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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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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9일 09시 10분 등록

그리스인 이야기 3(Civilisation Grecque)

* Andre Bonnard 지음, 양영란 옮김 / 강대진 감수, 책과함께, 2011.03.31

 

1. ‘앙가주망(저자에 대하여)

Andre Bonnard (1888~1959)


André Bonnard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행운이다. 그리스를 이야기하는 앙가주망을 만난 것은 시대의 축복이다. 그리스 문명의 발전사가 민주주의와 계급 투쟁의 역사와 일치한다는 사유는 저자가 처음이 아닐까 싶다. 깊이 있는 디테일을 알지 못하면 결코 나올 수 없는 통찰 또한 빛난다.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의 리오 휴버먼 조차 고대 그리스 사회까지 훑어내지는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저자는 자본주의와 계급, 그리고 자유를 향한 인간의 원류를 정확히 짚어낸 동시대 유일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정보가 너무 일천하다. 도대체 포탈은 뭘 하고 있는가. 구글에 실망이다. 어렵사리 찾아낸 그의 사진도 위와 같이 일그러진 채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나마 입수한 그에 대한 정보를 간추린다.  

 

그는 1888년 스위스 로잔에서 태어났다. 로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1936년 그르노블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15~28년 로잔 중학교와 고전 김나지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며, 이후 1957년까지 30년 동안 로잔 대학 그리스어·그리스 문학 교수를 지냈다. 대학 교수이자 작가로서 여러 저작들을 통해 고대 그리스에 생생하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입히고자 노력했다. 자신의 글에서 지식인 사회 특유의 사변을 걷어내고, 학생들이 고대 그리스 작가들의 작품을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대하듯이 읽도록 가르쳤다.

 

그는 파시즘과 나치즘에 저항하는 `참여하는 인문주의자'였다. 자신의 작품 프로메테우스안티고네등에서는 주인공에게서 저항과 참여의 정신을 찾고자 했다. 1949 `스위스평화운동'의 회장으로 추대되어 평화 활동을 계속 이어갔으나, 냉전의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1952 `국제평화수호자대회' 참석차 동베를린으로 가던 중 스위스 경찰에 체포되어 기소되었다가 결국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그 후 그리스 문명사 연구와 집필에 매진하다 작고했다.

 그리스인 이야기는 헬레니즘을 진보주의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여기서 헬레니즘은 인간이 자기가 살고 있는 세상과 운명을 지배하기 위해 벌이는 모험의 시기로 간주된다. 스위스에서 불어판으로 출간된 이 책은 프랑스 뿐 아니라, 영국, 미국, 포르투칼, 러시아, 루마니아, 일본 등지에서 일찍이 각국어로 출간되었으며, 그리스 문명사 분야의 세계적인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그리스비극에 대한 지식이 깊다. 스스로가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로 불리는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을 불어로 번역했으며, 프로메테우스 Le Promethee(1928), 그리스의 신들 Les dieux de la Grece(1940) 안티고네 Antigone(1942) 플라톤이 본 소크라테스 Socrate selon Platon(1944) 오이디푸스 왕 Oedipe-Roi(1946) 사포의 시 La poesie de Sapho(1948) 비극과 인간 La tragedie et l'homme(1950) 등 그리스 관련 저서를 다수 남겼다.

 

 

2. ‘그리스인 이야기3’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 본문 내용, Ü : 나의 언어)

 

쇠락과 새로운 발견,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메데이아>

 

□ 씨앗이 배태되어 싹이 나며 성장하고 흔히 문명의 고전시대라고 하는 시기에 만개했다가 피었던 꽃이 시들고 노화하며 쇠락기에 접어들어 결국 죽는다. 어쩌면 문명은 완전히 죽지는 않는다고 보아야 한다. 문명은 다음 세대에 올 인간들을 위해서 마치 귓가를 맴도는 과거에 대한 추억처럼 아련히 남아 있게 마련이다. (p. 11)

 

Ü 이 뭔가, 훅 달려드는 과거의 문명이야기. 그 문명이 끝나지 않았다면 내 행동, 생각, 입는 옷, 보는 모든 것에 점점이 티 나지 않게 박혀있을 터. 어느 순간 그것들이 보이는 날이 올 것 같다.

 

□ 문명은 실패 속에서도 다시 말해서 특정 시기까지는 출산에 이르지 못하고 유산만 거듭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완전히 무화되지 않는다. (p. 11)

 

□ 문명의 삶이란 말하자면 항구적인 태어남이라고도 할 수 있다. (p. 12)

 

Ü 인간의 짧은 사이클이 인간 개개인에 국한된 것이라면 문명은 인간들이 모여 집단 공동체를 이룬 사이클이 아닌가. 인간이 죽어도 우주는 끝나지 않는 것처럼 문명도 죽지만 죽지 않을 터.

 

□ 그는 고대 비극의 파괴자인 동시에 그 비극을 연장하고 젊게 만들어 르네상스로 연결시켜주는 가교 역할을 한 시인이기도 하다. 다양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마음을 천착함으로써 고대 비극을 인간화한 장본인인 것이다. (p. 17)

 

□ 폭탄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서 폭발한다. (p. 18)

 

Ü 모든 답은 내 안에서 분노, 증오, 기쁨, 행복의 형태로 나타난다.

 

아이를 한 번 낳느니 차라리 방패를 들고 전쟁터에 세 번 나가는 편이 나으리여자들에게 전쟁터가 있다면 그건 바로 남자와의 잠자리가 될 것이다. (p. 21)

 

Ü 피임기술이 없었을 때는 그랬겠다. 그러고 보면 피임의 발명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한 것 같기도 하다. 아닌가.

 

□ 결혼할 테면 하세요. 그래서 어디 행복하게 잘 살아들 보시라니까요! (p. 22)

 

Ü 감정을 꾹꾹 눌러담은 담담한 비판. 자기를 감추는 그러나 감출 수 없는.

 

□ 사랑은 대가를 바라지 않거나, 바라거나 둘 중 하나다 (p. 24)

 

Ü 이 무슨 허무개그적인 말인가. 사람은 죽거나, 살거나 둘 중 하나다. 뭐가 다른가.

 

□ 눈이 부시도록 잘 포장된 위선 속에서 난공불락의 오새처럼 보이던 이아손에게도 단검을 후벼 넣을 틈이 있음을 발견한 메데이아는 기쁨에 전율한다.

 

, 예쁜 손, 고운 입술너희 둘 다 행복하거라. 그곳에서 말이다! , 이 부드러운 포옹, 보드라운 살결, 향기로운 내 아이들의 입김! , 가거라, 가거라…’ (p. 28)

 

Ü 허허, 이거 이거 정말 인간미 넘치는군.

 

□ 나의 분노는 나의 결심보다 강하다네! (p. 29)

Ü 자신 자식은 그녀의 기쁨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 참혹함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김없이 맛본다. (p. 30)

Ü 좋은 표현이다.  

 

□ 메데이아는 최후의 승리를 쟁취했다. 하지만 그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 그녀는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을 내주어야 했다. (p. 30)

Ü 내 살을 내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

 

□ 심리와 소유욕, 심리적인 힘은 우주를 움직이는 힘과 구별되지 않는다. 우리들 자신만 놓고 보더라도 우리는 과연 우주와 구분되는가? 에우리피데스가 발견한 심리적 사실주의는 결국 우리를 이 질문으로 이끈다. (p. 32)

 

코스모스에의 복속을 강조한다.

 

메데이아는 복수의 성공, 완전한 승리를 쟁취한 가운데 완전히 파괴되었다. 모성마저도 넘어섰다. (p. 33)

 

Ü 더 이상의 소원은 없다. 파에톤이 태양수레를 몰아갈 때와 이카루스가 하늘을 날아오를 때, 완전한 쟁취는 완전한 파괴다.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에 나타난 비극성

 

□ 숨도 못 쉴 정도로 간이 콩알만 해지게 만들었다가 그 다음 순간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가슴을 툭 트이게 하는 식의 짜릿한 서스펜스를 선사하는 줄거리는 꿈도 꾸지 못했다. 이점에서도 에우리피데스는 사양길에 접어든 비극에 이제까지는 듣도 보도 못했던 새로움을 부여했다고 말할 수 있다. (p. 38)

Ü좋은 표현

 

□ 하지만, ‘~하고 싶다일 뿐, 그의 의지는 조건법에 머물러 있다. 현실 속으로 돌진하려 아지 않으며 결단력을 가지고 실행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우유부단한 그는 주변 사람들과 상황에 이리저리 끌려 다닌다. (p. 39)

 

Ü 아가멤논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어찌 이리도 나와 같은가. 조건법에 머물러 있는 의지. 우물쭈물 하다가 나 이럴 줄 알았지를 반복하는 일상.

 

□ 딸의 목을 베려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로부터 딸을 구하려는 어머니 중에서 누가 과연 진정으로 딸을 사랑하는 것일까.

 

클리타임네스트라의 철철 넘치는 모성애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절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p. 44)

 

□ 부재하는 신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우연이야말로 이 비극이 보여주는 진정한 신 (p. 46)

 

Ü 우연을 가장한 필연, 緣起

 

□ 선한 의지들이 단결하기만 하면 모든 것을 구할 수 있을 때 약간의 틈새만 생겨도 모든 것은 그것으로 끝이다. 이 같은 마음의 틈새, 존재의 미묘한 결핍을 통해서 이피게네이아의 운명은 결정된다. (p. 50)

 

Ü 정곡을 뚫어버리는 혜안이다. 그 틈새에 와라락 무너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 틈새에 신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어쨌든 이피게네이아는 아가멤논의 그 틈새에 의해 운명이 결정된다.

 

□ 인간들은 어떻게 악마적인 진노가 퍼붓는 저주에 대항해서 공동의 싸움을 벌일 수 있을 것인 것? 존재의 진노, 이것은 이 세계의 심술궂은 얼굴에 붙여준 이름일 뿐 아니라 인간자신의 갈팡질팡하는 마음, 본질적으로 행복을 확고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하는 무능함을 가리키는 이름이기도 하다. (p. 51)

Ü 이건 좀 어렵다.  

 

□ 사회라고 하는 기제는 운명의 교묘한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것일까? 사회란 사실 그런 목적으로 고안된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사회의 발명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이피게네이아가 죽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사회의 구원 때문이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아직 시가 남아 있다. (p. 52)

 

Ü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가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이피게네이가 아비를 구하고 시는 사회를 구한다. 멋진 표현이다. 

 

□ 우리의 마음은 야성적인 희열 속에서 춤춘다. (p. 58)

 

비극 <박카이>

 

□ 신을 믿지 않는 펜테우스 (p. 62)

Ü 나는 펜테우스가 좋다.  

 

□ 대지에는 젖이 흐르고 포도주가 흐르며

꿀벌들의 감로가 흐른다. (p. 65)

 

□ 신은 현자들과 똑똑한 자들에게는 이런 것들을 찾지 못하도록 감춰놓았다.

정신이 가난한 자들은 행복하도다! (p. 67)

 

Ü 행복하지 않은 것은 내가 정신이 가난하지 않다는 이야기고 정신이 가난하지 않다는 것은 똥으로 찬 배처럼 쓸데없는 생각들이 꽉 찼다는 말이겠고 쓸데없는 생각들이 꽉 찼다는 말은 생각해야 할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겠고 생각하지 못하는 이유는 여유가 없어서이거나 생각하는 걸 겁내하는 것이고 여유가 없는 이유는 일상에 허덕이기 때문이고 겁내하는 이유는

 

□ 인간은 허둥대다 미끄러져서 신의 신비라고 하는 깊고 위험한 물속으로 자꾸만 빠진다. (p. 69)

Ü 나 지금 그러면 허둥대는 중인가.

