하나의 시편에 담고 하나의 드라마로 완성했을 뿐이다.

트로이아 전쟁은 기원전 12세기의 일이고, 호메로스가 ,일리아스>를 쓴 것은 기원전 8세기였다. 따라서 4세기라는 시차가 있었다. 그 사이에 이름 모를 여러 시인들이 트로이아 전쟁을 소재로 한 시를 지엇으며, 당시 쓰던 말투 그대로 시를 읊었다. 그들이 차용한 운율은 규칙적이고 간결했다. 매끄럽고 기억하기 쉬웠다. 그런 즉흥시들을 취합해서 만든 ,일이아스>는 이미 반쯤 잊힌 아이올리스인들의 언어를 그 나름의 시적 리듬 속에 녹아들게 하고 있다. 풍부한 형용사와 생생한 운율을 섞어서 손색없이 아름다운 서사시를 만들어 낸 것이다. (55P)

***트로이아 전쟁이 끝나고 호메로스가 살던 시대까지 400년동안 시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 불가능한 애기는 아니다. 19세기 세르비아의 구전문학을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서사 시인들은 문자의 도움을 받지 않고 8만 개의 시구를 즉석에서 낭송할 수 있었다고 한다. (56P)

***호메로스의 시대에는 역사상 그 어느 시기보다 계급 갈등이 심햇다. 땅한 뙈기도 갖지 못한 무산 계급은 상인들과 합세하여 지주 계급을 무너뜨리려 했다. 특히 지주게급들의 문화와는 다른 자기들만의 독특한 문화에 대한 욕구를 가지게 되었으며, 그 결과가 바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다. (56P)

***기원전 8세기 이오니아 지방에서 태어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종래의 구전설화를 문학작품으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 이전의 시들이 즉흥적인 것이엇다면 호메로스의 시는 정교하게 다시 만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 최초의 서사시라고 부르는 이 작품은 상인 계급의 등장과 관계가 있다. 글이 없던 시절 시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그것을 호메로스라는 이오니아 시인이 풍부한 감수성을 바탕으로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이야기들을 재구성해서 파피루스에 글로 남긴 것이 바로 <일리아스>다. (56P)

***그리스의 세익스피어, 호메로스 : 호메로스의 재능은 무엇보다 새로운 인간형을 창조하는데 있다. <일리아스>에는 참으로 많은 인간들이 나온다. 사람 사는 세상이 그렇듯이 인물들은 아주 다양하며, 호메로스는 인물의 창조자다. 발자크가 “나는 인간 군상들을 서로 대립시킨다”라고 말햇지만, 호메로스야말로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 인간을 여러 부류로 나누는 기술, 인간 각각의 특성, 배역, 의미, 행태)디지털 정보)를 다르게 배열하는 기술로 치면 호메로스는 발자크나 셰익스피어와 동급이다. (58P)

***호메로스의 비유법을 따라가 보면, 디오메데스는 확실히 특이한 인간형이다. 농부들이 애서 쌓아놓은 둑과 과수원 철책을 송두리째 쓸고 지나가는 물살을 닮았다.....그는 정열적이다. 하지만 정열에도 색깔이 있다. 아킬레우스의 정열이 우울하고 엄숙한 것이라면, 디오메네스의 정열은 밝고 경쾌하다. 광신도의 열정이다. (66P)


**호메로스는 이런 식으로 서사시의 진부함을 비트는 재주가 있다. 영웅이라고 해서 욕심이 없을 수 없다. 호메로스는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꿰뚫어보는 리얼리스트다. (68P)

***<일리아스>에서 파리스와 형 헥토르의 대립은 이야기 전체를 끌고 가는 힘이다. 헥토르는 그대로 영웅이고 트로이아의 수호자인 반면 파리스는 나라의 쉬이며 좀팽이였다. (69P)

***파리스는 별 이유도 없이 전장에 나가지 않았다. 파리스가 댄 이유라는 것도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다.

“내 슬픔을 내가 감당할 수가 없어서

 방 안에 나를 가두어두었지.“ (69P)

***파리스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신 만든 사람이다. 파리스는 신 내림의 결과다. 파리스가 느끼는 사랑도 신이 준 것이다. 사랑은 자기가 하지만 사랑 자체는 신의 속성이다. 다라서 파리스 안에는 두 가지가 공존한다. 하나는 경솔하고 비루한 인간이고 다른 하나는 온전한 신이다. 한편으로 파리스는 보잘 것 없는 인간이다. 그럼에도 그는 여신 아프로디테를 몸에 담고 있다. 아프로디테의 충만함과 완전함, 경이로움이 그에게 있다. 파리스라는 인간의 생애는 결국 반쯤 신의 포로다. (72P)

***파리스와 헬레네는 속마음에서 극과 극이다. 헬레네는 기본적으로 도덕 관념에 충실하다. 찬하의 아프로디테가 그녀 마음에서 사랑이 활활 타오르게 해도, 헬레네는 한사코 거부한다. 파리스는 신을 따르지만 헬레네는 신을 거부한다. 그럼에도 둘다 멋지고 아름답다. 멋지고 아름다운 것을 긁어낼 수는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의 운명은 잔인하다. (73P)

***호메로스는 현모양처로 살고자 하는 소박한 여인을 소용돌이의 중심에 올려놓는다. 그 여인 때문에 수많은 인간들이 서로 살육한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아이러니는 호메로스가 지어낸 것이 아니라  신들의 작품이다. 신은 인간의 질서니 인간의 법도니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게 신에게 대항하기 위한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질서를 따르는 헬레네를 포로로 삼아서 인간 세상을 흔들어 놓는다. 헬레네는 아프로디테의 먹잇감이다. 아프로디테가 헤레네 속에 들어온다. 헬레네는 아프로디테를 닮아서 아름답다. 그리고 남자의 눈에 아름답게 보인다. 그것이 바로 불행의 씨앗이다.  (74P)


***아킬레우스, 현재에 충실한 인간형:

도대체 여신에게서 태어난 아킬레우스는 사람인가? 짐승인가? 나는 아킬레우스가 기본적으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는 감정에 좌지우지되는 사람이다. 그것이 아킬레우스의 심리상태를 설명하는 열쇠다. 그는 우정에 약한 만큼 증오에도 약하다. 자기 자신에 대한 절절한 사랑에 감염되어 있고, 영예를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지만 기본적으로 감정적인 인간이다. 아킬레우스는 나약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감정에 흔들리지만 신은 감정에 초연한 법이니까. 아킬레우스는 상수라기보다는 변수다. 지배자라기보다는 피지배자다. (79P)

*** 분노는 사람의 심장을 쇠덩어리로 만든다. 분노에 사로잡힌 사람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법이다. (79P)

**아킬레우스는 누가 욕망을 일으키거나 슬프게 하거나 화나게 하면 균형이 순식간에 무너진다. 그러면 아무 것도 보지 못한다. 그게 아가멤논이든 파트로클로스이든 헥토르이든 상관없다.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온 몸으로 행동에 나선다. 시쳇말로 고비가 풀린다. 아킬레우스를 장악한 감정은 다른 것으로 풀리지 않는다. 오직 행동으로만 풀린다. 이처럼 감정과 상처와 행동이라는 단순한 도식 안에 아킬레우스가 존재한다. 그는 결국 헥토르를 죽였다.(80P)

***아킬레우스는 지독하리 만치 혼자다. 아킬레우스를 지배하는 것은 어떤 괴물이고, 어떤 감정이다. 그것은 승리를 먹고 자라고 승리를 통해서 더욱 단단해진다. 그러고는 아킬레우스의 법이 된다. 동지들과의 유대, 타인과의 유대도 필요없다. 아킬레우스는 파괴적이며 무정부주의적이다. 그래서 가끔 비인간적인 사람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82P)

***아킬레우스는 이처럼 제 영혼의 사막을 건너 가장 쓸쓸한 곳으로 전진하고 있다. 스스로 파괴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군대를 포기할 것이고 동료들이 죽건 말건 괜념치 찮겟다고 했다. .....아킬레우스는 삶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이다. 아주 열렬히 사랑한다. 다만 그는 현재를 사랑할 뿐이다. 지금의 감정과 지금의 움직임만 사랑한다. 오로지 거기에만 충실하다. 매 순간이 그에게는 삶이고, 전부다. 살인도 연민도 눈물도 사랑도 연민도 그는 모두 똑같이 사랑한다. 무슨 철학자들처럼 공평하게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자연처럼 모든 것을 공평하게 끌어안는다. 고통도 기쁨만큼 즐겁다. (82~83P)


**헥토르, 공동체를 사랑하는 고결한 인간

헥토르도 아킬레우스만큼 용감한 사람이지만, 그 둘은 성격이 다르다. 아킬레우스는 천성적으로 용감한 사람이고 헥토르는 배워서 용감해진 사람이다. 훈련을 통해 용기를 배웠고, 그것이 그의 몸에 녹아든 것이다....소크라테스의 말을 빌리면 헥토르의 용기야말로 최상급의 용기다. 두려움이 뭔지 알지만, 동시에 그것을 극복하는 용기이기 때문이다. (87P)

***헥토르의 용기는 사색과 품위에서 나온다. 헥토르는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므로 긍 입에서 나오는 말에는 때로 본질을 꿰뚫는 아름다움이 있다. (89P)

***헥토르는 죽는 순간까지 사랑을 했다. 칼을 놓치고 아킬레우스 앞에서 죽어가면서, 헥토르는 사랑을 했고 평화를 꿈꾸었다. 그러나 신은 헥토르를 버렸다. 운명은 그런 것이다. 눈이 멀도록 강렬한 빛 속에서 그는 자신의 운명을 보고 말았다. (93P)

***헥토르에게 죽음의 순간은 투쟁의 순간이다. 그는 신들이 점지한 운명에 맞서는 인간이다. 훗날 다음 세대들이 우대햇다고 칭송해 마지않을 인간의 모습으로 죽음을 맞으려 한다.

호메로스의 인본주의에는 이처럼 진실하고 위대한 인간의 모습이 있다. 가족을 사랑하고, 보편적 가치를 숭상하며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사랑하며 싸우는 인간이 잇다. 헥토르가 그렇다. 그는 숨이 끊어지는 순간에도 죽음과 싸운다. 그의 부르짖음은 더 나은 인간의 모습을 향한 부르짖음이다. (94P)


오뒷세우스와 바다

**** 문명은 노력과 업적의 기록이다. 호메로스의 두 번째 서사시는 인간이 이룬 것 가운데 가장 위대한 업적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스인들은 용기와 인내, 지혜를 총동원해서 바다를 항해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 중심인물이 바로 오뒷세우스였다. (99P)

***중요한 것은 이야기의 중심에 오뒷세우스의 지헤와 재능, 아이디어가 번뜩인다는 점이다. <오뒷세이아>의 작가는 같은 재료를 오뒷세우스 중심으로 배열했다. 인물도 이야기도 오뒷세우스를 향한다. 전혀 새로운 작품이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뒷세이아>의 작가는 시인이기에 앞서 창조자다. 작품이 쓰인 시기는 대체로 기원전 8세기중반 혹은 후반으로 추정된다. 그때라면 그리스 민족이 지중해 서쪽 세상에 대한 탐구와 정복에 나서던 시점이다. 따라서 <오뒷세이아>는 그 길에 앞장섰던 뱃사람들과 상인계급의 노래라고 보아야 한다. 그것이 차츰 그리스 민족 전체의 유산으로 굳어진 것이다.(100P)


***뱃사람과 상인 계급의 노래

기원전 8세기의 인간들을 흥분시키는 이 주석을 구할 곳은 두 군데였다. 최소한 지중해 일대에서는 그랫다. 혹해 끝 카우카소스 산맥 아래 콜키스와 이탈리아의 에트루리아였다. 흑해 주석광산으로 가는 길을 제일 먼저 연 것은 밀레토스 사람들이었다. 그 때문에 코린토스와 칼키스에서 떠난 그리스인들은 다른 길을 잡았다. 위험을 무릅쓰고 apt시나 해협을 넘어 이탈리아 반도로 올라간 것이다.

오뒷세우스가 지나간 길도 바로 이 길이었다. 크게 보면 <오뒷세이아>는 안내도다. 모험을 즐기는 자들, 선원들, 이민자들, 쇠를 구해서 무기를 만들고자 하는 부자들을 위한 여행 안내서다. 그리스 사회의 온갖 잡동사니들의 척후병 역할을 한 것이 오뒷세우스였던 셈이다.(105P)

***그럼에도 <오뒷세이아>에서는 주석 따위를 찾아가는 얘기는 나오지도 않는다. 철저하게 서사시의 형식을 띠고 있다. 사람들은 바다로 떠난 영웅들의 얘기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호메로스는 그런 영웅에 관한 전설을 여기저기서 수집하여 오뒷세우스 위에 덮은 것이다. 바다 너머 어딘가에 사는 거인 이야기, 둥둥 떠다니는 섬 이야기, 배를 산산조각내거나 삼켜버리는 괴물이야기 같은 것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뒷세이아>는 아라비안나이트다. 트로이아 전쟁의 영웅 오뒷세우스가 집으로 귀향하는 얘기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구전되던 이야기 모음집이다. (105P)

***<오뒷세이아>는 아버지의 귀환이라는 공식이 있다. 지중해의 개척자나 바다를 누비는 영의 이야기이기 전에 귀향의 이야기이다. 전래동화가 자주 다루는 주제 그대로다. ...<오뒷세이아>에도 어김없이 그런 증거가 나온다. 아버지만이 활을 구부릴 수 있고, 침대를 직접 만들었으며, 어머니만 아는 상처가 있다. 이 가운데 세 번째 증거는 뒷부분에서 결론에 갈음한다. 상처를 확인하면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이다.

  침대이야기는 페넬로페는 오뒷세우스에게 덫을 놓을 생각으로 하녀 에우뤼클레이아에게 침대를 바깥으로 들어내라고 한다. 하지만 직접 침대를 만든 오뒷세우스는 그게 불가능하다고 것을 알고 있다. 바닥에 뿌리를 내린 올리브나무를 이용해 침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침대를 옮기려면 바닥을 파고 나무부리를 자르는 수밖에 없다. 그런 비밀을 얘기하자, 아내 페넬로페는 비로소 남편이 맞다는 것을 확인한다. 두 번째 증거, 즉 활을 구부리는 것도 이야기 속에서 묻어나온다. 아무도 구부릴 수 없는 활을 구부려 사악한 아티노오스 몸을 관통케 함으로써 오뒷세우스는 적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내가 오뒷세우스라고’

호메로스는 전통적인 ‘아버지의 귀환’에 나오는 문법을 비틀고, 그럼으로써 흥미를 돋운다. (106~107P)


***오뒷세우스는 황금에만 눈먼 자가 아니다. 무엇보다 그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에 가득 차 있는 인물이다. 새로운 것을 만나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오뒷세이아>에는 세계에 대한 혹은 존재에 대한 무한한 호기심이 잇다. 그리스인에게 자연은 위험한 존재들이 사는 무서운 곳이다. 동시에 신비의 보고이기도 하다. 그 신비를 보고 싶고, 샅샅이 뒤지고 싶고, 이해하고 싶고, 지배하고 싶고, 알고 싶다. 오뒷세우스는 그런 의미에서 문명인이다. (112P)

***<오뒷세이아>는 이처럼 바다를 배경으로 한 뱃사람들의 이야기다. 걸음마를 배우기도 전에 헤엄치는 법을 배우는 그리스의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가 <오뒷세이아>다. 아이들은 글도 <오뒷세이아>로 배운다. 읽고 암송하면서 저절로 글을 익힌다. <오뒷세이아>는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 민족의 시다. 바다를 처음으로 알게 되기까지 그들이 겪었던 일들의 기록이다. 꿈과 투쟁의 기록이고, 지침서다. 호기심에 가득 찬 용감한 사람들은 오딧세우스를 흉내내며, 바다로 떠났다. <오뒷세이아>라는 안내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나서 불과 몇 백 년 안에 지중해는 그리스 민족의 호수가 되었다.

☆☆☆그리스 민족의 자부심이 심히 구겨진 요즈음에 앙드레 보나르가 살아있었더라면 얼마나 슬퍼했을까?

