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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9일 05시 40분 등록

그리스인 이야기 3

-. 앙드레 보나르 지음

-. 양영란 옮김, 강대진 감수, 책과함께, 2011

 

저자에 대하여

지난 주 '그리스인 이야기 1,2'에 대한 내용으로 대체합니다.

 

 

■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쇠락과 새로운 발견, 에우리피데스의 비극<메데이아>

 

11 그것은 여전히 희망의 불씨로 남아 있으면서 인류의 기억 속에서 다시 타오를 날을 위해서 끊임없이 몸을 뒤채고 있는 것이다..

 

16 그는 인간의 비참한 삶, 약점, 고독 등 자기 시대와 그 시대를 동요하게 만드는 모든 요소들에 관심을 보였다. 요컨대 그는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개방적인 정신의 소유자였다. 어쩌면 지나치게 그런 편이었다. 그는 너무 충격적인 상황에서도 그것을 잊는다거나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나지 못하는 성미였다. 그렇기 때문에 솔직히 그의 작품에는 이따금씩 비극적인 행위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장면들이 삽입되어 전체 분위기를 흐려놓는 경우도 있다.

 

17 요컨대 모든 쇠락은 새로움의 예고이기도 하다는 의미에서 볼 때, 에우리피데스는 대표적인 쇠락기의 시인이었다. 그는 고대 비극의 파괴자인 동시에 그 비극을 연장하고, 젊게 만들어 르네상스로 연결 시켜주는 가교 역할을 한 시인이기도 하다. 다양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마음을 천착함으로써 고대 비극을 인간화한 장본인인 것이다.

 

21 "그래, 여자는 비겁할 수 있고, 칼을 들이대면 무서워서 벌벌 떨 수 있어. 하지만 잠자리를 지킬 권리를 빼앗긴 여자보다 더 피에 굶주린 영혼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지."

 

22~23 "결혼할 테면 하세요. 그래서 어디 행복하게 잘 살아들 보시라니까요!" 이 장면은 전체적으로 볼 때, 진정하지만 절제된 정념의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메데이아의 대사가 이어질 때마다, 진정한 고통의 이면에서 놀라운 기쁨이 솟구치는 것을 우리는 느낄 수 있다. 자신이 더 강하다는 판단에서 오는 기쁨, 투쟁해서 무찌르고 말겠다는 기쁨.... 메데이아는 이 장면에서 복수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 즉 하루라는 유예 기간을 얻었다.

 

23~24 메데이아의 힘을 미리 느껴본 우리는 이제 그와 동등한 또 하나의 힘, 즉 이아손의 힘이 데메이아의 힘과 맞서는 장면을 보게 된다. 메데이아가 불길처럼 타오르는 열정적인 인간이라면, 이아손은 얼음장처럼 차갑고 냉정한 인간이다.

 

29 한편 외부의 갈등은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진행된다. 메데이아는 유명한 시구로 이 갈등을 마무리 짓는다.

  " 나의 분노는 나의 결심보다 강하다네."

"나의 분노는 이는 다시 말해서 정념이며, 매데이아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악마, 살인적인 증오를 가리킨다.

 

30 메데이아는 게걸스럽게 이야기를 듣는다. 참혹함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맛본다. 그러다가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난다. 다시 행동에 나서야 할 순간이 왔다. 해야 할 일이 있다. 메데이아는 달려간다.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이끌리는 마음을 잠깐 열어 보인다. 그러고는 이내 굳어진다. 이제 갈등은 끝났다.

 

30 시인은 우리에게 차마 아이들의 죽음 이야기까지 드려주지 않는다. 어쩌면 그 이야기가 끼어들게 되면 우리의 긴장감이 느슨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살해 당하는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합창단의 노래에 더해지면서.... 우리의 신경은 극도로 긴장한다.... 극중 행위는 전속력으로 전개된다. 벌써 무대에 등장한 이아손은 닫힌 방문 앞에 서 있다. 그는 문을 열기 위해 손가락이 부러지도록 두들겨댄다. 그는 젊은 아내의 죽음을 복수하고, 공주의 죽음으로 분개한 민중들의 보복으로부터 아이들을 구하려 한다. 그런데 합창단은 아이들이 이미 죽었다고 외친다. "너무 늦었다"는 한마디 말 때문에 얼마나 많은 비극이 일어나야 한단 말인가! 운명은 전속력으로 인간들을 몰아친다.

 

32~33 메데이아의 확고한 의지는 정념 앞에서 맥없이 무너진다. 정념은 메데이아를 사로잡는다. 그것은 어머니의 온화한 마음속에 깃들어 잇는 악마적인 요소다. 그러니 이 작품에서는 심리라는 문제가 대두된다. 심리와 소유욕. 심리적인 힘은 우주를 움직이는 힘과 구별되지 않는다. 우리들 자신만 놓고 보더라도, 우리는 과연 우주와 구분되는가? 에우리피데스가 발견한 심리적 사실주의는 결국 우리를 이 질문으로 이끈다. 에우리피데스는 메데이아의 악마적인 정념을 통해서 세계에 대한 우리의 소속감, '코스모스'에의 복속을 강조한다. 이것을 의식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그것으로 해방되는 것을 뜻한다. 요컨대 비극적 진실은 우리를 해방시켜주는 힘이다.

 

33 그가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한지, 즉 우리도 알지 못하는 우리 마음의 복잡다단함이다. 또한 우리 안에 깃들어 있는 이 힘은, 우리 자신이 그 힘에 대항할 수 없고, 그 힘은 우리를 파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 나타난 비극성

 

41 에우리피데스는 다시 한 번 우리의 본능(좋건 나쁘건 상관없다), 우리의 정당한 감정(가족애, 조국애, 명예욕 등)이 명확한 사고나 단호한 의지, 모두가 동의하는 원칙 등에 의해서 절제되고 통제되며 제어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가운데 우연에 의해 아무 방향으로나 튀며 결국 파국을 맞게 된다는 데에 인간 조건의 비극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46 극의 전개에서는 단 한 번의 실수도 발견되지 않는다. 등장인물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때마다, 그래서 극중 행위와 그 행위가 우리들 관객에게 불러일으키는 정서(희망 또는 두려움)가 특정 방향으로의 의미를 갖게 되면, 어느새 다른 인물이 등장해서, 지극히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는 감정에 딸라 움직이며, 앞에서와는 전혀 반대되는 방향으로 극중 행위와 우리의 정서를 이끌어간다. 한 방향에서의 정점은 곧 추락을 의미한다. 이런 식으로 우여곡절을 그리는 극중 행위는 잠시도 주저함이 없이 이피게네이아의 죽음을 향해 전진한다.

 

49 극중 행위를 지배하는 어긋나는 시간은 모든 노력을 수포로 만든다. 가령, 아가멤논이 딸을 구하려고 할 때에는 메넬라오스가 방해를 하고, 메넬라오스가 이피게네이아를 도우려고 할 때에는 아가멤논이 나서서 그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클뤼타임네스트라와 이피게네이아가 눈물로 애원 할 때, 정 많은 아가멤논이 나서서 그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클뤼타임네스타라와 이피게네이아가 눈물로 애원할 때, 정 많은 아가멤논, 정서가 불안한 이 인물은 갑자기 반석처럼 단호해진다. 또 아킬레우스가 도와주겠다고 나서자 이번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게 해달라고 간청하던 이피게네이아가 갑자기 모든 것을 단념하고 죽음을 향해 돌진한다.

 

49~50 그것도 악의에 찬 인물처럼 단단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독가스처럼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다가 인간 영혼의 모공을 통해 몸 속으로 스며들어 몸을 부패시키는 색이다. 바꿔 말해서, 사건의 틈새를 파고들어 행을 불행으로 바꾸어놓는다. 서둘러 죽음으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너무 늦게 쓴 편지 정도만으로도 운명을 뒤바꿔놓기엔 충분하다.

 

50~51 불행을 제압하기 위해 각자가 자신의 의지를 내보여야 하는 순간에 인간들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합의의 부재. 저마다 자기 방식으로 행동할 뿐이다. 각자가 제멋대로 행동하게 되면, 마주잡은 손들은 슬그머니 풀어지게 마련이다. 이피게네이아는 자신에게 남아 있던 마지막 손마저 뿌리친다.

 

52 시인은 우리에게서 세계의 코스모스(이 아름다운 그리스 단어는 세계, 질서, 아름다움을 동시에 의미한다.)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에너지를 일깨워준다. 우리가 이 비인간적인 극, 이 비극 속으로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우리는 점점 더 비극성을 넘어서는 곳에서 무엇인가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음을 느끼며, 이것이 코스모스, 우리가 사는 세계의 모호한 소리, 시의 소리(이미지, 음악, 리듬), 이 세계의 다양한 삶, 사물의 색, 존재의 음악, 빛과 그림자의 유희 방망이질치는 우리의 심장 박동임을 알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우리를 부르고 이에게 손짓한다. 시적 언어가 모습을 드러내며, 끔찍한 비극성과 뒤섞이면서 우리에게 그것을 견뎌낼, 아니 더 나아가서 그것을 사랑할 힘을 준다. 시적 언어는 우리에게 모호한 가운데 '감미로운 고통(이것이 바로 시가 주는 쾌락의 정의이기도 하다)' 이라고 표현했던 것을 선사한다.

 

52 세계는 언어를 요구한다. 우리는 문득 새로운 분위기 속으로 이끌린다. 이 새로운 분위기는 결코 시시한 관념의 세계가 아니다. 시인의 이미지(단어들의 음악성, 리듬의 율동 등 시적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요소들이 함축되어 있는 이미지)는 보다 진정으로 현실적이면서 한결 숨 쉬기 편한, 그러니까 현실보다 한결 가벼운 현실을 통해서, 비극적 참담함이 우리의 시야를 압도한 순간 우리에게 희열을 안겨주면서 만개한다.

 

55 늘 이런 식이었다. 코스모스의 아름다움, 우주의 아름다움은 항상 우리 인간의 조건이 지니는 공포와 더불어 날실과 씨실처럼 짜였다.

 

58 우리 시라고 부르는 그 소리, 우리를 기쁨으로 채워주는 소리, 우리에게 비극의 잔혹성을 사랑하게 만드는 그 노랫소리가 들린다. 그리스 비극은 우리를 공포와 동시에 희열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우리의 마음은 야성적인 희열 속에서 춤춘다.

 

비극<박카이>

62 <박카이>는 말하자면 비극 시인으로서의 에우리피데스를 이해하는 열쇠 같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극도로 상반되는 해석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 작품은 그가 신에 귀의했음을 보여준다"에서 부터 "신에 대한 가장 확실한 거부를 나타낸다."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의견이 분분했다.

 

68 디오뉘소스: 신은 내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계십니다. 당신의 세속적인 눈이 볼 수 없을 뿐입니다.

 

82~83 앞에 나오는 지혜(소위 인간의 지혜)에 중성적이며 매우 지적인 단어. 지혜에 인위적인 성격을 부여하는 단어 소폰이 쓰인 반면, 두 번째 지혜에는 소피아(sophia), 인간이 비판정신을 버림으로써 되찾게 되는 지혜가 쓰였음은 의미심장하다. 두 번째로 지혜로 쓰인 단어는 특히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오래된 여성 단어로, 살아 있으면서 생산적인 지혜를 가리킨다.

 

 89 에우리피데스가 얼마나 '온 영혼'을 다해 시인이었는지를 이 작품보다 더 잘 보여주는 작품은 없다. 그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을 통해서 자신의 천성과 반대되는 힘마저도 당당하게 발산한다. 실존을 위해서 아무리 격렬하게 상반되는 요구들이 필요하다고 해도, 그는 당당하게 이 모드 요구를 감수한다. 그는 그 요구들 중에서 어느 것도 부정하지 않으며, 이 힘든 긴장을 감내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는 비극 시인이기 때문이다.

 

투퀴디데스와 도시국가들 간의 전쟁

 

101 이렇듯 투퀴디데스의 인물들은 위대한 소설가에 의해 창조된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끝없이 질문하게 하고, 설명을 요구하게 만든다. 사실 그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존재들이 자신을 확인하는 방식이 아니겠는가.

 

103 때때로 논쟁의 긴장감은 대리석처럼 찬란하면서 묵직한 촌철살인 같은 문장으로 귀착된다. 사다리처럼 단순하면서 곧은 문장, 가령 페리클레스가 아테나이 시민들에게 던진 보석 같은 문장 하나는 백 문장보다 빛난다. "행복은 자유 안에 깃들어 있고, 자유는 용기 안에 깃들어 있음을 안단, 전쟁의 위험과 당당히 맞서라."

 

105 투퀴디데스는 레우킵포스의 말을 오래도록 숙고했다. "우연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사건은 합리적인 원인의 결과로, 필연성의 지배하에서 발생한다."

