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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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 처럼
2009년 가을, 그는 퇴근 후,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나를 보러 왔다. 오랜만에 저녁도 함께 먹고,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날이었다. 저녁을 먹고,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샀다. 좀 걷다가 놀이터 벤치에 앉았다. 신문사 출판마케팅 팀에서 일을 했던 그는 그날, 그동안 단행본 영업을 하면서 얻은 아이디어 하나를 이야기 했다. ‘책 읽는 개미 캐릭터 개발’이 그 아이디어의 슬로건이다. 나는 그의 아이디어가 좋은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것보다 그가 그런 아이디어를 냈다는 것이 신기했다. 어디서 그런 생각들이 샘솟는 것인지 궁금하고, 부러웠다.
“와, 정말 괜찮은 아이디어다. 회사에 제안해봐. 너희 회사에서 개발 지원할 지 모르겠지만, 아이디어는 좋은 것 같아.”
그는 평소에도 불편한 사항이 있으면 무조건 적어 놓고, 그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럼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나. 그는 사진 찍을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하면서, 겨울에 춥지 않게 낄 수 있는 장갑, 자동차 내부 청소를 할 수 있도록 호스가 달린 청소기를 뒤좌석 밑에 장착할 수 있게 청소기 설계 등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난 그 아이디어들이 실현 가능한지 잘 모르겠고, 아이디어가 아이디어로만 끝나면 아무 쓸모 없는 것이 되므로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책 읽는 개미 캐릭터’는 내 귀에도 솔깃하게 들렸다. 무엇보다 그 캐릭터가 가진 스토리가 재밌었기 때문이었다. 간략하게 스토리를 소개 하자면 다리가 4개 밖에 없는 개미가 다리가 6개인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서 울면서 길을 걷다 책 위를 지나가게 된다. 그러다 숫자 8을 보고 자기보다 더 다리가 없는 개미라고 생각하면서 책 위에 있는 글자에 호기심을 느끼게 된다. 그때 꿀벌 캐릭터가 등장하여 글자를 가르쳐주고, 책을 읽게 되면서 다리 4개인 개미는 지식을 쌓는다. 어느날 길을 가다 무거운 사탕 부스러기를 못 옮기고 낑낑대는 다리 6개 달린 친구를 보고 책에서 알게 된 지렛대를 알려주면서 도와주어 친구를 많이 사귀게 된다는 그런 이야기다. 책 읽는 개미를 통해 어린이들이 독서에 흥미를 가지고 책을 좋아하고, 읽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캐릭터인 것이다.
그리고 6개월 쯤 지났을까, 그는 회사를 다니면서 동시에 캐릭터 개발을 하니, 캐릭터 개발이 늦어진다며 하면서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나는 겉으로 크게 말리지 않았지만, 속으론 무척 걱정을 했다. 이 취업난에 회사에 취직한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될지 말지도 모르는 캐릭터 개발을 한다고 매진하면, 그 개발 기간 동안 돈을 어떻게 모으고, 쓰고 할 수 있을지를 제일 걱정이 되었다. 또 그 캐릭터가 잘 되지 않을 경우를 생각했다. 내일 일은 내일이 걱정할 것인데, 나는 그 당시 아주 먼 미래까지 앞당겨와 걱정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잘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엇갈리는 예측은 그를 거들지도, 말리지도 못했다. 나의 내면의 소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니가 뭐라고 그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겠어? 자신의 미래를 위해 소신을 가지고 하겠다는 그의 결정을 그저 존중해주는 것이 너의 역할 일 뿐.’ 내심 그의 모험에 나도 한 발 담가보고 싶었던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모험으로 인생을 살지 못해도, 옆에 있는 친한 친구가 모험을 한다니 부추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그는 2010년 여름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대학 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캐릭터 개발을 했다. 스토리를 완성하고, 개미 캐릭터와 메인 캐릭터의 친구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시각 디자인을 전공한 그가 개발한 캐릭터는 꽤 귀여웠다. 그는 2011년 6월, 콘텐츠진흥원에서 콘텐츠 개발자들에게 정부지원금을 준다는 공고문을 보고 기회를 잡으려고 했다. 그는 그 사업 지원금을 따내고, 본격적으로 캐릭터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병원 아르바이트도 그만뒀다. 오로지 자신이 생각해낸 아이디어를 실물로 만들어 내고, 어떻게 사업화 시킬 것인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여름이 지나고 1차 서류에서 합격을 했다. 아이디어가 상용화 될 수 있다는 검증을 받은 셈이었다. 2차는 프레젠테이션. 그는 말을 잘하는 편은 아니다. 말도 성격처럼 천천히 하고, 질문에 빠르게 답하기 보다 진짜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천천히 정리한 다음 전달하는 편이다. 진실함이 있지만, 심사위원들이 보기엔 답답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래도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가 좋을 거라고 믿었지만,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난 후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는 잠시동안 좌절모드에 들어갔다. 하지만 좌절의 시간을 길게 끌지 않았다. 옆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그 점이 참 괜찮아 보였다.