 

□ 신은 인간보다 강하다 (p. 71)

Ü 인간의 마음속에 갖가지 정념들을 심어 놓을 수 있을 만큼

 

□ 비극적인 갈등의 끝에서 신이 인간에게 선고하는 판결은 때는 너무 늦었다는 것이다. ‘그대는 나를 너무 늦게 알았노라라고 디오니소스는 말한다. 인간 아가우에는 다시 애원한다. 그렇지만 신에게서 듣는 대답은 오직 하나뿐이다. ‘나는 신이다’ (p. 75)

 

Ü 준비되지 않은 자, 신을 알현할 수 없다.

 

□ 그의 실증적인 정신, 그리고 국가수반으로서의 그의 지위는 디오니소스 숭배라는 신비주의적인 종교를 의심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펜테우스는 말하자면 신들도 상식적일 것을 요구했다. (p. 78)

 

Ü 보이는 것만 믿으려는 실증적 현실은 영혼을 황폐하게 만든다. 괴테 역시 그런 황폐를 피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야반도주하듯 도망친 것이 아닌가. 모든 행정가나 위정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자신의 영역 안에서 미친 듯이 고민하고 현실에 충실하지만 결국 그 길은 신을 받아들일 수 없는 길이다. 종국에는 막혀있는 막다른 길이다.

 

□ 이 종교의 효용성은 어디에 있는가? 왕이 묻는다. 이 질문에 신은 너는 그것을 알 자격이 없다.고 반박했다. 당신의 신은 어떤 분인가? 왕이 또 묻는다. 이에 대해서는 자기 마음대로지 라는 답이 돌아온다. (p. 79)

 

Ü 그렇다. 효용을 따지는 인간치고 신의 존재를 느끼는 사람은 없다. 그 효용이란 것 때문에 자기 자신도 들어설 자리 없는 돌계집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가슴 속으로 신이 들어설 자리, 여유가 없다.

 

□ 펜테우스처럼 에우리피데스도 신을 갈구하는 과정에서 저항하는 마음이 점점 커졌다기보다는 상대방, 즉 신이 문을 닫는다는 느낌을 받았을 수 있다. (p. 80)

 

신은 이 모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피조물들의 교제다. 요동하는 산은 산이 거둬주고 있는 모든 존재들과 똑 같은 신의 숨결에 의해 활기를 얻는다. 춤을 추는 대지와 포효하는 야수들도 신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똑 같은 흐름이 이들을 이어주며 필요하다면 이 같은 교제를 단절시키려고 하는 자들을 상대로 반기를 든다.

 

오직 인간만이 자연으로부터 분리되어 살며 바로 이것이 인간의 불행이다. 인간은 대자연의 가장자리에 자기만의 고립된 세계를 구축하고는 그것을 지혜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신으로부터 분리 되었으므로 지혜가 아니라 광기라고 해야 마땅하다.

 

지혜는 지혜가 아니기 때문이다. (p. 82)

 

□ 소포클레스도 말했듯이 신들이 무슨 짓을 하건 그건 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신앙은 일종의 신성한 공포, 제동장치라고는 없는 힘에 의해서 좌지우지된다고 느끼는 불안, 두려움이 될 수도 있다. (p. 86)

 

□ 아가우에가 비명을 지르는 장면에서도 시인의 인간미는 신의 비인간성에 반기를 든다. 아니, 신들이 인간보다도 못하단 말인가? 그때 디오니소스가 나타나 설명한다. 아가우에도 지지 않고 평가한다. 자신에게 벌을 내린 신 앞에서 아가우에는 당당하게 말한다. ‘신들은 아무리 진노했다고 해도 우리 인간들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p. 88)

 

Ü 안타깝다. 이 구절, 시인아 왜 이런 말을 했는가. 당신이 신에 가까이 갔음을 이 구절을 굳이 말하지 않았으면 우리는 어렵게나마 유추할 수 있었을 터인데. 이 말로 인해 그대는 인간의 시인임을 명확히 하였다. 신이 하는 일은 존재 너머의 일이었다고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라고 하든지.

 

□ 고통에 대한 연민, 윤리의식은 그로 하여금 또 다른 이 신앙, 다시 말해서 스스로가 신이 되어야 하는 이 신앙을 확신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p. 88)

 

Ü 인간에게 인간미, 고통에 대한 연민, 윤리의식이 없다면 일단은 신임을 의심해 보자.

 

투퀴디데스와 도시국가들간의 전쟁

 

□ 니키아스는 예측할 수 없는 우연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자면 우연으로 하여금 자기 대신 결정을 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p. 95)

 

Ü 순리, 방관, 판단유보, 전략이 없는 것도 전략? 우유부단을 감추는 눈부신 전략.

 

□ 이렇듯 투기디데스의 인물들은 위대한 소설가에 의해 창조된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끝없이 질문하게 하고 설명을 요구하게 만든다. 사실 그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존재들이 자신을 확인하는 방식이 아니겠는가. (p. 101)

Ü 좋은 질문 하기와 그 질문에 맞춤하는 자신만의 답을 해가기.  

 

□ 투기디데스에게는 단순하고 일의적인 인물이나 상황은 거의 없다. 각각의 존재는 항상 보이지 않는 이면을 지니고 있게 마련이다. (p. 103)

Ü 자신의 견해를 배제하고 인과를 정확히 설명해 내는 것, 역사가의 소명

 

□ 행복은 자유 안에 깃들어 있고 자유는 용기 안에 깃들어 있음을 안다면 전쟁의 위험과 당당히 맞서라. (p. 103)

 

□기록한 역사는 유용하고자 하며, 작가 자신이 직접 그렇게 말한다. (p. 104)

Ü 헤로도토스는 그의 저서 historiae에서 이렇게 서두를 땐다.

 

인간 세계에서 일어난 일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망각되기 마련이다. 그리스인이나 이방인이 이룩한 위대하고 놀라운 갖가지 업적, 특히 무엇 때문에 서로 싸우게 되었는가에 대한 사정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갈 것이다.‘

 

□ 민중들에게 이성을 말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투기디데스는 아낙사고라스, 레우킵포스, 데모크리토스, 힙포크라테스처럼 쟁쟁한 동시대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p. 105)

 

Ü 신을 재끼기 시작한 멋진 인간들의 나열이다. 내가 다 뿌듯한 이유는 뭐지.

 

□ 우연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사건은 합리적인 원인의 결과로 필연성의 지배하에서 발생한다. (p. 105) Ü 緣起

 

□ 내 저술이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과 인간의 정념이 언젠가 초래하게 될 유사한 사건들에 대해 명확한 견해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투기디데스의 독창성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과학, 즉 물리학과 의학의 정신과 방법론을 진기한 내용들이 여전히 득세하고 있는 역사라고 하는 분야에 접목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p. 105)

 

□ 소크라테스가 윤리를 학문으로 만들고자 시도했던 것처럼 투기디데스도 역사를 정밀과학 또는 정밀 과학에 근접한 학문으로 만들고자 했다. (p. 106)

 

Ü 인류 역사는 헤로도토스에 의해 세워지고 투기디데스에 의해 만들어진다. 소크라테스는 그 역사에 윤리를 씌운다.

 

□ 결국 역사를 설명하는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항상 인간 각기 다른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다양한 변주를 펼치는 인간이다. 오직 인간 본성의 상대적인 안정성만이 역사 변천의 법칙을 수립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 인간 본성이 지금처럼 유지된다면 (p. 106)

 

□ 그렇다면 도대체 그가 보았던 인간의 본성이란 무엇인가? 역사를 만들어가는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소유와 지속, 이것이 생존 본능이 추구하는 방향이다. 이 두가지를 하나로 묶어주는 단어가 있다면 그건 아마도 이익이다 (p. 109)

Ü 그랬군, 결국 이익이었어.

 

□ 도시국가, 민족국가, 국가. 이런 것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한마디로 이익집단, 개인들의 이해관계의 총합이다. 국가는 총체가 아니며 계약의 공간일 뿐이다. (p. 110)

 

Ü 명징하다. 깔끔하다. 국가는 그런 것이다. 나의 생각과 같다.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애국심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사사로운가. 이것은 지배계급을 위한 피지배계급의 공동체적 서비스일 뿐이다. 이익을 내기 위한 지배계급의 이기심을 확고히 해주는 대중들에게 호도되고 강요된 감정일 뿐이다. 생각을 확장하자. 그렇다면 국익이란 무엇인가. 항상 대통령이라는 자가 고심한 뒤 국가에 반하는 결정을 하고 대국민 연설에서 떠드는 그 국익이란 무엇인가. 지배계급의 이익은 아닐까. 국익을 위해 결정한 모든 사안들이 국민들 전체의 이익으로 되돌아 온 적은 있는가. 우리는 지금 어떻게 호도되고 있으며 강요 받고 있는가. 사회간접자본에 투자하여 물, 가스를 자유롭게 공급받으며 국가는 도대체 구성원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징병제는 왜 지속되는가. 국가보안법은 왜 아직 사라지지 않는가. 왜 국익이란 말이 아직도 시민들에게 국민교육헌장처럼 살아있는가.

 

역사란 살고자 하는 의지 사이의 투쟁 (p. 111)

Ü 이런 말을 어떻게 생각해 냈을까. 놀랍고 부럽쌈.  

 

□ 나는 정복 정책을 이끌어온 아테나이인들을 용서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나는 권력을 탐하는 자들을 비난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왜냐하면 항복하려는 자 위에 군림하면서 명령을 내리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제국의 탄생과 성장, 몰락은 정치적 현상을 순순한 상태로 보여준다고 다시 말해서 격조 높은 정치 현상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p. 112)

 

역사란 살고자 하는 의지의 전개, 살고자 하는 의지 사이의 투쟁이다. (p. 113)

 

데모스테네스와 도시국가 시대의 몰락

 

□ 타고난 연설가였던 그의 신체적 결함 중에는 부정확한 발음도 빼놓을 수 없다! 감정이 고조되면 말의 이어지고 끊어짐이 불분명해졌으며 특정 음절을 발음할 때는 혀가 꼬이는 통에 말을 더듬었다.

 

적절한 연습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의지로 데모스테네스는 발음을 교정하고 비효율적인 호흡을 바로잡았으며 틱 장애로 굽어진 어깨도 교정했다. 그의 초기 연설들은 청중들의 웃음거리가 되었지만 그는 결국 민회에 모인 사람들이 가장 경청하는 연설가로 우뚝 섰다. (p. 122)  

 

□ 군대나 무기의 힘보다 외교술과 뇌물로 상대방을 부패시키는 작전의 힘이 컸다. 황금을 가득 실은 노새만 들여 보낼 수 있다면 함락시키지 못할 도시가 없다. (p. 124)

 

□ 이것이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다. 우리는 우물쭈물 망설이고 나약해지며 공연히 이웃만 훌금훌금 곁눈질하면서 서로 으르렁댈뿐 (p. 135)

 

Ü 나의 상황이다. 우물쭈물하다가 나 이럴 줄 알았다가 부디 나의 묘비명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데모스테네스는 마흔여덟 살이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일개 병사로 전투에 참가했다. (p. 137)

Ü 실전에 참가하는 정치가. 배워라. 닮아라.