 

108 바로 투퀴디데스의 눈앞에서 벌어졌으며, 그가 기술하는 내용은 더 이상 제국의 형성과 위대함에 국한될 수 없었다. 제국의 와해가 필연적으로 포함되어야만 했다. 그는 기원전 431년 전쟁의 발발과 더불어 자료 수집을 시작했을 때에는 일이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아테나이가 무릎을 꿇은 기원전 404년에는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27년 동안 계속된 펠로폰네스 전쟁은 아테나이 지배 체제하의 그리스 통합이 실패했음을 의미하며, 아테나이의 제국주의가 실패였음을 의미했다. 한마디로 도시국가들로 이루어진 그리스의 몰락을 뜻하는 것이었다.

 

109 도시국가, 민족국가, 국가, 이런 것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한마디로 이익 집단, 개인들의 이해관계의 총합이다 투퀴디데스가 보기에, 국가란 고대에 너무도 쉽게 받아들여지던 것처럼, 고유한 이해관계를 지닌 새로운 존재가 결코 아니다. 국가는 총체가 아니며, 계약의 공간일 뿐이다. 개인적인 이해관계 사이의 계약은 다른 어떤 틀보다 도시 국가라는 틀 안에서 가장 잘 보호받을 수 있었다.

 

113 이렇듯 삶이 역동성이다. 하나의 민족에게는 남을 이기고 승리를 쟁취하는 것만이 자신"이기다' '뛰어나다'를 동시에 의미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국제법이나 정의 따위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점은 이미 분명하게 드러났으리라고 생각한다. 역사란 살고자 하는 의지의 전개, 살고자 하는 의지 사이의 투쟁이다.

 

데모스테네스와 도시국가 시대의 몰락

 

122 그가 쓴 문장을 제대로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중간에 숨을 끊지 않고 단숨에 이어서 말하되, 간간이 짧은 휴지부, 그러니까 총알을 쏠 때처럼 목표한 대목에 도달하기 직전 숨고르기를 한 다음 곧이어 목표물을 향해 돌진하는 식으로 연설을 해야만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적절한 연습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의지로 데모스테네스는 발음을 교정하고 비효율적인 호흡을 바로잡았으며, 틱 장애로 굽어진 어깨도 교정했다. 그의 초기 연설들은 청중들의 웃음거리가 되었지만, 그는 결국 민회에 모인 사람들이 가장 경청하는 연설가로 우뚝 섰다.

 

128 데모스테네스는 무기력에 빠진 아테나이인들에 대항해서, 그리고 마케도니아의 필립포스에 대항해서 10년 동안이나 이 같은 긴박감을 가지고 지지를 호소했다. 뎀스테네스는 절대로 용기를 잃지 않았다. 그에게는 아테나이인들의 병든 '귀를 치료해주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플라톤의 정치적 대망

 

149 "그런데 저 아름다움에 아주 사소한 한가지 요소만 덧붙여 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가지 요소라니, 그게 뭡니까?"라고 크리티아스가 묻는다. "영혼의 아름다움이라네." 소크라테스가 대답한다. 플라톤이 존경해 마지않았으며, 온 마음을 다해 닮고 싶어했던 카르미데스는 소크라테스가 지혜를 정의해보라고 요청하자 머뭇거리기 시작한다. 뤼시스도 우정에 대해서 묻자 같은 태도를 보였으며, 용감한 무사 라케스마저도 용기가 무엇인지 정의해보라는 요구에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가 하면 박학다식한 궤변의 대가 힙파이스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154 플라톤의 관념론의 심각한 의상을 안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그에게 치명적인 상처 였던 것이다.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아니 그저 살기 위해서라도 그는 소크라테스가 죽지 않았음을 확인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소크라테스가 계속해서 말을 하도록 해야 했다. 그의 모든 철학은, 그가 고안해낸 문학적 픽션의 형태마저도, 우선적으로 소크라테스는 살아 있으며 살아있는 소크라테스가 여전히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플라톤과 소크라테스, 즉 정의와 혼동되는 소크라테스, 정의로운 사람 그 자체인 소크라테스와 다시 만난다.

 

154~155 이때부터 플라톤은 스승에게 경의를 표한다. 처음엔 그가 쓰고 사람들이 소크라테스의 대화라고 명명한(플라톤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소크라테스의 이미지에 따라 재구성되었지만, '역사적인' 소크라테스에 상당히 근접했기 때문에) 일련의 짧은 대화에서 시작했다. 플라톤은 또 탁월한 그의 저서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통해서도 스승에게 경의를 표하고 그를 복권시킨다. 이 작품은 법정에 선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 진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155 똑같은 구원의 방식이 <국가>에도 등장한다. "철학자들이 국가의 왕이 되지 않는 한, 또는 현재 왕이라고 불리는 자들이 진정하고 충분히 자격 있는 철학자가 되지 않는 한, 정치 권력과 철학이 동일 인물 안에서 결합하지 않는 한.... 국가를 좀먹는 해악은 물론, 인류의 해악마저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플라톤은 정치를 해야 한다는 타고난 소명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가 확립하려는 철학, 그가 등대처럼 우뚝 세우고자 하는 형이상학은 그에게 주어진 임무, 즉 국가의 정치를 담당한다는 임무의 서곡에 불과했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국가란 민주주의의 광기 속에서 거덜이난 아테나이가 아니라 철학자들이 왕으로 군림할 미래의 국가를 가리킨다.

 

155~156 그런데 그가 원하는 정치는 도대체 어떤 정치인가? 헛소리에 들떠있는 아테나이에 제안하는 지혜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 <고르기아스>에 이 문제에 대한 명쾌한 답이 들어 있다. 진정한 정치란, 복잡할 것도 없이 국가 안에 사는 시민들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이를 담당한 자들은 다른 건 생각할 필요도 없다. 시민들을 보다 정의롭게 보다 낫게 만들기만 핟면 된다. 시민들에게함대를 주고 병기고와 대량의 무기, 항구를 내어주는 것은, 테미스토클레스와 페리클레스가 그랬드시, 그들에게 제국을 주는 것이며, 경박스러운 짓거리로 그들을 재미나게 만들어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니, 그보다 훨씬 고약하게도 그들을 전쟁에 대배해서 무장시키며 결과적으로 그들을 파괴하는 것이다 반면, 그들에게 정의를 주는 것은 불행에 대비해서 그들을 무장시키는 것이며, 그들에게 덕성을 길러주는 것은 그들에게 행복을 선사하는 것이다. 행복은 모든 인간이 추구하며, 모든 인간에게 필요한 유일한 재화다. 이것이 바로 철학자가 행동에 돌입하기에 앞서서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역설 중의 하나("불의를 감내하는 자는 불의를 행하는 자보다 훨씬 행복하다." 이 역

설은 소크라테싀 역설인 동시에 오르페우스의 역설이기도 하다)에 맞추어 정립해야 할 것이다.

 

156 기원전 387(그의 나이 마흔 살이었다)에 그는 아카데메이아를 세워 진정한 철학자들, 즉 미래의 국가를 통치할 인재들을 키우기 시작했다.

 

157 플라톤의 학당, 고대 말엽에 생겨난 이 최초의 고등교육 기관은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진 에너지의 보고였다. 이곳에서는 말하자면 폭발적인 힘을 제조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고대를 계승하기 될 새로운 시대를 준비했다. 이 새로운 시대란 기독교 세계를 의미한다.

  플라톤은 <국가>를 저술하고, 이어서 <법률>을 집필했다. 이 두 저술은 정치에 대한 그의 변치 않는 소명을 더할 위 없이 뚜렷하게 보여준다.

 

157~158 플라톤은 항상 이탈리아 남부와 시켈리아에 매력을 느꼈다. 이미 오래전부터 덕성이 필연적으로 학문으로 승화되어야 한다고 확신했던 플라톤이  타라스의 아르퀴타스와 만난 것도 그곳이었다. 아르퀴타스는 수리역학과 음향학의 선구자이며 당시 상당한 권위를 누리던 '퓌타고라스 학파'에 속하는 철학자였다.

 

158 플라톤은 퓌타고라스 학파와의 접촉을 통해서 금욕주의적인 열정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는 그가 나이 들어서 집필한 대화편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고리기아스>, <향연>, <파이돈>,<파이드로스>등에 새로운 신앙을 불어넣었다.

 

158 시켈리아에서는 다른 하늘, 다른 경험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플라톤은 이미 이탈리아나 다른 곳에서 젊은 디온과 우정 관계, 정치적 동지 관계를 맺었다. 디온은 따뜻하고 열정적이며 약간 공상적인 정신의 소유자였다.

159~160 아테나이제도의 쇠퇴는 그에게 시켈리아에서의 시도를 재개할 명분을 주었다. 데모스테네스는 필사적으로 아텐나이에 채찍질을 가했다. 플라톤이 시켈리아를 여행할 무렵의 아테나이(기원전 367년과 361), 플라톤의 표현에 따르면, 가증스러운 민주주의일뿐 아니라 혐오스런 망측한 '연극정치'의 산실이었다.

 

162 플라톤의 탐구(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통치체제에 대한 탐구)는 아테나이 민주주의가 실패한 실험이라는 확신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이 출발점에 대하서 말하자면, 그는 이를 증명하려 들지 않는다. 그는 어째서 아테나이 민주주의 가 실패했는지 그 원인을 찾아보려 하지 않는다. 나는 앞에서 노예제도의 영속성이 실패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플라톤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원인 밝히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당연히 치료법도 찾아낼 수 없었다. 하지만 출발은 잘못 되을었지라도 그의 탐구는 대단히 흥미롭다. 그가 지극히 엄정한 사고력과 상상력으로 도시의 혁신, 시민 재교육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시도는 궁극적으로 인간 영혼을 구원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이러한 시도가 인류 역사 내내 지속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163~164 저술 전체를 통해서 교육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인 플라톤이었지만, 노동자들에게 문화를 제공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노동자들은 일만 잘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기껏해야 국가 전체의 축제, 즉 종교를 통해 이들이 국가에 대해 지고 있는 의무를 교육하면서 이들이 접하게 될 숭배의 대상의 이름이나 가르쳐주는 정도였다 노동자 계급의 주요 의무는 주어진 위치에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고유한 덕목이란 욕심을 절제하고, 정념에 제동을 거는 것이었다. 이들은 늘 절제와 절도를 익혀야 했다.

 

164~165 그런데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플라톤이 자신이 생각하는 국가의 시민에게는 절대 권하지 않는 시가 있었으니, 바로 비극 시다. 아이스퀼로스와 소포클레스 시대만 하더라도 아테나이의 영광이었던 비극이 플라톤의 눈에는 위험스러운 열락으로 비쳤다. 그것은 인간 정신을 나약하게 만들며, 죄스럽기 한량없는 호의로 정념을 포장하는 것이었다. 비극 시인들은 호메로스처럼 그의 국가에서 추방당했다. 요컨대 예술에 대해 지나치게 윤리 의식을 강요하는 형국이었다. 플라톤의 이상국가에서 군인들은 절대 악을 접해서는 안 되었다. 또한 무력을 이용해서 권력을 쟁취하려는 시도를 해서도 안 되었다. 군인은 오로지 정의로운 명분 옹호에만 열정을 바쳐야 했다.

 

166 " 그 어느 어머니도 자신이 낳은 자식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가능한 모든 방법을 통원할 것이다!" 이런 말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런데 플라톤의 허황된 공상은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혹시 구소련의 공산주의를 의미 하느냐고? 아니, 그렇지 않다. 교회의 군사들, 바꿔 말해서 사제들은 전적으로 공동체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규정한 가톨릭교회에서 통용되는 청빈 서약, 정결 서원 등이야말로 재산과 여자의 공동 소유만큼이나 반()자연적인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양자는 어쨌거나 돈이라는 미끼 없이, 또 여자라는 매개 없이, 개인으로 하여금 공동체를 위해 전적으로 봉사하도록 한다는 동일한 목표를 지향한다.

 

166 중세에는 사회적 현실에 따라 기독교 사회의 인구를 세 가지 계급으로 분리하는 것을 당연한 규범으로 여겼다. 라보라토레(노동자), 벨라토레(병사, 무사), 그리고 오라토레(사제), 이렇게 세 계급이었다. 그중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계급은 사제였으며, 그 대신 이들에게서 독신주의와 청빈 서원을 통해 가정적인 관심을 박탈했다.

