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書元
  • 조회 수 2410
  • 댓글 수 1
  • 추천 수 0
2012년 7월 8일 22시 24분 등록

도시의 그날 하루.JPG

 

이십대 후반으로 치닫던 그해. 나는 등산용 배낭 하나를 둘러메고 서울 상경을 하였다.

새로운 생활. 그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동서울 터미널. 지나가는 사람 하나를 붙들었다.

“여기서 제일 가까운 대학이 어디예요?”

지방에서는 대학가 부근이 집값이 싸기 때문이었다. 친절한 서울분은 지하철 노선을 가리켜주었다.

승차권을 사서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이런 문이 열리지 않는다.

당황이 되었다. 무슨 일이람. 구입한 표가 잘못 되었나. 다시 티켓을 샀다. 그리고 앞사람을 눈여겨보았다. 아하. 문을 직접 열어야 되는구나.

도착하여 전철역 가까운 복덕방을 들어갔다.

“방을 하나 구하러 왔습니다.”

지긋한 연세의 그분은 나의 모습을 훑어보는 듯하였다. 무얼 보는 거지. 촌티를 내지 말아야 할 텐데.

“가격이 얼마쯤 되는 방을 구하는지.”

 

기다란 직사각형 모양의 지하방이었다. 휑한 공간에 햇볕 하나 들지않는곳. 한곳을 정하면 굳이 비교를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바로 계약서를 썼다.

가지고온 액수와 딱 맞았다.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16만원.

배낭을 내려놓고 앞으로 내가 생활하게 될 그곳에 정식으로 입방을 하였다.

어둑한 방. 낯선 방. 이곳이 내 서울생활의 시발점. 어떤 사람들이 이곳을 거쳐 갔을까. 새로운 엑서더스로써 무얼 먼저 할까. 그렇지 청소부터 하여야겠다.

가까운 시장으로 향하였다.

“아줌마. 청소용구와 빨래판, 세숫대야좀 주이소.”

관우가 청룡도를 지켜들 듯 늠름하게 도구를 싸들고 쉼터로 향하는 도중 떡볶이 파는 가계가 눈에 뜨인다. 꼬르륵. 그렇군. 아침에 출발하여 점심도 먹지 못했구나.

청바지 주머니에 손을 내미니 500원짜리 동전 하나가 딸랑 소리를 내민다.

“아줌마. 오뎅 하나 주이소.”

간장에 찍어 한입 베어 무니 아리한 맛이다. 이게 서울 맛인가.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국물을 몇 번이나 빈속에 들이킨다. 무 국물이 긴장된 위장으로 똬리 친다.

먹은 값을 지불하고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다. 뭐야. 촌놈이라고 떠보는 건가.

참다못한 나는 한마디를 내질렀다.

“잔돈 안주십니까.”

나의 이 말에 아줌마는 무슨 소리냐는 표정인 듯 눈이 동그래진다.

“어떤 잔돈요?”

나는 지지 않는다. 서울 첫날에 이렇게 물러서면 안 되지. 당당하게 나서야지.

“오뎅 하나만 먹었으니 잔돈을 주셔야죠.”

나의 요구는 당당 하였다. 내가 살았던 곳에서는 당연한 반응이었기에.

“500원 인데요.”

500원? 이럴 수가. 고개를 끄덕이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니미럴. 서울이란 도시가 이런 곳이구나. 다섯 배나 더 뻥을 튀겨 받아먹다니. 앞으로 배가 고파도 함부로 사먹기 힘들겠군.

 

비질을 시작 하였다. 애써 쓸어 내렸다. 나의 어제를 누군가의 시간과 그때의 흔적을.

먼지와 바퀴벌레와 머리카락의 섞임이 한데 뭉쳐 쓰레받기에 담겨져 쓰레기통으로 향하였다.

이젠 걸레질을 하여야 할 터.

똑똑.

주인 할머니가 빠끔히 눈을 내미신다.

“걸레를 빌릴 수 있을까요. 방청소 하는 중인데.”

안되어 보였는지 할머니는 말을 건네신다.

“날씨가 쌀쌀할 텐데 덮을 이불은 있소.”

“아예, 침낭 하나 가져온 게 있어 괜찮습니다.”

할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썼던 이불이라면서 베게와 함께 내미신다.

횡재다. 그렇지 않아도 잠자리를 어떻게 하나 고민을 했었는데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다 똑같은 모양이다. 어려울 땐 도와주는 분이 있으니.

 

집에서는 평소 거들떠도 않았던 걸레질을 시작 하였다. 귀퉁이로부터 가운데까지 싹싹.

얼룩이 묻어간다. 조금씩 조금씩. 방의 때와 함께 시커먼 멍울이 진다.

서울생활하면 몸도 마음도 각박해 진다고 하는데 아마 내모습도 몇 년 후가 되면 이렇게 되겠지. 왠지 씁쓰레하다. 처음 마음을 지켜가야 할 텐데.

세면장으로 향한다. 수도꼭지를 틀고 대야에 물을 받았다. 차다. 오랫동안 틀어도 뜨거운 물이 나오질 않는다. 그제야 복덕방 할아버지 말이 떠올랐다.

“뜨거운 물이 나오질 않으니 요령껏 써야 될 걸세.”

냉기가 손으로부터 치달아 목뒤로 후줄근 올라온다. 어떡하나. 일단 빨던 걸레는 마저 빨아야지.

빨래판에다 걸레를 펼치고 이리 쿵덕 저리 쿵덕 치닫는다. 고무장갑이 있으면 좋겠는데. 인제 와서 후회하면 무엇 하리.