***어떤 싸움에서도 오뒷세우스는 바다와 운명에 물러서지 않는다. 기필코 자기 몫을 지킨다. 그의 무기는 용기와 지혜다. 우스워 보이지만 그것은 보통의 무기가 아니다. 사람과 사물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무기다. 그렇다고 신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마침 적당한 장소에 있었던 포도주 가죽부대와 올리브나무 말뚝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지혜다. 오딧세우스는 지혜덕에 무사할 수 있었다. 망치와 못으로 들보와 나뭇조각을 이어 위험에서 빠져나왔다. 필요한  때는 사탕발림을 구사하고 ‘악의 없는’거짓말도 한다. 그런 것들이 오딧세우스가 가진 무기였다. 게다가 오딧세우스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안다. 나우시카아 공주도 그를 사랑하게 되고, 아들도 아버지를 따르고, 아내도 남편을 믿으며, 오랜 하인들도 주인 편을 든다. (120~121P)

***오뒷세우스는 지혜로운 인간의 상징이다. 인간의 지혜는 실질적이고 창조적이다. 세상에 대한 의미 없는 지식을 쌓아놓은 것이 아니다. 어려운 상황이 닥칠 때마다 적절한 대안을 제시할 줄 아는 그런 지헤다. 신과 적들은 인간이 가는 길목마다 방해꾼들을 심어놓고 인간을 끊임없이 불해의 나락으로 인도한다. 그런 상황에서는 지혜만이 인간을 구할 수 있다. ‘재주꾼’ 오뒷세우스가 이기는 이유다. (121P)

***오뒷세우스는 만드는 자이고 장인의 선조다. <오뒷세이아>를 처음부터 한 번 훑어보라. 오뒷세우스는 온갖 것을 다룰 줄 안다. 목수이고, 항해사이며, 석공이고, 마구장이다. 도끼와 쟁기와 배의 키를 자유자재로 다룬다. 칼을 다루듯이 인간의 도구를 다룬다. 하지만 그가 만든 것 중 최고 걸작은 다름 아닌 가정이다. 행복한 가정, 그는 가장으로서 모든 가족구성원들을 친구로 포섭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린다. 호메로스가 말하듯이, 오뒷세우스의 ‘악의 없는 지혜’가 반짝이는 대목도 바로 거기다. (122P)

☆☆☆영웅 오뒷세우스가 가정을 중요시한다는 것을 한 번도 염두에 두고 읽지 않았기에 이 대목은 동의하기가 조금 힘들다. 오히려 앙드레 보나르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인간이 온전하게 이 세상에 살면서 자연을 정복해가는 길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오뒷세우스는 인간의 모범이고 다음세대의 모범이다. 호메로스가 만들어낸 미래형 인간이다. (122P)

☆☆☆미래형인간은 오뒷세우스와 같이 지혜와 용기를 갖춘 사람이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21세기가 낳은 영웅 ‘스티븐 잡스’, ‘빌 게이츠’는 자신을 사회가 요구하는 틀 안에 가두지 않은 채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고 사고한 용기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개벽을 가져온 신과도 같은 존재들인데 그것은 그들의 지혜에서 나온 것이다.


아르킬로코스, 시인과 시민

***기원전 7세기와 6세기까지는 서정시의 시대다. 우선 서정시가 무엇인지 정의해보자. 원래 서정시는 노래로 부르기에 적합한 시를 일컫는 개념이었다. 그래서 여러 행과 연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하지만 최초로 시인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 시라는 점이 그렇다. 형식도 중요하지만 내용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시인은 지극ㅎ 일상적이고 자질구레한 감정을 노래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꾸로 형식에 구애받아서는 안된다. 그래야 리듬이 자유롭고 풍부해진다. 악기 연주없이 시만 읽어도 사람들은 그걸 노래로 들을 정도다. 시가 노래가 되는 것이다. (125P)

****서정시라면 최소한 아르키롤코스나 삽포 정도는 되어야 한다. 아르킬로코스는 유럽 서정시의 아버지다. 호메로스이 추종자들이 구구절절이 늘어놓은 그 장문으로부터 결별했다. 아르킬로코스의 시는 무엇보다도 간졀하다.  규칙적인리듬을 탄다. 그러면서 사랑과 풍자를 노래하는데, 말 많은 영웅담과는 확실히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 (126P)


***파로스의 서정시인 : 아르킬로코스는 파로스에서 태어났다. 에게해에 불쑥 솟은 파로스섬은 대리석 덩어리다. 흙 몇 센티만 파내면 대리석이 나올 정도다. 아르킬로코스가 파로스를 떠나면서 “무화과나무와 바다가 전부인 파로스를 잊어버리자”라고 말하기도 했다.(127P)

***기원전 7세기 그리스에서는 이민이 하나의 유행이었다. 사람들은 에게해 북쪽 트라케로 갔다. 거기는 비옥한 땅도 있고 금광도 있다. 미개한 트라케인들은 금이 뭔지도 모른다. (127P)

***아르킬로코스는 서자다. 어머니는 에니포라고 불리는 노예였다. 그럼에도 아르키롤코스는 한 번도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 서자이기 때문에 아버지으 재산을 물려받을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아르킬로코스 앞에 남은 길은 파로스섬에 남아 근근이 먹고 살든지 아니면 칼로 무장을 하고 돈을 벌러 떠나든지 둘 중 하나였다. 아르킬로코스는 먼저 첫 번째 길을 택했다. (128P)

**** 파로스에서 자란 아르킬로코스는 무화과 열매와 생선으로만 배를 채운 것은 아니었다. 그를 살찌운 또 다른 양분은 호메로스의 시였다. 훗날 호메로스와는 다른 시를 쓰게 되지만 시라는 장르를 처음 배운 것은 호메로스를 통해서였다. (128P)

☆☆☆나를 살찌우고 키운 것은 무엇일까? 문학이라면 어떤 책일까? 나를 변화시키고 살찌운 것들이 무엇인지 좀더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다.

****이즈음의 아르킬로코스는 한 마디로 상사병을 앓는 청년이었다. 욕망의 포로였고, 기쁨에 넋을 잃었으며, 그리고도 즐거웟다. 하지만 사태가 돌변하여 사랑에 배신당하자 아르킬로코스의 사랑은 미움과 증오로 옮겨갔다. 그만큼 아르킬로코스는 이중적인 사람이었다. 사랑에 잘 빠지면서도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이었고, 상처받기 쉬운 성격이면서도 상처도 잘 주는 사람이엇다. 그의 재주는 사랑과 증오에 걸쳐 있으며 받아들이기도 잘하지만 내치는 데도 주저 없었다. 게다가 한 번 증오로 방향을 틀자 그의 에너지는 더욱 강하게 폭발했다.

...시인은 네오불레를 사랑한 만큼 미워하고 있다. (133P)

☆☆☆사랑한 만큼 증오하고, 존경한 만큼 경멸한다. 사실 사랑과 증오, 존경과 경멸은 한 짝이다. 그 감정의 뿌리는 같은 것이다. 시인 오규원은 잊혀진 여자가 가장 불행하다고 그랬다. 옛 애인으로부터 관심에서 벗어난 여자, 잊혀진 여자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불행한 여자란다.

****아르킬로코스는 호메로스의 시구들을 가득 채운 그 ‘명예’를 참을 수가 없다. 명예는 봉건사회의 덕목이고 우매한 대중들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명예롭기보다는 행복해야 한다. 즐거워야 한다. 그게 바로 아르킬로코스의 철학이다.

  “남의 눈치를 보느라 즐거움을 잃어버리는구나.”


이 한 줄의 시구와 <일리아스>를 비교해보라.

  “나서라, 겁쟁이여! 굴복은 가장 처벌한 패배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우리는 명예롭게 죽을 것이다”

아르킬로코스는 <일리아스>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아르킬로코스는 인생이란 모름지기 즐거워야 하며 그를 위한 투쟁만이 가치있다고 말한다. (140~141P)

☆☆☆요즈음은 명예보다는 돈을 더 중요시하는가? 돈이란 것도 결국은 즐거운 삶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 되니, 아르킬로코스와 통하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즈음이라고 명예가 필요없겠는가? 자신의 이름 하나에 모든 것을 걸고 가난하게 힘들게 살다 간 예술가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지금도 자신의 예술을 위해서 힘겹게 살고 있는 작가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에게 찬탄의 휘파람을 보낸다.

****서사시에서 영웅은 죽음으로써 명예를 지킨다. 아킬레우스도 그렇고 헥토르도 그렇고 심지어 여자인 헬렌도 그렇다. 죽음으로써 다음 세대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한다. 하지만 아르킬로코스는 다르다. 죽음은 그저 사라지는 거라고 본다. 죽음보다는 삶이 낫다.

  “죽고 나면 명예는 잊히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살아 있으라. 살아 있음의 멋을 즐겨라. 죽음은 상실에 불과하다.”

 아르킬로코스의 눈에도 죽음이 다 쓸모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살아있는 자가 살아있음에 애착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점이다. 최소한 명예를 위해서 삶이 죽음을 택하지는 않는다. 아르킬로코스는 리얼리즘이라는 새로운 길을 잡았다. 그럼으로써 동시대인과 자기 자신의 감정, 사상을 충실히 담을 수 있게 된 것이다. (141P)

***영웅 중심의 서사시가 사실은 기존 카스트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을 그는 정확하게 짚었다. 그래서 그것과는 다른 인간형을 창조하고자 했다. 아르킬로코스는 전사지만 솔직한 전사다. 용감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기가 중요할 뿐이다. (143P)

***아르킬로코스의 핏속에는 자유가 흐른다. 그것이당대의 자유정신과 만나고 독설가 아르킬로코스는 자유의 전사가 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독설가인 자유주의자는 고독하다.


“...........

승리를 즐기고, 패배를 쓰라려 하되, 지나치지 마라.

삶에 언제나 있을 높낮이를 배워라........

모르는 곳에서 고통이 문득 닥쳐오리니.

내 가슴이란.”

☆☆☆아르킬로코스는 자신이 서자였기에 카스트제도가 유지되는 것에 반기를 들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왕족과 귀족들의 삶의 방식과 사고방식에 혐오감을 느꼈고, 그들을 향해 화살을 날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 화살이 바로 서정시가 아닐까 싶다.


****아르킬로코스는 기원전 640면 타소스와 낙소스 간의 전쟁에서 전사했다고 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솔론이 태어났다. 아르킬로코스의 목소리를 약 반세기  이후에 솔론이 이어받게 될 것이었다. (146P)

***봉건제도는 낡은 이데올로기에 의지해서 겨우 연명하고 있었다. 이때 아르킬로코스가 나타나 새로운 가치를 저나하기 시작햇다. 아르킬로코스는 봉건정치를 끝내고 새로운 민주정치를 열고자 하는 사람들의 대변인이었다. 싸움을 시작한 자가 아르킬로코스였고, 그 사움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이 이어받아 결실을 맺을 터였다. 아르킬로코스를 기점으로 서사시가 막을 내리고 참여시가 등장하게 된다. ((146P)


열 번째 뮤즈, 삽포

****삽포는 이상한 나라다. 경이로운 세계다. 옛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수수께끼’다. 뭘하던 여인인지 어떻게 생겼는지 알려진 바가 거의 없고, 설만 분분하다. 그래서 수수께끼다. (151P)


****최초의 여성 시인: 기원전 600년경, 레스보스섬의 뮈탈레네. 삽포는 아프로디테와 미의 세 여신, 뮤즈(시, 음악, 학예를 관장하는 여신)를 숭상하는 여성조요 단체의 장이었다. 그녀 말로는 “뮤즈를 섬기는 집”아 그 단체의 정체라고 한다. 원래 뮤즈라는 단어에서 뮤지엄이라는 단어가 나왔고 훗날 퓌타고라스의 추종자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뮤지엄을 열게 된다. 하지만 삽포가 이끌던 단체는 그런 거창한 것은 아니었고, 사랑과 미와 예술을 좋아하는 여성들의 모임이었다고 보면 된다. 다만 특이한 점은 이 모임이 종교적 결사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도들 사이에 유대가 깊었다. 같은 신을 섬기는 신도들 간의 열렬한 사랑, 삽포의 시는 그걸 주로 표현하고 있다. (151~152P)

***삽포는 종교단체의 이름으로 뮈틸레네의 여성들에게 여성으로서의 삶을 가르친 것이다.

주 전공은 음악과 춤과 시였다. 삽포가 운영한 뮤즈의 신전은 음악학교나 예술원도 아니었고, 전문학교도 아니엇다. 예술이 좋아서 예술을 배운 게 아니었고, 예술을 직업으로 배운 게 아니엇다. 그저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게 목적이엇다. 아프로디테를 경외하고 음악과 춤 등을 배우면서 자세를 가다듬고 앞으로 살아갈 세사에서 제자들이 여성의 아름다움을 구현되면 되는 것이엇다. (152P)

***삽포는 결혼을 햇고, ‘금꽃’이라고 부르는 한 아이의 어머니엿으며, 삽포의 제자들도 모두 결혼을 할 것이다. 결혼은 여성의 아름다움과 행복의 완성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152P)

*** 삽포의 말에 따르면 모름지기 여성은 얼굴에 빛이 나야 한다. 눈에는 은총이 가득하고 걸음마마다 사랑이 넘쳐야 한다. 교육의 목적은 아름다움을 전수하는데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특히 여성의 몸에서 발산되는 아름다움을 드러냈던 아프로디테, 곷과 바다를 사랑하라고 가르쳤던 아프로디테, 삽포의 제자들은 아프로데테의 재능과 가르침을 흉내 내면서 여성으로 자란다. 아름다움이 온 몸에 발산되고 행복이 넘친다. 이를 보면서 삽포는 기쁨에 젖는다. (153P)


***솔직하고, 진실하고, 직선적인 : 다음은 삽포의 시다.


그대 앞에 얼굴을 맞대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이는

저 사람은 아무래도

신인가 보다.


웃음이 내 가슴을 파고들어

심장을 요동치게 하고,

그대를

본 순간

입술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다.


혀에 물기가 없으며

작은 불꽃이 일제히 피부 아래로 흐른다.

눈을 볼 수 없고

귀는 우- 우- 거릴 뿐.


흐르는 땀은 무엇이며

몸은 어째서 떨리지 않는 곳이 없는가.

풀포기보다 더 파래진 나는

아마 이대로 죽는가 보다.


지금 우리는 열정의 소용돌이 안에 잇다. 여기서 군주는 에로스다. 욕망이 삽포르 f때리고 삽포는 그 때리는 숫자를 세고 있다 그래서 이건 전투시다. 에로스가 삽포를 공격하는데 삽포는 한 대 한 대 맞을 때마다 점점 더 자신이 없어진다. 형상이 보이고, 소리가 들리고, 심장이 뛰고, 피가 온 몸으로 잘 돌아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다. 사지가 하나둘 말을 듣지 않는다. 의식도 말을 듣지 않는다. 사지가 죽으면서 삽포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 심장에서 피가 없어지고 목청에서 소리가 없어지고, 혀에서 물기가 없어지고, 핏줄에서 피 대신 불꽃이 흐른다. 눈은 제 기능을 잃었고, 귀는 맥박만 세고 있다. 급기야 온 몸이 떨리더니 시체처럼 파래진다. ...의식이 죽음을 보는 순간 몸이 가라앉는다. 그렇다 이제 죽는 것이다. (155~157)

***삽포의 시는 솔직하고 과학적이다. 삽포는 사실만 적는다. 감정이 주가 아니다. 감정이 남긴 결과를 보고하는 게 주다

삽포의 시에는 슬픔, 괴로움, 그리움 같은 고상한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질투나 증오, 번민 같은 것은 삽포에게 전혀 힘든 게 아니다. 문제는 육체적 고통이다. 초기 시에 보면 삽포라는 이 자연주의자가 사랑하는 소녀를 떠나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소녀 옆에는 약혼자로 보이는 남자가 앉아있다. 삽포는 사랑하는 그 소녀를 떠나보내는 육체적 고통을 보고한다. 슬픔 따위는 표현하고 싶지도 않다. 문제는 몸이 죽도록 아프다는데 있다. 귀가 안 들리고 눈이 멀게 하는 지독한 고통이 몸 구석구석에 엄습한다.(157P)

☆☆☆이런 사랑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을 모른다고 어느 예술가가 말했다. 어느 술자리에서 사랑으로 인해 죽을 만큼 아파보았느냐고 물었다. 사랑하다 죽어도 좋을 만큼의 사랑, 앞뒤 어떤 계산도 있지않은 오로지 그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진실로 좋아하는 사랑, 그런 사랑을 해보아야 한다고 했다. 아, 지금 내 인생은 너무 늦다.  

**** 삽포는 숨기는 법이 없다. 솔직하고 진실하고 직선적이다. 몸 어디를 지적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혀는 혀고, 귀는 귀고, 땀은 땀이고, 부르르 떨리는 건 덜리는 것이다. 좋게 보일 것도 없다. 땀이 줄줄 흐르는 걸, 어떤 말로 좋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삽포는 그냥 땀을 흘릴 뿐이다. 부끄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해서 티나게 자랑스럽지도 않다. 그저 땀 흘를 뿐이고 그걸 그대로 적을 뿐이다.

삽포는 사랑하는 대상을 그리지 않는다. 우리는 삽포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모른다. 삽포가 너무도 솔직하고 정확한 언어로 묘사하는 것은 사랑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그 가운데 절정은 당연히 내 몸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장면이다.

어둠 가운데 불이 타오르고 있다. 시인은 어둠을 그리고 어둠 속에 불꽃을 지른다. 그 불쪽이 중요하다. 감정도, 그 감정이 향하는 대상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독자들은 그냥 불꽃만보면 된다. 이제 그 꽃은 끝까지 장렬하게 타오를 것이고, 완전히 타서 사라질 것이다. 어둠 속에 빛나는 불꽃, 그것이 삽포의 사랑이다. (158P)

☆☆☆삽포이 시도 가슴을 파고들 정도로 좋지만, 앙드레보나르가 해석해 놓은 글도 아름답고 참으로 시적이다. 