 

166 철학자들의 지배라고 하는 원칙은 틀림없이 플라톤이 타라스에서 접한 퓌타고라스 학파로부터 차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167 국가의 주인, 즉 철학자들은 자신에 대한 확신이 너무도 강한 나머지 우리 마음이 크게 애착을 보이는 것, 즉 개인적인 자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점을 덧붙일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는 어떤 수단을 사용하느냐는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오직 결과만이 고려의 대상이다. 필요하다면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또 일부는 추방할 수도 있다. 철학자는 자신이 실현하려는 개혁의 정당성을 시민 각에게 설득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저 개혁가가 스스로 그 필요를 통감하기만 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린아이처럼 진실을 알 능력이 없는 일반 민중들에게는 그럴듯한 이를 만들어내면 그뿐이다. 가령 우화를 들려준다거나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 따라서 거짓말 중에는 이따금씩 '고귀한 거짓말' 이라고 할 만한 것들도 있다. 어떤가,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위대한 플라톤이 이 정도까지 천박해질 수도 있었다.

   

168~169 그가 제안하는 국가에서는 진보가 철저하게 배제된다. 이 국가는 영원히 완벽한 존재로 제시된다. 플라톤이 보기에 이처럼 절대적인 정의가 균형을 이루는 국가에서 진보는, 아니 움직임, 동요는 퇴폐와 동의어가 될 수밖에 없다. 철학자들은 모든 지식을 독점하고 절대로 그릇된 판단을 하지 않는 국가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요컨대 플라톤은 역사를 배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플라톤식 아름다움과 환상

 

173 이와는 다른 플라톤이 있다. 물론 동일 인물이지만, 앞에서 소개한 플라톤이 한편으로는 허황되기도 하면서(<국가>에서 드러난 것처럼) 한편으로는 제법 합리적인(<법률>에서 드러난 것처럼)새로운 국가를 만들어내기 위한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면(그는 이 탐구를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계속했다), 또 다른 플라톤은 우리가 사는 세계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탐구했다. 우리를 둘러싼 현실은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우리의 눈이 보는 것, 우리의 귀가 듣는 것, 이것은 모두 실재인가? 아니, 그것이 실재 그 자체인가, 아니면 실재의 가상에 불과한가?

 

174 그는 태양과 별을 사랑했으며, 하늘과 바람결에 실려가는 구름, 미풍에 흔들리는 나무, 푸른 초원과 강물, 물고 수면에 비쳐 늘 바뀌는 존재와 대상의 그림자를 사랑했다. 그의 저술에는 자연의 세계가 늘 흐드러지게 넘친다. 백조와 매미들은 그의 신화 속에서 즐겁게 노닌다. 키가 큰 풀라타너스의 그리마, 샘물의 신선함, 보랏빛 포도송이의 향기 등이 소크라테스와 파이드로스가 영혼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나누는 대화의 배경처럼 등장한다.

 

174 플라톤은 무엇보다도 물리적인 자연의 걸작품으로서의 인간의 정밀한 아름다움, 성년이 되면 무르익게 될 청소년을, 체력 단련장에서 운동하는 청소년들의 우아함을 사랑했다. , 소크라테스가 말했듯이 그들 신체의 우아함 속에 배움으로 불타오르며 선해지려는 의지로 가득한 영혼이 자리하고 있어야 했다.

 

177 자신이 최초로 머물렀던 공간을 기억하며, 함께 수감되어 있던 동료들을 생각하면서, 그는 기쁨에 겨운 나머지 동굴로 다시 들어가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예전에 앉아 있었던 곳으로 가서 동료들에게 빛을 향해 어렵게 올라갔던 일과 그 속에서 발견한 믿을 수 없는 아름다움에 대한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조바심친다. 하지만 누가 과연 그의 말을 믿겠는가? 예전의 동료들은 그를 사기꾼 취급할 것이다. 심지어 동굴 속에 여전히 갇혀 있는 포로들은 그를 죽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플라톤이 사랑하던 스승 소크라테스에게 닥친 비극이 바로 그런 게 아니겠는가?

 

180 플라톤의 철학은 관념철학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의미에서 관념철학과는 다른 이데아, 즉 영혼만이 알 수 있는, 도는 다시금 알아볼 수 있는 영원한 본질의 객관적인 존재에 관한 철학이다. 우리의 영혼은 이 같은 천상의 존재들과 어울려 살다가, 플라톤이 영혼의 감옥이라고 부르는 것(그보다 앞서서 퓌타고라스 학파가 그렇게 주장했다.), 즉 맹목적이며 필연적으로 소멸하게 되어 있는 우리의 육체 속으로 추락했다.

 

185 아킬레우스는 갑자기 힘을 되찾은 듯 분명하게 대답한다. "나는 저승에서 왕으로 지내는 것보다, 지상에서, 태양 아래에서 가난한 농부를 돕는 날품팔이 일꾼으로 사는 편이 더 좋다."

  이 한마디는 인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고대 그리스를 더할 나위 없이 잘 요약한다. 서글픈 사후 세계의 위안에 대한 자상에서의 현재 삶이 가지는 으뜸가는, 유일무이한 가치를 확인시켜주기 때문이다.

 

190 소크라테스와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이 마음에 담고는 있지만, 영혼의 불멸성이 그가 유일하게 손아귀에 쥐고 있는 재산인 이 시점에서, 차마 입 밖으로 내어 말하기를 주저하는 의혹들, 주저하지만 진실에 대한 존중 때문에 결국 표현하게 되는 의혹들은 그 용기가 주는 진정성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이를 반박하기 위해 동원하는 논리보다 훨씬 설득력이 강하다.

 

191 , 이것이 불멸을 열망하는 현자 소크라테스가 가려는 길이다. 그는 덕을 행하기로 선택했을 뿐 아니라, 금욕주의와 육체, 불멸의 영혼이 이동주기에 다라 잠시 "닻을 내렸던" 그 육체의 "고행"(다른 대목에 명시되어 있다)을 택했다.

 

191~192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영혼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철학을 하는 것이라네. 다시 말해서 궁극적으로 고통 없이 죽는 연습을 하는 것이라네. 그것이 바로 죽음으로 가는 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이런 상태에서 영혼이 육체와 분리 되면, 영혼은 영혼과 닮은 것, 즉 보이지 않고, 신적이며, 영원토록 살며 현명한 것을 향해서 나아가지. 거기에 이르면 실수와 광기, 두려움, 무절제한 사랑, 그 외 인간의 다른 모든 해악으로부터 벗어난 영혼은 행복을 누린다네. 그리고 미리 깨달은 자들에 대해서 말하듯이, 영혼은 신들과 더불어 진정한 영원을 누리게 되지....

 

193 철학은 육체에 달린 눈의 증언은 왜곡으로 가득 찼으며, 귀와 다른 감각기관들의 증연 또한 환영으로 차고 넘침을 보여주지. 철학은 영혼을,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것들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해 힘쓴다는 말이지....

 

195 "사는 것이 죽는 것이 아니고, 죽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님을 누가 알겠는가?"라는 에우리피데스의 말을 인용하고 설명하면서, <고르기아스>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실제로 우리가 이미 죽은 것은 아닌지 자문한다. 죽어서 우리의 무덤인 육체 속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닐까. 현재의 삶, 죽을 운명을 타고난 인간의 삶은 진정한 삶이 아니다.

 

195 우리의 영혼은 선명함과 밝음이라는 질서를 갈구하는 데 반해서 우리는 일종의 죽음 - 무질서 속에서 산다. 질서를 소유하고 있는 영혼은 실존을 소유한다. 자기 안에 실존이라는 재화를 간직하고 잇는 영혼은 선하며 행복하다.

 

199 이를테면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 죄인들(일반적으로 독재자들이 그렇다)은 자신들이 저지른 불의로 인해 영원토록 벌을 받아야 한다. 플라톤은 천국과 연옥뿐 아니라, 불의 악마들에 의해서 단테식의 형벌이 자행되는 지옥까지도 상상했다.

 

202 영혼의 불멸성을 증명하기 위해 플라톤이 보인 기나긴 집착은 오늘날의 눈으로 볼 때, 졸렬하고 궁상스러운 편견으로 보인다. 저속한 취향으로 낙인찍힐 염려를 무릅쓰고 말한다면, 그 같은 문제와 그 문제에 대해 플라톤이 제시한 해결책은 "내일은 면도 공짜"라고 말하는 동네 이발사의 전략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니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라고 말해온 대목에서 '우리'라고 말하는법을 익혀야 한다. 그렇게 하면 여러 세기 동안 인류를 고민에 빠지게 했던 그 문제는 우리의 사고 속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 테니까.  

 

215~216 이렇게 해서 플라톤은 기독교라고 하는 환상 속으로 스며들어갔으며, 이를 예고 했다.

파스칼의 <팡세>에 나오는 하나의 문장이 소박하게 그러나 눈을 번득이게 하는 섬광처럼 이번 장에서 보여주려고 한 내용을 요약한다.

기독교를 준비하기 위한 플라톤.”

 

221 죽음은 어디까지나 죽음, 즉 무(). 그런데 여러 세기 동안 이처럼 명백한 사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면, 플라톤은 분명 인간의 상식을 소외시킨 주요 인물들 중의 하나로 지적되어야 한다. 이 정도면 신에 버금가는 플라톤이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는 걸까?

 

아리스토텔레스와 생명체

 

225 천재라는 말은 그러니까 뛰어넘기, 새롭게 발견하기, 즉 창조를 함축하고 있다고 하겠다. 철학이 일종의 처세술 이라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변화시킴으로써 이 기술을 구체적으로 바꾸어놓았으므로, 두 사람 이후(알렉산드로스는 같은 시대에 활약하나 세 번째 천재라고 할 수 있다)의 인간들은 그 전의 인간들과 같을 수가 없게 되었다.

 

227 “나는 플라톤을 좋아한다. 하지만 진리를 더 좋아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이 비판에 대해 플라톤은 어린 망아지가 엄마 엉덩이에 발길질 해 데는 격이라고 평했다.

 

227 팔라톤은 예순 살이 넘었어도 자신의 철학을 고인 물처럼 가만히 가두어두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이 정립한 철학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그 가치를 확인하거나 문제를 제기했다. 스승과 제자의 우정은 이처럼 수렴되거나 상층하는 비판을 통해서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229 한편 마케도니아의 필립포스 왕은 이제 열네 살이 된 아들 알렉산드로스의 교육을 전담할 스승으로 아리스토텔레스를 점찍었다. 훗날 세계를 지배한 대왕이 될 알렉산드로스는 이렇게 해서 당대 최고의 석학이며 모범적인 학자, 사후 1500년이 지난 후에도 중세 최고 시인으로부터 뭔가를 아는 사람들의 스승이라는 찬사를 한 몸에 받았던 아리스토텔레스를 가정교사로 삼게 되었다. 중용을 전파하는 사도, 실현 가능한 것에 토대를 둔 상식을 설파한 철학자와 불가능한 것에 집착하며, 불가능한 것을 현실로 만든 대담무쌍한 청년 사이에 이루어진 이 놀랍고 역설적인 결합은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솔직히 우리는 그 점에 대해서는 별반 아는 것이 없음을 고백해야 한다.

 

229 그래도 세계를 제패하게 될 미래의 대왕은 아리스토텔레스 덕분에 <일리아스>를 사랑하게 되었고, 이를 최고의 걸작품으로 여겨 한평생 손에서 놓지 않았다.

 

229 철학자와 마케도니아 후계자 만남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뮤즈의 성소(당시에 이미 문화는 속세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던 것일까?)에서 2년 동안 지속되었다. 필립포스는 알렉산드로스가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 그를 불러들여 왕국의 통치를 맡기고 자신은 군사 원정길에 올랐다.

 

232 현대 역사학자 중의 한 사람은 그의 유언에 대해서 정말이지 아리스토텔레스는 뛰어난 남편이며 애정 많고 헌신적인 아버지인 데다 선량하고 정직한 사내였다는 말 정도로는 부족한 사람이라고 평했다.

왜 아니겠는가? 천재도 얼마든지 선량하고 정직한 사내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같은 평가에는 한 가지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 있는데, 바로 뛰어난 남편이라는 표현이다. 뛰어난 남편은은 전혀 양심의 거리낌도 없이 열렬하게 동성애에 탐닉했다는 사실을 참고삼아 덧붙인다. 동성애에 대해서 반감을 가졌던 플라톤과는 대조를 이루는 대목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232 일시적인 호기심 차원과는 거리가 멀었던 이 탐닉은 바로 이 세계 전체, 즉 이 세계를 구성하는 자연과 그 안에서 서식하는 모든 존재를 알고 이를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 욕망, 이 세계의 의미를 꿰뚫어 간파하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려는 불 같은 지적 호기심이었다.