 

□ 아테나이는 더 이상 우리 조상 때처럼 바다에 나가 적을 무찌르는 도시가 아니라, 실내화 바람에 차나 홀짝거리는 늙은 할망구라고 말하던 (p. 139)

Ü 재미있는 표현이다.  

 

□ 이미 죽어버린 아테나이의 민주주의를 위해 데모스테네스는 죽음을 택했다. 그는 노예 상태로 사는 것보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편을 선호했다. 이 정도에 천재, 이 정도 스케일의 인물이 죽는다는 것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p.142)

 

플라톤의 정치적 대망

 

□ 국가에 등장하는 한 인물은 이렇게 묻는다. ‘친애하는 호메로스여, 어떤 도시가 자네 덕분에 더 나은 통치를 펼쳤는가? 어떤 사람들이 자네 덕분에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했는가? 이 대목에서 우리는 플라톤이 호메로스를 필두로 하여 시 전체에 대해서 내린 그 유명한 사망 선고를 접하게 된다. (p. 145)

Ü 플라톤에 이르러 시는 죽는다. 그런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 시와 철학의 혼재라는 바로 이 점이 그만의 매력이며 (p. 146)

 

그는 완벽한 교육 즉 지성을 예리하게 정련하고 정치 생활을 위해 언어를 유연하게 가다듬는 최상의 훈련을 받았다. (p. 146)

Ü 그의 존재는 인류가 준비한 것인가. 사회적 인프라가 그의 존재를 오랫동안 응축하여 기다려 온 듯하다.  

 

□ 지혜를 정의해보라고 요청하자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뤼시스도 우정에 대해서 묻자 같은 태도를 보였으며 용감한 무사 라케스마저도 용기가 무엇인지 정의해보라는 요구에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가 하면 박학다식한 궤변의 대가 힙파아스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p. 149)

 

Ü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을 정의해 가며 배우는 것. 제대로 노는 방법. 잘 논다는 것은 이런 것.

 

□ 플라톤과 소크라테스, 이 두 사람이 도저히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뒤엉켜서 새로운 인물을 탄생시킨다. 다시 말해서 새로 태어난 플라톤이 새로 태어난 소크라테스 즉 정의와 혼동되는 소크라테스 정의로운 사람 그 자체인 소크라테스와 다시 만난다. (p. 154)

 

Ü 우리가 알고 있는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정념에 있는 사람이다. 관념적인 플라톤이 이처럼 오랫동안 추앙받고 여전히 성인으로 군림하게 되는 이유는 그의 이런 관념적 사고 방식의 역할이 크지 않았겠는가. 2천년을 지배한 기독교의 사유와 유사하고 기독교에 의해 지배사상을 유지하는 위정자들에게 플라톤은 천군만마와 같았을 터

 

□ 나는 국가의 해악은 순수하고 진정한 철학자 종족이 권력을 잡게 되거나, 국가 지도자들이 신의 도움으로 진정으로 철학에 입문하게 될 때까지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욕망에 저항할 수 없이 강렬하게 이끌린다. (p. 155)

 

여기서 그가 말하는 국가란 민주주의의 광기 속에서 거덜이 난 아테나이가 아니라 철학자들이 왕으로 군림할 미래의 국가를 가리킨다. (p. 155)

Ü 말로만 듣던 철인정치를 보고 있다.  

 

□ 진정한 정치란, 복잡할 것도 없이 국가 안에 사는 시민들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p. 155~156)

 

□ 행복은 모든 인간이 추구하며 모든 인간에게 필요한 유일한 재화다. 이것이 바로 철학자가 행동에 돌입하기에 앞서서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역설 중의 하나 (불의를 감내하는 자는 불의를 행하는 자보다 훨씬 행복하다, 이 역설은 소크라테스의 역설인 동시에 오르페우스주의의 역설이기도 하다)에 맞추어 정립해야 할 것이다. (p. 156)

 

Ü 이 무슨 자발적 복종을 강요하는 전체주의적 발상인가.

 

□ 플라톤은 항상 이탈리아 남부와 시켈리아에 매력을 느꼈다. (p. 157)

 

□ 독재자-철학자는 결코 만날 수 없음을 차츰 통감하게 되었다. (p. 159)

 

□ 내세에 대한 생각, 사회의 기원에서부터 인간 사회가 걸어온 길을 보여주는 체계화된 역사, 정치 형태의 혁명에 관한 이론, 특히 그리스 세계에 널리 분포되어 있으며 플라톤이 가장 혐오하는 두 종류의 정치체제, 즉 민주주의와 독재에 대한 매우 심도 있는 연구 등이 총망라되어 있는데 특별히 민주주의에 대해서 그는 신랄한 독설을 퍼부어댄다. (p. 161)

 

Ü 철인 정치를 추구하는 것 자체로 플라톤은 선민사상에 빠져있다. 선민적인 능력을 믿는 사람은 대중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허용할 수 없는 것이다.

 

□ 노동자 계급의 주요 의무는 주어진 위치에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고유한 덕목이란 욕심을 절제하고 정념에 제동을 거는 것이었다. 이들은 늘 절제와 절도를 익혀야 했다. (p. 164)

 

Ü 세상이 플라톤의 생각대로 만들어져 왔다며 맞는 말이 되겠다. 세상에 휘둘리는 라고 생각하니 이렇게 눈물 겨울 수가 없다.

 

□ 플라톤에게 비극은 인간 정신을 나약하게 만들며 죄스럽기 한량없는 호의로 정념을 포장하는 것이었다. (p. 164)

 

□ 군인 계급을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여기에는 말이나 소의 종자를 개량하는 생산자들의 방식에서 받은 영감과 짐승과의 허무맹랑한 비교를 통해 작성한 우생학적 고려가 적잖이 포함되어 있다. (p. 165)

 

Ü 사람을 언제든 동원 가능한 자원으로 보는 시각이다. 이런 시각은 매우 위험한데 신이 인간들의 개인에 심어 놓은 온갖 정념들을 무시한 처사로 체제를 엎을 수 있는 힘이 그들에게 있음을 간과하는 일이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는 이들의 체제 전복을 막으려는 당근과 채찍, 즉 자발적 복종을 유도하는 눈물 겨운 방법론이라 할 수 있겠다.

 

□ 중세에는 사회적 현실에 따라 기독교 사회의 인구를 세 가지 계급으로 분리하는 것을 당연한 규범으로 여겼다. 라보라토레(노동자), 벨라토레(병사, 무사)그리고 오라토레(사제) 이렇게 세 계급이었다. 그 중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계급은 사제였으며 그 대신 이들에게서 독신주의와 청빈 서원을 통해 가정적인 관심을 박탈했다. (p. 166)

 

Ü 플라톤은 중세, 아니 지금까지의 앵글로 색슨의 사유를 지배해 왔다는 것이 맞는 말이겠다.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플라톤의 철학이 인간의 마음을 가장 심각하게 소외시키는 이론 중의 하나로 보인다. (p. 167)

 

□ 그가 제안하는 국가에서는 진보가 철저하게 배제된다. 이 국가는 영원히 완벽한 존재로 제시된다.

철학자들이 모든 지식을 독점하고 절대로 그릇된 판단을 하지 않는 국가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요컨데 플라톤은 역사를 배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은 역사를 만들고 역사는 인간을 만든다. 플라톤의 국가를 쓰면서 민주주의의 사망신고서를 작성하고 있다고 믿었던 그 세기로부터 여러 세기가 지난 후 민주주의를 향한 행보는 안정된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코뮌과 더불어 보란 듯이 재개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1789…1848계속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세계를 뒤흔든 열흘로 이어진다.

인류의 역사는 이제 겨우 시작되었을 뿐이다. (p. 169)

 

Ü 코뮌, 프랑스대혁명, 프랑스 제2공화국,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 광주항쟁. 사람답게 살려는 사람들의 자각.

 

우리가 사는 세계란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탐구했다. 우리를 둘러싼 현실은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우리의 눈이 보는 것, 우리의 귀가 듣는 것, 이것은 모두 실재인가? 아니, 그것이 실재 그 자체인가, 아니면 실재의 가상에 불과한가? (p. 173)

 

Ü 그러나 그의 질문은 세기적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질문을 던진 사람이다.

 

□ 천박한 감각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관념적인 세계를 우리에게 그려 보일 때에는 벌거벗은 이데아를 온갖 색채와 감각적인 외관 (그 자신은 이런 것들을 배제했다)으로 치장해서 보여주었다. (p. 175)

Ü 신격화 하기 위한 대상이 있다면 플라톤의 사유를 활용하라.  

 

□ 동굴 속 포로들이 보는 모든 것, 즉 입상들과 그 입상들의 그림자는 감각적 세계를 형성한다. 감각적 세계란 순수한 환영의 세계다. 그림자는 감각의 환영이며 꿈의 이미지에 불과하나, 사람들은 마치 이것이 유일한 현실인 것처럼 이를 천박하게 맹신한다. (p. 178)

 

□ 우리를 모호한 세계로 이어주는 사슬은 우리를 우리의 육체에 종속시키며 우리를 가상의 세계에 가두어두는 욕망과 두려움, 정념을 상징한다. 우리를 진정한 세계로 이끄는 험난하고 바위투성이인 오솔길은 철학적 성찰, 변증법적 방식을 의미한다. (p. 178)

 

□ 이데아라고 하는 말은 플라톤 철학에서 우리 정신의 사고가 아닌 우리의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완벽한 것, 즉 창조되지 않고 원래부터 존재하며 불멸의 것, 영속적이며 변질되지 않는 것, 물질적인 세계, 감각 세계의 부질없음을 인정하며 변증법적인 인식 방식에 따라 단계적으로 훈련받은 철학자의 영혼만이 관조할 수 있는 것을 가리킨다. (p. 179)

 

□ 기하학적 형상이란 관념적인 형태이며 그것을 이루는 선들은 아무런 두께도 없다. 직각삼각형은 크지도 작지도 않으며 이렇거나 저렇지도 않다.  

 

Ü 이와 관련해서 어느 책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읽고 요약했던 글이 있다.

 

기하학의 원론적 의미는 재다, 측량하다 즉, 공간과 평면의 수리적 성질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기하학의 가장 기본구조는 입체에서 부피로 다시 분면으로 이어지는 선, 점이라는 하부구조에 이른다어떠한 점이나 선은 아무리 극소라도 절대적으로 질량을 가진다고 봤을 때, 모든 기하학적 가정과 가설은 거짓이 되는데 예를 들면모든 삼각형 내각의 합은 항상 180º라는 전칭명제다. 삼각형을 구성하는 선이 질량을 가지고 고유한 넓이를 가질때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79.553311556458789798461..으로 이어지는 수치를 가진다. 따라서 삼각형이 점과 선으로 구성되는한 내각의 합은 결코 180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기하학적 비약이 이루어진다. 존재를 부정한 관념으로서 180임을 기정 사실화한 것이다

 

현실세계에서는 결코 일어나지도 이루어질수도 없는 관념에 대한 이론적 체계를 발전시켜 나가며 geometry 성장해 나간다실재를 부정한 생각, 즉 관념의 사유체계로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 증명할 수 없는 공리에서 출발한다는 것인데, 공리란 무증명명제라고도 하는 이른바 증명할 수 없는 법칙을 가정한 명제다. 이러한 사유체계 즉, 기하학적 사유체계가 기독교의 첨병으로 전세계 퍼져 나갈 수 있었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만하다논리적 비약에서 출발한 논리적 사유. 동정녀로부터의 탄생과 죽은지 사흘만에 부활했다는 믿음! 이러한 관념체계는 피타고라스에서 시작해 플라톤에서 집대성되는데 이른바 이데아(idea), 아이디어(idea) 형용태는 아이디얼(ideal)이다. 우리의 몸과 현실세계를 이루는 모든 물질은 껍데기에 불과하며 물질의 상위인 보편자(普遍)는 이데아에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영혼은 이데아적 개념이고 몸은 물질의 개념이다

platonic love는 이데아적 사랑이며 육체적 사랑은 세속적이며 통속적인 껍데기라는 것이다. 헬레니즘(희랍사상) 사상의 원류인 이데아론은 이데아적 우주의 설계를 절대자의 손에서 이루어져 있다는 사유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여기에 더해 헤브라이즘(이스라엘사상)은 단지 설계자에 머물던 하느님, 야훼를 전지전능한 창조주 하느님으로 승격시킨다. 인류의 역사는 바로 여기서 또한번 크게 뒤틀리는 시련을 겪게 되는 것이다.