***삽포 이전의 사랑은 불탄 적이 없다; 삽포는 누구를 흉내 낸 적이 없다. 그녀가 최초다.

삽포 이전의 사랑은 불탄 적이 없다. 샆포의 사랑은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다. 다 불태워버리기 때문이다.

삽포의 시에서 에로스는 아무런 형체가 없다. “어떻게 할 수 없고”, “어떻게 해 불 수 없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덫을 놓아 잡을 수도 없다. 잡으려 하면 바로 부서지고 말기 때문이다. 지나고 나서 보니 사랑은 아름다웠고 쓰라렸을 뿐이다. 아무리 되돌아보며 생각해내려 해도 사랑은 형체가 없다. 아프로디테는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나지만, 에로스는 그렇지 않다.....삽포의 에로스는 몸에 남은 상처로 표현될 뿐이다. 상처가 남는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지나고 나면 아프다. 상처가 남는다.


“다시 에로스가 온다. 사지를 부수며 고문하는,

부드럽고 고통스러운 그는 내가 이길 수 없는 괴물이다.”


이길 수가 없다는 말은 아무리 재주가 좋은 인간이라도 이 사랑이라는 것을 길들일 수 없다는 의미다. 사랑에 대한 삽포의 수사는 이처럼 은유적이다.


“산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이 떡갈나무를 꺾어 넘어뜨리듯이,

사랑이 내 영혼을 흔들고 있다.“


삽포가 경험한 사랑은 태풍처럼 모든 것을 쓰러뜨리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힘이다. 그리고 지금 삽포의 영혼은 사랑으로 인해 뿌리째 뽑혀 나갈 지경에 이르렀다. (159~ 161)

***호메로스의 적대적 자연, 인간과 교감하는 삽포의 자연 : 삽포의 자연은 신비로운 옷을 벗고 인간에게 내려온다. 가까이 다가와 친구가 되며, 존재가 되고, 인간과 더불어 교감을 나눈다. 가령 잠에서 깨어났을 때 삽포는 혼자인 것 같았다.


“달도 지고, 플레이아데스도 지고,

자정이다. 나는 혼자 잠에 든다.”


달도 지고, 별도 가고, 시간이 흐른다. 하지만 삽포는 혼자가 아니다. 밤이 곁에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애절함 뒤에 슬그머니 자연이 내려오는 것이다. 자연주의 혹은 상징주의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171~173)


***삽포에게 사라응ㄴ 잔인한 신이다. 사랑은 쓰라리다. 하지만 삽포는 그 사랑의 쓰라림에서 차츰 자연으로 눈을 돌린다. 장미꽃을 보고 별빛을 보고, 아름다운 자연을 본다. 그렇다고 해서 쓰라린 사랑이 갑자기 달콤해자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여전히 쓰라리다. 다만 쓰라린 사랑이 꽃의 형상을 띨 뿐이다. (173P)


***젊음의 꽃망울을 사랑한 시인: 삽포는 우리의 가슴속에서 사랑과 자연이 어떻게 만나는지를 잘 알고 있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느끼는 감정과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감정이 삽포의 시 속에 정확하게 배치되어 있다.


이별 


이렇게 말하고 그녀는 영원히 떠났다.

“솔직히 죽을 것 같아요.”

눈물로 대신하던 마지막 말

“이 잔인한 운명을 어떻게 해요.

저는 떠나고 싶지 않은데.”

나는 이렇게 대답해 주었지.

“기쁘게 떠나라. 나를 기억하라.

우리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네가 잊었다면

우리 함께 했던 수많은 날들을

상기시키리라.

장미와 제비꽃과 사프란으로

화관을 만들어 쓰고, 땋은 머리를 길게

늘인 채, 늘 내 옆에 앉아 있엇지.

그때 목에 두른 취할 듯 진한 목걸이에서,

왕의 몰약 같은 향기가 퍼져 나오던 걸.....” (174P)


삽포를 끊임없이 들뜨게 한 건 결국 젊음과 꽃망울이었던 것 같다. 밝은 태양 아래 아름답게 빛나는 젊음과 꽃망울이 삽포에게는 무한한 기쁨의 원천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곧 사라진다. 젊음이 그렇고 꽃망울이 그렇다. 그래서 아름다움이란 종내는 한순간이었으리라.(175P)


다른 책에서 뽑은 삽포의 시

****삽포는 피부가 검은 편이고 키는 작앗지만 교양있고 매력적인 여성이엇다. 뮤즈이 축복을 받은 사포는 소녀들은 물론 많은 남성들의 흠모의 대상이었다. 그중에서도 레스보스의 서정시인 알카이오스는 사포를 “제비곷 같은 머리 타래를 지닌 달콤한 미소를 짓는 순수한 삽포”라고 부르며 그녀를 사모했다고 한다.

***사포는 뮈틸레네의 당시 정치적 상황에 의해 영향을 받았으며, 한때 뮈틸레네로부터 추방을 당해 시칠리아 섬에 머물렀다. 아마도 그녀의 시 속에서 뮈텔레네의 참주인 피타코스가 결혼한 펜틸로스 가문에 대해 분명한 적개심을 가지고 말하고 잇다. 사포는 삼십대 초에 남편과 사별하고 딸과 함께 다시 뮈텔레네로 돌아와서 자신이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는 기술을 갈치기 위해 그녀 주위에 한 무리의 소녀들을 모앗다 사포는 그녀의 장소를 특히 ‘뮤즈에게 이바지하는 자들의 집’이라고 칭했다.

***사포는 이십대 중반에 파온이라는 젊은 청년을 사랑했으나 그로부터 애정을 얻지 못하자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좌절하여 결국 레우카스 절벽에서 바다로 투신했다고 전해진다. 이 전설에 대한 오래된 암시는 기원전 4세기의 희극 작가 메난드로스의 <레우카디아>속에서 발견된다.


레우카스 절벽에서

나의 온 몸은 또다시 전율하네.

사랑에 흠뻑 젖어

잿빛 심연 속으로 가라앉네.



1) 고독


달은 지고

플레이아데스 성좌도 지고

깊은 밤

시간은 자꾸만 흐르는데

나는 홀로 누워 있네.


2) 질투


그는 한 인간이지만

나에게는 신과 같이 보이는 구나.

너를 마주하고 앉아

너의 달콤한 목소리와 사랑스런 웃음소리를

듣고 있는 그 사람.

그 목소리와 웃음소리는 한때 진실로

나의 가슴을 전율케 했었지.


이제 잠시 너를 힐끗 훔쳐볼 때

나는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고,

내 혀는 굳어버리네.

뜨거운 불길이 나의 살갗 밑을

휩쓸며 지나고

내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네.

그리곤 귀조차 멍해져 버리는 구나.


차가운 땀이 쏟아져 내리며

공포의 전율이 나의 온 몸을 사로잡고,

나는 마른 잔디보다 더 창백히지며

죽음 가까이 다다름을 느낀다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나는 견뎌 내야만 해.


3)이별


................

나는 정말 죽고만 싶구나.

그녀는 많은 눈물을 흘리며 나를 떠났고

이렇ㄱ 말했었지.

“아, 우리에게 어떤 불행한 일이 닥쳤나요.

사포여, 나는 정말 어절 수 없이 당신을 떠납니다.“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대답했지.

“안녕, 잘 가거라. 그리고 나를 기억해 다오.

너는 우리가 너를 얼마나 느꼈는지 알지 않니.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즐거운 시간들을

너에게 상기시켜 주고 싶구나......


너는 내 곁에서 제비꽃과 장미꽃으로 엮어 만든 화호나을 머리에 엊었지.

그리고 너의 부드러운 목에 아름다운

꽃으로 만든 목걸이를 걸었었지....


여왕에게 어울리는 향기로운 향유를

몸에 바르고, 너는 부드러운 침대에서

욕망을 충족시켰지.


우리가 함께 가 보지 않은 사원이 없었고

함께 가 보지 않은 숲이 없었지.

우리가 함께 추어보지 않은 춤이 없었고

함께 불러보지 않은 노래가 없었지.

......


솔론과 민주주의

*****그리스 문명이 시작된 곳은 소아시아 지방이다. 이미 수백년 전에 이곳에서 도시가 생겼고, 문명이 시작되었다. 호메로스와 아르킬로코스는 이오니아 사람이고 삽포는 아이올리스 사람이다. 그리스 최초의 철학자, 과학자도 여기서 나왔고, 최초의 대리석조각과 신전도 그랬다.

그리스 문명이 이처럼 동쪽 끝 혹은 서족 끝에서 주로 시작한 이유는 그곳이 변방이었기 때문이다. 변방이라서 주위의 위대한 문명과 접촉할 기회가 많앗다. (181~182P)


****민주주의의 태동: 화폐의 등장과 상인의 부상

<안티고네>와 파르테논 신전이라는 걸작을 누리기 전에, 기원전 8세기 아테나이가 먼저 해결해야 햇던 것은 먹고사는 문제였다. 해법을 찾는 데만 200년이 걸렸는데, 그 해법이 바로 민주주의였다. (183P)

***나라에서 정호가한 무게르 fwo서 동전을 만든다는 생각을 처음 한 것은 소아시아의 뤼디아였다. 금가루가 반짝이는 팍톨루스 강이 관통하는 이 도시에서 생겨난 동전기술을 지중해 연안의 다른 도시들이 베끼기 시작햇고, 식민활동을 틈타 전 세계에 퍼지게 되었다.

동전을 쓰게 되면 여러 가지 이점이 있지만, 누구한테 가장 이로울까? 바로 귀족들이다. 귀족들은 영원히 썩어 없어지지 않는 동전으로 부를 저장했다. 원래 자연경제에서는 부를 축적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곡식을 쌓을 수도 없고와인이나 올르비기름을 무한정 보관할 수도 없다. 등받이를 고급스러운 것으로 장만하거나 아시아에서 양탄자나 보석이 박힌 무기를 사들일 수는 있다. 하지만 그리스 귀족들은 시혜를 베풀어 자기 사람을 만드는데 더 골몰했다. 흉년이 들어, 자영농들조차 먹을 게 없을 때 귀족들은 먹을 것을 조금씩 나누어주어 어떤 시인의 표현대로 “가난뱅이들의 성곽”을 쌓았다. 그렇게 서로 돕고 사는게 자연경제의 법칙이었다.

하지만 화페가 등장하면서 세상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남은 부를 화폐로 바꿀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귀족들은 셈이 빨라서, 화폐는 이자를 통해 부풀어 오르는 속성이 있다는 사실을 금새 알아차렷다. 귀족들의 고귀한 피에 탐욕이 섞이는 순간이다. 전에는 나눠주던 것을 이제는 빌려준다. 그러면서 고액의 이자를 요구한다. 해상무역처럼 위험성이 높은 사업에 투자하려면 푼돈을 확실하게 모아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초기 자본주의의 싹이 트게 되었다. (186P)


***귀족이자 시인이자 자수성가한 상인

솔론은 귀족 출신이다. 아테나이의 마지막 왕을 배출한 가문이었지만, 기원전 7세기 중반에 갑자기 몰락하고 만다. 솔론이 성장하던 기원전 7세기 무렵은 산업과 무역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던 시기였고, 솔론은 앗티케에서 나는 올리브를 해외에 파는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귀족이자 시인이었던 한 청년이 상인이 된다. (188~189P)

***솔론 스스로도 “하루라도 뭔가 배우지 않은 날이 없다.”고 고백한 바 있다.

솔론은 가문의 부를 복원하고 창창한 나이에 계획대로 아테나이에 돌아왔다. 당시 사람들이 기억하기에 솔론은 합리적이고 인간적이었다. 귀족들도 그를 좋아했고 평민들도 그를 좋아했다. 플루타르코스가 지적한 것처럼 “귀족들은 솔론이 부자라서 좋았고, 평민들은 그가 인간적이라소 좋았다.” (189P)


***빚을 탕감하고 자유를 주다

솔론이 가장 먼저 단행한 조치는 농노를 구하고 땅의 말뚝을 뽑아내는 것이었다. 귀족들이 차지한 땅을 빼앗아 가난한 농민들에게 돌려주었으며 농민들에게 자유를 주었다. 빚을 못 갚아서 빼앗긴 땅을 다시 주인에게 돌려준 다음에는 남은 빚을 탕감했다.

그는 신 가운데 가장 오래된 신인 땅의 신에게 자기편을 들어줄 것을 기도했다.


“올림포스 신 가운데 가장 큰 어머니이신 땅의 여신께서는 역사 앞에 내가 한 일을 증명해주실 것이다. 나는 땅에서 말뚝을 뽑았으며 신이 세운 아테나이를 떠나 노에로 떠돌던 자들을 귀환시켰다. 빚을 못 갚아서 아테아이에서 쫓겨난 자들이고 험한 세상을 떠돌던 자들이고 더 이상 아테나이의 말을 쓸수가 없었던 자들이다. 그들이 다시 돌아왓다. 그리고 이 땅에 남아있엇어도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던 자들도 자유를 찾았다.”


구절마다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돋보인다.

솔론의 개혁 조치, 즉 빚을 탕감하는 조치로 인해 부자들이 엄청난 타격을 입었음은 물론이다. 솔론은 빚 때문에 신음하는 농민들을 구했을뿐만 아니라 새로운 법을 만들어서 더 이상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앟도록 했다.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노예제도를 폐지한 것이다. (196~197P)


***** 최초의 시민 법정

그리스 민주주의가 훗날 그 열매를 풍요롭게 맛볼 부야 중 하나가 정치다.

솔론은 종래 귀족들만 담당했던 공직을 모든 시민에게 한꺼번에 개방하지는 않았다.

솔론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개혁을 진행해 나갔다. 먼저 출신을 다져 귀족만 독점하던 공직 독점권을 폐지했다. 그런 다음에 시민을 경제력에 따라 네 등급으로 나누고, 가장 부유한 시민들은 가장 높은 공직으로 가는 대신에 부담도 더 지도록 했다. 더 많은 권리를 누릴 수록 세금이나 군역 등의 부담을 더 지는 식으로 재편한 것이다. 결국 가장 가난한 시민들은 세금도 전혀 내지 않고 군역도 노 젖는 일이나 경무자 보병 정도만 복무하면 되도록 했다. (200P)

*****솔론은 과감하고도 신중하게 아테나이 민주주의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셈이다.

솔론이 만든 헌법에는 모든 사람들이 신분과 경제력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누리는 권리가 있었는데, 바로 민회에서의 투표권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혁명적인 조치엿다. 민회에서는 부자도 가난한 자도 평등하고 누구나 발언할 수 있다. 물론 민회가 정치 권력을 무한정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평등의 원칙이 도입되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며, 민회는 앞으로 핵심 통치 기구로 부상할 것이다. (200~201)


***최초로 노예제도에 반기를 들다

솔론은 사람들을 사랑했고 저의를 사랑햇다. 솔론은 신을 믿는 것처럼 저의를 믿었다. 정의가 그에게는 신이었다. (202P)

**** 노예란 주인이 변덕을 부리면 채찍질을 당할 수 밖에 없는 비참한 인간이다. 그런 비참한 인간을 사랑한 사람이 솔론이다.

무엇보다 솔론은 정의의 전도사다. 그는 귀족을 국가의 꼭대기에 올려놓으면서 그들에게 많은 의무를 부과했다. 귀족들에게도 정의를 요구한 것이다. 돈도 많고 히도 세면서 국법이나 신법을 어기는 자들에 대해서는 아주 끔찍한 시를 쓰기도 했다. (202P)


***시민들의 우두머리로 선택된 자가 오히려

정의롭지 못한 일을 하고, 권력을 남용해서 도둑질이나 하고 있다.

신전을 지키는 자가 신전을 도둑질하고 있는 꼴이다.

탐욕으로 제 할 일을 정면으로 배반하고 있는

이 사람들을 정의의 신은 조용히 지켜본다. (202P)

*** “아름다운 법만이 질서와 조화를 가능하게 한다.”

   “법의 힘으로 사람들 사이에 평화가 있고 사람들이 지혜로워진다.”

이런 구절들을 보면 솔론은 결국 입법자이고 합리적인 이성을 대표한ㄴ 인물이다. 동시에 가슴속에 따뜻한 피가 흐르는 시인이자 애국자엿다. 그리스 사람들은 솔론을 ‘정의로운 자’라고 정의했다. (203P)


노예와 여자

***그리스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발명햇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207P)

***노에제도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유형 가운데 가장 원초적이고 가장 지독한 것이다. 그래서 중세에 와서는 노에제 대신 농노제가 생겨났고, 현대에 와서는 식민지와 임금노동이라는 새로운 착취 구조로 대체되었다. 이처럼 인간은 약육강식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사 이래로 끊임없이 투쟁해왔다. (208P)


***노예는 왜 생겨났을까?

역사적으로 볼 때 인간이  관여했던 첫 번째 상행위는 노예를 사고파는 일이엇다. 전쟁포로를 죽이지 않고 살려둔 것을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발전의 동력은 바로 돈이었다.