 

234 아리스토텔레스는 항상 사실에서 출발하여 관찰하고 수집한 사실들을 비교하였으며, 이런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235 생물학자가 영혼을 연구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생명체의 조직과 활동을 연구한다. 생명의 독창성을 인정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236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한 합목적성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새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까?  그는 각각의 존재, 각각의 기관은 하나의 목적을 위해, 특별한 운명을 위해 자연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했으며, 이것이 바로 그가 말하는 합목적성이다. 자연은 그에 따르면 나름의 계획을 가지고 잇다. 생명체들이 타고난 이 운명, 궁극적인 존재 이유들을 발견하는 것은 말하자면 매 순간 이 세계가 지닌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매 순간 기쁨의 절정을 맛볼 수 있었다.

 

243 게다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지른 실수의 대부분은 그의 마음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과도한 지적 욕구 때문이었다. 그는 과학이란 마라톤이며 인내심과 신중함을 요한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이 같은 격렬함이 없었다면 과학은 태어나기 전에 죽어버렸을 것이다. 그 같은 격렬함 덕분에 그는 본의 아니게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지만 신속하게 진리를 터득할 수도 있었다.

 

248 일종의 먹물을 뿜어서 주변의 물을 흐리게 함으로써 위험에 처했을 때 스스로를 방어한다는 점(얼마나 놀라운 합목적성인가!) 등이 대표적인 공통점이다. 먹물은 오징어가 가장 선호하는 무기인 반면, 문어는 피부색을 바꿀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249 발바닥 끝은 굳은살 같은 경결로 되어 있는데, 이는 미흡하게나마 인간 발뒤꿈치의 모방품이라고 할 수 있다.

 

251 J.-M. 르블롱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동물은 지면에서 멀어지느냐 가까워지느냐에 따라 지능의 습득에서 가까워지느냐 멀어지느냐가 결정됨을 보여주었다고 평했다. 다시 말해서 지능이 낮을수록 지면 가까이를 기어 다니며, 그보다 조금 지능이 높아지면 지면에 네발로 딛고 다니고, 그보다 더 지능이 높아지면 두 발만이 지면과 접촉한다는 것이다.

 

251 식물이라고 하면 영양을 공급하는 기관인 뿌리가 직립 자세일 때와는 정반대되는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식물은 머리가 땅속에 들어가 있으므로, 감수성을 상실함은 물론 지능도 완전히 소멸해버린다.

 

255 자연은 그러므로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 연속성은 부동적이 아니며, 동물의 삶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삶으로 옮겨가는 상승(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위에서 인용한 대목들로 미루어보건대, 생명이 상승 움직임을 보이는가 하면 때로는 하강 움직임을 보인다고 보았다. “동물이 식물이 되기도 한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말이다.

 

260 “나에게는 린네와 퀴비에가 각각 방법은 다르지만 일종의 신이었다. 그런데 이 두사람은 옛날옛적의 아리스토텔레스에 비하면 초등학생에 불과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찰스 다윈이 한 말이다.

 

262 아리스토텔레스의 문제가 단조로운 건 사실이다. 그의 장점이라면 과장이라고는 없이 간결하고 사물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일 것이다.

장식적인 요소를 철저하게 배제한 그의 저작은 놀라운 방식으로 그러니까 세심하게 관찰되고 완벽한 이해된 현실이 놀라운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를 단단히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264 심리 면에서나 신체적인 면에서 동물은 인간으로 이행하기 위한 밑그림이며 초벌 작업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과 인간의 심리적인 유사성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주목할 만한 구절을 남겼다. “대부분의 동물들에게는 인간에게라면 좀 더 차별화된 방식으로 나타날 심리 상태의 흔적이 분명 존재한다!

 

265 아리스토텔레스의 인본주의란 궁극적으로 식물로부터 생겨나서 동물 전체를 관류하여 인간에게 이르는 생명, 살아 있는 존재를 이성의 빛으로 인도하는 흐름을 가리킨다.

 

알렉산드로스의 천재성 또는 우애에 관하여

 

272 그는 언제나 자신이 승리하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목표를 정하면 그는 곧장, 그의 열정이 식어버리기 전에, 단도직입적으로 그 목표를 향해 돌진했다.

 

273 그에게 지성이란 따뜻한 온기이며, 태양열이 그렇하듯이 활력을 창조하는 데 일조하는가 하면 파고에 가담하기도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의 열정적인 지성은 가장 높은 강도, 즉 화상 정도가 아니라 대단한 불길을 낳는 불덩어리였다.

 

274 그가 실현하고자 애쓴 일은 필립포스가 의도한 제국주의적 정복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요컨대 알렉산드로스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냈다.

 

277 알렉산드로스의 병력의 20, 아니 50배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군인의 수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이 반드시 이긴다는 신념에 차 있었다. 그는 장병들과의 첫 대면에서부터 자신의 신념을 전파하는 재능을 타고났다. 다리우스 3세는 용감무쌍하며, 전략가로서의 기질이 뛰어난 무사였다. 하지만 그에게는 정치적 혜안이 부족했고, 감정이 폭발할 때만 에너지가 충천한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278 머ㅏ케도니아의 젊은 왕은 정복당한 도시들에게 여러 조건들을 부과함에 있어서 자신을 해방자라기보다, 해묵은 불화와 갈등(솔직한 이런 것들은 그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을 해결하는 평화 중재자로 자처했다. 일반적으로 그는 정권을 잡고 있던 소수 귀족 집단을 배제하고, 이들을 일반 시민들로 대체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282 하지만 마케도니아의 젊은 왕은 이 절세의 미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일리아스>에 등장하는 아킬레우스와는 거리가 먼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아킬레우스가 상큼한 볼을 가진포로 여인 아름다운 브리세이스를 차지하기 위해 그의 목숨과 그가 가진 모든 것을 걸었던 것을 기억하는가?

 

285 파르메니온은 내가 알렉산드로스라면 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다라고 결론지었다. 그러자 그의 주군 알렉산드로스의 입에서 신랄한 응수가 튀어나왔다. “내가 파르메니온이라면 나도 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다.”

 

287 알렉산드로스의 영혼은 남들이 다른 신들에 대해 갖고 잇는 신앙을 건성으로 너그럽게 인정하기에는 원래가 너무도 종교적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자기 안에 이 다른 신들을 영접했다. 그는 새로운 형태의 신을 그저 너그럽게 인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을 자기 안에 받아들였다.” 이 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러한 태도 덕분에 이집트인들은 그를 신처럼 떠받들었으며, 그에게 역대 파라오들에게 주어졌던 칭호들을 부여했다.

 

296 그리스 사수들이 화살로 코끼리 조련사들을 쏘자, 흥분한 코끼리들은 적군보다 오히려 힌두인들을 더 많이 짓뭉개버렸다. 결국 포루스 왕은 항복했다. 승자가 된 알렉산드로슨 여전히 기사도 정신에 입각하여 포루스를 왕으로 깍듯하게 예우했으며 서로 친구가 되었다.

 

303 알렉산드로는 어디에서나 알렉산드로스여야 했으며, 자신에게 속한 모든 지역, 즉알려진 세 개의 대륙에서 똑같고 유일한 알렉산드로스여야 했다. 그는 자신을 통해서, 자신 안에서 자신이 정복했으며 자신에게 복종하는 모든 민족의 통합이 이루어지기를 원했다. 그는 이들 민족 사이에 화합이 지배하기를 원했다. 그리스인들과 바르바로스들 사이의 화합.

 

305 그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허영심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그렇지 않다. 허영심이라면 아마도 손톱만큼이나 될까 말까 할 정도일 테니 얼마든지 야해 가능하다. 그보다는 위대함의 절정에 도달한 자에게서 나타나는 지극히 정당한 자만심이라는 편이 더 적절해 보인다.

 

306 그런데 도대체 바르바로스란 누구인가? 이 용어는 원래 그리스어를 못하는 사람, 목에서 바르-바르-바르소리를 내는 사람, 다시 말해서 짐승의 울음처럼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말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306~307 플루타르코스가 소개하는 아리스토넬레스가 알렉산드로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스승은 제자에게 그리스인들은 아버지로서 대하고, 바르바로스들은 주인으로서 대하라. 그리스인들은 친구와 가족으로 대하고, 바르바로스들은 동물이나 식물을 이용하듯이 이용하라고 충고한다.

그런데 알렉산드로스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스승의 의견에 저항한다. 그는 우리가 그리스인이거나 바르바로스인 것은 절대 천성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고 확고하게 믿는다. 이 문제에 있어 출행과 혈연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다만 문화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309~310 알렉산드로스는 행동과 확고한 의도로써 여기에 반기를 들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플루타르코스의 지적이 아주 설득력이 있다. “그의 의도는 불한당 대장이 하듯이 아시아를 헤집고 다니면서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으려는 것도, 한니발이 이탈리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약탈하고 노략질 하는 것도 아니었다….. 몬든 땅을 이성이 지배하는 살 만한 곳으로 만들며, 모든 인간들을 똑 같은 정부의 똑 같은 통치(똑 같은 나라의)를 받는 시민으로 만들려는 것이 그의 의도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복장까지도 바꾸었던 것이다. 알렉산드로스의 영혼을 속세로 보낸 위대한 신이 그 영혼을 그토록 갑자기 불러들이지 않았다면, 이세상에는 모든 사람들을 다스리는 단 하나의 법만이 잇었을 것이고, 이 세계는 똑같은 빛이 비추는 것처럼 똑 같은 정의에 의해 지배되었을 것이다  그의 원정의 첫 번째 목표는 그가 진정으로 철학자다운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데 있었으며, 달콤하고 푸짐한 부를 정복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또한 보편적인 평화, 화합,결합, 그리고 모든 인간들 사이의 원활한 교류를 완성시키고자 했다.”

 

310 또 이런 대목도 눈에 띈다. “하늘이 이 세계의 개혁가로, 통치가로, 그리고 화해가로 자신을 보냈다고 믿은 그는…. 모든 것을 하나로 집결시킴으로써, 마치 우애라는 하나의 잔 속에 삶과 풍습, 결혼과 생활방식 등을 집어넣어 모두에게 그것을 마시도록 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나라가 살 만한 땅이며 그의 군대는 그들을 지키는 성이자 망루이며, 모든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가족이며 친지가 되어야 한다고, 오로지 심술궂은 자들만이 이방이어야 한다고 지시했다.”

 

310 이처럼 전통으로 굳어버려 그리스인들의 영혼 속에 그리스인과 비그리스인 사이에 뛰어넘을 수 없는 고랑을 파놓은 인종차별론을 알렉산드로스는 역사상 가장 대담하고 풍부한 혁명을 통해서 인본주의라고 하는 새로운 개념으로 대체했다. 인본주의애 따르면 인간들 간에 유일하게 정당하게 존재할 수 있는 차별은 선한 자들과 약한 자들의 차별이었다.

 

311~312 신은 모든 인간의 아버지이며, 모든 인간들은 그리스인이건 비그리스인이건 형제들이다. 모든 민족들(최소한 알렉산드로스가 알고 잇는 민족들)은 서로에게 같은 감정을 가지고 화합 속에서 살아야 한다. 모든 인간은 수동적인 자세로 왕의 백성이 되어 복종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그와 더불어 제국의 통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 같은 개념들과 그것들이 함축하는 뉘앙스는 화합이라는 대원칙으로 귀결될 수 있을 것이다. 화합이라는 생각 속에는 고대 그리스가 막을 내리는 무렵부터 싹터온 전쟁 없이 살고 싶은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이 담겨 있다.

 

312 요컨대 알렉산드로스는 제우스가 모든 인간의 공통적인 아버지이며, 특히 덕을 가진 선한 인간들의 아버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행동에 임했다. 처음으로, 적어도 서방 세계에서는 처음으로 모든 인간이 형제라는 생각이 비록 간접적으로 표현되었을지언정 표면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315 , 이렇게 해서 굴곡 많은 그리스의 역사에 끼어든 공적 인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연민에 사로잡힐 수 있었던 자의 연민을 얻기 위해 군대는 모두 엎드려 애원하기 시작했다.

 

316 아리아누스의 기술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며, 플루타르코스도 같은 비중으로 애용하는 두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마음과 생각의 결합, 그리고 권력의 공유였따.

 

318 이처럼 그리스인과 비그리스인이 존재한다는 사실마저도 잊어버리려고 한 너그러운 왕은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불관용의 왕이기도 했다! 매사에 이성이 아닌 정념이 그를 인도했다.

 

320 그는 말하자면 인간으로서 말했다. 그는 그가 아는 모든 인간을 향한 인류애를 위해 싸우고 복속시켰다. 이 세계의 끝에 사는 인도의 포루스는 그의 친구였다.

 

322 모름지기 행동이란 소고에 우선 하는 것이 아닌가? 어쨌거나 이 둘은 로고스와 에르곤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그리스인들에게는 쌍둥이, 동전의 양면 같은 것으로, 개개인의 행동이나 인류 전체의 역사에서 늘 함께한다.