빨갛게 된 손을 입김으로 호호 불어가며 손목에 힘줄을 내민다.

열심히 살아야 돼. 내가 이곳에 어떻게 올라 왔는데. 후퇴하면 안 돼. 끈기 있게 붙어 있어야 돼.

하이타이만큼은 아니더라도 나의 노력으로 땟물이 빠진다.

 

이방인의 하루가 저물어갈 무렵 피곤이 몰려온다. 배도 고프다.

가져온 침낭과 함께 이불을 덮어 나의 몸을 누우니 싸늘한 형광등 하나가 박혀있는 천정의 벽이 보인다.

가까워 보이지만 멀다. 앞으로 내가 가야할 길을 말해주는 듯하다. 말똥말똥 바라보노라니 달이 떴다.

이제는 잠을 청해야 할 터.

내일 일터로 나가려면 서먹하더라도 억지로라도 눈을 붙여야한다.

별을 세어본다. 별 하나 나하나 별둘 나둘.

양이 나타났다. 양한마리 양두마리 양세마리.

애써 드는 잠은 애써 잠이 깬다.

낯선 곳 혼자 자본지가 얼마만이던가.

그렇군. 혼자군. 이역만리 타지에서 이젠 온전히 혼자군.

밥도 혼자 먹고 잠도 혼자 자고 생활도 혼자 하는 진정한 홀로서기가 시작 되었군.

가만있어보자. 밥을 해먹으려면 도구가 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 회사 식당에서 수저와 식판을 가져오면 되겠군.

내일은 퇴근할 때 슈퍼에서 라면과 쌀도 조금 사야 되겠다.

할 일이 많구나. ㅎㅎ

내일 해는 뜨겠지. 이곳의 태양은 어떨까.

 

한강철교를 지난다. 칙폭칙폭 살아온 역사의 메아리를 뒤로하고.

강산이 변하였다. 나의 치솟는 하얀 세치만큼이나 지나간 시간이 많아졌다.

그럼에도 지방 출장을 마치고 이곳에 입성할 적마다 왠지 울컥하는 나의 가슴은 한결같다.

KTX가 다니기 이전 새마을호를 타고 한강철교를 들어설시 객실 안에 울려 퍼져 나오는 노래 하나가 있었다. 패티김 누님의 ‘서울의 찬가’.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새들의 노래 웃는 그얼굴…….

이 노래만 들으면 비장한 감정이 들었다.

서울이구나.

대한민국 심장인 서울이란 도시에 드디어 들어섰구나.

열심히 살아야지. 아프지 말아야지. 남모를 도전의식을 다시금 느끼곤 한다.

아직도 청춘이어서 그런가.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어설프다.

한때 서울을 상징하는 랜드 마크로써 자리를 했었고 그러하였기에 시골 어르신들이 관광버스를 대절해 구경을 오기도 하였던 63빌딩.

하지만 아직도 나는 63빌딩을 오른 적이 없다. 실제 층수가 62층인 것도 최근에야 알게 되었으니.

나는 그날 하루처럼 아직도 어설프다.

IP *.130.104.63

프로필 이미지
2012.07.10 17:40:42 *.114.49.161

이제 서울서 산 세월이 고향에서 산 세월보다 더 긴 거지요?

아, 이십대 후반에 오셨으면 아직 아니겠네요.

땡땡해서 같아지는 날이 와도 여전히 서울 사람 아닌 느낌이었어요. 저는.

잘 읽었습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092 나의 오지 [1] 장재용 2012.07.17 2076
3091 #15. 7월 오프수업 - 내적 외적 탐험 [2] 한젤리타 2012.07.17 2268
3090 7월 오프 수업 - 내적 외적 사건 [2] [1] 세린 2012.07.17 2442
3089 7월off수업_내적 외적사건 [1] 서연 2012.07.17 2379
3088 나의 내적 탐험 이야기 학이시습 2012.07.16 2403
3087 7월 off수업-내적 외적사건 [4] id: 깔리여신 2012.07.16 2306
3086 해줄 것이 없어 미안해(수정) [6] 루미 2012.07.10 2301
3085 #37. 신치의 모의비행-서른살생일 [8] 미나 2012.07.09 2511
3084 쉼표 열둘 - 멀리가려면 함께 가라 file [8] 재키 제동 2012.07.09 2625
3083 나의 문명 전환 [6] 콩두 2012.07.09 2374
3082 원형극장에서 부르는 노래 [6] id: 깔리여신 2012.07.09 2530
3081 김교수와의 만남(공개) :) [7] 세린 2012.07.09 2356
3080 Louisvuitton과 문명 그리고 의식성장에 관한 소고. file [11] 샐리올리브 2012.07.09 2169
3079 쌀과자 #14_인간활동의 동기 [4] 서연 2012.07.09 2161
3078 최초의 여성 심리 비극 ‘메데이아’ 를 읽고 생각 한다. [10] 학이시습 2012.07.09 3592
3077 #14. 자연과 하나가 된 시인 '테오크리토스' file [6] 한젤리타 2012.07.09 2752
3076 길을 거스르다 [7] 장재용 2012.07.09 2441
» 단상(斷想) 105 - 도시의 그날 하루 file [1] 書元 2012.07.08 2410
3074 #36.신치의모의비행-누가날위해울어줄까 [6] 미나 2012.07.03 2370
3073 [재키제동이 만난 쉼즐녀 3] 로레알 키엘 이선주 상무 file [18] 재키 제동 2012.07.03 87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