 

전능함우주의 창조, 빅뱅, 비약등은 강요, 유일, 맹신, 복종급기야 전쟁과 가장 잘 어울리게 되는 것이다. 개미와 메뚜기에도 도()가 있다던 장자(莊子)와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라하며 도덕경을 써내려간 노자(老子의 사상과는 완벽히 상반되는 사유가 2000년을 넘게 진행되었던 것이다.

 

□ 플라톤의 철학은 관념철학이다. (p. 180)

 

□ 이성은 날개 달린 두 마리 말을 정면에서 몰아야 하며 신들 중에서 어느 하나를 따라서 이 말들을 하늘로 올라가게 해야한다. (p. 181)

 

□ 영혼을 고양시키는 흥분은 가장 아름다운 광기라고 할 만하다네 (p. 182)

 

□ 아킬레우스는 나는 저승에서 왕으로 지내는 것보다 지상에서 태양 아래에서 가난한 농부를 돕는 날품팔이 일꾼으로 사는 편이 더 좋다.’고 말했다.

지상에서의 현재 삶이 가지는 으뜸가는 유일무이한 가치를 확인시켜 주기 때문이다.

 

철학 하는 것은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오래전에 죽음을 맞은 소크라테스 즉 플라톤 안에 살아 있는 소크라테스가 말한다.(p. 185)

 

□ 이처럼 이제부터는 우리 영혼의 불멸성이 필연적으로 죽게 되어 있는 우리의 삶을 지배하며 이를 내포한다. (p. 186)

 

Ü 우리가 죽을 것을 알면서도 영원히 살 것처럼 행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영혼의 불멸성이라는 든든한 백그라운드를 믿고 있으니

 

□ 죽음은 일종의 오솔길 이성이 우리를 인도하는 탐구 과정에서 우리를 단도직입적으로 목표물에 데려다주는 지름길이다. (p. 187)

 

전쟁이란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가? 혁명이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육체와 육체가 품는 정념에서 온다. 모든 전쟁은 부를 축적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되지 않는가? 우리는 육체를 통해서 부를 축적해야만 하지 않는가. 그 때문에 우리는 육체의 노예가 되어버리지 않는가? 그것이 바로 우리가 철학을 생각할 시간이 없는 이유다. (p. 186)

 

Ü 아아아! 온다. 온다. 왔다. 이거 뽕 맞는 기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일단 우리가 죽어야만(이성이 우리에게 그렇게 경고한다) 우리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즉 지혜를 향유할 수 있다. (p. 187)

Ü 플라톤은 정말 상수구나.

 

□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순수한 본질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말은 순수한 마음을 가진 자들은 행복하도다. 그들은 신을 볼 것이다. 라는 말을 예고하는 것처럼 들린다. (p. 189)

 

□ 진정한 철학자의 영혼은 자신의 해방에 반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므로 정념과 쾌락 슬픔, 두려움을 삼간다네 (p. 193)

 

□ 여전히 육체로 가득 찬 채 이 삶을 벗어난다면 영혼은 곧 또 다른 육체로 들어가 마치 대지에 씨를 뿌리듯이 그곳에 뿌리를 내리게 된다네. 이렇게 되면 신적인 순수함과 소박함은 영원히 배제될 것이라네. (p. 194)

 

□ 플라톤은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지상에서의 삶은 임시로 거쳐가는 망명지, 통과 장소이며 죽음은 속죄와 벌이 이루어지는 거대한 지역으로 가는 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고 보니 이번엔 어쩐 일인지 보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p. 201)

 

□ 노예제도는 아테나이의 상업적 팽창, 재정 안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아테나이의 헤게모니, 아테나이의 제국주의가 노예제도를 요구한다고 볼 수 있었다. (p. 207)

 

□ 플라콘도 이미 신과 비슷하게 될 것을 요구했다. 플로티노스가 추구한 꿈(엄청난 환각 상태, 엄청난 정신착란)은 명백하게 플라톤에서 출발했다.

어쨌거나 이는 기독교의 탄생을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p. 211)

 

□ 그는 감각적인 현실로부터 도피하면서 동시에 거기에 합류하기 위해 형이상학이라고 하는 역설적인 우회를 선택했다. 순수한 아름다움의 관조, 신과의 교제만이 그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광대하고 심오하며 설득력 있는 몽상이었던 것이다. (p. 213)

 

□ 육체를 넘어선 영혼의 시선으로 신을 관조하는 법, 눈에 보이는 창조된 사물들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신의 완벽함을 식별해내는 법을 가르쳤다.

신비주의의 대부분, 변질된 영혼의 신으로부터의 일탈 등을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과 그의 수제자인 플로티노스에게서 끌어왔다.

이렇게 해서 플라톤은 기독교라고 하는 환상 속으로 스며들어갔으며 이를 예고 했다.

기독교를 준비하기 위한 플라톤’ (p. 215~216)

 

□ 플라톤은 그리스적이다. 역사의 다른 한쪽 끝에서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끊임없이 묻는다. (p. 220)

 

죽음은 어디까지나 죽음, 즉 무다. 그런데 여러 세기 동안 이처럼 명백한 사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간주되어왔다면 플라톤은 분명 인간의 상식을 소외시킨 주요 인물들 중의 하나로 지적되어야 한다. 이 정도면 신에 버금가는 플라톤이라고 불리기에 손색 없는 걸까? (p. 221)

Ü 그렇다 손색없다. 예수를 불러내어 신으로 만든 인간 신이라고 불리는 것은 어떤가.  

 

아리스토텔레스와 생명체

 

나는 플라톤을 좋아한다. 하지만 진리를 더 좋아한다. (p. 227)

Ü , 이 사람 맛을 아는 사람이군

 

□ 일반 대중에게 맛보기식으로 그리스 문명을 소개한다는 이 책의 소박한 의도 (p. 233)

Ü 맛보기? 무슨 맛이 이리도 본격적인가. 많고 깊다. 소화불량 지경이다.

 

□ 자연의 의도를 알아가는 일은 원인을 파악할 수 있는 자들, 곧 뛰어난 학자들에게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을 제공한다.

들어오게 부엌에도 신들이 계시다네(p. 235~236)

 

Ü 우주의 운행에 참여한다는 기쁨일까. 신께 한 발짝 다가서는 인간의 기쁨일까. 어쨌든 기쁘겠다.

 

생명체들이 타고난 이 운명, 궁극적인 존재 이유들을 발견하는 것은 말하자면 매 순간 이 세계가 지닌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 것이다. (p. 236)

 

□ 자연 속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을 빠짐없이 조사하고 이들을 통해서 자연 속에 내재하는 합목적성을 찾아내며 이들을 인간을 향한 줄기찬 상승의 움직임으로 분류하려는 계획을 품은 것이다. (p. 237)

 

Ü woooow! 인간이 되려 하는 자연세계를 설명한다… ! 관념도 놀랍고 그 스케일도 놀랍다.  

 

요컨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지능(지능은 신적인 속성을 지닌다)을 포함하여 인간이라고 하는 총체적인 현상을 동물이라는 맥락 속에 위치시키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동물이라고 하는 가족의 단일성, 생물학의 단일성은 훼손되지 않는다. (p. 250)

 

Ü 보나르는 이 책에서 <박카이>를 이야기하며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오직 인간만이 자연으로부터 분리되어 살며 바로 이것이 인간의 불행이다. 인간은 대자연의 가장자리에 자기만의 고립된 세계를 구축하고는 그것을 지혜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것은 신으로부터 분리 되었으므로 지혜가 아니라 광기라고 해야 마땅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단일성을 훼손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 사유는 자연의 저편에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는가.

 

□ 동물이 동물만의 감수성을 상실하고 식물이 되는 단계로의 이행이 기술되어 있다. 식물이라고 하면 영양을 공급하는 기관인 뿌리가 직립 자세일 때와는 정반대되는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식물은 머리가 땅속에 들어가 있으므로 감수성을 상실함은 물론 지능도 완전히 소멸해 버린다. (p. 251)

Ü 재미있는 사유다.  

 

□ 인간의 손은 발톱이 되기도 하고 뿔이 되기도 하며 창이나 검, 그 외에 많은 다른 무기나 연장이 될 수 있다. 인간의 손은 모든 것을 움켜쥘 수 있고 오래도록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으므로 이 모든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p. 252)

 

□ 아리스토텔레스는 구조의 유사성을 상동이라고 표현했다. 예를 들어 물고기의 비늘과 새의 깃털은 상동이며 이것은 또한 네발짐승의 털과 상동이다. 그는 특히 기능의 유사성을 중요시했다. (p. 254)

 

□ 식물에서 동물로 향하는 상승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다. 동물의 삶이라고 하는 사다리는 활력과 운동 역량에 따른 점진적인 눈금을 내포하고 있다. (p. 255)

Ü 이것이 생물학적 진보인지는 알 수 없다.

 

특히, 자연은 불필요한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라는 문장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그는 자연에대해서 조직하고 제조하며 창의력이 풍부하다고 말한다. 자연은 원하고 원하는 목표를 향해 시선을 고정시킨다.

 

자연은 신이 아니다. 자연은 개개인이라는 존재 안에 깃들어 있는 활력, 신의 견인에 화답하는 성장충동이다. (p. 256)

Ü 통찰의 종합 선물세트

 

□ 거창하고 현학적인 용어도 없이 상식에 입각한 그의 분류는 대체적으로 오늘날의 연구자들이 완성시킨 학문적 분류와 일치한다. (p. 258)

Ü 관찰은 통찰을 낳는다.   

 

나에게 린네와 퀴비에가 각각 방법은 다르지만 일종의 신이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옛날 옛적의 아리스토텔레스에 비하면 초등학생에 불과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찰스 다윈이 한 말이다. (p. 260)

 

□ 이 세계는 완전하지 않으며 천체의 운동 법칙에 종속되어 있는 세계였다. 그런데 천체란 신성한 존재이며 영원한 존재로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존재들을 관조하는 것이 그 자신이 열정적으로 기술하는 정확한 학문적 연구보다 훨씬 더 인간의 영혼을 기쁨으로 채워준다고 여러 차례 고백한 바 있다.