 

질서라는 탈을 쓴 무질서, 두 명의 프톨레마이오스

 

330 새로운 시대를 장식하는 가장 놀라운 현상은 민중의 퇴장이다. 이들 거대 국가 내에서, 알렉산드리아, 페르가몬, 안티오크처럼 인구가 많은 거대 도시에서 자유시민은 존재하지 않았다.

 

335 40년 동안이나 계속된 통치 기간에 프톨레마이오스 1세의 대외 정책은 두 가지 목표를 추구했다. 첫째, 섭정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고, 둘째, 알렉산드로스가 세운 제국으로부터 분할되어 생긴 국가들간의 균형을 이집트에 유리하도록 유지한다는 점이었다.

 

350 “왕은 너무도 많은 행운을 누린 나머지 언제까지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으며, 오직 자신만이 불멸의 비밀을 발견했노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평생 강건한 적이 없었던 그의 기질은 절제와 소박함이라고는 모르고 지냈던 여러 해 동안의 삶 때문에 손상을 입었다.

 

책의 전성시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박물관

 

362 칼리마코스는 도서관에서 매우 비중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총 120권짜리 각 분야별 우수 작가와 그들의 대표작 일람표를 작성했다. 이는 작가의 전기와 주석까지 첨부된 일종의 도서관 색인으로서, 작품들은 먼저 장르별로 분류되고, 각 장르에서는 우수성 순위에 따라 분류되었다. 이는 또한 그리스 문학의 개요라고도 할 수 있었다.

 

365 기원전 47, 카이사르가 이집트에서 전쟁을 벌이던 무렵,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장서는 70만권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367 같은 시기에, 그리고 이들 학자들을 중심으로 잘 쓰지 않는 말이나 고어가 되어버린 어휘들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문학 비평서나 주석서, 문법서들이 쏟아져 나와서 지나간 5~6세기 동안 걸작품들을 탄생시켜온 문학이나 언어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었다. 박물관과 도서관에서 일하는 학자들은 이 어렵고 까다롭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 앞에서 주저하거나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374 당시 박물관이야말로 학문 발전에 가장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한 첨병이었기 때문이다.

 

374 서사 시인 로도스의 아폴로니오스는 정식 사서직을 역임했다. 시인들은 모두, 아니 거의 모두(그렇다, 테오크리토스도 예외는 아니다) 해박한 학자들이었다. 이들의 학식은 대체로 제대로 소화되지 못한 채 이들의 시에 작용함으로써 시만이 지니는 빛이 퇴색하고 말았다. 말하자면 학식이 부분적으로나마 시를 갉아먹었다고 할 수 있다.

 

374 아폴로니오스의 시는 이따금씩 매우 아름다운 구절도 눈에 띄긴 하지만, 유식한 티를 내는 본문이나 주석 때문에 오염되어 있다.

 

375 생각해보라. 시의 본문 중에 그런 내용들이 끼어들면 시적인 환상이 산산조각 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말하자면 사서이며 박학다식한 학자인 아폴로니오스가 시인인 아폴로니오스가 창조한 세계를 끊임없이 짓밟는 격이었다.

 

375 그의 작품을 보면 어찌나 박식한 표시가 자주 나는지, 고대 독자들이나 현대 독자들이나 할 것 없이 신화적, 역사적, 지리적, 천문학적…. 하여간 대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처럼, 책으로 습득할 수 있는 모든 교양과 과학적 재능을 갖추어야만 제대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묵직한 내용들은 미약하게나마 남아 있는 시적 도약마저 끌어내리기 십상이다! 솔직히 도서관과 박물관의 존재는 책이 문학까지 지배하는 풍토를 낳았으므로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고 볼 수 있다.

 

375 이들 시인들은 너무도 많은 것을 읽고, 도서관의 강의실에서 너무도 많은 볼루멘을 펼쳤다. 이들은 독서를 통해 영감을 얻고자 했다. “독서는 문체의 본질이라고 아폴로니오스는 말했다. 그는 게다가 스스로를 가리켜 뮤즈의 비서라고 칭했다(이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런가 하면

칼리마코스는 나는 증거가 없다면(그러니까 자료가 없다면)아무것도 노래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이건 사실이었다. 어떤 주제가 되었건 그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 시인들은 자료를 찾았다. 말하자면 문학이라는 자원을 고갈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작품들은 데자부, 즉 언젠가 본 듯한 느낌을 준다.

 

알렉산드리아의 과학:아리스타르코스의 천문학

 

 381 그리스식 설명은 이성적이었다. 그리스 학자들이 제기하는 질문들이란 주로 이랬다. 낮과 밤이 생기는 원인은 무엇일까? 계절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늘에서 행성들의 움직임이 불규칙한 까닭은 무엇일까? 월식이나 일식은 어째서 일어나는 걸까? 달은 왜 모양이 변하는 걸까? 이 문제는 이미 400년 전에 해결되었고, 그래서 오늘날의 우리가 보기에는 비교적 간단한 문제들일 수도 있다.

 

382 고대 천문학자들의 대다수는 지구를 물 또는 공기 중에 떠 있는 원반 형태로 생각했다. 모두, 아니 거의 모두가 알렉산드리아 시대가 될 때까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며, 나머지 것들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믿었다. 지구 중심설은 고대 천문학 전반을 좌우 했다.

 

387 아리스타르코스는 우리가 입수한 간접적인 자료, 즉 아르키메데스와 플루타르코스의 저술에 따르면, 매우 분명한 언어로 태양 중심설을 내세웠다. 그는 지구는 다른 행성들처럼 태양 주위를 도는 하나의 행성에 불과하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데에는 1년이 걸린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392 1615,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옹호하던 갈리레이는 로마에서 열린 종교재판에 참석해서 그 이론을 포기하겠다는 언약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잇다. 이로써 지구가 축을 중심으로 자전하며 태양 주위를 돈다는 제안은 잘못된 것이며 이단이라고 만천하에 공표되었으며, 코페르니쿠스의 저작은 금서 목록에 올랐다. 가톨릭교회가 지구가 돈다는 내용의 저술을 출판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최초로 결정한 것은 1822년의 일이다.

 

지리학:퓌테아스와 에라토스테네스

 

398 퓌테아스가 맛실리아 공화국으로부터 중요한 자원들이 생산되는 이 북부 지역 탐험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이는 보기 드문 경우로, 아마 지금 까지도 거의 유일무이한 사례가 아닌가 싶다. 그도 그럴 것이, 고대 사회에서 학문 연구 활동은 사회적 기능을 가진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기 때문에 학자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적인 인격체였다. 연구원이 학자는 그러므로 공동체로부터 어떠한 물질적 지원도 받지 않았다.

 

403 요컨대 모험가이면서 새로운 땅과 바다의 발견자라는 진면목을 지닌 퓌테아스는 로도스의 아폴리니오스가 쓴 시에서 아르고선을 타고 모험에 나선 원정대를 이끄는(그런데 그가 과연 이끌긴 했던가?) 이아손보다 훨씬 매력적인 인물이며, 엄청나게 유식한 아폴리노스 자신보다 훨씬 진지한 학자임에 틀림없다.

 

406 한편 에라토스테네스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위대한 사서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프톨레마이오스 3세는 아테나이에 있는 40대의 그를 불러들여 도서관 사서직을 맡겼다. 그 후 그는 기원전 195 80세로 죽을 때까지 40년 동안이나 사서로 일했다. 그는 모든 분야의 학문, 당대의 모든 지식을 향해 열린 마음과 머리로 학문을 위해 헌신하는 충만한 삶을 살았다. 그는 말하자면 이탈리아 콰트로첸토(400을 뜻하는 이탈리아로, 15세기의 문예 부흥과 관련된 제반 사건들을 뭉뚱그려 가리킨다옮긴이)시대에 활약한 학자들과 동류였다.

 

407 알렉산드로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답게 원정 기간 내내 학자들을 동반했으며, 이들에게 위치 관련 도면을 수집하고 작성하게 했다. 이는 아시아의 지도를 만드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

 

408 에라토스테네스는 바다는 하나이며, 육지가 섬들처럼 그 위에 떠 있는 것이지, 바다가 육지 속에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렇듯 에라토스테네스는 수많은 분야에 손을 댔다. 그이 동시대인 들이나 제자들은 그를 가리켜 우동 경기 전 종목을 아우른다는 의미에서 ‘5종 경기 선수라는 별명으로 불렀는데, 요즘 말로 한다면 팔방미인정도가 되지 않을까?

 

의학:아르키메데스, 헤론, 그리고 증기기관에 관하여

 

415 그리스인들에 의해서 토대가 확립된 과학은 위대한 알렉산드리아 시대(기원전 3세기부터, 1세기까지)를 거치면서 다양한 방향으로 활발하게 꽃피워 나가는 한편, 로마 시대로 접어들면서부터(그 후에 이어지는 중세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모든 과학적 응용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관조적인 태도를 고집함으로써 정체의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운명을 맞는다. 이 같은 상황은 여러 세기 동안 지속된다.

 

417 헤로필로스는 자신이 직접 본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인체기관에 대한 지식은 그를 기쁨으로 열광시켰다. 그는 실천과 가시적인 지식에 토대를 두지 않은 이론에 대해서는 경멸감을 감추지 않았다.

 

418 헤로필로스의 생리학은 그의 모든 의술이 그렇듯이 비록 초보적인 수준이기는 하나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해부학의 토대 위에서 꽃필 수 있었다.

 

419 에라시스트라토스는 확신을 가지고 연구에 임했다. 그는 생리학의 아버지라는 호칭이 말해주듯이, 방대한 분야를 두루 아우르는 연구 성과를 거두었다. 헤로필로스가 해부학에서 이룬 성과를 그린 생리학이라고 하는 분야에서 올린 셈이다(해부학이 신체의 각 기관을 기술하는 학문이라고 한다면, 생리학은 그것들의 기능을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뇌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간파했으며, 뇌의 기능에 주목했다. 운동신경과 감각신경을 최초로 구분해낸 사람도 에라시스트라토스였다. 그는 또한 동맥과 정맥을 구분하면서, 동백에는 맥박이 있는 반면, 정맥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420 다만, 마취가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알렉산드리아 의사들에 의해서였다는 사실만 덧붙이자. 당시에는 수술 부위에 만드라고라의 즙을 문질러 마취 효과를 얻었다. 이 덕분에 외과 의술은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게 된다.

 

421 의학은 어디까지나 사실의 관찰과 이성적인 추리에 입각한 겸손한 학문으로서의 위치를 지켰다. 미신이 판을 치던 중세에도 위대한 의사가 배출되거나 위대한 발견이 이루어지지 않은 세기란 없었다.

인간이 이루어낸 정복이니 인간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423 유서 깊은 이집트(또는 동방)의 경험주의와 그리스 합리주의의 만남(바닥을 치고 도움닫기를 하는 마지막 기회), 이질적인 것들끼리의 융합은 그리스 학자들의 기계 좋아하는 전통을 소생시켰을 것이다.

 

424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하학적인 형태를 지닌 사물들은 무게를 가진다는 것이 이 새로운 분야의 출발점이었다. 이른바 무게의 기하학, 이것은 합리적 역학, 정역학 또는 정수역학이라고 한다. 아르키메데스는 욕조의 물속에서 한 다리를 들어올리며 다리의 무게가 물 밖에 있을 때보다 가볍다는 점에 깜짝 놀라 이 원칙, 그의 이름을 따서 부르게 된 이 원칙을 발견했다고 한다.

 

424 아르키메데스는 훌륭한 학자였을 뿐 아니라 열렬한 기계 마니아였다. 그는 당시에 달려져 있던 간단한 기계다섯 가지, 즉 지렛대(“나에게 받침점만 주면 지구를 들어올릴 수 있다”), 쐐기 도르래, 무한 나사, 그리고 권양기를 모아서 하나의 이론을 만들었다. 심지어 그가 무한 나사를 발명했거나, 그게 아니면 이집트인들이 습지를 건조시키기 위해 사용하던 수압 나사를 그가 개량했다는 설도 있다. 어쨌거나 그는 나사못에서 출발하여 여기에 암나사를 더해서 볼트를 발명해낸다.

 

425 아르키메데스이 기계 발명이 한창 승승장구하던 무렵, 크테시비오스는 톱니바퀴를 발명해서 스승에게 힘을 보탰다. 크테시비오스는 이빨이 달린 잣나무와 맞물리도록 바닥에 바퀴를 굴려서 회전계를 만들었으며, 이는 오늘날 자동차에 사용되는 속도계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다.

 

430 고대인들은 과연 노 젓는 이들, 아니 보다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서 자신들이 이룩한 발명품을 이용할 줄 몰랐을까? 그들은 분명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것이 그 오랜 망각에 대한 설명이다.