그리스 사회에서 노예는 주로 전쟁의 산물이엇고, 포로가 노에가 되었다. 전쟁이 긑나면 몸값을 낼 수 없는 포로들을 시장에 내다 팔았다. 고대 사회의 원칙은 간단했다. 남자는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은 나눠 가져서 노예로 일을 시키거나 노예시장에 내다 팔았다. (209P)

****노예시장은 성황을 이루었고 벌이가 괜찮았다. 외국과 가까운 그리스의 큰도시마다 노예시장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이오니아의 에페소스, 뷔잔티온, 시켈리아 섬에서도 노예시장이 열렸다. 그리고 몇몇 노예상인들은 큰 부자가 되었다. (209P)


***생각하고 말귀를 알아듣는 기계

어떤 철학자가 정확하게 표현 한 것처럼 노예는 ‘생각하는 기계’ 였다. 기계는 기게인데 생각하고 말귀를 알아듣는 다는 것이 노예의 장점이다. (211P)


***노예제도라는 암 덩어리

왜 당시사람들은 노예제도를 문제 삼지 않았을까?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위대한 철학자들이 많았음에도 노예제도를 비난하기는커녕 오히려 옹호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플라톤이 그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랬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는 대놓고 노예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시민들의 사회가 건강하게 존속하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생산하는 노에가 필요하다고 했다. ......결국 사람의 생각이라는 것은 자기가 처한 조건과 환경에서 지유로울 수 없다. 그리스 사회는 노예제도에 깊이 물든 사회였다. 똑똑하다고 소문난 사람들도 노예제를 정당화하기 급급했다. (223P)

***기원 전 4세기의 희극의 대사 중 노예가 이런 말을 했다.

 “주인님, 주인님이나 저나 똑같은 사람입니다. 똑같은 살과 뼈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노예는 없습니다. 운명이 그들을 노예로 만들었을 뿐입니다.” (224P)

*****기독교라는 혁명운동은 그리스 사회 내부에서 시작되었다. 기독교는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지향한다. 가난한 자도 없고 부자도 없고, 시민도 없고 노예도 없다. 인간은 모든 신 앞에서 평등하다. 그것이 기독교의 가르침이다. 노예를 기반으로 세워진 고대 사회에서는 치명적인 가르침이다. 기독교는 당연히 낮은 계층에서 많은 신도를 모으기 시작했다. 가난한 사람과 노예, 특히 여성들 사이에 퍼졌다. 그리고 결국은 모든 사람들이 기독교도가 되었다. 그럼에도 노예제도는 금새 없어지지 않았다. (225P)

***그리스 문학에서도 많은 여성이 매력적인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특히 고전문학에서 그랫다. 우선 <일리아스>의 안드로마케와 헤카베가 있으며 <오딧세이아.의 페넬로페가 있다. 나우시카아가 있고, 아레테가 있다. 아레테는 파이아케스인의 오아비이자 누이로서 왕의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했다. 이런 여성들은 남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훌륭한 동반자의 역할을 수행했고, 남성들의 삶을 추동하고 조종했다. 삽포가 살던 아이올리스 같은 도시에서는 오랫동안 여성 우월주의가 존속했다. (227P)

***하지만 이오니아로 오면, 특히 아테나이 민주주의 사회로 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문학에서는 그나마 여성이 고급스럽게 표현되고 <안티고네>와 <이피게네이아>를 보면서 관객들이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엄청나게 달랐다. 여성은 내실에 갇혔고, 파르테논 신전의 뒷방을 차지했다. (227P)

***아스파시아는 밀레토스 출신의 여자로 지적이고 아름다웠다. 그녀는 소위 궤변이라고 하는 새로운 수사법에 능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페리클레스의 첩으로 더 유명했다. 페리클레스는 부인을 쫓아내고 아스파시아를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단순히 데리고 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온갖 비난을 무릅쓰고 아테나이 사회의 인정을 받아내려고 했다. .....아테나이에서 여성이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정부가 되는 길밖에 없었다. 여성이 지키는 아테나이의 가정이란 빈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다.(231P)


신과 인간

****신들의 탄생: 다른 원시종교와 마찬가지로 그리스에서 종교가 발생한 이유도 인간의 무력함 때문이다. 세상에는 인간이 이해할 수도 없는 힘이 있다. 자연에도 있고, 사회 내에도 있고, 심지어는 인간 안에도 있다.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힘이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기도 한다. 문제는 그것이다. 위협이다. 자연은 무슨 힘이 존재한 들 아무 상관이 없다. 그게 자꾸 인간의 삶을 위협하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240~241)

****사람들은 신이 개입한 거라고 믿었다. 좋은 쪽일 수도 있고, 나븐 쪽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인간이 모르는 어떤 것이라는 점이다. 낯설다. 그리고 놀랍다. 신이란 그런 것이다. 두려운 힘이며,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힘이다. 그 힘 앞에 놓인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그리스 사람들은 ‘경외’라는 단어를 썼다. 경외로운 존재, 그것이 반드시 초자연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 존재는 인간과는 ‘다른’존재라는 것이다.

그리스 종교는 결국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한 인식이다. (241P)

***둘에도 이상한 힘이 있고, 물에도 나무에도 동물에도 있다. 그렇다고 돌과 물과 나무와 동물 모두를 신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신으로 승급된다.

산길을 가로질러가는 농부를 상상해보자. 그가 우연히 길가에 돌무덤을 쌓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무수히 많은 농부들이 그 일을 반복햇다. 그리고 어느 날 그 돌무덤은 ‘헤르마’라는 이름으로 부릴기 시작했다. 낯선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어떤 상징이 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돌무덤을 의인화해서 헤르메스라는 신을 만든다. 여행자의 신이 되고, 잘 알지 못하는 저승으로 떠나는 죽은 자들의 신이 된다. 처음에는 돌무덤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신이 되고, 신비한 힘을 행사한다. (241~242)

****그리스 사람들은 자신들의 국토를 신뿐만 아니라 반인반수의 괴물로도 가득 채웠다. 허리 아래는 말이고 허리 위로는 사람인 켄타우로스는 시와 예술과 관련이 있다. 원래 켄타우로스라는 뜻은 ‘물을 묶고 있는자’라는 뜻이다. 즉 펠링노과 아르카디아의 산에서 세차게 내리치는 물살을 쥐고 있는 괴물이 켄타로우스다. 그런데 마침 그 펠리온과 아르카디아가 시인들의 고향이라서 켄타로우스는 덩달아 시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243P)

***미녀와 야수의 미녀 같은 존재가 잇었는데, 그게 바로 아르테미스여신이다. 아르테미스는 숲이나 산꼭대기에 산다. 나무와 샘과 냇물에 깃든 신이다. 그래서 동네에 따라서는 버드나무 호은 호두나무, 삼나무의 신으로 불렸다.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신들 가운데 가장 인기있는 신이엇으며, 심지어 오늘날에도 그리스농부들은 아르테미스를 잊지 않고 있다. 아르테미스는 요정들의 여왕이고, 산신으로 숭배의 대상이 된다. 불과 100년 전만해도 아테나이의 돌투성이 언덕에서 아이를 밴 여인들이 요정과 신에게 재물을 바치면서 순산과 가저의 행복을 빌었다. (244P)

***대지의 여신이다. 우림 hen의 발아래 또 농부들이 호미와 쟁기 아래 살아있는 대지의 여신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 인간과 동물, 심지어는 신들에게도 어머니다. 곡식으로 그들을 먹익 때문이다. 그리tm 말로는 데메테르는 ‘곡식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호메로스의 설명에 따르면 데메테르는 이아시온이라는 인간과 곱게 간 밭을 침대 삼아 정분을 맺었고, 그 사이에 태어난 것이 플루토스다. 플루토스란 ‘부자’라는 뜻이다.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신, 245P)

***대지는 곡식을 키우고 우리를 키운다. 그리고 우리가 죽고 나면 대지의 신이 우리를 품어 대지를 비옥하게 만드는데 사용한다. 곡식이 우릴ㄹ 키우지만, 나중에는 우리가 곡식을 키우는 것이다. 지하세게는 무섭기만 한 세계가 아니다. 새로운 생명을 준비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다름 아니라 영생을 준비하는 곳이다. (247~248)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 낳은 괴물이야기

<오뒷세이아>는 <일리아스>보다 더 오래된 애기를 바탕으로 새로 꾸민 것이다. 거기서 자연은 기괴한 괴물, 거인 혹은 요정으로 표현된다. 자연의 실체에 대한 일종의 비유다. 자여은 파괴적이며 동시에 매혹적이다.

게다가 퀴클롭스는 진짜로 이상한 괴물이다. 겉으로는 평화롭게 양이나 치는 괴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살을 뜯는 잔인한 놈이다. 그 우두머리인 폴리페모스에게 제물을 바쳐서 끝날일이 아니다. 퀴클롭스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해 적대적이며 반사회적이다. 배도, 법도, 의회도 다 싫어한다. 그래서 짐승이고 비이성적인 존재다. 이해할 수 없는 괴물이다. 그리스 사람들이 보기에 자연이 그렇다. (250P)

***<오딧세이아>에 나오는 모든 괴물 이야기에 공통적으로 들어있는 메시지는 이것ㅇ다. 금지된 구역으로 들어가고 양면성을 띤 자연의 포로가 되어 어두커멈한 세계로 들어가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 막힌다. 인간성을 상실하게 된다는 뜻이다.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의 삶이 끝나면서 인간다움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런 자연에 맞설 수 있는 힘은 역설적으로 인간다움을 잃지 않는데 있다. 오뒷세우스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자연에 이길 수 있었다. (251P)


***인간의 얼굴을 하게 된 신들

제우스는 하늘과 날시, 천둥과 폭풍우의 신이었으며, 켜켜이 쌓인 구름을 관장하는 신이었다. 제우스의 힘으로 비바람이 몰아치면 무섭기 짝이 없다. 그리스 사람들은 제우스가 비를 내린다는 표현을 자주 섯다. 그런 제우스를 사람들은 땅으로 끌어내려서 목책의 신 혹은 경계를 지키는 신이라는 뜻이다. 심지어 제우스를 집 안으로 들이기도 했다. 즉 험한 날씨에도 집을 지켜주는 난로의 신으로 제우스를 명명하기 시작했다. 이제 점점 제우스를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집을 보호해주고, 소금과 빵과 기본적인 식량을 관리해주며 집을 찾는 여행객들에게 음식을 대접해 주는 신으로 인식된 순간부터 사람들은 제우스를 성격좋은 집주인으로 혼동한다. .....신 중에서도 가장 힘센 신인 제우스가 어느 새 지상으로 내려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인간의 감정을 공유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253P)


***오릶푸스에서 내려와 ls전에 기거하게 된 신들

신을 인간으로 제일 먼저 조작한 것은 호메로스였다. 그는 <일리아스>에서 살아움직이는 신을 보여주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신의 존재를 감지하게 되었다. 신은 단순히 살아있기만 한 것이 아니다. 눈물도 흘리고 웃음도 터뜨린다.

제우스와 포세이돈의 머리는 검은색보다 더 검다. 푸른빛이 도는 검은색이다. 여신의 드레스에서는 현기증나게 흰색과 깊은 푸른색, 그리고 샛노란색을 볼 수 있다. 신의몸을 감사고 있는 얇은 면사포는 ‘햇빛처럼’ 우리를 눈멀게 한다. 헤라는 뽕나무 열매만큼이나 많은 보석을 달고 있고, 제우스는 의복을 만들 때 금을 아끼지 않는다. 외투도 금이고 홀도 채찍도 다른 장신구도 모두 금이다. 

양쪽으로 땋은 헤라의 머리는 몸 양옆에서 리듬을 타고, 몸에 뿌린 행수는 너무도 강렬해서 하늘과 당을 채우고도 남는다. 아테네의 눈에서는 섬광이 내비치고 아프로디테는 대리석처럼 빛난다.(258P)

***** 인간은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편다. 인간의 형상을 한 신들이 지상에 내려와 우리 귀가 멀고 눈이 멀 지경이다. 그들은 아주 가까이 있다.

모습만 강렬할 뿐 아니라 움직임도 강렬하다. 영웅과는 다르다. 영웅이라고 해봐야 힘만 다를 뿐 우리 생각을 뛰어넘는 존재는 아니다. 하지만 신은 다르다. 인간의 향상을 한 신이라서 가깝게 느껴질 수는 있다. 즉 부엉이나 조약돌보다는 말이좀 통할 것 같고, 기도도 잘 들어줄 것만 같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들은 신이다. 신을 신답게 하는 뭔가가 반드시 있다. (258P)

****신들을 향한 인간의 종교 감정은 복잡하다. 신은 알 수 없는 히이기에 두렵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신들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면서 인간들은 묘한 감정에 휩싸인다. 어딘가에 이곳과 다른 세상이 있다. 가깝지만 확실히 다른 곳이 잇다. 거기에는 영원한 존재가 산다. 우리와 닮았지만 우리와는 다르게 현실에 얽매이지 않고,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 바로 신들이 산다. 올림포스 산에 사는 그들은 걱정도 고통도 없다.

정의도 괘념치 않는다. 도덕은 인간의 창조물이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서 혹시 나쁜 결과가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고, 그래서 생긴게 도덕률이다. 하지만 신들에게는 그따위가 필요없다. (259P)

***사람들은 올림포스를 올려다보고 추앙한다. 하지만 정작 그 위에 사는 신들은 인간들의 삶에 무감하다. 그들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기쁨을 위해 존재한다. 신들은 인간의 삶에 간섭하는 경찰이 아니다. 해나 나무나 강과 매한가지다. 인간을 도와주려고 존재하는게 아니다. 스스로 아름다움을 뽐내며, ‘존재’ 할 뿐이다. (260P0

***그리스 사람들은 용감한 사람들이다. 안되는 싸움도 포기하는 법이 없다. 그들이 신을 에배하는 이유는 언젠가는 신과 같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한계를 뛰어넘고 싶다. 신ㅊ처럼 존재의 기쁨에 충만하기를 바란다. 신이 되고 싶다는 말이다. (260P)

***올림포스 산에 신을 세워놓은 것은 에술작품을 전시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죽어 없어질 인간에게 여원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위로하고자 함이 아니다. 조각을 자꾸 세우는 이유는 다른데 잇다. 먼저 인간과 비슷한 얼굴을 한 올림포스의 신들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의 행복한 모습, 겁먹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종교는 현실에 사는 인간들을 자극한다. 더 행복해 보이는 존재들과 경쟁하라고 추동한다. ‘천사와 싸우라’는 말이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지 원시종교가 수없이 강조해왔다. ‘오만’한 인간에 대해 신들은 분노한다. 신들은 ‘질투’가 많은 존재라서 인간이 자기들과 비슷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리스 사람들은 신에 맞서면서 위험을 감수하기로 결정한다. 그리스 비극에는 수도 없이 그런 장면이 나온다. 비극이 비극인 이유는 인간이 신에 대항하여 무모한 싸움을 벌이기 때문이다. (260P)

***그리스 종교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해 볼때가 되었다. 신을 끊임없이 의인화해서 그리스 종교가 노리는 바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인간이 도달해야 할 목표를 설정해서 보여주는 일이다. 인간이 다스려야 할 최후 지점이 올림포스의 신이다. 그 간격을 그리스 사람들은 끊임없이 좁혀가고 있다. 신은 인간의 세계로 내려와 도시와 공동체의 우두머리가 될 것이다. 이제 신은 인간의 깃발, 인간의 모범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스의 신들은따라서 인간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전진하게 하는지표다. 그렇게 됨으로써 신으로서의품위를 잃는다. 단지아름다운 이미지가 된다. 범접할 만한 아름다움 말이다.

그리스 종교는 인간을 닮으면서 힘을 잃었다. 신들은 그리스 국가와 합쳐지고 말았다. 신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은 공동체에 대한 믿음으로 바꾼다.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축제를 qf이면서 신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신을 세운 도시에 대한 애국심을 되새긴다. 이처럼 신에 대한 경배가 인간자신에 대한 경배로 바뀌는 순간 종교는 진부한 것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전진을 위한 새로운 무기를 집어들 수밖에 없다. 그게 바로 과학이다. (261~262)


***필요에 따라 신들의 역할도 바뀐다

인간에게 불을 건네준 프로메테우스 dlg에 헤파이스토스가 불의 신의자리를 차지했다. 그가 지키는 불은 번갯불이 아니었다. 부엌이나 대장간에서 쓰는 생산도구로서의 불이엇다. ((262P)

***아테나이라는 도시 이름의 기원이 된 아테네 여신은 고전주의 시대의 산업사회를 대표한다. 그녀 자신이 일을 하고 있으며 모든 일꾼들의 보호자다. t자를 만들어 일꾼들에게 나누어 준 것도 아테네였다. 아테네는 제철소도 지켜주고 도공들이 사는 교외마을 케라메이코스도 지켜준다. 녹로를 발명한 것도 아테네엿고, 질그릇으로 최초의 도기를 만든 것도 아테네였다. 안료를 바르고 굽는 공정을 보호하는 여신이다. (263P0

***헤르메스는 어떤 상황에서든 협상을 중시한다. 도시 간의 분쟁이 발생하면 헤르메스가 외교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전략을 짜준다. 그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전쟁과 폭력 때문이다. 전쟁은 상업을 망칠 뿐만 아니라, 인간성까지 말살하기 때문이다. 이익을 수호하는 신인 헤르메스도 전쟁을 통한 이익은 단호히 반대한다. (265P)


***종교가 아닌 인간 중심의 철학

그리스종교는 종교라기보다는 그리스 사람들이 만들어낸 인간 중심의 철학이라고 보아야 한다. 호메로스의 시대를 지나 고전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신의 세게오 인간의 세게는 훨씬 더 가까워졌다. 원래 신이란 전혀 정의로운 존재가 아니었음을 dfl는 잘 알고 잇다. 그야말로 제멋대로 행동하는 족속이었다. 이제 신과 가까워진 그리스 사람들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신은 정의로운가. 하는 질문이다. (268P)

***메가라로 유배된 시인  테오그니스도 마찬가지였다.


제우스 신이여, 당신 나를 실망시키고 있구려.