철학이 인간으로 하여금 영원불멸의 것, 신성한 것을 찾아 나서게 한다는 명목 아래 과학을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관조, 일종의 보수주의 과학이 활기차게 숨 쉬며 발전할 수 있는 토양과는 거리가 먼 복지부동으로 이끄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할 수도 있다. (p. 261)

 

이 이상하고 비인간적인 생명체를 통해서 우리 인간 존재의 가장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근원, 즉 욕망에 따라 자손을 번식해나가는 삶, 배고픔을 느끼는 삶, 허기를 달래고 살아남기 위해 상대방을 죽이는 치열한 삶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생명체 각각으로 보자면 일시적이지만 지구를 뒤덮고 있는 수많은 생명체 전체를 놓고 보면 영속적인 삶은 그렇게 우리 앞에 펼쳐진다. (p. 263)

 

Ü , 이 눈물겨운 생들아.

 

□ 아리스토텔레스의 인본주의란 궁극적으로 식물로부터 생겨나서 동물 전체를 관류하여 인간에게 이르는 생명, 살아 있는 존재를 이성의 빛으로 인도하는 흐름을 가리킨다.

Ü 생을 관통하는 인류애적 사랑.

 

그런데 생명체의 세계는 인간이 그 아름다움을 관조하기 위하여 존재하는가? 이번 장을 끝내면서 이와 같은 의문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생물학은 그 같은 관조 속에서 소멸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p. 265)

 

Ü 관조, 목적없는 생들,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마지막은 허무해. 내가 사는 것은 우주의 대표적 뻘짓.

 

알렉산드로스의 천재성 또는 우애에 관하여

 

□ 모든 조약과 협약을 충실하게 준수하기 위해서 그는 항상 교활함, 간교함에 대비했다. (p. 272)

Ü 타인의 정치에 대한 자신의 준비, 정치에 대비한 정치

 

□ 그가 채 서른 세살이 되기 전에 죽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p. 274)

 

Ü 그래서인가, 나는 지금 알렉산드로스에게 질투를 느낀다. 서른네 살의 나의 우물쭈물과 서른 살 알렉산드로스의 단호함.

사람의 나이와 포개어진 삼십삼이라는 숫자의 의미는 희미하고 회색이며 또한 아프다. 젊음을 설명하기에는 뜬금없고 늙음을 이야기하기에는 난데없다.

 

□ 그는 자신이 계획하는 원정에 그리스가 함께한다는 명분을 보탰다. 그가 벌이는 원정은 페르시아 전쟁에 대한 복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p. 276)

Ü 명분이 참, 별로다.

 

□ 본진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다리우스를 겨누면서 기병대의 선두에서 두 군대를 갈라놓는 강물을 가르며 달려 나가는 격정적인 알렉산드로스의 기세에 눌린 다리우스는 부랴부랴 수레를 돌려 도주한다. (p. 282)

Ü , 이거 굉장히 멋지다.  

 

□ 그는 새로운 형태의 신을 그저 너그럽게 인정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것을 자기 안에 받아들였다. 이 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이러한 태도 덕분에 이집트인들은 그를 신처럼 떠발들었으며 그에게 역대 파라오들에게 주어졌던 칭호들을 부여했다. ‘상 이집트 왕국의 왕’, 하 이집트 왕국의 왕, ‘라의 아들같은 칭호가 대표적이다. (p. 287)

 

Ü 상대를 이해하는 것보다 한 단계 높은 차원의 소통 방식은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다. 알렉산드로스에게 질투를 느끼는 것도 이런 능력을 가졌으면서 냉혈한의 모습을 아울러 가지고 있는 그의 면모다.  

 

□ 멤피스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데다 장애물로 점철되어 있는 사막에 세워진 이 신탁의 장소를 찾는 일은 알렉산드로스가 주도한 일 가운데 가장 이채롭고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다. (p. 287)

 

Ü 자신을 찾는 일을 제국을 만드는 일보다 소홀하지 않았다. 그것이 어쩌면 제국을 만드는 역사보다 더 힘든 일일지도 모른다.

 

□ 알렉산드로스는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이 얼마나 웅변적인 침묵인가? 자신의 눈앞에서 배일을 벗은 신비를 관조하며 명상한 영혼의 침묵이 아니던가. 그 침묵은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으며 자신이 필립포스의 아들이 아니라 신, 즉 아몬-라에 의해 올림피아스의 몸 속에 잉태되었다는 사실을 (p. 288)

Ü 헬리오스의 아들 파에톤의 냄새가 난다. 그와 나는 비슷한 인간 류다.

 

□ 마케도니아 쪽에서는 불과 100여 명의 사망자가 나온 데 비해 페르시아 쪽에서는 수십만 명의 병사가 목숨을 잃었다. 이로써 역사는 뒤바뀌었다. (p. 290)

Ü 마치 신화와 같다. 가능한 일인가.  

 

□ 그는 시간마저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자신이 대표가 되는 왕조를 다시금 세우려는 꿈을 키웠다. (p. 295)

Ü 신께 다가서는 인간의 최후가 읽혀진다.  

 

그리스 인본주의와 불교 인본주의의 만남 (p. 296)

 

□ 불교가 지닌 금욕적인 특성은 소크라테스로부터 파생되어 그리스에서 확산되기 시작하여 알렉산드로스 시대에 이미 견유학파(냉소적인 걸인들은 물론 소위 냉소적 노동의 영웅들이라고 불리던 자들을 모두 포함하여 일컫는 말)와 더불어 만개했던 금욕주의와 희한하게도 잘 어울렸다. 이 경향은 또한 플라톤의 금욕주의와도 썩 잘 결합했다. (p. 297)

 

□ 인간이 사랑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은 무엇인가? 라고 물으면 수행자들 중의 한 사람이 모든 이들 가운데에서 가장 권능 있는 자가 된 후에도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는 자라고 대답하는 식이었다. (p. 297)

Ü 통찰과 혜안이 절절이 묻어난다.  

 

□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데 대해서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 고 당당하게 말했다. 평생 동안 과일 열매를 맺는 인도의 대지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죽고 난 후에는 번거로운 동반자인 육체로부터 해방될 것이다. (p. 298)

 

□ 그리스-불교 예술 (p. 299)

 

Ü 헬레니즘이 꽃 피울 수 있었던 자양분은 다양성, 그 중에 동, 서양의 만남으로 인한 문화적 풍요로움이지 않았겠는가. 저 말조차 역사적이다.

 

□ 그리스인의 시선이 예컨대 동쪽을 향한다면 그 시선은 거대한 산악 지대 텐산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텐산 너머에는 그때까지만 해도 아직 반쯤 잠이 든 상태로 중국이라는 세계, 서방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가장 오래된 인본주의, 즉 중국 인본주의 숨 쉬고 있었다. (p. 301)

 

Ü 역사가 역사를 만나는 역사적인 장면

 

□ 알렉산드로스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스승의 의견에 저항했다. 그는 우리가 그리스인이거나 바르바로스인 것은 절대 천성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고 확고하게 믿는다. 이 문제에 있어서 출생과 혈연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다만 문화에 의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바꿔 말하면 기원전 5세기 말엽에서 4세기로 이어지는 무렵에 태동한 민족주의 이전 시대에 인본주의를 자양분 삼아 성장한 세대였다. (p. 307)

 

Ü 민족주의, 국가주의의 황폐함과 인본주의의 풍요로움을 본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리하여 역사가 키웠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이런 민족과 국가를 맹신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 그는 또한 보편적인 평화, 화합, 결합, 그리고 모든 인간들 사이의 원활한 교류를 완성시키고자 했다. (p. 310)

 

Ü 약간의 모순이 보인다. 이 모든 걸 하나의 국가, 하나의 제도,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이룬다는 것은 그가 자행하는 제국 건설과 상충된다. 진정 그것을 원했다면 정복전쟁은 시작하지 말았어야 하지 않았겠는가. 전쟁을 하면서 전쟁이 가르쳐준 철학이 인간 알렉산드로스를 전쟁 중에 바꾸어 놓았을 것이다.

 

□ 그리스인들의 영혼 속에 그리스인과 비그리스인 사이에 뛰어넘을 수 없는 고랑을 파놓은 인종차별론을 알렉산드로스는 역사상 가장 대담하고 풍부한 혁명을 통해서 인본주의라고 하는 새로운 개념으로 대체했다. (p. 310)

Ü 우리도 하지 못하는 급진적 진보다.

 

□ 이처럼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놀이가 질펀하게 한 장소에서 제시 된 것은 훗날 여러 세기 동안 알렉산드리아, 페르가몬, 안티오크, 티그리스 강변의 셀레우케이아, 그리고 로마 제국 등 헬레니즘 세계의 중심 도시를 특징지어줄 혼합 문명의 기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대대적인 결혼식, 동방과 서방이 최초로 형제애를 맺는 예식은 기원전 324 2월에 거행되었으며 이는 여러 민족들에게 알렉산드로스가 보편적이고 지속적이기를 바랐던 화합과 우애의 징표였다. (p. 318)

Ü 이 풍경을 상상하니 감흥이 벅차다.

 

□ 그는 어디까지나 인본주의에 사로잡힌 야수였다. (p. 319)

 

그는 그리스에 복수하기 위해 그리스와 마케도니아를 하나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집트를 필두로 이 세계 끝에 이르는 비그리스 세계로 깊숙이 들어가면 갈수록 동방 세계의 광대함에 매료되었다. 그는 더 이상 그리스어로 말하지 않았으며 그렇다고 비그리스어로 말하지도 않았다. 그는 말하자면 인간으로서 말했다. (p. 319~320)

Ü 질투가 느껴진다.

 

모든 인간은 이 세계의 시민이다.제논- (p. 322)

 

신 안에서는 인간들의 어떤 특별한 점도 존재하지 않는다. (p. 324)

 

질서라는 탈을 쓴 무질서, 두 명의 프톨레마이오스

 

□ 또 하나의 문명이 새로 태어난다. 이른바 헬레니즘 문명이다. (p. 329)

 

□ 사실 군주들에 의해서 정립된 질서는 무질서에 가까웠다. 이 질서라고 하는 것은 무정부주의만큼이나 황폐하고 비생산적임이 곧 드러난다. (p. 331)

Ü 무질서라고 하지만 그 속에 질서가 있을 것이고 이는 다양성이라는 좋은 말로 포장될 수 있다.  

 

□ 가령, 알렉산드리아에서 헬레니즘은 이집트적인 삶에 포개졌을 뿐, 결코 혼합되지 않았다. (p. 339)

Ü 살아있는 그리스와 존재하는 이집트의 만남, 헬레니즘.  

 

□ 시나 산문으로 아부하는 재주를 가진 자들에게 남매간의 결혼은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통치를 상징하는 대단한 발상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그 결혼으로 인간 남매들을 남매 신으로 신격화하기도 했다. (p. 346)

 

□ 프톨레마이오스는 침실에서 젊은 남편,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심으로 사랑하던 남동생이자 남편을 끌어안은 여자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여자(구역질하는 아르시노에의 모습이 떠오르는가?)의 남편이다. (p. 348)

 

□ 왕은 너무도 많은 행운을 누린 나머지 언제까지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으며 오직 자신만이 불멸의 비밀을 발견했노라고 자랑했다. (p. 350)

 

책의 전성시대, 알렉산드리아 : 도서관과 박물관

 

□ 높이가 111미터나 되는 이 등대는 위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등대는 곧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다.

시와 과학의 불빛이었다. (p. 357)

 

□ 알렉산드리아 무세이온(museion, 오늘날 박물관을 뜻하는 뮤지엄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p. 358)

 

□ 한 도서관에는 이집트 문자로 정신의 피난처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p. 362)

Ü 나에게 서재란. 정신의 피난처.  