 

431 손을 쓰는 일을 노예적이라고 간주하는 편견(여기서는 플라톤이 그와 같은 편견을 가진 대표적인 인물로 소개되었다.)은 궁극적으로 응용 역학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고 질적 저하를 가져왔으며, 이를 고사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위에 인용한 대목에서 보았듯이, 이 같은 편견은 노예제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434 실제로 이 굉장한 모험, 천일 야회를 천 배, 만 배, 아니 수십만 배 부풀린 동화 같은 인류의 역사를 따라가노라면, 반드시 하나의 주체와 만나게 되어 있다. 항상 존재감이 넘치며, 세기가 거듭될 때마다 한층 현명하고, 양식 있고, 적극적으로 발전해가는 주체, 유산되어버린 우연을 건져 올려 새 삶을 부여하여 새싹을 틔우고 풍성한 잎을 자라나게 하며 탐스러운 과실을 맺게 하는 주체를 우리와의 조우를 위해 달려오는 미래(그리스인들의 표현을 빌리면 그렇다)속에서, 매 순간 우리에게는 현재가 되는 미래 속에서 만나게 된다. 바로 인간의 천재성이라고 하는 주체다.

희망이 있는 한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시로의회귀:칼리마코스, 로도스의 아폴리니오스가 쓴 <아르고나우티카>

 

442 그러니 시는 서사시에 등장하는 위력적인, 위력적이지만 더러운 강물보다 순수한 샘물, 가느다란 물줄기에 불과해도 한 방울 한 방울이 소중한 샘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442 하지만 영감이 고갈되고, 누구나 별로 힘들이지 않고 5막짜리 비극을 뚝딱 써내거나, 장단단격 육각시(호메로스의운율로, 프랑스 시의 12음절처럼 그리스 서사시의 대표적 운율)로 신화적인 주제를 가지고 24개 노래로 구성된 서사시를 시도해볼 정도로 창작이 식은 죽 먹기가 되어버린 시대에, 시가 다시 어려워져야 하다고 주문하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시를 구하는 길이었다. 고전의 답습으로 특정지어지는 관학풍으로부터 시를 구해내려는 그 나름의 방식이었다. 시에서 고전의 답습이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443 영웅주의는 개인적인 차원에만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그들에게 신이란 더 이상 행동의 원칙이 아니었으며, 더 나은 인간이 되도록 투쟁하게 만들거나, 투쟁을 통해서 스스로를 뛰어넘게 만드는 신비스러운 요구가 될 수 없었다. 신은 단순히 위로를 제공하는 존재에 불과했다. 인간은 신의 품 안에서 자신을 자신과 자신의 비참함을 잊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했다.

 

444 칼리마코스는 적어도 각 시대는 그 시대가 지니는 본질적인 관심사 속에서 나름대로의 시를 새로이 발견해야 한다는 사실 만큼은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시를 삶과 밀접하게 연결시키며, 살아 있는 예술이면서 동시에 어려운 예술로 복권시키는 것이 칼리마코스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야심찬 목표였다.

 

446 호메로스의 열렬한 독자로 그의 시 세계를 이어받아 호메로스에 버금가는 시인이 되고자 했던 이 학생 시인은 어느 날 친구들과 교수들, 그리고 궁정과 도시의 식자층을 불러놓고 자신이 쓴 <아르나우티카>를 낭송했다. 아폴로니오스라는 이 청년은 훗날 로도스의 아폴로니오스로 불리게 된다.

 

448 “문법학자 종족들, 다른 사람의 뮤즈를 갉아먹는 이 쥐새끼 같은 자들 같으니, 걸작품들을 더럽히는 멍텅구리 송충이들, 칼리마코스를 지켜준답시고 그 앞에서 짖어대는 발리오, 오 어린아이 같은 치기를 암흑 속으로 빠뜨리는 시인들의 재앙이여, 악마에게나 가버려라. 아름다운 시들을 먹어치우는 빈대들 같으니!”

 

473 게다가 자신 안에 깃들어 있는 지리학적 박학다식과 시적 상상력 또는 예술적 감수성을 소통하게 만드는 일은 그에겐 절대적으로 불가능했다. 시로 인해 학식이 불타오르는 경우는 일찍이 없었다. 아폴로니오스는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이 두 인물이 재현하는 사물들을 그저 나란히 병치해놓았다. 그의 작품 속에서 연애소설과 지리학 소고, 이 두 가지는 하나로 융합 하는 것이 아니라 뚜렷하게 구별된다 사랑과 지리라고 하는 이 두 가지는 하나로 융합하는 것이 아니라 뚜렷하게 구별된다. 사랑과 지리라고 하는 이 두 가지 주제가 아폴리니오스가 지니는 두 가지 취향, 두 가지 본성을 잘 드러낸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니까 그가 시를 통해서 그 두 가지를 단일성을 이끄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건 단일성을 이루어낼 만큼 그의 개성이 강하지 못한다는 말이 될 수 있다. 요컨대 그의 안에 있는 시인이 참패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시대가 낳은 방식을 받아들였으며, 그 방식은 시를 위험 속으로 몰아넣었고, 결과적으로 시는 소화불량기가 농후한, 전혀 인간미를 풍기지 않는 지식의 무게에 눌려 질식해버렸다.

 

474 그가 스스로를 통찰력 있게 파악하고 있었더라면, 몇 세기 후에 등장하게 될 사랑 소설분야를 개척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랑과 모험, 뜻대로 되지 않는 정념과 세계를 떠돌아다니는 방황 등이 적당하게 혼합된 이 새로운 문학 장르를 우리는 <다프니스와 클로에>에서 확실하게 만날 수 있으며,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에페소스의 크세노폰이 쓴 <에페소스인들의 이야기>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아폴리니오스는 그리스가 마지막으로 창조해낸 이 분야, 새로운 문학 장르의 창시자였으며, 그 자신도 알지 못한 이 분야의 선구자였다.

 

475 아폴리니오스 자신은 알지 못했지만, 자신은 원하지도 않았고 실제로 완전히 성공을 거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분명 그리스 최초의 소설가였다.

 

475 아폴리니오스가 들려주는 정념의 이야기에서는 낭만적인 향취가 뿜어져 나오며, 그 향취는 어느샌가 마음속에서, 또 사건의 전개 과정에서 가장 깜깜한 어둠과 가장 밝은 빛이 되어 찬란하게 흩어진다는 점만 짚고 넘어가자. 낭만적인 기질의 핵심 중 하나는 바로 극단적인 것에 대한 지향이며, 그중에서도 특히 하나의 극단에서 전혀 반대되는 극단으로 넘나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념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들은 이처럼 극과 극을 이루는 가치의 대립을 첨예하게 보여주지 않는가.

 

476 첫눈에 반한 운명의 순간에 이어지는 밤중 내내 메데이아라고 하는 인물은 전적인 수줍음과 전적인 정념 사이를 헤아릴 수도 없이 여러 차례 오간다. 요컨대 메데이아는 빅토르 위고 식으로 말하자면 천당에 오라갔다가 지옥으로 떨어지기를 수도 없이 반복한다. 죽음으로 돌진하는가 하면 어느새 한달음에 삶을 향해 뛰어오른다.

 

477 메데이아는 낭만주의가 낳은 여주인공들처럼 달빛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두 번씩이나 달빛이라는 조명이 등장한다. 메데이아가 아버지의 집에서 도망칠 때, 그것도 때마침 묘지 근처를 지날 때, 지평선에 달이 떠오른다.(낭만주의의 절정이 아니겠는가!). 또 한번은 메데이아가 자기 방 창가에서 달이 떠오르는 광경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얇은 상의의 주름 사이사이로 파고드는 달빛으로 눈길을 옮기는 장면이다.

 

478 베리길리우스는 아폴로니오스의 작품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말살시켰으며 살아 숨 쉬는 문학 작품의 반열에서 밀어냈다. 그에게는 아폴로니오스가 늘 반쯤만 완성했던 것들을 거의 완전하게 완성시키는 재주가 있었던 것이다.

 

테오크리토스의 낙원

 

484 하지만 그런 테오크리토스도 칼리마코스의 충고를 받아들여 아주 짧은 서사시에 몇 번쯤 도전해보았따. 그중에서 유일하게 성공작이며 그의 서사시 중에서 내가 소개할 유일한 작품은 <퀴클롭스>. 테오크리토스는 오래전부터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을 주제로 택해 다소 사실적이고 유머러스한 투로 갈라테이아를 완성하게 된 폴뤼페모스를 그려낸다. 여자들에게 늘 놀림을 받는 둔해빠진 남자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487 테오크리토스에게는 관찰 또는 감정이나 사물의 정확한 재현이 아니라 관찰된 대상, 실제로 체험한 사랑, 요컨대 주어진 자료를 가지고 아름다움을 창조해내는 것이 관건이다. “백옥 같은 갈라테이아, 왜 당신은 굳어가는 우유보다도 희고, 새끼 양보다도 부드러움, 어린 송아지보다도 활달하고, 청포도보다 빛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나를 밀어낸단 말입니까?” 주어진 자료라는 것은 시적인 파동을 전해주는 보잘것없는 매체에 지나지 않는다.

 

489 시인에게 무엇이든 주어보라. 고리타분한 신화, 괴상한 사랑 이야기, 아니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굳어가는 우유나 청포도, 풀밭에서 뛰어노는 어린 송아지 등 일상의 하찮은 사물들, 무엇이라도 좋다. 시인의 손에서 모든 현실은 방사선이 된다. 그러니까 신선한 아름다움을 발한다는 말이다…..

 

489 전원시는 소설과 더불어 그리스인들이 마지막으로 발명한 장르다.

 

491 테오크리토스는 시켈리아나 이탈리오타 지역의 민간 시적 전통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으며, 이를 알렉산드리라에서 유행하던 문학적 경향과 결합시켰다. 민간 전통과 문학 경향의 융합, 이 조화로운 결합은 테오크리토스라고 하는 천재적인 시적 재능과 결단력을 가진 시인의 손끝을 통해서 훌륭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494 시를 활용하는 이 같은 방식이 생소하고 놀랍게 느껴진다면, 그건 우리가 북부 출신이기 때문일 것이다. 북부 사람들은 반응이 더딘 편인 데다, 말주변도 굼뜬 편이다. 우리의 문화라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우리를 둔하고 미련하게 만든다고도 볼 수 있다. 보 지방 출신의 한 문인은 우리는 경작자가 되기에는 지나치게 경직되었다고 꼬집어 말했다.

 

497 그의 발명이라는 것은 사실 민간 시, 대중 시의 발견에서 시작되었다. 이 시를 그는 수집했다. 다만 민속을 사랑하는 애호가가 하듯이 무작정 수집한 것이 아니라, 소재와 형태를 재가공하고 즉흥 연주자들의 들쭉날쭉한 수준을 일정하게 끌어올려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499 <쉬라쿠사이의 여인들>같은 풍자 희극을 통해서 테오크리토스는 사실주의적인 주제와 소재를 선호하는 동시대인들의 취향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499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켈리아 문학, 이국적 문학, 아니 향토 문학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당시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켈리아는 일본이나 브르타뉴와 다를 바 없는 곳이었다.

 

500 테오크리토스의 시 세계는 진실이면서 동시에 시다. 여기에서 진실이란 감각과 체험이라는 재료에 대한 시인의 충실함을 가리킨다. 한편 시란 요컨대 음색과 리듬, 감각의 취사선택, 이미지 등을 통해 진실을 아름다움으로 변화시키는 힘을 말한다. 그런데 그 어떤 시의 세계도 우선 진실에 토대를 두고 있지 않으면 아름다울 수 없다. 테오크리토스의 시 세계는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다.

 

501 테오크리토스의 목동들의 복장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짐승 가죽을 입었는지, 기른 양들의 털을 깍아 뽑은 실로 짠 옷을 입었는지를 묘사한다. “자네가 입은 양가죽은 자네보다도 훨씬 냄새가 고약하군이라고 라콘은 코마타스에게 말한다. 비평가들이 향토색이라고 일컫는 것들 중에서 테오크리토스는 특히 진짜 양 떼 냄새나 농부들의 냄새처럼 후각적인 요소에 큰 비중을 할애한다.

 

501 키 큰 나무들과 키 작은 나무들, 꽃들은 제각기 아주 정확하고 음악적인 저만의 고유한 이름으로 묘사된다. 풍경 속에는 새들(밤새들도 포함하여)이며 벌레, 도마뱀, 개구리 등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502 테오크리토스는 외부 세계, 즉 시골의 존재, 풍성함으로 이루어진 이 세계를 충분히 인정한 시인들 중의 하나로 손꼽히며, 이 세계는 강력한 힘으로 우리 앞에 자신을 드러낸다. 내면의 우수가 확장되는 공간으로서의 베르길리우스적인 자연이 아니라, 우리가 감각적으로 느끼는 세계이자 우리에게 존재하는 기쁨을 일깨워주는 자연, 우리가 가슴을 크게 열고 호흡하는 시골이 테오크리토스의 외부 세계다.

