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Image

일상의

  • 인센토
  • 조회 수 1965
  • 댓글 수 2
  • 추천 수 0
2012년 7월 4일 11시 43분 등록

4-8-1.jpg


‘하, 바람 한 점 없다.’ K는 한여름 땡볕 아래, 계란 후라이는 물론 오징어 한마리 쯤 너끈히 구워낼 수 있을 것 같은 달궈진 철판 위에 서있다. 그의 앞에선 Y가 갈색 보호 마스크를 든 채 구부리고 앉아 시퍼런 불꽃을 튀겨가며 땜질 중이다. 닭똥같은 땀방울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 내리고,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Y는 연신 K에게 짜증을 부리고 있다. 덕분에 K에게는 오늘 하루가 유난히 길다. 


잠시 시선을 철판 위로 조금 더 위로 올려보자. 흔히 뮤직 쇼 프로그램에서 사용하듯 지미짚 카메라를 관객석에서부터 무대 쪽으로 틸트 업하는 것을 연상하면 된다. 저 앞 부두 위에 커다란 배들이 늘어서 있고, 그 아래에는 수많은 직육면체의 철판들 - 지금 K가 서있는 것과 같은 - 이 쭉 늘어서 있다. 이 수십, 수백 개의 철판 블록들이 한데 조립되어 저 거대한 배들이 완성되는 것이다. 자, 그럼 다시 일진이 나쁜 K에게 돌아가보자. 


Y에게 한참동안 핀잔을 먹은 K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잠시 쉬러가자’며 담배 한대 빼어 물고 그늘을 찾아 나서는 밉살맞은 Y의 뒤를 따른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 참고, 뜨거운 열기에 잔뜩 상기된 채 K는 방금까지 머물렀던 저 뜨거운 철판 상자가 어쩌면 자신들을 가둬놓고 사육하는 돼지 우리같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러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채 평생을 철판 상자 속에 갇혀서 땜질하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하는데에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숨이 턱, 하니 막히고 절로 몸서리가 쳐졌다. 


너무 더위를 먹은 탓에 정신이 혼미해진 탓일까. 방금 전까지 죽도록 싫었던 땀에 쩔은 K의 뒷모습이 괜시리 짠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다음 주면 아르바이트가 끝나게 되는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싱거운 안도감이 찾아들기도 했다. 그래, 꼭 죽으라는 법은 없다.    


-------------------------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재상, 관중은 ‘목민’ 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정치가 수행됨은 민중의 마음을 따르는 데 있고, 정치가 수행되지 못함은 민중의 마음을 거스르는 데 있다. 민중은 근심과 수고를 싫어하기에, 나는 그들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 민중은 가난과 천함을 싫어하기에, 나는 그들을 부유하고 귀하게 만들어야 한다. 민중은 위태로움을 싫어하기에, 나는 그들을 보존하고 편안하게 해주어야 한다. 민중은 생명이 끊어지는 것을 싫어하기에, 나는 그들을 생육하여야 한다.” 

      

관중의 말 속에는 ‘받기 위해서는 먼저 주어야 한다’는 그가 지녔던 정치 철학의 요체가 녹아 있습니다. 이는 노자가 말했던 ‘은미한 밝음’의 도와도 일맥 상통합니다. “오므라들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펴주어야만 한다. ... 제거하려고 하면 반드시 먼저 높여야만 한다. 빼앗으려고 한다면 반드시 먼저 주어야만 한다. 이것을 ‘은미한 밝음’이라고 한다.” 


아마도 요즘 우리나라가 시끄러운 이유는 정치인들이 이러한 정치의 높은 도를 모르고, 주는 것 없이 계속 빼앗으려고만 들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만약 이런 위기와 소란이 없었다면 우리는 과연 누군가가 자신의 피를 빨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관중은 대체 왜 그 혼란스러운 야만의 시대에 백성들을 등 따숩고 배부르게 해주려고 애썼던 것일까요? 무엇을 얻기 위해 먼저 손바닥을 펼쳤던 것일까요? 오늘도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는 채 덜컹이며 달려가는 열차 안에서 곰곰히 생각해봅니다.



IP *.229.131.221
프로필 이미지
July 06, 2012 *.10.140.31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는 세월의 기차를 타고

누구에게 차비를 내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달려만 가다가..

 

문득 비록 멀리가지는 못할 지라도..

이 달리는 기차에서 내려서서

내발로 걸어가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뚜버뚜벅...

프로필 이미지
July 11, 2012 *.229.131.221

꿈보다 해몽, 본문보다 댓글이 낫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늘 큰 힘이 됩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겔러리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