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극장에서 부르는 노래
페르가몬의 아침 햇살은 빛났다. 아니 눈부시게 빛이 났다. 편션의 할아버지는 택시를 잡아주면서
푸른 하늘을 보더니 “겨울의 페르가몬은 날씨가 변덕스러워서 이렇게 좋은 날씨를 보기 힘들다. 넌 굉장히 운이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높은 산꼭기에 세워진 아크로폴리스는 페르가몬 시내 어디에서 보아도 한 눈에 들어온다. 세 그루의 소나무로 남은 제우스신전터를지나 트리아누스황제의 신전으로 향했다. 그 본당에 가기 위해서는 열 몇 개나 되는 아치형 터널을 지나가야 한다. 아마 황제나 귀족이 사용했던 터널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걸었다.
터널이 끝나는 곳에 코린토스식 기둥으로 만들어진 전형적인 로마시대 건축물이 웅장한 자태로 웅장하게 서 있다. 하늘을 찌를듯이 줄 맞추어 서있는 석주 하나하나마다 눈맞춤했다. 그네들이 수 천 년의 세월을 견디고 지금 이 자리에 서있는 것이 대견스러웠다.세월을 이기고 시간을 견디낸 그러한 사물들에 대한 내 마음이 그러하다.
트리아누스황제신전 뒤쪽으로 돌아 서 야외 원형극장이 있다. 그런대로 보존이 잘된 페르가몬의 원형극장은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있으며, 가파르기로 유명하다. 입구로 들어가 산을 깎아 만든 극장을 쳐다보니 아찔하다. 제일 앞 열은 로얄석으로 왕을 비롯한 귀족들이 앉았겠지.
꼭대기까지 계단 한 개 한 개를 밞으면서 올라가니 . 하늘로 가는 길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볼에 와 닿는 공기는 차가운데, 원형극장 위로 겨울의 노란 햇살이 내려앉아 따뜻함을 준다. 처음엔 공연의 목적으로 세워질 졌지만, 로마시대로 들어서면서 검투경기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리스시대엔 주로 비극을 공연했을까?
에우리피데스의 <아울리스의 이페게네이아>를 올려본다. 트로이 원정을 떠나야 하는데, 바람이 불어주지 않아, 함대가 움직이지 않는다. 신탁은 이미 그리스인들에게 “출발하기를 원한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했다. 신은 인신공양을 원하는 것이다. 아가멤논 왕은 예언자 칼카스의 의견에 따라 이피게네이아를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희생으로 바치기로 결정햇다.
보나르는 이에 대해 이피게네이아의 아버지이자 장수인 아가멤논을 두고 이렇게 표현햇다.
‘위대한 장수이며, 왕 중의 왕인 아가메논, 군대와 정치가, 그가 증오하는 제사장들에게 마음에 품고 있는 가장 절실한 욕망, 인간의 의식이나 자연의 섭리에 합당한 이 욕망을 강제하는 대신, 모든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휘둘리며 자신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용기, 즉 두려움이라는 궁지에 몰리는 이 한심한 아가멤논’이라고 표현했다. 보나르는 아가멤논은 인간의 영혼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읽는 에우리피데스가 창조한 가장대표적인 인물 중의 하나라고 평했다.
아가멤논이 그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죽이려는 장면 중, 이피게네이아는 노래를 부른다. 제단에 올라가 불에 태워지기를 기다리는 그녀의 심정으로 노래를 듣는다면 눈물없이는 들을 수 없을 것 같다. 저 아래에서 그녀의 슬프고도 애절한 노래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오, 어머니, 어머니, 오, 불행한 이피게네이아여,
그는 나를 바리네요. 나를 넘겨주려 하네요.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그가 말이에요.
그는 나를 홀로 버려두네요. 냉혹한 헬레네와 함께 홀로, 나의 피를 가져갈 검은 아름다움과 함께.
그는 나의 목을 자를 불경스러운 칼을 준비하고 있어요.
왜, 왜 찬란한 에우리포스 해협 위에 사는 신들은 바람의 길을 막은 것일까요?