당신은 세상의 왕이고, 존경받는 신이고, 힘있는 신이오.

모든 인간들의 심장을 꿰뚫어보는 우리들의 왕이

어째서 좋은 놈, 나쁜 놈, 구별을 못한단 말이오?

영혼이 깨끗한 자와 폭력과 이기심에 물든 자를 구별하지 못한다니!


****기원전 5세기 아이스퀼로스의 비극이 힘을 얻던 시대에는 정의롱누 신이 인간의 영혼과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아이스퀼로스의 영원한 주제도 바로 이것이엇다.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와 <오레스테이아>의 작가의 눈으로 보면 수천 년 역사를 거쳐오면서 야만스러운 힘이 세상을 지배해왔고 이제 세상의 질서가 바로집하면서는 정의로운 신들의 치세가 왔으며, 정의가 역사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 종교가 걸어온 길이다. 종교가 인간이 되었고, 인간의 친구가 되었고, 인간의 정의를 구현하게 된 것이다. (269P)


비극: 아이스퀼로스, 운명 그리고 정의

****그리스인의 업적 가운데 가장 고결하고 위대한 것은 비극이다. 비극은 우리 속에 존재하는 공포와 희망의 버무림이다. 그것들을 잘 결합해서 완벽한 작품으로 빚어낸 것이 바로 비극이다. (273P)

***그리스 비극의 가장 기본적인 공식은 신과 인간의 정의 실현에 있었다. 현실적인 의미에서 보면 신은 인간과 다른 존재다. 하지만 정의로운 신이 지상에 내려와서 인간의 세계를 바로잡아 주기를 그리스 사람들은 바라고 있었다. 당시 그리스 사회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였다. (273P)

***아이스퀼로스 때에 이르러 인간들이 다루지 않을 수 없는 무거운 주제가 갑자기 떠올랐고, 그 무거운 주제를 비극이 과감하게 끌어안았다. 그 주제란 다름 아닌 전쟁이었다. (274P)

***비극 안에 액션이 있고 드라마가 있다. 번민과 희망, 지헤와 승리의 노래가 군데군데 들어간다. 하지만 역시 본질은 액션이다. 액션 때문에 숨을 죽익고 침을 삼키지 않을 수 없다. 죽고사는 문제이고 관객들 자신이 익히 아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274P)

***비극의 힘은 여기에서 나온다. 즉 주인공과 나를 일치시키는 것, 주인공의 액션을ㄹ 내 액션으로 혼동하는 것이 비극이다. 나 자신이 눈앞에 펼쳐진 싸움을 수행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극중에서 주인공이 ‘나’라고 호명하는 순간 관객인 내가 칼끝에 선 듯 잔뜩 긴장하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이 비극의 매력이다. (275P0

***비극작가는 “시민을 더 나은 사람으로 교육하는 일을 한다.” 그래서 존경을 받는다. 여기서 더 낫다는 말은 더 강하다는 말이다, 비극은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 (277P)

***비극이 보여주는 드라마는 그냥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의 투영이다. 그래서 진보적이다. 아픈 부분을 자극하고 혁명을 독려한다. 얼핏 보기에는 화해를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현실에ㅓ 화해하기 위해서는 투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불의에 맞서 싸우라고 부추긴다. 그래야 공동체에 화해가 있고 발전이 있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비극은 진보를 넘어 혁명적 자세에 가깝다. (279P)


****자연에 대적하는 인간, 프로메테우스

프로메테우스는 인류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신이다. 아테나이 시의 생산력을 책임지는 신이다. 사람들에게 불을 선사했을 뿐만 아니라 예술과 기술을 창조했다. 그 프로메테우스 신을 기리는 축제에서 벌어지던 운동경기가 바로 릴레이였다. 릴레이에서 달리기 주자들은 다음 주자에게 불을 넘겨준다.

그런데 이 인간의 친구이며 인류의 수호자인 프로메테우스에게 제우스가 벌을 내린다. 인간에게 불을 주었기 때문이다. 헤파이토스가 프로메테우스를 결박햇고, 제우스의 종복인 힘과 폭력이 보초를 섰다. 프로메테우스는 아무도 살지 않는 스퀴티아 사막 커다란 바위에 묶였다. 군주 제우스 앞에 목숨을 맡긴 셈이다.

도대체 프로메테우스는 왜 이런 험한 꼴을 당하게 된 것일가? 가장 큰 이유는 ‘불을 훔친 죄다. 불이란 신들의 전유물이므로 프로메테우스가 지은 죄는 결코 가볍지 않다. 하지만 그 불로 인해서 인간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엇다. (280~281)

***프로메테우스가 지기는 했지만 정복당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프로메테우스를 응원하는 이유는 그가 인간을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제우스에게 맞서기 때문이다.(287P)


******신의 정의와 운명 사이의 화해

아이스퀼로스 생각으로는 우리 중 누구도 나의 죄만 가지고 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족의 죄, 내가 속한 공동체의 죄도 지고 가야 한다. 쉽게 말하면 우리도 공범이다. 우리 마음속에서 죄를 지은 가족을 죽이지 않는 한 우리도 공범이다. 아이스퀼로스는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295P)

***재판 결과가 정호가하게 반으로 갈렷다. 반은 무죄, 반은 유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때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던 아테네여신은 오레스테스의 편을 efmdjT고, 그래서 부죄석방되었다. 동시에 또 하나의 조치가 내려졌다. 이제부터 아트레우스 가족안에서 일어난 범죄와 같은 사건은 개인이 직접 복수할 것이 아니라 법정에 회부하도록 한 것이다. 아테네 여신이 주재하는 법원은 구성원들의 양심에 따라 유무죄를 가리게 되엇다. 그럼으로써 운명은 정의로 바뀌었다.  (306P)


***정의로운 사회를 꿈꾼 시인

아이스퀼로스는 용기있는 사람이다. 그는 인관과 세게사이에 벌어지는 가장 첨에한 싸움을 과감하게 건드린다. 앞에서 본 것처럼 아이스퀼로스는 마음 깊은 곳에 단단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신들과 인간이 결국 조화가운데 살아갈 것이라는 믿음이다.(307P)


시민 페리클레스

****예수가 태어나기 500년 전에 페리클래스의 시대가 있었다. 한 시대에 자기 이름을 걸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영광인가. 페리클레스가 재이한 기간은 고작 32년 밖에 되지 않는다.

페리클레스는 어태나이 민주주의를 완성한 장본인이다. 아테나이의 지도자엿고 지후ㅣ자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독재군주였다. (311~312P)

****용기가 자유를 낳고 자유가 행복을 낳습니다. 우리가 이 두려운 전쟁 앞에서 용기를 내야 하는 이유입니다.“

아테나이 시민들 앞에서 햇던  이 말은 그리스 사람들 전체가 생각하는 바를 정확하게 짚어낸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자우에 대한 열망을 일깨웠고, 그로 인해 그리스 사람들은 용기를 가지고 행동하게 되었다. (313P)

***니체의 표현을 빌리면 페리클레스가 대중들 앞에서 연설할 때, 그는 이성의 화신이엇다. 창조적이고 열정적이고 과학적이고 정호가하며 예술적이고 통찰력이 넘쳤다고 한다. (317P0

***페리클레스가 숭상하는 종교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인간의 세게 위에 군림하고 있는 신이며 다른 하나는 그 신이 현현한 인간이엇다. 신의 위대한 힘은 인간에게 구현되었고, 페리클레스는 그걸 믿었고 그런 인간들이 모여서 공동체는 발전해 갈 것이라고 믿었다. 신전에 신상을 건립하는 이유도 단지 신을 숭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신의 닮은 꼴인 인간을 숭배하기 위함이었다. 그럼에도 페리클레스는 연설에서 한 번도 신의 이름을 거론한 적이  없었다. (317~318P)


****아테나이 제국과 억압적 민주주의

남아도는 부로 페리클레스는 예술작품을 제작했다. 일꾼들에게 일자리를 주고 아테나이에는 ‘불멸의 명성’을 남겨줄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사실 텔로스동맹이 순식간에 아테나이 제국으로 변하자 아테나이 내에서도 이견이 엇었던 것은 아니다. (328P)

***국책사업을 통해 가장 많이 이득을 보는 계층이 근로자 계층이고 크게 보면 모든 가정에 이익이 된다. 결국 조공국들이 내는 돈을 가지고 아테나이 시민 전체가 나눠 쓰는 셈이다.

따라서 아테나이의 민주주의는 억압하는 민주주의다. 파르테논 신전은 아테나이에게 영광이고 이익이다. 하지만 다른 나라들에게는 영광도 이익도 없다. (329P)


***페이디아스는 아크로폴리스의 제작자였다. 모든 작품에 그의 진지하고 창의적인 감각이 살아있다. 전체적인 조화를 추구하면서도 섬세하고 세세한 작업에도 소홀함이 없다. 그중에서도 파르테논은 페이디아스의 걸작 중의 걸작이다.(334P)

***파르테논은 수학 속에 갇힌 건축물이 아니라 살아잇는 건축물이다. 수학이 아닌 감성을 건드리는 건축물이다. 파르테논에는 질서가 있지만 그것은 움직이고 살아 숨쉬는 질서다.

이유는 간단하다. 파르테논에 쓰인 직선은 실제 직선이 아니다. 마치 우리 살에서 마주치는 직선들이 완벽한 직선이 아닌 것과 같다. 원도 마찬가지다. 고르지가 않다. 파르테논에 구현된 수학은 딱 덜어지는 수학이 아니다. 조금씩 빗나간다. 일부러 그렇게 햇다. 예술적으로 약간식 뒤튼 것이며 그럼으로써 각 면들이 살아 움직이게 했다. 파르테논을 살아있는 건축물로 만든 힘은 바로 이 비틀기에 있다. (335P0

***살아있는 파르테논은 무수히 많이 복제되었다. 수 세기동안 파리에서 뮌헨까지, 워싱턴에서 모스크바까지, 은행 앞에 , 교회 앞에 베껴다 세웠다. 심지어 파리의 마들렌 성당은 파르테논을 본뜬 괴물 수준이다. 하지만 파르테논은 하 sxh양의 산물이고 구체적인 역사의 산물이다. (339P)

*****페리클레스는 ‘자금과 지혜’로 전쟁에서 승리하고 평화를 쟁취하고 싶었다. 하지만 페리클레스의 전략 전술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복병을 만났다. 다름 아니라 지나친 애국심이 그것이었다. 페리클레스는 한 번도 아테나이라는 조국의 경게를 확장해 본 적이 없다. 그 결과 동맹국들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파르테돈 신전의 아름다움도 실상은 다른 동맹국의 돈과 노예들의 피로 가능햇다는 점을 확인하면 씁쓸함을 금할 길이 없다. (342P)

****문명은 푸른 사과다. 태양이 더 내리쬐어야 붉은 사과로 변할것이고, 아직은 태양이 충분하지 않다. 그리스는 아직 어린 문명이다. 태양이 그리스를 더 키워 줄것이다. (343P)


그리스인이야기 2


안티고네의 약속

***거룩한 성수나 멸균 처리된 밍밍한 물로는 비극을 쓸 수 없다.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비극은 눈물과 피로 쓴다.(11P)

***비극의 세계는 아테나이의 시인들이 지난 2세기동안 농부이자 어부엿던 아테나이인들이 겪은 험한 현실을 그들 자신을 위해 부분적으로 각색한 세게라고 할 수 있다. (11P0

***사실 비극이란 아테나이 민중들을 민주주의와 시민 자유의 옹호자로 만들어 준 역사의 압력에 그들이 시적인 언어로 기록한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12P0

****시인이 관객에게 보여주는 극적인 투쟁 장면은 인간 본성이 지니는 힘의 확장, 초월, 인간을 영웅으로 끌어올리는 투쟁을 담고 있으며, 이는 비극의 고유한 주제이기도 하다. (13P)

***영웅의 죽음은 비극적이지 않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 비극적인 것은 우리 인간의 현실에서, 소포클레스와 그와 동시대를 산 인간들의 경험 속에서 단호한 태도를 보이는 신드이 존재다. 신들은 인간의 초월, 영웅으로 피어나려는 인간을 방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모든 비극들은 하나같이 이제까지 듣도 보도 못한 용기있는 행동을 통해 스스로를 넘어서려는 인간, 장애물에 부딪힘으로써 미지의 세계와 대면해 위대함의 새로운 차원을 열려는 인간들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인간의 야심은 더욱 더 단단해진다. 영웅의 행동 덕분에 인류의 한계가 드러난다. (14P)

***안티고네 위로 내리 꽂히는 잔인한 죽음의 빛 속에서 우리는 마침내 안티고네의 속마음을 보게 된다. 안티고네라고 하는 존재의 열쇠가 이 장면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는 비로소 지독한 안티고네, 투쟁에서도 지독하고 자신에게도 지독한 안티고네, 태어날때부터 투사의 낙인을 안고 나왔으므로 지독할 수밖에 없는 안티고네가 자신의 비밀과 하나가 되어, 고독속에서 무한히 부드러워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24P0

***우리는 시인의 존재를 통해서 그가 창조한 각각의 인물에 연결되며 그 인물들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리하여 처음엔 생소하고 비걱거리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곧 한 목소리를 내는 영혼들의 언어를 듣게 된다. 모든 시인들 중에서도 비극 시인은 자신 안에서 또 우리 안에서 싸움을 벌이는 자식들, 그렇지만 결국 시인 자신이자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에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그 자식들의 불협화음을 통해서만 목소리를 들려준다. (28P)

***우리의 존재는 그들이 존재와 마찬가지로 이데올로기가 아닌 팽팽하게 맞선 열정을 위해 집중된다. (32P)

****안티고네, 개인의 양심의 상징

안티고네에게서는 사랑으로 한껏 고양된 영혼이 느껴진다. 안티고네는 겉은 뻣뻣하지만 내면은 한없이 부드러운 연인의 내밀함과 불꽃같은 열정으로 충만해 있다. 이것은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오는 부드러움이며 타오르는 사랑, 거의 부조리에 가까운 사랑이다. 그 사랑은 안티고네라는 여자를 만들어냈으며 안티고네의 마음속에 기꺼이 스스로를 희생하겠다는 격한 감정을 폭발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36P0

***안티고네의 성격을 가장 발 묘사하는 것은 바로 안티고네의 입에서 나오는 대사다.

“나는 증오를 나누어 갖기 위해서 태어난 게 아니에요. 나는 사랑을 나누어 갖기 위해서 태어났지요.”(39P)


***대립하는 가치들의 화해와 조화로운 삶

소포클레스는 우리의 존재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는 형상들을 깨운다. 그는 꾹 다문 우리의 입을 열게 만든다. 그는 우리의 말 못하는 복잡한 의식세계를 밝은 빛 가운데로 이끈다. 우리 안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수치심 대문에 제풀이 어둠 속으로 사그러진 모든 것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등장인물간의 갈등은 우리들 각자가 느기는 갈등이며 우리를 위험으로 몰아가는 갈등이다. (48P)


****안티고네의 죽음은 단순히 그녀의 존재방식이 우리에게로 전해졌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죽음은 안티고네가 부수고자 했던 숙명의 질서에 대항해서 우리를 해방시켜주는 원칙으로 작용한다. 안티고네의 죽음은 크레온의 질서에 대한 질타다. 모든 국가적 질서에 대하 s 질타가 아니라 우리들 개개인의 자유로운 숨결을 억압하는 질서를 종요하는 국가에 대한 질타다. (54P)


돌을 조각하고 청동을 주조하다

***그리스 사람들은 시인이자 타고난 조각가였다. 그리스인들은 대리석과 청동을 가지고 그들이 상상하던 신의 천 가지 만 가지 얼굴을 보여주는 남자와 여자의 영예로은 형상을 빚어냈다. (59P)

****돌을 조각하기 위해서는 나무를 조각할 줄 알아야 햇다. 그리스인들은 말하자면 오랫동안 학습했다. 여러 세대에 걸친 점진적이고도 장기적인 교육이었다. 우선 에술가가 재현하고자 하는 현실에 눈을 맞추어야 햇다. 무엇보다도 예술가의 첫 번째 연장, 즉 손을 훈련시키는 일이 필요했다. (63P)

***미켈란젤로가 “우리는 손이 아닌 머리로 그림을 그린다. 그러니 자유로운 머리를 자지지 못한 사람은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신을 재현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던 예술가는 신성에 대한 존중과 신과 대면해야 하는 인간이 대담성을 결합시키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신앙심은 장애인 동시에 자애를 극복하기위한 창작 의지를 부추기는 촉매였다. (65P)

***상고시대 그리스 예술은 가장 본질적인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벌거벗은 남자의 입상인 쿠로스와 옷을 입은 여자 입상 코레, 이렇게 두 분류다.

쿠로스는 젊음으로 충만한 신을 의미한다. 고고학자들은 대다수의 쿠로스를 아폴론이라고 명명햇다. 하지만 아폴론이 아니라 헤리메스라고 해도 별반 상관없을 것이다. 쿠로스는 승리를 거둔 운동선수들의 이미지가 될 수 있다. 운동으로 아름답게 다듬어진 남자와 올림포스산에 사는 신은 지척지간이다.