 

□ 기원전 47, 카이사르가 이집트에서 전쟁을 벌이던 무렵,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장서는 70만권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p. 365)

 

□ 가장 중요한 번역 작업은 이른바 70인의 번역이라는 유명한 작업으로 우리가 흔히 구약이라고 하는 유대인들의 성서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사업을 꼽을 수 있다. (p. 366)

 

Ü 일본 메이지 시대 많은 추상적 개념들을 한자어로 바꾸는 작업을 한 학자들의 모습이다.

 

□ 같은 시기에 그리고 이들 학자들을 중심으로 잘 쓰지 않는 말이나 고어가 되어버린 어휘들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문학 비평서나 주석서, 문법서들이 쏟아져 나와서 지나간 5~6세기 동안 걸작품들을 탄생시켜온 문학이나 언어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주었다. 박물관과 도서관에서 일하는 학자들은 이 어렵고 까다롭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 앞에서 주저하거나 뒷걸음질 치지 않았다. (p. 367)

 

□ 기독교의 발전은 박물관 쇠퇴의 주요 요인 중의 하나로 작용했다. 서력기원이 시작된 초기 몇 세기 동안 박물관에서 여전히 명맥을 이어가던 과학 교육은 다신교 신앙을 전제로 삼고 있었다. (p. 369)

 

10세기 넘도록 명맥을 유지해 오던 두 기관은 (p. 370)

Ü 두 기관은 박물관과 도서관을 말한다. 이런 걸 보면 참 부럽다.

 

알렉산드리아의 과학 : 아리스타르코스의 천문학

 

□ 고전시대에는 데모크리토스, 힙포크라테스와 코스 학파, 투기디데스(기원전 460년에 태어난 이 세 사람은 완벽하게 동시대인이다) 등과 더불어 과학은 활활 타올랐다. (p. 379)

 

□ 이들은 더 이상 새로운 건축물을 축조하지 않고 비극 3부작을 통해 세계를 재편성하지 않았으며 그 대신 과학을 정립해 나갔으며 물리적인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 공을 들였다. (p. 380)

 

□ 그리스 학자들이 제기하는 질문들이란 주로 이랬다. 낮과 밤이 생기는 원인은 무엇일까? 계절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늘에서 행성들의 움직임이 불규칙한 까닭은 무엇일까? 월식이나 일식은 어째서 일어나는 걸까? 달은 왜 모양이 변하는 걸까? (p. 381)

Ü 질문 좋다.

 

 아르키메데스와 플루타르코스의 저술에 따르면 매우 분명한 언어로 태양 중심설을 내세웠다. 그는 지구는 다른 행성들처럼 태양 주위를 도는 하나의 행성에 불과하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데에는 1년이 걸린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p. 387)

 

□ 본질적으로 부동의 것을 움직인다고 주장했다는 것이었다. 흥미로운 논리가 아닌가 (p. 389)

 

□ 천문학이 그리스인들이 이루어놓은 업적 위에서 새로운 출발을 하려면 르네상스까지 기다려야 한다. (p. 393)

 

Ü 우리는 그리스인들에 비하면 초등학생들이 맞다. 찰스 다윈의 말이 백번 옳다.

 

지리학 : 퓌테아스와 에라토스테네스

 

□ 바다 허파라는 표현은 얼음장처럼 찬 안개를 가리킨다. 바다 허파라는 표현은 바다가 숨을 내뿜어서 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불투명한 안개를 가리킬 때 숨을 내뿜어서 나오는 것처럼 보이는 불투명한 안개를 가리킬 때 흔히 사용된다. (p. 401)

 

□ 조수의 차이와 달의 변화가 일치한다는 사실에 주목한 최초의 학자였다. (p. 402)

 

□ 요컨데 모험가이면서 새로운 땅과 바다의 발견자라는 진면목을 지닌 퓌테아스는 로도스의 아폴로니오스가 쓴 시에는 아르고선을 타고 모험에 나선 원정대를 이끄는 이아손보다 훨씬 매력적인 인물이며 엄청나게 유식한 아폴로니오스 자신보다 훨씬 진지한 학자임에 틀림없다. (p. 403)

 

□ 알렉산드로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답게 원정 기간 내내 학자들을 동반했으며 이들에게 위치 관련 도면을 수집하고 작성하게 했다. 이는 아시아의 지도를 만드는데 요긴하게 쓰였다. (p. 407)

 

의학 : 아르키메데스, 헤론, 그리고 증기기관에 관하여

 

□ 헤로필로스는 자신이 직접 본 것이 아니면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p. 417)

 

□ 헤로필로스는 해부학의 창시자. (p. 418)

 

Ü 히포크라테스도 그렇고 헤로필로스도 그렇고 인류가 의학을 처음 알게 한 사람인데 그래서 의학의 학술 용어들은 그리스어가 많은가보다. 우리는 그리스 의학의 후손들에 의해 몸을 치료하고 있는 것이다. 히포크라테스, 헤포필로스여 그대의 혜안이 나에게도 미치는구나.

 

□ 의학은 어디까지나 사실의 관찰과 이성적인 추리에 입각한 겸손한 학문으로서의 위치를 지켰다. 미신이 판을 치던 중세에도 위대한 의사가 배출되거나 위대한 발견이 이루어지지 않은 세기란 없었다. (p. 421)

 

Ü 자세가 된 학문이다. 그래서 의무를 가장 많이 요구하는 학문이기도 할 것이다.

 

□ 알렉산드리아는 기술자들의 본고장이기도 했다. (p. 421)

 

□ 모든 과학 활동은 헬레니즘의 새로운 수도로 이동하게 되었다. (p. 422)

 

□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정한 기하학적 형태를 지닌 사물들은 무게를 가진다는 것이 이 새로운 분야의 출발점이었다. 이른바 무게의 기하학, 이것은 합리적 역학, 정역학 또는 정수역학이라고 한다. (p. 424)

 

□ 그는 나사못에서 출발하여 여기에 암나사를 더해서 볼트를 발명해낸다. 지금도 너무도 흔해졌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중대한 발명이었다. (p. 424)

Ü 지금도 우주선은 볼트, 너트로 인해 우주로 간다.

 

□ 아르키메데스는 쉬라쿠사이 포위가 계속 되던 기간 중에 스스로에게 제시한 문제 풀이에 몰두하다가 로마 병사의 손에 죽었다. (p. 425)

Ü 자신에게 물었던 그 질문이 무엇일까.

 

□ 우리가 독창적이라고 여겼던 르네상스 시대 사상가들 중에 알고 보니 헤론의 판박이에 불과한 사람이 한 두명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그중 한명임을 몇몇 사람들은 말한다. (p. 426)

 

□ 그는 그 증기기관으로 무엇을 했을까? 고대인들은 그걸 가지고 무얼 했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아무것도, 아니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p. 428)

 

Ü 우주에 참여하고 신의 섭리에 참여하는 것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들 어떠리.

 

□ 고대인들은 과연 노 젓는 이들 아니 보다 일반적으로 노동자들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서 자신들이 이룩한 발명품을 이용할 줄 몰랐을까? 그들은 분명 그렇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p. 430)

 

Ü 이때 공동체 의식이 있어서 기계가 사람을 황폐하게 만드느니하는 공동체적 의식은 없었겠지. 후술한 바에 의하면 노예다. 노예의 존재 때문이었다.

 

□ 당시 노동력은 전혀 비용이 들지 않았으며 (p. 431)

 

□ 결과적으로 증기기관 일화는 대단히 교훈적이다. 이 이야기는 문명이란 대중의 상승의지가 있을 때에만 발전 과정 중에 부딪히게 되는 일정한 장애를 넘어설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와 동시에 인류의 그 어떤 위대한 발명도 영원히 소멸되는 법이 없다는 교훈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p. 434)

 

Ü 상승의지, 이것은 또 무엇으로 비롯될까. 상승의지란 다 좋은 것일까. 장애를 넘어서는 것이 절대 선일 수 있는가.

 

□ 희망이 있는 한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p. 435)

 

시로의 회귀 : 칼리마코스, 로도스의 아폴로니오스가 쓴 아르고나우티카

 

□ 고전의 모방을 장려하기는커녕 고전 모방이 모든 예술적 창조 행위를 짓누른다는 이유를 들어 이를 완전히 배제해버렸다.

나는 연작시를 증오한다. 누구나 지나가는 상투적인 그 길나는 공동 우물의 물은 마시지 않을 것이다. 대중적인 것들은 나에게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p. 441)

Ü 일리는 있다.

 

□ 칼리마코스는 천둥은 내가 아니라 제우스가 만든 것이라는 경거망동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자신만의 문학을 주장했으며 그 문학은 그의 화려한 경력이 지닌 야심에 걸맞아야 할 것이다.

시를 삶과 밀접하게 연결시키며 살아있는 예술이면서 동시에 어려운 예술로 복권시키는 것이 칼리마코스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야심찬 목표였다. (p. 444)

 

문법학자들 책이나 갉아먹는 벌레들, 제노도토스의 강아지들, 칼리마코스의 병정들, 분사나 찾으러 다니는 불쌍한 사냥꾼들, 그저 민이랑 스핀만 있으면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퀴클롭스가 개를 키웠는지 아닌지 알기 위해 기를 쓰는 자들 (p. 448)

 

Ü 이런 일갈, 참 좋다.

 

□ 오디세우스느이 모험은 오디세우스를 새롭게 특징짓는다. 오디세우스는 포세이돈이나 칼립소, 페넬로페 또는 운명이 제시하는 시련을 겪을 때마다 매번 조금씩 성장한다. 용기, 적절한 기계를 제조함으로써 운명에 반격을 가하는 기발함 시간을 두고 준비하는 계책 등 모든 면에서 그는 성장한다. 오디세우는 매번 운명에 응답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그의 자질을 확인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아손은 그렇지 못하다. 예측하지 못했던 불행 앞에서 그는 당황한다. 아폴로니오스는 여러 차례나 똑 같은 표현으로 그의 사람됨을 묘사한다. 가령, 하나의 난제에 봉착했다 하면 즉시 무기력에 빠진 이아손이 되고 마는 식이다. 요컨대 이아손이라고 하는 인물은 성격 부재를 통해서 성격이 드러나는 인물인 셈이다. (p. 455)

Ü 그랬구나.

 

□ 에로스는 화살을 활줄 한가운데 고정한 다음 메데이아를 향해 곧장 쏘았다. 소리 없는 충격이 메데이아의 가슴을 조였다. 그사이 에로스는 벌써 날개를 펴고 깔깔거리며 궁 밖으로 날아올랐다. (p. 460)

 

Ü 굉장히 좋다. 이 문장, 좋은 표현이다. ‘소리 없는 충격

 

□ 메데이아는 심장이 멎어버리는 것 같았다. 두 눈은 갑자기 안개가 낀 것처럼 희미해졌으며 뜨거운 무엇인가가 두 뺨을 붉게 물들였다. 두 발은 바닥에 못이라도 박힌 것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시녀들은 멀어져갔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두 사람은 산 중턱 바위틈을 뚫고 나란히 성장해오면서 바람의 침묵 속에서 부동자세를 유지해온 참나무나 전나무 같았다. (p. 467)

 

Ü 주옥 같은 표현이다. 두 사람을 움직이지 않는 나무에 비유하다니, 그것도 소곤거림이 웅장한 울림이 되어 서로에게 화답하는 나무들이라니, 희한하면서도 멋진 비유가 아닌가. (저자)

나는 이런 표현들을 만나면 가슴이 뛴다.