다음 도전으로 ‘서울캐릭터라이센싱페어’에 참가할 수 있도록 조취를 취했다. 그리고 캐릭터 페어에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삼성역에 있는 큰 전시장에서 ‘책 읽는 개미 - ReadingDing'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처음으로 세상에 ‘딩’의 스토리를 알렸다. 딩은 그가 만든 개미 캐릭터의 이름이다. 그는 캐릭터 페어가 열린 일주일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성공한 캐릭터들을 만나고, 새롭게 창조되고 있는 수많은 캐릭터들을 봤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다음 행보에 힌트를 많이 얻었다.
캐릭터페어가 끝나고 그는 ‘책 읽는 개미 딩’을 주인공으로 한 동화책을 쓰기로 결심했다. 8개월 동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그는 동화책 작업에 매진했다. 그리고 올해 4월 「엉덩이가 두근두근」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 8개월 간 그는 이전보다 더 치열했다. 세상에 ‘딩’을 내놓고야 말겠다는 목표 하나를 가지고 매진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 그가 생각하고, 원하고, 말하고, 노력하니, 결과물이 나오고, 도움의 손길들도 이어졌다. 모험이 생각보다 즐겁고, 신나는 일이었다. 물론 막막한 미래에 대한 걱정, 될지, 안될지에 대한 불안감 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여전히 그 불안함은 내제되어 있다. 하지만 떠오른 아이디어를 붙잡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가는 그의 여정은 즐겁고, 행복해 보인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행복하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탐구하고, 답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점진적인 학습 끝에 소크라테스는 마침내 그가 찾던 것이 무엇인지, 그가 누구인지를 알게 됬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는? 소크라테스와는 다른 방법이지만 그도 지금 그가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탐구하고 답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생각하고, 결단하고, 부딪히고, 과감하게 모험에 뛰어든다. 소크라테스는 마흔살이 되어서야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영혼의 산파가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규명했다. 이러한 선택에 이르기까지 그는 젊은 시절을 오랫동안 암흑 같은 시간 속을 달렸다고 한다.
나는 그가 도전하고 성공할 때마다, 그의 길에 밝은 등불 하나가 더 켜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빛 아래 나도 함께 있을 수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물론 그가 등불을 켜려고 등불 아래 스위치로 갔을 때 스위치가 아직 덜 만들어져 켜지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다음 스위치까지 가기 위해 오래 걸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앞으로도 그럴거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그가 오랫동안 암흑 같은 시간 속을 달리더라도, 스스로 그 길에 밝은 등불을 켜면서 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 모험의 길이 흥분되고 멋지게 느껴진다. 소크라테스도 진실을 찾겠다는 의지로 점철된 그 어려운 길에서, 정신적인 장애물들과 중첩되는 육체적인 장애물들을 만났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도 그 길을 묵묵히 계속 갔다. 자신의 목숨을 내줄 만큼, 목숨을 내주고서라도 지켜내고 싶은 진리를 가졌던 소크라테스는 아주 행복한 사람이었을거다. 우리 안에 영원히 살고 있는 소크라테스처럼 그도 그의 길을 묵묵히 계속 가길 바라본다. 남이 가지 않는 길, 남이 선택하지 않는 삶, 자신에게 신의 보내주는 신호를 놓치지 않고 잡아 땅으로 내려, 자신의 삶을 살아 가는 것을 멈추지 않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는 죽어도 책읽는 개미 ‘딩’은 아이들 마음 속에 영원히 살 수 있지 않을까? 바람이고, 염원이다.
위대한 철학자, 영원히 살아 있는 소크라테스의 삶에도 소명을 찾기 위한 암흑의 길이 있었던 것이 내게 위로가 되는 일주일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삶이 되길 바란다. 위대해져서라기 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한줄기 빛을 피하지 않고 끝까지 쫓아 가는 삶을 살아서 말이다. 10년 후 나는 어떤 길위에 서게 될까? 그는 어떤 모습으로 다음 등불을 향해 갈까? 즐겁게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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