쿠ㅗ스를 조각하면서 그리스 에술가들은 인체에 대해서 배웟다. 체육관에서 그리스청년들은 거읭 ht을 벗은 차림으로 운동을 햇다. 그러니 그것에 가서 그들이 몸을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면 그것이 바로 인체학습이었다. 성소에 우뚝 서있는 벌거벗은 남자의 상을 바라보는 그리스인이라면 누구나 달리기 경주를 통해서 우승자의 몸에서 불끈거리는 근육의 움직임을 보았음에 틀림없다. (70P)

***조각의미소는, 미소를 통해서 귀신을 쫓아내고 불행을 예방한다는 것이다.

기쁨으로 충만한 신, 그래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신을 재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72P)

***쿠로스를 관찰하면 할수록 우리는 그 조각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놀라운 힘에 압도당하게 된다. 튼튼한 다리, 길게 벋어 올라가다가 어개라고 하는 단단한 울타리 근처에서 슬며시 넓어지는 좁은 몸통. 어깨 위에 붙은 머리는 자신이 지닌 힘에 만족한 듯 기쁨의 미소를 짓는다. 그 힘에서는 어떤 매력이 풍겨 나온다. 일부 벌거벗은 남자의 조각상은 위엄을 느끼게 할 뿐 아니라 꿈을 꾸게 만든다. 이 조각들의 근육에서는 거의 관능에 가까운 부드러움이 느겨진다. (74P0

***고대 예술은 하나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것을 정면성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이 법칙은 이집트 예술 전반에 나타나며 그리스 예술은 500년경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 법칙에서 탈피햇다. (74P)

***조각가의 솜씨에 힘입어 우리는 벌거벗은 남자- 신의 조각 앞에서 그의 권능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우리는 넘치는 에너지로 함껏 고무된 신을 느낀다. 우리는 그 신이 함축하고 있는 미래, 신이 우리에게 제시할 미래에 대한 듬직한 약속으로 신이 묵직하다고 느낀다. 하긴 신은 언제나 예측이 불가능하다. 신이니까.(75~76)


***옷을 입은 여자의 입상, 코레

벌거벗은 남자상 쿠로스에 입은 여인상 코레가 화답한다. 남자는 벗고 여자는 주름잡힌 옷을 걸쳤다. (76P)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모여 있는 이들 여인상을 보면 패션쇼에 나가기 위해 모델들이 모여서 있는 광경이 떠오른다. 같은 쇼에 나가되 옷은 각자 마음대로 골랐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예술가의 선택이 낳은 결과다. 옷을 입은 여인상, 즉 코레에서 예술가의 관심사는 여인의 인체라기보다는 복합적인 주름연구였던 것이다 (79)

***가장 아름다운 인간으로 재현한 신의 이미지

근육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벌거벗은 인체, 가벼운 의복 또는 묵직한 의복 안에 감춰져 있으면서 옷을 통해서 드러나거나 암시되는 우아한 여인의 몸이 모두 이들의 탐구대상이었다. (80P)

***조각가들은 자신들이 끊임없는 열정을 가울여 파헤쳐가는 인체를 신의 몸이라고 간주했으므로 그 의미는 한층 더 증폭된다. 남자와 여자의 몸, 그것은 신에 대한 가장 나은 재현, 신의 가장 정확한 이미지였다. 결국 그 같은 이미지를 조각하면서 그리스 예술가들은 그리스 민족이 섬기는 신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었다고 말할 수 있다. (81P)

***그리스 사람들에게 신은 벌거벗은 소박한 젊은 청년, 아르답게 치장한 상냥한 표정을 짓는 젊은 처녀였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신에게로’정도로 요액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젊은 청년의 벗은 몸이나 곱게 수놓아진 천으로 만든 의복을 걸친 여자의 우아함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니 이것이 인간들이 신에게 바친 것이며 인간들이 신을 보는 방식이었다. 신들이란 바로 이런 존재였다. 신을 표현하기 위해서 환하게 빛나는 대리석 외에 다른 언어란 있을 수 없었다. 벌거벗은 남자상은 바로 대리석으로 된 언어였으며 그 언어는 신을 가리켰다. (82P)

****** 오나벽한 대응, 완벽하고 균형잡힌 비례를 겸비한 인체의 아름다움은 훗날 예수가들에 의해서 숫자로 환원되기도 한다. 엄격하면서 부드러운 선에서 배어나오는 온화함과 단호함을 지닌 인체의 아름다움은 경직된 가운데 너무도 감동적이고 강력하며 신체에는 물론 영혼에까지도 막강한 설득력을 불러 일으킨다. 이 아름다움은 그리스인들이 재현한 청소년기의 환한 젊음으로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영원불멸을 일깨워준다. 이것이 바로 영원불멸의 신에게 인간이 가장 아름다운 것을 바친다고  하는 의미다.(83P)

***신을 향한 인간의 사랑과 인간의 몸에 대한 사랑, 이것이 바로 석조조각가의 창조력을 이끄는 이중의 방향타다. 그리고 진리에 대한 무한한 사랑도 덧붙여야 한다.

인체의 골격과 근육에 대한 지식을 나날이 키워가는 조각가의 의지를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조각가는 인체를 재현함에 있어서 항상 어제보다 발전된 지식으로 정확성을 기하려고 노력했다. 이것이야말로 조각가가 신에게 바치는 첫째가는 봉헌물이다.(85P0


***부동자세 움직임을 부여한 조각가, 뮈론

뮈론은 조각술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그와 동시대인인 아이스퀼로스가 연극에 있어서 행위의 창시자인 것처럼 말이다. 두 사람은 각자 인간의 힘의 한계를 탐험한다. (87P)

****살아있는 존재의 움직임은 시간 속에서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순간들의 결합을 통해서만 조각으로 포찰될 수 있다. 조각은 본질적으로 무생물적인 소재를 가지고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움직임의 달인은 시간이 달인이기도 하다.

고대에 만들어진 아폴론상은 두 발을 바닥에 굳건하게 딛고 서있다. 말하자면 시간의 박에 서 있는 것이다. 이 조각상은 영원히 그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88P)

****고전주의 : 인간이라는 피조물과 진리에 대한 애정

인간과 신의 에너지는 근육질을 요하는 모든 행위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진 신체를 통하여 발현된다. 용기는 무표정한 얼굴을 통해서 드러난다. 이 같은 무표정은 대부분 기술부족에서 기인하지만 인간이 자신의 개인적인 열망을 제어하는 능력의 표현이기도 하다. 즉 영혼이 지닌 힘, 함대는 신만이 소유했던 완벽한 평온함의 상징이기도 하다. (91P)

***이 새로운 시기는 또한 훨씬 인간적이었다. 신성의 영향력이 더 이상 사회 전반을 좌지우지하지 않았다. 이 시기에는 신을 인간의 형태로 재현하기보다는 인간을 신의 지위로 고양시키는데 힘섰다. (91~92)


******가장 이상적인 인체 비율의 탄생

폴뤼클레이토스는 원래 청동조각가였다. 폴뤼클레이토스는 손바닥(손바닥의 폭0을 단위로 하여 신체의 각 부위와 이들 각 부위 사이의 관계를 계산햇다. 폴뤼클레이토스는퓌타고라스로부터 배웠을 텐데, 인간의 구조에서 숫자가 가지는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엇으며 그래서 이를 열심히 연구했다. 그는 “걸작품이란 머리카락 한 가닥의 차이가지 찾아낼 만큼의 수많은 계산의 결과”라고 말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 사람들은 이 작품(창을 든 청년)을 가리켜 교본이라고 불럿던 것이다.


****신들을 조각하는 거장, 페이디아스

페이디아스는 존재하는 것을 보여주고 사물들을 원래 보습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다. 이 세게에는 예를 들어 인간과 말의 결합처럼 거칠고 맹렬한 힘이 존재하는가 하면, 돈많은 기사들이나 의연한 승마자세를 보여주는 기사들, 인간과 가깝게 지내는 평온한 남자 신이나 아름다운 주름이 잔득 잡힌 엷은 천으로 복부를 반즘은 기라고 반즘은 그대로 드러낸 여신들 외에도 무수히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페이디아스에 따르면 이 모든 것이 같은 언어를 구사한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존재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항상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박에 없다. (98P)


***페이디아스는 그의 조각상을 통해서 제우스의 대중적인 이미지, 다시 말해서 전지전능하고 호사스러운 신으로서의 이미지와 당시 소크라테스나 페리클레스가 가졌음직한 가장 지고한 이미지, 즉 섭리와 선의의 신으로서의 이미지를 결합하려고 했음에 틀림없다. 이같은 지고한 이미지는 온화하고 부성애 넘치는 듯한 얼굴표정에서 드러난다. (103P)

***현대 고고학자들은 페이디아스가 제작한 제우스상이 턱수염을 기른 예수이모습을 만들어낸 기독교 예술가들에게 본보기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103P)


과학의 탄생: 탈레스, 데모크리토스

****인류의 역사에서는 마치 폭발처럼 갑작스럽게 새로운 형태의 행동이나 사고가 나타나는 순간이 있다. 아시아 대륙에 위치한 그리스, 그러니까 이오니아에서 기원전 7세기 말 무렵에 탈레스와 그를 따르는 학파와 더불어 과학, 즉 합리적인 과학 지식이 출현한 것도 그런 식이었다. (107P)

****오뒷세우스는 끊임없이 질문하는 사람의 전형이었다. 그는 그 같은 탐구 자세에다 경건하고 실용적이기까지 한 종교적 자세를 겸비한 인물이었다. (107~108)

****신화와 과학이 분리되지 않은 세계

인간은 운명에 대항하기 위하여 윤리를 고안해냈다. 인간에게 윤리란 살고 죽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도 굶주림에 대항해서는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다양한 방식을 생각해냈다. (109P)

***새로운 사상의 집결지, 이오니아

기원전 7세기와 6세기에 이오니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낫을까? 여러 혈통이 섞인 민족-카리아, 그리스, 페니키아인-이 오랫동안 지루한 계급 투쟁에 휘말렸다. 탈레스에겐 이 셋 중에서 어떤 핏줄이 흐르고 있었을가?

이오니아 도시 전체에 피바람을 몰고 온 이 계급투쟁은 결과적으로 그리스라고 하는 발명의 나라에서 온갖 발명이 풍성하게 이루어지는 견인차역할을 했다. .....이 투쟁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뱃사람들의 세력을 등에 업은 상인계급이었다. 이들은 여러 세기에 걸쳐서 구대륙에 축적되어 온 잡동사니 지식들을 긁어모아 체계적인 지식으로 탈바꿈시켰다.

이오니아는 기원전 7세기에도 여전히 예술, 경제, 정치, 과학 등의 분야에서 왕성하게 발명을 계속했다. (113P)

***하늘이라도 가뿐하게 받칠 수 있을 정도로 두터운 기둥들과 칼로 자른 듯 뾰족한 박공, 수액을 잔득 머금고 한껏 부풀어 오른 나무줄기처럼 강건한 도리식이 엄격하고 육중한 신전들, 마치 살아있는 인간의 육체를 향해 무생물들인 돌이 보내는 도전장처럼 당돌하고 오만한 모습의 신전들이 갑자기 우아하고 호의적이며 미소 짓는 듯한 모습으로 변하게 된 것도 이오니아에서 비롯되었다. 기다랗게 키를 키워 날씬해진 이오니아식 열주들은 한창 성장 중인 청소년의 몸과 흡사하다. 기둥 위로는 기둥머리가 섬세한 꽃처럼 얹혀 있다. 꽃잎들은 부드러우면서 동시에 단호하며 인간의 손처럼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두 겹의 나선으로 소용돌이를 이룬다.

이외에도 이오니아의 발명품으로는 화폐, 은행, 어음 등을 빼놓을 수 없다. (116P)

***이 모든 발명품 또는 새로운 활용 방식을 통해서 부활한 창작품들은 이오니아인들의 업적이다. 그들은 변화를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는 욕망으로 불타며 흥미로운 복합체로서 삶을 소유하려는 기질을 지녓다. 이오니아의 풍요로운 천재성은 우리를 사뭇 놀라게 한다. (116P0

***밀레토스는 90개의 식민지와 해외상관을 세웠다.

탈레스는 여러 곳을 여행한 사람이었다. 이집트와 아시아 변방, 칼데아 등지를 여행함으로서 이들 나라에서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식들, 특히 하늘과 대지에 관련된 정보들을 수집했으며 이를 매우 독창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하고자 시도했다. (118P)

****그리스의 바벨탑이라고 할 수 있는 이오니아는 다양한 사상들과 흥미로운 연구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탈레스는 이처럼 많은 집중과 교류가 이루어지는 곳엣 살았다. (119P)

***그리스인들은 이미 기하학적인 풍부한 상상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같은 상상력을 바탕으로 언제나 그렇듯이 정확한 기술에서 출발하는 이 학문을 발명해냈다. 훗날 수학이라고 블리게 될 학문은 앗쉬리아인들과 이집트인들에 의해서 그 토대가 마련되엇다. ....이집트인들의 측량기술은 기하학의 정리로 굳어지게 된다.

***퓌타고라스는 직각삼각형의 빗변을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면적은 삼각형의 크기에 상관없이 항상 나머지 두 변을 변으로 하는 정사각형의 면적의 합과 같음을 증명햇다. 이렇게 해서 오리엔트인들이 개별적으로 적용하던 규칙이 기하학의 보편적인 정리가 되엇다. (124P)

***데모크리토스는 기원전 460년경 트라케 해안에 위치한 그리스 식민지 압데라에서 태어낫다. 데모크리토스 역시 타고난 여행가였다. 데모크리토스는 이집트에서는 화학을 접했으며 자연사에 관해서도 풍부한 경험을 보탰고, 칼데아인 또는 이집트인들로부터 수학과 천문학의 기본개념들을 배웠다.  그는 “모든 것에 대해서 글을 썼다.”(137P)


****원자설, 최초의 무신론적인 학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라고 하는 대단한 용어를 남겼다. 이 용어는 일종의 가설이었지만, 여러 세기가 흐르도록 당당하게 살아남았다. 이 용어가 원자의 내부 구조를 설명하는데 유용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만큼 원자의 존재라는 가설을 제시한 데모크리토스의 직관은 뛰어난 것이었다. (138P)

***데모크리토스는 극 세운 자연의 체계 안에서 단 두가지의 원초적인 현실, 즉 원자와 빈자리만을 인정했다. 자연에 빈자리의 존재를 설정한 그의 가설은 오늘날 완벽하게 입증되었다.

***생명체는 그러므로 우너자의 결합체라고 할 수 있다. 이 원자들은 오랜 진화를 거치면서 우리가 짐작하는 형태의 결합체를 이루게 되었다고 데모크리토스는 설명했다. 데모크리토스는 인간에 대해서는 “물과 진흙 속에서 태어난 우연의 산물”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그는 종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자연가 인간이 자연적이고 물질적인 원ㅊ칙에 의해 설명되며 죽음 이후의 삶은 단호하게 부인되는 원자 체계 안에서 종교는 전혀 실체가 없는 것이된다. 데모크리토스는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신앙은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자연현상, 특히 죽음과 대면해서 느끼는 두려움 때문에 생겨난다고 주장했다. (143P)


*****물질을 사랑한 이유로 가장 핍박받았던 학자

인간이 외부세곌ㄹ 어떻게 파악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데모크리토스가 설명하는 방식은 무척 흥미로울 뿐 아니라 다양한 해석을 낳앗다.