왜 모든 운명의 주인인 제우스는 어떤 이들에게는 태양이
가득 내리쬐는 바다로 출발하는 기븜을 허락해주고,
나에게는 땅속 음지에서의 괴로운 기다림을 명령하는 걸까요?.......
오, 필요의 신, 무자비한 여신이시여......
오, 생명의 시간이여, 죽음을 학습하는 무서운 시간이여........”
여신도 그녀의 노래를 들은 것일까? 아르테미스여신은 그녀를 불쌍히 여긴 제단에 사슴 한 마리를 남겨놓은 채 이피게네이아를 구름속에 감춘 채 타라우스로 데려간다.
아가멤논은 딸에게 영웅 아킬레우스와 결혼시킨다고 데려왔으니 그 가증스러움은 하늘을 분노하게 만든다. 아침에 그리스비극을 떠올린다는 것이 유쾌하지는 않지만, 우리 인생의 빛깔 또한 비극과 크게 다르지 않다.
“코스모스의 아름다움, 우주의 아름다움은 항상 우리 인간이 지니는 공포와 더불어 날실과 씨실처럼 짜였다.”고 했다.
그리스 비극을 통해서 무엇을 배워야 하나?
“ 비극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인간으로 살기를 배우며, 신들뿐 아니라 우리자신, 인간인 우리 자신의 약한 마음으로부터 기인하는 수많은 장애물을 만나야 하는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배운다. 그리고 크고 작은 부침이 끊이지 않는 그 운명의끝에는 언제나 피할 수없이 이해 할 수 없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다.”
우리의 생에 끝에 죽음이 있고, 생의 그 과정 속에 웅크리고 있는 죽음이 두렵다. 아니 난 살아야만 하는 생이 더 무섭다. 악어아가리처럼 큰 입을 쩍 벌리고 기다리는 생의 그 우연성과 돌발성이 두렵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132 | 김교수와의 만남(공개) :) [7] | 세린 | 2012.07.09 | 2352 |
» | 원형극장에서 부르는 노래 [6] | ![]() | 2012.07.09 | 2526 |
2130 | 나의 문명 전환 [6] | 콩두 | 2012.07.09 | 2371 |
2129 |
쉼표 열둘 - 멀리가려면 함께 가라 ![]() | 재키 제동 | 2012.07.09 | 2622 |
2128 | #37. 신치의 모의비행-서른살생일 [8] | 미나 | 2012.07.09 | 2508 |
2127 | 해줄 것이 없어 미안해(수정) [6] | 루미 | 2012.07.10 | 2298 |
2126 | 7월 off수업-내적 외적사건 [4] | ![]() | 2012.07.16 | 2302 |
2125 | 나의 내적 탐험 이야기 | 학이시습 | 2012.07.16 | 2399 |
2124 | 7월off수업_내적 외적사건 [1] | 서연 | 2012.07.17 | 2375 |
2123 | 7월 오프 수업 - 내적 외적 사건 [2] [1] | 세린 | 2012.07.17 | 2438 |
2122 | #15. 7월 오프수업 - 내적 외적 탐험 [2] | 한젤리타 | 2012.07.17 | 2265 |
2121 | 나의 오지 [1] | 장재용 | 2012.07.17 | 2072 |
2120 |
#15. 7월 오프수업 - 내적 외적 탐험 ![]() | 샐리올리브 | 2012.07.17 | 2317 |
2119 |
외적, 내적 사건 top 5 ![]() | 콩두 | 2012.07.17 | 2445 |
2118 |
쉼표 열셋 - 불타지도 녹슬지도 않기 ![]() | 재키 제동 | 2012.07.17 | 2310 |
2117 |
#38. 신치의 모의비행-실험 ![]() | 미나 | 2012.07.18 | 2590 |
2116 | 아이디어 고갈입니다...(에필로그) [5] | 루미 | 2012.07.18 | 2359 |
2115 | 라파엘로가 호명한 철학자들 [5] | ![]() | 2012.07.23 | 4640 |
2114 |
#16. 한번에 하나씩 ![]() | 한젤리타 | 2012.07.23 | 2119 |
2113 | 젊어서 떠나라 [4] | 장재용 | 2012.07.23 | 2092 |