 

502 그의 시를 아무 대목이나 골라 잠깐만 들여다보면 우리는 어느새 하늘이나 바다의 뉘앙스, 실편백나무의 생김새, 소나무 사이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가을을 맞아 수확을 기다리는 농익은 고일의 향기, 풀 위에 떨어지는 마른 솔방울 소리 등을 느낄 수 있다그 정도면 지울 수 없는 자연 속에서의 삶의 한순간을 창조하기에 충분하다. 마치 몇몇 감각이 우리 안으로 사물의 리듬이나 정감 어린 독특함을 끌어들이는 것 같다고나 할까.

 

502~503 항상 정확한 명사의 일상적인 형용사가 사용되고 있음도 눈여겨볼 만하다. 테오크리토스는 형용사의 지나친 남발이 우리를 주눅 들게 하거나 거부감을 안겨줄까봐 조심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물의 풍요로움은 표현의 간소함으로 인해 오히려 한결 돋보인다. 표현의 간소함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인상일 뿐, 감각의 적절하고 엄격한 선택이 전제될 때에만 가능하다. 이 선택 덕분에 우리를 자연에 이어주는 일종의 음악이 사물에서 우리에게게로 전달될 수 있다.

진실은 이렇게 해서 아름다움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505 테오크리토스는 일물들을 창조하면서,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가벼운 터치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이들의 성격을 대비시켰다.

 

505 코뤼돈은 천성적으로 선하며 천진한 영혼을 가진 자로, 그 자신은 이러한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그는 암소들에게까지 타고난 선한 마음을 나누어준다. 암소들에게 지극 정성을 다하는 그는 암소들이 좋아하는 풀이란 풀은 속속들이 알고 있으며 그 풀을 먹이려고 해를 쓴다노예로 사는 비천한 생활이 그에게 주는 모든 것을 그는 온화함으로 받아들인다. 가령, 풀 냄새를 좋아하는 만큼이나 풀피리 소리도 즐긴다. 말하자면 지극히 소박한 생활 속에서 피어나는 섬세한 감수성 그 자체인 것이다. 그는 부카이오스의 형제이며, 분명 테오크리토스의 형제이기도 하다.

 

507 전원시 4편에 등장하는 두 목소리가 빚어내는 음악은, 일상의 소소한 일들에 매달리면서 반쯤은 들판에서의 생활 중에 일어나는 피치 못할 어려운 일들로 숨이 턱에 닿은 두 촌뜨기 두 소박한 영혼이 들려주는 음악이다. 한 사람은 일상의 무게에 눌려 기질마저 완전히 신랄하게 바뀌었는가 하면, 다른 한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 부드러움이라고 해야 맞을까? 두 사람의 대조적인 반응은 중요하지 않다. 두 인물은 전원생활의 한 부분을 이룬다. 요리조리 달아나는 가축, 엉겅퀴가 가득 피어난 풀밭, 사랑했지만 죽음이 앗아가버린 여인, 외양간 뒤에서 음란한 짓을 즐기는 호색한 주인 등이 전원생활의 구성요소인 것과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은 테오크리토스의 예술 덕분에 삶에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다시 태어난다.

 

507 테오크리토스이 서정성에는 사랑과 자연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적당히 혼합되어 사물과 감정을 그린 그의 풍경화에 시적 진실을 불어넣는다.

 

512 “시는 인간의 기분을 치료한다. 시는 부드러움이지만, 그 부드러움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부드러움이라는 말은 테오크리토스의 작품 전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한다

 

513 오히려 그와 반대로, 시골 생활을 다룬 전원시, 한결같이 이상적인 빛 속에 젖어 있는 이 작품들이 알렉산드리아라고 하는 거대 도시에서 마주하게 되는 망명 생활의 고독감 속에서 태어났으며, 그곳에서 쓰일 수밖에 없었으리라는 주장이 훨씬 설득력을 지닌다. 시골에서 성장했으며 자연을 사랑하나, 도시에서 살면서 끔찍한 권태를 맛보아야 했던 시인은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과의 이별 속에서 젊은 시절의 추억을 되살려내고, 상상 속에서 어린 시절의 풍경을 재창조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을 대하는 감정에 그렇듯 향수가 배어날 수 있으며, 이 향수야말로 그의 시에서만 느껴지는 흉내 내기 어려운 향취라고 할 수 있다. 테오크리토스는 피곤에 지친 세계를 본떠서 시를 썼다. 돈이면 만사형통인 이 세계에 그 자신도 심한 염증을 느꼈다. 그는 이 고단한 세계에서 나무와 풀밭, 맑은 물에 대한 향수를 길어 올렸으며, 양치기들의 소박한 생활에 대한 부러움을 전파했다. 그는 말하자면 청춘의 샘, 자연의 세계가 지니는 아름다움과 사랑의 천진함을 새삼스럽게 발견했다는 일종의 환상(어쩌면 환상 이상 가는 그 무엇)을 선사했다.

 

514 테오크리토스는 시인들의 낙원을 창조했다. 천국이란, 더구나 고대 그리스어에서 낙원이란 나무들이 자라며 목동들이 가축에게 풀을 뜯게 하는 거대한 풀밭을 뜻한다. 이 낙원에서 목동들은 모두 시인이다. 그들이 사는 거대하고 자유로운 그 정원에서는 모든 것이 아름답기 때문에 목동들은 자연스럽게 시인이 된다. 그들은 추함, 즉 영원토록 아름다운 날의 순수함을 퇴색시키는 모든 것, 예를 들어 비와 돈 걱정, 그 외 다른 근심들일랑 모두 던져버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의 개인적인 관점, 개인적인 시선이 모든 현실을 아름다움으로 탈바꿈시킨다. 그러니 그들은 노래한다. 천박한 현실이라는 시키먼 상자 속에 갇혀 있더라도, 뮤즈들이 이들을 찾아오고 이들에게 자양분을 제공한다.

 

다른형태의 도피 : 헤론다스와 사실주의적 풍자 희극, 그리스의 소설<다트니스와 클로에>

 

526 100행을 넘기지 않는 풍자 희극에는 많은 움직임이 담겨 잇다. 등장인물들은 대체로 천박하고 상스럽다. 하지만 휩시퓔레에게 말하는 이아손는 고상하고 기품 있는어조에서 탈피할 수 있어 오히려 우리는 신선함을 맛볼 수 있다!

 

532 그런데 헤론다스와 더불어 남에게 들려주기 위해 애를 쓰는 말은 자취를 감추었다. 이제 실재를, 천박한 실재를 모방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문학이 남았을 뿐이었다. 이는 분명 훗날 위대한 문학 작품들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었다. 그런데 고대 민족들의 자양분이 되고 휴식처가 되어준 그 큰 나무를 우리는 다시 볼 수 있을 것인가?

인간은 그 나무의 그늘로부터 도피하는 쪽을 택했다.

 

에피쿠로스와 인간의 구원

 

553 그는 인간들이 쓸데없는 두려움과 고답적인 미신으로부터 해방되어 평온한 삶을 살도록 해주었다. 그러므로 그는 해방자이며, 치유될 수 없는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구해준 치료사다.

 

554 그의 몸을 갉아먹는 위와 방광의 병, 당시의 의학 수준으로는 아무런 치료도 기대할 수 없었던 그 질병이 주는 고통으로 심신을 단련시킨 그는 치료가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이 질병과 더불어 살아가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다. 하루에 두 번씩 토한다 한들 그것이 무슨 대수겠는가. 그는 모든 사람들처럼 행복해지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행복하기를 원했으며, 그러므로 행복할 것이었다. 그는 지극히 단순한 행복의 비결을 혼자만 간직하려 하지 않았다. 그것을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했으며, 그와 더불어 그들도 행복을 맛보도록 도와주었으며, 그들과 친구가 되었다.

 

564 인간들은 그저 저마다 즉시 구원받고 싶어했다. 에피쿠로스는 가장 시급한 불부터 끈 셈이다. 그는 도스토엡스키가 말한 지상의 양식이라는 깃발을 높이 들어올렸다.

지상의 양식…. 분명 그렇다. 에피쿠로스는 플라톤의 첫 번째 대안, 즉 내세에서의 지복을 약속하는 노선은 따라가지 않았다. 이 제안은 그가 보기에 너무 안이할 뿐 아니라 기만적이었다. 그는 영혼불멸을 믿지 않았다. 그는 인간들에게 즉각적으로, 현재의 삶에서 행복해지는 방법을 가르쳐주고자 했다. 소박하고 제한적인 행복일지 모르나, 그럼에도 확실하고 누구나 자신의 두 손으로 길어 올릴 수 있는 행복을 말이다.

  에피쿠로스 철학의 위대한 점은 플라톤이나 그의 뒤를 이은 기독교처럼, 하늘로의 도피를 제안하는 대신 지상에서 무언가 할 것을 제안했다는 데데 있다.

 

565 매우 실리적인, 다시 말해서 가장 마음을 잡아끄는 목표를 향해 곧장 달려가는 지혜, 곧 개인의 행복이라는 화두는 이렇게 해서 등장한다. 그렇다. 에피쿠로스는 현대의 한 철학자가 말했듯이, “지상의 행복을 원할 정도로 고상함이 결여된 자들중의 한 사람이다.

 

565 “철학을 하는 척해서는 안 된다. 병이 들었을 때에는 건강을 되찾으려는 척을 해서는 안 되며, 실제로 건강을 되찾아야 한다.” 인간을 인간이 앓고 있는 병에 대한 유일한 치료라고 할 수 있는 진리로 이끌기 위해서는 한순간도 허비해서는 안 된다. 빨리 치료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행복은 기다려주지 않는 시급한 요구다. 삶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짧다. “우리들 각자는 이제 막 태어난 것 같다는 심정을 안고 삶과 작별한다.”

에피쿠로스는 이 같은 다급함을 안고 성찰했으며 진리를 탐구했다.

 

565 그런데 도대체 진리란 무엇인가? 행복을 찾고, 그것을 주기 위해서는 우선 인간이란 매우 불행하다는 것과, 왜 그렇게 불행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인간은 왜 불행한가?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려움 인간 존재 각자의 마음 깊은 구석에 깃들어 있으면서 늘 우리를 엄습해오는 이 불안감을 몰아내야 한다. 현실에 대한 균형 잡힌 관점을 통해 이 불안감을 몰아내고 나면, 그때 비로소 행복이 태어날 수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우리를 찾아온다.

 

566 인간은 불행하다고 에피쿠로스는 단언했다. 그런데 사실 인간은 기쁨을 위해 태어났다. 에피쿠로스는 기쁨의 필요성, 기쁨의 소박함, 기쁨의 즉각성에 대한 뿌리 깊은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 기쁨은 언제나 우리가 손을 내밀면 잡힐 만한 곳에 있다. 하지만 인간들은 두려워한다. 이 두려움은 현실에 대한 그릇된 생각에 의해 지배된다. 도대체 무엇에 대한 두려움이란 말인가?

 

566 우리가 가진 으뜸가는 두려움, 우리의 가장 본질적인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안다. 모든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566 내가 더 중언부언할 필요도 없다. 우리에게는 이미 몽테뉴가 있고, 파스칼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에피쿠로스의 생각으로 무장한 거장들이다.

 

566~568 죽음 다음가는 공포가 있다면, 그것은 죽음의 공포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는 신에 대한 공포다. 인간은 신들이 높은 하늘에서 그들을 살피고 관찰하고 있다고 상상한다. 신들이 인간의 삶에 개입하며, 신은 지고한 권위에 복종하지 않고, 이를 우습게 여기는 인간에게는 벌을 내린다고 믿는다.

 

570 에피쿠로스는 이 세계를 반갑게 맞아들이기 위해 이따금씩 감동적인 인사말을 던진다. “태양은 세계를 돌고, 커다란 목소리로 우리에게 행복을 위해 이제 그만 깨어나라고 외친다.”

 

571 어쨌거나 영혼은 분명 존재하지만 일시적일 뿐이며, 자신의 본질을 잘 파악하고, 평화로운 상태로 세계의 모든 존재들이 타고난 해체의 운명을 받아들인다면 기쁨으로 충만해질 수 있다.

 

571 신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 신들이란 물질적인 원자로 구성된 복합적인 구조물로 이루어져 잇다. 이데아도 분명 있지만, 이는 우리의 외부, 즉 절대적인 세계 속에 존재하는 비물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정신이 낳은 산물, 다시 말해서 우리의 육체적인 삶의 토양에서 자라나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결과물에 불과하다.