인간은 감각을 통해서 물질적인 방식으로 세계를 파악한다. 예를 들어 청각과 관련된 느김은 소리를 내는 대상으로부터 우리 귀가지 퍼져오는 원자들의 흐름 때문에 가능하다. 이 흐름은 자신들과 유사한 공기의 입자들을 요동치게 만들며 신체기관을 통해 우리의 귀로 들어온다. 마찬가지로 시각적인 느낌은 외부 대상과는 분리되며 눈으로 아니 눈을 통해서 우리의 뇌로 들어오는 소위 시뮬라크르라고 하는 이미지에 의해서 생산된다. (144P0

***동시대인들은 데모크리토스를 ‘미치광이'라고 불럿다. 그는 얹나 글을 읽고 글을 쓰는데에만 전념햇다. “책만 읽다가 정신이 돌았으니까!”(147P)

***인간은 자신에 대한 믿음, 자신이 지닌 이성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며 이를 좀더 좋고 옳은 방향으로 개선해나가는 능력을 잃지 않았다. (148P)


소포클레스와 오이디푸스: 운명에 화답하기

이제 다시 인간과 삶과 세계를 파헤치는 또 다른 방식, 즉 그리스도 비극으로 돌아가 보자. 과학과 철학만큼이나 비극은 이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한 방편으로 제시된다. (151P0

*****시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오이디푸스 신화

소포클레스는 신앙심이 두터운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 잇어도 천하없어도 신을 믿는 그에게 신앙심은 명백한 도덕이나 운명의 모호함보다 언제나 우선이엇다. (151P)

***우리는 파멸의 운명을 맞은 오이디푸스의 내면에서 또 다른 삶이 박동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 삶은 이제 곧 늠름하게 전진할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운명이 자신을 향해 던진 그 돌들을 주워 새로운 무기로 삼을 것이다. 그는 사우기 위해 다시 살 것이다. (166P)

****비극 <오이디푸스왕>은 인간의 비극이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한 성격과 고유한 내면의 갈등을 가진 개별적인 인간의 비극은 아니다. 어떤 고대 비극도 이 작품보다 덜 심리적이지 않고 이 작품보다 더 철학적이지 않다. 이 작품은 인간으로서 지닐 수 있는 최고의 권한을 지닌 한 인간이 인간을 거부하는 자, 곧 신과 충돌하는 비극을 다루고 있다. (174P)

***그가 운명에게 보이는 유일한 허점이 있다면 단지 그가 인간이라는 사실, 그리고 인간의 행동은 인간의 조건을 지배하는 우주의 법칙에 복종한다는 사실 뿐이다. 오이디푸스의 과오를 그의 의지에서 찾으면 안된다. 이 우주란 그런 것 따위는 안중에도 없으며, 우리가 선한 의도를 가졋는지 악한 의도를 가졋는지도 문제 삼지 않는다. 인간은 우리가 인간의 수준에서 구축한 도덕이라는 잣대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우주는 오로지 행위 자체에만 관심이 있다. 그 행위가 우주의 질서, 우리의 삶을 내포하기는 하지만 우리에게는 낯설기만 한 질서를 방해하지 않으면 그것으로 족하다.(175~176)


***인간은 모든 것을 알 수 없으며, 그런 상태에서도 인간은 반응한다. 여기에 바로 인간의 비극이 있다. (176P)

***인간은 단지 자신이 의도한 바에 대해서만 책임이 잇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행위가 만들어낸 사건의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져야 한다. (176P)

***인간은 세계의 삶에 균형을 맞추어주는 모든 힘을 알 수 없다. 천성적으로 무분별을 타고난 우리 인간의 선의는 그러므로 인간을 불행으로부터 조금도 지켜주지 못한다. (177P)

***오이디푸스는 그저 인간이엇다. 다른 어느 인간보다 훨씬 성공한 인간이엇을 뿐이다. 그의 삶은 온통 선행으로 가득햇다. 그런데 이렇게 잘 구축된 삶이 한순간에 갑자기 무기력해지고 우주의 재판정 앞에서 인간이 이룬 일들의 덧없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게 된다니. (177P0

**모드 s행동에는 대사를 치루야 하며 이따금씩 d 행동의 끝은 우리에게 속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거짓으로 모든 것이 분명해 보이던 세계, 지혜와 덕목의 힘으로 다가오는 시련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세계, 우리가 제어가능하다고 상상했던 현실은 갑자기 불투명해진다. 그 현실은 우리에게 저항하며, 우리를 사랑하지 않고, 우리를 위해 우리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기 위해 존재하는 사물이나 존재, 법칙으로 가득 차버린다. (178P)

***우리의 삶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광대한 삶, 어쩌면 우리에게 형을 가하는 광대한 삶의 한 귀퉁이에 불과함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또렷한 눈으로 바라보는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사실 장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178P0

***신은 우리를 지배하지만 우리가 신을 알기란 불가능하다. 신탁, 에감, 꿈 등은 신이 우리에게 보내는 막연한 언어로서, 저 깊은 심연속에서 인간의 영역을 향해 솟아오르는 물방울에 비유할 수 있다. 즉 신의 존재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신을 이해하거나 판단하는 것을 허락하지는 않는 신호인 것이다. 이 신호들은 숙명이라는 의미보다는 인간들에게 모든 것을 아는 신의 존재를 얼핏보게 해줄 뿐이다. (183P0

***오이디푸스는 개인적인 잘못이라기보다는 무지의 소치로 행동하는 인간이다. 행동하는 모든 존재가 대면하게 마련인 삶의 법칙에 의해 벌을 받았다. 그가 저지른 유일한 잘못은 그의 존재 그 자체, 알 수 없는 법칙의 세계에서 살아야만 하는 숙명 소게 놓여 있다. 그런데 그에게 내려진 파멸의 굴레는 벌이라는 성격은 완전히 배제된 채 행동하는 인간으로서 그를 겨냥할 뿐이다. (200P0

***신들은 그가 고통을 감내하는 방식 때문에 그를 선택해서 영예롭게 해주려는 것이 아니라, 신들의 놀라운 권능을 보여주기 위해 그러는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신들에 의해 구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구원자가 된다. (201P)


핀다로스, 시인들의 왕자, 왕자들의 시인

****이 눈부시도록 화려한 시인은 아이스퀼로스, 아리스토파네스와 더불어 그리스 언어의 대가로 꼽힌다. (210P)

*** “아이는 닷새 동안 이렇게 살았다.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골풀과 가시덤불 속에 숨어서 지내는 아이의 보드라운 몸을 황금빛, 보랏빛 꽃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가 덮어주었다. 이것이 아이가 어머니 쪽으로부터 이아모스라고 하는 불멸의 이름을 얻게 된 경위다”

 시인이 말하는 꽃처럼 엉뚱한 전개 방식을 통해서 황금빛, 보랏빛 광채로 우리를 온통 뒤덮는다. 그의 시는 태양빛으로 눈이 부시며, 빛깔을 바꾸는 무지개처럼 찬란하다. (223~224P)

***그는 수수께끼 같으면서 비밀스러운 의미를 간직한 언어로 자신은 영감이 번득이는 시인이라고 말한다.

“나는 언어 위에 노래하는 숫돌을 놓았으며, 그 돌은 원천으로부터 전해지는 입김으로 나를 사로잡는다.” (224P)

***아스클레피오스는 실현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는 실수를 범한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려 한 것이다. 의사는 자연이 죽음으로 데려가는 사람을 억지로 끌어내려 했다. 제우스의 벼락은 가차 없이 운명이 원한 죽음으로 환자와 의사를 동시에 데려갔다.(229P0

***시인은 용기있고 멋진 말을 던진다.

“오, 나의 영혼이여, 불멸의 삶을 갈구하지 마라. 대신 너에게 주어진 활동의 장에 지치도록 탐닉하라.”(229P0


**** "아크라가스의 성벽, 그것은 정직한 도시의 꽃이다.....이 도시를 낳은 아버지들은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노동과 용기와 더불어 시켈리아의 눈동자같은 존재들이었다. 운명의 시간은 이들을 보살핀다. ....슬픔은 충만한 기쁨에 의해 길들여지고 다시 태어나려는 쓰라림 속에서 사라져간다. 신으로부터 태어난 운명이 고양시키는 우리의 환희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하지만 변덕스럽게 바뀌는 바람이 우리를 이끌어간다. 이들은 우리를 때로는 기쁨으로 때로는 시련으로 데려간다.“ (236P) 핀다로스의 시


***** “가드모스의오만한 딸들은 이루 표현할 t 없는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고통의 무게는 이들에게 몰려온 기쁨의 무게에 눌려 허물어져버렸다. 길게 땋은 머리채의 세멜레는 벼락을 맞아 죽었지만 올림포스의 신들 가운데에서 다시 산다. 팔라스로부터 영원히 사랑받으며 제우스 신의 사랑까지 받은 세멜레는 포도덩굴을 지니고 다니는 그의 자식에게도 사랑받았다. (237P) 핀다로스의 시


***시인은 영감을 받은 자다. 시인은 ‘예언자’이기 때문에 군주에게 많은 것을 까다롭게 요구할 수 있다. 시인이 요구하는 것은 정의, 정직, 관대함, 백성 즉 피통치자가 아닌 ‘동료시민들’에 대한 온유함 등 해묵은 귀족의 행동지침에 수록되어 있는 덕목들이다. 게다가 그가 특별힌 요구하는 것은 불행을 견디는 용기와 그 못지 않게 어려운 행복을 견디는 단호함이다. (246P)

***“아름다운 시가 지닌 음성은 영원히 울린다. 그 음성 덕분에 비옥한 대지의 공간과 바다를 가로질러 아름다운 행위의 영광이 꺼지지 않고 찬란하게 빛난다.”

“시인의 노래가 없다면 모든 덕성은 침묵 속에서 죽음을 맞는다.” (248P0


구대륙 탐험에 나선 헤로도토스

****지리학은 배고픔, 대부분의 고대인들이 겪어야 했던 지독한 기아에서 탄생했다. 고대인들 가운데 가장 비참하고 비옥하지 못하고 경작이 어려우며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은 땅을 박차고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던 것이다. (260P)

***다양한 풍습에 대한 지식은 그의 정신을 시종일관 놀라움으로 채워준다. 그의 정신을 매혹시키며 즐겁게 만든다. 아니 그  이상이다. 풍습은 일상적인 실천에 집착하는 각각의 종족의 사고방식 위에서는 마치 굴레처럼 짓누르는 반면, 풍습 총체에 대한 인식, 즉 종족 각각의 풍습이 다양하며 따라서 서로 모순될 수도 있음을 아는 것은, 역사가들에게는 정신의 해방을 도와주는 도구로 작용한다. (293~294)


인본주의 의학의 꽃, 힙포크라테스

***아이스퀼로스의 비극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원시 인류가 그에게 빚진 여러 혜택들을 열거하면서 의학을 첫 번째로 꼽았다.

“특히 인간들은 병이 났을 때, 고통을 달래기 위해서 먹을 것도, 마실 것도, 바를 연고도 없었다. 그저 죽는 수밖에 없엇다. 그런데 내가 인간들에게 효과가 좋은 치료제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덕분에 인간들은 모든 종류의 질병에 대항할 수 있게 되었다. (297P)

***힙포크라테스는 오랜 전통에 의지해가면서 기우너전 5세기에 의학의 프로메테우스로 부상했다. ((297P)

***힙포크라테스는 인간이라고 하는 피조물을 위한 요리, 건강을 약속해주는 동시에 질병을 치료해주는 의학, 운동선수의 몸분만 아니라 고통받는 몸을 위한 의학을 평생동안 불같은 열정을 가지고 봉사햇다. (319P)

***그는 병을 고쳐주는 치료사의 역할에 머물지 않고 건강이라고 하는 가장 중요한 재산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고자 노력햇다. 힙포크라테스는 병을 고치는 의사이기보다는 건강을 지켜주는 의사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린다. (325P0

***소우주로서의 인간과 대우주로서의 세계는 각각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이 같은 사고방식에는 자연적인 세게에 부여되는 신화적인 개념이 들어설 자리가 엇다. 오로지 철저한 사실주의만 있을 뿐이다. (333P0

****깍 신체기관은 자신들의 사멸에 대항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생물학적 힘의 보고다. 인간 개개인에게 활력을 주고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이 힘의 균형을 아는 의사는 환자를 도와줄 수 있다. 깨달음이 곧 행위인 것이다.(334P)

***교양인으로서의 의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 중의 하나는 겸손이다. 이는 지적, 도덕적, 겸양을 모두 포함한다. (342P)

****의사는 자신이 돌보는 사람들을 사랑하며, 생명이란 매우 복잡한 현상이고 매우 소중하기 때문에 보호해야 한다는 감정을 늘 지니고 잇다. 따라서 생명을 책임지는 의사에게는 겸손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의술에 대한 사랑은 의사의 인류애를 받치는 두 기둥이다.(343P)

***모든 인간들에게 몸의 구원을 제공하기 위해 어렵게 전진해나간 힙포크라테스 의학은 무지의 어둠 속에서도 찬란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약속이었다. (346P)


아리스토파네스의 웃음

***디오뉘소스 극장무대에서는 기원전 5세기의 마지막 4분기 내내 아리스토파네스의 웃음벼락이 그치지 않앗다. 풍자극은 제국주의적 민주주의가 빠져들고 잇는 모순들을 가차없이 고발했으며 전쟁으로 인한 참화, 민중들의 비참함을 주요 주제로 다루었다. (351P)

***아리스토파네스는 동시대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이자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던 소크라테스에게 현학적인 학자의 가면을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다지기 좋아하고 섬세한 시인인 에우리피테스에게도 같은 가면을 씌웠다. (360P)

***아리스토파테스의 희극이 풍자적인 동시에 서정적이라고 표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신랄한 분노의 감정을 분출하는 많은 정보를 담고 있는 비아냥과 독설, 권력자들에게나 민중들에게 퍼붓는 가장 천박한 쓰레기로 뒤덮인 진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은 외설서러움 속에 웅크리고 잇다가 ‘시’라고 하는 왕관을 쓰고 나온다. (369P)

***희극적 행위의 발명은 우리의 삶과 비슷하기에 그럴듯하면서도 어딘지 다른 세계로 우리를 데려간다는 점에서 현실과 어느 정도 괴리가 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그의 희극에서 자연의 법칙, 이성의 원칙이 우리의 현실에서와는 약간 다르게 작용하는 일련의 세계를 제시한다. 마치 중력의 법칙이 다르게 작용하기 때문에 아무런 힘을 들이지 않고도 훌쩍 멀리 뒤거나 어마어마한 무게를 들어올리는 것이 가능한 행성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 같다고나 할까. (370P0

****<뤼시스트라테>, 여자들의 파업 선언

이 작품은 모든 인간에게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감정, 곧 평화를 사랑하며 아니 그보다는 더 원초적으로 삶에 대한 사랑과 한 바탕 웃음이 들어있는 작품이다. 삶에 대한 사랑이란 적어도 우리가 아는 한 육체적 사랑과 그로 인해 얻는 줄거움을 통해서만 영속될 수 있지 않은가.(375P)

***아테나이 민중의 소망을 담은 <평화>

***아리스토파네스는 구제 불능의 현실주의자다. 그는 현재의 현실을 묘사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한층 더 치열하게 파고들어 그리스 민족이 미래의 현실이라고 부르는 먼 앞날의 현실까지도 알려주려 애를 쓴다. 이 미래의 현실을 그는 상상력이라는 수단을 이용해서 발견한다. 그가 상상해낸 연극적 행위들은 그의 희극을 일종의 시간여행기로 만든다. (380P)


***자연과의 합일에서 원초적인 기쁨을 찾는 <새>

 “오! 작은 새의 목소리,

 그 목소리가 덤불숲 전체를 꿀로 가득 채우는구나.” (384P)


***날개달린 신들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대리석 신전을 지을 필요도 없다네.

그 신전을 황금 문으로 걸어 잠글 필요도 없지.

왜냐하면 그들은 털가시나무 덤불숲에

살테니까. 날개달린 신들 중에 가장 고귀한 신은

올리브나무를 성소로 삼을 거라네.

그러면 우리는 신들에게 제사지내기 위해

델포이에도 암몬에도 갈 필요가 없다네. 소귀나무와

올리브나무 가운데에 기도하기 위해 자리를 잡고 선 다음,

두 손을 나뭇잎을 향해 벌리고, 우리는 신들을 부르리라.

우리는 신들에게 우리 몫의 재화를 달라고 기도하리라.

그러면 보리나 밀 한줌에 곧 흡족해진

신들이 우리의 기도를 이루어주시리라! (388~389)


***“태초에 혼돈과 밤, 검은 에레보스(암흑), 그리고 거대한 타르타로스(하계의 가장 아래)가 있었다. 대지도, 공기도, 하늘도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에레보스의 끝없는 심연 한가운데에서 제일 먼저 검은 날개를 지닌 밤이 배(胚)가 없는 알을 낳앗다. 시간이 흘러 그 알에서 욕망의 에로스가 태어났다. 에로스의 등에는 반짝거리는 황금날개가 달려 있엇으며, 세찬 소용돌이 바람만큼이나 날쌨다. 어느 어두운 밤에 저 깊은 곳에 자리한 타르타로스에서 날개 달린 혼돈과 하나가 되어 우리 wd족을 탄생시키고 제일 먼저 우리 종족을 빛 가운데로 올려 보낸 것은 바로 에로스였다. 불멸의 종족이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에로스는 이 세계의 구성요소들과 짝짓기를 한 것이엇다. 이 짝짓기로부터 하늘과 바다, 대지, 그리고 행복한 자들의 청렴한 종족이 태어났다. 그러므로 보다시피 우리는 불멸의 존재들보다 훨씬 선배격이다.”