 

□ 사랑과 지리라고 하는 이 두 가지 주제가 아폴로니오스가 지니는 두 가지 취향, 두 가지 본성을 잘 드러낸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니까 그가 시를 통해서 그 두 가지를 단일성으로 이끄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건 단일성을 이루어낼 만큼 그의 개성이 강하지 못하다는 말이 될 수 있다. 요컨대 그의 안에 있는 시인이 참패한 것이다. (p. 473)

 

Ü 두 가지 단일 성격의 취향을 하나로 통합하여 이끈다. 이것 참 어렵겠다.

 

□ 아폴로니오스 자신은 알지 못했지만 자신은 원하지도 않았고 실제로 완전히 성공을 거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분명 그리스 최초의 소설가였다. (p. 475)

 

□ 낭만주의자들은 자연이 우리와 더불어 괴로워하기를 바라거나 반대로 자연이 우리의 고통에 무심하다고 분노했다. (p. 477)

 

Ü 위 문장에 맞지는 않지만, 근데 에로스가 쏜 화살은 절대적이지는 않은 모양이다. 그 화살은 공소시효도 있는 것 같고, 그렇지 않다면 메데이아가 이아손의 불륜을 보더라도 그 같은 고통을 주어서는 안될 것 아닌가.

 

□ 베르길리우스 (p. 478)

 

Ü 단테의 길잡이다. 하데스가 지배하는 지옥을 앞마당 처럼 꾀며 단테를 인도해 준 인물이다. 단테가 존경하는 사람이다.

 

□ 아폴로니오스의 시는 완전히 과거만을 지향하는 시는 아니다. 이 알렉산드리아 출신 시인이 지닌 불확실한 재능은 분명 무언가를 향해 나아간다. 연애소설을 비롯하여 특정 형태의 낭만주의, 다시 말해서 베르길리우스의 낭만주의를 예고한다고 하는 말은 따라서 괜한 소리가 아니다. (p. 479)

 

Ü 아폴로니우스는 그 속에 수많은 결핍으로 인해 완전한 베르길리우스를 낳았고 결국 단테를 낳았다. 그리고 단테는 인류에게 내세를 낳았으니 세계는 아폴로니우스에서부터 펼쳐졌는가.

 

테오크리토스의 낙원

 

□ 테오크리토스는 섬세하게 가다듬어진 시, 도시인들을 위한 전원시를 제공했다. 테오크리토스는 목가를 썼다. (p. 484)

 

□ 폴리페모스, 여자들에게 늘 놀림을 받는 둔해빠진 남자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p. 485)

 

Ü 준이가 매료된 폴리페모스, 좀 더 알아가 볼까.

 

□ 그리고 만일 당신이 보기에 내가 너무 거칠고 퉁명스럽다면 나를 상대해줄 것도 없어요. 하지만 내가 참나무 장작을 마련해놓았으니 화롯불 곁에 앉아만 있어요. 나는 혼자서 슬픔을 견딜 테니까난 당신이 입술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저 손등에나 키스할 겁니다. (p. 486)

 

Ü 순종적 외골수, 폴리페모스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폴리페모스적 인간이란 결국 자신의 모습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곁에 있겠다고 당차게 말할 수 있는 순종적 외골수형 인간이 아닐까.

 

□ 그는 감정의 봇물이 들쑥날쑥한 파동으로 전개되도록 내버려둔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삶과 꿈의 경계에 놓인 세계로 진입하게 된다. 시인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것은 삶의 체험이라기보다는 삶에서 출발하는 아름다운 꿈이라고 할 수 있다. 열정에 대한 몽상,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고 시적인 변화를 통해 평온해지며 빛을 발하게 되는 사랑의 고통 같은 것들 말이다. (p. 487)

 

□ 시인의 손에서 모든 현실은 방사선이 된다. 그러니까 신선한 아름다움을 발한다는 말이다. (p. 489)

 

□ 다른 많은 나라에서도 사정이 비슷하겠지만 이 시라는 것들은 주로 농부들이 고된 작업을 하면서 부르던 일종의 노동요였다. (p. 491)

Ü 그럼 그렇지. 생에 대한 눈물겨움을 노래하는 시가 그 눈물겨움의 원천에서 비롯되지 않았을리가 있겠는가.

 

□ 코마타스 : 나무딸기나 아네모네를 담을 타고 올라가는 덩굴장미에 비교해서는 안되지

라콘 : 능금을 참나무의 도토리에 비교해서는 안되지.

녀석들은 참나무 껍질처럼 까칠한데 능금은 꿀 피부를 가졌거든

 

코마타스 : 내 애인은 내일 나한테서 비둘기를 받을 거야

내가 노간주 나무 둥지에서 녀석을 잡을 거거든

라콘 : 내가 갈색 암양 털을 깍으면 외투용으로

크라티다스는 아주 좋은 양털을 받게 될 걸세 (p. 493)

 

우리는 경작자가 되기에는 지나치게 경작되었다. (p. 494)

 

Ü 너무 많은 사유와 지식은 생을 풍요롭게 하는데 불용하다.

 

항상 정확한 명사와 일상적인 형용사가 사용.

사물의 풍요로움은 표현의 간소함으로 인해 오히려 한결 돋보인다. 표현의 간소함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인상일 뿐, 감각의 적절하고 엄격한 선택이 전제될 때에만 가능하다. 이 선택 덕분에 우리를 자연에 이어주는 일종의 음악이 사물에서 우리에게로 전달될 수 있다.

진실은 이렇게 해서 아름다움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p. 503)

 

Ü 테오크리토스의 문체론이다. 새겨두자.

 

□ 에로스가 너를 방황하게 만들었구나.

 

Ü 소리 없는 충격, 가슴을 조여오는 조그만 통증. Falling in love

 

다른 형태의 도피 : 헤론다스와 사실주의적 풍자 희극, 그리스의 소설 다프니스와 클로에

 

□ 생긴 그대로의 세계 속에서 인간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돕되, 마주한 그 세계를 더 나은 세계로 변화시키는 것이 그리스 문학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제일 중요한 목표였다. (p. 522)

Ü 내 목표이기도

 

□ 두 분 모두 갈보집을 경영하셨다네가문과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묻어나오는 고귀한 발전이 아닌가! 이보다 더 하면 더했지 절대 덜 고귀하다고 할 수 없는 결론은 원고의 소송 이유와 코스에 거주하는 모든 거주 이방인의 소송 이유, 그의 수상쩍은 조상들에 의해서 수호되어온 도시 국가의 명예등을 뒤죽박죽으로 만든다. (p. 531)

 

Ü 어짜피 윤리는 인간의 발명품이니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것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깨에 힘 빼고 살자. 갈보집을 경영하는데도 자부심은 있을 수 있다.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고약한 줄 알았던 운명은 알고 보니 선한 동반자였다. (p. 534)

 

Ü 조금 위험한 말이긴 하다. 고약한 운명은 나중에 동반자로 바뀔것이니 참고 견뎌라. 이렇게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 그러니까 유행하는 방식을 가령 내면의 꿈을 표현하는 방식에만 제한적으로 도입한다는 말이다. 똑 같은 줄을 가지고 고만고만하게 비슷한 인형들을 움직이는데 그때까지는 지루하게 여겨지던 움직임이 어느 순간부터 매력적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우리안에서 문득 솟아올라 우리를 이끌어가는 쾌감의 정도가 아니겠는가 (p. 538)

Ü 백 번 맞는 말씀이다.

 

□ 그렇다면 예술은 가짜, 즉 자연을 복제하는 가짜라는 말인가? (p. 538)

Ü 이거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

 

□ 떠들썩하고 즐거운 포도따기, 포도송이를 따는 마을 청년들에게 마실 것을 따라주는 마을 처녀들, 횃불 아래에서 짜는 포도즙, 나무 꼭대기에 대롱대롱 매달린 사과, 애인에게 주려고 그 사과를 따는 젊은 농부, 농부가 위험하게 나무 꼭대기에 올라간다고 화를 내다가 이내 사과를 받아들고 웃는 처녀, 시골 연인들을 들판에서 떼어놓는 한 겨울의 눈, 펑펑 내리는 눈 덕분에 따뜻한 방 안에서 하나가 되어, 덤불 숲에서 나누던 입맞춤을 주고 받는 연인들..

자연은 이제 막 태어나는 사랑의 공모자다. (p. 541)

 

□ 다프니스와 클로에가 점차적으로 사랑을 발견해나가는 이 여정에는 지나친 열의, 그러니까 모범생들에게서 보이는 외골수의 열성이 보여, 감동스럽기도 하지만 솔직히 때로는 실소를 금하기 어렵다는 점은 지적해두고 싶다. (p. 543)

 

사랑으로 인한 병에 유일한 처방이라고 알려진 벌거벗고 함께 자기

두 사람이 첫날밤에 한 침대에서 밤새도록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사냥에 나선 고양이들처럼 눈을 감지 못하고실컷 사랑을 나눈 뒤 흡족해 하는 광경은 또 어떤가. (p. 544)

 

Ü 아주 멋진 표현이다.

 

에피쿠로스와 인간의 구원

 

□ 왜냐하면 그건 대표적인 물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질 숭배만큼 정신에 어울리는 것이 또 있을까? 정신을 숭상하는 정신은이게 뭔지 알겠나? 너무 잘 알지. –프랑시스 퐁주, 대지-

 

□ 이처럼 대대적으로 그의 저작을 없애버린 의도는 그의 스승인 데모크리토스의 저작을 파괴하기 위해 동원되었던 이유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p. 552)

 

Ü 관념을 그렇게 좋아하던 위정자들과 기독교 신자, 기하학파들이 이루어 놓은 이 세상은 그때보다 풍요로운가. 플라톤이 만들어 놓은 사유체계와 발언들은 위정자들이 좋아할만하다.

 

□ 그는 인간들에게 가장 천박한 유물론, 즉 먹고 마시는 유물론을 제시했으며 신에 대한 경멸을 가르치고 세상에 돼지들의 학교를 선사했다.

그는 인간들이 쓸데없는 두려움과 고답적인 미신으로부터 해방되어 평온한 삶을 살도록 해주었다. 그러므로 그는 해방자이며 치유될 수 없는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구해준 치료사다. (p. 553)

 

12년 동안의 고독한 명상, 고통스러운 방광염, 12년 동안의 검소한 생활 끝에 에피쿠로스는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는 오래도록 고통과 곤궁함 속에 머물렀지만 이와 동시에 친구들에게 사랑받고 일들을 사랑하며 진실 속에서 사는 인간의 심오한 기쁨도 맛보았다. 그는 바로 이 사실, 기쁨의 체험, 즉 자신의 몸이 매일 겪는 고통 속에서 소중하게 발견하는 기쁨을 토대로 자신만의 독특한 윤리 체계를 구축했다. (p. 555)

 

Ü 생의 개별적인 기쁨이 철학으로 솟아오르는 순간이다. 에피쿠로스는 보편적인 철학을 개별적인 철학으로 바꾸어놓았다. 