 

572 이렇듯 이 세계에는 물체들, 즉 끊임없이 운동하며 공중에서 뭉치는 원자들로 이루어진 존재들만이 있을 뿐이다. 원자들은 뭉치면서 신체만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속에서 거대한 공백에 의해 분리되는 무수히 많은 세계를 이룬다고 에피쿠로스는 생각했다.

 

574 이 세계도 인류의 역사도 신의 섭리에 따른 행위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사실 신의 섭리에 따른 행위란 어디에서도 합리적이고 정의로우며 선하지 않다. 그건 인간의 삶이 전적으로 무질서하기 때문은 아니다. 인간의 삶 속에서 언뜻 언뜻 질서가 느껴진다면, 그건 자연 속에 등장한 인간이 만들어놓은 것이다. 이 세계에서 인간이라는 동물이 지배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진보는 가속화되었으며, 인간의 지배가 계속되는 한 진보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인간 고유의 임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첫째, 원자의 운동, 둘째, 인간의 필요와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인간이 획득해가는 제어능력, 이렇게 두 가지만으로도 설명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신이 없어도 얼마든지 설명된다.

 

575 에피쿠로스는 문명이란 경험과 노동의 열매라고 말했다. “시간과 인간의 노력이 모든 발명품들을 생산하고 이것들을 광명의 세계로 이끄는 것이 바로 문명이다 문명이란 다름 아니라 신에게 호소하기보다는 우리 자신을 믿는 것이다. 특히 신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이 관건이다. 이 두려움은 우리를 마비시키고 미쳐 날뛰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에 대한 믿음, 우리 소박하지만 확실한 지혜에 대한 믿음, 신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나면 우주는 더 이상 수수께끼가 아니며, 더 이상 불안감을 조성하지 않는다.

 

577 더 이상 목마르지 않으며, 더 이상 추위로 괴로워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즐거움이다. 시시해 보이지만 불변의 즐거움이다. 나는 앞에서 에피쿠로스의 지혜는 소박하지만 확실하다고 말했다.

 

577 그가 제시하는 지혜는 위협받고 있는 인간의 본질을 구원해준다. 인간은 지극히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저 괴로워하지 않기, 두려워하지 않기, 허황된 망상 속에서 살지 않기만을 소망했다. 에피쿠로스는 인간들에게 죽을 뻔한 인간을 넘긴 기쁨, 말하자면 사형을 받을 뻔했다가 살아난 자가 느끼는 기쁨을 선사했다. 이 같은 기쁨은 시시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매우 강렬한 기쁨이 될 수 있다.

 

578 현자는 삶이란 내일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안다. 삶이란 우리가 살고 잇는 바로 이날, 이날의 매 순간이다. 행복의 매 순간, 즐거움 속에서 추족된 욕구 각각(이때 욕구가 소박한 욕구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것의 충족 여부다). 즐거움의 매 순간은 영원히 소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로써 세계는 내 안에 받아들여지고, 삶은 제대로 살아진다. 흘러가는 시간은 더 이상 배반당한, 즉 충족되지 않는 욕구의 연속이나 잃어버린 재화, 위협당하고 실망만 안겨주는 희망이 아니다. 우리는 더 이상 시간에 휩쓸리지 않고, 기쁨의 소유 속에 머무르게 된다.

 

578~579 에피쿠로스는 대단히 파격적으로 보이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남겼다. “모든 선의 원칙과 뿌리는 복부의 쾌락에 있다.” (이는 한번도 배고픔을 경험해본 적이 없으며, 아무 데로도 가지고 갈 수 없는 희귀한 물품을 소유하는 것 같은 일에서 쾌락을 추구해왔던 사람들에게는 물론 말도 안 되는 치욕이자 비난거리였다.) 사실 우리 주변을 둘러보건대, 아니 머지 않은 장래에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나라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의식의 물질적 조건에서 출발하지 않는 지혜란 완전히 상상적인, 허구적인 지혜에 불과할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니, 상상적이고 허구적이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은 비인간적이다. 에피쿠르스는 사고하고 표현하는 능력은 먹고 마실 수 있는 자유, 호흡할 수 있는 기쁨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

 

579 에피쿠로스는 우리가 커다란 기쁨, 커다란 쾌락(그는 쾌락이라는 말에 아무런 두려움이나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을 경험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하지만 이때의 쾌락은 단순하고 소박하며 자연스러운 것이어야 하며, 사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에 응답하는 것이어야 한다.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 먹고, 목이 타서 죽지 않기 위해 마시되, 진정으로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를 때에만 그렇게 해야 한다는 식이다. “빵과 물은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를 때에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되면 얼마나 감은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를 때에만 그렇게 해야 한다는 식이다. “빵과 물은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를 때에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되면 얼마나 감탄스러운 것이 되는가!” 그러니 맛있는 것을 먹고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사랑의 쾌락을 맛보는 것 또한 다르지 않다. , 그것이 필요, 즉 자연적이고 진정한 욕구에 응답하는 것일 때에 한해서만 그렇다. 인위적인 필요를 고안하거나 절대 충족될 수 없을 만큼 야심적인 삶을 살기 위해 쾌락을 단순한 것이 아닌 복잡한 것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쾌락과 기쁨을 증대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영원히 말살시키는 것이다.

 

580 쾌락이란 자신의 욕구를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이 욕구를 도저히 실현 할 수 없다고 판단될 때에는 제어하고 배제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합당한 보상이다. 쾌락과 기쁨은 절제를 알고, 온유와 용기로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잇는 자들에게 보상을 내린다. 지나치게 방탕하고 타락했다는 비난을 받아온 이 교리에서 중심을 이루는 쾌락이라는 개념은 사실 용기라고 하는 가장 고귀한 덕성의 소유를 전제로 한다. 용기는 흰 돛에 수놓은 붉은 줄처럼 그리스 민족에게서 태어난 첫째가는 덕목으로, 그리스의 역사 전체를 관류한다. 시간과 더불어,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소크라테스 이후 용기는 현실 존중과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이해에 토대를 둔 성찰하는 요기, 이성적인 용기로 변했다. 경탄할 만한 고대의 지혜가 공교롭게도 고대가 막을 내려가는 무렵에 꽃을 피운 것이다!.... 이러한 덕성은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에게 완벽한 평온을 보장해준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 아주 적은 것으로도 만족할 줄 아는 인간은 언제나 사는 것이 행복하다. “밥 한 술 뜨고, 물 한 모금 마시고, 등짝 눕히고 자는 것, 이것이 바로 에피쿠로스다. 그는 새벽이 되면 벌써 비단 친구들뿐만 아니라 제우스 신하고도 토론할 태세를 갖추었다고 한 고대인은 평했다. 이것이 적잖은 사람들이 방탕의 화신으로 취급하고자 했던 자의 초상화다!

 

582 그는 말하자면 누구나 찾아와서 목을 축이고 가는 넉넉한 샘물이었던 것이다. “에피쿠로스의 삶은, 다른 사람들의 삶과 비교해볼 때, 남다른 온화함과 절제로 인하여 마치 신화나 전설 같은 면이 있다고 그의 제자 중의 한 명은 회상했다.

 

590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모든 신성에 노골적으로 반대하던 루크레티우스는 오직 에피쿠로스에 대해서만은 여러 차례에 걸쳐서 그가 신적 존재라고 거듭 말했다. “그는 신이었다네! 그렇다네, 멤미우스 오로지 한 분의 신만이 처음으로 오늘날 우리가 지혜라고 부르는 삶의 길을 찾았다네!”

오 열린 길이여, 단순하고 곧은 길이여!” 열광의 순간에 키케로는 에피쿠로스주의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스승을 믿으며, 스승에게 복종하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바로 에피쿠로스주의에 의해 열린 길이다.

 

592 “나이가 들면서 삶의 석양을 향해 인도되자, 매 순간 나의 행복의 충만함에 대한 향수 어린 노래를 부르며 이 세계에 작별을 고하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나는 불시에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 두려워 좋은 품성을 가진 자들에게 도움을 주기로 결심했다. 한 사람 또는 두 사람, 세 사람, 네 사람, 아니 몇 명이 되더라도 상관없고, 하여간 단 한 사람이라도 절망에 빠져 있다면, 나는 그에게 최선의 충고를 주기 위하여 나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 모든 일을 할 것이다. 오늘날, 앞서도 말했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치 전염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모두 병자들이다. 이들은 세계에 대한 그릇된 믿음으로 인한 병자들이며, 양 떼들처럼 모방을 통해 서로 서로 병을 전파하는 탓에 병이 더욱 깊어진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죽은 다음에 살게 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비록 아직 태어나지는 않았을지라도, 그들도 우리와 한 가족이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우리에게 이곳을 지나가게 될 이방인까지도 도우라고 지시한다. 책에 적힌 좋은 말들은 이미 널리 퍼졌으므로, 나는 이 벽을 이용해서 공개적으로 인류에 대한 처방을 제시하기로 결심했다.”

 

593  신들에 대해서는 전혀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죽음에 대해서는 전혀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고통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행복에 얼마든지 도달할 수 있다.

 

594 에피쿠로스가 다시 부상한다. 언제나의 모습 그대로, 하늘의 은하수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늘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 내가 저자라면

 

<그리스인 이야기3>을 읽고 나서, 그리스 문명은 우리 인류가 살아 숨쉬는 어느 시공간 속에 존재하고 있으며, 그 누구도 전 생애를 바쳐 섭렵하기 힘들 정도로 광범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존에 알고 있던 역사의 모습과는 다른 이면들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그리스 문명의 멸망의 원인인 노예제도, 광기에 찬 전쟁 영웅들의 양면성, 타락한 개인주의와 부도덕, 숨막히는 여인들의 삶 등 오점들도 많았다. 그 치열했던 전쟁 가운데에서도 문학, 과학, 예술, 철학은 찬란히 꽃을 피웠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그리스 문명을 배우기 위해 그리스인들의 유산을 읽고 있다.

노예제도에 대한 지지를 보낸 '플라톤'을 바라보는 작가의 부정적인 시각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읽는 내내 아슬아슬한 느낌을 가졌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종교적, 이념적 생각에 대한 선입견일까? 후반으로 갈수록 '플라톤'에 대한 비판을 절정에 달한다.

"영혼의 불멸성을 증명하기 위해 플라톤이 보인 기나긴 집착은 오늘날의 눈으로 볼 때, 졸렬하고 궁상스러운 편견으로 보인다. 저속한 취향으로 낙인 찍힐 염려를 무릅쓰고 말한다면, 그 같은 문제와 그 문제에 대해 플라톤이 제시한 해결책은 "내일은 면도 공짜"라고 말하는 동네 이발사의 전략을 떠오르게 한다. 그러니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라고 말해온 대목에서 '우리'라고 말하는 법을 익혀야 한다. 그렇게 하면 여러 세기 동안 인류를 고민에 빠지게 했던 그 문제는 우리의 사고 속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 테니까" (202p)

 이렇게 유명한 철학자 '플라톤'에 대한 허와 실을 읽으면서 소신껏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가는 작가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리고, 기존에 알고 있던 철학자들의 다른 이면이 새롭게 인식되었다. 그리고, 단순히 '쾌락주의자' 라고 알고 있었던 에피쿠로스의 전혀 다른 모습에 매료되고 말았다.     

 "현자는 삶이란 내일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안다. 삶이란 우리가 살고 잇는 바로 이날, 이날의 매 순간이다. 행복의 매 순간, 즐거움 속에서 충족된 욕구 각각 즐거움의 매 순간은 영원히 소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로써 세계는 내 안에 받아들여지고, 삶은 제대로 살아진다. 흘러가는 시간은 더 이상 배반당한, 즉 충족되지 않는 욕구의 연속이나 잃어버린 재화, 위협당하고 실망만 안겨주는 희망이 아니다. 우리는 더 이상 시간에 휩쓸리지 않고, 기쁨의 소유 속에 머무르게 된다." (578p)

 지금 현실 속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고자 하는 나의 생각과 일치했다. 에피쿠로스는 풍족한 생활을 누렸던 플라톤과는 달리 자신의 지독한 병을 극복하면서 삶의 균형을 찾은 철학자였다. 지극히 상상적인, 허구적인 지혜가 아니라 그의 지혜는 자유롭게 사고하고 표현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인간적이 지혜였다. 수 많은 쾌락에 물들어있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온유와 용기로 절제하는 소박한 쾌락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작가는 그리스인들 안에서도 극단의 모습을 보여주는 두 철학자를 제시하면서 책의 내용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나 또한 어떤 글을 쓰더라도 주인공과 대립되는 모습을 가진 인물을 설정하고 이야기를 끌어가고 싶다. 분명 독자들의 관심과 공감을 얻을 것이다.

 이번 책에서 어떤 역사와 인물들에게도 결함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그리스 문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써 그러한 오점에 오래 머물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존재에 감사하고 앞으로 살아가는데 밝은 등불로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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