이런 식으로 새들은 그림자나 다를 바 없는 실체없는 유령들, 날개도 없으며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는 인간과 비슷한 존재들을 향해 말했다. 요컨대 새들은 노화도 모르고 영원을 생각하며 죽을 운명을 타고난 존재들에게 “천상의 것들의 속서에 관한 모든 진실”을 가르쳐주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이다. (392P)

***아리스토파네스는 꿈을 꾸고 신명나는 놀이를 벌인다. 하지만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꿈과 놀이를 벌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꿈과 놀이는 깊이 숨겨진 우리의 본성, 우리의 과거, 우리의 조상, 우리 민족에게서 애써서 퍼올려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꿈과 놀ㅇ는 우리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395P)


지는 해

***그리스 문명 황금기는 고작 50년 정도 지속되엇다. 주로 기원전 5세기 후반부를 가리킨다. 인류 전체의 역사에서 50년이라고 하면, 어느 여름날 하루 정도나 될까......“정오의 열기 속에서 태양 때문에 정신이 나간 매미는 소리를 지른다”고 아리스토파네스는 노래햇다. 그리스문명의 정오에는 천재적인 작품을 내놓느라고 산고를 겪는 인간종족의 오장육부에서 끌어낸 기쁨의 고함소리가 들린다. (401P)


***문명의 황금기에 드리워진 그늘

기원전 4세기 초에 그리스 문명이 급작스럽게 멸망의 길에 접어든 것은 아니다. 그리스 문명은 여전히 건재했으며, 그 후로도 여러 세기동안 기독교 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스스로 개척한 인간의 새로운 활동영역에서 몇몇 걸작품들을 생산했다. (403P)


****끊임없는 전쟁과 내부 분열

우선 전쟁의 상시화를 들 수 있다. 전쟁은 27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계속되었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기원전 5세기의 후반 3분기 내내 아테나이를 필두로 활력을 잃고 기진맥진햇다. 이 전쟁을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부적절한 이름이다. 이 전쟁은 고대 사회에서 일어난 최초의 세계대전이라고 보아야 마땅하다.

***아테나이가 영토를 확장하고 제국의 토대를 공고히 하며, 연합국을 복소시키기 위해 일으킨 전쟁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앞서서 발발하여 12년동안이나 지속되었다. 그러니 거의 40년동안이나 전쟁은 황금기와 공존한 셈이다. 당연히 위험이 따랐고, 이 대문에 뒤를 잇는 세기가 시작되자마자 그리스 민족의 창조적 도약은 주춤거리게 되었다. (404P)


***민주주의의 붕괴

기원전 5세기 말엽, 쇠락이 임박했음을 , 머지않아 미래에 그리스 문명이 소멸할 것임을 그리스 문명이 실패였음을 예감하게 하는, 전쟁보다 더 심각한 현상이 있었다. 그것은 아테나이의 황금기를 수놓은 민주주의라는 현상으로서 이 현상은 미완성인 동시에 이미 붕괴의 길을 걷고 잇었다.(409P)

***페리클레스와 더불어 그리고 부분적으로 페르클레스 때문에 민주주의는 안정권에 접어들면서 벌써 쇠락의 길로 접어들엇다. 페리클레스는 권좌에 오르자마자, 그러니까 기원전 451년에서 450년 무렵에 시민의 지계 아들이나 딸이 아닌 사람에게는 시민의 자격부여를 거부하는 정책을 실시햇다. 그의 발의로 의회에서 채택된 법령은시민 등록부를 폐쇄적으로 제한하는 동시에 아테나이 민주주의까지 제한하는 결과를 낳았다. (410P)

***페리클레스가 아테나인들을 “게으르고 비겁하며 말만 많고 탐욕스러운”인간으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하는 플라톤 저술 속의 소크라테스의 말은 과장이 아니엇다. 페리클레스는 아네나이 내부에 국가가 먹여살려주고 즐겁게 해주기를 기다리는 백수 시민들을 대량으로 탄생시킨 장본인이었다. 국가는 이들에게 봉급을 주고, 공연장을 갈 돈을 대주었으며 그 대신 페로폰네소스나 트라케 전쟁터에 나가서 목숨을 바칠 것을 요구햇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들을 돌보아주는 아테나이를 수호하는 일마저도 곧 싫증내기 시작했다. 그러니 머지 않아 시민 군대는 사라질 운명이었다. (412P)

****계속되는 전쟁과 민주주의 와해, 노예제도와 곤궁한 삶, 이같은 구름이 하늘 전체를 뒤덮도록 두 손 놓고 기다리고만 있을 것인가? 아니 ,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 민족은 강인한 삶을 이어간다. 아직도 여러 세기를 기다려야 그들이 모든 것을 자신들의 이미지에 맞도록 빚어나가게 될 것이다. 지금은 기원전 5세기 말이다.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세속적인 철학을 가르친다는 이유로 아테나이 학당의 폐쇄를 명하는 것은 그로부터 천 년 후의 일이다. 소크라테스가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인간의 정신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한지 천 년만에 그런 일이 벌어진다. (429P)


소크라테스라는 수수께끼

***소크라테스는 왜 죽었는가? 그에게는 진리가 삶보다 더 소중했던 것일까? 우리의 당혹감, 역사학자들이 느끼는 곤혹스러움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435~436)

***소크라테스 문제: 어떤 소크라테스가 진짜인가? 

아리스토파네스는 이 희생양에게 “잘난 체하는 타지인 학자”의 가면을 씌웠다. 이 인물은 원시적인 대중극의 흔적을 간직한 채 전 세계 모든 대중 소극에 등장하는 캐릭터다. (436P)

****나는 누구인가를 물으 최초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무척 좋아했다. 그러니 그의 젊은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해진다. 그는 신동은 아니었다. 마흔살이 되어서야 그나마도 신이 그에게 신호를 보냈기에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알게 되엇다. (445P)

****소크라테스는 델포이의 아폴론 시전에 새겨진 “너 자신을 알라”는 글귀, 그리스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지혜가 담긴 그 글귀를 읽었다. 이리저리 한눈파는 순례자의 눈으로 한 번 쓱 읽은게 아니었다. 젊은 시절 내내 그의 마음속에서는 “너는 누구냐? 너는 무슨 쓸모가 있느냐? 너는 무엇을 아느냐? 네가 아는 것은 너한테 무슨 도움이 되느냐?”등의 질문이 메아리쳤다. 그 정도로 깊은 인상을 받앗다. 그는 열렬하면서 동시에 숙고하는 영혼을 가진 사람이엇다. 열정적인 기질과 냉정한 이성을 겸비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걸되, 분별있게 그렇게 하고자 했다. 그에게는 자신을 아는 것이 급선무였다.(445~446)

***소크라테스는 노동자인 민중에게서 태어났으며 그 역시 노동자엿다. 소크라테스는 노동자들과 자주 어울렷다. 쓸모있는 것과 아름다운 것, 덕성과 공공재산을 정의하기 위해 그는 대장간에서 머물렀으며, 구두장이에게서 사례를 차용하고 일꾼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수공업자들이야말로 소크라테스의 제일가는 정신적 지도자였다. (449P)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운 영혼을 생산해내는 기술을 창조하고 싶어했다. 점진적인 학습 끝에 소크라테스는 마침내 그가 찾던 것이 무엇인지, 그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그는 인간으로부터 인간 안에 깃들어 있으며 인간과 관계있는 진실을 이끌어낼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의 삶에 관한 학문을 찾고 있었다. 그는 영혼의 산파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엇다. (450P)

****무지를 폭로하는 거리의 철학자

30년동안 아테나이와 그리스 전역에서 가장 뛰어난 정신의 소유자로 간주되는 사람들과의 대담이 시작되었다. 대담에서 그는 번번이 정치가들의 지식과 사제들, 학자들, 시인들의 지식을 당황하게 만들었으며, 그럴 때마다 소크라테스가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고 말한 신의 판단을 증언했다. 오직 그만이 자신의 무지함을 인정할 정도로 현명했으므로 그것은 적절한 처사였다. (452P)

***신이 그것을 원하므로, 그는 쉬지 않고 어리석음의 가면을 벗겨내는 일에 매진했다. 그는 월급도 없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거의 없는 이 일, 가장 고집 세기로 유명한 그리스 민족을 가르치는 고사로서의 일을 계속햇다. 그것이 시민으로 사는 그의 방식, 진정한 정치기술, 즉 동료시민들을 “더 낫게 만드는” 기술을 실천하는 그의 방식이었다. (452P)

***소크라테스는 또한 우리는 이제까지 기도했던 것처럼, 그러니까 이렇게 해주시고 저렇게 해주십시오, 하는 식의 구복적인 기도를 해서는 안된다고 햇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는 신이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457P0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프로디코스 등은 새벽 동이 트기 무섭게 아테나이의 유복한 집안 젊은이들 집의 문을 두드릴 만큼 인기를 누렷다. 이들은 인간과 신에 관해서, 문법이나 천문학, 기하학, 음악, 윤리 등 모든 학문과 지혜에 관해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을 tkad으로 여겼다. 이들은 물론 지식의 문제도 다루엇으며, 대로는 구두 제조에 대해서도 일가견이 있다고 자처햇다.  소크라테스는 지혜의 거래는 아름다움의 거래와 마찬가지로 매춘이라 불러야 마땅하다면서, 돈을 매개로 지식을 사고파는 일을 대단한 수치로 여긴 반면, 이들은 수업료를 받고 젊은이들을 가르쳤다. (459P)

****아테나이 사람들은 이들 소피스트들을 지적 딜레탄트, 즉 지식 애호가로 여겻다. 기발하지만 위험스러운 악덕 상인들이며, 회의적인 스승, 기존 진실의 파괴자, 불효와 비도덕을 파종하는 자, 당시에 통용되던 말로 표현하자면 젊은 층을 타락시키는 자들이었다. (461P)


***아리스토파네스의 웃음 소재가 되다

아리스토파네스는 희극무대에서 신교육의 폐해를 고발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니 그걸 웃음거리로 만들어보겟다고 작정햇다.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권리인 동시에 아테나이인들의 즐거움이엇다. 이를 위해서는 그는 아테나이 시민들의 눈앞에 철학자, 수사학자, 천문학자, 자연철학자를 비롯하여 구름만 바라보는 학자 증 온갖 부류의 지식인을 상징하기 위해 단 하나 사람을 선택했다. 바로 소크라테스였다. (464P)

***희극 <구름>은 소크라테스의 재판이 있기 24년 전인 기원전 423년에 무대에 올랐다. 이 작품은 소크라테스의 기소에 간접적이지만 그럼에도 확실한 근거가 되었다는 것이 플라톤의 입장이었다. (464P)

***예술의 힘은 가공할 만하다. 소크라테스보다 아낙사고라스나 고르깅스, 또는 학문을 팔아먹는 다른 사람에게 훨신 가까웠던 아리스토파네스라고 하는 인물은 몸짓ㅇ나 언어 구사의 독창성에 있어서는 상당히 소크라테스적이다. 아이러니가 가득 담긴 독설이나 기발한 역설 등은 아테나이인들의 머릿속에 대번에 소크라테스를 떠오르게 하며, 소피스트들 중에서 수코라테스만이 유일하게 훗날 재판정에 섰다. 시민 법정에 끌려나온 자는 분명 아리스토파네스의 소크라테스였다. 시민 판고나들의 머릿속에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이 너무도 뚜렷이 각인되어 있던 터라, 그들은 재판정에 서있는 소크라테스가 극중 인물과는 다른 소크라테스임을 깨닫지 못했다. 결국 아테나이인들은 시인의 천재적인 작품 덕에 그들을 사로잡게 된 소크라테스의 유령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다. (466P0

☆☆☆우리나라에t 있었던 마광수사건, 장정일사건을 떠오르게 한다. 음란한 소설을 써서 미풍양속을 헤친다는 죄목으로 마녀사냥을 했다. 불과 오래지 않은 야만적인 사건이 우리에게도 일어났다.

****두 가지 오해: 무신론자, 타락시키는 자

기원전 423년에 공연된 작품에서 두 가지 죄목- 무신론과 젊은 층의 타락-을 거론하여 그에세 선고를 내렷듯이, 기원전 399년 법정에 제출된 기소장-신을 믿지 않은 죄, 젊은이들을 타락시킨 죄-에도 똑같은 두 가지 죄목이 명시되어 있었음은 상당히 충격적이엇다. (466P)

***신을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침묵 속에 머물게 할 줄 알았던 소크라테스는 신이라고 하는 지고의 신비 앞에서 언제나처럼 겸손함과 정직함을 보였다. 신성이라는 확고한 실체에 대해서 그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만을 유일하게 알고 있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햇다. (466P0

***소크라테스는 육체의 아름다움을 열성적으로 가꾸는 그리스의 젊은이들을 사랑했다. 그는 아직 단단하게 영글지 않은 그들의 영혼이 보장하는 약속과 더불어 그들을 한층 더 사랑했다. 젊은이들의 영혼은 참을성을 가지고 열심히 일구면 파종한 씨보다 더 많은 수호가을 허락해주는 질좋은 토양이나 마찬가지이기 대문이다. (467P)

***소크라테스는 그리스 민족을 고양시키고 이들에게 진정한 선에 대한 인식, 즉 선택이 주는 위험서오가 고귀함을 일깨워주고자 했다.  (467P)

***소크라테스는 결국 자신의 삶을 허비한 셈이 되었다. 시대가 아직 그를 받아들일 만큼 성숙하지 못했던 것이다. (468P)

***소크라테스를 희생양으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두 이름을 거론해서 대중들의 분노가 소크라테스에게 향하게끔 한 다음 아테나이의 모든 해묵은 죄악을 그에게 덮어씌워 그를 죽음으로 모는 일쯤은 식은 죽 먹기다. (472P)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죽음을 원했으며, 그건 자신이 이제까지 말로만 가르쳐왔던 진실을 실천하는 행위이기 배문이라는 정도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의 가르침은 죽음으로 완성된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통해서 우리 안에 오늘날까지 여전히 살게 되었다. (474P)

****소크라테스의 변론

당시 가장 유명한 연설문 작성자였던 뤼시아스는 소크라테스에게 변론문을 작성해주겟노라고 제안했다. 소크라테스는 그에게 어떻게 썼는지 어디 한 번 읽어보라고 주문했다. 그는 웃으면서 뤼시아스의 제안을 거절햇다.

“아름다운 연설이로군. 하지만 나한테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소.”라고 말햇다.

“아니 아름다운 연설인데 당신한테는 어울리지 않는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리요?” 라고 뤼시아스가 반박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아름다운 구두와 아름다운 의복도 나한테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모르고 있었소?”라고 반문햇다. 그의 취향으로 볼 때 아름다운 문장은 자신의 무죄에 어울리는 복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477P)

***그는 우선 자신에게 사형을 선고한 판관들을 상대로 말햇다.

“명심하십시오. 사람들을 죽인다고 해서 진실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진실은 한층 더 강력하게 공격해 올 겁니다. 진실을 위해 봉사하는 자들의 소리는 선한 사람이 됨으로써만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483P)

***평소에 늘 하던 방식대로 크리톤이 제안하는 도주가 과연 자신이 지금까지 평생동안 가르쳐온 원칙과 일치하는지 도 지금이 과연 그렇게 해야 하는 시점인지를 살펴보자고 권유햇다. 왜냐하면 불행이 그를 위협한다고 해서 원칙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엇다. 중요한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사는 것이다. (486P)


내가 저자라면

저자는 책에서 여성의 인권과 지위, 노예제도와 그 정책들, 그리고 그리스의 민주주의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루었다. 그는 인권주의자이며, 인본주의자이며 평화주의자임을 알 수있다. 우리가 고대 그리스 하면 신화를 비롯한 비극이라는 문학작품 그리고 시를 짓고 극을 만든 시인들, 트로이 전쟁, 지중해바다  등이다. 그런데 작가는 이런 것들도 아우르면서 역사 속에 함몰된 여성의 지위와 노예에 대해서 언급했다.

인물중심으로 그리스의 역사를 차근차근 짚어나간 것이 돋보인다. 문학전공자답게 비극과 희극 시인들과 문학작품들을 소개했다. 호메로스, 소포클레스, 아이스퀼로스, 등의 문학작품에 대하여 내가 미처 읽어내지 못했던 부분을 세심히 관찰하고 분석한 글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조금 아이러니한 것은 앞부분에서 ‘아리스토파네스’를 격찬한 것에 대해 소크라테스부분에서는 그에 대해 칭찬도 아니고 비난도 할 수 없었던 부분이라 위정자들을 비난하고 있다.

그리스의 신화, 역사, 문학, 미술,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를 아우런 그의 능력에 대해 찬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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