 

□ 죽음을 맞이하는 날, 그는 진실 가운데에서 자신의 삶을 탐색하고 마감하면서 총체적인 소감을 기록했다. ‘오늘이 내 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 나의 마지막 날이라네. 방광의 고통과 복통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항상 극심하며 조금도 격렬함이 덜어지지 않았지. 하지만 모든 것에 대항해서 나는 우리가 과거에 나눴던 대담을 회상할 때면 영혼의 기쁨을 내세운다네. 사춘기 때부터 나의, 그리고 지혜의 변함없는 친구였던 자네가 메트로도로스의 자녀들을 잘 돌봐주어야 하네.’ (p. 556)

 

Ü 모든 성인들이 그렇듯 그의 죽음 또한 특별할 것 없고 소박하다.

 

이처럼 노예제도와 자유노동의 공존은 고대 노동자들에게는 견디 힘든 재앙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노동을 조직한다거나 노동자들의 저항을 조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봉쇄된다. 노동자들의 삶은 제어가 불가능한 자본의 힘에 종속되게 마련이다. 그리스 사회에서 노예 노동의 본격적인 활용은 소규모 생산자들의 대대적인 몰락을 가져왔다. 요컨대 노예 노동은 자유노동자 계급의 왜곡과 소멸을 초래한 것이다. (p. 560)

 

Ü 솔론이 한번 더 필요하다. 그러고 보면 약자들이 역사에 전면에 나선 경우는 없다. 노예노동과 자유시민의 노동의 대가는 항상 위정자와 기득 세력 집단의 것이었지만 되돌려 받거나 그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받은 적은 없었다. 자본의 힘은 생각보다 오랫동안 인류를 지배해왔다. 효과적으로 종속시키며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냈다. 20세기에도 여전했던 미국의 노예제도와 그러나, 21세기에도 여전한 비정규직 제도는 성격과 이름을 달리한 노예제도다. 그것은 무려 3천 년을 지속한 거대한 시스템이다. 이 정도면 신의 의도라고 해야 하나.

 

에피쿠로스 철학의 위대한 점은 플라톤이나 그의 뒤를 이은 기독교처럼 하늘로의 도피를 제안하는 대신 지상에서 무언가 할 것을 제안했다는 데에 있다.

매우 실리적인, 곧 개인의 행복이라는 화두는 이렇게 해서 등장한다.

'철학을 하는 척해서는 안 된다. 병이 들었을 때에는 건강을 되찾으려는 척을 해서는 안 되며, 실제로 건강을 되찾아야 한다. (p. 565)

 

도대체 진리란 무엇인가? 행복을 찾고 그것을 주기 위해서는 우선 인간이란 매우 불행하다는 것과 왜 그렇게 불행한지를 깨달아야 한다. 인간은 왜 불행한가?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려움, 인간 존재 각자의 마음 깊은 구석에 깃들어 있으면서 늘 우리를 엄습해오는 이 불안감을 몰아내야 한다. 현실에 대한 균형 잡힌 관점을 통해 이 불안감을 몰아내고 나면 그때 비로소 행복이 태어날 수 있다.

우리의 가장 본질적인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죽음 다음가는 공포가 있다면 그것은 죽음의 공포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는 신에 대한 공포다. (p. 566)

 

자, 이 세계를 좀 바라보십시오. 모든 것을 비추는 태양 아래서 이 세계를 똑똑히 바라보시란 말입니다. 우리에게 훗날 드러내 보이겠다는 구실로 현실을 감추는 신화 따위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p. 568)

 

육체는 존재한다네. 기회가 있을 떄마다 감각이 그걸 증명하며 이성은 이 사실에 입각해서 가설을 내놓아야 할 걸세 (p. 569)

 

에피쿠로스가 물질적 세계에 확고한 현실성을 부여했음은 명백한 사실이다. (p. 569)

 

우리가 존재하는 것처럼 이 세계도 존재하며 우리가 사는 동안 이 세계도 우리 안에서 살 것이며 우리가 죽고 난 후에도 이 세계는 비록 영원토록은 아닐지라도 지속될 것이다.

태양은 세계를 돌고, 커다란 목소리로 우리에게 행복을 위해 이제 그만 깨어나라고 외친다. (p. 569~570)

 

Ü 태양의 조바심을 이제는 알아차리고 깨어나야 되지 않겠는가.

 

플라톤은 물질세계의 존재를 부정했으며 감각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세계를 비존재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반면 에피쿠로스는 우선 자신의 눈으로 보는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였다. (p. 570)

 

Ü 조금 유아적인 선택을 하자면 나는 플라톤보다 에피쿠로스가 마음에 든다.

 

신들이 잘못한 사람에게 벌을 내리고 선한 사람들에게는 상을 주는 일로 고민하리라고 상상하는 건 어리석기 그지없는 짓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니 제발 하늘만 바라보지 말고 인간이 사는 모습을 한번이라도 제대로 관찰해보라!(p. 573)

 

영혼은 육체가 태어나기 전에도 후에도 결코 불멸의 존재가 아니다.

이 세계에서 인간이라는 동물이 지배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진보는 가속화되었으며 인간의 지배가 계속되는 한 진보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p. 574)

 

Ü 그렇다면 진보는 자연에 반하는 것이 아닌가. 자연은 진보하는가. 진화는 진보와 동일한 의미 자장에 있는가. 진화는 진보인가. 적자생존이 진보인가.

 

에피쿠로스는 문명이란 경험과 노동의 열매라고 말했다. 시간과 인간의 노력이 모든 발명품들을 생산하고 이것들을 광명의 세계로 이끄는 것이 바로 문명이다. (p. 575)

 

일단 죽고 나면 우리는 태어나기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이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심할 것이다. 우리는 한 세기 전에 살고 있지 않았다고 통곡을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어째서 앞으로 한 세기 후에 살아 있지 못하게 되었다고 통곡을 해야 한단 말인가?(p. 576)

 

검박하다.

인간은 지극히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저 괴로워하지 않기, 두려워하지 않기, 허황된 망상 속에서 살지 않기만을 소망했다. (p. 577)

 

Ü 두려움이 없는 자, 신에 가까운 사람이거나 아무런 사유가 없는 자. 결국, 사유가 많아 행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사람보다는 낮다는 이야기.

 

삶이란 우리가 살고 있는 바로 이 날, 이 날의 매 순간이다. 행복의 매 순간, 즐거움 속에서 충족된 욕구 각각, 즐거움의 매 순간은 영원히 소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로써 세계는 내 안에 받아들여지고 삶은 제대로 살아진다. 흘러가는 시간은 더 이상 배반당한 즉 충족되지 않은 욕구의 연속이나 잃어버린 재화, 위협당하고 실망만 안겨주는 희망이 아니다. 우리는 더 이상 시간에 휩쓸리지 않고 기쁨의 소유 속에 머무르게 된다. (p. 578)

 

모든 선의 원칙과 뿌리는 복부의 쾌락에 있다. (p. 578)

 

Ü 명징하다. 감탄이다. 좋은 표현이다

 

에피쿠로스는 사고하고 표현하는 능력은 먹고 마실 수 있는 자유, 호흡할 수 있는 기쁨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단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 (p. 579)

 

빵과 물은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를 때에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되면 얼마나 감탄스러운 것이 되는가?(p. 579)

 

대지 전체가 고통 속에서 산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 때문에 우리 인간들은 가장 많은 선물을 선사받았다. (p. 584)

 

에피쿠로스적인 우정은 남자와 여자의 화해를 유도하며 이들을 해방으로 이끄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 이상이다. 아까도 말했듯이 에피쿠로스에게 우정은 그 자체로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슨 목적이란 말인가?(p. 586)

 

Ü 지금 살아있는 자체가 목적인 삶, 여기 있는 이유가 목적인 삶, 내 삶의 가치들이 목적인 삶

 

동요가 없음을 뜻하는 '아타락시아' (p. 586)

 

다른 사람들도 모두 같은 마음이지 너를 정다운 마음으로 사랑하니 내 말을 믿으렴. 넌 무슨 일에나 우리에게 순종적이니 말이다 (p. 588)

 

그는 현자를 경배하는 것은 그를 경배하는 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 (p. 589)

 

나는 불시에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 두려워 좋은 품성을 가진 자들에게 도움을 주기로 결심했다. 한 사람 또는 두 사람, 세 사람, 네 사람, 아니 몇 명이 되더라도 상관없고 하여간 단 한 사람이라도 절망에 빠져 있다면 그리고 내가 그를 도와주라는 부름을 받는다면 나는 그에게 최선의 충고를 주기 위하여 나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 모든 일을 할 것이다. (p. 592)

 

Ü 스승님의 생각과 포개어진다.

 

신들에 대해서는 전혀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죽음에 대해서는 전혀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고통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행복은 얼마든지 도달할 수 있다. (p. 593)

 

크고 작은 혁명들이 우리가 사는 우주를 전복시킨다... 혁명은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놓으며 때로는 이 흐름을 가속화한다. 새로운 계급, 새로운 민족, 계급 없는 민족들이 이 세계를 관통한다. 에피쿠로스가 남긴 유산은 그들의 것이다. (p. 594)

 

 

3. ‘너와 나의 이야기(내가 저자라면)

 

알렉산드로스를 이야기할 때 나는 많이 흥분 했었다. 그가 대륙을 관통하며 달릴 때 나도 그 곁을 달렸고 바르바로스인들과 흥겹게 하나가 될 때 나도 옆에서 즐거워했다. 에피쿠로스가 20년간 방광염을 앓았던 사람임을 생각하니 그의 철학은 더 훌륭하게 다가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식물과 동물을 연구할 때 그가 왜 추앙 받는 사상가인지 어렴풋이라도 알게 되어 나는 기쁘다.

나는 앙드레 보나르라는 자가 어떻게 이 모든 철학과 사상, 건축, 미술, 역사, 의학, 지리학, 천문학을 섭렵했는지 궁금하다. 이 버라이어티하고 깊은 사유들을 어떻게 모두 이해하고 알기 쉽게 풀어낼 수 있었는지 말이다. 그에게 큰 빚을 진 것만 같다. 그의 노력을 일주일 사이 이렇게 읽어내려도 가능한 일인가.

 

특히, 이 글을 쓴 때가 그의 인생의 말년임을 생각할 때 늙은 앙가주망의 외로운 투쟁사가 겹치지고 여전히 살아서 진보와 투쟁을 이야기하는 그의 단호한 표정을 상상하고 싶었다. 그리스인의 노예에 대한 의식 변화에 따라 시대를 바꾸어버리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통찰은 혜안이다. 헬레니즘이 역사상 가장 다양한 용광로였음을 그리고 가장 인간을 사랑하는 생각으로 똘똘 뭉쳐 있었음을 나는 그로 인해 배웠다.

 

시대를 뭉그러뜨리고 사건에 기인한 서술이 아닌 한 사람, 한 사건, 한 사유를 깊이 있게 파고 들어 소개해주는 책의 구성은 저자의 열정이 끊는점을 넘어섰음을 알려준다. 책은 모든 것을 어영부영 넘어가지 않는다. 결핍을 짚어내고 힐난한 뒤 완전성을 평가한다. 어느 누구도 어느 시대도 절대적인 평가를 보류한다. 아마도 이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저자의 천성과도 일맥하지 않겠는가.

 

얼핏 이 책은 신영복 선생이 쓴 강의를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은 나지 않지만 동양 철학의 이야기를 집대성한 강의가 있다면 서양에는 앙드레 보나르의 그리스인 이야기라는 구도가 머리 속에 그려진다. 역사에 남을 만한 역작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그리스인 이야기 3권을 모두 읽고 덮으니 4권에 대한 아쉬움이 밀려온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4권을 집필했겠지. 그러면 로마와 예수도 그의 사유에서 발가벗겨지지 않았겠는가.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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